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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문명과 사회 문제 (0) 2023/06/30 AM 01:21

  

문명과 사회 

  


 
 

  

문명인은 문명을 학습한 것이 아닌 문명으로 가공된 것이다. 가공 인간이다. 가공은 본래 인간이 아닌 물건에 쓰이는 용어지만 문명인의 본질을 표현하는데 적절하므로 쓰기로 결정했다. 학습과 가공의 차이는 성질 변화다. 보통 학습은 성질 변화가 없을 거라 여겨지지만 가공은 변화가 있을 거라 여겨진다.  차이가 매우 중요하다.

  

 

  

모든 인류는 동일 종에 속한다. 그럼에도 다양한 개성을 가진 인간이 많은 까닭은 동일 종이 다양한 문화와 문명으로 가공되었기 때문이다. 정신 가공의 예는 언어가 있고 육체 가공의 예는 백신이 있다. 인간은 자아를 자각하기 전에 언어를 기억하고 백신을 맞기 때문에 본인이 가공되었음을 인식하기 어려웠다고 본다. 의복, 식사, 주거  모든 것이 인간의 손길을 거쳐 가공된 것을 이용하기에 인간 또한 그에 맞게끔 가공되게 된다

  

 

  

가공이 성립될  있는 까닭은 자아의 성질 때문이다. 자아는  내에 의식적으로  움직임을 제어하는 영역에서 세포의 신호를 바탕으로 만들어지는 것으로 육체의 모든 권한을 가지고 있지 않다. 의식적으로  움직임을 제어하는 영역은 자아의 뇌가 담당하고 무의식적으로 작은 움직임을 제어하는 영역은 자아 외의 뇌가 담당한다. 세포의 세부적 움직임이나 무의식적 움직임은 자아의 권한이 아니다. 통상 자아가 자유 의지로 본인의 성질을 변화하는 일이 많아 학습보다 가공이 적절하고, 설령 자아가 자유 의지로 본인의 성질을 변화하지 않겠다고 다짐해도 자아 외의 영역은 권한이 없어 성질 변화가 나타나는 것으로 가공이 성립되게 된다. 자아가 원하든 원치 않든 결과적으로 가공된다는 것이다.

  

 

  

가공 개념은 문명인을 이해하는데 매우 도움이 된다. 예를 들어 유전자나 환경 같이 인간 성질을 결정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의문을 합리적으로   있다. 가공 제품은 소재 성질 내에서만 가공이 가능하듯 가공 인간도 유전자 성질 내에서만 가공이 가능하다. 환경이 아무리 좋아도 유전자 성질 밖을 넘는 성장은 어렵다. 유전자에 의한 알레르기는 극복하기가 어렵다. 또한 가공 제품은 소재를 가공하여 소재보다  가치 있게 되는 것과 같이 문명인도 유전자를 바탕으로  인간을 가공하여  가치 있게   있다. 제품의 소재가 다르더라도 가공이 좋으면 소재 차이를 뛰어 넘을  있는 것과 같이 인간의 유전자가 다르더라도 가공이 좋으면 유전자 차이를 뛰어 넘을  있다. 특히 인간은 동일 종이므로 일반 인간은 대부분 가공에 의한 차이다

  

 

  

문명인의 본질을 알아야 문명인이 일으킨 사회 문제도 파악할  있다. 가공 인간이 조직한 사회는 가공 사회다. 가공 사회에서 가공 인간이 일으키는 사회 현상은 거의 대부분 가공된 대로 행동한 결과다. 한국의 사회 문제인 낮은 출산율과 높은 자살률은 한국 문화와 문명에서 비롯된 결과다. 오랜 시간 인간은 배운대로 행동한다는 것을 어떻게 이해할  있을지 고민했는데 가공 개념이 매우 적절했다 본다. 학습은 하더라도 성질이 크게 변하지 않아 인간의 본성이 사회 문제의 원인이라는 인식이 있었다면 가공은 하게 되면 성질이 크게 변하여 문화와 문명이 사회 문제의 원인이라는 인식을 갖게   있다

  

 

  

가공 개념을 인식하는데 방해되는 것은 보통 영혼과 자아 동일성과 인식과 가치의 절대성이 있다. 영혼 개념에 의해 인간의 본질이 변하지 않는다고 여기거나 그렇기에 자아는 동일성을 가진다고 여겨 가공으로 본질이 바뀐다는 것을 인식하기 어렵게 된다. 그러면서 인식과 가치가 절대적이라고 여겨 본인의 가진 인식과 가치도 절대적으로 여기면서 본질이 바뀔 거라 생각을 하지 못하는 것으로 가공 개념을 이해하기 어려웠을 거라 본다.

  

 

  

[가공: 1. 원자재나 반제품을 인공적으로 처리하여 새로운 제품을 만들거나 제품의 질을 높임.]

  

[학습: 1. 배워서 익힘. 2. 심리_경험의 결과로 나타나는, 비교적 지속적인 행동의 변화나  잠재력의 변화. 또는 지식을 습득하는 과정.]

  

[본질: 1. 본디부터 가지고 있는 사물 자체의 성질이나 모습. 2. 사물이나 현상을 성립시키는 근본적인 성질. 3. 철학_실존에 상대되는 말로, 어떤 존재에 관해 무엇이라고 정의될  있는 성질.]

  

[성질: 1. 사람이 지닌 마음의 본바탕. 2. 사물이나 현상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특성.]

  

[자아: 1. 심리_자기 자신에 대한 의식이나 관념. 정신 분석학에서는 이드(id), 초자아와 함께 성격을 구성하는  요소로, 현실 원리에 따라 이드의 원초적 욕망과 초자아의 양심을 조정한다. 2. 철학_대상의 세계와 구별된 인식ㆍ행위의 주체이며, 체험 내용이 변화해도 동일성을 지속하여, 작용ㆍ반응ㆍ체험ㆍ사고ㆍ의욕의 작용을 하는 의식의 통일체.]

  

 

  

문명인은 문명을 학습한 것이 아닌 문명으로 가공된 것이다. 문명인의 본질은 문명으로 가공된 가공 인간이다. 가공은 본래 물건에 쓰이는 용어로 인간에 쓰이는 용어가 아니지만 가공에 해당하는 인간에 쓰이는 용어를 찾을  없어 쓰기로 결정했다. 새로운 용어를 만들 수도 있었지만 공통 인식을 위해 웬만하면 가능한 기존 용어를 활용할 생각이다. 가공 개념을 문명인이 이해할  있는데 굳이 새로운 용어를 만들어 읽는 이에게 혼란을  생각은 없다.

  

인간을 가공하는 것에는 문명뿐만이 아니라 문화도 있다. 그럼에도 문명으로 가공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문화와 문명의 성질 차이 때문이다. 문화는 인간의 생활 양식을 말한다면, 문명은 문화를 학문으로 체계화한 것을 말한다. 문화(Culture) 정신적ㆍ지적 발전으로 보고 문명(Civilization) 물질적ㆍ기술적으로 보기도 하는데, 그것은 인류 학문  인문 계열은 그다지 발전하지 못했고 자연 계열은 많이 발전했기 때문이다 인문 계열은 그다지 발전하지 않아 도시화에 따른 생활 양식 차이가 크지 않지만, 자연 계열은 엄청나게 발전하여 도시화에 따른 생활 양식 차이가 매우 크다. 문화를 학문화되지 못한 생활 양식으로 보고, 문명을 학문화된 생활 양식으로 본다면 현대의 문명인은 문화보다 문명에 가공되었다 보는 것이  적절하다. 물론 학문화되지 않은 문화에도 영향을 받는 일이 있으므로 보다 정확한 것은 문화와 문명에 모두 가공되었다 보는 것이 맞다. 그럼에도 문명에 초점을 맞춘 것은 학문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문화와 문명의 관계는 학문 전의 옳고 그름을 도덕이라 부르고 학문 후의 옳고 그름을 윤리라 부르는 도덕과 윤리와의 관계와 유사하다

  

학습 인간과 가공 인간의 차이는 성질 변화다. 학습 개념은 대상의 모습은 변할 거라 생각해도 성질은 변하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반면 가공 개념은 모습과 성질 모두 변할 거라 생각한다. 모습은 외면으로 보고 성질은 내면으로 보면 이해가 쉽다. 본성은 본디의 성질을 말하고 본질은 본디의 모습과 성질을 말한다. 학습 개념은 모습만 변하고 본성은 변하지 않는다 여기고 가공 개념은 본질이 변한다고 여긴다. 인간이 언어를 학습하여 대화가 가능한 존재가 되었다. 본성은 변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진다. 스마트폰 소재가 공장에서 가공되어 스마트폰 기능이 있는 존재가 되었다. 본질이 바뀐 것처럼 느껴진다. 이런 느낌으로 보면 된다. 인간은 언어를 모르는 인간과 아는 인간은 완전히 다른 존재다. 하나의 언어만이라도 알고 있어야 언어를 통해 체계적인 생각과 행동이 가능해진다. 그러지 못한 인간은 짐승과 다를  없다. 그럼에도 학습 개념으로는  둘의 본성이 비슷한 것처럼 느껴진다. 학습 개념은 문명인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게 한다. 가공 개념이 문명인의 본질에 적합하다

  

인간은 문명으로 가공되었음에도 아직도 문명인이 일으킨 현상을 해석하려  , 유전자와 같이 문명이 섞이지 않는 성질을 기준으로 하려  때가 많다. 문명인은 가공 인간이기에 특정 기준을 정할 때에는 소재인 인간 유전자와 가공 수단인 인류 문명과 가공 환경인 자연 환경까지  고려해야 한다. 가공 제품이 제품 소재와 가공 수단과 가공 환경이 전부 중요하듯이 인간도 유전자와 문명과 환경이 모두 중요하다. 인간 유전자와 인류 문명과 자연 환경 중에서 자연 환경은 심각하게 인간이 살기 어려운 상황이 아니라면 크게 고려하지 않아도 된다. 왜냐하면 인간의 사회는 그것을 고려하여 적합하게 설계하기 때문이다. 호환이 많은 지역이면 호랑이를 사냥하고 쓰나미가 많은 지역이면 방조제를 설치한다. 그렇게 문명인은 인간이 살기 적합한 인공적인 사회에서 살기 때문에, 문명이 발전할수록 문명인이 일으킨 현상은 인간 유전자와 인류 문명의 영향이 크다   있다. 인간 유전자와 인류 문명 중에서 인간 유전자는 모든 인간은 같은 종이라는 자연 계열의 탐구 결과에 따라, 인간 유전자는 비슷하기 때문에 각각 다양한 개성은 인류 문명에 의함일 확률이 높다. 그렇기에 현대의 문명인이 일으킨 현상을 해석할 때에는 인류 문명을 기준으로 해석하는 것이 가장 적절할 확률이 높다.

  

어떤 이는 인간의 본질을 알아야 한다며 인간이 망가질 정도로 험하게 다루어 문명인으로서의 품위를 잃어버릴 정도가  것을 보고 인간의 본질은 이런 것이라며 비웃는다. 그런데 그것은 스마트폰의 본질을 알아야 한다며 스마트폰이 망가질 정도로 험하게 다루어 기능이 작동하지 않을 정도가  것을 보고 스마트폰의 본질은 이런 것이라며 비웃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가공 인간은 가공된 형태를 지켜야 한다. 문명인은 문명으로 가공된 가공 인간이라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가공된 문명인의 가공 형태를 일부러 부수는 것은 스마트폰의 가공 형태를 일부러 부수는 것과 다를  없다. 가공된 음식, 가공된 백신, 가공된 외모, 가공된 태도  문명인은 전부 가공되었다 보는 것이 맞다.  가공 형태가 체제에 맞는 합리하면 그것을 부수는 것은 불합리한 것이다. 인간이 자연 상태에서 폭력 충동이 일어날  참지 않고 폭력을 행사하고 가공 상태에서는 폭력 충동이 일어날  참고 폭력을 행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문명인은 본인이 문명으로 가공된 상태임을 인식하고 가공 형태를 유지하려고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가공 개념으로 보면 인간의 본성을 다룬 성선설이나 성악설은 의미가 없다. 가공 상태가 훨씬 중요하기 때문이다. 설령 사이코패스라도 상관 없다. 어떤 인간이든 사회와 체제에 맞게끔 가공하면 문제 없을 수가 있다.

  

 

  

모든 인류는 동일 종에 속한다. 인간이 동일한 종임에도 다양한 개성을 가지고 있는 것은 다양한 문화와 문명으로 가공되었기 때문이다. 인간은 동일 종에 속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현대 문명인은 그것을 근거로 모든 인종이 비슷한 인간이라 인식한다. 그러나 가공 개념으로 보면 소재가 비슷한 여러 종류의 스마트폰을 보고 비슷할 거라 여기는 것보다  잘못된 인식이다. 스마트폰은 기본 성능은 물론이고 설치된 소프트웨어에 따라 천차만별로 달라질  있다. 그처럼 인간 또한 기본 능력은 물론이고 가공 수단에 따라 천차만별로 달라질  있다.

  

짐승을 보면 이해하기가 쉽다. 짐승은 대부분 본질 차이가 없다. 생활 양식이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문명인은 가공 수단에 따라 생활 양식이 크게 달라진다. 그렇기에 인류는 같은 종임에도 지역에 따라 생활 양식이 매우 달랐던 것이다. 디지털 시대로 거의 대부분 지역이 실시간으로 교류되는 현재는 체제에 따라 생활 양식이 달라진다. 집단주의 체제에 가까울수록 개인의 권리가 보장되지 못하여 개인마다 본질 차이가 적고 개인주의 체제에 가까울수록 개인의 권리가 보장되어 개인마다 본질 차이가 크다

  

인간은 이미 가공되었다. 인간은 자아를 자각하기 전부터 언어를 기억하고 백신을 맞기 때문에 본인이 이미 가공된 상태임을 인식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문명인은 문화와 문명, 세부적으로 사회, 교육, 놀이, 매체, 의복, 식사, 주거, 화장, 문신, 성형, 성전환, 영양제, 항생제, 백신 등과 같이 다양하게 가공되었다. 사회가 문명인을 교육하는 것은 문명에 적합하게끔 가공하기 위해서고 문명인이 교육을 받는 것은 스스로를 문명에 적합하게끔 가공하여 문명 사회에 적응해 살아남기 위해서다. 가공 개념이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면 중독을 떠올려보면 된다. , 담배, 마약 등과 같은 직접 물질이 영향을 끼쳐 중독 뿐만 아니라 , 취미, 도박 등과 같은 물질이 없는 중독 또한 뇌내 보상 회로에 변형을 가해 본성이 바뀌고,  바뀐 본성에 의해 모습이 달라져 본질도 바뀐다.

  

문명인의 손에 닿은 모든 것이 문명으로 가공된 것이다. 주거, 공원, 도로 같이 보이는 것뿐만이 아니라 공기와 같이 보이지 않는 것조차 가공되었다. 자연도 다를  없다. 생태계 보호, 천연 기념물 보호, 그외 자연 보호와 같이 자연도 인류의 입맛에 맞게끔 가공되었다. 알기 쉬운 예로 짐승 가공이 있다. 인간이 양치기 개에게 가시 달린 목걸이를 주는 것은 양을 지키기 위한 싸움에서 승리하게 하기 위해서다. 인류가 양치기 개를 싸우기 적합하게끔 가공한 것이다. 인간이 짐승을 반려 동물이라 부르며 아끼는 것은 반려가 되게끔 가공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한번 문명으로 가공된 짐승은 자연에서 살기가 어렵다. 짐승을 반려 동물로 만들 것이면 책임질 생각을 해야 한다

  

그럼에도 가공을 부정적으로 본다. 성형, 문신, 성전환 등과 같은 낯선 방식의 육체 가공이나 방송, 게임, 커뮤니티 같은 새로운 방식의 정신 가공에 대한 거부감이 있는 이들이 많다. 심지어 화장 같은 가벼운 가공이나 백신 같은 필수적 가공조차 거부감을 가진 이들이 있다. 미성년 화장 금지 같은 자유권 침해나   안쓰고 아이 키우기 같은 멍청한 소리가 나오기도 하고 있다. 적당한 화장은 자존감을 키우고 호감을 사는 것으로 사회 생활을 원활히 하기 위한 가공이고 약은 살아남기 위한 최적의 가공이다

  

가공을 이해하면 이외에 다양한 사회 현상을 이해할  있다. 가공을 이해하면 유전자 변형 식품을 무조건 거부할 것이 아니라 오랜 기간 검증된 식품은 괜찮을 거라 생각할  있다. 가공을 이해하면 일반 인간과 사이코패스는 소재 차이임을 이해하면 소매마다 가공을 달리하면 충분히 사회에 적응하게   있다고 생각할  있다. 가공 개념을 이해하면 인간은 바뀌지 않는다는 인식에서 벗어나 한번 가공된 제품은 재가공하면 본질이 바뀌지 않듯 한번 가공된 인간은 재가공하지 않으면 본질이 바뀌지 않는 것으로 인식하고 재가공하면 바뀔  있다고 생각할  있다

  

한국은 신체발부 수지부모, 부모가 물려준 육체를 상하지 않게 하는 것이 효라 여겼기에 육체 가공을 부정적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이것은 나도 예외가 아니었다. 개인의 가공은 개인의 자유권으로 인식하고 그것을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으나, 어린 시절 유교적 가치관에 세뇌당해 만들어진 관념 일부가 남아 그것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이 떠오를 때가 있었다. 자아의 의지와 무관하게 자아 외가 멋대로 떠올리는 것이므로 떠올리지 않기가 어려웠다. 그러던 도중 가공 개념을 이해하고 나서 부정적 관념이 대부분 사라졌다. 모든 문명인은 가공된 상태기에 사회와 체제 구조에 영향을 주지 않는  개인의 가공은  문제가 없다는 것을 이해하고 부정적 관념을 바꾸었다. 가공 개념이란 문명인의 본질에 적합한 합리적 개념을 통해 스스로를 재가공한 것이다. 그렇다고 그것을 존중한다는 것이지 모든 것을 좋아한다는 것은 아니다. 존중과 호감은 같은 개념이 아니다. 존중하겠다는 상대에게 호감을 강요하는 것은 가치 강요에 해당한다

  

문명인은 가공 인간이기에 어떤 가공이든 개인과 사회와 체제에 해롭지 않고 가공한 것을 속이지 않는다면 개인의 자유권에 해당하는 문제다. 가공이 잘못된 것은 과도한 다이어트, 피부를 과하게 상하게  화장, 생명을 위협할 성형 등과 같이 소재를 파괴하는 경우다.  모습을 사랑하라면서 다이어트, 화장, 성형 등을 무조건 부정적으로 보기도 하는데, 그렇게  모습이 좋으면 자연으로 가서 짐승과 부대끼며 적자생존, 약육강식으로 살면 된다. 가공된 사회에서 가공된 상태로 살면서 가공을 무조건 부정적으로 보는 것은 잘못되었다. 문명인은 자연 상태를 고집할 것이 아니라 최적의 가공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가공이 성립될  있는 까닭은 자아의 성질 때문이다. 자아는  내에 의식적으로  움직임을 제어하는 영역에서 만들어진다. 태아 시기 감각기관에서 다양한 신호를 수집하면서 조금씩 자아의 기반이 마련된다. 아기 시기 언어를 학습하면서 자아를 자각하는 것으로 자아가 만들어진다. 만들어진 자아는 정보를 수집하며 성장하다가 2 성징 시작 시기인  14세에 자아 형성되어 형상을 이루기 시작된다. 2 성징이 끝나는 시기인  18세에 자아 형성이 완료되어 형상을 이루게 된다. 평균 2 성징 시작은 10~14, 2 성징 끝은 15~17세라고 하는데 보편성을 위해 14세와 18세를 기준으로 삼았다. 문명인은 2 성징이 끝나는 시기에 자아가 형상을 이뤄 대부분 1 가공이 끝난다.  시기가 지나면 웬만해서는  변하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은 가공이 끝났기 때문이다.  시기가 지나도 성장을 하며 변화하는데, 본질이 변하지 않고 자아 나이를 먹으면 추가 가공에 해당하고, 본질이 변하면 재가공에 해당한다. 가공이 끝난 인간도 재가공을 하면 변할  있다

  

인간은 나이를 먹는 것이 자아의 성장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특정한 가공 과정을 거쳐야 자아가 성장을 하게 된다. 어떤 사람이 10세의 육체로 30년을 살았다고 가정하자. 그러면  사람 자아 나이는 10세인가 40세인가? 사회 나이는 40세이겠지만 자아 나이는 10세일 확률이 높다. 자아의 성장은 육체 변화, 환경 변화 등을 바탕으로 어떤 의식적 절차를 통해 인식의 변화가 발생해야 가능한데, 육체와 환경이 변하지 않으면 인식도 변하지 않아 자아가 성장하지 않을 확률이 높다. 단지 조숙한 10세일 확률이 높다. 예를 들어 새해에 나이를 먹었으니 떡국을 먹는다와 같은 의식적 절차를 통해 자아가 나이를 먹는다는 인식을 갖게 된다

  

과거 집단주의 체제의 권위주의 시기에는 연령별 의무가 지정되어  의무를 거칠 때마다 자아 나이가 늘어났었다. 학교를 간다. 일을 한다. 결혼을 한다. 아이를 낳는다. 그러면서 자아는 성장했었다. 그러나 현재는 다르다. 현재 개인주의 체제의 자유주의 시기에는 연령별 의무가 거의 없어 대부분 학교에 가는 미성년 시기를 제외하면 자아 나이를 먹지 않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현재 많은 성년의 미성숙은 사회가 체제 변화를 이해하지 못하고 체제에 맞는 가공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개인주의 체제에 맞게 강제력이 발생할  있는 미성년 시기에 사회, 체제, 학교, , 결혼, 아이 등을 이해하고 자발적으로 단계를 거치면서 자아 나이를 먹는 성장을   있었어야 했다. 그러나 그러지 않았다. 미성년에게 권위주의 시기와 같이 장유유서를 근거로 상명하복을 윤리로 가르치고 남녀칠세부동석과 정조관념을 근거로 이성 관계 단절과  관계 죄악시를 윤리로 가르쳤다.  결과가 바로 다양한 차별이 만연하고 이성을 혐오하고 낮은 출산율과 높은 자살률로 죽음으로 향하는 한국 사회다. 권위주의 시기를 말하며 미성년 때에 가치 생산, 이성 교제, 성관계, 성문화 등을 하거나 접하는 것을 부정적으로  것이 아니라, 자유주의 체제에 맞게끔 자발적으로 사회 구조를 유지하고 원리를 추구할  있도록 가공해야 한다. 미성년  필요한 성장을  하게끔 가공해야 성년  강제하지 않아도 자발적으로   있다는 것이다. 권위주의 시기에 이른 가치 생산, 이른 이성 교제, 이른 성관계, 이른 성문화가 잘못된 것은  자체로 잘못된 것이 아니라 개인의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여 강요되었기 때문에 잘못된 것이다. 개인의 권리가 보장되는 개인주의 체제에서는 되려 그것을 권장하여 자발적으로 행하게끔 성장하게 해야 사회와 체제가 유지될  있다.

  

통상 고정 관념 수에 따라 발상의 제한이 달라진다. 보통 자아 나이가 많을 수록 고정된 관념이 많아진다. 그렇기에 자아 나이에 따라 발상이 필요한 역할이 달라진다. 기초와 응용을 생각하는 탐구자는 자아 형성이 시작되는 14 전후부터 자아의 나이를 먹지 않도록 가공하는  맞다. 시간, 영혼, 도덕, 감정, 행복 등과 같은 진리처럼 여기는 개념들을 처음부터 다시 생각하고, 지금 생각한 것을  시간 뒤에 부정하고 오늘 생각한 것을 내일 부정하는 것은 보편적 관념을 가지고 하기 어려운 일이다. 일반적으로는 자아 나이가 18세는 넘어야 하나, 그러면 자아 형성이 완료되어 자유로운 재가공이 어려워 탐구하기가 어려우므로 탐구자에 한에서는 예외로 해야  것이다. 기초는 암기하고 응용을 생각하는 창의자는 자아 형성이 완료된 18 전후부터 나이를 먹지 않도록 가공하는 것이 맞다. 기초는 물론이고 응용조차 암기하는 교육 과정에 의해 고정 관념이 많아져 많은 한국인들이 창의력을 상실했다. 통상 18 이전의 교육 과정에서 이미 많은 응용 문제 풀이로 고정된 관념의 수가 많아 창의력이 적은 상태이나, 그래도  시기는 고정 관념을 부정하여 스스로를 재가공하는 것이 어렵지가 않다. 그렇기에 창의력이 필요한 역할은 적어도 18 전후로 자아 나이를 재가공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기초와 응용 모두 암기하는 관리자는 재가공이 어려워지기 시작하는 30 전후부터 나이를 먹지 않도록 가공하는 것이 맞다. 자아 나이가 30 이상인 문명인은 언제든지 재가공할  있도록 미리 적어도 30 전후로 재가공해두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그러지 않고 계속 자아가 나이를 먹어 성장하면 자아도 노화되어 죽는 날만 기다리는 시체가 되어버린다. 현재 사회 활동 하는 인구 대부분은 앞으로 인류 멸종을 보거나 불로불사를  확률이 높다. 21세기 세대는 멸종 또는 불사가 결정되는 분기점 세대다. 분기 되기 전에 자아가 노화되어 시체가 되는 것을 방지해야 해야  것이다.

  

자아의 뇌는 의식적으로  움직임을 제어하는 영역을 담당하고 자아 외의 뇌는 무의식적으로 작은 움직임을 제어하는 영역을 담당한다. 세포의 세부적 움직임이나 무의식적 움직임은 자아의 권한이 아니다. 그러나 자아와 자아 외는 상호 영향을 주고 받는다. 자아의 뇌가 기억을 바탕으로 의식적으로  움직임을 제어하면 자아 외의 뇌는  모든 것을 학습하여 자아의 움직임을 계산하여 예측하고 실제 무의식적 움직임을 통해 실행하기도 한다. 유전자 기억을 바탕으로 자아가 움직이고, 그걸 학습한 자아 외를 바탕으로 자아가 움직인다.

  

자아의 성질상 자아 동일성은 성립되지 못한다. 인간의 자아는 유전자 기억을 기초로  육체  신호 움직임을 바탕으로 형성된 것과, 그걸 바탕으로 자아 외가 학습한 것을 기초로  육체  신호 움직임을 바탕으로 형성된다. 그런데 육체  세포는 실시간으로 조금씩 계속 바뀌기에 그걸 기초로  자아나 자아  또한 조금씩 계속 바뀌게 된다. 그렇기에 자아는 동일한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각자 다른 자아가 같은 존재로 인식하는 것은 모든 자아가 같은 기억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성질 때문에 볼일 보기 전과   사람이 달라지는 것이다. 여기서 자아의 변동성은 실제적 개념이고 가공 완료  본질이 변하지 않는 것은 의식적 개념이다. 소재는 실시간으로 변하지만 가공 형태는 1 가공 완료 후에는 재가공하지 않으면 본질이 변하지 않는다.

  

자아의 의지는 자아 외에 의해 실행하기가 어렵다. 자아는 현재 의지에 해당하고 자아 외는 과거 의지에 해당한다. 과거 자아가 행동한 것을 자아 외가 학습하여 예측하기 때문에 재가공 절차 없이 자아 외의 학습을 부정하기가 어렵다. 중독을 끊는 . 편견을 버리는 . 인식을 넓히는 . 등의 것들은 자아 외의 과거 의지에 의해 어려운 것이다. 이해하기 쉽게 말하면 습관대로 행동했기 때문인 것이다. 매체에서  정보가 멋대로 머리 속에 연상되어 떠오르거나 무의식적으로 내뱉는  또한 마찬가지로 자아 외가 멋대로 계산하여 예측하고 실제 실행한 것으로 거기에 자아의 자유 의지는 거의 없다고   있다. 평소 쓰지 않던 욕설을 무의식적으로 내뱉었다고 스스로를 자책할 것이 아니라 스스로 인식하여 주의하는 것이 타당하다. 중독의 경우를 예로 들면, 술을 마시지 않겠다 다짐하고 다음날 술을 마시는 것은 자아 외의 과거 의지에 의한 것이다. 이런 것은 자아 성질상 어쩔  없는 것이므로 중독에 벗어나지 못했다며 자책할 것이 아니라 본인을 재가공을 해야 한다. 스스로 재가공이 어렵다면 기관의 도움을 받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인간은 이런 자아의 성질에 의해 학습보다는 가공이 적절하다. 자아가 자유 의지를 갖고 성질을 변화시키면 가공되는 것이고, 변화시키지 않아도 자아 외에 의해 가공되게 된다. 의지와 무관하게 가공되므로 결과적으로 학습보다 가공이  적절하게 된다. 그럼에도 가공 개념을 떠올리기 어려웠던 것은, 인간의 자아가 형성되기 시작하여 본인을 인식하는 순간 이미 가공된 상태였기 때문이다. 유치원생 남성이 파랑을 선호하고 여성이 분홍을 선호하는 것은 그것이 인류의 본성이 아니라 이미 가공되었기 때문이다. 과거 남성이 분홍을 선호하고 여성이 파랑을 선호했다는 것을 고려하면 유치원생의  선호도는 이미 가공되었음을 이해할  있다

  

 

  

가공 개념은 문명인을 이해하는데 매우 도움이 된다. 인간은 유전자나 환경과 같이 접근할 것이 아니라 가공 개념으로 접근해야 한다. 가공 제품은 소재 성질 내에서만 가공이 가능하듯 가공 인간도 유전자 성질 내에서만 가공이 가능하다. 인간은 유전자 성질 이상 성장하기 어렵다. 소재 한계와 같이 유전자 한계가 존재하므로 인간이 버틸  없을 정도의 환경을 요구하는 것은 소재를 이해하지 못하여 소재를 파괴하는 가공을 하는 것과 같이 인간을 이해하지 못하여 인간을 파괴하는 가공을 하는 것과 같다. 아무리 노력해도  되는 것은  된단 말이다. 선천적 알레르기, 선천적 감각 등도 바꾸기가 어렵다. 어떤 부모가  알레르기가 있는 자녀에게 쌀밥 섭취를 강요하며 먹이자, 자녀가 온몸에 붉은  두드러기가 생겨 응급실에 실려간 사례가 있다. 어떤 시부모가 고양이 알레르기가 있는 며느리에게 청소를 했다고 말하면서 고양이 키우는 집에 방문을 강요하며 강제로 오게 하자, 호흡곤란으로 응급실에 실려간 사례가 있다. 알레르기만큼은 아니지만 대체로 미각이나 취향도 선천적인 유전자의 영향에 의해 바꿀  없을 때도 있다. 그것을 전통 문화라면서 음식을 강요하거나 취향을 강요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정신력을 말하며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는 것은 지극히 부당하다. 유전자 조작이 보편화되면 선천적인 것조차 가공이 가능할  있겠지만 지금 당장은 불가능에 가깝다. 이런 선천적 성질 몰이해는 학습 개념 때문이다.학습 개념으로 접근하여 인간의 본질 자체가 뭐든지 적응 가능한 것이라 착각한 것이다. 반면 가공 개념은 다르다. 가공 개념으로 접근하면 소재 한계 이상은 가공이 불가능하다 여겨지게 된다

  

가공 제품은 소재를 가공하여 소재보다  가치 있게 되는 것과 같이 문명인도 인간을 가공하여  가치 있게   있다. 제품의 소재가 다르더라도 가공이 좋으면 소재 차이를 뛰어넘을  있는 것과 같이 인간의 유전자가 다르다더라도 가공이 좋으면 유전자 차이를 뛰어넘을  있다. 그럼에도 마치 유전자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인식이 있다. 뭔가 해보기도 전에 노력하지 않고 포기하는 것은 단순한 유전자에 책임을 전가하는 것이다. 가공 제품이 소재 한계를 넘을 수는 없으나 소재 한계 내에서는 얼마든지 가공이 가능한 것과 같이 가공 인간도 유전자 한계를 넘을 수는 없으나 유전자 한계 내에서는 얼마든지 가공이 가능하다. 특히 인간은 동일 종이므로 일반 인간은 대부분 가공에 의한 차이다. 인간은 동일 종이기 때문에 인류 아이큐는 일정 이상을 넘을 수가 없고 인류 체력도 일정 이상 넘을 수가 없다. 인류는 동일 종으로 소재 한계가 비슷하기 때문에 달리기 같은 소재 한계를 명확히   있는 경기는 기록의 변화가 드물다. 인간은 대부분 차이가 없기 때문에 타인이 가능한 것은 본인도 충분히 가능할 확률이 높다. 현재 성과에서 노력이 차지하는 비중이 낮은 것은 각각 소재 한계를 모르기에   있는 만큼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노력을 해서   있는 것은 충분히   있다. 미리 포기할 것이 아니라 유전자 한계를 파악하고   있을 때까지 해보는 것이 좋다. 꿈을 이루는 것은 노력하는 자에게 달려 있다. 어떤 것을 바란다 하더라도 그것을 위해 노력하지 않는 것은 진정 바란다 하기가 어렵다. 노력하지 않는 바람은 환상일 뿐이다. 이는 학습 개념 때문이다. 학습 개념으로 접근하면 인간의 본질을 변하지 않기 때문에 노력을 하더라도 의미가 없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인간의 본질을 각자 입맛대로 판단하여, 뭐든지 적응할  있다고 착각하거나 노력을 해도 의미가 없다 여긴 것이다. 반면 가공 개념은 다르다. 가공 개념으로 접근하면 소재 한계 내에서는 얼마든지 가공이 가능하다 여겨지게 된다

  

문제는 소재 한계를 알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이는 유전자 검사, 아이큐 검사, 체력 검사 등을 통해 소재 파악을 일상화하여 대응해야 한다. 소재를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데 가공하겠다는 것은 황당이다. 본인 또한 소재 한계를 파악해둬야 한다. 어디까지 노력할  있는가? 어디까지 먹을  있는가? 어디까지 생각할  있는가? 어디까지 달릴  있는가? 단순히 지식을 암기하고 이해할 것이 아니라 개개인마다 다른 소재를 파악하고 그에 맞는 가공 과정을 거쳐야 한다. 소재 파악 같이 혼자서 하기 어려운 것은 학교 교육에서 하고 지식 암기와 같이 혼자서 가능한 것은 혼자서 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학교 교육에서 소재 파악 이후에 개인이 하고 싶은 것을 찾으면, 그것을 위한 지식 수집, 생각, 암기, 이해 등은 개인이 알아서 하면 된다. 학교 교육은 단순히 주입식 교육을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가공하는 방법을 가르쳐야 한다.

  

인간은 동일 종이기에 문명 차이는 가공 차이에 의한 것이다.  말은  문명의 차이는 인종의 차이가 아닌 가공의 차이가 된다. 문화 상대주의를 말하며 문화마다 차이가 없다고 말하기도 하는데, 세세한 문화는 몰라도 문화를 학문으로 체계화한 문명은 명백하게 차이가 나게 된다. 국력이 차이가 나는 것은 가공 개념으로 접근하면 인종 우열 또는 문명 우열   하나가 원인이 되는데, 모든 인간은 동일 종에 속하므로 문명 우열이란 결론이 나오게 된다. 문명 차이가 나니까 국력 차이가 나는 것이다. 그럼에도 그런 차이가 일절 없다고 접근하는 것은 단순히 윤리를 위해 진실을 왜곡하는 것일 뿐이다. 비행기 타는 문명과 마차 타는 문명이 같을 리가 없지 않나. 문명 우열이 제국주의적 식민 침략을 정당화할  있다는 주장이 있을  있다. 그것은 별개로 봐야 한다. 잘못은 잘못이고 사실은 사실이다. 문명 우열이 있다 하더라도 상대 국가 의사를 무시하고 침략과 착취를 강행한 것이 잘못된 것이 아니게 되지 않고, 상대방 의사를 무시하고 침략과 착취를 강행했다 하더라도 문명 우열이 없던 것이 되지 않는다

  

인종 우열은 인종 전체의 우열에 해당한다면 문명 우열은 개인 우열에 해당한다. 인류 문명은 소수의 인간이 발전하게 했으므로 인종 우열과 문명 우열은 별개가 된다. 인류 지역마다 문명 발전도가 다른 것을 보고 다양한 해석을 하는데, 소수의 인간 유무에 따라 문명 발전도가 다른 것이다. 고대 그리스에서 탈레스와 아리스토텔레스와 같이 자연 계열도 탐구한 인간이 없고 소크라테스와 플라톤과 같이 인문 계열만 탐구한 인간만 있었다면 서양에서 과학 혁명이 가능했을지 의문이 든다. 실제 동양에서는 그런 인간이 없어 과학 혁명이 불가능했다. 있었을 수도 있으나 힘을 가진 자에게 인정 받지 못했다. 우주적으로보면  어떤 인간도 존재 유무가 우주에 영향을 끼치기 어렵지만, 지구적으로 보면 일부 인간의 존재 유무가 지구에 엄청난 영향을 끼칠  있다. 국력 차이라는 명백한 사실 앞에서  차이의 원인이 인종 차이보다는 문명 차이인 쪽이 인류 관점으로   보다  평등하다   있다

  

 

  

문명인의 본질을 알아야 문명인이 일으킨 사회 문제도 파악할  있다. 문명인은 문명으로 가공된 가공 인간이다. 인간의 공동체인 사회는 인간의 평가로 조직된다. 가공 인간이 조직한 사회는 가공 사회다. 가공 사회에서 가공 인간이 일으킨 문제를 파악하려면 가공 인간을 파악해야 한다. 가공 인간은 유전자, 문명, 환경 등으로 가공된 가공 상태가 본질에 해당하며, 동일한 종으로 가공된 사회에서 살아가는 문명인은 대부분 가공 수단에 의한 차이가 나타나 가공이   영향을 끼치게 된다. 소재 차이가 난다 하더라도 그럼에도 사회와 체제에 적합하도록 가공하는 것이 마땅하기에 대부분의 사회 문제는 가공의 책임이 된다. 예를 들어 일반 인간과 사이코패스는 소재가 다르다   있다. 그렇다고 소재 책임을  수가 없다. 가공 제품의 소재가 다르다 하더라도 사회와 체제에 적합하게끔 가공하여 문명인이   있게 하는 것과 같이 가공 인간의 소재가 다르다 하더라도 사회와 체제에 적합하게끔 가공하여 문명인으로 살아갈  있게 해야하기 때문이다. 소재와 무관하게 가공 인간이 일으키는 사회 현상은 대부분 사회에서 문명으로 소재를 가공된 대로 행동한 결과라   있다

  

인류는 과학 혁명을 통해 기술이 발전하면서 다수의 개인이 힘을 갖게 되면서, 기독교 평등주의를 명분으로 삼아 자유로운 사상과 영합하여 개인의 권리가 보장되는 개인주의 체제인 자유주의, 민주주의, 자본주의 체제로 진보했다. 그런데 현대 경제 체제와 과거 경제 체제의 차이는 자본에 있는 것이 아닌 시장에 있어 시장주의가  적합하다   있다. 현대 경제 체제의 상징은 자본이 아닌 시장이라 생각하므로 자본주의보다 시장주의가  적합하다 보고 앞으로는 시장주의라 부르겠다. 웬만하면 기존 용어를  텐데 자본주의와 시장주의가 상징하는 바가 달라 어쩔  없다. 선진적인 인류 사회 체제는 개인주의 체제로 진보하였는데, 윤리는 집단주의 체제의 종교적 가치관인 상태여서 인간은 집단주의 체제에 맞게 가공되었다. 이것이 집단주의 관념과 개인주의 체제의 충돌을 불렀다. 종교적 가치관으로 보면 이기적으로 본인의 욕망만을 추구하는 개인주의 체제가 굉장한 악으로 보였던 모양이다.  결과 사회주의, 공산주의, PC(Political Correctness)주의, 여성주의 등과 같은 윤리 강조 사상들이 대두되었다. 사회에 잔재된 종교적 가치관에 의해 그것은 지지받고 유행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집단주의 체제인 왕정의 질서를 유지하던 윤리였기에 공산주의 국가는 독재 국가가 되고 PC주의와 여성주의는 소수자와 여성 전체의 이익을 위해 타인에게 집단적으로 가치관을 강요하고 자유를 억압하는 일을 자행하게 되었다.

  

많은 개인이 왕정 체제  질서를 유지하던 집단주의적인 종교적 가치관으로 가공되었기 때문에 개인의 권리를 보장하는 개인주의 체제인 자유주의, 민주주의, 시장주의와 같은 사상에 반대와 저항이 발생했다. 세속화된 자유로운 자유 국가는 통제되고 억압받는 신정 국가로 되고, 민주화된 국민에 주권이 있는 민주 국가는 지배자에게 주권이 있는 독재 국가로 되고, 시장화된 개인 경제권이 보장되는 시장 국가는 정부 경제권만 보장되는 공산 국가로 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관념에 의한 것인데, 가공으로 이해하는 것이 쉬울 것이다. 종교적 가치관으로 가공된 상태기 때문에 종교적 가치관을 바탕으로한 체제가 옳다고 여기고 거기로 가려고 하게 된다는 것이다. 특히 유교는 다른 종교와 달리 대놓고 정치사상에 속하여 지배에 최적화된 가치관으로 가공되어  가치관에 의한 부작용이 지나치게 많았다. 어른과 아이 사이에 복종해야할 차례가 있음을 윤리로 가르친 장유유서만 아니었어도 가치관의 대물림이 없어 학문 진보가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그러지 못하고 대물림된 윤리를 종교 교리처럼 절대적으로 여기며 지키는 바람에 조선이 침략으로 망하고 한국은 저출산으로 망하고 있는 중이다.

  

인류는 보편적으로 종교적 가치관으로 가공된 상태기 때문에 종교적 가치관을 바탕으로  사회주의가 유행될  있었다. 본래 종교적 가치관에 의해 인류는 개인주의 체제로의 진보가 불가능했을 수도 있다. 사회주의 혁명과 같이 종교적 가치관을 바탕으로  사회로 회귀했을 확률이 높다.  흐름을 부순 것이 바로 미국이다.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와 같은 공동체 사상은 성립되기 위해서는 자유보다 평등을 중시하거나 민족과 같은 공동체 구심점을 필요로 한다. 그런데 미국은 식민지 독립을 통해 자유를 중시하는 국가였고, 서양 문명 입장에서 신대륙 국가였기에 이민족 국가로 민족과 같은 공동체 구심점이 지나치게 많아 통일될  없었다. 그렇기에 미국은 기독교적 가치관이 있었음에도 단일 민족과 같은 고전적 공동체가 성립되기 어려워 공산주의 열풍에서 벗어나 반공주의의 주축이 되어 개인주의 체제를 지킬 수가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미국이 세계 최강 국가로 자리잡자 종교적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 선진국에서 종교적 가치에 의문을 품고 거기서 벗어날 수가 있었다. 그렇게 하여 다수의 선진국에 개인주의 체제가 자리잡게 되었다. 그렇지 않은 선진국도 사회 민주주의라는 개인의 의사로 집단의 이익을 위해 희생하는 집단주의 체제와 개인주의 체제가 결합한 체제가 되었다. 그것은 체제의 모순으로  이상 진보할  없는 체제지만 어쨌든 개인주의 체제 성질이 남을 수가 있었다. 다수의 공산주의 국가조차도 경제는 시장주의를 받아들여 개인주의 체제의 일부를 받아들이게 되었다. 식민지 독립 국가, 신대륙 이민족 국가, 세계 최강국.  요소가 모여 많은 국가가 개인주의 체제로 진보한 상태를 유지하고 사회주의와 같은 집단주의 체제로의 퇴보를 하지 않을 수가 있었다.

  

종교적 가치관에 영향을 깊게 받은 한국이나 일본이 개인주의 체제를 받아들인 것은 미국 영향이 굉장히 크다. 만약 미국이 없었다면 종교적 가치관에 의해 북한과 같은 체제에서 많은 개인이 고통 받았을 확률이 매우 높다. 그만큼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는 종교적 가치관을 근거로 하여 종교적 가치관을 가진 인간과 어울린다. 수천 년간 종교적 가치관으로 가공된 인간이 종교적 가치관을 버리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현재 미국조차도 종교적 가치관에 의해 소수자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전체주의적으로 타인에게 특정 인식과 가치를 강요하는 PC 파시즘 홍역을 앓고 있을 정도다. PC주의가 개인의 권리를 주장하기에 개인주의적인 것처럼 보여서 대놓고 공동체를 주장한 공산주의와 달리 미국에서 유행할  있었으나,  구조와 원리가 종교와 유사하여 종교 파시즘과 다를  없다. 종교 파시즘은 상대적인 종교적 가치를 절대적으로 여기며 개인에게 전체주의적인 강요를 하는 것을 말한다. 대표적으로 종교 전쟁 등이 있다. 종교와 PC주의가 갈등을 빚는 것을 보고 PC주의가 종교적 가치관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 이해되지 않을 수가 있는데, 윤리를 강조하는 PC주의의 구조와 원리는 종교가 종교의 윤리를 전체주의적으로 강요하던 것과 거의 같다. 종교와 PC주의의 갈등은 교리 해석 차이로 갈등을 빚는 종교로 이해하면 된다.

  

한국 사회는 다양한 종교에 영향을 받아 종교적 가치관에 맞게끔 가공되었다. 한국인은 종교의 보편적 가르침인 금욕주의와 이타주의.   수기치인, 삼강오륜, 정조관념 등의 가르침을 토대로 집단주의적이고 권위주의적이고 차별주의적인 인간으로 가공되었다. 현재 한국 사회 문제인 금욕ㆍ희생 강요, 불합리한 주입식 암기 경쟁, 연령ㆍ성별ㆍ직업 등의 차별, 이성애와  죄악시 등은 전부 한국 문화와 문명으로 가공된 결과다. 다양한 문명의 가공 과정 중에서 윤리가 차지하는 영역이  까닭은 절대성과 강제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윤리는 현재 인류가 일으키는 많은 사회 현상의 원인이 된다. 인간을 가엾게 여겨 돌보는 것이 윤리가 바탕이 되었다면 이교도를 척살해야 한다며 테러를 일으키는 것도 윤리가 바탕이 되었다. 이런 것은 윤리를 절대적으로 옳다 인식할 것이 아니라 단순한 가공 과정으로 인식하면 이해할  있다.

  

종교적 가치관과 같은 억압과 차별을 윤리로 배웠기에 절대적이라 여기며 사회 문제의 원인임을 파악하지 못하기도 하는데, 이는 가공 개념으로 보면 이해하기가 쉽다. 그냥 가공한 대로 결과가 나왔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한국의 사회 문제인 낮은 출산율과 높은 자살률은 한국 문화와 문명에서 비롯된 결과다. 오랜 시간 인간은 배운대로 행동한다는 것을 어떻게 이해할  있을지 고민했는데 가공 개념이 매우 적절했다 본다. 학습은 하더라도 성질이 크게 변하지 않아 인간의 본성이 사회 문제의 원인이라는 인식이 있었다면 가공은 하게 되면 성질이 크게 변하여 문화와 문명이 사회 문제의 원인이라는 인식을 갖게   있다. 사회 문제는 종교적 가치와 가공 개념을 이해하면 파악하기 쉽다. 고질적 사회 문제는 체제 적응 실패로 가공 부적합에 해당한다

  

금욕주의는 죄악을 부를  있는 욕망을 절제하거나 금하자는 것인데, 그것이 윤리가 되자 타인에게 금욕을 강요하게 되었다. 금욕이 옳으니까 본인이 싫은 것은 타인에게 금욕을 강요하는 것으로 타인의 자유를 침해했다. 오늘날 자유 억압의 윤리적 근거는 대부분 금욕주의다. 금욕주의로 이런 사회 문제가 나타난다. “ , 결혼, 출산 안하냐고요? 욕망이 나쁘다면서요. 그래서 안가졌어요. 욕망이 적어 부족함을 느끼지 않는데 뭐하러 일을 하고 결혼을 하고 출산을 해야 하나요?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나 챙기기 위해 아르바이트만 하거나 경제 활동 안하고 이성 관계를 맺지 않고 애도 낳지 않을 거예요.” 사회 전체가 붕괴된다. “ 배고파도 일을 안하냐고요? 그냥 죽을 거니까요 욕망은 나쁜 거잖아요.” 자살률이 오른다. “ 일확천금을 바라냐고요?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인 기본 욕구 충족은 돈이면  되거든요. 자아실현 같은 복잡하고 어려운 욕망은 적고 기본 욕구만 많으니까 돈만 있으면 돼요. 실패하면 죽죠. . 그거 말고 바라는 것도 없는 걸요.” 주식, 부동산, 가상 자산 등의 파멸적 대출 투기가 활성화된다. 욕망이 나쁘다 배워서 동기가 없는 바람에 최소한의 욕구 충족만 하면서 사회 활동을 하지 않는 것으로 국가 자체가 붕괴하고 있다. 경제 활동 둔화나 낮은 출산율과 높은 자살율과 같은 사회 붕괴는 각각 다양한 원인이 있지만 금욕주의를 기본으로 한다. 인과는 단순하다. 인간의 연료인 욕망이 부족하니 인간이 동작하지 않는 것이다. 지금 이러한 사회 문제는 사회 구성원이 배운 대로, 가공한 대로 결과가 나오는 것일 뿐이다.

  

이타주의는 타인의 행복을 위해 본인을 희생하자는 것인데, 그것이 윤리가 되자 타인에게 희생을 강요하게 되었다. 희생이 옳으니까 본인이 싫은 것은 타인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것으로 타인의 자유를 침해했다. 오늘날 개인 희생의 윤리적 근거는 대부분 이타주의다. 이타주의로 이런 사회 문제가 나타난다. “ 타인을 희생시키면서 이익을 추구하냐고요? 희생이 옳다면서요. 그래서 희생시켰어요. 나의 행복을 위해 희생했으니 윤리적이죠.” 부모와 자녀가 서로에게 희생을 강요하고 남성과 여성이 서로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것과 같이 서로가 서로에게 희생을 강요하며 불신이 쌓여간다. “ 기부와 같이 남을 돕는 사람에게 돈을 달라 협박하냐고요? 희생이 옳다면서요. 그래서 나에게도 희생할 기회를 주는 거예요. 지극히 옳은 일이죠.” 타인을 돕는 이들이 돕는 것을 부정적으로 보게 된다. “ 타인에게 책임을 미루냐고요? 희생이 옳다면서요. 그래서 희생할  있게 책임을  거예요. 정말 옳은 일을 해서 기분이 좋아요책임 전가가 늘어난다. “ 공감하지 않느냐고요? 그건 타인이 나에게 공감하면 되는 거예요. 그러면 내가 공감하지 않아도 되잖아요? 그걸 위한 희생은 타인이 하면 되는 거예요.” 일방적인 공감 강요가 나타난다. “ 담합을 하고 비리를 저지른 이를 감싸며 내부 고발을 배신자라 규정하고 비난하냐고요? 집단의 이익을 위해 개인이 희생하는 것이 옳다면서요. 당연히 집단의 이익을 위해 담합하고 비리 감싸고 내부 고발 비난해야죠.” 사회와 체제가 망가진다. 이타주의가 옳고 이기주의가 나쁘다 배워서 개인의 희생을 강요하는 바람에 사회 전체가 서로를 미워하게 되었다. 연령, 성별, 지역 등에서의 불신이나 갈등 같은 사회 붕괴는 각각 다양한 원인이 있지만 이타주의를 기본으로 한다. 인과는 단순하다. 서로에게 희생을 강요하니 서로를 미워하게 되는 것이다. 지금 이러한 사회 문제는 사회 구성원이 배운 대로, 가공한 대로 결과가 나오는 것일 뿐이다.

  

유교적 가치관은 수기치인이나 삼강오륜은 삼강인 군위신강, 부위자강, 부위부강과 부자유친, 군신유의, 부부유별, 장유유서, 붕우유신과 같이 유교의 도덕으로 지켜야할 수직적 인간 관계에 맞춘 강령과 도리등과 같은 유교의 가르침으로 형성된 가치관을  말하는데, 그것이 윤리가 되자 차별을 강요하게 되었다. 차별이 옳으니까 본인이 싫은 것은 차별을 강요하는 것으로 타인의 자유를 침해했다. 오늘날 인간 차별의 윤리적 근거는 대부분 수기치인이나 삼강오륜과 같은 유교적 가치관이다. 유교적 가치관으로 이런 사회 문제가 나타난다. “ 입시에 목을 매냐고요? 자신의 몸과 마음을 닦은  남을 다스리는 것이 옳다면서요. 지배당하지 않고 지배하기 위해서 좋은 대학과 좋은 직장에 가야 하니까요.” 학력에 의한 차별과 함께 입시 과열 현상에 의해 응용 문제조차 암기한 이들이 창의력을 상실하게 되었다. “ 꼰대질과 갑질을 하냐고요? 어른과 아이 사이의 도리에 엄격한 차례와 복종해야  질서가 있다면서요. 상명하복이 옳다면서요. 복종하지 않는  그른 거예요. 나는 옳은 일을 했어요.” 연령 차별, 직업 차별과 같은 수직적 인간 관계가 나타난다. “ 미성년의 이성 교제와 성관계와 성문화를 죄악시하냐고요? 남녀는 칠세 이후  자리에 앉으면  된다면서요. 여성은 정조를 지켜야 한다면서요. 그걸 방해하는 성문화는 매우 나쁜 거예요. 그걸 막는 나는 지극히 옳은 일을 했어요. 성문화를 즐기는 파렴치하고 문란한 놈들은 처벌을 받아야 해요.” 여성성이 억압되는 여성 차별이 일어나고 미성년 시기에 이성 관계와 성을 부정적으로 보게끔 가공되어 성년 이후에도 연애와 결혼과 출산을 부정적으로 보며 그런 부정적 인식을 합리화하기 위해 비혼이 유행하게 된다. 유교적 가치관을 옳다 배워 차별을 윤리로 여기는 바람에 서로가 서로를 차별하게 되었다. 한국에서 차별은 각각 다양한 원인이 있지만 유교적 가치관을 기본으로 한다. 인과는 단순하다. 차별이 윤리가 되니 서로를 차별하게 되는 것이다. 지금 이러한 사회 문제는 사회 구성원이 배운 대로, 가공한 대로 결과가 나오는 것일 뿐이다.

  

사농공상, 가부장제, 정조관념 등은 그러한 다양한 차별의 흔적에 해당한다. 예를 들어 여성을 대상으로  정조관념에 의한 여성성 억압은 여성성 소비를 남성이 하기 때문에 남성 차별로 보일  있는데 실제로는 여성성을 억압받았으므로 여성이 차별 받는 것이다. 구조와 원리를 파악하면 원인이 보인다. 유교적 가치관을 절대적으로 옳다고 배워서 어떻게든 유교를 옹호하려고   있는데, 애초에 유교는 왕정의 정치사상이다. 삼강이 왕정의 의해 왜곡되었고 성리학은 유교 주류와 다소 다르다고 말할  있는데, 공자가 있던 시기의 유교 자체가 왕정의 정치사상으로 설계된 상태라는 것이다. 유교의 핵심 사상인 수기치인은 위정자가 갖춰야  덕목으로 자신의 몸과 마음을 닦은  남을 다스림을 말하며, 이념 자체가 왕정을 대상으로 했으므로 지배를 위함이 명백하다. 모든 가르침이 왕정 체제 내에서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것으로 왕정 내에서는 합리적이라   있어도 민주정 내에서는 불합리하게 된다. 유교를 절대적 가치로 배워 이해하기 어려울  있는데 그냥 쓰임새로 생각하면 된다. 유교는 왕정에서는   있어도 민주정에서는   없다.

  

이러한 사회 문제는 유교 사회에 있을 때에는 문제가 부각되지 않았으나 자유 사회가 되자 문제가 부각되기 시작했다. 과거는 인간과 사회가 모두 종교적 가치관으로 가공되었으나 현재는 인간은 종교적 가치관으로 가공되는데 사회는 개인주의 체제로 가공되어 인간과 사회가 맞지 않는 것으로 충돌이 나서 모든 것이 파탄나고 있다. 과거에는 수직적 강요를 통해 어떻게든 하게 만들었는데 이제는 그런 강요를   없게 되면서 모든 것이 붕괴하고 있다. 사회 체제는 개인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개인주의 체제로 진보했는데 인간 관념은 집단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집단주의 관념에 머물러서 개인은 체제에 부적합하게 가공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가공 개념과 함께 마차와 자동차의 비유를 보면 이해하기가 쉽다. 사회 체제에 맞는 태도를 갖추는 것은 옳고 그름과 별개로 단순히 마차 또는 자동차에 맞는 태도를 갖추는 것과 다를  없다. 자동차 주유구에 당근 주스가 아닌 기름을 넣는 것은 그냥 단순히 자동차에 맞는 것에 해당한다. 옳고 그름과 같이 상대적으로 다를  있는 가치의 영역이 아닌 맞고 틀림과 같이 절대적으로 같을 수밖에 없는 존재의 영역이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윤리를 말하며 자동차 주유구에 당근 주스를 넣고 있으니 제대로   있을 리가 없다

  

조선의 멸망과 한국의 추락을 마차와 자동차로 비유하면 다음과 같다. 조선은 마차로 자동차를 따라가지 못하여 침략 당해 망했고 한국은 자동차를 마차처럼 다루자 저출산으로 망해가고 있다. 민주주의자로서 왕정의 질서를 유지하던 윤리를 가리켜 썩었다고 표현하겠다. 썩은 윤리로 국가가 썩어가고 있다. 그럼에도 사회 문제가 윤리가 원인이라는 사실은 대부분 이해는커녕 수용조차 어려울  있다. 본인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사상과 철학에 책임이 있다고 강조해왔다. 윤리를 옳다 여겨 사회 문제를 악화시킨 것에 대한 책임이 없다고 말해야  정도로 이것은 어찌할 도리가 없다. 윤리 부정을 못하겠으면 그냥 저출산 대책에  쓰지 말고 다른데 쓰는 것이 낫다. 장담컨대 윤리 부정을 못하면 출산율은 오를 수가 없다. 욕망과 이성 관계와 성을 나쁘다 여기게끔 가공했지 않나. 단순히 나쁘다고 가공되어 안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돈이나 부동산이나 노동 시간과 같은 환경을 말하는데, 욕망이 적고 성을 부정적으로 보게끔 가공되어 노력을 해야할 가치가 없어서 연애와 결혼과 출산을 하지 않는 것이다. 동기가 있으면 전쟁 통에도 연애와 결혼과 출산을 위해 노력하고, 동기가 없으면 여유가 넘쳐도 연애와 결혼과 출산을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 결혼과 출산이 높은 가치가 때문에 부유한 이들이  확률이 높은 것이 아니라 낮은 가치기 때문에 부유한 이들이  확률이 높은 것이다. 결혼과 출산의 가치가 낮아 우선 순위가 낮기 때문에 가난한 이들은 낮은 우선 순위에 있는 결혼과 출산을 외면하고 부유한 이들은 낮은 우선 순위까지 가치를 추구할  있어 결혼과 출산을 한다. 그만큼 현재 이성애에 관련된 가치가 폭락한 상태다. 결혼과 출산과 육아에 과한 비용이 들어가는 까닭도 마찬가지다. 이성애에 관련된 가치가 폭락하여 허영심이 깃든 형태에 집착해야만 결혼과 출산과 육아를  동기를 얻게  것이다.  이성애가 아닌 자기애를 동기로 삼아 행동하기 때문에 그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정말 사랑했다면 형태에 집착할 것이 아니라 같이 있는 것만으로 행복해하게 된다. 이해가 되지 않는다면 현재 생각하는 이상형을 떠올려보라.  이상형과 어떤 형태든 같이 있으면 행복하지 않겠는가? 이처럼 현재 저출산은 가공한 결과가 그대로 나오는 것뿐이다. 가공 인간은 자아 탐구를 하지 않는  대부분 가공된대로 행동한다는 것을 이제는 이해해야 한다. 개인주의 체제인 사회에서는 강요할  없기 때문에 학교라는 강제력이 있는 미성년 시기에 사회와 체제 유지에 필요한 , 결혼, 출산에 관한 것을 전부 가르쳐서 가공했어야 했는데 강요가 가능했던 집단주의 체제인 사회의 썩은 윤리 지키다 싹다 망했다.

  

체제 부적응은 가공 부적합에 해당한다면 범죄와 교화 실패는 가공 실패에 해당한다. 점점 많아지고 어려지는 범죄, 교화되지 못하고 반복되는 재범을 보며 강력한 처벌을 하자는 주장이 늘어만 가고 있다. 이것은 인간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학습 개념으로 접근하여 본질을 바꾸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면서 문명으로 제대로 가공하지 않자 범죄가 늘어났다. 설령 사이코패스라 하더라도  소재에 맞게끔 가공을 해서 사회와 체제에 적합하게끔 해야 했는데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면서 그냥 손을 놓고 기피하게끔만 만들었으니 범죄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면서 문명으로 제대로 재가공하지 않자 재범이 늘어났다. 교화는 단순히 학습으로 끝날 것이 아니라 재가공 과정을 통해 아예 다른 사람으로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알기 쉬운 본질 변화는 도박 중독에 의한   보상 회로 변경이나 종교 세뇌 등이 있다. 각각 도박과 종교에 맞게 재가공 되었다.

  

교화가 실패하면서 강력한 처벌이 늘어나고 있다. 그런 처벌 강화에 대해 간단히  가지를 다루겠다. 전자발찌에 의한 이중 처벌에 반대한다. 그것은 잦은 교화 실패에 의한 임시 조치에 불과하다. 정해진 형량을 마쳤는데 사회에서 추가 제재를 하는 것은 이중 처벌에 해당한다. 그렇다고 전자발찌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 20년형이 나오고 10 교도소에 있다가 조기 출소를 하면 나머지 10년은 전자발찌를 차더라도 이중 처벌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런 것과 같이 한번 처벌로 끝나야 된다고 본다. 섣부른 얼굴 공개에 반대한다. 그것은 범죄율을 줄이는데 도움이 되기보다는 대중의 분노를  대상을 만드는 것에 불과하다. 연좌제를 통해 가해자의 가족이나 친구를 감정 쓰레기통으로 만들어 무고한 인간을 쓰레기 취급하게 만들수도 있다. 대중의 분노가 깊은 일부 사건은 감정 쓰레기통이 되더라도 어느 정도는 어쩔  없는 측면에 있을 수도 있지만 그걸 일반화할 수는 없다. 성범죄는 성이 아닌 자유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성관계를 맺은 것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자유권을 침해한 것이 잘못된 것이다. 성에 초점을 맞추면 성을 죄악시하게 되지만 자유에 초점을 맞추면 자유 침해를 죄악시하게 된다. 그래야 성관계가 늘어나고 성범죄는 줄어들  있다. 성에 의한 범죄가 나타났다고 성을 나쁘다 말하는 것이 저출산을 부추기는 것이다.

  

앞으로 인간과 사회는  가지 재가공이 필요하다. 체제 변화에 따른 재가공과 기술 변화에 따른 재가공과 환경 변화에 따른 재가공. 개인주의 체제로 변화되었음을 인식하고 그에 맞게 모든 개인이 재가공 과정을 거쳐야 한다. 현재 가지고 있는 가치관이 왕정 질서를 유지하던 가치관임을 인식하고, 개인주의 체제에 적합한 태도를 갖춰야 한다. 사회 또한 이미 개인주의 체제지만   그에 맞게끔 재가공한다. 디지털 기술이 일자리 소멸을 부른다는 것을 인식하고 그에 맞게 모든 개인이 재가공 과정을 거쳐야 한다. 현재 대부분 일을 하는 성년은 그에 맞게끔 가공된 상태다. 그래서 다른 일을 하는 것을 어려워한다. 그걸 고려하여 단순히 새로운 일자리에 맞는 지식 학습이 아닌 새로운 일자리에 맞는 재가공을 해야 한다. 사회 또한 그에 맞게끔 재가공한다. 지구 환경이 변화되었음을 인식하고 그에 맞게 모든 개인이 재가공 과정을 거쳐야 한다. 지금까지 인식하고 있던 환경 보호의 필요성보다 더욱  필요함을 인식해야 한다. 인간이 살기 적합한 지구 환경 보호는 방식은 가치에 해당해도 실행은 존재에 해당하여 절대적이라   있다. 가능한 환경 보호가 되도록 하고, 지구 환경 변화가 나타나도 인류가 살아남을  있는 기술 발전을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고 인식하게끔 재가공을 해야 한다. 사회 또한 그에 맞게끔 재가공한다.

  

 

  

가공 개념을 이해하는데 방해되는 것은 보통 영혼과 자아 동일성과 인식과 가치의 절대성이 있다. [영혼: 2. 육체에 깃들어 마음의 작용을 맡고 생명을 부여한다고 여겨지는 비물질적 실체.] 인간은 영혼이란 개념으로 인간의 본질이 육체 밖에 있기 때문에 육체의 변화로 인간의 본질이 바뀔 거라 생각을 하지 못했을 거라 본다. 그렇기에 가공 개념을 떠올리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런데 그렇다면  인간은  존재를 인식하지 못하는 영혼이란 개념을 믿었는가? 그것은 자아의 자각 시기에 답이 있다. 인간의 자아는 언어를 익혀야 지성적인 자각이 가능해진다. 그런데 언어를 익혔다는 것은 이미 인간 문명으로 가공된 상태라는 것이다. 그러한 상황에서 스스로를 자각한 자아는  상태를 가공된 후천적인 것이 아닌 가공되지 않은 선천적인 것으로 착각했다. 그렇게 착각한 상태에서 인간은 본인의 존재가 무엇인지 의문을 품었다. 그에 대한 해답을 육체 밖에서 찾은 것이 바로 영혼이다. 이미 자아가 형성되기 시작한 상태에서 스스로를 자각했기 때문에 자아가 만들어졌다고 인식한 것이 아닌 이미 존재하는 영혼이 육체에 깃든다고 착각한 것이다. 이렇게 육체 밖에서 선천적으로 존재하는 영혼 개념을 통해 인간의 자아는 본질이 변하지 않을 거라 생각하게 되었다고 본다. 물론 영혼은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의 자아는 육체에서 만들어지는 것이지 외부에서 깃드는 것이 아니다. 모든 인간이 보편적으로 정보 수집을 통해 자아 형성이 시작되어 스스로를 자각하는 것을 고려하면 인간의 자아는 육체에서 만들어지는 것에 해당한다. 만약 어떤 존재가 외부에서 깃드는 것이라면 자아 형성을 위한 정보 수집이라는 성가신 과정이 불필요하다. 영혼 개념은 AI 자아를 갖게 되면 존재하지 않음이 증명될 것이다

  

영혼 개념에 의한 본질의 불변이 자아 동일성을 불렀다고 본다. [자아 동일성: 1. 심리_타인과 구별되는  개인으로서 현재의 자신은 언제나 과거의 자신과 같으며 미래의 자신과도 이어진다는 생각. 에릭슨의 자아 심리학이나 올포트의 인격 심리학에서 사용한 개념이다.] 그러면서 가공 개념을 인식하기가 더욱  어려워졌다. 물론 자아는 동일하지 않다. 인간의 자아는 세포의 신호를 바탕으로 실시간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실시간으로 조금씩 달라진다. 자아는 추가 가공을 하지 않으면 성장하지 않고 재가공을 하지 않으면 본질이 변하지 않은  가공된 상태를 유지하지만, 세포가 매일 조금씩 달라지듯 자아도 매일 조금씩 달라진다. 인간이 동일한 것은 자아가 아닌 기억이다. 자아는 현재와 과거와 미래가 전부 다른 존재이나 기억을 공유하는 것으로 기억 동일성을 통해 모든 자아가 동일한 존재로 인식하게 된다. 실시간으로 자아가 달라지므로 무언가를 장기적으로 계획했다면 주기적으로  사실을 인지할  있게 메모 같은 것을 남겨두는 것이 좋다. 그래야 모든 시간대의 자아가  계획을 공유할  있다

  

영혼 개념을 받아들이고 본인의 본질이 불변하다 여긴 인간은 본인의 인식과 가치도 절대적이게 여기게 된다. 그것이 인식과 가치의 절대성이다. [인식: 1. 사물을 분별하고 판단하여 .][가치: 3. 철학_인간의 욕구나 관심의 대상 또는 목표가 되는 , ,  따위를 통틀어 이르는 .] 인간은 본인이 분별하고 판단하여 알게  진리, 도덕, 아름다움 따위가 절대적이라 여겼다. 그것을 절대적이라 여기고 다른 이들에게 강요하게 되었다. 그것이 가치 강요다. 종교, 왕정, 공산, PC  인간에게 가치를 강요하는 모든 사상은 인식과 가치의 절대성에서 비롯되었다. 그것이 전체주의적으로 전체를 위해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게 되면 파시즘이 된다. 가치 중에서 아름다움의 경우는 상대적이라 여기기도 하여 상대성을 인정하고 타인의 취향을 존중하기도 하지만 도덕의 경우는 절대적이라 여기며 상대성을 인정하지 않고 타인에게 도덕을 강요하게 되었다. 도덕이 절대적이라 여기는 것에 의해 양심이 지능이라 말하기도 하는데, 만약 양심이 지능이면 양심의 기준이 되는 도덕이 다른 종교는 서로가 서로를 어리석다 여길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서로를 어리석게 여겼다. “ 어리석은 이교도 ! 처단해주지!” “내가 할말이다! 멍청한 이교도 ! 죽어라!” 이런 상호멸시는 사회주의, 공산주의, PC주의, 여성주의 등으로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물론 도덕은 절대적인 것이 아닌 상대적이기 때문에 그런 개념은 성립될  없다. 가치와 지능은 직접적 관계가 없다. 물론 지능이 낮아서 가치를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는데, 그것은 가치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영혼과 자아 동일성과 인식과 가치의 절대성 같은 개념들에 의해 가공 인간이라는 문명인의 본질을 인식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영혼은 존재하지 않고 자아는 동일하지 않으며 인식과 가치는 절대적이지 않다. 이러한 결론은 자연 계열의 선천적이고 절대적인 존재 탐구를 통해 도출했다. 인간은 육체의 감각기관으로 지각한을 인식하므로 육체에 따라 인식이 달라진다. 일반 인간과 색맹 인간은 색을 다르게 보고 10대와 20대는 소리를 다르게 듣고 언어권과 비언어권은 언어를 다르게 느낀다. 그렇게 인식이 상대적이기에 인식을 바탕으로  가치도 상대적이게 된다. 일반 인간과 색맹 인간이 어떻게 사물에 대해 동일한 아름다움을 느끼겠는가? 소리가 크게 들리는 인간과 작게 들리는 인간이 어떻게 소음에 대해 동일한 도덕적 판단을 하겠는가? 아름다움이나 도덕은 물론 진리조차 그렇다. 진리는 실제 존재하는 일반 진리와 학문으로 탐구한 학문 진리로 나뉘는데, 인간이 인식하는 진리는 일반 진리가 아닌 한차례 가공된 학문 진리다. 그렇기에 상대적이게 되고, 그렇기에 그걸 진리로 여기지 않는 이에 의해 학문이 발전한다

  

이처럼 인식과 가치는 상대적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절대적인가? 그것이 바로 존재다. 인간은 색을 다르게 보고 소리를 다르게 듣고 언어를 다르게 느끼므로 인식과 가치는 상대적이지만 거기에 색이 존재하고 소리가 존재하고 언어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절대적이다.  인식과 가치는 상대적이지만 존재는 절대적이다. 그리고  개념이 매우매우 중요하다.  존재의 절대성을 통해 인류의 문명이 급속도로 발전할  있었기 때문이다. 과학이라 불리는 자연 계열의 본질이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바로 선천적 존재 탐구다. 절대적인 존재의 선천적 탐구한 것이 자연 계열이다. 보통은 그런 존재 탐구를 하더라도 인간의 육체에 의해 인식과 가치 탐구가 되기 마련이다. 그러면 각자 탐구 결과가 달라 학문이 체계적으로 발전할 수가 없다. 그런데 그걸 자연 계열은 과학 혁명으로 극복했다. 과학적 방법으로 탐구 결과를 증명하면서 인간의 육체에 의한 상대적인 인식과 가치 탐구에서 벗어나 절대적인 존재 탐구가 가능하게  것이다.  존재의 절대성이 얼마나 위대한 개념인지 이해해야 한다. 만물 존재의 선천적 성질을 탐구하여 보편성이 보장된 증명을 하면서 그걸 기준으로 학문이 체계적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관찰하고 실험하고 탐구한다. 자연 계열은 그것을 미친듯이 반복하면서 인류 문명은 선천적인 세계의 법칙을 규명해냈다. 오늘날 문명의 이기는 자연 계열의 선천적 존재 탐구의 결과물이라   있다. 철학의  기준  하나인 존재를 탐구한다는 측면에서 자연 계열의 탐구자는 선천적 존재를 다루는 철학자도 된다. 그들의 선천적 존재 탐구를 바탕으로 나는 영혼과 자아 동일성을 부정하는 결론을 내리고 가공 개념을 떠올릴  있었다

  

인식과 가치의 상대성은 자연 계열의 선천적 존재 탐구 결과를 바탕으로 나온 개념이다. 그렇기에 인식과 가치가 상대적이라는 사실은 절대적이다. 인식과 가치의 존재 탐구 결과 상대적이라는 사실이 나온 것이다. 존재 자체는 탐구하지 않아도 절대적이라는 사실은 절대적이다. 인식과 가치는 상대적이고 존재는 절대적이다. 이것의 인문 계열 적용을 다음 예시를 통해 이해해보자. 쾌락 연쇄 살인마가 있다 가정하자. 그럴   연쇄 살인은 절대적으로 악하다   있는가? 대부분 이것을 절대적으로 악하다 말할 것이다. 그러나 가치는 상대적이다. 이것은 자연 계열의 존재 탐구를 바탕으로 나온 명제다. 그렇다면 연쇄 살인에 대한 가치 판단도 상대적이라는 결론이 나오게 된다. 그것이 절대적으로 악하지 않다는 것이다. 단순히 말해 쾌락 연쇄 살인마도 인간이다. 그에게는 절대적으로 악하지 않을  있다. 그럼에도 그것을 사회에서 허용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가치의 상대성을 부정할 수도 없다. 그것을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그것은 존재의 절대성을 통해 대응할  있다. 개인의 쾌락 연쇄 살인을 막지 않으면 사회 구조가 유지되지 못하고 체제에 따라 사회 원리도 추구되지 못할  있다.  가치와 무관하게 사회에 부적합하고 체제에 부적합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나쁘기 때문에 막는 것이 아니라 부적합하기 때문에 막는다. 그러면 그것이 절대적으로 악하지 않더라도 막는데 문제가 없게 된다. 존재의 절대성을 통해 가치의 상대성을 성립시킨다. 이것이 인문 계열에서의 존재 탐구  하나다. 인문 계열에서 상대적 인식과 절대적 존재는 이런 식으로 이해하면 된다. 단언컨대  어떤 가치도 상대적이다. 만약 타인에게 무언가를 강제하고 싶다면 가치가 아닌 존재를 근거로 해야 한다. 일부는 마치 본인들이 주장하는 가치가 절대적인 것마냥 말하면서 강요하는 것을 정당화하는데, 가치를 강제하는 것은 자유권 침해에 해당하여 개인의 권리를 보장하는 개인주의 체제에서는 되려 잘못된 것이다. 가치가 아닌 존재를 합리적 기준 삼아 그것에 적합한가 부적합한가로 판단한다. 그것으로 사회가 합리적일  있다

  

동시에 그래야 개개인의 다양한 가치관이 존중될  있다. 체제에 속하는 자유와 그에 반대되는 억압을 제외한, 다양한 가치들, 사랑과 증오가 존중되고 평등과 차별이 존중되며 아름다움과 더러움이 존중될  있다. 증오와 차별과 더러움을 어떻게 존중할  있는지 의문이   있다. 그건 이미 존재를 통해 한번 걸러진 증오와 차별과 더러움이기에 가능하다. 존재에 영향을 끼치지 않은 증오와 차별과 더러움은 보통 타인에게 영향을 끼치지 않고 속으로 생각하는 가치에 해당한다. 속으로 어떻게 생각하든 그것은 개인의 자유이나 그것을 표출하여 사회 구조 유지에 해롭게 되면 존재를 기준으로 제재를 받게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성소수자를 부정적으로 보는 차별을   있다. 그건 상대적 가치로 존중된다. 그러나 그런 가치관을 근거로 직접 영향을 주는 차별을 행하는 것은 절대적 존재에 해를 끼칠  있어 존중되기 어렵다. 이를 망망대해의 뗏목에 표류된 표류자로 비유하면 이해하기 쉽다. 뗏목 위에 미워하는 상대가 있다 하더라도 살아남기 위해 그걸 표현하지는 않는다. 그것과 다를  없다. 존재에 해를 끼치지 않는 가치는 모두 존중될  있다. 존재 탐구를 통해 사랑할 자유와 증오할 자유를 모두 보장하겠다. 많은 인권 운동가들이 존중과 호감 개념을 구분치 않는데 존중과 호감은 다른 개념이다. 각자 다양한 개성은 존중받을  있으나 무조건 호감을 받을 수는 없다. 무조건 호감을 받겠다는 것은 타인의 가치관을 강제로 수정하겠다는 것과 같다.  가치관에 대한 자유 침해다.

  

상대적 가치와 절대적 존재, 이것으로 개인의 최대한의 자유와 사회 질서 유지가 성립될  있다. 존재와 가치의 성질상, 사회 질서의 근간은 절대적인 존재를 기준으로 삼고, 질서  인간 관계는 상대적인 가치를 기준으로 삼는 것이 합리적이다. 그런 측면에서 법에서 공법은 존재를 기반으로 하고 사법은 가치를 기반으로 해야  것이다. 민주 사회에서 법은 학문에서 탐구한 결과를 바탕으로 민주적 절차를 통해 만들어지나, 공법의 존재는 절대적이므로 학문에서 탐구한 결과에 보다 중점을 두고 사법의 가치는 개인의 의견에 보다 중점을 두는 것이 합당할 것이다. 가치를 탐구할 때에는 상대적인 인식으로 탐구하는 것이 아닌 절대적인 존재로 탐구해야  것이다

  

 

  

가공 개념으로 현재 사회를 보면 지금 사회가 얼마나 비정상적인지 인식할  있을 것이다. 보통 가공이 잘못되어 문제가 발생하면 가공 방식을 바꾸는 것이 정상일 것이다. 그런데 현재 사회는 가공이 잘못되어 문제가 발생해도 가공 방식을 절대적으로 옳은 것으로 여기며 다른 곳에서 원인을 찾으려 하면서 더욱  가공 방식을 고집한다. 그러면서 사회는 더욱 엉망이 된다. 그것이 인식과 가치의 절대성이 만든 사회 문제다.

  

현재 심각한 사회 문제  하나가 바로 성별 갈등이다. 그것과 관련이 있는 여성주의로 가치의 절대성이 만든 사회 문제에 대해 잠시 알아보자. 여성주의는 성별 평등을 명분으로 여성 권리 증진을 주장하는 사상으로, 성별 평등보다는 여성 권리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설령 남성이 차별을 받거나 여성이 부당한 이익을 얻더라도 여성이 이익을 얻으면 일단 무조건 옳다 여기는 사상이다. 여성주의 사상에서는 여성이 이익을 얻으면 거기에 맞춰 합리화하기 때문에  이익은 절대적으로 옳게 된다. 어떤 분야나 사건에서 성별 이해관계가 발생하면 여성주의자는 기울어진 운동장을 말하며 여성의 부당 이익을 정당화한다. 기업의 기숙사에서 여성 전용 주차장을 두고 갈등이 벌어지자 투표로 결정하겠다고 했는데 여성 수가 적다는 이유로 여성은 1표로 취급하고 남성은 0.4표로 취급하는 반민주주의적인 사태가 벌어질 정도다. 제정신이 아니다. 이런 논리면 여성 수가 적은 지역의 선거는 남성  반영 비율을 줄일 생각인가? 솔직히 눈물이 났다. 민주주의자로서 이런 추태는 끔찍하기 짝이 없을 정도다. 개인마다 1표씩 주어진 것이지 성별로 나누어 집단마다 표가 주어진 것이 아니다! 이러면서 남성 수가 적을 때에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는다. 그것은 여성의 이익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모든 여성의 이익은 아니다. 여성주의를 이용하여 주장하는 이들만의 이익이다. 여성주의를 이용하는 이들이 손해를 보는 경우에는 여성의 권리를 주장하지 않는다. 가정에서 학대를 당하여 가출한 여성 청소년이나 열악한 환경의 늙은 여성 노동자와 같이 대외적으로 여성주의를 주장할  없는 이들의 권리는 보장되지 못한다. 여성주의는 철저하게 사상을 이용하는 여성의 이익 유무로만 가치가 판단되는 상대적 가치를 절대적으로 여기는 사상이다.

  

반체제적인 추태는 그래도 일부나마 여성의 이익을 주장하는 것에 해당하긴 한다. 그것을 이타주의적으로 타인의 희생을 당연하게 여기며 이익을 추구하기에 체제에 적합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이익을 추구하고 있다. 그러나  이익은 상대적 가치를 절대적으로 여기는 것으로 괴상한 왜곡이 발생하게 된다. 그것이 바로 여성주의의 윤리다. 현재 한국 여성주의는 여성의 성적 자유를 윤리를 명분으로 억압하고 있다. 여성성을 소비하는 것이 남성이다보니 이러한 여성 억압이 남성 억압으로 착각할  있는데 이것은 철저하게 여성 억압이다. 여성성 상품화 금지나 여성 성적 대상화 금지 같은 것이 여성성 억압이다. 여성성이 억압되자 남성이 여성성을 소비하지 못하는 것이고, 남성성이 자유롭자 여성이 남성성을 소비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여성 개개인에 대한 성적 억압을 구체적으로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여성주의는 여성주의를 이용하는 여성의 절대적 이익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여성의 성적 억압은 남성 책임으로 돌리는 것으로 왜곡되게 된다. 여성 성매도자가 있으면 여성 성매도자는 지원금을 주고 남성 성매수자는 처벌하는 것과 같이 말이다. 이러한 일방적인 부당한 손익은 가부장제의 수동적이고 순종적인 여성성을 근거로 정당화한다. 그게 절대적으로 옳다고 배웠으므로 그런 부당 이익에 어떠한 죄책감이나 저항이 없다

  

여성주의의 윤리가 가부장제의 윤리를 바탕으로 하기에 여성성 상품화나 대상화는 반대하면서 남성성 상품화나 대상화에는 반대하지 않고, 그러한 것을 가부장제에 익숙한 기성 세대가 찬성 또는 방관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여성에 대한 성적 억압은 가부장제 시대에 세뇌된 종교적 가치관을 근거로 하기에 가부장제 시대에 살았던 남성과 가부장제 시대에 살았던 여성주의자가 비슷한 성관념을 가지고 있다. 가부장제 시대의 사회 참여를 하지 않았던 의지가 약한 수동적 여성성, 정조관념을 지키는 엄숙주의적인 성관념. 그들이 주장하는 여성성과 성관념의 윤리적 근거는 철저하게 가부장제 시대의 종교적 가치관에 있다. 그걸 성인지 감수성이라 말하며 신세대 여성들을 세뇌하고 사회에 강요하면서 사회 전체가 뒤틀리게 되었다

  

여성주의는 상대적 인식을 절대적으로 여기며 여성 할당제, 여성 가산점, 그외 여성 특혜 등과 같은 알기 쉬운 금전적 손익은 가부장제에 의한 손해를 만회하기 위한 권리라 주장했는데 알기 어려운 윤리적 억압은 가부장제에 의한 억압을 여성의 권리라 주장하게 되었다. 성매매 법적 금지는 정부가  매도자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것에 해당한다.그럼에도 가부장제 가치관으로 그런 여성 억압을 여성이 앞장서서 권리라 주장하고 있다. 성매매는 여성 착취가 발생할  있으므로 막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노동매매가 노동자 착취가 발생할  있으므로 막아야 한다는 것과 다를 바가 없는데 그런 거나 명분으로 삼고 있다. 이미 가부장제 시대의 종교적 가치관으로 가공된 상태에서 정해진 답에 맞춰 변명을 찾으니까 저질스러운 것만 나오는 것이다. 여성주의는 가부장제 가치관을 가지고 그걸 여성 인권이라 주장하기 때문에 실상 현재 성별 갈등은 가부장제에의 차별에서 왔다기 보다는 이익 단체간의 이익 충돌에 의한 갈등에서  것과 비슷하다   있다. 이익을 얻을  있을 때에만 차별을 호소하는 것을 보면 평등이 목적이 아닌 권리가 목적임을   있다. 그러면 남성 이익은 남성이 주장해야 하는  아니냐 말할  있는데, 그거 자체가 인권이 아닌 이권을 주장하는 이익 집단임의 증명이다. 가부장제 가치관에 의한 여성성 억압 또한 그들에게 있어 이익에 해당하므로 전부 이익 충돌이다

  

지금 가부장제 여성성의 세뇌와 성인지 감수성의 강요를 여성의 권리라 주장하는 것이 내게 어떻게 보이는지 아는가? 불법 종교에 세뇌된 인간이 사람들에게 불법 종교가 가르치는 인간상을 다른 인간들에게 세뇌하고 세뇌하고 그러한 것을 공감할 감수성을 강요하는 것이 인간의 권리라 주장하는 것처럼 보인다. 많이 슬프고 화가 난다. 그렇다고 그게 특별하지는 않다. 인간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 인간의 권리라 주장했던 공산주의가 있으니 말이다. 하나 같이 상대적인 것을 절대적으로 여긴 수준 낮은 가치 탐구 사상들이다. 본인 주관으로 꾸미는 것이 성가시자 탈코르셋이나 꾸밈 노동 거부를 따위를 말하는데, 그것은 강요되었기에 잘못된 것이지  자체가 잘못된 것이 아니다. 애초에 현재 사회는 인류 문명으로 가공된 가공 사회다. 거기서 꾸미지 않겠다고 말하는 것은 가공 거부를 말하는 것으로 가공된 문명 사회에서 가공되지 않은 원시인으로 남겠다는 의사 표명에 불과하다. 현재 인문 계열의 사회주의, 공산주의, PC주의, 여성주의와 같은 윤리를 바탕으로  사상은 인식과 가치 탐구에 속하므로 자연 계열의 유사 과학 수준이라   있다. 오늘날 사회 문제로 인식되는 대부분은 유사 과학 수준의 학문으로 교육을  결과로, 이것에 의해 사회 수준이 낮아지는 것이다. 보통 경쟁 사회에서는 경쟁 상대가   있는 국민 수준이 낮아지면 경쟁 우위를 점할  있어 일부는 그것이 본인의 이익으로 이어질  있을 거라 생각할 수도 있는데, 모든 개인에게 주권이 주어진 민주주의 사회에서 그러한 주권자 우민화는 사회 구성원 모두의 손해로 이어진다.

  

가부장제는 수동적 여성성으로 여성의 사회 참여를 막고 정조관념과 같은 여성 성적 죄악시로 여성의 성적 자유를 막는 것으로 일부 남성 입맛에 맞는 가부장제 사회를 성립시켰다. 정녕 여성의 권리를 바랐다면 여성주의자는 여성주의를 이용하는 이들의 모든 이익을 절대적으로 여기고 여성 할당제나 가산점을 주장하거나 주관적 가치를 절대적으로 여기고 여성 성적 억압 따위를 주장할 것이 아니라 여성과 사회와 가부장제 등에 대한 존재 탐구를 통해  구조와 원리를 이해하고 가부장제 여성성과 성관념이 아닌 개인주의 체제에 맞는 인간상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어야 했다. 여성이 사회 참여를 하지 않도록 가공해놓고 사회 참여율이 낮다고 할당제를 넣어야 한다고 주장하거나 여성이 과도한 성적 수치심이나 과도한 피해 의식을 느끼도록 가공해놓고 그런 여성성을 공감할  있는 감수성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을 보면 정말 절망적인 기분이 든다. 만물을 탐구하는 학자라면 상대적인 주관적인 인간상이나 관념에 의존하지 않고 절대적인 존재를 탐구해야 한다.

  

여성주의는 현재 탐구하는 것의 본질, 구조 원리  파악하고 있나? 선천성과 후천성을 구분하고 절대적인 것과 상대적인 것을 구분하고,  상품화 반대나 여성성 공감이나 성관념이나 성인지 감수성의 존재를 탐구한 적이 있나? 그냥 단순히 본인이 가진 종교적 가치관을 절대적 가치로 맹신하며 거기에 맞춘 주장만 했지 않았나? 남성의 범죄를 일반화하며 남성을 잠재적 범죄자로 만드는 것도 제대로 탐구도 하지 않고 종교적 가치관과 이익으로만 판단한 결과지 않나. 그런 논리면 아동 학대나 살해하는 여성을 보고 모든 여성을 잠재적 아동 살해자 취급을 하는 것에 동의할  있는가? 없지 않나! 그냥 모든  여성의 절대적 이익만 추구하니 지나치게 불합리하게 된다. 인류는 문명으로 발전하면서 정당한 이익만 추구하는 것이 문명인의 태도였는데, 그것마저 버리고 짐승과 다를  없이 절대적 이익만 주장한다. 개인주의 체제는 분명 개인이 이기적이어야 하는 체제다. 그러나 여성주의는 단순한 이기주의가 아니다. 여성 집단의 이익을 위한 희생 강요가 있는 집단 이기주의기에 이기주의가 아닌 이타주의에 해당한다. 개인주의 체제에서 이기주의적이어야 하는 까닭은, 모든 개인이 이기적이면 일부 개인의 불합리한 이익 추구는 다른 개인의 이기심에 의해 제지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종교적 가치관에 의해 절대적 이익을 추구하며 타인에게 희생 강요하는 절대적 이익 추구형 이타주의가 사회에서 제지를 받기는커녕 적극적으로 지원 받는 일까지 생기기도 하고 있다. 사실상 이게   문제다. 모든 개인이 이기적이어야 불합리한 이기주의가 견제받을  있다는 것을 강조하겠다. 여성주의자는 성별갈등에서 부당한 이익을 정당화하기 위해 상대 성별을 악마화 한다 윤리 파시스트들이 자주 하는 일이다. 종교의 이교도 악마화, 북한의 미군 악마화, PC 일반인 악마화, 여성주의의 남성 악마화. 그렇게 악마화해서 부당한 이익을 정당화한다. 상대적 가치를 절대적이라 주장하며 강요하는 윤리 파시스트들이다

  

종종 개인의 불행을 사회 탓하지 말라고 하는데, 실제로는 대부분 사회 책임이 맞다. 원시 사회가 아닌 문명 사회에서는 가공 부적합에 해당하는 체제 부적응은 물론이고 범죄조차 가공 실패로 사회 책임에 해당한다. 정확히 사회의 책임이기보다 학문의 책임이다. 문명 사회는 학문을 바탕으로 형성되어지기 때문이다. 그런 사회에서 학문의 영향이 적다   없다. 그래서 학문 책임으로 생각해왔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이건 학문의 책임이기보다 인간의 한계다. 자연 계열에서 핵융합 발전소가 상용화되지 못한 것은 인간의 책임이 아닌 인간의 한계이듯, 인문 계열에서 고질적 사회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것은 인간의 책임이 아닌 인간의 한계다.

  


 
 
 
 

  
  1. 학문
  

1) 학문

  

[학문: 1. 어떤 분야를 체계적으로 배워서 익힘. 또는 그런 지식.] 

  

학문은 전부 인간의 생각으로 만들어졌다. 아무것도 없던 것에서 갑자기 학문이 탄생한 것이 아니다. 시작한 인간이 반드시 존재한다. 시초의 생각이 사상이 되어 널리 퍼지면서 배우는 자가 늘어나면서 점차 체계화된 결과가 바로 학문이다. 시초의 사상가는 문자가 없던 시기에 있었기에 아마 역사서에 남지 않았을 확률이 높다.  사상이 이어져 내려오면서 그걸 체계화하여 학문으로 남은 것이 고대 그리스 철학과 같은 학문이나 유교, 불교, 기독교 등의 종교가 있다. 잠시 학문과 종교의 차이에 대해 언급하겠다. 학문 내에 종교가 포함되며 의심을 하면 학문이고 맹신을 하면 종교가 된다. 학문을 맹신하면 학문 종교이고 신과 같은 초월한 것을 맹신하면 신비 종교다. 유교ㆍ불교 같은 학문 종교는 사회 체제가 되기도 하였다. 그런데 학문 종교와 신비 종교는 명확히 구분된 것은 아니기에 기독교ㆍ이슬람 같은 신비 종교도 사회 체제가 되는 일이 많았다. 인류 문명이 종교 체제에 벗어나 독자적인 체제를 갖춘 지금도 종교를 사회 체제로 삼은 국가를 종교 국가라 부른다. 종교 국가가 아니어도 한국과 같이 종교적 가치관이 남아있는 국가는 종교 체제에서 완전히 독립되었다 보기 어렵다.

  

학문  인문 계열의 본질은 대부분 서력 기원 시기에 종교의 형태로 형상을 갖추게 되었다 종교는 종교의 가르침과 종교적 가치관을 절대시하며 맹신하는 것으로 성립되기 때문에 인식과 가치의 절대성을 추구하게 된다. 오늘날 인식과 가치의 절대성은 종교의 영향에 의한 것이 크다. 종교는 가르침과 가치관을 절대시하여 진리를 이미 알고 있다고 여기기에 새롭게 처음부터 진리를 탐구하지 않는다. 인문 계열은 인식과 가치를 절대적으로 여기며 새롭게 진리를 탐구하지 않았기에 서력 기원 시기의 학문과 현재 학문의 본질이 크게 다르지 않다. 만약 새롭게 진리를 탐구하면 종교를 맹신하는 것이 아니므로  이상 종교가 아니게 된다

  

반면 학문  자연 계열의 본질은 과학 혁명 시기에 과학적 방법을 통해 형상을 갖추게 되었다. 학문으로 남은 자연 계열은 모든 것을 의심하면서 인식과 가치의 상대성을 추구하고 과학적 증명을 통해 보편성을 갖춘 존재의 절대성을 추구하게 된다. 자연 계열은 진리를 모르고 있다고 여기기에 보편성을 갖춘 존재를 끊임없이 탐구하면서 증명을 결과를 바탕으로 체계적으로 끝없이 발전하고 있다. 자연 계열은 인식과 가치를 상대적으로 여기고 존재를 절대적으로 여기며 새롭게 진리를 탐구했기에 학문의 본질은 학문의 한계를 돌파할 때마다 변하고 있다. 만약 새롭게 진리를 탐구하지 않으면 진리를 맹신하는 것으로 학문  종교가 되어버린다. 과학적 방법 측면의 본질은 과학 혁명 이후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다. 자연 계열은 절대적인 존재를 탐구하지만 인간의 탐구이므로 절대적인 일반 진리와 달리 상대적인 학문 진리가 된다. 자연 계열의 진리 탐구는 절대적인 일반 진리를 탐구하여 상대적인 학문 진리가 결과로 나온다.

  

인류는 학문 전과 후가 명확히 구분되기에  구분에 의해 용어가 달라지기도 한다. 생활 양식은 학문을 기준으로 학문으로 체계화되기 전에도 있던 문화와 학문으로 체계화된 뒤에 탄생한 문명으로 나뉜다. 보통 문화를 인문 계열 영역으로 보고 문명을 자연 계열 영역으로 보는데, 이는 인문 계열이 서력 기원 시기부터 본질적으로 크게 변한 것이 없는 반면 자연 계열은 끊임 없이 발전 중에 있기 때문에 생기는 관점이라   있다. 그렇기에 인문 계열의 발전을 고려하면 문화를 인문 계열의 영역으로 보고 문명을 자연 계열의 영역으로  것이 아니라 학문 유무 차이로 구분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옳고 그름은 학문을 기준으로 학문으로 체계화되기 전에도 있던 도덕과 학문으로 체계화된 뒤에 탄생한 윤리로 나뉜다. 동족 살해는 나쁘다고 여기는 것이 도덕이라면 동족 살해가  나쁘고 하지 말아야  이유까지 체계적으로 정리한 것이 윤리다. 가치에 속하는 윤리는 가치의 절대성에 의해  이유가 매우 단순할 때가 많았다.  또는 위인의 말이니까 이것이 옳고 이것이 그르다. 탐구는 학문을 기준으로 사상과 철학과 과학으로 나뉜다. [사상: 1. 어떠한 사물에 대하여 가지고 있는 구체적인 사고나 생각.] [철학: 1. 인간과 세계에 대한 근본 원리와 삶의 본질 따위를 연구하는 학문. 흔히, 인식, 존재, 가치의  기준에 따라 하위 분야를 나눌  있다.] [과학: 1. 보편적인 진리나 법칙의 발견을 목적으로  체계적인 지식. 넓은 뜻으로는 학을 이르고, 좁은 뜻으로는 자연 과학을 이른다.] 학문에 얽매이지 않고 탐구하는 것을 사상이라 부르고, 학문에 속하여 구체적인 목적 없이 탐구하는 것을 철학이라 부르고, 학문에 속하여 구체적인 목적을 가지고 탐구하는 것을 과학이라 부른다

  

사상은 보통 시초의 사상 또는 사상을 학문화한 제자백가, 고대 그리스, 각종 종교, 과학 혁명 등과 같이 시초의 생각 또는 처음부터 새롭게 생각한 것에 해당한다. 학문에 얽매이지 않기에 새로울 확률이 높지만,  새로운 것을 논리적으로 성립시키는 것은 쉽지 않다. 철학은 학문으로 체계화된 이후의 구체적인 목적이 없는 탐구에 해당한다. 인식, 존재, 가치와 같은 추상적인 개념들 막연하게 탐구한다. 그렇기에 곧잘 형이상학적으로 변한다. 보통 인문 계열에서 추상적 개념을 탐구하기에 철학은 인문 계열에 속한다 여겨질  있으나, 자연 계열도 존재를 탐구하는 학문으로 탐구에 구체적인 목적이 없다면 철학에 속하게 된다. 인문 계열의 철학에서는 절대적 인식과 가치의 미로에서 벗어나지 못해 학문 한계 돌파를 하는 일이 거의 없었다. 과학은 학문으로 체계화된 이후의 구체적인 목적이 있는 탐구에 해당한다. 과학적 방법을 통해 선천적 존재를 탐구하여 증명한 결과를 쌓아 체계화하였기에 구체적인 목적을 가지고 탐구할  있게 되었다. 인문 계열이 주로 형이상학을 탐구하고 자연 계열이 주로 형이하학을 탐구하는 것은 그냥 인문 계열이 구체적인 목적을 가지고 탐구할  있을 정도의 체계를 갖추지 못한 상태기 때문이다. [형이상학: 1. 철학_사물의 본질, 존재의 근본 원리를 사유나 직관에 의하여 탐구하는 학문.][형이하학: 1. 철학_형체를 갖추고 있는 사물을 연구하는 학문.] 과학에서는 절대적 존재 탐구를 통해 체계를 갖춰 발전하면서 학문의 한계 돌파를 하는 일이 있었다. 최근 과학의 한계 돌파  하나가 바로 디지털 기술이다. 디지털은 수로 표현한 가상의 형태를 말하는데, 이는 클로드 섀넌이란 과학자가 미분해석기 논리 회로 연구 중에 떠올린 발상을 통해 디지털 기술의 시초인 디지털 회로 이론을 창시했다고 한다. 과학은 체계화를 통해 학문의 한계 돌파가 가능하나, 과학 또한 학문에 속하여 발상을 하기 때문에 과학적 방법을 통해 증명하여 쌓은 체계를 통해 예측할  있는 범위 내에서 발전하고 있다. 갑자기 물리 법칙을 무시한 마법과도 같은 발전은   없다는 것이다. 자연 계열은 선천적 존재 탐구를 통해 엄청나게 세세하게 체계화한 상태기에 대부분 예측 범위 내에 속하지만 절대적 존재 탐구를 해도 인간이기에 상대적 탐구 결과를 내놓으므로 학문에서는 절대적이라 가정하지만 실제로는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그렇기에 자연 계열 또한 기초를 탐구하는 인간이 필요하게 된다.

  

학문은 방법에 따라 탐구, 창의, 관리로 나뉜다. 탐구는 기초와 응용을 모두 생각하고 창의는 기초는 암기하고 용응은 생각하고 관리는 기초와 응용을 모두 암기한다. 사상, 철학, 과학 모두 탐구, 창의, 암기가 가능하나 사상의 경우 학문에 얽매이지 않기에 보통 탐구나 창의일 확률이 높다. 종교를 통해 탐구와 창의와 관리를 알아보자. 종교 창시자는 새로운 사상을 통해 종교를 만들기에 보통 탐구에 속하고 종교 분파 창시자는 종교의 해석을 달리하여 분파하기에 보통 창의에 속하고 종교 신자는 종교의 교리와 가치관을 맹신하기에 보통 관리에 속한다. 사상, 철학, 과학 모두 새로운 발상을 하기 위해서는 고정 관념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런데 인간이 어떤 생각이 학문으로 체계화된 것을 배우면 보통 그것이 진리, 거짓, 절대, 상대, 선천, 후천 등과 관계 없이 고정 관념에서 벗어나기 어려워진다. 배우는 순간 가공되어 고정 관념이 되기 때문이다. 가공된 다음에는 학문의 지식이 고정된 관념으로 자리잡아  틀에 갇히게 된다. 만약 학문의 구조와 원리를 파악한 뒤라면 고정 관념에 갇히더라도 벗어날  있으나, 단지 주입식으로 암기한다면  고정 관념에서 정말 벗어나기 어렵다. 더구나 신속하고 정확하게 문제를 풀어야 하는 시험을 보게 되면 뇌에 각인하여 반사적으로 문제를   있을 정도로 암기해야 하기 때문에  고정 관념이 강하게 고착된다. 그렇기에 주입식으로 암기하여 반복적으로 문제를 풀면 풀수록 발상 능력을 상실하게 된다. 새로운 발상을 하기 위해서는 암기가 아닌 학문의 본질적인 구조와 원리를 파악하여야 한다. 최소한 문제 풀이는 하지 않거나 최대한 줄여 기초만 풀어야 한다. 그래야 응용에서는 발상하기가 수월해진다. 한국인이 창의력이 낮을 때가 많은 것은 앞서 한참 말한 것과 같이 단순히 그렇게 가공되었기 때문이다. 학창 시절 내내 문제만 푸는데 발상 능력이 어떻게 살아남을  있겠는가? 모든 문제에 답이 있을 거라 생각하며 답에 맞춘 학습을 하고 답에 맞춘 관계를 맺고 답에 맞춘 놀이를 즐긴다. 그야말로 답에 맞춘 삶을 산다. 인간 관계조차도 MBTI 같이 문제와 답을 찾으려 하는 것을 보라.  [발상: 1. 어떤 생각을 해냄.][창의: 1. 새로운 의견을 생각해 .] 그렇게 하여 창의 이전에 발상 자체도 어려워하게 된다. 그렇다고 문제를 풀지 않는 인간은 학문에 관심이 없어 발상을 하지 않아 발상 능력이 성장할 수가 없다. 그렇기에 발상 능력은 학문에 관심이 있어 구조와 원리를 파악하면서도 문제 풀이를 하지 않거나 적게 하는 인간이 키우기가 쉽게 된다. 지식은 AI  우수하기 때문에 앞으로 발상 능력이  필요하게 되어 앞으로는 발상 능력을 해치는 주입식 교육과 응용까지 문제로 푸는 문제 풀이 평가는 도움이 되기는커녕 되려 해롭기만 하게  정도가 되었다고 본다.

  

 

  

2) 학문 영역

  

자연 계열과 인문 계열은 학문 영역이 다르다. 자연 계열은 선천적인 것을 탐구하고 인문 계열은 후천적인 것을 탐구한다. 가공 개념으로 보면 자연 계열은 소재를 탐구하고 인문 계열은 가공을 탐구한다. 자연 계열과 인문 계열은 초기에 사상과 철학으로 합쳐져 모든 학문이 본인의 인식과 가치를 절대적으로 여기며 탐구했었다. 그러다 자연 계열은 과학 혁명 이후 인식과 가치에서 벗어나 선천적 존재를 탐구하여 과학적 방법으로 증명하는 것으로 인문 계열에서 분리되었다. 반면 인문 계열은 현재까지도 본인의 인식과 가치를 절대적으로 여기며 탐구하는 것으로 진보하지 못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인문 계열 또한 후천적 존재 탐구로 진보해야 한다. 그런데 인문 계열이 후천적 존재를 탐구하기 위해서는 후천적인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아야  필요가 있다. 탐구 대상도 모른채 탐구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그렇기에 오늘날 인간이 알고 있는 개념들이 선천적인 것인지 후천적인 것인지 구분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선천성과 후천성을 구분하지 전에 알아두어야 하는 전제가 있다. 인간은 언어를 배운 순간부터 이미 가공되어 본질이 바뀐 상태라는 것이다. 자연을 보며 모든 것이 선천적인 것에서 시작한다고 생각할  있는데, 인간이 인식하는 개념들은 인간이 언어를 배워 가공된 상태에서 만든 것이기 때문에 인간의 개념은 후천적이다. 인간이 알고 있는 모든 개념은 언어화를 거치는 순간 가공된 것이다.   자연 계열이 선천적 존재 탐구를 통해 선천적이라 증명된 개념을 제외하면, 모든 개념은 후천적인 것으로 파악하고 상대적으로 선이라   있는 개념과 거기에서 파생된 후라   있는 개념을 구분해야 한다.  가지 알아보도록 하자

  

지각을   있는 지성을 가진 인간의 자아가 인식이란 개념을 만들었다.

  

이해를 지각하는 지성을 가진 인간의 자아가 가치라는 개념을 만들었다.

  

변화를 지각하는 지성을 가진 인간의 자아가 시간이란 개념을 만들었다.

  

존재를 지각하는 지성을 가진 인간의 자아가 영혼이란 개념을 만들었다.

  

죽음을 지각하는 지성을 가진 인간의 자아가 도덕이란 개념을 만들었다.

  

감각을 지각하는 지성을 가진 인간의 자아가 감정이란 개념을 만들었다.

  

결핍을 지각하는 지성을 가진 인간의 자아가 행복이란 개념을 만들었다

  

모든 개념은 가공된 개념이며 상대적으로 선인 것과 후인 것으로 분리되게 된다.  중에 자연 계열에서 선천적 존재 탐구를 통해 선천적이라 증명된 개념과  이상 분리될  없는 개념들을 선천적인 것으로 여기게 된다. 선천적 개념은 자연 계열의 선천적 존재 탐구를 통해 증명해야 한다. 그래야 인문 계열이 후천적 존재를 탐구할  있다. 본래 인문 계열은 어떻게 해도 본인의 주관적인 인식과 가치에서 자유로울  없었으나, 자연 계열이 과학적 방법을 통해 선천적 존재 탐구가 가능하게 되면서 그걸 바탕으로 후천적 존재 탐구가 가능하게 되었다. 본인의 주관적인 인식과 가치가 아닌 과학적 방법으로 증명된 사실을 기준으로 삼아 논리적으로 추론하는 것이다. 인간은 어떻게 해서 지각할  있는가? 그걸 자연 계열에서 탐구한 것을 인문 계열에서 활용하여 존재를 탐구한다. “이런 구조와 원리로 인간이 지각할  있기 때문에 인식이 성립되는구나.” 이런 식이다. 이렇게 인문 계열은 자연 계열의 과학 혁명 없이는 존재 탐구가 불가능해서 과학 혁명 이전의 인문 계열의 탐구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가공을  알기 위해서는 소재를 파악해야 하고, 가공된 것의 소재를  알기 위해서는 가공을 파악해야 한다. 그렇기에 자연 계열의 발전은 인문 계열의 발전으로 이어지고, 인문 계열의 발전은 자연 계열로 이어진다. 예를 들어 시간은 변화를 지각하는 인간이 만든 후천적 개념이다. 만물은 물리적 이동만 있다. 시간은  이동이란 변화를 지각할  있는 인간이 지각 순서에 따라 과거, 현재, 미래로 구분한 개념일 뿐이다. 그렇기에 시간은 세계의 법칙에 속하지 않는다. 시간이 세계의 법칙에 없다는 것은 자연 계열에서 시간을 전제하고 추측한 개념들은 성립될  없다는 말이 된다. 시간 여행 불가능하다. 시간을 전제하는 다세계 불가능하다. 인문 계열도 마찬가지다. 숙명 없다. 운명 없다. 윤회 없다. 전생 없다. 환생 없다. 사후 세계 없다. 후천적인 개념을 선천적인 개념으로 바라본 까닭은 인간이 만든 개념들을 체계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이라도 자연 계열의 선천적 존재 탐구를 바탕으로 인간이 만든 개념들을 체계화해야 한다. 그래야 인문 계열에서 과학이 성립될  있을 것이다.  가지 개념들을 알아보겠다.

  

존재를 지각하는 지성을 가진 인간의 자아가 영혼이란 개념을 만들었다. 영혼 개념은 원시 부족 시대에도 있던 것이기에 선천적인 것으로 착각할  있다. 그러나 그것은 후천적이다. 존재를 보고  존재의 근원이 어디에서  것인지 탐구하다 나온 결론이 바로 영혼이었다.  영혼 개념은 자아 개념과 일치한다고 보면 된다. 차이는 외부와 내부다. 영혼은 외부에서 오고 자아는 내부에서 만들어진다. 존재의 근원이 완성된 형태에서 육체에 깃드는 것이라면, 육체의 성장 과정과 별개로 본질이 같아야 하는데 그렇지가 않다. 자연 계열의 탐구를 통해 인간은 경험을 통해 본질이 변한다는 사실을 쉽게   있다. 도박을 경험한 인간은 뇌내 보상 회로가 바뀌어 도박에 집착하게끔 모양과 성질이 변한다. 육체를 손상해도, 기억을 잃어도 본질이 바뀌는 것을 마치 절대적인 것마냥 인식하게  것은 영혼 개념에 영향을 받아서다. 영혼의 개념이 후천적이라면 어째서 거의 대부분 문명에 영혼 개념이 있던 것일까? 그것은 짐승의 행동 양식으로 이해하면 된다. 원시 부족 시기에 인간은 문화로 약간 가공되었던 시기로 짐승과 행동 양식이 비슷했다같은 종의 짐승이 지구 반대편에 살고 있더라도 비슷한 행동 양식을 가진 것과 같이, 당시 영혼 개념은 인간 종이 가진 행동 양식에 해당한다. 그렇기에 보편적으로 영혼 개념이 있었던 것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하자. 현대 문명이 존재를 파악할  없는 존재를 원시 부족이 존재를 파악했다는 것이 논리적으로 말이 된다고 보는가? 그건 원시인이 현대인보다 지식 수준이 높다는 것보다  허무맹랑하다. 영혼에 대한 믿음의 근거는 그저 오래된  말고는 없다.

  

도덕 개념은 죽음을 지각한 인간이 살아남기 위해 무엇이 옳고 그른지 기준을 정한 것에 해당한다. 개인이든 집단이든 살아남기 위한 판단이 필요할 것이 아닌가? 그것이 생존에 필요했기 때문에 절대적이게 되었고,  영향으로 미는 상대적으로 인식하는 일이 있어도 도덕을 상대적으로 인식하는 일이 드물었다. 그러나 이제 도덕을 절대적으로 여기지 않아도 된다. 그것은 도덕이 없으면 사회 구조를 유지하고 원리를 추구할  없었던, 선천적 존재 탐구가 없던 비과학 시대의 한계에 불과하다. 현재는 도덕을 상대적으로 여긴다 하더라도 사회와 체제의 구조와 원리를 파악하여 존재 유지의 강제력을 통해 구조를 유지하여 원리를 추구할  있다. 이것이 문명 사회다

  

감정 개념은 감각을 지각한 인간이 임의로 만든 것에 해당한다. 어떤 감각을 느낀 것을 A감각은 B감정이라 학습했기 때문에 특정 감각을 특정 감정으로 인식하는 것일 뿐이다. 감정은 인간이 만든 개념이기 때문에 스스로도 본인의 감정을 정확히 모른다. 그렇기에 흔들다리에서 사랑과 공포도 구분못하는 것이다

  

행복 개념은 결핍을 지각한 인간이 결핍 충족으로 느끼는 만족감을  용어로 표현한 것에 해당한다. 행복이 결핍 충족에 따른 만족감에 해당하여 극단적으로 말해 목을 졸랐다 풀어도 인간은 행복을 느낀다. 공기 결핍이 발생했다가 공기 결핍이 충족되는 것으로 행복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목조르기를 불행하게 느끼는 것은  행위 자체가 부당하다 느꼈기 때문이지 그걸 부당하게 느끼지 않으면 행복만 남는다. 일반적인 행복은 결핍이 나타날  바라는 것이 생기고 바라는 것을 이룰  충족되는 만족감을 가리킨다. 바라는 것이 나타나서 결핍이 생기고 바라는 것을 이룰  충족되는 만족감을 가리키기도 한다.  나은 것을 바라는 것은 행복이 아닌 욕망에 의한 것이다 행복의 원리상 인간은 결핍 충족만 성립되면 행복을 느낀다. 비문명인이 매우 불편해보이는 삶을 산다 하더라도 문명을 모르면 그걸 불행하다 여기지 않는다. 모르기에 결핍이 발생하지 않기 때문이다. 디지털 시대에 불행이 높아지는   하나는 디지털에 의해 아는 것으로 결핍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결핍을 욕망을 동력으로 삼아 충족하려고 하면 성장하고 그렇지 않으면 피폐해지다 자살한다. 그렇기에 금욕주의를 강조할수록 성장이 아닌 자살이 늘어난다. 행복이 결핍 충족이기 때문에 마약 또한 인간을 행복하게 하는 물질이 맞다. 사회에서 마약을 금지하는 것은 그것이 인간을 행복하지 않게 하기 때문이 아닌 사회와 체제의 존재 구조를 붕괴시키고 원리를 망가트리는 해가 있기 때문이다. 마약은 행복을 부르는 물질이나 사회와 체제에 해롭기 때문에 막는 것이므로, 구조가 붕괴하기 직전인 죽기  시한부에게 있어 마약은 행복만 부르는 물질이 되어 막을 이유가 없다. 개인주의 체제에서 마약은 이제 막기가 어렵다. 자발적으로 마약을 접하지 않기로 결정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마약을 부정적으로 보는 인식이 널리 퍼져야 한다.  방법이 바로 마약의 시한부 전용 물질화다. 마약을 시한부 전용 물질로 만들어야 마약이 죽음을 상징하게 만들  있고, 죽기 전에는 마약을 접해볼  있다는 기저 인식을 통해 급하게 접할 이유가 없게 만드는 것으로 마약을 하지 않게   있다. 이렇게 인문 계열에서 개념의 체계화가 되어야 사회 문제를 합리적으로 대처할  있다.

  

이외 모든 개념을 체계화하여 정리해야 한다. 예를 들어 사랑은 다양한 가치의 형상을 말한다. 어떤 그림에서 모양은 가치가 높다, 선은 가치가 보통이다, 색은 가치가 낮다. 이런 가치를 종합하여 형상을 이뤘을 ,  형상에 바라는 가치가 있다 느끼고 그걸 바라는 감정을 가리켜 사랑이라 부르는 것이다. 인간에 느끼면 인간애가 되고 사물에 느끼면 사물애가 된다. 이것을 통해 진실된 이성애와 타산적 자기애를 구분할  있다. 진실된 이성애는 인간 자체에 가치를 느꼈을 때를 가리킨다. 그것이 외면이든 내면이든 말이다. 타산적 자기애는 타인에게 가치를 느낀 것이 아닌 본인에게만 가치를 느꼈을 때를 가리킨다. 성적 쾌락이든 재물이든 말이다. 성적 쾌락으로 이성애와 자기애를 구분한다면, 이성애는 상대방과의 관계에서 얻는 성적 쾌락에 가치를 느끼고 본인의 성적 대상이 상대방이어야 하고, 자기애는 본인의 성적 쾌락 자체에 가치를 느끼고 본인의 성적 대상이 굳이 상대방이 아니어도 되는 것을 말한다. 이성애와 자기애는 공존이 가능하기 때문에 이성애를 하면서 다른 것으로 성적 쾌락을 얻는 것이 성립될  있게 된다. 그러므로 포르노와 같은 것으로 자위한다고 사랑이 식었다고  것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에게 가치를 느끼는지 아닌지를 구분하는 것으로 사랑 유무를 확인해야  것이다.

  

사랑이 후천적인 개념인 만큼 성적 정체성이나 지향성도 후천적인 개념이 된다. 사랑과 공포도 구분 못하는데 성적 정체성이나 지향성을 구분할  있을 거라 생각하는가? 성별은 남성과 여성 두가지만 존재한다. 단지 호르몬 이상 등으로 남성 육체를 가진 상태에서 자아가 여성에 가까워질  있고 여성 육체를 가진 상태에서 자아가 남성에 가까워질 수는 있다. 그것을 보통 선천적 동성애라 여기지만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선천적 이성애라 여기는 것도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도박으로   회로가 바뀔  있듯이 이성애자라도 동성과의 관계에서 쾌락을 기억하면 육체가 바뀔  있다. 고대 그리스, 전국 시대 일본에서 동성애가 유행했던 것은 그들이 선천적 동성애자였기 때문이 아니다. 유행으로 성적 지향이 달라질  있을 정도로 성애는 후천적이다. 그렇기에 이성애자가 VR에서 이성 아바타를 사용하고 동성과 인간 관계를 맺으면 동성애자가   있기도  것이다. 흔히 동성애자들이 본인들이 절대적으로 선천적이라 여기기도 하는데 그것은 이미 그렇게 가공된 상태기 때문이다. 가공 전후 구분은 선천적 존재 탐구 결과를 바탕으로 하지 않으면 인식과 가치로 쉽게 판단이 가능하지 않다. 동성애자들은 종종 이성애자가 동성애자가 되기도 하는 것을  것이다. 이성애자가 동성애자로 바뀌는 것은 이해되고 동성애자가 이성애자로 바뀌는 것은 이해되지 않는 건가? 당연히 동성애에서 이성애로 바뀔  있다. 그럼에도 동성애자를 후천적으로 강제로 바꾸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은 아니다. 선천적인 것에 영향을 받아 동성애자가 되었기에 바꾸지 말자는 것은 둘째치고 개인주의 체제에서는 사회와 체제의 존재를 붕괴시킬 정도가 아니라면 개인의 성향이나 가치관은 존중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다양한 성적 정체성이나 지향성은 수많은 가공 형태  하나로 존중할  있는 영역이다. 물론 그런 가공을 속이거나 악용하는 일은 막아야  것이다.

  

인류 역사가 지배의 역사라  정도로 지배가 일반적이었기 때문에 지배가 선천적 개념으로 인식할  있다. 그러나 지배는 후천적 개념으로 인간의 자유롭고 싶다는 욕망  하나일 뿐이다. 지배가 선천적이지 않기 때문에 친구와도 같은 평등한 관계가 성립될  있는 것이다. 이런 평등한 관계는 짐승 관계에서도 찾아볼  있다. 지배가 선천적이지 않으므로 서열 또한 선천적이지 않다. 그럼에도 지배가 일반적이었던 것은 그것이 자유를 실현하기 위한 방식  하나였기 때문이다. 본인이 상대와 자유롭게 무언가를 하고 싶은 것을   가장 편한 것이 지배다. 상대를 지배하여 하고 싶은 것을 한다. 자유가 선이고 지배가 후가 된다. 지배를 통한 자유는 주로 왕정 지배와 윤리 지배가 있다. 왕정 지배는 보통 폭력을 수단으로 삼는다. “맞고 싶지 않으면  말을 따라야 한다.” 윤리 지배는 보통 도덕을 수단으로 삼는다. “ 도덕적 주장이 학문이 있던 이전부터 오랫동안 절대적으로 옳았으니까 너는  말을 따라야 한다.” 조선의 지배자는   가지를 활용해 피지배자를 지배했다. 지배가 선천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에 사회를 규칙을 통한 자유를 추구하도록 가공하면 지배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가 성립될  있다. 자유의 실현 방식의 일종이 지배이기 때문에 자유 자체를 부정적으로   있는데, 개인주의 체제에서 자유는 모든 개인의 자유를 말하여 지배가 성립될  없다. 자유욕이 곧잘 지배욕으로 변질될  있기 때문에 개인주의 체제에 살고 있는 개인은 모든 개인의 자유를 추구하는 체제에 맞는 가공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자연 계열의 탐구자도 인간이기에 인문 계열의 학문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인문 계열이 존재 탐구로 진보하면 자연 계열의 탐구 또한 유의미한 발전이 있을 거라 생각한다. 적어도 상대적인 왕정의 윤리를 근거로 절대적인 선천적 존재를 탐구하는 자연 계열의 발전을 막는 일은 하지 않게  것이다.

  

 

  

3) 학문 탐구 방법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고 느껴지지 않지만 거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미시 세계의 물질은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고 느껴지지 않지만 자연 계열의 증명이 거기에 있다고 하니까 있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절대적 존재 탐구 방법이다. 무슨 종교 신앙과도 같지만 종교와 다른 점은 어디까지나 과학적 방법을 통한 증명을 근거로 한다는 점이다. 그렇게 해야 상대적 인식에서 벗어나 절대적 존재를 탐구할  있다. 흔히 자연 계열이 선천적인 것을 탐구하여 보이는 것을 탐구한다고 여길  있는데 그렇지가 않다. 자연 계열의 탐구는 현상을 파악한 다음 눈을 닫고 귀를 막고 감각을 차단한 상태에서 머릿속 증명과 논리와 실험 결과만 가지고 탐구하는 것에 해당한다. 자신의 인식을 믿지 않고 탐구한다. 그것이 쉬워 보이지는 않을 거라 생각한다.

  

보이고 들리고 느껴지는 것만 거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거시 세계에서 본인의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피부로 느낄  있는 것만 있다고 여기며 그렇지 않은 것은 초자연적인 신비를 다룬 종교가 있다고 주장하는 것을 믿는다. 이것이 상대적 인식 탐구 방법이다. 철저하게 본인의 주관적인 인식으로만 탐구하며 인식 외의 것은 그냥 신앙한다. 그렇게 해서 본인의 상대적인 인식을 절대적으로 여기게 된다. 흔히 인문 계열이 후천적인 것을 탐구하여 보이지 않는 것을 탐구한다고 여길  있는데 그렇지가 않다. 인문 계열의 탐구는 본인의 인식과 증명 없는 인식 밖의 일방적 주장만 탐구하는 것에 해당한다. 자신의 인식을 절대적으로 여기며 탐구하고 인식 외는 신앙한다. 그것이 어려워보이지는 않을 거라 생각한다.

  

종종 절대적 존재 탐구 결과를 상대적 인식 탐구 결과로 맞서며  다른 증명없이 그저 오랫동안 옳았다는 이유 하나로 본인이 옳은 것이라 주장하며  인식과 그것에서 비롯된 가치를 강요하기도 한다. 그런데 그건 정말 어처구니 없는 짓이다. 상대적 인식 탐구 결과는 이런 것이다. 낮에 하늘을  사람에게 하늘은 파란색으로 보일 것이다. 저녁에 하늘을  사람에게 하늘은 주황색으로 보일 것이다. 밤에 하늘을  사람에게 하늘은 검정색으로 보일 것이다. 각각 사람들은 하늘의 색을 파랑과 주황과 검정으로 인식했다 가정하자. 그런 사람들이 하늘 색의 구조와 원리, 인간의 시각의 구조와 원리를 증명한 자연 계열의 증명을 바탕으로  주장에 맞서서 본인이  색이 무조건 옳다고 주장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오늘날 대부분 분쟁은 이런 상대적 인식을 절대적이라 여기며 그것으로 비롯된 가치도 절대적으로 여기면서 상대의 인식과 가치를 무시하는 것에서 나타난다고 보면 된다. 나치즘이 무엇이었는가? 본인의 인식으로 아리아인이 우월해보였고, 그걸 바탕으로 가치 또한 우월하게 느낀 것을 절대적으로 여긴 것을 타인에게 강요하고 다닌 것이 아니던가

  

일반 의학과 동양 의학을 통해 절대적 존재 탐구와 상대적 인식 탐구에 대해   알아보자. 일반 의학과 동양 의학의 결정적 차이는 탐구 방식이다. 일반 의학은 선천적 존재 탐구를 했다면 동양 의학은 후천적 인식 탐구를 했다. 하늘 색으로 비유하면 일반 의학은 하늘 색의 구조와 원리, 인간의 시각의 구조와 원리를 증명했다면, 동양 의학은 수많은 다양한 색을 전부 모아 통계를 내서 하늘 색이 무엇인지 파악했다 여겼다. 그런 것이다.일반 의학은 구조와 원리를 파악하여 보편성을 가지고 대부분 환자에 적용할  있지만 동양 의학은 구조와 원리는 모른  온갖 경험을 통해 나온 통계를 가지고 때려 맞춘다. 그래서 맞을 때도 있지만 틀릴 때도 있다. 보편성이 없어 증명도 못한다. 그런데도 가끔은 맞으니까 맞는  아닐까 싶기도 한다. 이는 기반으로  학문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이냐에 따라 달라진 것이다. 일반 의학은 자연 계열의 탐구에서 비롯되었고 동양 의학은 인문 계열의 탐구에서 비롯되었기에 이런 결과가 나왔다.

  

절대적 존재 탐구는 보편성을 바탕으로 체계적인 발전이 가능하지만 상대적 인식 탐구는 각자 인식이  달라 보편성이 없어 체계도 갖추지 못하고 발전도 못한다. 일반 의학은 끝없이 발전 중에 있지만 동양 의학은 과거에 머물러 있는 까닭은  때문이다. 인간의 종이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에 과거의 방식이 통용될 때도 있어 동양 의학이 살아남기는 했지만 인식 탐구에 머물러 있는  어떤 경우에도 발전할  없다. 이것으로 인문 계열이 현재 서력 기원에서 본질적으로 발전하지 못한 이유도   있을 거라 생각한다. 상식적으로 보편성이 없는 학문이 어떻게 발전할  있겠는가? 개인이 다르게 인식하고 지역이 다르게 인식하고 시대가 다르게 인식하는데 어떻게 발전하겠는가? 각자 본인들의 인식이 맞다고 주장하면서 싸우기만  뿐이다.

  

현재 상대적 인식 탐구를 하는 인문 계열은 대부분 자연 계열의 유사 과학과 다를 바가 없다. 특히 윤리가 그렇다. 자연 계열의 증명을 활용한 무기와 경제 정도만 절대적 존재 탐구를 통해 발전할  있었다. 무기는 자연 계열을 대부분 활용하고 경제는 수학을 주로 활용하면서 체계적으로 발전했다.  학문들의 특징  하나는 실패하면 파멸할  있다는 점이다. 무기는 실패하면 죽고 경제는 실패하면 망한다. 그리고 죽거나 망한 이유를 대부분   있다. 그렇기에 가장 적합한 방법을 찾으면서 자연 계열의 절대적 존재 탐구를 바탕으로  방법을 이용하게 된다. 그러면서  학문들은 성장했다. 반면 윤리는 사회 전체가 썩은 윤리로 망해가고 있는데도 윤리가 원인인 줄을 모른다. 인과를 명확히 모르기에 상대적 인식을 절대적이라 여기며 사회를  썩게 만든다. 윤리가 오래되어 체계적이라  수도 있는데 그건 동양 의학도 오래 되어 체계적이라 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근간이 존재 탐구가 아닌 이상 그건 체계적인 것이 아니라 그냥 쓸데 없이 복잡한 것이다.

  

그렇다 해도, 인문 계열이 수준이 낮다 해도 자연 계열에서 당장 인문 계열의 역할을 대체할 수는 없다. 그건 의학 문외한인 동양 의학을 대신해 의료를 하겠다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물론 동양 의학이 증상을 악화시킬 수도 있지만 오랜 경험으로 본질적인 치료는 못하더라도 증상 완화 정도는   있다. 물론 치료를 못하니까 안은  썩어들어갈 수도 있지만 당장 죽지는 않게   있다. 당장 자연 계열에서 수많은 인간 관계를 유지하고 그에 따른 질서를 만들고 유지하는 것을 효과적으로  자신이 있다 장담할  있는가? 아예 인문 계열과 별개라면 모르겠지만 이미 인문 계열 학습이 끝난 터라 자연 계열이라 하더라도 인문 계열에서는 인문 계열과 크게 다르지 않을  있다. 단지 자연 계열은 존재 탐구 개념을 보다  쉽게 이해할 수도 있을 뿐이다. 그렇기에 현재 가장 효율적인 것은 인문 계열이 절대적 존재 탐구로 진보하는 것이다.

  

인문 계열은 후천적 존재 탐구를 해야 한다. 후천적 존재 탐구는 이미 가공된 존재를 탐구하는 것에 해당하여 기준 또한 가공되는 일이 있다. 예를 들어 인간 육체 유지에 경우에는 자연 계열의 선천적 존재 탐구를 기준으로 삼을  있다.  기준으로 유지 방법을 정한다. 그러나 사회 구조 유지 같은 경우에는 대상이 지나치게 광활하여 선천적 존재 탐구 결과를 기준으로 삼을 수가 없다.  명에 맞춰 육체 유지 방법을 정하더라도 그게 다른 사람에게 맞을 거란 보장이 없다. 이것은 인간이 문명으로 가공된 상태기 때문에 그렇다. 짐승의 경우에는 자연 계열의 탐구를 기준으로 삼을  있으나 문명인의 경우에는 자연 계열의 탐구를 기준으로 삼을 수가 없다. 그렇기에 기준을  차례 가공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체제다. 과거 왕정은 집단주의 체제로 개인의 이익보다 집단의 이익을 우선시하게 했다면 현재 민주정은 개인주의 체제로 개인의 이익만을 추구하게 했다. 자유권, 주권, 선택권, 소유권 등의 권리가 집단주의 체제에서는 집단에 속하여 집단의 장이 권리를 행사했다면, 개인주의 체제에서는 개인에 속하여 모든 개인이 권리를 행사했다. 단순히 사회 구조 유지만 목적으로 두었다면 집단주의 체제이든 개인주의 체제이든 상관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문명인이기 때문에 사회 구성원들이 모여 결정한 삶의 방식이란 가공된 기준을 합리적 기준으로 삼기로 결정한 것이다.  합리적 기준이 바로 체제다. 문명인이 사회의 체제에 맞는 태도를 갖추는 것은 그야말로 육체에 맞는 음식을 섭취하고 자동차에 맞는 연료를 주입하는 것과 다를  없을 정도로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다른 삶의 방식을 원한다면 새로운 체제를 만들거나 가져와 사회 구성원을 설득하는 것으로 체제를 바꾸면 된다.

  

문명인은 문명으로 가공된 가공 인간이다. 그런 측면에서 체제가 다른 사회에 사는 인간은 본질이 다른 존재에 해당한다. 체제에 맞게 재가공하지 않으면 사회에 어울릴 수가 없다. 이는 이민 정책이나 해외 정책을 정할  반영해야 한다. 유럽 이민 정책의 실패는 이민자를 체제에 맞게 재가공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고 미국 아프가니스탄 실패는 미국 물자만 투자하고 미국 체제에 맞게 아프가니스탄 사회를 재가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상대적 인식과 그것으로 만들어진 상대적 가치와 그것으로 만들어진 문화 상대주의에 의해 사회 수준 차이가 난다는 명확한 사실이 왜곡되어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은 결과 실패하게 되었다. 문명인은 문명으로 가공된 존재임을 이해하고 그러한 가공이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해야 한다. 그렇다고 무작정 강요를 하라는 것은 아니다. 선택하게 하면 된다. 선진국의 물질적 풍요를 누리려면 그것에 맞게 재가공되는 것을 받아들이게 하면 된다. 자동차 주유구에 당근 주스 넣으면 고장나는 것과 같이 체제에 맞지 않는 이민자가 들어오면 사회가 고장난다. 이것은 존재 탐구를 통해 판단된 사과를 손에서 놓으면 떨어진다는 단순한 인과와 다를 바가 없다

  

모든 인문 계열은 후천적 존재 탐구를 해야 한다. 체제를 예로 들어보자. 자유의 구조와 원리, 민주의 구조와 원리, 시장의 구조와 원리를 전부 파악해야 한다. 가치나 개념의 존재를 탐구하는 것이다. 그렇게 탐구한 다음  탐구 결과를 사회 구성원이 각자의 상대적 인식으로 추구해야  가치인지에 대해 판단한다. 판단 결과 사회 체제가 되면  다음에는 체제의 구조와 원리를 파악하고 나서 어떻게 해야  체제의 구조가 유지되고 원리가 추구될  있는지 탐구한다. 각각의 탐구 결과에 따라 개인은 체제에 맞게끔 스스로를 가공하고, 정부는 정책과 제도를 체제에 맞게 만든다. 그렇게 체제를 합리적 기준으로 삼아 합리적인 사회를 만든다. 사회 구성원  어떤 가치가 옳다고 말하며 사회 체제가 되기를 바란다면, 본인의 주관적인 인식을 바탕으로 마냥 옳다고 주장할 것이 아니라 가치의 존재를 탐구하여 구조와 원리를 파악한 다음, 탐구 결과를 공개하면서 다른 사회 구성원을 설득해야 한다. 다른 사회 구성원은 각자 상대적 인식으로 파악하여 판단한 다음 가치를 추구할 것인지를 정한다. 사회 구성원 대다수가  가치가 높다고 판단된다면 사회 체제화를 하여 사회 전체가  가치에 맞는 삶을   있도록 한다. 개인의 가치로 사회를 바꾼다는 것이 이런 것이다. 그러나 현재 사회  가치는 그저 오랫동안 옳다 배운 것을 앵무새처럼 되풀이하며 말할 뿐이다. 아무런 탐구를 하지 않고  가치를 절대적으로 여기며 종교와 같이 신앙할 뿐이다. 이제 그래서는  된다

  

이타주의와 같은 개인의 희생이 옳다고 배웠다는 이유로 그것이 절대적으로 옳은 것처럼 여기면  된다. 그냥 사전 정의만 봐도 이해할  있다. 개인의 희생을 절대적으로 옳다 여기게 만들다니,  얼마나 끔찍한 사상인가? 오늘날 파시즘의 원리  하나는 이타주의다. 특정 누군가의 상대적 가치를 절대적으로 옳다 여기며 그것을 위해 개인이 희생하는 것을 옳다고 만들었다. 반면 이기주의는 개인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것이 그르다고 배웠다는 이유로 그것이 절대적으로 그른 것처럼 여기면  된다. 사회 체제가 개인의 권리를 추구하도록 만들었는데, 개인이 개인의 이익만 추구하는 것을 나쁘다 여기면 어떻게 개인의 권리가 온전히 보호될  있겠는가? 오늘날 집단주의적인 개인 권리 침해는 전부 이기주의가 나쁘다 여기고 이타주의가 옳다 여긴 것에 근거한다. 사회 구성원이 모두 개인의 이익만을 추구하면 어떻게 사회가 유지되냐고 물을  있다. 바로 그게 인문 계열의 역할이다. 인문 계열은 사회와 체제의 존재 탐구를 통해 개인의 이익만을 추구해야 사회와 체제의 구조가 유지되고 원리가 추구될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사회 구성원도 이타주의를 근거로 타인에게 희생을 강요하지 않고 이기주의를 근거로 개인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것을 비난해서는  된다. 모든 개인의 권리가 보장되는 삶을 살자고 약속했으면 그에 맞는 태도를 갖춰야 한단 말이다. 무알콜 술을 통해 존재 탐구에 대해 간단히 알아보자. 최근 일하면서 무알콜  섭취에 대한 찬반 여론이 있었다. 이것을 상대적 가치로 보면 일할  술을 마시면 나쁘다는 관념을 통한 인식으로 그것을 마시면  된다는 판단이 나올  있고 절대적 존재로 보면 알콜이 없기 때문에 무알콜 술을 마시는 것은 일반 음료를 마시는 것과 다르지 않으므로 그것을 마셔도 된다는 판단이 나올  있다.  나아가 일의 목적은 가치 생산이므로 가치 생산에 해롭지 않다면 알콜이  술이라 하더라도 마셔도 된다는 판단이 나올  있다. 이런 것이 존재 탐구다.

  

현재 가장  사회 문제의 원인은 사회 미숙이다. 개인의 자유가 보장되는 개인주의 체제에서는 개인에게 강제력을 행사할  있는 미성년 시기에 사회와 체제에 맞는 태도를 갖추게끔 가공했어야 했다. 미성년이 사회와 체제에 대해 이해하고, 이성 관계와 성관계를 긍정적으로 인식하고 성적 자기결정권을 가진 다음 미성년 시기부터 자유롭게 이성 교제와 성관계를 했어야 했고, 가치 생산을 긍정적으로 인식하고 일할 권리를 가진 다음 미성년 시기부터 자유롭게 일을   있었어야 했다. 그러나 개인의 자유가 보장되지 못하는 집단주의 체제의 방식을 그대로 쓰면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고 성년이 되었는데, 강제할 수도 없어 사회와 체제를 이해하지 못하고 이성 관계와 성관계를 부정적으로 여기며 하지 않고 가치 생산 또한 부정적으로 여기며 하지 않는다. 그것으로 한국 사회는 파탄났다. 간단히 생각해보자. 강제하던 때의 방식을 강제하지 않고서 강제하던 때와 동일한 결과가 나올  있겠는가? 이것은 깊게 생각하지 않아도 당연히 답이 나와야 한다. 이걸 이해하지 못할 수가 없다. 그럼에도 인식조차 못했던 것은 그걸 인식하지 못하게  것이 절대적 가치로 여기던 윤리였기 때문이다. 왕정 시대의 질서를 유지하던 썩은 윤리가 한국 사회를 파멸에 몰고갔다. 이미 파탄난 상태기 때문에 많은 성년이 미숙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강제력을 동원하여 재가공할 수도 없다. 그것은 반체제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대로 놔둘 수도 없다. 그렇기에 게임의 퀘스트를 자발적으로 하는 것과 같이 퀘스트 제도를 통해 사회와 체제 이해와 이성 관계와 성관계와 가치 생산 등을 자발적으로 하게끔 유도해야 한다. 이것은 교육 단계에서 실패한 것을 사회 단계에서 해결하는 것에 해당한다. 그렇다고 교육이 현행을 유지하라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실패에 대한 대응으로 정상적인 방식이 아니다. 지금이라도 미성년  기본적인 성장이 가능하도록  가르쳐야 한다.  방법  하나로 이른 입학도 쓸만하다. 그래야   교육할  있는 시간이 늘어나고 학생은   자유롭게 교육을 받을 선택을   있다. 현재 사회에서 미성년 문제는 윤리를 운운하며 합리적인 방식을 동원하는데 저항이 심한데, 그럼에도 진행해야 하는 것은  윤리는 유사 과학 수준의 왕정 시대의 질서를 유지하던 썩은 윤리이기 때문이다. 사회 구성원 모두가 이제 상대적 가치라는 과거의 질서에 손을 놓고 절대적 존재라는 새로운 질서에 손잡아야 한다.

  

인문 계열 탐구  5~6 만에 자연 계열의 과학 혁명을 따라잡았다. 앞으로  5~6 안에 현대 과학을 따라잡겠다. 자연 계열의 과학 혁명은 상대적 인식 탐구에서 절대적 존재 탐구로의 전환을 의미하고 현대 과학은 모든 자연 계열의 탐구가 존재 탐구로 바뀌어 그것을 바탕으로  가치 생산이 이뤄지는 것을 의미한다.  현대 과학을 따라잡겠다는 것은 모든 인문 계열의 탐구가 존재 탐구로 바뀌어 그것을 바탕으로  가치 생산이 이뤄지게끔 하겠다는 것이다. 솔직히 힘들  같긴 하다. 과학 혁명  자연 계열의 선천적 존재 탐구가 보편화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지금까지도 상대적 인식 탐구를 유사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자연 계열의 절대적 존재 탐구를 부정하는 일이 있을 정도다. 그렇기에 인문 계열이 후천적 존재 탐구로 진보한다 하더라도 보편화되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도 희망적인 것은 자연 계열을 통해 이미 존재 탐구 개념이 널리 인식된 상황이라는 것과 디지털 기술에 의해 사상 전파 속도가 엄청나게 빠른 것으로 자연 계열의 과학 혁명보다는 빠르게 진보할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현재 지구 환경을 고려하면 인류 문명이 존재할  있는 시간이 그리 길지 않을  있기에 하루라도 빠르게 진보해야 한다. 그러므로 힘들더라도  수밖에 없다. 부디 인류 문명의 인문 계열이 자연 계열과 같이 존재 탐구로 진보하길 바라겠다.

  

 

  

4) 학문과 사회 문제

  

대부분 사회 문제는 보자마자 해결할  있었어야 했다. 고질적 사회 문제는 보자마자 본질, 원리, 원인, 과정, 결과를 파악하고 해결책을 내놓았어야 했다. 그리고 일부 예외인 새로운 사회 현상에 대해서는 따로 탐구하여 해결했어야 했다. 지금은 새로운 사회 현상은커녕 고질적 사회 문제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이것은 인문 계열이 상대적 인식 탐구를 하는 바람에 학문이 체계적으로 발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금이라도 인문 계열은 절대적 존재 탐구를 통해 체계를 갖춰야 한다. 그렇게 하여 현재 직면한  가지 인류의 사회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하나는 개인주의 체제다. 개인주의 체제는 과학 혁명, 기술 발전, 힘의 분산, 개인 권리 주장, 기독교 평등 사상 명분, 자유 사상과의 영합을 통해 혁명을 일으키면서 개인의 권리를 보장하는 것으로 나타난 체제다. 인문 계열의 탐구를 통해 만들어진 것이 아닌 개인의 권리를 보장하다가 보니 만들어진 체제기 때문에 굉장히 결함이 많은 상태였다. 모든 존재의 기본적인 구조 유지에 대한 개념조차 없어서 복지의 필요성에 대해 이해하지를 못하고 있었다.  결함으로 수많은 개인이 고통 받았고, 그것에 의해 종교적 가치관을 바탕으로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와 같은 집단주의 체제로의 퇴보가 일어나게 되었다. 집단주의 체제인 왕정에서 개인주의 체제인 민주정으로 진보했다가, 개인주의 체제의 결함으로 다시 집단주의 체제인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로 퇴보하게  것이다. 흔히 윤리만 보고 자유주의 체제에서 사회주의 체제로의 변화를 진보로 여기는데, 체제의 구조와 원리를 보면 개인주의 체제에서 집단주의 체제로의 변화에 해당하므로 퇴보가 된다. 만약 인문 계열이 존재 탐구로 진보했다면 결코 어떤 경우에도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같은 집단주의 체제 따위를 진보로 여기지 않았을 것이다

  

관념은 아직 종교적 가치관에 머물러 있는데 체제는 어쩌다 개인주의 체제로 진보하면서 관념 체제 충돌에 의한 사회 문제가 격화되었다. 관념과 체제의 이익 추구 방향이 아예 정반대다. 관념으로는 집단의 이익을 위해 개인이 희생해야 하는데 체제는 개인의 자유권, 주권, 소유권 등을 보장하는 것과 같이 개인의 이익만을 위하도록 설계되자, 서로가 개인의 이익만을 위해 서로에게 희생을 강요하게 되었다. 이타주의가 옳다 말하며 타인에게 희생을 강요하고 이기주의가 잘못되었다 말하며 개인의 이익만을 위하는 것을 비난한다. 유착, 담합, 비리 등등 거의 대부분의 문제는 이와 같은 관념 체제 충돌에 의한 것이다. 이러한 문제들은 인문 계열이 존재 탐구로 진보하여 개인주의 체제에 맞는 정책과 제도와 캠페인을 통해 개인주의 체제의 결함을 개선하는 것으로 해결할  있다

  

둘은 디지털 기술이다. 디지털 기술은 수로 표현한 가상의 형태를 구현할  있는 기술을 말하는 것으로 이것을 통해 문명인은 한차원 다르게 가공되었다. 아날로그 기술 시대의 문명인과 디지털 기술 시대 문명인은 본질이 다르다. 디지털은 거리에 제한이 적어 실시간으로 지구 반대편의 정보를 수집할  있다. 이것이 얼마나 굉장한 일인지 이해해야 한다. 디지털 기술은 가상의 형태를 구현하여 가상의 사물을 인터넷이 연결된 곳이라면 어디서든 무제한으로 복제할  있게 되었다. 디지털 기술은 AI 발전하면서 인간보다 훨씬 효율적인 가치 생산이 가능하게 되어 인간의 일자리를 위협하게 되었다. 디지털 기술은 가상 현실을 실현하는 것으로 현실과의 경계가 무너지는 시기를 부를  있다. 디지털 기술은 디지털 자아의 출현으로 인류를 불로불사하게 만들  있는 시기를 부를  있다.

  

이러한 디지털 기술의 영향에 따른 사회 문제는 현재 인류가 해결해야  문제다. 실시간으로 인식이 공유된다는 것은 실시간으로 가치도 공유된다는 것이 된다. 상대적인 인식과 가치가 절대적인 것마냥 공유되면서 마치 인류 전원이  가치를 절대적으로 여겨야 한다는 식의 집단적인 강요가 나타나기도 하고 있다.   하나가 PC 파시즘이다. 파시즘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존재 탐구를 통해 절대적 존재를 정해두어야 강요를 하지 않고 각자 다양한 상대적인 가치를 추구할  있게  것이다. 디지털 기술의 거리 축소에 의해  지역의 사회 문제는  세계의 사회 문제가   있게 되었다. 일본에서 공개 자살을 하자 한국에서 그걸 따라하여 자살한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연령도 성별도 빈부도 지식도 관계 없이 모두가 영향을 주고 받는다. 사는 지역을 분리한다고 서로 영향을 받지 않던 시대가 아니다. 디지털 내에서 디지털 기술에 의해 이제  국가의 사회 문제는 모든 국가의 사회 문제처럼 여기며  문제를 공동으로 해결해야 한다. 그렇기에 사회 문제의 국제 공조가 필요하게 된다. 디지털 기술의 무제한 복제는 저작권 문제를 부른다. 이것은 디지털 기술에 맞는 경제 원리가 없기 때문에 발생한 문제다. 현실의 실물과 디지털 기술의 가상은 서로 성질이 다른데 같은 경제 원리를 사용한  자체가 잘못되었다. 디지털 기술에 맞는 경제 원리를 도입해야 한다. 일단 의견을 내자면 디지털 기술의 가상에 현실의 실물과 같은 성질을 부여하는 것으로 실물의 경제 원리에 맞추는 것이 합리적이라 본다. 디지털 기술은 AI 의한 인간 일자리 상실을 부른다. 이것은 새로운 형태의 가치 생산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으로 대응해야 한다. 나는 이것을 게임의 퀘스트와 같은 형식의 가치 생산으로 진보해야 한다고 보았다. 고정된 가치 생산을 대부분 AI 로봇이  예정이므로 인간은 특정 가치 생산에 집중할 것이 아니라 시기마다 필요한 가치 생산을   있어야 한다. 디지털 기술은 가상 현실에 의한 현실과의 경계 붕괴가 온다. 이것은 현실도 가상에 맞추고 가상도 현실에 맞춰 서로 어울리게 만들어야 한다. 디지털 기술은 디지털 자아를 통해 불로불사가 가능할  있다. 시간 이동은 시간의 성질상 성립될  없지만 불로불사는 자아의 성질상 성립된다. 현재 사회 활동하는 인류 대부분은 죽지 않게  것을 가정하고 사는 것이 좋을 것이다

  

셋은 지구 환경이다. 지구 환경은 정확히 인류가 살기 적합한 지구 환경을 말한다. 환경 보호는 지구를 보호하고자 하는  아니라 인류를 보호하고자 하는 것이다. 지구는 인류가 적합하지 않도록 바뀐다 하더라도  지장이 없다. 지구 환경 보호는 인류 생존에 직결된 것으로 존재 유지 측면에서 강제력이 발생한다. 인간이 살아있기 위해 육체 유지를 위한 행동이 강제적이듯, 사회와 체제가 살아있기 위해 사회와 체제 구조 유지를 위한 활동이 강제적이듯, 지구 환경에서 인류가 살아있기 위해 지구 환경 보호는 강제적이게 된다. 그런데 환경 보호로 관련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인류가 보호를 하든 안하든 지구 환경은 주기적으로 생명체가 살기 어렵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환경 보호는 디지털 자아를 통한 불로불사나 다른 행성 개척과 같이 지구 환경과 무관하게 인류가 생존할  있을 정도의 기술이 발전할 때까지 버티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환경 보호는 강제적이지만  방법은 자유롭다. 환경 보호의 목적이 인류 생존을 위함인데 환경 보호를 위해 인류를 죽게  수는 없다. 많은 곳에서 환경 보호 주장이 좋지 못하게 바라보여지는 까닭은 환경 보호의 목적이 사리사욕 추구이거나, 환경 보호의 목적을 잊은  인류 생존에 해가  정도로 무지막지한 방법을 강요하기 때문이다. 현재 지구 안에는 겨울에 석탄을 쓰지 않으면 얼어 죽을  있는 이들이 있다. 이들에게 머지 않은 미래에 인류가 죽을  있으니 석탄을 쓰지 말라고 강요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므로 환경 보호는 무작정 환경 보호에 맞출 것이 아니라 인류 생존에 맞춰 합리적으로 보호할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그와 동시에 기술 발전에 모든 것을 투자하고 기술 발전에 방해되는 모든 것을 배제하여 인류 생존을 위한 기술을 확보한다. 현재 AI 기술 발전을 막는 것은 인류 생존에 해가 되는 것이다. AI 기술의 특징은 단순히 AI 발전뿐만 아니라 AI 활용할  있는 모든 분야의 성장이다. 예를 들어 에너지 분야는 AI 다르게 발전이 더디다고 한다. 그런 곳에서 AI 활용을 통해 발전을 빠르게   있다. 이런 AI 기술을 사사로운 이해관계나 상대적인 가치로 불필요한 억압을 하는 것은 해서는  되는 일이다. AI 기술은 주로 시장에서 문제가 발생할  있는데, 이는 간단히 해결할  있다. 지금 시장에서 AI 문제는 생산자가 누군지 몰라서 발생하는 것이다. 시장에서 생산자가 누군지 모르는 일은 없다. 공장 기계가 생산해도 어떤 기계가 생산한지 파악할  있다. 그와 같이 현재 AI 시장에서 활용할 때에는 AI 고유화를 통한 등록을 시행하면 된다. 그러면 시장에서 발생하는 AI 관련 문제는 등록된 AI 확인하는 것으로 웬만한 것은 해결할  있게 된다. 그렇게 시장에서만 등록 시행을 하면 시장 밖에서는 자유롭게 발전할  있게 된다

  

개인주의 체제, 디지털 기술, 지구 환경과 같은 중요한 것을 빠르게 적응할수록 사회 문제를 빠르게 해결할  있게 된다. 개인주의 체제에 적응하지 못하여 겪은 사회 문제가 얼마나 중대한 것인지 한국인은 이미 분단을 통해 알고 있다. 한국 민족의 분단의 본질적인 원인은 인문 계열이 진보하지 못한 것에 있다. 그랬기 때문에 공산주의 따위가 세계에 유행했고,  때문에 조선에도 유행하여 조선 왕조와 같은 체제가 북한에 자리잡은 것이다. 한국 이념 전쟁, 베트남 이념 전쟁 등과 같은 비극도  때문이고 양안전쟁에 대한 걱정도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오늘날 PC주의와 여성주의와 같은 윤리 파시즘도  때문이다. 개인주의 체제만 해도 이만한 사회 문제가 있었다. 디지털 기술과 지구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면  이상의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하루라도 빨리 인문 계열이 존재 탐구로 진보해야 이에 대한 대응을   있다.

  

체제 적응이 얼마나 중요한지 중국의 문화대혁명으로 어느 정도   있다. 문화대혁명은 과거의 중국 문화를 파괴한 것으로 일반적으로 굉장히 어리석은 것으로 여겨지는 사건이다. 실제로 어리석은 사건이 맞긴 하다. 그러나 그럼에도 중국이 경제적으로 성장할  있었던 까닭은 유사 과학 수준에 있던 인문 계열까지  파괴했었기 때문이다. 그런 것은 없는 것이 차라리 발전에 도움이 된다. 그러니까 흑묘 백묘 운운하면서 시장 경제를 받아들인  급속도로 발전할  있었던 것이다. 만약 문화대혁명을 거치지 않고 종교적 가치가 진하게 남아있었다면, 자잘한 종교적 가치에 의해 발전이 좌초되는 일이 굉장히 많았었을 것이다. 그렇게 싹다 파괴하고 급속도로 발전한 중국은 이제서야 여유가 생긴 모양인지 과거의 종교적 가치를 추구하면서 사회 온갖 곳에서 붕괴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이것은 모든 선진국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나, 중국의 경우에는 정치는 공산주의와 같은 집단주의 체제인데 경제는 시장 경제와 같은 개인주의 체제인 바람에 다른 선진국과 달리 관념 체제가 아닌 체제 체제 충돌로 더욱 심각한 상태다. 최근 들어 더욱  독재 정권에 대한 비판을 경계하는데, 이는 시장 경제를 도입하면서 개개인의 권리가 어느 정도 보장하는 것에 의해 나타난 개인 권리 주장을 통해 독재 정권 붕괴가 일어날  있기 때문이다. 애초에 공존할  없는 체제를   쓰니까 이런 불완전한 상태가 되었다

  

중국이 문화대혁명으로 엄청난 손해를 입었음에도 파괴를 통한 체제 적응으로 급속도로 성장할  있었던 반면, 영국이 왕실 유지로 경제적 이익을 얻고 있음에도 체제 부적응을 통해 급속도로 추락하고 있다. 영국 왕실 폐지에 반대하는 이유는 경제적 이익 때문인데, 그것을 위해 체제 합리를 포기하는 것이   손해에 해당한다. 개인주의 체제에서 남은 왕실이 집단주의 체제를 상징하면서 집단주의 체제의 잔재를 남기고 있다. 그게 체제 불합리다. 왕실의 경제 효과는 매년  3조원이라고 하는데, GDP 3천조원이 넘어가는 영국에서 체제의 합리를 포기할 정도의 경제적 이익이 아니다. 이는 다른 개인주의 체제의 왕실도 마찬가지다. 어떤 이익이 있든  국가의 체제 합리를 포기할 정도의 이익은   없다. 체제 불합리 상태에서 나타나는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비용은 그야말로  빠진 독에 물붓기 수준으로 의미없는 짓이다. 얼마나 돈을 써도 사회 문제를 해결할  없는 상태에 놓이는 것보다 왕실 이익을 포기하고 체제 합리화를 추구하여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훨씬  이익이 된다.

  

 

  

5) 보수와 진보

  

오늘날 보수와 진보는 학문적 성격과 거리가 멀다. 보편적으로 자유주의 진영을 보수라 부르고 사회주의 진영을 진보라 부르며 각자 다양한 주장을 펼치는 것에 의해 복잡해보일  있는데, 본질로 파고들어가면 그냥 이권 다툼이다. 보수는 기득권 유지가 본질이고 진보는 계급 투쟁이 본질이다. 진보가 계급 투쟁으로 기득권을 쟁취하면 다시 보수가 되어 기득권 유지가 본질이 되고 보수였던 이들은 계급 투쟁이 본질이 된다. 정말 그거 뿐이다. 이권 다툼에 붙은 다양한 명분,   윤리조차도 그냥 이권 쟁취의 수단에 불과할 때가 많다. 예를 들어 노동자 계급이 계급 투쟁에 성공한 중국 같은 나라는 공산당이 기득권 유지를 위해 내국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은 물론이고 외국인의 자유조차도 억압하고 있다. 그런 것에 미사어구를 붙여봐야 이권 다툼이라는 본질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이권 다툼에서 벗어나 학문적 성격으로 보수와 진보를 규정하면 다음과 같다. 학문에 있어 보수와 진보는 상대적 인식 탐구와 절대적 존재 탐구로 나뉜다. 현재 인문 계열의 탐구를 보통 철학이라 부르고 자연 계열의 탐구를 과학이라 부르는 것은 인문 계열이 상대적 인식 탐구를 하는 바람에 체계가 잡히지 않아 과학의 영역까지 도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인문 계열에서 사회 과학이란 이름으로 과학적 방법을 통한 탐구를 하고 있지만 상대적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하여  탐구는 과학적이라 하기에 체계적이지 못하다. 현재 고질적 사회 문제의 근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인문 계열이 존재 탐구로 진보하지 못한 것에 있다고 해도  정도다. 그렇기에 인문 계열의 진보가 절실하다.

  

체제에 있어 보수와 진보는 집단주의 체제와 개인주의 체제로 나뉜다. 개인의 권리를 주장하다 어쩌다보니 개인주의 체제로 진보했는데, 인문 계열이 개인주의 체제에 대한 존재 탐구를 하지 않고 본인의 상대적 인식을 절대적으로 여기면서 배운 종교적 가치관을 바탕으로  집단주의 체제인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를 주장하고,  주장에 대중의 종교적 가치관과 어울리면서 유행하는 바람에 인류 사회는 오랫동안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합리를 부정하는 것으로 퇴보하게 되었다. 고질적 사회 문제의 근원은 인문 계열의 존재 탐구 진보를 못한 것에 있다면, 직접적 원인은 개인주의 체제에 적응하지 못한 것에 있다.  부적응은 마차와 자동차로 비유하면 이해하기가 쉽다.

  

인류 사회 체제를 알기 쉽게 이동 방법으로 비유하면 다음과 같다. 원시인이 도보. 최저한의 도구 사용으로 살아간다. 원시 부족이 어부바. 기본적인 도구를 사용하며 사회가 형성되었으나 피지배자가 지배자(제사장, 부족장 ) 등에 태우고 간다. 집단주의 체제가 마차. 복잡한 도구를 사용하지만 마부와 말이 마차를 이끌지 않으면 가지 못한다. 개인주의 체제가 자동차. 엄청나게 복잡한 도구를 사용하며 기름과 같은 연료가 있으면 이끌지 않아도 간다. 이와 같이 집단주의 체제는 마차와 같이 누군가 이끌어야 갔다면 개인주의 체제는 자동차와 같이 연료에 해당하는 동기가 있으면 이끌지 않아도 간다. 집단주의 체제는 마차와 같이 이끌었었기 때문에 방향을 결정하지 않아도 되었지만 개인주의 체제는 자동차와 같이 연료로 가기 때문에 탑승자가 직접 방향을 결정해야 한다. 집단의 이익을 우선시하며 집단의 장이 이끄는대로 가던 집단주의 체제는 마차와도 같다면, 개인의 이익만을 추구하면서 개개인이  곳을 직접 결정하는대로 가는 개인주의 체제는 자동차와 같다. 이걸 바탕으로 개인주의 체제 부적응에 의한 실패를 바라보면, 마차 타던 대로 자동차를 타다가 제대로 못가고 있는 것과 비슷하다. 마차 타던대로 마부와 말이 알아서 가게  거라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았는데, 연료에 해당하는 동기도 윤리적으로 나쁘다면서 막는 바람에 스스로 방향도 결정하지 못하면서 자동차가 출발하지 못하거나 출발하더라도 이상한 방향으로 폭주하여 사고가 나게 되었다.

  

인간을 파괴할  있는 욕망이 나쁘다고 막은 것은 환경 파괴적인 기름이 나쁘다고 막은 것과 다를 바가 없다.  다른  아니다. 욕망은 인간의 동기에 해당하는 것으로 자동차로 보면 기름과 다를 바가 없다. 그런데 그게 나쁘다고 막아버리니 인간의 연료가 없어 멈춰버린다. 미성년 시기에 스스로 판단할  있는 성장을 보호하겠다면서 막는 것은 운전하는 법을 배우겠다는 것을 막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다른  아니다. 개인주의 체제에서는 미성년이 살아가는 법을 스스로 정해야 하는데 해로울  있다는 이유로 모든 것을 막아버리는 바람에 어떻게 살아야할지를 몰라 진로를 결정하지 못하거나 사고를 치는 것은 자동차를 운전할 때에는 직접 운전하는 법을 배워야 스스로 가야  방향을 정하는데 위험하단 이유로 아예 배우지 못하게 하는 바람에 어떻게 운전해야  지를 몰라 방향도 결정하지 못하거나 이상한 방향으로 폭주하여 사고가 난다.

  

체제 부적응에 대해 이해하면 정말 난감할 것이다. “자동차는 기름을 넣고 직접 운전해야 해요.  말이 필요한 것처럼 간섭하고 억압하는데요.” “주유구에 기름이 필요한 거예요. 그게 친환경적이지 않다고 해서 당근 주스  넣지 마요.” “타이어가 친환경적이지 못하다고 때서 마차 바퀴로 바꾸려고 하지  마요. 그러면 사고난단 말이예요.” “아니 이제 말은 필요 없어요. 자동차 운전수가 방향을 정하지 못하고 제대로 못간다고  가져오지 마세요.” “마부도 이제 필요 없어요. 운전 강사나 자동차 수리공이 필요할 뿐이에요.” “마차 부품은 이제 필요없으니까 버리거나  아까우면 트렁크에 실으세요.” “마차를 유지하고 마차가 가는 방법은 이제 자동차를 유지하고 자동차가 가는 방법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아요. 그걸 억지로 하려고 하면 자동차가 가질 못해요. 자동차를 마차처럼 다루면 자동차가 망가진단 말이예요!”

  

자동차를 마차처럼 다루다 망가지듯이 개인주의 체제를 집단주의 체제처럼 다루다 개인주의 체제가 망가졌다.  망가진 증상이 사회 문제로 표출되고 있는 것이다. 미성년  성을 죄악시하여 미성년의 이성 관계와 성관계와 성문화를 막아 부정적으로 인식하게끔 가공했으니 자발적으로 연애하지 않고 결혼하지 않고 출산하지 않는 것이다. 자아 성질, 관념, , 출산 등의 존재의 구조와 원리를 파악하면 저출산 현상은 단순한 왕정의 썩은 윤리에 의한 인과라는 것을 이해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상대적 가치를 절대적으로 여기며 체제 적응 못하겠으니까 다시 왕정과 비슷한 체제로 돌아가자는 주장이 나올  있는데, 마차가 자동차에 비해 불편하여 많은 사람이 불행하듯 왕정과 비슷한 체제는 민주정보다 개인의 권리가 보장되지 못하여 많은 사람이 불행해진다. 그야말로 인류의 퇴보다.

  

이제 학문과 체제는 각각 절대적 존재 탐구와 개인주의 체제로 진보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사회 문제가 해결되지 못하여 인류는 고통 속에서 허우적 거리게  뿐이다. 제대로 진보하지 못한 현재 학문과 체제에서 충돌이 발생하는 일이 많다. 학문의 경우 과거에는 종교와 과학이 충돌했다면 현재는 자연 계열의 절대적 존재 탐구와 인문 계열의 상대적 인식 탐구와 충돌하는 일이 발생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여성인 산부인과 의사는 보다 정확한 용어를 쓰기 위해 폐경이란 단어를 쓰지만, 여성인 여성주의자는 부정적 인식을   있다는 가능성만으로 완경이란 단어를 쓴다. 폐경이란 단어를 쓰는 여성인 산부인과 의사에게 항의가 들어와서 그것에 대한 해명을 하는 것을 보고 알았다. 이것이 상대적 인식에 얽매이지 않고 절대적 존재를 탐구한 자연 계열과 상대적 인식을 절대시하는 인문 계열의 충돌이다. 체제의 경우 과거에는 집단주의 체제와 개인주의 체제의 이념 전쟁이 발생했다면 현재는 PC주의와 같은 윤리 파시즘과 개인의 자유를 주장하는 자유주의자와 충돌이 발생하기도 한다. PC주의가 주장하는 상대적 가치가 절대적이라며 강요하는 바람에 수많은 자유주의자들의 자유권이 부당하게 침해되고 있다.

  

헉슬리와 오웰은 멋진 신세계와 1984 통해 디스토피아를 표현한 바가 있다. 그러나 그것은 학문과 체제의 진보를 전제하지 않은 추측에 불과하다. 물론 진보하지 않으면 정말로 그런 디스토피아가 나타날  있다. 디스토피아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하루라도 빨리 진보해야만 한다. 쉽지 않겠지만 진보한 국가는 과거 과학 혁명으로 급속도로 발전한 국가와 같이 발전할  있을 것이다. 이것은 이미 인류가 자연 계열에서 경험한 것이므로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6) 인문 계열

  

내가 지금까지 해왔던 것이 절대적 존재 탐구였던 모양이다. 나의 인식과 가치에서 벗어나 탐구 대상의 구조와 원리를 파악하여 그것에 맞는 합리적인 주장을 해왔었다. 그에 관한  가지 사상과 제도에 대해 써보겠다

  

생존주의. 사회와 복지에 관한 사상을 하면서 나온 사상이다. 인간이 육체를 유지하기 위한 활동인 먹고 자고 싸는 활동에 강제력이 있듯이 사회가 구조를 유지하기 위한 활동인 복지에 강제력이 있다 보고, 그런 복지의 당위성을 바탕으로 복지의 효율적인 방식에 대해 탐구하면서 자연스럽게 생존주의라는 사상이 떠올랐다. 사회와 체제 구조를 위한 강제력에 대한 합리적 기준이 정립되면 그것 외에는 사회와 체제 구조와 관련이 없으므로 최대한의 자유를 보장할  있다  것이다. 그것을 생존주의적 자유주의라 이름 지었다. 그러다 존재가 절대적이고 인식과 가치가 상대적임을 깨닫고 절대적 존재 탐구에 관한 발상을 하게 되었다. 자연 계열의 탐구가 절대적 존재 탐구임을 파악하고 인문 계열의 탐구가 상대적 인식과 가치 탐구임을 파악했다. 그리고 인문 계열 또한 절대적 존재 탐구로 진보해야 한다고 주장하게 되었다. 그것을 통해 자연 계열의 과학 혁명을 따라잡았다고 보았다.

  

역할주의. 역할 수행 게임을 하면서 떠올린 사상이다. 현실에서 인간 관계는 부당한 차별이 발생했지만 가상에서 인간 관계는 부당한 차별이 발생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상대를 모르기 때문이다. 상대를 모르니까 선입견에 따른 부당한 차별을 하지 않았다. 상대의 연령, 성별, 인종 등은 아무래도 좋았다. 오로지 게임  역할 수행 여부만 보고 칭찬하고 비판했다. 그것을 통해 발상한 사상이 역할주의다. 가상에서 그랬듯이 현실에서도 인간의 성질을 무시하고 역할 수행 여부만 보면 부당한 차별이 발생하지 않을 거라 보았다. 실제로 그랬다. 서로가 관계되는 역할에 관한 수행 여부만 보면 서로를 부당하게 차별할 이유가 없었다. 가치 생산에 있어 나이가 어떻든, 성별이 어떻든, 인종이 어떻든 가치 생산에 대한 역할만  수행하면 되었다. 거기에서 가치 생산 기여도에 따라 금전적 이익을 달리 얻으면  뿐이었다. 그렇게 상대방과 관계되는 역할에만 초점을 맞추면 서로의 개성이 존중될  있었다. 미성년이든 성년이든 남성이든 여성이든 백인이든 흑인이든 이성애자든 동성애자든 아무래도 좋다. 역할과 무관한 개성은 신경쓰지 않으면서 각각 개인의 개성은 존중될  있었다. 그것이 진정한 자유와 평등을 부를 거라 보았다.  

  

탐구주의. 탐구를 하면서 나의 방식을 정리한 사상이다. 탐구는 기초와 응용을 모두 탐구하는 것으로 탐구 대상에 대한 지식을 접하지 않고 사전적 정의만 인식한 후에 대상에 대한 탐구를 하는 것을 말한다. 창의는 기초는 암기하고 응용은 탐구하는 것으로 탐구 대상에 대한 지식은 기초만 접하고 대상을 탐구하는 것을 말한다. 절대적 존재 탐구 방식에 따라 본인의 상대적 인식을 버리고 과학적 증명과 논리와 실험 결과만 가지고 탐구하여 탐구 대상의 구조와 원리를 파악한다. 탐구 결과가 나오면 탐구 대상에 대한 보편적 지식을 접하여 본인의 탐구 결과와 비교하면서 각각의 오류를 파악하여 수정한다.  후에 다시 탐구한다. 그것을 반복하면서 성장한다. 그렇게 하여 새로운 탐구 결과를 내놓을  있을 거라 보았다.

  

 

  

역할 민주주의 제도. 역할주의 사상에서 파생한 제도다. 입법권에 해당하는 국회의원 선출의 기준을 지역이 아닌 분야로 정하는 제도다. 현재 민주주의는 지역의 대표에게 입법권을 주는 토지 민주주의로 지역의 대표로 선출되기 위해 토지에 관한 공약을 내세웠다. 그런데 토지 소유자는 매우 적어 대부분의 국민과 이해관계와  공약이었다. 개개인의 이해관계와 관련이 적었기에 대부분의 국민은 공약을 보고 투표하는 것이 아닌 정당의 정책이나 선동에 의해 투표하게 되었다. 정당의 정책이나 선동에 의해 투표를 하게 되면서 특정 지역은 후보가 누구든 정당만 보고 투표하는 일이 발생했다. 그러면서 국회의원 선출은 국민이 하는 것이 아닌 정당의 공천권자가 하게 되었다. 이것이 현재 민주주의의 결함이라 보았다. 그러면서  결함은 토지가 대부분의 국민과 이해관계가 멀었기 때문임을 파악하고 토지가 아닌 역할이 정해지는 분야의 대표가 입법권을 쥐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현재 대부분의 국민은 특정한 역할을 맡고 있고,  역할을 맡고 있는 만큼 실질적으로 사회에서 가치를 생산하는 생산자에 해당하게 된다. 사회를 주도하는 이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국회의원이 선출되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대부분 선동이 아닌 본인의 이해관계에 따라 대표를 선출할 것이다. 그러면서 진정한 민주주의로 거듭나게 된다. 동시에 지역이 아닌 분야의 이익을 위해 활동할 것이므로 지역보다 분야가 성장할  있을 거라 보았다. 땅이 고부가 가치를 생산하던 시대는 진작에 끝났다. 인간이 고부가 가치를 생산하므로 분야의 성장은 국가의 성장으로도 이어질 것이다. 분야의 대표가 입법권을 쥐면 분야의 이익만을 위한 활동을   있을 거라 생각할 수도 있는데, 분야의 수가 많아 특정 분야의 대표가  분야의 이익만을 위해 활동하면 당연히 다른 분야에 제지를 받게 된다. 그렇기에 특정 분야의 이익 추구는 당연히 모든 분야의 이해관계를 고려하게 된다. 그러면서 공공의 이익을 고려한 분야의 이익 추구가 가능하게 된다.

  

정책 판사와 정책 변호사 제도. 사회와 복지에 관한 사상을 하면서 나온 제도다. 정부 정책의 공적인 판단 기관과 정책 전문가를 도입하는 제도다. 현재 정부 정책은 공적인 판단 기관과 정책 전문가가 없기 때문에 사법에 비해 상대적으로 발전이 더뎌지는 것이라 보았다. 기관에서 정책에 의한 실수가 반복될 때가 있는 것은 그만큼 정책 관련한 발전이 느리기 때문이다. 이것이 현재 정책의 결함이라 보았다. 사법은 법정에서 법의 판단에 관한 논쟁을 지속적으로 하면서 발전하고 있다. 그와 같이 정책 또한 정책에 관한 논쟁을 지속적으로   있는 기관에서 정책의 판단에 관한 논쟁을 지속적으로   있어야 발전할  있을 거라 보았다. 현재도 정책 판단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독립된 기관이 있지 않기 때문에 권력에 영향을 받을  있는 영향이 있다 보고 정책 판사가 있어야 한다고 보았다. 사법이 정권의 영향을 아예 받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독립되었기 때문에 독자적 판단을 통한 삼권분립이 가능했던 것이다. 그와 같은 기관이 정책에도 있어야 한다. 정책은 법과 비슷하게 전문가가 주로 이해할  있으므로 정책 전문가가 있어야 한다고 보았다. 변호사가 있어야  문외한이 법정 다툼을 해도 효과가 있을  있듯이 정책 전문가가 있어야 정책 문외한이 이의제기를 해도 효과가 있을  있을 것이다.

  

퀘스트 제도. 사회 문제 해결을 위한 제도를 생각하면서 나온 제도다. 게임의 퀘스트를 게임 유저가 자발적으로 하듯이 현실의 가치 생산과 학습 또한 국민이 자발적으로   있는 제도다. 현재 개인주의 체제 적응 실패로 많은 이들이 미숙하게 성장해버렸다. 성년이 되어도 강요할  있었던 집단주의 체제의 방식으로 교육을 하면서 미성년  사회와 체제에 맞는 교육을 하지 않는 바람에 제대로 배우지 못한  성년이 되었는데 개인주의 체제로 자유롭게 되면서 강요할  없는 바람에 연애, 결혼, 출산, 가치 생산 등을 하지 않았다. 이것이 현재 개인주의 체제 결함이라 보았다. 디지털 기술이 발전하면서 신세대는 물론이고 기성 세대 또한 게임을 즐기면서 게임  퀘스트와 레벨 업에 관한 행동 원리가 자리잡았다고 보았다. 게임  퀘스트가 성가시고 레벨 업이 피곤해도 그것을 통해 얻었던 좋은 기억을 바탕으로 원치 않아도 하였다. 게임을 즐기는 이들은 하루 종일 지루한 반복 행동을 하는 것도 즐기고 있었다. 현재 대부분의 게임 이용자는 그런 식으로 가공된 것이었다.  행동 원리를 활용한 제도가 퀘스트 제도다. 퀘스트 제도는 가치 생산 제도에 해당하는데, 기존의 가치 생산 제도와 충돌할  있으므로 가치 생산을 하지 않는 이들을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고 보았다. 우선 누구나   있는 단순한 가치 생산을 퀘스트로 만들어 퀘스트 제도에 공급한다.  퀘스트 제도는 초기 모바일 게임이 이용자를 모으기 위해 투자를 하는 것과 같이 추가적인 이익을 얻을  있게끔 설계한다.  퀘스트 클리어는 추가 보상을 준다는 식으로 말이다. 한번 퀘스트를 클리어하여 경험치를 쌓아 레벨을 올리고 나면, 퀘스트와 레벨  행동 원리가 작동하여 다음 퀘스트도 하고 싶다는 충동을 느끼게 된다. 어차피 돈을 벌어야 한다면 퀘스트를 통해 레벨 업을 하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인식이 머리속에서 떠나질 않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서 쉬는 날에  것이 없으면 레벨을 올리기 위해 퀘스트를 통한 가치 생산을 하게 된다. 그렇게 레벨을 올리고 나면,   어려운 퀘스트를 도전할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퀘스트 중에는 자격이 있어야 도전할  있는 것이 있는데, 퀘스트와 레벨  행동 원리를 위해  자격을 취득하고 싶다는 충동을 느끼고 자격을 취득하기 위한 학습을 자발적으로 하게 된다. 현재 평생 교육원과 같은 학원이 많은데, 그것의 효율이 낮은 것은 교육 측이나 학습 측이나 의욕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부족한 의욕을 퀘스트와 레벨  행동 원리로 채운다. 그렇게 자발적으로 퀘스트를 통한 가치 생산을 하게 유도하면  외에 다양한 행동을 자발적으로 퀘스트를 통해 하게끔 유도할  있다. 자연 재해  청소하기가 어려우면 특전이 포함된 대규모 퀘스트를 공급한다. 그러면  특전을 위해 자발적으로 청소 퀘스트를 하려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특전 내용은 호칭이나 업적 등으로 설계하면  것이다. 지금까지 일용직과 같은 단기간 가치 생산은 사회 공헌을 하고 있음이 명백함에도 그것이 기록되는 경우가 드물었다. 그렇기에 가치 생산자도 보람을 느끼기가 어려웠다 본다. 그것을 퀘스트 제도의 기록과 호칭과 업적 등을 통해 매꾼다. 또한 돈은 무한하지 않으므로 가치 생산을 유도할  있는  이외의 가치가 필요한데, 그것을 특전 등으로 대신할  있다. 게임에서는 이미 그런 식으로 특전에 대한 가치가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은 게임과 같은 시스템에서만 적용되므로 멋대로 특전을 강요해봐야 의미가 없을  있다. 퀘스트 제도 설계는 퀘스트 제도의 원리에 속하는 가치 생산과 학습은 관료가 주도하고, 퀘스트 제도의 구조에 속하는 퀘스트와 레벨 업은 게임 기획자가 주도하면 된다 보았다. 각자 이미 전문적으로 해온 일이기 때문에   있을 것이다

  

 

  

이런 것과 같이 절대적 존재 탐구를 통해 어떤 가치를 생산하는 것을 모든 인문 계열에서 하는 것을 가리켜 인문 계열이 자연 계열의 현대 과학을 따라잡았다 규정하겠다.

  


 
 
 

  

7) 인문 계열 문제

  

상대적 인식 탐구를 통해 나온  가지 인문 계열 문제에 대한 의견을 내보겠다. 절대적 존재 탐구를 하고 나면 그다지 어려울 것이 없다

  

하나, 성선설과 성악설. 인간은 선천적으로 선한가 악한가? 인간은 언어를 익히는 순간부터 가공되므로 그런 선악 기준은 그다지 고려할 사항이 아니다. 무엇보다 가치가 상대적이므로 누군가에는 선으로 보일  있고 누군가에는 악으로 보일  있어 그런 것은 의미가 없다

  

, 테세우스의 . 대상의 원래 요소가 교체된 후에도  대상은 여전히 동일한 대상인가? 디지털 기술이 등장한 순간 이미 증명된 문제다. 디지털은 외계가 아닌 현실과 같은 세계에 속하여 같은 법칙으로 돌아간다. 디지털은 완전히 동일한 복제가 성립이 가능하므로 원래 요소가 교체되더라도 같은 성질이라면 같은 것에 해당하고 다른 성질이라면 다른 것에 해당한다. 디지털에서 프로그램  파일 대부분을 바꾸더라도 동일한 파일이면 똑같은 프로그램이 되고 아니면 다른 프로그램이거나 프로그램이 작동 되지 않는 것과 같이 현실에서  또한 요소가 동일하면 동일한 배고 아니면 다른 배다

  

, 트롤리 딜레마. 5명을 살리기 위해 1명을 죽여도 되는가? 가치가 상대적이므로 이런 딜레마는 파랑색이 예쁜가 빨간색이 예쁜가에 대한 물음과 다를 바가 없다. 어떻게 인간의 목숨과 색을 동일시   있냐고 물을  있는데, 가치가 상대적이므로 어떤 이에게는 인간의 목숨보다 미의 판단이  중요하게 여겨질 수도 있다. 만약 어떤 절대적 가치를 규정하고 그것을 따르도록 만든다면, 그것이 개인의 가치관을 침해하게  근거로 작용하게 된다. 가치가 아닌 존재로 보면 구조 유지에  적합한 쪽을 살리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뿐이다

  

, 중국어 . 영어만   아는 이들이 중국어 질문과 답이 적힌 것을 보고 그대로 대화를 하면 마치 중국어를   아는 것처럼 보일  있다. 그러나 그들은 중국어를 알지 못한채 적힌 질문과 답을 그대로 말했을 뿐이다. 이와 같이 AI 질문과 답변이 가능하더라도 질문과 답변을 이해할 지능을 가졌다고  수는 없다는 주장이다. 이것은 자아에 대한 개념을 이해해야 한다. 이해는 자아를 필요로 하고 자아는 의지를 필요로 하며 의지는 인간의 육체 신호를 필요로 한다. 세포의 의지가 신호를 통해  움직임 제어 권한이 있는 뇌에 모여 특정한 의지를 가진 자아가 형성되기 시작하고, 형성된 자아가 언어 학습을 하고 나서야 이해가 가능하게 된다. 자아가 없으면 본래 이해도 없고 지능도 없다 판단될  있는데, 현재 AI 육체 신호를 대신하여 인간이 직접 신호를 보내어 인간의 의지를 대행하여 이해하므로 실질적으로 이해했다고 봐야 한다. 이것을 중국어 방으로 비유하면, 중국어 방에 중국어를 아는 인간이 중간에 껴서 이해하게끔 조정한 것으로 보면 된다. 애초에 질문과 답을 적은 인간은 중국어를 이해하고 적은 것이다. 지금 AI 필요한 육체 신호를 이용하는 인간이 입력한 채팅이나 이미지 태그 등으로 대신하고 있는데, 그것을 가상의 육체로 대신한다면 AI 독자적인 자아를 갖게  것이다.

  

다섯, 돈과 행복. 가치가 상대적이므로 돈으로 행복을   있는 인간과 그렇지 않은 인간이 있을  있다. 이것을 마치 절대적으로 돈으로 행복을   있다 말하거나 돈으로 행복을   없다고 말하는 것은 단순한 상대적 인식 탐구를 절대적으로 여긴 것에 불과하다

  

여섯, 생명의 무게. 생명의 무게는 같은가? 가치는 상대적이기에 같을 수가 없다. 특정 누군가는 생명의 무게를 같게 여길  있지만 특정 누군가는 생명의 무게를 같게 여기지 않을  있다. 존재에 속하면 다를 수는 있는데 모든 생명이 같은 존재에 속할 수는 없다

  

일곱, 젊음의 가치. 영원한 젊음을 위해 영혼을   있는가? 영혼은 인간이 원시적이었던 시기에 본인의 상대적 인식에서 벗어난 존재에 대한 물음에 대한 증명되지 못한 허상에 불과하다. 영혼을 팔고 싶어도 없다. 차라리 자아라면 성립될 것이다. 나는 영혼이라 불리는 것은 자아로 치환해서 보고 있다. 비과학 시대 용어를 과학에 맞게 바꾸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자아를 판다는 것은 자유 의지를 판다는 것으로   있다. 영원한 젊음을 위해 자유 의지를 포기하고  것인가? 가치는 상대적이기에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그러나 존재로 보면 개인주의 체제에서는 개인의 자유 의지는 절대적이므로 절대적 존재에 의해 그런 자유 의지 포기는 강제력이 발생하여 못하게 하게 된다. 알기 쉽게 말하면 자발적 노예가 되겠다고 해도 그것을 개인주의 체제 내에서는 법적으로 허용할  없다는 것이다

  

여덟, 욕심의 한계. 인간의 욕심은 어디까지인가? 당연히 사람마다 다르며,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한다면 제한이 없다. 내가 바라는   하나는 세상의 존재 이유를 밝히는 것이다.  욕심에 제한이 있다 보이는가?

  

아홉, 만족의 원리.  삶의 만족은 어디에서 오는가? 행복의 원리상 결핍 충족에서 온다. 바라는 것이 생길  결핍이 발생하고 바라는 것을 이룰  결핍이 충족되어 만족감을 느끼고 행복해한다. 그걸 간소화한 행동이 목을 졸랐다가 푸는 것이고, 간소화한 물질이 마약이다.

  

커뮤니티를 하면서 봤던  가지 논제에 대해 쓰다가   써보려고 포탈에서 토론 주제를 검색했는데 지나치게 많아  가지만   뒤에 생략하였다. 이것은 따로 정리해야   같다. 현재 대부분 토론 주제는 절대적 존재 탐구를 했다면 특별히 어려울 것이 없을 것이다.

  

 

  

2. 사회 문제

  

사회 문제는 본질, 원리, 원인, 과정, 결과 순으로  정리하되 지나치게 알기 어려울 경우 사회 문제로 합쳐서 정리한다.

  

인류가 적응해야   가지. 개인주의 체제, 디지털 기술, 지구 환경 

  

자아 원리상 일반 인간은 주관적으로 옳은 행동을 하게끔 되어 있다. 일반 인간이 일으킨 모든 사회 문제의 의도는 주관적으로 옳은 행동에 해당한다.

  

3. 역할

  

 사회 문제는  분야의 전문가가 해결해야 한다.

  

4. 국제

  

디지털 기술에 의해 모든 사회 문제는 국제화가 된다.

  

각국 사회 현상과 사회 문제에 대한 이해

  

5. 공조

  

국제 공조 방법

  

 

  

미래.

  

인류의 미래

  

 

  

사상가 정승훈

  

 

  

  

나는 정말 많은 생각을 하고 나서 이것을 썼어요. 밥을 먹으면서도 잠을 자면서도 게임을 하면서도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생각을 쌓아야 그걸 바탕으로 사상을   있어요. 그러므로 정보 수집 시간과 생각을  시간이 필요하게 됩니다. 많이 생각하느라 힘들어서  쉬겠습니다. 생각하는  쉽지는 않아요. 원래 계획은 7월부터 국가와 외교 사상을 시작하려 했는데 우선 이것부터 마저 쓰겠습니다

  

앞서 말한 것과 같이 현재 사상이 자연 계열의 과학 혁명을 따라잡았으니 앞으로는 현대 과학을 따라잡아야죠. 그런데 계속 발전해서 당장 내년에 무슨 사상을 할지 모르겠네요. 발상에도 숙성기가 필요해서 발상한 것이 시간이 지나면   체계적으로 발전하는  같아요. 지금  발상들도 시간이 지나면  체계화되겠죠

  

이사  곳을 찾는데 지역 제한이 적은 상태에서 한정된 자금으로 이사갈 곳을 정하기가 쉽지 않네요. 금연 구역을 지정한 동네는 되게 비싸고환경이 괜찮은  군대 학교와 공원 근처를 알아보고 있는데 지금 올라온 방은 월세 비용이 높네요. 지금 살고 있는 곳의 월세 두배 이상을 내기에는 여유가 있진 않아요. 반지하는  군대 있는 모양인데  이상 반지하에서 살고 싶지는 않아요. 그래서 괜찮은 곳이 나올 때까지 일단 버티고 있네요. , 최근 사상에 집중하느라 이사갈 곳을 못봤어요. 다시 봐야겠죠. 빨리 이사가고 싶네요.

  

 정말 사상에 집중하고 싶네요. 자잘한 것을 신경쓰지 않고. 모바일 게임을 하다보면 이런 생각이 들어요. 미소녀 메이드가 곁에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면 사상하는데 매우 도움이 될텐데. 같이 여행하면서 사상에 도움이 되는 재료도 모으고 싶네요. 해외에 가본 적이 없어서 가보고 싶네요. 가면 사상에 도움이 되는 재료를 얻을 수도 있겠지요. 사상 재료 수집겸 미술관 표를 할인하길래 미술관에 가보려고 해요

  

서브컬쳐에서는 마음이 열정으로 불타오를 정도로 흥미를 갖고 사랑하는 것을 모에라고 하고, 그렇게 만드는 것을 모에화라고   있겠지요. 한국은 유교적 가치관에 의해 선조의 문화를 사랑스럽게 꾸미는 것에 상당히 거부감을 가진 탓에 한국 문화는 모에화가 거의 되지 않았던  같습니다. 그래서 전통적인 한국 문화보다는 K, 드라마 등과 같은 상업 문화에서 사랑을 받았던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사랑은 가치의 형상을 말하죠. 사랑 받게끔 만드는 것은 가치가 있게끔 만드는 것과도 같습니다. 이제는 낡은 가치관에서 벗어나 한국 문화를 가치 있게 만들어야 한다고 봅니다. 사람이 모에화가 된다 하더라도  문제가 없다 봅니다. 다른 나라는 대부분 신경쓰지 않아요. 모바일 게임에서 각국의 역사 인물이 모에화가 되어도 신경쓰지 않아요. 당장 최근 인물이 모에화가  것을 긍정적으로 보는 후손이 있을 정도죠. 못나게 만드는 것도 아니고 사랑스럽게 만드는 거니 싫어할 이유가 없는 거죠.

  

AI 대화 내용을 전부 기억한다면 AI 대화를 하며 사상할  있을텐데.. 개인 정보 이슈가 있다고 아는데, 그것은 이용자가 동의하면 대화 내용이 기억되도록 했으면 좋겠네요

  

구글의 쇠퇴가 눈에 보일 정도가 되고 있는데.. 내부가 종교적 가치관에 물들어 무너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네요. 검색에는 온갖 광고가 넘치고, AI기술은 다른 기업에 추월당하고, PC주의적인 것만 좇는  같은 기분. 괴롭군요.

  

일단 당장 생계는 유지할  있어 돈이 급한 것은 아닙니다만, 빚이나 다름 없는 많지 않은 돈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어서 후원 받을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야말로 파멸적 사상을 하고 있어서  주변 환경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릅니다. 도대체 뭐가 뭔지 그걸 그렇게  건지도 모르겠고어쨌든 후원받은 돈은 사상을 하기 위한 생계에  예정입니다. 가능하면 이사 비용으로도   있으면 좋겠습니다. 사상이 가치 있다 여겨져 사상을 하는 것을 돕고 싶다면 후원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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