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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 4. 선과 악 (0) 2018/05/06 PM 06:44

4. 선과 악

 

 

모든 선악의 근간은 손익이다. 간단히 이익이 되면 선, 손해가 되면 악이다. 이익에는 금전적 이익도 포함되어 오해할 수 있으니 미리 말해두겠다. 여기서 말하는 이익은 모든 방면으로 이로운 것을 뜻한다. 이런 선악을 기준으로 가치의 우선순위인 가치관이 정해지기도 한다. 크게 외적(물질) 이익과 내적(마음) 이익으로 구분해도 좋을 것이다. 이 둘은 종종 충돌하는데, 외적인 손해가 있더라도 내적인 이익이 있다면 개체에 따라 그걸 선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러한 선악은 크게 문명의 유무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 문명이 없는 동물의 영역은 개체와 무리까지가 한계다.

 

문명이 없어 그 이상의 영역을 생각해볼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의 선악 기준은 대체로 생존과 번영이다. 후천적 언어가 없어 언어로 학습할 수 없는 그들의 사고방식은 대부분 본능에 기대기 때문에 본능적인 선악 외엔 있기 어렵다. 문명이 없는 동물들 중 상대적으로 지능이 우수한 돌고래나 침팬지, 오랑우탄, 고릴라 등은 조금 다를지도 모른다. 가르칠 줄을 모를 뿐이지 학습은 가능하니까 말이다. 그렇게 학습으로 후천적 언어인 수화를 배운 동물이라면 다른 동물과는 조금 다르게 세상을 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둘째, 문명이 있는 동물인 사람의 영역은 개인, 집단, 나라, 인류, 생물 등이다.

 

문명이 있어 다양한 영역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언젠가 우주의 다른 행성에서 살기 시작한다면 지구, 태양계 등과 같이 우주적인 관점의 영역으로 구분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사람의 선악 기준은 매우 다양하다. 사람은 후천적 언어로 학습할 수 있기 때문에 각자 다르게 세상을 바라볼 수 있다. 선악에 대한 부모의 가르침, 학교의 가르침, 종교의 가르침 등 다양한 기준 때문에 번민해본 적이 있다면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도대체 누구 말을 따라야 할 것인가?

 

 

여기서 잠깐! 어쩌면 의문을 표할지도 모르겠다. 사전에는 선악의 기준을 도덕으로 한정 지었으니까. 그러나 그것은 낡은 시대에서나 통용되는 말이라고 단언하겠다. 세계가 하나가 되기 이전에 사람들이 바라보는 영역은 나라가 한계였다. 자국이나 주변 국가까지. 그 시대에선 분명 도덕은 선악의 기준이 될 수 있었다. 대부분 자국 내에서, 아니 대부분 지역조차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에 그 사회의(나라, 지역 등) 오랜 관습이나 여론으로 정한 도덕을 기준으로 선악을 구분해도 충분했다. 그러나 이제는 아니다. 세계가 하나가 되었기 때문에 어느 사회의 주관적인 도덕은 이제 선악의 기준이 될 수 없다.

 

흔히 말하는 컬쳐쇼크는 모든 방면에서 다르기 때문에 충격 받을 수 있다. 나는 다른 나라의 도덕에 충격 받은 적이 있다. 아니, 이걸 선이라고 부른다고? 명예를 위해 무고한 사람을 죽이는 것을 정당하게 여기는 나라가 있다는 것에 충격 받지 않을 수가 있을까? 그렇다고 그들이 원래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그냥 그렇게 배워왔을 뿐이다. 시대가 바뀜에 따라 이런 낡은 관습은 악습으로 평가 받기도 하는데, 그것을 도덕으로 여겨 바꾸지 않는다. 도덕은 종종 진리와 비견될 정도여서 무비판수용을 하기 때문에 바꿔야 한다는 생각조차 하기 어렵다. 당연한 것에 의문을 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으니까. 보라, 이처럼 주관적인 도덕만으로 선악의 기준이 될 수 있겠는가? 그야말로 낡은 사고방식이다. 그렇다고 도덕을 지키지 말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세계가 하나가 되어 다양한 도덕이 충돌하는 이 시대, 객관적인 선악의 기준이 필요하다고 역설하는 것이다.

 

 

다시 본문으로 돌아가 보자. 사람의 선악 기준은 매우 다양하다. 낡은 시대의 선악 기준인 도덕만 해도 많이 있을 수 밖에 없다. 도덕의 사전적 정의는 어느 사회(공통생활을 영위하는 모든 형태의 인간 집단)구성원의 양심, 여론, 관습 따위에 비추어 스스로 마땅히 지켜야 할 행동 규칙이나 규범의 총체라고 한다. 영역으로 구분하자면, 집단과 나라다. 이외에도 법, 사상, 종교, 인류, 생물 등이 있을 수 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의 근간에는 손익이 있다. 우선 도덕을 살펴보자. 도덕을 기준으로 도덕에 이로운 행위는 선이고 해로운 행위는 악이다. 뭔가 이상함을 느끼지 않았나? 여기서 기준은 사람이 아닌 도덕이다. 대체로 세상의 선악은 사람이 기준이 아니라 사람이 만든 선악이 기준이다. 사람이 중심이 아니란 이야기다. 이해가 조금 안 된다면 도덕을 관습으로 바꿔보도록 하자. 관습이 선악의 기준이 될 경우 관습에 이로운, 그러니까 관습을 지켜나가는 것이 선이고, 관습을 없애는 것이 악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악습을 선으로 여겨 지켜나가는 사람에게 그것은 악습이니 그만두세요.” 라고 말해봐야 통하지 않는 것이다. 되려 그런 그만두라는 말을 악의 길로 인도하는 것으로 느낄지도 모른다. 이외에도 다양한 선악에 대해 생각해보면 도덕과 별로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음은 법을 살펴보자. 법을 지키면 선 어기면 악이다. 거기에는 사람이 없다. 이런 문제 때문에 융통성 있는 판결이 필요하여 사람이 재판을 주도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다. 물론 사람 수준의 자아를 갖춘 어떤 것을 만들어낸다면 이야기는 달라지게 되어있다. 다음은 물질만능주의 사상을 살펴보자. 물질을 얻으면 선, 잃으면 악이다. 여기에도 사람은 없다. 이런 사상은 사람보다 물질을 우선시하기 때문이다. 다음은 종교를 살펴보자. 종교에 이로우면 선, 해로우면 악이다. 이곳에도 사람은 없다. 이교도나 무신론자를 배척하는 것을 보라. 나는 어떤 고전을 읽으면서 깜짝 놀란 적이 있다. 그 고전이 작성될 당시, 법정에서는 무신론자의 증언을 인정하지 않았다고 한다. 언제적 일이라고 생각하는가? 19세기다. 해당 고전인 자유론에 작성된 문장을 하나 가져오겠다.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은, (어떤 신이든 상관없다.)이나 내세의 존재에 대한 믿음을 공표하지 않은 사람은 법정에서 증언할 수 없다는 법규 때문이었다.’ 저자는 당시 이런 사회적인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종교인의 입장에서 차근차근 자신의 주장을 설명하며 설득하고 있었다. 이설은 외로운 법이니, 그 또한 외로웠을 것이다. 아무튼 이렇게 종교를 선악의 기준으로 삼고 있다면 사람이 아닌 종교를 기준으로 생각하게 된다.

 

이렇게 다양한 선악은 사람이 아닌 사람이 만든 기준을 중심으로 생각한다는 점에서는 별반 차이가 없다. 그리고 이런 선악을 중심으로 가치관이 정해지기도 한다. 대체로 도덕을 최고선으로 여기는 사람들은 외적인 이익보다 내적인 이익을 추구할 것이다. 반면 물질만능주의 사상을 최고선으로 여기는 사람들은 내적인 이익보다 외적인 이익을 추구할 것이다. 물론 하나의 기준만으로 판단하는 사람은 얼마 없으니까 상황에 따라서 우선순위가 달라질 수는 있다. 이외에도 다양한 것을 살펴보면 기준이건, 그 기준에 따른 가치관이건, 그 근간에 손익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도덕을 최고선으로 삼는다면 내적인 이익을 우선시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는 물질에 집착하지 않아 물질로 다른 사람들을 괴롭히는 일은 적다. 그러나 자신의 내적 이익의 기준인 도덕에 반하는 행동을 보면 불같이 화를 내면서 이렇게 말할 것이다. “너는 못됐구나! 그러니 혼이 나봐야 돼!” 그것이 진정 옳고 그른지에 대해선 고찰하지 않는다. 설령 현대에 들어 악습이 되어버린 도덕이라고 하더라도 그에 반대하면 불같이 화내게 되어있다. 슬프게도.

 

물질만능주의를 최고선으로 삼는다면 외적인 이익을 우선시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물질에 집착한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을 괴롭게 만드는 일들이 많이 있다. 물질을 최우선 하기 때문에 사람을 물질 아래로 둔다. 심지어 자신조차 물질보다 아래로 둔다. 물질적인 이익을 크게 보기 위해 도박적인 투자를 감행하고 그것이 실패하면 한강 가서 자살하자는 말이 유행어로 나타날 정도다. 슬프게도.

 

요는 어떤 선악의 기준이건 거기에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단 하나, 사람 자체를 기준으로 삼는 것을 제외하곤 말이다. 그것이 바로 문명이 없는 동물들의 선악이며, 인류의 최초 선악인 종의 생존과 번영이다. 인류의 생존과 번영, 그것 외엔 사람 자체를 기준으로 삼는 선악은 없다.

 

나는 오늘 여기서 주장한다. 세계가 하나가 된 이 시대, 모든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객관적인 최고선은 사람 자체를 기준으로 삼는 인류의 생존과 번영이라고 주장한다. , 예전에 한번 썼던 것이기 때문에 조금 겸연쩍긴 하지만, 오늘 정식으로 주장한다고 하자.

 

 

 

그럼 본격적으로 사람 자체를 선악의 기준으로 삼는 인류의 생존과 번영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겠다. 이런 인류의 생존과 번영 또한 그 근간에는 손익이 있다. 간단히 인류의 생존과 번영에 이익이 되면 선, 손해가 되면 악이다. 그리고 이런 선악을 기준으로 이익의 우선순위인 가치관이 정해져야 하는데, 사람 자체를 기준으로 삼았기 때문에 이 또한 간단하다. 그 사람의 생존과 번영에 이익이 되면 선, 손해가 되면 악이다. 외적인 손익이든, 내적인 손익이든, 생존과 번영을 중심으로 생각한다. 그러면 매우 간단해진다. 종종 외적인 손익과 내적인 손익이 충돌할 때가 있는데, 그 때엔 그 둘을 저울질하여 무엇이 더 그 사람의 생존과 번영에 이로운지를 생각해보면 판단이 가능해진다.

 

그럼 이렇게 물어볼 수도 있다.  개인A와 개인B의 손익이 충돌할 수 있다. 또한 개인A와 집단A의 손익이 충돌할 수 있다. 그러면 무엇을 기준으로 우선순위를 정해야 하는가?” 간단하다. 앞서 말한 것처럼 선악의 기준은 인류의 생존과 번영이다. 만약 개인A와 개인B 또는 개인A와 집단A의 손익이 충돌할 때, 그 손익이 인류의 생존과 번영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고려해보면 된다.

 

 

첫째, 개인

 

기본적으로 개인과 개인의 충돌은 인류의 생존과 번영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고려한다. 그러나 그것이 분간하기 어려울 때엔 개인의 생존을 도와주는 국가에서 정한 법을 기준으로 삼아서 판단하면 된다. 법은 어디까지나 나라에 속한 인류를 사이 좋게 만들기 위해 만들어진 규칙이다. 때론 특정 계층의 인간들끼리만 사이 좋게 만들어 그들의 이익만 대변한다고 혹평을 사곤 하지만 기본은 그렇다. 만약 그렇게 특정 계층의 이익만 대변하는 법이 있다면 바뀌어야 할 것이다.

 

 

둘째, 집단

 

작은 집단(개인포함)과 큰 집단의 충돌 또한 인류의 생존과 번영을 기준으로 보면 된다. 작은 집단의 이익이 큰 집단의 손해가 되면 악이다. 두 가지 CASE로 예를 들어보겠다.

 

CASE1 어떤 개인이 자신의 생존과 번영을 위해 기업의 돈을 횡령했다고 가정해보자. 분명 개인에게는 선이지만, 기업에게는 악이다.

 

CASE2어떤 개인이 자신의 생존과 번영을 위해 기업의 비리를 고발하여 포상금을 챙겼다고 가정해보자. 분명 개인에게는 선이지만, 기업에게는 악이다.

 

이 두 CASE의 결과는 같다. 개인에게는 선이지만 기업에게는 악이다. 그러나 더 큰 집단인 나라에 대한 결과는 다르다. CASE1은 나라에게 손해가 되고, CASE2는 나라에게 이익이 된다. 이렇게 작은 집단과 상대적으로 큰 집단의 충돌은 그보다 더 큰 집단의 생존과 번영을 고려해보면 무엇이 선이고 악인지 분명해진다. 기업의 생존과 번영을 위해 개인의 이익을 침범하는 사례도 동일한 기준으로 판단할 수 있다. 더 큰 집단인 나라에 속한 인류의 생존과 번영에 대한 손익을 고려해보면 답은 나오게 되어있다.

 

대체로 개인과 집단까지는 나라 내 법을 통해 해결되는 일이 많지만, 도덕이나 사상 같이 법으로 판단하기 어려운 생각들의 충돌은 이렇듯, 나라에 속한 인류의 생존과 번영에 도움이 되는가 아닌가를 따져보면 판단이 가능하다. 여기서 중요한 점 두 가지. 첫 번째는 나라라는 무형의 대상이 아닌, 나라에 속한 인류의 생존과 번영이라는 점이다. 두 번째는 특정 계층이나 집단이 아닌 모든 사람들의 생존과 번영을 고려해야 한다는 점이다. 특정 집단의 이기적인 관점은 결코 선이 될 수 없다.

 

 

셋째, 나라

 

나라 내 집단과 나라의 충돌 또한 더 큰 집단인 인류의 생존과 번영을 기준으로 보면 된다. 예를 들어 한 기업이 이익을 위해 환경보호를 무시하고 유해물질을 정화하지 않고 배출했다고 가정해보자. 그걸 나라의 이익으로 받아드리는 사람도 있지만, 일반적으로는 막심한 손해다. 아니, 유해물질로 인해 그 나라에 속한 인류의 수명이 줄어드는데 어떻게 이익이 될 수 있는가? 그건 지극히 물질만능주의적 관점일 뿐이다. 더구나 이런 유해물질은 그 나라 내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전세계로 퍼져나가 인류 전체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아주 심각한 문제라고 볼 수 있다.

 

 

넷째, 인류

 

나라와 나라의 충돌 또한 더 큰 집단인 인류의 생존과 번영을 기준으로 보면 된다. 예를 들어 침략국은 침략하여 큰 이익을 얻었기 때문에 그들에겐 선이 될 수도 있지만, (물론 대체로 이익을 얻는 것은 침략을 주도한 지배계층뿐이다. 때때로 멍청하게 이용당하면서 이익이 되었다며 좋아하는 부류도 있지만 현명한 사람이라면 그것이 얼마나 큰 손해인지를 알고 있다.) 인류의 생존과 번영에는 해가 되기 때문에 악이 된다. 반면 평화를 수호하고 인류의 생존과 번영에 앞장서서 도움을 주는 나라는 인류의 생존과 번영에 이익이 되기 때문에 선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개인에서 인류까지의 기준은 영역이 커질수록 선과 악의 농도도 짙어진다. 개인의 선악은 칭찬 또는 비난을 받는다. 농도가 짙어지면 포상 또는 벌금, 아니면 사회적 격리 조치를 당한다. 집단의 선악은 그 집단의 흐름을 바꿀 수 있을 정도가 되고, 나라의 선악은 나라의 흐름을 바꿀 수 있을 정도가 되며, 인류의 선악은 인류의 흐름을 바꿀 수 있을 정도가 된다. 인류 전체의 생존과 번영에 이익이 되면 평화상을 받을 정도로 칭송 받게 되고, 인류 전체의 생존과 번영에 해가 되면 인류의 적이 되어 전세계적인 비난을 받게 된다. 세계가 하나가 된 현 시대, 만약 침략국이 나타난다면 인류 전체의 적이 되어 정의의 이름으로 처단 당할 것이다. 심지어 그 나라 국민들마저 외면할 것이다. 그것이 세계가 하나가 된 현 시대의 흐름이다.

 

 

다섯째, 생물

 

예외적으로 작은 집단이 우선되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은 인류와 다른 생물과의 충돌이 일어날 때다. 어디까지나 인류의 선악은 인류의 생존과 번영이기 때문에 인류를 기준으로 생각해야 한다. 자연보호나 동물보호도 인류를 위해서 보호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본말이 전도 되어버린다. 자연이나 동물을 보호하겠다는 사람 또한 이를 심도 있게 받아드려야 할 것이다. 인류를 위해서 보호하자고 주장해야 다른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인류의 중심은 언제나 인류가 되어야 한다.

 

 

그 외에 외계인이라도 나타나면 이제 또 새로운 영역이 나타나겠지만, 일단 큰 줄기는 이 정도까지만 다뤄도 될 것이다. 어떤 영역이든 인류의 생존과 번영을 고려해보면 무엇이 선이고 악인지 구분이 가능해진다. 설령 이런 기준을 선악으로 삼지 않는다 하더라도, 자신이 생각하는 선악들이 충돌하여 번민하고 있다면 어떤 선악을 기준으로 삼아야 할지에 대한 참고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런 기준들은 강제가 아니다. 강제성을 띤 법조차 바르지 않다고 판단하면 지키지 않는 사람도 있다. 모든 것이 그러하듯, 선과 악도 스스로 생각하여 판단해야 할 것이다.

 

어디에도 흔들리지 않고 객관적으로 선악을 구분 지을 수 있는, 사람 자체를 기준으로 삼은 인류의 생존과 번영. 나는 이것이 인류의 최초이자 최고선이라고 주장한다.

 

 

일단 선악에 대한 이야기는 여기까지. 앞으로 지식이 늘면 정리하거나 보충하겠다. 또 나중에 이 소재를 가지고 글을 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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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소재는 역할존중입니다. 다음 글은 일단 인공생명을 먼저 쓰도록 하겠습니다. 바둑의 미래는 슬퍼서 쓰기 힘드네요. 어쩌면 글을 위해 소재를 한 주 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일이 생기면 소식에서 찾아 뵙도록 할게요. 읽어줘서 고마워요. ///

 

제가 추구하는 문제해결방식은 대체로 이렇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취미(게임, 만화, 소설 등)가 천대받으면 천대하는 사람을 공격하기보다 그 취미가 존중 받는 길을 모색합니다. 우리 사회가 불평등하면 불평등하게 만드는 누군가를 공격하기보다 모두가 평등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합니다.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것, 저는 보통 이런 방식을 선호합니다.

 

 

2018 5 6일 작성

 

참고 인터넷 (사전, 포탈 검색 침팬지 수화’)

인용 자유론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은, (어떤 신이든 상관없다.)이나 내세의 존재에 대한 믿음을 공표하지 않은 사람은 법정에서 증언할 수 없다는 법규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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