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그의 초식화
일요일 저녁, 그런대로 선선한 날이네요. 조만간 가을이 오겠지요. 아, 이번 글은 예전 개그프로그램들이 하락세에 접어들기 시작했을 무렵 생각했던 주제예요. 좀 오래되었죠. 그래서 요즘에는 어떤지 모르겠어요. 그래도 써볼게요.
개그란
우선 개그가 뭔지 알아보고 시작할게요. 개그는 뭘까요? 사전용어로는 연극, 영화, 텔레비전 프로그램 따위에서 관객을 웃게 하기 위하여 하는 대사나 몸짓이라고 해요. 사람을 웃게 만드는 것이 개그라는 거죠. 그런데 사람들은 왜 웃는 걸까요? 왜 개그맨들의 대사나 몸짓에 웃는 걸까요? 개그의 본질은 거기서부터 시작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많은 개그맨들은 사람들을 ‘어떻게’ 웃게 만들지는 안다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개그맨을 할 수 있는 거겠죠. 그런데 사람들이 ‘왜’ 웃게 되는지는 모르는 것 같아요. 만약 왜 웃게 되는지를 알고 있었다면 개그프로그램들의 하락세는 없었을 거라 생각하니까요.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웃게 되는 걸까요?
웃는 이유
결론부터 내릴게요. 개그는 인간의 악의(나쁜 마음)가 부르는 웃음입니다.
조소, 조롱, 경멸, 천시, 멸시, 놀림, 깔봄, 증오, 혐오, 분노, 미움 등.
인간에게 내제된 악의가 충족되면서 기분이 좋아짐을
느끼는 것이 보통 개그에서의 웃음입니다. 조금 과격하다 생각할지도 몰라요. 그리고 선의가 부르는 웃음도 있으니까 헷갈릴 수도 있어요. 더구나 인간의 감정이 분명하게 경계가 그어져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구분하게 어려울지도 모르겠어요. 그러나 엄연히 악의도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감정들입니다. 보통 개그는 악의의 충족으로 웃게 되는 거예요. 한번 가벼운 악의로 접근해보죠.
‘하하, 바보 같아.’
보통 웃긴 장면을 보면 이런 감상을 느끼지 않나요? 재미있는 홈비디오를 보면 실수를 보고 웃게 되죠. 개 뺨 때리다가 개한테 뺨 맞는 영상 같은 걸 보면
웃게 돼요. 바보 같으니까요. 이런 것이 보통 인간의 악의가 부르는 웃음이라는
겁니다. 멍청해 보이고 바보 같이 보이는 걸 즐기는 거죠. 실제로 멍청한지, 바보인지는 중요한 것이 아니에요. 개그맨들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보며 바보 같다며
웃지만, 그들이 실제로 바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드물겠지요. 인간의 악의만 충족시켜 웃게 만들기만 하면 됩니다.
이런 것들 중에 널리 알려진 것이 바로 슬랩스틱
코미디라고 생각해요. 우스꽝스러운 행동을 보며 웃는 거죠. 근데 이건 잘 몰라서 ‘톰과 제리’를 예시로 들어볼게요.
톰과 제리
톰과 제리는 ‘멍청하고 불쌍한 고양이’ 톰이 ‘영리하고 교활한 쥐’ 제리를 잡으려다가 골탕 먹는 것이 주 내용이에요. 톰의 바보 같은 모습을 보며 깔깔 웃으면 되는 거죠. 이 바보 멍청이! 가끔은 제리가 골탕 먹기도 하고, 그 개(이름 모름)가 골탕 먹기도 하더군요. 아무튼 등장하는 동물들의 바보 같은 모습을 보며
즐기면 돼요. 워낙 불쌍하게 골탕 먹으니까, 톰을 가엾게 여기는 사람들도 있었지요. 그래서 제리가 골탕 먹거나 둘이 힘을 합칠 때가
보기 좋았다는 사람들도 있었어요. (인터넷 댓글 반응 참고)
이렇게 개그는 인간의 악의를 충족시켜 웃게 만드는
거죠. 반면 감동은 인간의 선의를 충족시켜 웃게 만드는
거고요. 용어를 새로 정립할 필요가 있어 보이긴 하는데, 어쨌든 일단 이런 구분이라고 생각해요. 개그가 인간의 악의를 충족시켜 웃게 만들다 보니
이런 문제들도 있었어요. 인종차별. 톰과 제리에 인종차별 요소가 있었다고 하더군요. 흑인이나 아메리카 원주민을 조롱하거나 했죠. 예전에는 이런 게 잘못되었다는 인식이 없었으니까, 다른 인종을 비웃으며 악의를 충족시켰던 것 같아요. 이제는 문제의식이 발달하여 수정하거나 삭제했다고
해요. 아무래도 악의의 충족이다 보니 이런 것은 주의할
필요가 있지요. 그런데 그게 과해졌어요.
초식화
본론으로 들어가죠. 지금 개그프로그램들의 하향세는, 개그의 초식화가 부른 거라 생각합니다. 이것도 누군가 상처 입을 수 있으니까 안돼, 저것도 누군가 상처 입을 수 있으니까 안돼, 상처 입지 않는 웃음만을 추구하기 시작했어요. 인간의 선의를 충족시켜 웃게 만드는 감동에만 집중하게
된 거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망하죠. 사람들은 악의를 충족시켜 웃고 싶어했는데!
알기 쉬운 비유를 해볼게요. 지금의 개그프로그램들은, 육식 전문점에서, 요리사 개인 신념 때문에, 육식을 바라는 손님들에게 채식을 제공한 것과 다름이
없어요. 그리고 사람들이 왜 고기가 없느냐고 따지면, ‘그게 올바른 거니까요.’ ‘여러분들도 채식을 하세요. 몸에 좋아요.’ 이러는데, 고기 찾는 사람들이 그 음식점을 가겠습니까? 절대 안 가죠. 망하는 건 당연한 거예요. 채식주의자들은 다소 갈지도 모르겠지만, 채식전문점은 또 따로 있으니까요.
지금의 개그프로그램들은 그냥 이런 거 하고 있는
거예요. 선의의 웃음(감동)만 추구하다 보니까, 악의의 웃음(개그)를 바라는 사람들이 외면했던 거죠. 이걸 몰랐던 것은 아마 선의의 웃음과 악의의 웃음을 구분하지 않았으니까 그런 게 아닐까 생각해보네요.
인간고찰
선의의 웃음만 옳다고 여기는 건, 인간고찰이 조금 부족한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되네요. 사람은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아요. 그냥 동물일 뿐이죠. 인간이 구분 지은 감정들도 사실, 분명하게 알 수 있는 것이 아니에요. 뭔가를 느끼고 분석해서 판단해서 결론을 내리는 거죠. ‘아, 이건 이런 감정 같아.’ 라고요. 이러니까 공포와 사랑도 구분 못하는 거죠. 자아의 근원은 세포니까, 매번 달라지는 세포들의 여론으로 나타나는 감정들이 매번 같을 수가 없어요. 그리고 그걸 분명하게 알 수도 없고요. 양면적이고 이중적이고 모순적인 것은 다, 각기 세포들의 자기주장 때문인 겁니다. 이건 여기까지 할게요. 나중에 자아를 정리할 때 더 작성해보죠.
어쨌든 인간은 선의도 있고, 악의도 있기 때문에, 악의의 웃음도 충족할 필요가 있어요. 비웃고 조롱하고 깔보면서 기분이 좋아지는 걸 충족시킬
필요가 있다는 거예요. 그런데 그걸 일반적인 인간관계에서 충족시키려고 하면 파탄이 나겠죠. 그러니까 대신해서 비웃음 당하고 조롱 당하고 깔보일 대상이 필요해요. 그게 바로 개그맨, 아니 사람들을 웃게 만들 수 있는 수많은 직업들이
전부 포함되겠죠. 예능프로그램이나, 개인방송이나 뭐 그런 거요.
개그의 역할
결론을 내리죠.
육식을 바라는 사람에게 육식을 제공하세요. 개그가 육식을 되찾게 되면, 개그프로그램들이 다시 상향세가 될 거라 생각합니다. ‘어떻게’를 모르지는 않을 거라 생각해요. 우리나라 개그맨들이 사람들 웃기는 방법을 모르는
건 아니라 생각합니다. 단지 그 방법이 옳다고 여기지 않으니까 안 했던 거겠죠. 그런데 그 방법이 옳은 게 맞아요. 인간의 악의를 충족시켜 인간관계에 불화를 만들지 않도록 하는 것이 바로 개그의 역할이겠죠. 그러니 개그는 위대해요. 평화를 부르니까요.
단지, 선을 지킬 필요는 있겠죠. 지나치게 조롱하는 것은 문제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지나치게 주의하는 것도 문제라고 생각해요. 개그가 인간의 악의를 충족시키지 않으면 도대체 어디서
충족해야 하죠? 개그가 인간의 악의를 충족시켜주지 않으면 사회에서
그걸 충족할지도 모릅니다. 일정 선을 지켜 악의가 부르는 웃음을 제어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해요. 그래야 사회에 불화가 적어질 겁니다. 악의가 충족되었으니까요.
그러니 분명하게 역할을 인식해야 해요. 아, 이건 사람들의 악의를 충족시키기 위해 바보처럼 군다거나, 부끄러운 행동을 하는 거구나. 라고 인식을 해야겠죠. 그걸 보고 실제로 깔보거나 비웃으면 안 된다는 거예요. 그러는 사람이 많은 건 아닌데, 개인방송에서는 종종 있는 것 같아요. 아무래도 일반 방송보단 거리감이 가까우니까요. 바보 취급 당하고 놀림 받더라도, 그건 어디까지나 방송의 캐릭터지, 실제가 아님을 인식해야 될 것입니다.
또한 개그를 하는 사람들도 역할을 인식해야 해요. 부끄럽고 수치스럽다고 느껴 바보 같은 짓을 하지
않을 거라면, 개그를 할 자격이 없는 거죠. 사람들을 웃게 만들고 싶은 사람들이라면,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세요. 유쾌와 불쾌에서 줄타기를 하는 것이 바로 개그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저를 웃게 만드는 사람들을 몹시 좋아해요. 또 보게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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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와 민족주의의 갈등. 홍콩과 중국은 과연 어떻게 될까요? 참 복잡한 문제죠.
배운 체제인 홍콩의 민주주의냐
같은 민족인 중국의 공산독재냐
중국의 민주화냐, 중국의 분열이냐, 선택할 때가 온 것 같네요. 전세계에 민주주의가 찾아오기를!
지난날 광복절이었죠. 기쁜 한편 반성해야 될 날이기도 합니다. 두 가지 무력함. 국민에게 힘이 없어 매국노의 매국행위를 저지하지
못했던 것, 우리 힘만으로 광복하지 못한 것. 힘이 필요한 것 같네요. 그러니 불필요한 정치분쟁으로 국력을 낭비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필요한 것만 했으면 좋겠어요.
덧없는 인생. 무력함을 허망하게 느낍니다. 내일도 쓸까 말까 모르겠네요. 비나 더 왔으면 좋겠는데
그럼 또.
예전같으면 하하호호 넘어갈 일도, 지금은 사람 놀린다면서 욕먹고 매장당하는 분위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