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경쟁, 역할분담
우리나라의 성장에 경쟁의 지분이 크다는 건 아마
부정하기 어려울 거라 생각합니다. 경쟁을 통해 엘리트를 선발하고, 그 엘리트들을 통해 국가를 성장시켰습니다. 대기업, 엘리트 예체능, 엘리트 학교 등. 경쟁을 통해 능력 있는 사람을 우선적으로 지원하여
국가를 성장시켰습니다. 하지만 그 때문에 크나큰 부작용이 나타났습니다. 경쟁에서 뒤쳐진 사람들은 절망하고 슬퍼하고 죽어나갔습니다. 자살을 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경쟁에 질린 사람들은 안정적인 공무원에 몰리기 시작했습니다. 우수한 사람들이 안정적인 공무원이나 의료계나 법조계에
몰리는 현상은 국가 발전에 바람직한 모습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이러한 현상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경쟁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경쟁 자체를 부정적으로 볼 수는 없습니다. 우리나라가 경쟁으로 성장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마찬가지로 경쟁 때문에 생긴 부작용도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러니 경쟁의 단점도 장점도 전부 받아드리고 그에
대한 대책을 세우는 것이 올바르다고 생각합니다.
언젠가 메기 효과에 대한 기사를 본 적이 있습니다. 메기 효과는 거짓말이라고 하더군요. 메기 효과를 정확히 아는 것은 아닙니다. 기억으로 아마 이랬을 겁니다. ‘먼 곳에서 잡은 물고기를 오랫동안 살리기 위해서는
천적을 곁에 둬 긴장하게 만들어야 한다.’ 천적으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느라 오랫동안 살 수 있다라는 거지요. 그런데 이게 거짓이라고 합니다. 오히려 빨리 죽는다고 하더군요. 그 이야기를 듣고 나니, 경쟁의 장단점이 보였습니다. 경쟁은 높은 생산성과 낮은 생존력을 보장하는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경쟁 – 높은 생산성, 낮은 생존력
안정 – 낮은 생산성, 높은 생존력
대강 이런 느낌이라고 생각되었습니다. 경쟁을 적극적으로 사용한 회사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경쟁력을 갖춘 것만 봐도 알 수 있지요. 이 회사는 강도 높은 경쟁으로 많은 사원들이 괴로움에 시달리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살인적인 업무와 쉬지 않는 자기개발을 하게 만든다고 하더군요. 분명 경쟁은 높은 생산성으로 집단을 성장시키는 초석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안정적이지 못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중년이 될 때쯤 힘들어서 퇴직한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자세히는 모릅니다.) 생존력은 보장할 수 없는 방식이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방식은 단기적인 높은 성장과 함께, 경쟁에서 뒤쳐진 사람들을 책임지지 않을 때나 가능한 방식이라 생각됩니다. 모든 국민을 책임져야 하는 국가가 성장을 위해 쓰기엔 위험한 방식이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렇다고 경쟁을 배제하면 생산성이 떨어지게 됩니다. 그러니 둘 다 사용해야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보통 경쟁의 시작은 학업입니다. 학교에서 성적으로 경쟁을 하고 있지요. 그런데 우리나라의 교육은 보통 우수한 중등교육, 저조한 고등교육이라고 합니다. 중학교나 고등학교의 학업성취도는 매우 뛰어나지만, 대학교나 대학원에 가면 떨어진다고 합니다. 어째서 일까요? 많은 사람들은 주입식 교육과 과도한 경쟁이 부른
참사라고들 합니다. 그리고 어려운 입학과 쉬운 졸업 때문이라고도 합니다. 그건 아마 과도한 경쟁으로 어렵게 입학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쉽게 졸업해서 그런 걸지도 모릅니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자유학기 등을 도입해 경쟁을
줄이고 창의성을 높이는 방안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회 직업의 폭이 결정되는 대학의 입시제도가 그대로인 이상 경쟁은 불가피하게 됩니다. 경쟁을 줄이기 위해 도입한 수시제도는 입시컨설팅 업체의 배만 불려주고 있는 상황 속에
정시의 중요성이 나날이 증가하고 있어 경쟁은 점점 더 필수불가결하게 되고 있습니다. 경쟁이 없을 수가 없다면, 창의성이 보장되는 경쟁을 추구해야 된다고 봅니다. 그것이 가능 하려면 입시제도가 바뀌어야 된다고 보고
있습니다.
저는 그래서 모든 학교에서 최저수능점수제를 도입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솔직히 문제 하나 둘로 능력이 크게 차이 날 리가 없습니다. 컨디션이나 문제만 조금 바뀌어도 매번 결과는 달라질 겁니다. 어쩌면 하나 둘 못 푼 학생이 좀 더 우수한 창의력으로
고등교육에서 두각을 드러낼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수업에 따라갈 수 있는 일정이상의 성적을 낸 학생들은 전부 만점처리를 해야 됩니다. 같은 만점에서의 경쟁은 역할에 맞게 진행되어야 됩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학, 교육, 정보 등 각 전공에 맞는 시험을 각 대학 또는 전국 공통으로 준비하는 것이 맞습니다. 수능 성적으로 관심도 없는 전공에 지원하는 것은
정말 그 전공을 공부하고 싶었던 학생에게 민폐가 되는 일입니다. 그런 불합리한 관행은 막아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한마디로 수능의 자격증화를 주장합니다. 경쟁은 전공에서 해야 된다고 주장합니다. 그래야 창의성이 필요한 학문은 창의성을 검증해볼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겠죠. 그래야, 고등교육의 학업성취도가 높아질 거라 생각합니다. 전공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그 전공을 공부해야지
직업훈련소가 아니게 되어 전공의 학업성취도가 높겠죠.
변별력, 입시비리, 공정성, 이중노력 등 여러 가지 해결해야 할 것이 산더미겠지만, 지향성이라고 해야 할까, 적성에 맞는 사람이 해당 역할을 맡도록 하는 것이
국가적으로 보았을 때, 효율을 극대화할 수 있는 방안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 사람이 원한다는 가정하에.
여기서 이중노력은 학교 수업만 제대로 받아도 수능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는 상황이 되면 해결될 거라 생각합니다. 굳이 학원에 가서 새롭게 배우지 않아도 충분히 대학 강의에 쫓아갈 수 있는 학력을 갖출 수 있게 만들어야
된다는 겁니다. 여기서부터 교사경쟁에 대한 의견이 시작되겠습니다. 앞서 경쟁과 안정을 둘 다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했죠. 그래야 경쟁력과 생존력을 갖출 수 있다고요. 그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우리나라 교사는 공무원으로 알고 있습니다. 과도한 경쟁과 불평등한 가치관으로 나타난 인력 천시로
공무원 중 하나인 교사를 인기직업으로 만들게 되었습니다. 정말 사람을 교육하고 싶어서 교사가 되었다기 보다 그냥 안정적이고 유망하고 사회에서 인정받을 수 있기 때문에 교사가 된 사람들이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교사의 근본 자체가 안정의 상징인 공무원이기 때문에
교사 또한 생산성이 낮아지고 생존력이 높아지게 되었습니다. 교사의 낮은 생산성은 공교육의 교육품질저하에 큰 영향을 미쳤고, 이는 사교육의 활성화를 부르게 되어 빈부에 따른 교육기회차등이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사교육이 활발한 것은 첫째는 경쟁이, 둘째는 공교육의 교육품질저하가 불렀다고 봅니다. 도대체가, 학교에서 잠을 자고 학원에서 공부한다는 이야기나, 학교 선생이 학원 강사의 동영상을 틀어주고 잔다는
이야기나, 어처구니 없는 것은 똑같습니다.
사교육을 막기 위해서는 학생의 경쟁을 없애거나 교사의
경쟁을 활성화시켜 공교육의 교육품질을 향상시켜야 합니다. 그런데 학생의 경쟁을 없앨 수는 없습니다. 어떤 수를 쓰더라도, 유망직종이 있고, 정원이 한정되어있는 이상, 경쟁은 발생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자연스럽게 교사의 경쟁이 활성화 되야 된다는 결론이 나오게 됩니다.
그런데 교사가 경쟁하게 되면 학교의 입시학원화를
우려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경쟁, 경쟁, 경쟁하다 보면 지금보다 학생들이 더 힘들 수도 있겠지요. 그리고 안정적인 일을 하기 위해 교사를 지원한 사람들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니 역할을 분담해야 합니다. 이것이 앞서 설명한 경쟁과 안정을 둘 다 사용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저는 수업교사와 담임교사를 분리하여 경쟁과 안정을
둘 다 추구해야 된다고 주장하겠습니다.
경쟁을 맡은 수업교사는 매년 교사전용시험을 보며
경쟁력을 갖추는 한편, 높은 성과금도 받게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안정을 맡은 담임교사는 학생들의 몸과 마음의 건강에
귀를 기울이고, 학생과 학부모의 상담과 함께 안정성을 갖추는 한편, 상대적으로 낮은 급여를 받게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역할분담을 하는 거예요. 수업교사는 혼내는 역할을 맡고, 담임교사는 감싸는 역할을 맡습니다. 혼내는 역할이므로 다소 힘들 수도 있는데, 학생과 부모를 상대하는 것은 담임교사의 역할이므로, 어쩌면 어려운 것은 담임교사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경쟁방식은 년에 한 번 있는 교사시험으로 객관적인
지식 수준을 평가하고, 학생과 학부모의 만족도를 통해 교육 수준을 평가하여 경쟁력을 갖추게 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근데, 사실 자기가 가르치는 학문으로 시험 보는데 경쟁이 그렇게 어려울까, 그런 생각이 들어요. 자기가 가르치는 것도 제대로 풀지 못하면 어떻게
가르치고 있던 건지 궁금합니다.
학생과 부모를 상대하는 것보다 공부하고 가르치는
것이 적성에 맞는 교사는 수업교사로 경쟁을 맡게 하고, 경쟁보다는 안정적으로 학생과 부모를 상대하는 것이 적성에 맞는 교사는 담임교사로 안정을 맡게 하면 좋을 거라 생각합니다. 뭐 요새 보니까 교사들이 학부모들에게 전화로 시달려서
전용폰을 만들려고 하다가 학부모의 반대로 실패했다고 하더군요. 교사 한 명에게 수업과 담임을 둘 다 맡게 하는 건 어쩌면, 과도한 업무를 짊어지게 하여 공교육의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하나의 원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담임교사가 동아리도 맡고, 대외활동도 지원하고 다양한 업무를 하게 만들면 교사경쟁체제가 도입되더라도, 학교본연의 역할을 해낼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좀 더 세부적인 사항 (지역평준화, 학생과 교사의 선택, 시기, 급여, 반응, 학부모, 제도, 연계, 다양화 등)은 다음에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자사고 논란이나, 사교육활성화 논란이나, 빈부격차에 따른 교육기회 차등 등은 대체로 공교육의
경쟁력 부족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를 높이기 위해서는 수업교사와 담임교사의 역할분담을 통해 수업교사를 경쟁하게 만들어 높은 생산성과 낮은 생존력을 갖추도록 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학생을 경쟁시켜 높은 학업성취도를 이루고 싶으면
교사도 경쟁해서 교육품질을 향상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더 이상 학생자질로 경쟁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교육기관끼리 경쟁할거면 교육품질로 경쟁해야 합니다. 인적자원이 중요한 나라인 만큼 교육에 대한 투자를 소홀히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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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개인적으로 약한 인간을 강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인간교육론을 주장하고 있지만, 그곳에서도 정원이 한정되어 있는 이상, 경쟁이 없을 수가 없습니다. 단지 과도한 경쟁을 지양하고 올바른 경쟁을 추구하며 역할에 맡는 직종을 얻을 수 있도록 지원해야 된다고 주장할 뿐입니다. 지금 당장 인간교육론을 완성하지 못하여 지금 생각하는
것이 나중에는 좀 달라질 수 있으나, 기본적인 틀은 아마 비슷할 거라 생각합니다.
저번에 어떤 학교에서 비리가 발생하자, 교사들이 학생들에게 무릎 꿇고 사과했습니다. 그 모습을 기사에서 봤죠. 세상 참 많이 변했구나 생각하며 댓글을 봤는데, 댓글은 아직도 옛날에 머물러 있더군요. 평등이 없어요. 교사의 교권을 위해서 잘못했어도(아마도), 사과해선 안 된다는 이야기가 많은 지지를 받고 있었습니다. 평등하다면, 교사의 교권은 스스로 쟁취해야 합니다. 교사도 노력해야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존중 받을 수 있는 상황이
교사의 부도덕과 무책임함을 불렀다고 생각합니다. 이번에 사과한 교사들이 어떤 사람인지는 모릅니다. 하지만 사과 했다는 것 자체는 칭찬할만하다고 봅니다. 잘했어요.
최저임금은 말 그대로 최저임금. 차등적용은 이상한 말 같네요.
소상공인이 힘든 이유가… 다른 곳에도 있었습니다.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이동하는 시대의 흐름이 오프라인
소상공인을 힘들게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오프라인 유통 강자들도 힘들어서 온라인으로 전환하는 시점에 오프라인 소상공인이 힘들지 않기는 어렵겠지요. 이들도 어쩌면 시대의 변화가 만든 산업의 이재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부디 평화롭기를 바랍니다.
그럼 또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