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지성을 잇는 아이
어쩐지 오늘따라 멍하네요. 일요일 늦은 밤, 평소 생각해왔던 것을 내키는 데로 쓸 거라, 저 또한 이 글이 어떤 결론으로 치닫게 될 것인지
예상이 안 되는 상황임을 고백하며 시작합니다. 뭐라고 지껄이게 되려나…
예전부터 말하고 싶었던 것이 있었어요. 자아에 대해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말하고 싶었던 거예요. 인간은 분명 생각하는 동물이죠. 그런데 그런 인간이 동물마냥 지성보다 핏줄을 더
소중히 여기는 것 같았어요. 분명 핏줄이 소중한 것은 맞긴 해요. 그런데 지성을 갖춘 사람이라면 지성도 그만큼 소중하게 여겨야 되는 거 아니에요?
지성이라는 건 [지각된 것을 정리하고 통일하여, 이것을 바탕으로 새로운 인식을 낳게 하는 정신 작용]이라고 해요. 간단하게 ‘학습한 것을 토대로 새로운 것을 생각하는 것’이라고 해도 될 것 같네요. 다른 동물처럼 그냥 지각된 것으로 끝나는 것이라
아니라 지각된 것을 바탕으로 새로운 것을 생각할 줄 안다는 거죠. 그러므로 지성인이란, 현재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새로운 것을 생각하며 발전할 수 있는 인간을 말하는 것 같아요. 이런 기준이면 과거나 현재에 머물러선 지성인이라
부를 수 없겠지요.
인간이 지구의 최고포식자의 위치에 군림할 수 있도록
만들어준 이 지성을 사랑하지 않나요? 만약 지성을 사랑한다면, 자신의 지성을 잇는 사람들도 사랑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었어요. 단순히 자기 자식뿐만이 아니라, 자신의 언어, 자신의 문화, 자신의 지식, 자신의 취미, 자신의 취향 등을 잇게 될 국민들을 사랑해야 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었어요. 물론 세계화된 시점에서 단순히 국민만 사랑해야 되는 것은 아니에요. 자신의 지성을 사랑한다면 그 지성을 잇게 되는 모든
인간을 사랑함이 마땅하겠죠. 그러므로 지성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인류의 생존과 번영을 추구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했어요. 더불어 지성을 사랑한다면 인류의 생존과 번영에 방해가 되는 미세먼지나 프레온가스나 방사능을
비판하는 게 마땅하겠죠.
그렇지만 다른 나라에 간섭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지성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우선적으로 할 수 있는 건 자신의 지성을 잇는 국민을 사랑하는 것이겠죠. 이건 연령대와 관계가 없어요. 만약 상대적으로 어린 학자가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해서 국민들이 그걸 잇게 된다면, 그 학자는 국민을 사랑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만약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 학자는 자신의 지성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겠죠. 특별히 학자만의 일은 아니에요. 작가도 마찬가지고, 기자도 마찬가지고, 교사도 마찬가지겠죠. 뭔가 자신의 새로운 생각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해
잇게 된다면, 그걸 이은 사람을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다고 생각해요. 지성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요.
좀 더 생각해보니까, 굳이 생각에 한정할 것이 아니라, 건축물도 가능하겠고 음식도 가능하겠고 상품도 가능할
것 같네요. 자신이 만든 것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신이 만든 것을 잇는 사람도 사랑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지성으로 만들어진 새로운 지식은 대를 이어나가 다시
한번 지성으로 새로운 지식을 만들어가겠죠. 그런 식의 반복이 인류를 발전시킨 거겠죠. 이런걸 생각해보니까, 자신의 지성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지성을 잇는 사람들도 사랑해야 된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이런 의견을 어떻게 생각하고 계실지 모르겠어요. 아마 지식을 많이 갖춰 지성인이라 불리는 사람일수록
자신의 지성을 사랑할 거라 생각해요. 그렇다면, 자신의 지성을 사랑한다면, 제 핏줄만큼이나 지식을 잇는 사람들을 사랑하는 게
어떨까 생각해봤어요. 그러니까…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우리나라 지성인들이 자신의 지성을 잇게 될 사람들이
줄어드는 저출산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드렸으면 좋겠다는 이야기예요.
지금까지 저출산 문제가 공론화 된 것이 하루 이틀이
아님에도 뭐하나 제대로 해결한 적도 없고, 마땅한 대책도 없죠. 정부에선 저출산 문제를 해결해보겠다고 돈을 쓰고 있지만, 뭐하나 제대로 해결된 것이 없는 것을 보면 그 예산이 눈먼 돈 사냥꾼들에게 사냥 당한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들어요. 예부터 정부 예산은 눈먼 돈이란 얘기가 있을 정도로
주먹구구식으로 행정처리 되어왔으니까요. 눈치 빠르고 돈 냄새에 민감한 사람들이 정작 필요한 사람들을 제치고 돈을 받아가고 있으니 정부 예산은 눈먼 돈이란 얘기가 나오는 거죠. 안타까워요.
잠깐 딴소리를 하게 됐는데, 본론으로 들어가볼게요. 정부에서 뭔가 해보려고 해도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
것은 근본적인 문제가 거기에 있는 것이 아니라서 그런 거라 생각해요. 뭐, 앞서 말한 것처럼 눈먼 돈이기도 하지만, 그 돈이 정상적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들, 저출산 기조에 뭔가 영향을 주기엔 부족하다고 생각해요. 밑 빠진 독에 물 붙는 거와 마찬가지라는 거죠. 뭐 영국처럼 돈을 쏟아 부으면 조금 오를지는 모르겠는데, 근본적으로 바꾸려면 양극화 현상을 해결해야겠죠.
어떤 교수는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저출산은 축하할 일이라고요. 뭐 이민자도 있고, 인공지능도 있고, 그런 말들을 하면서 저출산의 긍정적인 부분을 부각시키는데, 참 단편적이라고 생각했어요. 인구가 줄면 이민을 받으면 되는 문제라고 하면서
당당하게 이야기하더라고요. 뭐라고 해야 할까, 과연 이민자들이 자신의 언어와 문화를 포기하고 우리들의 언어와 문화를 잇게 될지 의문이 든다고 해야 할까요? 그렇지 않아도 최근에 공원 한복판에서 외국어로 된
음악을 틀고 거기서 춤을 추는 외국인들을 보았어요. 저는 처음 보는 광경이라 놀란 표정을 지었지요. 다문화시대를 넘어, 그 문화들이 합쳐지는 단일문화의 시대로 넘어가고 있는 상황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런 생소한 광경에는 놀랄 수 밖에 없었어요. 그리고 생각했죠. ‘이대로 우리나라 출산율이 줄어들게 된다면, 미래에는 어쩌면 우리나라의 언어와 문화가 역사서에만
남아있을 수도 있겠구나-‘
저는 우리나라의 언어와 문화를 지극히 사랑해요. 솔직히 말하면 모든 문화를 사랑하는 건 아니에요. 악습은 싫어해요. 그래도 많은 부분을 사랑하고 있어요. 특히 언어와 음식은 몹시 사랑해요. 가끔씩 외국에서 들어온 음식들을 호기심에 구매해서
먹어볼 때가 있어요. 그리고 그 때마다 애국심이 커져가게 되더라고요. 뭐 싸구려니까 맛이 없던 것도 있지만, 입맛 자체가 한국 음식이 길들여져 버려서, 다른 말로 한국 음식을 사랑하게 되어서, 다른 나라 음식은 입맛에 맞지 않았던 거예요. 뭐 정문화도 나쁜 것만은 아닌 것 같았어요. 예전에는 솔직히 말해 조금 짜증날 때도 있었는데, 곰곰이 생각해보니까, 그 짜증의 원천은 위계질서에 있지, 정문화에 있던 것이 아니더라고요. 작은 나라에, 외세의 침략을 받으며 옹기종기 모여서 살기 위해 서로 돕고 살던 그런 문화 중 하나가 정문화라고 생각해요. 사람을 아까고 사랑하는 것에 무슨 문제가 있겠어요. 지나칠 때엔 문제가 발생하겠지만, 보통은 위계질서가 문제죠. 내가 관심을 가져줬는데 감히 거절해? 하면서 화내니까 짜증나는 거지, 평등하게 대한다면 짜증나기 어렵다고 생각해요.
뭐 어쨌든, 저는 민주주의를 더 우선시 하기는 합니다만, 언어와 문화도 사랑하고 있으므로, 제 (저도 우리나라 사람이니까 ‘제’란 표현을 써도 되겠지요?) 언어와 문화가 살아남았으면 좋겠어요. 살아남았으면 하니까, 출산율이 늘어났으면 좋겠다는 거예요. 이민자들이 과연 얼마나 제 언어와 문화를 사랑하게 될지 예상이 되질 않아요. 이민자들을 거부하는 건 아니에요. 오히려 그들을 받아가면서 민족이란 작은 틀에서 벗어나
체제의 시대에 접어들어 더더욱 발전하길 바라고 있어요. 하지만, 하지만요, 언어와 문화도 사랑하고 있으니까, 이민자들에게 잡아 먹히지 않을 정도의, 우리나라에서 태어나 자라날 사람들이 필요하다는 이야기예요.
우리나라의 힘을 가진 지성인분들에게 여쭙고 싶어요. 자신의 언어를 사랑하시나요? 자신의 문화를 사랑하시나요? 자신의 지성을 사랑하시나요? 만약 사랑하신다면, 저출산 문제를 좀 더 심각하게 받아드려 주셨으면
좋겠어요. 그냥 정부에 맡기고 손 놓을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나서서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려고 해줬으면 좋겠어요. 힘이 책임을 졌으면 좋겠다는 거예요!
자본이 매력적인 까닭에 대해, 사회를 책임지지 않는 무책임한 힘이기 때문이란 대답을
내놓은 적이 있지요. 그런데 생각해보니까, 힘이 책임을 지지 않는 건 자본에만 해당되는 게 아니더라고요. 다들 그러더라고요. (목이 매임) 힘이 책임지는 일이 별로 없더라고요. 아, 방금 번개 쳤어요. 오랜만에 들어보네요.
솔직히 말하면 어렸을 때엔 노조가 노동자 편을 들어주니까
단순하게 좋은 것이라고 생각했었어요. 특히 옛날에는 노동환경에 너무 취약했으니까, 노동자의 투쟁은 정당하다고 생각했었어요. 그런데 최근 들어 노조의 활동을 보면, 노동자의 권익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노조의 권익을 보호하고 있더라고요. 원래 그런 걸까요? 잘 모르겠어요. 최근 포털사이트 노조의 이야기를 기사로 접한 적이 있어요. 거기서 어떤 노조원의 말이 인상 깊었어요. “노조는 모든 노동자의 권익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노조의 권익을 보호하는 거다.” 기억에 의존해서 정확한 것은 아닌데, 대강 이랬을 거예요. 다른 노동자를 책임질 필요가 없다는 거죠. 그게 원래 노조의 취지인지는 저도 잘 모르겠어요. 그런데 말이에요. 단순하게 생각해봐도, 그러면 노조가 대우받을 수 없을 것 같은데요. 이상했어요.
노조가 다른 노동자를 책임질 필요가 없다, 그러면 다른 노동자도 노조의 편을 들어줄 필요가
없다, 그런 상황에서 회사가 사회적 책임을 진다, 다른 노동자는 회사의 편을 들어주게 된다, 노조를 제외한 나머지 국민들이 회사의 편을 들어주게
된다, 그러면 민주주의 사회이므로 자연스럽게 정치도 회사의
편을 들어주게 된다, 국민과 정치가 회사의 편을 들어주게 되면 회사는 노조의 의견을 무시하고 진행해도 별 문제가 없어지게 된다, 고립된 노조는 그제서야 부랴부랴 국민들에게 도움을
청해본다, 그러면 이런 대답이 나오겠죠. “너희들의 권익을 위해 우리가 나서서 도와줘야 할
이유가 어디 있느냐?” 이런 식으로 대의가 없는 투쟁은 결국 집단 이기주의가 되어버려 국민들에게 외면 받고 도움도 받지 못하겠죠.
이상했어요. 되게 간단한 계산인데, 민주주의 사회에 살고 있는 게 맞는지 의문이 들었어요. 노조의 원래 형태 따윈 아무래도 좋아요. 취지, 의도, 따윈 아무래도 좋다고요. 교과서적 의미보다 실제로 적용되는 게 더 중요한 것 아니에요? 그런 대의가 없는 집단 이기주의를 보고 편들어달라는
건 지나치게 자기중심적인 사고방식이라 생각되네요. 자본가의 무책임함을 책하고 싶으면 적어도 협력업체나 파견이나 비정규직에 관심을 기울이는 척이라고 해보세요. 솔직히 조금 화나서 거칠게 썼네요. 그 이야기가 나온 회사가 꽤 우수한 곳이라, 우수한 사람이 말한 것 치곤 좀 답답해서.
딱히 자본이나 노조의 문제만은 아니에요. 그냥 사회전체적으로 힘이 책임을 지는 사례가 별로
없었어요. 지금 비가 내리는데 나른한 것이 기분이 좋네요. 시원하기도 하고 기분 나쁜 미세먼지도 줄어드니까요. 그건 그렇고, 뭐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까요? 게임으로 접근해볼까요? 요즘 게임 중독 질병화 문제 때문에 말들이 많지요. 이거 객관적으로 보면 어떤 특정 문화의 중독만 질병이
된다는 게 얼마나 편향적인지 알 수 있는데, 중독에 빠진 몇몇 청소년들을 보며 그런 편향을 정당화하고 있는 걸 보면 답답하지요.
그런데 뭐 어쩌겠나요? 인식을 고쳐보겠다는 노력이 적었는데 뭐 어쩌겠어요? 저는 인식 개선을 위해 게임을 즐기는데도 이유가
필요하다고 역설했었어요. 게임을 즐기는데 이유가 필요하냐는 멍청한 말 때문에 우리나라 내에서 게임이 인정받지 못하는 거라고 말이죠. 그리고 더불어 인식 개선을 위해 건전함을 증명할
수 있는 올림픽 종목이 되거나, 머리로 쓰는 경기가 중심이 된 올림픽을 개최해야 된다고 주장했어요. 하지만 아쉽게도 잘 안 됐어요.
이건 둘째 치더라도, 우리나라의 우수한 기업들이 도박적인 요소를 포기하지
않는 것을 보았을 때, 과연 힘이 책임을 지고 있는지 의문이 들어요. 1%, 3%, 5%의 낮은 확률로 게임 아이템을 얻게 만드는 회사들은 이윤을 목적으로 그런 도박적인 요소를 포기하지
않았어요. 다른 방식으로 돈 벌 방법이 있음에도, 벌기 쉽다는 이유 하나로 그런 불건전한 도박요소를
포기하지 않았다는 거예요. 그런 도박적인 요소가 게임 전체의 이미지 저하에 커다란 영향을 끼치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고 있었다는 거예요. 그러니 뭐 어쩌겠어요. 힘이 책임을 지지 않겠다는데, 도대체 어떻게 게임이 건전한 문화라고 인정받을 수 있겠어요?
요새 제가 매일 뉴스를 보고 있어요. 재미있더라고요. 예전 같으면 다소 편협하게 사물을 바라봤을 텐데, 지금은 모든 매체의 기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드리고
있답니다. 받아드린 뒤에 편향되거나 잘못된 부분을 파악하고
있어요. 모든 매체의 기사가 쓸모 있다고 판단되기는 하는데, 간혹 지나치게 편향되거나, 잘못된 뉴스를 내보내는 걸 볼 때가 있긴 하더라고요. 씁쓸하긴 했어요. 진영논리보단 객관성을 중요시 했으면 좋겠어요.
오늘도 뉴스를 보는데 보다 보면 눈가에 물이 맺힐
때가 있었어요. 그 중 하나가 여학생 집단 강간 피살사건이에요. 정확히는 기억이 나지 않는데, 술 먹여서 집단 강간하고 죽였는데, 주변 이웃들이 강간당한 여자아이 탓을 하더라고요? 그리고 죄인들의 앞날을 위해 선처를 바란다고 하더라고요. 정신이 나간 걸까요? 아뇨, 그냥 그들의 성인식이 그냥 그 모양인 것 같았어요. 여성을 평등하게 여기지 않으니 그딴 반응이 나오는
것이겠죠. 그런 걸 보면 온전하게 성평등이 이루어진 것은 아닌
것 같았어요. 그런데 다른 부분은 성평등을 넘어서 역차별까지 일어나고
있는 것도 분명 맞는 사실이란 말이죠.
저는 여기서 이 또한, 힘이 책임지지 않았기 때문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힘을 가진 여성들이 성평등을 주장했지만, 그건 결국 자신들의 권익이 중심이 되었던 것이었어요. 힘이 없는 여성들의 성평등에는 별달리 관심이 없었다는
이야기예요. 저는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여성단체나 여성부가
이런 취약계층의 여성을 위한 시위를 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어요. 힘이 있는 여성들이 직접 와닿는 유리천장, 인위적인 성비율 맞춤, 도시범죄(스토킹, 몰카) 등에는 예민하게 받아드리며 시위까지 하고 있지만, 힘이 없는 여성들이 주로 있는 외부에서 벌어지는
집단 강간당한 소녀나, 가정폭력 당하는 부인들에 대해서는 남혐의 도구로만 사용되고 있는 것 같았어요. 직접 와 닿는 것이 없으니까 말로만 끝난다는 거예요.
뭐라고 해야 할까, 제 앞가림만 하는 것 같다고 해야 할까요? 힘을 가진 여성들이 ‘여성’의 평등을 추구한 것이 아니라 여성인 ‘자신’의 평등을 추구했기 때문에, 불균형한 성평등이 발생하는 것 같아요. 뭐 어떻게 하든 개인자유입니다만, 힘이 책임을 지지 않았다는 말은 피할 수 없을 것 같아요. 진짜 성평등을 추구할 거면, 노조가 노동자의 자유와 평등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협력업체나 파견이나 비정규직도 챙겨야 하는 것처럼 취약계층도 챙겨야 함이 마땅할 것 같네요.
자본, 연령, 성별, 문화 등에서 힘이 책임을 지지 않는 것을 볼 때, 지성이란 힘이 책임을 지지 않는다고 해서 특별히 이상할 것까진 없는 것 같긴 하네요. 하지만, 그러니까 부탁할 수 밖에 없어요. 혹시라도 자신의 지성을 사랑한다면 부디 부디, 자신의 지성을 잇는 아이들인 국민들도 사랑해줬으면
좋겠어요. 자신의 언어와 문화를 잇는 아이들인 국민들을 사랑해줬으면
좋겠어요.
여기서 최저임금이 빠질 수가 없어요. 경제전문가 여러분들도 아시잖아요. 지금 출산율이 최악이라는 것 말이에요. 어떤 기사를 보니까 최저임금과 출산율과 연관이 있는지
알 수가 없다고 하더라고요. 몇 가지 사례를 들어가면서 말이죠. 그거 보고 솔직히 당황했어요. 자본주의사회에서 돈과 출산율과 연관이 적다는 게 말이 될 수 있는지 궁금했어요. 물론 저도 돈이 전부라곤 생각 안 해요. 가치관이나 책임유무 따위도 크겠죠. 하지만 빈부에 따라 출산율의 유의미한 차이가 있는 것을 보면 돈이 출산율과 연관이 적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해요. 그냥 간단히 생각해도 답이 나오지 않나요? 돈이 있어야 연애도 하고, 연애도 해야 결혼도 하고, 결혼도 해야 애도 낳는 거 아닐까요? 강제로 결혼시키지 않는 한, 사람이 여유가 있어야 결혼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출산율 증가를 위해 최저임금 상승이 필요하다고 주장했었어요.
이 최저임금 상승에 대한 부담은 비단 재벌만이 지는
것이 아니에요. 부동산도 있겠고, 고임금 노동자도 있겠죠. 이외 우리나라에서 힘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삶의 여유를
통해 결혼을 하여 자연스럽게 출산율을 올리게 만들 방법을 고심해봐야 된다고 생각해요. 출산 정책으로 신혼부부에게 투자하더라도, 사회 전반적인 여유가 없다면, 결혼 자체가 적어 들어 출산율에 큰 의미를 주기 어려운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그리고, 요즘 너무 갈등이 심하죠. 특히 성별갈등 좀 끝냈으면 좋겠어요. 이 성별갈등도 저출산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겠죠. 이성을 혐오하는데 어떻게 애가 나와요. 말도 안되죠. 그런데, 그걸 알면서도, 어떻게 그걸 부추이고 있는지, 이해가 되질 않아요. 성별갈등을 부추기고 있는 분들이 우리나라의 저출산에
한 몫 하고 있다는 겁니다. 성별운동을 하고 있다는 건 알겠어요. 그리고 그게 어느 정도는 필요하다는 것도 알겠어요. 그런데 평등이란 이유로 성혐오를 해서야 되겠나요? 성평등을 주장하는 분들은 성평등을 바라는 건지, 성혐오를 바라는 건지, 분명하게 해줬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자신의 지성을 사랑한다면, 그 지성을 살아남게 만들기 위해서라도, 출산율을 늘릴 수 있는 성별갈등을 일으키진 말아줬으면 좋겠어요.
그러고 보니 책임감 없는 젊은 부부가 만들어낸 참혹한
사건도 뉴스로 접했네요. 아비는 게임에, 어미는 술에 빠져서 어린 딸을 죽게 만들었다고 하더군요. 책임감이 전혀 없더군요. 뭐라고 해야 할까요? 그냥 무력감을 느꼈어요. 어른의 무책임함이 그들만의 문제는 아니니까요. 그 부부의 나이를 보니 갓 20살이었던가, 청소년 부부나 마찬가지더라고요. 그들의 무책임함, 누구를 보고 배웠을 것 같나요?
저는 부디, 우리 사회의 각계각층의 힘을 가진 어른들이 책임을
지길 바랍니다. 자신의 지성을 사랑한다면, 지성을 잇는 일에 동참하여 책임을 졌으면 좋겠습니다. 자신의 지성을 사랑한다면, 자신의 지성을 잇고 있고 잇게 될 국민들을 사랑하여, 모든 국민들의 생존과 번영에 책임감을 가지고 나서서
힘을 써줬으면 좋겠습니다. 부디. 좀. 핏줄뿐만이 아니라 지성도 사랑해주세요.
---
예전이나 지금이나 지하철 무료 건은 이슈가 많네요.
예전에 한번 평등을 위해서 이런 제안을 해본 적이
있어요
연령 관계없이 동등한 금액을 내되,
특정 연령이 낸 금액은 그 연령대의 복지에 전부
쓰인다
그래야 평등한 복지가 마련되겠죠
누구는 지하철 타고, 누구는 지하철 안타는데
안타는 사람은 아무런 혜택을 받지 못하는 거 아니에요?
뭐 반발 때문에 힘들 것 같지만, 저는 이게 진짜 평등하다고 생각해요.
진정한 경제민주화는
자본가는 책임을 지는 행동으로 소비자들을 어필하고
소비자는 소비라는 투표로 자본가에게 힘을 준다. 가 아닐까 생각해보네요.
소비가 곧 투표가 되는 것, 그것이 민주적인 경제가 아닐까….
요새 정교분리도 안되나 보네요. 아니, 생각해보면 예전에 신에게 도시 바친다 뭐다 이야기도 있었으니, 원래부터 그 모양이었나요?
요즘 통신사에게 티켓 제공해줘서 영화 몇 편을 봤어요. 그 감상을 써봐야 하나…
그럼 또 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