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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사랑 받는 나라, 정체성 혼란의 끝을 고한다 (1) 2019/04/28 PM 11:53

 

사랑 받는 나라, 정체성 혼란의 끝을 고한다

 

 

 

[우리는 민주주의 체제를 갖춘 민족주의자가 아닌 민족의 언어와 문화를 이은 민주주의자다.]

 

오늘은 우리사회를 혼란케 한 원인과 그 원인해결을 통해 사랑 받는 나라가 될 수 있는 방법을 이야기해보겠습니다. 그 원인은 의외로 간단해서 많이 놀랄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허탈하게 웃으며 “아, 뭐야 겨우 이런 거였어?” 라고 말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정도로 간단합니다. 그런데 그 원인은 스스로 해결하기 어려운 약함이기 때문에 서로를 비난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모두 약함으로 고생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니 서로의 약함을 무작정 비난하기 보다는 우리 모두를 위해 더 나은 길을 찾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정체성 혼란

 

민주투사와 군사독재정권의 시대를 알기 위해 밤새 이것저것 읽었습니다. 시간가는 줄 모를 정도로 다양한 사건들이 있었습니다. 알고 있었던 사건도 있고 모르고 있었던 사건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사건들은 저에게 그 시대의 슬픔을 알려주었습니다. 단순히 결과만 보고 슬픈 시대로 알게 된 것이 아닙니다. 원인부터 시작해 모든 것이 슬픔투성이의 시대였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었습니다.

 

널리 알려진 그 시대의 슬픔은 군사독재정권의 독재를 위해 일으킨 고문이나 총살 또는 사회적 갈등조장 따위가 있겠습니다. 아마 많은 분들이 이러한 슬픔들을 알거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런 슬픈 사건들은 왜 벌어졌던 걸까요? 단순히 쿠데타를 통해 군사독재정권이 수립되었기 때문일까요? 아뇨, 아뇨, 그것뿐만이 아닙니다. 그 시대에 군사독재정권이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그 정권을 지지하던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왜 그들은 군사독재정권을 지지했던 걸까요? 그 시대의 진정한 슬픔은 거기서부터 시작됩니다.

 

 

많은 사람들은 그 시대를 민주투사와 군사독재정권의 대결이라 기억하고 있을 겁니다. 하지만 아닙니다. 그 시대는 정확히 말해서 민족주의에 약해진 민주주의자와 공산주의에 약해진 반공주의자라는 두 부류의 애국자들이 정체성 혼란을 겪고 있는 동안, 공산주의자와 군사독재정권과 매국노가 이들을 이용해먹은 시대입니다. 차근차근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민주주의자들의 입장에서 시작하겠습니다. 이들은 기본적으로 교육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민주주의가 어떤 것인지, 그리고 어떤 이유로 좋은 것인지 알고서 독재정권에 맞서 싸우게 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교육 받은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오랫동안 민족주의를 주입식으로 교육받았습니다. 그래서 민족주의에 약해진 민주주의자가 탄생한 것입니다.

 

다음은 반공주의자들의 입장에서 시작하겠습니다. 이들은 기본적으로 시대적 여건 상 교육의 기회를 받지 못한 채 일을 하던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민주주의를 잘 모릅니다. 그리고 민족주의에도 약해지진 않았습니다. 피상적으로 그것이 옳다고는 여기지만 그것에 얽매일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이 상태에서 이들은 6.25 전쟁으로 공산주의를 뿌리깊게 증오하게 되었습니다. 전쟁에 의한 트라우마로 공산주의에 약해진 반공주의자가 탄생한 것입니다.

 

 

이런 배경 속에서 쿠데타를 통해 군사독재정권이 수립됩니다. 그걸 본 우리나라의 지식인들은 민주주의를 외치며 군사독재정권타도에 앞장서게 됩니다. 여기서 반공주의자는 민주주의와 군사독재정권 중 어느 쪽을 지지할지에 대한 선택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들은 민주주의자가 아닌 반공주의자였기 때문에 민주주의자건 군사독재정권이건 별 상관이 없었습니다. 단순하게 공산주의만 멀리하기만 하면 되었습니다. 한쪽은 민족주의에 약해진 민주주의자여서 북한과 사이 좋게 지내려고 합니다. 한쪽은 군사독재정권으로 북한과 싸운 군인들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반공주의자는 누구를 지지하겠습니까?

 

민주주의에 관심이 없고 민족주의에도 약해지지 않은 반공주의자들은 상대의 정체와 관계없이 북한과 멀리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군사독재정권을 지지하게 됩니다. 그걸 본 민주주의자들은 그들을 이해할 수 없게 됩니다. ‘어째서 군사독재정권을 지지하는 거야?’ 그들은 자신들이 올바르다고 여겼던 민족주의에 약해져 있었음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군사독재정권을 지지하는 반공주의자들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적으로 돌렸습니다. 마찬가지로 반공주의자들도 민주주의자들을 이해할 수 없게 됩니다. ‘어째서 북한과 친하게 지내려고 하는 거야?’ 그들도 자신들이 올바르다고 여겼던 반공주의에 약해져 있었음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북한과 친하게 지내려는 민주주의자들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적으로 돌렸습니다.

 

민주주의자들과 반공주의자들이 서로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 속에서 군사독재정권은 자신의 독재를 유지하기 위해 영호남 지역갈등을 격화시키기로 합니다. 인구수의 차이를 보고 더 많은 인구수가 있는 쪽에 힘을 실어주자 힘을 받지 못한 지역은 민족주의에 약해진 민주주의자들과 힘을 합치게 됩니다. 그래서 한쪽 지역은 민주주의자, 한쪽 지역은 반공주의자가 되어버렸던 것입니다.

 

 

이러는 동안 참 슬픈 일들이 벌어지게 됩니다. 민주주의자들은 민족주의에 약해져 공산주의자들에게 이용당합니다. 민족주의를 위해 북한과 친하게 지내려고 하기만 하면 북한에게 뒤통수를 맞곤 했습니다. 반공주의자들은 공산주의에 약해져 군사독재정권에 이용당합니다. 군사독재정권이 잘못된 일을 저질러도 북풍 하나면 해결되곤 했습니다.

 

여기서 주목해볼 점은 민주주의자와 반공주의자들은 애국심으로 행동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민주주의자들은 군사독재정권으로부터 나라를 보호하기 위해 애를 쓴 애국자입니다. 반공주의자들은 공산주의의 위협으로부터 나라를 보호하려고 애를 쓴 애국자입니다. 그리고 이들이 정체성 혼란으로 서로를 적대하고 있을 때, 공산주의자들과 군사독재정권이 이들을 이용하게 됩니다. 그 동안 매국노는 여전에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이곳 저곳 붙어 다니며 이익만을 챙기게 됩니다.

 

 

결론을 내리도록 하겠습니다. 우리나라가 이제껏 혼란을 겪어온 것은 민족주의와 공산주의에 약해져 있어 우리나라만의 정체성 확립을 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지금까지도 민족이 아닌 우리나라만의 정체성은 확립하지 못했다는 겁니다. 우리는 아직까지도! 우리나라의 자아 찾기를 하고 있었던 겁니다!

 

만약 그 당시 민주주의자들이 반공주의자들에게 ‘나는 민주주의자이므로 공산주의를 결코 지지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했다면 아마 반공주의자들은 민주투사가 되었을 겁니다. 도대체 왜, 민주주의자들과 반공주의자들이 싸웠어야 했던 겁니까? 아니 되게 이상하지요? 민족주의만 빼면 민주주의자와 반공주의자가 싸울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둘의 이해상충은 오로지 민족주의 말곤 아무것도 없습니다. 다른 나라에서도 이상하게 여겼을 거 같아요. “아니 왜 저 나라는 민주주의자와 반공주의자가 싸우는 거야?”

 

군사독재정권은 자신들이 공산주의로부터 나라를 수호하고 있다며 보수를 자처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보수가 되었습니다. 그와 반대로 누구보다 보수적이어야 할 민족주의자들은 진보가 되었습니다. 아니 도대체, 원래 극우는 민족주의자가 아닙니까? 나치라던가 보면 민족주의가 극단으로 치닫게 될 때 발생하는 게 극우 아닙니까? 그런데 우리나라는 그게 아니에요. 반대가 되어버렸습니다. 우리나라는 극우가 사대주의를 하고 있어요! 그래서 우리나라는 좌니 우니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는 그런 기준이 아닙니다. 우리나라는 민족주의에 약해진 민주주의자와 공산주의에 약해진 반공주의자라는 두 부류의 애국자와 그 애국자들을 이용해먹는 공산주의자, 군사독재정권, 매국노가 되겠습니다.

 

 

아마 민족주의에 약해진 민주주의자들로서는 달리 방법이 없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민족을 부정하면 우리들의 정체성이 없을 거라 생각했을 테니까요. 하지만 우리는 이미 민족의 아이들이 아닙니다. 우리들은 이미 체제의 아이들이었습니다.

 

시대는 이렇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세계대전 이후 다민족의 시대는 저물고 있습니다.

냉전 전후로 체제의 시대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인터넷 이후로 단일민족의 시대가 시작되었습니다.

 

지금 우리 시대는 다민족의 시대와 체제의 시대와 단일민족의 시대가 공존하고 있는 겁니다. 그 중에서 다민족의 시대는 저물고 있고 체제의 시대는 진행 중에 있으며 단일민족의 시대는 이제 막 시작되었던 겁니다.

 

처음에 저는 저에게 민족주의가 없는 이유를 몰랐습니다. 그걸 곰곰이 생각해본 결과, 저는 이미 민족이 아닌 체제의 아이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저는 민족주의자가 아닌 민주주의자였던 겁니다. 우리나라는 일제강점기로부터 해방되었을 때, 그리고 6.25 전쟁으로 전세계로부터 도움을 받았을 때, 이미 우리는 민족의 아이가 아닌 체제의 아이가 되어버렸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민족의 모든 것을 부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는 이제 민족과 민주주의라는 두 뿌리를 다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피를 물려준 민족의 언어와 문화를 잇고, 우리에게 피를 흘려준 민주주의의 기술과 체제를 이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정체성은 민족의 언어와 문화를 이은 민주주의자입니다!

 

이것 하나면 우리는 그 많은 혼란들을 극복해낼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혼란스러웠던 것은 민족주의와 민주주의와 반공주의 사이에서 정체성 확립을 못했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지금이라도 우리들의 애국자들은 서로 싸우지 말아야 합니다. 도대체 왜 독재정권을 몰아낸 민주주의자와 공산주의를 몰아낸 반공주의자가 싸워야 되는 겁니까. 너무 슬프지 않습니까?

 

흔히 북한과의 화합을 시대의 화합이라 일컫기도 하지요. 그런데 말이죠, 저는 우리나라에 있는 민주주의자들과 반공주의자들의 화합도 시대의 화합이 될 거라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에 있는 민주주의자들과 반공주의자들이 부디 서로 화해하고 협력하여 더 나은 나라로 만들어갔으면 좋겠습니다.

 

 

몇 가지 추가로 알아보도록 하죠.

 

왜 우리나라는 콘크리트 지지율이 있는 걸까요? 그건 이기심이 아닌 애국심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진짜로 공산주의의 위협으로부터 나라를 구한다는 마음으로 지지하고 있는 겁니다.

 

왜 우리나라는 북한과 친하게 지내려는 사람들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있는 걸까요? 그건 친북이 아닌 애국심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진짜로 군사독재정권의 위협으로부터 나라를 구한다는 마음으로 지지하고 있는 겁니다.

 

우리나라의 혼란은 친북이건 친일이건 아무 상관 없는 문제였습니다. 민주주의자는 반공주의자를 친일이라 몰아붙였고 반공주의자는 민주주의자들을 친북이라 몰아붙였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이들은 친북도 친일도 아니거든요. 그러니까 서로는 중상모략이라 생각하며 무시하며 어떠한 변화도 없던 겁니다. 실체는 그게 아니었으니까! 진짜 친북과 친일은 이런 민족주의에 약해진 민주주의자와 공산주의에 약해진 반공주의자들을 이용해먹었고, 그런 이용 당하는 과정 속에서 서로 ‘저들은 진짜 친북 또는 친일이 틀림없다’ 라고 믿게 되어버렸습니다.

 

이렇게 원인이 분명함에도 민족주의를 추구한다면, 민주주의자가 아닌 민족주의자라 불려야 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우리들은 만들어진 약함에 어디까지 슬픔을 감내해야 하나요? 부탁합니다. 우리의 정체성엔 민족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니까, 우리는 이제 체제의 아이들이니까, 부디, 최소한 민족주의를 민주주의 아래로 내려주세요. 민족보다 나라를 우선시해주세요. 부탁 드리겠습니다.

 

젊은 세대가 여당을 지지하는 건 민족주의자라 그런 게 아닙니다. 민주주의자라 그런 겁니다. 나이든 세대가 야당을 지지하는 건 군사독재정권 지지자라 그런 게 아닙니다. 반공주의자라 그런 겁니다. 그렇다면 공산주의를 멀리하는 민주주의자가 나타난다면 이 둘 모두에게 지지 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이는 여당에서 변해야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젊은 세대는 민주주의자이기 때문에 군사독재정권과 이어진 쪽을 지지하지 못하지만, 나이든 세대는 반공주의자이기 때문에 어느 정당이든 공산주의만 멀리하면 지지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뭐 지금까지 해온 게 있으니 쉽지는 않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어쨌든 그게 우리나라의 화합을 만들 수 있는 길이라 생각합니다.

 

 

 

사상의 공백

 

정체성 혼란의 여파는 사상의 공백까지 가져오게 되었습니다. 우리에게는 우리를 지켜줄 우리만의 사상이란 게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걸 만들어줄 사람들이 정체성 혼란을 겪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민주주의자는 민족주의에 약해져 공산주의자와 친하게 지내려고 합니다. 반공주의자는 공산주의에 약해져 독재정권을 지지하고 있습니다. 이 모순 속에서 사람들은 도대체 어떤 사상을 추구해야 했습니까?

 

본디 사람은 무책임한 힘인 돈을 탐하게 되어있습니다. 돈은 감정과 욕구와 욕망을 충족시켜줄 수단으로 유용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부패한 관리들이 돈을 탐했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런 어찌 보면 당연한 타락을 막아주었던 것은 철학이나 사상이었습니다. 그런 것들이 사람을 돈 위에 있게 만들어줬던 것이지요. 그런데 지금은 어떻습니까? 우리나라를 보세요. 우리나라만큼 코인 열풍이 심하게 분 곳이 그리 많지가 않습니다. 그럴 정도로 우리나라는 금전만능주의자들이 많아요. 이는 전부 정체성 혼란으로 빚어진 사상의 공백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왜 낙수효과가 실패한 것 같습니까? 낙수효과라는 것은 돈이 위에서 아래로 내려 보내야 효과가 있는 법입니다. 그런데 사상의 공백으로 많은 사람들이 금전만능주의에 빠지자 돈을 나누기 싫어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질 않았던 겁니다.

 

왜 소득 주도 성장이 더딘 것 같습니까? 소득 주도의 성장이라는 것은 결국 소득을 얻은 사람이 얻은 만큼 소비를 한다는 전제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사상의 공백으로 많은 사람들이 금전만능주의에 빠지자 돈을 쓰기를 싫어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돈이 돌질 않고 있는 겁니다.

 

모든 경제정책은 이처럼 사람들의 사상이 아주 크게 작용하게 됩니다. 돈을 사용하는 것은 결국 사람이기 때문에 그 사람들의 사상에 따라 경제가 바뀌는 겁니다.

 

최근 경제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첫째, 규제

 

우리나라는 정부가 너무 규제를 한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말이죠, 규제 안하고 나서 어땠는지 봐왔지 않습니까? 우리나라가 금전만능주의자가 많기 때문에 규제를 하지 않으면 돈을 벌기 위해 무슨 짓이든 다 했었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규제를 하는 겁니다. 원인 없는 결과는 없습니다.

 

둘째, 최저임금

 

최저임금과 생산성과의 관계를 이야기하는 걸 들었습니다. 생산성 증가가 적은 상태에서 최저임금을 많이 올리니까 우리나라가 힘든 거다, 라고 말하더군요. 그런데 말이죠, 이번 최저임금 상승은 생산성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습니다. 이번 최저임금 상승이 높았던 것은 생산성에 따른 임금 상승이 아닌, 지금까지 부당하게 저임금으로 고용되어왔던 사람들을 위한 임금 분배 정상화입니다. 많이 버는 사람들의 임금을 줄여 적게 버는 사람들에게 나눠줘야 된다는 겁니다. 100을 생산하는데 손해 보는 쪽 없이 임금만 상승시키면 당연히 힘들죠. 양극화를 줄이기 위한 부의 분배 정상화를 위해 이러는 건데, 많은 사람들이 금전만능주의에 빠져 돈을 분해하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나라가 힘든 거지, 생산성과 관계 있는 것이 아닙니다.

 

왜 부자가 부를 분배 해야 하는가, 자본주의를 꺼내며 부자가 손해를 감수해야 될 이유가 없다고 할지도 모르겠어요. 그런데 말이죠. 전문가 여러분, 여러분들도 우리나라 출산율은 아시고 계시잖아요. 왜 출산율이 적은지도 아시잖아요. 돈이 없어서잖아요. 물론 책임감이나 가치관의 이유도 있습니다. 하지만 돈이 중요하지 않을 리가 없잖아요. 우리나라는 지금 멀쩡하게 일하는 사람도 제대로 된 집을 구하기 힘들 정도가 되었어요. 그렇게 양극화가 진행되어가고 있는 중임에도 사회에서 힘을 가진 사람들이 자본주의를 핑계로 책임지지 않아도 된다고 주장하는 건, 우리사회의 죽음을 방조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제발 부탁 드려요. 우리사회를 살려주세요. 부탁합니다.

 

 

지금까지 정체성 혼란으로 빚어진 사상의 공백으로 나타난 금전만능주의가 만들어낸 폐해들을 살펴보았습니다. 이외에도 투기, 사기, 탈세 등의 모든 돈에 관련된 부도덕은 금전만능주의가 가져왔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보다 돈을 더 중요시하니까 그런 겁니다. 참 슬픈 일이지요. 그에 영향을 받아 돈이 없는 사람들조차 금전만능주의자가 되어버렸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금전만능주의를 추구하면 이익을 보는 건 당연히 돈이 많은 사람들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돈이 없는 사람들이 금전만능주의를 추구한 것은 우리에게 우리만의 사상이 없었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금전만능주의를 견제할 사상이 없었다는 거예요!

 

 

이처럼 정체성 혼란은 사회적 갈등은 물론이고 경제적 갈등까지 초래했습니다. 그리고 이건 계속 진행 중입니다. 아시고 계시겠지요. 우리나라의 경제적 문제들을 해결하는 것은 정체성 혼란부터 정리하고 시작해야 될 문제였던 겁니다. 정체성 혼란이 끝나지가 않았으니까 뭘 해도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았던 겁니다!

 

그래서 오늘, 드디어 말하겠습니다. 이제는 우리나라만의 정체성을 확립할 때가 왔습니다! 이제 우리는! 우리의 정체성은! 민족의 언어와 문화를 이은 민주주의자들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우리나라의 웬만한 사람들은 전부 포용할 수 있는 정체성이라 생각합니다! 이제는 이것으로 정체성 혼란의 끝을 고하겠습니다!

 

그리고 그 혼란으로 빚어진 사상의 공백을 메꿀 우리만의 사상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걸 위해 앞으로도 노력할 것입니다. 괜찮은 생각들을 통해 다양한 문제들을 해결하여 우리나라를 강국으로 만들고 싶습니다. 그리고 인류의 생존과 번영에도 기여를 하고 싶습니다.

 

 

 

사랑 받는 나라

 

사실 이 글은 여기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다른 나라에서 날아오는 미세먼지를 해결하려면 우리나라만의 힘으론 해결이 어렵겠지요. 그러니 다른 나라와의 협력이 필요합니다. 그 협력이 순조롭게 이루어지려면 우리나라가 사랑 받는 나라가 될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생각해봤습니다. ‘사랑 받는 나라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첫째, 정체성 확립

 

우리가 민족의 언어와 문화를 이은 민주주의자로서 정체성이 확립된다면, 전세계의 민주주의자들로부터 돈과 관계없는 도움을 받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피를 나누지는 않았지만 민주주의는 나눴으니까요. 6.25 때 우리를 위해 피를 흘려준 것처럼 우리를 위해 도와줄지도 모른다는 겁니다

 

그러면 우리도 도와야겠지요. 돕고 도와야 다음 번에도 도움 받을 수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예전에 한번 난민 받는 것에 경기를 일으키며 반대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습니다. …… 우리나라가 어떤 나라입니까? 6.25때 전세계로부터 도움을 받은 나라가 아닙니까? 그런데 그런 나라가 금전만능주의에 빠져 난민에게 들어가는 세금 한 푼이 아깝다고 반대한다는 겁니다. 진짜 그러면 되겠어요? 정말 슬펐습니다. 물론 무작정 다 받으라는 건 아닙니다. 난민을 받을 때 감정적으로 받지 말고 규칙에 의거해서 받아야겠지요. 우리나라가 원래 난민 통과가 낮으니까 난민을 반대하는 분들도 거기까지만 해주세요. 통과한 난민은 받아드려야 됩니다. 우리가 돕지 않으면 남들도 우리를 돕지 않아요. 부탁입니다. 우리도 도와줍시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어려울 때 다른 나라에 가서 돈을 벌어다가 나라에 돈을 가져왔지요. 우리는 그런 나라였어요.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번 것을 자기 나라로 가져가는 걸 고깝게 봐서 되겠나요? …… 최소한 불법체류자는 반대한다고 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의 행복을 위해서, 우리 모두의 행복을 위해서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

 

 

둘째, 사상의 공백 메꾸기

 

정체성 확립을 통해 사상의 공백을 메꾸게 된다면 금전만능주의에서 벗어나 전세계로부터 사랑 받는 나라가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기본적으로 금전만능주의자는 사람들에게 사랑 받기 어려운 타입이기 때문입니다. 생각해보세요. 돈만 밝히는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은 적습니다. 돈만 밝히는 사람과의 관계는 결국 돈과 관련된 것만 관계를 맺기 마련입니다. 그 사람의 돈이 떨어지면 멀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돈으로 맺어진 관계는 돈이 아니면 도와주지 않는단 말입니다.

 

미세먼지를 생각해보세요. 우리가 돈이 더 많습니까, 중국이 돈이 더 많습니까? 우리는 돈으로 접근하면 손해를 볼 수 밖에 없습니다. 돈 이상의 어떤 것으로 사랑을 받아야만 이런 문제에 있어 다른 나라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겁니다.

 

 

셋째, 문화

 

저는 이제 전세계가 인터넷을 통해 단일민족화가 시작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그런 흐름 속에서 우리의 언어와 문화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우리의 언어가 우리의 문화를 상징할 수 있을 정도로 발전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다행히도 최근 우리의 대중 문화는 세계로부터 사랑 받고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걸 더욱 발전시켜 우리의 언어가 우리의 문화를 상징하기를 바래봅니다. 우리나라의 대중 문화를 담당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점을 알고 부도덕한 일로 뉴스에 실리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꾸준히 발전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넷째, 국민의 가치

 

우리나라는 관광지가 많은 것도 아니고 관광자원이 우수한 것도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내세울 수 있는 것은 과거가 아닌 현재입니다. 우리 국민들 자체가 브랜드가 되어야 된다는 겁니다. 우리의 관광자원은 사람입니다. 대중 문화를 관람하기 위해 방문해오는 사람들이나, 쇼핑을 하기 위해 방문해오는 사람들을 보세요. 우리의 가치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나라의 치안을 더욱 우수하게, 우리나라의 시민의식을 더욱 우수하게, 우리나라의 품위와 품격을 더욱 우수하게 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들의 가치를 올려야 사랑 받는 나라가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걸 위해서는 우리 사회의 힘을 가진 이른바 사회의 어른들이 모범을 보여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추가로, 우리나라는 좀 예외적으로 다른 민족들에게 폐를 끼친 적이 거의 없습니다. 아무래도 도덕적 약함에 지배 받다 보니 다른 나라를 침략할 생각을 거의 안 했어요. 평화로운 민족이었다는 겁니다. 그리고 이 평화로운 민족의 후예라는 건 가치 있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우리는 도덕적 약함 때문에 손해 본 것이 매우 많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이득 볼 것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만큼 굳이 애써서 민족을 부정할 필요가 없이, 필요한 부분은 우리가 물려받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민족의 언어와 문화를 물려받은 민주주의자니까요.

 

 

다섯째, 기타

 

저번에 한번 개고기를 먹지 않는 조건으로 개고기를 먹는 것을 싫어하는 나라로부터 미세먼지에 관한 도움을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쓴 적이 있습니다. 그때는 사실 그냥 생각나는 데로 쓴 거였어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생각이 바뀌지는 않았습니다. 개고기가 별식인 만큼 그걸 질색하는 나라가 있다면 그들을 배려해서 먹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배려는 곧 사랑으로 이어지겠지요. 그런 것 하나하나가 사랑 받는 나라로 갈 수 있는 길이라 생각했던 겁니다. 물론 이것은 먹지 않는 사람의 의견이므로 먹는 사람들이 직접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여 결정을 내려야 할 문제입니다.

 

저번에 한번 화폐 단위를 바꾼다면 환이 아닌 냥으로 바꿨으면 좋겠다고 한 적이 있지요. 고양이 울음소리처럼 느껴져 귀엽다고 느끼기 때문에 전세계가 관심을 가질 것 같다고 말하면서 말이죠. 사랑 받기 위해서라면 이 정도는 해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개고기와 달리 뭐 딱히 손해 보는 것도 없잖아요? 우리역사에서 쓰이던 단위니만큼 당위성이 없는 것도 아니고, 저는 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하, 우리나라가 사랑 받는 나라가 되기 위해서 할 수 있는 노력이란 노력들은 전부 해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우리 모두의 행복을 위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노력은 모범이 되어 자연스럽게 인류의 행복으로 이어질 거라 생각합니다. 어쩌면 이런 걸 꼴사납다고 여길지도 몰라 말해두겠습니다. 인기인이 인기를 얻기 위해 노력하는 것을 꼴사납다고 느끼지는 않을 거라 생각합니다. 사랑 받기 위해 노력하는 건 꼴사나운 게 아닙니다.

 

앞으로 우리나라가 자국민은 물론이고 전세계로부터 사랑 받는 나라가 되기를 바라며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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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음 썼네요.

 

저는 초등학생 때 과학자가 되고 싶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뭔가 반짝 반짝하는 별들을 보고 멋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중학생 때는 불합리한 세상에 절망하여 인생을 포기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제 몸을 제 의지로 다룰 수 없다고 느꼈을 때 완전히 포기했었지요. 그렇게 포기하고 살다가 갑작스럽게 자신의 절망을 글로 옮기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작가가 되고 싶었는데, 사는 것에 대한 의욕조차 없다 보니 장래희망을 위해 뭔가 노력할 마음이 들지 않았습니다. 그냥 흘러가는 데로만 살았어요. 어떤 집단에 속하든 딱 필요한 만큼만 노력하며 살았습니다. 적당 적당히, 전력을 다해본 적이 없어요. 그러다 근처에 있는 인간의 죽음을 알게 되어 삶의 무상함을 느껴 사는 것 자체를 포기하고 있다가 인간의 목적이 생존과 번영이라 생각하고는 일단 생존하기로 결심했지요. (이후 언젠가 어떤 질문에 생존이 목적이라고 대답한 기억이 있네요. 얼마나 어이없을지. 하지만 그게 진실이었어요.) 그 후 우연찮게 방송국과 관련되었습니다. 매일매일 뉴스와 라디오를 듣다 보니 기자가 되고 싶었나 봐요. 그런데 그러면 뭐할까요… 마찬가지로 아무 의욕이 생기지 않았습니다. 그때는 살아남는 것만 생각했지 아직 스스로를 용서하지도, 그리고 약함도 알지 못했을 때여서 그랬을 거예요. 그러다가 힘들어서 다 포기하고 쉬고 있을 때 스스로를 용서하게 되는 계기가 생겼어요. 그렇게 스스로를 용서하고 나서는 철학자, 사상가, 소설가가 되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게 아직까지 이어져오고 있어요. 어떤 일이 있어도 웬만하면 철학자나 사상가나 소설가는 계속하고 싶어질 것 같으니 앞으로 잘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약함도 알게 되었으니까 조금 더 진취적으로 살아보고자 합니다. 뭘 하더라도 하고 싶은 것을 위해 노력해야겠어요. 앞으로 뭘 할지는 모르겠는데, 이왕이면 머리를 쓸 수 있는 일을, 학업에 지장이 없는 일을 하려고 합니다.

 

 

그럼 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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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이 쓰심?
글 잘쓰셨네요.
퍼온게 아니라면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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