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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인간의 약함, 사회적 갈등의 근원 (0) 2019/05/12 PM 10:39

인간의 약함, 갈등의 근원

 

 

 

오늘은 우리나라의 갈등들을 살펴보고 해결방법을 이야기하겠습니다.

 

우선 약함이 무엇인지를 간단히 설명하고 시작합니다. 약함에는 타고난 약함과 만들어진 약함이 있습니다. 타고난 약함은 [감정과 욕구와 욕망] [신체적 또는 정신적 불편]이 있습니다. 만들어진 약함은 [편의][이용][사고]가 있습니다. 이걸 일일이 설명하면 글이 늘어질 것 같아 하나의 예시만 소개하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자세한 설명은 이전에 쓴 글 또는 이후에 쓸 글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잔반 줄이기]는 분명 음식물 쓰레기를 줄여 여러모로 올바릅니다. 그래서 많은 학교에서 이를 교육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종종 [편의]를 위해서 잔반을 줄여야 할 이유를 설명하지 않고 무조건 줄이라고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교육하는 사람은 편할지 몰라도 교육받는 사람은 생각과 행동의 우선순위가 엉망이 되어버립니다.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무엇이 더 중요한지를 몰라 [사람의 건강]보다 [잔반 줄이기]를 우선시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더 먹으면 배탈이 난다는 걸 알면서도 잔반을 줄이지 않으면 괴로움을 느끼기 때문에 꾸역꾸역 먹습니다. 그러다 결국 배탈이 납니다. 좀 더 심해지면 다른 사람이 남겨도 괴로움을 느껴 그 사람에게 간섭하여 갈등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이렇게 불합리하게 배탈이나 갈등이 일어나면 잔반 줄이기는 올바른 거니까 자신은 잘못한 것이 없다며 자기합리화를 하게 됩니다.

 

이 예시가 만들어진 약함 중 [편의]에 해당하겠습니다. 사실 이 예시는 약함으로 발생하는 문제 중 매우 약한 것에 속합니다. 하지만 본질은 크기와 상관이 없습니다. 앞으로 설명할 다양한 갈등은 이 예시를 참고하면 보다 쉽게 이해가 되실 거라 생각합니다.

 

 

 

정체성 혼란

 

간결하게 정리하겠습니다.

 

도덕 [편의]

 

군사독재정부와 맞서 싸운 민주주의자들을 이념으로 바라보면 생각과 행동이 해석되지 않습니다. 이들의 정체성은 도덕입니다. 도덕적인 것은 전부 추구합니다. 민주주의, 민족주의, 성평등, 원전폐기, 소득주도성장 등 올바르다고 판단되는 것은 전부 추구합니다. 이 중 몇 가지는 주입식 교육으로 도덕에 약해져서 우선순위에 혼란을 겪었습니다.

 

[민주주의]를 위해 한국의 독재자와 맞서 싸웠고, [민족주의]를 위해 북한의 독재자와 교류했습니다. 독재자와 맞서 싸우고 독재자와 교류하는 모순은 이념으로 볼 것이 아니라, 도덕으로 보면 답이 나오는 문제였습니다. 도덕에 약해진 이들은 올바른 일을 하고 있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민족의 화합을 위한 북한과의 교류를 반대하는 다수의 국민들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이해했더라면 한국전쟁으로 트라우마를 가지게 된 다수의 국민들을 먼저 돌봤어야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국가 지도층의 역할은 국민을 우선시해야 되기 때문입니다.

 

[성평등]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들의 젊은 시절에는 여성의 인권이 취약한 편이었습니다. 그래서 여성의 인권을 향상시켜야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성평등이란 도덕을 추구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성평등이란 도덕에 약해지다 보니 역차별을 낳을 때도 있었습니다. 신입의 성비율이 비슷함에도 고위직을 핑계로 여성가산점을 주기도 했습니다. 고위직은 성차별이 남아있던 시대에서 진급한 인원들이기 때문에 남성이 많을 수 밖에 없습니다. 이는 시간이 지나 신입들이 진급하면 자연스럽게 해결될 문제임에도, 신입이 아닌 전체 성비율을 맞추기 위해 역차별을 낳는 여성가산점을 주었던 것이라 생각합니다.

 

[원전폐기]도 마찬가지입니다. 두 차례의 원전사고나 핵폐기물 처리기술을 생각해보면 원전폐기는 올바른 일입니다. 저도 폐기하는 쪽이 안전하다고는 생각합니다 하지만 객관적으로 생각해보면 약간은 달라집니다. 몇 가지 이유, 경제적 효율성, 환경적 효율성(화력발전으로 발생하는 미세먼지), 이웃국가의 원전건설로 원전사고방지의 무의미를 생각해보면 무조건 중지할 것이 아니라, 원전사고방지와 핵폐기물처리기술이 발전된다면 재개하겠다고 하는 편이 원전찬성자들을 설득할 수 있었지 않았나 싶습니다. 어차피 지금 당장 폐기하는 것도 아니니 유연하게 대처해도 되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소득주도성장]도 마찬가지입니다. 빈부격차가 심해져 가는 상황 속에서 가난한 이들을 위한 최저임금 상승은 올바른 일입니다. 그런데 이 올바름에 약해지다 보니 제반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정책을 추진했다고 생각합니다. 생산성에 맞춰 최저임금을 지급하려고 하니까 문제가 발생하는 겁니다. 이번 최저임금 상승은 부의 분배 정상화의 관점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부의 분배 정상화는 곧 [낙수효과]와 마찬가지로 부자가 자신의 자본을 분배해야 됩니다. 결국 힘이 책임을 져야 가능한 정책이란 이야기입니다. 그러니 무조건적으로 추진하기보다 힘이 책임을 지게 만들 수 있는 사회적 풍토 개선방안을 고려했어야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들은 도덕적이기 때문에 정책들은 도덕을 중심으로 추진됩니다. 또한 문제들도 도덕을 지키다가 발생합니다. 도덕적이라 상호모순이 발생하는 올바름도 추구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심지어 약간의 도덕적 흠집만 있어도 견뎌내지 못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최근 생명을 버리는 안타까운 사건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이제는 도덕에 약해지면 안됩니다.

 

군사독재는 도덕적 결함이었고 이들과 맞서 싸운 민주주의자들은 도덕적 약함이었습니다. 그래서 같은 잘못을 반복해왔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지금이라도, 도덕적 결함에서 벗어난 지금이야말로 도덕적 약함에서 벗어나 강국으로 거듭날 수 있는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민주주의 체제를 갖춘 민족주의자가 아닌 민족의 언어와 문화를 이은 민주주의자라는 점을 강조하고 넘어가겠습니다. 민족을 넘어 체제의 시대로 진화합시다.

 

 

 

트라우마 [사건]

 

군사독재정부를 지지했던 반공주의자들을 이념으로 바라보면 생각과 행동이 해석되지 않습니다. 이들의 정체성은 트라우마입니다. 한국전쟁에 의해 트라우마를 가지게 된 다수의 국민들은 그 누구라도 반북을 주장하면 지지했습니다. 트라우마로 반북에 약해져 우선순위에 혼란을 겪은 바람에 모순되는 행동도 하게 됩니다. [반북]을 위해 북한의 일당독재자를 비난하면서 [반북]을 위해 한국의 군사독재정부를 지지했습니다. 독재자를 비난하고 독재자를 지지했던 모순은 이념이 아니라, 트라우마로 보면 답이 나오는 문제였습니다. 트라우마에 약해진 이들은 올바른 일을 하고 있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민족의 화합을 위해 북한과의 교류를 시도했던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도덕적 결함을 가진 군사독재정부를 지지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지지는 다양한 문제를 야기합니다. 이들은 반북이지 반민족주의자가 아닙니다. 나라를 팔아먹지도 않았습니다. 일부는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 수많은 지지자들이 전부 나라를 팔아먹기엔 우리나라가 그렇게 크진 않습니다. 그러니 대다수는 오로지 반북 말곤 없습니다. 그런데 반북을 위한 진영논리에 갇혀 지지하는 사람의 성향 또한 지지하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군사독재정부의 도덕적 결함을 비판하거나 그 정부를 이은 정당의 정책(사대강 등)을 비판해도 이들이 아무런 관심이 없었던 것은, 이들은 애초에 도덕 때문에 군사독재정부를 지지했던 것이 아니라 반북 때문에 지지했던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아무리 비판해도 의미가 없지요. 북한과의 교류를 추진하는 사람들의 정책은 무엇이 되었건 다 비난했던 것은 이들은 반북을 최우선으로 삼았던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는 두 차례 침략으로 인해 반으로 똑 쪼개졌습니다. 일제강점기로 민족주의가 격화되었고 한국전쟁으로 반북이 격화되었습니다. 이 둘은 표면상 이념갈등으로 보였지만 사실은 침략으로 인한 트라우마로 격화된 민족주의와 반북의 충돌이 빚어낸 갈등이었던 겁니다. 그래서 독재자를 비난하면서 독재자를 지지하거나 교류했다고 생각합니다.

 

국내 독재와 반민족주의자들과 싸웠던 민주주의자들은 애국자입니다. 맞죠? 국외 독재와 반체제주의자들과 싸웠던 반북은 애국자입니다. 맞죠? 이 둘은 관점만 달리하면 둘 다 애국자입니다. 그런데 약해진 것이 문제입니다. 무조건 민족을 위해 일해야 돼, 라고 생각하며 북한과 교류합니다. 무조건 반북을 해야 돼, 라고 생각하며 군사독재정부를 지지합니다. 약해졌기 때문에 민족이란 미끼로 국외 독재자에게 이용당하고 북풍이란 공포로 국내 독재자에게 이용당했습니다. 그리하여 두 부류의 애국자가 두 부류의 독재자들에게 이용당했다는 것입니다. 만약 어느 쪽이건 약해지지 않았더라면 이 두 애국자는 싸울 일이 없어 사회적 갈등이 없었을 거라 적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이런 사정으로 인해 저는 이제 민족이 국가의 정체성이란 역할을 더 이상 수행하지 못한다고 판단합니다. 그러니 이제는 민족이 아닌 민주주의 체제를 국가의 정체성으로 삼아야 된다고 주장합니다. 만약 군사독재정부와 맞서 싸웠던 민주주의자들이 북한의 독재자와도 맞서 싸웠다면 우리는 갈등을 겪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 아쉽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도덕이든 트라우마든 약함은 스스로 극복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제라도 원인을 알았다면 국외 통일보다는 국내 통일부터 먼저 추진했으면 좋겠습니다. 도덕적인 정부가 뭔 정책을 내놓더라도 삐걱거리는 것은 반북을 최우선으로 삼는 사람들이 무조건 반대하기 때문입니다. 이들을 포용하려면 민족주의가 아닌 민주주의자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하여 국내외 독재자를 비판해 국내 통일을 먼저 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를 위해 이제는 체제의 시대로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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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사회갈등 중에 위계질서, 성차별, 금전만능주의를 해결할 수 있는 역할존중도 다뤄보려고 했는데 시간이 부족하네요. 간단히 써보겠습니다.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 나이, 성별, 학벌, 지위, 자본, 지역 등 관계없이 모두 평등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까지는 위계질서 같은 관습으로 인해 불평등을 야기했다. 이런 불평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별도의 평등한 기준이 필요하다. 그것이 역할이다. 어느 누구든 사회에 도움이 되는 역할을 수행한다면 존중 받을 권리가 있다. 이렇게 역할을 기준으로 평등하게 대하게 된다면 위계질서로 인한 불평등이나 성별로 인한 불평등을 해소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나이가 적더라도 역할을 수행하면 존중해야 하며 나이가 많더라도 역할을 수행할 수 있으면 계속 근무할 권리가 있다. 여성도 군인이나 경찰과 소방관 역할을 맡을 수 있으며 남성도 간호사나 가정주부의 역할을 맡을 수 있다. 역할의 수행여부가 존중의 척도가 되기 때문에 나이나 성별이 상관없어지는 것이다.

 

덩달아 몇 가지 문제도 더 해결할 수 있다. 나이를 먹으면 아무래도 젊은 시절보다 일의 능률이 떨어지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위계질서의 영향을 받아 대우를 높게 받기 때문에 일을 할 수 있음에도 정년을 퇴직했어야 했다. 이 점은 역할의 기여도에 따라 대우를 달리한다는 관점으로 바라보면 해결이 된다. 일의 능률이 떨어지면 그 만큼 대우를 적게 받으면 되는 문제다. 연령이나 경력이 아닌 일의 기여도로 대우를 받게 되면 일을 할 수 있음에도 퇴직하게 되는 문제는 해결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인간은 보호가 필요한 아이를 낳는 동물이므로 보호자와 피보호자의 관계는 필수적이다. 그러므로 실질적으로 완전한 인간의 평등은 불가능하다. 그런데 이 점 또한 역할을 통해 완화할 수 있다. 보호자는 피보호자를 보호할 때에만 불평등하게 대할 수 있고, 피보호자는 보호받을 때에만 불평등을 감수하면 된다. 예를 들어보겠다. 보호자가 피보호자를 보호하기 위해 밤 늦게 돌아다니지 말라고 했다. 이건 분명 불평등하다. 하지만 보호를 위해 필요하다. 그러니 보호자는 보호할 때에만 불평등한 지시를 내릴 수 있고, 피보호자는 보호받을 때에만 불평등을 감수하면 되는 것이다.

 

이는 계급이 있는 사회체계에도 적용이 된다. 사장과 사원의 관계에서도 역할을 위한 업무를 하고 있을 때에만 불평등이 적용된다. 근무시간 외 또는 일을 그만두거나 해서 역할에서 벗어나면 그 둘은 평등한 사이가 된다. 대통령과 말단공무원도 마찬가지다. 역할을 수행하고 있을 때에만 계급이란 불평등이 적용되어야 할 것이다. 그 어떤 관계라고 하더라도 필요에 의한 불평등은 역할을 수행할 때에만 가능하다고 명시해두면 평등사회가 이룩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럼 또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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