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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삼일과 회계 (0) 2022/04/15 AM 03:50

삼일과 회계

 

 

 

수는 만물의 객관화다. 수는 세거나 헤아린 양 또는 자연수, 정수, 분수, 유리수, 무리수, 실수, 허수 등의 총칭을 뜻한다. 만물은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을 뜻한다. 객관은 자기의 직접적 관심에서 벗어나 제삼자의 입장에서 사물을 보는 일을 뜻한다. 사전적 정의로 위의 문장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수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을 제삼자가 사물을 보는 것마냥 만든다. 제삼자가 봐도 같은 인식을 갖게 한다. 알기 쉬운 예시를 해보겠다. 여기 사과A가 있다. 주먹만한 크기에 새빨간 사과A는 싱싱했다. 다수의 사람은 이 사과를 보더라도 같은 사과를 떠올리기 지극히 어렵다. 사람들에게 봤던 사과A를 스케치북에 그려보라고 하면 각자 다 다른 사과가 나올 것이다. 관찰력이 좋은 사람이라도 똑같이 구현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인간은 만물을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만물은 인간의 주관으로는 인간의 인식을 정확히 공유할 수 없다. 그러나 수는 가능하다. 사과를 수로 객관화할 수 있다. 사과의 크기와 색과 품질을 수로 표현할 수 있다. 크기는 계산으로, 색은 색상코드로, 품질은 가격으로 수치화할 수 있다. 만물은 인간이 객관화하여 인간의 인식을 정확히 공유할 수 있다. 이렇게 수치화한 것을 컴퓨터로 실제 구현할 수 있다. 그게 바로 가상현실이다. 가상현실에서는 만물의 모든 걸 구현할 수 있다. 현실이 굉장히 복잡하기 때문에 현재는 세부적인 것까지 모두 구현할 수는 없지만 미래에는 가능할 것이다. 인간의 자아까지도 구현하여 가상의 세상에 자아를 이식하게 될 수도 있다. 만물을 수로 객관화할 수 있으니까 이런 것이 가능하다. 만물의 모든 것을 정확하게 가상현실로 구현할 수 있을 거란 예측으로 나타난 것이 바로 시뮬레이션 우주론이다. 현실과 같은 정교한 시뮬레이션을 만들 수 있다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이 시뮬레이션일지도 모른다. 이치만 따지면 충분히 가능한 가설이다. 물론 진리는 아니다. 아는 것도 적고 증명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진정 세상의 존재이유를 알기 위해서면 우주에 대한 정보를 최대한 많이 모아야 한다. 보다 많은 재료가 있어야 사유를 통해 추론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주진출과 우주진출에 필요한 인류의 진화와 우주선의 기술 발달이 필요할 것이다. 인류와 우주선이 영원에 가까울 정도로 존재할 수 있어야 영원에 가까울 정도로 커다란 우주에 진출할 수 있다. 이런 배경을 바탕으로 수학을 배우는 이유에 대해서도 알 수 있다. 수학은 만물을 객관화하기 위해 배운다. 만물을 객관화한 수학은 영원진리에 가까운 진리다. 세상의 존재이유는 모르기에 영원진리까지는 아니더라도 진리인 것은 분명하다. 수학으로 인류의 문명은 진리에 도달하기 시작했다. 언어가 그러하듯 문명은 인식을 공유할 수 있어야 체계적으로 발전할 수 있다. 물리학과 화학과 생물학과 지구과학이나 컴퓨터공학과 의학과 건축학 등 많은 학문이 만물을 객관화한 수학을 쓰는 것으로 진리에 도달하여 체계적으로 발전하고 있다. 수학은 현대 문명의 중심이자 기둥이다. 수가 만물의 객관화라면 교육방식도 달라져야 한다. 단순히 수학이란 학문에서 수식을 암기하고 이해하는 것에 그칠 것이 아니라 다른 학문과 연계하여 만물을 직접 수로 객관화하는 걸 해보면서 그에 필요한 수식을 배우는 것으로 바뀌어야 한다.  수학이란 만물을 객관화한 진리를 중심에 두고 다른 학문으로 퍼져나가야 한다. 그래야 수학의 필요성과 가치를 깨닫고 진지하게 배우게 된다. 이것이 바람직한 교육방법이라 생각한다. 수학과 과학은 영원진리에 가까운 진리다. 인문학도 진리를 바탕으로 해야 한다. 사상에 있어 수학과 과학은 진리를 가리키는 나침반이다. 인간의 감각과 감정과 욕구에 영향을 크게 끼치는 관념을 만드는 인류의 안내자인 사상가는 인간에게 길을 안내할 때 그런 나침반을 참고하며 안내해야 한다. 그래야 바른 길로 안내할 수 있다. 그렇다고 나침반만 보고 길을 안내할 수는 없다. 나침반은 방향만 가리킬 뿐이지 언덕과 늪지와 절벽 등의 장해물이나 고온과 저온과 폭우와 폭설 등의 기후나 연령과 성별과 지역과 역할 등의 관계는 모른다. 안내자는 나침반을 보면서 주변환경을 고려하며 길을 안내해야 한다. 나침반을 보지 않고 환경만 고려하며 길을 안내하면 잘못된 길을 갈 수가 있고 환경을 고려하지 않고 나침반만 보며 길을 안내하면 길을 걷기 어려워질 수 있다. 지금 한국 사회는 나침반을 무시하는 바람이 나타나는 문제가 많다. 동물은 성욕으로 이성과 성관계를 맺어 새끼를 낳고 기르며 종을 유지한다. 그것이 진리임에도 성을 죄악시함에 따라 성과 관련된 인간관계가 희소하게 되어 저출산이 나타나게 되었다. 누군가는 인간과 짐승을 직접 비교하며 원래 동물은 대부분 이성관계가 없다는 식으로 말하는데 어처구니가 없다. 인간의 비교대상은 인간이어야 한다. 프랑스에서는 청소년기에 이성교제 상대가 없으면 부모가 심각한 상황으로 여기며 자녀에게 문제가 있는지 확인한다고 한다. 대부분 이성과 교제하며 성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에 그런 상황이 나올 수 있는 것이다. 그게 정상이다. 인간은 아이를 적게 낳는 동물이기에 종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대부분이 이성과 성관계를 맺어 아이를 낳아야 한다. 그럼에도 지금 한국은 성을 죄악시하여 이성관계는커녕 게임에 있는 작은 그림에도 야한 게 있으면 화를 내며 항의하는 상황이다. 이런 강박적인 주장을 용납한 이들은 본인들이 어떤 짓을 저질렀는지 똑똑히 기억하길 바란다. 누구나 자유롭게 주장할 수 있지만 그걸 수동적으로 수용해서는 안 된다. 옳고 그름을 꼭 생각해야 한다. 화가 난다. 화를 내야 한다. 과거에도 성을 죄악시했지만 그 때에는 이성관계와 출산을 강요했기 때문에 출산율이 유지될 수 있었다. 진리를 무시하고 낡은 관념을 신앙처럼 여기며 성을 죄악시한 것이 한국을 죽음으로 내몰게 만든 것이다. 본인의 낡은 관념이 진리가 아님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성을 죄악시하며 비혼을 미화하는 정신 나간 인간을 기용하면서 저출산 대책을 하겠다고 지껄이는 것이 비정상임을 부디 알길 바란다. 성을 죄악시하지 말아야 한국이 살아남을 수 있다. 인간에게 성기능이 작동하는 순간부터 누구와도 성관계를 맺어도 된다. 그게 유전자가 말하는 진리다. 달리 말해 성기능이 작동하지 않는다면 성적 관계는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인간이 잡식인 이상 누구라도 잡식을 부정할 수 없다. 인간은 채식만으로 살 수 없는 동물이다. 그게 유전자가 말하는 진리다. 달리 말해 채식만으로 살 수 있게 진화한다면 채식이 진리가 된다. 인간에게 폭력성이 있는 이상 폭력성을 부정할 수 없다. 그게 유전자가 말하는 진리다. 폭력성은 생존에 필수불가결한 성질이기 때문에 만약 폭력성이 없이 진화한다면 인류는 멸종해버릴 것이다. 길은 수학이나 과학이란 나침반을 보고 가야 올바르게 갈 수 있다. 그렇다고 나침반만 볼 수는 없다. 자유주의에 근거하여 모든 인간의 자유의지에 따라 성관계와 채식과 폭력을 결정해야 할 것이다. 합의하에 성관계를 맺고 합의하에 채식을 하며 합의하에 폭력을 쓴다. 폭력은 스포츠가 타당할 것이다. 수도 마찬가지다. 눈 앞에 보이는 수만 볼 수는 없다. 수 자체는 객관적이나 주관으로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보자. 어떤 법안이 제정된 후 작년 대비 사망자의 수가 50% 줄어들었다고 홍보한다고 하자. 이 퍼센트만 보면 굉장히 훌륭한 법안으로 보인다. 그러나 실제 수로 보면 작년에 4명이 사망했고 올해 2명이 사망한 것으로 2명이 줄어든 것에 불과했다. 더구나 재작년에는 1명이 사망했으므로 올해 2명이 사망한 것을 고려하면 법안 제정 이후 사망자가 100% 늘어났다고 볼 수도 있다. 숫자를 일부만 공개하면 객관적 수치도 주관적으로 이용할 수 있다. 이용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전체를 봐야 한다. 모든 숫자를 보면 객관적이기에 틀리기가 어렵다. 퍼센트만 볼 것이 아니라 실제 수를 보고 작년만 볼 것이 아니라 10년 정도의 통계 그래프를 보면 진리를 가리키는 나침반은 정확할 것이다. 수에 대해 간단히 알아보았다. 수를 사용하는 회계가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하겠는가? 회계란 개인이나 기업 따위의 경제 활동 상황을 일정한 계산 방법으로 기록하고 정보화하는 것. 또는 그 방법 사무나 그 담당자를 뜻한다. 수가 만물의 객관화라는 점을 고려하면 회계는 개인이나 기업 따위의 경제 활동 상황을 수로 객관화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정리하면 회계가 사회에서 맡은 역할은 경제를 수로 객관화하는 역할이다.

 

 

 

회계는 세 가지 방법으로 길을 제시해보겠다. 첫째는 친숙. 둘째는 설득. 셋째는 도덕이다.

 

첫째, 친숙. 회계는 개인이나 기업 따위의 경제 활동 상황을 일정한 계산 방법으로 기록하고 정보화하는 것을 뜻한다. 재무제표는 기업의 재무상태나 경영 성과 등을 보여주는 문서로 국제회계기준에 있는 기본 재무제표는 재무상태표, 포괄손익계산서, 자본변동표, 현금흐름표, 주석이 있다. 여러 개의 기업이 하나의 기업에 종속될 경우 지배기업에서는 종속된 모든 기업의 재무제표를 합쳐 연결재무제표를 만들고 있다. 회계는 현금 입출시기에 맞춘 현금주의와 손익 발생시기에 맞춘 발생주의가 있다. 자산매입과 매출채권을 고려하면 회사의 경제 활동 상황을 보다 정확하게 정보화할 수 있는 발생주의를 채택하고 있다고 한다. 그래야 재무제표 이용자인 투자자나 주주나 채권자가 보다 정확하게 회사의 경제 활동 상황을 파악할 수 있다고 한다. 가령 현금주의에서 토지와 자본재를 비용으로 보지만 발생주의에서는 자산으로 본다고 한다. 비용으로 본 현금주의 재무제표는 구매한 해에 비용이 손해로 적용하지만 자산으로 본 발생주의 재무제표는 감가상각을 써서 토지와 자본재의 가치가 낮아지는 만큼을 사용비로 계산해 그만큼만 손해로 적용한다. 1억에 산 자본재가 1년 뒤 되팔 때 9천만이라 가정하면 1천만이 사용비로 비용처리 된 셈이다. 이런 식으로 발생주의는 회사의 경제 활동 상황을 보다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게 한다. 정확한 정보가 많은 투자를 부른다. 많은 기업이 투자로 경영되고 있음을 고려할 때 많은 투자야말로 경제활성화의 길이라 할 수 있다. 회계연구가 실질적으로 회계사의 입장에서 바라본 회계기술보다는 정보 이용자의 입장에서 바라본 의사결정유용성을 중시한다는데 그 배경에는 이런 기업의 특성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많은 사람들이 투자를 결정할 것인가? 재무제표는 수로 경제 활동 상황을 객관화한 것으로 의도나 실수가 아닌 이상 정확할 것이다. 자산규모가 천억 원 이상의 기업들은 내부회계관리제도를 도입해 체계적으로 프로세스를 갖춰 비교적 정확한 상황이라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의미 있는 변화는 정확보다는 친숙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본다. 지금의 재무제표는 많은 사람들과 거리가 먼 상황이다. 복잡하고 알기가 어렵다. 친숙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이걸 개선해야 한다.

 

수가 만물의 객관화라면 수를 다시 만물로 되돌리는 일을 할 수 있다. 건축물을 건축도면으로 바꿀 수 있고 건축도면을 건축물로 바꿀 수 있다. 그와 같이 회사를 재무제표로 바꿀 수 있고 재무제표를 회사로 바꿀 수 있다. 그렇다고 회사 자체를 보여줄 수는 없고 비슷하게는 할 수 있다. 건축물을 건축도면으로 바꾸고 건축도면을 건축모형으로 바꿀 수 있다. 그렇다면 회사를 재무제표로 바꾸고 재무제표를 회사모형으로 바꿀 수 있다. 생각해보자. 건축물을 구매할 때 건축도면을 보는 것이 친숙한가 아니면 건축모형을 보는 것이 친숙한가? 당연히 건축모형이다. 알기가 쉽다. 실제 세부적으로 어떤 식으로 건설되었는지는 건축도면을 보는 것이 좋지만 가볍게 보기에는 건축모형이 좋다. 그래서 많은 부동산이 모델하우스를 만들어 홍보를 하고 있다. 그와 같다. 회계가 정보 이용자들에게 친숙하게 되기 위해서는 회사모형을 만들면 된다. 회사의 경제 활동 상황을 그대로 모형화할 수는 없으므로 비유를 써야 한다. 그 비유에 적합한 것이 바로 미술이다. 그림으로 회사의 경제 활동 상황을 즉각적으로 파악할 수 있게 한다. 정확하지는 않더라도 친숙하다. 정확한 것은 직접 들어가서 재무제표를 보면 된다. 알기 쉽게 비유하면 미리보기 그림인 썸네일이다.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재무제표를 그림화하여 접근성을 높여 많은 사람들이 회사의 경제 활동 상황을 보다 친숙하게 여기게 만드는 것으로 자연스러운 투자를 유도하여 경제를 활성화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림화를 할 것인가?

 

재무제표는 재무상태표, 포괄손익계산서, 자본변동표, 현금흐름표, 주석이 있다고 한다. 합명회사와 합자회사와 유한책임회사와 주식회사와 유한회사 모두가 만드는 재무상태표를 기본으로 해야 할 것이다. 실제 방법은 회계사와 화가가 협의하여 진행하는 것이 좋다 본다. 그래도 의견은 내겠다. 모든 기업의 재무제표를 따로 그릴 수는 없다. 많은 기업이 많은 시간을 소모하게 하고 다른 기준이 객관성을 상실하게 한다. 그러므로 인공지능을 이용하여 재무제표의 수치를 그림의 일부로 표현하게 만드는 것이 바람직하다 본다. 수치를 기준으로 그림이 그려지게 되므로 모든 기업이 같은 기준으로 적용되게 된다. 재무제표도 수로 전부 표현할 수 없어 주석을 이용하는 만큼 수치를 기준으로 그려진 그림이 기업의 모든 것을 표현할 수는 없으나 원래 썸네일은 세세하게 전부 표현할 필요는 없다. 건축도면을 건축모형으로 만들어 보기 쉽게 만들듯이 재무제표를 회사그림화를 하여 보기 쉽게 만드는 것이다. 모든 회사를 같은 기준으로 그리게 할 수는 없다. 단조롭고 지루할뿐더러 구분 짓기가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분야마다 다르게 한다. 예컨대 농업이면 트랙터와 논을 중심으로 한 그림이 나오고 수산업이면 배와 바다를 중심으로 한 그림이 나오면 좋을 것이다. 그림 내용은 유동자산 양에 따라 인간을 포함한 동물의 수가 달라지고 비유동자산에 인간 외의 사물의 수나 크기나 질이 달라진다. 재무제표가 아무리 복잡해도 계산이 끝나면 이익 또는 손해로 결론지어지게 된다. 그걸 기준으로 그림을 그리면 된다고 본다. 아니면 주주나 채권자가 관심 있는 항목을 중심으로 그리면 된다고 본다. 요는 이런 것이다. 회사 상황이 좋지 못하면 피폐한 그림이 나오고 회사 상황이 좋으면 화려한 그림이 나온다. 항목에 따라 그림이 요소가 조금씩 달라질 수도 있다. 이런 그림을 보고 회사 상태를 직관적으로 파악한다. 재무상태표를 만들 때마다 그림이 달라지므로 시기마다 회사의 변화도 직관적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림이 정교하고 아름답다면 그림을 출력하거나 다시 그려 회사에 걸어놓는 것도 하나의 즐거움이 될 것이다.

 

현대미술은 이제 미가 아닌 의미가 되었다. 아름다운 것이 가치 있다기 보다 의미가 깃든 것이 가치 있는 것처럼 되고 있다. 의미란 굉장히 추상적이고 주관적이기에 그림으로 가치를 판단하기 어려워 화가의 유명세에 따라 그림의 가치가 달라지게 되었다. 때론 난해하여 이해하지 못하는 만큼 대단하다 치켜세워지기도 하고 있다. 그림 자체의 미가 아닌 그림의 의미에서 미를 찾게 된 현대미술은 그림 자체의 미를 바라는 대중에 외면을 받고 투자자산이나 탈세도구로 폄하되고 있는 중이다. 수가 만물을 객관화한다면 미술은 만물을 주관화한다. 현대미술은 다시 한번 본질로 돌아가 그림 자체에서의 아름다움을 찾을 때가 온 것이 아닐까 싶다. 그림 자체의 아름다움으로는 경쟁상대도 많은 상황에서 수익을 얻기 어렵다는 편견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미를 바라는 인간이 있는 이상 그림은 어디서나 필요하게 된다. 단지 선입견에 의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기 어려울 뿐이다. 위와 같이 재무제표도 그림으로 표현할 수 있다. 그림이 친숙한 대중에게 재무제표의 그림화는 투자를 보다 더 대중적으로 만들 것이다.

 

기업에 대한 투자가 보다 대중적이게 되길 바란다. 부동산보다 기업에 투자되는 것이 낫기 때문이다. 국가의 입장에서 부동산에 과잉 투자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부동산 자체가 생산하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 토지는 자본재가 아니다. 국민의 입장에서도 실제 거주부동산과 별개의 투자 및 투기가 횡행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거주 부동산을 소유하지 못한 이가 구매하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경제 활동과 별개로 부동산의 가격이 오르면 부의 양극화가 심화되어 국가의 균형이 무너짐에 따라 국가의 쇠퇴와 파멸을 부르게 된다. 그에 따라 부동산이 아닌 자산에 투자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어야 하는데 재무제표의 그림화를 통해 기업의 경제 활동 상황을 보다 친숙하게 받아드릴 수 있다면 투자가 어렵다는 선입견에서 벗어나게 되어 투자가 늘어날 거라 생각한다.

 

 

둘째, 설득. 설득은 알아들을 수 있도록 여러 가지로 깨우쳐 말하는 것을 뜻한다. 설득을 할 때 필요한 것은 인식 공유다. 서로가 같은 인식을 갖고 있어야 설득을 할 수 있다. 의견 차이를 좁히기 어렵다면 먼저 대상에 대한 인식이 어떠한지 파악할 필요가 있을 정도다. 그런 인식을 공유할 수 있게 하는 것에는 언어나 수가 있다. 특히 만물을 객관화하는 수는 언어가 달라도 같은 인식을 갖게 할 수 있어 설득할 때 큰 도움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재무제표는 정보 이용자의 의사결정에 유용하다. 재무제표는 기업 경제 활동 상황을 일정한 계산 방법으로 기록하고 정보화 것이다. 재무제표는 현재를 다룬다. 시간이 흐르면 다뤘던 재무제표는 과거가 된다. 회계는 경제를 수로 객관화하는 역할이다. 회계는 경제의 현재를 수로 객관화하고 있다. 그렇다면 간단하다. 앞으로는 미래도 수로 객관화하면 된다. 기업 경제의 미래도 수로 객관화할 수 있다. 회계가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경제를 수로 객관화하는 것이다. 수로 미래를 객관화하는 것으로 기업의 의사결정에 유용하게 쓰이게 한다.

 

아마 기업에서 통계나 빅데이터를 근거로 한 미래예측은 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회계가 하고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실제 회계사가 어떤 일을 하는지 정확히는 모르지만 회계 교육과정에 미래예측이 없는 걸 보았을 때 아마 없을 거라 생각한다. 회계가 만든 과거와 현재의 재무제표를 보고 정보 이용자가 미래를 예측하는 것은 있어도 회계 자체에서 미래를 예측하여 만든 재무제표는 없는 것 같다. 회계는 경제의 현재를 수로 객관화한 전문가다. 경제의 미래도 수로 객관화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회계의 방식으로 미래를 예측하는 것이다. 과거의 미래는 현재다. 흐르는 시간의 경제를 수로 객관화 해왔던 만큼 어떤 사업을 시도할 때 나타나는 경제 활동 상황을 계산해낼 수 있을 거라 본다. 예컨대 A 분야에 새롭게 진출한다 가정하자. 그 의사결정은 경영자가 할 확률이 높을 것이다. 그럴 때 그 분야의 성공이 확실하지는 않다. 그러나 계산하여 유추해볼 수는 있다. 사업에 진출했을 때 나타나는 자산과 부채와 손익 등을 계산해본다. 그렇게 계산된 미래의 재무제표가 경영자의 의사결정에 유용하게 쓰이고 주주와 채권자에게 설득도구로 쓰인다.

 

현실을 수로 객관화하여 수치화를 하고 수치를 기반으로 프로그래밍한 것이 가상현실 시뮬레이션이다. 미래의 경제 활동 상황을 수로 객관화하여 재무제표를 만들고 재무제표를 기반으로 미래의 경제 활동 상황을 시뮬레이션 해본다. 회사의 재무제표를 시뮬레이션 게임으로 그대로 구현할 수 있다면 미래의 경제 활동 상황을 재무제표로 만든 것을 시뮬레이션 해볼 수 있을 것이다. 현재 재무제표를 시뮬레이션 하여 실제 회사와 비슷한지 확인하고 미래 재무제표를 시뮬레이션 하여 실제 미래와 비슷한지 확인하며 발생하는 오차는 수정한다. 기존의 재무제표를 기반으로 한 시뮬레이션에서 새로운 사업이나 상품으로 바꿨을 때 어떤 식으로 변화하는지 확인하는 것으로 새로운 사업이나 상품을 시장에 내보내기 전에 실험해볼 수 있다. 이런 식으로 충분한 경험이 쌓이다 보면 보다 정확하게 미래를 예측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친화가 회계와 미술의 결합이라면 설득은 회계와 컴퓨터공학의 결합이다.

 

 

셋째, 도덕. 개인의 주관적인 도덕성에 의존한 체계는 쓸모 없다. 회계란 주제와 옆의 문장은 최근 빈번한 횡령 사건을 보고 떠올렸다. 회계의 범죄와 그런 범죄가 나타나게 된 이유와 범죄를 방지하기 위한 대책에 대해 알아보자. 회계의 범죄는 다양하다. 횡령과 배임과 분식회계에 대해 알아보자. 횡령은 국가나 남의 재물을 불법으로 차지하여 가지는 것을 뜻한다. 배임은 임무를 배반하는 것. 또는 임무의 본뜻에 어긋나는 것을 뜻한다. 특히 공무원이나 회사원 등이 자기의 이익을 위해 지위를 악용하여 소속 관청이나 회사에 재산상의 손해를 주는 일이라 한다. 횡령이 직접적으로 재산을 빼돌리는 것이라면 배임은 지위를 악용하여 사무처리 중 서류를 조작하는 등과 같은 행위를 통해 관청이나 회사에 간접적으로 재산상 손해를 주는 일이라 할 수 있다. 회계가 회사 경제의 객관화임을 고려했을 때 회계의 횡령과 배임은 객관화한 회사 경제 활동 상황을 잘게 쪼개 빼돌리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회사의 경제 활동 상황이란 그림을 조각 내어 가져간 것이라 보면 된다. 그림 조각이 사라지면 멀쩡한 그림이 아니게 되듯 횡령과 배임을 하면 멀쩡한 회사가 아니게 된다. 거대한 기업에서 작은 횡령과 배임은 큰 타격이라 보기는 어렵지만, 그림의 작은 흠집이 그림을 흉하게 만들듯 회사의 작은 횡령과 배임도 회사를 흉하게 만든다. 분식회계는 경영 성과가 실제보다 좋아 보이도록 회계장부상 정보를 고의로 조작하는 행위를 뜻한다. 회계부정이나 회계사기로도 불린다고 한다. 분식회계는 가공매출이나 이중장부와 같은 다양한 방법으로 부당한 이익을 취하기 위해 회계장부를 고의로 조작하고 있다. 투자자들이 재무제표를 보고 투자를 결정하는 것을 미루어보았을 때 재무제표의 재료가 되는 회계장부를 고의로 조작하는 행위는 재무제표의 신용도를 낮춰 투자를 저해하는 것으로 경제를 위축시켜 경제 성장을 막는 중대한 범죄라 할 수 있다. 회계의 범죄인 횡령과 배임과 분식회계 등은 외부 회계감사를 통해 미연에 방지하고자 하고 있다. 회계감사는 타인이 작성한 회계기록에 대하여 독립적 제삼자가 분석적으로 검토하여 그 적정 여부에 관한 의견을 표명하는 절차를 말한다고 한다. 그런데 외부 회계기준 감사가 까다로워 일부 대기업을 제외하면 대부분 기업이 내부 회계 담당자의 도덕성에 맡기고 있다고 한다. 지금 회계는 개인의 주관적인 도덕성에 의존한 체계라는 것이다. 개인의 주관적인 도덕성에 의존한 체계는 쓸모 없다.

 

첫째, 정치를 생각해보자. 개인이 통치하는 왕이나 독재자는 개인의 주관적인 도덕성에 의존한 체제이기 때문에 잘못되었다. 통치자 개인의 주관적인 도덕성에 따라 국가의 부패가 결정된다. 왕이 올곧고 유능하면 융성하는 국가가 되고 왕이 삐뚤고 무능하면 쇠퇴하는 국가가 된다. 이런 정치체제는 개인의 주관에 맡겨 언제 어느 때에 파멸할지 몰라 불안정하여 쓸모가 없다. 현대에 이미 쓸모 없음이 증명되어 대부분의 선진국이 민주정을 채택하고 있는 중이다. 민주주의는 개인이 아닌 집단의 도덕성에 의존한 체제라 바람직하다. 투표권이라는 정치의 인사권을 국민에게 균등하게 나눠 대표를 선출하고 있다. 그에 따라 국민 모두의 주관적인 도덕성에 따라 국가의 부패가 결정된다. 국민 모두의 도덕성에 의존하여 개개인이 삐뚤어지는 일이 있더라도 일정 이상이 올바르면 올바른 선택으로 융성하는 국가가 될 수 있다. 객관이란 제삼자의 입장에서 사물을 보는 것을 뜻하는 것으로 일반적으로 타인의 입장에서 사물을 보는 것으로 인식할 수 있는데, 응집되지 않은 타인의 시각은 단순한 타인의 주관에 불과하므로 다수의 공통된 인식이 보통 객관이라고 한다. 수가 만물의 객관화라 할 수 있는 것은 모두가 수를 보고 공통된 인식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집단의 주관적인 도덕성이 모여 하나로 응집되게 되는 선거는 객관적이라 할 수 있다. 민주주의는 국가의 주인이 국민이라는 아름다운 이념 외에도 집단의 객관적인 도덕성에 의존한 체제이기 때문에 올바르다.

 

둘째, 경제를 생각해보자. 자본주의에서 반대하며 일어난 공산주의는 기본적으로 개인의 주관적인 도덕성에 의존하고 있다. 경제를 시장에 맡기지 않고 계획적으로 운영하며 모두가 평등하게 생산하고 공유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개개인의 도덕성에 의존하고 있다는 얘기다. 모두가 평등하게 생산하고 공유하고 있는데 누군가 그걸 거부하며 보다 많은 이익을 얻고자 하면 파탄이 나버린다. 그렇기에 공산주의는 인간의 욕망을 부정해버릴 수밖에 없다. 돌출된 누군가에 의해 모두가 생산하고 공유하는 구조가 파탄 나버리면 사회가 붕괴하므로 그걸 강제로 막을 수 밖에 없게 된다. 강제와 강요. 즉 독재가 된다. 기본적으로 개인의 주관적인 도덕성에 의존하다 체제가 붕괴될 것 같으니까 강제로 똑같이 생산하고 공유하게끔 만드는 사상이 공산주의다. 쓸모가 없다. 반면 자본주의는 시장경제를 이용하여 돈이라는 집단의 객관적인 욕망에 의존하고 있다. 자본주의 시장경제는 두 가지 측면에서 바라볼 수 있는데 하나는 돈이라는 객관적인 욕망에 의존한 체제라는 것이고, 둘은 소비자의 행복을 위하는 도덕적인 체제라는 것이다. 시장경제는 수요와 공급이라는 구조 속에서 공정경쟁을 권장하고 독점을 경계하고 담합을 처벌하고 있다. 모두가 자유롭게 생산하고 수요에 선택 받기 위해 경쟁하고 있다. 보다 많은 이익을 얻고자 한다면 수요에 선택 받기 위해 노력하면 된다. 그렇게 자본주의는 인간의 욕망을 긍정하고 있다. 돌출된 누군가가 있더라도 공정경쟁을 하고 있는 이상 사회가 붕괴되지 않으므로 강제할 필요가 없다. 자유. 즉 민주주의가 된다. 다수의 공급인 기업은 다수의 수요인 소비자에게 선택 받기 위해 구애하게 된다. 내 상품을 선택해줘. 내 서비스를 선택해줘. 그런 구애 경쟁 속에서 상품과 서비스의 품질은 올라가고, 높은 품질의 상품과 서비스를 누리는 소비자는 행복하게 된다. 사회주의나 공산주의를 주장하는 이들조차 자본주의에서 경쟁으로 나타난 상품과 서비스의 품질이 더 높다는 것에는 이견을 내기 어려울 것이다. 간단하게 공산주의는 생산자의 행복을 위하고 자본주의는 소비자의 행복을 위하는 사상으로 분류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소비자의 행복을 위하는 자본주의가 낫다. 체제 유지를 위한 강요로 인한 독재라는 점을 차지하더라도 경제가 성장하려면 자본주의가 적합하기 때문이다. 소비자의 행복을 위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상품과 서비스의 가치가 올라 국외 상품과 서비스 경쟁에서 승리하여 국가의 경제를 성장시킬 수 있다. 단순 경제 성장뿐만 아니라 정상적인 자본주의 국가라면 노동자에게도 충분한 부의 분배가 이루어질 수 있다. 상품과 서비스의 품질을 올려 소비자를 행복하게 하기 위해서는 상품을 생산하고 서비스를 제공하는 노동자에게 타당한 임금이 지불되어야 한다. 당연한 이치다. 그렇지 못한 기업은 상품 품질 저하로 공급 경쟁에서 탈락하여 도태된다. 자연스럽게 노동자의 노동환경도 나아진다. 앞서 말한 것처럼 상품의 품질이 오르면 세계 상품 경쟁에서 승리하여 국가의 경제를 성장하게 할 수 있다. 정리하자. 소비자의 행복을 우선시하는 것으로 상품과 서비스 품질이 오르고, 그런 고품질을 위해 노동자에게 타당한 부의 분배가 이루어지고, 고품질의 상품과 서비스는 세계 시장의 경쟁에서 승리하게 만들어 경제를 성장하게 한다. 경제가 성장하면서 부유해짐에 따라 그 부를 사회안정에 투자할 여유가 생기면서 사회 복지도 한층 나아질 수 있다. 사회 복지 또한 단순히 기업의 도덕에 의존할 것이 아니라 구조적으로 사회에 투자하게 만들어야 할 것이다. 자본주의는 개인의 주관적인 도덕성에 의존하지 않고 욕망을 위하더라도, 소비자에게 선택 받기 위해 소비자의 행복을 우선시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도덕적인 결과가 나오게 된다. 신자유주의는 사회주의와 같이 자본가 개인의 도덕성에 기대는 체제라고 본 적이 있다. 바람직하지 못하다. 자본주의는 자본주의가 정상적으로 작동한다는 가정하에 자본주의만으로도 충분히 도덕적일 수 있다. 자본주의는 소비자의 행복이란 아름다운 이념 외에도 집단의 객관적인 욕망에 의존한 체제이기 때문에 올바르다.

 

도태된 기업의 자본가나 노동자에 대한 구제는 기회의 평등을 통해 다시 한번 도전할 기회를 주는 것이 타당하다. 자본가의 경우 성공과 실패의 리턴과 리스크가 크기에 기회를 자주 주기 어렵지만 노동자는 크지 않기 때문에 자주 줄 수 있을 것이다. 정상적인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노동자를 필요로 하는 자본가가 많기 때문에 해고된 노동자가 복직을 요구하며 시위할 것이 아니라 다른 기업에 취업을 하면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한국은 지금 자본가를 길러내는 교육을 등한시하여 노동자 수요가 적기 때문에 이런 이들이 갈 곳을 잃고 시위를 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여있다. 노동자 또한 변모를 할 필요가 있다. 노동자는 노동력이란 상품을 소유한 상인이다. 자본가가 상품의 품질에 신경 쓰듯 노동자도 상품의 품질에 신경 쓸 필요가 있다. 소비자가 상품 품질에 따라 항의하거나 구매하지 않는 것을 결정하듯 고용자도 상품 품질에 따라 항의하거나 구매하지 않을 수 있다. 정녕 노동자를 위해서라면 저질 상품을 양산하는 기업을 노동자를 위해서라며 억지로 살려둘 것이 아니라 빠르게 치우고 그 자리에 유능한 기업이 들어서게 해야 한다. 그러기만 해도 부당한 처우를 겪는 상당수의 기업은 사라질 것이다. 애초에 노동자에게 타당한 대우가 없으면 그만한 품질이 나올 수가 없기 때문이다. 자본가의 상품과 다르게 노동자의 상품은 팔리지 않게 되면 당장 인간의 생존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 이 때 발생하는 생계의 위험은 전면적으로 세금을 받는 국가의 책무다. 기업은 그런 점을 감안하여 노동의 유연화를 얻는 대신 그에 따른 책임비용을 국가에 세금으로 지불하는 것이 좋다고 본다. 자본주의가 올바름에도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던 것은 한국이 자본주의 국가가 아니라 유교 국가였었기 때문이다. 소비자의 행복과 무관한 것을 다 하지 않았던가? 정경유착과 담합과 독점을 하고 이윤만 추구하여 노동자를 착취하는 것으로 상품과 서비스의 품질을 저하시켜오지 않았던가? 자본가도 경쟁을 하게 했어야 했는데 문제풀이만 전문적으로 해온 탓에 노동자를 길러내는 교육을 주로 해버리는 탓에 공무원이 되거나 자본가에 의존하는 인간으로 성장하게 만들지 않았던가? 창업자는 관념에 얽매이지 않고 할 수 있는 것은 할 수 있는 도전정신을 갖춰야 함에도 답이 없는 것에는 도전하지 못하게끔 교육되어버렸다. 더구나 장유유서에 의해 사회초년생은 전부 사원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낡은 관념으로 인해 제대로 도전하는 이가 드물었다. 최고의 교육기관에 나온 인간이 대기업 취업이 목적인 것이 정상이라 보이는가? 그들은 본래 대다수가 창업을 목적으로 했어야 했다. 창업자에 필요한 교육을 받지 못하자 국가가 창업자를 지원했음에도 불구하고 실패하는 일이 잦게 되자 창업은 실패의 대명사가 되어 더욱 더 창업에 도전하는 이들이 드물게 되었다. 이러니까 성공한 창업자 수가 적은 것이다.

 

기부를 생각해보자. 지금의 기부는 대부분 기부단체에 속한 개인의 주관적인 도덕성에 의존한 체계를 갖추고 있다. 쓸모가 없다. 그러니까 기부단체에서 수도 없이 많은 비리와 횡령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선행이란 오래된 도덕관념에 의해 이타적인 마음으로 행하게 하곤 하는데, 본인의 이익이 아닌 타인의 이익을 위한다는 마음으로 기부단체에서 선행을 하게 되자, 타인을 위해 일했으므로 본인의 이익을 취하지 못한 만큼 본인의 이익을 챙기려 하게 된다. 만약 이기적인 마음으로 선행을 행했다면 선행 자체가 본인의 이익이기 때문에 본인의 이익을 따로 챙기려 하지 않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기부단체는 기본적으로 타인을 돕는 것에 만족감을 느껴 이기적인 선행이 가능한 사람만 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그런데 그걸 알 방법이 없다. 수단으로 타인을 돕는 것인지 목적으로 타인을 돕는 것인지 알 방법이 없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개인의 주관적인 도덕성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쓸모가 없다. 그러므로 기부단체는 모든 걸 투명하게 공개하던가 아니면 국가가 주관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애초에 기부는 시장경제에 속한 것이 아니므로 국가의 복지에 속하는 것이 오히려 보다 역할에 충실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세금을 받는 국가가 국민의 복지와 안녕을 민간 단체에 떠넘기는 것은 낡고 잘못된 악습에 불과하다 본다. 정치가 그러하듯, 경제가 그러하듯, 기부 또한 개인의 주관적인 도덕성에 의존할 것이 아니라 집단의 객관적인 도덕성에 의존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회계에서 범죄가 잦은 까닭은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돈에 대한 잘못된 관념이고 둘은 개인의 주관적인 도덕성에 의존한 체계다. 한국이 유독 사기범죄가 많은 까닭은 어려서부터 돈에 대한 잘못된 관념을 매해 주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명절이 되면 연상에게 무릎 꿇고 바닥에 머리를 박은 뒤에 돈을 받는 세배라는 풍습을 권장하고 있다. 연상에게 돈을 받기 위해서 석고대죄와 같은 행위를 하는 것이 올바르다고 가르쳐 왔단 것이다. 그런 행위가 학습되어 돈을 위해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늘어나게 되었다. 괜히 한국에서 사기범죄가 기승을 부리는 것이 아니다. 아기 때부터 집요할 정도로 돈에 집착하게끔 교육해왔으니 당연한 결과다. 돈에 대한 잘못된 관념을 가지고 있으니 횡령이나 배임을 하는데 거리낌이 없이 해버리게 된다. 그런 잘못된 관념과 개인의 주관적인 도덕성에 의존한 체계가 합쳐진다고 해보자. 횡령과 배임이 많은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돈에 대한 잘못된 관념을 차치하더라도 회계가 바람직하게 되기 위해서는 회계의 체계를 담당자의 주관적인 도덕성에 맡겨서는 안 된다. 설령 다수가 돈에 대한 올바른 관념이 있더라도 누군가는 잘못된 관념을 가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개인의 도덕성에 맡기는 체계는 바람직하지 못하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외부 회계감사 대상을 늘리는 것과 대부분 기업이 회계부서와 자금부서를 철저하게 분리하는 것이 일반적인 대책이 될 수 있으나 근본적으로 달라져야 한다고 본다. 암호화된 외부회계관리제도가 필요하다. 지금 내부회계관리제도는 천억 원 이상의 기업들이 쓰고 있다고 하는데 그걸 모든 기업이 쓸 수 있도록 체계를 갖추는 것아 바람직하다 본다. 작은 기업이 내부회계관리제도를 쓸 정도로 여유가 없을 수 있으므로 외부에서 지원 가능한 체계를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재무제표는 외부에 공개되므로 공개되더라도 상관 없을 수 있으나 그것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공개하기 꺼려할 확률이 높으므로 암호화가 되어야 할 것이다. 자금 관련 결정권자도 늘려 가능한 개인의 주관적인 도덕성에 의존하지 않는 구조가 필요하다. 주기적으로 자금 관련 결정권자도 달라지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가령 결정권 가능자가 총 5명이 있다면 그 중 3명이 매주 또는 매달 같이 주기 마다 무작위로 결정권자가 되게 한다. 결정권자들이 서로 짜고 범죄를 저지를 수 있으므로 결정권자 중 한 명은 외부 인원으로 지정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개인의 주관적인 도덕성에 의존한 체계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그것을 하게 되면 횡령과 배임 같은 범죄를 줄일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기업이 암호화된 외부회계관리제도를 사용하면 외부 회계감사도 보다 수월하게 진행할 수 있을 것이다.

 

수는 만물의 객관화다. 회계는 수를 이용하는 분야다. 수를 이용하여 재무제표를 만드는 회계는 기업의 경제 활동 상황을 수로 객관화하고 있다. 기업의 경제 활동 상황을 수로 객관화하고 있다면 그 수를 다시 기업의 경제 활동 상황으로 되돌리는 일이 가능할 것이다. 그것으로 기업의 그림화가 나오게 되었다. 재무제표는 현재의 기업의 경제 활동 상황을 기록하여 정보화한 것이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과거와 현재는 지금 기록하고 있다. 회계는 회사의 경제를 수로 객관화하는 역할이다. 그렇다면 과거와 현재뿐만이 아니라 미래도 수로 객관화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시뮬레이션 게임을 이용해 수로 객관화한 미래의 재무제표를 시뮬레이션 하는 것으로 미래를 보다 정확하게 예측해볼 수 있다. 이것으로 미래의 재무제표의 시뮬레이션화가 나왔다. 개인의 주관적인 도덕성에 의존한 체계는 쓸모 없다는 것은 수는 만물의 객관화라는 것에서 나온 것이 아닌 평소 생각에서 나온 것 같다. 그 평소 생각에서 회계 또한 개인의 주관적인 도덕성에 의존한 체계에서 벗어나기 위해 암호화된 외부회계관리제도와 자금 관련 결정권자의 무작위 및 일부 외부 인원 포함을 떠올렸다. 이것이 대략적인 생각의 흐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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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여자는 남자의 도구였습니다. 여자는 정조를 지켜야 하기 때문에 결혼 전에 외간남자와의 관계가 단절되었지요. 정조를 지키기 위해 여자는 노출과 다른 남자와의 접촉이 엄격하게 금지되게 되었습니다. 결혼 후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정절을 지켜야 하기 때문이지요. 여자가 자발적으로 처녀성과 정절 지키기 하기 위해 남자들이 성적 수치심을 세뇌시켰습니다. 노출을 하거나 다른 남자와 접촉을 하면 죄악감 속에 불쾌감을 느끼게끔 세뇌했지요. 여자는 남자의 도구로 쓰이기 위해 노출이나 접촉이 금지되고 그에 따른 과도한 성적 수치심을 갖게 된 겁니다. 여성은 이런 관념을 가지고 있었어요. 여성인권이 오르자 더 이상 남성의 도구로 쓰이지 않게 되었지만 노출이나 접촉이 금지되거나 성적 수치심을 강하게 느끼는 관념은 남아 성 자체를 죄악시하는 풍습이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여자는 본인이 느끼는 감각을 근거로 성인지감수성을 주장하며 신세대 여성에게까지 노출이나 접촉을 금하고 과도한 성적 수치심을 세뇌했습니다. 그게 바로 가부장제 세계관의 여성상 세뇌입니다. 그리고 그걸 사회가 수용하도록 강요했지요. 그러면서 성을 죄악시하는 관념이 늘어나면서 더욱 더 이성관계는 파괴됩니다. 성년과 미성년의 성관계를 죄악시하자 미성년과 미성년의 성관계도 죄악시되고 성을 죄악시하는 관념이 학습되자 성년이 되어도 이성관계를 하는 사람이 줄어들고, 그러자 결혼하는 사람이 줄어들고, 그러자 출산하는 사람도 줄어들고, 그러자 국가가 죽어가게 된 겁니다. 정말 멍청한 죽음입니다.

 

여성을 위한 거다 아이들을 위한 거다 인권을 위해서다 단 한번도 처음부터 생각하지 않고 낡은 관념에 세뇌되어 앵무새처럼 내뱉은 얄팍한 주장을 할 바에 좀 더 생각하십시오. 화가 납니다. 당신들이 이권을 위해 떠드는 것은 아무래도 좋습니다. 그딴 것은 국가 생존에 크게 영향을 주지 않아요. 정말 멍청하고 반민주적인 결과의 평등을 위한 가산점과 할당제도 국가 생존까지는 위협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낡은 관념으로 성을 죄악시하는 것 좀 그만하십시오. 인간을 성적 대상으로 바라보지 않으면 어쩌자는 겁니까? 도대체 인간이 뭔지는 알고 그런 말을 하는 겁니까? 낡아빠진 유교 사상에 물든 동북아 출산율이 왜 이따위인지 좀 이해 좀 하십시오. 한국 10 20대 다수가 이성관계가 단절되고 30대 혼인율이 절반을 넘지 못하는 사태가 발생한 것을 직시하십시오. 이성의 동성애물이 양지로 진출한다는 것이 얼마나 비정상적인 상황인지 인지하십시오. 이성애가 발달했으면 그런 문화가 발전할 수가 없습니다. 개인의 자유는 존중하나 그런 현상이 나타난 이유는 파악해야 합니다. 가장 최악의 잘못을 저질러놓고 뭘 잘못했는지도 모르고 되려 화를 내며 더욱 더 성을 죄악시하려는 태도를 보면 볼수록 계속 지적하며 언급할 수 밖에 없습니다. 정말 답답합니다. 나는 유전자를 진리로 봅니다. 남성 개체와 여성 개체가 만나 성관계를 맺으면 아이를 낳을 수도 있다. 이 도식 외엔 전부 관념에 불과합니다. 자유주의 국가임으로 자유주의에 근거하여 자유의지만 고려하면 되는 문젭니다. 모두가 자유롭게 성을 말하며 편하게 성에 관련된 말을 하고 편하게 성관계 맺는다고 사회질서가 무너지지도 않고 멸종하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이성의 성관계를 권장해야 합니다. 그래야 이성애가 발달하여 서로가 사랑하고 결혼하고 애 낳아 종을 유지할 수 있는 겁니다.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는 겁니다. 낡은 관념에 세뇌되어 자유로운 성생활이 불편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자유로운 성생활을 막고 성을 죄악시하는 것이 올바르다 느꼈을 겁니다. 그냥 외면하십시오. 괜찮습니다. 그냥 방치하는 것이 올바르니 모른 척하는 게 올바른 일을 하는 겁니다. 유교와 기독교를 근거로 한 가부장제 세계관의 여성상을 명목으로 성을 죄악시하는 짓 좀 그만해야 합니다. 그게 악입니다. . 국가를 멸종시키려는 행동이 악이 아니면 무엇이겠습니까! 일반적으로 정당한 기준이나 절차 없이 과한 이익을 얻으면 악이라 할 수 있는데, 성을 죄악시하자는 주장을 하는 것으로 어떤 이익(물질이든 감정이든)을 얻는 것은 부당한 기준이나 절차로 얻는 과한 이익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악입니다. 성인지감수성이 가부장제 세계관의 여성상이라는 것 좀 깨달으십시오. 본인의 감각과 감정과 욕구를 모든 여성이 똑같은 감각과 감정과 욕구를 가질 거란 망상에서 벗어나십시오. 성적으로 자유로운 국가의 여성의 감각과 감정과 욕구가 본인과 다르다는 건 알 겁니다. 그건 또 문화의 차이로 넘어가려 하겠지요. 장난합니까? 나라마다 여성의 특성이 다른 것은 진리가 아니지 않습니까! 감각과 감정과 욕구는 관념에 영향을 받아 만들어지고 관념은 진리가 아닙니다! 탈레반을 생각해보십시오. 그들은 여성인권을 옹호하겠다고 말만 그럴 듯 하게 하다가 다시 여성을 천대하고 있습니다. 그건 여성을 차별하는 관념에서 나타난 감각과 감정과 욕구를 진리라 여겼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낡은 여성상에서 나타난 관념으로 만들어진 성인지감수성이 낡고 부패한 것이라는 걸 이해하십시오. 그런 낡은 관념을 진리라 여기며 주장하게 만든 여성의 주관적인 이익 말곤 아무것도 없는 여성주의란 천박한 사상을 버리고 모든 인간의 행복을 위하길 바랍니다.

 

관념에 대한 이해가 좀 더 대중화되어야 합니다. 신분제 시대에서 자본주의를 받아드린 이들이 농노였던 노동자를 농노 취급했던 것은 노동자에 대한 관념이 농노였기 때문입니다. 노동자를 제외하면 자본주의는 지극히 인간을 행복하게 했어요. 노동자를 착취한 것은 자본주의 자체의 문제기 보다 노동자를 농노라고 여기며 인간 대우를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자본주의가 문제가 아니라 신분제의 관념이 문제였던 것이지요. 한국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조선은 노비가 40%가량이었다고 하지요. 노비였던 노동자를 노비 취급하며 천대하고 착취했던 것은 자본주의가 문제가 아니라 신분제의 관념이 문제였던 겁니다. 지금도 꼰대질과 갑질이 있는 것은 조선의 수직사회를 만든 관념을 물려받았기 때문이지요. 자본주의 때문이 아니라 낡은 관념 때문입니다. 노동자 착취의 본질도 이해하지 못했으면서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것은 너무나도 아쉬운 일입니다. 조선의 수직사회를 만든 관념에서 벗어나야 노동자를 대등하게 여겨 노동자 착취가 사라지고 꼰대질이나 갑질도 사라지는 겁니다. 이제는 관념을 이해해야 합니다.

 

모든 학문은 진리를 근거로 해야 바른 길을 걸을 수 있습니다. 많은 학문이 바르게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수학이란 만물을 객관화한 진리를 바탕으로 했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수학이 진리가 아니었다면 수학을 사용한 학문들에서 만들어진 물건들이 제대로 작동할 수 없었겠지요. 진리니까 작동할 수 있었던 겁니다. 인문학도 이제는 진리를 근거로 해야 합니다. 본인이 어떤 감각과 감정과 욕구를 느꼈다고 그걸 진리라 여기며 거기에 사회를 맞추려 할 것이 아니라 과학이 증명한 명확한 진리를 근거로 사회를 올바르게 변화시켜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사회가 제대로 작동할 수 있습니다.

 

스마트폰 액정이 깨지면 며칠 우울하네요. 사실 다음에는 삼성이나 애플 걸 사려고 했는데 중고로 LG걸 샀습니다. 가격 대비 품질이 만족스러워서요. 삼성이나 애플은 다음 세대에서 고려해야겠네요.

 

회계관련 회사를 아는 게 없어서 검색해서 적당히 썼습니다. 별 의미는 없습니다. 다소 우울해서 글이 늦었네요. 다음은 관광이나 복지입니다. 언제 쓸지는 모르겠습니다. 역할주의 쓰고 나서 사상가입내 말하고 싶었는데 생각할 분야가 많네요. 역할주의가 공정하고 자유롭고 평등하며 민주적인 사상 같은데그걸 모두에게 인정받으려면 노력해야 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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