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성 세대의 착각, 남성우월주의
오늘은 젊은 세대의 성별 갈등에 대해 알기 쉽게
설명하고자 합니다. 만약 관심이 있다면 읽어주세요. 지금 상황이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지 알게 될 거라 생각합니다. 아마 알게 되면 헛웃음이 나올 거예요. 정말 황당하거든요. 이게 원인이었다고?
최근 <아이가 말을 듣지 않아서 목을 졸랐다>라고 말했다가 나중에 <유전병의 고통을 끊어주려고 죽였다>로 말을 바꾼 사람이 징역 25년을 선고 받은 사건이 있었습니다. 슬프고 화가 날만한 사건이었죠. 그런데 관련기사 댓글을 보고 굉장히 씁쓸했습니다. 범죄자를 여성이란 이유로 두둔하는 사람이 있더군요. 되려 기사에는 없는 남성을 비난하고 있었습니다. 더 씁쓸한 것은 이러한 현상은 어디서나 볼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것입니다. 모든 사건에 성별이 붙으면 극단적인 진영논리로 반대진영을
공격하고 있습니다. 정말 자연스러운 일이라 생각하고 행동했던 것도 진영논리에 휘말리면 대역죄인이 되어 공격받고 있습니다. 여성주의 광풍이 불고 있습니다.
요즘 유행하는 펭수의 가족사진 보고 분노하는 모습을
보세요. 부모자식이라는 일반적인 가정을 보고 성별 역할 고정이라며
비난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어쩌라는 건지. 다수를 예시로 드는 게 일반적인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성별이 섞이니까 이런 결과가 나와요. 여기에는 논리가 없습니다. 감정만이 존재하죠. 아마 이건 어디서 많이 본 모습일 겁니다. 좌파와 우파. 이미 성별은 정치논리에 포함되어버렸습니다. 이런 현실이 못마땅한 사람들은 분개하며 화를 내지만 도대체 어떻게 해결하지 할지 감도 오지 않았을 겁니다. 그저 무력할 뿐이었죠. 그저 정치적인 선동만 당하며 화풀이만 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슬픈 일입니다. 저는 더 이상 이런 비이성적이고 비논리적이고 불합리한
진영논리가 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니 무엇이 원인이고 어떻게 해야 해결할 수 있는지 써보겠습니다. 부디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여성주의 광풍은 분명 과거 남성우월주의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과거엔 여성이 불평등했어요. 권리가 부족했습니다. 심지어 사람이 아닌 사물로 취급 받던 시대도 있었습니다. 그 여파로 남아선호사상이 나타나 여아낙태가 많았던
시기도 있었습니다. 여성은 권리가 부족했던 것이 맞습니다. 이를 부정하면 안됩니다. 그런데 그 대신 상대적으로 책임도 부족했습니다. 결혼을 할 때 남성이 집을 마련한다거나 가족을 부양한다거나 하는 관습이 아직도 남아있지요. 때론 무책임한 남성이 여성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일이 종종 발생하여 사회문제로 이어지곤
했습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여성은 부족한 권리와 부족한 책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권리가 없었으니까 책임도 없었던 거죠. 반면 남성은 과도한 권리와 과도한 책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그 당시 매우 자연스러웠습니다. 그리고 그랬기 때문에 남성과 여성은 둘 다 남성우월주의의 피해자였던 겁니다. 여성은 부족한 권리로, 남성은 과도한 책임으로 불평등했습니다. 단지 과도한 권리를 가진 쪽이 힘을 가졌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여성이 더 불평등했을 뿐입니다.
이를 진영논리로 단순하게 바라보면 남성이 과도한
책임으로 불평등했던 것은 자초한 일이긴 합니다. 여성이 나서서 부족한 책임을 원한 것은 아니었으니까요. 그렇지만 책임의 근원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살아남기 위해 취했던 동물 본연의 성별 역할까지 가게 됩니다. 인간은 살아남기 위해서 남성의 역할과 여성이 역할이
뚜렷하게 구분되었습니다. 남성은 사냥, 여성의 육아. 남성우월주의는 생존경쟁을 위한 성별 역할분담으로 시작되었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 누구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겠습니까? 원시인? 따라서 생존을 위한 성별 역할분담이 필요하지 않는
지금이라도 책임을 물으며 감정싸움을 하기보다는 지성을 갖춘 인간답게 평등한 세상을 위해 더 나은 방법을 찾는 것이 건설적일 것입니다. 남성우월주의. 현재 발생하는 성별 갈등의 근원은 여기서부터 시작됩니다
혹자는 남성이 역차별 받는 이유를 이렇게 해석하기도
합니다. 부족한 권리로 희생되었던 여성에 대한 기성 세대의
부채의식 때문이라고 말이죠. 일부는 맞을 겁니다. 미안한 감정이 없을 리가 없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근본적인 이유. 그것은 남성우월주의 때문입니다. 이상한 일이죠. <여성은 남성우월주의 때문에 희생되었다.> 부채의식을 가진 기성 세대가 이걸 모를 리가 없습니다. 때문에 그 사상을 버렸으리라 추측하게 됩니다. 그런데도 남성우월주의 때문이라고? 하지만 버린 게 아닙니다. 버리지 않습니다. 버리지 못했습니다. 환경에 의해 구축된 사상은 쉽게 버러지는 것이 아닙니다. 밥 먹듯이, 공기같이 자연스러운 사상은 바꾸지 않는 한 변치
않은 채 계속 갑니다. <사람은 고쳐 쓰는 것이 아니다.> 이것이 보통 맞는 말인 이유는, 환경으로 구축된 사상은 바꾸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물론 일반화할 수는 없습니다. 바뀌는 사람들도 있으니까 말입니다.
기성 세대는 남성우월주의를 버리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표면적으로 드러난 여성의 부족한 권리만 올리는데
집중하게 되었습니다. 최근 재미있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인터넷 글입니다. 어떤 양성평등교육 강사가 마지막에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양성평등이면 남자도 평등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라고 잘못 알고 있으신 분들도 계신데 떨어진 여성의 지위를 올려주는 게 양성평등입니다.> 이것이 바로 기성 세대가 남성우월주의에서 빠져 나오지
못했다는 근거 중 하나입니다. 여성의 부족한 권리만 생각하지 부족한 책임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못합니다. 떨어진 여성의 지위를 올려준다면, 떨어진 여성의 책임도 올려줘야 타당합니다. 그렇지만 남성이 과도한 책임을 짊어지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긴 양성평등교육 강사는 그런걸
떠올리는 것 조차 못했던 겁니다. 양성평등교육 강사조차 남성우월주의 사상에 빠져있으니까! 생각해보세요. 여성주의자들이 남성을 흉내 내는 까닭이 무엇이겠습니까? 옷차림을 남성처럼, 머리모양을 남성처럼, 태도를 남성처럼! 여성의 권리를 위해 남성을 흉내 내는 까닭이 무엇이겠습니까! 여성주의자조차 남성우월주의 사상에 빠져있기 때문인
겁니다. 남성이 우월하다고 생각하니까 남성을 흉내 내고 있는
거란 말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사상을 의심하지 못했습니다. 과거 여성이 부족한 권리를 당연시했던 것처럼, 남성이 과도한 책임을 짊어지는 것이 당연하다. 남성만 군복무를 하는 것이 당연하다. 남성이 집을 해오는 것이 당연하다. 남성이 야간근무를 서는 것이 당연하다. 남성이 격오지에 파견 나가는 것이 당연하다. 남성이- 남성이- 남성이-. 기성 세대는 남성우월주의에 빠져 남성은 여성보다
더 많은 책임감을 가진 존재라고 생각했던 겁니다. 그렇지만 그럴 리가 없지 않습니까 남성은 여성보다 우월하지 않습니다. 남성은 여성보다 더 많은 책임감을 지니지 않았습니다! 그런 생각 자체가 남성이 여성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한다는
겁니다! 하하 정말 재미있죠. 그 동안 남성우월주의로 여성들에게 강요했던 성별
역할을, 이제는 남성들에게 강요하고 있는 셈입니다.
기성 세대는 착각하고 있습니다. <여성들의 권리를 올려주자. 그러면 남성우월주의에서 벗어나는 거겠지.> 틀렸습니다. 아직도 대다수는 남성우월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불평등하고, 그러니까 성별 갈등이 일어나고, 그러니까 비이성적이고 비논리적이며 불합리한 진영논리가
나타나게 된 것입니다. 벗어나질 못했으니까 일방적인 여성우대정책을 해도 남성들이 받아드릴 거라 생각했던 겁니다. 여성주택, 여성주차장, 여성지하철, 여성보호법, 여성가산점 등 기성 세대에게 남성이 과도한 책임을 지는 것이 당연했으니까 아무렇지도 않게 추진하는 겁니다. 그리고 그래서 반발하는 젊은 남성을 이해 못했어요. <왜 이런 당연한 거에 반발하는 거지? 남성이 과도한 책임을 지는 게 당연하잖아?> 이 모든 것이 남성우월주의가 만든 것입니다. 그리고 그걸 알아차린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홍콩 민주화 운동을 탄압했던 중국정부에 찬성하는
중국인들이 자신의 사상을 의심하지 못하는 것처럼, 내부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한국 때리기를 했던 일본정부에 찬성하는 일본인들이 자신의 사상을 의심하지 못하는 것처럼, 남성우월주의에 빠진 기성 세대는 자신의 사상을 의심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젊은 세대도 의심하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젊은 세대도 간접적으로 남성우월주의에 영향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또한 남성의 경우엔 스스로가 우월하지 않다고 주장해야 했기 때문에 더더욱 의심할 수 없었습니다.
일부 극단적인 여성주의자들이 여성우월주의를 주장하며
여성의 권리신장을 당연시하고 있을 때, 그에 반발하여 남성들은 남성우월주의를 주장했습니다. <남성이 여성보다 학교 성적이 좋다>는 식으로 말이죠. (이런 식의 댓글은 성별 갈등 관련기사에 흔히 볼 수 있습니다.) 물론 논리는 없습니다. 일반화할 수는 없으니까요. 반발심리에 감정적으로 대처한 것뿐이죠. 그런데 결국 그런 남성우월주의적 주장 때문에 <남성이 우월하니까 책임감이 더 있다.>라는 역차별을 용인하는 꼴이 되어버렸던 겁니다. 이 얼마나 웃기는 일입니까? 정말 어처구니 없게도 남성이 역차별에서 헤어나오기
위해서는 스스로가 우월하지 않다고 주장해야 합니다. <우리는 과도한 권리 때문에 과도한 책임을 짊어졌던 기성 남성보다 책임감이 부족하다! 우리는 기성 남성보다 무능하다!>고 주장해야 역차별이 사라지는 거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과도한 책임을 전가하는 걸 당연시하지
말라달라고 요청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동등한 책임이 당연한 건데, 그것이야말로 정상인 건데, 젊은 남성은 기성 남성의 과도한 책임 때문에 스스로의 무능을 주장해야 역차별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던 겁니다! 이 현실이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지 이제는 아셨으면
좋겠습니다.
자신의 약함,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도움을 청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걸까요? <내가…(젊은 남성) 기성 남성보다 책임감이 많지 않아. 나는 너보다(여성) 우월하지 않아. 나도 너와 같아. 그러니까 동등한 책임으로 하자. 병역의무도 같이 지고, 집도 같이 부담하고, 야간 근무도 같이 서고, 격오지도 평등하게 파견 가고 하자. 부탁이야. 도와줘.> 남성우월주의에 영향을 받은 것이 분명한 젊은 남성이 길들여진 허세를 버리고 자신의 약함을 인정하고
여성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 것인지. 아마 아실 거라 생각합니다. 이러니까 남성우월주의가 문제라고 생각하기도 어렵죠. 그토록 역차별을 싫어하면서도 대처할 수 없었던 것은 본질적인 해결방법이 너무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여성도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남성우월주의에 영향을 받은 것이 분명한 젊은 여성이
일방적인 보호를 버리고 자신의 부족한 책임감을 인정하고 남성의 요청을 받아드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아마 아실 거라 생각합니다. 정당한 손해를 받아드리고 부당한 이익을 포기하는
건 어려운 일이니까요.
그래도 해야 합니다. 그래도 버려야 합니다! 남성우월주의. 이것이 우리 모두의 성별 갈등을 만들었습니다. 이것을 제대로 아는 것이야말로 우리 모두의 성별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던 겁니다! 제대로 알아서! 여성의 권리와 여성의 책임을 전부 정상화했어야 했습니다! 그것이야말로 성별 평등! 환경에 의해 길들여진 자신의 남성우월주의 사상을 의심하고 새로운 사상을 생각하고 받아드리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평등을 위한 길이었던 겁니다!
남성은 여성보다 우월하지 않습니다. 맞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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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좌파와 우파, 진보와 보수로 나누는 겁니까? 왜 민족주의자(또는 친북)와 사회주의자와 민주주의자를 한 곳에 묶고, 왜 반민족주의자(또는 친일)와 자본주의자와 반공주의자를 한 곳에 묶는 겁니까. 그러니까 서로 무의미한 싸움을 하고 있는 것 아닙니까? 민주주의자는 북한에 관심이 없습니다. 반공주의자는 일본에 관심이 없습니다.
이 둘은 정말 그저 진영논리 때문에 싸우고 있는
겁니다. 사실 싸울 이유가 없습니다. 민주주의자가 북한의 독재를 좋아할 리가 없지 않습니까? 민주주의자 가운데 진영논리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찬성하는 사람들도 많을 겁니다. 반공주의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본의 침략을 좋아할 리가 없지 않습니까? 반공주의자 가운데 진영논리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찬성하는 사람들도 많을 겁니다.
정말 무의미한 싸움입니다. 정말로. 제발 이런 진영논리 그만 보고 싶습니다. 좌파 우파 꺼내는 정치인은 정말 뽑고 싶지 않습니다. 보수고 진보고 자칭하는 사람들 가운데 한국 보수와
진보가 어떤 존재인지 말할 수 있는지조차 궁금합니다. 정치이념자체가 엉망진창이에요. 진짜. 일반적으로 보수는 현상유지 또는 점진적 진보, 그리고 진보는 변혁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말이죠. 자본주의가 보수고 사회주의가 진보래요. 우습죠? 왜? 사회주의가 뒤에 나와서? 아니 자본주의와 사회주의가 나온 지가 언젠데, 아직도 진보가 사회주의입니까? 이게 말이 되는 소리예요? 이제 사회주의도 보수예요. 보수! 변하질 않아! 진짜 진보라면 완전자동화 시대를 위해 그에 맞는 대책을 세우고 정책을 결정했어야 하지 않나요? 이제는 공유경제하에 직접 노동이 적어지고 간섭 노동이
다수를 이루게 될 텐데? 종국엔 노동이 사라질지도 모르는데? 그런데 아직도 사회주의예요. 아직도. 그냥 정치이념이 정체되어있어요. 과거에 머물러 있어요. 언제 변할 건가요? 그냥 진보소리 하지 말고 사회주의자라고 하세요. 그래야 무의미한 진영논리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겁니다. 이런 정치이념의 모호성 때문에 국민들이 정치에 관심을
가지지가 어려워요. 왜? 분명 변화를 바라는데, 진보가 변화를 하지 않아. 젊은 세대일수록 일반적으로 변화를 바라요. 근데 진보가 변하질 않아. 어쩌라는 겁니까? 이래서야 청년들이 정치에 관심을 가질 수 있겠습니까? 보수, 진보 전부 낡아빠진 정치이념입니다. 이제는 헤어나올 때가 되었습니다.
최근 창당한 신정당 이름이 재미있더군요. 새로운 보수. 도대체 한국 보수가 뭡니까? 무엇을 대신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까? 진영논리로 인해 양당에 지지할 것이 뻔한데! 도대체 어떤 사람들에게 지지를 받으려고 새로운 보수라는
당명을 정한 겁니까? 안타까워서 하는 말이에요! 안타까워서! 정말 안타깝습니다! 도대체 누구한테 지지 받으려고! 내가 답답해 내가! 그냥 제1야당으로 복귀하기 위해 보수라고 자칭한 겁니까? 정말 마음 같아서는 과학정당 만들어서 정치를 해보고
싶을 정돕니다. 과학정당 자칭하고! 무종교인들에게 감정적 지지를 받고! 그러면 지금 있는 진영논리를 파괴할 수 있을 텐데! 진짜 당명을 과학당으로 만들 거예요. 내가 한다면! 어차피 지금 당장 할 것도 없는데 진짜 하고 싶다!! 정말! 과학당 창당할 테니까 당원과 지지자들 모집하고! 후원 받습니다!
정말 슬프네요. 내 유년기 내적 갈등 중 하나가 바로 이거예요. 왜 어른들은 저리 싸우는 거지? 정말이지. 그 당시 갈등으로 일어난 내 슬픔은 도대체 누굴
원망해야 하나요? 내 슬픔과 절망의 원인에 정치인들은 얼만큼의 지분을
가지고 있는 것 같나요? 우리 국민들의 슬픔과 절망의 원인에 정치인들은 얼만큼의 지분을 가지고 있는 것 같나요! 그 지분이 얼만지 알겠나요? 그렇다면 부디, 새 정치 좀 해주세요. 말로만 새 붙이지 말고 이념 자체를 새롭게 해주세요. 정체성 자체를 새롭게 정립해주세요. 꼭 부탁합니다. 이제는 젊어지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