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의 원인, 유전자와 환경
성악설
아이는 곧잘 아무렇지도 않게 죄를 범합니다. 그것이 죄임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이의 죄는 보호자가 대신 책임지고 있습니다. 이것을 보고 먼 옛날에
성악설이 나타났습니다. ‘인간은 본디 악한 존재이니 가르쳐서 선하게 만들어야 한다.’ 얼핏 보면 맞는 말
같습니다만 진화론을 떠올려보면 맞는 말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인간의 죄는 사회가 있어야만 존재할
수 있는데, 인간은 처음부터 사회를 이룬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인간은 본디 악하다’는 맞는 말이 아니게 됩니다. 인간이 본래부터 악하게
보였던 건, 동물인 인간이 사회화 되면서 생겼던 부작용이었을 뿐입니다.
그러나 사회에선 무절제한 인간의 욕구를 죄로 규정하고 있는 만큼 죄를 알아야 범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에 모르는 상태에서는 악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본디 악한 것은 아니나, 사회에 속할 때엔 악하다고
볼 수는 있겠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인간이 악하다고 하고 싶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을 빌미로
모든 책임을 죄를 저지른 당사자에게만 떠넘기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죄는 분명 저지른 사람이 책임져야 하는 것입니다만, 그 죄의 원인에 대한
책임은 그 사람에게 영향을 끼친 모두가 조금씩 짊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죄의 원인
사실 말이죠, 사회에 속한 사람의 모든 것은 다른 누군가에 영향을 받은 겁니다. 부모에게 물려받은 유전자는
물론이고 생각하는 것조차 사회에 영향을 받은 겁니다. 우리가 체계적인 생각할 수 있는 건 사회에서 알려준 언어를 알고 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겁니다. 자아와 지성 전부, 다른 이들에게 영향을
받고 시작합니다. 시작만이 아니죠. 사회에 속한 이상, 시작부터 끝까지 영향을 주고 받으며
살아갑니다. 어떤 사람이 위대한 발견을 했을 때도, 어떤 사람이 지독한 악행을 저질렀을 때도, 전부 다른 이들에게
영향을 받은 겁니다. 사회에 좋은 일이 나타나면 그 사회에 속한 모든 사람의 덕이기도 하지만, 사회에 나쁜 일이 나타나면
그 사회에 속한 모든 사람의 책임이기도 합니다. 모든 죄의 원인은 여기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사회에 속한 모든 사람은
영향을 주고 받았다, 이것을 부정하면 아무것도 시작할 수 없습니다.
어떤 아이를 괴롭힌 아이가 있다고 가정해보죠. 그 때 그 괴롭힌 아이에게
영향을 끼친 건 누구일까요? 부모, 친구, 교사, 지인, 언론, 창작물, 인터넷 등등이 있겠지요. 그리고 그 부모와 친구와 교사와 지인
등에게 영향을 끼친 건 또 누구일까요? 이처럼 생각해보면 끝이 없습니다. 결국 사회 전체로 확대되게
됩니다. 죄의 원인에 대한 원인, 그리고 그 원인에 대한 원인을 추적해 나가다 보면 사회에 속한 모든 사람이 조금씩은 원인이 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겁니다. 누군가에게 욕, 비난 조롱, 비아냥, 깔봄, 무시 빈곤, 절망, 불행 등등에 영향을
받은 끝에 나타난 것이 죄라고 할 수 있겠죠. 이것이 환경입니다.
물론 환경이 죄의 원인만은 아닙니다. 유전자 자체가 죄에
취약할 수도 있습니다. 극단적인 예로 사이코패스가 있겠네요. 공감능력결여… 라고 하던가? 사실 저도 잘 모릅니다. 단지 확실한 것은 죄에
취약한 유전자가 있을 수 있다는 겁니다. 이것이 유전자입니다. 그리고 이 두 가지를 합쳐 죄의 원인이라
부를 수 있을 것입니다.
사이코패스
평범한 사람이라면 이러한 환경이 절대적인 영향을 끼쳤을 겁니다. 누구라도 그 환경에
놓이면 죄를 범할 수 밖에 없다는 상황이 있을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물론 그런다고 하더라도 죄인을 변호할
수는 없습니다. 사회가 멀쩡한 상황일 때엔 자신이 범한 죄는 자신이 책임질 수 밖에 없습니다. 사회가 할 수 있는
건 죄에 대한 책임이 아니라, 죄의 원인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뿐입니다. 그러한 환경이 나타나지
않도록 노력할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똑같지는 않습니다. 어떤 환경에 누구는
죄를 짓지 않더라도 누구는 죄를 지을 수 있지요. 유전자에 따라 죄에 취약한 사람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면 의문이 생길 수
있습니다. 원래부터 죄에 취약한 사람의 저지른 죄의 원인 또한 사회가 책임을 져야 하는 걸까요?
어쩌면 죄에 취약한 사람을 가리켜 원래부터 악한 사람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보다 쉽게 죄에 물들
수 있기 때문이지요. 그렇기에 극단적인 사람은 죄에 약한 타입인 사이코패스를 미리미리 가두거나 추방하자고 주장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죄에 약해 죄를 범할지도
모르는 사람은 잘라 내어버리자- 라는 거지요. 하지만 이건 사이코패스를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에게
사이코패스를 이해할 수 있게끔 해보겠습니다.
공감할 수 없다, 이해할 수 없다, 왜 눈물을 흘리는지
알 수가 없다. 왜 화를 내는지 알 수가 없다. 그래서 죄를 범하게 되었다. 보통 이런 예가 있을
수 있을 겁니다. 이걸 중점으로 시작해보죠.
일단 채식주의자가 사회 주류가 되었다고 가정해보겠습니다. 이건 예시일 뿐이니
참고만 해주세요. 이런 사회에서는 동물이 식용으로 쓰이는 걸 보고 눈물을 흘릴 겁니다. 그리고 동물을 식용으로
삼는 사람을 보고 화를 내겠지요. 잡식인 사람들을 왜 그런지 공감할 수 없고 이해할 수 없을 겁니다. 물론 피상적으로는 이해하겠지만
왜 육식을 하면 안 되는지 마음 깊숙이는 알 수 없는 노릇이겠죠. 잡식인 사람은 본래부터 육식을 해야
건강할 수 있는 인간이니만큼 채식주의자를 이해할 수 없는 건 당연할 겁니다. 사회 규칙이 그러하니
채식으로 참다 참다가 결국 육식이란 죄를 범하게 되었다.
사이코패스와 똑같지는 않습니다만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본래부터 사회에 맞지
않게 태어난 사람은 괴로울 겁니다. 죄에 약한 사람뿐만 아니라 마음이 약한 사람, 도덕에 약한 사람, 사랑에 약한 사람 등등
또는 육체적으로 약하게 태어난 사람들, 눈이 잘 안 보이는 사람, 귀가 잘 안 들리는 사람, 체력이 약한 사람 등등
전부 똑같이 단지 약하게 태어난 사람일 뿐입니다. 죄를 범하지 않는 이상 사이코패스라고 하더라도 보호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사이코패스의 죄의 원인이라고
하더라도 그 죄의 원인에 대한 책임은 사회가 질 수밖에 없습니다. 단순히 그렇게 태어난 사람들이니까요. 단지 죄에 약한 사람은
피해자를 만들 수 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유별나 보일 뿐입니다.
죄에 약한 사람은 슬플 겁니다. 평범한 사람들이 죄를
짓지 않기 위해 쓰이는 노력의 몇 배는 더 노력해야 하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이해해주는 사람도 얼마 없을
겁니다. 괴롭겠지요. 죄를 범한 사람을 동정할 수는 없지만 죄를 범하지 않은 죄에 약한 사람은 동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다른 약한 사람들과
마찬가지로요. 도덕에 약한 사람이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올바른 일에 구애 받으며 자유롭지 못하게 사는 건 불쌍한 일이지요. 마음에 약한 사람이
자신의 의지와 관계 없이 타인의 의견에 휘둘리는 건 불쌍한 일이지요. 결국 약한 사람들이라는 겁니다. 우리 사회는 강해지기
위해서,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서, 강자뿐만이 아니라 약자도 보호를 해야 하지요. 거기에 죄에 약한 사람도
포함되어야 최대한 죄를 짓지 않도록 유도할 수 있을 겁니다.
책임
아이의 죄는 어른이 책임을 지도록 되어있습니다. 힘이 책임을 지는 셈이지요. 그래서 미성년자가 술, 담배를 사면 어른들이
책임을 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책임이라는 것이 조금 일방적입니다. 가해자가 저지른 죄는
책임지지만 피해자가 받은 죄의 피해는 책임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술 담배의 경우엔 피해자가 어른이니
어른이 책임지는 것이 아니냐고 말할 수 있겠지만 왕따 따위의 미성년끼리의 범죄일 때엔 피해자도 미성년이니만큼 피해자도 책임을 지어야 하는데 지고
있지 않고 있지요. 미성년 가해자는 미성년자라 죄가 경감되는데, 미성년 피해자는 그런
것이 없으니까요. 그 때문에 미성년 범죄만 나오면 불만이 나오는 거고, 그 때문에 죄의 원인에 대한 대책이
흐지부지 한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좀 더 크게 확장하여 다른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도록 하죠. 국가와 국민의 관점으로
보면 국가가 국민을 보호하고 있습니다. 국가가 보호자고, 국민이 피보호자지요. 그래서 가해자도 책임지고
있습니다. 가해자가 저지른 죄 자체는 스스로가 책임을 지고 있지만, 가해자 자체는 국가가 책임을 지고
있지요. 먹여주고 재워주고 다치면 보살펴주고. 그런데 피해자는 책임을 지지 않는 게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이 부분은 잘 모르겠네요. 음, 가해자보고 피해자가
겪은 죄의 피해에 대한 책임을 지라고 하는데, 가해자가 책임질 수 없을 경우 그냥 거기서 끝나는 거 같더라고요. 경험과 관찰로요.
어쨌든 가해자만 책임지는 것이 아니라, 피해자도 책임지는 방향이
되어야 사회의 불만이 줄어드는 게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그리고 피해자도 책임져야 사회 전체가 죄의 원인에 대한 대책에 좀 더 심도 있게 접근해 나갈 거라
생각합니다.
대책
교육입니다.
인간은 한번 설계되면 그것에 크게 영향을 받게 됩니다. 세 살 버릇 여든 간다고, 어렸을 적 도둑질을
관대하게 넘어가면, 커서도 도둑질 할 확률이 높아지겠죠. 보통 사람들은 재난
상황에 사람을 구하려 하겠지만, 어떤 사람은 사람이 죽어나가도 재물부터 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한 인성, 자아가 형성되는 시기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시작된다고 생각해요. 아이의 세계는 몹시 작지요. 어른에게 아무렇지도
않은 사건이라도 아이에겐 큰 사건이 됩니다. 보통의 인간이 보통의 환경에서 죄를 저지른다면 아이 시기 무언가 겪은 것이 큰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교육은 단순히 교사만 담당할 것이 아닙니다. 영향력이 클수록 그
책임은 커지겠지요. 간간히 교육에 대한 모든 책임을 부모에게 떠넘기거나 교사에게 떠넘기는 걸 볼 수 있는데, 그건… 자신의 영향력이 미미하다고
주장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그리고 사회에 속한 사람은 사회에 속한 모든 사람에게 영향을 주고 받고 있습니다. 그 사실을 모두에게
인식시켜 언행에 책임감을 가지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뭐… 강요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일일이 신경 쓰는 건 피곤하니까 애초부터 그것이 자연스럽게 되도록, 예의와 예절, 품위와 품성을 갖춰
스스로 판단하여 행동할 수 있도록 해야겠지요. 뭐 언행을 대충해도 되는데, 그것이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것만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이런 평범한 교육으로도 충분할지 모르겠지만 죄에 취약한 사람, 약한 사람은 좀 더
세심한 교육이 필요할 겁니다. 언젠가 사이코패스 누나를 가진 남동생의 이야기를 본 적이 있습니다. 정말 고생하고 있던
것 같았습니다. 세세한 부분에 신경 써야 된다고 하더군요. 그런 사람들을 위한 대책… 이 아마 있겠습니다만, 그러한 것이 일반화되어
죄에 약한 사람들이 죄를 짓지 않도록 유도하여 사회 전체에 죄가 줄어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사실 죄 자체가 없어질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은 약하니까요. 하지만 죄가 어떻게
생겨나고, 어떻게 해야 죄가 줄어들 수 있는지 알기만 한다면 사람들이 좀 더 올바른 처신을 할 수 있겠지요. 사회의 죄는 모르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니까요. 앞으로 좀 더 나은 세상이 되길 바라며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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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뭘 쓴 거지.. 좀 몽롱하네요. 오늘따라 더 잘 안
써지네요. 나중에 좀 더 정리하겠습니다.
글로 정리할 날이 있겠죠. 뭐.
뭐 어쨌든
교육받은 자아와 실제 자아의 불일치가 사춘기의 자아 찾기를 만들었고
교육받은 세상과 실제 세상의 불일치가 사춘기의 불신과 반항을 만들었다. 고 생각합니다.
만약 뇌를 가진 동물이 매시간 매초 기억을 공유하는 다른 존재라는 걸 알고 있었더라면,
극변하는 사춘기 시절 자신의 변화에 좀 더 쉽게 적응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생각해보기도 하네요.
다른 사람이니 변하는 게 당연하니까 고민할 필요도 없게 되는 거지요.
음….
그리고 더 이상 평범에 구애 받는 건 포기해야 할까 봐요. 뭐 자신이 평범하지
않다는 건 알고 있지만… 그렇기 때문에 어렸을 때부터 평범에 구애 받으며 살아왔었거든요. 어떻게든 다른 사람
흉내내면서까지. 화가 나지 않는데도 상황에 맞춰 일부로 화를 낼 정도로 평범에 구애 받았죠. 의미가 있었던 걸까, 잘 모르겠어요. 이젠 지쳤네요. 이도 저도 전부 지쳤어.
그럼 또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