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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사회와 복지 (0) 2022/12/31 AM 01:26

사회와 복지

 

 

 

탐구를 멈춘 학문에 발전은 없다.

 

 

 

지구는 특별하지만 평범하다. 모순되나 관점을 더하면 논리적이게 된다. 가까이서 본 지구는 생명체가 사는 특별한 행성이지만 멀리서 본 지구는 평범한 행성 중 하나에불과하다. 지구돋이와 창백한 푸른 점이란 사진을 통해 이 사실을 알수 있다. 지구돋이는 아폴로 8호가 달에서 촬영한 사진으로 지구의 구름과 바다가 뚜렷하게 보이고, 창백한 푸른 점은 보이저 1호가 태양계를 벗어나기 직전에 촬영한 사진으로 희미한 점으로만 보인다. 거리 관점이 달라지자 인식이 달라졌다.

언어는 일반어가 비속어가 될 수 있다. 모순되나 관념을 더하면 논리적이게 된다. 내국인에게는 일반어로 느껴지는 단어가 외국인에게는 비속어로 느껴질 수 있다. 영어 jot과 sip이란 단어를 통해 이 사실을 알 수 있다. 영어 jot과 sip은 영어권에서는 일반 단어지만 한국어권에서는 한국어 중성기를 비속하게 이르는 단어와 발음이 유사하여 착각할 수 있게 된다. 언어 관념이 달라지자 인식이 달라졌다.

소리는 들리는 것이 들리지 않을 수 있다. 모순되나 감각을 더하면 논리적이게 된다. 미성년에게는 들리는 소리가 성년에게는 들리지 않을 수 있다. 고주파란 주파수 대역을 통해 이 사실을 알 수 있다. 일정 이상의 고주파는 청신경이 손상되지 않은 미성년은 들리지만 청신경이 손상된 성년은 들리지않는다. 육체 감각이 달라지자 인식이 달라졌다.

 

인간의 관점·관념·감각의 차이에 의해 동일한 현상을 다르게 인식하게 되었다. 모든 인간은 다른 관점·관념·감각을 가지고 있어 다른 인식을 갖게 된다. 현상을 다르게 인식한다는 것은 혼자서는 현상의 본질을 보기 몹시 어렵다는 것이 된다. 본질을 볼 수 없다는 것은 진리도 알 수 없다는 것이 된다. 사물 자체의 성질이나 모습도 모르면서 진리를 아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혼자서는 진리를 알기 몹시 어렵다. 그것이 인간의 한계다. 그러나 인간은 혼자가 아니다. 각각 다른 인간의 인식을 모으면 본질을 볼 가능성이 있다. 극단적으로 말해 색만 보는 사람과 형태만 보는 사람과 내용만 보는 사람의 인식을 합치면 사물의본질이 볼 수도 있다. 그 본질에서 진리를 알 가능성도 있다. 가령 지구는 가까이서 보면 특별해 보이고 멀리서 보면 평범해 보이는 모습을 가지고 있다. 이것이 지구의 본질 중 하나다. 만약 가깝거나 먼 것만 보았다면 지구의 진정한 모습을 알 수 없었을 것이다. 이것을 통해 지구에서 관측 가능한 평범한 행성이나 관측 불가능한 행성도 가까이서 보면 특별한행성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인식을 늘려 본질을 보는 것으로 이치에 맞는 추론이 가능하게 된다. 이것은 매우 당연해 보일 수 있다. 그런데 이런 것이 탐구를 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방법이다. 학문을 만들거나 배우는 자는 반드시 알아야 한다. 그래야 본인이 보고 받고 느낀 것이 본질이 아닐 수 있음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본인의 인식이 본질이 아닐 수 있는 것을 알아야 다른 인식을 모아 본질을 보고 본질을 통해 진리를탐구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런 태도가 올바른 탐구를 위한 자세다.

탐구 과정은 탐구 자세를 유지하면서 해야 한다. 만약 복잡한 지식을 배우고 발상을 하는 과정을 거치면 본인의 인식 위에 지식의 인식이 덮어씌워지면서그 인식을 진리로 여기는 것으로 본인의 관점·관념·감각으로 새로운 인식을 가지려 하지 않게 되고 다른 인식도 알아보지 않게 된다. 그 지식의 정보가 본질에 해당한다 하더라도 본인의 관점·관념·감각으로 새로운 인식을 가지려 하지않으면 하나의 인식으로 시야가 좁아지면서 다른 탐구에도 나쁜 영향을 주게 된다. 그러므로 간단한 지식을 배우고 발상부터 하는 과정을 거쳐야 본인의 인식과 지식의 인식을 분리하여본인의 인식을 갖기 위한 탐구를 할 수 있게 된다. 그러면 시야가 넓어지면서 다른 탐구에도 좋은 영향을 주게 된다. 지식보다 탐구를 중시하는 올바른 탐구 자세를 유지할 수 있게 된다. 이렇게 탐구를 중점으로 학습하는 것을 가리켜 탐구주의라 하겠다. 탐구주의로 학습하게 되면 새로운 인식을 낳거나 받아드리기가 수월하게 된다. 그런 것을 가리켜 지성이라 부른다.

 

모든 인간은 현상에 대한 인식이 다르기에 공통 인식이 필요해진다. 같은 것을 보고도 다른 인식이 나타나면 인간과의 관계가 불가능해지고, 인간과의 관계가 불가능하면 인간의 집단인 사회도 이룰 수 없게 된다. 그런 상황에서 인류는 언어란 공통 인식을 통해 사회를 이룰 수 있게 되었다. 공통 인식을 통해 다른 인식을 가진 이들이 모여 만든 지식에 체계가 생길 수 있었고, 체계 있는 지식을 통해 인류는 문명이 탄생하고 발전할 수 있었다. 오늘날 인류의 문명 사회는 언어란 공통 인식 덕분이다. 언어에 대한 보다 정확한 공통 인식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 사전이다. 사전에 기록된 낱말은 객관적 기준이 되어줄 수 있다. 이야기라면 말을 주고 받는 동안 서로가 공통 인식을 갖게 될 수 있지만, 글이라면 그럴 수가 없으므로 공통 인식을 위해 사전적 정의를 자주 사용할 예정이다. 사전적 정의가 전부 진리는 아니지만 공통 인식은 될 수 있다.

모든 사전적 정의는 다음과 같은 문장 구조를 쓸 것이다. [A는 B를 뜻한다.] 특정 분야의 용어는 다음과 같은 문장 구조로 쓸 것이다. [A_분야는 B를 뜻한다.] 두 개 이상의 뜻을 적을 때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 구조로쓸 것이다. [A1는 B를 뜻한다. A2는 B를 뜻한다.]

그럼 관점·관념·감각의 사전적 정의를 알아보자. [관점은 사물이나 현상을 관찰할 때, 그 사람이 보고 생각하는 태도나 방향 또는 처지를 뜻한다.][관념은 어떤 일에 대한 견해나 생각을 뜻한다. 관념_철학은 어떤 대상에 관한 인식이나 의식 내용을 뜻한다.][감각은 눈, 코, 귀, 혀, 살갗을 통하여 바깥의 어떤 자극을 알아차림을 뜻한다.] 이것으로 읽는 이는 해당 낱말에 대한 공통 인식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사회와 복지는 사회 문제 해결을 목적으로 한다. [사회 문제_사회 일반은 사회 제도의 결함이나 모순으로 발생하는 모든 문제를 뜻한다. 실업 문제, 교통 문제, 주택 문제, 공해 문제, 청소년 문제 따위가 있다.] 사회에 발생하는 문제들을 복지로 대응하여 해결하는 것이 보통의 사회 복지다. 그런데 사회 문제에 대해 생각해보면 지나치게 오랫동안 해결되지 못하는 것들이 너무나도 많다. 이념, 인권, 차별, 정치, 경제, 지역, 세대, 성별, 역사, 출산, 자살, 도박, 마약 등의 문제들은 길게는 수천 년에서 짧게는 수십 년 동안 해결되지 못하고 있다. 어째서 해결되지 못하고 있는가? 정부 권력을 가진 정치가 때문인가? 아니면 국민 권력을 가지고 정부 권력을 선출한 국민 때문인가? 아니다. 정치가도 국민도 아니다. 사회 문제가 해결되지 못한 까닭은 문제 해결 방법을 제시하지 못한 인문학 때문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하자. 특정 분야에서 문제가 지속되면 전문가의 책임이 된다. 의료라면 의사와 의학이다. 특정 병을 치료하지 못하는 것은 의사가 실력이 부족할 수도 있지만 의학이 치료 방법을 모를 수도 있다. 만약 한 명의 의사가 특정 병을 치료하지 못한다면 그 의사가 문제지만 모든 의사가 특정 병을치료하지 못하는 것은 의사가 아닌 의학이 문제다. 그와 같다. 모든 인간이 사회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인간의문제가 아니라 인문학의 문제다. 학문에서 사회 문제 해결 방법을 알지를 못하기 때문에 그 누구도 사회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던 것이다. 인문학은 다양한 문제 해결 방법을 제시하기는 했으나 문제가 해결되기는커녕 악화되기는 경우도 많았다. 그럼에도 그 누구도 인문학에 책임을 묻지 않는다. 인문학에 책임을 묻기 보다는 정치가나 국민을 탓한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가?

국민이 학문에 책임을 묻지 않는 것은 가치관 때문이다. [가치관_심리는 가치에 대한 관점을 뜻한다. 인간이 자기를 포함한 세계나 그 속의 사상에 대하여 가지는 평가의 근본적 태도이다.] 가치는 진리, 도덕, 아름다움 등을 말하며 가치 판단은 옳다, 그르다, 좋다, 나쁘다, 예쁘다, 밉다 등과 같은 판단을 말한다. 경험이나 사상 학습 등이 가치 관념에 영향을 끼치고 가치 관념에 의해 가치관이 나타나게 된다.

대부분 사람들은 본인의 가치관을 진리로 여겨 바꿔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가치관을 형성케한 인문학에 책임을 묻지 않는다. 가령 병은 아프니까 치료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고, 모든 의사가 치료하지 못할 경우에는 의학에 책임을 묻고자 하는 태도가 나올 수도 있는데, 인문학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인문학에 책임을 묻지 않고 기대도 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인문학 단순히 취업이 되지 않는 학문으로만 인식하고 있다. 인간의 가치관을 결정하는데 중요한 학문이 이토록 경시되고 있다는 사실이 불쾌하다. 그런데 인문학은 학문을 하는 학자와 학생조차도 본인의 가치관을 진리로 여기면서 가치에 대한 탐구를하지 않는 것으로 학문을 하지 않는 사람들과 비슷한 가치관을 갖기도 하고 있다. 가치에 대한 탐구를 하지 않으니까 인문학이 근본적으로 발전하지 못하고, 사회 문제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현재 인문학적 주장의 가치관을 형성하게 한 명제는 어느 시대에서 온 것인가? 대부분 이런 것을 고려치 않고, 학자조차도 본인의 가치관을 진리처럼 여기며 주장하기도 하고 있다. 성을 죄악시하며 억압하자는 주장의 명제는 어느 시대에서 온 것인가? 가부장제 시대의 유교나 기독교의 윤리다. 그럼에도 그걸 생각지 않고 가부장제를 비판하면서 성을 죄악시하고 억압하고 있다. 기술을 천시하며 홀대하게 되는 주장의 명제는 어느 시대에서 온 것인가? 조선 시대 사농공상이다. 그럼에도 그걸 생각지 않고 조선 시대를 비판하면서 기술을 천시하며 기초 과학을 소홀히 하는 경향이있다. 모든 개인이 그런 가치관을 가진 것은 아니지만 이런 주장이나현상이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가 없다. 그들은 본인의 가치관을 진리로 여기고 가치에 대한 탐구를 멈춘 것이다. 가치에 대한 탐구를 하여 새로운 가치를 가지지 않는 이상, 어떤 주장도 과거를 되풀이할 수 있다.

인문학에 있어 가치는 수학의 사칙 연산과 같을 정도로 기본적이다. 가치를 근간으로 사상과 철학을 하고, 사상과 철학을 근간으로 인문학을 한다. 그런 상황에서 본인의 가치관을 진리로 여기며 가치에 대한 탐구를 멈추자 인문학 전체가 멈추게된 것이다. 인문학의 가치와 수학의 사칙 연산의 차이는 보편성이다. 전자는 보편적이지 않으나 후자는 보편적이다. 보편적이지 않는 것은 학문적 진리가 될 수 없다. 만물을 일반 진리로 부르고 학문에서 쓰이는 진리는 학문적 진리라 부르겠다. 가령 어떤 것이 A 국가에는 있는데 B 국가에는 없다면 학문적 진리에 해당하지 않는다. 특정한 것이 모든 국가에 있더라도 학문적 진리임을 보장할 수 없는데 보편적이지도 않는다면 말할것도 없다. 특정 국가의 가치가 보편적이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가치관을진리로 여기며 가치에 대한 탐구를 멈췄다. 탐구를 멈춘 학문에 발전은 없다. 발전이 없는 학문의 분야도 발전은 없다. 사회 문제가 해결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은 인문학이 탐구를 멈췄기 때문이다. 인문학은 책임 의식을 가지고 사회 문제를 해결하여 가치가 있는 학문이 되어야 한다.

 

[철학은 인간과 세계에 대한 근본 원리와 삶의 본질 따위를연구하는 학문을 뜻한다. 흔히 인식, 존재, 가치의 세 기준에 따라 하위 분야로 나눌 수 있다.] 인식은 관점·관념·감각으로 분류하여 접근하고, 존재는 자연 과학으로 어떻게 존재하는지는 알 수 있으나 왜 존재하는지는 알 수 없고, 가치는 진리와 도덕과 아름다움 등을 탐구하고 그에 관한 사상을 만들어야 한다. 개인적인 목적은 세상의 존재 이유를 밝히는 것이다. 그것을 위해 영원히 살면서 우주에 진출하여 우주를 탐구하길 바란다.

 

 

 

1. 인문학

 

고질적 사회 문제가 해결되지 못했던 현상은 인문학이 가치에 대한 탐구를 멈췄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학문을 하는 일부가 본인의 가치관을 진리로 여기고 탐구를 멈추는 것은 있을 수 있어도학문을 하는 대부분이 그런 것은 이상하다. 어째서 이런 현상이 나타났는지 알아보자. 그래야 인문학이 가치에 대한 탐구를 하면서 올바른 사회 문제 해결이 가능해진다.

인문학에서 가치에 대한 탐구를 멈춘 본질적인 원인은 학문의 특성에 있다. 인문학은 학문 특성상 탐구를 멈췄다. 하나의 명제를 보자. 모든 학문은 힘을 가지거나 힘에 영합해야 명예를 얻을 수 있다. [영합1 은 사사로운 이익을 위하여 아첨하며 좇음을 뜻한다. 영합2은 서로 뜻이 맞음을 뜻한다.] 아첨하여 명예를 얻은 학문과 서로 뜻이 맞아 명예를 얻은 학문으로 나뉜다.

과거에는 모든 학문에서 아무리 뛰어난 학자라도 힘을 가지거나 힘에 영합해야만 명예를 얻을 수있었다. 당시 힘을 가진 왕이나 귀족이 학문을 하거나 그런 이들에게영합을 해야만 학자의 주장이 반영되었다. 그러다 보니 왕이나 귀족이 가진 가치관에 맞는 주장을 하게 되었다. 그러니까 가치에 대한 탐구를 하지 않았던 것이다. 수학과 과학도 마찬가지였다. 힘을 가지거나 힘에 영합해야 학문을 탐구할 수 있는 환경이 주어지고 탐구 결과도 인정 받았다. 인류는 학문이 힘으로부터 독립되지 못하여 오랫동안 문명이 발전하지 못했다.

그러다 서양에서 과학 혁명이 나타났다. [과학 혁명_역사는 17세기 유럽에서 일어난 자연 과학 분야의 획기적 변혁을 뜻한다. 근대 과학의 확립뿐만 아니라 정신과 의식의 거대한 혁명을 일으켰다.] 이것에 의해 인문학과 과학의 발전 양극화가 나타나게 되었다. 인문학과 달리 과학은 과학적 방법을 통해 힘을 가지거나 힘에 영합하지 않아도 과학의 결과에 대한명예를 얻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수학도 수학적 방법을 통해 힘을 가지거나 힘에 영합하지 않아도 수학의 결과에 대한 명예를 얻을 수 있게 되었다. 인간을 탐구하는 인문 계열(문과)와 달리 자연을 탐구하는 자연 계열(이과)는 힘과 무관하게 발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것은 과학 혁명으로 시작되었다기 보다는 점진적으로 변화하다 과학 혁명이 되었다고 봐야 한다. 과학적 방법은 경험적 관찰과 측정을 이용하여 가설을 설정하고 예측하여 실험 및 검증하는 방법으로진리를 탐구하는 것을 말한다. 이것을 통해 나온 결과는 힘의 의사와 무관하게 학문적 진리가 되었다. 가령 인문학적 주장 중 하나인 자유주의는 힘을 가진 사람이 수용해야 사회에 널리 퍼지지만 과학적주장 중 하나인 만유인력의 법칙은 힘을 가진 사람이 수용하든 말든 학문적 진리가 되어 사회에 널리 퍼진다.

과학도 결과를 내기 전 연구 환경은 힘을 가지거나 힘에 영합해야 좋을 수 있었지만, 과학의 결과만큼은 힘과 관련이 적었다. 가령 마리 퀴리는 여성이기에 연구 환경을 비롯한 다양한 차별을 받았지만 연구 결과는 여성인 것과관련 없이 인정 받을 수 있었다. 마리 퀴리는 1903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하고 1911년 노벨 화학상을 수상했다. 과학은 이처럼 개인의 개성과 무관하게 결과만 내면 명예를 얻을 수 있었다. 자연 계열은 이렇게 힘과 무관하게 명예를 얻는 것으로 기하급수적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더구나 고정 관념에도 얽매이지 않을 수 있었다. 플랑크의 양자 가설은 흑체 스펙트럼의 실험 결과에 의해 본인도 수용하기 어려웠던 양자라는 개념을받아드릴 수 있었다. 과학적 방법으로 고정 관념을 깬 것이다. 이 시점에서 학문의 양극화는 뚜렷하게 되었다. 인문 계열은 힘이 가진 가치관에 영합하면서 가치에 대한 탐구가 정체되고 자연 계열은 힘과 무관하게탐구하면서 발전한다. 현재 인문 계열과 자연 계열의 사회적 대우 차이는 이러한특성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다.

 

동양과 서양의 문명 차이는 과학 혁명 유무의 차이가 크다. 여기서 말하는 동양과 서양은 각각 고대 중국과 고대 그리스와 그에 영향을 받은 문명을 지칭한다. 고대 중국은 인간을 탐구했고 고대 그리스는 인간과 자연을 탐구했다. 탐구의 차이로 동양은 인문 계열만 발전했다면 서양은 인문 계열과 자연 계열이 둘 다 발전한 셈이다. 고대 중국의 제자백가는 통치 방법을 주장한 수많은 사상가들을 말한다. 대표적으로 유가의 공자, 묵가의 묵자, 도가의 노자, 법가의 한비자 등이 있다. 정치사상이 주류였기에 아무래도 자연을 탐구하는 일은 드물었다. 자연을 탐구하더라도 인간 중심으로 바라본 자연이었다. 반면 고대 그리스는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은 인간을 탐구하고 탈레스와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과 자연을탐구했다.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해 자연 자체를 탐구하는 철학이 나타났다. 자연 철학의 탄생이다. 자연 철학은 이후 자연 과학으로 바뀌게 된다. 동양에서 과학 혁명이 일어나지 않았던 까닭은 동양은 애초에 자연 계열 탐구에 소홀했기 때문이다.

과학 혁명 유무의 차이뿐만이 아니다. 종교의 특성 차이도 있다. 동양의 종교는 유교, 불교, 도교, 힌두교 등으로 나뉠 수 있는데 유교는 수기치인과 인의예지를 주장한 정치사상이고 불교와 도교는각각 해탈과 신선이 되기 위한 수행 사상이고 힌두교는 윤회를 믿으며 내세를 위해 살아가는 초현실 사상으로 모두 내향적인 성향을 띤 종교였다. 명나라의 영락제가 장거리 원정을 후원하기도 했으나 대체로 중국 외는 전부 오랑캐라 멸시하며 폐쇄적이게되었다. 반면 서양의 종교는 기독교, 이슬람, 유대교 등으로 나눌 수 있는데 모두 유일신 사상으로 신의 가르침을 설파하기 위해 선교하는 것이 목적인 외향적인 성향을 띤 종교였다. 서양의 대항해 시대와 제국주의 시대에 선교사들이 있었다는 것을 상기하자. 동양은 내부 정치나 수행이나 내세를 위한 삶에 몰두했으나 서양은 선교하기 위해 전 세계를 떠돌아다녔다는것이다. 현재 기독교인의 수가 약 25억명이며 무슬림이 약 19억명이고 불교는 약 5억명에 힌두교는 약 10억명이다. 불교는 아시아에 분포해있으며 힌두교는 인도에 분포해있다. 모든 종교가 전파되어서 퍼지기는 했으나 교리의 차이가 있다. 불교와 힌두교는 교리 자체에서 종교를 전파 해야 할 당위성이 존재하지 않아 일부만 적극적으로전파하였고 기독교와 이슬람은 교리 자체에서 종교를 전파 해야 할 당위성이 존재하여 모두가 적극적으로 전파하였다. 그렇기에 불교와 힌두교가 전 세계로 퍼지지는 않았던 것이다. 동양은 기술이 발전하지 못했으면서 세계로 진출한 동기도 없었지만 서양은 기술이 발전했으면서 세계로진출할 동기도 있었다. 이 두 가지로 동양과 서양의 문명 차이가 발생했다.

서양의 기독교 문명과 이슬람 문명은 유사한 상황이었다. 둘 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을 수용했고 유일신 사상으로 세계에 진출할 동기가 있었다. 그럼에도 차이가 발생했던 것은 환경의 차이였다. 본래 고대 그리스 유산을 이어 받은 것은 이슬람이었다. 7세기 무렵부터 이슬람이 고대 그리스 서적을 아랍어로 번역하여 그들의 지식을 흡수했다. 이슬람은 광학과 연금술 등이 발전했다. 그 흔적으로 알칼리나 알코올 등의 아랍어가 과학의 용어로 쓰이고 있다. 그러다 12세기 무렵부터 중세 유럽에 대학이 나타나면서 고대 그리스의 지식을 물려받고 이슬람의 과학을 흡수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아랍어로 번역된 고대 그리스 서적을 다시 라틴어로 번역하고 고대 그리스뿐만 아니라 이슬람의과학도 배웠다. 그러면서 유럽은 고대 그리스와 로마 문명을 되살리는 르네상스로부흥하며 과학 혁명의 준비를 하였다. 반면 이슬람은 몽골의 침입으로 이슬람 문명이 파괴되어 몰락하면서 이슬람 근본주의로 향하는 것으로 과학의 발전이 정체되거나 퇴보하게 되었다. 이것에 의해 기독교 문명과 이슬람 문명이 차이 나게 되었다.

서양은 수많은 전쟁에 의해 기술이 발전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전쟁이 있어도 과학적 방법이 없으면 과학이 그렇게 발전하지 못한다. 동양도 전국 시대와 같은 일상적인 전쟁이 있었던 것을 상기하자. 전쟁을 아무리 해도 학문이 발전하지 못하면 기술은 발전하지 못한다. 전쟁은 전쟁 수단을 얻기 위해 우수한 환경을 제공할 뿐이지, 직접적으로 발전시키지는 않는다. 세계 대전에서 과학이 많이 발전했던 것은 과학적 방법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인문학은 힘을 가지거나 힘에 영합해야 명예를 얻을 수 있다. 그런 상황에서 소수의 힘이 가치에 대한 탐구를 할 확률이 낮고, 소수의 힘의 가치관에 영합하면서 가치에 대한 탐구를 하지 않게 되어 인문학은 발전할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현재 서양 인문학은 과거에 비해 상당히 발전한 것으로 보인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과학에 의해 힘을 가진 사람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서양 인문학은 과학을 기준으로 바라보면 알 수 있다. 서유럽을 중심으로 바라보겠다.

14~15 세기 흑사병이 확산하여 인구수가 급감하고 화폐 경제의 발달로장원 경제가 소멸하여 농노가 해방되고 백년 전쟁이 일어나고 서방 교회 분열이 일어났다. 14~16세기 르네상스로 고대 그리스와 로마 문명을 되살리면서 문명이 발전하기 시작했다. 과학 기술도 동시에 발전하면서 장기적인 항해가 가능한 범선과 방향을 알 수 있는 나침반의 발명등이 이루어져 15~17세기 대항해 시대의 초석을 마련하게 되었다. 성직자, 하급 귀족, 장인, 상인, 해방 노예 등 다양한 이들이 전 세계를 탐험하고 교역하며 정복하는 것으로 부를 쌓아 올렸다. 정복을 정당화한 것이 바로 기독교다. 정복 대상을 기독교로 개종해야 한다는 종교적 명분으로 세계를 정복했다. 과학 기술의 발달과 유일신 사상의 선교가 대항해 시대를 불러 유럽을 경제적으로 성장케 한 것이다. 16~17세기 대학에서 과학이 발전하면서 과학 혁명이 일어났다. 과학 혁명으로 보다 빠르게 발전하고 보다 많은 사람들이 힘을 쥐게 되었다.

16세기 교황이 아닌 성경을 강조했던 종교 개혁을 주장한 복음주의는교황청으로부터의 해방을 바라던 세속 제후와 사람들에게 영합하여 쓰이면서 개신교가 등장하게 되었다. 17세기 봉건제가 붕괴하면서 중앙 집권적 전제 정치 체제로 변화하면서 국왕의 권력은 신에게 받은것이라 주장한 왕권신수설을 왕들이 영합하며 쓰는 것으로 왕의 절대 권력을 정당화하는 절대주의가 시작되었다. 당시 종교 개혁과 절대주의가 성립될 수 있었던 까닭은 신흥 시민 계급인 상공업자 등 다양하고많은 사람들이 기존 기득권과 다른 힘을 쥐고 있었기 때문이다. 새로운 힘의 출현이 세상의 변화를 촉진시켰다. 가령 구텐베르크의 금속 활자 인쇄술로 루터의 주장이 확산되어 종교 개혁이 가능했고, 중상주의를 통한 시민 계급의 세수입으로 봉건 영주의 쇠퇴에 의해 절대 권력을 쥐게 된 왕정의유지가 가능했다. 절대주의에 대한 반발로 17세기 영국에서 명예혁명이 일어났다. 권리 장전을 통해 영국은 전제 군주제에서 입헌 군주제로 변화했다. 시민 계급의 성장으로 18세기 미국 독립 혁명과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면서 자유주의가 확산되었다. 당시 그런 흐름에 영합했던 사상들은 로크의 삼권 분립설과 몽테스키외의 법의 정신과 루소의 사회계약론 등이 있었다. 만약 사상이 힘에 영합하지 않았다면 의미가 없었을 것이다. 실제 루소의 사회 계약론은 루소 생전에 인정받기 어려웠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이러한 사상이 없었다면 힘이 있었더라도 결집되지 못하여 혁명은 어려웠을 것이다. 실제 현재 고질적 사회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까닭은 지금까지는 마땅한 사상이 없었기 때문이다. 18세기~19세기 산업 혁명으로 자본주의가 발전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자본가들의 노동자 착취도 발생했다. 당시 개인의 자유와 주권과 소유권을 주장한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와 같은 개인주의 체제는 체제에 맞는 윤리가 부족했기 때문에 자유라는미명 아래 자본가가 노동자를 착취했던 것이다. 그것을 보고 당대 사상가들은 개인주의 체제에 맞는 새로운 윤리를 주장하기보다는 낡은 윤리를 근거로 한 집단주의 체제인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를주장했다. 그런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는 노동자 계급에 영합하며 퍼지게되었다. 노동자 계급은 수를 모아 힘을 키워 혁명을 일으켰다. 공산주의 혁명이다.

서양 인문학은 과학의 발전과 다양한 힘의 출현하고 그 힘에 영합한 사상들에 의해 성사된 개혁과혁명이 나타나면서 보다 많은 인간들의 권리가 보장되면서 발전했다. 인문학이 가치에 대한 탐구를 하여 독자적으로 발전한 것이 아니라 과학에 의해 힘을 가진 사람이 늘어나면서 발전하게 된 것이다. 가치는 크게 변하지 않았는데 가치를 추구할 수 있는 이들이 늘어난 것이다. 서양 윤리는 기독교 윤리가 기본이고, 기독교 윤리는 신의 피조물은 모두 평등하다는 평등 사상이므로, 보다 많은 인간의 권리 보장은 본질적으로 윤리 대상 확대에 해당했다. 본래 성직자와 왕과 귀족만 인간으로 대하며 권리를 보장하다가 프랑스 혁명으로 상공업자와 같이힘을 쥔 시민의 권리를 보장하고 공산주의 혁명으로 노동자의 권리도 보장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흐름을 알면 현대의 PC주의와 여성주의도 이해할 수 있다. 윤리 대상을 확대하여 주류 외의 인종, 민족, 언어, 종교, 성별의 권리를 보장하자는 것이다. 대상에는 무지도 포함되어 반지성주의도 나타나고 있다. 윤리 대상을 짐승에게까지 확대한 것이 동물 보호주의다. 가축에 대한 생명 윤리가 그것 중 하나가 된다.

공산주의 혁명에 의해 윤리 대상 확대의 방식이 계급 투쟁이 되어버렸다. 그러면서 윤리 대상 확대 운동이 합리적 기준을 통한 인권 운동이 아닌 불합리한 이권 운동이 되었다. 계급 투쟁이 계급이란 집단만의 이익을 얻을 권리를 주장한 것이기에 이런 현상은 필연이었다. 이권 운동을 하는 이들은 부당한 이익도 계급 투쟁을 통해 얻은 전리품으로 해석하여 정당한 것으로취급하게 되었다.

윤리 대상 확대를 통해 많은 인간들의 권리가 보장되면서 자연스럽게 개인의 권리가 보장되는 개인주의체제가 들어섰다. 그러나 인문학이 새롭게 가치에 대한 탐구를 하지 않았기때문에 인간의 가치 관념은 왕정 시대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면서 집단주의 관념과 개인주의 체제의 충돌이 발생하게 되었다. 집단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집단주의 관념을 가진 이들이 개인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개인주의 체제에서부당한 개인의 자유 침해를 일으키게 되었다. 관념과 체제의 충돌, 이것이 현재 서양 문명의 모순으로 서양 사회의 본질적인 문제다.

현재 미국 인문학이 교조적으로 변한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이다. 명예를 얻는 성공을 추구하는 미국 사회에 영향을 받아 인문학적 명예를 바라는 미국인이 명예를얻기 위해 과거와 다른 윤리 대상 확대인 PC주의를 교조적으로 주장했기 때문이다. PC주의의 대상인 일부 여성, 흑인, 소수자, 이민자 등 또한 교조적으로 다른 미국인의 자유를 부당하게 침해하면서까지 강요하면서 그러한 현상은심화되었다. 집단의 이익을 위해 개인의 권리를 침해한다. 이런 것이 집단주의 관념과 개인주의 체제의 충돌이다.

 

한국을 비롯한 동양은 서양보다 더 심각하다. 동양은 서양의 문명을 흡수하면서 자유주의나 사회주의와 같이 체제는 받아드렸으나 관념은 기존 관념에덧씌웠다. 한국을 예로 들어보겠다. 한국 윤리 중 신분 차별과 같이 동서양이 겹치는 부분은 공적으로 사라졌지만, 연령 차별과 같이 동서양이 겹치지 않는 부분은 공적으로 남게 되었다. 유교는 정치사상으로 모든 가르침이 통치와 연결되어 당시 왕정이 국가를 지배하기 좋도록 설계되어차별을 윤리로 만들었다. 장유유서가 대표적이다. [장유유서는 오륜의 하나를 뜻한다. 어른과 어린이 사이의 도리는 엄격한 차례가 있고 복종해야 할 질서가 있음을 이른다.] 어른과 어린이 사이에 엄격한 차례와 복종해야 할 질서가 있는 것을 윤리로 지정해 가르쳤다. 그 가르침의 흔적이 바로 연상에 대한 존대어 강제다. 서양 문명의 관념을 기존 관념에 덧씌우기만 하여 신분 차별은 폐지하고 연령 차별은 유지하면서도, 차별 금지법과 같이 서양의 윤리 대상 확대는 추구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이런 사회 현상이 나타나게 된다. 자유를 외치면서 억압을 행하고 평등을 외치면서 차별을 행한다. 한국은 서양의 관념과 체제 충돌에 의한 모순을 흡수한 상태에서 윤리를 덧씌우는 바람에 유교에의한 사회적 모순도 남은 상태라는 것이다. 거기에 사실 더 심각한 것이 있다. 관념의 덧씌움은 조선에도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의 종교는 크게 민족 종교인 무교와 고려 국교인 불교와 조선 국교인 유교로 나눌 수 있다. 그런데 각각 변화를 겪을 때마다 인문학적 탐구를 통해 체계적으로 변화하기 보다는 무조건 지우거나덧씌우는 바람에 각각 사상의 특성이 남아버렸다. 조선은 무교에 의해 미신이 남고 불교에 의해 금욕주의가 남은 상태에서 유교의 가르침을 실천했다. 조선이 무교와 불교를 탄압했다 하지만 민간에 뿌리깊게 남은 것을 논리적 부정을 하지 않는 이상그에 대한 관념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자 민중은 미신을 믿고 욕망을 절제하는 바람에 분야가 성장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유교의 가르침을 실천하기 위해 유교 경전에만 매달리게되었다. 그것이 조선 말기다. 애초에 불교와 유교는 모순적이었다. 수행 사상인 불교는 해탈하기 위해 욕망을 금하거나 절제해야 했지만 정치사상은 유교는 통치자가되기 위해 학문에 대한 욕망을 추구해야 했다. 이런 모순적인 사상이 혼재하자, 통치자가 되기 위한 욕망과 생존하기 위한 욕구만 남고 나머지 욕망은 절제했다.

금욕주의는 본인이 금욕을 추구하면 금욕이란 욕망을 추구하는 욕망주의가 되고 타인에게 금욕을 강요하면원치 않는 금욕을 하기에 금욕주의가 된다. 일반적으로 인간의 본성과 어긋나는 것은 자발적으로 하지 않기 마련이다. 인간의 본성과 어긋나는 금욕주의가 윤리가 되자 윤리적인 사회를 이루기 위해 타인에게 금욕을 강요하게되었다. 그 결과 욕망이 큰 인간은 욕망이 작아지면서 사리사욕을추구하여 부패와 타락이 잦게 되었고, 욕망이 작은 인간은 욕망이 사라져 그저 살기만 하는 삶을 살게 되었다. 사농공상. 통치자가 되기 위한 욕망을 이루기 위한 유교에 대한 우대와 살아남기 위해 필수적인 농업에 대한 우대, 그 외의 분야는 천대했다. 그러면서 조선은 조선 말기에 유교와 농업을 제외한 대부분 분야가 망해버렸다.

산업 혁명이 일어난 영국에서도 기독교의 금욕주의가 있었으나 기독교의 금욕주의는 기독교 교리에의한 것이었으므로 기독교 교리에 의한 종교 전파를 명분으로 한 세계 정복은 금욕에 해당하지 않고 오히려 욕망을 가지고 하게 되었다. 거기다 장유유서의 차이가 있다. 동양은 연상이 연하에 가치관을 강요하는 것이 윤리다. 오히려 그런 강요에 복종하지 않는 연하가 부도덕했다. 그렇기에 동양은 더욱더 새로운 세대가 새로운 주장을 하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장유유서야말로 동양을 과거에 머물게 만들었던 닻이었다.

한국은 서양과 동양의 모순을 해결하지도 않으면서 서양의 윤리 대상 확대의 흐름만 따라가면서 사회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이제는 알았을 것이다. 한국에서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서양의 관념과 체제 충돌과 동양의 사회적 모순까지 전부 고려하여 개인주의 체제에 맞는 관념이 담긴 다양한 사상을 만들고, 그것을 사람들이 수용할 필요가 있다.

 

인문학 중 과학적 방법을 쓸 수 있다 여긴 분야는 사회 과학이 되었다. [사회 과학_사회 일반은 사회 현상을 지배하는 객관적 법칙을 해명하려는 경험 과학을 통틀어 이르는 말을 뜻한다. 연구 대상에 따라 사회학, 정치학, 경제학, 역사학 따위로 나뉜다.] 그러나 사회 과학은 자연 과학과 달리 과학적 방법을 쓴다고 하더라도 정확한 결과를 내기가 어렵다. 범위나 방식 등이 다르기 때문이다. [나비 효과_사회 일반은 어느 한 곳에서 일어난 작은 나비의 날개짓이 뉴욕에 태풍을 일으킬 수 있다는 이론을 뜻한다. 미국의 기상학자 로렌즈가 사용한 용어로, 초기 조건의 사소한 변화가 전체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이르는 말이다.] 자연 과학은 나비의 원자부터 탐구하면서 체계를 갖춰나간다면 사회 과학은 나비의 날개짓으로 뉴욕에태풍을 일으키는 현상부터 탐구하고 있다. 세상을 이루는 물질의 근원부터 탐구하면서 발전한 자연 과학과 사회 현상을 탐구하려는 사회 과학이 같을 수가 없다. 토대가 완전 다르다. 과학적 방법을 쓰려면 경험과 실험과 재현 등보다 먼저 실험에 쓰이는 명제가 학문적 진리여야 한다. 그러나 사회 과학에서 근거로 삼는 가치는 학문적 진리가 아니다. 진리가 아닌 명제를 토대 삼아 과학적 방법을 쓴다 한들 의미가 없다. 물리학에서 과학적 방법을 사용하는데 쓴 중력에 관한 명제가 만유인력의 법칙과 같은 학문적 진리가아닌 것이라 가정해보자. 어떻게 되겠는가? 그 과학적 방법은 의미가 없다. 지금 사회 과학은 그런 것과 다를 바 없다.

접근 방식이 달라야 한다. 가령 특정 상품에 대한 수요가 발생하는 원인을 찾는다고 해보자. 그러면 우선 상품이 인간에 끼치는 영향을 자연 과학적으로 분석하는 것으로 시작해야 한다. 그걸 토대로 사회 과학이 수요가 발생하는 원인을 찾으면 된다. 사회 과학은 과학적 방법에 몰두하기 보다는 자연 과학을 활용하는 법에 더 집중해야 한다. 사회 과학 분야에 과제가 생기면 과제 내 자연 과학의 영역은 자연 과학 분야가 지식을 찾거나탐구하면 된다.

 

사회 과학이 과학이 되기 위해서 필요한 세 가지가 있다.

 

첫째, 유사 과학 배제. 자연 과학이 유사 과학을 배제한 것과 같이 사회 과학도비과학적인 주장을 배제해야 한다. 과학을 자칭하면서 유사 과학을 학문에 쓴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유사 과학을 전제로 한 과거의 사상과 철학 또한 그것을 참고 자료로만 여겨야지 학문에 활용할생각을 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이제 쓸 수 없다. 앞으로도 그렇다. 과거 사상과 철학은 인간의 자아에 대해 수많은 탐구를 했다. 그런데 만약 인공 자아가 개발된다면 자아의 원리가 증명된 것이나 다름 없기에 그 탐구들은 대부분 쓸모가 없게 된다.

 

둘째, 중립성. 자연 과학의 증명한 학문적 진리가 특정 집단이 아닌 인류공동의 이익으로 이어지는 것과 같이 사회 과학 또한 인류 공동의 이익으로 이어지는 학문적 진리를 탐구해야 한다. 자연 과학이 보편적으로 가치 있는 것은 중립성 때문이다. 힘에 영합하지 않아도 결과는 명예를 얻을 수 있는 자연 과학의 특성상 권력으로부터 독립되어 중립성을갖게 된 것이다. 그렇기에 거의 모든 인류의 지지를 받는다. 사회 과학 또한 중립성을 가져야 한다. 특정 집단의 이익을 위한 탐구는 금해야 한다. 사회 과학이 특정 집단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한 논리를 짜낸다면 단순한 이익 집단에 불과하여 과학이라할 수 없다.

 

셋째, 본질. 자연 과학이 미시적인 탐구부터 시작하여 본질을 보고 학문적진리를 증명하는 것과 같이 사회 과학 또한 본질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음식으로 보이는 조형물을 음식으로 여긴 다음 탐구하는 것이 우스꽝스럽듯이 사물 자체의 성질이나 모습을 못 본다면 탐구하는 의미가 없다. 자연 과학과 사회 과학은 다루는 영역이 다르므로 본질을 보기 위해서는 다양한 인식이 필요하다. 사회 과학은 다루는 주제가 각각의 분야와 겹치는 것이 많다고 하는데 그것이 바람직하다. 분야마다 다른 관점·관념·감각으로 주제에 접근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여 다양한 인식을 모으면 현상의 본질을 보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된다. 따라서 어떤 문제 해결을 하기 위해서는 특정 분야에서만 접근할 것이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서 동일한문제에 접근하여 다양한 인식을 모아 현상의 본질을 찾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사회 과학은 자연 과학의 학문적 진리와 함께 각 분야의 관점·관념·감각을 체계화하여 본질을 볼수 있는 구조를 확립한다면 보다 과학적이게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인간은 곧잘 쉬운 답에 의존하려고 한다. 눈 앞에 보이는 것을 답으로 여기려 하게 된다. 그러나 그것은 답이 아닐 확률이 높다. 인문학은 본질을 보고 학문적 진리를 밝혀 사람들이 쉬운 답에 이끌려 잘못된 길로 가는 것을 막고바른길로 안내해야 한다. 길잡이가 현혹되면 안내 받는 사람들도 현혹된다.

 

 

 

2. 가치

 

고질적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체제에 맞는 가치가 있어야 한다. 다수의 인간이 민주정과 같은 개인주의 체제에서 왕정과 같은 집단주의 관념으로 살아가면 다시 왕정과같은 사회로 퇴보하게 될 수 있다. 왕정의 가치관에 의해 수직 사회가 옳다 여기거나 부당한 자유권 침해가 좋다 여길 수 있다. 그런 이들이 다수가 되면 민주주의 체제의 원리에 의해 왕정과 다를 바 없는 사회가 된다. 그야말로 민주정의 탈을 쓴 왕정이다. 그러지 않기 위해서는 대다수의 인간이 왕정의 가치관이라는 왕정 잔재에서 벗어나 민주정에 맞는가치관을 가져야 한다.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현상의 본질부터 봐야 한다. 왕정의 가치는 무엇인가? 우선 가치가 무엇인지 알아보자. [가치_철학은 인간의 욕구나 관심의 대상 또는 목표가 되는 진, 선, 미 따위를 통틀어 이르는 말을 뜻한다.] 여기서 진은 진리를 말하고 선은 도덕을 말하고 미는 아름다움을 말한다. 진리는 탐구로 찾고 도덕은 윤리로 체계화하며 아름다움은 예술로 추구한다. 가치의 관점은 사전적 정의와 같이 대상 또는 목표가 되는 무엇을 바라보고 있었다. 인간이란 대상이 옳거나 그르다. 상품이란 대상이 좋거나 싫다. 대상에 가치가 있다고 여기며 대상에 대한 가치 판단을 해온 것이 지금까지의 가치로 대상에 가치판단을 한 것이 왕정의 가치였다.

인간의 행동 원리에 영향을 끼치는 순서는 보통 진, 선, 미다. 진리는 만유인력의 법칙과 같이 대부분 부정하지 않고 영향을받는다. 그러나 도덕은 유교, 기독교, 공리주의 같이 비슷한 도덕관념을 가진 이들이 모인 사회마다 다를 수 있어 영향도 사회마다 다르다. 아름다움에 있어서는 색, 형태, 소리 등을 비롯하여 그걸 바탕으로 만들어지는 미술, 음악, 소설, 만화, 영화, 게임 등과 같이 개개인마다 다를 수가 있어 영향도 개개인마다다르다. 그렇기에 보통 인간의 다른 행동 원리는 도덕을 체계화하여개개인의 도덕심에 영향을 끼치는 윤리가 가장 큰 영향을 끼친다. 윤리를 통해 가치를 알아보자.

 

[윤리_철학은 인간 행위의 규범에 관하여 연구하는 학문을 뜻한다. 도덕의 본질·기원·발달, 선악의 기준 및 인간 생활과의 관계 따위를 다룬다.] 도덕을 연구하는 학문이 윤리다. 본래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는 옳고 그름은 학문이 있기도 전에 존재했기 때문에 이미 존재하는 도덕과그걸 연구하는 윤리로 분리되었다. 그렇기에 보통 도덕은 관습에 해당하고 윤리는 성품에 해당한다. 관습화된 도덕을 연구하여 보다 바른길을 안내 하는 것이 윤리라 할 수 있다. 윤리를 배워 성품을 갖춰 관습화가 되면 다시 도덕이 된다. 그걸 연구하여 체계화하여 바른길을 안내하면 다시 윤리가 된다. 그러면 인류의 보편적인 도덕과 윤리의 본질에 대해 알아보자.

동양부터 접근하겠다. 유교의 성선설과 성악설을 살펴보자. [성선설_철학은 사람의 본성은 선천적으로 착하나 나쁜 환경이나 물욕으로악하게 된다는 학설을 뜻한다. 중국의 맹자가 주장하였다.][성악설_철학은 인간의 본성은 이기적이고 악하므로 선 행위는 후천적습득에 의해서만 가능하다고 보는 학설을 뜻한다. 중국의 순자가 주장한 것으로, 인간은 선천적으로 한없는 욕망을 가지고 있어 그대로 두면 싸움만이 일어나 파멸하기 때문에 예로서 바로잡아야 한다고 하였다.] 이 둘은 인간에 윤리 판단을 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외 성무선악설이나 성기호설도 같다. 불교의 번뇌와 업을 살펴보자. [번뇌_불교는 마음이나 몸을 괴롭히는 노여움이나 욕망 따위의 망념을 뜻한다.][업_불교는 미래에 선악의 결과를 가져오는 원인이 된다고 하는, 몸과 입과 마음으로 짓는 선악의 소행을 뜻한다.] 이 둘은 인간에 윤리 판단을 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서양으로 접근하겠다. 기독교의 원죄와 칠죄종을 살펴보자. [원죄_기독교는 인류의 시조인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 먹은죄 때문에 모든 인간이 날 때부터 가지고 있다는 죄를 뜻한다.] [칠죄종_카톨릭은 본죄의 일곱 가지 근원을 뜻한다. 교오, 간린, 미색, 분노, 질투, 탐욕, 해태 따위를 이른다.] 이 둘은 인간에 윤리 판단을 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윤리는 대상에 윤리 판단을 했다. 이것이 지금까지 윤리의 본질이다.

윤리에는 규범 윤리학과 응용 윤리학과 분석 윤리학 등이 존재한다. [규범 윤리학_철학은 사람이 어떻게 행동하여야 할 것인가에 관한 보편적 원리를 연구하는 학문을 뜻한다.] 규범 윤리학에서 연구한 보편적 원리를 바탕으로 응용하거나 분석한다. 그렇기에 보통 규범 윤리학이 기본이 된다. 규범 윤리학에는 의무로 접근한 칸트주의와 귀결로 접근한 공리주의와 덕으로 접근한 니코마코스 윤리등이 있다. 보편적 윤리인 황금률도 규범 윤리학에 해당할 것이다.

[규범은 인간이 행동하거나 판단할 때에 마땅히 따르고 지켜야할 가치 판단의 기준을 뜻한다.] 여기서 가치 판단의 기준을 대상에 윤리 판단을 한 것으로 정했다. 그리고 대상에 윤리 판단을 한 결과 대부분의 윤리는 인간의 욕망을 악으로 규정했다. 인간의 본성은 선하다 말한 성선설도 예외는 아니다. 인간의 본성은 선하다 하였으나 그런 본성을 키우지 않으면 악인이 될 수 있으므로 수행을 통해욕심을 없애야 한다고 주장했다. 즉 성선설조차 인간의 본성은 선하나 욕망은 악하다고 한 것이다. 지금까지 거의 모든 윤리는 인간의 욕망은 악하다라는 전제로 접근하게 되었다.

 

 

인간의 욕망은 악하다는 전제로 인간의 욕망은 금하거나 절제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금욕주의다. [금욕주의_철학은 정신적·육체적 욕망이나 욕구 및 세속적 명예나 이익을탐하는 모든 욕심을 억제하여 종교나 도덕에서 이상을 성취하려는 사상을 뜻한다. 불교나 기독교에서도 이 사상을 볼 수 있다.] 불교의 금욕주의는 번뇌에서 벗어나 해탈에 이르기 위한 수단으로 보고 기독교의 금욕주의는 사탄의유혹에 빠지지 않고 신의 구원을 받기 위한 수단으로 본다. 수행 사상인 불교에서 금욕은 수행 방법의 기본이나 유일신 사상인 기독교에서는 해석에 따라 구원받을 수 있는 방법이 다양하다. 면죄부가 대표적이다. 불교나 기독교나 종파나 교파에 따라 다르지만 기본적으로 금욕을 중시하다. 그 외 유교의 성선설과 성악설, 플라톤이나 스토아 학파 등이 있다. 대부분 사상에서 인간의 욕망은 악하다 보았기에 거의 모든 윤리는 금욕주의적이다. 그것으로 악을 줄이고자 했다. 그러나 그 때문에 인간은 자유 의지를 잃고 성장하지 못하게 되었다.

[욕망은 부족을 느껴 무엇을 가지거나 누리고자 탐함. 또는 그런 마음을 뜻한다.] [탐하다는 어떤 것을 가지거나 차지하고 싶어 지나치게 욕심을 냄을 뜻한다.][욕심은 분수에 넘치게 무엇을 탐내거나 누리고자 하는 마음을 뜻한다.] 정리하면 욕망은 부족을 느껴 분수에 넘치게 무엇을 바라는 마음을 뜻한다. 지금까지 윤리는 그런 바람에 의해 악이 나타난다고 보고 금욕을 주장했다. 그러나 욕망은 악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가치가 나타난다. 인간은 분수에 넘치게 무엇을 바라는 마음이 있어야 자유 의지를 가지고 노력하여 성장해 한계를넘어 높은 가치 생산할 수 있게 된다. 금욕을 하게 되면 그런 가치도 나타나지 않는다. 금욕은 수많은 가치 중 악을 제거하기 위해 모든 가치를 죽인다. 금욕하게 된 인간은 단순히 밥을 먹고 잠을 자고 똥을 싸는 존재가 되어버린다. 그야말로 무가치하다.

 

인류의 역사는 대부분 왕정과 같은 지배의 역사였다. 지배의 역사에서 윤리는 지배를 위한 수단으로 악용되었다. 왕정의 정치사상에서 윤리는 지배를 위한 수단으로 쓰였다. 유교는 왕정의 정치사상으로 유교의 윤리는 지배를 위해 만들어졌다. 신분으로 역할을 정해두고 왕과 신하, 남성과 여성, 성년과 미성년과 같이 정해진 역할 내에서 가져야 할 덕목을 체계화하여 가르쳤다. 그러면서 나타난 차별을 장유유서와 같이 윤리화하였다. 그런 상황에서 조선 왕정은 왕정의 지배를 공고히 하기 위해 유교의 가르침인 삼강오륜에서 삼강을왜곡하는 일까지 저질렀다. 그런 점에서 기독교의 유일신을 전제로 한 평등사상은 민주주의의 발전에 도움이 되었다 볼 수 있다. 모두가 신의 종으로 신에게 복종하는 것으로 평등하다고 주장한 것이긴 했으나 인간 사이에서는 차별을윤리로 만들지 않고 평등했기에 가치에 대한 탐구를 하지 않고 윤리 대상 확대만 해도 개인주의 체제가 나타날 수 있었던 것이다.

금욕주의도 마찬가지였다. 금욕주의는 금욕을 해야 할 대상이 지정되지 않아 지배자가 피지배자에게 금욕을 강요하여 이용하게되었다. 피지배자가 욕망을 가지고 지배에서 벗어나기 전에 그런 욕망을갖지 못하도록 금욕을 강요한 것이다. 욕망을 빼앗긴 인간은 자유 의지를 잃어버렸다. 자유 의지를 잃고 아무런 개성이 없는 인간이 되었다.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이용하기가 매우 쉽다는 것이다. 피지배자는 자유 의지를 잃고 지배자의 지배에 복종하게 되었다. 지배자가 피지배자에게 금욕을 강요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피지배자가 욕망을 가지고 권리를 요구하면 지배를 지속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 혁명이 일어나 왕정은 붕괴할 것이다. 실제 서양은 그렇게 하여 왕정이 붕괴했다. 금욕주의를 윤리로 배워 금욕주의가 왕정의 윤리라는 것이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그러면 금욕주의가 현재 사회에 끼치는 영향에 대해 알아보자.

 

첫째, 부자유. 윤리는 사람으로서 마땅히 행하거나 지켜야 하므로 금욕이윤리가 되면 금욕을 강요하게 된다. 금욕은 인간의 본성과 어긋나 자발적으로 하지 않기에 더욱 더 강요하게 되었다. 불교의 금욕주의는 절제이며 모든 욕구나 욕망을 금하는 것이 아니라 하지만, 그것이 윤리가 되면 강요하는 인간의 주관적 기준에 따라 욕구나 욕망을 금하거나 절제하게 만들게된다. 자기 수행 사상을 윤리로 만드니 본인 수행을 타인에게 강요하고있다. 그러면서 개인의 자유가 침해되게 된다. 금욕과 같이 인간의 본성과 어긋나는 것이 윤리가 되면 개인은 윤리를 강요당하여 부자유를 겪게된다. 금욕이 윤리인 사회는 개인이 욕망을 가지고 소비를 하면욕망에 의한 사치는 죄라면서 공격한다. 심지어 책임 전가까지 한다. 정부가 IMF를 국민의 과소비 때문이라 말하듯 말이다. 금욕을 강요당한 많은 학생들은 어린 시절 누리지 못한 자유에 극심한 결핍을 느낀다. 어린 시절 즐기지 못한 인형이나 게임기를 사서 즐겨도 같이 놀 친구는 없다. 그걸 평생 후회하는 사람이 많다. 성적인 욕망도 악이라며 나라 전체가 성욕을 금하는 것을 강요한다. 그 결과 한국은 성매매 금지, 포르노 금지, 온갖 성 문화 규제와 검열 등이 일어나고 있다.

 

둘째, 무개성. 욕망이 금해지거나 절제되면서 바라는 것이 없어지거나 적어진다. 바라는 것이 없어진 인간은 아무 가치도 생산하지 않고 적어진 인간은 사리사욕을 추구할 수 있는돈에 집착하게 된다. 절실히 바라는 것이 없으니까 보편적으로 바라는 것을 이룰수 있는 돈을 바라게 되는 것이다. 보통 선입견에 의해 금전 만능주의가 인간의 욕망에 의한 것이라 착각할 수 있는데, 욕망이 아닌 금욕에 의한 것이다. 모든 문제는 일차원적으로 접근하면 본질을 보기 어렵다. 현상의 원리를 파악해야 한다. 인간이 특정 목적이 아닌 돈이란 수단을 바라는 것은 진정한 의미에서 절실하게 바라는 것이 없기때문이다. 욕망이 크고 다양했다면 돈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명확한목적을 바랐을 것이다. 그렇게 하여 욕망이 적어지는 바람에 돈을 위해서라면 감옥도갈 수 있다는 개성이 없는 금전 만능주의자가 늘어나게 되었다.

 

셋째, 무의미. 바라는 것이 없는 인간은 무의미한 삶을 살게 된다. 아무런 의미가 없다. 진심으로 바라는 것이 없으니까 시간을 무용하게 쓴다. 생산성 있는 활동을 하지 않는 것은 바라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왜 학교 폭력이 일어난다 보는가? 인간의 악한 욕망 때문으로 보이는가? 아니다. 진정한 의미에서 바라는 것이 없으니까 폭력에 시간을 쓰고있는 것이다. 학교 폭력에 가담하다 스포츠를 하고 나서 폭력에 손을 때는사례가 있다는 것을 상기하자. 바라는 것을 이루기 위해 쓸데 없는 것에 시간을 쓰지 않게 되면서 학교 폭력을 하지 않게 된 것이다. 큰 욕망을 가져야 폭력과 같은 것에 쓸 시간이 사라지면서 학교 폭력도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바라는 것이 없으니까 노력도 하지 않는다. 가르치는 것만 배우고 그 외의 지적 호기심도 없다. 진리적 탐구심도 없다. 일차원적이고 순간적인 쾌락만 찾는다. 창작물에서도 당장 결과가 나오는 전개만 찾게 된다. 취미도 욕망을 갖고 열정적으로 하기 보다 시간만 때운다. 일도 시키는 일만 하고 자발적으로 노력하여 성과를 내고 대가를 요구하지 않는다.

욕망을 버리고 무의미한 존재가 되면 이용당하기가 너무나도 쉬워진다. 현대의 사이비 종교에 세뇌 당하고 일부 집단의 이익만 주장하는 가치관에 휘둘리는 것은 욕망이적거나 없기 때문이다. 대부분 사이비 종교가 금욕을 말하고 그걸 위해 재물을 바치라말하기도 하는 것을 생각해보자. 금욕을 강요하고 세뇌하는 것으로 재산을 강탈하는 것이다.

 

금욕적인 이들이 많은 사회가 발전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진정한 의미에서 사회를 망치는 것이 금욕주의다. 욕망은 인간의 강한 바람을 말하고 금욕은 그런 강한 바람을 악하게 만들었다. 강한 바람을 갖지 못하니까 사회가 성장하지 못하고 정체된다. 사회가 정체되면서 죽어간다. 좀비의 나라다. 좀비처럼 무의미한 삶을 살다가 죽는다. 노는 것도 제대로 못하고 무용하게 살다 죽는다. 행복의 의미도 불행의 의미도 없다. 아무 의미 없이 죽는다.

한국 역사에서 세계에 의미 있는 결과가 적었던 것은 금욕주의와 장유유서 때문이었다. 금욕주의를 장유유서로 연하에게 물려주고 물려주었다. 현재 자본주의 체제에 의해 돈에 대한 욕망이 정당화된 한국과 조선에 머물러 있는 북한에서 세계에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는 인간 수의 차이가 얼마인지 생각해보자. 한국 역사에서 한국인은 무능한 것이 아니라 금욕에 의해 무능해져 버렸던 것에 불과했다. 조선 시대 청렴한 관리를 가리켜 청백리라 칭송했던 것과 같이 욕망이 없는 것이 옳다고 느끼게끔가치관을 비틀어놓았다. 청백리 같이 재물에 욕망이 없는 인간보다 재물에 대한 욕망과사람을 돕고자 하는 욕망을 가진 인간이 실제 가치가 있다.

인류가 망한다면 인간의 욕망 때문이 아니라 금욕 때문일 것이다. 정말 욕망이 컸다면 육체를 한계를 넘기 위해 불로불사를 달성하고 우주 진출에 성공했을 수도 있다. 그렇게 불로불사와 우주 진출에 성공하면 욕망에 의한 지구 환경 파괴는 큰 문제가 되지 않을 정도로과학이 발전했을 것이다.

 

 

인간의 욕망이 악하다는 전제로 악한 인간의 욕망에는 타인의 행복이 존재하지 않음으로 자기를 희생하여타인의 행복과 복리를 위하도록 가르쳐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이타주의다. [이타주의_철학은 사랑을 주의로 하고 질서를 기초로 하여 자기를 희생함으로써 타인의 행복과 복리의 증가를행위의 목적으로 하는 생각을 뜻한다. 또는 그 행위.] 요약하면 본인의 이익보다 타인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사상이다. 왜 이타주의가 윤리가 되었는가? 얼핏 보면 윤리가 되는 것이 당연하다 여길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의 이익에 타인의 행복이 존재할 수도 있다는 것을 상기하자. 개인의 이익에 타인의 행복이 존재한다 생각했다면 굳이 타인의 행복과 복지를 위해 희생하라고 말할필요가 없다. 인간의 욕망이 악이므로 개인의 이익에 타인의 행복이 아예없다고 생각하니까 그걸 윤리라 주장한 것이다.

이타주의와 대립하는 이기주의에 대해 알아보자. [이기주의_철학은 자기 자신의 이익만을 꾀하고, 사회 일반의 이익은 염두에 두지 않으려는 태도를 뜻한다.] 요약하면 본인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사상이다. 사회 일반의 이익은 염두에 두지 않으려는 태도라는 사전적 정의에서 인간의 이익 안에 타인의 행복이 존재할 리 없다는 보편적 인식이 있음을보여주고 있다. 이것이 지금까지 인류의 고정 관념이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자. 타인의 행복을 보고 본인이 행복했던 적이 단 한번도 없다고 말할 수 있는가? 대부분은 타인의 행복을 보고 본인도 행복했던 적이 있다. 그게 인간이다. [이익은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보탬이 되는 것을 뜻한다.] 타인의 행복으로 본인의 정신에 보탬이 되면 그것을 이익으로 여긴다. 그렇기에 본인의 이익만을 추구해도 타인의 행복을 위할 수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 일반의 이익은 염두에 두지 않는다는 것을 굳이 붙인 것은 이타주의와 대립한이기주의를 나쁘다고 말하기 위해서였다. 즉 자기를 희생하여 타인의 행복과 복리를 바라고 행동하는 이타주의를 선으로 만들기 위해, 굳이 사회 일반의 이익을 염두에 두지 않는다는 표현을 넣어 본인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이기주의를악으로 만든 것이다.

 

이타주의의 본질로 접근해보자. 다음의 문장에 대해 생각해보자. 애국심을 주의로 하고 사물의 순서나 차례를 기초로 하여 자기를 희생하여 국가의 국민의 행복과복리를 위해 행동한다. 이것이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전체주의적 희생이다. 어떻게 이런 구시대적인 희생 강요가 있을 수 있느냐며 화낼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은 이타주의의 사전적 정의에 국가와 국민이란 대상을 넣은 것일 뿐이다. 그러자 국가를 위해 국민을 희생시키는 전체주의적 희생이 나왔다. 이제는 알아야 한다. 이타주의는 대상이 정해진 바가 없기 때문에 악용되기가 너무나도 쉽다. 그래서 지배자가 이용하기가 너무나도 쉽다. 대상을 지배자로 설정하고 희생자를 피지배자로 설정하면 된다. 수직 사회에서는 그렇게 이용되고 있다. 이타주의는 타인을 이타적으로 만들어 본인이 이용하는 부류와 본인을 이타적으로 만들어 타인에게이용당하는 부류와 같이 두 가지로 나뉜다. 전자는 보통 왕, 교주, 부모, 성년, 남성 등이고 후자는 백성, 신자, 자녀, 미성년, 여성 등이다. 전자가 후자를 이타적으로 만들어 이용했다. 왕에 대한 충성, 교주에 대한 신앙, 부모에 대한 효도, 성년에 대한 복종, 남성에 대한 섬김 등. 이타주의로 지배나 이용을 정당화한 것이다. 지배자의 윤리에 세뇌된 인간은 지배자와 비슷한 태도로 접근하면 이용하기가 쉽다. 사이비 종교에 세뇌된 인간 대부분도 그런 식으로 이용당해 세뇌된 것이다. 이타주의를 윤리로 배워 이타주의가 왕정의 윤리라는 것이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그러면 이타주의가 현재 사회에 끼치는 영향에 대해 알아보자.

 

첫째, 무례함. 한국도 시대가 달라져 서양의 윤리 대상 확대가 실행되었다. 그러자 강자가 약자를 이타적으로 만드는 것뿐만 아니라 약자도 강자를 이타적으로 이용하는 사례가나오기 시작했다. 국민과 자녀와 미성년과 여성 등이 정부와 부모와 성년과남성 등에게 비논리적으로 때를 쓰며 억지를 부리면서 부당한 이익을 요구하게 된 것이다. 그걸 수용하게 된 이유 또한 이타주의의 영향을 받는다. 이타주의가 윤리가 되다 보니 지배자에 의해 이타적인 인간은 선인이 된다. 그런데 이타적인 인간은 필연적으로 타인에게 이용당하는 약자가 된다. 왕정의 윤리에 의해 선인은 약자가 되고 약자는 선인이 된다. 그런 과정의 의해 약자는 선인이라는 잘못된 편견이 생기게 된다. 동시에 선인인 약자와 대립하는 강자는 악인이라는 잘못된 편견도 생긴다. 이것을 가리켜 언더도그마라 부른다. 약자가 선인이라는 잘못된 고정 관념을 악용하여 부당한 이익을 요구하는 비논리적인 황당한 태도는대부분 이타주의를 근거로 한다. 일부 촉법소년의 범죄, 일부 여성들의 무고, 일부 노동자의 폭력 투쟁 등이 그렇다. 타인을 위해 희생하는 것이 옳으니 네가 나를 위해 희생하라는 것이다. 범죄를 저질러도 용서하고 무고를 해도 용서하고 폭력을 써도 용서해라. 그것이 이용하는 측의 이타주의다. 많은 사람들이 무례한 인간을 혐오하기도 하는데, 그것은 무례함을 혐오하는 것이지 인간을 혐오하는 것이 아니다.

가끔 타인을 도운 사람이 언론에 공개되는 일이 있다. 그러면 어떻게 되었는가? 온갖 인간들이 연락을 하여 본인도 도우라고 강요하거나 폭력까지 쓰기도 한다. 왜 그런 행동을 했을까? 그들이 이기적이었기 때문일까? 아니다. 이타적이었기 때문이다. 단지 이용하는 측일 뿐이다. 타인을 도운 인간은 타인에게 이타적으로 이용될 수 있는 인간으로 생각하고 이용해먹기 위해 그렇게 행동한 것이다. 사회의 온갖 무례함이나 미개함은 대부분 이타주의를 근거로 한다.

이기주의와 이타주의의 차이는 정당화 방법이다. 이익 추구는 같은데 이타주의는 윤리라며 부당한 이익 추구조차 정당화한다. 그러면서 타인을 이타적으로 만들어 이익을 얻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이타주의를 말하며 타인의 친절을 당연하게 여기며 감사할 줄을 모르게 된다. 무료로 가치 있는 일을 하지 말라는 말도 이타주의에 의한 것이다. 한번 무료로 해주면 이용당하는 인간으로 인식되어 끝까지 무료로 해달라 강요하게 되기 때문이다. 사회 복지 대상이 사회 복지사를 모질게 대하거나, 민원인이 공무원에게 사납게 대하거나, 관광지의 주민이 외지인에게 바가지를 씌우는 짓을 하거나 하는 등의 것들도 전부 이타주의가 원인이다. 인간을 대등한 인간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이타주의로 이용할 도구로 보니까 그런 무례함을 저지르는것이다. 길고양이 사료 등의 분쟁도 같다. 길고양이와 길고양이를 아끼는 본인을 위해 타인이 이타적으로 희생하라는 것이 현재 길고양이 문제다. 더치페이를 부당하게 여기거나 특혜를 당연하게 여기거나 하는 등도 같다. 청년, 열정, 인생, 바른, 가족 등의 단어가 신뢰도를 잃어버린 것도 일부 이들이 이런 단어를 악용하여 이타적인 관점에서 타인의 이타심을 요구하며 이용했기 때문이다. “청년이 열정을 갖고 하는 것이니 다소 품질이 떨어져도 이해해주세요.” “가족을 위하는 것과 같이 희생해주세요.” 사회 문화 온갖 것에 어떤 이유로 불편한 사람들의 주장 또한 이타주의를 근거로 한다. 불편한 사람의 이익을 위해 불편하지 않은 사람이 희생하라는 식으로 나오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논리로 설득하는 것이 아니라 본인의 주장이 옳다고 말하여 강요한다. 그걸 정당화하기 위해 낡은 윤리를 끌어오기도 한다. 본인을 위해 타인이 희생하는 것이 당연하다 여기니까 이런 무례한 행동을 하게 된다.

이렇게 이해하기 어려운 인간의 추악한 모습은 대부분 타인을 이타적으로 만들어 이용하려는 태도에서나온다. 정말 추악하다. 본래 모든 인간은 추악한 행동을 할 수 있는데 그걸 윤리로 정당화하였기 때문에 제약 없이 횡포를부리는 것이다. 서로가 서로를 이용하고 이용당할 수 있기 때문에 상대를보면 경계를 하게 된다. 이용당할까 걱정한다. 선수 쳐서 이용하려고 하기도 한다. 조금의 손해도 받아드릴 수 없는 것은 그걸 받아드렸다가 이용당하는 처지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타인을 위해 희생하는 것이 윤리가 되니까 이 모양이다. 이타주의는 일부를 제외하고는 서로를 이타적으로 만들어 이용하려는 생각을 부추기는 저질 윤리다.

 

둘째, 집단 이기주의. 집단 이기주의를 보고 이기적이라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아니다. 이타주의다. 집단 이기주의는 집단의 이익을 위해 개인이 희생하기 때문이다. 가령 기피 시설 설치를 반대하는 것을 지역 이기주의라는 집단 이기주의라 한다. 그런데 거기서 기피 시설에서 일하는 사람은 그걸 찬성할 수도 있다. 그러나 집단의 이익을 위해 그런 개인을 희생시킨다. 가끔 모든 개인이 집단의 이익을 위할 수도 있지만 시간이 흐르면 달라질 수도 있고 그걸 보편화할수도 없다. 이런 집단 이기주의는 실생활에서 경험할 수 있다. 집단의 이익을 위해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사례가 많기 때문이다. 산업을 규제하고 문화를 검열하는 모습을 일상적으로 보고 있다. 이타주의를 윤리로 만든 사회는 대부분 집단 이기주의에 의해 희생당한다. 집단의 이익을 위해 강요와 억압 또한 나타나게 된다. 희생당하고 싶지 않은 개인이 있으면 직설적으로 윤리를 명분으로 희생을 강요하거나 암묵적으로 동조압력을 통해 희생을 강요한다. 집단주의, 민족주의, 전체주의, 배타주의 등등이 이타주의를 근거로 한다. 이 때에도 이용하는 인간과 이용당하는 인간으로 나뉜다. 이용하는 인간은 강요하고 이용당하는 인간은 강요 당한다.

 

셋째, 책임 회피. 책임 회피 또한 이타주의에서 나타나게 된다. 이타주의를 윤리로 만들면 이타적으로 행동한 모든 것은 본인의 이익이 아닌 타인의 이익이므로 타인이책임지라고 하게 된다. “난 잘못한 것이 없어, 너를 위해서 한 것이잖아?” “난 잘못한 것이 없어, 네가 시켜서 한 것이잖아?” “난 잘못한 것이 없어, 모두를 위해서 한 것이잖아?” 실제 타인을 위한 것이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책임을 지게 되게 되면 이타주의를 말하며 타인의 이익을 위해서 한 것이므로 결과에 대한 책임을줄이거나 없애달라고 말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다 보니 보편적 책임 의식 자체가 성장하지 못한다. 이 때에도 이용하는 인간과 이용당하는 인간으로 나뉜다. 이용하는 인간은 책임을 회피하고 이용당하는 인간은 책임을 떠안는다.

 

이와 같이 이타주의는 인간이 인간을 이용하여 개인을 희생시키는 것과 개인에 대한 강요와 억압과책임 회피를 하게 하는 저질 사상에 불과하다. 대상이 정해져 있지 않고 인간의 본성과 어긋나는 것을 윤리로 지정하면 인간이 인간을 이용하기 위한 수단으로 악용되게 되어 있다. 이런 이유로 이타주의는 왕정의 윤리 중 하나가 된다.

 

경제 정책으로 접근하면 이해하기 쉬울지도 모른다. 낙수 효과는 강자가 약자를 이타적으로 만들어 이용한 것이고 소득 주도 성장은 약자가 강자를 이타적으로만들어 이용한 것이다. 둘 다 이타주의를 근거로 만들어진 것이기에 논리가 없다. 인간의 이타심 유무는 개인마다 달라 보편성을 갖출 수 없어 어떤 특정한 합리적 기준을 정하지못하여 논리가 성립되지 못한다. 누구는 이타적이고 누구는 이타적이지 않아 합리적 기준으로 삼을 수가 없는데 어떻게 이치로 이끌어 갈 수 있겠는가? 비논리적이고 불합리할 수밖에 없다.

흔히 기업의 부당한 이익 추구를 보고 이기적이라 생각하는데 틀렸다. 이타적이다. 단지 이용하는 측에 서고 있을 뿐이다. 그 이익 추구가 이타주의와 같은 윤리기 때문에 기업의 성장을 위해 불합리한 노동을 해야 한다는 것과 같은 국민이 희생해야 한다는 주장이나오는 것이다. 이타주의에 의해 노동자가 착취당하고 희생당하는 것이다. 이외 무능한 기업을 억지로 살리는 것도 이타주의에 의해 무능한 기업의 노동자 착취를 방관한 것에해당한다. 흔히 노조의 부당한 이익 추구를 보고 이기적이라 생각하는데틀렸다. 이타적이다. 단지 이용하는 측에 서고 싶을 뿐이다. 그 이익 추구가 이타주의와 같은 윤리기 때문에 노동자의 이익을 위해 불합리하게 물가가 올라도된다는 것과 같은 국민이 희생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것이다. 이타주의에 의해 소비자 물가가 높아 모든 소비자가 희생당하는 것이다. 이외 불필요한 중간 과정이나 담합 등도 이타주의에 의해 소비자 물가가 오른 것에 해당한다.

개인의 이타심을 근거로 한 정책을 계약으로 비유하면 다음과 같다. 인간의 이타심은 개인마다 달라 주관적이어서 인간의 이타심을 근거로 정책을 하는 것은 신용이 불확실한구두 계약을 믿고 계약을 방치하는 것과 같다. 낙수 효과에서 대기업의 이타심의 의존한 결과가 어땠는가? 사회에 보다 더 많은 부가 분배가 되었는가? 양극화가 심해졌다. 소득 주도 성장에서 국민의 이타심에 의존한 결과가 어땠는가? 내수 경제를 위해 자국 제품 소비가 늘었던가? 별반 차이가 없었다. 인간의 이타심에 의존해봐야 제대로 된 결과가 나올 수가 없다. 경제에 인간의 본성과 어긋나는 윤리를 섞으면 경제도 망하고 윤리도 망한다. 경제에서 효율을 추구하고 사회에서 윤리를 추구하면 된다.

 

지금까지 왕정 시대의 개인은 금욕에 의해 자유 의지를 잃고 이타주의에 의해 왕의 명령에 따르며희생했다. 그야말로 전형적인 왕정의 윤리다. 이것이 썩은 왕정 잔재 중 하나다. 오늘날 찐따 부류 또한 소수를 제외하고는 금욕주의와 이타주의 의해 망가진 인간이다. 욕망이 크고 이기적이어야 능동적으로 크게 바라는 것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이용당하지 않으며 살수 있는데 욕망이 작고 이타적이어서 수동적으로 크게 바라는 것이 없어 최선도 다하지도 않고 이용당하며 살게 된다. 인간이 악하다고 선동하면 쉽게 선동 당하기도 한다.

금욕주의는 인간의 능력을 썩게 만들고 이타주의는 인간의 성격을 썩게 만든다. 왕정의 윤리는 인간을 썩게 만들어 피지배자를 지배해왔다. 그럼에도 원리에 대해 생각하지 않고 일차원적으로 욕망이 나쁘니 금하자고 하거나 타인을 위해 희생하자고하니 왕정의 윤리에 의해 망가진 인간이 즐비하게 된 것이다.

윤리는 사회가 경제적으로 발전하면서 여유가 생김에 따라 보다 강하게 추구하게 되는데, 그로 인해 금욕주의와 이타주의에 의한 잘못이 더욱더 심해지게 된다. 문화 산업에서 과거보다 현재가 더욱 더 규제와 검열이 많은 까닭은 경제 성장과 윤리의 상관관계때문이다. 경제적 여유를 통해 다른 가치를 추구하면서 윤리도 추구하게되는 것이다. 그렇게 하여 경제가 성장하면 윤리 추구가 강해진다. 그러므로 경제가 성장할수록 체제에 맞는 올바른 윤리를 추구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한국 같이 사회 문제로 불행하게 된다.

 

 

모든 일반 인간은 주관적으로 옳은 행동을 한다. 이 명제는 윤리를 탐구하기 위해 필요하나 시작부터 다루면 이해하기 어려울 것 같아 여기서 언급하겠다. [옳다는 사리에 맞고 바름을 뜻한다.] 옳음은 말과 행동이 일의 이치에 맞거나 사회적인 가치 판단의 기준에 들어맞는 것을 말한다. 지능이나 감정에 장애가 없는 모든 일반 인간은 주관적으로 옳다고 여기는 행위를 한다. 지적 장애나 성격 장애를 제외하면 모두 그렇다는 것이다. 본인이 주관적으로 선이라 생각한 것뿐만 아니라 악이라 생각한 것조차 예외는 없다. 악이라 생각한 것도 자기 합리화를 통해 악을 정당화하여 옳다고 여기면서 행동한다. 아마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 세 가지 관점으로 접근해보겠다.

 

첫째, 부당한 이익을 윤리로 정당화한 것. 이것은 앞서 설명했기 때문에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금욕주의와 이타주의를 떠올려보자. 지배자가 피지배자의 욕망을 꺾어 지배하기 편하게 만들어 얻은 부당한 이익을 금욕주의로 정당화하였다. 지배자가 피지배자를 희생시켜 얻은 부당한 이익은 이타주의로 정당화하였다. 그 외 지배자의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해 왕권신수설이나 왕즉불 따위를 윤리로 내세웠다. 극단주의 종교 단체의 테러도 종교의 윤리를 내세웠다. 인종 차별, 식민 지배도 예외는 아니다. 우생학을 내세우며 타인종은 열등하기에 차별이 마땅하다거나, 종교를 내세우며 타민족을 구원하기 위해 지배를 해야 한다거나 등 다양한 윤리를 넣어 부당한 이익을 정당화했다.

 

둘째, 부당한 손해를 윤리로 정당화한 것. 타인의 의지로 행동을 한 인간은 당사자의 의지가 없기에 주관적으로 옳은 행동이라 판단되지 않냐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이타주의라는 주관적으로 옳은 행동을 하기 위해 본인의 의지를 포기한 것이므로 실질적으로는주관적으로 옳은 행동을 한 셈이 된다.

 

셋째, 부당한 이익을 욕구나 욕망으로 정당화한 것. 앞서 두 가지는 윤리에 해당하므로 그럴 수 있다 해도 범죄는 그렇지 않냐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범죄 또한 주관적으로 옳다고 생각하고 행동한다. 일반 인간은 모두 욕구나 욕망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분명 절도가 범죄인 것은 누구나 다 안다. 그러나 배가 고파서, 가지고 싶어서 저질렀다. 욕구나 욕망이 옳다고 여기게 만들어 행동한 것이다. 도박이나 마약 중독도 마찬가지다. 도박과 마약에 중독된 인간이 도박과 마약을 되풀이하는 것은 뇌의 보상 회로가 망가져 뇌 내에서는 그것이 옳은 행동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살인, 강간, 폭행 등도 마찬가지다. 가령 힘의 논리라 말하며 약자는 강자에 지배당하는 것이 맞는다는 식으로 행동할 수 있다. 설령 본인이 나쁜 행동을 하고 있다고 자각하고 인정하면서 나쁜 행동을 해도 마찬가지다. 그렇게 자각하고 인정하면서 나쁜 행동을 하는 것이 위선적이지 않기에 옳은 것이라 생각하면서 행동한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경우에도 일반 인간은 주관적으로 옳은 행동하게 된다. 인간은 그렇게 설계되어 있다.

 

사실 하나와 셋은 본질적으로는 같다. 다른 점은 강자가 부당한 이익을 얻을 때에는 윤리로 정당화하고 약자가 부당한 이익을 얻을 때에는자기 합리화나 책임 전가 등으로 정당화한다. 그것뿐이다. 현재 사회에 발생하는 일반 인간이 일으키는 모든 현상은당사자가 주관적으로 옳다고 생각하고 행동한 것이라 보고 탐구해야 한다. 사회 문제에 해당하는 범죄를 비롯해 차별, 강요, 억압, 검열, 규제, 착취, 혐오 등도 전부 그렇다. 인간의 행동 원리를 파악할 때에는 어째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알아보기보다는 어째서 그걸 바르다여겼는지를 알아보는 것이 좋다.

인간은 모순된 행동을 하기도 한다. 그것은 옳다는 것이 너무나도 다양하기 때문에 다양한 옳음을 실천하다 모순이 발생하는 것이다. 사회 일반의 윤리를 위해 공정한 경쟁을 주장하면서 전통적인 도덕관념을 위해 가족의 비리를 용인한다거나같이 말이다. 모든 일반 인간은 주관적으로 옳은 행동을 하기에 범죄를제외한 대부분의 사회 문제는 윤리를 근거로 한 것일 확률이 높다. 그렇게 윤리를 근거로 하여 사회에 해를 끼친 행위는 당사자의 도덕관념에 의한 잘못이기에 도덕적 죄라고 부르겠다. 윤리를 진리로 여기는 경향에 의해 도덕적 죄에 대한 개념이 아직 자리 잡혀 있지 않는데, 대표적으로 특정 종교의 윤리를 근거로 다른 국가에서 테러를 저지르는 것이 도덕적 죄에 해당한다. 그것이 범법에 해당하면 도덕적 범죄가 된다.

금욕주의와 이타주의가 윤리인 사회에서 보편적인 욕심과 이기심이 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것은그것이 옳은 행동이라는 근거가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금욕주의에 의해 바라는 것이 제거되어 돈이라는 보편적 가치에 집착하게 만든 것이고, 이타주의를 근거로 타인을 이용하려는 태도가 이기적으로 보이게 된 것이다.

본인이 옳은 행동을 한다 생각하기에 긍정하는 인간에 쉽게 유혹될 수 있다. 사기를 당하거나 사이비 종교에 세뇌를 당하는 것 등의 사례들이 보통 그렇다. 모든 일반 인간은 주관적으로 옳은 행동을 한다는 명제를 알고 있어야 자기 객관화를 통해 그런유혹에 당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런 것을 설득할 때에는 그것이 나쁘다 말하기보다는 논리를 통해 합리적으로 보다 나은 방향을 제시하는 것을 옳다고 여기게끔 하는 것이 좋다.

보통 이런 현상은 불교와 유교 같은 윤리로 나타난 관념의 충돌이나 왕정과 민주정과 같은 체제의충돌이나 집단주의 관념과 개인주의 체제와 같은 관념과 체제의 충돌로 나타난다. 이런 것은 전부 윤리를 체계적으로 정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회의 모순은 인문학의 책임이다. 정확히 사상과 철학의 책임이다. 모든 일반 인간은 주관적으로 옳은 행동을 한다. 이 명제를 알아야 사회 현상의 본질을 볼 수 있다.

 

 

왕정의 윤리는 인간을 대상으로 윤리 판단을 하여 인간의 욕망을 악으로 여긴 것을 바탕으로 한다. 그것이 잘못되었다. 그렇다고 하여 단순히 인간의 욕망을 선으로 규정하라는 것은 아니다. 인간의 욕망이 선이라 규정해도 그걸 악용하는 이들이 존재한다. 본인의 욕망이 선이므로 욕망에 의해 악행을 저지른 것은 본인의 책임이 아니라 본인의 행동에 영향을끼친 타인이나 사물의 책임이라 말하며 책임 전가하기 때문이다. 욕망에 의한 선과 악의 기준이 여럿이기에 보편성을 갖출 수 없어 논리적인 기준으로 설정할 수 없다. 인간의 욕망은 보편 윤리에 설정할 수 없다. 합리적 기준이 없어 무엇이 선이고 악인지 의견이 분분하여 서로 싸우기만 하게 될 뿐이다. 다른 식으로 접근해야 한다.

사상은 합리적 기준이 있어야 논리적이게 된다. [합리는 이론이나 이치에 합당함을 뜻한다.][논리는 말이나 글에서 사고나 추리 따위를 이치에 맞게 이끌어가는 과정이나 원리를 뜻한다.] 이치에 맞는 합리적 기준이 있어야 말이나 글이나 사고나 추리 따위를 기준을 따라 이치에 맞게이끌어 갈 수 있는 것이다. 보통 합리적 기준이 없는 사상이 비논리적인 주장을 하고, 합리적 기준이 없는 윤리는 감수성을 말하며 비논리를 정당화한다. 논리가 없으니까 감수성을 말한다. 그렇다면 합리적 기준은 무엇인가? 무엇이 이치에 합당하다 할 수 있는가? 그것을 알기 위해서는 보편적 선과 악이 무엇인지에 대해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야 한다.

 

[선은 올바르고 착하여 도덕적 기준에 맞음을 뜻한다. 또는 그런 것.][악은 인간의 도덕적 기준에 어긋나 나쁨을 뜻한다. 또는 그런 것.][도덕은 사회 구성원의 양심, 사회적 여론, 관습 따위에 비추어 스스로 마땅히 지켜야 할 행동 준칙이나 규범의 총체를 뜻한다. 외적 강제력을 갖는 법률과 달리 각자의 내면적 원리로서 작용하며, 또 종교와 달리 초월자와의 관계가 아닌 인간 상호 관계를 규정한다.][윤리는 사람으로서 마땅히 행하거나 지켜야 할 도리를 뜻한다.][도리는 사람이 어떤 입장에서 마땅히 행하여야 할 바른길을 뜻한다.]

선과 악은 도덕적 기준에 따라 달라지고 도덕은 양심, 여론, 관습 등과 같이 탐구하지 않은 것일 수 있으므로 체계적으로 만들 수 있는 기준이 아니다. 따라서 윤리로 접근하여 보편적 선과 악이 무엇인지 생각했다. 무엇이든 본질을 보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보편적 선의 본질은 무엇인가? 무엇이 사람으로서 마땅히 행해야 할 바른길이라 할 수 있는가?

 

 

모든 생물의 기본 원리는 생존이다. 살아남아서 번식한다. 그러지 않은 종은 전부 멸종했기 때문에 반례는 존재하지 않는다. [생존은 살아 있음을 뜻한다. 또는 살아남음.] 생물의 기본 원리라는 학문적 진리에서 따온 생존은 윤리의합리적 기준이 되기 마땅하다. 인간이 바른길을 가기 위해서는 우선 살아있어야 한다. 사후를 윤리로 만든 사상 같이 예외는 있으나 기본적으로는 그렇다. 사상은 합리적 기준이 있어야 논리적이게 된다. 사상은 논리적이어야 인간을 설득할 수 있다. 사상은 인간을 설득할 수 있어야 힘에 영합하여 명예를 얻을 수 있다. 우수한 합리적 기준을 정하는 것이 사상이 갖춰야 할 기본이다. 생존이란 합리적 기준을 정하여 이치에 맞게끔 이끌어 가겠다. 생존을 기초로 한 사상을 가리켜 생존주의라 하겠다.

 

생존은 살아남음이다. 생존주의의 기본 윤리는 살아남는데 적합해져야 한다. [적자생존_생명은 환경에 적응하는 생물만이 살아남고, 그렇지 못한 것은 도태되어 멸망하는 현상을 뜻한다. 영국의 철학자 스펜서가 제창하였다.] 인간도 생물인 만큼 살아남기 위해서는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강함을 가지는 생존 적합을 추구해야한다. 생존주의는 생물의 본능과도 같은 생존을 우선시한다. 인간은 자연스럽게 살 수 있으면 그러는 것이 낫다. 죽음도 자연스러운 현상이나 생존이 우선되어 죽음보다 생존을 추구한다.

자유와 평등도 이것이 기본이 되어야 한다. 생존에 적합하지 않아 생존할 수 있도록 통제해야 한다면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게 되는 것이고, 개인을 특별하게 대한다면 개개인이 평등하지 못한 것이 된다. 따라서 모든 일반 인간은 생존에 적합해져야 한다.

일반 인간은 강해질 수 있어야 여유가 생겨 장애를 가진 인간도 지킬 수도 있는 것이다. 진정 약자를 위해서라면 강자가 될 수 있는 인간은 강자가 되어야 한다. 생존을 위한 강함을 갖출수록 선에 해당하고 그렇지 못할수록 악에 해당하게 된다. 이는 체력이나 지력뿐만이 아니라 관점이나 관념도 포함된다.

생존에 체력과 지력이 포함되는 것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이해할 것이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한계가 있음을 인지해야 한다. 노력해도 극복할 수 없는 영역과 노력하면 극복할 수 있는 영역이 존재한다. 본인이 스스로 정하지 않은 육체의 한계는 당장은 노력해도 넘을 수가 없고 본인이 스스로 정한관념의 한계는 노력하여 넘을 수 있다. 육체의 한계를 겪고도 노력하는 인간은 휴식을 취할 필요가 있고 스스로 한계를 규정하고 노력을 포기한 인간은 욕망을 가지고 노력을 해야 한다. 육체의 한계는 육체 단련을 통해 한계를 늘려야 한다. 단련 한계에 다다르면 그 이상은 과학의 도움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이렇게 선천적 성질인 육체와 후천적 성질인 관념은 분리해서 바라봐야 한다.

노력을 완전 부정해서도 안되고 노력이 전부인 것도 아니다. 인간은 육체적 한계가 존재하는 생물이다. 인간은 한계라는 합리적 기준이 있어야 논리적으로 행동할 수 있다. 개인이 욕망을 가지고 관념의 한계를 넘어 노력하는 것으로 성장하여 생존에 적합하게 되는 것이생존주의의 미덕이 되고, 육체의 한계를 넘어 노력하는 것으로 육체를 손상시켜 생존에부적합하게 되는 것이 생존주의의 악덕이 된다.

관점과 관념은 현대 사회의 특성상 자살로 인한 생존 실패가 잦기 때문에 강조되게 된다. 인간의 자살은 불행에 의함이 많다. 불행하기에 죽는다. 그런데 인간의 행복과 불행은 주관으로 결정된다. 주관으로 불행하다 인식하면 불행한 것이다. 그런 인식을 만드는 것이 가치관이란 관점이나 가치란 관념이다. 사물을 어떻게 보고 느끼냐에 따라 가진 것을 가치 있게 여겨 행복할 수 있고 무가치 하게 여겨 불행할 수 있다. 가령 자녀는 부모가 선물한 유행하지 않는 전자제품을 사랑이 담긴 선물로 보고 가치 있게 느껴행복할 수 있고 유행하지 않음을 보고 무가치하게 느껴 불행할 수 있다. 여기서 후자는 불행을 느껴 생존에 불리해졌기 때문에 그걸 약자가 되었다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집단의 유행을 강박적으로 따라가야 한다는 관념에 의한 것이다. 그러므로 인위적인 관념에 의한 불행이므로 본래 겪지 않아도 될 불행이다. 이와 같이 인위적인 관념에 의한 불행은 본래 겪지 않아도 될 것이기에 너무나도 안타깝다. 어떤 이는 집 안에 벌레 흔적만 보여도 불쾌감을 느끼고 불행해하며 거주를 포기하기도 하지만 어떤이는 집 안에 사건사고 흔적이 있어도 신경 쓰지 않고 거주한다. 어떤 이는 일반 성욕 창작물을 접해도 불쾌감을 느끼고 불행해하며 검열과 규제를 주장하지만, 어떤 이는 이상 성욕 창작물을 접해도 신경 쓰지 않고 창작의 자유를 존중한다. 어떤 이는 연령의 평등한 관계에 불쾌감을 느끼고 불행해하며 전통적인 도덕관념을 근거로 차별을주장하지만, 어떤 인간은 연령의 평등한 관계를 환영하며 자유롭게 교류한다. 인위적인 관념에 영향을 적게 받아 자유롭게 사는 것으로 불필요한 불행을 겪지 않아 생존에 적합하게되는 것이 생존주의의 미덕이 되고, 인위적인 관념에 영향을 크게 받아 불쾌하게 사는 것으로 불필요한 불행을 겪어 생존에 부적합하게 되는 것이 생존주의의 악덕이 된다.

 

생존이 인간의 생물로서의 윤리라면 자유는 지성으로서의 윤리라 할 수 있다. 모든 동물은 지능이 높을수록 자유를 바란다. 흔히 자유와 평등이라 표현하는데 사실 인간은 평등을 바라지 않는다. 다른 사람과 고른 생존과 자유 등의 권리를 바라는 것을 평등이라 표현할 뿐이다. 인간이 본래부터 평등을 바랐다면 인류의 역사에 신분제가 나올 수가 없다. 즉 평등은 생존과 자유의 수단이다. 그런 관점에서 평등을 추구하기 위해 자유를 억압하는 국가는 수단과 목적이 반대로 된 본말전도의국가라 할 수 있다.

생존주의는 그런 자유를 모든 개인에게 최대한 보장할 수 있다. 지금까지의 자유주의와 그와 관련된 윤리는 합리적 기준이 없어 외면 받아왔다. 쾌락주의와 자유주의와 공리주의는 개인의 쾌락과 자유와 이익에 초점을 맞추자 합리적 기준을 정할수가 없었다. 그것은 개인의 주관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논리도 없다. 합리적 기준은 보편적이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한계다. 인간은 육체의 한계를 알아야 자유롭게 노력할 수 있듯이 사회도 구조의 한계를 알아야 쾌락과 자유와 이익을 추구할 수 있다. 즉 사회의 생존을 위한 구조 유지가 자유의 기준이 되는 것이다. 사회 구조의 한계를 기준으로 삼으면 모든 사회 구성원에게 동일하게 적용되기에 자유의 합리적인기준이 된다. 자유 가능 영역이 명확하기 때문에 불필요한 자유 억압이없다. 사회 구조 유지와 체제 구조 유지를 제외하면 최대한 개인의자유를 보장할 수 있다. 동시에 그런 자유를 위해서 모든 개인은 사회와 체제 구조유지를 위한 사회 질서와 사회 복지를 위한 강제력에는 동의해야 한다. 그걸 위한 절차가 바로 사회 계약이다.

[사회 계약_사회 일반은 개개의 인간들이 모여 일정한 질서와 규율 밑에서 서로 협력하고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며사회나 국가를 이루는 현상을 계약에 의한 것으로 보아 이르는 말을 뜻한다.] 사전적 정의에는 사회나 국가를 이루는 현상을 계약에 의한 것이라 보았다 주장했다 했지만 엄밀히말하면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인류의 역사가 침략과 정복으로 점철되어 있었다는 것을 상기해야 한다. 계약과 무관하게 사회나 국가가 이루어졌었다. 그러나 계약에 의한 것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면 그것은 사실이다. 모든 개인을 위한 사회나 국가는 사회 계약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 자유주의와 같은 개인주의 체제인 사회의 모든 개인은 사회와 체제 구조 유지를 위한 강제력에 동의해야한다는 사회 계약을 사회와 맺어야 한다. 그것을 통해 사회와 체제 구조 유지를 위한 질서를 지키고 복지를 행하는 것이 자유 의지를 가지고 한 계약에 의한 것이므로 그 또한 개인의이익에 해당하여 책임지고 지키게 된다.

그걸 위해 모든 개인은 실제 사회 계약 절차를 경험해야 한다. 지금 미성년의 무책임함은 대체로 사회 계약과도 같은 민주정의 윤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 교육 윤리는 엉망이다. 이타주의를 근거로 학생이 교사에게 이타적으로 희생 당하도록 하거나 교사가 학생에게 이타적으로희생 당하도록 하고 있다. 과거는 학생이 교사에게 맞고 다녔는데 현재는 교사가 학생에게 맞거나 무시당하고 다닌다. 이타주의 자체가 저질 윤리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이다. 보통 성년의 날에 성인식을 하는 것이나 주민등록증의 발급이 사회 계약과 비슷한 느낌일 수 있는데, 전자는 계약과 관련이 없을 수 있고 후자는 국가가 국민을 관리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개인주의의계약이기보다는 집단주의의 관리로서의 느낌이 강하다. 새로운 절차를 마련하여 개인이 사회와 계약했다는 과정을 겪어야 한다.

국가와의 사회 계약 시기는 14세가 적절하다고 본다. 자아가 형성되어 형태를 갖출 무렵인 시기에 사회의 억압과 통제에 예민해지기 때문이다. 자아 형성 전에는 부모의 말에 순종하나 자아 형성 이후에는 반항하게 되는 까닭도 자아가 형성되어형태를 갖추는 것으로 명백하게 독립된 개체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무조건 순종하지 않는 반항기가 시작되게 된다. 이때 사회의 일원이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그래야 자아가 망가지지 않을 수가 있다. 만약 내가 14세에 사회 계약과 같은 절차를 통해 어른과 대등한 관계를맺을 수 있었다면 확신컨대 지금과 다른 삶을 살았을 것이다. 14세였던 나의 주장이 어른의 억압과 강요로 짓밟히고 멋대로 조작되고 뭉개지는 바람에 신체적 자유를 잃는 것을 경험하는 것으로 모든 것을 자포자기했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 때 한번 자아가 망가져 자아의 시간이 고장 나멈췄다. 그것이 사상을 하는데 도움이 되었으므로 사회 계약을 했다면다른 삶을 사는 대신 사상을 하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모든 기초 윤리는 어린이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생존주의적 자유주의는 기초 윤리가 될 수 있다. 어린이도 육체를 가지고 있어 생존주의적 자유주의를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육체를 유지하기 위해 먹고 자고 싸는 것과 같이 사회도 사회와 체제 구조를 유지하기 위해 강제적으로질서를 지키고 복지를 해야 한다고 설명하면 아마 모든 일반 어린이는 이해할 것이다. 그렇기에 사회 계약 또한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다. 어린이도 이해할 수 있는 것을 이해 못하는 일반 중학생은 없다. 최대한 자유를 보장 받는 대신 그런 사회와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강제력에는 동의해야 한다는 사회계약을 통해 중학생 시기부터 자유롭게 살면서도 사회의 일원이 되어 책임 의식을 갖고 사회의 역할을 하려는 태도가 나올 수 있다. 논리 자체가 너무나도 간단하면서도 누구라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논리적으로 강제력이 정말 사회와체제 구조 유지에 해당하는지에 대한 반론은 있을 수 있어도 강제력을 부정할 수는 없다. 강제적을 부정하지 않게 되면서 사회 질서를 지키고 사회 복지를 행하게 된다. 하기 싫은 것이 있더라도 행해야 하는 강제력을 인간의 육체와 사회의 구조를 같은 것으로 바라본논리를 통해 구축하여 이해할 수 있게 한다. 이것이 생존주의적 자유주의로 민주정의 윤리 중 하나다.

 

 

생존주의적 자유주의는 이치에 맞는 체계적인 윤리 계층을 갖는다.

 

첫째, 개인 육체 유지. 모든 개인은 사회에 속하기 전의 개인 육체 유지를 위한활동을 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죽게 되기 때문에 가장 기본적인 윤리다. 또한 사회가 잘못되었을 때 모든 개인은 사회와 계약을 해지하고 개인이 되어 사회 변혁을 위한활동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만약 정당한 이유가 있다면 사회는 붕괴하고 새로운 사회가 탄생하게 된다. 새로운 국가, 새로운 회사, 새로운 가정 등. 모든 개인은 사회와 종속된 관계가 아닌 대등한 관계다. 개인 육체 유지는 본인이 바르다고 여기는 이들의 윤리로 생존이 선이고 죽음이 악이다.

 

둘째, 사회 구조 유지. 모든 개인은 사회 계약을 통해 사회 구조 유지를 위한 강제력을수용하겠다는 계약을 맺는다. 사회는 개인의 자유와 안전과 편리를 보장하고 개인은 사회의 법을 지키고 복지를 행하는 것을 수용한다. 개인은 사회와 계약을 맺는 동안에는 사회 구조의 요소 중 하나가 되어 사회에 소속된다. 사회 구조 유지를 위해 요소인 사회에 속한 인간을 위한 복지는 본인의 이익에 포함되게 된다. 그렇게 함으로써 본인의 이익만을 추구해도 타인을 돕게 되는 것으로 사회 구조 유지가 될 수 있도록한다. 사회 구조에는 본인도 포함되므로 사회 구조 유지를 위해모든 개인은 본인이 원치 않아도 질서를 지켜야 하고 원치 않아도 행복해져야 한다. 만약 개인이 자살을 하고 싶다면 이론적으로 사회 계약을 해지하고 개인으로 돌아가는 절차를 해야한다. 사회 구조 유지는 사회가 바르다고 여기는 이들의 윤리로사회 구조 유지가 선이고 사회 구조 파괴가 악이다.

 

셋째, 체제 구조 유지. 모든 사회는 체제를 갖게 되는데, 사회 구조 유지 다음은 사회 체제 유지에 해당한다. 한국은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와 법치주의 등과 같은 개인주의 체제를 가지고 있고 그 체제의구조 유지를 위한 강제력을 수용해야 한다. 가령 모든 개인의 자유권과 주권과 소유권과 선거와 시장 등의 기본 권리와 원리를 유지하는데 협조해야 한다. 체제 구조 유지는 사회 구조 다음으로 중요한 것으로 개인의 주관적인 윤리보다 우선된다. 개인이 단순히 불쾌하다는 이유로 타인의 자유권을 침해하는 행위는 잘못된 것이 된다. 그러나 사회 구조 유지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중요도는 낮다. 사회 구조 유지에 협조하면서 다른 체제를 주장할 수 있다. 그런데 국가의 경우 체제에 관한 것은 법에 있어 대체로 사회 구조 유지에 협조하면 체제 구조유지에도 협조하게 된다. 체제 구조 유지는 체제가 바르다고 여기는 이들의 윤리로체제 구조 유지가 선이고 체제 구조 파괴가 악이다.

 

넷째, 체제 성질 윤리. 체제는 성질에 따라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집단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집단주의 체제와 개인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개인주의 체제다. 경제적으로 보느냐 사회 일반적으로 보느냐에 따라 의미가 다소 다르지만 기본적으로는 그렇다. 집단주의는 집단의 이익을 우선시하면서 집단의 주인인 지배자가 이익을 얻게 되고, 개인주의는 개인의 이익만을 추구하면서 모든 개인이 이익을 얻게 된다. 전자가 왕정이고 후자가 민주정이다. 전자는 보통 지배자에 의해 이익이 분배되고 후자는 보통 선거나 시장에 의해 이익이 분배된다. 집단주의 체제는 왕정의 윤리인 금욕주의와 이타주의를 윤리로 삼고 개인주의 체제는 민주정의 윤리인욕망주의와 이기주의를 윤리로 삼는다. 욕망주의와 이기주의는 보편 윤리가 아닌 체제 성질에 따른 윤리다. 개인주의 체제에서는 욕망적이고 이기적이어야 온전한 자유 의지가 보장될 수 있기에 그렇다. 금욕하라는 말에 욕망을 갖지 않고 타인을 위해 희생하라는 말에 의지를 꺾는 일을 방지하기 위해서욕망주의와 이기주의를 개인주의 체제 윤리로 삼아야 한다. 집단이 먼저냐 개인이 먼저냐에 따라 이익이 정반대가 되어 집단주의 체제와 개인주의 체제는 양립할 수 없다. 현재 왕정의 윤리가 민주정에 남아 윤리와 체제가 충돌하고 있는 상황이다.

 

다섯째, 개인 성질 윤리. 기본적으로 사회와 체제 구조 유지와 체제 성질 윤리 외에는모두 자유다. 개인의 가치관으로 살아가면 된다. 자유는 주관적이기 때문에 자유의 한계를 기준으로 삼아야 합리적이게 된다. 각자의 윤리는 각자 모두 다르므로 사회와 체제와 성질을 준수하는 한 그것에 함부로 관여할 수가없다. 모든 일반 인간은 주관적으로 옳은 행동을 한다. 그렇게 모든 일반 인간이 각자 다른 올바름을 가지고 있어도 된다. 모든 사물이 각자 다른 시간을 갖고 있어도 지구의 시간을 합리적 기준으로 삼아 살아가는 것과같이, 모든 개인은 각자 다른 올바름을 가지고 있어도 사회와 체제와성질을 합리적 기준으로 삼아 살아가면 된다. 모든 개인은 사상의 자유를 가질 권리가 있다. 종교의 자유도 사상의 자유의 일부에 속한다.

 

위와 같은 계층 구조를 통해 윤리를 체계화하여 모든 개인의 모순된 행동을 줄인다.

 

 

생존주의적 자유주의라는 보편적 선에 대해 알아보았다. 그렇다면 민주정 체제에 맞는 가치는 무엇인가? 왕정의 가치부터 다시 살펴보자. 지금까지 윤리는 대상에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고 대상에 가치 판단을 한 대상 가치를 전제로 하고있었다. 그렇게 인간을 대상으로 윤리 판단을 하자 대부분의 윤리는인간의 욕망은 악하다 판단했다. 그 판단으로 욕망을 금하는 금욕주의와 타인을 위한 희생을 하는 이타주의가 나타났다. 인간의 본성과 어긋나기에 바라는 인간이 적어 강제로 타인의 욕망을 금하고 희생시켰다. 그걸 통해 개인의 능력과 성격이 망가져 약자가 되자 지배자는 지배를 수월하게 하였다. 왕정의 윤리다. 인간을 대상으로 윤리적 판단을 한 결과 왕정의 윤리가 되었으므로 새롭게 접근하여 민주정의 윤리가 될 수 있는 것을 찾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 생존주의적으로 접근해보았다.

개인이 자연에 있을 때 선과 악은 발생할 수 있는지 생각해보았다. 그러자 개인이 자연에 있을 때에는 생존주의를 제외한 대부분 윤리에서 선과 악이 발생하지 않았다. 생존주의에서 개인이 자연에 있을 때에는 생존이 선이고 죽음이 악이다. 그 외 대부분 선과 악은 인간과의 관계에서 발생했다. 개인의 특성과 무관하게 인간과 인간의 관계에서만 선이나 악이 발생했다. 가령 개인이 무인도에서 무슨 짓을 저질러도 그걸 옳다 그르다 하지 않았다. 윤리와 같은 가치는 인간과 인간의 관계가 생기는 순간 발생하는 것이었다. 사회에서 죄가 어떤 식으로 생기는지 생각해보자. 인간이 아무 행동을 하지 않으면 그 인간의 성질이 보편적으로 악하다 여겨지더라도 죄가 생기지않았다. 반대로 다양한 행동을 하고 있으면 그 인간의 성질이 보편적으로선하다 여겨지더라도 죄가 생길 수가 있었다. 개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말이다. 선과 악은 대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관계에 있던 것이었다. 지금까지 윤리는 애초에 본질 자체를 잘못보고 있었다. 관계에서 가치가 발생하는데 대상에서 가치가 발생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본질을 잘못 보고 있었으니 당연히 탐구 결과도 잘못되고 탐구 결과를 근거로 한 사상도 잘못되었다.

윤리는 인간과 인간과의 관계에서 가치가 발생했다. 그 외 가치도 같다. 관계에서 가치가 발생한다. 인간과 진리와의 관계에서 가치가 발생한다. 수학과 관계가 옅은 인간에게 수학적 증명을 통한 학문적 진리가 얼마나 가치가 있겠는가? 그것은 인간이 수용하든 말든 진리지만 가치 유무는 다른 문제다. 인간과 예술과의 관계에서 가치가 발생한다. 지구 반대편의 아름다운 풍경을 본 적이 없는 인간에게 그 풍경은 얼마나 가치가 있겠는가? 그것의 아름다움은 목격한 인간에게만 가치가 있다. 인간과 능력과의 관계에서 가치가 발생한다. 사냥에 관심이 없는 인간에게 사냥 능력이 얼마나 가치가 있겠는가? 현대 사회에서 사냥할 일이 드물기에 사냥에 관심이 없다면 가치가 없는 능력이 된다. 인간과 재화와의 관계에서 가치가 발생한다. 40광년 떨어진 다이아몬드 행성에 갈 수 없는 인간에게 그 행성이 얼마나 가치가 있겠는가? 행성이 있다는 것을 아는 것으로 인간과 학문과의 관계에서 가치가 조금 있는 것 말고는 아예 없다. 인간과 관계가 없으면 진리든 예술이든 능력이든 재화든 가치가 없다.

가치의 관점을 대상이 아닌 관계로 보는 것. 이것이 민주정에 맞는 새로운 가치 판단이다. 대상에 가치 판단을 하지 않고 관계에 가치 판단을 하기에 대상이 선한지 악한지는 중요하지 않다. 성선설이나 성악설, 또는 성무선악설이나 백지설 등 아무래도 좋다. 중요한 것은 관계다. 대상이 어떤 가치고 있던 관계를 가진 인간의 판단으로 가치가 결정된다. 아는 것과 같이 인식하는 순간 관계가 발생하므로 모르면 가치가 없다. 그렇기에 고정된 가치는 없다. 개인의 성질이 중요하지 않게 되므로 인간은 더 이상 인간의 욕망이 악하다는 그릇된 주장에 휘둘려스스로의 욕망을 죄악시하며 자책하지 않아도 된다. 세뇌를 통해 주입된 부당한 자책감에서 해방될 수 있다.

그렇게 하여 모든 인간은 자유롭게 욕망을 이기적으로 추구하면 된다. 욕망주의와 이기주의를 통해 모든 개인은 바라는 것을 이루기 위해 자유 의지로 관념의 한계를 넘어성장한다. 개인의 성장은 곧 사회의 성장이 되어 사회에 속한 모두의이익으로 이어진다. 생존주의를 통해 욕망과 이기심의 한계를 미리 지정해두었기때문에 주관적인 기준에 따라 욕망과 이기심을 제한할 이유가 없다. 사회 구조 유지라는 합리적 기준에 맞춰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된다. 진정한 자유는 관계에 가치 판단을 할 때 생긴다. 개개인의 욕망과 이기심이 충돌하면 공정한 경쟁을 통해 선후를 정하여 질서를 유지하면 된다. 구조 유지와 공정 경쟁이 인간의 욕망과 이기심이 악으로 되지 않도록 할 것이다.

이것으로 선행의 균형도 유지될 수 있다. 본래 타인을 돕고자 하는 인간과 돕지 않고자 하는 인간이 모두 욕망과 이기심을 가져야 균형이맞는다. 그런데 타인을 돕고자 하는 인간은 금욕주의와 이타주의가윤리로 착각하고는 욕망과 이기심을 갖지 못하고 성장하지 못하고 타인을 돕지 않고자 하는 인간은 금욕주의와 이타주의로 타인을 이용할 생각만 하며성장하게 된다. 그러면서 돕고자 하는 인간과 돕지 않고자 하는 인간의 균형이맞지 않게 되면서 사회는 엉망이 되게 된다. 타인의 행복이 본인의 행복으로 이어지는 인간이 욕망을 이기적으로 추구할 수 있어야 성장하여 사회를 이롭게 할 수 있다.

대상이 아닌 관계로 가치 판단을 하기에 대상은 온전히 개성을 가질 수 있다. 지금까지 대상에 가치 판단을 했을 경우, 그 가치 판단을 다른 사람에게 전파하여 비슷한 가치 판단을 하는 것으로 비슷한 가치관이 나타나게되었다. 그렇게 되면서 개개인의 개성은 죽고 일부 개성을 가진 인간은다수의 유사한 개성을 가진 인간에게 박해를 당하게 된다. 한국에서 유행에 휘둘리는 다수의 인간은 누군가의 대상에 가치 판단을 한 것을 그대로 수용하여 가치관이 비슷하게 되는 것으로 개성이 사라졌기때문이다. 아이폰을 쓰지 않으면 따돌림을 당하는 아이들. 포켓몬 스티커를 광적으로 모으는 사람들. 유행을 따라가기 위해서라면 더러운 환경의 콘크리트 카페에 방문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계속 비교를 하는 것으로 상대적 박탈감을 크게 느끼게 된다. 거기에 개인의 개성이 있어 보이는가? 또한 비슷한 가치관으로는 비슷한 가치를 생산할 수밖에 없다.

관계 가치로 접근하면 본인과의 관계에 가치 판단하고 대상에 가치 판단을 하지 않게 되어 각자관계에 따른 주관적인 가치 판단이 나오게 된다. 아이폰을 대상 가치로 접근하면 아이폰 자체에 가치 판단을 한 것을 수용하는 것으로 가치가 높다 여기지만 관계 가치로 접근하면 아이폰 자체에가치 판단을 하지 않고 본인과의 관계를 보고 편리한지 쓸모 있는지 판단한 다음 가치 판단을 하여 각자 다른 가치 판단이 나오게 된다. 그렇게 하여 다양한 가치관이 나타나고, 다양한 가치관을 가진 다양한 개성들이 나타나게 된다. 관계 가치로 바라보면 브랜드에 집중하지 않고 본인과의 관계를 고려하며 쓸모만 바라볼 것이다. 허영심을 충족하고 싶다면 관계 가치로 바라보더라도 브랜드 상품을 브랜드만으로 가치 있다 여길지모르지만 그렇지 않다면 브랜드보다는 실제 상품의 품질을 보고 가치를 판단하게 될 것이다.

객관적인 가치 판단은 개인의 의사로 결정되는 선거나 시장에서 나타나게 된다. 다수가 주관적인 가치 판단을 한 것이 선거의 투표와 시장의 수요와 같은 제도를 통해 모여 객관적인가치 판단이 나오는 것이다. 특정 누군가가 대상에 가치 판단하여 그걸 모두가 공유하는 것 자체가 집단주의적이었다. 개인주의에서는 모두가 관계에 가치 판단을 하고 그것이 모여 객관적 가치 판단이 나타나게 되어야한다.

연인 관계에서 타인이 연인에 가치 판단을 해서 연인의 가치가 낮다는 말을 들으면 그게 영향을받아 정말 가치가 낮은 것처럼 느껴져서 점점 연인에 대한 애정이 식게 되는 것으로 사이가 나빠지게 된다. 특히 유행에 쉽게 휘둘리는 인간과 같이 개인의 주관이 명확하지 않을 경우 더욱 더 그렇다. 대상에 가치 판단을 하면 인간관계조차 엉망이 될 수 있다. 관계로 가치 판단을 해야 휘둘리지 않고 온전히 서로를 사랑할 수 있게 된다.

대상에 가치 판단을 하니 대상이 그르다 판단되면 대상과의 관계를 전부 부정하고 말살했다. 대상에는 다양한 특성이 있음에도 하나의 특성이 그르다 판단되는 순간 나머지 특성도 그른 것이되어버리는 것이다. 그렇기에 사고가 터지면 무조건 막게 되는 태도가 나타난다. 교통수단에서 사고가 터지면 교통수단을 전부 막아버리고 축제에서 사고가 터지면 유사한 축제를 전부막아버리고 장소에서 사고가 터지면 그 장소 부근에서 사고를 일으킨 유사한 것을 전부 막아버린다. 교통수단이나 축제나 장소 같은 대상은 다양한 특성이 있음에도 하나의 관계에서 사고가 났다는 이유로모든 특성이 부정되었던 것이다. 사건을 해결할 때 말살될 것이 두려워 사건을 숨기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이를 가리켜 관계 말살이라 하겠다.

그와 달리 관계에 가치 판단을 하면 그른 관계 하나만 집중하여 문제를 해결하면 된다. 그른 관계에만 접근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것으로 나머지 관계는 전부 살아남게 된다. 가령 킥보드나 오토바이라는 교통수단에서 사고가 잦을 경우 킥보드나 오토바이를 전부 막는 것이아니라 사고를 내는 인간들의 관계에 주목하여 어떤 상황에서 주로 사고가 나는지 확인하고 그에 대한 대처만 한다. 면허에 해당 사고에 관한 지식을 갖게 한다거나 하듯이 말이다. 그러면 사고를 내지 않았던 사람들은 관계 없이 교통수단을 이용할 수 있게 된다. 축제나 장소도 마찬가지다. 사고를 일으킨 관계만 집중하여 그 관계에서 나타난 문제를 해결하면 나머지는 정상적으로 축제를즐기고 장소를 오가도 되게 된다. 이렇게 관계에 집중하는 것을 관계 최소라 하겠다.

이렇게 가치의 관점을 바꾼 것이 인문학에 큰 영향을 줄 것이라 생각한다. 대상에 가치를 판단한 것이 고전 인문학이고 관계에 가치를 판단한 것이 현대 인문학이 될 것이다.

 

 

관계에서 가치 판단을 하는 것을 관계 가치라 하였다. 그렇다면 어떤 관계로 접근할 것인가? 과거에는 차별적인 신분이란 관계로 접근 할 수도 있으나 현재는 평등한 역할이란 관계로 접근해야한다. 생존과 자유라는 합리적 기준으로 만들어진 역할이란 관계에서가치 판단을 하는 사상을 가리켜 역할주의라 부르겠다. 모든 역할은 개인과 사회의 생존과 자유를 위한 것이어야만 하고, 가치 판단은 역할 수행 여부로만 판단한다. 그렇게 하여 모든 인간은 역할을 기준으로 평등할 수 있다. 평등의 합리적 기준이 역할이 되는 것이다.

[평등은 권리, 의무, 자격 등이 차별 없이 고르고 한결같음을 뜻한다.] 그렇다면 무슨 기준으로 권리와 의무과 자격이 차별 없어야 하는가? 대상에 가치 판단하는 바람에 지금까지는 합리적 기준이 없어서 각자 이익을 얻을 수 있는 기준으로평등을 주장했다. 무력, 지력, 매력, 권력, 재력 등 본인이 강한 것을 기준으로 권리, 의무, 자격 등을 평등하게 하자고 주장했다. 보통 그것을 우월주의라 부른다. 강한 만큼 권리가 주어져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므로 차별이라 주장하는 것이다. 반대로 약하여 차별 받아 온 만큼 권리가 더 주어져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보통 그것을 기울어진 운동장이라 부른다. 근거가 약함에 있으므로 열등주의로 해석될 수도 있다. 차별을 평등으로 말한들 평등이 되지 못하듯이 열등을 우월로 포장한들 우월이 되지 않는다. 실제 원리를 보고 해석해야 한다. 열등주의라 해석할 수 있을 정도로 약한 만큼 권리가 더 주어져야 언젠가 운동장이 평평해지는 평등이가능해질 거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각자 이익을 위한 주관적 기준이 합리적 기준이 될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런 평등 주장은 합리적 기준이 아니기에 사회 전체가 공감하지 못하여 분열과 갈등으로 가득 차게되었다. 그 모든 차별은 대상에 가치 판단을 했기 때문이다. 인종 차별도 성별 차별도 그 외도 전부 그렇다. 합리적 기준이 없으니까 각자 이익을 얻을 수 있는 기준을 주장하는 바람에 차별이 나타나는 것이다.

 

평등의 기본 조건은 대등이다. 대등하지 않으면 평등할 수가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대등하게 하는가? 바로 역할주의다. 역할만 보고 가치를 판단하면 개인의 개성과 무관하게 대등해진다. 평등은 인간이 모두 대등하기 위해서이지 누군가의 이익을 위해서인 것이 아니다. 가치를 판단하게 되기에 가치 차별이 발생할 수 있다. 그러나 그 기준이 대등하기에 평등하다. 역할 수행 여부로 윤리적 가치를 판단하고 역할의 기여도로 창출한 재화적 가치를 고려하여 재화적가치를 판단한다. 역할 수행을 통해 서로가 대등한 관계에서 역할 기여도로창출한 가치에 따라 대가를 받는 것이다. 사회 계약이 개개인의 계약이라는 의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모두가 평등할 수 있는 가치가 있어야 한다. 그렇기에 역할만 봐야 한다. 개인의 개성을 배제하고 역할이란 관계에서 가치 판단을 하는 것으로 모두가 평등할 수가 있다. 처음부터 연령, 성별, 혈연, 지연, 학연 등은 배제하고 오로지 역할 수행 여부만 보기에 평등할 수밖에 없다.

능력주의와 유사하나 능력은 합리적 기준이 없다. 그런 능력주의는 어떤 기준으로 능력을 평가하는지 합리적 기준이 없기에 A분야에서는 뛰어나나 B분야에서는 뛰어나지 않는 인간이 A에서 능력이 높다 평가 받았으므로 B분야도 잘할 거라 착각하고 거기서 일하게 하는 것으로 전문성이 없는 역할 수행이 나타나게 된다. 역할주의는 역할이란 합리적 기준이 있기에 A분야에서 뛰어나면 유사한 분야에서 뛰어날 것이라 생각하여 거기서 일하게 하는 것으로 전문성이있는 역할 수행이 나타나게 된다. 평가 또한 정확하게 할 수 있게 된다.

[평가는 사물의 가치나 수준 따위를 평함을 뜻함. 또는 그 가치나 수준.] 지금까지 대상에 가치 판단을 하는 바람에 대상의 가치를 정확하게 평가하기가 어려웠다. 가령 정부나 기업에서 인사에 대한 도덕적 평가를 할 때, 대상으로 평가하면 헷갈릴 수가 있다. 인간A가 과거 역할B에서 비리를 저질렀으나 이후 봉사 활동과 기부 등의 활동을하였다. 그럴 경우 인간A는 역할B과 유사한 역할을 맡을만한 도덕적 자격을 가지고 있는가? 대상 가치로 접근하면 대상은 비리를 저질렀으나 봉사 활동과 기부 등으로 반성을 하였으므로 맡을만하다라는 평가가 나올 수도 있다. 그러나 관계 가치로 접근하면 인간A와 역할B의 관계에만 집중하므로 인간A가 봉사 활동을 하든 비리를 하든 아무래도 좋다. 인간A와 역할B와의 관계와 인간A와 봉사 활동과 기부 관계를 나눠서 바라보는 것이다. 그것을 통해 인간A는 해당 역할을 맡을만한 도덕적 자격을 가지지 않는다는 평가가 나올 수 있다. 실제 가치가 발생하는 순간에 집중하니 정확한 평가가 가능하다.

형벌도 대상 가치와 관계 가치로 달라질 수 있다. 형벌은 개인의 사적인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형벌은 공공의 이익을 위한 질서 유지가 목적이므로 단순히 제재를 가하기 보다는 교화 가능성이나재범 가능성을 고려하게 된다. 인간은 관념을 기준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데 특정 관계에서 특정 행동을 하게 만드는 관념을 가졌을 경우 반복할 확률이 높게 된다. 그 관념을 교정하는 것을 교화라 부르는 것이고 그걸 교정하면 재범 가능성이 낮아지게 된다. 관념 교정이 매우 어려우므로 보통 교화가 어렵다고 여겨지지만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대상 가치로 접근하면 대상의 반성 여부 등을 고려하는데 관계 가치로 접근하면 관계를 고려하게된다. 관계의 수에 따라 달라지게 된다. 가령 특정한 사적 원한과 같이 하나의 관계에서만 악이 발생했을 경우 그 관계를 제외한 관계에서는악이 발생하지 않을 확률이 높으므로 교화 가능성이 높아 재범 가능성이 낮게 되지만 그릇된 가치관에 의해 여러 관계에서 악이 발생했을 경우 다양한관계에서 악이 발생할 확률이 높으므로 교화 가능성이 낮아 재범 가능성이 높게 된다. 관계의 종류에 따라서 달라지게 된다. 사기 범죄와 같이 생계와 관련된 삶에 필수적인 관계에서 악이 발생했을 경우 관계를 지속적으로가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교화 가능성이 낮고 재범 가능성이 높아지게 된다. 그렇기에 범죄로 생계를 유지한다면 새로운 생계를 유지할 관계를 마련하지 않는다면 교화 가능성이낮고 재범 가능성이 높아지게 된다.

관계 가치에 따라 특정 관계에서 지속적인 무례함을 겪은 다음 행한 범죄는 정상 참작 사유에 해당할수 있다. 그 관계 외의 관계는 정상일 것이기 때문이다. 가령 수 년간 집단 괴롭힘을 당한, 평소에는 착한 인간이 주동자를 살해했다면 그 사람은 교화 대상에 속한다 할 수 있는가? 괴롭힘을 당한 관계를 제외하면 전부 문제가 없는 인간에게 교화가 의미가 있는가? 관계 가치에서는 그런 인간은 정상 참작 될 수 있다고 본다.

 

 

민주정의 체제 윤리인 욕망주의와 이기주의에 대해 알아보자. 생존주의적 욕망주의는 생존에 필수적인 강제력을 제외한 모든 욕망을 추구하는 것이다. 개인과 사회와 체제 구조 유지를 제외하기에 개인이 욕망을 추구하더라도 부정적 영향을 끼치는 일이적다. 그러면서 욕망을 추구하기에 개인은 보다 성장할 수 있게된다. 역사를 생각해보자. 인간은 욕망에 의해 발전해왔다. 욕망이 없었다면 발전하지 못했다. 무엇인가를 분수에 넘치게 바라는 것으로 발전해왔다는 것이다. 모든 인간은 본질적으로 큰 차이가 없다고 한다. 그럼에도 문명 수준의 차이가 발생했다면 인간의 차이가 아닌 환경의 차이라고 봐야 한다. 그 환경 중 가장 큰 것이 바로 욕망이라고 본다. 동양은 서양보다 욕망이 작았기 때문에 문명 발전이 늦었던 것이다. 동양과 서양의 문명 차이는 과학적 방법과 종교의 성향 차이로 보았다. 그 중 과학적 방법과 같은 과학의 발전 또한 자연 탐구에 관한 욕망이 엄청나게 커야지 가능하다. 욕망에 의한 끊임없는 탐구. 과학은 우연으로 발견한 것도 많지만 그 우연 또한 수많은 탐구 끝에 얻어진 결과다.

한국은 자본주의에 의해 금전적 욕망에 관한 것은 정당화되고 있으나 나머지 욕망은 부정적으로 바라보게되어 금전 만능주의가 너무 심하다. 학문은 돈을 벌기 위한 취업을 위한 수단이고 노력은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이고 돈을 위해서라면 감옥을 가더라도 괜찮다는 인간들이 많다. 모든 욕망을 긍정해야 인간인 금전 만능주의에서 벗어나 진정한 바람을 추구하기 위해서 살 수 있게된다. 욕망은 바라는 것을 위해 노력하게 만들어 성장하게 하고, 그렇게 성장한 개인은 힘을 갖게 되어 부당한 상황에 맞설 수 있게 한다. 욕망이 부르는 잘못은 사회 체제로 접근하면 된다. 모든 개인을 위해서라면 금욕이 아닌 욕망을 추구해야 한다. 인간의 욕망은 권장하고 욕망으로 인한 부작용은 사회 체제로 대처한다. 모든 인간을 금욕으로 약하게 만들어 죄를 짓기 어렵게 하는 것은 왕정의 윤리고 모든 인간을 욕망으로강하게 만들어 죄와 맞서 싸울 수 있게 하는 것이 민주정의 윤리다.

 

생존주의적 이기주의는 생존에 필수적인 강제력을 제외한 모든 본인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것이다. 개인과 사회의 구조 유지를 제외하기에 본인의 이익만을 추구하더라도 사회에 부정적 영향을 끼치는일이 없다. 그러면서 본인의 이익만을 추구하기에 개인은 보다 성장할수 있게 된다. 흔히 이용하는 이타주의와 이기주의를 헷갈려 할 수 있는데, 이용하는 이타주의는 부당한 이익을 이타주의를 근거로 정당화하고 이기주의는 부당한 이익을 얻으면다른 식으로 정당화할 수는 있어도 이타주의를 근거로 정당화하지는 않는다.

지금까지 이타주의와 이기주의의 구분은 기준이 없는 타인의 행복을 위한 희생과 사회 일반을 돌아보지않는 본인만의 이익으로 나뉘었다. 이와 같은 구분은 합리적 기준이 없어 개인의 희생을 윤리로 만든 이타주의가 옳다는 착각을 부르기 너무나도 쉽다. 이타적으로 행동했다 하더라도 결과가 타인의 불행이 될 수 있고 이기적으로 행동했다 해도 결과가타인의 행복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타주의에서 행복과 불행, 이익과 손해의 기준이 상대방의 주관이기 때문에 합리적 기준을 정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개인주의 체제에서는 행복과 불행, 이익과 손해로 이타주의와 이기주의를 나누기 보다는 개인의 자유 의지로 나누어야 한다. 즉 타인의 의지로 행해진 모든 행동은 타인의 의지를 실현하는 것으로 타인이 이익을 얻었으므로이타주의적인 것이라 하고, 본인의 의지로 행해진 모든 행동은 본인의 의지를 실현하는 것으로 본인이 이익을 얻었으므로 그것이 본인의 이익만인 것으로 여기는 것으로 이기주의적인것이라 하면 된다. 그렇게 하면서 의지에 따른 책임이 명확해진다. 본인의 자유 의지로 타인에게 행동할 것을 강요하면 본인은 이기적인 것이고 타인은 이타적인 것이므로그에 대한 책임을 본인이 전부 진다. 본인과 타인이 자유 의지로 행동했다면 본인은 이기적인 것이고 타인도 이기적인 것이므로 그에 대한 책임을 본인과 타인이 각자 나눠서 진다. 의지를 가진 쪽에서 책임을 지기 때문에 책임을 분산하기 위해서라도 힘을 가진 측에서 모든 개인에게자유 의지를 요구하게 된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모든 개인이 자유 의지로 살아가게 된다.

흔히 누군가 이기적으로 행동하면 윤리를 근거로 이기적이라 비난하며 이타적으로 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타주의가 왕정의 윤리임을 고려하면 그런 식의 비난은 비민주적이다. 인간은 욕망을 가지고 본인의 이익만 추구하기에 금욕과 타인을 위한 희생을 하라 주장하고 실천했는데, 그러자 지배자가 욕망을 가지고 피지배자에게 금욕을 강요하고 이기적으로 피지배자에게 희생을 강요하게되었다. 웃기는 일이다. 개인주의의 욕망과 개인 이익만 추구하는 것이 부정적으로 보이게 만들었던 것은 집단주의의 금욕과희생 강요를 윤리로 만들기 위해서다. 타인에게 강요하는 것을 윤리로 만들기 위해 의도적으로 개인이 행복하기 위한 행동을 악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왕정의 세뇌에서 벗어나야 한다. 지배되었을 때에는 대부분의 피지배자는 지배자에게 금욕 당하고 희생당하는 입장이었으나 자유롭게되자 서로가 서로를 윤리를 명분으로 이용하려는 역겨운 태도가 나오고 있다. 그런 추악함은 추악한 왕정의 윤리 때문이지 그들의 본성이 아니다. 일차원적인 윤리는 결과적으로 그릇되게 된다. 누군가 이기적으로 행동하면 이기적인 행동을 비난할 것이 아니라 그 이기적인 행동에 불만을 가진사람 또한 이기적으로 행동해야 한다고 주장해야 한다. 흔히 강자의 이기주의에 의해 약자가 이용당하고 있다고 말을 하는데 아니다. 강자의 이타주의에 의해 약자가 이타적이게 되어 이용당하고 있는 것이었다. 정녕 약자를 위해서라면 강자와 약자 모두가 이기적일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 서로가 자유 의지에 따른 모든 행동을 본인의 이익만으로 여기면서, 그 이익을 실현하기 위한 행동을 하다 마찰을 빚게 되면 상대와 토론, 여론, 법 등을 통해 어떤 이익이 바른지 공정하게 결정하면 된다. 그러면서 사회는 공정하고 합리적이게 된다. 모든 인간을 이타적으로 약하게 만들어 타인을 위해 희생시키는 것이 왕정의 윤리고 모든 인간을 이기적으로 강하게 만들어 자유 의지로 살아갈수 있게 하는 것이 민주정의 윤리다.  

 

 

생존주의의 이념은 살아남는 것이다. [이념은 이상적인 것으로 여겨지는 생각이나 견해를 뜻한다.] 생물의 기본 원리와 무엇이 다르냐고 물어볼 수 있다. 그러나 모든 생물은 지금까지 살아남는 것에 성공한 적이 없다. 모든 생물은 생존에 실패했다. 지금까지는 생물의 죽음이 너무나도 당연하게 여겨졌기 때문에 생물의 생존이란 생물이 수명이 끝나기전까지 번식을 통한 종의 생존을 의미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집단주의의 생존이었다. 개인주의의 생존은 개인이 생존할 수 있어야 한다. 즉, 생존주의의 이념은 종이라는 집단의 생존뿐만 아니라 개인또한 죽음이란 육체의 한계에서 벗어나는 것을 말한다.

인류는 보다 자유롭게 진보했다. 육체의 위험에서 벗어나 자유롭기 위해 집단을 이루었고, 미지의 공포에서 벗어나 자유롭기 위해 종교로 현실에서 도피했고, 지배자의 지배에서 벗어나 자유롭기 위해 혁명을 일으켜 왕정에서 민주정이 되었다. 이제는 사상의 지배에서 벗어나 자유롭기 위해 민주정의 가치를 근거로 한 가치관을 가질 필요가있고, 육체의 한계에 의한 죽음에서 벗어나 자유롭기 위해 과학이발전하여 영원히 살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가능해지면 인간은 완전한 자유를 얻는다.

지금까지 존재했던 모든 인간의 역사는 생존 경쟁의 역사다. 마르크스는 지금까지 존재했던 모든 사회의 역사는 계급 투쟁의 역사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나는 그것을 부정하겠다. 계급 투쟁으로 보이는 현상은 생존 경쟁의 일부 중 하나에 불과하다. 일반 인간의 기본 행동 원리는 생존이다. 의식주에 대한 기본 욕구는 살아남기 위한 것이다. 행복하기 위해 이익을 얻는 것도 불행에 의해 자살하는 것을 고려하면 살아남기 위한 것이다. 모든 일반 인간의 자유 의지에 근거한 행동은 바라는 것을 이루기 위해서고, 모든 일반 인간은 바라는 것을 이루면 행복하다. 행복하여 살아갈 수 있게 된다.

개인주의의 생존으로 보면 개인은 지금까지 단 한번도 생존에 성공한 적이 없었다. 생존에 실패했다는 것에 초점을 맞추니 생존 게임이 떠올랐다. [생존 게임은 살아남기 위해 목숨을 걸고 벌이는 치열한 게임을 뜻한다.] 생존 게임 장소는 지구, 기간은 개인의 수명, 규칙은 유전자, 생존 방법 미정. 구 인류인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역사부터 고려하면 인류의 역사는 약 300만 년이라고 한다. 인간의 수명은 약 100년인 것을 고려하여 한 번의 생존 게임은 약 100년 주기로 일어난다고 보겠다. 100년에 1번 생존 게임을 했다는 가정하에 인류는 지금까지 약 3만번의 생존 게임을 했고 전부 생존에 실패했다. 인류 문명은 약 6000년 전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러면 약 29940번 동안 인류는 문명이 없는 생존 게임을 했고, 최근 약 60번 동안 문명이 있는 생존 게임을 한 셈이 된다. 그렇게 생존 게임을 반복하면서 인류는 살아남는 방법을 다음 참가자에게 전수하고 죽었다. 그러다 과학의 발전으로 인간이 생존할 수 있는 방법이 보이기 시작했다. 기억을 추출하여 인간의 자아만 생존하거나, 유전자를 조작하여 영원히 살 수 있게 하거나, 새로운 육체를 만들거나 하는 등과 같은 것이 현실성을 띠기 시작했다. 동시에 문명의 발전으로 지구 환경이 급속도로 변화하여 인류가 생존하기 적합하지 않는 기후 변화와같은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어쩌면 이번 21세기, 약 3만번 째 생존 게임이 마지막 생존 게임이 될 수 있게 되었다. 인류는 약 3만번의 생존 게임을 되풀이한 결과 마지막이 될 수 있는생존 게임에서 승리할 수 있는 가능성을 찾은 것이다. 인류의 약 3만번 째 생존 게임의 참가자 약 80억은 힘을 합쳐 수명의 끝이라는 확정된 죽음에서 벗어나 생존하는 것으로 생존 게임에서 승리해야한다. 생존 방법은 현재 과학이 유력하다. 모든 인류는 살아남기 위해 과학에 힘을 쏟아야 한다. 그렇게 모든 인류는 죽음에서 벗어나 생존 게임에서 승리하여 우주에 진출해야 한다. 우주에 진출하지 않으면 지구가 좁아 살아남아봐야 미래는 공멸밖에 없다. 인류가 생존 게임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우주에 진출해야 한다.

인간의 관점에서 지구의 크기는 너무 크고 인간의 수명이 너무 길어서 생존 게임이라는 것이 와닿지않을 수 있는데, 우주의 관점에서 지구의 크기는 너무 작고 인간의 수명은너무 짧다. 우주적으로 보면 정말 일순간의 생존 게임에 불과하다. 인류 역사 자체가.

인류의 역사가 생존 게임과도 같다면 인류의 윤리도 생존 게임과 그리 다르지 않다. 생존 게임에 참가한 모든 인류의 생존이 윤리다. 그걸 위해 노력하는 것이 이상이다. 가령 타국에 침공하는 국가는 생존 게임으로 비유하면 다 같이 힘을 합쳐야 생존할 수 있는데 의도적으로공격하여 공멸하게 만드는 트러블 메이커다.

모든 인류는 생존 게임에서 승리하기 위해 협조해야 한다. 일부가 기술을 독점하면 인체 실험 참여자도 많기 어렵고 밝혀졌을 때의 반발도 극심할 것이다. 싹 다 공개하여 기술을 발전시켜야 인류가 생존 게임에서 승리할 수 있게 된다. 불로불사 기술이 확립되면 자원도 얼마 들지 않을 것이다. 인간을 구성하는 물질 자체가 흔하기 때문이다. 누구나 불로불사자가 되어 생존 게임에서 승리하여 빨리빨리 우주로 진출해야 한다.

인류는 종의 생존을 위해 출산율을 올려야 하고 개인의 생존을 위해 불로불사를 달성해야 하고 종과개인의 생존을 위해 우주로 진출해야 한다.

 

인류의 보편적 윤리는 생존주의고 민주정의 보편적 윤리는 생존주의적 자유주의다. 민주정 체제에 맞는 가치는 역할이란 관계로 가치를 판단하는 역할주의다. 생존주의적 자유주의를 통해 생존을 보장하고 생존을 위한 강제력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자유를누릴 수 있게 한다. 역할주의를 통해 역할이란 관계에서 가치를 판단하는 것으로평등을 이룬다. 이것을 통해 왕정의 윤리가 민주정에서 일으키는 사회 문제를해결하기 위한 기본 준비를 마쳤다.

 

 

인간의 성숙은 무엇으로 결정되는가? 피에르 퀴리의 노벨상 수상식 연설 중 일부를 살펴보자. “라듐은 방사선이 나오기 때문에 범죄자들이 사용하면 위험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스스로에게 물어보아야 합니다. 자연의 비밀을 알게 되어서 어떤 이익이 있을까요? 자연의 비밀을 안다고 해도 그것을 제대로 이용할 수 있을 만큼 인간은 성숙한가요?”

인간의 성숙은 철학의 인식, 존재, 가치와 같은 것을 탐구한 것을 배우면서 가능하게 된다. 인문 계열이 성장해야 인간은 성숙하게 될 수 있다. 그러므로 인문 계열이 성장하여 자연 계열과의 양극화를 극복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인류는 디스토피아나 멸종을 하게 될 수도 있다. 흔히 말하는 디스토피아는 인간의 성숙에 비해 인간의 기술 수준이 지나치게 높아서 발생한다. 미숙한 인간이 총을 들었을 때에 발생하는 사회 문제와 비슷하다 보면 된다. 인문 계열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왕정의 가치에서 벗어나 민주정의 가치를 가질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걸 할 수 있는 국가는 적다. 인간이 진리로 여길 정도로 당연하게 자리잡은 가치 관점을 대상에서 관계로 바꾸거나 금욕주의와이타주의를 부정할 수 있을 정도로 인문 계열이 발전하고 사회가 그걸 수용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민주정의 가치와 같은 개인주의 관념을 사회가 수용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사회의 체제가 개인주의체제는 되어야 한다. 만약 개인주의 체제가 아닌 국가가 민주정의 가치를 받아드린다면인간의 행동 원리는 가치에 근거한 것이 많기 때문에 반드시 개인주의 체제로의 혁명이 일어날 것이다.

 

 

 

3. 관념

 

이른바 자유 진영이라 불리는 자유주의, 민주주의, 자본주의, 법치주의와 같은 개인주의 체제를 갖춘 국가의 사회 문제는대부분 왕정의 관념을 민주정의 체제에서 쓰면서 발생한다. 왕정과 민주정은 각각 집단과 개인을 우선시하여 공존할 수가 없다. 그럼에도 왕정의 관념을 민주정의 체제에서 썼기에 자유를 외치면서 억압을 행하거나 평등을 외치면서차별을 행한다. 왕정의 관념과 민주정의 체제가 충돌하면서 개인은 수많은혼란을 겪고 있다. 왕정과 민주정의 구분을 명확하게 하지 않아 합리적 기준이없어 개인의 이익에 따라 주장하는 근거가 매번 달라지게 되었다. 타인의 자유를 억압할 때에는 왕정의 관념을 근거로 하고 본인의 자유를 원할 때에는 민주정의 체제를 근거로 하게 되었다. 타인의 표현의 자유는 왕정의 관념을 근거로 반대하면서 본인의 표현의 자유는 민주정의 체제를 근거로찬성하듯이 말이다. 이런 황당한 모순은 집단과 개인이라는 성질이 정반대인 두가지 두 가지 체제를 근거로 정당화하였다. 그러면서 어떤 상황에서도 이익을 주장할 수 있게 되었다. 왕정의 금욕주의를 근거로 타인의 욕망은 억압하면서 민주정의 자본주의를 근거로 본인의 욕망을 정당화한다. 왕정의 이타주의를 근거로 타인에게 희생을 요구하면서 민주정의 자유주의를 그거로 본인의 이익만을추구하는 것을 정당화한다. 본래 이런 짓은 비판 받기 마땅하나 인문학에서 체제 정립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걸 비판하기가 수월찮다. 다들 뭔가 잘못된 것 같은데 정확히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모르니까 위와 같은 양 체제를 오가면서모순된 주장을 하는 것을 가리켜 욕망이 많다거나 이기적이라고 비판을 하고만 있을 뿐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민주정의 체제에 맞는 관념을 정리한 것이 생존주의와 역할주의다. 생존주의는 생존과 자유의 합리적 기준이 될 수 있고 역할주의는 가치 판단의 합리적 기준이 될수 있다. 그런데 이걸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식의 변화가 필요하다. 모든 일반 인간은 주관적으로 옳은 행동을 한다는 명제를 이해하고, 현재 왕정의 관념을 갖고 있는 이들이 주로 옳은 행동으로 만들기 위한 수단이 금욕주의와 이타주의임을인식해야 한다. 그런데 그게 관념에 의해 어렵다. 관념을 이해해야 한다.

 

인식에는 관점·관념·감각과 같이 나뉜다. 관점은 보는 방법을 말하고 관념은 본 것에 대한 생각을 말하고 감각은 육체 자극 지각을 말한다. 이 셋은 상호 관계를 갖는다. 관점은 보는 순간 관념을 근거로 한 태도나 방향 또는 처지를 말하고, 관념은 관점을 통해 본 것에 대한 생각을 말하고, 감각은 관념을 근거로 느끼는 육체의 감각을 말한다. 이 셋 중 관념이 관점과 감각의 가치 판단 기준이 된다. 사물과 현상을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보거나 느끼는 것이 달라진다. 그렇기에 관념은 마치 인간의 본질처럼 여겨져 바꾸기는커녕 관찰조차 어렵다. 관념은 바꾸기 어려워하고 관점이나 감각은 바꿀 수는 있으나 그것이 본인의 관념과 상충하지 않을때에만 어렵지 않게 가능하다.

관점은 다음과 같다. 가령 소비자 관점과 생산자 관점은 대부분 소비와 생산을 해보기에 관념의 상충이 없어 서로의 관점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동양의 유교적 가치관에서 자란 사람과 서양의 기독교적 가치관에서 자란 사람은 각각 언어의연령에 따른 존댓말 유무가 다르기에 관념의 상충이 있어 서로의 관점을 이해할 수 없기도 한다. 한국에서 연하가 연상에게 반말해야 된다고 한다면 사회 혼란이 생길 것이다. 마찬가지로 미국에서 연하가 연상에게 존댓말(Honorific)을 쓰는 것이 의무가 된다면 사회 혼란이 생길 것이다. 민주정에서 연령 평등을 위해서라면 진리도 아닌 유교적 가치를 버리고 모두가 반말이나 존댓말 중하나를 골라 평등한 대화를 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관념에 의해 그것이 어렵다는 것이다. 언어 특성상 쓸데 없이 긴 것은 불필요한 낭비기에 반말이 효율적일 것이다. 감각은 다음과 같다. 가령 매운 것을 잘 먹는 인간의 감각과 못 먹는 인간의 감각은 서로가 맵다는 감각을 알기 때문에 느끼게 하는 관념이 서로 상충하기 어려워서로의 감각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일반 인간의 감각과 결벽증이나 강박증을 가진 인간의 감각은 일반 인간은 그런 감각을 모르기에 느끼게 하는 관념이 서로 상충하기에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다.

이와 같이 관념은 기본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개개인이 조화를 이루기 위해 공통 인식을 가지게 할 수 있는 공감이 중요하게 되지만, 공감은 관념이 상충되지 않을 때에만 수월하게 된다. [공감은 남의 감정, 의견, 주장 따위에 대하여 자기도 그렇다고 느낌을 뜻한다. 또는 그렇게 느끼는 기분.] 같은 관념을 가진 집단은 공감하기 쉬운 반면 다른 관념을 가진 집단과는 공감하기 어렵다. 고정된 관념으로 사물을 보는 것을 선입견이라 부르고 관념에 의해 치우치게 바라보는 것을 편견이라부른다. 선입견과 편견으로 그것이 어렵다. 공감이 중요하단 이유로 타인에게 공감할 것을 요구하는데 관념에 의해 그렇게 말하는 당사자도 타인에게공감하지 못할 때가 많다.

생존, 자유, 역할, 욕망, 이기 등은 일반 인간은 모두 가지고 있어 상충하지 않기에 설득하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의 본성에 맞는 것을 윤리로 삼아야 자연스럽게 추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대상 가치와 관계 가치와 같이 그 동안 없던 것을 이해하는 것은 다소 어려울 수 있을거라 생각한다. 세세하게 다를 수 있으나 기본적으로 민주정이라는 왕정과전혀 다른 체제의 가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관념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간단한 관념 관찰, 인간의 본성, 관념에 의해 형성되는 자아, 관념으로 나타나는 무의식과 자유 의지, 관념을 통한 교정 등과 같은 것을 알게 되면 이해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간단한 문답으로 관념 관찰을 해보자.

 

Q: 한국 사회는 비정상적인가? A: 그렇다. 낮은 출산율과 높은 자살률을 고려하면 비정상적이다.

Q: 사회는 인간에 의해 조직되는가? A: 그렇다. 인간의 평가로 사회 구조는 조직되고 유지되며 그렇게 조직된 구조의 요소는 인간이 된다.

Q: 인간은 관념에 의해 움직이는가? A: 그렇다. 인간의 관점과 감각 등은 관념이란 가치 판단 기준에 따라 달라진다.

Q: 인간의 관념은 유전자와 환경과 사상 학습으로 형성되는가? A: 그렇다. 유전자로 기초 관념이 정해지고 환경으로 다양한 관념을 쌓아가며 사상으로 체계적인 관념을 학습하며, 장애나 극빈과 같은 예외를 제외하면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인간의 관념에는 사상의 영향이 가장 크다.

Q: 사회는 인간의 관념에 의해 조직되는가? A: 그렇다. 사회는 인간으로 조직되고 인간은 관념으로 움직인다.

Q: 사회가 비정상적인 것은 그런 사회를 조직한 인간의 관념이비정상적이기에 그런가? A: 그렇다. 인간의 관념이 비정상적이기에 조직되는 사회도 비정상적이게 된다.

Q: 인간의 관념이 비정상적인 것은 영향을 끼친 사상이 비정상적이기에그런가? A: 그렇다. 사상이 비정상적이기에 형성되는 인간의 관념이 비정상적이게 되고, 인간의 관념이 비정상적이기에 조직되는 사회도 비정상적이게 된다.

여기까지는 이해하고 수용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그렇다면 다음으로 가보자.

Q: 비정상적인 한국 사회에 속한 개인이 보편적 관념을 가지고있다면 그 관념은 비정상적인가? A: 그렇다. 보편적인 한국인의 관념이 비정상이어서 한국 사회도 비정상이다.

Q: 보편적인 한국인의 관념이 비정상인 것은 관념을 형성하게한 사상이 비정상적이기에 그런가? A: 그렇다. 한국인이 학습하는 사상이 비정상적이기에 한국인의 관념이비정상적이게 되었다.

여기까지는 아마 이해하고 수용하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다음으로 가보자.

Q: 본인이 한국 사회의 보편적 관념을 가지고 있다면 본인의관념이 비정상적이고 본인이 학습한 사상이 비정상적이었다는 것을 인식하는가? A:

 

대부분 이것은 이해하고 수용하기 힘들 것이다. 만약 이것을 바로 이해하고 수용했다면 그 인간은 대단하다. 진리로 여기던 것을 바로 부정할 수 있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인간은 가치 판단 기준이 된 관념을 진리로 여기기에 지능 장애나 성격 장애 등을 제외한모든 일반 인간은 주관적으로 옳은 행동을 한다. 만약 관념이 잘못되었다는 말을 들으면 일반적으로 본인의 행동이 옳았던 것으로 만들기 위해 논리적인 주장조차 부정하고 본인의 관념을 합리화하면서보통은 이해하지 못하고 수용할 수 없다. 한국인이 연하가 연상에게 존댓말 하는 것이 잘못되었다 지적 받았을 때나 미국인이 연하가 연상에게 존댓말을 하지 않는 것은 잘못되었다 지적받았을 때 어떤 반응이 나오겠는가? 반발이 나올 것이다. 그와 같다. 그것이 합리적이든 아니든 관념에 어긋나면 반발이 나온다. 보통 관념과 다수의 다른 주장들이 있으면 다 무시하다가 일치하거나 유사한 주장이 하나라도 있으면그제서야 웃으면서 내가 맞는다고 안심하고 다른 주장들을 비웃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념을 관찰하여 타당한 논리를 순순히 이해하고 수용할 수 있는 인간은 진리로 알고 있던 것조차 부정할 수 있는 더 이상일반이라 할 수 없는 관념 관찰자가 된다. 그리고 그것은 모든 학문의 탐구자가 가져야 할 소양 중 하나다. 적어도 사상이나 철학과 같은 전문적인 인간은 그것이 기본이 되어야 한다. 일반과 같은 성질을 가진 전문에 어떤 가치가 있을 것 같은가? 전문가는 일반인과 다른 전문성을 가져야 전문가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전쟁 피해국의 국민은 전쟁 가해국의 군이나 정당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욱일기나 하켄크로이츠를 불쾌해할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일반인의 시각이다. 전문가가 일반인과 같이 그런 관념에 얽매여 감정적 대응을 하는 것은 전문적이라 하기가 어렵다. 관념 관찰을 하고 논리적인 판단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전쟁 가해국의 상징은 일반적으로 피해자의 일생을 고려하여 자제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일반적인 인간의 수명이 약 100년으로 가정하고 오차 범위를 고려하여 전쟁이 끝난 직후에 태어난 인간도 포함해 종전 100년 후까지는 그런 상징에 감정적 대응을 하더라도 어느 정도 정당성이 있으나 그 이후에는 정당성이없어 감정적으로 대응할 이유가 없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이 1945년이므로 2045년 이후에는 그런 것에 신경 쓰는 것은 세계 대전 이전의 역사의 결과에 감정적으로 대응하는 것과 다를 바 없을 정도로 의미가 없다. 굳이 가질 필요가 없는 불쾌감으로 인간을 불행케 하여 생존 약자가 되게 만드는 것은 생존주의적으로부덕하다.

사실 개인에게 가치를 세뇌하여 불쾌감을 느끼게 해서는 안 된다. 역사든 윤리든 그것의 가치 판단할 권리는 개인에게 있다. 역사나 윤리란 대상에 대한 가치 판단을 한 것을 개인에게 세뇌해서 전쟁 가해국의 군이나 정당의상징과 비슷한 그림만 봐도 발작하게 하거나 야한 것만 봐도 발작하게 해서는 안 된다. 모든 개인이 각자 알아서 본인의 관계에서 가치 판단을 해야 한다.

 

 

간단한 문답으로 본인의 관념 관찰로 일반에서 벗어나 관념 관찰자가 되었기를 바란다. 관념을 이해했다면 인간의 성질은 유전자에 의한 선천적 성질과 학습에 의한 후천적 성질로 나뉜다는것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선천적 성질과 별개로 학습을 통해 만들어진 관념에 의해 보고 받아드리고 느끼는 것이 달라진다. 유전자와 관념을 명확하게 분리하여 인식하는 것이 인문 계열이 해야 할 일 중 하나다. 선천적 성질은 본능으로 얻은 관념과 같은 것으로 바꾸기가 어렵고 쉽게 흐름을 거슬러도 안 된다. 식욕, 수면욕, 배설욕, 성욕 등과 같은 기본적인 욕구들을 가리킨다. 이러한 선천적 성질이 인간 육체 유지를 위한 강제성이 된다. 후천적 성질은 학습하여 얻은 관념과 같은 것으로 바꾸기는 어렵지만 필요하면 바꿀 수 있어야 한다. 보통 인식, 존재, 가치 등과 같이 대부분의 탐구로 바꿀 수 있다. 이런 후천적 성질이 인간의 자유를 위한 지성이 된다. 그럼 선천적 성질과 후천적 성질과 관념에 대해 세 가지 물음을 통해 알아보자.

 

첫째, 인간의 동족 살해나 동족 포식에 대한 거부감은 선천적인가 후천적인가? 인간은 인간을 살해하거나 인간이 살해하는 것을 보고 느끼는 거부감은 선천적 성질인 본능이라 여길수가 있다. 그것을 매우 당연한 것으로 여기며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느껴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보편성을 고려하면 그렇지가 않다. 만약 인간의 본능에 동족 살해에 대한 거부감이 있었다면 인류의 역사에 전쟁이 보편적이지 않았을 것이다. 만약 인간의 본능에 동족 포식에 대한 거부감이 있었다면 식인 풍습도 있지 않았을 것이다. “모든 인간은 단일한 종에 속한다.” 에 근거하여 스페인 제국인과 아즈텍 제국인은 단일한 종임에도 스페인 제국인은 식인을 거부했고아즈텍 제국인은 식인을 즐겨 했다. 식인에 대한 거부감도 인류의 보편적 특성이 아니다. 스페인 제국인과 아즈텍 제국인의 차이는 종교에 의해 형성된 윤리관뿐으로 윤리에 의해 동족 살해나 동족 포식에 대해 거부감을 느꼈던 것이다. 인간 외의 종으로 접근하면 동족 살해와 동족 포식은 매우 자연스럽게 일어나고 있다. 생물에게 있어 동족 살해나 동족 포식에 대한 거부감은 선천적 특성인 본능이 아닌 후천적 특성인학습에 의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인간에게 동족 살해나 동족 포식에 대한 거부감은 선천적으로 있지 않다. 그렇다고 그걸 부정적으로 여길 필요가 없다. 오히려 인간은 그런 학습으로 동족 살해나 동족 포식을 하지 않고 같은 종끼리 공존할 수 있는위대한 지성체임을 자랑스럽게 여겨야 한다. 이런 것이 미개하지 않은 문명이다. 또한 인류는 그런 기본적인 것조차 학습에 의해 만들어질 정도로 관념 학습이 인간에게 끼치는 영향이 매우 크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둘째, 인간이 나이를 먹을수록 시간의 흐름을 빠르게 느끼는 이유가 무엇인가? 시간의 사전적 정의로 접근해보자. [시간_물리는 지구의 자전 주기를 재서 얻은 단위를 뜻한다. 이론적으로 고전 물리학에서는 공간에서 독립한 변수 곧 절대 시간으로 다루어졌으나,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원리에서는 양자가 물리적 사건을 매개로 하여 사차원의 시공간 세계를 형성하는것으로 다루고 있다.] 시간은 최초 지구의 자전에 의한 평균 태양일의 1/86,400으로 정의되었다. 그러나 그런 기준은 불규칙하여 공전으로 바꾸고, 공전 또한 오차가 있을 수 있어 원자 시계로 바꿨다. 원자 세계는 원자의 진동수가 일정하다는 것을 이용하여 만든 것으로 암모니아, 루비듐, 수소, 세슘, 이터븀과 같이 원자를 바꿔가면서 기준을 정하고 있다. 즉 시간이란 인간이 정한 기준의 이동 거리를 수로 환산하여 객관화한 개념으로 본래 존재하지 않는다. 과거의 시간은 지구의 자전의 이동 거리를 1/86,400으로 나눈 것이고 현재의 시간은 과거의 시간에 맞춰 오차가 적도록 원자가 진동수가 N번만큼 반복한 거리를 지정한 것이다. 물체의 이동 거리를 수로 환산하여 객관화한 것이 객관적으로 만들어진 시간이란 개념으로 본질은이동 거리다.

그럼에도 인간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와 같이 시간을 느낀다. 그것은 인간이 만물의 변화를 지각할 수 있는 지성체이기 때문이다. 변화를 지각할 수 있기 때문에 변화의 지각 순서대로 먼저 겪은 변화의 지각을 과거라 부르고 지금겪은 변화의 지각을 현재라 부르고 겪지 못한 변화의 지각을 미래라 부른다. 즉 주관적으로 느끼는 시간의 본질은 지성체의 변화의 지각이다. 변화의 지각을 지구의 이동 거리나 원자의 이동 거리를 수로 환산하여 객관화한 것이 표준시다. 모든 지성체가 주관적으로 가지고 있는 변화의 지각을 객관적인 표준시로 모두가 같은 변화의 지각을느끼도록 만든 것이다. 시간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는 인간의 주관으로 느낀 변화의지각을 순서대로 나열한 것일 뿐이다. 우주의 행성은 이동할 뿐이지 시간의 흐름을 지각하지 않는다. 시간은 지각할 수 있는 인간의 개념이다. 시간을 지각할 수 있는 인간 행성의 이동 순서에 시간을 붙인 것이다. 세상을 관장하는 시간 법칙이라는 것이 없다. 그러니까 이동하지 않는 것은 시간이 멈춘 것이 된다. 음식을 냉동하여 이동을 느리게 하면 음식의 시간을 느리게 만든 것이다. 그러면서 느리게 변질되게 한다. 그런데 우주는 모든 것이 이동하니까 마치 이동과 별개로 시간이 세상 자체의 법칙이라 여기게 되고있었다. 정리하면 변화의 지각은 선천적 성질이고 표준시각에 대한관념은 후천적 성질로 시간은 관념 학습의 결과다. 시간이란 개념은 인간이 만든 것이다.

시간은 주관적 개념이므로 인간이 변화를 지각하지 못하면 시간도 흐르지 않는다. 그러나 인간이 정해둔 표준시는 특정 개인이 변화를 지각하지 않아도 변화하게 된다. 그러면서 시간의 흐름이 차이 나게 된다. 표준시 내에 변화의 지각을 많이 한 인간은 시간의 흐름이 느리고 적게 한 인간은 시간의 흐름이빠르게 된다. 즉 (주관적인 변화의 지각/객관적인 표준시)로 변화의 지각이 많을수록 주관적인 시간의 흐름을 길게 느끼게 된다.

변화의 지각이 달라지는 것은 관념에 의한 것이다. 인간의 육체는 자아의 의지와 무관하게 자동적으로 움직인다. 누구나 습관적 움직임 또는 무의식적 움직임과 같은 의식적으로 행동하지 않았음에도 습관적으로 행동하고나서 그걸 인지한 경우를 경험했을 것이다. 반복적으로 학습된 관념은 자아의 의지와 무관하게 육체가 자동적으로 행하게 되면서 자아가 그 변화를 지각하지 못하게 된다. 자아가 변화를 지각하지 못하게 되면서 시간의 흐름을 느끼지 못하게 되는 것으로 주관적인 시간의흐름이 빨라지게 된다. 그걸 토대로 보면 나이를 먹을수록 시간의 흐름이 빨라지는이유를 알 수 있다. 어릴 때에는 관념 학습이 적어 자아의 지각으로 움직이는경우가 많아 시간의 흐름이 길다고 느끼고, 점점 관념 학습을 많아 자아의 지각으로 움직이는 경우가 적어지면 시간이 흐름이 짧다고 느끼게 되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시간을 길게 느끼고 싶다면 경험하지 못한 것을 경험하여 변화의 지각을 늘리면 된다. 이런 이유로 인간은 실제 연령과 정신 연령이 비례하지 않게 된다. 변화 지각의 수로 정신 연령이 늘어나기에 변화의 지각이 많은 연하가 변화의 지각이 적은 연상보다주관적 시간이 길어 정신 연령이 높을 수가 있다.

 

셋째, 인간은 교화가 가능한가? [교화는 가르치고 이끌어서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게 함을 뜻한다.] 이것의 가능 여부로 형벌의 교화나 엄벌이 정해지므로 중요한 물음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답은 간단하다. 당연히 가능하다. 인간이 쉽게 바뀌지 않는 것을 목격하면서 인간은 일정 이상 나이를 먹으면 바뀌지 않으므로 교화가 불가능하다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20대 이후 사이비 종교에 세뇌되어 바뀌는 인간을 어렵지 않게 목격했을 것이다. 인간은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 누군가는 그걸 어떻게 교화라고 할 수 있느냐 반문할 수 있는데, 사이비 종교 입장에서는 인간을 세뇌하여 사이비 종교의 교리를 따르게 하는 것이 가르치고 이끌어서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게 한 셈이 된다. 인간의 행동 원리 대부분은 관념 학습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므로 당연히 관념 교정을 통해 인간을 바꿀 수도 있다.

그렇다면 왜 교도소의 교화는 어려운가? 그것은 교화에 대한 마음가짐의 차이에 있다. 사이비 종교는 그야말로 절실하게 세뇌한다. 우연을 가장하고 쉴새 없이 따라 붙고 집착하면서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사이비 종교에 이롭도록세뇌한다. 그러나 교도소는 그렇게 절실하게 교화하지 않는다. 배운 대로만 절차대로 사무적으로 행하면서 수단 방법 전부 고려하면서 사회에 이롭도록 교화한다. 단지 그 차이다. 해당 집단에 이롭도록 변한다는 측면에서 사이비 종교의 세뇌와 교정 시설의 교화는 원리가 같다. 통계적으로 교도소의 교화 성공 사례가 적다고 말할 수 있는데 동시에 그러면 사이비 종교의 세뇌사례가 많다는 것을 제시하겠다. 이런 것을 보면서 수천 년 전 학설인 성선설이나 성악설을 말하는데 그런 현대 과학도 없던 시대의 학설은 이제 잊길 바란다. 그런 현대 과학을 근거로 하지 않는 인문 계열의 주장은 대부분 그 시대를 알기 위한 참고 자료에불과하다.

인간이란 대상에 가치 판단을 하여 사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를 단순히 악이라 규정하고 교정이 불가능하다말할 수 있다. 그런데 그런 증상이 성격 장애라면 장애 관리로 접근해야지단순히 악이라 말하며 공격하는 것은 지나치게 비전문적이다. 관계에 가치 판단을 하면 사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도 관계에서 잘못을 저지르지 않으면 악이 아니다. 일반 인간도 악을 저지를 수 있고 성격 장애도 악을 저지르지 않을 수 있다. 멋대로 악으로 규정하고 공격하는 것은 개인의 자유이나 관련 분야의 전문가는 전문적으로 대처해야할 것이다. 단순히 잘못을 저질렀다고 사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라 말하며비난하는 이들 때문에 진짜 사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가 본인의 장애 증상을 치료하려 들지 않고 있다. 장애인의 장애 증상은 타인의 놀이 도구가 아니다.

대상에 가치를 판단하는 이들이 짐승 살생이 인간 살해로 이어질 수 있을 지도 모르니 과하게 처벌하고교정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동물을 죽였으니 같은 동물인 인간도 죽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논리다. 인간에게 죽은 짐승을 매일 먹고 덤벼드는 모기를 죽이고 시끄럽다고 파리를 죽이고 더럽다고 바퀴를죽이는 인간이 말하기에는 너무 괴상하다. 인간은 인간을 살해하고도 다른 인간에게는 예의를 갖춰 대할 수 있을 정도의 분별이 가능한 존재다. 짐승 살생을 인간 살해로 결부시키는 것은 인간을 살해한 군인은 사회 내에서 인간을 살해할 수있으므로 가둬야 한다는 주장이나 다를 바 없을 정도로 단순하다. 미 FBI가 동물 학대를 중대 범죄로 규정했다고 하면서 짐승 살생을인간 살해와도 같을 정도로 중대한 잘못으로 몰고 가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은 일부 인간이 본인의 폭력성을 제어하지 못하고 짐승뿐만 아니라 인간에게까지 폭력을 휘두르는 사태가 나타나는 것이지 단순히 짐승에대한 폭력이 인간에 대한 폭력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다. 결과적으로 같은 결과가 나올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직접적 원인이라 규정할 수는 없다. 상관관계라 할 수 있어도 인과 관계라 할 수는 없다. 그걸 인과 관계로 여기는 것은 생명을 해치는 것으로 살아남는 인간이 말하기에는 지나치게 비논리적이다.

교화가 가능하더라도 대중은 엄벌을 말할 것이다. 그것은 법의 개념을 잘못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법은 피해자의 복수를 위한 것이 아니라 사회 질서를 위한 것이다. 법의 목적을 복수로 이해한 대중이 당한 만큼 갚아줘야 한다는 인식을 가지고 높은 양형을 요구하고질서 유지 방식으로 이해한 사법은 사회 질서를 위해 양형을 결정하므로 적절한 양형으로 판결하면서 대중과 사법의 인식 차이가 발생하게 된다.

 

현재 인간의 모습은 대부분 문명에 의해 만들어졌다. 동족 살해나 동족 포식에 대한 거부감이나 시간 관념 등 거의 모든 것이 문명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원시인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들은 문명인과 같은 생각과 행동을 하지 않는다. 인간의 선천적 성질인 유전자가 흙이라면 인간의 후천적 성질인 관념은 도자기 제조 재료다. 그 둘을 섞어 인간이 만들어진다. 인간의 대부분은 만들어진 것임을 파악하고 개인주의 체제에서는 개인의 자유 의지로 본인을 만들어가야한다.

그런 상황에서 특정한 인간상이 진리라고 말하며 그걸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주장은 어처구니 없는황당한 주장이다. 가령 여성주의와 같이 인간의 개성을 규정하여 특정한 인간상을사회가 수용해야 한다면서 탈코르셋이나 꾸밈노동을 말하며 여성에게 꾸미지 않는 개성을 갖추도록 강요하는 것은 부당한 억압에 해당한다.

 

 

관념에 대해 알았다면 자아도 알 수 있게 된다. 나는 벤자민 리벳의 자유 의지에 관한 실험, 일명 리벳 실험을 보고 관념을 이해하고 자아를 파악하여 자아와 육체를 분리하여 사고하는 것으로관념의 지배를 인식하고 제어하려 하면서 관념의 지배로부터 다소 자유롭게 되었다. 리벳 실험을 간단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준비 전위, 인간의 의지, 실제 실행의 시점을 측정하여 인간이 의지를 가지고 행동하는지에대한 실험을 했다. 여기서 준비 전위는 대뇌 피질의 운동 영역에서 발생하는근육 운동이 이루저지기 전의 두뇌 활동 신호를 말한다. 실험을 하자 놀랍게도 인간이 의지를 가지기도 전에 준비 전위가 일어난 것이다. 인간의 자아가 의지를 갖기 전에 인간의 뇌가 먼저 반응한 것이다. 리벳은 이 실험을 근거로 인간에게 자유 의지는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 실험 결과로 얻은 발상이 중요하므로 이 실험에 대한 다양한 논의는 생략하겠다.

나는 이 실험을 보자마자 리벳이 내린 결론과 별개로 다른 것이 떠올랐다. 자아의 의지와 무관하게 육체는 무의식적으로 행동한다는 것이다. 습관적 움직임이나 무의식적 움직임 또는 파블로프의 개나 지네의 딜레마와 같이 인간은 자아의 의지와무관하게 무의식적인 움직임을 가진다. 파블로프의 개는 개에게 먹이를 줄 때 종을 울리면 나중에 종만 울려도 개가 침을 흘리게 된다는 조건 반사 실험을 말하고, 지네의 딜레마는 무의식적으로 숨쉬는 것과 같이 행동하는 것을 의식하면 부자연스럽게 되는 것을말한다. 이것은 모두 알고 있는 공통 인식일 것이다. 누구나 습관적 움직임을 경험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리벳 실험을 통해 습관적 움직임뿐만이 아니라 인간의 모든 행동은 자아의 의지와 무관하게육체, 즉 뇌가 알아서 행동할 것을 예측하여 준비를 해놓고 있다는것을 알게 되었다. 이것이 인간의 본질이자 자아의 본질로 인간을 이해하는데매우 중요한 성질이다. 지금 설명할 때에는 정확한 설명을 위해 뇌로 지칭하나 이후활용할 때에는 자아와 육체를 맞대어 비교하기 위해 뇌가 아닌 육체로 지칭하겠다.

 

인간의 뇌는 인간의 생각과 행동을 학습하여 다음 생각과 행동을 예측하여 준비하고 자아가 의식적으로의지를 가지는 부분은 자아의 의지대로 되고 그렇지 않은 부분은 뇌가 무의식적으로 실행한다. 인간은 어떻게 자연스럽게 움직일 수 있었을까? 인간이 잠에서 깨어났을 때를 생각해보자. 잠에서 깨어나 눈을 뜨고 몸을 일으켜 상황을 파악하고 육체의 욕구를 인지한 다음 식사를 하거나배변을 하거나 다시 잔다. 거기서 세세한 부분을 특별히 의식적으로 의지를 갖고 하지 않는다. 반복적인 행동은 대부분 무의식적으로 행동할 정도로 자연스럽다. 되려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것을 의식적으로 제어하려고 하면 지네의 딜레마와 같이 부자연스럽게 된다. 뇌가 전부 계산하여 예측하여 인간의 생각과 행동을 미리미리 준비하고 세세한 부분은 직접 실행했기때문에 그것이 자연스러웠던 것이었다.

인간이 놀라는 것은 인간의 뇌가 예측하지 못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뇌가 모든 행동을 예측하여 준비해놓고 있는데 그 예측에서 벗어난 상황이 발생하면 자연스러운행동을 할 수가 없어 인간의 자아가 놀라게 된다. 반대로 미리 놀라게 될 것을 알고 있는 상황이라면 뇌가 예측할 수가 있어 준비하는 것으로 놀라지 않거나 놀라더라도 적게 놀라게 된다. 이는 위급 상황에도 마찬가지다. 위급 상황에 대한 경험이 있으면 뇌가 예측하여 준비하고 실행하는 것으로 재난 발생시에도 신속하게행동할 수 있으나 그런 것이 없으면 패닉 상태가 되어 혼란에 빠져 행동할 수 없게 될 수 있다. 그렇기에 인간은 재난 발생 훈련을 하는 것이다. 낯선 환경에 가면 적응하기 힘든 것도 그 환경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여 뇌가 정확히 예측하지 못하여자연스러운 행동을 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자아의 의지와 뇌의 예측에 따른 준비에 혼선이 발생하여 실수를 하기도 한다. 가령 잠결에 커피를 마시기 위해 믹스커피 스틱을 뜯고서 컵에 내용물을 넣으려 했는데, 과거 믹스커피 스틱을 들고 있는 상황에서 인간이 믹스커피 스틱을 쓰레기통에 버렸다는 것을 기억한뇌가 그걸로 앞의 행동을 예측하여 준비해놓고, 자아가 그것에 저항하지 않으면 뇌가 실행해버리면서 무의식적으로 내용물이 든 믹스커피 스틱을 쓰레기통에 버리게 된다.

이런 구조기 때문에 서블리미널이 효과가 있다. [서블리미널애드는 사람들이 의식할 수 없는 자극을 반복하여 줌으로써 잠재의식하에서 구매 의욕이생기도록 북돋우기 위한 광고를 뜻한다.] 의식적으로 기억하지 않은 것이라도 뇌가 예측하여 행동을 준비해버리면 머릿속에서 떠올라 구매 욕구가 발생할 수도 있다. 그러나 서블리미널은 자아가 인지하지 않은 정보기 때문에 지나가다 스친 간판과도 같을 정도로 정보의중요도가 낮아 그런 것에 영향을 끼칠 확률은 낮다. 그럼에도 어떤 촉매가 있으면 간판 내용이 떠오르기도 하는 것과 같이 촉매가 있으면 확률이 없는 것은 아니기에 효과가 있을 수 있다. 효과 유무와 별개로 이것은 잘못된 방법이기에 대부분 나라에서 법으로 금지하고 있다.

그보다는 직접적으로 인지하게 하는 대화, 세뇌 등이 효과적이다. 직접 인지하여 얻은 정보는 중요도가 높아 그에 따른 뇌의 예측과 준비가 나타날 확률이 높다. 누군가 A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본인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도 그 정보를 바탕으로 뇌가 계산하여 준비해버리면 A에 대한 인식이 자리잡을 수가 있다. 그런 인식이 머릿속에 떠오를 때 그것에 생각하지 않고 수용해버리면 그대로 세뇌되는 것과 같다할 수 있다.

2021년 미국에서 틱톡에서 유행한 틱 장애 영상을 흉내 낸 10대 소녀들이 정말로 틱 장애가 발생한 사건이 있었다. 뇌가 그런 흉내를 학습하여 예측하여 행동을 준비하여 실행해버렸기 때문에 틱 장애가 발생한 것이다.

중독성이 있는 노래가 머릿속에 맴돈다거나 일 중독에 걸리는 것도 뇌가 인간의 생각과 행동을 예측하여준비하여 실행하기 때문이다. 자아가 원치 않아도 머릿속에 노래가 떠오르게 하고 일을 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한다. 특히 일 중독은 오랫동안 그것을 반복하여 그걸 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상황이기에 하지 않으면 불안감과초조함을 느끼게 된다. 반복적인 학습으로 나타나는 중독은 대체로 그런 뇌의 예측에의한 자연스러움 때문이다.

흔들다리 효과라는 것이 있다. 인간은 흔들리는 다리 위에서 이성을 만나면 공포심에 의해 뛰는 심장을 호감에 의해 뛰는 심장으로착각하고 이성에 대한 호감도가 높아진다. 인간의 자아는 육체와 일체화된 것이 아니기에 그런 착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뇌의 예측과 준비와 실행으로 육체가 멋대로 움직이니까 그렇다. 인질과 납치범이 사랑에 빠지게 되는 스톡홀름 증후군도 마찬가지다. 자아의 의지와 무관하게 멋대로 육체가 움직이니까 그런 착각을 하게 된다.

인간의 발상도 뇌가 특정 상황을 조합하여 예측하여 준비하고 실행하는 것으로 머릿속에 떠오르게끔한다. 이러한 특성이 인간의 욕구 외의 연료가 되게 한다. 인간은 최초 욕구를 연료로 행동하나 그런 행동이 반복되어 뇌가 예측하여 생각과 행동을 준비하고실행할 수 있게 되면 욕구 외에도 뇌의 예측으로 발상이 떠올라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게 된다. 욕구에서 점진적으로 욕망이 커져가는 것은 인간의 생각과 행동이 욕구에서 시작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욕구 외의 복잡한 생각과 행동을 할 수 있게 된다. 이 특성이 인간을 지성적인 존재로 만들었다. 인간과 짐승의 차이는 지능이다. 인간의 뇌는 수준이 높은 예측을 통해 복잡한 욕망을 이끌어내어 수준이 높은 지성을 갖게 하고짐승의 뇌는 수준이 낮은 예측을 통해 단순한 욕망을 이끌어내어 수준이 낮은 지성을 갖게 하거나 지성이 없게 된다.

인간은 본인의 머리 속에 어떤 것이 떠오른다고 그것이 반드시 본인의 의지에 의한 것임이 아님을알고 있어야 한다. 머리 속에 떠오른 모든 것이 본인의 의지로 인식하는 것은인터넷 포탈에서 본인이 검색한 것뿐만 아니 포탈 인공 지능이 자동적으로 선별한 추천 검색어도 본인의 의지로 검색한 것이라 여기는 것과 다를 바없다. 뇌에서 떠오른 것은 뇌가 알아서 추천 검색어처럼 떠올리게한 것도 있다. 그걸 고려하여 본인의 뇌에 그릇되거나 부정된 것이 떠올랐다고본인을 자책할 필요가 없다. 그것은 그냥 단순한 뇌의 예측에 의한 준비와 실행에 불과하다.

인간의 자아는 반자동 로봇을 타고 있는 것과 같은 것이다. 뇌는 인간이 지금까지 생각하고 행동한 모든 것을 계산하여 앞으로 행동을 예측해 행동 준비를 해놓는다. 버튼을 누른다라는 행동을 반복하면 뇌는 다음에도 이 시기에 행동할 것이라 예측하고 행동 준비를한다. 인간의 자아가 행동할 때에도 뇌가 준비된 대로 행동하면자연스럽게 행동하고 그렇지 않으면 어색하게 행동한다. 준비된 대로 행동하지 않았더라도 그 행동을 뇌가 학습했으면 자연스럽게 행동할 수 있도록 세세한 부분의 행동을 실행한다. 자아가 관념으로 체계화된 행동을 하는 것으로 뇌도 관념으로 체계화된 행동을 학습하는 것으로 자아와뇌 모두 관념에 영향을 받는다. 자아와 뇌 둘 다 관념대로 행동하기에 인간은 관념의 지배로 행동하게 되는 것이었다. 이때부터 관념에 대해 이해하게 되었다.

자아는 육체의 모든 권한을 쥔 존재가 아니었다. 인간의 의지와 뇌의 반응은 다를 수가 있었다. 가령 그러므로 인간의 자유 의지가 없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자유 의지와 무관하게 육체가 알아서 작동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걸 자아가 제어를 잘하면 자유 의지대로 살 수 있고 제어를 잘 못하면 경험에 의해 만들어진관념대로 자유 의지가 없이 살게 된다. 고찰 없는 자유 의지는 없다. 고찰을 통해 뇌의 행동 준비를 인식하고 의지를 가지고 판단해야 그 시점에서 진정한 자유 의지라 할 수 있게 된다.

자아는 육체가 아니다. 그렇다면 자아는 육체의 경험으로 형성된 육체 권한의 일부를 쥐고 있는 소프트웨어라는 말이 된다. 자아는 유전자의 정보를 토대로 기본적인 욕구를 바탕으로 관념을 가치 판단 기준으로 삼아 관점을정하여 감각을 느끼고 나서 욕망을 바탕으로 새로운 관념을 학습하는 것을 반복하면서 형성되게 된다. 여기서 관념에 의한 행동 원리가 AI의 알고리즘과 유사하게 된다. 관념 학습을 설계하면 인간 또한 인공 지능과 같은 효율적인 알고리즘 설계가 가능하게 된다. 그것이 새로운 교육 방법 중 하나라 보고 있다. 기초 관념 학습이 끝나 대부분이 고정되면 자아 형성이 완료했다고 볼 수 있다. 보통 사춘기에 자아가 형성되어 형태를 갖춘다. 그 모든 과정이 신경 세포의 신호를 모아 뇌가 정리하는 것으로 인식하는 것이므로 자아는 세포의여론이라 볼 수도 있다.

 

 

나는 리벳 실험을 통해 자아와 육체가 분리되어 자아의 의지와 무관하게 육체의 움직임이 일어날수 있음을 깨닫고 과거의 절망에서 벗어나 진지하게 나의 문제와 사회 문제의 본질이 무엇인지 생각하기 시작했다. 이 실험을 알기 전에도 역할주의에 대해 떠올리고 썼으나 본격적인 사상의 시작은 이 실험 알고난 후부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사상가의 사상은 경험에 의한 것이 많다. 나의 경험에 대해 간단히 설명하겠다. 나는 초등학교 저학년 시기에 바나나 우유 부정취득 사건 이후 온갖 유교적 가치관을 세뇌 당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어떤 마트에서 유통기한 지난 음식을 발견하면 3배로 보상해주는 제도를 시행했었는데, 그걸 보고 어렸던 나는 유통기한이 지나기 쉬운 바나나 우유를 진열대 바로 아래에 살짝 숨긴 다음유통기한이 지난 후에 꺼내어 점원에게 보여주고 보상을 받은 적이 있었다. 몇 차례 부정한 보상을 받다 CCTV로 점원에게 그 행위가 적발되어 부모에게 크게 혼난 적이 있었다. 나는 그것에 왜 잘못되었는지 합리적인 이유를 듣고 납득한 것이 아니기에 체벌로 반항심이 생겨나고, 부모는 그것을 행한 자녀가 그대로 놔두면 삐뚤어질 것을 염려한 것인지 몰라도 도덕적 행위를 강조하게되었다. 나는 성장하면서 연령 차별이 윤리인 유교 사회에서 연상에의해 온갖 부당함을 경험하게 된다. 초등학교 고학년에서 중학교 저학년 시기에 있던 일이다. 또래가 아닌 친구의 동생과 어울리는 것을 보고 크게 혼나거나, 김치를 먹지 못한다고 강제로 먹게 되다 토를 한다거나, 유행하는 노래를 보고 따라 불러도 혼내거나, 원치 않아도 연상 앞에서 무릎 꿇고 바닥에 머리를 박고 돈을 받는 세배라는 풍습을 해야 한다거나, 전단지 알바를 하다가 크게 혼나거나 하는 것과 같이 정말 시시껄렁한 사건 하나하나가 유교적 가치관에의한 억압이었다. 그것이 윤리가 아니라면 반항하였지만 그것을 윤리라 배웠기때문에 반항조차 어려웠다. 그렇게 연상에 대한 공격과 복종을 학습하면서 그에 대한 관념이 만들어졌다. 그러면서 자존감이 추락한 상태에서 14세 때 특정 사건에서 나의 자유 의지로 연상에게 의사를 표현하지 못했을 때 모든 것을 자포자기했다. 머리 속에서 강하게 의사를 표현하겠다고 마음 먹었음에도 의사 표현이 목에서 걸리고 나오지 못했다. 그 당시는 내가 왜 연상에게 의사 표현을 하지 못했는지 몰랐다. 단지 내가 못나서 그런지 알고 자책하고 후회하고 슬퍼하고 절망했다. 그러다 이 실험으로 그것이 온전히 나의 의지가 아니었음을 알게 되었다.

나는 뇌가 나의 행동을 학습하여 예측하여 준비하고 실행하는 것에 의해 의사 표현을 하지 못하게되었고, 나의 자아는 가르침으로 만들어진 관념에 의해 그런 준비를거부하지 못하여 의사 표현을 하지 못한다는 실행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내가 의사 표현을 하지 못한 것은 세뇌 당하여 자유 의지를 갖지 못한 것과 원리가 같았다. 그걸 인식하고 더 이상 나는 나에게 절망하지 않기로 했다. 나는 뇌의 안에 존재하는 자아지 육체 자체가 아니었다. 그것으로 육체가 아니더라도 자아가 살면 내가 산다는 인식도 갖게 되었다.

 

특정 사건 이후 나는 스스로에게 실망하여 자아가 죽을 뻔했다. 자아가 붕괴하여 자살할 수 있는 것을 막은 것이 현실 도피다. 학업을 포기하고 게임과 만화와 소설로 현실 도피 하는 것으로 생존했다. 현실 도피를 통해 자아의 죽음을 막는 대신 자아의 시간이 멈췄다. 오랫동안 멈추면서 자아의 시간이 완전히 고정된 것이 아닐까 싶다. 자아 형성 시기였기 때문에 계속 자아 형성 중에 있는 것 같다. 그러면서 계속 생각했다. 그리고 자아의 시간이 달라 또래와 같은 가치관을 갖지 않게 되었다. 자아의 시간이 멈추고 또래와 다른 가치관을 가지면서 보편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사고할 수 있는사상가가 될 수 있는 준비가 되었던 것 같다. 생존주의는 이렇게 일단 살고 보자는 경험을 토대로 만들어졌다.

역할주의는 롤플레잉 게임을 하다가 떠올렸다. [롤플레잉 게임_체육은 이용자가 게임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인물의 역할을 맡아 줄거리를 따라 진행해 나가는 컴퓨터 게임을 뜻한다.] 온라인 RPG인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와 리그 오브 레전드를 하다 떠올렸다. 각자의 역할을 수행하기만 하면 상대가 누구든 존중하는 롤플레잉 게임에서의 인간관계를 보고 역할을 기준으로 가치 판단을 하자는 주장을 하게되었다. 이 사상은 관계 가치로 발전하게 되었다.

탐구주의는 리벳 실험 이후 다양한 것을 생각하면서 떠올렸다. 구체적으로 배우고 나서 발상하는 것이 아닌 기초적인 것만 배우고 발상하고 나서 오류를 수정하는방식을 통해 지식이 만드는 고정 관념에서 자유롭게 발상한 다음 오류를 수정하면서 다양한 인식을 갖게 되었다.

민주주의와 자유주의에 대한 추구는 유교적 가치관에 의한 억압에 의해 나타났다. 자유롭고 싶다는 마음이 컸다. 처음에는 자유주의에 대한 인식이 없어 민주주의만 추구했으나 진정한 의미에서 개인의 자유를 추구한사상은 자유주의였다.

자본주의는 금전 만능주의의 원인으로 착각하였으나 시장 원리와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등을 보고 개인의의사를 반영하는 효율적인 경제 체제임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는 모두 개인의 의사를 반영하는 개인주의 체제임을 알게 되었다.

유교적 가치관에 의해 의사표현을 못하고 망가졌던 만큼 유교적 가치관에 의한 도덕관념이 잘못되었다고생각하고 금욕주의와 이타주의가 잘못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나의 사상은 이렇게 나의 경험을 통해 만들어졌다.

 

관념에 대한 설명과 관념을 이해하게 된 계기에 정리했다. 인간이 사물이나 현상을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서 인간이 만들어지게 된다. 그것은 동족 살해나 동족 포식에 대한 거부감을 느끼는 관념과 같은 기본 윤리나 시간에 대한 관념과같은 기본 개념을 비롯한 대부분이 인간의 관념에 의해 결정되었다. 그렇기에 인간의 교화 또한 관념 교정을 통해 가능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인간은 인간의 생각으로 만들어진다. 그렇게 만들어진 자아는 인간의 육체와 별개의 존재였다. 자아는 육체의 조종자이지 육체 자체가 아니었다. 이걸 알아야 인간의 행동 원리의 본질을 알고 사상과 철학을 할 수 있게 된다고 본다.

 

 

 

4. 체제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사회의 체제가 무엇인지 알아둘 필요가 있다. [체제는 사회를 하나의 유기체로 볼 때에, 그 조직이나 양식, 또는 그 상태를 이르는 말을 뜻한다.]

인류 문명의 체제를 크게 두 가지로 나눈다면, 왕에게 주권이 있는 왕정과 국민에게 주권이 있는 민주정으로 나눌 수 있다. 개인이 개인의 이익만을 추구하면 지배가 불가능하기에 왕정은 자연스럽게 집단의 이익을 우선시하는집단주의 체제가 된다. 국민에게 집단의 이익을 우선시하게 만들고 집단의 장인 왕이이익을 취하는 구조다. 개인이 개인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것을 억압하면 자유가 불가능하기에민주정은 자연스럽게 개인의 이익만을 우선시하는 개인주의 체제가 된다. 모든 국민 개인이 개인의 이익만을 우선시하여 모든 개인이 이익을 취하는 구조다. 지배는 곧 집단주의가 되고 자유는 곧 개인주의가 된다. 집단주의 체제는 국민에 대한 지배를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 인간에 가치 판단을 하여 욕망이 악이라는전제하에 만들어진 금욕주의와 이타주의를 윤리로 삼았으나, 개인주의 체제는 국민이 보다 자유롭기 위해 인간의 이익과 행복 추구로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는 공리주의를 윤리로 삼았다. 그러나 공리주의는 인간의 이익과 행복의 추구라는 주관적 성질에 대한 합리적 기준이 없어 공공의이익을 챙기기 어렵다는 뚜렷한 한계점을 가지고 있었다. 본래 왕정의 윤리가 금욕주의나 이타주의였다면 체제가 정반대인 민주정의 윤리도 정반대로 욕망주의와 이기주의였어야 했다. 고정된 관념에 의해 그것이 어려워 왕정의 윤리를 쓰는 바람에 관념과 체제가 맞지 않아 사회적혼란이 생겨버렸다. 육체 구조 유지를 위한 강제성을 사회 구조 유지를 위한강제성에 대입한 생존주의로 접근한다면 생존이라는 합리적 기준으로 공공의 이익을 전제한 상태에서 최대한의 자유를 누릴 수 있고, 역할이란 관계에 가치 판단을 하면 인간의 욕망을 악으로 여기지 않을 수 이어 공리주의, 욕망주의, 이기주의 등이 윤리로 성립될 수 있을 것이다.

 

왕정의 관념을 가진 상태에서 민주정 체제로 진보한 결과, 집단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집단주의 관념과 개인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개인주의 체제가 충돌하게 되었다. 그로 인해 수많은 사회 문제가 발생했다. 한국의 높은 자살률이나 낮은 출산율을 비롯한 대부분의 사회 문제가 관념과 체제 충돌의 결과물일정도였다. 이러한 충돌 문제는 왕정에서 민주정으로 체제 전환 시기부터있던 뿌리깊은 문제다. 다수가 왕정의 가치관으로 살다 보니 왕정의 제도 중 하나인신분제 관념으로 노동자를 농노 취급하여 착취하였다. 이것이 산업 혁명 당시 자본가의 노동자 착취다.

영주의 농노 착취와 자본가의 노동자 착취는 본질적으로 같음에도 개인의 욕망으로 구동되는 자본주의체제에 원인이 있다고 주장하면서 기독교적 공동체 가치관과 유사한 공동체 생산과 공유를 주장하는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같은 집단주의 체제를 가진 국가가나타나게 되었다. 즉 관념에 맞는 체제로 다시 돌아가자는 주장을 한 것이다. 이것이 낡은 가치관에 의해 발생한 문명 역행 사건이다. 공산주의가 계급 투쟁으로 혁명을 일으키면서 진보라 주장하는 좌파의 본질은 계급 투쟁이 되었다. 서양 인문학의 발전이 윤리를 진리로 규정한 상태에서 대상의 확대였으므로, 그걸 기준으로 하면 노동자가 이익을 얻었으므로 진보로 여겨질 수 있으나, 문명 자체로 보면 명백한 퇴보에 해당한다. 공산주의 국가가 왕정과 같은 정치 체제로 나아간 것은 사상의 변질과 별개로 관념과 체제의 윤리적명제가 왕정과 유사했기 때문이다. 본질이 같으면 유사한 결과가 나온다.

반면 낡은 가치관에 의해 관념과 체제의 충돌이 있음에도 개인의 자유와 주권과 소유가 중요하다고주장하면서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같은 개인주의 체제를 유지하는 국가가 나타나게 되었다. 즉 관념과 체제가 충돌하고 있음에도 개인주의 체제가 우수하므로 유지하자고 주장한 것이다. 그러면서 진보적인 개인주의 체제가 보수가 되었다. 이것이 낡은 가치관에 의해 발생한 보수와 진보의 교환 사건이다. 자본주의로 이익을 얻은 이들이 공산주의와 다른 진보를 추구한 것이 아닌 그들과 싸움과 동시에보수를 자처하고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태도를 취하면서 보수라 주장하는 우파의 본질은 기득권 유지가 되었다. 왕정과 민주정의 이익 추구 방향이 정반대의 사상인 것을 고려하면 현재 개인주의 체제는 문명 자체로보면 명백한 진보에 해당한다. 자유주의가 왕정과 같은 독재정 체제였다가 민주정으로 나아간 경우가 많은 것은 관념의 윤리적 명제가 왕정과 유사했으나 체제가 왕정과 달랐기때문이다. 본질이 다르면 다른 결과가 나온다.

당시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를 반대하는 이들조차 그들이 주장하는 윤리적 명제를 부정하지 못하는 바람에수정 자본주의나 신자유주의 등과 같은 체제 변화를 실험하게 되면서 왕정의 가치관에 의해 민주정의 체제가 수정되는 사건이 발생하게 된다. 현대 복지가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덕이라 말하는 이들이 있는데 본래 그래서는 안되었다. 체제에 맞는 윤리를 통한 복지를 실행했어야 했다. 체제가 다른 윤리를 바탕으로 복지를 행하다 보니 비효율적이고 불균형하며 비논리적인 복지를 남발하게되고 있는 것이다.

자유 진영에서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를 논리적으로 논파한 것이 아니었기에 미국에서는 그 사상에 반대하기위해 물리적으로 반대하는 매카시즘이 나타나고 정신적으로 반대하게끔 만드는 CIA의 정보 공작 등이 실행되게 되었다. 자본주의는 시장 원리에 의해 소비자가 고가치 생산품을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어 소비자가 행복하게되는 사상이다. 그 외의 윤리는 민주정에 맞는 가치관을 만들어 경제에 윤리를넣는 것이 아니라 경제는 경제대로 효율을 추구하고 윤리는 사회에서 균형을 추구했어야 했다. 그러지 못하여 아직까지도 윤리 대상 확대가 인문학의 진보라 여기면서 PC주의, 여성주의, 반지성주의, 동물 보호주의 등과 같은 일부 집단의 이익을 얻을 권리를 주장하는 이권운동 등이 세상을 어지럽히게되는 계기가 되게 된다. 그 흐름을 한국도 따라가고 있었다.

개인주의 체제는 인간의 본성을 그릇되다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드린 상태에서 인간이 이기적이어야올바른 결과가 나오도록 설계했다. 자유, 선거, 시장, 법치 등을 고려하면 이기적이어야 올바른 결과가 나온다. 이타적으로 개인의 자유를 포기하면 자유주의라 할 수 없고, 이타적으로 개인의 주권을 포기하면 민주주의라 할 수 없고, 이타적으로 개인의 소유권이나 선택권을 포기하면 자본주의라 할 수 없고, 이타적으로 법 앞의 평등을 무시하면 법치주의라 할 수 없다. 개인주의 체제인 사회는 개인이 이기적으로 권리를 등을 추구해야 올바른 결과가 나온다. 그런 사회가 얼마나 선진적이고 위대한가? 인간의 욕망을 악으로 몰며 인간 스스로를 괴롭게 했던 그런 집단주의 체제와 격이 다른 체제다. 인류는 개인주의 체제로 진보했다. 그러나 아직 관념은 집단주의 체제에 머물러 있다. 그러므로 이제 인류는 개인주의 관념으로 진보해야 한다.

과거 개인의 육체적 자유를 위해 개개인을 계몽했다면 이제는 개인의 정신적 자유를 위해 개개인이각성해야 한다. [계몽은 지식수준이 낮거나 인습에 젖은 사람을 가르쳐서 깨우침을뜻한다.][각성은 깨어 정신을 차림을 뜻한다.] 계몽은 타인이 가르쳐서 깨우치게 하는 것이라면 각성은 본인이 스스로 깨우치는 것을 말한다. 인터넷을 통해 정보 수집이 수월한 현대, 오늘날의 시대는 계몽 시대가 아닌 각성 시대다.

자유 진영과 같이 개인주의 체제에서는 과거 계몽 시대와 같이 물리적 혁명이 필요가 없다. 관념의 문제이므로 각성하여 체제에 맞는 관념만 가지면 정신적 혁명이 일어난다. 사상 혁명이다. 인터넷을 통해 모두 민주정에 맞는 관념을 가지면 된다. 그러면 관념에 의해 사회가 바뀐다. 왕정이나 공산 진영과 같이 집단주의 체제에서는 체제 자체가 개인의 의사를 반영하지 못하는 영역이 많아 물리적 혁명이 필요할 수는 있다. 시대의 명분은 분명 개인주의에 있다.

 

개인주의 체제는 왕정의 관념에 의해 왜곡되는 일이 많았다. 자유주의는 모든 개인의 자유가 아닌 왕정의 왕과 같이 본인이나 일부의 자유로만 해석하기도 했다. 그런 탓에 자유방임주의가 나타나 자유주의를 더럽히게 되었다. 민주주의는 모든 개인의 주권이 아닌 시민 계급의 계급 투쟁으로 해석하기도 했다. 그런 탓에 사회 민주주의나 인민 민주주의와 같이 개인의 자유를 기본으로 하지 않는 개인의 주권보다집단의 주권이 우선되는 민주주의가 나타나게 되었다. 자본주의는 모든 소비자의 행복이 아닌 왕정의 왕과 같이 본인이나 일부의 이윤 추구로만 해석하기도 했다. 그런 탓에 시장 원리를 무시하고 유착과 비리 등을 통한 이윤을 추구하여 자본주의 자체를 망가트리는일을 하기도 했다. 법치주의는 모든 국민의 법 앞의 평등을 기초한 사회 질서유지가 아닌 법을 복수의 수단으로 보고 민중이 감정대로 처벌하던 마녀사냥이나 인민재판으로만 해석하기도 했다. 그런 탓에 법치를 무시하고 감성적으로 떼 법을 주장하면서 법의 합리성을 파괴하는 일이 발생하기도했다.

체제 해석의 차이는 우파와 좌파의 본질에 따라 결정되기도 한다. [우익_정치는 보수적이거나 국수적인 경향을 뜻한다. 또는 그런 단체. 1792년 프랑스 국민 회의에서, 온건파인 지롱드당이 의장의 오른쪽 의석을 차지한 데서 나온 말이다.][좌익_정치는 급진적이거나 사회주의적·공산주의적인 경향을 뜻한다. 또는 그런 단체. 1792년 프랑스 국민 의회에서, 급진파인 자코뱅당이 의장의 왼쪽 의석을 차지한 데서 나온 말이다.] 이 우익과 좌익에 파벌이 붙어 우파와 좌파가 형성되었다. 우파와 좌파는 각각 기득권 유지와 계급 투쟁을 전제로 사상들을 해석하였다. 기독교에 영향을 받은 사회주의에서 파생된 파시즘이 대표적인데, 기득권 유지로 쓰면 우파의 파시즘이고 계급 투쟁으로 쓰면 좌파의 파시즘이 된다. [파시즘은 제일 차 세계 대전 후 나타난 극단적인 전체주의적·배외적 정치 이념을 뜻한다. 또는 그 이념을 따르는 지배 체제. 자유주의를 부정하고 폭력적인 방법에 의한 일당 독재를 주장하여 지배자에 대한 절대적인 복종을강요한다. 또한 대외적으로 철저한 국수주의·군국주의를 지향하여 민족지상주의, 반공을 내세워 침략 정책을 주장한다.] 일부 예외를 제외하면 대부분은 기득권 유지와 계급 투쟁으로 바라보면 우파와 좌파를 이해할 수있다. 우파는 자유주의와 권위주의와 같이 지향이 다른 사상이 같이분리되기도 하는데, 기득권 유지로 바라보면 모순이 사라진다. 좌파는 사회주의와 아나키즘과 같이 지향이 다른 사상이 같이 분리되기도 하는데, 계급 투쟁으로 바라보면 모순이 사라진다.

민주주의는 기득권 유지와 계급 투쟁과 개인의 주권으로 바라본 것으로 나뉜다. 기득권 유지는 보통 자본주의가 섞인 자유 민주주의라 하고 계급 투쟁은 보통 사회주의나 공산주의가섞인 사회 민주주의나 인민 민주주의라 하고 있다. 민주주의의 본질은 개인의 주권에 있으므로 모든 민주주의는 개인의 자유가 기본이기에 자유 민주주의는 동어 반복이고 사회 민주주의나 인민 민주주의는모순이나 거짓이 된다. 개인의 주권으로 바라보았을 때에 자유 민주주의 외의 민주주의는민주주의로 성립되지 못하므로 그냥 민주주의면 된다. 그렇기에 나는 민주주의를 자유 민주주의라 부르지 않고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로 나눠서 부르거나 개인주의 체제로 묶어서 부르고 있다.

본질을 알고 나면 한국의 민주화 운동도 해석이 된다. 독재 정권이란 기득권과 맞선 한국의 민주화 운동에는 민주주의를 개인의 주권으로 생각한 인간과권력 투쟁으로 생각한 인간과 독재에 대한 국민의 계급 투쟁으로 생각한 인간으로 나뉜다. 거기에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선동도 포함된다. 민주화 운동이 한국 우파와 좌파마다 의견이 갈리는 것은 이것 때문이다. 그러나 프랑스 혁명을 시민의 자유로 생각하거나 자본가의 권력 쟁탈로 생각하거나 시민 계급의 계급투쟁으로 생각한 인간이 있어도 프랑스 혁명을 폄하하는 일이 없듯이 민주화 운동 또한 일부가 계급 투쟁으로 해석하였더라도 폄하할 이유는 없다. 민주화 운동은 그 자체로 가치가 있다. 물론 성역화할 이유도 없다. 그 어떤 것도 성역화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올바른 판단을 저해하는 요소가 된다.

 

선과 악은 기준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므로 윤리 또한 체제 마다 다른 명제가 성립될 수 있다. 윤리는 명제가 될 수 없다는 의견은 체제와 무관하게 진리에 해당하는 윤리가 존재할 것이라는 종교적사고에서 비롯된 것이다. 인류는 종교라는 단일 선악에 지배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야한다. 문명은 사회에서 비롯된 것이므로 사회가 없는 짐승으로서의인간의 선은 생존이고 악은 멸종이다. 그것을 보편 윤리로 삼고, 그 외의 선과 악은 체제나 개인마다 달라져야 한다.

 

 

주요 체제에 대해 간단히 알아보자.

 

첫째, 자유주의. [자유주의_철학은 개인의 인격의 존엄성을 인정하고, 개성을 자발적으로 발전시키고자 하는 사상을 뜻한다. 개인의 사유 활동에 대한 간섭을 줄이고, 가능한 자유를 증대시키려고 하는 생활 방식이다.] 자유주의는 개인의 자유기 때문에 개인의 자유에 속하는 욕구와 욕망과 이기심 등을 전부 긍정한다. 그렇게 하여 개인이 자유롭게 행복하고 최대한 성장하여 사회를 이롭게 하는 것이 일반적인 자유주의의이념이다. 그런데 이것은 왕정의 윤리인 금욕주의와 이타주의와 충돌하게된다.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는 자유주의가 인류에 퍼지기 어려웠던까닭은 그것이 개인에게 이롭다 하더라도 오래된 왕정의 관념과 충돌하여 자유를 죄악시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왕정의 윤리를 긍정할 수는 없다. 금욕주의와 이타주의는 반드시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기 때문이다. 본인의 자유 의지로 행하는 금욕과 이타는 욕망과 이기와 같다. 본인의 의지로 욕구를 절제하거나 금하겠다나 타인의 행복을 위해 희생하겠다는 둘 다 개인의 자유의지로 욕망과 이기다. 하기 싫은데 금욕하고 타인의 행복을 위해 희생한다는 것은타인의 의지로 본인의 욕망과 이기와 관련이 없다. 그러므로 금욕과 이타는 타인의 의지로만 가능하게 된다. 욕망적이거나 이기적이지 않은 순간부터 반드시 개인의 자유는 침해되게 된다. 본인의 행복을 위하든 타인의 행복을 위하든 개인의 자유가 온전히 보장되기 위해서는 욕망적이고이기적이어야 한다. 만약 서로의 욕망과 이기심이 충돌한다면 대화나 토론이나여론이나 법 같은 사회적 협상을 통하거나 정해진 공정한 규칙을 기준으로 한 경쟁에서 우선 순위를 결정하면 된다.

자유주의의 결함은 자유에 대한 합리적 기준 부재다. 합리적 기준이 없어 각자 다른 자유를 주장하면서 혼란이 발생한다. A는 자유로워도 되나 B는 자유로우면 안 된다는 식과 같이 대상 선별은 애초에 자유주의가 아니다. 그런 식의 자유는 왕이나 독재자도 누리고 있다. 자유주의는 모두가 자유로워야 하고 민주주의는 모두가 주권을 가져야 하며 자본주의는 모두가 소유권을가져야 하고 법치주의는 모두가 법 앞에 평등해야 한다. 이런 것이 개인주의 체제의 기본이다. 문제는 자유의 종류다. 가령 A는 학문의 자유는 정당하나 사상의 자유는 부당하다 주장할수 있고 B는 표현의 자유는 정당하나 성에 대한 표현의 자유는 부당하다주장할 수 있다 할 수 있듯이 각자 다른 자유를 주장할 수 있기에 혼란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자유는 주관적 기준이기에 자유 자체에 초점을 맞추면 합리적 기준이 설정될 수가 없다.

그러나 생존주의와 같이 구조 유지를 위한 최소한의 강제력에 초점을 맞추면 합리적 기준이 설정될수 있다. 사회와 체제 구조에 결정적인 붕괴를 일으킬 타격을 주지않는다면 대부분 자유다. 이 부분은 논의가 있을 수 있으나 대부분의 낡은 관념에의한 불필요한 억압은 없앨 수 있다. 공산주의 같은 상품 가치나 소비자도 고려하지 않은 수준 낮은 사상 좀 본다고 문제될 것 없고 성기능이 작동하는 미성년이 야한 것 좀 본다고문제될 것 없다. 특히 왕정의 가치관이 그러하다. 구조와 관계 없이 그냥 오래된 관념이라 지켜왔던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걸 근거로 한 억압, 규제, 검열 등은 전부 부당한 것이 된다. 그것을 통해 객관적 자유를 보장하는 것으로 자유주의의 결함을 없앤다. 생존주의적 자유주의야말로 생존이라는 합리적 기준을 통한 논리적인 사상이다.

 

둘째, 민주주의. [민주주의_정치는 국민이 권력을 가지고 그 권력을 스스로 행사하는 제도를 뜻한다. 또는 그런 정치를 지향하는 사상. 기본적 인권, 자유권, 평등권, 다수결의 원리, 법치주의 따위를 그 기본 원리로 한다.] 민주주의는 국민이 권력을 가지고 있으나 인구수의 문제로 대부분의 국가에서 선거 제도를 통해 국민의 대표자를 선출하는 대의 민주주의를 채택하고있다. 정치와 권력과 국민의 관계를 간단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정치가는 정치를 하는 인간이고 정치는 정부 권력을 쥐기 위한 활동이고 정부 권력은 강제력을 쥐기위한 힘이고 국민은 국민 권력을 쥐고 있는 인간이고 국민 권력은 정치가를 선출할 수 있는 힘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대의 민주주의에서 국민이 권력을 쥐고 있다. 여기서 강제력이 보통 법과 정책 등의 강제를 말한다. 이 강제력은 체제에 따라 적용대상이 다른데 생존주의에서는 사회와 체제 구조 유지를 주로 하여개인에게 최대한의 자유를 보장한다.

대의 민주주의에서 선거 제도는 모든 유권자에게 정치가 인사권을 고르게 1표씩 나눈 것에 해당한다. 모든 유권자가 정치가와 면접보고 타당하다 여겨지는 정치가를 선출하는 인사권을 행사하는 것이 바로선거 제도다. 선거는 시장과 같이 개인의 의사를 반영하여 자유 시장 원리가작동하게 된다. [자유 시장 원리_경제는 상품의 가격이 자본주의 시장에서 상품의 수요와 공급에 따라 자연적으로 결정되는 원리를뜻한다.] 자유 선거 원리는 정치가의 선출이 민주주의 선거에서 정치가에대한 국민의 표심과 정치가의 후보 등록에 따라 자연적으로 결정된다. 민주주의와 자본주의가 개인의 의사를 반영하기 때문에 원리가 같게 된다. 유불리도 같다. 민주주의가 가진 지명도에 따라 유불리가 달라지고 자본주의는 가진 부에 따라 유불리가 달라진다.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는 모든 개인의 의사를 반영한다는 측면에서 같은 개인주의 체제이므로 민주주의를기득권 유지나 계급 투쟁으로만 바라본 것이 아니라면 민주주의자는 자연스럽게 자본주의자가 된다.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인식 차이는 공정의 난이도 차이다. 민주주의는 변수가 적어서 공정하기가 상대적으로 쉬워 옳게 보일 수 있고 자본주의는 변수가 많아서공정하기가 상대적으로 어려워 그르게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개인의 의사를 반영한다는 측면에서 본질은 같다.

민주주의는 그 자체가 인간의 목적이 아니다. 가령 생존과 자유가 인간의 목적이나 모두가 그걸 바라기에 평등을 추구하게 된 것과 같이 주권이인간의 목적이나 모두가 그걸 바라기에 민주를 추구한 것일 뿐이다. 모두가 주권을 얻기 위한 수단이 민주주의라고 인식하면 된다. 그렇기에 민주주의 자체만으로 모든 인간이 바른 행동을 하게끔 하는 사상이 아니다. 민주주의 자체를 윤리로 착각한 이들이 인터넷 이용자들의 악플을 보고 인터넷은 민주주의적이지 않다고말한다. 그러나 모든 개인에게 주권이 있다는 것에 접근하면 인터넷은지극히 민주주의적이다. 단지 주권만 있을 뿐이지 그 주권을 윤리적으로 행할 보장은없다는 점에서 그야말로 민주주의라 할 수 있다. 민주주의적인 인터넷에서 이용자들이 악플을 달 수 있듯이 민주주의 사회 또한 국민들이 권력 남용을 저지를 수 있다.

[권력은 남을 복종시키거나 지배할 수 있는 공인된 권리와힘을 뜻한다. 특히 국가나 정부가 국민에 대하여 가지고 있는 강제력을이른다.][권리_법률은 어떤 일을 행하거나 타인에 대하여 당연히 요구할 수 있는 힘이나 자격을 뜻한다. 공권, 사권, 사회권이 있다.] 권리에 힘이 더해지면 권력이 된다. 권력이나 권리에 제한이 있으면 권한이 된다. 권력자가 권력을 남용한 것 중 유명한 것이 히틀러의 전권 위임법이다. 수권법으로도 불리는데 전권 위임법이 보다 직관적이다. 행정부가 입법부의 입법권의 일부를 위임 받아 행하는 명령과 규칙과 달리 행정부가 입법부의 입법권을전부 위임 받아 행정부가 법을 만들고 법을 집행했다. 명분은 민족과 국가의 위난을 제거하기 위함이었다. 그렇게 민족과 국가를 위해서라는 명분으로 개인의 권리를 침해하기 시작했다. 민주주의가 붕괴하고 전체주의가 들어섰다. 독재가 시작되었다. 이것이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정부 권력의 남용에 해당한다. 이것은 모든 체제에서 발생할 수 있으니 민주주의는 국민이 권력을 가지므로 국민에 의한 권력 남용이 나타날 수 있다.

민주주의의 결함은 국민의 권력 남용이다. 권력 남용으로 인해 중우 정치가 발생하기도 한다. [중우 정치_정치는 이성보다 일시적 충동에 의하여 좌우되는 어리석은 대중들의 정치를 뜻한다. 고대 그리스 민주 정치의 타락한 형태를 이르던 말로서 민주 정치를 멸시하는 뜻으로 쓰인다.] 인터넷의 악플이 그야말로 중우 정치의 전형적인 예다. 자유롭게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권력이 생기자 일시적 충동에 의한 의사 표현을 하여 타인에게정신적 상처를 입히는 것이 악플이다.

중우 정치에 영합하여 권력을 얻기 위한 공약이나 정책을 남발하는 것이 바로 포퓰리즘이다. [포퓰리즘_정치는 일반 대중의 인기에 영합하는 정치 형태를 뜻한다. 대중을 동원하여 권력을 유지하는 정치 체제로 대중주의라고도 하며 엘리트주의와 상대되는 개념이다.] 지금까지 국민에게 권력이 있다 말해놓고도 선입견에 의해 권력 남용은 정부 권력에서만 일어난다고착각하고 있었다. 그것은 고대 그리스부터 있던 전통적인 선입견이다. 그래서 플라톤이 민주주의를 반대하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중산층을 중심으로 한 중산 정치를 주장했던것이다. 권력 남용으로 나타난 것이 중우 정치고 거기에 영합한 것이포퓰리즘이다. 즉 포퓰리즘의 본질은 권력자인 황제에게 아첨하여 권력을휘두르던 신하와 다를 바 없었다. 왕정의 시대에서는 일부 권력자만 권력 남용에 대한 경계를 해야 했다면 민주정의 시대에는 모든 국민이 권력 남용에 대한 경계를 해야 한다. 권력에 쉽게 취하는 것은 권력으로 인간의 행동을 옳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모든 일반 인간은 주관적으로 옳은 행동을 하기에 본인의 모든 행동을 옳게 만들기 위해 권력을쓰면서 남용하게 된다. 국민 본인의 주관으로 타인의 자유권을 침해하자는 것을 정치가에게압박하여 법률을 제정토록 유도하거나 국민 본인의 이권 운동을 인권 운동으로 포장하는 등과 같은 사례가 보통 국민 권력 남용에 해당하게 된다. 만약 본인이 권력 남용에 대한 경계에 실패하면 타인이 그걸 지적하면서 경계할 수 있게 하면 된다. 민주주의는 국민의 권력 남용에 대한 경계에 성공하면 결함이 없어지게 된다.

증명이 가능한 학문을 제외한 나머지 학문은 힘에 영합해야 명예를 얻을 수 있다. 그렇기에 곧잘 인문학은 중우 정치에 영합하기도 하는데, 그것은 아첨에 해당하여 바람직하지 못하다. 인문학이 바르기 위해서는 대다수의 국민이 지성인이 되도록 안내하고, 지성에 영합해야 한다. 그래야 인문학과 국민이 서로 뜻이 맞게 된다.

 

셋째, 자본주의. [자본주의_경제는 생산 수단을 자본으로 소유한 자본가가 이윤 획득을 위하여 생산 활동을 하도록 보장하는사회 경제 체제를 뜻한다.] 자본주의는 상품의 가격이 상품의 수요와 공급에 따라 자연적으로 결정되는 자유 시장 원리를 기본으로 한다. 자본가는 기본적인 자본재를 갖춘 다음 소비자가 되어 노동 시장의 노동력 임대 상품과 소비 시장의중간재 상품을 시장 원리에 따른 가격에 구매하여 상품을 생산하여 소비 시장에 공급한다. 자본가는 생산재를 얻고 노동자와 상품 공급자는 이윤을 얻는다. 소비자는 소비 시장에서 소비 상품을 시장 원리에 따른 가격에 구매하여 상품을 소비하여 욕구와욕망을 충족한다. 소비자는 행복을 얻고 자본가는 이윤을 얻는다.

이 과정에서 수요는 적은데 공급이 많으면 상품 공급 경쟁이 일어난다. 공급 경쟁이 일어나면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상품을 가격 대비 품질을 높이게 된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소비자는 행복하게 된다. 노동 시장에서는 자본가가 행복하고 소비 시장에서는 소비자가 행복하다. 선거도 마찬가지다. 선거 또한 유권자에게 선택 받기 위해 정치가가 경쟁하면서 보다 가치 있는 공약과 정책을 내놓는 것으로 유권자가 행복하게 된다.

경쟁에서 승리한 가격 대비 품질이 상품을 공급하는 사람은 높은 이윤을 얻는 것으로 행복하게 될수 있다. 자본가와 노동자는 높은 이윤을 얻거나 좋은 직장을 얻을수 있다.

사회에 속한 모든 인간이 개인의 이익만을 위해 생산하면 한정된 수요에 공급 경쟁을 하는 시장이활성화된다. 공급 경쟁을 통해 상품의 가격 대비 품질이 높아지고, 가치가 높아진 상품을 소비하는 국내외 소비자는 행복하고, 고가치 상품은 국외 시장 경쟁에서 승리하여 외환을 벌어드리는 것으로 국내 경제가 성장하여 국민이행복할 수 있다. 자본가는 높은 이윤을 통해 새로운 사업을 확장하여 행복할수 있고, 노동자는 상품 품질 유지를 위해 노동력 임대 상품에 정당한대가를 지불 받아 행복할 수 있다. 물론 이것은 기본 원리로 이념에 가깝다. 생산자는 승리와 패배가 있지만 소비자는 그런 것과 관계 없이 행복할 수 있기에 자본주의는 기본적으로 소비자의 행복이 이념이 된다. 소비자의 행복을 추구하면 자연스럽게 자본주의 시장 원리가 정상적으로 작동한다.

애덤 스미스가 말한 보이지 않는 손이란 비유가 개인주의 체제의 본질을 스치듯 지나갔다. “개인은 바로 그때 보이지 않는 손에 이끌려 자신이 의도치 않은 목표를 달성하게 된다.” 개인의 의사가 반영되는 시장 원리가 적용되는 모든 체제는 이와 같이 욕망을 가지고 이기적이어야올바른 결과가 나오게 된다. 이것이 개인주의 체제다.

여기서 보이지 않는 손은 자본주의 시장 원리가 정상 작동 한다는 가정하에 나온 말이다. 만약 시장 원리를 훼손하는 유착, 담합, 독점 등이 발생하면 그것에 정부가 개입해야 한다. 그걸 정당화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생존주의다. 자본주의 체제 구조 유지를 위하여 시장 원리 작동을 위한 정부의 개입은 사회 계약에 따라 개인의 자유를 침해한 것이라 할 수 없다.

자본가는 생산재로 생산하여 공급한 상품으로 이윤을 얻는데 생산재의 가치보다 더 많은 이윤을 얻어부를 늘린다. 이를 가리켜 마르크스는 잉여 가치라 말했지만 이 잉여 가치가자본가의 노동 대가에 해당한다. 그 과정이 공정하다면 합당한 대가다. 만약 그 대가가 지나치게 크다 여겨진다면 직접 창업을 하면 된다. 그렇게 해야 노동력 임대 상품의 수요와 공급에 따라 적절한 상품 가치가 매겨져 노동자가 합당한대가를 얻을 수 있게 된다. 그렇지 못하여 노동력 임대 상품의 수요와 공급이 깨지면 상품 가치가 낮아져 최저 생계를 위한 대가도 받지 못하게 된다. 그렇게 된 국가에서는 그걸 방지하기 위해 최저 임금 제도로 노동자의 최저 생계 비용을 보장한다. 최저 임금 제도는 시장 원리와 무관한 윤리를 위한 제도기에 경제 효율이 낮아져 경제 성장이 낮아지게된다. 그렇다고 최저 생계 비용을 보장하지 않으면 사회의 요소인사람이 불행으로 자살하여 죽는 것으로 사회 구조가 붕괴하여 국가가 죽게 된다. 따라서 노동력 임대 상품의 가치가 유지될 수 있을 정도로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여 새로운 가치를가진 상품을 생산할 수 있는 창업자의 수가 늘어야 할 것이다.

자본주의의 결함은 경쟁 패배와 부의 대물림과 같은 가치 생산 저하다. 자본주의는 경쟁에서 승리한 생산자와 소비자가 행복하지 경쟁에서 패배한 생산자는 행복하지 못하다. 그 불행한 패배자를 위해 경제에 윤리를 적용한 것이 사회주의나 공산주의다. 그러나 경쟁이 없으면 상품 가치가 높아지지 못하여 소비자는 행복할 수 없다. 국내 소비자가 행복할 수 있을 정도의 상품 가치가 없으면 국외 시장 경쟁에서 승리하지 못하여경제도 성장할 수 없다. 경제에 윤리를 억지로 쑤셔 넣으니 생산자가 조금 행복할수 있지만 소비자는 불행하고 경제는 성장하지 못한다. 경제가 성장하지 못하여 생산자도 결국 불행해진다. 시장 원리를 쓰지 않는 사회주의 국가의 경제적 파멸은 매우 당연한 결과였다. 본래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와 같이 개인의 의사로 결정되는 체제는 불균형한 것이 정상이다. 선거 경쟁 패배자를 위해 그를 억지로 당선시킬 수도 없고 시장 경쟁 패배자를 위해 그가 생산한상품을 억지로 소비하게 할 수도 없다. 따라서 불행한 패배자는 경제가 아닌 사회에서 윤리로 접근해야 한다. 바로 복지다. 복지를 통해 사회를 균형을 맞춘다. 균형적인 사회 구조 안에 불균형한 선거와 시장들이 존재하는 것이 기본적인 개인주의 체제인 사회다.

그런데 복지가 과하면 생산하려는 태도가 나오지 않아 생산성이 악화된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금욕주의를 전제로 했을 때 해당되는 말이다. 욕구가 적은 상태에서는 최저 복지만으로 만족하며 살아가기에 복지를 하면 생산을 하지 않게 되지만욕구가 많은 상태에서는 최저 복지만으로 만족할 수 없기에 복지를 해도 생산을 하게 된다. 즉 자본주의에서 복지가 정당화되기 위해서는 모든 개인이 욕망을 가져야 한다. 그래야 기초 복지를 받아야 그 이상의 욕망을 위해 가치를 생산하게 된다.

자본주의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꾸준한 가치 생산이 필요하다. 그런데 그것을 방해하는 것이 바로 부의 대물림이다. 부가 대물림 되면 부를 대물림 받은 인간은 복지 이상의 부를 소유하기에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욕망을충족할 수 있게 되어 이윤 획득을 위한 가치를 생산하지 않으려 할 수 있다. 건전한 욕망주의에 의해 충분한 부가 있어도 부와 관계 없이 욕망을 추구하며 가치를 생산할 수도있으나 그러지 않을 확률도 있기에 부의 대물림이 자본주의 체제에 해롭다는 것은 명백하다. 개인의 불로 소득은 개인의 사망 이후로 끝날 수 있지만 그것이 대물림 되면 점점 가치 생산이하락하게 된다. 십 년 단위에서는 그런 부의 대물림에 의한 부작용이 크게보이지 않을 수 있으나 백 년 단위부터는 반드시 보이게 될 것이다. 가치 생산의 하락은 국가 경제 파멸로 이어진다. 부의 대물림이야말로 자본주의의 시작부터 있었던 결정적 결함이다.

이 문제는 생존주의로 접근하여 자본주의 체제 구조 유지를 명분으로 정부의 개입을 정당화하는 것으로해결해야 한다. 즉 세금이다. 자본주의 체제로 부를 벌어 대물림 하는 이들에게 자본주의 체제 구조 유지를 위해 세금을 걷는것은 매우 정당하다 할 수 있다. 그러면서 부의 대물림에 의한 가치 생산 하락을 줄인다. 완전 자동화, 인간이 아닌 존재가 창의적인 새로운 상품까지 생산할 수있게 되면 복지와 부와 관계 없이 가치 생산이 지속될 것이므로 그때부터는 새로운 인문학적 개념을 도입해야 한다.

완전 자동화가 가능해지면 자본주의가 공산주의로 전환될 수 있다고도 하는데, 개인주의 체제에서는 개인의 의사가 가장 중요하다. 공산주의 체제에서 어떻게 개인의 의사가 반영될 수 있는가? 생산에 초점을 맞출 것이 아니라 소비에 초점을 맞춰야 모든 개인의 의사를 반영할 수 있다. 완전 자동화가 되더라도 개인의 의사를 위해서 시장이 있어야 하고, 시장이 있으면 자본주의도 있어야 한다.

돈은 굉장히 객관적인 기준이다. 개인의 의사를 반영하기 위해 다른 기준을 만든다 하더라도 그것은 또 다른 돈이 될 뿐이다. 돈과 돈의 가치 투쟁에 불과한 본질적으로 무의미한 짓이다. 공산주의 체제로 한다고 주장하면서 돈과 다른 가치 기준을 통해 개인의 의사가 반영되게 만든다면그 기준을 만든 인간이 이익을 얻을 확률이 크다. 단순한 이권 투쟁에 휘둘리기 보다는 보다 효율적으로 많은 인간이 행복하기 위한 길을 가야 한다.

 

넷째, 사회주의. [사회주의_사회 일반은 사유 재산 제도를 폐지하고 생산 수단을 사회화하여 자본주의의 사회적·경제적 모순을극복한 사회 제도를 실현하려는 사상을 뜻한다. 또는 그 운동. 공산주의, 무정부주의, 사회 민주주의 따위를 포함하는 넓은 개념이다.] 사회주의는 공동체를 기본 원리로 한다. 공동체, 협동, 공유, 공동, 등과 같이 집단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전형적인 집단주의 체제다.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와 같은 개인주의 체제가 부상하면서 개인의 욕망과 이기심에 의해사회가 혼란스러운 것을 보고 그 체제에 맞은 가치를 만든 것이 아니라 과거 왕정의 가치를 근거로 사회주의라는 집단주의 체제를 주장한 것이다. 그렇기에 사회주의에서는 금욕주의와 이타주의가 윤리가 된다. 그러면서 동시에 개인의 권리가 훼손되거나 침해된다.

개인의 의사를 반영하는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는 필연적으로 불균형한 결과를 낳는다. 자유주의에 의해 인간관계가 불균형할 수 있고 민주주의에 의해 선거 등락이 불균형할 수 있고 자본주의에의해 상품 소비가 불균형할 수 있다. 그런 불균형에 의해 불평등이 나타날 수 있다. 특정 개성을 가진 인간이 선호되거나 특정 정치가가 선호되거나 특정 상품이 선호되는 것으로 선호되지 않는 것과 차별이 나타날 수 있다. 그것이 개인의 의사에 발생하는 차별이다. 개인주의 체제에서 차별은 필연이다.

이 차별에는 정당한 차별과 부당한 차별이 있을 수 있다. 정당한 차별과 부당한 차별을 구분하기 위해 역할이란 관계에서 가치를 판단하는 역할주의로 접근하면된다. 가령 역할과 관련이 있는 능력에 의해 차별이 발생한다면정당한 차별이 된다. 그러나 연령, 성별, 지역, 학력 등과 같이 역할과 무관한 것에 의해 차별이 발생한다면부당한 차별이 된다.

그러나 정당한 차별조차도 잘못되었다 지적하며 모두가 평등해야 한다면서 기독교적 가치관을 근거로한 공동체를 주장했다. 그것이 사회주의다. 그런 차별이 잘못되었다 주장했기 때문에 차별이 발생하지 않도록 개인의 의사를 억압하게 된다. 개인의 의사로 평가하면 차별이 발생하니 공동체의 의사로 평가하여 평등하게 하자는 것이다. 개인의 의사가 반영되지 못하는 인민 민주주의가 이렇게 하여 나타난다. 공동체의 의사라 하였지만 실질적으로는 공동체의 장의 의사가 된다. 공동체의 장이 개인의 평가가 차별이라 말하면서 간섭하며 조작한다. 그러면서 독재가 된다. 모든 사회는 평가로 조직된다. 그 사회가 개인의 평가로 사회가 조직되는 민주주의가 아닌 통치자나 정당의 평가로 사회가 조직되는독재주의가 되게 되는 것이다. 개인의 의사가 차별을 만든다 하더라도 개인의 의사를 무시하는 민주주의는 성립될 수 없다. 그런 것들은 가짜 민주주의고 그런 사회주의를 추구하면서 민주주의도 추구하는 사회 민주주의는 모순에서벗어날 수 없다.

이 외에 개인의 의사로 나타난 정당한 차별조차 막아 평등하자고 나타난 사상이 PC주의나 여성주의다. 이 사상들이 만약 인권 운동이었다면 부당한 차별만 막자고 주장했겠지만 이권 운동이었기 때문에 부당한 차별을 막는다는 명분으로 정당한 차별조차도손해기 때문에 막자고 주장하면서 사회 혼란을 일으키고 있다. 정당한 차별을 막는 것으로 얻은 부당한 이익은 계급 투쟁의 전리품으로 여기며 당당하게 취하고 있다. 모든 주장의 목적이 집단의 이익 말고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PC주의자 흑인은 동양인의 인권을 말하지 않고 여성주의자 여성은 남성의 인권을 말하지 않는다. 인종 차별을 하지 말라면서 인종을 강조하며 이익을 주장하고 성별 차별을 하지 말라면서 성별을강조하며 이익을 주장한다. 이들은 서양의 인문학 발전인 윤리 대상 확대의 흐름을 탄 이익 집단에 불과하다.

개개인의 의사는 불균형하여 반드시 차별이 나타난다. 그 차별이 정당한가 부당한가를 판단해야지 차별 자체를 없애려고 해서는 안 된다. 그러면 반드시 개인의 의사를 억압하는 개인 억압이 나타난다. 정당한 차별로 나타나는 불균형은 사회의 법과 복지로 어느 정도 균형을 맞춰 사회와 체제 구조유지를 하면 된다.

 

다섯째, 공산주의. [공산주의_정치는 마르크스와 레닌에 의하여 체계화된 프롤레타리아 혁명 이론에 입각한 사상을 뜻한다. 재산의 공동 소유가 옳다고 주장하며 생산 수단의 사회화와 무계급 사회를 지향한다.] 마르크스의 공산주의 사상은 경제 사상이 아닌 윤리 사상이다. 경제에 윤리를 넣어서 경제 효율보다 윤리를 우선시하는 사상이기 때문이다. 그걸 경제학자가 경제로 해석하려 했으니 답이 나오지 않는 것은 당연했다. 마르크스는 유물론을 주장하며 종교를 부정했지만 그의 윤리관은 기독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기독교가 인간에게 원죄가 있다고 말하며 인간의 욕망을 비난하고 금욕주의와 이타주의를 윤리로 내세우고빈민을 구제하며 천국으로 인도하겠다고 말했던 것과 같이 자본가의 착취를 비난하며 과한 욕망을 막고 공동체의 이익을 위한 이타적인 행동을 윤리로내세우고 노동자를 구제하고 공산주의 낙원을 이루어야 한다고 말했던 것이다.

공산주의가 가족의 해체를 주장한 것에 의해 마치 개인주의처럼 보일 수도 있으나 가족을 해체하고노동자 집단에 합류하자는 주장이므로 작은 집단을 해체하여 더 큰 집단을 이루자는 집단주의에 불과하다.

흔히 공산주의가 이상이지만 인간의 욕망으로 불가능하다 말하는데 그건 그냥 모든 인간이 이타적이게되는 집단주의의 이념에 불과하다. 공산주의는 상품 가치도 소비자의 행복도 경제 성장도 고려하지 않고 노동자 계급의 이익을 위해 기독교 윤리를 차용한 반쪽 짜리 사상에 불과하다. 이 사상에 영향을 받은 계급 투쟁을 하는 대부분의 사상은 전부 단순한 이익 집단의 사상일 뿐이다. 흔히 공산주의의 장점으로 무상 복지를 내세우는데, 가치가 없는 상품을 통한 복지 따위로 인간이 행복해질 수는 없다. 가치 생산은 모든 행복의 근간이다.

그럼에도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와 같은 사상이 널리 퍼진 까닭은 집단주의 체제기 때문이다. 모든 왕정은 집단주의 체제였고, 왕정의 윤리 또한 금욕주의와 이타주의로 가치관이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와 일치했다.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사상가들, 그에 감화된 수많은 지식인과 노동자들, 그 모든 것이 내제된 가치관과 유사한 사상이었기 때문이다. 왕정의 가치관에 의해 왕정의 가치관을 근거로 한 사상을 좇게 되었다는 것이다. 관념의 성질상 이 결과는 자연스럽다. 동시에 노동자 인권은 서양 인문학의 발전인 윤리 대상 확대의 흐름에도 포함되게 된다. 관념으로 보나 윤리로 보나 퍼질 수밖에 없었다.

한국 같이 제국주의 국가의 침략을 당한 국가들의 국민들은 반발 심리로 더욱 더 사회주의나 공산주의로기울게 되었다. 일반적인 경우가 한국의 사회주의자이고 극단으로 기울어진것이 북한의 공산주의자다. 이런 사회주의자들은 제국주의 국가의 침략에 의해 민족주의 성향을 자극 받은 것이므로 본질적으로 민족주의자에 가까운 사회주의자라 할 수 있다. 서양의 사회주의자는 기독교 윤리에 뿌리를 두고 있다면 한국의 사회주의자는 민족주의에 뿌리를 두고있는 경우가 많다. 한국의 민족주의는 자연스럽게 조선의 유교적 가치관에 영향을받는다. 그들의 이념이 사회주의와 실질적으로 관련이 크게 없기 때문에북한에 유교적 가치관을 근거로 한 왕정이 세워진 것이다. 한국과 북한의 사회주의는 민족주의의 탈을 쓴 것이었기에 그들을 사회주의를 근거로 비판해도 그다지 의미가 없었다. 그들의 사회주의는 민족주의에 의해 윤리로 여겨져 보다 더 강력하게 행해지게 되었다.

 

 

생존주의와 역할주의와 탐구주의는 나의 사상이며 그에 대해 간단히 정리하겠다. 추후 따로 사상서로 정리할 예정이다.

 

첫째, 생존주의. 생존주의는 인간이 육체를 유지하기 위해 강제로 행하는 일련의활동을 사회가 구조를 유지하기 위한 강제력에 대입하여 사회와 체제 구조 유지를 위한 강제력을 정당화하고, 그 최소한의 강제력 외에는 개인에게 최대한의 자유를 보장하는 사상을 말한다. 사회라는 구조를 유지하여 개인의 자유라는 원리를 추구한다.

개인의 자유권을 최대한 지키기 위해서 사회와 체제 구조 유지를 위한 기본적인 강제력과 강제력이없는 사전 예방과 강제력이 있는 사후 조치로 접근해야 한다.

자본주의에서 부를 얻은 자본가를 자본주의자라 할 수 있을 것이고, 자본주의자가 자본주의 체제 구조 유지를 위한 활동을 하는 것은 지극히 정상이라 할 수 있다. 자본주의 체제 구조 유지에 반대하는 자본주의자는 민주주의 체제 구조 유지에 반대하는 민주주의자만큼이나괴상하다.

모든 것은 인간의 생존을 위해서 시작되었다. 환경 보호도 동물 보호도 인류 생존을 위해서야 한다. 생존주의는 기본적으로 보편적 자연 법칙을 준수하나 생존이란 자연법칙을 최우선 한다. 즉 죽음보다 생존을 우선한다. 그렇기에 불로불사를 추구한다. 만약 모든 자연법칙을 고르게 준수하고 싶다면 자연으로 돌아가 짐승들과 부대끼며 살다 자연스럽게죽으면 된다. 인간은 사회를 이룬 순간부터 인간 중심의 자연법칙 추구를실현하게 되었으므로 죽음의 법칙을 무시한다 하더라도 상관 없다. 유전자 조작 상품과 같이 인위적인 상품은 인류 생존을 위해서이므로 그걸 반대할 이유가 없고, 의학의 약도 인류 생존을 위한 것이므로 약 안 쓰고 아이 키우기를 말하며 약을 주지 않는 짓도할 이유가 없다. 또한 인간 개인이 생존 게임에서 승리하기 위해 불로불사를위한 연구 또한 반대할 이유가 없다. 인류는 이제 지구라는 좁은 둥지를 떠나야 할 때다. 지구를 둥지로 삼기에는 인류의 크기가 너무나도 커져버렸다. 모든 개인이 불로불사가 되어 우주에 진출하여 살아남아야 한다.

 

둘째, 역할주의. 역할주의는 인간이란 대상이 아닌 역할이란 관계에서 가치를판단하여 역할의 전문가를 우대하고, 역할이란 기준으로 대상의 개성과 무관한 역할에 따른 공정한 평등을 추구하면서 역할 중심 사회를 지향하고, 관계라는 본인의 주관적인 관계에서 가치를 판단하면서 개인의 개성을 보장하는 사상을 말한다.

역할주의는 개인의 역할이나 사물의 용도로 가치 판단을 하는 사상이다. 개인은 연령이나 성별 또는 직업이나 직위와 관계 없이 개인의 역할 수행 여부와 기여도로 가치를판단하고 물건은 물질적 가치와 관계 없이 물건의 용도 활용 여부나 기여도로 가치를 판단한다. 그런 가치 판단으로 개인의 성격과 능력이나 물건을 공정하게 평가하고 적재적소로 활용하는 것이가능하다. 그러면서 역할의 전문가를 우대하게 된다.

역할이란 관계에서 가치를 판단하기에 역할에 필요한 개인의 능력으로만 평가 받는 공정한 평등함이실현되게 된다. 능력주의의 경우 마땅한 기준이 없어 특정 분야 능력자가관련이 없는 분야에서 활동하면서 비전문적인 능력자가 생길 수 있다. 반면 역할주의는 능력의 합리적 기준이 된다.

역할이란 관계에서 하는 가치 판단은 주관적 가치 판단에 해당하게 되는데, 객관적 가치는 선거나 시장에서 각각의 선거 원리와 시장 원리에 의해 결정되게 된다.

역할에 필요한 능력을 제외한 연령, 성별, 지역, 학력, 혈연 등과 같은 개인의 개성이 보호될 수 있다. 역할만 수행하면 타인을 위해 억지로 본인의 개성을 바꿀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역할주의는 다양성을 직접적으로 존중하지 않는다. 다양성을 존중하겠다고 다양성에 전부 맞추면 실제 역할 수행과 기여도와 무관하게 손익을 얻을 수있어 공평할 수가 없다. 그것은 대상에 가치를 판단하던 대상 가치에서 그렇게 한다. 역할이란 관계에서 가치를 판단하는 관계 가치에서는 역할이란 가치중립적인 합리적 기준에서 역할에필요한 성질을 제외한 개성은 신경 쓰지 않는 것으로 간접적으로 다양성을 존중하게 된다. 사적으로는 어떤 것을 좋아하는 것도 싫어하는 것도 개인의 개성이다. 만약 특정 짐승을 좋아하는 사람이 특정 짐승을 싫어하는 사람에게 그 짐승을 좋아하라 강요하는것이 다양성 파괴다. 반대로 특정 짐승을 싫어하는 사람이 그 짐승을 싫어하라강요하는 것도 다양성 파괴다. 사적인 곳에서는 타인과 분쟁이 일어나지 않는 경우에는 개인의 호불호는 개인의 개성으로 인식하고 다양성을 존중해야 한다. 그러기 위한 최소한의 합리적 기준이 역할이란 관계다. 공적이나 사적인 역할로 관계를 맺지 않는 이상 개인의 개성은 자유롭게 보장해야 한다. 공적인 경우에는 관계의 수가 많아 개성 보장이 어려울 수 있으나 사적인 경우에는 관계 수가 적어최대한 개성 보장을 해야 한다.

역할주의는 분야의 대표에게 입법권을 주는 역할 민주주의를 주장한다. 지금과 같이 지역의 대표에게 입법권과 행정권을 모두 줘버리는 토지 민주주의를 하면, 토지의 소유자가 적어 대표를 선출하는데 있어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있는 사람이 극단적으로 줄어들게된다. 한국은 2021년 5164만 명 중 1851만 명이 토지를 소유하고 있고 그 중 전체 가계는 상위 1%가 전체 가계 소유 토지의 32%를 소유하고 법인은 상위 1%가 전체 법인 소유 토지의 76%를 가지고 있다. 지역의 대표로 선출되는 정치가가 선출되기 위해 지역 개발을 선거 공약으로 내세워도 직접적 이해관계가 있는 이들은 소수가 된다. 그렇기에 대다수 이해관계가 없거나 간접적 이해관계가 있는 이들은 포퓰리즘과 같은 선동 정치에휘둘리게 된다. 모든 국민이 권력을 가지고 그 권력을 올바르게 행사할 수있으려면 보다 많은 인간이 직접적 이해관계가 있는 인간을 정치적 대표로 선출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분야의 대표에서 입법권을 주는 역할 민주주의다.

교육을 받고 사회 활동을 한 인간은 대부분 특정 분야에 속하게 된다. 분야의 대표에게 입법권을 주게 되면 분야는 토지와 같은 지역이 아니므로 분야의 대표는 분야의이익을 위한 정책을 공약을 말하게 된다. 분야에 속한 인간은 토지와 같이 특정 재산을 소유하고 있지 않더라도 그런 선거 공약에 의해 분야의 이익과 직접적 이해관계가 발생하게 된다. 특정 지역이 어떤 시설을 짓겠다는 주장은 그 시설이 설치되는 토지 소유자와 관계자만 이익을 보지만, 특정 분야에 어떤 불합리한 규제를 철폐하겠다는 주장은 그 분야에 속한 모든 인간이 이익을 본다. 분야의 대표가 내세우는 분야의 이익에 합당한 공약에 의해 직접적 이해관계가 발생하게 된다. 대부분 인간이 이해관계가 발생하는 역할 민주주의야말로 진정한 민주주의에 해당하게 된다.

또한 분야의 대표에게 입법권을 줘야 분야가 부당한 이익을 얻는 것을 견제할 수 있다. 지금 특정 분야는 정치가에게 로비를 하여 올바른 법을 제정하는 것을 막는 것으로 부당한 이익을얻기도 하고 있다. 그런 것을 견제하기 힘든 것이 그들이 정당한 권력을 소유한것이 아니기 때문에 로비를 밝혀내야 하는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마땅한 힘에 마땅한 책임이 주어지는 것이다. 그런 부당한 로비를 막기 위해서는 분야에 마땅한 힘을 줘야 한다. 그렇게 분야의 대표에게 입법권을 주면 정당한 이익 추구를 위한 행동만 허용되게 된다. 왜냐하면 모든 분야의 대표가 입법권을 쥐고 있기 때문에 특정 분야의 대표가 부당한 이익을 추구하면곧바로 견제가 들어가게 된다. 만약 분야가 지역의 대표에 로비를 하여 부당한 이익을 얻게 되면 다른 분야는 그 지역에 손해를 주기가 어렵지만, 분야가 분야의 대표를 통해 부당한 이익을 얻게 되면 다른 분야는 그 분야에 손해를 주는 것이어렵지가 않다.

 

셋째, 탐구주의. 탐구주의는 구체적인 지식 학습 이후 탐구를 하여 발상을하는 것이 아닌 기초적인 지식 학습 이후 탐구를 하여 발상을 하고 나서 구체적인 지식을 학습을 하는 탐구 중심의 학습 사상을 말한다.

탐구주의는 지식이나 학문에 대한 호기심이나 탐구심을 기본으로 한다. 그렇기에 자발적 학습이 가능하다. 가령 구체적인 지식 학습을 하게 하면 타인의 지식을 그대로 흡수만 하는 것이기에 자발적으로 탐구를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면 지식 학습 이후에는 더 이상 탐구를 하지 않으려는태도가 나올 수도 있다. 그러나 기초적인 지식 학습을 하고 나서 탐구부터 할 경우본인의 탐구심이 끝이 날 때까지 학습하게 된다.

탐구부터 하게 된다면 본인의 생각에 의한 주관적인 관념과 구체적인 지식의 객관적인 관념을 둘다 가질 수 있게 된다. 그러면서 본인의 주관적인 관념에 의해 새로운 발상이 나타날수도 있다. 탐구주의가 바로 창의적 학습이다.

지식이나 학문에 호기심이나 탐구심이 없을 경우 학습을 하지 않으려는 태도가 나올 수도 있는데, 그런 이들은 처음부터 학문에 적성이 맞지 않는 것이다. 학문에 대한 호기심이나 탐구심이 없는 인간에게 학문을 하게 하는 것은 학대에 가깝다고 본다. 억지로 학업에 몰두하게 해봐야 그 인생은 불행할 뿐이다. 사회에 속한 인간은 사회에 이로운 가치를 생산할 수 있기만 하면 된다.  

지금까지 왕정의 역사는 수 천 년, 현대 민주정의 역사는 수 백 년 정도다. 민주정의 가치관에 맞는 인문학이 체계화되지 못한 지금, 인문 계열이 해야 할 일은 너무나도 많다. 지금까지 본성이라 여겨왔던 대부분의 인간의 성질은 왕정의 가치관에 의해 형성된 성질에 불과하다. 과거의 왕정 시대의 철학을 연구하기보다 민주정에 맞는 가치관을 만들어 개인주의 체제의 개개인이민주정에 맞는 인간의 성질을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5. 충돌

 

인류의 사회 문제는 대부분 왕정의 관념과 민주정의 체제가 집단과 개인으로 이익 추구 방향이 정반대이기때문에 발생하는 모순으로 나타난다. 왕정은 왕의 이익을 위해 국가에 국민을 희생하게 만드는 집단주의 체제고 민주정은 개인의 이익을 위해 개개인이 개인의 이익만을 위하는 개인주의체제다. 왕정의 관념을 가지고 민주정 체제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집단주의관념과 개인주의 체제가 충돌한 것이 된다. 이것이 기본적인 서양 문명의 모순이다. 서양은 이 모순에 의해 우파와 좌파의 갈등을 겪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한국은 유교, 불교, 무교 등의 종교들에 의한 모순까지 포함되어 있다.

이익 추구 방향이 정반대인 집단주의 관념을 가지고 개인주의 체제에서 이익을 추구하면 개인주의체제에는 해롭게 된다. 타인의 이익을 우선시하면서 개인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이들의권리를 침해하게 된다. 분명 개인주의에서도 타인의 이익을 우선시할 수 있으나 그걸윤리로 여기지는 않는다. 그러나 집단주의에서는 타인의 이익을 위해 개인이 희생하는것을 윤리로 여기기에 타인에게 금욕이나 희생을 강요하게 된다. 그러면서 개인의 권리는 침해되게 된다. 억압, 통제, 규제, 검열 등 대부분이 집단주의의 금욕과 희생의 강요가 원인이다.

집단주의와 개인주의는 모두 집단 비리와 같은 범죄가 일어날 수 있으나 집단주의에서는 타인을 위해희생했다는 이유로 그걸 도덕으로 받아드리고 개인주의에서는 개인의 이익만을 위한 것이었으므로 순순히 부도덕으로 받아드린다. 이 차이가 굉장히 크다.

모든 개인이 개인의 이익만을 위하기 때문에 일부 개인의 부당한 이익을 수용할 수 없게 된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모두가 공정한 경쟁을 하게 된다. 개인의 이익만을 위하고 있음에도 공정한 경쟁을 하게 되는 것은 개인인 본인뿐만 아니라 개인인타인도 개인의 이익만을 위하고 있음을 알기에 공정한 경쟁에서 이익을 얻는 것이 정당하다 인식한다. 타인이 부당한 이익을 얻게 되면 본인이 손해를 보기 때문에 본인의 이익만을 위해 그런 부당 이익을비판하면서 공격하게 되므로 개인주의에서 개인의 이익만을 위하는 것은 정확히 말해 개인의 정당한 이익만을 위하는 것이 된다.

경제가 성장할수록 여유가 생겨 물질적인 것 외의 가치도 추구하게 됨에 따라 윤리를 중시하게 된다. 그런데 그 윤리가 왕정의 윤리였기 때문에 윤리를 바탕으로 도덕적인 것을 추구하면 추구할수록 민주정체제에는 해롭게 된다. 그러면서 경제가 성장할수록 사회는 불행해지는 괴상한 현상이나타난다. 한국에서 경제가 성장하고 있음에도 높은 자살률과 낮은 출산율은이것이 원인이다. 조선과 한국은 체제가 완전 다른데 조선의 가치관으로 한국에서살면 불행한 것은 당연하다.

보통 문제를 해결하려 할 때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더욱 악화되면 해결방법이 잘못되었음을 깨닫게된다. 가령 미로에 갇히면 미로 지도에 뚫린 길로 기록되어 있어도막힌 길이라면 지도를 수정하고 다른 길로 간다. 그러면서 빠져나갈 수 있게 된다. 그러나 관념은 다르다. 가령 미로에 갇히면 미로 지도에 뚫린 길로 기록되어 있으면 그것을 진리로 여기고 막힌 길이라 할지라도 계속 그 길로 가려고 한다. 다른 길을 가려고 하지 않는 한 영원히 빠져나갈 수가 없게 된다. 그것과 같다. 사회 문제가 발생하면 왕정의 윤리를 진리로 여기고 있기 때문에 의심하지 못하고 같은 방법을 계속 실행하면서 더욱 더 사회 문제를 악화시킨다.

 

 

첫째, 세습. 집단주의에서는 집단의 이익을 위해 왕과 귀족 같은 기득권이혈연에게 작위나 가업을 세습하여 사회의 역할을 얻게끔 하지만 개인주의에서는 개인의 이익만을 위해 공정하게 경쟁하여 사회의 역할을 얻는다. 세습은 집단주의와 개인주의 둘 다 일어날 수 있으나 집단주의는 도덕으로 여기고 개인주의는 부도덕으로여긴다. 집단주의 관념을 가진 인간이 개인주의 체제에서 혈연을 위한세습을 도덕으로 여기며 실행하는 것으로 사회에 해를 끼치면서도 낡은 가치관을 근거로 그것을 정당화한다. 한국에서 세습 부자가 많고 고용 세습이 일어나기도 한다.

 

둘째, 입시와 취업 비리. 집단주의에서는 집단의 이익을 위해 부모가 자녀의 입시나 취업 비리를 저지르지만 개인주의에서는 개인의 이익만을 위해 공정하게 경쟁하여 입시나취업을 한다. 비리는 집단주의와 개인주의 둘 다 일어날 수 있으나 집단주의에서는도덕으로 여기고 개인주의에서는 부도덕으로 여긴다. 집단주의 관념을 가진 인간이 개인주의 체제에서 가족을 위한 비리를 도덕으로 여기며 실행하는 것으로 사회에 해를 끼치면서도 낡은 가치관을근거로 그것을 정당화한다. 한국에서 입시와 취업 비리는 다방면에서 만연하다.

 

셋째, 담합. 집단주의에서는 집단의 이익을 위해 노동자는 노동조합에서담합을 하고 자본가는 협회 등에서 담합을 하지만 개인주의에서는 개인의 이익만을 위해 시장에서 공정하게 경쟁하여 이익을 얻는다. 담합은 집단주의와 개인주의 둘 다 일어날 수 있으나 집단주의에서는 도덕으로 여기고 개인주의에서는부도덕으로 여긴다. 집단주의 관념을 가진 인간이 개인주의 체제에서 이익집단을위한 부당한 담합을 도덕으로 여기며 실행하는 것으로 사회에 해를 끼치면서도 낡은 가치관을 근거로 그것을 정당화한다. 한국에서 노동자의 담합은 바르고 자본가의 담합이 그른 것은 부유한 대기업 노동자와 가난한 자영업자를고려해보면 힘의 차이가 아닌 체제의 차이다.

 

넷째, 이성애 죄악시. 집단주의에서는 집단의 이익을 위해 개인의 이성애를 죄악시하여이성 관계를 단절시켜 이성 관계를 모르는 상태에서 중매결혼을 통해 개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집단이 원하는 상대와 결혼하게 하지만 개인주의에서는 개인의이익만을 위해 개인의 이성애를 죄악시하지 않고 자유로운 이성 관계 속에서 연애와 결혼을 한다. 이성애 죄악시는 집단주의와 개인주의 둘 다 일어날 수 있으나 집단주의에서는 도덕으로 여기고 개인주의에서는부도덕으로 여긴다. 집단주의 관념을 가진 인간이 개인주의 체제에서 이성애 죄악시를도덕으로 여기며 실행하는 것으로 사회에 해를 끼치면서도 낡은 가치관을 근거로 그것을 정당화한다. 한국에서 이성애 죄악시는 남녀칠세부동석과 같이 어려서부터 이성애를 죄악시하며 이성 관계를 분리했던것으로 알 수 있다.

 

다섯째, 성 죄악시. 집단주의에서는 집단의 이익을 위해 성을 죄악시하며 성 지식을단절시켜 성을 모르는 상태에서 중매결혼을 통해 개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집단이 원하는 상대와 결혼하게 하지만 개인주의에서는 개인의 이익만을 위해성을 죄악시하지 않고 자유로운 성 문화와 성관계 속에서 연애와 결혼을 한다. 성 죄악시는 집단주의와 개인주의 둘 다 일어날 수 있으나 집단주의에서는 도덕으로 여기고 개인주의에서는부도덕으로 여긴다. 집단주의 관념을 가진 인간이 개인주의 체제에서 성 죄악시를도덕으로 여기며 실행하는 것으로 사회에 해를 끼치면서도 낡은 가치관을 근거로 그것을 정당화한다. 한국에서 성 죄악시는 성 문화가 탄압과 규제와 검열을 당하고 성년조차도 자유로운 성 문화를 즐길수 없는 것으로 알 수 있다.

 

여섯째, 사상 강요. 집단주의에서는 집단의 이익을 위해 특정 사상을 강요하지만개인주의에서는 개인의 이익만을 위해 사상의 자유를 추구한다. 사상 강요는 집단주의와 개인주의 둘 다 일어날 수 있으나 집단주의에서는 도덕으로 여기고 개인주의에서는 부도덕으로 여긴다. 집단주의 관념을 가진 인간이 개인주의 체제에서 사상 강요를 도덕으로 여기며 실행하는 것으로 사회에해를 끼치면서도 낡은 가치관을 근거로 그것을 정당화한다. 한국에서 사상 강요는 종교, 여성주의, PC주의 등으로 특정 종교에 대한 신앙이나 탈코르셋이나 성인지감수성등을 강요한다.

 

일곱째, 국민 통제. 집단주의에서는 집단의 이익을 위해 정부가 국민을 감시하고검열 등의 과한 통제를 하지만 개인주의에서는 개인의 이익만을 위해 국민을 감시하고 검열하는 등의 과한 통제를 하지 않는다. 국민 통제는 집단주의와 개인주의 둘 다 일어날 수 있으나 집단주의에서는 도덕으로 여기고 개인주의에서는부도덕으로 여긴다. 집단주의 관념을 가진 인간이 개인주의 체제에서 국민 통제를도덕으로 여기며 실행하거나 실행케 하는 것으로 사회에 해를 끼치면서도 낡은 가치관을 근거로 그것을 정당화한다. 한국에서 국민 통제는 인터넷 차단과 검열, 메신저 감시 등과 같이 다른 자유 진영에 비해 심하다.

 

여덟째, 연령 차별. 집단주의에서는 집단의 이익을 위해 장유유서와 같이 연령으로차례를 만든 차별적 질서를 수용하지만 개인주의에서는 개인의 이익만을 위해 평등한 질서만을 수용한다. 연령 차별은 집단주의와 개인주의 둘 다 일어날 수 있으나 집단주의에서는 도덕으로 여기고 개인주의에서는부도덕으로 여긴다. 집단주의 관념을 가진 인간이 개인주의 체제에서 연령 차별을도덕으로 여기며 실행하는 것으로 사회에 해를 끼치면서도 낡은 가치관을 근거로 그것을 정당화한다. 한국에서 연령 차별은 꼰대질로 알 수 있고 그 꼰대질이 집단주의 관념으로는 도덕적인 행위였음을알아야 한다.

 

아홉째, 역할 차별. 집단주의에서는 집단의 이익을 위해 신분제나 사농공상과 같이사회의 역할로 차례를 만든 차별적 질서를 수용하지만 개인주의에서는 개인의 이익만을 위해 평등한 질서만을 수용한다. 역할 차별은 집단주의와 개인주의 둘 다 일어날 수 있으나 집단주의에서는 도덕으로 여기고 개인주의에서는부도덕으로 여긴다. 집단주의 관념을 가진 인간이 개인주의 체제에서 역할 차별을도덕으로 여기며 실행하는 것으로 사회에 해를 끼치면서도 낡은 가치관을 근거로 그것을 정당화한다. 한국에서 역할 차별은 서양 문명을 수용하면서 신분제가 철폐되고 사농공상도 사라졌기 때문에 연령차별보다는 적게 일어나지만 기술을 천시하거나 갑질과 같은 역할 차별이 곧잘 일어나고 있다.

 

열째, 내부 고발 멸시. 집단주의에서는 집단의 이익을 위해 집단과 집단 구성원 비리의내부 고발을 멸시하지만 개인주의에서는 개인의 이익만을 위해 내부 고발을 우대한다. 내부 고발 멸시는 집단주의와 개인주의 둘 다 일어날 수 있으나 집단주의에서는 도덕으로 여기고개인주의에서는 부도덕으로 여긴다. 집단주의 관념을 가진 인간이 개인주의 체제에서 내부 고발 멸시를 도덕으로 여기며 실행하는 것으로 사회에 해를 끼치면서도 낡은 가치관을 근거로그것을 정당화한다. 한국에서 내부 고발 멸시는 횡령이나 비리를 감싸는 것이의리가 되고 비리를 고발하는 것이 배신이 되는 것으로 알 수 있다.

 

열한째, 오지랖. 집단주의에서는 집단의 이익을 위해 타인에게 불필요한 참견을하지만 개인주의에서는 개인의 이익만을 위해 본인과 무관하면 타인에게 참견하지 않는다. 오지랖은 집단주의와 개인주의 둘 다 일어날 수 있으나 집단주의에서는 도덕으로 여기고 개인주의에서는부도덕으로 여긴다. 집단주의 관념을 가진 인간이 개인주의 체제에서 오지랖을실행하는 것으로 사회에 해를 끼치면서도 낡은 가치관을 근거로 그것을 정당화한다. 한국에서 오지랖은 불필요한 참견이 정으로 포장되며 개인이 원치 않는 것을 하는 것으로 알 수있다.

 

열두째, 직업 강요. 집단주의에서는 집단의 이익을 위해 부모가 자녀에게 직업을잇도록 강요하지만 개인주의에서는 개인의 이익만을 위해 자녀가 자유롭게 원하는 일을 한다. 직업 강요는 집단주의와 개인주의 둘 다 일어날 수 있으나 집단주의에서는 도덕으로 여기고 개인주의에서는부도덕으로 여긴다. 집단주의 관념을 가진 인간이 개인주의 체제에서 직업 강요를실행하는 것으로 사회에 해를 끼치면서도 낡은 가치관을 근거로 그것을 정당화한다. 한국에서 직업 강요는 교육열로 나타나고 있다.

 

열셋째, 자녀 소유물화. 집단주의에서는 집단의 이익을 위해 부모가 자녀를 소유물로여기며 지배하려 하지만 개인주의에서는 개인의 이익만을 위해 부모가 자녀를 인간으로 여기며 대화하려 한다. 자녀 소유물화는 집단주의와 개인주의 둘 다 일어날 수 있으나 집단주의에서는 도덕으로 여기고 개인주의에서는부도덕으로 여긴다. 집단주의 관념을 가진 인간이 개인주의 체제에서 자녀 소유물화를실행하는 것으로 사회에 해를 끼치면서도 낡은 가치관을 근거로 그것을 정당화한다. 한국에서 자녀 소유물화로 인해 살해 비율 중 자녀 살해 비율이 높고 순장과도 같은 동반 자살이일어나고 있다.

 

열넷째, 희생 강요. 집단주의에서는 집단의 이익을 위해 애국심 등과 같은 이유로개인에게 희생을 강요하지만 개인주의에서는 개인의 이익만을 위해 사회 계약에 따른 행동을 요구하고 있다. 희생 강요는 집단주의와 개인주의 둘 다 일어날 수 있으나 집단주의에서는 도덕으로 여기고 개인주의에서는부도덕으로 여긴다. 집단주의 관념을 가진 인간이 개인주의 체제에서 희생 강요를실행하는 것으로 사회에 해를 끼치면서도 낡은 가치관을 근거로 그것을 정당화한다. 한국에서 희생 강요는 모두가 희생 강요 당하지 않도록 눈에 띄지 않는 겸손함을 강요하는 것이보편화되어 있는 것으로 알 수 있다.

 

열다섯째, 학생 체벌. 집단주의에서는 집단의 이익을 위해 학생에게 체벌과 폭언등의 부당한 행동을 하여 사회에 해를 끼치지 못하도록 하지만 개인주의에서는 개인의 이익만을 위해 학생이 사회 계약을 맺어 계약에 따라 권리와 의무를통해 자유로운 상태에서 사회에 이롭게 할 수 있도록 한다. 학생 체벌은 집단주의와 개인주의 둘 다 일어날 수 있으나 집단주의에서는 도덕으로 여기고 개인주의에서는 부도덕으로 여긴다. 집단주의 관념을 가진 인간이 개인주의 체제에서 학생 체벌을 실행하는 것으로 사회에 해를 끼치면서도낡은 가치관을 근거로 그것을 정당화한다. 한국에서 학생 체벌은 사라지고 있으나 이용하는 이타주의에 의해 교사 폭행은 늘어나고 있다.

 

열여섯째, 집단 괴롭힘. 집단주의에서는 집단의 이익을 위해 특정 개인을 괴롭히는것을 실행하거나 방관하지만 개인주의에서는 개인의 이익만을 위해 특정 개인을 괴롭히지도 않고 방관하지도 않는다. 집단 괴롭힘은 집단주의와 개인주의 둘 다 일어날 수 있으나 집단주의에서는 도덕으로 여기고 개인주의에서는부도덕으로 여긴다. 집단주의 관념을 가진 인간이 개인주의 체제에서 집단 괴롭힘을실행하거나 방관하는 것으로 사회에 해를 끼치면서도 낡은 가치관을 근거로 그것을 정당화한다. 한국에서 집단 괴롭힘은 학교 폭력, 군 기수 열외, 기업 이질 배척, 사이버불링 등이 있다.

 

열일곱째, 인맥 특혜. 집단주의에서는 집단의 이익을 위해 인맥에게 특혜를 주지만개인주의에서는 개인의 이익만을 위해 공정한 경쟁을 하도록 유도한다. 인맥 특혜는 집단주의와 개인주의 둘 다 일어날 수 있으나 집단주의에서는 도덕으로 여기고 개인주의에서는 부도덕으로 여긴다. 집단주의 관념을 가진 인간이 개인주의 체제에서 인맥 특혜를 하는 것으로 사회에 해를 끼치면서도낡은 가치관을 근거로 그것을 정당화한다. 한국에서 인맥 특혜는 혈연, 지역, 학연 등으로 유명하며 농민이 음주하다 사고 낸 것을 구조하던소방관이 신고하는 것을 농민과 인맥 관계에 있는 정치가가 잘못되었다고 말할 정도다.

 

열여덟째, 부당 유착. 집단주의에서는 집단의 이익을 위해 부당한 유착하면서 경쟁하지않고 이익을 얻지만 개인주의에서는 개인의 이익만을 위해 공정한 경쟁을 한다. 유착은 집단주의와 개인주의 둘 다 일어날 수 있으나 집단주의에서는 도덕으로 여기고 개인주의에서는부도덕으로 여긴다. 집단주의 관념을 가진 인간이 개인주의 체제에서 유착을 하는것으로 사회에 해를 끼치면서도 낡은 가치관을 근거로 그것을 정당화한다. 한국에서 부당한 유착은 정경유착, 정언유착 경언유착 등이 있다.

 

열아홉째, 재산 줄 세우기. 집단주의에서는 집단의 이익을 위해 학생 집안의 재산으로줄 세우기로 차별하지만 개인주의에서는 개인의 이익만을 위해 학생을 평등하게 대한다. 재산 줄 세우기는 집단주의와 개인주의 둘 다 일어날 수 있으나 집단주의에서는 도덕으로 여기고개인주의에서는 부도덕으로 여긴다. 집단주의 관념을 가진 인간이 개인주의 체제에서 재산 줄 세우기를 하는 것으로 사회에 해를 끼치면서도 낡은 가치관을 근거로 그것을 정당화한다. 한국에서 재산 줄 세우기는 아파트 줄 세우기, 옷 줄 세우기, 스마트폰 줄 세우기 등이 있다.

 

스무째, 개성 상실. 집단주의에서는 집단의 이익을 위해 금욕과 이타로 개인의개성을 잃게 하지만 개인주의에서는 개인의 이익만을 위해 모든 개인이 욕망과 이기를 통해 다양한 개성을 갖는다. 개성 상실은 집단주의와 개인주의 둘 다 일어날 수 있으나 집단주의에서는 도덕으로 여기고 개인주의에서는부도덕으로 여긴다. 집단주의 관념을 가진 인간이 개인주의 체제에서 개성 상실을하는 것으로 사회에 해를 끼치면서도 낡은 가치관으로 그것을 정당화한다. 한국에서 개성 상실은 보통 나이별 고정된 행동 양식이나 지나친 유행 집착으로 알 수 있다.

 

 

한국에서 수많은 문제가 집단주의 관념과 개인주의 체제의 충돌로 나타나고 있다. 한국은 경제가 성장하면서 날이 갈수록 개인의 도덕성이 중시되나 이익 추구 방향이 정반대인 관념과체제가 공존하면서 도덕성의 기준이 되는 윤리가 객관적 기준을 잃었다. 개인의 자유가 중시되는 개인주의 체제에서 낡은 가치관을 가진 이들이 금욕을 강요하며 규제와 검열이 일어나도록 하고 있고 이타를 강요하며인간을 도구처럼 이용하려고 하고 있다. 그러면서 개인주의 체제를 근거로 본인은 욕망을 추구하고 이기적으로 행동하고 있다. 정말 역겹기 짝이 없는 작태다. 이기주의와 이용하는 이타주의의 차이는 정당화다. 둘 다 본인의 이익만을 추구하나 후자는 이타주의 윤리로 본인의 이익 추구가 부당하더라도 정당화한다. 대체로 내로남불과도 같은 자가당착은 이러한 이익 추구 방향이 정반대인 체제들을 필요할 때마다쓰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럼에도 이타주의 윤리를 부정하지 못하고 그러한 비논리적인부당한 이익 추구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것은 논리 안에 살고 있는 지성인으로서 명예롭지 못한 일이다.

 

집단주의 관념과 개인주의 체제 충돌은 서양에서 온 만큼 서양에서 먼저 일어났다. 자본주의에 대응하여 사회주의가 나타난 것 자체가 관념과 체제 충돌의 결과물이다. 집단주의 관념을 가진 사람에게 자본주의 체제는 인간의 욕망과 이기심을 부추기는 악의 사상으로보였을 것이다. 그들은 충돌로 나타나는 현상을 목격하고 본인들의 관념을확신했다.

자본가가 노동자를 착취하고 있으니 욕망과 이기심을 부추기는 자본주의는 악이다. 그러나 자본가가 노동자를 착취했던 것은 영주가 농노를 착취했던 것과 같은 원리였으므로 신분제관념에서 벗어나자 주장했어야 했다. 서양 인문학의 발전인 평등 대상 확대의 흐름으로 나타난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로 개인주의 체제에서도 복지가 나타났으나, 그것은 집단주의 윤리를 근거로 한 것이었기에 비효율적이고 불합리한 경우가 많았다.

많은 부를 쌓은 자본가의 욕망과 이기심에 의해 경제적 불평등이 심해지고 있으니 욕망과 이기심을부추기는 자본주의는 악이다. 그러나 개인의 의사가 반영되는 시장의 성질상 경제적 불평등은 반드시 발생하므로 경제적 불평등을 줄이기 위해 다수가 높은 가치 생산이 가능하도록공교육의 질을 올리자고 주장했어야 했다. 지금은 인터넷을 통해 누구나 지식을 학습할 수 있게 되었다.

자본주의 국가의 욕망과 이기심에 의해 약소국을 침략하여 식민지로 삼아 착취하였으니 욕망과 이기심을부추기는 자본주의는 악이다. 그러나 그러한 착취는 약소국을 대등한 존재로 인지하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한 것으로 자본주의가 아닌 평등 개념의 문제였으므로 서양 인문학의발전인 평등 대상 확대를 주장했어야 했다. 서양 인문학의 발전인 평등 대상 확대를 통해 인류는 평등하다는 인식을 가지게 되었으나 불필요하게 된 상황에서조차 실행하는 바람에 수많은사회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집단주의 관념과 개인주의 체제의 충돌로 새로운 유형의 죄도 나타나게 된다. 앞서 말한 도덕적 죄다. 집단주의 관념으로 바르다 여긴 것을 실행한 것이 개인주의 체제인 사회에 해를 끼치는 모든 사건을바르다 여겨서 잘못을 저질렀으므로 도덕적 죄라 규정하겠다. 개인의 도덕관념은 관습법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될 수 있으나 그것이 체제를 해롭게 하는 것이 명백하면 헌법은 체제에 손을 들어준다. 그러지 않으면 체제 유지가 불가능하다. 도덕적 죄가 범법에 해당할 경우 도덕적 범죄가 된다. 가령 부모가 자녀에게 직업 강요하는 것은 가정의 일이라며 범죄가 되지 않을 수 있으니 도덕적죄가 되지만 부모가 자녀를 위해 저지르는 비리는 범죄이므로 도덕적 범죄가 된다. 앞의 예시 스무 개는 도덕적 죄나 도덕적 범죄라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는 도덕적 죄라 부르겠다. 그 중 부당한 자유권 침해와 이성애와 성 죄악시는 죄질이 큰 도덕적 죄에 해당한다. 부당한 자유권 침해는 자유주의 이념을 망가트리고 이성애와 성 죄악시는 부당한 자유권 침해는 물론이고성에 대한 부정적 인식으로 연애와 결혼을 하지 않게 하면서 이성애로 얻는 행복의 감소로 자살률을 늘리고 연애와 결혼에 의한 출산을 하지 않게 하면서출산율을 낮추는 최악의 도덕적 죄다.

 

부당한 자유권 침해는 대부분 통제 속에서 금욕과 이타를 강조하는 집단주의 관념과 자유로운 욕망과이기를 강조하는 개인주의 체제와의 충돌로 나타난다. 사회와 체제 구조 유지와 같은 필수적인 것이기에 그것을 위한 것은 자유권 침해에 해당하지 않기에 대부분의 자유권 침해는 부당하게 된다. 한국은 지배자의 정치사상인 유교의 가르침에 따라 차별을 윤리로 여기고 있었다. 신분 차별은 사라졌어도 그에 대한 관념이 남아 갑질이 나오기도 하고, 연령 차별은 남아 연상에 대한 의무적인 존대와 같은 언어의 차별과 꼰대질이 남게 되었다. 그러한 일상적인 차별 속에서 위는 아래를 열등하게 여기게 되었다. 국가의 독재 정부와 가정의 보호자는 국민과 피보호자를 열등하게 여기고 통금과 감시와 검열 등과같은 통제를 행했다. 그것을 보호라 포장하며 정당화하고 있다. 그러나 개인이 충분히 대응 가능한 상황에서의 보호는 지배에 불과하다. 개인이 대응하다 판단하는 것은 사회의 보편적 지성으로 추측하게 되는데, 일반 개인은 모두 보편적 지성을 획득해야 보호라는 이름의 통제에서 벗어나 온전한 자유를 누릴수 있을 것이다.

개인의 자유권을 최대한 지키기 위해서 사회와 체제 구조 유지를 위한 기본적인 강제력과 강제력이없는 사전 예방과 강제력이 있는 사후 조치로 접근해야 한다. 가령 자연재해가 닥친 곳에 대한 출입금지는 사회 구조 요소인 인간의 생존을 위한 기본적인 강제력에 해당하고, 도박과 마약에 대한 중독 방지 캠페인은 강제력이 없는 사전 예방에 해당하고, 형사 사건은 강제력이 있는 사후 조치에 해당한다. 인간의 생존에 직접적 타격이 있거나 사건이 발생한 직후에만 강제력이 발생할 정당성이 확보된다. 그러나 그런 기준도 없이 윤리를 명분으로 국민을 통제한 적이 있다.

과거 독재 정부는 간첩을 잡겠다고 국민의 사사로운 대화를 일일이 감청하고 소유물을 검열했다. 최근 검열 정부는 성범죄자를 잡겠다고 국민의 사사로운 대화가 담긴 메신저를 감시하고 메신저로전달하는 이미지를 검열했다. 이 둘은 윤리를 명분으로 국민의 자유권을 부당하게 침해한 사례들이다. 간첩이나 성범죄자는 확정된 상황이 아니기에 기본적인 강제력을 동원할 근거가 없고 사건이 발생하지도않은 상황이기에 사후 조치를 위한 강제력을 동원할 근거도 없다. 간첩 몰이나 성범죄자 몰이는 낡은 윤리관으로 나타난 대표적인 부당한 개인의 자유권 침해에 해당한다. 그것을 법률화한 N번방 방지법은 부당한 자유권 침해를 낡은 윤리로 정당화한 악법에 해당한다.

이러한 부당한 자유권 침해는 과거에 있던 국민 감시와 검열과 통금부터 현재까지 있는 만화나 영화검열과 같은 창작물 검열와 인터넷 감시와 검열 등과 같이 너무나도 많다. 문제가 발생하면 관계 말살과 같은 방식으로 처리하여 악플이 달린다고 해당 인터넷 기사의 댓글창을 완전히 폐지하고 검색어 순위가 악용된다고 검색어 순위 자체를 없애버리기도 했다. 그렇게 하면서 악플과 악용은 사라졌으나 개인의 의사 표현과 효율도 사라졌다.

통신매체이용음란죄나 디지털 성범죄도 같다. 가상은 현실과 달리 물리적 접촉이 불가능하여 어떤 불쾌한 피해를 당하면 차단이나 신고로 가해자의존재를 지워버릴 수 있다. 스토킹과 같은 지속적인 피해나 현실에서의 접촉을 제외하면 개인이 충분히 대응할 수 있으므로 강제력을 동원할 근거가 없다. 디지털에서의 스토킹은 별개로 접근하고, 현실에서의 접촉은 현실 범죄로 접근하면 된다. 그 외의 디지털에서의 문제는 개인이 충분히 대응할 수 있다. 개인의 대응 가능 여부는 법적 판단에 영향을 끼치는데, 정당방위가 그렇다. 상대방을 공격하지 않으면 대응이 불가능한 상황에서의 공격은 정당방위로 성립되어 위법성 조각 사유에 해당하나 상대방을 공격하지 않아도 대응이가능한 상황에서의 공격은 정당방위로 성립되지 않아 위법성 조각 사유에도 해당하지 않는다. 그럴 때의 공격은 정당방위가 아닌 사적 제재다. 개인의 대응이 가능한 인터넷의 사사로운 사건들을 형법으로 처벌하는 것은 국가 형벌권의 과잉행사라본다. 국가 형벌권을 남발하면 행정력이 낭비되어 정작 필요하나사람이 도움을 받지 못할 수 있어 바람직하지 못하다.

사실 적시 명예 훼손도 강자가 약자의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고 억압하는데 악용될 확률이 높기 때문에간통죄가 형사상으로 폐지되고 민사상의 책임만 물을 수 있게 된 것과 같이 명예 훼손도 형사상이 아닌 민사상의 책임만 물을 수 있도록 되는 것이자유주의에 합당하다 본다.

 

이성애와 성 죄악시는 금욕과 이타를 강조하는 집단주의 관념과 자유로운 욕망과 이기를 강조하는개인주의 체제와의 충돌로 나타난다. 한국이 과거 집단주의 체제였을 때 이성애를 죄악시하며 남녀칠세부동석이라 말하며 미성년 때부터 이성 관계를 막고 성 문화를 감시하고 검열하면서성 지식을 쌓지 못하게 하는 것으로 성관계를 막았다. 그러면서 가족이나 혈통이란 집단의 이익 실현을 위해 개인에게 중매결혼을 강요하고 여성에게 대를 잇기 위한 아들 출산을 강요했다. 개인의 이성애나 출산이 집단의 이익 실현 수단으로 이용되었다는 것이다. 그런 집단주의 관념을 가지고 개인주의 체제에 적용하니 엉망이 되기 시작했다.  한국에서 중매결혼 비율은 70~74년 52.8%고 90~91년 24.2%로 감소추세였다고 한다. 즉 자유결혼이 늘어나고 있었다. 그럼에도 집단주의 관념에 따라 이성애와 성을 죄악시하면서 자유 결혼을 하지 못하게 되는 인구수가 급증하게 되었다. 저출산의 본질적인 원인이 바로 이것이다.

중매결혼을 할 때에는 이성 관계와 성관계를 막더라도 상관이 없었다. 중매를 통해 어쨌든 결혼하고 출산을 했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자유 결혼을 할 때에도 이성 관계와 성관계를 막자 성을 부정적으로 여기면서 연애와 결혼을하는 이들의 수가 급감하게 되었다. 특히 경제 성장과 윤리의 상관관계에 따라 경제가 성장하면서 윤리를 더욱 강조하면서 이성애와 성을 더욱 더 죄악시함에 따라 연애와 결혼 수는더욱 줄어들었다. 거기에 여성주의자가 여성의 인권을 말하며 이성애와 성을더욱 더 죄악시하자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연애와 결혼이 줄어들었다. 2021년 한국 20대의 연애 비율이 21.4%라고 한다. 이게 지금 얼마나 심각한 일인지 인식해야 한다.

인간은 성적 대상화가 되어야 하고 성은 상품화가 되어야 한다. 인간이 인간을 성적 대상으로 느끼고 인간의 성을 상품으로 즐기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것이다. 인간은 성기능이 작동하는 초등학교 고학년에서 중학생 저학년 때부터 성적 자기결정권을 가지고 자유롭게성관계와 성 문화를 즐기면서 성에 친숙해져야 한다. 그렇게 해서 올바른 성관념이 자리 잡혀야 자연스럽게 연애하고 결혼하면서 출산율도 올라가는 것이다. 자유로운 성관계가 되면 성관계는 하되 출산은 하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자유로운 성관계가 아니면 대부분 성관계조차 하지 않아 출산 가능성도 없다. 자유롭게 성관계를 하면서 그 중에서 출산하는 이들이 늘어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미성년의 이성 관계를 막고 미성년이 즐기는 성 문화를 억압하고 검열하는 이들은건전한 성관념을 자리잡게 하는 것을 방해하여 연애와 결혼과 출산율을 줄인 도덕적 죄를 저지른 셈이다.

성이 자유로우면 성인지감수성이 부족해져 성추행이나 성폭행과 같은 성범죄가 늘어날 수 있을 거라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범죄는 개인의 자유권을 침해한 것이다. 개인의 자유권 침해에 성인지감수성이 나올 이유가 없다. 남성은 성추행이나 성폭행을 당해도 괜찮고 여성은 성추행이나 성폭행을 당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가? 감수성을 말하며 법의 합리성을 파괴하는 일을 저질러서는 안 된다. 애초에 성인지감수성의 여성성이 어느 시대를 명제로 삼았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성인지감수성을 주장한 여성들이 성관념을 교육받던 시대의 여성성이다. 여성은 성적 수치심이 강하여 성에 취약하고 의지가 약하여 수동적이라는 유교나 기독교 가부장제시대의 여성성을 명제로 삼았다. 그렇기에 이성애와 성을 죄악시하는 수동적인 여성성을 명제로 이성애와 성을 죄악시하면서 그걸 이해할 수 있는 감수성을 사회에 강요했던 것이다. 그리고 사회에서 그런 성관념을 가진 이들이 동조하고 여성주의는 그런 여성성을 지키는 것을 이익으로여겨 인간이 인간에게 성애를 느끼는 정상적인 성적 대상화나 성 상품화가 잘못되었다 말하며 수동적인 성관념을 신세대 여성에게 세뇌하고 사회에 강요하는바람에 많은 신세대 여성이 이성애와 성을 부정적으로 보게 되었다. 2021년 서울 거주자를 대상으로 성관계를 하지 않는 이유를 조사한 결과, 여성의 답변 중 가장 많은 것이24%로 ‘흥미가 없어서’고, 남성의 답변 중 가장 많은 것이15%로 ‘관심은 있지만 파트너가 없어서’라고 한다. 얼마나 여성에게 이성애와 성을 죄악시하는 수동적인 성관념을세뇌해놨으면 답변이 저러는가? 여성에 대한 수동적인 성관념 세뇌는 성적 취향도 바꿔버렸다. 이성애를 죄로 여기니 이성의 동성애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이다. 얼마나 많은 한국 여성이 남성과 남성의 동성애 창작물을 즐기는지 공공연하게 그 성적 취향을 드러내고 있을 정도다. 거기에 PC주의는 그런 취향을 정당화하게 만들어 더욱 더 적극적으로 이성의 동성애를 즐기는 상황이 발생하게 되었다.

저출산은 복지 이전에 집단주의 관념이 문제다. 아무리 복지 정책으로 돈을 쏟아 부어도 잘못된 성관념으로 나타나는 저출산은 결코 막을 수가 없다. 민주정의 가치관과 같은 개인주의 관념을 가지는 사상 혁명이 일어나서 성을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있게 되어야 정상적으로 이성 관계와 성관계를 즐기면서 자연스러운 연애와 결혼과 출산이 가능해질 것이다. 그걸 위해 정부가 낡은 집단주의 관념에서 벗어나는 모범을 보이며 개인의 자유권을 침해하지 않고이성애와 성을 죄악시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집단주의 관념으로 개인주의 체제에서 살아간다는 것을 쉽게 비유하면 공기로 숨을 쉬는 인간이 우주에서사는 것과 같았다. 인류에 있어 집단주의는 마치 공기와 같이 익숙하고 개인주의는우주와 같이 생소하기 때문이다. 숨도 쉴 수 없는 살아갈 수가 없는 곳에서 살고 있었다는 것이다. 관념과 체제가 충돌하는 국가는 불행할 수밖에 없었다. 이 불행에서 벗어나려면 집단주의 체제로 돌아가거나 개인주의 관념을 가져야 한다. 즉 사람의 관념에 맞춰 사회의 체제를 바꾸거나 사회의 체제에 맞춰 사람의 관념을 바꿔야 한다는것이다. 사람의 관념에 맞춰 사회의 체제를 바꾸면 기다리는 것은왕정이나 공산주의다. 그걸 바랄 자유 진영의 국민은 드물 것이라 생각한다. 공산주의를 제외한 사회주의는 대부분 사회 민주주의인데 사회 민주주의는 통제가 심하고 복지가 많은개인주의 체제나 다름이 없다. 집단주의와 개인주의를 섞다 보니 마땅한 기준이 없어 불합리한 통제나 억압이 나타나기도 하여 상당한 모순을 가질 수밖에 없는 사회다. 개인주의 체제에서 더 많은 개인이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으므로 사회의 체제에 맞춰 사람의 관념을바꿔야 한다. 인간은 살아남아 보다 행복하기 위해 발전했다. 만약 인간이 진보하지 않으려 했다면 자연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모두가 민주정의 가치관을 가져 개인주의 관념으로 진보해야 한다. 만약 한국이 과거에만 속박되는 국가였다면 이런 진보를 받아드리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한국은 북한과 달리 과거와 결별하고 개인주의 체제를 받아드렸다. 이제는 개인주의 관념을 받아드릴 때이다.

집단주의 관념에 의해 강대국과 경쟁하기 위해서는 집단의 이익을 우선시하여 국가를 발전시켜야 한다고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개인이 개인의 이익만을 추구하면서 성장해야 국가도 성장한다. 인간이 성장해야 국가가 성장하는 것이다. 개인의 욕망과 이기심을 긍정하는 개인주의 체제에서 개인의 의사가 반영되는 선거와 시장의 경쟁을통해 개인은 한없이 성장하게 된다. 그 성장이 국가를 발전시켜 강대국과 경쟁할 수 있게 만든다. 한국과 북한이 같은 역사를 가졌지만 발전이 다른 까닭은 체제가 다르기 때문임을 인식해야 한다. 개인주의야말로 강대국과 경쟁할 수 있는 가장 진보적인 체제다.

 

길을 안내하는 길잡이가 잘못 안내하면 길잡이의 책임이듯 인간이 가야 할 길을 안내하는 사람이잘못하면 그 사람의 책임이다. 그런 점에서 사람에게 바른길을 안내해야 할 인문학, 정확히 사상과 철학은 현재 사회에 대한 책임 의식을 가져야 한다. 그렇다고 현재 사상과 철학에 온전한 책임을 묻기도 어렵다. 다들 정치가에게 책임을 물으려 하지 학문에 책임을 물으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부 의사가 특정 병을 치료하지 못하면 의사의 책임이지만 모든 의사가 특정 병을 치료하지 못하면의사의 책임이라 하기 어렵듯이 모든 정치가가 고질적 사회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으므로 정치가의 책임이라 하기도 어렵다. 사회가 이토록 불행했음에도 아무도 책임질 수 없다는 것은 정말 끔찍한 일이다. 나는 나의 사상으로 말미암아 발생하는 현상은 가능한 내가 책임지도록 하겠다.

집단주의 관념과 개인주의 체제 충돌은 서양 문명에서 발생한 것이어서 전 세계적으로 겪고 있다. 그러나 관념 성질상 부정하기가 어려워 체제 충돌을 설명해도 이해하여 수용할 수 있는 국가가 많지않다. 집단주의에서는 집단의 이익을 우선시하면서 개인이 권리를보장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 것이다. 그럼에도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와 자본주의가 개인주의 체제에 속한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 개인주의와 이기주의가 잘못되었다는 고정 관념에 의해 본인이 살고 있는 국가의 체제가 어떤 체제인지도모른다. 그럼에도 이해하여 수용 가능한 국가는 개인주의 체제를 가진자유 진영이다. 최소한 개인주의 체제여야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한국은 상대적으로 학업 수준이 높고 거의 전 국민이 활용하는 인터넷과 집단주의적 친목을 경계하는대형 온라인 커뮤니티의 존재와 내로남불에 대한 비판과 수많은 도덕적 죄에 대한 부정적 인식 등으로 이해하고 수용할 수 있는 상황이라 생각한다. 시장의 상품은 쉽게 복제가 가능해도 사회의 인간이 가진 품성이나 사상은 복제가 어렵기 때문에그걸 수용하는 순간 기술과 다른 다른 국가와의 다른 우수한 경쟁력을 갖출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은 그 동안 독립을 통한 민족의 자유와 전쟁을 통한 국가의 자유와 민주화를 통한 국민의 자유를얻었다. 이제는 관념 관찰을 통한 사상의 자유를 얻을 때이다. 그리고 개인이 불로불사로 살아남아 생존 게임에서 승리하여 생존의 자유를 얻어야 한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이 있다. 그런데 그 전에 적응을 못한 생물에게 미래는 없다고 말하겠다. 인간 이전에 모든 종은 적응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역사를 알면 반성을 할 수 있어 도움은 되지만 알고서도 환경에 적응 못하면 도태된다. 반대로 역사를 몰라도 환경에 적응하면 살아남아 미래로 갈 수 있다. 한국은 이제 사상 혁명을 통해 개인주의 관념을 갖는 것으로 사회 문제를 해결하여 살아남아 미래로가야 한다. 그렇게 사상 혁명을 하여 인류 인문학의 중심이 되길 바란다. 사회 문제를 해결하면 단숨에 성장하여 세계를 선도할 수도 있을 것이다.

 

 

 

6. 사회

 

집단주의 관념과 개인주의 체제의 충돌은 사회에 심각한 혼란과 불행을 불렀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모든 개인이 개인주의 관념을 가져야 한다. 그와 동시에 집단주의 관념에 의해 합리성이 파괴된 개인주의 체제인 사회를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 집단주의 관념을 가진 인간의 의견이 민주주의에 의해 개인주의 체제인 사회에서 무비판적이고 무분별하게적용되면서 편중된 이익과 불합리하고 불평등한 권리와 의무 등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개인주의 체제에 맞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우선 사회가 무엇인지 알아보자.

 

[사회_사회 일반은 공동생활을 영위하는 모든 형태의 인간 집단을 뜻한다. 가족, 마을, 조합, 교회, 계급, 국가, 정당, 회사 따위가 그 주요 형태이다.] 인간이 사회를 형성한 것은 열악한 자연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서였다. 그것이 사회의 본질이다. 사회는 인간 집단이기에 집단주의적 사고를 가지게 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지금까지는 집단의 이익을 우선시해야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런 집단 힘의 논리로 질서가 형성되어 강자가 약자를 지배했다. 그것이 지금까지의 왕정이다. 살아남기 위해 집단의 이익을 우선시했던 집단주의 체제는 이기적인 인간의 본성에 의해 집단의 장이이익을 독점하는 체제로 변화하였다. 그런 이기주의를 보고 많은 사상가들은 인간의 욕망이 악을 부르므로 욕망이 악이기에 금욕적이고 이타적으로 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한 주장은 본래 의도와 무관하게 지배자가 피지배자를 이용하는데 쓰이게 되었다. 피지배자에게 금욕을 강요하는 것으로 지배에서 벗어날 수 있는 욕망을 가지지 못하게 했고, 희생을 강요하는 것으로 피지배자의 이익을 지배자가 독점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하여 금욕주의와 이타주의는 왕정의 윤리가 되었다.

서양에서는 기독교 교리 해석을 신의 피조물은 모두 평등하다는 식으로 접근하여 평등주의가 자리잡은상태에서 과학 혁명을 통해 다양한 힘을 쥐게 된 시민이 자유주의에 관련된 사상과 영합하여 혁명을 일으켜 왕정의 지배로부터 자유롭게 되었다. 그러나 왕정의 가치관이 남아있던 탓에 자본가가 노동자를 농노 취급하며 착취해버리는 탓에 그에반발하여 기독교 윤리에 영향을 받은 사회주의와 공산주의가 나타나게 된다. 그렇게 하여 인류는 왕정의 관념과 민주정의 체제를 채택한 자유 진영과 왕정의 관념과 왕정의 체제와흡사한 체제를 채택한 공산 진영으로 나누어 경쟁하고 있다. 전자가 보통 우파고 후자가 보통 좌파다. 왕정의 관념을 부정하지 못했기 때문에 우파와 좌파를 섞은 수정 자본주의와 사회 민주주의 등이 나타났다. 왕정과 민주정의 성질상 공존할 수 없음에도 섞어버리는 바람에 온갖 모순과 불합리한 상황이 만들어지게되었다. 왕정의 관념을 근거로 타인의 자유를 억압하고 민주정의 체제를근거로 본인의 자유를 주장하거나, 왕정에서의 손해는 부당하다 주장하면서 왕정에서의 이익은 정당하다 주장하면서 권리와 의무가 비례하지 않게 되었다. 이에 따라 모든 개인주의 체제인 국가는 개인주의 체제에 맞는 관념과 구조를 갖춰야 할 필요가생긴다. 그러기 위해서 우선 사회가 어떤 구조를 가지는지 알아보겠다.

 

사회는 인간 집단을 말하는 것으로 인간이 사회 구조 요소다. 인간이란 요소로 사회 구조가 이루어진다. 사회는 인간이 육체를 유지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 것과 같이 사회 구조를 유지해야 살아남을 수있다. 살아남아야 의미가 있으므로 사회 구조 유지가 사회에 있어가장 기본적이다. 그러한 관점으로 접근한 사상이 생존주의다. 사회 구조는 요소인 인간이 사회에서 다른 인간과 분쟁하지 않고 살아남아야 유지가 된다. 그것을 위한 분야가 법과 복지다. 법은 사회 질서를 만들어 인간관계의 분쟁과 갈등을 줄여 구조가 유지될 수 있게 하고 복지는 인간의생존을 보장하고 행복을 추구하게 하여 요소가 유지될 수 있게 한다.

모든 사회에는 법과 복지를 해야 구조를 유지할 수 있기에 강제력이 동원된다. [강제력은 강제하는 힘이나 권력을 뜻한다.] 강제력은 보통 권력이 행사하는 힘을 말한다. 사회 크기에 비례하여 법과 복지의 체계와 강제력이 달라진다. 국가의 법과 복지는 매우 복잡하고 강제력이 크다.

국가의 법을 국민이 어기면 보통 경찰이 체포하거나 군이 투입된다. 인간은 군의 무력을 넘지 못하는 이상 법의 집행을 막기 어렵다. 국가의 복지는 개인에게 이익이 될 수 있기에 보통 강제력이 없다고 오해하게 된다. 그러나 아니다. 보편적 교육이 자유 의지를 갖기 전에 강제로 시행되고 있다. 학생에게 교육은 권리지만 그렇다고 동의를 받지는 않는다. 자살자 구출이나 빈곤 지원도 강제로 실행된다. 자살 명소에서 자살을 기도 및 실행하거나 인터넷에서 자살 전 증후군으로 추측되는 글이 올라오면 소방관이나 경찰관이 직접 찾아가서 구출하거나방문하고 있고 빈곤에 허덕이는 사람 또한 행정 공무원이 직접 찾아가서 지원하고 있다.

사회에서 법과 복지가 사라지면 질서가 무너지고 체계가 깨져 구조가 붕괴한다. 사회에서 법이 사라지면 인간관계에 대한 기준과 절차가 사라짐에 따라 인간 사이에서 갈등과 불신이나타나면서 인간관계가 망가져 사회성을 잃은 짐승이 된다. 복지가 사라지면 생존이 위험한 인간은 아사로 죽게 되고 불행한 인간은 자살로 죽게 되는 것과 같이 자연 도태가 되게 된다.

사회 구조 유지를 위해 법을 지키고 복지를 행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어째서 모든 인간을 살려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이 들 수 있다. 사회 구조 유지를 위해서라면 사회 구조 유지에 해로운 인간은 가지치기 하듯이 제거하는 것이 사회에더 이롭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럼에도 모든 인간에 복지를 행하여 살리는 것은 인간이 존엄하기 때문이다. 인간이 존엄한 이유는 그걸 주장한 존재와 주장을 듣는 대상이 인간이어서 그렇다.

 

[인간 존엄성_철학은 인간이 인간이기 때문에 가지는 부정하거나 범할 수 없는 고상한 성질을 뜻한다. 아무리 흉악한 인간이라도 그 죄를 뉘우치고 선한 사람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니고 있기에 그의존엄성이 부인되거나 거부되어서는 안 된다.] 사전적 정의에서는 대상에 가치 판단한 의견이 첨부되어 있다. 서양 인문학의 발전인 윤리 대상 확대를 통해 모든 인간이 존엄하단 가정하에 범죄자 또한 존엄하다 말하는 것이다. 이것은 윤리적 의미에서 존엄하다 한 것이지 실제 모든 인간의 존엄성이 증명된 것은 아니다. 인류 역사의 국가에서 모든 인간의 존엄을 지킨 적이 드물었다. 현대 비인권적 국가도 많다. 본래 함부로 인간을 죽이는 국가는 약체화되어 다른 나라에 침략 받아 멸망될 수 있으나 반드시그런 것은 아니고 효율적으로 처리하면 오히려 더 성장할 수도 있다. 그것이 비윤리적이기에 말을 하지 않을 뿐이지 다들 알고 있다.

인간의 존엄성은 인간의 관계에서만 성립되므로 인간이 만든 개념에 해당한다. 즉 일반 진리가 아니다. 흉악한 범죄자, 아무 가치도 생산하지 않는 인간, 육체만 남은 식물인간 등과 같이 사회 구조 유지에 해로울 수 있는 인간은 물론이고 외국인, 이민자, 이방인과 본래 사회 구조 요소가 아니었던 인간이나 다른 의견, 다른 취향, 다른 성향 등과 같이 본인과 성질이 다른 인간 등 관점에따라 다르지만 존엄이 필요 없을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특히 흉악한 범죄자는 타인의 존엄을 해쳤으므로 존엄의 자격이 없다 말할 수 있다. 이렇게 다른 인식으로 다른 의견이 나오므로 인간의 존엄성은 현재 학문적 진리가 아니기에 설득이필요하다. 설득을 하려면 모든 인간의 존엄을 지켜야 하는 이유를 논리적으로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어째서 모든 인간의 존엄을 지켜야 하는가? 인간의 교화 가능성과 같은 불확정성이나 인간에 대한 측은지심과 같은 주관성은 이유로 성립될 수없다. 그것은 합리적 기준이 아니다. 사회 구조 유지와도 직접적 관련은 없다. 그것은 절대적 기준이 아니다. 모든 인간의 존엄성을 지켜야 하는 것은 윤리나 실리가 아닌 합리다. 현재 개인주의 체제는 모든 인간은 존엄하다는 전제를 하고 있다. 거기서 만약 주관에 의해 변동이 발생할 경우 체제의 이치가 깨져 합리적 기준이 되지 못하게 된다. 이치가 깨진 기준은 더 이상 합리적이라 할 수 없다. 합리가 없는 기준은 논리를 잃고 논리가 없는 체제는 지성을 잃는다. 야만의 시대가 될 수 있다. 자유주의에서 A는 자유롭고 B는 자유롭지 못하다고 해보자. 그게 왕정과 무슨 차이인가? 그걸 합리적 기준이라 할 수 없고 합리적 기준이 없는 자유주의에는 가치가 없다. 가령 모든 인간은 존엄하다. A는 빼고. 특정 피부색의 인간만 인간의 존엄성을 갖는다. 특정 행동을 한 인간은 존엄하지 않다. 그런 주장이 이치에 맞는다는 근거가 있는가? 없다. 이런 쓰레기 같은 기준은 합리적 기준이 될 수 없다. 기준이 쓰레기면 체제도 쓰레기가 된다. 기준이 이치에 벗어나면 모순이 발생하며 각자 되는대로 떠들면서 체제가 망가지게 된다. 그렇기에 인간의 존엄에 예외를 두지 않는 것이다. 보다 정확한 인간의 정의를 위해 과학의 학문적 진리인 생물학적을 포함하도록 하자. 생물학적으로 인간이 아닌 존재를 인간이라 규정하는 것은 비과학적이다. 모든 생물학적 인간은 존엄하다. 생물학적 인간이라는 과학의 학문적 진리를 바탕으로 모든 인간이 존엄하다라는 합리적 기준을 깨지말아야 그걸 기준으로 한 체제의 합리성도 깨지지 않는다.

모든 생물학적 인간은 존엄하다라는 명제는 생물학적 인간이 아닌 가상의 인간은 인간의 존엄성에포함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떤 이유든 가성의 존재에 인간의 존엄성을 근거로 인권을 부여하려는 태도는 합리적 기준을 부숴 체제의 이치를 깨는 것으로 혼란을 일으키는중대한 잘못에 해당한다. 타당한 이유 없이 낡은 가치관을 근거로 합리성을 파괴하는일을 좌시해서는 안 된다.

모든 인간의 존엄이 지켜지기 위해서는 합리적 기준으로 모두가 대등한 존재가 되어야 한다. 불평등은 사사로운 물질적 손익보다는 대등 여부로 결정된다. [대등은 서로 견주어 높고 낮음이나 낫고 못함이 없이 비슷함을 뜻한다.] 모든 인간이 대등한 존재가 되어야 평등을 실현할 수 있다. [평등은 권리, 의무, 자격 등이 차별 없이 고르고 한결같음을 뜻한다.] 대등하지 않으면 권리나 의무 등이 차별적으로 적용되게 된다. 현재 남녀가 대등하지 않다고 여기니까 권리나 의무가 차별적으로 적용되는 것이다. 과거 여성이 사회 선입견으로 유리천장과 같은 차별이 있는 것을 명분으로 현재 여성은 부당한 여성할당제나 가산점을 주장하고 병역의 의무를 거부하고 있다. 과거 남성과 여성이 대등하지 않다고 여기니까 여성을 차별했고, 현재 그걸 근거로 과한 권리를 주장하고 의무를 거부하고 있는 것으로 남성을 차별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이 인간과 인간이 대등하지 않다고 여겼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모두가 대등한 존재가 되어야 평등도 실현하고 존엄도 지킬 수 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나는 생존과 자유라는 합리적 기준을 바탕으로 한 역할이라는 관계에 가치 판단하는 합리적 기준을제안했다. 역할주의다. 모든 개인은 역할이라는 관계에 가치를 판단하는 것으로 대등해져야 한다. 역할을 수행하면 존중하고 수행하지 못하면 비판한다. 만약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여 비판을 견디기 힘들다면 노력을 하여 역할을 수행하거나 다른 역할을맡으면 된다. 거기에는 연령도 성별도 지역도 학력도 없다. 역할이라는 관계에 가치 판단하기에 역할과 관계가 없는 개성은 무관하게 되면서 모두가 역할로 대등한관계를 구축할 수 있게 된다. 개인주의 체제는 기본적으로 선거나 시장과 같이 개인의 의사로 가치가 평가되어 판단된다. 역할이란 관계에서 가치 판단을 할 때는 주관적 가치 판단을 하게 되는데, 객관적 가치는 선거나 시장에서 선거 원리와 시장 원리로 결정되게 된다. 역할 수행이라는 기준으로 대등해지고, 역할 기여도를 개개인에게 평가 받는 것으로 대가를 다르게 받는다. 이렇게 대등해지는 것으로 평등을 실현하여 모든 인간의 존엄성을 지킬 수 있다.

 

 

인권 운동은 모든 인간은 존엄하다라는 명제를 근거로 정당화되어 실행되고 있다. [인권 운동_사회 일반은 인간의 기본적 권리를 실질적인 권리로 만들기 위한 운동을 뜻한다. 더 많은 사람들의 인권이 보장되도록 벌이는 사회 활동으로, 대중이 자발적으로 참여한다.] 그러나 일반적인 인권 운동은 합리적 기준이 없어 이권 운동에 불과했다. [이권은 이익을 얻을 수 있는 권리를 뜻한다.] 그냥 이익을 보면 좋은 것, 손해를 보면 나쁜 것으로 접근한다. 그거뿐이다. 이익을 얻을 권리인 이권을 모든 인간의 보편적인 권리인 인권으로 포장하여 주장하고 있다.

어떤 여성주의자는 여성주의가 여성의 이익을 주장하므로 여성이 여성주의를 주장하는 것은 당연하다는식으로 말한다. 황당하다. 그러면 나치즘은 아리아인의 이익을 주장하니 아리아인이 나치즘을 주장하는 것은 당연한가? 사상 개념도 없고 손익에 정당성과 부당성 개념도 없다. 거의 모든 인권 운동이 합리적 기준이 없어 정당성과 부당성을 구분하지 않고 이익만을 주장하고있을 뿐으로 단순한 이익 집단에 불과하다. 분명 개인주의 체제에서 모든 개인은 타인의 행복조차 개인의 이익으로 여기는 것과 같이 자유 의지로 행한 모든 것을 개인의 이익만으로 여기며주장해야 한다. 그러나 그걸 인권과 같이 강제력이 있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해서는안 된다. 누구나 수긍하는 보편적인 권리인 인권은 따로 증명할 필요가없으나 일부만 수긍하는 일부가 이익을 얻을 권리인 이권은 따로 증명해야 한다. 대부분 이권 운동은 인권으로 포장하여 증명을 회피하면서 이익을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사회에 혼란을일으키고 있다.

이런 혼란은 한국의 근본적인 문제부터 접근해야 한다. 한국은 서양의 관념과 체제 충돌과 별개로 유교, 불교, 무교 등과 같은 것에 의해 불합리하고 비효율적이고 비과학적인 풍조가 남아있는 상황이다. PC주의를 근거로 다양한 평등은 주장하면서 연령 차별은 문화 차이라며 연령 평등을 말하지 않고 차별을유지한다. 자본주의를 근거로 돈에 대한 욕망은 주장하면서 다른 분야금욕은 문화 차이라며 성이나 게임에 대한 욕망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고 억압을 유지한다. 자연 과학을 근거로 과학적인 것은 주장하면서 무교는 문화 차이라며 비과학적임을 말하지 않고 미신을유지한다. 이것이 한국의 뿌리깊은 근본적 문제다.

그 근본적 문제 중 하나인 유교적 가치관이 인권 운동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 가령 유교적 가치관에 의해 위가 아래를 지배하는 조선의 관념이 한국에 남아 힘이 약할수록 손해를많이 본다. 이것에 의해 한국은 노동자가 상당히 불리한 상황이다. 한국에서 노동자가 불행한 것은 자본주의가 아닌 유교적 가치관이 원인이다.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 일부 노동자는 집단을 이루는 것으로 힘을 얻어 이익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 현재 인권 운동 단체가 이익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집단을 이루는 것으로 힘을 가졌기 때문이다. 힘을 갖게 된 약자 집단은 과한 이익을 얻고 있으나 힘이 없는 약자 개인은 작은 권리조차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개인주의 체제에서는 모든 개인이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는체계가 필요하다. 자본가가 부당한 이익을 얻는 것도 안되고 노동 집단이 부당한이익을 얻는 것도 안 된다. 모두가 공정한 이익을 얻어야 한다. 집단주의 체제의 집단은 집단과 집단의 중심인물만 살찌우게 만드는 개인에게 있어 부당한 체제다.

한국에서 인권 운동은 모든 인간을 대상으로 하나 보통 노동자, 여성, 아동, 장애인, 성소수자, 이민자 등과 같이 약자를 기본으로 한다. 대부분 인권 운동이 집단주의 체제기 때문에 보편적 인권이 아닌 일부만 집단에 속하여 강해진 인간이 주로 이익을 얻고 있다. 아동의 경우 아동이 인권 운동을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인권 운동가가 생각하는 아동상을 구현하는것을 통해, 인권 운동가와 그것을 악용하는 강한 아동이 이익을 얻고있다. 실상 대부분 인권 운동은 인권 운동가가 생각하는 이상적인인간상을 주장하는 것에 해당한다. 그것을 통해 이권을 얻는 것이 현재 인권 운동이다. 그러다 보니 실제 인권 대상의 주장을 묵살할 때가 많다.

강한 노동자는 귀족 노조란 말을 들을 정도로 과한 이익을 얻어 사회적 비판을 받는 반면 약한노동자는 참혹한 환경에서 죽을 정도로 일을 하며 갑질과 착취를 당하다가 죽기도 하는 삶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강한 여성은 할당제와 가산점으로 능력이 이상의 직업이나 권력을 얻어 역차별이란 사회적 비판을받는 반면 약한 여성은 여전히 비참한 환경에서 육체적·정신적 학대와 폭력을 당하는 삶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강한 아동은 범죄를 저질러도 촉법소년이란 이유로 제대로 처벌하지 못하여 체벌 주장이나 촉법소년폐지 주장과도 같은 사회적 비판을 받는 반면 약한 아동은 보호자의 감시와 검열로 자유권을 침해 당해 성적 자기결정권과 선거권도 없는 상황에서 로봇처럼명령대로 지식을 암기하고 이해하는 자유 의지가 없는 삶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일부는 인권을 명분으로 과한 이익을 얻고 일부는 인권조차 제대로 보장 받지 못한 삶을 살고 있다. 이 양극화는 인권 운동이 실상 인권이 아닌 이권이기에 발생했다. 일부만 이권 운동을 통해 과한 이익을 얻을 권리를 얻으니까 나머지는 권리를 얻지 못하면서도 과한이익을 얻는 이들과 같은 집단으로 취급되며 부정적 시선을 받는 것으로 기본적 권리조차 보장받지 못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인권은 모든 인간을 대상으로 하고 있으므로 노동자의 인권을 말할 것이면 자본가의 인권도 고려해야하고 여성의 인권을 말할 것이면 남성의 인권도 고려해야 하고 미성년의 인권을 말할 것이라면 성년의 인권도 고려해야 한다. 그런 보편적인 합리적 기준을 통해 객관적이고 균형적이고 논리적이어야 인권이라 부를 수 있다. 공산주의 노동자 계급 투쟁이 노동자의 이익만 고려하여 노동자 집단의 이권 운동에 불과했던 것과같이 그러지 않으면 그것은 그냥 이권일 뿐이다. 공산주의 노동자 계급 투쟁과 비슷한 지금의 인권 운동을 알기 쉽게 비유하면, 왕정 체제의 신분제를 폐지하고 민주주의 체제의 선거제를 도입하는 것이 아니라 왕정과 관계없이신분제는 유지하여 차별은 남기면서도 평민과 노예였던 이들에게 배려와 혜택을 늘리자고 주장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정녕 인권 운동을 하고 싶다면 신분제를 폐지하고 왕과 귀족과 평민과 노예를 대등한 기준으로 접근하며모두가 같은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얻을 수 있도록 선거제를 마련했던 것과 같이 대등한 기준을 마련했어야 했다. 그러나 그들은 그러지 않았다. 대등하지 않은 관계에서 이익만을 요구했다. 그러면서 권리는 요구하면서 의무는 저버리는 행위를 하게 되었다. 이것이 현재 일반적인 인권 운동의 본질이다.

 

 

첫째, 노동자. 노동 인권 운동은 모든 인간을 대상으로 한 합리적 기준으로이익을 주장해야 인권 운동이 된다. 노동자의 인권을 주장할 것이라면 자본가와 같은 기준으로 접근해야 한다. 만약 이권이 아닌 인권 운동을 했다면 이치를 통해 합리적이고 공정한 이익을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노동자와 자본가와 같이 모든 인간을 대상으로 한 합리적 기준은 무엇인가? 바로 상거래다. 노동자나 자본가나 금융가 등 경제 활동을 하는 인간은 모두 상거래를 한다. 노동자는 상품을 사들여 본인의 능력을 키워 노동력을 상품화하여 가치를 올린 다음 자본가에게 임대로판다. 자본가는 자본재를 바탕으로 생산재를 사들여 상품으로 만들어가치를 올린 다음 소비자에게 판다. 모든 경제 활동을 하는 인간은 상인이라는 같은 기준으로 접근할 수 있다. 상인이라는 합리적 기준으로 인권을 주장하는 것이다.

만약 노동자가 노동력 임대 상품을 취급하는 상인이었다면 자본가는 계약 이상의 노동을 요구하지못한다. 왜냐하면 자본가도 상품 임대로 수익을 얻기도 하기에 소비자임대 상품과 노동력 임대 상품을 같은 기준으로 바라보고 소비자 임대 상품과 같이 노동력 임대 상품도 소중하게 다루며 계약을 준수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같은 기준이 되면 어느 쪽은 소중하고 어느 쪽은 소중하지 않는 논리적 모순을 허용할 수 없게된다. 지성인이라면 윤리는 부정할 수 있어도 논리는 부정할 수없다. 노동력 임대 상품을 계약과 다르게 활용하면 소비자 임대상품을 계약과 다르게 활용했을 때와 같이 계약 위반으로 큰 위약금을 물게 했으면 되었다. 만약 그랬다면 포괄임금제도 없었을 것이다. 소비자 임대 상품을 소비자가 추가로 무료 임대해달라 요구하면 몇 번은 서비스가 가능해도 계속서비스할 수는 없다는 것을 자본가도 안다. 그렇기에 같은 기준으로 보면 자본가도 노동자에게 무료 서비스를 요구할 수 없다. 추가 노동을 하지 않게 하거나 계약 외 추가 계약으로 노동력 임대 상품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지불했을 것이다.

만약 그랬다면 계약도 달라졌을 것이다. 통상 상거래를 떠올려보자. 단기 계약은 계약 기간이 짧으므로 계약 비용이 높고 장기 계약은 계약 기간이 길으므로 계약 비용이낮다. 단기 고객의 고액 요금과 장기 고객의 할인 요금을 떠올려보자. 그게 원래 시장 경제에는 당연하다. 단기 계약은 계약비가 높은 대신 안정성이 낮고, 장기 계약은 계약비가 낮은 대신 안정성이 높다. 노동력 임대 상품도 같은 방식으로 접근하면 노동 유연성과 노동 안정성을 둘 다 얻을 수 있다. 단기 계약은 계약비가 높은 대신 안정성이 낮아 노동 유연성을 얻을 수 있고, 장기 계약은 계약비가 낮은 대신 안정성이 높아 노동 안정성을 얻을 수 있다. 노동자는 본인의 성향에 따라 단기와 장기를 선택하여 임금과 안정성 중에 하나를 택하면 된다. 자본가는 단기 계약을 할 경우 고액 비용을 지불하지만 능력이 낮아지면 쉽게 해고할 수 있어 낮은리스크로 고용할 수 있고 장기 계약을 할 경우 높은 리스크를 감수해야 하지만 저액 비용을 지불하여 낮은 비용으로 고용할 수 있게 된다. 이런 것이 합리적 기준을 통한 공정한 이익이다. 단기 계약과 장기 계약으로 나누면 연공서열에 의한 불공정한 이익도 달라질 수 있다. 단기 계약자는 매번 계약을 갱신하면서 능력을 증명했기에 연공과 무관하게 고액 임금을 받을 자격이있고, 장기 계약자는 계약을 갱신하지 않으면서 능력도 증명하지않았기에 연공과 무관하게 상대적으로 저액 임금을 받는 것이 타당해진다. 한국은 외국과 비교했을 때 대기업 노동자의 노동자 임금은 크게 오른 반면 중소기업 노동자 임금은 적게 올라 임금 격차가 심각한 수준이라고산업계가 지적할 정도다. 지금과 같은 임금 체계로는 그것이 정당한지 부당한지 확인할수가 없다. 단기 계약과 장기 계약과 같은 합리적 기준이 있어야 임금체계의 공정성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대기업 노동자와 중소기업 노동자의 임금 차이는 합리적 기준이 아닌 단지 유교적 가치관에 따른 강약의 차이와 노동조합의 담합이 만든 것에불과하다.

만약 그랬다면 노동자의 주장도 달라졌을 것이다. 노동자는 자본가에게 종속된 존재가 아닌 대등한 상인이기에 자본가가 노동자를 착취하는 것을 비판하면서도노동자를 종신 고용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닌 착취하지 않으면 노동자의 노동력 임대 상품에 정당한 대가도 지불 못하는 무능한 기업은 사라져야한다고 주장했을 것이다. 즉 노동 안정성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 유연성을 주장했을것이다. 곧잘 정부에서 노동자를 위해서라면서 무능한 기업을 세금으로살리기도 하는데, 그것이 노동자를 불행케 한 것이다. 정부가 보호해야 할 기업 중에서 내수 기업은 일반적으로 보호할 이유가 없다. 세계 시장에서 경쟁하지도 않는 기업을 세금으로 보호할 이유가 없다. 정녕 노동자를 위해서라면 차라리 그 비용으로 새로운 기업을 지원하거나 기존 기업에 세금을 투입하여노동자를 고용하도록 유도하거나 노동자에게 직접 지원하는 게 낫다.

만약 그랬다면 사회의 시선도 달라졌을 것이다. 노동자 인권 문제를 감정적으로 접근할 것이 아니라 노동력 임대 상품을 험하게 다루는 계약 위반자를논리적으로 비판했을 것이다. 합리적 기준으로 공정한 판단이 가능해져 지저분하게 싸우는 일도 없을 것이다. 사사로운 손익이 아닌 합리적 명분으로 접근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논리적인 주장은 노동자도 자본가도 수용하면서 야만적인 폭력 사태나 무의미한 소요 사태도사라진다. 합리적 기준이 있나 없나에 따라 이토록 달라질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은 그러지 않았다. 자본가와 대등한 기준이 아닌 천대 받는 노동자의 위치에서 일부 노동 운동을 하는 운동자와 운동대상의 이익만을 요구했다. 그렇기에 단순한 이권 운동에 불과했다. 대등한 기준이 아닌 종신 고용과 정규직이 옳다고 말하기만 하면서 능력이 있는 사람조차 무기력하게 종속되었다. 이러니 현대의 노동자들이 공기업은 공노비고 사기업은 사노비라는 조소를 하게 되는 것이다. 그야말로 농노와 다를 바 없다. 농노와 다를 바 없었던 노동자는 생존하기 위해 집단을 형성하여 단결하며 집단의 이익을 우선시하는집단주의 체제가 되었다. 노동자의 권리를 살펴보자. [노동 삼권_법률은 헌법에 명시된 근로자의 세 가지 기본 권리를 뜻한다. 단결권, 단체 교섭권, 단체 행동권을 이른다.] 단결권은 노동조합을 만들 권리를 말하고 단체 교섭권은 노동조합이 사용자와 노동 조건에 대해 교섭하는권리를 말하고 단체 행동권은 파업과도 같은 행동을 할 권리를 말한다. 노동자의 권리는 처음부터 집단의 권리였다. 노동자 개인의 권리가 아니었다. 노동조합은 노동자 개인이 아닌 노동자 집단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집단주의 체제다.

집단주의 체제인 노동조합은 개인주의 체제인 국가와 어울릴 수가 없었다. 노동자가 집단주의 체제인 노동조합에 들어가면 노동자 개인의 이익보다 노동조합의 이익을 우선시하면서노동자 개인의 권리가 침해된다. 체제에 악영향을 끼친다. 이것뿐만이 아니다. 사회에도 악영향을 끼친다. 바로 담합이다. [담합은 서로 의논하여 합의함을 뜻한다.] 자본가가 모여 경쟁 입찰이나 소비자나 노동자 상품의 가격을 미리 협의하여 정하는 것을 담합이라부른다. 그렇다면 논리적으로 노동자가 모여 소비자와 자본가에게 받는비용과 임금을 미리 협의하여 정하는 것도 담합이 된다. 자본자가 소비자에게 상품을 파는 상인이고 노동자가 자본가에게 상품을 파는 상인이라는 전제하에 자본가와 노동자는 가진 힘의 차이가 있을지언정본질은 같다. 그럼에도 자본가가 소비 시장에서 담합을 하는 것은 죄가되지만 노동자가 노동조합에서 담합과 담합을 위해 파업을 하는 것은 권리가 된다. 이것은 단순히 체제의 차이다. 자본가의 소비 시장은 개인주의 체제에 속하지만 노동자의 노동조합은 집단주의 체제기 때문이다. 체제의 차이로 자본가의 담합은 죄가 되나 노동자의 담합은 권리가 된다.

체제가 아닌 힘의 차이로 담합이 정당화되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렇다면 묻겠다. 힘의 차이로 담합이 정당화되는 것이라면 관광지나 위수지의 가난한 자영업자가 수익을 얻기 위해 다른 자영업자와 담합하여 내국인이나 내지인에게는정가로 팔고 외국인과 군인에게는 비싸게 파는 것이 정당하다 할 수 있는가? 대기업의 부유한 노동자가 수익을 얻기 위해 다른 노동자와 담합하여 합리적 이유가 없는 권리를주장하며 파업하는 것으로 생산하는 상품과 제공하는 서비스의 가격 상승과 품질 저하를 일으키는 것이 정당하다 할 수 있는가? 가진 부의 차이를 보면 관광지나 위수지의 자영업자가 대기업 노동자보다 가난할 확률이 높다. 그럼에도 자영업자의 담합은 부당하고 노동자의 담합은 정당한 상황이다. 이처럼 힘이 아닌 체제의 차이로 담합이 정당화되고 있다. 만약 개인주의 체제인 자본주의 시장 경제가 아닌 집단주의 체제인 공산주의 계획 경제였다면 자본가의담합도 정당화되었을 것이다. 분명 한국은 개인주의 체제인 자본주의 시장 경제이지만 집단주의 관념에 의해 기업도 담합을 하는 경우가 많다. 본래 시장에서 상품 가치는 개인의 의사에 해당하는 수요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정상이나 기업이나노동자 담합으로 결정되어 시장 원리를 해치는 경우가 너무나도 많다. 그렇기에 한국 물가가 비정상적이다. 개인의 의사로 가치가 판단되는 선거나 시장과도 같은 것이 아닌 일부의 임의로 가치가 판단되게 되는 담합은 개인주의 체제에서 악이다.

특정 노동조합이 담합을 하여 결정한 임금을 주장하며 파업을 하면 담합한 임금이 통과되든 통과되지않든 나머지 국민은 손해를 보게 된다. 파업을 하면서 상품 공급이 지연되고 합리적인 이유가 아닌 파업을 강행하여 임금이 상승하게 되면 자본가의 부를 노동자가 가져가는 것이 아닌상승한 임금만큼 상품의 가격을 올리거나 품질을 저하시키게 된다. 그러면서 상품 가치가 낮아져 소비하는 국민이 불행하고 세계 시장 경쟁에서 경쟁력이 악화되어 경제가 성장이 둔화된다. 파업으로 불합리한 이익을 가져가는 것이 나타나면 파업을 한 분야와 파업을 하지 않은 분야에서부당한 손익이 발생하게 된다. 그러면 다른 분야의 노동자는 손해를 본 만큼 이익을 얻기 위해 파업을 강행한다. 파업의 연쇄 작용이다. 그러면서 노동자와 자본가의 계급 투쟁이 아닌 분야와 분야의 이익 경쟁이 되게 된다. 이 과정에 합리적 기준이 없기에 논리가 없어 보다 더 감정적이고 비논리적으로 행동한 집단이 더큰 이익을 얻게 된다. 사회가 이성과 논리를 잃으며 흔들린다. 파업의 연쇄로 집단주의 체제인 노동조합의 집단 이기주의가 강해짐에 따라 집단의 이익을 위해 개개인의의견이 무시되어 파업에 동의하지 않거나 동참하지 않는 이에게 파업을 강요하게 된다. 개인의 자유가 침해되어 자유주의 이념이 훼손된다. 이윽고 모든 노동조합이 파업으로 이익을 얻으면 노동조합에 가입하지 않는 노동자는 부당한 손해를보게 된다. 그러면서 노동조합에 가입하는 노동자의 수가 늘어나면서 가입할수 없는 노동자 개인은 더욱 더 큰 부당한 손해를 보게 된다. 사회는 자본가와 노조와 비노조로 계급이 나뉘게 된다.

노동 인권 운동이 인권 운동이 아니라 이권 운동이기에 이런 현상이 나타난다. 노동자가 자본가에 종속되면서 자본가와 노동자 사이에서 계급이 나타났고 노동조합이 생기면서 노동조합가입 유무로 계급이 나타났다. 계급 투쟁으로 계급을 없앤 것이 아니라 계급을 한 층 더 견고하게, 한 층 더 늘렸다. 이것이 집단주의 체제의 이권 운동이다. 개인주의 체제에서는 노동자와 자본가가 같은 상인이라는 점을 고려하여 노동력 임대 상품을 거래하다 부당 거래가 나타나면 공정 거래 위원회에연락하여 해결했어야 했다. 과징금이 높으면 시장 원리에 따라 부당 거래가 현격히 줄어든다. 지금 노동조합은 개인주의 체제를 갖춘 국가에서 집단주의 체제를 유지하는 비정상적인 집단이다. 노동자가 노동조합에 속하지 않더라도 노동자 개인이 동등한 권리를 얻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것이 개인주의 체제다. 그렇게 하여 집단주의 체제인 노동조합은 사라져야 한다. 노동조합은 공산주의 계급 투쟁과 같은 노동자 집단의 이권 운동 집단에 불과하다. 노동자가 모인 집단이 있더라도 그것은 개인주의 체제로 노동자 개인의 이익을 위한 집단이어야만한다. 분야에 따라 노동자 개인이 권리를 얻기 어려운 곳이 있을수 있다. 그런 분야는 집단을 이룰 것이 아니라 정부 보호 분야로따로 두어 관리하는 것이 합당하다.

 

한국은 정치적 진영 논리에 따라 진영마다 일하는 것을 의미하는 단어를 근로와 노동을 나눠 부르고있다. 한쪽은 노동자가 열심히 일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자본가 편을들면서 근로라고 부르고 한쪽은 노동자에게 열심히 일할 것을 강요한다고 생각하며 노동자 편을 들면서 노동으로 부르고 있다. 이제는 그런 진영 논리와 관계 없이 체제로 접근해야 한다. 근로는 집단의 이익을 위해 개인의 의지와 무관하게 열심히 일하도록 강요하기 위해 나타난 단어로지극히 집단주의적이다. 반면 노동은 사회주의나 공산주의의 영향을 제외하면 다르다. 노동을 사전적 정의만 보면 단순히 일하는 것이므로 개인의 이익을 위해 개인의 의지로 열심히 일하는것을 선택할 수 있어 지극히 개인주의적이다. 열심히 일하든 열심히 일하지 않든 그것은 노동자 개인에게 맡겨야 한다. 노동 시장에서 노동자 개인의 노동력 상품의 생산성이 높으면 수요가 높을 것이고 생산성이 낮으면수요가 낮을 것이다. 그렇게 노동력 상품을 근로라는 이름으로 열심히 일한 것을강요할 것이 아니라 시장에 맡겨야 한다. 자본주의자라면 근로라는 단어를 쓸 것이 아니라 노동이란 단어를 쓰고 열심히 일하는 것을 노동자 개인에게 맡기는 대신 노동력 상품의 유연한거래인 노동 유연성을 사회에 요구해야 한다. 노동자가 일하는 것을 근로라고 불러놓고 노동 유연성을 요구하는 것은 모순되어 비논리가 된다. 근로라는 단어가 노동 유연성을 논리적으로 막는 기재가 되고 있다. 노동자 개인의 의지를 무시하는데 노동자 상품을 유연하게 거래하는 노동 유연성이 어떻게 존재할수 있는가? 집단의 이익을 위해 개인의 의지와 무관하게 열심히 일하도록지정해둔 근로라는 단어는 집단주의적이고 개인의 이익을 위해 개인의 의지로 열심히 일하는 것을 결정하게 한 노동이란 단어는 개인주의적이다. 혼용해서는 안 된다. 노동자 자체를 도구로 인식하고 집단의 이익을 위해 노동자를 도구처럼 열심히 쓰다 버리는 것은 논리적이게 될 수는 있으나 그것은 심각한 인권침해다. 개인주의 체제인 사회에서는 그런 인권 침해가 존재해서는안 된다. 이제는 진영 논리와 무관하게 논리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그래야 사회적 합의를 얻을 수 있다. 진영 논리로 용어 사용이 불편하면 그냥 일하는 사람이나 워커라고 부르면 된다. 노동 유연화가 필요하다 말해봐야 이런 기본적인 논리적 모순도 해결하지 못하는 이상 사회적 합의를얻기가 어렵다.

무엇보다 선진국이 된 지금 이제 근로로는 안 된다. 결과가 나와야 한다. 열심히 한다는 수단이 아닌 높은 가치의 상품을 생산한다는 결과가 나와야 한다. 근로로 인해 일은 열심히 하기만 하면 된다는 인식이 나타나 열심히 하지는 않지만 생산성이 높은사람은 천대되고 열심히 하지만 생산성이 낮은 사람은 우대되고 있다. 근로라는 단어는 생산성에 해악을 끼치는 관념을 만들었다.

게임에서 노동과도 같은 작업은 즐거운데 기업에서 노동이 즐겁지 않은 것은 관념과 체제의 차이다. 게임은 대부분 개인주의 관념에 개인주의 체제지만 노동은 개인주의 관념에 집단주의 체제일수도 있고집단주의 관념에 개인주의 체제일수도 있다. 노동은 현재 한국이 겪고 있은 정반대의 옳고 그름인 관념과 체제의 혼란을 그대로 겪고 있는 곳이기에 불필요하게 개인을 불행하게 하여 노동이불행한 경우가 많아 노동을 고통스러운 것으로 여기는 경우가 많다.

 

 

둘째, 여성. 여성 인권 운동은 모든 인간을 대상으로 한 합리적 기준으로이익을 주장해야 인권 운동이 된다. 여성의 인권을 주장할 것이라면 남성과 같은 기준으로 접근해야 한다. 만약 이권이 아닌 인권 운동을 했다면 이치를 통해 합리적이고 공정한 이익을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여성과 남성과 같이 모든 인간을 대상으로 한 합리적 기준은 무엇인가? 바로 인간이다. 여성이나 남성 또는 그 외의 성별을 주장하는 인간도 모두 인간이다. 어떤 성적 특성을 가지고 있든 인간임은 동일하기에 인간이라는 기준으로 인권을 주장해야 한다.

만약 여성이 남성과 같은 인간을 주장했다면 남성의 권리와 의무를 요구했을 것이다. 같은 인간이므로 같은 권리와 의무를 요구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여 여성이 남성과 대등하게 되어 평등하게 권리와 의무를 다했다면 남성은 여성의 인권주장을 인정하고 받아드려 불필요한 분쟁이 많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 남성의 불만은 대부분 권리는 요구하나 의무와 책임은 거부하는 불합리한 태도에 분노하거나 질려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러지 않았다. 남성과 대등한 기준이 아닌 천대 받는 여성의 위치에서 일부 여성 운동을 하는 운동자와 운동 대상의이익만을 요구했다. 그렇기에 단순한 이권 운동에 불과했다. 여성 인권을 주장하는 이들은 여성과 남성을 다른 존재로 규정하고 여성이 이익을 얻을 권리와 남성이이익을 얻을 권리는 다르다 주장하니 그들의 주장은 모든 인간의 권리인 인권이 아닌 여성만의 이익을 얻을 권리인 이권이 되었다. 수많은 여성 단체가 모여 힘을 합쳐 과한 이익을 주장한다. 여성 인권을 주장하는 인간은 여성 집단의 이익을 우선시하고 그러지 않은 인간은 비여성과 같이취급하며 공격했다. 여성 인권 운동 단체는 전형적인 집단주의 체제였다.

집단주의 체제인 여성 인권 운동이 개인주의 체제인 국가와 어울릴 수가 없었다. 일부 여성은 과한 이익을 얻고 일부 여성은 보편적 인권도 보장받지 못한 채 불행하게 살았다. 일부 여성은 그런 이들을 명분으로 여성 인권을 주장하면서 더욱더 본인의 이익을 챙겨갔다. 여성 가족부, 여성 대학, 여성 가산점, 여성 할당제, 여성 주거시설, 여성 주차장, 여성 창업지원, 여성 지하철전용칸, 여성 휴게실, 여성 파우더룸, 여성 캠프장, 여성 도서관 등 많다. 특히 이러한 혜택은 도시 여성과 젊은 여성 위주로 그야말로 단순한 이권일 뿐이었다. 이러한 것을 보고 여성주의를 여성 우월주의로 오해하고는 하는데, 주장의 근거가 우월이 아닌 열등이므로 우월주의가 성립될 수 없다. 장애인이 혜택을 받는다고 그걸 우월하다 여기는 인간이 없듯이 말이다.

기울어진 운동장도 그러한 이권 주장 중 하나다. 여성과 남성이 대등하게 같은 기준으로 평등한 운동장에서 공정한 경쟁을 한 다음 불균형한 결과를평등하게 받아드리자고 주장한 것이 아니라 과거 대등하지 않아 불평등하여 기울어져 있던 운동장에서 불공정한 경쟁을 한 다음 균형적인 결과를 불평등하게받아드리자고 주장하고 있다. 여성 능력 10과 남성 능력 12여도 결과적으로 같은 비율이 될 때까지 여성이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고 주장하며 여성을 고용케한 것이다. 어처구니 없다. 모든 경쟁은 본래 불균형한 것이 정상이다. 여성이든 남성이든 관계없이 결과는 불균형해야 한단 말이다. 어떤 이유가 되었던 균형적이게 되면 경쟁의 승자는 부당한 손해를 보고 경쟁의 패자는 부당한 이익을보면서 불공정한 결과가 나온다. 그럼에도 그들은 여성이 주관적으로 정한 기준에 맞을 때까지 통계를 조작하거나 입맛에 맞는 것만 골라서라도 여성만이 일방적으로 이익을 얻길바라고 있다. 이들의 주장이 이권에 불과한 것은 이러한 기울어진 운동장의대상은 언제나 이익이 될법한 분야에만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 어려운 분야에서는 이러한 주장을 하지 않았다.

여성 인권의 주장은 인권이 아닌 이권이기에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전환한 여성에 대한 부정적 의견이많았다. 가령 여성 대학에서 성전환한 여성의 입학을 거부한다거나말이다. 여성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새롭게 여성이 된 인간을 거부한것이다. 그야말로 단순한 이익 집단이다. 이러한 태도는 다른 국가의 여성주의와 다르게 된다. 다른 국가에서는 성전환한 여성이 여성 대학에 입학했기 때문이다. 본래 여성주의 자체가 여성의 이익만을 위한 주장이기 때문에 각국 여성이 이익이라 여겨지는 것에따라 달라지게 된다.

한국 여성의 입장에서 이익이라 여겨지는 것 중 하나가 바로 가부장제 시대의 여성성을 지키는 것이었다. 그러한 여성성을 지키자는 주장에서 나온 것이 성인지감수성과 성적 대상화와 성 상품화 비판이다. 가부장제 여성성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감수성을 가지자 주장한 것이 성인지감수성이고 그러한여성성에 의해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바라보거나 여성 성 상품화를 잘못되었다 주장한 것이다. 성적 대상화가 성적 도구화라 주장하는데 성적 대상과 성적 도구는 전혀 다르다. 성적 대상은 인간이 인간을 성적으로 여기며 인간이 인간을 사랑한다는 것이고 성적 도구는 인간을도구로 여기는 것이다. 성적 대상으로 본다고 성적 도구화가 되는 것이 아니란 말이다. 반면 모든 인간은 존엄하다는 명제 하에 인간이 아닌 창작물과 인형은 도구화가 되는 것이 정상이다. 합리적 기준도 없이 멋대로 불쾌하다 주장하는 것에 휘둘려서는 안 된다. 그냥 이들은 감정적으로 이익을 주장할 뿐이다. 남성을 성적 대상으로 바라보거나 남성 성 상품화는 잘못되었다 주장하지 않는 것을 떠올려보자. 합리적 기준이 없다. 전형적인 가부장제 여성성을 명제로 그러한 주장을 하고 있다. 현재 신세대 여성이 여성 인권 운동이란 명분으로 이용하는 이타주의의 입장에서 과한 이익을 당연하게 여기면서 감사 마음이 적어지고 성인지감수성이란이름으로 가부장제 여성성을 세뇌 당하여 그런 여성성으로 살아가면서 과한 피해 의식을 갖게 되었다. 해외에서도 이런 여성주의자가 있는 것은 그들도 가부장제 여성성을 지키는 것이 여성의 이익으로여겼기 때문이다.

가부장제의 본질적인 특성을 파악하고 그 특성에 해당하는 것을 모두 비판해야지, 무슨 여성에 이익이 되는 가부장제 특성은 수용하고 손해가 되는 가부장제 특성은 거부하니 제대로될 리가 없다. 여성은 가부장제 여성성에서 벗어나야 한다. 인간이 인간에게 성적 대상이 되는 것이나 성 상품화와 같이 성적인 것은 매우 당연한 것이므로그런 것에 의해 불쾌할 이유가 없다. 탈코르셋도 마찬가지다. 인간이 인간에게 사랑 받기 위해 꾸미는 것은 모든 인간이 행하는 것으로 딱히 여성만 그런 것이 아니다. 여성이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주장했다면 탈코르셋이 나오는 것이 아닌 남녀 모두 서로에게 사랑 받기위해 꾸미자고 주장했을 것이다. 그걸 근거로 다른 여성이 꾸미는 것을 막는 것이 바로 자유권 침해다. 지금 여성 인권 운동은 집단주의 체제기 때문에 여성이 꾸미거나 남성과 가까이 지내는 여성은 공격대상이 되고 있다고 한다. 단순한 이익 집단일 뿐이다. 여성이 아이를 낳아주는 것이라면서 그에 대한 이익을 사회에 요구하기도 하는데, 그 자체가 본인을 아이 낳는 도구로 여기고 있는 것임에도 그걸 이해하지 못하고 이익을 요구하고있다. 애초에 여성 인권에 관심이 없이 여성인 본인의 이익만 주장하고있었기 때문에 그런 태도가 나온다.

이성애와 성을 죄악시하는 풍조에 휘말린 여성들이 이성과 성에 긍정적 인식을 갖지 못하여 꾸미지않고 결혼하지 않는 상황에서, 여성의 이익만을 주장하는 여성주의에 동조하여 그것을 본인의 이익으로 만들기 위해 탈코르셋이나 비혼을 주장하고 있다. 그런 것은 개인의 자유지만 그것을 사회가 권장해서는 안 된다. 그러면 어떻게 사회 구조가 유지될 수가 있는가?

여성 인권은 일부 여성의 트라우마를 정당화하고 일반화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연하는 연상의 장난감이 아니다. 멋대로 신세대 여성에게 본인의 불쾌한 삶을 세뇌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신분제 관념으로 고통 받던 이들이 신분제 관념을 신세대에게 세뇌하는 것이나 장유유서 관념으로고통 받던 이들이 장유유서 관념을 신세대에게 세뇌하여 고통 받게 하는 것과 같이 어리석은 일이다. 본인의 낡은 가치관이 반드시 옳다는 착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인도네시아에서 혼전 성관계를 형벌로 처벌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건 낡은 가치관에 의해 혼전 순결을 지키는 것이 올바르다 여겼기 때문이다. 낡은 가치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개인주의 체제에서 개인의 자유를 중심으로 윤리를 바라봐야 한다. 낡은 가치관보다 개인의 자유를 우선으로 생각하면 그런 낡은 가치관에서 벗어날 수 있다.

성매매 여성에 대한 지원 또한 여성만의 이익과 가부장제 여성성이라는 낡은 가치관이 만든 현상이다. 여성은 성적 수치심이 강하고 의지가 약하므로 성매매는 타인의 강요로만 이루어진다 생각하기 때문이다. 가부장제 여성성으로 현상을 보니 현상의 본질을 볼 수가 없다. 성매매는 본인의 자유 의지라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 노동과 성은 착취가 일어나지 않도록 본인의 노동력 임대 상품과 성 임대 상품을 반드시 본인이소유하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노동력 상품과 성 상품은 거래되어도 좋다. 성매매를 부정적으로 본다면 논리적으로 노동매매도 부정적으로 바라봐야 한다. 물론 그럴 수가 없다. 성매매를 부정적으로 바라본 것은 여성을 집단과 남성의 도구로 여겼던 가부장제 여성성 때문이다. 자유주의 여성성이라면 개인의 자유이므로 부정적으로 볼 이유가 없다. 여성 개인의 매도 의지를 무시하는 것이 여성 인권으로 이어질 수가 없다. 성에 관련된 범죄는 개인의 자유권을 침해하는 것이 아니라면 성립되지 않는다. 개인의 자유권을 침해하지 않음에도 성매매를 죄로 여기는 것은 가부장제 여성성으로 나타난 잘못된성관념에 의한 것이다. 성이 매매되면서 성 매도자는 수익을 얻어서 좋고 성 매수자는쾌락을 얻어서 좋다. 서로 공정한 거래를 했다면 막는 것보다 허용하는 것이 사회적공익이 크다. 개인주의 체제에서는 개인의 권리가 가장 크기에 사회와 체제구조 유지에 나쁜 영향을 끼치기는커녕 좋은 영향을 끼치는 성매매는 허용하는 것이 합당하다 할 수 있다.

임산부와 여성은 다른 존재다. 임산부에게 특별한 복지가 제공되는 것은 타당하나 여성이 임신할 가능성이 있는 것만으로 남성보다많은 복지를 받는 것은 부당하다. 임산은 출산이 실현되어 육아를 할 때 사회에 이로운 것이지 실현 가능성만으로 사회에 이로운 것은 아니다. 그런 관점에서 만약 여성 징병을 하게 된다면 임산부는 면제되고 나머지 여성은 징병되어야 할 것이다. 이런 제도가 여성에게 임신을 강요하는 것과 같다고 착각할 수 있어 말해둔다. 만약 남성이 임신할 수 있다면 남성 또한 면제되는 것이 마땅하다. 단지 현재 일반적으로 여성만 가능하니까 여성 임산부만 면제될 뿐이다. 임산부의 징병 면제는 남녀 차별이 아니라 사회를 이롭게 한 임산부 특혜다. 임신할 수 있는 여성은 그 특혜로 임신을 강요당하는 것이 아니라 특혜를 얻을 수 있는 선택지가있는 것뿐이다. 남성도 산업 기능 요원으로 병역 대체가 가능한데 그것이있다 하여 모든 남성에게 산업 기능 요원을 강요하는 것이 아닌 것과 같다. 일부 여성이 어떤 형태로든 조금이라도 손해를 볼 것 같으면 여성 차별이나 혐오라 말하며 비논리적인주장을 하는데, 그런 주장을 할 수도 있으나 다른 사람들은 비논리적인 주장을수용해서는 안 된다. 그런 것을 수용하니까 국민에 의한 권력 남용이 발생하는것이다. 

생리와 출산에 대한 혜택은 명백한 여성 이권이다. 남성과 공통적인 기준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생리와 출산은 종을 유지하는데 현재 필수적인 것으로 그런 혜택은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이권이다. 그런 이권을 존중할 필요가 있다. 그런 관점에서 군 복무 또한 마찬가지다. 본래 같은 국민으로서 여성 또한 군복무를 해야 마땅하지만 현재로서는 남성만 하고 있음으로 군복무혜택은 이권이 된다. 그러나 국가 유지를 위해 군복무는 대부분 필수이므로 사회에도움이 되는 이권이다. 그런 경우에는 그런 이권을 존중할 필요가 있다. 군 복무 가산점은 실제 능력과 무관한 평가 기준에 해당하기에 그것은 부당하나 군복무에 대한 혜택, 즉 금전적 혜택이나 교통이나 세금 할인 등의 혜택은 타당하다. 인권과 이권을 구분하고,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이권과 그렇지 않은 이권을 구분하고, 그렇지 않은 이권 중에서 타당한가 타당하지 않은가를 구분하는 등 분류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인권 운동 자체가 대부분 운동자 본인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인간상을 실현하기 위한 활동이지 실제로합리적 기준을 통한 대상을 위한 인권 운동이 아니다. 그렇기에 가부장제 인간상에 맞는 수동적이고 의지가 약한 여성성에 맞춰 여성의 징병을 금지하고 여성의 야근을 막자는 여성 차별적인 주장을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여성 차별적 주장이 여성에게 이익이 될 수 있다는이유 하나로 여성주의자가 동조하기도 하고 있으니 황당하기 짝이 없다. 여성을 장애인 취급을 해도 이익이 되면 그게 여성의 인권이라 주장하거나 차별이라 반대하지 않는 실정이다. 참담하다.

일상 속에서 친근한 피부를 가진 이들을 우대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을 천대한 이들은 인종 차별주의자로낙인 찍혀 그런 낡은 관념에서 벗어나고자 노력했다 역사 속에서 오랫동안 가부장제에서 살며 남성을 우대하고 여성을 천대한 이들은 성별 차별주의자로낙인 찍혀 그런 낡은 관념에서 벗어나고자 노력했다. 이제는 여성 인권을 주장하는 이들도 가부장제 여성성이라는 낡은 관념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여성성과 합리적 이익을 추구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셋째, 아동. 아동 인권 운동은 모든 인간을 대상으로 한 합리적 기준으로이익을 주장해야 인권 운동이 된다. [아동_법률은 아동 복지법에서, 18세 미만의 사람을 이르는 말을 뜻한다.] 미성년의 인권을 주장할 것이라면 성년과 같은 기준으로 접근해야 한다. 만약 이권이 아닌 인권 운동을 했다면 이치를 통해 합리적이고 공정한 이익을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미성년과 성년과 같이 모든 인간을 대상으로 한 합리적 기준은 무엇인가? 바로 지성인이다. 미성년은 성년과 같은 사리 분별이 성장 시기마다 점점 가능해진다. 지성을 기준으로 가능해지는 시기에 따라 권리와 의무가 주어지면 평등해질 수 있다. 그렇게 미성년이 성년과 대등한 인간이 되었다면 미성년이 대응할 수 있는 것에 과도한 간섭을 하는것으로 권리를 침해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지금 미성년에 대한 인권 침해는 합리적 기준 없이 장유유서를 근거로 미성년을 어리석게 여기고 권리를 빼앗고 보호만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있다. 미성년이 대응 가능한 것을 보호하겠다며 통제하는 것은 지배에불과하다. 아동 인권은 지성인이라는 기준으로 인권을 주장해야 한다.

만약 미성년이 성년과 같은 지성인이라 여겼다면 사리 분별이 가능해지는 시기에 따라 권리와 의무를주었을 것이다. 그렇게 하여 미성년과 성년이 대등하게 되어 지성에 따라평등하게 권리와 의무를 다했다면 미성년은 바르게 성장하여 사회적 혼란을 일으키지 않아 성년과 마찰이 적었을 것이다. 세 가지 권리로 접근해보자.

 

첫째, 식사. 아기 시기에는 식사를 가리기가 어렵기에 식사에 대한 자유권을침해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식사를 가릴 수 있게 되는 초등학교 저학년만 되도식사에 대한 자유권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 먹기 싫은 음식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미성년의 미각과 성년의 미각에 차이가 있어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는데 미성년은 감각이 예민하여 쓴 맛이나 매운 맛 등을 강하게 느끼기에강한 맛을 받아드리기 어려울 수 있다. 미성년이 성년이 되면 못 먹던 음식도 감각이 바뀌면서 자연스럽게 먹을 수 있게 된다. 되려 못 먹는 음식을 강요하면 불쾌한 기억이 새겨져 커서도 못 먹게 될 뿐이다. 필수 영양분을 고려하여 부족한 영양분은 영양제로 보충하면 된다. 인류는 그만한 의학 지식을 갖추고 있다. 미성년과 성년의 감각 차이를 이해해야 한다. 채식주의 강요는 이보다 더한 자유권 침해로 아동 학대에 해당한다.

 

둘째, 성. 초등학교 저학년 시기에는 성기능이 작동하지 않아 성에 대한자유권을 침해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성기능이 작동하게 되는 2차 성징이 시작하는 초등학교 고학년에서 중학생 저학년부터는 성에 대한 자유권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 성기능이 작동하는데 그것을 다룰 권리를 주지 않는 것은 단순한 지배에 불과하며 인권 침해에 해당한다. 성기능이 작동하는 모든 일반 미성년에게 성적 자기결정권을 주는 것이 바로 아동 인권이다. 본인이 본인의 자유 의지로 선택할 수 있게 하고 그에 따른 충분한 성교육을 하면 된다. N번방 사건을 근거로 아동이 사리 분별이 불가능하다면서 모든 중학생에게 성년과의 성관계에 대한성적 자기결정권을 빼앗았는데, 일부 사건을 근거로 모든 중학생을 일반화하여 그런 식으로 권리를 빼앗는 것은 심각한 인권 침해에 해당한다. 아동의 권리는 성인의 도덕적 만족감을 위해서 침해되어야 할 권리가 아니다. N번방 방지법은 물론이고 가부장제 아동상을 근거로 만들어진 아동 청소년 보호법도 아동의 권리를침해하고 아동에게 잘못된 성관념을 주입하는 악법에 해당한다. 사회, 관념, 체제, 유지, 종 등 아무것도 고려하지 않고 그냥 낡은 성관념 하나에매달려 아동에게 잘못된 성관념을 주입해서는 안 된다. 아동은 성에 친숙해져야 한다. 그래야 자연스럽게 이성과 연애하고 결혼하고 출산하면서 사회 구조를 유지한다. 인간은 성기능이 작동할 때부터 적극적으로 성을 접하고 성관계를 맺어야 한다. 그것이 개인주의 체제에서 개인의 권리를 보장하는 사회에서의 올바른 성관념이다.

 

셋째, 선거. 초등학교 저학년 시기와 같이 사춘기 전에는 자아 형성이마무리 되지 않아 선거에 대한 권리를 침해하게 된다. 그러나 사회와 사회 계약을 시작해야 할 초등학교 고학년이나 중학생부터는 선거에 대한 주권을 침해할 이유가 없다. 최소한 중학생부터 교육 관련 선거는 해야 한다. 본인과 직접적 관련이 있는 교육감 선거를 중학생과 고등학생이 선거권을 행사할 수 없는 것 자체가비정상적이다. 선거권이 주어지지 않는 까닭이 학생의 지식이나 지능에 의해정당한 권리 행사가 어렵다 말할 것이라면 논리적으로 저학력이나 지적 장애도 선거할 권리가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중학생이 선거를 못하는 것은 비논리적이다. 설령 중학생과 고등학생 중에 어리석은 학생이 있다 하더라도 선거권은 주어져야 한다. 민주주의는 모든 인간에게 주권이 있는 것이므로 주권을 근거로 한 선거권은 현명함과 어리석음은관계 없다. 민주주의는 주어진 권력을 남용하지 않으면 된다. 주관적 기준으로 합리적 기준을 깨면 체제가 쓰레기가 된다. 모든 인간에게 주권이 있다는 것을 전제하여 모든 인간이 선거를 하면 좋겠지만 아기에게 투표를바라는 것은 어려우므로 모든 인간이 아닌 가능한 많은 인간이 선거권을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사춘기인 14살 정도에 사회 계약을 맺고, 사회 계약을 맺은 모든 인간에게 선거권이 있다는 것을 선거권의 합리적 기준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러지 않았다. 성년과 대등한 기준이 아닌 천대 받는 미성년의 위치에서 일부 아동 인권 운동을 하는 운동자의인식에 맞는 아동의 권리만 주장했다. 그렇기에 단순한 이권 운동에 불과했다. 아동 인권 운동은 보다 더 심각한 것이 아동이 아닌 인간이 아동의 인권을 주장하면서 이익을 얻기 때문이다. 여성 중학생들이 어떤 남성 교사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거짓말로 한 것에 의해 남성 교사가 자살한사건이 있다. 여학생들은 해당 교사가 야간 자습 시간에 중학생 1학년만 귀가시켰다 오해하며 부당한 손해를 보고 있다고 여기면서 그에 대한 불만으로 거짓 진술서를쓴 것이다. 그것이 경찰서에 신고 접수되었고, 경찰서에서 여학생 모두가 성추행이 없었다고 진술하는 것으로 진술을 번복하여 경찰에서는 혐의 없음으로종결했다. 그러나 해당 학교 지역 교육청 학생 인권 센터에서는 혐의없음이 확인되었어도 해당 교사에 대한 징계를 강행했다. 인권 센터의 조사를 받은 해당 교사는, 혐의가 없었다면 여학생들이 거짓을 한 것이므로 여학생들이 처벌 받을 수 있다는 인권 센터의 협박에 의해 혐의를 인정하게 되었다. 해당 교사는 여학생들의 진술로 결백이 증명될 거라 기대했지만 2차 가해를 명분으로 여학생을 조사하지 않고 해당 교사에 대한 감시를 강화하겠다는 일방적인 연락을받고 결백을 증명할 방법이 없게 되자 충격을 받고 자살했다. 이 과정에서 여학생들은 일관적으로 해당 교사가 무고하다며 탄원서를 작성하여 보냈으나 인권 센터는 여학생들의 의견을 모두 무시했다. 학생 인권 센터에서 학생의 의견을 무시했다는 것이다. 얼마나 미성년을 머저리로 보면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가? 애초에 지금 미성년 인권은 대부분 미성년의 인권이 아닌 성년의 주관적인 가치관에 부합하는 미성년으로만들기 위한 이권 주장에 불과하다. 경제 성장과 윤리의 상관관계에 따라 경제가 성장하면서 더욱 더 본인이 생각하는 아동상을 아동 인권을 명분으로 아동에게 세뇌하고 사회에 강요하면서아동의 권리는 보다 더 침해되고 있는 상황이다.

아동 인권을 주장한 이들이 아동이 인간으로서의 보편적 권리를 주장한 것이 아니라 본인의 가치관에맞는 아동을 만들기 위한 주장을 하는 바람에 아동은 정당한 권리를 침해 당하면서 보호라는 이름의 지배를 받고 있다. 권리를 침해 당한 아동은 음식을 고를 자유나 성적 자기결정권이나 선거권과 같은 기본적인 권리도주어지지 않고 온갖 감시와 검열 속에서 불행하게 살아가고 있다. 권리를 침해 당한 아동은 보호자의 소유물과 같았다. 차별을 윤리로 만든 장유유서를 근거로 연상인 성년이 연하인 미성년을 지배하고 수기치인을 근거로 맹목적을 교육열을 가지고 아동에게 학습을강요하는 것으로 아동을 죽음으로 몰고 가기도 하고 성 죄악시로 나타난 정조 관념을 근거로 모든 성에 관련된 정보를 막아 아동이 성 지식을 갖지못하거나 성 문화를 즐기지 못하면서 성을 부정적으로 여기게 만든 것으로 성과 연애와 결혼과 출산 등을 무의식적으로 꺼려하게 만들었다. 아동은 보호자의 소유물과도 같았기에 보호자의 마음에 따라 쉽게 살해당하기도 하고 가장이 주도한가족의 집단 자살에 강제로 동참되기도 했다. 그런 것을 본인이 죽은 뒤 아동의 불행을 걱정해서라는 궤변으로 합리화하고 있으나 그것이야말로 아동을 소유물로 여긴 것과 다르지 않았다. 그런 선택은 아동이 스스로 결정해야 하고 그럴 수 있을 정도로 교육해야 한다. 이런 집단 자살 강제 동참은 임금이나 귀족이 죽었을 때 살아있는 아내나 신하나 종을 함께 장사지내는 순장과 다를 바 없을 정도로 미개하다. 그런 미개하기 짝이 없는 행동을 만든 낡은 가치관을 근거로 아동의 권리를 주장하고 있으니 아동의 권리가 심각하게 침해 당하고 있다. 더 이상 아동을 지배해서는 안 된다.

일부 아동은 과한 보호를 악용하여 학교 붕괴를 유도하거나 폭력을 휘두르고 있음에도 마땅한 대처도못하고 있다. 초등학생 고학년과 중학생이 사리 분별이 불가능할 정도로어리석어 심신 미약과 비슷하다며 성적 자기결정권을 주지 않아놓고 그런 이들을 과하게 처벌하자는 주장은 비논리가 되어 논리적인 대응 자체가 어렵다. 만약 이들의 범죄를 지금보다 과하게 처벌하면 범죄를 저지를 수 있을 정도로 사리 분별이 가능하다는논리가 되어 성적 자기결정권을 빼앗을 근거가 사라지게 된다. 그러면 그것은 단순한 아동의 권리 침해에 해당하게 된다. 그렇기에 대처를 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교육을 통해 아동이 사리 분별이 가능하게 하는 것으로 성적 자기결정권을 얻고 사회적 의무에 해당하는 범법에 따른 처벌도 수용하게하면 된다.

촉법소년의 범죄가 심각해지면서 많은 사람들은 아동이 과거보다 빠르게 성장했기에 변별력이 커졌으므로촉법소년법 대상의 연령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인권 위원회는 아동이 과거보다 빠르게 성장했다 하더라도 변별력이 커졌다는 과학적 근거는 없다고 반론했다. 분명 아동의 성장이 빨라져 변별력이 커진 것은 아니므로 타당한 반론이다. 그러나 아동의 성장이 빨라져 변별력이 커진 것이 아니라 아동이 접하는 정보양이 늘어나서 변별력이커졌다. 과거와 달리 인터넷이 있어 아동이 접하는 정보양이 엄청나게늘어남에 따라 과거와 다르게 변별력이 커진 것이다. 미성년이 성년보다 바둑을 잘 둘 수 있다. 본래 아동은 어리석지 않다. 아동이 어리석다는 선입견은 지금까지 아동에게 가는 정보를 통제하여 미숙하게 자라게 했기 때문이다. 성인도 정보 통제를 당하면 변별력을 키울 수 없어 사리 분별이 어려워 쉽게 이용당할 수 있다. 사실상 사춘기 무렵의 미성년과 성년의 지성은 지식과 경험 외엔 거의 차이가 없다. 그러다가 인터넷으로 정보 통제를 할 수 없게 되자 정상적으로 성장하면서 미숙했던 과거와 다른정상적인 변별력을 갖추게 됨에 따라 과거보다 변별력이 커진 것이다. 그런데 체계적으로 정보를 수집한 것이 아닌 인터넷으로 무작위로 정보를 수집함에 따라 충동적이고 제멋대로 성장하여 곧잘 범죄에 빠지게 되었다. 아동이 수집하는 정보양의 증가했음에도 교육 기관에서 정보 통제 받은 아동을 기준으로 교육했기때문에 그런 체계적이지 못한 성장을 하게 된 것이다.

본래 교육 대상이 바뀌면 교육도 바뀌어야 하는데 아동이 어리석다는 선입견으로 정보 통제를 전제를한 교육을 하면서 아동이 미숙하길 바라니 인터넷을 통해 삐뚤어진 성숙이 일어나기도 하는 것이다. 낡은 가치관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이런 현상이 나온다. 얼마나 시대 변화에 둔감한 것인가?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면 도태되는 것이 자연의 법칙이다. 교육도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 초등학교 고학년과 중학교 저학년과 같은 사춘기 시기를 겪는 아동에게 사회 계약을 통해 사회에대한 전반적인 권리와 의무를 이해하게 해야 한다. 그래야 삐뚤어진 성숙을 막을 수 있다. 그와 동시에 1년 빠르게 입학하는 학제 개편도 고려해 볼만 하다. 다수는 아동을 어리석게만 보고 1년 빠르게 입학하면 적응하기 어려울 것이라 말하는데, 지금도 초등학교 1학년은 유치원생과 다르지 않는 교육 과정을 겪고 있다. 빠르게 입학하면 빠르게 입학한대로 그 학생에 맞춰 교육하면 된다. 1년 빠르게 입학하면서 유치원 인구수 감소에 의한 손해로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면 반대할 이유가없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학생의 자유권이다. 지금 대부분 학생은 쉴새 없이 수능을 목적으로 공부만 하다가 성년을 맞이한다. 본인 자아에 대한 탐구, 개인과 사회에 대한 관계, 인간의 권리와 의무 등을 생각할 시간도 없다. 그냥 기계적으로 공부만 하다 성년이 되면서도 인터넷에 의해 무작위로 성숙하게 되니 삐뚤어진 결과가나오는 일이 많다. 그런 상황에서 만약 1년 빠르게 입학하면 1년 휴학을 하더라도 종전과 같은 시기에 졸업할 수 있다. 인간은 본인을 기준으로 바라본다. 동일한 시기에 졸업하면 1년 빠르게 입학한 뒤에 1년 휴학을 하더라도 본인과 동일한 시기에 졸업을 했다고 여기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새로운 학생들은 1년 휴학을 해도 지장이 없는 사회적 풍토가 마련되면서 쉴새 없이 공부만 하는 학생이 중간에 본인을위한 시간을 가질 수가 있다. 특히 사람은 개인마다 성장 시기가 다르고 호기심이 생기거나 학구열이 생기는 시기가 다를 수가 있다. 사람마다 개성이 다른데 같은 시기에 입학하여 같은 시기에 졸업하는 것이 당연한 풍조야말로 잘못된것이었다. 휴학이 자유롭다면 학생이 학생 본인에 맞춘 교육을 선택할수 있게 된다. 가령 중학교 교육은 쉽게 따라가나 고등학교 교육에서 정체된학생이 있을 수 있다. 그러면 휴학을 통해 본인을 성장시키고 교육을 따라갈 수있는 힘을 길러 다시 교육을 받는 선택을 본인이 할 수 있게 된다. 학교의 집단 괴롭힘도 마찬가지다. 1년 휴학이 자유로운 풍조가 되면 휴학하면서 본인이 성장할 여유를 가지고 다시 교육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사춘기 시기 어떤 사건으로 세상에 절망하여 자포자기하는 학생이 있다면 1년 정도 휴학을 하고 세상을 돌아다니며 세상을 접한다면 절망에서 벗어나 학업에 열중하게 될 동기를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학습 동기를 찾으면 자발적으로 학습을 할 수 있게될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1년 빨리 입학하는 학제 개편은 학생들에게 1년을 자유롭게 보낼 수 있는 비장의 카드를 줄 수 있다. 그렇게 하여 빠르게 성장하는 것으로 자유 의지를 가지고 개인의 의사로 살아가며 권리와 의무를추구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단순히 빨리 입학하면 학생들이 적응하기 어렵지 않을까 생각하며 학제 개편에 반대하는 것은 고정 관념에 얽매여 학생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았기때문이다.

 

 

일반적인 인권 운동은 이권 운동이나 마찬가지였기에 운동자가 생각하는 이익만을 주장하면서도 인권을명분으로 그에 대한 근거도 제대로 제시하지 않으면서 이익을 얻고 있다. 세계 인권 선언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인권의 범위가 굉장히 포괄적이고 모호하다. 그것을 이용하여 이권 또한 인권으로 포장하여 강제적으로 이익을 얻으면서 상황에 따라 개인의 권리를부당하게 침해하고 있다. 인권과 이권에는 강제력의 차이가 있음에도 이권을 인권으로여기며 일부 여론과 권력자가 그걸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바람에 불합리한 사회가 되어 버렸다. 현재 이런 문제는 자유롭게 권리를 주장한 측이 아니라 무비판적으로 수용한 측이 만들었다 봐야한다. 개인주의 체제에서 모든 개인은 자유롭게 주장할 권리가 있으나그런 것은 인권인가 이권인가 구분하고 이권의 경우 타당해야만 수용되게 되는데, 인권이란 명분에 현혹된 이들이 무비판적으로 수용해버리는 바람에 이권이 인권과 같이 강제로 수용되는것과 같은 현상이 나타나면서 이권에 의한 불합리한 사회가 된 것이기 때문이다.

다양한 이권 운동 중에 특히 대상을 차별하던 가부장제 시대의 인간상을 근거로 인권을 주장하면서이익을 얻는 것은 너무나도 천박하다. 노동자와 여성과 아동을 차별하던 관념을 가지고 대상의 인권을 주장하는 것은 더 이상 보기 힘들 정도다. 인권 운동이 이권 운동에 불과했기에 사회 문제는 해결하지 못하면서도 부당한 이익 요구로 사회문제는 더욱 더 늘리고 있을 뿐이다.

인권은 절대 권력이 아니다. 요즘 인권으로 사회 문제가 발생하는 것은 인권의 탈을 쓴 이권이 권력을 남용하면서 이익을 얻으면서도인권을 명분으로 그에 대한 견제를 받지 않기 때문이다. 이권을 인권이라 말하며 무비판적 수용을 통해 이익을 강제하는 것이야말로 권력 남용에 해당하게 된다. 강제인 이상 권력이고 부당한 이상 권력 남용이다. 논리적인 비판을 하면 혐오라거나 감수성이 부족하다느니 비논리적인 대응을 하며 무비판적인 수용만강요하고 있다. 이제 모두 올바른 인권 운동을 해야 한다.

노동자는 자본가와 같은 상인이 되어 차별적인 종속이 아닌 평등한 상거래를 하는 것이 인권이고여성은 남성과 같은 인간이 되어 사회 진출과 기회의 평등을 누리고 병역의 의무를 다하는 것이 인권이고 아동인 미성년은 성년과 같은 지성인으로 사리분별이나 육체적 기능이 작동하는 시기에 권리를 갖고 그에 따른 의무를 지는 것이 인권이다. 노동자는 자본가에게 종속되지 않아 노동 안정이 되지 않는 것이 막심한 손해처럼 느껴질 수 있는데본래 그것이 노동자와 자본가가 평등할 수 있는 바른길이고, 여성이 남성과 같은 병역 의무를 다하는 것이 막심한 손해처럼 느껴질 수 있는데 본래 그것이 평등으로 여성에게 총기 사용법을 익혀 무력을얻고 살아남는 기술을 습득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바른길이고, 미성년이 성년과 같은 의무를 다하는 것이 막심한 손해처럼 느껴질 수 있는데 본래 그것이 미성년과 성년이 최대한 평등할 수 있으며 아동의건전한 성장으로 현명한 인간이 되게 하는 바른길이다. 무엇이 인권인지 심사숙고하길 바라겠다.

 

 

인권 운동이 올바른 인권 운동이 되거나 부당한 이권 운동을 비판하기 위해서는 객관적이고 논리적인의견이 필요하다. 객관과 논리에 대해 알아보겠다.

[객관은 자기와의 관계에서 벗어나 제삼자의 입장에서 사물을보거나 생각함을 뜻한다.] 보통 객관은 제삼자의 선입견과 편견이 없는 일반적인 의견을뜻하나 실상 제삼자라 하더라도 각자 의견이 다를 수 있기 때문에 일반 의견이 되기 위해서는 제삼자의 공통 인식이라 하는 것이 알맞다. 현재 사전적 정의는 제삼자라면 모든 인간이 비슷한 의견을 가질 것이라는 집단주의 관념으로 나타난인식일 뿐이다. 객관은 제삼자의 공통 인식이므로 모든 주관이 객관이 아닌것은 아니다. 어떤 개인의 주관적 의견이 제삼자의 공통 인식이 될 수있을 정도로 논리적이라면 그 의견 또한 객관적이라 할 수 있다. 객관은 제삼자의 공통 인식이기에 공통 인식이 되기 쉬운 숫자야말로 보통 객관적이고 숫자를 활용한 통계 또한 객관적일 수 있다. 그렇기에 그걸 이용한 통계를 자주 쓰는데, 통계를 왜곡할 수 있으므로 맹신할 수는 없다. 특히 특정 답을 미리 내놓고 거기에 맞춰 해석할 때 위험하다 할 수 있다.

객관은 제삼자의 공통 인식일 뿐이지 진리는 아니다. [진리는 참된 이치. 또는 참된 도리를 뜻한다. 진리_철학1는 명제가 사실에 정확하게 들어맞음을 뜻한다. 또는 논리의 법칙에 모순되지 아니하는 바른 판단. 형식적 의미로 사유의 법칙에 맞는다는 의미에서의 사고의 정당함을 의미한다. 진리_철학2는 언제 어디서나 누구든지 승인할 수 있는 보편적인 법칙이나사실을 뜻한다.] 진리는 현상 자체인 일반 진리와 학문에서 통용되는 학문진리로 구분하는데 보통 진리_철학1에 해당하는 것이 인문 계열의 학문적 진리고 진리_철학2에 해당하는 것이 자연 계열의 학문적 진리다. 인문 계열의 학문적 진리는 논리를 통해 접근할 수 있다.

[논리는 말이나 글에서 사고나 추리 따위를 이치에 맞게 이끌어가는과정이나 원리를 뜻한다.][이치는 사물의 정당한 조리를 뜻한다. 또는 도리에 맞는 취지.][합리는 이론이나 이치에 합당함을 뜻한다.] 즉 논리를 통해 이치에 도달하면 합리적이게 된다. 논리적이라는 것은 이치에 도달할 수 있다고 여겨지는 것이고 합리적이라는 것은 이치에 합당하다는것이다. 이치를 알면 논리적이고 합리적일 수 있다.

이치는 본질부터 시작한다. [본질1은 본디부터 가지고 있는 사물 자체의 성질이나 모습을 뜻한다. 본질2은 사물이나 현상을 성립시키는 근본적인 성질을 뜻한다.]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 이치에 도달하기 위한 첫걸음이다. 본질을 보기 위해서는 관점·관념·감각과 같이 인식의 차이를 파악하여 다양한 인식을 모으는 것이필요할 것이다. 본질을 잘못 보고 논리를 펴봐야 아무런 의미가 없다. 전제 자체가 잘못되었는데 어떻게 이치에 도달하는가?

이치는 사전적 정의를 기준으로 풀어나가 보겠다. [정당하다는 이치에 맞아 올바르고 마땅함을 뜻한다.][조리는 말이나 글 또는 일이나 행동에서 앞뒤가 들어맞고 체계가 서는 갈피를 뜻한다.][도리는 사람이 어떤 입장에서 마땅히 행하여야 할 바른길을 뜻한다.][취지는 어떤 일의 근본이 되는 목적이나 긴요한 뜻을 뜻한다.] 언어의 특성상 외래어가 많아 어원도 모르고 단어와 설명이 서로를 지칭하거나 정확한 의미를 내포하지않는 일도 있어 혼잡하다. 사회의 객관적 기준이라 할 수 있는 사전의 혼잡은 사회의 객관 상실로 이어질 수 있으므로 사전만 봐도 직관적으로 의미를 알 수 있도록 정리해야할 것이다.

조리를 알아보자. 앞뒤가 들어맞는다는 것은 모순을 말한다. [모순은 어떤 사실의 앞뒤, 또는 두 사실이 이치상 어긋나서 서로 맞지 않음을 이르는 말. 중국 초나라의 상인이 창과 방패를 팔면서 창은 어떤 방패로도 막지 못하는 창이라 하고 방패를 어떤 창으로도 뚫지 못하는 방패라 하여, 앞뒤가 맞지 않은 말을 하였다는 데서 유래한다.][체계는 일정한 원리에 따라서 낱낱의 부분이 짜임새 있게 조직되어 통일된 전체를 뜻한다.][갈피는 일이나 사물의 갈래가 구별되는 어름을 뜻한다.] 갈피는 갈피를 잡다 또는 갈피를 잡지 못하다 같이 낱낱을 구별하여 파악하는 것을 말한다. 정리하면 조리는 말이나 글 또는 일이나 행동에서 모순이 없는 일정한 원리에 따라서 낱낱의 부분짜임새 있게 조직되어 통일된 전체를 낱낱이 구별하여 파악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거기에 올바르고 마땅함을 의미하는 정당함을 붙이면 이치가 된다.

도리를 알아보자. [바른길은 정당한 길 또는 참된 도리인 것을 뜻한다.] [바르다1는 말이나 행동 따위가 사회적인 규범이나 사리에 어긋나지아니하고 들어맞음을 뜻한다. 바르다2는 사실과 어긋남 없음을 뜻한다.] [길은 사람이 삶을 살아가거나 사회가 발전해 가는 데에 지향하는 방향, 지침, 목적이나 전문 분야를 뜻한다.] [참되다는 진실하고 올바름을 뜻한다.] [참_철학은 이치 논리에서, 진릿값의 하나. 명제가 진리인 것을 이른다.] 규범이나 올바름은 생존이라는 보편 윤리 외에는 체제마다 기준이 달라지는 것과 같이 달라질 수 있으므로 체제를 기준으로 접근해야 한다. 가령 개인주의 체제를 기준으로 한다면 개인의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 체제에 이로워 규범이나 올바르다할 수 있다. 참은 진리를 말한다. 정리하면 말이나 행동 따위를 사회와 체제의 기준에 이롭고 사실이나 진리에 어긋나지 않고 진실되게사람의 삶을 살아가거나 사회가 발전해야 하는 것을 말한다. 거기에 어떤 일의 근본이 되는 목적이나 긴요한 뜻을 말하는 취지를 붙이면 이치가 된다.

조리와 도리를 풀어 하나로 합치면 이치는 모순이 없고 체계적으로 파악할 수 있으며 특정 기준에이로운 사실이나 진리라 말할 수 있다. 모순이 없고 체계적으로 파악한다는 것은 이치의 모양을 의미하고 특정 기준에 이로운 사실이나 진리는 이치의 내용을 말한다. 이 이치로 논리를 정리해보자. 논리는 말이나 글에서 사고나 추리 따위를 모순이 없고 체계적으로 파악할 수 있으며 특정 기준에이로운 사실이나 진리로 이끌어가는 과정이나 원리를 말한다. 이것으로 논리를 알아보자.

 

하나, 모순이 없어야 논리다. 어떤 주장에 있어 모순이 발생하면 비논리가 된다. 가령 모든 인간은 존엄하다고 해놓고 특정 인간은 존엄하지 않다고 주장하면 모순되어 비논리가 된다.

둘, 체계적으로 파악할 수 있어야 논리다. 체계적이지 않는 주장은 비논리가 된다. 또한 쉽게 쓸 수 있음에도 일부로 복잡한 용어를 써서 체계적으로 파악하기 어렵게 한다면 비논리가 될 수 있다.

셋, 논점 이탈하지 않아야 논리다. 토론을 할 때 토론 목적과 어긋나는 논점을 이탈하는 것은 토론 참여자에 해로우므로 비논리가 된다. 가령 인신공격은 토론 목적과 괴리되어 토론 참여자에 해로우므로 비논리가 된다.

넷, 가치중립적인 올바름이 논리다. 보편적으로 나쁜 논의라 하더라도 토론 참여자에게 이로울 경우 특정 기준에 이로우므로 논리가 될 수 있다.

다섯, 대상의 이익을 보장해야 논리다. 대중을 대상으로 한다면 대중의 특정 기준에 부합하여 이익을 보장해야 논리가 된다. 인간의 이익을 전제하는 인본주의적인 주장이 보통 논리라 할 수 있고 인간의 이익을 전제하지 않는인본주의적이지 않는 주장이 보통 비논리라 할 수 있다.

여섯, 사실이어야만 논리다. 거짓은 궤변으로 비논리다.

일곱, 과학적 증명이 된 학문적 진리는 논리다. 과학적으로 증명된 학문적 진리는 논리가 되고 증명되지 못한 미신은 비논리가 된다. 선풍기를 틀고 자면 죽는다거나 여성은 정조를 지켜야 한다거나 남녀는 칠 세부터 떨어져 있어야한다거나 하는 주장은 명확한 미신이나 미신과 다를 바 없는 낡은 관념은 비논리다.

 

논리는 알고 있는 것뿐만 아니라 알지 못하는 것도 추론을 통해 논리적으로 접근할 수 있다. [추론_철학은 어떠한 판단을 근거로 삼아 다른 판단을 이끌어 냄을 뜻한다.] 추론 방법에는 현상을 종합해 결론을 내는 귀납법이나 이론을 토대로 현상에 대한 결론을 내는 연역법또는 대전제, 소전제, 결론으로 이어지는 삼단논법 등 다양하다. 형식이 있는 형식적 추론에만 얽매이면 논리가 경색될 수 있고 형식이 없는 비형식적 추론을 하다보면 논리가 비약될 수 있다. 추론에 추론을 거치다 보면 추론의 근거가 진리가 아니게 될 수 있는데 추론의 근간인 추론에 진리가 있다면 진리가 될 수도 있다.

비논리는 감성적 비논리와 이성적 비논리로 나뉜다. 감성적 비논리는 감정에 눈이 흐려지거나 흥분하거나 술에 취했을 때와 같이 사리 분별이 어려운상황을 일컫는다. 관념에 대한 이해로 접근하면 육체의 행동 준비에 자아가저항하지 못한 상황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성적 비논리는 지식과 지혜가 부족하여 비논리적 주장을 하거나 지식과 지혜가 있어도 고정 관념에 영향을 받아 비논리적인 주장을 할 때를일컫는다.

논리는 논리와 논리가 충돌할 때 우선순위가 있는데 보통 특정 기준에 이로운 과학의 학문적 진리가우선된다. 그 외는 상황마다 다를 수 있다.

 

논리 안에 살고 있는 사람은 논리에 살고 논리에 죽어야 한다. 설령 본인 관념에 반하는 것이 있더라도 논리가 맞는다고 가리키면 그것은 맞는다고 판단해야 한다. 개개인의 도덕관념이나 사리사욕이나 이해관계보다 논리가 우선된다. 이치에 맞느냐 맞지 않느냐가 중요하다. 내가 지금 이런 주장을 할 수 있는 것도 관념에 얽매이지 않고 처음부터 본질을 보고 논리적으로생각했기 때문이다. 왕정과 같은 집단주의 체제에서는 금욕주의와 이타주의가 윤리가될 수 있지만 민주정과 같은 개인주의 체제에서는 욕망주의와 이기주의가 윤리가 될 수 있다. 그렇게 나는 과거의 관념을 죽이고 새로운 관념을 가졌다. 이런 논리를 타당한 논리 없이 본인이나 타인의 특정한 관념이나 사리사욕이나 이해관계로 부정하는일은 할 수 없다.

 

 

 

7. 법

 

법은 체계화되었으나 복지는 특정 이유로 체계화가 부족한 면이 있다. 그에 따라 복지와 같이 사회 구조 유지의 기본에 해당하는 법에 대해 알아보면서 복지가 가야 할바른길을 안내하겠다. 법과 복지는 사회 구조 유지의 기본이기에 강제력이 발생한다. 사회에 속한 개인에게 법과 복지가 강제로 집행되기에 개인의 자유권이 침해되게 되는데 생존주의적자유주의를 기초로 사회 구조 유지를 위한 강제력에 따를 것을 사회 계약을 통해 약속하면 그에 대한 강제력은 개인의 자유권을 침해하는 것이 아니게된다. 그러나 사회 구조 유지의 범위가 어디까지인지는 다소 의견차이가 있을 수 있다. 법과 복지를 통한 강제력이 어디까지 해당되어야 하는가? 거기에서 개인의 의사가 나오게 된다.

인간 육체 유지를 생각해보자. 식사와 수면과 배설과 성행위 또는 육체 보호와 육체 손상 치료 등과 같이 인간 육체 유지의 기본은강제력이 발생하게 된다. 본인이 원치 않더라도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육체 유지 방법은 개인의 의사로 결정된다. 식사는 한식으로 할 것인가 아니면 양식으로 할 것인가? 부족한 영양분은 비타민으로 보충할 것인가? 수면은 집에서 잘 것인가 아니면 호텔에서 잘 것인가? 어떤 자세로 언제 잘 것인가? 배설은 충동이 올 때 할 것인가 아니면 설사약으로 할 것인가? 배설하면서 스마트폰을 조작할 것인가? 성욕은 인간과 성관계로 풀 것인가 아니면 자위로 풀 것인가? 성관계나 자위 방법은 어떻게 할 것인가? 외적을 만나면 싸울 것인가 아니면 도망칠 것인가? 아프면 혼자서 치료할 것인가 아니면 병원에 갈 것인가?

인간 육체 유지에도 이렇게 다양한 방식이 존재하는데 사회는 이보다 훨씬 많은 다양한 방식이 복잡한기준과 절차로 존재한다. 특히 국가의 경우는 그렇다. [국가는 일정한 영토와 거기에 사는 사람들로 구성되고, 주권에 의한 하나의 통치 조직을 가지고 있는 사회 집단을 뜻한다. 국민·영토·주권의 삼요소를 필요로 한다.] 사회 중 일반적으로 가장 큰 인간 집단인 국가는 속한 인간의 수가 많아 의견 차이가 굉장히 커많은 다양한 방식이 존재하게 된다.

국가는 법과 복지뿐만 아니라 국가를 지키기 위한 국방과 국가를 운영하기 위한 정치와 국가가 살아가기위한 경제 같은 분야도 국가 구조 유지의 기본에 해당하게 된다. 국가는 크기가 커서 단순히 국가 구조 유지뿐만 아니라 분야 구조 유지를 하게 된다. 분야 구조의 요소 또한 인간이기에 각각 분야를 담당하는 행정부인 중앙 행정 기관의 행정 부처는복지를 통해 분야 구조를 유지한다. 그러면서 보건 복지부와 영역이 겹치는 일이 발생한다. 가령 농업인 복지는 농림 축산 식품부가 할 수 있으나 노인 농업인 복지는 보건 복지부가 할 수도 있다. 이렇듯 국가의 복지는 모든 분야에 속하여 정책에 포함되어 있다. 그에 따라 앞으로 법과 정책이라 쓰면 기본적으로 정책에 복지가 포함되어있음을 미리 알린다. 복지는 그렇게 각각 분야가 각자 분야의 복지를 담당하면서 법에 비해 체계적이지 못한다는 단점이있다. 법 또한 모든 분야에 영향을 끼치나 사법을 통해 권력으로부터독립되어 체계적인 것을 고려하면 복지 또한 모든 분야에 영향을 끼치나 특정 기관을 통해 권력으로부터 독립되어 체계적일 필요가 있다는 것을 알 수있게 된다. 이것이 복지가 법의 체계를 배울 점 중 하나다.

국가 구조 유지에 대해 생각해보자. 법과 정책을 비롯한 국가 구조 유지를 위한 다양한 제도와 정책은 국가 구조 유지에 필요하다면기본이 되어 강제력이 발생하게 된다. 사회에 속한 개인이 원치 않아도 따를 수밖에 없다.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그런 강제력에 해당하는 것을 사회 계약을 통해 합의했다는 가정으로 접근하게 된다. 그러나 구조 유지의 방법은 개인주의 체제인 국가에서는 개인의 의사로 결정된다. 국방과 정치와 경제 등은 국가 구조 유지를 위해 필요하므로 강제력에 해당한다. 그러나 어떤 방법으로 실행할 것인가는 개인의 의사가 반영되는 선거나 시장 등으로 결정된다. 선거에서 개인의 의사가 반영되어 선출된 정치가에 영향을 받아 법과 정책이 만들어져 사회와 분야의질서와 방향을 결정하고 시장에서 개인의 의사가 반영되어 가치 생산과 소비를 통한 재화와 부의 분배가 결정된다. 그 과정을 법과 정책을 통해 구조를 유지한다. 의사 반영에 실패한 인간은 각종 권리를 얻기 어려울 수가 있다. 개인의 의사와 다르게 법과 정책이 만들어질 수 있고 재화와 부의 분배를 받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면서 생존과 자유와 같은 권리를 얻지 못하여 죽거나 불행하여 국가 구조가 붕괴할 수 있는데, 그걸 법과 정책을 통해 생존과 자유를 보장하는 것으로 국가 구조 유지를 한다. 정리하면 법과 정책으로 개인의 의사를 반영할 수 있는 구조를 유지하고 법과 정책으로 개인의 의사를반영하지 못한 이들의 생존과 행복을 보장하는 것으로 구조를 유지한다.

 

법과 정책은 만들고 판단하여 집행한다는 유사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법과 정책의 만듦을 알아보자. 개인주의 체제인 국가는 개인의 의사가 기본이므로 국가 구조 유지를 위한 강제력의 방법도 개인의의사로 결정하게 된다. 그렇기에 법과 정책의 만듦은 개인의 의사가 반영될 수 있도록유권자가 투표를 통해 대표자를 선임하는 선거제를 통해 선출된 정치가가 선출직 공무원이 되어 임명직 공무원을 임명하는 것으로 주도하거나 관여하고있다. 개인이 직접 만드는 것이 아니기에 잘못된 법과 정책을 만들수가 있으므로 언제나 개인은 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의견을 내야 한다. 만약 정치가가 개인의 자유권이나 주권이나 소유권 등을 침해하는 것과 같이 독단적으로 체제 구조 붕괴를 시도한다면 개인의 손으로 선출되었다하더라도 잘못되었다 할 수 있다. 그런 것은 정말 국가 구조 유지에 반드시 필요할 때에만 국민의 동의 하에 가능한 것이다. 이렇게 법과 정책의 만듦은 민주성을 띠고 있다.

법과 정책의 판단을 알아보자. 법과 정책의 판단은 전문성을 위해 선출직이나 임명직 공무원보다 판사나 관료와 같은 임용 공무원이주로 담당하고 있다. 법은 사법을 통해 권력으로부터 독립되어 법원과 같은 기관에서법을 전문으로 판단하고 있으나 복지를 비롯한 정책은 각 분야의 중앙 행정 기관에서 권력으로부터 독립되지 못한 채 독자적으로 판단하고 있다. 법은 법정에서 수많은 원고와 피고와 검사와 변호사 등이 각자에게 이로운 법적 판단을 위해 서로경쟁하면서 다양한 사례를 통한 경험으로 체계적으로 성장하는 반면 정책은 정책 예산을 바탕으로 정치가나 관료가 국민의 의견을 수렴하여 경쟁하면서체계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법과 정책의 결정적 차이는 개인의 의사다. 법에서는 개인이 직접 당사자가 되어 변호사를 선임하여 본인에게 이로운 법적 판단을 받기 위해 경쟁하는 것으로 선거와 시장에서 경쟁에 의한향상이 발생하는 것과 같이 법도 향상되지만 정책에서 개인은 간접 당사자가 되어 불합리하게 일부의 의견만 반영되거나 무시되기도 하면서 향상이 되지못하는 것으로 잘못된 정책을 반복할 수도 있다. 이것이 복지를 비롯한 정책이 법의 체계성을 배워야 할 점이다. 이렇게 법과 정책의 판단은 전문성을 띠고 있다.

법과 정책의 집행을 알아보자. 법과 정책의 집행은 국가 구조 유지를 위해 행정 기관에서 대부분 강제로 집행되고 있다. 법과 정책의 집행은 합리성을 위해 체제에 근거한 합리적 기준을 준수해야 한다. 가령 개인주의 체제에서는 개인의 자유권을 최대한 지키기 위해서 사회와 체제 구조 유지를 위한기본적인 강제력과 강제력이 없는 사전 예방과 강제력이 있는 사후 조치로 접근해야 한다. 그걸 근거로 법과 정책의 집행 또한 국가와 체제 구조 유지를 위한 기본적인 강제력과 사후 조치에대한 강제력 외에는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여서는 안 될 것이다. 또한 개인의 자유권과 행정 기관의 효율성을 위해 개인이 대응할 수 있는 것은 최대한 개인이 대응하도록 해야 한다. 국가 구조 유지를 위해 복지가 부족한 인간에게 정확한 대응을 위한 선별 복지가 기본이나 행정절차상의효율을 위해 보편 복지 이후 세금으로 균형을 맞추는 것도 타당할 것이다. 이렇게 법과 정책의 집행은 강제성을 띠고 있다.

 

개인주의 체제인 국가의 국가 구조는 합리적 기준으로 균형을 이루어야 유지될 수 있다. 반면 개인의 의사를 기본으로 한 국가 원리는 합리적 기준으로 불균형해야 유지될 수 있다. 국가 내 제도인 선거나 시장의 구조는 균형적이어야 유지될 수 있고 선거나 시장의 원리는 불균형적이어야개인의 의사가 반영될 수 있다. 균형적으로 국가 구조를 유지하는 것으로 불균형한 국가 원리가 살아남는다. 개인주의 체제에 의해 국가 구조는 균형적이고 국가 원리는 불균형한 형태를 가지게 되었다.

국가 구조를 합리적 기준으로 균형을 이루어서 유지하기 위해 법과 정책 또한 합리성과 균형성이필요하게 된다. 이는 만듦과 판단과 집행 모두 적용되는 성질에 해당한다. 법과 정책의 판단으로 접근하여 알아보자.

법의 판단으로 접근해보자. 형사법은 사회 질서에 해로운 순서라는 합리적 기준으로 양형을 정해두고 있다. 일반적으로 죄질이 강할수록 사회에 해롭다. 절도보다 강간이 더 큰 형벌을 받고 강간보다 살인이 더 큰 형벌을 받는다. 그런데 만약 형사법의 판단에 의해 살인보다 절도가 높은 형량을 받으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러면 단순히 절도를 할 것이 아니라 살인을 저지르게 될 수도 있다. 법의 판단에서 합리적 기준에 의한 균형이 깨지자 죄가 커지면서 질서가 흔들린 것이다.

정책의 판단으로 접근해보자. 복지 정책은 국가 구조에 이로운 순서라는 합리적 기준으로 실행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가난할수록 복지가 효과적이어서 국가에 이롭다. 가난한 사람이 부유한 사람보다 더 큰 복지를 받는다. 그런데 만약 복지의 판단에 의해 비싼 아파트를 타는 이들이 가난한 이들을 위해 마련된 임대 아파트에서거주하는 것과 같이 부유한 사람이 더 큰 복지를 받게 되는 상황을 초래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가난한 사람은 생존할 수 없어 아사하거나 불행하여 자살하는 것으로 국가 구조의 요소가 사라지게된다. 복지의 판단에서 합리적 기준에 의한 균형이 깨지자 구조가흔들린 것이다.

본래 인간은 인간의 육체로 즐거움과 괴로움을 느끼기에 육체 이상의 행복과 불행을 느낄 수 없다. 지나치게 높은 쾌락은 뇌를 망가트려 인지할 수 없게 하고 지나치게 높은 고통은 신경을 망가트려인지할 수 없게 한다. 그러다 보니 다양한 행복이 인간을 보다 행복하게 하고 깊은불행이 인간을 재기할 수 없게 한다. 다양한 행복을 누리고 깊은 불행을 피하는 것이 인간에 이롭다. 국가도 마찬가지다. 지나치게 높은 행복은 인간의 향상 기능 작동을 막을 수 있고 지나치게 높은 불행은 인간의 교화 기능 작동을 막을 수 있다. 그러므로 국가 구조 유지를 위한 법과 정책에서 이미 처벌이 충분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과도한 형벌은부당하고 이미 충분히 행복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복지는 부당하게 된다. 다양한 사람이 행복을 누리고 깊은 불행을 겪는 사람이 없도록 해야 사회에 이롭다. 이런 이유로 법과 정책이 사회에 이롭기 위해 법은 형벌과 책임의 비례 원칙을 지켜야 하고 정책은불행과 지원의 비례 원칙을 지키는 것이 좋다.

법과 정책은 실효성과 타당성과 안정성이 필요하다. 실제로 효력을 발휘하는 법과 정책을 합리적 기준으로 균형을 갖춰 안정적으로 만들고 판단하고 집행한다면그럴 수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안정적이어야 질서와 체계가 잡힐 수 있으나 그렇게만한다면 변화가 없어 발전하지 못할 수도 있다. 법과 정책은 안정성을 포기해서라도 시대의 흐름에 맞춰 따라가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시대의 흐름에 의해 국가가 도태될 수도 있다. 법은 과거의 판례를 참고하고 정책은 과거 정책을 참고하기에 과거에 머물러 있을 수도 있으나 인문계열은 철저하게 논리적이다. 논리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와 관계 없다. 논리적인 주장이라면 법과 정책 또한 미래지향적인 태도를 통해 미래로 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그에 따라 헌법 또한 시대의 흐름에 따라 빠르게 변화할 필요가 있다.

 

 

법에 대해 알아보자. 법은 헌법과 법률과 조약과 국제법과 명령과 조례와 규칙이 있다. 사전적 정의가 공통 인식에 부합하므로 정의를 적고 넘어가겠다. [헌법_법률은 국가 통치 체제의 기초에 관한 각종 근본 법규의총체를 뜻한다. 모든 국가의 법의 체계적 기초로서 국가의 조직, 구성 및 작용에 관한 근본법이며 다른 법률이나 명령으로써 변경할 수 없는 한 국가의 최고 법규이다.][법률_법률은 국회의 의결을 거쳐 대통령이 서명하고 공포함으로써 성립되는 국법을 뜻한다. 헌법의 다음 단계에 놓이며, 행정부의 명령이나 입법부와 사법부의 규칙 따위와 구별되어 명령·규칙이 법률에 위반되면 법원에서그 규칙이나 명령의 적용은 거부되고 법률이 헌법에 위반되면 법원은 그 법률의 적용을 거부한다.][조약_법률은 국가 간의 권리와 의무를 국가 간의 합의에 따라 법적 구속을 받도록 규정하는 행위를 뜻한다. 또는 그런 조문. 협약, 협정, 규약, 선언, 각서, 통첩, 의정서 따위가 있다.][국제법_법률은 공존공영의 생활을 도모하기 위하여, 국가 간의 협의에 따라 국가 간의 권리·의무에 대하여 규정한 국제 사회의 법률을 뜻한다.][명령_법률은 공법에서, 국회의 의결을 거치지 않고 행정 기관에 의하여 제정되는국가의 법령을 뜻한다. 국회의 의결을 거쳐 제정되는 법률에 상대되는 개념이다. 법률보다 하위의 법이며, 그 형태로는 대통령령, 총리령, 부령 따위가 있다.][조례_법률은 지방 자치 단체가 법령의 범위 안에서 지방 의회의의결을 거쳐 그 지방의 사무에 관하여 제정하는 법을 뜻한다.][규칙_법률은 헌법이나 법률에 입각하여 정립되는 제정법의 한 형식을뜻한다. 입법·사법·행정의 각 부에서 제정되며, 국회 인사 규칙·감사원 사무 처리 규칙·법원 사무 규칙 따위가 있다.]

헌법은 자유 민주주의나 법치주의 등과 같이 국가 체제를 기본 원리로 삼고 있고, 형법은 죄형 법정주의를 기초로 파생된 성문 법률주의, 소급효 금지의 원칙, 명확성의 원칙, 유추 해석 금지의 원칙, 자기 책임성의 원칙, 적정성의 원칙을 기본 원리로 삼고 있고, 민법은 소유권 공공복리의 원칙, 계약 공정의 원칙, 무과실 책임의 원칙을 기본 원리로 삼고 있다. 민법의 근대 원칙과 수정 원칙에 대해 간단히 집고 넘어가겠다.

본래 민법의 3대 원칙은 개인주의에 입각하여 개인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고자 했다. 그렇게 해서 나타난 것이 소유권 절대의 원칙과 계약 자유의 원칙과 자기 책임성의 원칙이다. 그러나 개인주의 체제는 개인의 의사를 기본으로 하기에 불균형한 결과가 나올 수밖에 없다. 선거에 의해 권력이 차이 날 수 있고 시장에 의해 재력이 차이 날 수 있다. 개인의 노력에 의해서도 다양한 힘의 차이가 발생할 수 있다. 그런 개인의 의사를 존중하면서도 국가와 체제 구조를 유지하기 위해서 원칙을 변경하게 되었다. 소유권 절대의 원칙에서 소유권의 공공복리를 고려하게 되고, 계약 자유의 원칙에서 계약 공정을 고려하게 되고, 자기 책임성의 원칙에서 무과실 책임도 고려하게 되어 힘의 차이에 의한 불균형을 가능한 균형 있게하였다. 국가 원리인 불균형한 개인의 의사를 존중하기 위해 국가구조가 균형적일 수 있는 방향으로 수정된 것이다. 이와 같이 구조 유지를 담당하는 법과 정책이 균형을 갖춰야 개인은 자유롭게 불균형하게 살 수 있다. 개인주의 체제인 모든 사회는 균형을 위한 강제력이 동원되고, 그런 강제력이 보통 사회 구조 유지의 기본이 된다.

 

 

법의 기본적인 구조는 다음과 같다. 입법이 만들고 사법이 판단하고 행정이 집행한다. 법의 만듦은 기본적으로 개인의 의사가 반영되도록 민주주의 선거를 통해 선출된 선출직 공무원이나선출직 공무원이 임명한 임명직 공무원이 만들면서 민주성을 띠고 있다. 국회의원, 대통령, 총리, 장관, 지방의원, 지방자치단체의 장 등이 만들고 있다.

 

법의 판단은 법을 해석하고 적용하는 사법권이 다른 권력으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아야 공정하게 전문성을갖추고 판단할 수 있다. 국가 구조 유지를 명분으로 하더라도 권력이 법의 판단에간섭하여 조작하면 권력의 입맛에 맞는 부당한 판단이 나올 수 있다. 만약 사법이 독립성이 없어 권력에 의한 판단을 하는 것이 정당화된다면 권력은 온갖 패악을 저지를 위험이 있다. 그걸 보통 독재라고 한다. 그런 것을 방지하기 위해 법의 판단은 권력으로부터 독립되어 있다.

사법권은 크게 헌법 재판소와 법원으로 분리되어 있다. 헌법 재판소는 헌법에 관한 재판을 담당하며 법률이 헌법에 저촉될 경우 위헌 판결을 하여 무효화한다. 법원은 최고 법원인 대법원과 각급 법원인 고등 법원, 특허 법원, 지방 법원, 가정 법원, 행정 법원, 회생 법원과 같이 나누어 재판을 하고 있다. 법원은 공정한 재판을 위해 심급 제도를 도입하여 사건의 종류에 따라 최대 세 번까지 재판을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제1심 법원의 판결에 불만이 있으면 제2심 법원에 항소할 수 있고 제2심 법원의 판결에 중요한 법률적 다툼이 있을 경우 제3심 법원에 상고할 수 있다. 법이 충돌할 경우 세 가지 방법으로 적용 순위가 정해진다. 하나, 상위법. 법과 법이 충돌하면 상위의 법이 우선된다. 순서는 헌법, 법률, 시행령, 시행 규칙, 조례, 규칙, 고시, 예규, 관습이다. 둘, 신법. 개정 전의 법과 개정 후의 법이 충돌하면 예외에 대한 내용이없는 한 개정 후의 법이 우선된다. 셋, 특별법. 일반법과 특별법이 충돌하면 특별법이 우선된다.

법의 판단은 합리적 기준으로 균형적이어야 한다. 그래야 사회가 타당하고 안정적이게 된다. 법의 판단인 사법은 민주주의를 명분으로 국민의 법감정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라는 압박을 받을 수있다. 그러나 개인의 의사는 불균형하므로 비논리적일 수 있어 그걸수용하다가는 법의 합리적 기준이나 균형이 깨지게 된다. 그러면서 전문성을 잃어버리게 된다. 법관 같이 논리 안에 살고 있는 사람이 그런 법감정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것은 명예로운 일이 아니다. 논리 안에 살고 있는 사람은 논리적인 주장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국민의 의견 또한 듣기도 전에 법감정일 것이라며 무시할 것이 아니라 논리적인 의견이라면 참고해야한다. 논리라는 합리적 기준으로 모두가 평등해져야 한다.

 

법의 집행은 무력을 갖추어 집행 대상을 강제로 집행할 수 있도록 하고 대외적 이미지를 가꾸어집행대상에게 협조를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사회 계약을 맺었다 하더라도 모든 개인이 강제적인 집행을 수용하리란 보장이 없어 강제적으로 집행하기 위한 무력을 갖춰야 한다. 만약 경찰의 무력으로 집행할 수 없다면 군이 출동하여 강제적으로 집행한다. 집행 대상이 강제적인 집행을 수용하더라도 협조적인 태도를 얻기 위해서는 대외적 이미지를 가꾸어야한다. 만약 경찰이 시민의 협조를 받지 못한다면 집행에 상당한곤란함을 겪을 수 있다.

집행에 관련된 이들은 검사, 경찰, 교도관, 국선 변호사, 사선 변호사 등이 있다. 종류는 형사와 민사와 행정 등이 있는데 형사의 절차에 대해 간단히 알아보자. 형사 사건은 피의자의 신고나 수사 기관의 사건 파악으로 수사가 시작된다. 수사 대상의 혐의가 뚜렷할 때에는 사건부에 기록하여 정식으로 입건하고 그렇지 않지만 조사가 필요할때에는 불구속 입건을 한다. 수사 대상인 피의자는 출석 요구에 응하면 임의로 출석하여 조사받을 권리가 있다. 영장은 체포 영장과 구속 영장으로 나뉜다. 체포 영장은 피의자가 출석 요구에 응하지 않을 때 판사가 발부한 체포 영장으로 체포를 하거나수사관이 정해진 기준과 절차에 따라 임의로 긴급 체포를 한 후에 검사의 승인을 받는다. 구속 영장은 신병이 확보되지 않은 피의자를 대상으로 한 사전 구속 영장과 신병이 확보된 피의자를대상으로 한 사후 구속 영장으로 나뉜다. 피의자가 출석 요구를 거부하거나 도망 및 증거 인멸의 염려 등의 구속 사유가 있을 경우 판사의 판단에 따라 구속 영장을 발부하여 구속한다. 구속 전에 피의자 심문으로 수사 과정과 판사 앞에서 구속 사유에 대한 변명을 할 수 있다. 경찰이 수사한 형사 사건에 대한 수사 기록과 증거물을 검찰에 송부하는 것을 말하는 송치를 한다. 검사의 판단에 따라 형사 사건의 피의자를 형사 재판에 회부하여 공소를 제기하는 것을 말하는 기소를할 수 있다. 한국은 국가 소추주의에 따라 검사만이 기소를 할 수 있으며기소된 사람을 피고인이라 부른다. 검사의 판단에 따라 기소를 하지 않는 불기소 처분을 할 수 있다. 불기소 사유가 명백할 때에는 조사 없이 불기소 처분을 하는 것을 말하는 각하를 할 수 있다. 기소된 사건을 법관이 판단하는 것을 재판이라 한다. 법관은 검사가 기소한 피고인에 대하여 공판을 열어 법을 해석하여 유무죄를 결정하고 유죄일 경우양형을 결정한 후에 판결을 한다. 형사의 판결은 유죄 판결과 무죄 판결과 공소 기각 판결과 면소 판결이 있다. 유죄 판결은 형을 선고하는 판결과 형을 면제하는 판결과 형을 선고 유예하는 판결로 나뉘고 형의종류에는 사형, 징역, 금고, 구류, 벌금, 과료, 몰수, 자격 상실, 자격 정지가 있다. 법원의 판결이 확정되면 검사의 지휘로 법원에서 선고한 형을 집행한다.

집행 기관 중 수사 기관은 지금 마땅한 무력을 갖추지 못하거나 대외적 이미지가 좋지 못한 상태다. 경찰은 유교적 가치관에 의해 가부장제 여성성을 근거로 여성이 약할 거라는 선입견 속에서 여성주의자의일방적인 여성의 이익만을 위한 주장에 의해 무력을 갖추지 못한 여성 경찰을 무분별하게 채용하는 바람에 집행을 수행할 수 있는 무력을 갖추지 못한경찰이 늘어나게 되었다. 검찰과 경찰은 유교적 가치관에 의해 집단의 이익을 우선시하는조직 이기주의와 서열을 중시하는 서열주의를 추구하면서 국민의 시각과 괴리된 폐쇄적인 문화와 전파를 용인하여 일부가 일탈하는 것이 외부에 노출되면서열주의로 위는 감싸고 아래는 꼬리를 자르는 형태가 나타나면서 대외적 이미지가 좋지 못한 상황이다. 유교적 가치관에 의해 올바르다 여기고 행해진 것이 사회에 해를 끼쳤으므로 도덕적 죄에 해당한다. 바르다 여긴 것이었기 때문에 같은 잘못이 반복되고 있는 중이다. 그러면서 수사 기관은 국민의 신뢰를 잃어버렸다. 그에 따라 수사 기관은 변화해야 한다. 역할을 수행하고자 하는 사명감과 집행할 수 있는 무력을 갖춘 인원을 채용하고 그런 인원 위주로승진하며 외부 평가를 참고하여 국민과 괴리되는 것을 막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법치주의는 개인주의 체제에 속하는 만큼 개인의 자유 의지에 따른 의사가 반영되어야 정상적으로작동한다. [법치주의_법률은 국민의 의사를 대표하는 국회에서 만든 법률에 따르지 아니하고는 나라나 권력자가 국민의자유나 권리를 제한하거나 의무를 지울 수 없다는, 근대 입헌 국가의 정치 원리를 뜻한다.] 그 말은 곧 욕망을 가지고 이기적으로 행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온전하게 자유롭다. 모든 개인이 타인의 이익을 우선시하면서 서로가 양보하면 각자 주관적 판단에 의해 결정되어 법이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모든 개인이 욕망을 가지고 본인의 이익만을 행동하며 서로가 양보하지 않으면 이해관계에따른 분쟁을 조정하기 위해 법이 등장하게 된다. 법 자체가 개인의 자유 의지를 만드는 욕심과 이기심에 성립되고 있는 것이다.

법의 만듦과 판단과 집행도 같다. 법을 만드는 이들이 이타적이면 타인을 위해 불합리한 법을 입안하거나 불합리한 법에 찬성하게 된다. 동료 의원의 이익을 위해 국가에 해로운 법안에 찬성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법을 판단하는 이들이 이타적이면 타인을 위해 불합리한 법의 판단을 할 수 있다. 전관예우로 선배 법관이었던 이의 이익을 위해 잘못된 판결을 하거나 동정심이나 감정에 의해 불합리한판결을 할 수 있다. 법을 집행하는 이들이 이타적이면 타인을 위해 수사 기관은불기소를 하거나 입증이나 수사에 소홀할 수 있고 변호사는 변호를 거부할 수 있다. 지인의 이익을 위해 불기소나 입증 또는 수사에 소홀하거나 대중의 이익을 위해 흉악 범죄자의 변호를거부하게 되는 것이다. 변호사가 흉악 범죄자를 변호하는 것은 법치 구조 유지를위한 기본일 뿐이므로 그에 대한 비판은 법치에 대한 부정에 해당하게 된다. 이런 이유로 법의 모든 과정에서 관계자는 모두 욕망을 가지고 이기적으로 자유 의지로 생각하고행동해야 한다.

재판 과정도 욕망을 가지고 이기적이어야 한다. 형사 사건에서 피고인의 범죄에 대한 입증 책임은 검사에게 있다. 검사는 욕망을 가지고 정당한 기준과 절차를 거친 이기적인 입증을 하고 변호사는 욕망을 가지고그런 입증을 믿고 정당한 기준과 절차를 거친 이기적인 변호를 하면 된다. 판사는 욕망을 가지고 이기적인 입증과 변호를 믿고 이기적으로 판단하여 판결하면 된다. 그 외 피고인, 원고와 피고 등도 욕망을 가지고 이기적이어야 한다. 만약 법정에 선 이가 타인의 이익을 위해 위증을 하게 되면 진실을 가려내기가 어렵다. 그러나 증인이 본인의 이익만 추구한다면 사건과 증인의 이해관계에 따라 진실성을 유추할 수 있다. 모든 증인이 욕망을 가지고 이기적이어야 판단이 수월하다. 합리적 기준을 개인의 자유 의지에 맞추기 위해서 모두가 욕망과 이기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효율적으로 법치주의를 달성할 수 있다.

 

개인주의 체제인 사회의 개개인이 개인주의 관념을 가지게 될수록 과거와 다르게 자유롭게 고소하는것으로 법 관계자는 보다 과중한 짐을 짊어지게 된다. 그렇다고 그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개인주의 체제는 개인의 의사가 중요하기에 개인의 판단으로 고소를 결정했다면 그것으로 좋다. 단 판단하는 측인 수사 기관이나 사법부에서 올바른 판단을 해야 한다. 낡은 가치관에 의해 불합리하고 불공정한 판단을 하게 되면 무고한 피해자가 생길 수 있으므로 법관계자는 반드시 개인주의 관념을 가지게 되어야 한다.

 

 

 

8. 복지

 

개인주의 체제의 국가 구조 유지를 위해서 균형적이어야 하고 국가 원리 추구를 위해서 불균형적이어야한다. 그에 따라 법 또한 국가 구조에 해당할 때에는 균형적이어야하고 국가 원리에 해당할 때에는 불균형적이어야 한다. 법의 만듦은 민주성을 띠고 판단은 전문성을 띠고 집행은 강제성을 띤다. 법치주의는 개인주의 체제에 속하여 모든 개인이 자유 의지를 가지고 참여해야 하기에 욕망과 이기심이필요하게 된다.

사회 구조 유지의 기본인 복지 또한 법과 유사한 성질을 가지게 된다. 그러나 복지는 특정 이유로 체계화가 부족하다. 사법과 같이 독립되어 체계화된 법과 달리 복지는 각 분야의 중앙 행정 기관의 정책 포함되어 있어체계적이지 못하고, 사법과 같이 권력으로부터 독립되어 판단하는 기관이 있는법과 달리 중앙 행정 기관의 정책은 권력으로부터 독립되어 판단하는 기관이 없다. 즉 법의 체계성을 배우기 위해서 복지를 포함한 모든 분야의 정책은 사법과 같이 권력으로부터 독립되어판단하는 기관이 필요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복지를 포함한 정책에 대해 알아보자. [복지는 행복한 삶을 뜻한다.][정책은 정치적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방책을 뜻한다.] 복지 정책은 인간의 행복한 삶이라는 정치적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방책이라 할 수 있다.

국가 정책은 정부 중 행정부인 중앙 행정 기관의 행정 부처를 중심으로 한다. [정부_법률은 입법, 사법, 행정의 삼권을 포함하는 통치 기구를 통틀어 이르는 말을 뜻한다. 정부_행정은 삼권 분립에 의하여, 행정을 맡아보는 국가 기관을 뜻한다.] 정부의 법률적 해석이 보다 정확하다 보기에 정부는 삼권을 지칭하고 행정부는 행정을 지칭하겠다. 고유 명사화가 된 것은 그대로 쓰겠다. 중앙 행정 기관의 행정 부서에는 정부 홈페이지를 기준으로 기획 재정부, 교육부, 과학 기술 정보 통신부, 외교부, 통일부, 법무부, 국방부, 행정 안전부, 문화 체육 관광부, 농림 축산 식품부, 산업 통상 자원부, 보건 복지부, 환경부, 고용 노동부, 여성 가족부, 국토 교통부, 해양 수산부, 중소 벤처 기업부가 있다.

보통 행정 부서는 국가 구조 유지의 기본이나 전부 그렇지는 않다. 한국 특수 상황에 의해 만들어진 부서나 체제나 평등이나 합리성을 위해 통폐합을 해야 할 부서가있다. 가령 통일부는 분단된 한국 특수상황에 의해 만들어진 부서로다른 국가는 있을 필요가 없고 통일되면 폐지될 부서다. 여성 가족부는 정치적 소산물로써 여성이나 가족과 같이 분야와 관계 없는 특정 집단을 대상으로 한 부서는 개인주의와 평등에 어긋나므로 보건복지부와 통합되어야 한다. 중소 벤처 기업부는 중소기업을 성장시키기 위한 부서이나 모든 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경제의 합리적 기준을 정하기가 좋으므로 산업 통상자원부와 통합되어야 한다. 고용 노동부는 노동자와 자본가의 합리적 기준을 통한 공정한 거래를 위해 공정 거래부로 이름을 바꾸어 공정 거래 위원회와 통합되어야 한다.

 

한국 정책에 대해 알아보자. 정책 과정에 참여하는 참여자는 공식과 비공식으로 나눌 수 있다. 공식 참여자에는 정부인 입법부와 사법부와 행정부가 있고 비공식 참여자에는 정당과 언론과 이익집단과 시민 단체와 전문가와 국민 등이 있다. 정책 과정은 보통 정책 의제 설정, 정책 결정, 정책 집행, 정책 평가의 과정을 거친다. 정책 과정을 법과 비교하면 정책 의제 설정이 법의 만듦 중 제안이고 정책 결정이 법의 만듦 중의결일 것이고 정책 집행이 법의 집행일 것이고 정책 평가가 법관 평가일 것이다.

법의 판단과도 같은 정책 판단은 정책 과정과 별개로 행정 법원과 행정 심판과 민원이 있다. 사법부에 속한 행정 법원은 정책으로 손해를 본 사람들만이 이의 제기를 신청할 수 있으며 관련된법으로 판단한다. 행정부에 속한 행정 심판은 정책 집행 중 행정청의 위법이나부당한 처분이나 공권력 행사 및 불행사 등으로 권리나 이익을 침해 받은 사람들이 이의 제기를 신청하며 관련된 법으로 판단한다. 행정부에 속한 민원은 정책에 관련된 것에 대한 이의 제기를 국민 신문고 등에 신청하며 담당자가답변을 하거나 해결을 한다. 보통 민원으로 시작하여 해결이 안되면 행정 심판으로 가고 그래도 해결이 안되면 그런 사람 중 자격이 있는 사람은 행정 법원으로 간다.

그런데 행정 법원은 정책에 관련된 법을 위주로 판단한다. 정책 자체는 판단하지 않는다. 정책은 상당한 전문성을 요구하기에 관련 전문가가 아니면 판단하기가 어렵다. 법 전문가인 사법부에서 이런 의견이 있었다. “정책의 사업에 있어 문제점이 인정되더라도 사업시행의 계속 여부나 범위를 판단하는 것은 사법부가감당하기 버거운 주제가 틀림없다.” 행정 심판과 민원은 정책 집행에 관련된 것으로 보통 정책 자체에 관련된 것이 아니다. 따라서 정책 자체를 판단하는 개인의 참여가 가능한 독립적인 공적 기관은 없다. 정책 개인 참여를 위해 행정부에서 국민들에게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 그러나 정책 자체가 일반인이 다루기 어려우므로 의견을 내는 것이 어렵다. 그럼에도 법의 국선 변호사나 사선 변호사와 같은 의뢰인을 도와 대신하여 의견을 낼 정책 전문가가없다. 정책 판단은 독립된 공적인 기관도 없고 정책 전문가도 없어개인이 정책에 참여하기가 어려워 일부 이익 집단에 정책이 휘둘리기도 하고 있다. 그렇기에 복지를 비롯한 모든 분야의 정책은 사법과 같이 정책 판단을 하는 기관으로 독립되어야한다. 우선 정책 과정을 알아보자.

 

 

첫째, 정책 의제 설정. 모든 민주 사회에는 문제가 있다. 문제가 없는 사회는 개인의 의사가 반영되어 자연스럽게 불균형한 민주 사회가 아닌 개인의 의사가반영되지 못하여 인위적으로 균형을 이룬 독재 사회다. 사회 문제가 비공식 참여자들에 의해 쟁점화가 되어 다수의 사람이 인식하고 이해하여 문제 해결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된 정부의 권리로 해결할수 있는 사안을 의제화한 것을 공중 의제라 한다. 사회 문제나 쟁점이나 공중 의제가 국무 회의나 차관 회의 등과 같은 곳에서 공식 의제로 올라온 것을 정부 의제라 한다.

정책 의제는 위와 같은 과정으로 설정되나 행정 절차상 정책은 예산안의 편성부터 시작된다. 행정 부처의 장은 매년 1월 31일까지 해당 회계 연도(한국은 1월 1일)부터 5회계 연도 이상의 기간 동안의 신규 사업 및 기획 재정부의장관이 정하는 주요 계속 사업에 대한 중기 사업 계획서를 기획 재정부 장관에게 제출해야 한다. 신규 사업과 계속 사업은 설정된 정책 의제를 고려하여 계획한다. 제출된 계획서를 바탕으로 대략적인 예산안이 결정된다. 기획 재정부 장관은 국무 회의 심의를 거쳐 대통령의 승인을 얻은 다음 연도 예산안 편성 지침을매년 3월 31일까지 행정 부처의 장에게 보낸다. 행정 부처의 장은 제출했던 중기 사업 계획서와 추가적인 사업을 포함한 예산안을 작성하여 매년 5월 31일까지 기획 재정부 장관에게 제출한다. 제출 받은 예산 요구서에 따라 예산안을 편성하여 국무 회의의 심의를 거친 후에 대통령의 승인을 받는다. 승인을 받은 예산안을 회계 연도 개시 120일 전에(헌법에는 90일)에 국회에 제출한다. 국회는 회계 연도 개시 30일 전까지 상임 위원회 예비 심사, 예산 결산 특별 위원회 종합 심사, 본회의 심의를 거쳐 의결을 하여 행정부에 이송한 후 대통령이 공고한다. 이와 같은 과정은 헌법을 근거로 한다. 헌법 제54조에 따르면 정부에 예산안 편성권을 부여하고 국회에 심의 및 확정권을 부여한다고 되어 있다. 헌법 제57조에 따르면 국회가 정부의 동의 없이 정부가 제출한 지출 예산 각 항의 금액을 증가하거나 새 비목을 설치할 수 없다고 규정되어 있다. 이렇게 예산안 편성권과 심의 및 확정권을 행정부와 입법부가 나눠 서로를 견제하고 있다. 이런 견제를 법으로 보면 다음과 같다. 예산안 편성권을 가진 기획 재정부는 법률안 제출권을 가진 것과 같고 심의 및 확정권을 가진 국회는법률 제정권을 가진 것과 같다. 예산안 편성권을 가진 기획 재정부는 정책에 있어 행정부를 대표하는 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정책 중 총 사업비 규모가 500억 원 이상이고 국가의 재정 지원이 300억 원 이상인 신규 사업은 예비 타당성 조사를 행하여 타당한지 조사한다. 워낙 예산 비용이 커서 섣불리 진행했다가 돌이킬 수 없는 손해를 볼 수 있기에 미리 타당한지조사하는 것이다. 예비 타당성 조사는 기획 재정부 주관으로 진행되며 행정부처의 조사요구 공문을 받으면 법적 요건이나 구체성이나 시급성 등을 검토한 후에 한국 개발 연구원 등의 연구 기관에 경제적 분석인 B/C 분석을 의뢰하여 결과를 받은 다음 사업 타당성 분석인 AHP로 평가하여 통과 유무 결과를 행정 부처에 보낸다. B/C 분석은 비용 대비 편익인 가성비를 말하며 총 편익을 총 비용으로 나눈 비율이 1이 넘으면 경제적 타당성이 있다고 판단한다. AHP는 계층화 분석법으로 경제성과 정책성과 기술성과 지역 균형 발전을 고려하여 산정된 가중치와 사업시행 적합도를 곱해서 나온 수치를 총합하여 0.5를 넘으면 사업 타당성이 있다고 판단하여 예비 타당성 조사를 통과시킨다. 사업 중에서 연구 개발 사업은 한국 과학 기술 기획 평가원에서 예비 타당성 조사를 실시한다. 타당성이 확보된 사업은 추진 여건을 고려하여 기획 재정부 장관에게 해당 사업 관련 예산 등을요구할 수 있다. 중요하거나 긴급하다 판단되는 사업은 예비 타당성 조사가면제되기도 한다. 이를 악용하여 정치가가 공약을 달성하기 위해 면제를 무분별하고불합리하게 요구하는 것으로 예비 타당성 조사의 의의가 의미 없어지기도 한다.

 

둘째, 정책 결정. 정부 의제를 채택하느냐 기각하느냐 판단하는 것부터 정책결정이다. 채택은 적극적 정책 결정이고 기각은 소극적 정책 결정으로둘 다 정책 결정이 된다. 기각이 정책 결정이 되는 것은 해당 의제를 정부 의제로 채택하지 않을 것이라는 결정을 했기 때문이다. 해당 의제를 정부 의제로 채택하기로 결정했으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을 찾아야 한다. 방법은 내부인 공식 참여자가 주도하는 것과 외부인 비공식 참여자가 주도하는 것으로 나눌 수 있다. 통상 내부인 공식 참여자가 주도하는 것은 비민주적이게 될 수 있기에 후진적이라 하고 외부인 비공식참여자가 주도하는 것은 민주적이게 될 수 있기에 선진적이라 한다. 그러나 내부와 외부는 정책의 성질로 구분되어야 하는 것으로 후진적이거나 선진적이라 단정지을 수 없다.

국가 구조 유지를 위한 정책을 외부가 주도하게 되면 개인의 의사에 의해 합리적 기준을 통한 균형을이루기가 어려울 수 있다. 만약 구조 유지를 위한 복지 정책을 주관적인 A의 의견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여 A가 주장한 복지를 추진하면 의견을 내지 못한 B나 C는 복지 정책 대상임에도 복지를 받지 못할 수가 있다. 그러면 B나 C가 아사로 죽거나 불행으로 자살하여 구조의 요소가 사라질수 있다. 복지 정책과 같이 구조 유지가 목적인 정책은 개개인을 위한것이 아닌 구조 유지를 위한 것임을 확실하게 인식해야 한다. 괜히 개개인을 위한 복지 정책이라고 홍보하면 복지 정책 해당자와 비해당자 사이에서 불필요한 갈등이 발생할 수 있다. “A의 행복은 중요하고 B나 C의 행복은 중요하지 않단 말인가?” 복지 정책은 철저하게 구조 유지를 명분으로 삼아야 잡음이 없다. 개인이 아닌 구조 유지가 목적이어야 복지 정책이 부담스러운 개인이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태가사라지고 복지 정책에 의한 혜택을 개인을 위한 권리라고 여기며 담당 공무원을 윽박지르며 협박하는 사태도 사라지게 된다. 생존주의적 자유주의에 근거한 사회 계약에 따라 사회에 속한 모든 개인은 본인이 원치 않더라도질서를 지키듯이 본인이 원치 않더라도 행복해져야 한다. 여기서 개인의 의사는 행복 유무가 아닌 행복의 방법에 있듯이 복지 정책 유무가 아닌 복지 정책 방법에 반영되어야 한다. 구조 유지를 위한 것 중 사회 간접 자본인 도로, 철도, 항공과 같이 해당 지역 부동산 가격에 영향을 주는 정책은 외부가 주도하게 되면 부동산 투기가 일어날 수 있어 내부가 주도하는 것이 바람직하게된다. 이렇게 구조 유지가 목적인 정책은 내부가 주도하는 것이바람직하다.

그러나 국가 원리 추구를 위한 정책을 내부가 주도하게 되면 개인의 의사 반영에 의한 합리적 기준을통한 불균형을 이루기가 어려울 수 있다. 시장은 개인의 의사가 반영되어 불균형한 결과가 당연하다. 상품의 품질이 좋고 가격이 저렴함에도 균형 정책에 의해 공급이 제한된다면 개인의 의사가 반영되는 시장의 의미가 퇴색되게 된다. 공급 제한으로 우수한 상품을 공급하지 못한 공급자와 우수한 상품을 소비하지 못한 소비자는 그규제로 불행하게 된다. 지금까지는 왕정의 윤리를 근거로 시장에서 균형을 맞추려했던 탓에 불행한 사람이 많았다. 시장은 합리적 기준으로 불균형하게 해야 한다. 원리 추구를 위한 정책은 시장과 같이 불균형해야 하는 곳에서 균형적이게 할 것이 아니라 임의의 가치 판단으로 균형적이게 하는 담합과 독과점을하지 못하게 막아야 한다. 국가 원리 추구로 불균형하게 되면 국가 구조 유지를 통해 균형을 맞추면 된다. 그러면 개인의 의사라는 원리가 추구되면서 국가의 생존이라는 구조가 유지될 수 있다. 이렇게 원리 추구가 목적인 정책은 외부가 주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정책을 만들 때에는 정책에 필요한 법률이나 명령이나 규칙을 새로 만들거나 수정하는 정부 입법을해야 할 때가 있다. 여기서 법률은 통상 5개월에서 7개월 걸리는 국회에서 심의를 받는 일반적 절차를 말한다. 절차는 다음과 같다. 입법 계획 수립, 법령안 입안, 관계 기관과 협의, 당정 협의, 입법 예고, 규제 심사, 법제처 심사, 차관 회의 및 국무 회의 심의, 대통령 재가, 국회 제출, 국회 심의 및 의결, 공포안 정부 이송, 국무 회의 상정, 공포. 정부 입법은 굉장히 긴 과정을 거친다. 반면 의원 입법은 규제 심사가 빠져 상대적으로 짧다. 이는 입법부의 입법권을 침해하지 않기 위해서라고 한다. 그런데 의원 입법에 규제 심사가 빠져 입법권 악용이나 남용 같은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규제 심사가 없어서 매년 의원 입법 수가 늘어나고 있는데 그에 따라 체제에 해로운 법률을 늘리는입법권 남용 사례나 규제 심사를 피하기 위해 정책에 필요한 법을 정부 입법이 아닌 의원 입법으로 하는 청부 입법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 체제에 해로운 법률은 사회 체제가 바뀌지 않는 이상 부당한 것으로 입법권 악용이라 할 수 있고청부 입법은 정당한 절차가 아니므로 입법권 남용이라 할 수 있다. 과거에 비해 의원 입법이 지속적으로 늘어남에 따라 잘못된 의원 입법을 방지하기 위해 규제 심사를 도입해야 한다고 본다.

정부 입법은 과정이 길어 급변하는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하기 어렵기 때문에 행정부가 입법부의 입법권을위임 받아 법률과 대통령령이 지정해둔 범위 내에서 상대적으로 절차가 짧은 명령과 규칙을 제정한다. 명령은 시행령인 대통령령을 말하고 일반적 절차의 대통령 재가까지 진행되며 법률 내에서 제정한다. 규칙은 시행 규칙인 총리령과 부령을 말하고 법제처 심사까지 진행되며 대통령령 내에서 제정한다. 총리령과 부령을 그림으로 비유하면 다음과 같다. 헌법이란 도화지에 법률이 선을 그리고 법률이 그린 선 안에서 대통령령이 색을 칠하고 대통령령이칠한 색 안에서 총리령과 부령이 덧칠한다.

 

셋째, 정책 집행. 정책 집행은 만든 정책을 실제로 집행하는 것을 말한다. 정책 집행에는 정책을 결정한 정책 결정자와 정책을 집행하는 정책 집행자가 모두 참여한다. 정책 집행의 유형에는 정책 결정자와 정책 집행자 사이의 관계를 정의한 유형인 고전적 기술자형과지시적 위임형과 협상형과 재량적 실험형과 관료적 창도자형으로 나누어 있다. 유형은 주도권에 따라 달라진다. 정책 결정자는 예비 타당성 조사를 받은 사업과 같이 사업 규모가 큰 정책을 주도하고 정책 집행자는사업 규모가 작은 정책을 주도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정책의 실패는 정책 자체 실패와 정책 집행 실패로 나뉜다. 정책 자체에 문제가 있어서 집행을 실패할 수 있고 정책 자체는 문제가 없는데 환경이나 대상의문제로 집행에 실패할 수 있다. 정책 자체 실패는 조사가 미흡하여 도로나 항공 등의 이용자 수가 적은 것과 같은 것을 말한다. 정책 집행 실패는 감염병 예방과 같이 국민 동참이 필요할 때 국민이 동참하지 않는 것과 같은것을 말한다. 엄밀히 보면 정책 집행 실패 또한 어느 측면에서 정책 자체실패로 봐야 한다. 정책은 예측할 수 있는 것은 전부 예측하여 상황 별로 대처할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것은 어려우므로 정책의 이상이라 할 수 있다.

 

넷째, 정책 평가. 정책 평가는 주로 신규 사업 및 계속 사업을 결정할 때쓰이는 피드백용이다. 정책 평가의 기준은 학자마다 다르다. 던의 기준만 알아보겠다. 던은 효과성과 능률성과 적정성과 형평성과 반응성과 적절성을 기준으로 삼아 평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책 평가는 특정 학자가 주장한 기준으로 모든 정책을 평가할 것이 아니라 정책 결정이나 정책집행과 같이 정책의 성질에 따라 다른 기준으로 평가해야 할 것이다. 구조 유지는 안정성을 보거나 원리 추구는 발전성을 본다거나 하듯이 말이다.

 

정책 과정에 대해 알아보았다. 앞서 알아본 것과 같이 정책 과정 밖에 정책 판단 기관은 없었다. 마찬가지도 정책 과정 안에도 정책 판단 기관은 없었다. 정책에 대한 의견을 내는데 도움을 줄 정책 전문가도 없었다. 법은 법의 판단을 하는 독립적인 기관에서 개인이 위임한 국선 변호사와 사선 변호사의 의견을 내는것으로 법리가 발전하며 판결과 판례가 체계적으로 쌓여 법이 발전했으나 정책은 정책의 판단을 하는 독립적인 기관도 없고 개인이 위임할 정책 전문가도없어 전문적인 의견을 내지 못하여 그에 따라 정책이 발전하지도 못했고 판단에 의한 판례도 없어 정책이 체계적으로 발전하지도 못했다. 그러므로 정책 또한 법과 같이 정책 자체를 판단할 정책 판사와 정책에 대한 의견을 대신할 정책전문가가 공적으로 도입되어야 한다.

 

 

첫째, 독립된 정책 판단 기관. 법은 전문성을 갖춘 독립된 판단 기관인 사법이 있어 잘못 만들어지거나 집행되더라도 사법에서 위헌을 하거나 법관 재량으로 유무죄나 적절한양형을 통해 대응할 수 있다. 그런 안전장치가 있어 법의 만듦과 집행이 잘못되더라도 안전하다 할 수 있다. 그러나 정책은 잘못 만들어지거나 집행되더라도 독립된 판단 기관이 있어 공적인 대응이 까다롭게된다. 집행의 경우 행정 심판이나 민원으로 대응하더라도 만듦은행정 법원에서 법에 관련된 것 외에는 독립적으로 정책 판단을 요청할 곳이 없다. 독립된 정책 판단 기관이 있다면 안전장치가 되어 정책이 만들어지거나 집행할 때 잘못되더라도 안전하게될 것이다. 정책에 의한 비리나 불합리한 정책도 이렇게 독립된 정책판단 기관이 있었다면 빠른 시기에 막을 수 있을 것이다.

 

둘째, 정책 전문가. 정책에 있어 비공식 참여자의 의견은 바람직하나 전문성이부족한 이의 제기는 바람직하지 않을 수가 있다. 그렇다고 비공식 참여자의 의견을 듣지 않을 수는 없다. 그러므로 법의 변호사와 같이 정책도 정책 전문가가 있어야 한다. 정책은 법과 마찬가지로 전문가가 아니면 알기 어려우므로 정책 또한 정책에 의견을 내기 위해서 정책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개인의 의뢰로 변호사가 법정에 서는 것과 같이 개인의 의뢰로 정책 전문가도 정책 판단 기관에서는 것이다. 그렇게 전문가가 의견을 내야 하는 쪽이나 받는 쪽이나 좋다. 정책 성질에 따라 다르지만 무분별한 판단 요청이 발생할 수 있는 정책은 이해관계 당사자만 정책전문가를 선임하여 판단 요청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법에 국선 변호사와 사선 변호사가 있듯 국선 전문가와 사선 전문가가 있어야 가능한 많은 인간이 전문가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지금처럼 행정부가 국민의 의견을 수렴하는 것에 끝나면 전문적인 의견의 경쟁에 의한 발전이 어렵게된다.

 

셋째, 정책 판단 피드백. 법의 판례처럼 정책 판단 사례, 즉 정책 판례가 있으면 그걸 바탕으로 체계적인 발전이 가능하다. 법의 판례가 기준이 되었던 것처럼 정책 판례도 기준이 되어 정책의 신규 사업이나 계속 사업을 결정할 때 참고할 수 있는 자료가 되고, 정책에 의견을 낼 때도 참고할 수 있는 자료가 되어 적극적 활용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정책 판단에서 잘못되었다 판단된 정책이라 하더라도 사업의 매몰 비용이 높아 중도 취소가 불가능할수 있다. 그럴 때에는 피드백으로 활용하여 다음 사업에 참고하는 판단으로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행정부가 수렴한 의견과 비슷할 수 있으나 독립된기관이 전문적인 의견을 듣고 판단한 결과와 전문성의 차이가 날 것이다. 법의 판결이 언론에 공개되어 법의 국민 참여가 발생하는 것과 같이 정책 판단이 있어 언론에 공개되면 정책의 국민 참여가 발생할 수 있을것이다.

 

넷째, 정책 참여자 충돌 중재. 정책 참여자의 의견이 충돌할 경우 의견에 대한 판단을 할 독립된 기관이 없었기에 의견 충돌을 피해 예산을 타기 위해 예산안 편성권을 가진기획 재정부 관료와 물밑 접촉을 시도하는 일이 있었다고 한다. 만약 사법도 독립된 판단 기관이 아니었다면 이와 같은 물밑 접촉에 의한 사법 거래가 일반적이었을지도 모른다. 정책 판단 기관과 정책 전문가가 있다면 각각의 충돌로 인한 갈등을 중재할 수 있을 것이다. 가령 선거 공약에 의한 정치가와 정치가 또는 정치가와 관료의 충돌, 환경 규제에 의한 환경 단체와 기업의 충돌, 겹치는 정책에 의한 관료와 관료의 충돌 등을 중재할 수 있을 것이다.

 

다섯째, 권력으로부터 독립. 지금까지 정책은 정권이 정책이나 정책의 규제에 태도를 바꾸거나 정권이 바뀌지 않는 한 잘못되었다 하더라도 막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권력으로부터 독립된 정책 판단 기관이 있다면 전문적인 의견으로 부당한 정책이나 정책의규제를 폐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독립된 정책 판단 기관이 정책이나 규제를 부당하게 잘못된 판단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사법의 역사를 참고하는 것으로 그런 것을 최대한 방지할 수 있을 것이다. 부유한 사람이 고비용의 변호사를 선임하여 법정에서 유리한 것과 같이 고비용의 정책 전문가를 선임하여정책 판단 기관에서 유리할 수 있다. 그러나 공적인 기록으로 남는 것이 보다 공정하다. 사법에 전관예우와 같은 문제가 정책에도 있을 수 있으나 공개되기 때문에 쉽게 할 수가 없다.

 

여섯째, 정책 판단 기준. 정책은 예비 타당성 조사와 같이 임의의 기준으로 만들지법과 같은 절차로 만들어지지는 않는다. 기준이 없다 하더라도 의견을 종합하여 판단할 수 있으나, 중요한 기준 몇 가지를 입법부가 제안한다면 삼권 분립과 같은 견제가 가능할 수도 있다.

 

일곱째, 정치가 공약. 정치가 공약은 공수표가 많았다. 정치가 공약 중에서 정책에 관한 것은 정책 판단 기관에서 실현 가능성을 판단한다면 공수표가 줄어들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이런 판단이 정치가의 자유로운 공약을 막을 수 있으나 정책타당성 판단에 대해 유권자가 알 권리는 존중되어야 한다. 그렇게 정책 실현 가능성에 대한 판단이 나오면 일단 공약을 내뱉고 보는 현상이 줄어들 거라 생각한다. 지금처럼 정치가가 포퓰리즘을 남발하고 관료는 정치가의 공약에 의해 단발성 정책을 추진해 예산을낭비하고 눈 먼 돈에 눈이 멀어 예산을 부정취득 하려는 자들로 넘치고 그로 인해 지원 자격이 까다로워지면서 꼭 필요한 이들에게 정책적 지원이 되지못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 우수한 정치가도 공정한 경쟁을 바랄 거라 생각한다.

 

 

정책 판단 기관에 대해 알아보았다. 정책 판사와 정책 전문가는 사실 지금까지 크게 다르지 않다. 정책 판사는 여러 명 있을 수 있고 배심원제와 같이 전문적이지 않은 외부 인원이 들어올 수도있을 것이다. 단지 법원과 같이 공적인 기관을 만들어 권력으로부터 독립하는것일 뿐이다. 그런데 그게 중요하다. 만약 사법이 독립되지 않았다면 잘못된 판단이나 지금과 같은 발전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정책 판사와 정책 전문가는 해당 분야의 관료나 전문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새로운 방식이므로 우선 경험이 많은 관료나 전문가로 시작하되, 이후에는 법과 비슷한 방식을 취하면 될 것이다.

정책 판단 기관을 사법부에 포함하여 행정 법원 옆에 둘 것인지 아니면 행정부에 포함하여 행정심판을 바꿀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전자를 하면 법과 정책 판단을 통합하는 것으로 명확한 역할 분담이 가능해지나, 정책은 행정부가 주도해왔기 때문에 사법부의 월권처럼 보일 수가 있다. 후자를 하면 사법부의 월권으로 보이지는 않겠지만 권력으로부터 독립되었다 할 수 없을 것이다. 삼권 분립과 같이 권력으로부터 독립되어 서로 견제하기 위해서는 사법부에 행정부의 관료가 임용되어일하는 것이 타당하다 본다. 그렇게 된다면 법치주의와 같이 모든 개인이 욕망과 이기심을 토대로 한 자유 의지를 가지고 행동해야 올바른 결과가 나올 것이다. 그러면서 법이 성장했던 것과 같이 정책도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정책에 대해 알아보았다. 복지는 법과 달리 체계적이지 못했다. 정책은 법과 달리 독립되어 있지 않았다. 복지는 법과 사회 구조 유지의 기본으로 중요하고 정책은 국가 구조 유지의 기본으로 중요했으나그런 체계성이 부족했다. 어째서 이런 차이가 발생하였는가? 그것은 관습에 의한 결과다. [관습은 어떤 사회에서 오랫동안 지켜 내려와 그 사회 성원들이 널리 인정하는 질서나 풍습을 뜻한다.]

인류의 역사는 전쟁이 일상이었다. 정복 전쟁의 승자가 지배하고 패자가 지배당했다. 그렇게 하여 지배자와 피지배자로 나뉜 신분제가 나타났다. 이런 신분제는 고대 그리스 아테네 민주주의에서도 시민과 노예로 나뉜 것으로 존재했다. 정복과 지배의 반복을 통해 국가의 지배자는 피지배자의 복지에 크게 관심이 없었다. 쓸모가 없어진 피지배자는 죽게 내버려두었다. 그런데 복지는 사회 구조 유지의 기본으로 없으면 인간이란 요소가 사라져 구조가 무너지게 된다. 과거 사회도 예외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사회 구조가 유지되었던 것은 종교가 있었기 때문이다. 원시적인 사회인 원시 부족도 피지배자가 지속적으로 불행하여 죽으면 부족의 힘이 쇠락하여 자연환경에 의해 도태되거나 다른 부족의 공격으로 사라지게 된다. 보편적 복지가 없는 사회는 일부를 제외하고 그렇게 도태되는 것이 자연스러웠으나 종교의 등장으로 달라지게 된다. 종교는 피지배자가 겪을 수 있는 지배에 의한 억압, 병의 의한 고통, 죽음에 의한 공포, 빈곤에 대한 절망, 폭력에 대한 불안 등의 다양한 불행을 신앙이나 빈곤 구제 등으로 행복하게 하였다. 사회의 복지를 종교가 담당하면서 사회 구조 유지가 된 것이다. 지배자 또한 병의 고통이나 죽음의 공포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으므로 그들 또한 이내 종교에 의존하게되었다. 종교로 불행을 면하게 된 이들이 종교를 중심으로 결집하면서사회가 보다 단단하게 유지되게 되었다. 대부분 지역에서 종교의 흔적이 남은 것은 지금까지 인류의 사회는 종교가 없었으면 유지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종교는 인간을 행복하게 하는 것으로 인간에게 지지 받아 강한 권력을 얻게 되었다. 프랑스에서 제1신분이 성직자고 제2신분이 귀족이었다. 인도에서 제1계급이 승려인 브라만이고 제2계급인 왕과 무사가 크샤트리아였다. 이와 같이 종교가 복지를 담당했었기에 국가의 복지는 체계적이지 못했던 것이다.

국가의 정책이 법에 비해 체계적이지 못한 까닭은 종교가 복지로 권력을 얻은 것을 알고 있음에도복지는 종교의 영역이라 생각하며 법만이 권력이라 생각하며 법을 중심으로 삼권 분립을 했기 때문이다. [삼권 분립_법률은 국가의 권력을 입법, 사법, 행정의 삼권으로 분리하여 서로 견제하게 함으로써 권력의남용을 막고, 국민의 권리와 자유를 보장하는 국가 조직의 원리를 뜻한다.] 구소련과 중국 공산당이 노동자 계급의 이익을 주장하는 것으로 지지를 받아 혁명이 일으켜 권력을쟁탈했던 것과 민주주의 국가의 정치가가 국민의 행복을 주장하는 것으로 지지를 받아 권력을 얻은 것을 고려하면 복지 또한 국가의 권력 중 하나이므로법과 같이 삼권 분립으로 권력을 나누어 서로를 견제하는 것이 마땅했다. 민주적일수록 다수의 국민은 복지 정책에 관심을 갖게 되므로 실질적으로 복지 권력이 더 강해질 수도 있다. 그런 만큼 복지 권력도 분립해야 한다. 그와 동시에 다른 분야의 정책 또한 권력에 해당하므로 법과 복지와 함께 삼권 분립을 했어야 했다고본다. 그러면 합리적이었을 거라 생각한다.

 

 

인류의 복지를 담당하던 종교에 대해 알아보자. [종교_종교 일반은 신이나 초자연적인 절대자 또는 힘에 대한 믿음을 통하여 인간 생활의 고뇌를 해결하고 삶의 궁극적인 의미를 추구하는 문화 체계를뜻한다. 그 대상·교리·행사의 차이에 따라 여러 가지 있는데, 애니미즘·토테미즘·물신 숭배 따위의 초기적 신앙 형태를 비롯하여 샤머니즘이나 다신교·불교·기독교·이슬람교따위의 세계 종교에 이르기까지 비제도적인 것과 제도적인 것이 있다.] 현대 종교는 기독교, 이슬람교, 힌두교, 불교, 유교, 도교 등이 있다. 유교에 불교에 영향을 받아 통치나 수행을 명분으로 삼아 내정에 충실했던 동양과 기독교와 이슬람교에영향을 받아 선교를 명분으로 삼아 세계를 떠돌던 서양과 같이 종교는 믿는 인간에게 막대한 영향을 끼친다. 유교와 힌두교를 예시로 사회에 영향을 끼치는 것을 좀 더 알아보자.

유교가 보편적인 한국에서는 자신의 몸과 마음을 닦아 남을 다스린다는 수기치인을 근거로 학문을갈고 닦아 능력을 갖추면 타인을 다스릴 수 있고 능력이 없으면 타인에게 다스림 당할 수 있다고 여겼기에 지배당하는 이들은 능력이 부족한 것이라생각하며 그들을 천시하는 것과 같은 부당한 차별을 정당화하였다. 한국에서 다양한 차별이 사라지지 않는 까닭은 능력으로 부당한 차별을 정당화하는 수기치인이나 연령으로 부당한 차별을 정당화하는 장유유서와같은 가르침으로 나타난 관념 때문이다. 역할이란 관계에 따른 능력을 고려하지 않고 개인이 부당한 차별로 인한 불행을 겪으면 그저 능력이 부족한 것이라며 차별을 정당화하였다. 힌두교가 보편적인 인도에서는 살아가면서 하는 모든 행위를 말하는 업에 대해 배워 선업을 행하면후생에 존귀한 존재가 되고 악업을 행하면 후생에 미천한 존재가 된다고 여겼기에 미천한 삶을 사는 이들은 전생에 악업을 행하였기 때문이라 생각하며그들을 천시하는 것과 같은 차별을 정당화하였다. 인도에서 다양한 차별이 사라지지 않는 까닭은 업과 같은 가르침으로 나타난 관념 때문이다. 전생의 업이라는 과학적 증명도 되지 않은 미신으로 개인이 차별로 인한 불행을 겪으면 너의 업때문이라고 말하며 차별을 정당화하였다.

이외 각국에 남아있는 대부분 차별은 과거 종교의 영향이 매우 크다. 종교의 가치관은 개인주의 체제와 무관하기 때문이다. 대부분 종교는 인간의 욕망을 악으로 보고 금욕과 이타를 강조했기 때문에 개인주의 체제에 해로울수밖에 없다.

 

종교의 본질은 무엇인가? 주제가 사회와 복지이므로 행복을 관점으로 종교를 바라보았다. 종교는 인간을 어떻게 행복하게 했는가? 신앙이나 빈민 구제다. 신앙은 정신적 행복이고 빈민 구제는 물질적 행복이다. 빈민 구제는 알기 쉽다. 인간은 육체의 욕구가 충족되면 행복을 느낀다. 그런데 신앙은 알기가 어렵다. [신앙은 믿고 받드는 일을 뜻한다. 신앙_종교 일반은 초자연적인 절대자, 창조자 및 종교 대상에 대한 신자 자신의 태도로서, 두려워하고 경건히 여기며, 자비·사랑·의뢰심을 갖는 일을 뜻한다.] 이 행위가 어떻게 인간을 행복하게 했는가? 종교의 성질인 신비성과 맹신성과 신성성과 도덕성과 목적성과 집단성과 흡수성 등을 배제하고 현실에 있지 않는 것을 믿는 것으로 마음의 안정을찾아 행복해지는 것에 초점을 맞추어보았다. 그러자 결론은 단순했다. 그것은 현실에서 도피하여 마음의 안정을 찾아 행복해지는 현실 도피와 원리가 똑같았다. [현실 도피_심리는 생각이나 행동에서 현실에 적극적으로 맞서기를 회피함을 뜻한다] 종교의 현실 도피는 사회의 현실 도피와 거의 차이가 없었다. 차이는 맹신 하나다. 종교의 현실 도피는 그것을 현실이라 믿고 사회의 현실 도피는 그것을 비현실로 여긴다. 만약 사회의 현실 도피도 그것을 현실로 여기면 종교와 같은 현상이 나타날 것이다.

어떤 사람은 종교의 신이 실재하니 현실 도피가 아니라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기성 종교든 신흥 종교든 세상에 있는 종교는 단 한번도 전지를 증명한 적이 없다. 분명 이 세상이 어떤 존재에 의해 만들어졌을 확률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인간이 주장한 존재가 만들었다고 하기에는 그 존재를 신으로 받드는 이들의 가르침에는인간의 인지를 초월한 지식이 없었다. 오로지 종교가 만들어졌을 당시에 살고 있던 인간의 인지 내에서의 지식만 있었다. 오래된 기성 종교가 현대의 인터넷을 알고 있었는가? 과거의 공룡을 알고 있었는가? 지금보다 미래의 무언가를 알고 있었는가? 그렇다고 당대 다른 지역을 알고 있지도 않았다. 경전의 가르침은 당대 보편적 지식과 차이가 없었다. 오히려 고대 그리스 철학자의 지식보다 못하여 유럽이 고대 그리스의 지식을 배우자 르네상스가 일어났을정도다. 그러므로 그 가르침은 신의 말씀이 아닌 종교인의 가르침일뿐이었다. 그러니 논리적으로 종교는 인간의 창작물로 판단할 수밖에없다.

 

종교의 현실 도피는 원시 부족 때부터 있었다. 원시 부족은 자연을 숭배하는 원시 종교로 자연의 공포라는 현실에서 도피하는 것으로 마음의 안정을찾아 행복하게 되었다. 그것으로 사회 구조가 유지되었다. 이처럼 종교의 현실 도피는 현실 도피 후 마음 안정을 찾아 행복해진다라는 원리로 작동한다. 종교의 현실 도피는 매우 다양하다. 종교인은 신과 조상이 위나 곁에 있다고 믿으며 괴롭거나 외롭다는 현실에서 도피했다. 종교인은 구원, 천국, 사후 세계를 믿으며 죽음 후 공포라는 현실에서 도피했다. 종교인은 인간은 모두 평등하다고 믿으며 불평등한 현실에서 도피했다. 종교인은 금욕하는 것으로 욕망으로 동족을 해치는 현실에서 도피했다. 종교인은 신의 용서를 믿으며 죄를 지은 현실에서 도피했다. 종교인은 신앙으로 본인이 특별한 존재다 된다 믿으며 특별하지 않은 현실에서 도피했다. 그야말로 전형적인 현실 도피다. 그렇다고 종교인만 현실 도피 하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 인간이 현실 도피를 한다.

사회의 현실 도피는 흔하게 볼 수 있다. 사회인은 창작물이나 스포츠에 빠지는 것으로 지루한 현실에서 도피하는 것으로 마음의 안정을 찾아행복하게 되었다. 그것이 사회 구조 유지에 도움을 주고 있다. 이처럼 사회의 현실 도피도 현실 도피 후 마음 안정을 찾아 행복해진다라는 원리로 작동한다. 사회인은 국가 구성원의 위대한 업적에 빠지는 것으로 평범한 현실에서 도피했다. 사회인은 망상에 빠지는 것으로 일상적인 현실에서 도피했다. 사회인은 타인의 불행에 빠지는 것으로 본인의 불행한 현실에서 도피했다. 사회인은 온라인 커뮤니티에 빠지는 것으로 오프라인 현실에서 도피했다. 사회인은 가상 현실인 VR에 빠지는 것으로 실제 현실에서 도피했다. 사회인은 술이나 마약에 빠지는 것으로 비참한 현실에서 도피했다. 매우 일반적인 현실 도피다.

대부분 일반 인간은 현실 도피를 하기에 종교인의 비율이 낮은 곳일수록 사회의 현실 도피 비율이높아지게 되었다. 창작물, 스포츠, 국가 포장 영상, 술, 담배, 마약, 등이 유행하게 되었다. 과학도 예외는 아니다. 알고 있는 과학 지식으로 있을 수 없는 현상이 일어날 때 무조건 부정하는 것은 과학의 현실 도피에해당한다. 가령 양자역학이 말하는 당시 과학 지식으로는 황당한 현상을무조건 부정하는 것이 과학의 현실 도피에 해당한다. 어떤 경우에도 현상이 첫째고 이론이 둘째다. 이론과 다른 현상이 나오면 이론을 배제하고 현상을 관찰해야 한다. 이론에 맞는 현상이라 하더라도 새로운 관점을 보기 위해서는 이론을 무시하고 처음부터 현상을 관찰해야한다.

종교의 본질이 현실 도피라면 종교의 다양한 특성도 해석될 수 있다. 종교에서의 신성성과 도덕성은 종교의 현실 도피를 정당화하는 것으로 사회의 현실 도피를 자기 합리화등과 같이 다양한 이유로 정당화하는 것과 비슷하다. 종교에서의 소속감은 같은 현실 도피를 하는 이들이 모인 곳에 소속감을 느끼는 것으로 사회에서 현실 도피 하는 이들이 같은 현실 도피를 하는이들이 모인 곳에 소속감을 느끼는 것과 비슷하다. 종교에서 우수하고 부유한 이들이 현실 도피를 하는 것은 사회에서 우수하고 부유한 이들이 현실 도피를 하는 것과 비슷하다. 모든 종교인은 종교에서 현실 도피 하는 것으로 마음의 안정을 가져 행복을 누렸다.

유교도 예외는 아니다. 복권보다 확률이 낮은 실낱 같은 가능성에 기대어 모든 인간이 유교의 가르침을 붙들고 공부하게만들었다. 과거 병인양요 당시 프랑스인 증언에 따르면 조선은 아무리가난한 집에도 책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수기치인으로 모든 인간을 학문으로 현실을 도피하게 했으니 책이 있을 수밖에 없다. 조선 자체도 현실 도피를 했다. 조선은 유교의 가르침을 믿고 따른다면 국가가 성장하고 국민이 행복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현실 도피를 하는 것으로 인류나 국가에 이로운 것을 새롭게 생각하여 가치 있는 것을 생산한 것이 아니라 과거의 가르침을 교리처럼 암기하고 해석하는것에 그쳐 정교일치의 국가와 마찬가지로 국가가 성장하지 못하고 국민이 불행하여 몰락하게 되었다. 가난한 집조차 책이 있었음에도 국가가 몰락하고 국민이 불행했던 것은, 그 책은 종교의 경전이었고 그 책의 가르침은 종교의 교리와 다를 바 없었으며 그 책을 소유한이유도 종교의 현실 도피와 다를 바 없었기 때문이었다. 신을 모시던 종교는 종교와 학문을 분리하여 성장했으나 학문을 종교처럼 따르던 종교는 종교와 학문을 분리하지 못하여 성장도 하지 못했다. 정리하면 종교는 맹신적이고 권위적이며 조직적인 현실 도피다. 현실 도피 자체는 누구나 하기에 그리 특별하지 않으나 현실 도피임을 자각하는 것과 그러지 않은것은 매우 다르다.

 

종교에 대해 알아보았다. 종교는 현실 도피와 빈민 구제로 인간을 행보하게 하여 권력을 얻었다. 그러다 왕정이 무너지고 민주정이 들어서면서 개인이 중시되는 개인주의 체제인 국가에서는 종교의영향력이 감소함에 따라 복지 행정 부처와 사회 복지사의 역할은 커져갔는데 종교가 가졌던 권력에 비하면 크지 않은 편이었다. 과학의 발달로 질병에 의한 고통을 종교가 아닌 의료계가 담당하면서 종교의 힘 일부를 의료계가계승하였다. 그러나 종교와 의료계의 치료는 결정적으로 차이가 있었다. 종교의 치료는 현실 도피지만 의료계의 치료는 현실 직시였다. 일부 광신자를 제외하면 인간 육체에 관한 치료를 의료계가 담당하면서 종교의 권위와 재력을 일부얻게 되었다. 그러나 그 중에 정부 권력은 적었다. 의료계 출신의 정치가는 수가 적었다. 기득권 사이의 인맥이나 환자에 갖는 강제력과 모든 국민이 갖는 권력은 있어도 정부 권력은 적었다. 실제 종교가 가졌던 권력은 대부분 정치가가 계승하였다. 지금 대부분 정치가의 공약에 어떤 형태로든 복지 공약이 들어가고 있다. 종교가 민중에게 복지를 하여 지지를 받는 것으로 권력을 얻었던 것과 같이 정치가가 국민에게 복지를하겠다고 하여 지지를 받는 것으로 권력을 얻고 있다. 선진국일수록 민주주의 지수가 높아 지배를 통한 권력을 얻지 못하기에 복지를 통한 권력을 얻는 경우가 많아졌다.

정치가는 법과 복지를 둘 다 다루지 그 분야에 속한 것은 아니다. 법과 복지는 정치와 무관하게 권력이 있어야 했다. 법조계는 사법부라는 형태로 독립적인 권력이 있었다. 그러나 복지는 그런 것이 없이 모든 분야의 일부에 속해 있어 보건 복지부로 통합되지도 못하고독립적인 기관도 없었다. 사회 구조 유지의 기본인 복지는 법과 마찬가지로 독립되어권력을 얻을 필요가 있다. 복지뿐만 아니라 모든 분야는 독립되어 판단하는 기관이 필요하다. 법의 삼권 분립을 모든 분야에 확장해야 한다. 그렇게 하여 보여주기 식 정책이나 포퓰리즘 정책에 대한 견제가 필요하다. 많은 사람들이 법을 불신하기도 하지만, 법의 삼권 분립이 우수하다는 것은 명백하다. 다른 분야도 삼권 분립과 같은 제도를 도입한다면 법의 합리성과 체계성이 국가 모든 분야에 퍼져합리적이고 체계적인 국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민주주의 국가의 국민은 본인의 권력을 제대로 쓰기 위해 정부 권력이 전문가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는것과 같이 국민 권력도 전문가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고 의사를 표현할 때에도 법의 전문가인 변호사를 선임하는 것과 같이 각각의 전문가를 선임하여표현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 그렇게 분야의 전문가를 중시하는 사회가 역할을 중시하는 역할주의 사회다.

 

 

개인주의 체제인 국가는 복지의 변화가 필요하다. 과거 종교는 현실 도피로 인류를 정신적으로 행복하게 했고 빈민 구제나 고아원 운영 등으로 인류를육체적으로 행복하게 했다. 그런 식으로 사회의 복지를 담당했다. 그런데 개인주의 체제인 국가가 되면서 종교의 영향력이 감소하게 되었다. 행정 부처와 복지 전문가와 의료계가 복지를 담당하게 되었다. 그런데 육체적 행복은 물질 지원이나 질병 치료 같이 알기 쉬워 대응할 수 있었으나 정신적 행복은어떻게 종교가 행복하게 했는지 알기가 어려워 대응하기 어려웠다. 오히려 현실 도피에서 벗어나 현실을 바라봐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을 정도다. 사회의 현실 도피도 있었으나 그것은 사회적 비판을 받아 자중하는 탓에 종교의 현실 도피와 비할수가 없었다. 특히 금욕주의가 강조될수록 사회의 현실 도피는 비판을 받았다. 이런 이유로 종교의 현실 도피를 하지 않는 인간과 사회의 현실 도피를 적게 하는 인간은 정신건강이 심각하게 악화되었다. 현대인이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것은 아는 것은 과거보다 많아졌으면서도 현실 도피는 과거보다 적게 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관념에 의해 알수록 불행해질 수 있다. 과학적 증명이 된 흡연의 해로움은 몰랐을 때엔 타인의 흡연을 불쾌해하지 않다가 알고 나면 불쾌해지면서불행해졌다. 과학적 증명이 되지 않은 성 죄악시는 몰랐을 때엔 성을불편해하지 않다가 알고 나면 성을 불편해하면서 불행해졌다. 진리와 무관하게 관념에 의해 알면 불편해지게 된다. 현대인은 아는 것은 많아져 스트레스 받을 일은 많아졌는데 현실 도피를 하지 않아 스트레스 풀 일은 줄어들면서 현대인은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수밖에 없었다.

종교가 인류 역사의 동반자였던 것을 고려하면 대부분 인간에게 현실 도피는 필요하다. 나 또한 현실 도피로 살아남았다. 선진국은 인간의 정신 건강을 위해 효율적이고 안전한 현실 도피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보통 창작물이나 스포츠가 적절하다. 그것의 성장이 곧 복지 중 정신적 행복에 해당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현실 도피에만 매달릴 수는 없다. 현실에 도피하지 않아도 행복해야 한다. 현실 도피적 행복은 문제는 해결하지 못하지만 현실을 도피하면서 행복해지는 것이라면 현실 직시적행복은 문제를 해결하여 현실에서 행복해지는 것을 말한다. 가령 외모로 불행할 경우 고민 상담이 현실 도피적 행복이고 화장이나 성형이 현실 직시적 행복이라 할 수 있다. 이에 따라 국가 복지는 현실 도피와 현실 직시 모두 고려해야 할 것이다.

정신병에 대한 부정적 선입견으로 정신 건강이 악화되어도 정신 질환 치료를 받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런 사회적 풍조에서 벗어나 모두가 정신 건강이 악화되어 정신 질환이 나타나면 치료를 받을 수있는 환경이 필요하다.

한국은 사회 행복도가 낮은 편이다. 한국은 왕정의 관념인 집단주의 관념과 민주정의 체제인 개인주의 체제와 충돌하여 기본적인 사회적불행 속에서 문맹률이 낮아 아는 것이 많고 종교 비율이 낮아 현실 도피가 적어서 그랬던 것이다. 그에 따라 모두가 개인주의 관념을 가지고 적절한 현실 도피와 현실 직시를 하게 되면 행복해질수 있다.

인간은 육체로 행복과 불행을 느끼므로 일반적으로 건강한 육체가 최고의 행복이 된다. 그러므로 이상적인 현실 직시적 행복은 과학을 통해 개인이 불로불사가 되는 것으로 생존 게임에서승리하는 것이다.

 

 

 

9. 가치 복지

 

복지 방법에 대해 알아보자. 일반적으로 복지에 대한 부정적 선입견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금욕주의에 의한 것으로 모든 인간이 욕망을 가지면 복지 정책의 혜택으로 얻는 행복에만족하지 않고 더 행복해지기 위해 가치를 생산하게 된다. 가치가 생산되면 복지를 하는 것은 바람직하게 된다. 현재 과한 복지를 하는 국가가 휘청거리는 것은 과한 복지에 의해 가치 생산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모두가 욕망을 가지면 과한 복지를 하더라도 가치 생산을 하여 국가는 더욱 발전할 수 있게 된다.

복지는 인간을 행복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면 행복은 무엇인가? [행복은 생활에서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느끼어 흐뭇함을 뜻한다. 또는 그러한 상태.][흐뭇하다는 마음에 흡족하여 매우 만족스러움 뜻한다.] 행복은 생활에서 만족과 기쁨을 느낀 상태를 말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행복할 수 있는가? 그것은 사람마다 다르다. 각자의 관점·관념·감각이 다른 것으로 인식이 다르고 가치관도 달라 각자의 행복이 다르다. 행복은 지극히 주관적이다. 행복을 돈이란 객관적 기준으로 접근할 수 있는데 객관적으로 불행해 보이는 빈자가 행복하여 여유롭게살 수도 있고 객관적으로 행복해 보이는 부자가 불행하여 자살할 수도 있다. 행복의 기준은 집단주의일수록 객관적이고 개인주의일수록 주관적이다. 집단주의 관념을 가진 사람은 본인의 가치관을 타인에게 강요하며 같은 행복을 추구하도록 강요하기때문이다. 가령 집단주의 관념을 가진 부모는 본인의 가치관으로 자녀의진로를 결정하도록 강요한다. 그러나 인간은 본인이 바라는 것을 이룰 때 행복해진다. 본인의 가치관으로 타인에게 행복을 강요해봐야 타인은 행복하지 않을 확률이 높다.

내가 바라는 것은 크게 세 가지 있다. 하나, 나의 사상으로 명예를 얻어 세상을 바꾸고 싶다. 둘, 나의 사상인 생존주의의 이념에 따라 살아남고 역할주의의이념에 따라 역할 중심 사회로 만들고 싶고 탐구주의의 이념에 따라 진리를 알고 싶다. 셋, 이상의 이성과 행복하게 살고 싶다. 그 외의 다양한 바람을 이루면 나는 행복할 것이다.

이렇게 인간의 행복은 사람마다 다르다. 본래 가치관이 각자 다르므로 다른 것이 자연스럽다. 특정 개인은 진리를 추구할 수 있고 도덕을 추구할 수 있고 아름다움을 추구할 수 있다. 그렇게 불균형한 것이 당연하다. 그렇기에 부도덕한 것도 개인의 행복이 될 수 있다. 모든 일반 개인은 옳은 행동을 한다. 그 옳은 행동의 원리에 개인의 행복도 포함된다. 객관적으로 부당한 폭력 또한 개인의 행복에 해당하기에 옳은 행동이라 여기며 행동한 것이다. 그런 폭력에 맞선 것도 불행을 피하기 위해 옳은 행동이라 여기며 행동하게 된다. 폭력을 행한 사람과 폭력에 맞선 사람 둘 다 행복하기 위해서와 불행을 피해 행복하기 위해서 그런것이었다. 이와 같이 옳고 그름이나 위법 유무는 행복의 기준이 될수 없다. 인간이 사회에 살고 있는 이상 인간의 행복이 충돌하면 누군가는행복하고 누군가는 불행할 수 있다. 그렇기에 대상 가치가 무의미하다. 대상이 선하더라도 행복이 충돌하면 죄를 저지를 수 있다. 인간을 이롭게 하려는 인간도 가족을 지키기 위해 범죄를 저지르는 수 있다. 반대로 대상이 악하더라도 행복이 충돌하지 않으면 죄를 저지르지 않는다. 인간을 해롭게 하려는 인간도 무인도에서 살아가면 죄를 저지르지 않는다. 가치는 인간의 관계에서 발생한다.

개개인에게 가치관을 강요하지 않는 한 개인을 기준으로 행복을 객관화하기가 어렵다. 그러면 객관화를 하지 못하여 합리적 기준을 통한 복지 정책을 실행하기가 어렵다. 그러므로 개인이 아닌 사회를 기준으로 접근해야 한다. 사회에 이로운 개인의 행복과 사회에 해로운 개인의 행복이다. 국가 정책은 국가에 이로운 행복이란 합리적 기준으로 복지 정책을 실행하면 된다. 그렇게 구조 유지를 위한 복지 정책을 하면 구조 유지와 무관한 개인의 행복도 자유롭게 추구할수 있다. 국가 구조를 유지하기 위해 국가에 이로운 행복이라는 객관적기준을 정하여 그것을 우대하는 것으로 각자의 주관적 기준에 따른 다양한 행복에 간섭하지 않으면서 개인이 자유롭게 행복을 추구하는 것으로 개인의의사라는 국가 원리를 추구한다.

 

국가는 실정법을 기준으로 질서를 유지하며 바른 행복과 그른 행복을 나누고 있다. [질서는 혼란 없이 순조롭게 이루어지게 하는 사물의 순서나 차례를 뜻한다.][순서는 정하여진 기준에서 말하는 전후, 좌우, 상하 따위의 차례 관계를 뜻한다.][차례는 순서 있게 구분하여 벌여 나가는 관계를 뜻한다. 또는 그 구분에 따라 각각에게 돌아오는 기회.] 법으로 순서와 차례를 정하여 질서를 유지하고 있기에 사회 질서가 유지되고 있다. 가령 차도에 신호등이 없다면 순서를 정할 수 없어 사람이나 차량이 충돌하여 사고가 날 수 있다. 법에서 각각의 순서를 정해 사람이나 차량이 사고가 나지 않도록 하고 있다. 또는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순서가 없다면 새치기 등으로 분쟁이 발생할 수 있다. 이것은 암묵적인 불문율인 선착순이란 기준으로 순서를 지켜 줄서기를 하는 것으로 분쟁을 줄이고있다. 분명 순서가 앞인 사람이나 차량은 시간을 절약하여 상대적으로행복할 수 있고 순서가 뒤인 사람이나 차량은 시간을 절약하지 못하여 상대적으로 불행할 수 있다. 여기서 교통법이나 선착순 같이 타당하고 합리적인 기준이 있다면 행복한 사람과 불행한 사람 모두수긍하게 된다.

여기서 교통법이나 선착순 같은 기준이나 절차를 지키면서 행복을 누리는 것이 바른 행복이 되고그런 기준이나 절차를 무시하고 교통법을 어기거나 새치기를 하는 것으로 행복을 누리는 것은 그른 행복이 된다. 이런 순서를 통해 모두가 욕망을 갖고 이기적으로 자유 의지로 행동해야 올바른 결과가 나온다. 부당한 이유로 교통법을 어기거나 새치기를 하는 인간을 볼 때 금욕적이고 이타적이라면 그런 인간의이익을 위해 부당함을 방치하지만 욕망적이고 이기적이게 된다면 그런 본인의 이익만을 위해 부당함을 방치하지 않고 지적하게 된다.

그른 행복도 정당성이 확보되는 바르게 될 수 있다. 가령 인간을 죽이거나 덮치거나 빼앗는 것으로 행복을 느끼는 것은 본인의 행복을 위해 타인을 불행케한 그른 행복이다. 그러나 정당방위를 통해 죽이거나 덮치거나 빼앗는 것으로불행에서 벗어나 행복을 느끼는 것은 정당화가 되어 바른 행복이 될 수 있다. 살해 위협을 받는 피해자가 가해자를 공격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상황에서 본인이 살아남기위해 가해자를 공격하여 죽이거나 움직임을 막기 위해 덮치거나 무기를 빼앗는 것은 가해자인 타인이 불행하더라도 정당방위라는 정당한 기준에 의해 정당화되어바른 행복이 된다.

실정법 준수 여부 외에도 사회에 끼치는 영향으로 바른 행복과 그른 행복을 나눌 수 있다. 국가로 접근하면 국가를 이롭게 하는 행복이 바른 행복이고 국가를 해롭게 하는 행복이 그른 행복이다. 가령 개인주의 관념으로 개인의 자유권을 존중하고 성을 친숙하게 여기며 연령 평등을 하는 것으로행복을 느끼는 것이 국가를 이롭게 하는 행복이고 집단주의 관념으로 개인의 자유권을 침해하고 성을 죄악시하며 연령 차별을 하는 것은 국가를 해롭게하는 행복이다.

이처럼 행복은 개개인의 가치관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음에도 대상 가치로 접근하여 일부 개인의 행복을위해 일부 목소리 큰 인간을 위주로 복지 정책을 추진하여 불균형한 복지 정책이 시행되기도 한다. 특히 길고양이 보호가 그렇다. 현재 길고양이로 사회적 혼란이 발생하는 것은 합리적 기준 없이 일부 개인의 행복을 위한 정책이추진되고 있기 때문이다. 길고양이를 과하게 아끼며 먹이를 주고 길고양이가 인간에게피해를 끼치고 길고양이가 천연기념물을 죽이더라도 보호하려는 태도에 다수의 사람들이 분노하고 있다. 동물 보호를 해야 한다는 명분으로 길고양이에게 먹이를 주고 인위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조성하고 있다. 그러나 동물 보호가 명분이 되면 모든 동물을 길고양이와같이 먹이를 주고 인위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는 논리가 나온다. 병균을 옳기는 쥐도 똑같이 대해야 합리적 기준이 된다. 말이 안 되는 소리다. 그러니 지금 길고양이 보호는 합리적 기준 없이 멋대로 행하는 행위이므로 강제성이 존재하지 않는다. 길고양이에게 먹이를 주고 살아갈 수 있는 인위적인 환경을 만들고 싶다면 관계 가치로 접근하여사회에 속한 대부분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그러지 않고 억지로 강제하는 것은 국민의 권력 남용이 된다.

 

 

합리적 기준으로 사회적 합의를 받아 사회에 이로운 행동을 하는 것이 보통 바른 행복이 된다. 그런 바른 행복이 복지 정책을 해야 한다. 어떤 기준으로 복지 정책을 해야 하는가? 가치 소비 행복과 가치 생산 행복으로 나누어 접근해보겠다.

 

첫째, 가치 소비 행복. 인간은 가치가 있는 상품이나 재화를 소비하는 것으로 욕망을충족하여 행복을 얻는다. 자본주의 체제인 사회에서 인간은 돈이나 재화인 상품 등을구매하여 행복을 얻는다. 소비하는 행복은 기본적으로 시장에 참여하여 얻는다. 시장의 수요에 소비자 상품이나 노동력 임대 상품을 공급하여 얻은 이윤으로 다른 상품을 구매하여소비하는 것으로 행복을 얻는다. 소비하는 행복이 일반적인 시장 경제의 원동력이다. 본인이 소비하는 행복을 누리기 위해 타인에게 소비하는 행복을 선사한다. 자본주의는 시장 경제에 의해 본인의 행복을 추구하면 타인이 행복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오가는 돈은 서로가 공급하는 상품의 가치를 측정한 것을 객관화하여 물질로 나타낸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소비하는 행복을 위해 금전적 지원을 하는복지를 하게 되면 금전적 지원을 받은 사람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가치를 객관화한 물질을 받았기에 가치를 생산하지 않게 될 수 있다. 특히 금욕주의가 윤리거나 윤리였던 사회에서는 더욱 그렇다. 금욕주의에 의해 욕망이 절제되어 기본적인 욕망만 충족해도 만족해버리기 때문에 욕망을 위한 가치생산을 멈추게 된다. 그렇게 가치 생산을 멈추게 되면 시장에 공급되는 상품의품질이 낮아지고 가격이 높아지면서 사회 전체가 불행해질 수도 있다. 국가 복지 정책을 가치 소비에 실행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모든 인간이 욕망을 가지고 복지 정책의 혜택을 받더라도 욕망을 위해 가치를 생산할수 있도록 해야 하며, 가치 생산이 되지 않을 정도의 가치 소비를 위한 복지 정책의혜택은 부당하다 할 수 있다. 가치 소비 행복에 복지 정책을 집중하는 것은 대부분 생산이 완전 자동화가 되어 인간이 가치 생산을 하지 않아도 될 때부터 해야 한다. 그 전까지는 가치 생산이 가능한 가치 소비를 위한 복지 정책을 해야 할 것이다. 가치 생산을 하지 않을 정도의 가치 소비에 복지 정책을 실행하는 것이 일반적인 대중에 영합하는포퓰리즘이 된다.

 

둘째, 가치 생산 행복. 가치가 있는 재화인 상품 및 특정 가치가 있는 것을 생산하는것으로 욕망을 충족하여 행복을 얻는다. 자본주의 체제인 사회에서 인간은 노동으로 가치가 있는 것을 생산하여 행복을 얻는다. 적성에 맞지 않는 노동일 경우 가치 생산으로 행복을 느끼지 못하기도 한다. 그런데 가치 생산 행복은 시장 경제와 무관할 수 있다. 시장은 실시간 직접 수요로 돌아가기 때문에 생산 학습, 생산 준비, 저가치 생산, 간접 생산, 시설 생산은 시장의 수요에 공급할 수 없거나 공급하더라도 충분한 이윤을 얻기가 어렵다. 사회에는 필요한 생산이더라도 시장성이 있는 생산과 시장성이 없는 생산이 있는 것이다. 국가 복지 정책을 가치 생산 행복에 적용하면 지속적인 가치 생산이 가능하게 될 수 있다. 시장에 직접 관련이 있는 가치 생산은 꾸준한 가치 생산으로 시장을 활성화할 것이고 시장에 직접관련이 없는 가치 생산은 시장의 가치 생산과 소비와 무관할 수 있으나 국가의 모든 인간이 가치를 생산케 하는 풍조를 만드는데 도움이 되어 시장의가치 생산을 활성화할 수 있을 것이다.

 

 

가치 생산이 없는 국가에 미래는 없다. 금융 자본주의가 발전하더라도 가치 생산이 첫째가 되어야 한다. 국가가 생산하는 상품 가치가 높다면 금융 자본주의에서 화폐 가치가 널뛰어도 상품 가치에 의해국가 화폐 가치가 안정적이게 된다. 가치 생산이야말로 견고한 국가로 나아가는 길이다. 가치 소비에 복지 정책이 적용되더라도 가치가 생산되기만 하면 되지만, 기본적으로는 가치 생산에 복지 정책이 적용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첫째, 생산 학습. 대상은 보통 학생이고 복지 정책은 보통 장학금이다. 학생은 학습으로 행복을 느낀다. 한국은 주입식 교육이 일반화되어 학습으로 행복을 느끼지 못할 수 있다. 그러나 본래 학생은 학습으로 지적 호기심과 탐구심을 충족하여 행복을 얻는다. 학습은 학문에 따라 과정이 다소 험난하더라도 결과에 성취감을 느끼며 행복할 수 있다. 힘들다고 행복이 아니라면 힘든 과정을 겪는 모든 인간의 행위가 불행하다는 결론이 나오므로 논리적인의견이 아니다. 국가 복지 정책은 국가를 위한 복지 정책이므로 국가에 이로울수록적극적 지원을 하는 것이 타당하다. 그런데 학생의 학습은 당장 생산하는 것이 아니므로 시장성이 없다. 열심히 하더라도 수익이 없어 생계 유지가 어렵다. 이런 학생에게 복지 정책이 적용되면 이후 가치 있는 것을 생산하여 국가를 이롭게 할 것이다.

 

둘째, 생산 준비. 대상은 보통 연구자나 임산부고 복지 정책은 보통 연구비나양육비다. 연구자는 연구로 행복을 느낀다. 한국은 줄 세우기로 학과가 아닌 학벌을 고려하여 학교를 정하기에 원치 않는 학과에 들어가 연구할수도 있어 연구로 행복을 느끼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본래 연구자는 연구로 진리를 탐구하는 것으로 행복을 얻는다. 그런데 연구자의 연구는 당장 결과가 나오지 않을 수 있어 시장성이 없다. 열심히 하더라도 수익이 없어 생계 유지가 어렵다. 이런 연구자에게 복지 정책이 적용되면 이후 가치 있는 것을 생산하여 국가를 이롭게 할 것이다.

임산부는 아이를 배고 낳고 기르는 것으로 행복을 느낀다. 한국은 비혼이 유행하여 그것으로 행복을 느끼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본래 임산부는 낳은 아이를 아끼고 사랑하는 것으로 행복을 얻는다. 그런데 임산부의 임신과 출산과 양육은 생산 가능성을 생산하는 것이므로 시장성이 없다. 열심히 하더라도 수익이 없어 생계 유지가 어렵다. 이런 임산부에게 복지 정책이 적용되면 낳고 기르는 아이가 이후 가치 있는 것을 생산하여 국가를이롭게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셋째, 저가치 생산. 대상은 보통 예술가나 장애인이고 복지 정책은 보통 생계지원비다. 예술가는 예술로 행복을 느낀다. 한국은 상업 예술이 발달하면서 상업적 상품을 생산하기 위해 반복 작업을 하는 것으로 예술로 행복을느끼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본래 예술가는 창작하여 선보이는 것으로 행복을 얻는다. 그런데 열심히 하더라도 수익이 적어 생계 유지가 어려울 수 있다. 이런 예술가에게 복지 정책이 적용되면 언젠가 가치 있는 예술 작품을 생산하여 국가를 이롭게 할수도 있을 것이다.

장애인은 정상적으로 경제활동에 참여하는 것으로 행복을 느낀다. 한국은 과중한 노동이 일반화되어 일하는 것으로 행복을 느끼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본래 노동은 사회 참여로 행복을 얻는다. 욕망이 큰 사람은 충분한 부를 소유하고 있어요 욕망을 위해 지속적 가치를 생산한다. 그런데 열심히 하더라도 정식 고용이 되지 않거나 단기 노동으로 수익이 적어 생계 유지가 어려울수 있다. 이런 장애인에게 복지 정책이 적용되면 꾸준한 생산으로 국가를이롭게 할 것이다.

 

넷째, 간접 생산. 대상은 보통 노숙자나 수용자고 복지 정책은 보통 복지 시설이나급식 배급이다. 사람은 살아 있는 것으로 행복을 느낀다. 한국은 자살률이 높아 살아있는 것으로 행복을 느끼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본래 인간은 사는 것으로 행복을 얻는다. 노숙자나 수용자도 마찬가지다. 삶 자체가 불행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죽음보다는 삶이 행복할 수 있다. 노숙자는 도박이나 마약, 사업 실패 등으로 뇌의 회로가 망가지거나 삶의 의욕을 잃고 생산할 수 없기에 노숙을 하고 있다. 아무것도 생산할 수 없어 가치 생산 복지 정책에 적용되지 못할 거라 여겨질 수 있다. 그러나 아무것도 생산할 수 없는 인간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으로 사회 치안 서비스에 도움을줄 수 있다. 수용자는 사회에서 고립되어 수용자 노동을 제외한 생산이불가능하다. 범죄를 저지른 수용자는 치안 서비스에 도움을 주지 못했으므로가치 생산 복지 정책에 적용되지 못할 거라 여겨질 수 있다. 그러나 범죄를 저지른 수용자는 살아있는 것만으로 인간의 존엄성을 지킬 수 있다. 무위로 얻어지는 치안 효과와 생존으로 얻어지는 인간의 존엄성 또한 인간의 간접 생산으로 취급한다. 그래야 합리적 기준으로 복지 정책을 만들 수 있다. 간접 생산은 생산 가치가 낮으므로 그에 대한 복지 지원도 낮게 된다. 이런 노숙자나 수용자에게 복지 정책이 적용되면 사회 치안이 안정되고 인간의 존엄성이 지켜지는것으로 국가를 이롭게 할 것이다.

 

다섯째, 시설 생산. 대상은 보통 사회 간접 자본의 기반 시설이고 복지 정책은보통 국가 예산이다. 기반 시설은 사람에게 이용되어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것으로효용 가치를 갖는다. 보통 기반 시설은 복지 정책 대상이 아닌 복지 정책으로분류되는데 가치 생산 복지에 기준을 맞추기 위해 기반 시설도 복지 정책 대상으로 분류했다. 새로운 기반 시설을 만들 때에는 만들어지지 않은 무형의 기반 시설을 복지 정책 대상으로 삼고국가 예산으로 복지 정책을 적용해야 한다. 복지 정책은 국가 구조 유지를 위한 것인데 기반 시설과 인간을 구분하여 다른 기준으로 복지 정책을 추진하면 기반 시설은 지어지는데 인간은죽게 되는 황당한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 그러면 아무리 복지 정책을 해도 정작 필요한 곳에 복지 정책이 적용되지 못해 요소가 사라지면서 국가 구조가 붕괴할 수 있다. 그런데 기반 시설은 공공의 영역이기에 시장성이 없다. 효용 가치가 높더라도 수익을 얻을 수 없어 새롭게 만들거나 유지할 수 없다. 이런 기반 시설에 복지 정책이 적용되면 불특정 다수의 행복한 삶을 살게 하는 것으로 국가를 이롭게할 것이다.

 

 

가치 생산 행복에 대한 복지 정책에 대해 알아보았다. 가치 생산 복지는 체제와 무관하게 어느 체제에서도 쓸 수 있다. 그렇다면 개인주의 체제의 복지는 어떤가? 개인주의 체제는 개인의 의사를 기본 원리로 삼고 있으므로 개인의 의사가 반영되어야 한다. 그런데 법과 복지는 사회 구조 유지를 위한 것으로 본래 국가에서는 민간에 맡기는 것은 위험하다할 수 있다. 국가의 복지를 민간에 의존하는 것은 법을 민간에 의존하는것과 같다. 민간인이 법의 판단을 무시하고 현행범이 아닌 사람을 사적제재하거나 법의 집행을 무시하고 자경단을 꾸리는 것과 같이 말이다. 지금까지 국가는 관습상 복지를 종교에 상당히 많이 의존해왔는데 그랬기 때문에 국민이 종교에 의존했고, 국민이 종교에 의존하면서 국가는 죽어도 종교는 살아남게 되었다. 현대 국가에서는 바람직하지 못한 방식이다. 그럼에도 법과 복지는 차이가 있다. 법은 질서를 지키는 것이지만 복지는 요소를 살리는 것이다. 질서를 지키는 것은 합리적 기준을 깨지면 복구하기가 어렵지만 요소를 살리는 것은 합리적 기준이깨져도 복구하기가 쉽다. 개개인이 각자 타인의 행복을 위해 지원을 하더라도 괜찮다. 정부 복지 정책에서 그걸 고려하여 수정하면 된다. 그런 이유로 복지는 민간이 적극적으로 하고 있다. 보통 민간이 복지를 행하는 것은 종교, 기부 단체, 개인 기부로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종교. 종교는 오랫동안 복지를 해왔기에 지금까지도 관습적으로 사회복지를 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대체로 종교의 세를 불리기 위한 것이므로국가가 그것에 지나치게 의존하면 국민은 국가를 신용하며 의지하는 것이 아닌 종교를 맹신하며 의존하게 되면서 종교를 중심으로 한 집단주의 체제가나타나게 된다. 개인주의 체제인 국가에서 집단주의 체제인 집단은 그 어떤것이라도 해롭게 된다. 전염병이 퍼져도 정부 권력보다 종교 인사의 발언이 더 중요하여정부 권력을 무시하고 멋대로 행동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종교의 복지는 관습이란 명분과 예산 절약이란 실리가 있어도 종교가 집단주의 체제인 이상 개인주의 체제인 사회에 해롭다 할 수 있다.

 

둘째, 기부 단체. 기부로 운영되는 기부 단체는 대부분 믿을 수가 없다. 기부금이 어떻게 사용되는지 투명하게 공개되는 곳이 드물다. 어떤 곳은 대부분의 기부금이 단체 운영비로 활용된다. 그런 곳은 도대체 무엇을 목적으로 기부 단체를 운영하는지 알 수가 없다. 종교의 기부는 종교의 이익을 바라는 신자의 헌금으로 되기도 하지만 기부 단체의 기부는 기부 대상의행복을 바라는 기부자의 기부금으로 되고 있다. 종교의 헌금은 종교가 어떻게 쓰든 자유로울 수 있지만 기부 단체의 기부금은 온전히 기부 대상에 전달되었어야 했다. 기부금 목적 측면에서 종교보다 기부 단체의 부당한 기부금 활용이 더 잘못되었다.

 

셋째, 개인 기부. 종교는 집단주의 체제이고 기부 단체는 투명하지 못하여 둘다 바람직하지 못하다. 그러나 개인 기부는 기부 자체가 목적이기에 설령 보여주기식이라 하더라도 실제 기부금이 전달되게 된다. 그런 이유로 기부를 하고자 하는 사람은 종교나 기부 단체가 아닌 행정 기관에 기부하기도 한다고 한다. 그렇게 개인이 기부하는 것이 개인주의 체제에 적합한 복지다. 그러나 개인이 기부하기 위한 체계가 갖춰지지 못하여 쉽게 기부하는 방법은 종교나 기부 단체를거칠 수밖에 없다. 그 점을 고려하여 개인이 자유롭게 기부할 수 있는 체계를마련해야 한다.

 

지금까지 기부 단체는 기부 대상의 불행을 광고하는 것으로 영업하여 기부금을 받아 단체를 운영하고남은 비용을 기부 대상에게 전달했다. 기부 단체가 해왔던 것은 영업이었다. 그걸 고려하면 영업을 대신할 체계를 마련하면 개인이 자유롭게 기부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IT 기술의 발달로 스마트폰 앱을 통해 개개인이 영업하지 않아도 거래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춰졌다. 그와 같이 스마트폰 앱을 통하면 기부 단체를 거치지 않아도 기부 대상에게 직접 기부금을 전달할수 있다. 그것으로 기부 단체의 부당한 기부금 활용을 막을 수 있다. 이러한 스마트폰 앱을 통한 기부는 개인의 의사가 반영되어 시장과도 같게 될 것이다. 기부 시장이다. 펀딩과 같이 상품을 생산하기 전에 미리 후원을 받는 방식이 존재하므로 후원 앱의 확장으로 이해하면 좋다. 이러한 기부 시장은 소비 시장과 다른 기준이 있을 수 있는데 소비 시장은 보통 본인이 이로운것을 구매한다면 기부 시장은 본인에게 이로운 옳다고 여겨지는 대상이 이로운 것을 구매하게 된다. 그 방식에 대해 알아보자.

 

첫째, 기부 대상. 기부 앱에 등록할 기부 대상을 선정해야 한다. 누구나 등록이 가능하면 정작 필요한 사람이 기부 받지 못할 수가 있다. 복지 행정 부처가 복지를 행하기 위해 복지 대상을 선정해두었을 것이다. 그런 대상은 따로 분류하여 기부할 수 있도록 하면 된다. 기부 대상은 개인뿐만 아니라 학교, 병원, 산림, 천연기념물 등 소비 시장과 무관하지만 사회에 이로운 모든것을 등록할 수도 있을 것이다.

 

둘째, 기부 대상 정보 상품화. 기부 대상의 정보가 모두 공개되면 개인 정보 침해가 발생할 수 있다. 장학금 대상을 선정하기 위해 필요한 정보를 수집하는 것과 같이 기부에 필요한 정보만 골라 상품화하여기부 시장에 올려야 한다. 그렇게 만든 인간 정보 상품은 당사자가 소유해야 한다. 기부 앱에 등록할 개인 정보는 기부가 필요한 이유인 빈곤이나 질병, 시장성이 없는 가치 생산 등을 작성하면 될 것이고, 추가적인 정보는 특정성을 알기 어려운 정보를 작성하면 될 것이다. 개인 정보는 신용하기 어려울 수 있으므로 개인 정보의 신용을 책임질 기관이 따로 필요할 것이다. 그런 기관의 인증을 거치면 개인 정보를 신용하고 기부할 수 있다.

 

셋째, 기부금 분배 기준. 기부 단체는 기부금 활용 내역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일이 드물었다. 공개는커녕 횡령이 언론에 자주 노출되었다. 그런 탓에 개인의 기부가 줄어드는 추세다. 기부 앱은 기부금 분배 기준을 만들어 공개하고 개인의 기부금 활용 내역을 미리 알려야 한다. 가령 기부금 5~10%는 기부 앱 운영비로 쓰고 기부금 10~20%는 복지 행정 부처가 선정한 기부 대상을 위한 보편 복지로 활용되고 나머지 비용을 기부 대상에 전달하도록 한다. 운영비와 보편 기부금과 대상 기부금을 자동화 체계로 자동적으로 전달되게 하면 투명한 기부금 전달이가능하여 기부자가 늘어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넷째, 기부자 혜택. 기부자에게 세금 감면 혜택이 있듯이 행정 부처 기부 대상에기부한 이들은 특정 혜택이 필요할 것이다. 보통 이기적인 기부는 기부 자체로 목적이 달성되었기에 다른 이익을 바라지 않는다. 그렇다 하더라도 적절한 혜택은 지속적 기부를 하는 동력이 될 것이다. 명예도 적절하다고 본다.

 

다섯째, 기부 대상 성장. 기부는 한번 기부하고 끝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기부 앱은 주기적으로 특정 기부 상품을 갱신하여 기부 대상의 변화를 알 수 있다면 기부를 통한대상의 성장을 느껴 행복해질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기부 대상도 지속적 기부를 받기 위해 노력하여 꾸준한 성장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사회는 복지에 지불될 예산을 줄여 보다 적절한 복지가 가능하게 될 것이다.

 

 

 

10. 재정립

 

국가의 복지 정책은 불행할 수 있거나 불행한 인간을 행복하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성질이 다른 관념과 체제의 충돌로 인해 발생하는 불행에 복지 정책을 행하는 것은 그야말로밑 빠진 독에 물 붙기 수준으로 의미가 없는 일이다. 아무리 복지 정책을 해도 사회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그러므로 국민이 개인주의 관념을 가지는 것은 물론이고 집단주의 관념에 의해 수정되어 오류가 발생한 개인주의 체제인 국가 구조를 보다 체제에맞게 재정립해야 한다. 그러면 구조도 구조에 따른 원리도 정상 작동하게 된다. 그렇게 국가 구조를 체제에 맞게 재정립하여 정상 작동하여야 복지가 의미가 있다. 불행이 무엇인지에 대해 알아보고 재정립해야 할 부분에 대해 몇 가지 알아보자.

 

행복이 보통 가치관으로 결정되듯 불행 또한 가치관으로 결정된다. 가치관은 개인마다 다르기에 불행 또한 개인마다 다르다. 본인이 불행해 보이는 것도 타인에게는 행복할 수 있다. 본인이 이해할 수 없는 것도 타인에게는 즐거운 취미일 수 있다. 그렇기에 본인의 주관적인 판단으로 불행해 보이는 타인에 함부로 간섭하여 행복하게 만들려 하는것은 되려 타인을 불행하게 할 수 있다. 오지랖은 개인의 자유권 침해에 해당하나 그 이전에 그 행동 자체의 목적인 행복도 달성하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이다. 본인의 주관으로 행복과 불행을 결정짓고 타인의 행복과 불행을 강제로 바꾸려 하는 것이 보통 오만과독선이 된다. 가령 부모가 자녀에게 간섭하여 불행해 보이는 진로나 인간관계나취미를 강제로 바꾸는 것이 그렇다.

종교 또한 마찬가지다. 본인에게 종교로 현실 도피 하여 얻는 행복이 불행해 보일지라도 타인에게는 행복이 될 수 있어섣불리 간섭하여 강제로 바꾸려 하면 타인은 되려 불행해질 수 있다. 그러므로 이런 문제는 개인의 행복이나 불행이 아닌 사회를 기준으로 접근해야 한다. 마약이 그렇다. 분명 마약은 마약 중독자를 행복하게 한다. 그것이 불행하게 보여도 강제로 간섭하면 마약 중독자는 되려 불행해질 수 있다. 그럼에도 사회에서 허용되지 않고 그 행복에 간섭하고 있는 것은 그 행복이 사회에 해롭기 때문이다.

마약 중독자는 본인의 주관적인 행복을 위해 마약에 중독되어 탐닉하면서 내성이 생겨 점점 더 강한마약에 빠지는 것으로 뇌가 파괴되어 자유 의지를 잃고, 마약을 구매하기 위해 시간과 재산을 바치는 자기 파괴를 하면서 타인에게 그런 자기 파괴를 친애나 장사로 전파하고 있다. 여기서 자기 파괴와 전파가 사회에 지극히 해롭다.

 

첫째, 자기 파괴. 마약 같은 개인의 자기 파괴는 국가 구조의 요소를 해치는것으로 구조 유지를 위한 강제력을 수용하겠다는 사회 계약을 어기는 것에 해당하게 된다. 개인의 자기 파괴를 허용하게 되면 개인의 무분별한 자기 파괴로 구조의 요소가 사라지고 인간의존엄성이 훼손되어 구조가 붕괴할 가능성이 생긴다. 그러므로 자살과 같은 자기 파괴를 막는 것은 낡은 가치관이 아닌 사회 계약에 의한 정당한 행사가 된다. 예외적으로 인간의 존엄성을 위해 극단적 고통을 막기 위한 마약은 허용되고 있다.

 

둘째, 전파. 자기 파괴를 타인에게 전파하는 것은 국가 질서를 해치는것으로 구조 유지를 위한 강제력을 수용하겠다는 사회 계약을 어기는 것이 해당하게 된다. 자기 파괴를 본인만 한다면 계약 위반에 해당되나 사실 큰 문제는 없다. 극단적으로 많은 수의 인간이 제 각각의 이유로 자기 파괴 하지 않는 이상 국가 구조에 큰 영향을끼치지 않는다. 그러나 자기 파괴를 전파하여 늘리면 국가 구조가 정말로붕괴할 수 있다. 실제 마약이나 도박의 문제는 자기 파괴보다 전파가 더욱큰 문제다. 마약은 상대에게 전파하여 중독시키기만 하면 중독에 빠져자유 의지를 잃고 이용하기 쉬운 상태가 되기 때문에 전파 가능성이 높은 편이다. 그렇기에 마약은 허용할 수 없다.

 

그런데 이런 성질은 종교도 유사하다. 종교인은 본인의 주관적인 행복을 위해 종교의 현실 도피에 중독되어 탐닉하면서 내성이 생겨 점점더 종교에 빠지는 것으로 뇌의 사고 회로가 죽어 자유 의지를 잃고, 종교에 신앙하기 위해 시간과 재산을 자기 파괴를 하면서 타인에게 그런 자기 파괴를 전도로 전파하고 있다. 기성 종교는 오랫동안 사회와 어울려왔기 때문에 그렇게 극단적이지는 않지만 사이비 종교는 그야말로마약과 비슷할 정도의 사회적 해악을 끼친다. 개인이 종교의 현실 도피에 한번 중독되면 종교에 시간과 재산을 바치기 때문에 사이비 종교는 적극적으로 종교를 전파하고 다닌다. 그걸 방치하면 국가 구조가 무너질 수도 있다. 마약이나 종교는 개인을 행복하게 할지라도 그것이 사회에 해로운 행복이기에 허용할 수 없다.

 

개인주의 체제는 개인의 의사를 원리로 삼는다. 개인의 자유 의지로 살 수 있게 한다. 그런데 마약이나 종교의 유혹을 자유 의지로 뿌리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렇다고 그들을 기준으로 통제를 하면 자유 의지를 가진 개인의 자유권이 침해되게 된다. 마약을 소지하고 있을지 모른다는 이유로 길거리에서 소지품 검사를 하고 마약을 구매할지도 모른다는이유로 상거래를 실시간 감시하는 것과 같은 행위를 할 수는 없다. 그렇기에 개인주의 체제에서 모든 개인은 지성을 갖춰 자유 의지를 분명하게 가질 필요가 있다. 그것이 가장 먼저 해야 할 개인 관념 재정립이다.

[자유 의지_철학은 외부의 제약이나 구속을 받지 아니하고 어떤 목적을 스스로 세우고 실행할 수 있는 의지를뜻한다.] 자유 의지를 관념에 대한 이해를 한 뒤에 해석하면 육체의행동 준비에 대해 생각한 뒤의 의지를 진정한 의미에서 자유 의지라 할 수 있다. 육체의 행동 준비에 의해 어떤 충동이 나타나도 그것에 대해 한번 생각하고 의지를 가져야 자유의지다. 만약 육체의 충동에 대해 생각하고 않고 의지를 갖는다면그것은 현재 자아의 의지가 아닌 육체의 의지이며 정확히 육체가 학습한 과거 자아의 의지나 육체가 수집했던 정보 제공자의 의지라 할 수 있다. 그렇게 개인이 지성을 갖추고 자유 의지를 가지는 것이 개인주의 관념을 가졌다 할 수 있다. 그런 개인 관념에 국가 구조를 체제에 맞게 바꾸는 것이 국가 구조 재정립이다.

즉, 개인의 자유 의지에 대한 관념과 국가 구조를 재정립해야 한다. 국가 원리가 개인의 의사인 개인주의 체제에서는 개인의 자유 의지가 가장 중요하게 다루어야 한다. 국가 구조는 그것을 전제하여 재정립되어야 한다. 그렇게 정립되어야 자기 운명 결정권, 성적 자기 결정권, 개인정보 자기 결정권과 같은 각각의 자기 결정권에 대한 합리적 기준을 만들 수가 있다.

모든 개인은 지성을 갖춰 자유 의지와 그에 따른 권리와 의무와 책임을 져야 한다. 만약 마땅한 지성이나 자유 의지가 부족하다 판정된다면 자유를 잃고 통제를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 미성년이나 마약, 도박 중독자가 그런 대상에 해당된다. 미성년은 성장 시기 별로 식사와 성과 선거 등에 대한 보호와 자유권을 보장받고 그에 따른 통제를 수용해야 하고, 마약이나 도박 중독자는 형사처벌 유무와 별개로 중독 정도에 따라 보호와 자유권을 보장받고 그에따른 통제를 수용해야 한다. 그렇게 지성과 자유 의지에 맞춰 보호와 자유권을 보장하는 체계가 필요하다.

만약 국가 구조가 개인의 지성과 자유 의지에 맞춰 보호와 자유권을 보장하였다는 것이 명백하다면그로 인해 사건 사고가 발생하더라도 그런 상황에서 통제는 자유권 침해에 해당하므로 통제가 없었다는 이유로 비판하는 것은 정당한 비판이라 하기 어렵다. 일반 개인이 자유 의지를 가지고 행한 행동을 가스라이팅이나 그루밍에 의한 결과라 말하는 것도정당한 비판이라 하기 어렵다. 개인의 자유권에는 의무와 책임이 따르기 때문이다. 만약 그런 보호를 요구하고 싶다면 사회 계약을 다시 하여 자유를 포기하고 정부 통제를 받으면 된다. 평소에는 자유롭고 싶다가 필요할 때에만 보호를 찾는 것은 지극히 불합리하다.

사회에서 개인의 자유 의지에 간섭하여 조작할 수 있는 것은 정신적으로 종교 세뇌, 가스라이팅, 그루밍, 도박 등이 있고 물질적으로 마약, 음주 등이 있다. 취미 또한 깊게 중독되면 온전한 자유 의지를 가지지 못하기도 한다. 그것에 맞춘 개인주의 국가 구조 재정립에 대해 알아보자.

 

첫째, 종교. 종교는 개인의 사상의 자유로 신앙하는 것이 허용되어도 종교로집단을 이루어 집단의 이익을 위해 행동하는 것은 허용되어서 안 된다. 국가 내 집단이 집단주의 체제가 되면 대부분 집단의 이익을 위해 국정에 간섭하게 된다. 특히 종교의 경우 정교분리를 망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개인주의 체제에서 종교의 자유는 어디까지나 개인 사상의 자유지 집단주의 체제 조직의 자유가 아니다. 개신교(Protestant)가 교황이 아닌 성경에 가치가 있다고 말하며 복음주의를 주장하면서 종교 개혁을 통해 가톨릭과 갈라섰는데, 거기에 연장선상으로 집단인 교회가 아닌 개인인 신앙에 가치가 있다고 주장하겠다. 그래야 개인의 사상의 자유가 보장될 수 있다. 그렇다고 현재 정부에서 종교 집단을 강제로 어떻게 하기가 어렵다. 그러므로 개인은 개인주의 관념을 가지고 자유의지로 종교 집단에서 멀어지는 것이 바람직하다. 국가 구조는 종교 전파를 강제하는 것을 금지하고 개인 자유를 강조하는 교육 체계로 재정립해야한다. 만약 개인이 종교에 빠지더라도 물리적 압박이 없이 개인의자유 의지로 결정한 것이라면 개인이 책임져야 한다. 개인주의 체제의 국가의 국민인 종교라는 집단보다 종교를 믿는 개인을 우선해야 할 것이다.

 

둘째, 가스라이팅. 가스라이팅은 본인의 언행으로 타인을 스스로 의심하게 하여본인에게 의존하게 만드는 심리 기술이다. 가령 경찰이 용의자에게 스스로 의심하게 하여 경찰에 의존하게 하는 것으로 자백하게 만드는 것이 가스라이팅이다. 이런 심리 기술은 개인의 자유 의지를 망가트릴 수 있어 유죄 추정이라며 경찰이 비판을 받는다. 그렇다고 사적인 인간관계에서 일어날 수 있는 것을 정부에서 어떻게 하기가 어렵다. 그러므로 개인은 개인주의 관념을 가지고 자유 의지로 본인의 행동을 결정해야 한다. 국가 구조는 개인 자유를 강조하는 교육 체계로 재정립해야 한다. 만약 개인이 가스라이팅과 같은 세뇌에 당한다 하더라도 물리적 압박이 없이 개인의 자유 의지로결정한 것이라면 개인이 책임져야 한다. 성에 관해 유행하게 된 용어지만 실제로는 어디서나 쓰이고 있는데 지나치게 남용하면서 타인의 의견을 전부 가스라이팅이라 몰아가기도 하고 있다.

 

셋째, 그루밍. 그루밍은 본인의 언행으로 타인을 길들여 본인에게 의존하게만드는 심리 기술이다. 가령 부모가 자녀를 그루밍하여 시간과 이동을 통제할 수있다. 이런 심리 기술은 개인의 자유 의지를 망가트릴 수 있어과한 통제라며 부모가 비판을 받기도 한다. 그렇다고 사적인 인간관계에서 일어날 수 있는 것을 정부에서 어떻게 하기가 어렵다. 그러므로 개인은 개인주의 관념을 가지고 자유 의지로 본인의 행동을 결정해야 한다. 국가 구조는 개인 자유를 강조하는 교육 체계로 재정립해야 한다. 만약 개인이 그루밍에 영향을 받았다 하더라도 물리적 압박이 없이 개인의 자유 의지로 결정한 것이라면개인이 책임져야 한다. 애초에 인간과 인간이 서로 길들여지는 관계인데 그걸 잘못되었다말하는 것 자체가 우습다.

 

넷째, 도박. 도박은 낮은 확률로 높은 이익을 얻게 하여 뇌의 보상 회로를망가트리게 한다. 가령 일반적인 카지노나 코인, 주식 등이 있다. 낮은 확률로 높은 이익을 얻는 것으로 굉장한 쾌락을 얻고, 그 이익이 실제 노동으로 얻는 이익과 대비되면서 깊게 중독되기도 한다. 이런 원리를 흉내 낸 것이 모바일 뽑기 게임이다. 모바일 뽑기 게임은 게임 재화의 실제 화폐 환전이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으로 나뉘는데, 환전이 가능한 것은 도박과 크게 다르지 않고 환전이 불가능한 것은 단순한 수집이 되므로 도박의원리는 이용하되 도박과 결과는 다르게 된다. 도박은 정부에서 충분히 관리 중에 있으나 도박의 원리를 이용한 재화 환전 가능한 모바일 뽑기 게임은 도박과 비슷한 통제가 필요하다 할 수있다. 그러므로 개인은 개인주의 관념을 가지고 자유 의지로 본인의행동을 결정해야 한다. 국가 구조는 도박의 원리와 결과가 같은 새로운 형태의 도박에실시간으로 대응하는 체계로 재정립해야 한다. 확률 명시화를 하는 확률 규제는 도박의 원리를 이용한 문화 산업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통제에 해당한다. 만약 개인이 도박에 빠진다 하더라도 물리적 압박이 없이 개인의 자유 의지로 결정한 것이라면 개인이책임져야 한다. 도박에 의해 자살이 나타날 수 있을 때에만 국가 구조 유지를위해 정부가 나서야 한다.

 

다섯째, 마약. 마약은 마취 작용을 하며 습관성으로 장복하면 중독되는 물질을말한다. 그런데 마약은 감추면 감출수록 환상에 사로잡힌다. 단순히 나쁘니까 막자 수준의 일차원적 방법으로는 마약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전략적 광고다. 시한부 전용으로 만들어 광고한다. 일 년 이내 죽음이 확실한 인간에게만 계약을 통해서 합의하에 판다. 펜타닐과 같은 마약은 이제 개인주의 체제에서 공권력으로 막는 것은 매우 어렵다. 너무나도 작고 유통이 쉽다. 미국에서 펜타닐이 유행하여 펜타닐 백신을 만든다고 한다. 매우 대단하지만 개인의 관념이 바뀌지 않는 이상 그런 백신이 있다 하더라도 쾌락을 위해 다른마약을 요구하게 될 뿐이다. 개인이 바뀌어야 한다. 개인이 마약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확고하게 가져야 스스로 거부하게 된다. 힙합과 같이 젊은이들이 즐겨 듣는 노래를 다루는 인간이 마약에 빠지면서 마약 자체의 이미지가젊음, 방황, 일탈과 같이 되어 쓸데 없는 환상이 새겨지게 되었다. 현재 사이비 종교에 대한 환상이 없는 것과 같이 마약에 대한 환상을 제거할 필요가 있다. 네거티브 전략이다. 그 전략의 수혜자이자 희생자는 시한부 인간이다. 시한부 인간은 죽기 직전에 굉장한 쾌락을 누리고 죽고 사회는 그런 쾌락을 제공하는 대신 마약에 대한 환상을 깬다. 인간은 인간의 존엄성을 위해 쾌락 속에서 행복하게 죽어야 한다. 이렇게 단순히 막는 것에 그칠 것이 아니라 인간의 존엄성을 명분으로 전략적 방법으로 접근해야한다. 개인은 개인주의 관념을 가지고 자유 의지로 본인의 행동을결정해야 한다. 국가 구조는 마약을 시한부 전용 물질로 인식하게끔 만드는체계로 재정립해야 한다. 만약 개인이 마약에 빠진다 하더라도 물리적 압박이 없이개인의 자유 의지로 결정한 것이라면 개인이 책임져야 한다. 일부 힙합을 하는 가수와 같은 일부 예술가들이 마약의 환각 속에서 새로운 감각을 느끼는 것으로 새로운 예술을 하기 위해 마약을 한다고 하는데, 그것은 스스로 미칠 줄도 모르는 인간의 자기 합리화에 불과하다.

 

여섯째, 음주. 음주는 술을 마시는 것이고, 술은 알코올 성분이 들어 있어 마시면 취하는 음료를 말한다. 술 중독이나 담배 중독과 같은 물질 중독은 마약 계통이므로 생략하겠다. 음주로 인한 대표적인 문제가 바로 음주 운전이다. 음주 운전을 막기 위해 처벌을 늘리자는 주장이 많이 나오는데, 법의 합리성을 파괴하면서까지 처벌을 높이지 않는 한 음주 운전이 크게 줄어들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음주 운전 당사자는 정상적으로 운전을 할 거라 생각하며 평소 음주 운전을 하다 실수로사고를 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사고를 내면 운이 좋지 못하거나 실수를 한 것일 뿐이라며 합리화하기 때문에 처벌이 높아도 사고를 내지 않으면 된다는 식으로 생각하게된다. 이것 또한 마약과 같이 네거티브 전략으로 접근하는 것이타당하다. 술을 마시고 운전하는 것은 의지가 약한 인간이라는 이미지를갖게 해야 한다. ‘술을 마시고도 운전 잘하는 나 대단해’, 라는 느낌이기 때문에 술을 마시고 운전하는 것 자체가 대단하지 않다는 것으로 인식해야 한다. 가령 타인이 시켜서 술을 마시고 운전하다 사고 내고 그에 대한 책임을 타인이 아닌 사고 낸 본인이지게 된다는 식의 음주 운전 공익 광고가 괜찮을 것이다. 사회에서 음주 운전자를 악한이 아닌 머저리로 바라봐야 그런 행위가 줄어들 수 있다. 그러므로 개인은 개인주의 관념을 가지고 자유 의지로 본인의 행동을 결정해야 한다. 국가 구조는 음주 운전을 의지가 약한 인간이나 하는 행위로 인식하게끔 만드는 체계로 재정립해야한다.  만약 개인이 음주 운전으로 사고를 내더라도 물리적 압박이 없이 개인의 자유 의지로 결정한 것이라면 개인이 책임져야 한다. 인간은 본인 육체도 정확히 제어하지 못하면서 술을 마시고 차량을 정확히 제어할 수 있을 거란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일곱째, 취미. 취미는 인간이 즐기는 것으로 여가에서 주로 하게 된다. 게임, 쇼핑, 낚시, 등산 등과 같은 취미에 매달려 일상생활을 돌아보지 않을 때에는 중독으로 여겨질 수 있다. 취미뿐만 아니라 일이나 공부에 중독이 될 수 있는데, 취미와 같이 가치 소비에 중독되는 것과 일이나 공부와 가치 생산에 중독되는 것에 대한 대우 차이가있다. 가치 소비에 중독되어 가치 생산에 소홀하게 되면 사회에해롭지만 가치 생산에 중독되면 가치 생산이 되므로 사회에 이로워 가치 생산 중독에는 사회적 비판이 적은 편이다. 그렇다고 가치 소비를 하지 않게 되면 불행하여 자살할 수 있으므로 적절한 가치 소비는 필요하다. 또한 지나치게 가치 생산에 매달리면 피로하여 육체가 죽을 수 있으므로 육체를 유지하면서 가치생산을 해야 한다. 새로운 취미일 경우 익숙하지 않아 기성 세대의 반발에 부딪칠수 있는데, 게임이 보통 그렇다. 다른 취미와 같이 평범하게 가치 소비를 하는 것임에도 심각한 중독으로 여기거나 같은 중독이라하더라도 게임을 보다 더 심각한 중독으로 여긴다. 합리적 기준이 없는 판단은 불합리하게 된다. 게임도 취미라는 기준으로 합리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정부에서 일일이 개인의 취미에 간섭할 수 없다. 그러나 개인이 취미라는 가치 소비에 깊게 빠지는 것은 가치 생산이 행복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개인은 개인주의 관념을 가지고 자유 의지로 본인의 행동을 결정해야 한다. 국가 구조는 가치 소비와 가치 생산 둘 다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체계로 재정립해야 한다. 만약 개인이 취미에 중독되더라도 물리적 압박이 없이 개인의 자유 의지로 결정한 것이라면 개인이책임져야 한다. 금욕주의에 의해 욕망에 의한 가치 소비를 경시하고 가치생산을 강요하기도 하는데, 그렇게 하다 보면 개인이 욕망을 잃어버리고 가치 생산에 대한 의욕도 잃어버릴 수 있으므로 적절한 가치 소비를 권장하여 욕망을 유지할 수있도록 해야 한다.

 

 

개인주의 체제에 맞는 개인 관념과 국가 구조 재정립은 다문화나 이민족 관계도 포함되게 된다. 개인의 의사로 작동하는 개인주의 체제와 집단의 의사로 작동하는 집단주의 체제는 어울리기 어렵다. 체제는 사회를 유기체로 비유한 것으로 체제가 같은 사회는 같은 종이라 할 수 있고 체제다 다른사회는 다른 종이라 할 수 있다. 개인주의 체제와 집단주의 체제는 명백히 다른 종으로 각각의 체제인 사회는 같이 어울리기가 어렵다. 만약 이민자가 개인주의 체제인 사회에 적응할 것이라면 이민자도 지성을 갖추고 자유 의지를 가져야한다. 그러지 않으면 사회 문제로 발전하게 된다.

가령 프랑스에서 프랑스인이 자유롭게 마호메트에 대한 의견을 낸 것에 불만을 가진 이슬람 극단주의자가종교적 이유로 프랑스인을 참살한 사건이 있다. 그 의견이 설령 불쾌하더라도 그걸로 사적 제재 한다는 것 자체가 국가보다 종교를 우선시한다는 것을 증명한다. 개인주의 체제인 국가 내 집단주의 체제인 집단은 기본적으로 이렇게 국가보다 집단을 우선시하게된다. 집단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무슬림들은 샤리아존을 주장하며특정 구역에서 이슬람 율법을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려고 하고 있어 국제적 반발을 사고 있다. 이렇게 체제가 다른 국가의 문화는 성립할 수 없다.

반면 체제가 같은 국가의 문화는 성립될 수 있다. 개인주의적인 스웨덴은 손님에게 식사를 대접하지 않거나 식사 비용을 받는 것으로 국제적 비웃음을사고 있다. 그런데 개인주의 체제인 국가에서 비웃는 것은 참으로 황당하다. 스웨덴의 그런 문화는 개인주의적이기에 개인주의 체제인 국가와 충돌할 일이 없다. 그저 손님을 대하는 방식이 다를 뿐이지 예의가 없는 것이 아니다. 스웨덴 문화를 가진 이들이 한국에 오더라도 본인만 손님에게 식사를 대접하지 않을 뿐이지 타인이손님에게 식사를 대접하는 것에 간섭하지 않기 때문에 충돌하지 않는다. 서로가 충돌하지 않는 다문화는 이해할 수 있다.

 

 

첫 번째, 이성애

 

이성애에 대한 개인 관념과 국가 구조를 개인주의 체제에 맞게끔 재정립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한국은 국가 소멸로 멸망한다. 모든 국가가 저출산으로 고생 중이지만 한국은 보다 더 심각하다. 한국은 국가 발전 속도가 굉장히 빠르고 체제 변화가 최근이면서도 연상이 연하를 지배하는 유교적가치관을 가지고 있어 연상이 연하에게 명령하듯 본인의 낡은 가치관을 세뇌하고 강요하는 바람에 체제에 맞는 새로운 관념을 가지기가 너무나도 어려움에따라 체제 적응에 실패하는 것으로 국가 소멸의 위기를 부를 수 있는 저출산 현상이 나타나게 되었다.

한국은 가장의 명령으로 중매결혼을 하던 낡은 가치관으로 남녀칠세부동석이라며 미성년의 이성 관계를멀리하게 하고 정조 관념을 가져야 한다며 미성년의 성 문화를 검열하고 탄압하는 것과 같이 미성년이 이성애와 성을 죄악시하는 교육을 받는 것으로개인의 의지로 연애와 결혼을 하는 이들이 줄어듦에 따라 출산율이 감소하는 중에 여성주의가 대두되면서 가부장제 시대의 수동적인 여성성을 신세대 여성에게세뇌하는 바람에 이성애와 성을 부정적으로 보는 신세대 여성이 늘어나면서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이성애와 성이 결핍되어 망가져 출산율이 폭락하게되었다.

개인주의 체제인 국가의 국가 원리는 개인의 의사로 개인의 자유 의지로 연애와 결혼을 할 수 있는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미성년 시기부터 남녀가 어울리며 성기능이 작동하는 사춘기부터는적극적으로 이성과 성관계를 맺으며 이성애와 성을 충족해야 연애와 결혼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며 출산율이 올라갈 수 있다. 그러지 않으면 지금과 같이 출산율이 폭락하게 되어 있다.

전 세계에서 보편적으로 출산율이 감소하는 것은 과거의 낡은 가치관으로 개인의 자유가 보장되는시대에 적용하면서 나타났다. 과거의 시대에 머물러 있는 국가는 아직까지도 집단의 의사로 결혼하고 출산하기에 출산율이 높지만 개인의 의사를 존중하는 현대의 시대인 국가는개인의 의사로 연애하고 결혼하고 출산하기에 출산율이 낮다. 집단의 의사로 결혼하던 시대와 개인의 의사로 결혼하는 시대는 다른 관념과 구조를 가져야 한다.

저출산 현상의 본질은 낡은 가치관에 의한 체제 적응 실패에 있지만 다른 식으로 주장하는 일이많다. 그것에 대해 알아보자.

 

첫째, 경제 환경. 한국은 고가의 부동산과 일자리 부족과 그에 따른 가난과높은 노동 시간과 같은 경제적 환경에 의해 저출산 현상이 나타났다고 보는 사람들이 많다. 보통 이것이 보편적 인식이다. 그러나 아니다. 한국보다 경제적으로 빈곤하거나 빈부 격차가 큰 국가도 한국보단 출산율이 높다. 한국이 가난했을 때도 출산율은 높았다. 낡은 가치관과 낡은 체제를 유지하는 북한은 한국보다 출산율이 높다.

한국은 노동 시간이 매우 높지만 동시에 아이돌이나 창작물과 같은 유사 연애 산업에 시간을 소비하는사람들이 많다. 인간과 이성애와 성관계가 죄악시되자 인간이 아닌 것으로그 욕구를 충족하게 된 것이다. 정상적인 이성애와 성관념을 가지고 있었다면 그 시간이 이성 관계로 이성애와 성욕을 충족했을 것이다. 그러지 않았던 것은 마땅한 상대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한국은 일인 가구 수가 비정상적으로 늘어난 상황이다.

한국은 이성애와 성을 유사 연애 산업으로 욕구를 해소하면서 연애와 결혼에 대한 우선순위가 매우낮아지게 되었다. 그러면서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어야만 결혼을 생각하게 되었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사람들의 결혼과 출산이 높은 것을 보고 경제 환경이 원인이라 착각하게되는데 본질은 여유가 있어야만 추구할 정도로 인간과의 이성애와 성이 가치가 낮아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경제 환경은 저출산 현상의 간접적 원인은 될 수 있으나 직접적 원인은 될 수 없다.

 

둘째, 자연 생태. 동물은 원래 대부분 대를 잇지 못하고 죽으므로 연애와 결혼을하지 못하여 출산율이 낮아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라 말하기도 한다. 이것은 애초에 불합리한 기준이다. 그런 것은 인간과 짐승과 같은 기준으로 볼 것이 아니라 인간과 인간을 같은 기준으로 봐야 한다. 보통 한 자리 수 아이를 낳는 인간과 편차가 심한 모든 짐승과 비교할 수는 없다. 교미하기 전에 대부분 사망하는 짐승도 있다. 인간도 동물 중 하나이므로 같은 기준으로 볼 수도 있지만 일단 인간과 인간을 기준으로 보는 것이선행되어야 한다. 같은 개인주의 체제인 다른 국가에서는 미성년 때 연인이없으면 무언가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가족 회의를 할 정도라고 한다. 반면 한국은 미성년 때 연인이 있으면 불건전하다고 하는 인간도 있을 정도다. 미성년 연애와 성에 대한 관념 차이가 극단적이다. 자연 상태는 저출산 현상과 무관하다.

 

셋째, 윤리. 신세대가 본인의 이익만 생각하기에 희생하고 싶지 않아서결혼하지 않는 거나 결혼해도 출산을 하지 않아 출산율이 낮은 것이라 말하기도 한다. 집단주의 체제에서는 그것이 옳은 발언이나 개인주의 체제에서는 그것이 그른 발언이 된다. 개인주의 체제인 국가 원리는 개인의 의사이므로 개인이 자발적으로 연애와 결혼과 출산을 할 수있는 환경이 필요하다.

모든 국가는 국가 구조를 유지하여 국가 원리를 추구한다. 개인주의 체제인 국가는 이른 결혼을 권장하여 다수가 이른 결혼을 하는 것으로 국가 구조를 유지하고늦게 결혼하거나 이성애가 아닌 다른 성에 관심이 있거나 성 자체에 관심이 없는 이들의 개인의 의사가 존중되게 된다. 본인의 의사가 존중되고 싶다면 국가에 이로운 이른 결혼을 하는 이들이 늘어나야 하는 것을 알아야한다. 그래야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으면서도 국가 구조 유지가될 수 있다.

 

한국 저출산 현상의 본질은 낡은 가치관에 의한 체제 적응 실패다. 그 본질을 더 잘 보기 위해 낡은 가치관을 형성케 한 한국의 과거와 그로 인해 나타난 현재에대해 알아보자.

한국의 과거인 조선은 유교적 가치관을 근거로 한 철저한 수직 사회였다. 유교는 지배자의 통치를 위한 정치사상으로 신분뿐만이 아니라 연령, 성별, 직업마다 취해야 할 순서와 차례를 근거로 한 태도를 가르쳐 상명하복 수직 사회를 질서로 유지된 사회였다. 평등이 아닌 불평등하게 순서와 차례를 윤리라 말하며 가르치면서 불평등이 윤리가 된 사회가 되었다. 사람은 왕과 양반과 양민과 천민으로 차별과 연상과 연하가 차별되고 남성과 여성이 차별되고 선비와농부와 공장과 상인이 차별되었다. 그런 차별 속에서 위가 명령하면 아래는 복종해야 했다.

가족도 마찬가지였다. 가장이 명령하면 가족 구성원은 복종해야 했다. 가부장제다. 가부장제인 가족은 집단의 이익을 위해 가족 구성원에게 가족의이익이 되는 결혼을 하도록 중매를 주선하고 대를 잇기 위해 아들을 출산하도록 강요했다. 개인의 이성애와 출산이 집단의 이익 실현 도구로 사용되었다. 개인을 집단의 도구로 삼기 위해 개인이 자유롭게 연애하고 결혼하는 것을 막았다. 그러기 위해 연령 차별을 윤리화한 장유유서를 가르치고 미성년 남녀가 이성 관계를 갖지 못하도록이성 관계 단절을 윤리화한 남녀칠세부동석을 가르치고 여성성의 도구화를 윤리화한 정조 관념을 가르쳤다.

하나, 장유유서. 연령에 차례가 있다고 가르치는 것으로 연하는 연상에게 복종하게만들어 결혼과 출산에 대한 강요를 거부하지 못하도록 했다. 둘, 남녀칠세부동석. 남녀는 칠 세부터 한자리에 앉지 말아야 한다면서 미성년의 이성 관계 단절시켰다. 셋, 정조 관념. 여성은 결혼 전에 순결을 지키고 결혼 후에 정절을 지켜야한다면서 혼전 성관계와 과부의 재가를 막았다.

그 가르침에 의해 조선 사회는 연상의 명령으로 미성년의 이성 관계가 단절되고 여성의 정조를 지키기위해 성을 죄악시하게 되었다. 미성년의 연애가 불건전하게 여겨지고 미성년의 성 문화 접촉이 불결하게 여겨졌던 것은 이런 가르침에 의한 것이었다. 특히 여성은 스스로 정조를 지키게 하기 위해 연상의 세뇌를 매우 강하게 당했는데 이후 이후 여성이힘을 얻게 되면서 그 세뇌에 의해 미성년 이성 관계 단절을 주장하고 성 문화 탄압에 앞장서게 된다.

한국이 되었다. 중간에 군사 독재 정권으로 인해 실질적으로 개인주의 체제인 국가라 할 수 있는 것은 문민정부의 시작인 1992년부터일 것이다. 1992년. 그 해가 바로 MZ세대 시작의 사춘기다. MZ세대는 밀레이널 세대와 주머스 세대를 합친 한국 신조어로 MZ세대의 본질은 한국 개인주의 체제가 시작되었을 때 사춘기를 경험한 세대라는 것이다. 밀레니얼 세대의 시작이 1980년생 초반인데, 이들이 사춘기가 될 무렵에 1992년 문민정부가 시작되었다. 개인주의 체제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세대가 바로 밀레니얼 세대다. 개인주의 체제 시작 이후 체제 변화보다 더 극적인 변화가 아직 없었으므로 체제로 MZ세대와 이전 세대가 구분되게 되었다.

개인주의 체제가 되면서 본격적인 관념과 체제의 충돌이 시작되게 되었다. 개인의 의사로 연애와 결혼과 출산을 해야 하는 개인주의 체제에서 이성애와 성을 죄악시하여 개인을중매결혼 시키던 관념을 가지고 똑같이 미성년에게 이성 관계를 단절시키고 성 문화 검열과 탄압을 해버리게 되었다. 미성년의 연애가 불건전하고 미성년의 성 문화는 물론이고 성년의 성 문화조차도 금지되는 것은 이것이원인이다. 특히 여성의 정조를 지키는 가부장제의 수동적인 여성상을세뇌 당하여 그걸 여성의 본성으로 착각한 여성주의자들이 그런 여성상을 지키는 것이 여성의 이익이라 여기고 성인지감수성을 말하며 신세대 여성에게세뇌하고 사회에 강요하는 바람에 조선 시대보다도 심하게 강박적으로 이성과 성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인간도 나타나게 되었다. 그러면서 남성과의 작은 접촉이나 시선으로도 발작하며 신경질적으로 분노하는 여성도 나타나게 되었다. 가부장제 여성성을 가지게 된 여성주의자는 인간이 인간을 성적 대상으로 여기는 성적 대상화와 인간의인간의 성을 즐기는 성 상품화를 죄악시하게 되었다. 그러한 것을 같은 성관념을 가진 정치가들에 의해 수용되어 강제력을 가지게 되면서 상황은 더욱 더 심각해져 갔다. 결혼 전 여성의 정조를 지키는 것이 윤리이므로 여성을 대상으로 했을 때만 죄악시하여 남성 성적대상화나 남성 성 상품화에 대해서는 대응을 하지 않았다. 경제 성장과 윤리의 상관관계에 따라 윤리가 더욱 강조되면서 더욱 이성애와 성이 죄악시되는 가운데, N번방 사건에서 일부 중학생이 성년에게 이용당했다는 것을 일반화하여 모든 중학생이 사리 분별 할줄 모르는 어리석은 인간이라 규정하고 성년과의 성적 관계에 대한 성적 자기결정권을 박탈하게 된다. 성년과 중학생 미성년의 성적 관계가 범죄화되면서 사회에서 미성년의 이성 관계나 성은 더욱 더부정적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미성년 여성 아이돌 가수가 나오거나 미성년 여성이 노출을 하면 창작물조차 미성년 성 상품화라 말하며 발작하는 사람이 나타나게 되었다. 물론 미성년 남성 가수나 노출은 현실조차도 문제 제기를 하기는커녕 즐기는 풍조가 나타나게 되었다. 그렇게 미성년의 이성애와 성이 결핍되어 정상적인 이성애와 성을 배우지 못하여 2021년 20대 연애율이 21.4%가 되었다. 이성애와 성을 부정적으로 여기며 연애와 성관계를 맺는 인간이 감소하면서 결혼에 대한 부정적 인식속에 결혼 연령과 출산 연령이 높아지게 되었다. 그러면서 시기를 놓친 인간들은 아예 결혼을 포기하게 되었다. 결혼 연령과 출산 연령이 높아지고 있음에도 잘못되고 있음을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비혼을 말하며 결혼하지 않는 본인을 자기 합리화하였다. 그럼에도 본질을 모르고 여전이 유교적 가치관을 근거로 이성애와 성을 죄악시하는 이들이 있어 저출산현상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더욱 악화시키고 있는 중이다. 현재 저출산 현상은 낡은 가치관에 의해 일관적으로 계속 미성년의 이성애와 성을 죄악시하면서 악화된 결과다. 한국은 낡은 가치관으로 자연 소멸을 하게 될 국가가 될 처지가 되어가고 있다. 정확히 말하면 낡은 가치관에 의한 국가적 자살이다.

 

 

한국에서 저출산 현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올바른 이성애와 성이라는 개인주의 체제에 맞는개인 관념과 국가 구조로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 미성년 때부터 올바른 이성애와 성을 가지고 개인의 의사로 정상적인 연애와 결혼과 출산을 할 수 있어야 출산율이 올라갈 수 있다. 미성년 때 도덕관념이 자리잡으므로 성년 이후에는 쉽게 교화가 안 되는데 이성애와 성관념은 다를것 같았는가? 논리적인 주장을 해야 한다. 도덕관념은 커서 교정하기 힘들어 사람이 변하지 않거나 교화가 힘들다고 말해놓고 성관념은 커서변할 수 있어서 미성년 때에는 이성애와 성을 죄악시하다 성년이 된 이후 자연스럽게 이성과 연애하고 성관계 맺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가? 도덕관념이나 성관념이나 같은 기초 관념은 사춘기 시기를 넘으면 쉽게 교화나 교정이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는 잘못된 인식이 나타날 정도다. 낡은 가치관에 의해 본질을 볼 수 없으면 안 된다. 성년 이후 도덕관념을 교화하기 위해서 온갖 노력이 필요한 것과 같이 성년 이후 이성애와 성관념을교정하기 위해서는 온갖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미성년 시기에 올바른 성관념을 가지고 성년은 온갖 노력을 다해 올바른 이성애와 성관념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그걸 위한 국가 구조가 있어야 한다. 그전에 한국에서 이성애와 성의 취급에 대해 알아보자.

 

한국에서 이성에 대한 사랑은 취미에 대한 사랑보다 못하다. [이성애는 이성 간의 사랑을 뜻한다. 또는 이성에 대한 사랑.][성애는 남녀 사이에서 일어나는 성적 본능에 의한 애욕을 뜻한다.] 이성애는 이성의 상대에게 성적 본능에 의한 애욕을 느끼는 것을 말한다. 그렇지 않은 이성 관계는 친애일 뿐이다. [친애는 친밀히 사랑함을 뜻한다. 또는 그 사랑.] 이성애는 동물적 본능으로 상대를 좋아하는 사랑이다. 짐승은 지성이 없거나 부족하기에 호르몬 작용에 따라 행동하지만 인간은 지성이 있기에 호르몬 분비에 의한 작용을 생각하고 행동하게 된다. 그러면서 관념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 그 차이일 뿐이지 인간도 동물인 이상 성적 매력에 이끌리는 것이 정상이다. 그렇게 인간이 인간에게 성적으로 매력을 느껴 좋아한다는 감정을 갖는 것이 이성애다. 그런 사랑은 본래 사랑하는 것 자체에서 이익을 얻기에 다른 이익을 바라지 않는다. 그런데 한국 사회의 사랑은 어떠한가? 일부 미성년의 연애나 이른 연애와 결혼을 제외하면 대부분 연애와 결혼에 성적 매력 외의 조건을본다. 인간에게 성적 매력을 느끼고 이끌리는 것이 아닌 조건에매력을 느끼고 이끌린다. 그걸 본인만 보는 것이 아니다. 대상 가치에 의해 대상의 가치를 공유한 특정 집단은 성적 매력 외의 것을 간섭한다. 나이가 어울리지 않는다. 외모가 어울리지 않는다. 학력이 어울리지 않는다. 직업이 어울리지 않는다. 재산이 어울리지 않는다. 본인의 주관적인 기준으로 타인의 사랑에 간섭하며 부정하기까지 한다. 그러면서 정상적인 연인 관계가 붕괴한 사례가 수도 없이 많다. 대상 가치가 아닌 관계 가치로 본인의 관계로 가치를 판단해야 이런 일이 줄어들 수 있다.

성적 매력에 이끌려 사랑하고 있다고 말하면 질색하면서 화를 낸다. 몸을 보고 사랑하느냐고 말하면서 말이다. 특히 가부장제의 수동적인 여성성을 가진 이들이 더욱 더 화를 낸다. 어떻게 사람을 성적 대상으로 볼 수 있느냐며 말이다. 어처구니 없다. 진실된 이성애인 성적 매력에 이끌림은 천시되면서 타산적 자기애인 조건에 이끌림은 바른 것처럼 말한다. 한국 사회에서는 이성애가 천대받고 조건이 우대받는다. 이 얼마나 타산적인 사랑인가?

이성애와 성을 죄악시하는 관념에 영향을 받아 혼란스러울 수 있다. 그렇다면 묻겠다. 인간의 본능으로 느끼는 사랑이 진실 되었는가? 아니면 조건을 따지는 사랑이 진실 되었는가? 당연히 전자다. 한국은 과거 개인의 이성애가 집단의 이익 실현을 위한 도구로쓰였던 것이 현재 개인의 이익 실현의 도구로 쓰이고 있어 진실된 이성애가 무엇인지 모르고 성적 매력에 이끌리는 진실된 사랑을 무작정 비난했던 것이다. 그런 성애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합리화하기 위해 나온 것이 플라토닉 러브라는 이성애와 친애도구분 못하는 인간이 말한 헛소리가 있다. 정상적인 이성애는 성적 매력으로 사랑을 느끼고 이성에게 고백하여 연인이 되어 성관계를 맺으면서 자연스럽게 사랑을 키워나가는 것으로 서로를길들이면서 결혼하고 출산하는 과정을 겪었어야 했다. 가장 진실된 이성애가 성적 매력에 이끌리는 것이다. 그럼에도 가부장제의 성관념을 근거로 야한 것이 잘못되었다고 말하거나 인간을 성적 대상으로 보면 안 된다거나 성 상품화가 잘못되었다고 말하는이들이야말로 진실된 이성애를 모르는 것이다. 인간의 선천적 성질인 유전자는 성적 매력에 이끌려 사랑을 하는 것이 진실되었음을 말하고 있다.

그럼에도 지금 한국의 사랑은 대부분 타산적 자기애인 조건에 이끌림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다. 그런 탓에 한국에서 이성애는 개인의 이익 실현 수단으로 전락하여 실상 이성애라기 보다는 자기애의표현 방식에 가깝게 되었다. 이성을 트로피와 같이 본인의 자랑용으로 취급하거나 지갑과 같이 본인의 용돈 주머니로 취급하거나 본인의 성욕 해소 도구로만 취급하였다. 이게 정상적인 이성애로 보이는가? 한국은 이성애와 자기애와 친애를 분명하게 구분 지어야 한다. 인간의 성적 매력에 이끌림이 진실된 이성애고 조건에 이끌림이나 본인의 쾌락만을 위함이 타산적자기애고 성적 외의 이끌림이 평범한 친애다. 한국은 성적 대상화를 막는다거나 성 상품화를 막는 등과 같이 성애와 성을 죄악시하면서 성애와 성을 부정하니 진실된 이성애는 부정되고 타산적자기애와 평범한 친애가 주로 남았다. 평범한 친애는 친구관계와 다를 바 없으므로 실질적으로 이성관계는 주로 타산적 자기애가 남았다. 진실된 이성애인 연인도 주의에서 조건을 말하며 타산적 자기애로 변질되도록 유도되면서 더욱 더타산적 자기애만 남게 되었다. 이런 현상으로 온갖 사회 문제를 일으키게 되었다.

 

첫째, 통계. 타산적 자기애에 많기에 진실된 이성애는 더욱 사라지면서 MZ세대의 초기 세대라 할 수 있는 2020년 30대의 혼인율이 절반을 넘지 못하고 2016년 한국 부부의 섹스리스가 세계 2위로 3쌍 중 1쌍이 성관계를 맺지 않고 있다고 한다. 2021년 한국 성인 36%가 1년간 성관계를 하지 않았다는 조사도 있었다. 이성애 소실이 통계로 나타나고 있다.

 

둘째, 타산적 자기애. 타산적 자기애가 많기에 타산적 자기애로 연애를 하고 결혼을하는 부부가 늘어나게 되었다. 이것은 연애와 중매 관계가 없다. 보통 자유 결혼은 자유 의지에 따른 이성애로 생각할 수 있는데 사회 보편적 인식이 이성애와 성을 죄악시하는 바람에 정상적인 이성애가 아닌타산적 자기애로 자유 결혼 하는 일도 늘어나게 되었다. 타산적 자기애로 결혼한 이들은 쉽게 갈등이 발생하여 이혼을 하게 되면서 이혼률 또한 급격하게 오르기 시작했다. 한국이 간통법 폐지로 불륜 많아졌다고 하는데 애초에 이성애로 결혼한 것이 아니니 불륜이 많은것이다. 황당하게도 조건에 이끌려 결혼한 부부보다 성적 매력에 이끌려불륜한 커플이 진실된 이성애에 가깝다. 논리만 보면 그렇다. 그 정도로 보편적인 이성애가 죽은 상태다. 남성 측에서는 여성이 남성을 사랑하지 않는 현상을 가리켜 설거지라고 말하는 사회 현상이 나타날 정도고 여성 측에서는 남성에 대한 이성애가박살 난 상태에서 아이를 낳고 싶은 이들이 정자은행으로 아이를 낳고 싶다는 의사를 표현하게 될 정도였다. 그야말로 이성애의 종말이다.

 

셋째, 정조 관념. 타산적 자기애가 많기에 보편적 연애 경험이 적어짐에 따라과거와 같은 정조 관념을 가지면서 여성의 처녀성을 중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사라지지 않게 되었다. 처녀성을 찾는 것은 개인 자유지만 처녀가 아니라는 이유로 비난하는 것은 부당하다. 성경험이 있거나 많은 여성을 걸레라 부르는 것도 정조 관념에 의한 것이다. 한국은 정조 관념에 의한 성적 억압에 불만을 가지면서도 정조 관념에 의한 처녀성을 중시하거나정조 관념에 의한 처녀성 중시를 비판하면서 정조 관념에 의한 성적 억압을 자행하는 모순적 태도가 나타나게 되었다.

 

넷째, 성매매. 타산적 자기애가 많기에 음성적으로 성을 매매하는 일이 많아지게되었다. 한국은 법적으로 성매매가 금지되어 있으나 개인의 이익 실현을위해 자발적으로 성을 매매하는 인간이 상당히 많은 편이다. 그러면서도 세금을 내지 않아 차라리 허용하자는 주장이 많은 편이다. 개인주의 체제에 맞게 개인의 의사라면 성적 자기결정권에 따라 개인의 성매매는 허용되어야 한다. 그런 성매매뿐만 아니라 이성과 데이트를 하는 것으로 돈을 받거나 이성과 게임을 같이 해주는 것으로돈을 받는 일이 나타나게 되었다. 인간관계에서 이성애를 충족하지 못하니까 그렇게 해서라도 이성과의 관계를 갖고 싶어한 인간들의 수요에 의해 다양한 공급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다섯째, 낙태. 타산적 자기애가 많기에 본인 이익 실현을 위한 낙태에 대한거부감이 적게 되면서 낙태가 늘어나게 되었다. 이성애를 본인의 이익 실현 수단으로 쓰니까 이성 관계로 물질이나 쾌락과 같은 이익을 얻고 이익의 불필요한 결과물인 태아는 낙태로 처리하게되는 것이다. 진실된 이성애에서도 낙태는 나타날 수 있으나 일반적으로는성적 매력이 이끌려 사랑하면서 서로가 길들여짐에 따라 인간 자체를 사랑하게 되어 그 관계에서 생긴 아이도 사랑하게 된다. 타산적 자기애를 가진 사람에게 있어 이성 관계나 성관계는 어디까지나 자기애를 위한 것으로 타산적인이익 외에는 관심이 없다.

 

여섯째, 일인 가구. 타산적 자기애가 많기에 동거나 결혼이 몹시 복잡하게 되었다. 동거나 결혼은 그냥 단순히 서로를 사랑하여 마음이 맞는 상대와 같이 살 뿐이다. 조건 따져가면서 만날 이유가 없다. 특히 동거는 더욱더 그렇다. 한국은 일인 가구가 많은데 그 대부분이 이성 관계가 없거나 조건을 따져가면서 만나니까 동거나결혼을 하지 않았으니까 일인 가구인 것이다. 다인 가구에 비해 일인 가구는 생계비가 많이 들어가 개인은 생계비가 높고 사회는 자원이 낭비된다.

 

일곱째, 성별 갈등. 타산적 자기애가 많기에 이성애가 소실되면서 이성을 사랑하지않게 되는 것으로 성별 갈등도 심각하게 커져가게 되었다. 지금 성별 갈등의 본질은 이성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랑하지 않으니까 사소한 것 하나하나에 예민하게 반응하며 싸우는 것으로 갈등이 끝나지 않고 있다. 이성을 사랑하지 않게 된 것은 이성애가 소실되었기 때문이고 이성애가 소실된 이유는 낡은 가치관으로미성년의 이성 관계와 성관계를 죄악시하며 막거나 부정적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여성주의의 일방적 이익 주장이 그걸 더욱 더 부추기고 있다. 성별 갈등이 커지면서 여성주의자들은 여성 성 상품화 반대라 말하며 남성이 즐기는 게임 검열을주장하거나 누드 축제를 막는 것과 같이 성 문화 탄압을 주도적으로 행하게 되었다.

 

여덟째, 이른 결혼 부정. 타산적 자기애가 많기에 늦은 결혼을 하게 되면서 주위에서본 이른 결혼이 개인에게 불행했다며 합리화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가부장제의 차별적인 결혼이 보편적으로 불행한 것이지 평등한 결혼은 사이 좋은 커플 동거의 연장선상에 있다. 이른 결혼을 하더라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사회 진출에 따른 자녀 양육 문제라면 결혼 하고 나서 자녀 계획을 하면 동거와 차이가 없다. 사이 좋은 커플이 동거에서 결혼을 하게 되면 다양한 물질적 어려움으로 갈등이 발생할 수 있는데그것은 애초에 이성애의 가치가 물질의 가치보다 낮았기 때문에 발생하는 갈등이다. 취미를 위해 먼 나라에 놀러 가는 판국에 큰 빚이나 그런 것이 아닌 한 보통 사소한 물질적인문제로 심각한 갈등을 빚는 것 자체가 취미보다 이성애의 가치가 낮다는 것이다.

 

아홉째, 부부 관계. 타산적 자기애가 많기에 타산적 자기애를 합리화하기 위해진실된 이성애는 성적 매력이 이끌린 것으로 시간이 흐르면 변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본래 모든 인간관계는 유지되기 위하여 서로가 노력해야 한다. 인간이 육체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을 해야 하는 것과 같이 국가가 구조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을해야 하는 것과 같이 부부 관계도 유지하기 위해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도 안 될 경우에는 계약 관계를 끝내고 자연스럽게 헤어지면 된다. 그것이 정상적인 인간관계다. 과거 집단주의 체제에서 이혼을 가족 붕괴로 말하며 자녀를 불행케 하는 행위로 여겨졌으나 현재개인주의 체제에서 이혼은 단순한 부부의 계약 종료로 가족의 계약 종료가 아니므로 이혼한 부부가 자녀와 사이 좋게 지내면 자녀는 불행하지 않게 된다.

 

열째, 세뇌. 타산적 자기애가 많기에 일부를 제외한 대부분 인간이 진실된이성애가 아닌 타산적 자기애로 이성 관계를 맺고 그 외는 이성 관계를 맺지 않게 되었다. 이것은 오랜 시간 세뇌한 결과다. “미성년 때부터 이성과 가까이 하는 네가 잘못된 거야.” “이성에게 성욕을 느끼는 네가 잘못된 거야.” 앞서 말한 종교 세뇌나 가스라이팅의 원리에 의해 대부분 타산적 자기애로 이성 관계를 이성 관계를맺으면서 한국에서 정상적인 이성애는 죽어버렸다. 한국에서 유사 연애 산업인 아이돌이나 창작물, 그 중 남성과 남성의 동성애물이 비정상적으로 발전한 까닭에는 이런 배경이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한국의 이성애는 타산적 자기애가 많다. 반면 취미는 어떠한가? 대부분 취미에는 타산이 없다. 취미 자체로 만족하기에 다른 이익을 요구하지 않는다. 분명 타산적인 취미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 타산이 없다. 게임, 드라마, 쇼핑, 등산, 낚시 등 즐기는 것으로 만족하기에 다른 보답을 바라는 것과 같은 이해관계를 따지지 않는다. 대부분 취미는 보답을 바라지 않는 사랑이다. 그러므로 한국에서 수많은 조건을 따지는 이성에 대한 사랑은 보답을 바라지 않는 취미에 대한 사랑보다얄팍한 사랑이 된다.

 

 

개인주의 체제에 맞는 이성애와 성의 개인 관념과 국가 구조를 재정립해야 개인의 의사로 연애하고결혼하고 출산하는 것으로 비참한 저출산 현상 문제는 해결할 수 있다. 인간의 육체가 유지되어야 인간의 자아도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는 것처럼 국가 구조가 유지되어야 개인도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다.

 

첫째, 이성애와 성 긍정. 개인 관념은 이성애와 성을 긍정하여 미성년 때부터 이성 관계와 성 문화를 적극적으로 권장하여 올바른 이성애와 성관념이 자리 잡히도록 하는것이 옳다고 여겨야 한다. 남녀칠세부동석이나 정조 관념은 가부장제 시대의 낡은 가치관으로 이제는 버려야 한다. 그걸 근거로 한 이성 관계를 불건전하다 하거나 성 문화 접촉을 막는 규제와 검열과 같은 탄압을막아야 한다. 모든 인간은 성기능이 작동하는 2차 성징이 시작하는 사춘기 시기부터 이성과 성관계를 맺으며 성장해야 한다. 그래야 성년이 되어서도 자유롭게 성관계를 맺고 그 중에 결혼하여 출산하는 이들이 늘어날 수 있다. 성년은 온갖 노력을 다해 올바른 이성애와 성관념을 가져야 한다.

이성애와 성을 죄악시하는 풍조에서 나타난 성적인 농담 유머 등을 불건전하게 보며 불쾌해하는 것자체가 잘못되었다. 성은 죄가 아니고 성은 불건전하지도 않으며 성을 보고 불쾌해해서도안 된다. 집단의 의사로 결혼하던 시대의 가치관을 개인의 의사로 결혼하는시대에 강요해서는 안 된다.

국가 구조는 그러한 이성애와 성 문화가 자리 잡히도록 미성년 때부터 적극적은 이성교제가 가능하도록특정 성별 학교를 점진적으로 모두 폐지해야 한다. 특히 가부장제의 산물인 여학교는 지나치게 여성 차별적이다. 실용적인 성교육을 전면적으로 실시하여 모든 인간이 성을 친숙하게 여겨야 한다. 학창 시절 이성과 연애하다가 결혼하는 사례가 늘어야 한다.

이성애와 성을 친숙하게 여기는 올바른 이성애와 성관념이 자리 잡힐 수 있도록 입법의 법률 제정과사법의 판단을 성에 개방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성에 대한 언급 자체를 죄로 여기는 풍조에서 벗어나야 한다. 성적 농담 정도는 수용할 수 있을 정도로 성이 자유로워야 한다. 행정 또한 수사 기관은 야한 그림 신고 따위의 어처구니 없는 신고는 수용해서는 안 된다. 혐의 없음 이전에 신고조차 받으면 안 된다. 그런 거 일일이 신고하는 거 받아주니까 국가에 이로운 올바른 성관념이 자리 잡히지 못하고 있는것이다.

영상물등급위원회나 게임물관리위원회와 같은 문화 규제 기관의 규제와 검열을 대폭적으로 축소하거나강제력이 없는 민간 기관으로 이전하여 사회적 합의를 통해서만 규제와 검열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낡은 가치관을 잣대로 성적인 문화를 규제하고 검열했던 것은 국가의 그릇된 이성애와 성관념이 자리잡히게 만든 도덕적 죄에 해당한다. 성이 죄악시되어 성관계가 있는 작품이 건전하지 못하다며 천시되는 경향이 있는데 성관계가 없는 이성애를 다룬 작품은 낡은 가치관에 의해 진실된이성애가 제거된 겉멋만 잔뜩 든 진실을 다루지 않은 불완전한 작품에 불과하다.

성관계가 담긴 작품을 즐기는 연령대는 성기능이 작동하는 14세 전후부터 즐길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어려서부터 성에 친숙해져야 성에 대한 긍정적 인식을 가지고 자유롭게 연애하고 성관계하는것으로 20대 연애율 21.4% 밖에 되지 않는 이성애가 죽는 사회에서 벗어날 수 있다. 출산율 이전에 이성애부터 살려야 한다. 그럼에도 그것이 잘못된 것임을 모르고 진실된 이성애를 부정하고 타산적 자기애를 갖도록 유도하고있다. 이성애와 성을 죄악시하는 것은 국가 구조 붕괴를 유도하기에지극히 사악한 행위다. 의기양양하게 이성애와 성을 탄압하는 이들의 악행을 막아야한다.

 

둘째, 개성 존중. 개인 관념은 타인의 개성을 존중하고 타인의 이성 관계에오지랖을 피우지 않는 것이 옳다고 여겨야 한다. 본인과 상대의 역할이란 관계에서 역할에 필요한 성질에 대해서만 가치를 판단하고 그 성질 되엔 중요하지 않으므로 그 외의 성질은 신경 쓰지않는 것으로 타인의 개성을 존중한다. 그렇게 해야 서로의 이성 관계에 오지랖을 피우며 조건을 따지는 타산적 자기애로 변질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사회 입장에서 개개인의 자유로운 인간관계는 개인의 자유 의지라면 어떤 형태라도 상관없다. 연령, 혈연, 동성 등 아무래도 좋다. 인간과 인간과의 이성 관계와 성관계는 날아다니는 잠자리의 교미만큼이나 자연스러운 일이다.

연령은 성기능 작동 시기가 극단적으로 다른 일부 예외를 제외한 일반 인간의 경우 서로 성기능이작동한다면 자유 의지에 따라 성관계를 맺어도 아무 문제가 없다. 가임기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야 한다. 합리적 기준은 낡은 관념이 아닌 과학적 근거에 있다. 국가 원리가 개인의 의사인 개인주의 체제인 국가에서는 최대한 개인의 의사를 존중하며 사사로운 인간관계에 개입하여서는 안 된다. 사춘기 미성년과 성년의 성관계를 부정적으로 보는 것은 미성년을 사리 분별을 못하는 어리석은 인간으로보기 때문이다. 그렇게 보았기 때문에 실제로 그렇게 가르쳐 그 동안은 사리분별을 못하는 사춘기 미성년이 많았으나 인터넷의 등장으로 무분별하게 성숙하게 되는 사춘기 미성년이 많아 그들에 의한 범죄도 늘어나고 있다. 모든 인간은 본인 육체의 기능에 대한 이해와 결정권을 가져야 하고, 그럴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한다.

혈연의 경우 집안의 족보와 자녀의 유전병 문제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혈연의 관계를 정리한 족보는 가부장제가 남긴 골동품이며 유전병은 한 세대에서는 대부분발현되지 않으므로 문제가 없다. 낮은 확률의 유전병이 문제라면 고령 출산도 문제가 된다. 합리적 기준은 낡은 관념이 아닌 과학적 근거에 있다.

동성의 경우 아이를 낳지 못한다는 문제가 있다. 그렇다고 해도 개인주의 체제 국가 원리를 해칠 수가 없으므로 막을 수가 없다. 소수의 동성애를 금하는 것으로 국가 출산율을 조금 올리는 것보다 소수의 동성애를 허용하는 것으로개인주의 체제의 합리성을 지키는 것이 공익에 부합한다. 남성 동성애는 항문 성교로 인한 성병 문제가 있는데 차라리 공개되는 것이 관리하기가 쉽다. 그러나 국가 구조 유지에는 도움이 되지 않으므로 국가 원리에 의한 개인의 의사가 존중 받기 위해서는동성애자 또한 국가 구조 유지를 위한 이성애 권장에 협조해야 한다. 그렇게 국가 구조가 유지되어야 국가 원리에 의해 동성애자의 의사가 존중 받을 수 있다.

연령, 혈연, 동성의 관계를 본인의 낡은 가치관을 근거로 바라보며 선을정하고 선을 넘었느니 말하며 인간의 사랑을 죄악시하기 보다는 과학과 같은 합리적 기준을 근거로 판단해야 한다. 그렇게 개인의 의사로 하는 다양한 사랑이 존중되어야 국가 구조는 유지되고 국가 원리를 추구할수 있다.

국가 구조는 자유로운 인간관계에서 개성을 가질 수 있도록 법률을 바꾸고 사법의 판단을 개인 개성존중의 방향으로 바꿔야 한다. 연령, 혈연, 성별 관계 없이 일반 인간의 성기능 작동이라는 합리적 기준으로 모든 개인이 성적 자기결정권을가질 수 있도록 구조를 가져야 한다. 특히 연령과 혈연은 그 관계가 어떻든 아무래도 좋다. 개인의 자유 의지로 연애하고 결혼하고 출산하면 국가 구조 유지 할 수 있다. 낡은 가치관에 의해 성기능이 작동되는데도 성적 자기결정권이 없어 죄악감을 가지며 성관계를 하거나자위해야 했던 비참한 사춘기는 더 이상 없어야 한다. 그 이후 개성 존중은 개인의 의사의 영역이 크므로 개인이 알아서 해야 한다.

 

셋째, 성적 매력 가꿈. 개인 관념은 인간이 인간에게 사랑 받기 위해 성적 매력을가꾸는 것을 옳다고 여겨야 한다. 국가 원리가 개인의 의사인 국가에서 모든 개인은 진실된 이성애로 사랑하고 사랑 받기 위해 성적 매력을 가꿔야 한다. 성적 매력은 외모, 몸매, 성격, 능력 등이 있을 수 있는데 일반적으로 외모와 몸매에 성적 매력을 느끼는 경우가 많으므로 외모와몸매를 가꾸어야 한다. 일상적으로 피부를 관리하고 운동을 하여 몸매를 관리한다. 외모가 나빠서 이성과 연애를 하지 못한다는 말을 하는데 대부분 처음부터 외모가 나쁜 것이 아니다. 이성애와 성을 죄악시하는 것에 세뇌되면서 가꾸질 않았으니까 외모가 나쁘게 된 것이다. 선천적으로 외모가 좋거나 그런 것에 세뇌되지 않고 꾸준히 가꾼 사람만 외모가 좋으니까 마치 그것이선천적으로 그런 것처럼 보이는데 성별 관계없이 꾸미면 대부분 매력적이게 된다. 성형도 발전해서 대부분 가능하다. 규모의 경제가 된 것인지 성형 비용도 저렴해져서 학생 때 아르바이트로 번 돈으로 외모 성형에투자할 만도 하다.

국가 구조는 외모 복지를 하는 것이 타당하다. 외모 복지가 저출산 대책 비용보다 저렴하면서 훨씬 효과적이다. 이미 출산을 하겠다 의지를 가진 사람에게 지원하는 것은 타당하지만 효율이 매우 낮다. 출산이라는 결과를 늘리기 위해서는 이성애라는 기본 풀을 늘려야 한다. 이성애가 작동할 수 있는 배경은 기본적인 외모라는 전제가 필요하다. 물론 외모가 없더라도 이성애는 가능하나 보편적이기가 어렵다. 모든 학생은 피부 관리, 치아 교정, 쌍꺼풀 수술 같은 가벼운 외모 복지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 대부분 학생은 기초적인 외모 관리만 받아도 충분히 아름다워질 수 있다. 그렇게 하여 이성이 서로를 사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외모 복지에 쓸 비용으로 희귀병 환자 치료를 해야 한다고 말할 수 있는데, 그보다 외모 복지를 통해 이성애를 권장하여 국가적 자살을 막는 것이 시급하다.

외모 복지를 하면 대부분 자존감이 올라가 출산율뿐만 아니라 자살율 하락에도 기여할 수 있다. 낮은 자존감으로 인해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게 되면서 성적 매력을 가꾸지 않고 공부도 하지 않게되기도 한다. 그러면 자신감도 사라져 소극적이게 되면서 욕망이 적은 충동적폭력으로 욕구를 충족하는 학교 폭력의 대상이 되어 집단 괴롭힘을 당할 수도 있다. 단순한 고민 상담은 현실 도피적 행복이고 의학적 외모 복지는 현실 직시적 행복이다. 외모 복지를 하기만 해도 출산율이 오르고 자살율을 줄일 수 있다. 낡은 가치관에서만 벗어나면 외모 복지의 사회 경제적 효율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학생이 외모를 꾸미는 것을 보고 학생 인권을 주장하는 이들이 반대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학생은 누군가의 도덕적 만족감을 충족시켜주기 위한 도구가 아니다. 학생 인권은 학생의 권리를 위해 존재해야 한다. 학생이 외모를 가꾸는 것과 이성 관계와 성관계와 성 문화를 막아 불행하게 만들면서 학생을 공부하는로봇으로 만드는 사람들이 학생 인권을 말하는 것은 지나치게 뻔뻔하다. 그것은 학생 인권이 아니라 인권 운동자의 가치관에 맞는 학생 모습을 바라는 운동자 이권에 불과하다.

 

넷째, 이른 결혼. 개인 관념은 모든 미성년이 적극적으로 이성과 연애와 성관계를하다가 이른 결혼을 하는 것을 옳다고 여겨야 한다. 학생 90% 이상이 이성과 이성 관계와 성관계를 맺도록 권장해야 한다. 성적 매력에 이끌리는 것이 진실된 이성애임을 알아야 한다. 학생 50% 이상이 졸업 후 바로 결혼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결혼이 늦을수록 자의든 타의든 타산적 자기애로 변질될 확률이 높아 사랑하지 않는 인간과 결혼하거나 결혼하지 않는 것으로 앞으로의 삶이 불행해질수도 있다. 그 외의 학생도 가능한 빠르게 결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해야 대다수가 이성애와 성관계를 통한 행복을 얻으면서 출산율을 올리고 자살률을 내려야한다.

국가 구조는 국가 구조 유지를 위한 이른 결혼을 적극적으로 권장해야 한다. 이른 결혼을 하면 경제적으로 어려울 수 있는데 그것에 저출산 대책 비용을 쓰면 된다. 이미 여유가 있는 사람의 산후 조리에 복지 정책을 적용하는 것보다 여유가 없는 신혼 부부에게복지 정책을 적용하는 것이 훨씬 더 복지의 의미에 부합한다. 어떤 사람들은 개인의 자유를 위해 늦게 결혼해야 하거나 비혼을 해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는데 그런 개인의 의사가 존중되기 위해서는 국가구조가 유지되어야 한다는 것을 명확하게 알아야 한다. 이른 결혼은 쉬운 이혼을 전제로 해야 한다. 결혼은 일생을 같이할 종속 계약이 아닌 자유 계약이다. 개인주의 체제에서는 쉽게 결혼하고 쉽게 이혼하고 쉽게 재혼할 수 있어야 개인의 의사가 보다 잘 반영된다.

 

다섯째, 경제적 지출. 개인 관념은 이성애를 근거로 한 모든 활동에 경제적 지출이되는 것을 옳다고 여겨야 한다. 개인은 이성 관계에 경제적 지출을 하는 것을 타당하다 여겨야 한다. 개인의 취미보다 이성애가 가치가 높아져야만 그것이 가능해진다. 낡은 가치관에 의해 더치페이와 같은 평등한 지출을 부정하는데 그것은 여성 차별적인 가부장제 가치관으로남성을 차별하는 명백한 차별이다. 부모는 자녀가 외모를 꾸미거나 데이트를 할 비용에 지원하거나 외모나 데이트 비용을 위해 아르바이트 하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자본가는 노동자가 이성애와 관련된 활동을 위해 휴가를 가지는 것과 같은 것에 이해해야 한다. 보너스나 상여금을 이성 관계에서 소비할 수 있는 것을 지원하는 것도 좋다.

국가 구조는 학교에서는 이성 관계를 적극적 권장하고 앞서 언급한 외모 복지를 적극적으로 행하고이성애 관련 산업은 세금을 적게 받는다거나 이성애 권장에 협조하는 기관과 기업에 지원하는 등과 같이 이성애가 권장될 수 있는 경제적 환경을 조성해야한다. 그렇게 하여 국가적 자살을 막아야 한다.

 

 

이성애와 성의 권장은 과거와 정반대의 가치관이므로 불안할 수 있다. 집단의 의사로 중매결혼 하던 시대의 가치관과 그에 따른 국가 구조와 개인의 의사로 자유 결혼하는 시대의 가치관과 그에 따른 국가 구조는 정반대일 수밖에 없다. 그러면서 나타날 수 있는 불안에 대해 알아보자.

 

첫째, 가치 생산 하락. 이성애와 성이 권장되면 학업이나 노동에 의한 가치 생산이하락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친구 사귈 시간이나 유사 연애 산업을 즐길 시간에 이성 관계와 성관계를 맺으면 된다. 그러면 가치 생산이 하락되지도 않고 그렇게 하여 연인이나 가족이 되면 명확한 동기를 부여 받아적극적으로 가치 생산을 할 수 있다. 개인주의 체제인 국가 원리는 개인의 의사이므로 가치 생산을 강요할 것이 아니라 스스로 가치 생산의 동기를 찾아야 한다.

 

둘째, 풍기 문란. 이성애와 성이 권장되면 풍기가 문란해질 수 있다고 생각할수 있다. 그러나 이성 관계와 성관계는 각자 자유롭게 알아서 해야한다. 그것이 국가 원리다. 학생이 자유롭게 이성 관계와 성관계를 맺으면 임신의 위험이 있을 수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피임 기구가 있다. 되려 이성애와 성이 부정적이면 피임 기구를 구매하지 못하여 의도치 않게 임신하는 일이 많을 수있다. 설령 실수로 아이를 갖는다 하더라도 아무 문제가 없다. 본래 동물은 성기능이 작동될 때 아이를 가지게 된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과거 대부분 결혼 적령기가 성기능 작동 시기였음을 상기해야 한다. 출산 적령이 문제가 있는데 적령기만 따지면 고령 출산도 막아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과학을 근거로 한 합리적 기준으로 접근해야 한다. 미성년은 어리석다라는 차별적인 인식을 제외하면 고령 출산이 가능하면 미성년 출산도 가능하다는결론이 나온다. 미성년이 임신으로 불행한 것은 대부분 사회의 부정적 시선때문이다. 미성년 때 아이를 낳는다 하더라도 임산부와 아이를 아끼고사랑하고 소중하게 여기면 된다. 그렇게 행복하게 되면 다른 학생도 이성애와 성과 출산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며 연애와 결혼과 출산을 하게 될 것이다. 그래야 출산율이 오른다. 경제적 어려움은 복지 정책을 적용하면 된다.

 

셋째, 외모 지상주의. 이성애와 성이 권장되면 외모 지상주의가 퍼질 수 있다고생각할 수 있다. 외모 복지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외모 지상주의에 대한 부정적인식을 근거로 할 것이다. 외모 지상주의로 외모에 의한 차별이 나타난다는 것을 보며 외모 복지와 같이 외모를 가꾸는 것을 권장하는 것이 나쁘다고 여기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국가 원리가 개인의 의사인 국가에서 외모와 같은 개인 취향에 의한 영역은 당연히 차별적이고불균형적인 결과가 나오게 된다. 그래야 개인의 의사가 존중되는 개인주의 체제가 된다. 개인 취향은 깨끗한 물건이나 아름다운 풍경이나 매력적인 외모 등과 같이 보다 개인의 마음에 드는 것에 이끌리는 것이 자연스럽다. 외모 지상주의에 반대하는 이들도 대부분 유사 연애 산업을 통해 아름다운 대상의 성적 매력으로욕구를 충족하고 있다. 선거와 시장이 균형적이면 잘못되었듯이 개인 취향 또한 균형적이면잘못되었다. 그것은 개인에 대한 지배다. 외모 지상주의의 문제는 매력적인 외모를 좇는 것이 아니라 대상 가치에 의해 특정한 외모에만 매력을느끼는 것이다. 관계 가치로 접근하여 개인이 느끼는 매력을 추구하도록 유도해야다양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을 통해 가능한 다수의 매력이 존중 받을 수 있을 것이다.

현재 이성애와 성이 죄악시되고 이성애와 성을 하게 될 수 있는 외모 꾸밈과 성 문화 접촉 또한죄악시 되어 학교에서는 화장이 금지되고 미성년은 성관계를 표현한 성 문화를 접하지 못하게 하고 있다. 그런 탓에 그런 것은 성년에게 반항할 수 있는 의지를 가진 이들이 음주, 흡연을 하는 것과 같이 연애와 성관계를 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 그런 의지를 가진 이들이 꾸밈에 따라 그러지 못한 이들은 꾸미지 않으면서 꾸몄기 때문에연애하고 성관계를 할 수 있었다는 잘못된 인식이 퍼지게 된다. 본질은 억압하던 성년에게 반항하여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의지를 가진 이들이 미성년 때 연애와 성관계를 하면서 그걸 위한 꾸밈과 성문화도 자유롭게 접했던 것이다. 웬만한 인간은 꾸미면 어느 정도 매력을 갖춰 연애하는데 크게 어려움이 없으나 장유유서에 세뇌 당하여 이성애나 성을 죄로 가르치는 성년에반항하지 못한 인간은 꾸미지 못하여 매력이 낮아지게 되었다. 인과가 다르다.

도덕에 의해 이성애를 배우지 못한 착한 인간은 매력을 키우지 못하고 도덕을 무시하고 이성애를배운 나쁜 인간은 매력을 키운다. 이성애를 배우지 못한 착한 남성은 나쁜 여성에게 이용당하여 여성 혐오에 빠지고 착한 여성은 나쁜 남성에게 이용당하여 남성 혐오에 빠진다. 이성애를 배우지 못했기에 이성애를 악용하는 것에 지나치게 취약해졌다.

 

넷째, 이른 결혼. 이성애와 성이 권장되어 이른 결혼을 하게 되면 불행하게될 거라 생각할 수 있다. 흔히 가부장제의 이른 결혼을 보고 이른 결혼에 대한 부정적 선입견이 있을 수 있는데, 그것은 여성의 개인 의사가 반영되지 못한 결혼이고 평등한 관계에서 이른 결혼은 여성의 개인 의사가반영된 결혼으로 같은 기준으로 바라보는 것은 불합리하다. 개인의 의사라는 체제 원리도 생각 안하고 나쁜 가부장제 사회에서 이른 결혼이 있었으니 이른 결혼이 나쁘다라는 일차원적인 결론은 지향해야한다. 개인의 의사로 연애하고 결혼해야 하는 만큼 성적 매력이높을 때 빨리빨리 연애하고 결혼해야 한다. 그렇게 진실된 이성애로 서로를 길들이면서 인간 자체를 사랑하게 되어야 그 관계에서 태어난 아이도 아끼고 사랑할 수 있다. 지금 종종 아기 살해가 언론에 공개되고 있는데 진실된 이성애가 아닌 타산적 자기애로 관계 맺고낳은 아이기 때문에 사랑하지 않아서 죽이는 것이다. 친구 관계를 조건보고 만나 사귀면 비즈니스 관계라 하듯이 부부 관계도 조건보고 만나 결혼하면 비즈니스 관계에 불과하다. 이른 결혼을 하면 사회 진출이 어려워질 거라 생각할 수 있는데 아이 계획을 분명히 하고 결혼하면사회 진출에 문제가 없다. 오히려 같이 살면 가사를 분담하여 혼자보다 시간 절약이 되는 것으로 사회 진출에 이로울 수 있다. 대등한 이성 관계라면 진실된 이성애를 근거로 한 이른 결혼일수록 행복할 확률이 높다. 본인과 관련 없는 타인들이 자발적으로 연애하고 결혼하는 것을 낡은 가치관이나 여성주의와 같은여성 이익 주장을 근거로 방해하는 것과 같이 국가 구조 유지에 협력하지 않는다면 본인의 의사도 존중되지 못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이른 결혼에서 범죄가 발생할 확률이 높은 것은 미성년의 이성애와 성이 죄악시되고 있는 상황에서그런 죄악시를 무시하고 결혼한 도덕을 신경 쓰지 않는 부류기 때문이다. 도덕은 살인, 강간, 폭행, 절도 등을 하지 말라는 보편 도덕과 개인의 의사와 집단의 의사와 같이 체제에 따른 도덕으로 분류되는데 집단주의 체제에 맞는 도덕을 추구하면개인주의 체제에 해롭더라도 보편 도덕은 지키는 반면, 도덕 자체를 무시하면 개인주의 체제에 해로운 도덕은 없으나 보편 도덕도 없어 쉽게 죄를 저지를 확률이 높다. 바람직한 것은 보편 도덕을 개인주의 체제에 맞게 자유 의지로 지키는 것이다. 그러면 이른 결혼을 하더라도 결혼 관련 범죄율은 크게 차이 나지 않거나 오히려 더 줄어들 수도있다.

 

다섯째, 성범죄. 이성애와 성이 권장되어 성적으로 자유롭게 된다면 성범죄가늘어날 수 있을 거라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어떤 문제가 생긴다는 이유로 무조건 막으면 범죄는 줄어들 수 있어도 가치도 사라진다. 성범죄 막겠다고 이성애와 성을 권장하지 않거나 부정하는 것은 학업으로 자살할 수 있으니 학업을막자고 하는 것보다 어리석다. 학업을 하지 않으면 국가 구조가 무너질 확률이 높아지지만 이성 관계와 성관계를 하지 않으면 국가 구조가 붕괴한다. 무엇보다 성범죄는 성적 욕구 자체보다는 개인의 자유권 침해에 있는 것이므로 이성애와 성이 권장된다하더라도 극적으로 변화하지 않는다. 되려 자유로운 성적 욕구 충족에 의해 범죄가 감소할 수도 있다.

 

 

한국은 금욕주의와 이타주의 윤리에 의해 타인에게 금욕과 희생을 강요하는 태도로 이성 관계에 균열이일어날 수 있는데 그것은 이성애 이전의 보편적 문제에 해당하여 그에 관한 것은 생략하였다.

시장 경제에서 계획 경제식 기업 운영을 하면 경제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것과 같이 개인주의체제에서 집단주의 관념을 가지고 살아가면 엉망이 되는 것은 자명했다. 개인주의 체제인 국가에서는 모든 개인이 금욕이 아니라 욕망을 추구해야 했고 이타가 아니라 이기를 추구했어야 했고 성 죄악시가 아니라 성권장을 했어야 했다. 그렇게 정반대의 체제에서는 정반대의 가치를 추구해야 한다. 그래야 이성애와 성으로 개인이 행복하여 출산율이 오르고 자살률이 내릴 수 있다. 그러지 않고서는 어떤 복지 정책도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만큼이나 무의미하다.

 

 

두 번째, 교육

 

교육에 대한 개인 관념과 국가 구조를 개인주의 체제에 맞게끔 재정립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국가가 본질적인 발전을 할 수가 없다. 사회는 인간의 평가로 조직되고 인간은 관념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며 인간의 관념은 교육에 영향을받아 형성된다. 사회의 근간인 교육이 재정립되는 것이 중요하다.

모든 국가는 가치를 생산해야 한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특히 한국은 선진국이 되어 기초 학문을 갈고 닦고 고부가 가치를 생산하지 않으면 선진국인 국가 구조를 유지할 수 없게 되었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하위 선진국에서 정체되거나 중진국으로 퇴행할 수도 있다.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부가 가치를 생산할 수 있는 교육이 필요하다.

한국은 조선을 이은 국가로 교육 관념은 유교의 경전을 암기하고 이해하던 조선의 교육 관념을 따라가지식을 암기하고 이해하는 주입식 교육을 시행했으나 선진국 문명을 흡수한 국가로 선진국 문명의 교육 체계를 따라가면서, 조선과 달리 선진국 문명의 지식을 암기하고 이해한 것을 공정하게 평가하면서 한국은 급속도로 선진국까지성장하게 된 상황에서, 암기와 이해는 전문가지만 탐구나 창의는 전문가가 아니기에기초 학문의 발전과 새로운 고부가 가치를 만드는 것이 어려워 정체 중에 있다.

기초 학문이나 새로운 고부가 가치 생산이 어려운 현상의 본질은 낡은 교육 관념에 의한 체제 적응실패에 있지만 다른 식으로 주장하는 일도 많다. 그것에 대해 알아보자.

 

첫째, 일자리 편향. 한국인은 쉽고 안정적으로 높은 수익을 보장하는 일자리를찾기 때문에 기초 학문이나 새로운 고부가 가치와 같은 돈이 되지 않거나 어려운 생산을 멀리했기 때문이라 생각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보면 그런 면도 있으나 그런 결과를 만든 원인이 무엇인지 생각해봐야 한다. 낡은 교육 관념인 이타주의와 홍익인간에 의해 이타적이게 되도록 교육 받아 학부모와 교사에 이타적이게되어 시키는 대로만 하거나 학부모와 교사를 이타적이게 만들려고 하면서 무시하는 상황에서, 금욕주의와 수기치인에 의해 비정상적인 학부모나 교사의 교육열로 학습 외의 욕망이 제거되어 바라는것이 없어짐에 따라 육체적 욕망을 충족할 수 있는 금전을 요구하게 되면서, 자아 실현이 아닌 수익 실현을 바라며 쉽고 안정적인 곳에서 높은 수익을 얻을 수 있는 일자리를찾게 된 것이다.

 

둘째, 국가적 지원 미비. 한국은 선진국을 따라 잡기 위해 선진국을 흉내내면서 매우 빠른 성장을 하면서 응용 학문과 기존의 고부가 가치 생산에 몰두하면서 기초 학문이나새로운 고부가 가치 생산에 대한 국가적 지원은 있으나 선진국에 비해 적은 것이라 생각할 수 있다. 이것은 기초 학문이나 새로운 고부가 가치 생산의 성공 확률이 낮다 판단되었기 때문에 다른 선진국에비해 투자가 신중했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새로운 고부가 가치는 만들 수 있는 인간이 있다면 굳이 국가적 지원이 없어도 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다. 그걸 할 수 있는 인간이 적었기 때문에 새로운 고부가 가치 생산이 드물었던 것이다.  

 

셋째, 태생적 능력 부족. 한국인은 태생적 능력이 부족하여 기초 학문을 발전시키지 못하거나 고부가 가치를 생산하지 못했던 것이라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지가 않다. 같은 민족이었던 한국과 북한의 발전과 생산 차이가 국가 체제로 났다면 같은 체제인 한국과 다른선진국의 기초 학문과 고부가 가치 생산 차이가 국민 관념으로 난 것이다. 다른 선진국도 관념과 체제의 충돌로 사회 문제가 일어나고 있으나 한국보다는 개인주의적인 성향이강하여 상황이 나은 편이다. 태생적 능력 부족이 아니라 체제에 맞는 개인 관념과 국가 구조를 갖추지 못하여 능력이 부족하여 기초 학문 발전과 새로운 고부가 가치 생산이어려운 것이다.

어떤 사람은 오랫동안 선진국이었던 국가는 기초 학문과 고부가 가치 생산 기간이 길어 따라잡을수 없다 여길 수 있다. 그러나 새로운 세대가 기초 학문을 하지 않거나 새로운 고부가가치를 생산하지 못하는 것은 교육의 문제라 할 수 있다.

 

 

한국 교육 관념의 본질을 알기 위해서는 조선 교육을 알아야 한다. 과거 조선의 문과 과거 제도에서는 유교 경전을 암기하고 이해하는 것과 사회 문제 대책 질문에대한 답이나 시와 같은 문예 창작 하는 것을 평가하여 줄을 세운 다음 관직을 나눠주었다. 조선의 과거 제도는 상대적으로 매우 공정한 제도였으나 낡은 유교의 가르침이나 그걸 그걸 바탕으로생각한 사회 문제 대책이나 시와 같은 문예 창작을 평가 기준으로 삼았기에 국가 발전에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못했다. 수기치인과 고려보다 체계적인 과거 제도가 있었음에도 국가 발전이 정체되거나 퇴보했던 것은 아무리노력해도 유교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수기치인은 자신의 몸과 마음을 닦은 후에 남을 다스림을 뜻한다.] 수기치인이라는 지배자의 능력주의는 능력의 기준이 유교였기 때문에 그 능력이 국가 발전에 도움이 되지 못했다.

한국은 과거 조선과 마찬가지로 시험문제에 나올 내용을 암기하고 이해하는 것으로 평가 받거나 수시와같이 기초 학문이나 새로운 고부가 가치 생산에 도움이 되지 않는 방식으로 평가하여 줄을 세운 다음 대부분 진학이나 취업을 하였다. 한국에서 수학 능력 시험이 마치 축제이거나 굉장한 행사처럼 여겨지는 것은 과거 조선의 흔적이다. 조선과 다른 점은 교육 체계나 평가 기준이 유교가 아닌 선진국의 문명이었다. 그렇기에 한국은 선진국까지는 성장할 수 있었다. 그러나 기존 학문을 암기하고 이해하여 응용하는 것이나 기존의 고부가 가치 생산만 하면서 기초학문을 만들거나 새로운 고부가 가치 생산이 어렵게 되었다. 한국의 교육 관념은 본질적으로 조선과 다른 것이 없었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나타났다.

그래서 조선의 교육열도 한국에서 재현되고 있다. 학생의 학구열보다 학부모나 교사의 교육열이 강한 비정상적인 상황이다. 그것은 조선의 교육열이 유교라는 학문이 종교와도 같이 되었기 때문에 사실상 교육에 대한 열의가아닌 신앙에 대한 열의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학생의 학구열보다 학부모나 교사의 교육열이 강했고, 그렇기에 그 학습에는 지식에 대한 호기심이나 진리에 대한 탐구심이 결여되어 그저 유교의 경전을 종교 경전과 같이 암기하고 이해하고 찬양했다. 한국의 교육열도 그것과 비슷했다. 그 교육열로 나타난 학습에는 지식에 대한 호기심이나 진리에 대한 탐구심이 결여되어 그저 선진국의학문을 암기하고 이해하고 찬양했다. 그런 교육을 받아 사회 문제에 대한 본질적인 탐구를 하지 않으니까 한국의 연령 차별과 같은 한국의 본질적 차별은 방치하면서 선진국의 윤리대상 확대에 기반한 서양의 인종 차별과 같은 서양의 본질적 차별을 금지한 차별 금지법을 주장했던 것이다.

한국이 선진국이 되자 선진국의 학문을 암기하고 이해하고 찬양하는 것만으로는 더 이상 발전할 수없게 되었다. 국가가 가야 할 방향을 잃고 정체되면서 점점 퇴락해갔다. 그럼에도 같은 교육 관념과 기준으로 평가하고 가르치면서 기초 학문을 등한시하고 응용 학문이나기존의 고부가 가치 생산에만 몰두하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아동 인권을 주장하며 본인이 생각하는 낡은 가치관을 근거로 한 아동상을 위한 이권운동을 하는 이들에 의해 합리적 기준이 없이 아동의 권리나 혜택이 늘어났다. 그러면서도 낡은 가치관을 근거로 한 아동상에 의해 보호를 명분으로 한 지배가 심해졌다. 그 결과 학부모나 교사를 이타적으로 만들어 이용하는 난폭한 아동이 등장하고 학부모나 교사에게이타적이게 되어 이용당해 기본적인 권리도 존중 받지 못하는 가엾은 아동이 등장하게 되었다. 교육에 관심이 없는 난폭한 아동이 늘어나면서 과거 강제로 교육했던 시기보다 보편적 학력이 낮아지게되었다. 그럼에도 마땅한 대처 방안이 나오지 않자 과거의 것을 답습하여모든 학생을 강제로 교육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주장만 공허하게 떠돌게 되었다.

 

기초 학문과 새로운 고부가 가치 생산을 할 수 있는 인간이 적어지면서 새로운 시장을 창출할 수있는 창업자와 기업의 기획자가 적어짐에 따라 경제가 정체되고 노동자의 수요가 낮아지게 되었다. 대기업은 기존의 고부가 가치를 생산하여 기존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추고 꾸준히 성장하고 있으나중소기업은 기존 시장에서 경쟁하기 어려워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여야 했으나 새로운 고부가 가치를 생산할 수 있는 인간이 적음에 따라 그러지도 못하면서기업 양극화가 커져갔다. 노동자의 수요가 낮아지면서 시장 원리에 의해 노동자의 노동력임대 상품의 가치가 낮아지게 되어 노동자의 이익도 상당히 낮아지게 되었다. 그러면서 경제 활동 둔화 현상이 나타났다.

과거에 기업은 선진국의 상품을 따라 하면 되었고 노동자는 고등 교육을 받은 사람이 적었기에 단순노동을 하길 희망했다. 그러나 현재 기업은 새로운 고부가 가치 상품을 생산해야했고 노동자는 고등 교육을 받은 인간이 늘어나면서 복잡 노동을 하길 희망했다. 그러나 기업은 새로운 고부가 가치 상품을 생산하는 경우가 드물었고 그에 따라 새로운 고부가 가치에맞는 복잡 노동의 수요도 적게 되었다. 한국의 단순 노동은 외국인 노동자가 하게 되었으나 복잡 노동은 고부가 가치 상품을 기획할 수 있는 고학력자보다 기획된 상품을 생산하길 바라는고학력자 늘면서 수요와 공급이 맞지 않게 되면서 고학력자가 바라는 일자리가 매우 적게 되었다. 거기에다 여성의 사회 진출이 늘면서 여성 창업자보다 여성 노동자가 늘어남에 따라 노동자의 노동력임대 상품의 공급이 늘어나면서 일자리는 더욱 더 줄어들게 되었다. 그러면서 경제 활동을 참여하지 않게 된 상황에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엄청나게 큰 대우 차이로 인해 차라리 놀면서 공부하다 대기업이나 공기업에취업하길 바라는 이들이 늘어나면서 경제 활동이 둔화되게 되었다.

새로운 고부가 가치 상품을 생산할 수 있는 창업자가 늘면 좋겠지만 그럴 줄 아는 사람이 적었다. 그러나 기존의 가치 상품을 생산하는 일반 자영업이나 프랜차이즈 자영업은 폭증하게 되었다. 특히 외식업 프랜차이즈 브랜드는 9000개가 넘고 식당은 13만 개가 넘어섰다고 한다. 프랜차이즈 자영업은 실상 프랜차이즈에 종속된 자치 권한과 책임이 있는 성과급 노동자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런 현상은 유교적 가치관에 의해 사장이 되고 싶은 사람은 많았으나 새로운 고부가 가치 상품을생산할 줄 아는 사람은 적었기에 나타났다.

 

 

교육은 유교 경전이나 선진국의 문명을 진리처럼 여기며 암기하는 것에서 벗어나 지식에 대한 호기심과진리에 대한 탐구심을 바탕으로 한 탐구 중심의 학습으로 바뀌어야 한다. 그렇게 해야 선진국의 문명에서 벗어나 새로운 길을 갈 수 있다. 예전에는 사람과 사람이 토론을 하다 보면 새로운 길을 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었다. 예전에는 권력과 권력이 경쟁하면 새로운 길로 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었다. 그러나 아니었다. 누군가 탐구하여 새로운 길을 안내하지 않는다면 같거나 비슷한 길을 계속 반복하며 맴돌기만 할 뿐이었다. 인류가 왕정에서 해방 된지 수백 년이 지났음에도 같은 가치 관념이란 길에서 벗어나지 못하여 낡은가치관으로 새로운 체제에서 살아가자는 우파와 낡은 가치관에 맞는 낡은 체제로 돌아가자는 좌파의 갈등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윤리 대상 확대만 하면서 일부 확대 대상이 불합리한 기준으로 부당한 이익을 취하기만 하고 있다. 역할에 맞는 능력도 없으면서 확대 대상에 포함되어 있다는 것만으로 과한 역할을 맡게 되었다. 그런 흐름에 휘말려 한국 또한 우파와 좌파가 갈등하는 중에 윤리 대상 확대로 인해 일부가 과한이익을 얻게 되는 것으로 사회적 혼란이 일어나고 있다.

새로운 체제에서 낡은 가치관으로 길을 걷다 보니 제대로 걸을 수가 없었다. 때로는 경제적 빈곤을 부르는 늪지에 빠지거나 때로는 사회적 생존을 위협하는 절벽에 떨어지기도했다. 그럼에도 낡은 가치관을 진리처럼 여기며 잘못된 길로 나아가고있다. 이제는 그 가치관이 낡아 새로운 체제에서 바른길을 갈 수없다는 것을 인식하고 새로운 가치관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그런 가치관을 가질 수 있는 방법은 지식에 대한 호기심과 진리에 대한 탐구심으로 새롭게 생각하는 것이다. 모든 학문이 호기심과 탐구심을 가져야 하는데 그 중 기초 인문 계열에서 호기심을 가지고 탐구하는이들이 보통 사상가나 철학자다. 발로 걷는 길로 안내하는 사람을 가리켜 길잡이라 부른다면 지성으로 걷는 길을 안내하는 사람을 가리켜 사상가나 철학자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이들이 새로운 체제에 맞는 새로운 가치관을 비롯해 다양한 것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나의 경험을 토대로 새로운 학습 방식에 대해 설명하겠다. 내가 기초 인문 계열을 탐구하게 된 계기는 간단하다. 내가 가진 나와 세상에 대한 의문은 사회의 지식으로 풀 수가 없었다. 오히려 고정 관념이 사고를 방해했다. 그래서 모든 지식과 관념을 최대한 버리고 새롭게 다시 생각하면서 탐구했다. 자아란 무엇인가? 자아 탐구부터 시작하여 세상에 있는 다양한 현상을 관찰하여 그 현상의 본질을 보려고 노력했다. 그러면서 일반적인 학습 방식과 다르게 되었다. 보통 학습은 앞에 지식을 쌓고 뒤에 생각을 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처음부터 생각하기 위해 앞에 생각을 하고 뒤에 지식을 쌓아 오류를 수정하고 다시또 생각하고 지식을 쌓아 오류를 수정하는 것을 반복했다.

처음에는 나의 의문을 풀기 위해 사상서와 철학서를 훑어본 적이 있다. 그러나 보는 순간 깨달았다. 사상서와 철학서는 진리가 아님에도 우수한 논리적 체계를 갖춰 충분한 생각을 하지 않고 그걸 수용하는순간 그들의 사상과 생각에 종속될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갖고 당장 읽지 않기로 했다. 그래서 무작정 생각했다. 과거 경험, 언론 뉴스, 게임과 같은 창작물,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서 알 수 있는 사회 현상을 관찰하여 그 본질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나서 그에대한 생각을 글로 썼다. 그렇게 생각을 글로 정리하고 나서 나중에 지식을 쌓아 오류를수정하고 새로운 생각을 글로 썼다. 그것은 광기의 나날이었다. 먹고 자고 놀고 싸는 것 등 삶의 모든 것이 생각을 중심으로 돌아갔다. 가사를 하는 시간을 아끼고 충분히 자는 것으로 생각을 정리하고 필요한 만큼 놀면서 현상을 관찰하고현실 도피하는 것으로 마음을 안정하게 하여 정신이 살아있을 수 있게 했다. 그렇게 생각하여 쓴 글은 지식을 쌓지 않았기에 초라하고 생각한 것을 제대로 정리하지 않았기에조잡했다. 그럼에도 생각하고 쓰고 지식으로 오류 수정하는 것을 계속했다. 방향을 정하지 않고서 체계화하는 것은 무의미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다 어느 정도 생각이 쌓이면 사상가의 사상서를 몇 권씩 읽기 시작했다. 자유론, 제3신분이란 무엇인가, 민족이란 무엇인가, 사회주의란 무엇인가, 여성의 권리 옹호, 언어 기원에 관한 시론, 인간 교육론, 나는 고발한다 등을 읽거나 해설을 참고했다. 새로운 생각을 하게 되는 계기를 만들기 위해 읽은 것이므로 전부 꼼꼼하게 읽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다른 사람과 토론으로 성장할 수도 없었다. 인류는 낡은 가치관에서 벗어나지 못하여 우파와 좌파가 갈등하고 있었고, 한국은 거기에 유교, 불교, 무교 등에 영향을 받아 더욱 더 혼란스러운 상황이었다. 한국은 유교적 가치관에 의해 개인의 자유권이 침해되는 것이 너무나도 당연하게 이루어지고 있을정도로 자유주의에 대한 인식이 미비했다. 개인주의 체제에 살고 있는 사람들조차 본인이 살고 있는 사회의 체제가 어떤 성질을 가지고 있는지 파악하지 못하여 개인주의와 욕망주의와 이기주의를절대악인 것마냥 몰아세우며 비난하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과 토론으로 성장하기에는 시간이 너무나도 오래 걸렸다. 그들에게 영향을 받아서도 안 되었다. 아직 충분히 생각을 쌓지 않았을 때 사상서와 철학서를 접하면 그 생각에 종속될 수 있다는 두려움을느꼈던 것과 같이, 아직 충분히 생각을 쌓지 않았을 때 그들의 생각을 접하면영향을 받아 내 생각이 왜곡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갖게 되었다. 그들의 생각은 세상의 보편적인 생각이었다. 세상과 다른 새로운 길을 찾기 위해서 고독해야만 했다. 새로운 체제에 맞는 새로운 가치관이 일반화된다면 고독하지 않아도 될 것이지만 아직은 그렇지 않았다. 그러면서 세상의 현상을 관찰하여 본질을 파악한 뒤에 그에 대한 생각을 쓰는 것을 반복했다.

나는 나의 문제와 세상의 문제의 원인을 찾았다. 내 문제는 관념이었다. 나는 14세에 연상의 말에 의해 신체적 자유를 잃고 자유 의지로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것으로 나 자신에게 크게 실망하여 삶을 포기했었다. 수많은 생각과 지식을 접하는 것으로 그 당시 연상의 말에 의해 신체적 자유를 잃고 자유 의지로몸을 움직이지 못했던 것은 장유유서에 세뇌되어 만들어진 관념에 의해 나타난 육체의 행동 준비를 관념에 의해 저항하지 못하였던 것이기 때문임을 알게되었다. 세상의 문제는 관념과 체제의 충돌이었다. 인류는 왕정의 집단주의 관념을 가지고 민주정의 개인주의 체제에서 살아가는 것에 의해 수많은 사회문제를 일으키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것이 인류가 겪는 본질적인 문제였다. 그렇게 하여 나는 나와 세상에 대한 의문을 풀 수 있었다. 사회의 지식으로는 의문을 풀 수 없고 사상서와 철학서를 그대로 접하면 종속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세상 사람들과 토론하면 영향을 받을지도모른다는 두려움을 갖고 무작정 생각했던 것이지만 그것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탐구였다.

 

사과 그림이 있다. 만약 20%만 보인다면 80%를 상상으로 채워야 하기에 그 사과는 새로울 확률이 높다. 그러나 만약 80%가 보인다면 어떻겠는가? 나머지 20%만 상상으로 채워야 하기에 크게 새롭지 않을 수 있다. 만약 100% 보인다면 새롭기가 어려울 것이다. 새롭다 하려고 하더라도 이미 100%를 보아버렸기 때문에 그것에 얽매일 수밖에 없다. 그것과 같다. 과거의 인간이 만든 지식의 관점으로 세상의 많은 부분을보아버린 상태기 때문에 그것에 얽매이게 되면서 새로운 길로 나아가기가 어려워진다. 그러나 처음부터 현상을 보고 생각하고 추론하여 새로운 관점으로 세상을 보고 과거 인간이 만든지식의 관점으로 오류를 수정하면서 내가 탐구한 주관적 관점과 세상 지식이라는 객관적 관점을 둘 다 가지고 새로운 길로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자연 과학은 학문적 진리를 많이 증명했다. 그 진리를 바탕으로 조금만 알고 있는 상황에서 추론으로 부족한 논리를 채워 성립되게 하여 이치에도달할 수 있었다. 그렇게 하여 나는 새로운 길로 갈 수 있었다. 이것은 딜레마다. 지식을 많이 쌓은 사람은 많이 알아서 관념이 고정되는 바람에 새로운 길을 가기가 어렵고, 지식을 적게 쌓은 사람은 관념이 고정되지는 않았으나 지식에 관심이 없어 지식을 적게 쌓은 것이기에새로운 길을 떠올리지 않았다. 지식을 적게 알면서 많이 생각하는 처음부터 탐구자가 되어야 이 딜레마에서 벗어날 수 있다. 현재 고학력자들이 창의적이지 못할 때가 있는데, 그것은 그들이 아는 것이 많아 고정 관념이 많았기 때문이다.

자연 과학의 학문적 진리를 통해 알게 된 이치를 바탕으로 그와 유사한 구조와 원리를 가진 이치와연결하면 자연스럽게 새로운 이치를 알 수 있게 되었다. 사상에 관한 발상을 하려면 이치의 수가 많아 의식적으로 하기 어려웠다. 그렇기에 이치에 다다르는데 도움이 되는 현상과 다양한 인식과 이치들을 재료 삼아 명확하게 인식하게하여 뇌가 계산하게 한 다음 발상이 떠오르게 했다. 자주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발상이 떠오르기도 했다. 이치에 대해 일일이 의식하지 않기에 지금 쓴 글의 이치도 다 의식적으로 알고 있지 않다. 그렇게 의식하게 되면 새로운 발상을 하기가 어려워진다. 수많은 재료를 모아 이치에 도달하여 형태를 이루면 그 이치는 재료 중 하나가 되어 뇌에 남게된다. 현상을 관찰하며 또 다시 재료를 모아 새로운 이치에 도달하여형태를 이루는 것으로 이치를 늘려나간다. 이치를 통해 합리적 기준을 만들고 나서 그걸 토대로 논리적으로 접근하여 새로운 이치에 도달한다. 그렇게 하여 내 안의 인식을 이치로 채운다.

이와 같은 발상법에 굳이 이름을 붙인다면 스도쿠 발상법이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스도쿠는 가로세로가 9칸씩으로 이루어진 정사각형의 가로줄과 세로줄에 1부터 9까지의 숫자를 겹치지 않도록 한 번에 써서 채워 넣는 퍼즐게임을 뜻한다.] 같은 줄에 숫자 2와 3이 모이면 4라는 답이 나오듯, 유사한 구조와 원리와 이치가 있는 것이 있으면 그걸 통해 자연스럽게 다른 이치를 알 수 있다. 이것은 추론법과 유사하지만 딱히 형식이 있는 것은 아니다. 형식에 치우치면 발상에 해가 된다. 이해를 돕기 위해 붙인 이름이므로 얽매일 필요도 없고 얽매여서도 안 된다.

 

이러한 탐구를 교육으로 해본다 해보자. 학생에게 학생이 자세히 모르는 주제를 주고 관련 글을 쓰라고 해보자. 만약 아예 모른다면 자연 과학의 학문적 진리나 사전적 정의를 비롯한 기초 지식은 알려줘야 한다. 그러면 구체적인 지식이 없으니까 당황하며 글을 쓰기 어려워할 것이다. 그럼에도 쓰게 하면 학문적 진리나 사전적 정의를 바탕으로 다른 분야의 비슷한 구조와 원리를 참고하여논리적으로 쓰면서 새로운 이치에 도달하려고 하게 된다. 사고의 영역이 주제의 분야에 한정되지 않고 다른 분야로 확장되게 된다. 그러면서 이미 있는 지식과 다른 새로운 것이 나오게 된다. 물론 그러면 오류가 많을 확률이 높다. 그것은 나중에 수정하면 된다. 이런 것이 창의다.

이런 방식으로 발상한 것 중 하나가 개인 정보 보관이다. 디지털 은행으로 오프라인 은행이 감소하고 있다는 정보를 접했다. 그걸 보고 무작정 앞으로 은행에 가야 할 길에 대해 써보려고 했다. 그런데 나는 은행에 대해 잘 몰랐다. 그래도 은행의 성질 몇 가지는 알고 있었다. 그것으로 몇 가지 발상을 하고 관련 지식을 접한 후에 정리하여 글을 썼다. 글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은행은 신용을 중시했다. 사회는 개인 정보 보호가 강화되면서 타인의 개인 정보를 알기 어려워 개인 정보 신용이 낮은 상황이었다. 개인이 취업을 할 때 쓴 이력서나 자기소개서를 인사 담당자가 거짓으로 보는 경향이 사회 현상으로나타날 정도였다. 거기서 사고의 영역이 은행에서 개인 정보 보호로 확장되어연결하자 개인 정보 신용 보관이란 결론이 나왔다. 은행이 개인 정보에 은행의 신용을 새기고 보관하는 것이다. 그러면 개인은 공개할 필요가 있는 개인 정보는 은행에 보관하여 신용을 새겨 창업자는 투자자에게 신용을 얻을 수 있고 취업자는 인사 담당자에게신용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 외 필요하지 않은 개인 정보는 굳이 찾으려 하지 않게 되면서 개인 정보가 보호되게 될 수 있을 것이다.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는 보장하면서 반드시 필요한 개인의 정보를 정부나 기업이 열람할 수 있게된다. 그렇게 하여 사회에서는 개인 정보를 침해하지 않으면서도필요한 개인 정보에 대한 신용을 얻을 수 있게 될 것이다. 개인 정보 신용 보관은 숫자로 이루어져 디지털로 보관할 수 있는 돈 달리 직접 면접을 통해 개인 정보 보관자가 가져온 개인 정보를 신용할수 있는지 확인해야 할 것이다. 거기서 본인의 정보를 조사할 사설 탐정도 해당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보통 탐정은 타인의 뒷조사를 하면서 합법과 불법의 경계를 걷게 되는데 개인 정보 보관을 위한보관자 정보 조사는 본인의 의사로 본인의 정보를 조사하는 것이므로 합법적이게 될 확률이 높을 것이다. 은행과 다른 정보 기관의 차이는 신용 보증금 차이다. 은행의 돈이 신용 보증금이 되게 된다. 만약 정보에 오류가 있을 경우 은행은 관리하는 돈의 신용에도 해가 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정보신용을 중요시하게 된다. 이런 식으로 오프라인 은행이 줄어드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보았다. 은행의 신용이란 적은 정보에서 다른 분야의 지식을 바탕으로많은 생각으로 새로운 길을 떠올린 뒤에 논리적인 구조를 더해 새로운 길이 성립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굳이 은행이 아니더라도 괜찮다. 이런 개인 정보 보증은 개인 정보 브랜드화도 가능해진다. 어느 기관이나 기업이 정보를 보증해주느냐에 따라 신용도가 달라질 수 있다. 가령 브랜드로 먹고 사는 기업에서 본사의 브랜드 신용도를 걸고 특정 개인의 정보를 보증하면 개인정보에 브랜드 가치가 더해져 개인 또한 브랜드 가치에 영향을 받게 된다. 개인 정보 또한 명품이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개인 정보 보증서에 명품 기업 마크만 붙어 있어도 상당한 브랜드 가치가 더해짐을 느낄 수 있을것이다. 그런 식으로 개인 본인이 사회에 필요한 본인의 개인 정보를브랜드화하여 공개하면 사회는 보다 개인 정보를 신용할 수 있게 될 것이다.

 

 

한국 교육에 대해 알아보자. 한국 교육은 대학 입시를 기준으로 결정된다. 대학에 진학하느냐 진학하지 않고 창업이나 취업 등의 일을 하느냐로 나뉜다. 학문에 관심이 없는 이들을 제외하면 대부분 대학 진학이 목적이다. 한국은 조선의 교육 관념을 가져 수학 능력 시험을 마치 조선의 과거 제도와 같이 여기며 성공할수 있는 길로 인식하고 그 시험을 잘 보는 것을 목적으로 학습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저출산으로 학교가 폐교하는 중에 좋은 대학 진학률이 학교 경쟁력으로 여겨짐에 따라 보다더 대학 입시에 목을 매는 일이 많아졌다. 대학에 입학하기 위한 방법은 정시와 수시와 편입이 있다. 정시는 수학 능력 시험으로 평가하고 수시는 학생부 교과 전형, 학생부 종합 전형, 논술 위주 전형, 특기자 전형으로 나눠 다양하게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대학 입학이 목적이기에 입학에 도움이 되는 지식을 위주로 학습하면서 그 다양성은 크게의미가 없게 되었다. 그런 탓에 어떤 학생은 입시에 관계 없는 지식을 배워야하는 이유를 모르겠다며 화를 내기도 했다. 지적 호기심이나 진리적 탐구심이 애초에 없었다. 주입식 교육에 길들여진 학생은 논술조차도 학원에서 일러준 방식을 차용하기도 했다. 지금까지 한국 교육은 단순히 대학을 잘 가기 위한 지식 암기와 이해, 그리고 문제 풀이였지 지식에 호기심을 갖고 진리를 위한 탐구를 하는 경우는 대부분 없었다.

대학에 입학하는 사람이 늘어남에 따라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경쟁 승패를 정하기 위한 변별력을 명분으로과하게 복잡한 응용 문제를 시험에 내게 되었다. 세계 최상위 대학의 학생도 풀기 어렵게 의도적으로 복잡하게 만든 문제도 많았다. 그런데 지식을 아는 것으로 관념이 고정되고 관념이 고정되는 것으로 새로운 발상이 어렵다는 것을고려하면 구체적인 지식까지 담긴 응용 문제를 문제집이나 모의고사 등으로 오랫동안 반복적으로 푸는 것은 문제와 관련된 분야의 창의력을 말살하는 것과다르지 않았다. 시험은 단순히 지식을 암기하고 이해하는 것만이 아니라 제한시간 내에 푸는 순발력도 필요하기 때문에 반사적으로 문제를 풀 수 있을 정도로 뇌에 각인을 시켜야 했다. 구체적인 응용 문제와 그에 대한 답을 진리처럼 뇌에 새겼다는 것이다. 개인의 인식이 배제된 채 과거 인간이 탐구한 지식의 인식만 갖게 되었다. 그러면서 관념이 강하게 고정되면서 관념에서 벗어나 새로운 생각을 하기 어려워졌다. 보통 지식은 알수록 힘이 되지만 탐구하여 주관을 가진 상태에서 지식을 접한 것과 단순히 지식을암기해버리는 것과 차이가 있다. 단순히 지식을 암기해버리면 새로운 생각을 하기가 매우 어려워진다.

논리적으로 접근해보자. 인간은 관념에 의해 생각하고 행동한다. 인간은 고정 관념에 의해 새로운 생각을 하기 어려워진다. 새로운 생각을 하기 어려워지면서 창의력이 낮아지게 된다. 시험 문제를 반복적으로 풀면 풀수록 문제에 관한 관념이 고정되면서 창의력이 낮아진다. 한국 영재들이 성장하면서 우수함을 잃게 되는데, 하나는 학습 효율과 가치 생산과 직접적 연관이 없어 학습이 빠르다고 우수한 가치를 생산할 것이라는보장이 없다는 것이고 둘은 반복적 응용 문제 풀이에 의해 창의력이 말살되었기 때문이다. 한국 학생은 지금도 반복적인 응용 문제 풀이로 창의력을 잃어가고 있다. 한국 교육에는 지적 호기심이나 진리적 탐구심이 없었다.

 

한국 교육에 지적 호기심과 진리적 탐구심이 필요하다. 그래야 기초 학문을 하고 새로운 고부가 가치 생산을 할 수 있다. 그래야 새로운 고부가 가치 창업자나 기획자가 늘어 그에 맞는 고학력 노동자들도 경제 활동을 할수 있게 된다. 이에 따라 한국은 탐구와 창의와 관리의 세 가지 교육 과정과역할주의에 따른 분야별 교육 방식으로 나뉘어야 한다. 교육 과정은 다음과 같다. 탐구 교육은 탐구를 중점으로 하는 교육으로 기초 학문을 하는 인간에 해당하며 보통 사상가나 철학자나 연구자 등이 있을 것이다. 창의 교육은 암기와 탐구를 적절히 섞어 기초는 암기하고 응용은 탐구하는 교육으로 새로운 고부가가치를 생산하려는 인간에 해당하며 보통 창업자나 기획자나 창작자 등이 있을 것이다. 관리 교육은 암기를 중점으로 하는 교육으로 지금까지 인류 문명을 관리하며 유지하려는 인간에 해당하며보통 노동자나 관리자 등이 있을 것이다.

교육 방식은 다음과 같다. 인문 계열, 자연 계열, 가치 계열, 예술 계열, 체육 계열 등. 탐구 교육은 인문, 자연, 예술에서 주로 하고 창의 교육은 인문, 자연, 가치, 예술에서 주로 하고 관리 교육은 가치, 체육에서 주로 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지적 호기심이나 진리적 탐구심이 없는 인간은 학문을 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학문에도 의미가 없고 개인에게도 불행하기만 할 뿐이다. 간단히 말해 적성이 맞지 않는다. 학문을 직업을 갖기 위한 수단으로 쓰고 싶다면 그냥 처음부터 가치 계열에서 가치 생산에 관련된지식을 배우는 것이 좋다.

현재 학교는 지속적인 교육 정책 변경으로 다소 합리적이지 못한 학교들이 많은 상황이다. 뛰어난 이들이 모이는 영재고나 금전적 여유가 있는 이들이 모이는 자사고나 분야로 나눌 필요가있는지 의문이 드는 외고와 같이 나눌 것이 아니라 학문을 탐구하는 학교와 가치를 생산하는 학교와 예술과 체육을 하는 학교 등과 같이 나누는 것이타당하다 본다. 아무리 뛰어나도 지적 호기심이나 진리적 탐구심이 없는 사람은가치 계열 학교로 가는 것이 맞고 뛰어나지 않더라도 여가까지 써서 호기심을 가지고 탐구하는 사람은 인문이나 자연 계열 학교로 가는 것이 타당하다. 그렇게 되면 영재고나 자사고나 외고 학생도 탐구 학교와 창의 학교와 관리 학교로 나뉘어 갈 수있을 것이다. 그렇게 적성에 맞게 학교를 구분해야 한다. 최소한의 탐구심도 없으면서 좋은 직업 얻으려고 학문 탐구하는 것은 학문의 발전을 저해시키고 본인도원치 않는 탐구로 불행하기만 할 뿐이다.

 

첫째, 탐구 교육. 탐구부터 시작하는 교육이 탐구 교육이다. 모든 학생이 인간과 자연의 근원부터 탐구한다. 인문 계열의 탐구는 인문 계열의 학문적 진리조차 한번은 탐구해야 한다. 어째서 모든 인간에게 존엄성이 있는가? 왜 법을 지켜야 하는가? 그러나 자연 계열의 학문적 진리에 대해서는 꼭 구체적인 탐구를 할 필요는 없다. 자연 계열이 증명한 학문적 진리를 바탕으로 인간을 탐구하면 된다. 자연 계열의 탐구는 자연 계열의 학문적 진리조차 한번은 탐구해야 한다. 어째서 물체는 땅에 떨어지는가? 왜 1+1=2인가? 그러나 인문 계열의 학문적 진리에 대해서는 꼭 구체적인탐구를 할 필요는 없다. 인문 계열이 증명한 학문적 진리로 사회에서 살아가면 된다. 이렇게 본인 분야를 처음부터 탐구해야 탐구자 주관이 남아 고유한 탐구를 하는 것으로 새로운 길을갈 수 있게 된다. 예술 계열은 인문 계열 중 미에 대한 탐구를 하는 학문으로인문 계열과 방식적 차이는 크게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인문 계열은 탐구 결과를 글로 표현한다면 예술 계열은 탐구 결과를 예술로 표현할 뿐이다. 이것이 기초 학문이다.

탐구 교육은 기초 학문을 하기 위해서는 고정된 관념이 적어야 한다. 그렇기에 가능한 심리적 정신 연령을 낮춰야 한다. 인간은 나이를 먹을수록 경험과 지식을 통해 관념이 고정되는 일이 많은데, 그걸 막기 위해 의식적으로 심리적 정신 연령을 낮춘다. 나 같은 경우는 14세에 겪은 특정 사건으로 자아 형성 시기에 자아가 망가지면서 자아의 시간이 멈춰 계속 자아를 형성하며 기초 관념에 대한 것에 대한 호기심을갖고 탐구하는 것으로 그런 일을 하지 않아도 고정 관념에서 다소 자유로울 수 있었으나, 일반적으로는 의도적으로 알고 있는 지식에 대한 고정 관념을 없애며 새로운 문화에 접하는 것을즐겨야 한다. 인문 계열은 기초적인 교육에 해당하는 예의범절 등의 윤리조차도관념을 고정하지 말아야 한다. 자연 계열은 기초적인 교육에 해당하는 물리 법칙이나 수학 법칙조차도 관념을 고정하지 말아야 한다. 그에 대해 탐구를 하여 본인의 관점과 보편 관점을 가지게 되면 다양한 관점을 통해 관념이 고정되는것을 방지하면서도 법칙을 잊지 않을 수 있다.

만약 그러지 않고 고정된 관념으로 기초 학문을 하면 그 관념의 파생 학문에 불과해진다. 인문 계열의 사상이나 철학은 고정된 관념을 가지고 하면 파생 사상이나 철학일 뿐이다. 종교를 부정한 공산주의가 종교와 같이 노동자 구제를 하며 노동자 낙원으로 가겠다고 말한 것과같이 말이다. 본질적으로 차이가 없게 된다. 그러면 기초 학문을 하는 의미가 없다. 자연 계열은 과학적 증명으로 우수한 학문적 진리를 체계적으로 구축해놓았으나, 그걸 그대로 따라가면 개인의 고유한 관점도 잃을 우려가 있다. 기초부터 탐구하여 본인의 관념을 유지해놔야 최신 자연 과학도 새로운 관점으로 접근할 수 있게된다. 또한 자연 계열도 학문적 진리지 일반 진리가 아니기에 낮은확률이지만 기초도 어쩌면 다른 방향이 존재할 수 있다.

탐구, 창의, 관리 모두 중학생 시기에 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나 탐구만큼은중학생 시기에 진로를 결정해야 거기에 맞춰 사고를 설계하기가 쉽다. 그 이후에 탐구하겠다고 하면 의도적 관념 해체를 통한 자아 붕괴와 같은 괴로운 과정이 필요하게 된다.

 

둘째, 창의 교육. 기초는 암기하고 이해하고 응용은 탐구하는 교육이 창의 교육이다. 모든 학생이 기초는 암기하고 응용은 탐구한다. 새로운 고부가 가치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응용에서만큼은 탐구를 해야 한다. 기초 학문은 암기한 것을 문제 풀이로 평가하고 응용은 과제를 직접 만들어 제출하게 한다. 가령 수학을 배운다고 하자. 기초 수학은 수학 수식을 암기하거나 이해한 것을 시험 문제로 평가한다. 응용 수학은 수학 수식을 바탕으로 새로운 수학 문제를 만들거나 다른 분야와 접목하여 수학의 응용을실천한다. 또는 특정한 화학 원소를 암기하고 그것을 활용한 상품과시장을 떠올리는 응용을 실천도 있을 수 있다. 기초는 암기하고 응용은 생각하여 만든다. 생각한 응용에서 생긴 오류는 지식을 통해 수정하고 다시 또 만든다.

창의적으로 가치를 생산하기 위한 교육으로 탐구 교육과 다르게 가치 생산에 집중한다. 탐구 교육은 탐구를 하다 가치가 생산된다면 창의 교육은 새로운 가치 생산을 목적으로 탐구한다. 가령 탐구 교육에서 예술은 미를 탐구하여 예술로 결과를 내는 순수 예술이라면 창의 교육에서 예술은미를 탐구하여 예술로 만든 것을 상업으로 판매하는 것으로 결과를 내는 대중 예술이라 할 수 있다.

보통 새로운 발상을 하려고 할 때 이것저것 자료를 잔뜩 모아 정보를 수집한 다음 거기서 뭔가를떠올려보려 할 것이다. 그러나 정보를 과잉 수집 한 뒤에 발상을 하려고 하면 해당주제에 관한 관념이 고정되어 새로운 것을 떠올리기가 어려울 수 있다. 그러므로 발상을 할 때에는 주제로 시작해 발상으로 넘어가 자료 수집을 한 뒤 오류 수정 등의 정리를 해야 한다. 보편적인 발상과 자료 수집의 순서를 거꾸로 한다. 이미 알고 있는 것에 의존하면 새로운 것이 나오기 어렵다. 이러다 보면 발상 단계에서 이미 있던 것을 발상할 수도 있는데 직접 생각한 것이라면 그래도 상관없다. 그것 또한 교육 과정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시장에 나올 때 저작권을 고려하면 된다. 만약 이미 많이 알고 있는 상황이라면 대상의 본질을 보고 일부 특성에만 초점을 맞춰 의도적으로정보를 줄인 다음 다른 분야의 지식을 바탕으로 많은 생각을 하여 발상한 다음 지식을 접하여 오류를 수정하는 등과 같은 정리를 하면 된다. 여기서 대상의 본질을 보는 것이 중요하다. 본질을 잘못 보면 결과도 잘못될 확률이 매우 높다. 보통 이런 방식이 새로운 고부가 가치 생산 방법이다.

창의 교육은 고부가 가치 생산을 하기 위해서는 고정된 관념이 적어야 한다. 탐구 교육과 다르게 기초 학문은 암기하므로 그렇게 적을 필요까지는 없다. 탐구 교육에서 고정된 관념이 적은 것은 필수적이라면 창의 교육에서는 가능한 적은 편이 좋다는식으로 접근한다. 심리적 정신 연령이 중등 교육이 끝나는 20세 전후에 머무른다면 대게 새로운 고부가 가치를 생산하는데 어려움이 없다. 인간은 감각 기관으로 수집한 정보를 보관한 기억으로 자아가 형성되고 그 기억 중에 고정된 관념으로유지된다. 만약 관념을 고정하지 않는다면 자아가 불안정하여 혼란을겪을 수 있다. 탐구 교육에서 기초 학문을 하는 인간은 처음부터 일반과괴리되어 혼란이 일반적이게 되지만 창의 교육에서 새로운 가치를 생산하는 인간은 일반과 그렇게 괴리되지 않았기에 혼란이 힘들 수도 있다. 그러나 관념이 고정되지 않은 만큼 창의력은 높게 된다.

 

셋째, 관리 교육. 기초와 응용을 모두 암기하고 이해하는 것이 관리 교육이다. 모든 학생이 기초와 응용을 모두 암기하고 이해한다. 이른바 주입식 교육이다. 학생을 빠른 시간 내에 매우 우수하게 만들 수 있다. 미국 흑인을 대상으로 한국식 교육을 한 결과 우수한 결과가 나왔다고 한다. 그 정도로 이미 있는 학문을 배워 유지하는 데는 최적화되어 있다. 관념이 고정되어 있기 때문에 판단에 있어 망설임이 없다. 그렇기에 신속하고 정확한 임무 수행에도 적합하다. 관리 교육이 우수할수록 사회를 지탱하는 힘이 커진다. 특히 고학력자일수록 많은 지식을 알고 있어 우수하다.

그러나 기초와 응용을 모두 암기하기 때문에 고정된 관념이 많아 기초 학문이나 새로운 고부가 가치생산이 어려울 수도 있다. 만약 기초와 응용을 모두 암기한 상태에서 기초 학문이나 새로운 고부가 가치를 생산하려고 한다면 고정된 관념을 지우기 위해 알고 있는 기초와응용을 다시 해야 할 상황까지 생길 수 있다. 보통 현재 교육은 중등 교육에서 암기하고 이해한 다음 고등 교육에서 새로운 것을 만드는데, 그랬기 때문에 기초 학문 발전이 더뎌지고 새로운 고부가 가치 생산이 어려웠다.

관리 교육은 관념이 고정되더라도 큰 문제는 없으나 새로운 것을 받아드릴 수 있어야 하며 새로운것을 만들 때에는 다시 탐구할 필요가 있다. 그렇기에 가능한 심리적 정신 연령을 낮추는 것이 바람직하다. 적어도 30대 전후에서는 머물러야 새로운 것을 수용하는데 어려움이없다. 인간은 실제 연령과 심리적 정신 연령이 다르므로 실제 연령에맞춰 살아갈 필요가 없다. 세상의 법칙은 시간이 아니라 이동이다. 시간은 인간이 만든 개념일 뿐이다. 만약 인간이 냉동 인간이 되면 육체의 움직임이 느려져 시간이 느리게 흐르게 된다. 이동이 빠르면 시간이 빠르게 흐르고 느리면 시간이 느리게 흐른다. 그와 같이 굳이 표준시에 맞춰 육체의 시간을 고정하여 살아가지 않아도 된다.

그런 측면에서 본인의 나이에 핑계되어 새로운 것을 받아드리지 않을 이유는 없다. 앞으로 인간은 생존 게임에서 승리하게 된다면 영원히 살 수도 있다. 그 때 심리적 정신 연령이 늙어버리면 젊게 되더라도 삶의 의욕을 잃고 자살하게 된다. 모든 인간은 새로운 것을 만들거나 받아드릴 수 있는 지성인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생존할 수 있다.

 

 

각각의 교육 과정과 교육 방식을 통해 교육을 받으면 기초 학문과 새로운 고부가 가치 생산이 가능할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교육 과정은 학생의 적극적 참여가 필요하다. 지금과 같이 단순히 금욕적 관점에서 학생의 욕망을 부정하거나 이타적인 관점에서 학생의 권리만주장하거나 학생을 보호하겠다는 명분으로 지배하려고 한다면 교육에 있어 학생의 적극적 참여가 어려울 수 있다. 과거 강제로 공부하던 시대와 다르게 스스로 적극적으로 학습하려는 태도를 갖게 하기 위해서는 구체적인관념 설계 교육이 필요하다. 흔히 말하는 습관 길들이기 등을 과학을 통해 좀 더 체계적으로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스스로 학습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스스로 학습하면서 본인의 자유 의지로 본인을 만들어나가야 한다.

아동 교육의 가장 큰 실패원인은 비전문가인 학부모가 본인의 관점으로 자녀의 습관을 만들기 때문이다. 애초에 비전문가인 학부모가 학교 교육에 지나친 참견을 하는 것 자체가 잘못되었다. 한국은 유교적 가치관에 영향을 받아 학부모가 자녀의 교육에 참견하는 것이 미덕이 된 상황이기때문에 비전문가가 교육에 간섭하는 것도 바르다 착각하게 되고 있다. 그런 보편적 인식부터 없애야 한다. 자녀는 부모의 소유물이 아니다. 자녀는 개인으로서 전문적인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다. 역할주의적으로 접근하여 비전문가인 학부모가 교육 과정에 대한 개입하는 것을 최소화하는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교육 정책에 불만이 있다면 전문가를 선임하여 의견을 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전문가인 교사도 오래된 교육 방식을 고집한다면 학부모와 다를 바 없는 비전문가다. 모든 학교에는 적절한 교육 방식을 알고 있는 전문가 한 명이 학습 방법을 주도해야 한다. 특히 초등학교와 중학교에 그런 전문가가 있어야 한다. 인간의 행동 원리는 관념에 의한 것이 많아 교육을 통해 학습에 적합한 관념을 갖게 한다면 스스로적극적 학습을 하게 할 수 있다. 인공 지능으로 비유하면 인공 지능의 알고리즘을 설계하면 인공 지능이 알아서 학습하는 것과 같다. 학습 동기와 보상 효과 등 그런 심리학적인 부분은 연구되어 있다고 안다. 그런데 인간은 인공 지능과 달리 육체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학습과 휴식에 맞춘 시간 분배를 고려하여설계해야 한다. 스스로 학습하기 위해서 학습이 본인에게 해롭다는 인식이없도록 충분한 휴식을 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지적 호기심과 진리적 탐구심을 가지고 있다면 여가 시간까지 학습에 쓰고 수면을 취하더라도 충분한 휴식이 될 수 있다. 그런 이들이 보통 학문을 하면 된다. 그렇지 않고 무작정 학습하길 강요하면 육체와 정신이 유지되지 못하고 망가져 학습을 부정적으로여기면서 스스로 학습하지 않게 된다. 이런 효율적인 자가 학습을 설계할 수 있는 전문가가 한 학교당 한 명씩은 배치되어야 한다.

지금 교사는 담임과 교과목을 한 교사가 전부 담당하기도 하는데, 그런 식으로 업무가 겹치게 되면 전문성이 하락하여 학원의 수업보다 낮은 품질의 수업이 나타날수도 있다. 그러므로 교사는 관념 설계가 가능한 전문 교사와 학생을돌보고 학부모를 상대할 담임 교사와 수업을 하는 수업 교사로 나뉘어야 한다. 수업 교사의 경우 학원의 수업 품질보다 높아지기 위해 시장 경제의 방식을 도입하는 것이 적절하다. 수업 품질이 높으면 높은 대가를 받고 품질이 낮으면 담임을 맡아 수업을 하지 않는 대신 낮은급여를 받는다. 모든 교사는 충분한 대가와 시간이 있으면 우수한 품질의교육이 가능할 거라 생각한다. 그 중에 경쟁을 택하는 이들이 경쟁하는 대신 높은 이익을 얻고 안정을 택하는 이들이 안정적인 대신 작은 이익을 얻을 뿐이다. 지금과 같이 단순히 연공서열에 따라 대가를 받는 체계로는 우수한 공교육을 실현할 수가 없다.

한국은 미국과 같이 이민으로 우수한 인재를 늘리기가 어렵다. 한국의 눈에 찰만한 인재는 한국이 아니라 미국으로 가기 때문이다. 한국 인재도 미국으로 가는 마당에 한국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대부분 한국인들이 보편적으로 성장해야한다. 그래서 위해서 공교육이 발전해야 한다.

 

 

한국 교육은 시장과 유사한 교육 과정을 통해 학생이 자본주의 사회에 적응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지금까지 한국 교육은 금욕주의적인 상황에서 홍익인간을 말하여 이타적으로 만들고 나서 수기치인을말하며 학문에 집중할 것을 강요했다. 그러나 사회는 개인의 욕망과 이기심을 기반으로 한 개인의 의사로 동작하는 자본주의 시장 경제로 돌아가고 있었다. 교육에서는 낡은 가치관을 교육 받고 사회에서는 새로운 체제에 적응하라 하니 대부분 학생은 사회에적응하기가 어려웠다. 정말 무책임했다. 자본주의 체제가 무엇이고 무엇을 동력으로 돌아가는지 알고 있음에도 낡은 가치관을 실현하기 위해의도적으로 학생을 금욕적이고 이타적으로 지식을 암기하고 이해하는 존재로 만들었다. 사상가와 철학자가 새로운 체제에 맞는 가치를 만들지 못했으니 어쩔 수 없었다고는 생각한다.

자본주의 체제에 적응하기 위해 조별 과제를 자본주의식으로 해야 할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조별 과제는 분명 과제의 가치가 다르고 과제 기여도도 학생마다 다름에도 한 명의 교사평가로 과제에 점수가 매겨지고 모든 조원이 같은 점수를 받았다. 교사 한 명의 평가에 의존하기에 객관성이 떨어질 수 있고 모든 조원이 같은 점수를 받기에 참여율이 낮아질 수도 있었다. 그야말로 공산주의식 조별 과제다. 이런 과제의 특성으로 아무도 과제를 하지 않아 조장 혼자서 힘들게 하거나 포기하기도 하고, 어떤 조장은 과제를 혼자서 하는 대신에 조원에게 금전적 대가를 요구하기도 한다. 이러니 과제 평가가 의미가 없다. 그러므로 과제는 시장 경제와 같이 과제를 사고 파는 과정을 도입해야 한다. 개인주의 체제인 국가의 원리는 개인의 의사다. 개인의 의사로 과제가 사고 팔려야 한다. 이런 과정은 탐구, 창의, 관리 관계 없이 모두 경험해봐야 한다. 그래야 자본주의 사회에 쉽게 적응할 수 있다.

교육부에서 분기마다 학교의 특성을 고려하여 선정한 여러 주제에 관한 과제를 사겠다고 각 학교에전달하면서 그 과제를 구매할 수 있는 점수를 선지불한다. 교육부가 지급하는 점수는 학생의 수마다 달라진다. 가령 명당 50점을 기준으로 20명이면 1000점을 지불한다. 점수를 지불 받은 학교는 과제를 담당할 수업 교사에게 분배한다. 수업 교사들은 학생들에게 특정 주제에 대한 과제를 사겠다고 전달한다. 학생은 네 명이 모여 한 조를 이루며 분기마다 한 명씩 조장을 맡는 것으로 모든 학생이 조장을경험할 수 있도록 한다. 내부 거래를 막기 위해 조의 구성은 매번 달라지게 한다. 조장의 역할은 과제 기획과 총괄이고 조원의 역할은 세부 기획, 자료 조사, 내용 작성, 조별 발표 등으로 나뉜다. 조장은 조원들 앞에서 과제 기획서를 발표하여 조원의 능력을 구매하겠다고 선언한다. 조원은 본인의 능력을 포장하여 임대 상품화한 뒤 본인의 능력을 가장 비싸게 사는 조장에게 판다. 조장과 조원은 협상을 하여 맡을 역할과 그에 따른 점수 비율을 정한다. 가령 조장은 세부 기획과 자료 조사를 맡을 조원에게 20%를 할당하고 발표하는 조원에게 15%를 할당한다고 계약을 맺는다. 조별 과제가 완성되면 과제를 상품화하여 보다 비싸게 사주는 수업 교사에게 판다. 수업 교사들은 학교에 받은 점수를 모두 활용하여 과제를 산다. 수업 교사마다 과제의 가치를 다르게 평가하여 가치가 높다 판단되는 과제부터 구매한다. 과제를 판매하여 점수를 받은 조장은 계약에 따라 조원에게 지불한다. 계약 내용 준수 여부에 판매 가치에 따라 지불하는 점수는 달라질 수 있다. 가령 조원이 자료 조사 하겠다고 했는데 그 조사가 미흡하여 다른 조원이 추가 조사 했다면 계약불이행으로 계약보다 낮은 점수를 지불 할 수도 있다. 반면 조원의 과제 발표가 우수하여 예상보다 고가에 팔았다면 추가 점수를 지불 할 수도 있다. 조장이 과제를 팔아 점수를 벌어오면 조원은 본인의 기여도를 주장하며 정당한 점수를 받을 수 있도록해야 한다. 이 과정이 공정한지 담임 교사가 조사한다. 수업 교사들은 구매한 과제를 교육부에 전달한다. 교육부는 구매한 과제의 가치를 평가하여 선지불한 점수보다 가치가 높다 판단되면 다음 과제에는더 많은 점수를 선지불하고 가치가 낮다 판단되면 더 적은 점수를 선지불한다. 만약 판매한 과제의 총합 가치가 선지불 받은 점수보다 높다면 이후 더 많은 점수를 선지불 받아수업 교사는 보다 많은 점수로 학생들의 과제를 비싸게 살 수 있고 학생들은 비싸게 팔아 보유 점수를 더 늘릴 수 있다. 교육부는 수업 교사들이 평가한 과제의 가치와 교육부가 평가한 과제의 가치가 지나치게 다르면 해당수업 교사의 평가를 낮춘다. 그렇게 하여 수업 교사들이 공정하게 평가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이 과정을 교육청이 감시하여 공정한지 확인한다. 교육부는 구매한 과제 중에 우수한 것을 가정과 대학과 기업 등에 전달하여 홍보한다.

이 과정에 있는 모든 역할이 실제 자본주의 시장 경제와 유사할 것이다. 교육부와 수업 교사들의 관계는 원청과 하청이 될 수 있고 수업 교사와 학생의 관계는 소비자와자본가와 노동자가 될 수 있고 조장과 조원의 관계는 자본가와 노동자가 될 수 있다. 담임 교사와 교육청은 공정 거래 위원이 될 수 있다. 이렇게 자본주의 체제를 미리 경험해보는 것으로 모든 학생은 기획이나 조사나 발표를 통한 과제상품화와 영업 능력을 키우고, 교사와 조장과 조원은 협상과 거래와 계약을 통해 협상과 거래와 계약 능력을 키우면서 전반적인 공정 거래에 대한 이해를 통해 창업이나 취업을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조장은 과제를 파는 경험과 학생의 능력 임대 상품을 사는 경험을 통해 창업을 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노동력 임대 상품의 가치는 수요와 상품의 소유자인 노동자의 영업과 협상 능력으로결정된다. 그럼에도 그런 것을 대부분 배운 적이 없어 노동력 임대상품을 거래할 때 자본가의 일방적인 판단이나 노조에 의존하게 되었다. 개인주의 체제에서는 모든 개인이 본인의 가치를 증명할 수 있어야 이용당하지 않을 수 있다. 이제는 본인의 가치를 증명할 근거를 만들고 그에 대한 체계적인 논리로 주장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세 번째, 경쟁

 

경쟁에 대한 개인 관념과 국가 구조를 개인주의 체제에 맞게끔 재정립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개인주의 체제의 정당성이 훼손되게 된다. 생존 경쟁이라는 말이 있듯이 경쟁은 생물의 보편적 행동에 해당한다. [경쟁은 같은 목적에 대하여 이기거나 앞서려고 서로 겨룸을 뜻한다. 경쟁_생명은 생물이 환경을 이용하기 위하여 다른 개체나 종이 벌이는 상호 작용을 뜻한다. 생물의 개체 수가 공간이나 먹이의 양에 비하여 많아지면 생긴다.] 같은 목적에서 서로 겨뤄 이기거나 앞서서 살아남는다. 살아남기 위해 경쟁하는 것. 그것이 경쟁의 본질이다. 능력과 무관하게 환경에 적응하는 생물만 살아남는다는 적자생존이라는 말이 있듯이 경쟁 또한 강한것이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는 것이 강하다. 개인주의 체제인 국가는 개인의 의사로 개인의 생존 경쟁을 하고 국가 구조 유지를 위해 국가 구조의 요소인 인간을 생존시킨다.

그런데 개인의 욕망과 이기심으로 바탕으로 한 개인의 의사로 바라는 것을 추구하며 같은 목적을가진 사람과 경쟁하게 되면 서로 다투게 될 수 있다. 과거 집단주의 체제에서는 그런 다툼에 의해 온갖 죄악이 나타나는 바람에 인간을 대상으로 가치를 판단하여 인간의 욕망과 이기심이 악이라는결론을 내리고 금욕주의와 이타주의를 윤리로 만들어 인간을 가르쳤었다. 그러다 보니 개인의 의사가 반영되지 못하여 온갖 개인의 권리가 침해되게 되었다. 그렇기에 현재 개인주의 체제에서는 개인의 의사를 원리로 삼고 인간의 관계에서 가치를 판단하여인간 자체의 욕망과 이기심을 악으로 규정하지 않아야 한다. 그런 상황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과거와 같은 경쟁에 의한 죄악시 나타날 수 있다. 그러므로 합리적 기준으로 올바른 경쟁의 승패를 갈라 차례를 정하는 방법이 있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공정이다. [공정은 공평하고 올바름을 뜻한다.][공평은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고 고름을 뜻한다.][올바르다는 말이나 생각, 행동 따위가 이치나 규범에서 벗어남이 없이 옳고 바름을 뜻한다.] 즉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고 고르게 이치나 규범에 맞는 합리적 기준으로 경쟁의 승패를 정해야한다는 것이다.

선거에서의 경쟁은 유권자의 의사를 합리적 기준으로 삼아 투표 수가 더 많은 후보가 승리할 수있게 하고 시장에서의 경쟁은 소비자의 의사를 합리적 기준으로 삼아 보다 더 많은 수요가 발생하는 상품이 승리할 수 있게 하고 있다. 선거 조작이나 판매 조작이나 자전 거래 등과 같이 개인의 의사를 조작하는 짓이 불공정이 된다. 경쟁이 불공정하게 되면 승자는 정당한 승리가 아니게 되고 패자는 결과를 납득할 수 없어 분쟁이발생할 수 있게 된다. 공정해야만 서로가 결과를 납득할 수 있다. 공정한 경쟁의 결과를 납득하게 되면 모든 개인이 욕망과 이기심을 가지고 있어도 다툼이 발생하지않아 큰 문제가 없게 된다. 스포츠를 생각해보자. 스포츠는 보통 공정한 규칙으로 승패를 가리는 공정 경쟁을 하기에 승자와 패자가 결과에 납득하여 선수들이 욕망과 이기심을 가지고 경쟁하더라도다투지 않게 된다. 만약 공정한 규칙이 아니거나 공정한 심판이 아니라면 패자는물론이고 승자조차도 결과에 납득하지 않으며 다툼이 발생할 수 있다. 이와 같이 공정하면 대부분 납득하여 다툼이 없다. 단지 공정했기 때문에 자기 합리화가 어려워 패자는 보다 더 불행할 수는 있다. 그러한 패자는 사회 계약을 통해 국가 구조의 요소가 되었으므로 국가의 생존을 위해 행복하게 만들어살아가게 한다. 그것이 국가의 복지 정책의 역할이다.

한국은 유교적 가치관과 그와 유사한 사상에 의해 인간의 욕망과 이기심에 의해 나타나는 경쟁과경쟁에 의한 패배자의 불행을 보며 경쟁 자체를 죄악시하기도 한다. 그러나 경쟁은 모든 생물의 보편적 행동에 해당하며 개인주의 체제와 같이 개인의 의사가 원리라면 개인의 의사에 의해 반드시 있을 수밖에 없는것에 해당하므로 경쟁 자체를 죄악시할 것이 아니라 불합리한 기준과 불공정 경쟁을 죄악시해야 한다.

한국은 조선의 과거 제도에서 유교 경전을 암기하고 이해한 것을 기준으로 한 줄로 세워 가치를평가하여 관직을 나눠줬던 것과 같이 수학 능력 시험 제도에서 선진국의 문명을 암기하고 이해한 것을 기준으로 한 줄로 세워 가치를 평가하여 사회의역할을 나눠주는 것과 같은 역할과 무관한 불합리한 기준을 죄악시해야 한다. 학교 이름만 보고 적성에도 맞지 않는 학과에 지원하는 것 자체가 학문을 하기 위해 대학을 가는것이 아니라 보다 좋은 사회의 역할을 맡기 위해 대학을 가는 것에 불과하다. 거기에는 지적 호기심도 없고 진리적 탐구심도 없다. 한 줄로 세워 경쟁을 하기에 보다 더 불합리한 격차가 눈에 띄게 된다. 역할과 무관하게 학교로 가치를 판단하고 있으므로 학교에 의한 차별이 나타나게 되고 그런 차별을보고 경쟁을 죄악시하게 된다. 이런 차별은 경쟁 자체보다 한 줄 세우기라는 불합리한 기준이 원인이므로 경쟁에 대한 비판을 할 것이 아니라 한 줄 세우기에 대한 비판을했어야 했다. 그 외에도 연령 성별 등으로 해야 할 일을 정해놓고 거기에맞추지 않으면 패배자 낙인을 찍는 것과 같은 정해진 기준으로만 가치를 판단하려는 것에 대한 비판을 했어야 했다.

한국은 유교적 가치관으로 나타나는 집단주의 관념에 의해 가족이란 집단의 이익을 위해 세습이나입시나 취업 비리 등을 저지르거나 기업이란 집단의 이익을 위해 담합이나 불필요한 중간기업이나 자전거래 등을 저지르는 것으로 불공정 경쟁이 일어날수 있다.

유교적 가치관에 의해 불합리한 기준으로 경쟁하는 것으로 잘못된 경쟁에 의한 차별을 보고 유교적가치관에 의해 경쟁을 죄악시하면서도 유교적 가치관에 의해 가족이나 기업의 불공정 경쟁은 정당화하기도 하고 있다. 관념에 의해 문제의 본질을 못보고 경쟁 자체만 비판하면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관념에 지배 받는다는 것이 이런 것이다. 불공정 경쟁이 발생하는 현상의 본질은 낡은 가치관에 의한 체제 적응 실패에 있지만 다른 식으로주장하는 일도 많다. 그것에 대해 알아보자.

 

 

첫째, 결과. 모든 인간이 다른 환경과 능력을 갖고 있기에 평등한 결과가나오지 않으므로 성별, 자산, 지역, 인종 등을 고려하여 일부에게 특정한 혜택을 주고 경쟁을 하자 주장하기도 한다. 그것이 마치 공정한 경쟁인 것처럼 말하며 합리적 기준 외의 주관적 판단에 의한 임의적 혜택을주고 나서 경쟁을 하자는 것이다. 그러한 특정 집단의 이익을 고려하여 평등한 결과를 내겠다는 것은 합리적 기준이라 할 수 없다. 경쟁은 필연 승패가 발생하여 불균형한 결과가 나오므로 평등한 결과를 기준으로 한 것 자체가 불합리하다. 불합리한 기준으로 경쟁하는 것은 공정 경쟁이 아닌 불공정 경쟁이 된다.

경쟁에 참여하는 모든 집단이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정도로 모두가 공평한 상태에서 올바른 결과를낳을 수 있는 기준이어야만 합리적 기준이 된다. 역할주의적으로 보면 개인의 개성을 배제한 채 개인의 능력이 역할이란 관계에서 어떤 가치가 있는지 판단하는 것이 합리적 기준이 될 수 있다. 역할은 인류 보편적 가치인 생존과 자유와 같은 것을 기초로 하여 역할 자체도 합리적이어야 한다. 농부는 농사를 잘 지으면 되고 어부는 물고기를 잘 낚으면 되고 변호사는 변호를 잘하면 되고 의사는치료를 잘하면 된다. 그걸 중심으로 역할에 필요한 특성 몇 가지를 더해 평가하는것이 공정하다 할 수 있다. 보통 이러한 역할에는 성별이나 외모는 크게 중요시되지 않으므로 그걸 기준으로 평가하는 경쟁이 보통 불공정 경쟁이다. 그러나 인간의 매력이 중요한 역할의 경우 성별이나 외모가 중요시될 수 있다. 아이돌 같이 이성의 매력을 즐기는 것으로 인간이 행복해지는 역할에서 성별이나 외모를 고려치 않는것은 역할 수행에 중대한 차질을 빚게 할 수 있다. 역할과 같은 합리적 기준이 없이 낡은 가치관에 의해 단순히 성별로 차별하거나 외모 꾸밈이 나쁘다고 말하며 그런 기준을 부정하는 것은 불합리하며그런 것에 영향을 받는 경쟁은 불공정 경쟁이 되게 된다.

 

둘째, 기회. 모든 인간이 다른 환경에서 살고 있기에 공정한 기회가 주어지지않는 것으로 공정한 경쟁이 될 수 없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인터넷의 등장으로 현재 개인이 노력하면 충분히 지식을 쌓을 수 있다. 인터넷을 활용할 수 있는 정도의 환경만 갖춰지면 지식을 수집하는데 어려움이 없다. 생계의 문제가 있을 수 있는데 어느 정도 성적이 나오는 인간은 대부분 장학금을 받고 있다. 그렇지 않더라도 낮은 이율의 학자금 대출도 지원하고 있다. 충분한 정보와 정보 수집으로 얻은 능력에 대한 복지 정책을 통해 개인이 노력하면 경쟁에서 승리할수 있다.

예외를 제외하면 보통 기회는 열려 있으나 두 가지 이유로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 하나는 관념 설계의 실패다. 인터넷을 통해 충분히 정보를 수집할 수 있음에도 그러지 않고 취미에 몰두하고 있다. 공교육을 통해 개인의 욕망을 자극하여 바라는 것을 위해 스스로 정보를 수집하여 성장하게끔 했어야했는데 욕망을 자극하기는커녕 금욕을 강조하며 가르치는 것만 암기하고 이해하라는 교육 과정에 의해 학습 자체를 꺼려하는 풍조가 나타난 것이다. 둘은 불합리한 기준이다. 지식을 쌓아 능력을 갖추더라도 한 가지 기준으로 평가하는 수학 능력 시험이나 시장에 당장 필요한능력이 아니라면 외면 받을 수 있다. 국가에 필요한 다양한 능력을 평가하지 않아 적재적소로 개인의 능력을 활용하는데 어려움을 겪기도 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는 기회가 불공정하다기 보다는 낡은 가치관에 의한 공교육의 문제이므로 공교육 개혁을하면 해결할 수 있다. 학생에 맞은 학습 패턴을 설계하여 스스로 학습할 수 있도록관념을 설계하면 될 것이다.

 

셋째, 관계. 인간관계의 차이로 불공정한 경쟁을 하고 있다고 말하기도한다. 그렇다. 인간관계의 차이로 인해 나타나는 불공정한 경쟁이 보통 세습이나 입시 비리 등이다. 인맥에게 우선적으로 기회를 주며 채용하기도 하고 있다. 그러나 앞서 말한 것처럼 이것은 낡은 가치관에 의한 체제 적응 실패에서 왔다. 겉으로 드러나는 현상이 원인이 아닌 본질이 원인이므로 본질로 접근하여 그에 따른 문제를 해결해야겉으로 드러나는 현상도 사라지게 된다.

 

결과, 기회, 관계 모두 어떤 측면에서 낡은 가치관에 의한 체제 적응실패가 본질적 원인이 되고 있다. 결과적 평등을 주장하는 것은 이타적 관점에서 약자에 대한 희생을 전제로 한 것과 윤리 대상 확대에 의해 약자가 강자가 되는 것으로, 강자가 된 약자가 사회에 결과적 평등을 말하며 약자에 대한 희생을 강요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현재 할당제와 가산점 등과 같은 결과적 평등을 실현하려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그런 불합리한 기준을 통한 불공정 경쟁이야말로 낡은 가치관에 의한 체제 적응 실패다. 현재 결과의 평등에 반발이 일어나며 사회적 갈등을 빚는 것은 그것이 불공정 경쟁이기 때문이다. 기회나 관계도 같다. 낡은 가치관에 의해 조선의 교육 방식을 차용하면서 금욕을 강조하는 것으로 스스로 학습을 꺼려하게 되고 불합리한 기준으로 경쟁하게 되는 것에의해 불공정 경쟁이 되게 되었다. 낡은 가치관에 의해 집단의 이익을 우선시하면서 세습이나 입시 비리 등으로 불공정 경쟁을 하게 되었다. 이와 같이 낡은 가치관에 의한 체제 적응 실패가 불공정 경쟁의 본질이다.

 

공정 경쟁은 합리적 기준에서 개인의 의사로 공정하게 경쟁한다. 그런데 경쟁이 패자를 만듦으로 잘못되었다 말하며 경쟁을 없앤다고 가정해보자. 그러면 어떤 기준으로 누구의 바람을 실현하게 만들겠는가? 바로 경쟁을 없애자 주장한 인간의 주관적 기준으로 지정한 인간의 바람이 실현되게 된다. 가령 정치가가 경쟁이 잘못되었으므로 결과의 평등을 위해 패자가 이익을 얻을 수 있도록 조치한것이 보통 그런 것이다. 그것을 정치가의 이익에 활용한다면 권력 남용이 되고 특정정치가나 정당이 주장한 기준으로 정하게 되면 평가로 사회가 조직되는 것을 고려하면 독재가 된다. 경쟁 부정은 곧 권력 남용이나 독재로 나아가는 길이다. 경쟁의 본질을 볼 생각도 하지 않고 낡은 가치관으로 패자를 동정하며 개인의 의사로 작동하는 경쟁을부정하는 것이야말로 민주주의에 대한 적대적 행위다.

경쟁을 하지 않으면 인간의 바람의 우선순위를 권력이 정하기에 권력이 재력을 지배할 수도 있고복지를 하지 않으면 생계로 인해 주권을 쥐고 있는 국민이 재력에 휘둘리기에 재력이 권력을 지배할 수도 있다. 이런 관계에서 권력은 경쟁을 부정하기도 하고 재력은 복지를 부정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부정은 일부 개개인의 주관적인 손익으로 국가에 전혀 이롭다 할 수 없다. 경쟁이 없으면 개인의 성장과 국가의 성장이나 소비자의 행복이 사라지고 복지가 없으면 사회 구조가유지될 수가 없다. 경쟁과 복지, 둘 다 필요하다.

 

공정 경쟁은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고 고르게 이치나 규범에 맞는 합리적 기준으로 경쟁의 승패를정해야 한다. 가치 판단의 기준인 규범은 체제마다 다를 수 있으므로 개인주의체제에서는 개인주의 체제를 기준으로 바른 것이 올바르다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단순히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이론적으로 국가 체제에 이로운지 확인하고 실증적으로 국가에 이로운지 확인해야 한다. 관습적이나 이론적으로 국가에 이롭다 여겼던 것이 실제로는 국가에 해로울 수 있다. 그러면 아무리 공평하다 하더라도 국가에 해로워 국가 구조가 붕괴할 수 있다. 조선은 유교의 가르침을 기준으로 공평하게 경쟁하였으나 기준 자체가 낡아 국가에 해로웠기 때문에세계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고 도태되어 몰락했다. 너무 낡아서 이론으로도 사회에 이로운지 증명하기 어려운 가르침을 신앙하듯 암기하고 이해한 것을 평가했으니 망할 수밖에 없다.

개인주의 체제에 이로운 것은 생존주의적 자유주의로 국가 구조를 유지하여 국가 원리인 개인의 의사를추구하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가령 화학이란 학문을 배우면 신물질이나 신소재 탐색과 개발을 하거나 마약을 만들 수 있는데, 전자는 사회에 이로우므로 공정 경쟁이 되고 후자는 사회에 해로우므로 공정 경쟁이 되지 못한다. 이런 식으로 그걸 전제로 한 합리적 기준으로 공정한 경쟁을 통해 보다 많은 개인이 행복하게 된다면실제 국가에 이로운 것이 확인되었다 할 수 있을 것이다.

공정 경쟁에는 개인만 참여가 가능한 개인 경쟁과 집단만 참여가 가능한 집단 경쟁과 개인과 집단이참여가 가능한 혼합 경쟁이 있다. 개인만 참여가 가능한 개인 경쟁에는 보통 시험이 있고 집단만 참여가 가능한 집단 경쟁에는 국가나 기업 단위의 입찰이나 집단 스포츠 등이있고 개인과 집단이 참여가 가능한 혼합 경쟁에는 다양한 시장들이 있다. 집단의 참여가 가능한 경쟁은 집단주의적이게 될 수 있는데 그 집단이 개인주의 체제라면 개인주의적이라 할 수 있다. 가령 종교나 노조도 개인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것이 일반적이라면 개인주의 체제라 할 수 있다. 물론 집단 근간을 부정하는 것이 되므로 그럴 경우 종교는 종교가 아닌 개인 신앙 모임이 될 것이고, 노조는 노동조합이 아닌 노동자 개개인의 모임이 될 것이다.

경쟁에 참여한 집단이 집단주의 체제라면 집단의 이익을 위해 집단 내 부정을 고발하지 못하지만개인주의 체제라면 개인의 이익을 위해 집단 내 부정을 고발할 수 있다. 국가 내 모든 집단은 개인주의 체제여야만 국익 훼손을 피할 수 있다. 경쟁에 참여하는 집단은 어디까지나 개인주의 체제여야만 국가에 이로우므로 공정 경쟁이 된다 할수 있다. 공정 경쟁에 대해 세 가지 알아보자.

 

 

첫째, 교육. 교육의 경쟁은 개인 경쟁이다. 정기 시험, 조별 과제, 학업 태도 등의 평가로 석차를 정하는 경쟁을 한다. 조별 과제와 같이 집단을 이루어 경쟁하며 모두가 같은 점수를 받기도 하지만 석차는 개인 성적으로정해진다. 교육은 개인 경쟁을 해야 공정해진다. 만약 집단 경쟁을 하게 되면 집단 구성원의 학업 성취도를 정확히 평가할 수 없다. 학업 성취도가 높은 사람에 의해 낮은 사람이 높게 평가를 받을 수 있고 그 반대도 가능하다. 그러므로 교육에서는 모두 개인 경쟁을 한다. 모든 개인이 욕망을 갖고 이기적으로 행동해야 공정한 경쟁이 된다. 교육은 탐구 교육과 창의 교육과 관리 교육으로 나눠 적성에 맞는 삶을 살 수 있도록 유도하고, 과제를 사고 파는 자본주의식 교육을 통해 자본주의 사회에 쉽게 적응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러나 한국 교육은 비극적이게도 금욕주의적이고 이타주의적이었다. 사회는 일반적인 금욕주의가 널리 퍼진 상태에서 인간에 이타적인 홍익인간을 교육 이념으로 삼고학문에만 몰두하는 수기치인에 영향을 받은 한국 교육은 이타적이고 학문에만 몰두하는 학생을 길러내게 되었다. [홍익인간은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함을 뜻한다. 단군의 건국 이념으로서 우리나라 정치, 교육, 문화의 최고 이념이다.] [널리는 범위가 넓게를 뜻한다.] 그러나 그것은 개인주의 체제에 적합한 것이 아니었다. 인간은 인간의 본성에 맞아야 스스로 알아서 잘 한다. 반대로 본성에 맞지 않으면 강요할 수밖에 없다. 생존, 자유, 욕망, 이기가 윤리가 되면 그것이 인간의 본성에 부합하므로 대체로 강요하지 않아도 알아서 그것을 추구하게 되지만 죽음, 억압, 금욕, 이타가 윤리가 되면 그것이 인간의 본성에 부합하지 않으므로대부분 강요하지 않으면 안 하기에 강요하게 된다. 자유주의와 같이 모두가 자유로운 것이 아닌 홍익인간과 같이 다른 인간을 이롭게 하는 것이 윤리가 되면 그것이 대부분 인간의 본성이 아니기에타인을 이롭게 하기 위해 희생하라는 강요를 하게 된다.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라 가르치면 다른 인간을 이롭게 하면서 올바른 결과가 나올 거라 생각하지 말고 실제 현상을 직시해야 한다. 소수를 제외한 대부분은 다른 인간을 이롭게 하라는 명분을 가지고 타인에게 다른 인간인 나를 위해희생하라는 강요를 하여 부당한 이익을 얻는다. 본성과 어긋나는 것을 기준으로 삼아봐야 제대로 된 결과가 나올 수가 없다. 인류는 개인주의 체제가 들어서면서 그제서야 인류의 본성에 맞는 체제를 가지게 된 셈이다. 그리고 이제는 본성에 맞는 관념을 가져야 한다.

한국 교육은 학생을 이타적으로 가르치면서 온갖 부당하고 불공정한 잘못들이 나타나고 있다. 과거 교사가 학생을 이타적으로 만들어 이용했다면 현재 학생이 교사를 이타적으로 만들어 이용하고있다. 학교는 이타주의 교육을 가르치는데 어째서 이런 결과가 나오는지생각해야 한다. 학교는 이타주의가 일반적이었기에 학교 경쟁력을 위해 입시와무관한 학생의 학교 내 활동 결과를 조작하여 입시에 관련된 학생이 좋은 결과를 얻도록 하기도 했다. 손해를 본 학생이 항의를 하더라도 수용되지 못했다. 어차피 입시를 하지 않거나 가망이 없으니 입시를 하거나 가망이 있는 학생을 위해 희생하는 것이당연하지 않냐는 식으로 정당한 항의는 부당하게 거부되었다. 타인을 희생시키는 것이 너무나도 자연스럽다. 정말 시대착오적인 집단주의다. 이런 것이 잘못되었다 지적해도 집단주의 관념에 의해 반성치 않고 잘못을 반복하고 있다.

그런 한국 교육을 받게 된 학생들은 공정한 경쟁을 할 수가 없었다. 경쟁에서 승자와 패자로 나뉘면 승자는 패자의 불행에 공감하여 슬퍼하도록 만들었다. 감수성이 예민한 일부 학생은 그것에 영향을 받아 패자의 불행에 심하게 공감하면서 승자가 되기위한 노력을 무의식적으로 꺼려하게 되었다. 그런 교육에 강하게 영향을 받을수록 경쟁에서 승리하여 얻은 본인의 행복보다 경쟁에서 패배하여 얻을 타인의 불행이 더 커짐에 따라 경쟁에집중하지를 못하게 되었다. 모든 일반 인간은 주관적으로 옳은 행동을 한다. 그들은 주관적으로 옳은 행동을 하기 위해 경쟁에 집중하지 못한 것이다. 이타주의에 세뇌된 인간은 실제 재능과 별개로 경쟁에 적극적 참여를 하지 못하여 결과도 좋지 못했지만이타주의에 세뇌가 덜된 인간은 경쟁에 참여하면서 결과도 좋았다. 이것은 결코 공정 경쟁이 될 수 없다.

학업에 대한 참여도 줄어들게 되었다. 발표를 하는 것과 같이 학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타인보다 유리하게 되면 불리하게 된 인간이불행해질 수 있기에 참여하지 않는다. 학교에서 튀면 괴롭힘을 당하는 것은 이런 원리에 의한 것이다. “너는 왜 이타적이지 않아?” 강력한 힘으로 집단을 통솔하는 일부 인간이 아니라면 튀는 순간 이타주의를 근거로 한 공격 대상이 된다. 이는 일부 회사에서도 이어진다. 회의를 하더라도 회의 주도권을 가진 이가 아닌 이가 적극적으로 의사 표현을 하면 공격 대상이된다. 그렇게 하여 새로운 가치 생산이 어려울 수도 있었다. 그런 것에 영향을 받아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뽑기 게임으로 좋은 것을 뽑아 자랑하면 뽑지 못한인간의 불행에 공감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비난 받기도 했다. 다수가 소수에게 다수의 의견을 강제하는 동조 압력도 소수에게 이타적일 것을 강요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모든 개인이 욕망을 가지고 이기적으로 경쟁을 해야 공정한 결과가 나옴에도 금욕적인 사회에서 이타적으로살라는 교육에 영향을 받아 욕망을 가지고 이기적으로 경쟁하지 않는 학생이 있게 되면서 공정한 결과가 나오지 못한 것이다. 공정 경쟁이 어떻게 해야 실현되는지 생각을 해야 한다. 한국에서 각종 경쟁에서 승리한 사람이 패자에 공감하지 못하면 나쁜 인간이 되기에 강제로 공감하게되면서 겸손해지게 되었다. 이타적인 겸손이 미덕이었기 때문에 명백하게 잘한 것도 그렇지 않다며 겸손한 태도를 유지하게 되었다.

타인의 이익을 위해 희생하라는 관념에 의해 자녀의 위한 성적 조작이나 입시 비리를 저지르고, 학교에 해로운 행동을 하는 학생이 다른 학생이나 교사에 피해를 줘서 학업에 방해를 주고 있음에도그 학생의 이익을 위해 희생하라는 관념에 의해 제대로 된 처벌도 하지 못하고 있다.

평가에는 상대 평가와 절대 평가가 있다. 절대 평가를 받을 때 이타적인 관념에 의해 타인의 이익을 위한 부당한 행위가 나타나게 되기도한다. 기출 문제나 기출 경향이 담긴 족보를 집단 내에서 돌려보는것이 그렇다. 지나치게 많은 학습 범위로 족보를 정당화하기도 하는데 그럴거면 처음부터 족보와 같은 안내서를 공개해야 함이 마땅하다. 그래야 공정 경쟁이다.

이런 교육에 깊게 세뇌되어 이타심을 이용당하는 인간은 성인이 되어서도 자기의사를 제대로 표현하지못하여 착취나 학대나 폭력을 당하다 불행하게 죽기도 한다. 동창생에게 골프채로 맞아 죽은 사람이나 동창생에게 성매매를 강요당해 착취당하던 사람들 같이 학생 때 괴롭힘을 당하던 사람에게 성인이 되어서도괴롭힘을 당하며 폭력이나 착취 등으로 최소한의 기본권도 보장받지 못하며 불행하게 살다가 사망한 사건이 매우 많다. 많은 사람들은 가해자만 비난하지만 이것은 제대로 반항조차 하지 못하게 한 이타주의 세뇌가 더욱큰 잘못이다. 본인보다 타인의 이익을 우선시하게 하니 타인의 명령에 복종하고, 그런 복종을 올바르다 여기며 자기 합리화를 하면서 저항하지 않다가 지독한 괴롭힘 속에서 저항할힘을 완전히 잃어버려 위와 같은 비참한 사건이 발생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타주의를 근거로 부모나 교사가 학생들을 쉽게 다루기 위해 학생들을 이타적으로 만들면 학생들은 잘못된 관념을 갖게 된다. 어떤 학생은 부모나 교사가 본인을 폭력이나 윤리를 가지고 이타적으로 세뇌하여 복종하게 하는 것을보고 타인이 본인의 말을 듣게 하려면 타인을 폭력이나 윤리를 가지고 이타적으로 세뇌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다. 어떤 학생은 부모나 교사가 본인을 폭력이나 도덕을 가지고 이타적으로 세뇌하여 복종하게 하는 것을보고 본인이 부모나 교사에게 이타적으로 복종하는 것과 같이 타인에게도 이타적으로 복종하게 된다. 도구를 쓸 수 있는 인간이 일방적인 지배와 복종이 나타나는 것은 이런 원리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타인을 이타적으로 만들어 자유 의지를 잃게 하거나 본인을 이타적으로 만들어 자유의지를 잃게 되는 것으로 일방적으로 이용하고 이용당하는 개개인이 나타났다. 그것이 교육을 통해 폭력이나 관념의 대물림이 되어 자유 의지를 잃게 되는 개인이 지속적으로 나타난다. 자유 의지를 잃은 인간은 앞으로도 도구가 되어 살다가 불행하게 죽는다. 정말 잔인하고 지독한 교육이다. 이타주의는 집단의 이익을 위해 개인을 희생시키는 명분이 되었다.

이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면 관념에 대한 이해를 다시 해보자. 인간은 관념에 영향을 받아 본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육체의 행동 준비와 실행에 의해 느끼게 된다. 어떤 개인이 변기가 더럽다는 관념을 가진 상태에서 물을 마시다가 누군가에게 그 물이 변기 물이라듣는다면 실제 그렇지 않더라도 불쾌해지면서 구역질을 할 수 있듯이 어떤 개인이 타인의 이익을 우선시하라는 이타적인 관념을 가진 상태에서 경쟁 패자의불행에 공감하여 슬퍼해야 한다는 말을 들으면 실제 공감하면서 슬퍼하며 그런 불행을 만든 경쟁을 부정적으로 보며 경쟁에 전력으로 참여하지 못하게된다. 관념 자체가 이런 것이다. 한국은 특히 그런 것에 영향을 쉽게 받는데 2017년 조사에 따르면 혈액형 성격설을 믿는 사람이 58%나 되었다고 한다. 사회 전반적으로 이타주의에 영향을 받아 이기적인 주관을 가지기가 어려워 대중에 쉽게 휩쓸리면서 유행도 쉽게 따르게 된다.

개인 관념 재정립은 간단하다. 게임과 스포츠를 참고하면 된다. 게임과 스포츠에서는 규칙이란 합리적 기준만 지키면 욕망을 가지고 이기적으로 행동해야 공정한 결과가나온다. 그렇게 하는 것이 미덕이다. 오히려 이타적으로 생각하여 봐주는 것이 모욕이 되기도 한다. 스포츠는 심판에 의한 불공정이 나타날 수 있는데 게임은 시스템적으로 판단하기 때문에 시스템 자체가불공정하지 않는 한 그런 것조차 없다. 그렇게 하여 모든 학생이 욕망을 가지고 이기적으로 행동하면서 자유롭게 논리적인 의사 표현을 할 수 있는 지성인이 되어야 한다. 그렇게 성장해야 모든 인간이 이기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타인을 이타적을 만들어 이용하지 않고본인을 이타적으로 만들어 이용당하지도 않는다. 한국은 게임을 매우 잘하는 국가로 유명하다. 그것은 평소 금욕적이고 이타적으로 살던 한국인이 게임에서는 욕망을 가지고 이기적으로 플레이를 할 수 있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것이 교육이나 가치 생산에서 나타난다면 굉장한 성과를 이룰 수 있을 거라 확신한다.

국가 구조 재정립은 교육 이념을 자유로 바꾸고 최대한 욕망을 가지고 이기적으로 행동해야 올바른결과가 나오는 시스템을 갖추면 된다. 부모나 교사가 자녀나 학생을 교육할 때에는 금욕적이고 이타적으로 가르칠 것이 아니라 욕망적이고 이기적으로 가르치고, 네가 욕망과 이기심을 가진 만큼 남도 욕망과 이기심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시켜 본인의 권리를존중 받기 위해서는 타인의 권리를 존중하고 이해해야 하며 본인과 타인 사이에서 분쟁이 발생하면 논리적인 대화를 하거나 여론이란 제삼자의 의견을듣거나 법으로 해결하도록 가르쳐야 한다. 국가에 필요한 능력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수학 능력 시험으로 한 줄 세우던 것에서 벗어나 역할에 맞는 탐구심이나 창의력과 같은 욕망과능력을 가진 인간을 다양한 분야에서 줄을 세워 평가하여 적재적소에 개인의 능력을 활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경쟁에 패자가 나타나면 국가 구조 유지를 위하여 그런 패자에 복지 정책을 적용하여 다시 경쟁에도전할 수 있도록 하면 된다.

 

 

둘째, 노동. 노동의 경쟁도 일반적으로는 개인 경쟁이나 집단 경쟁을 할때도 있다. 노동 시장에서의 경쟁은 개개인이 취업 활동을 할 수 있으나어떤 팀이 한번에 스카우트 되기도 한다. 노동 시장은 시장이므로 개인의 의사가 반영되어 수요와 공급으로 결과가 결정된다. 개인의 노동력 임대 상품이 시장에서 수요가 있어야 고가에 팔린다. 노동 활동에서의 경쟁도 개개인이 성과 경쟁할 수 있으나 집단이 성과 경쟁하기도 한다.

그러나 낡은 가치관에 의해 노동 경쟁이 불공정 경쟁이 되기도 한다. 노동시장에서는 취업 비리가 일어나거나 결과의 평등을 위해 평가를 조작하거나 도제식 교육을 받은인간만 노동의 기회를 주는 것과 같이 기회의 평등이 보장되지 못하기도 하고 있다. 노동 활동에서는 일부 사회 초년생에게는 타인에게 이용당하여 희생되는 것을 사회성이라 말하며 희생을강요하며 더 많은 일을 주거나 성과를 조작하는 등과 같은 일을 저지른다. 그런 비리에 항의하면 사회성이 없다는 말을 듣기도 한다.

개인 관념은 교육에서 충분히 배웠으면 기본적으로 큰 문제가 없다. 학업의 경쟁과 같이 모든 개인이 합리적 기준에서 욕망을 가지고 자유롭게 이기적으로 경쟁을 하면된다. 그러면 공정 경쟁이 된다. 사회성의 경우 낡은 가치관에 의한 사회성이 집단주의 관념에 의한 사회성이므로 체제에 해로워 그런사회성을 가질수록 오히려 사회에 해로울 수가 있다. 황당하지만 사실이다. 사회성이 사회에 이롭기 위해서는 개인주의 관념에 따른 사회성을 가져야 한다.

어떤 물고기는 생존 위협이 있어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한다. 그걸 보고 노동자 또한 생존 위협을 겪어야 생산성이 높아진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눈 앞에 먹이가 있어 그 먹이를 잡아먹겠다는 욕망을 가지고 먹이를 잡아먹으면 살아남는것을 넘어 배까지 부를 수가 있다. 그와 같이 단순히 생존 위협이 아닌 먹이를 잡아먹겠다는 욕망을 가지게 해야 더 큰 가치를 생산할 수 있다. 모든 개인은 욕망을 가져야 한다.

국가 구조는 취업 비리는 처벌하고 결과의 평등을 기회의 평등으로 바꾸어야 한다. 취업 비리는 처벌하고 있으므로 가족을 위해 비리를 저지르는 것이 윤리가 아니라는 인식이 퍼지면된다. 그러나 결과의 평등은 바르다 말하며 정부에서 실행하기도하고 있으므로 국가 구조를 바꿔야 하는 대상이 된다. 노동 시장은 스포츠와 목적이 다르다. 스포츠는 공정한 경쟁을 하여 플레이하는 선수와 시청하는 시청자를 즐겁게 하기 위해 인원이나 체급을 맞추고 있어 결과가 평등하도록 어느 기준을맞추고 있다. 체급이 다른 선수가 경쟁을 하는 것이 기회의 평등이고 체급이같은 선수가 경쟁을 하는 것이 결과의 평등이다. 그렇기에 노동 시장의 경쟁도 결과의 평등이 필요하다 여길 수도 있다. 그러나 노동 시장은 공정한 경쟁을 하여 보다 더 큰 가치를 생산하기 위한 것으로 목적 자체가다르다. 능력이 다른 모든 사람이 공정하게 경쟁해야 보다 더 큰가치를 생산할 수 있다. 그렇게 하여 개인은 자아 실현을 하고 사회는 큰 이익을얻는다. 그럼에도 마치 스포츠에서 선수와 시청자를 만족시키기 위해결과의 평등을 시도하듯이 노동 시장에서 노동자와 인권 운동가의 입맛에 맞는 결과를 만들기 위해 인위적인 결과의 평등이 되도록 조작하면 올바른 경쟁이되지 못하여 개인은 부당하게 자아 실현을 할 기회를 놓치고 사회는 더 큰 가치를 생산할 수 없게 된다. 그런 것이 노동 시장에서는 불공정 경쟁이 된다. 그런 측면에서 할당제나 가산점도 불공정 경쟁이 된다. 능력과 무관한 농어촌, 유공자, 여성, 장애인 등에 대한 할당제나 가산점으로 결과의 평등이 되도록조작하면 그로 인해 다른 능력이 있는 인간은 자아 실현의 기회를 놓치고 능력이 부족하기에 사회 성장도 늦춰지며 상품 품질이 낮아져 소비자가 불행하게된다. 경쟁에서 패배하는 것으로 나타나는 불균형은 경쟁에 간섭하여균형을 맞추는 것이 아닌 개인의 의사로 벌어지는 경쟁이 정상적으로 이루어지도록 지켜본 다음 국가 구조를 유지하기 위해 패자에게 복지 정책을 적용하는것으로 균형을 맞춰야 한다. 그래야 국가 구조가 유지되고 국가 원리도 추구할 수 있다.

기회의 평등을 추구하기 위해 모든 인간이 지식을 공유해야 한다. 학문의 지식은 공유되어야 하고 학문의 지식으로 창출된 상품은 보호되어야 한다. 모든 개인은 학문의 지식을 자유롭게 접하여 성장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하여 공적인 교육 기관을 수료하거나 사적인 자격을 취득하는 것 등으로 창업이나 취업 등의사회의 역할을 맡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오래된 분야는 도제식 교육으로 해당 분야의 학문 지식의 공유가 폐쇄적일 때가 있다. [도제1는 스승으로부터 가르침을 받거나 받은 사람을 뜻한다. 도제2는 직업에 필요한 지식, 기능을 배우기 위하여 스승의 밑에서 일하는 직공을 뜻한다.] 도제식 교육은 개인에게 깊이 있는 지식전달이 가능하지만 폐쇄적이기에 사회에 공유되지 못해 일부만지식을 얻게 되는 것으로 모든 개인의 공정 경쟁에 해가 될 수 있다. 도제식 교육에는 공정한 기준으로 경쟁하여 합격한 다음 도제식 교육을 하는 것과 사회의 역할을 맡고 있는 사람의 주관적인 기준으로 경쟁이없거나 있더라도 공정하지 않게 평가하여 합격 여부를 결정한 다음 도제식 교육을 하는 것이 있다. 전자는 공적인 공정 경쟁을 통해 대다수 개인에게 기회가 있는 반면 후자는 사적인 주관적 판단으로소수의 개인에게만 기회가 있다. 모든 개인이 자유롭게 지식을 쌓아 성장해야 하므로 대부분 도제식 교육은 사라지는 것이 바람직하다. 특히 생존 게임에 승리하기 위해 과학에 관한 지식은 모든 인류가 이해관계를 고려치 않고 공유하면서빠르게 발전해야 한다. 시장은 개인의 의사가 반영되므로 일부가 도제식 교육을 한다고강제로 막기는 어렵다. 그러나 정부나 기업에서 어떤 분야의 인재를 길러내겠다고판단하고 공적인 기관에서 교육하는 것을 도제식 교육을 하는 인간이 반대할 권리는 없다. 모든 인간은 역할을 맡기 위한 태도와 능력을 갖추고 있다면 그에 따른 기회와 역할을 가질 수있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보다 많은 인간의 능력을 활용하여 사회를 이롭게할 수 있다.

 

 

셋째, 소비. 소비 시장에서의 경쟁은 개인과 집단이 경쟁하는 혼합 경쟁이다. 정부가 정한 절차와 기준에 맞추면 누구나 시장에 상품을 팔고 살 수 있다. 개인이나 집단이 생산한 상품을 시장에 공급하면 소비자의 수요에 따라 공급 경쟁이 나타난다. 소비자의 선택을 받아 소비자를 행복하게 한 상품을 생산하여 공급한 생산자일수록 많은 이윤을 얻게된다. 그 이윤을 자본으로 더 많은 생산을 하여 더 많은 이윤을통해 부를 축적해나가는 이들이 보통 자본가다.

소비 시장의 경쟁은 소비자에게 선택 받기 위해 경쟁을 하게 되므로 선택을 하는 입장인 소비자는공급이 경쟁할수록 많은 이익을 얻을 수 있게 된다. 공급 경쟁에 승리한 자본가는 높은 이윤을 얻을 수 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자본주의는 소비자와 공급 경쟁 승리자가 행복한 사상이 된다. 그런 시장 원리를 추구할 수 있도록 공급 경쟁 패배자를 위한 복지 정책을 실행하면 된다.

다른 경쟁과 같이 소비 시장의 경쟁 또한 합리적 기준으로 욕망을 가지고 이기적으로 경쟁을 해야공정해질 수 있다. 그렇기에 정부는 시장을 공정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만약 그러지 못한다면 시장 참여자의 욕망과 이기심이 악이 되어버린다. 심판이 경기를 공정해야 해야 선수의 욕망과 이기심이 정당화되는 것과 같이 정부가 시장을 공정하게해야 시장 참여자의 욕망과 이기심이 정당화된다. 그러나 낡은 가치관으로 인해 그러지 못하고 있다.

담합이 바로 그렇다. 많은 분야가 담합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밀가루, 닭, 우유, 컴퓨터, 통신사 등을 비롯해 대부분의 분야가 시장에 공급할 상품의공급량이나 가격을 맞추는 담합을 하는 것으로 경쟁하지 않고 이익을 얻고 있다. 분야의 최저 수익률을 맞추기 위해 담합이 어쩔 수 없다는 말을 하기도 하는데 그 논리는 시장원리에 의해 논파된다. 시장에서 수익률이 낮으면 폐업하고, 폐업하여 공급이 줄면 수요가 늘어 가격이 상승하는 것으로 적정 수익률을 맞출 수 있다. 국가 관리 품목이 아닌 이상에야 특별한 가격 관리가 아닌 시장 원리에 의한 가격결정을 따르는것이 합당하다. 그럼에도 담합을 한다. 이런 것을 어떻게 자유 시장 경제라 할 수 있는가? 많은 사람들이 한국 사회 문제는 자본주의 탓이라고 말하는데, 자본주의 체제의 방식을 따르지 않아 발생하는 사회 문제가 이토록 많은데 어떻게 자본주의 탓이라할 수 있는가? 그것은 어떤 스포츠에서 선수가 반칙하는 것을 보고 선수탓을 하는 것이 아니라 스포츠 탓을 하는 것과 다르지 않을 정도다. 낡은 가치관에 의해 욕망과 이기심을 동력으로 하는 자본주의를 나쁘다고 답을 내놓고 판단하려고 하니까 무조건 자본주의 탓이라 말하게 되는것이다. 낡은 가치관에 의해 기업도 담합하고 노조도 담합하고 농부도담합하고 자영업자도 담합하고 배달부도 담합하는 상황에서 어떻게 자본주의 탓을 할 수 있는가?

한국은 자본주의가 아니라 집단주의 관념의 문제다. 집단의 이익을 위해 담합을 하고 집단의 이익을 해칠 수 있는 개인의 고발은 죄악시했기에 담합이고발되지 않고 있다. 담합을 주장하는 이들의 논리는 간단하다. 모두의 이익을 위해서인데 모두 참여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느냐? 그게 바로 집단주의 체제고 사회주의 마인드다. 반공주의 외치며 집단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공산주의 마인드를 추구하기도 한다. 그로 인해 시장 원리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다. 비싼 농산품, 비싼 컴퓨터 부품, 비싼 통신료 등 담합으로 인해 시장 원리와 관련이 없는 비싼 상품이 너무나도 많다. 괜히 한국이 소득 대비 높은 식료품 가격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다. 한국 통신사는 소비자에게 통신료를 적게 받는 대신 기업에게 통신료를 많이 받는다는 의견이 있다. 만약 그렇다면 얼핏 보았을 때 소비자가 이익을 보는 것 같으나, 결과적으로 기업이 통신료를 내는 만큼 서비스 비용을 올리는 것이므로 조삼모사와 다를 바가 없다. 그리고 기업의 통신료라는 든든한 수익처가 있어 공급 경쟁의 필요성이 줄어들게 된다. 경쟁의 필요성이 줄어들면서 산업 전체가 경쟁을 통한 성장을 하지 못하게 된다. 특히 집단 담합을 규정화하여 경쟁력을 악화시킨 분야는 담합을 포기하지 않을 경우 차라리 망가지고나서 다시 시장 원리에 맞게끔 재건하는 것이 좋다. 심각한 시장 원리 훼손이다. 유교적 가치관과 공산주의의 영향으로 생산자의 이익만 고려하면서 소비자가 막심한 손해를 보고 있다. 노조의 담합과 기업의 담합 모두 물가 상승의 요인이 되어 소비자를 불행케 한다.

분야의 담합과 협의에는 차이가 있다. 일부 기업의 이익을 위해 공급이나 가격을 맞추는 것은 담합이 되고, 분야의 표준을 정하기 위해 협의하여 표준에 맞춘 공동 개발 하는 것은 것은 협의가 된다. 가령 건설 업체가 건설 공급이나 비용을 합의하여 정하는 것은 담합이 되지만 층간 소음을 막기위해 건설 업체가 공동 연구하여 모두 쓰는 것은 기술 표준화로 협의가 된다. 보통 소비자가 손해를 보고 불행해지는 것은 담합이 되고 이익을 보고 행복해지는 것은 협의가 된다. 이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독과점은 불공정 경쟁 이전에 경쟁 자체가 거의 없어 경쟁에 의한 시장 원리 효과가 나타나지 않게된다. 인원에 제한이 없는 온라인은 인원의 제한이 있는 오프라인보다독과점이 일어나기가 쉽다. 포탈이나 SNS를 떠올려보자. 소수의 기업이 독과점을 유지하고 있다. 독과점으로 경쟁이 없다 보니 소비자가 손해를 보는 운영을 하기도 하고 있다.

개인 관념은 교육에서 충분히 배웠으면 기본적으로 큰 문제가 없다. 국가 원리가 개인의 의사임을 명확하게 인지하고 담합과 독과점과 같이 시장 원리를 작동하지 못하게하는 것이 잘못임을 알아야 한다. 가격을 유지하기 위해 시장 원리를 지키지 않고 공급을 인위적으로 줄이자 시장 원리에 의해 공급가가 높아짐에 따라 더욱 수요가 줄어들면서이익이 되지 않는 현상이 나타나기도 한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국가 구조는 시장 원리를 지켜야 한다. 정부는 노조와 기업의 담합이 개인주의 체제에 맞지 않는 집단주의 체제의 산물임을 인지하고, 행정부는 공정 거래 위원회의 권력을 늘려 장차 고용 노동부와 통합하여 모든 상품의 공정 거래를담당해야 할 것이다. 공정이야말로 개인의 욕망과 이기심을 정당하게 만든다. 인간의 욕망과 이기심은 그릇될 수도 있으나 그 앞에 공정이 붙으면 옳게 된다. 공정한 욕망과 이기심 추구로 올바른 결과가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공정을 중요시해야 한다. 그렇게 개인의 욕망과 이기심으로 거래하는 것을 올바르게 만드는 공정 거래를 보장하는 기관이야말로국가 체제 우위를 증명하는 기관이다. 국가의 체제와 이념을 바르게 하는 기관은 보다 더 커져야 한다. 모든 상거래라는 합리적 기준으로 공정 거래 위원회는 소비뿐만이 아니라 노동과 금융 거래 또한 관리해야 한다고 본다. 그렇게 모든 시장의 거래를 관리하여 시장 원리와 부당한 이익과 손해를 막아 소득 대비 높은 물가가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시장 원리에 의해 선택 받지 못할 경우에는 복지 정책을적용하여 생존할 수 있도록 하게 하면 된다.

시장에 담합이나 독과점으로 경쟁이 사라지면 경쟁이란 시장 원리가 작동하게 만들기 위해 토너먼트경기장에 선수가 없을 때 새로 선수를 뽑아 내보내 경쟁하게 하듯이 기존 기업을 지원하거나 창업하거나 해외에서 기업을 불러 경쟁하게 하도록 해야할 것이다. 그래야 소비자는 행복하고 산업도 경쟁에 의해 발전하게 된다.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다. 의료계에서 시장 원리로 소아과 의사가 사라지면 시장 원리를 근거로 공급을 늘리면 된다. 그럼에도 시장 원리에 의해 소아과 같이 기피학과에 의사가 없다면, 기피학과 전용 의대를 만들면 된다. 의료 서비스 품질이 낮아지더라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낫다. 쉬운 진료와 어려운 진료로 나뉠 텐데 능력에 따라 적재적소에 배치하면 된다.

 

 

교육과 노동과 소비에 대해 알아보았다. 경쟁에서 경쟁에 참여하는 참여자와 경쟁을 관리 감독하는 정부는 입장이 다르다. 교육이나 시장에서 경쟁하는 사람은 본인의 이익이 중요하지만 관리 감독하는 정부는 국가의 이익이중요하다. 누가 이익을 얻든 정당한 기준과 절차를 거쳤다면 정부 입장에서는아무래도 좋다. 어떻게든 국가에 이익이 되면 된다. 그러므로 경쟁의 결과보다는 경쟁의 규칙과 목적에 초점을 맞춰 최대한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도록하게 된다.

경쟁의 결과 중 하나인 재화는 국가의 체제로 분배가 결정된다. 국가 경제 체제가 자본주의라면 시장 경제를 통해 개인의 의사로 재화의 분배가 결정되고 공산주의라면계획 경제를 통해 정부의 의사로 재화의 분배가 결정된다. 인류의 재화는 무력과 무력을 제어할 권리가 있는 권력과 권력의 방식을 결정할 사상으로 마련된 체제에서 분배되고 있다. 그 외 소유나 환원이나 부의 대물림까지 전부 그렇다. 체제에 이로운 것은 허용되고 해로운 것은 금지된다. 개인주의 체제가 성립되려면 공정해야 하기에 공정하는데 필요한 기회의 평등을 지나치게 해치는 과도한부의 대물림은 체제에 적합하지 않다. 개인주의 체제에서의 경쟁은 언제나 공정해야 한다.

경쟁에 참여하는 개인은 경쟁에 대한 리스크와 세상의 시선 등으로 경쟁 참여가 점점 저조하게 되어가고있다. 한번 경쟁으로 지나치게 많은 리스크를 짊어지게 하고 경쟁에탈락하면 마치 레일에서 벗어난 기차와 같이 바라보기에 잦은 경쟁 참여가 힘든 상황이다. 수많은 경쟁이 있어야 국가와 시장이 성장할 수 있는 것을 고려하면 바람직하지 못하다. 그러므로 스포츠나 경쟁 게임에서 그러하듯 개인과 집단이 공정한 합리적 기준에서 끝없이 경쟁을즐기면서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 국가 구조를 유지하여 국가 원리를 추구한다. 그와 같이 경쟁에 패배한 인간은 구조 유지를 통해 다시 경쟁할 수 있게 하는 것으로 개인의 의사로 경쟁하는 시장 원리를 추구하면 된다.

 

시장 원리를 추구하기 위해서는 구조가 유지되어야 한다. 구조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구조의 요소인 인간이 불행으로 사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인간은 가치 생산과 가치 소비 활동을 할 수 있는데, 대체로 가치 생산에서 불행을 느낄 수 있으므로 가치 생산에 초점을 맞춰보자. 노동자는 가치를 생산하는데 있어 불필요한 이유로 불행해서는 안 된다. 가치 생산 외에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낡은 가치관으로 인해 불필요하게 불행하게 되는 것을 제거하면 구조를 유지하는데 쓰이는 비용이상당히 절감될 수 있다. 불행하게 되는 것을 방치하고 불행에 대한 지원을 하는 것은밑 빠진 독에 물 붓기나 다름 없다.

 

첫째, 수평 사회. 낡은 유교적 가치관에 영향을 받아 연령이나 지위로 차례를정하여 지키는 것이 바르다며 다른 노동자에게 꼰대질이나 갑질을 행하여 불행케 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 가치 생산에 필요한 행위도 아니면서 다른 사람을 지나치게 괴롭게 만들고 있다. 그것이 과거 유교의 가르침이었기 때문에 올바르다 여기며 행한 것이 타인을 괴롭게 하기에 도덕적죄라 할 수 있다.

 

둘째, 자유 노동. 고정된 노동 시간, 노동 기간, 노동 장소는 노동자가 자본가에 종속된 농노나 다름 없다는 낡은 노동 관념으로 나타났다. 생산성만 유지될 수 있다면 반드시 09:00부터 18:00까지 일하는 노동 시간을 준수할 이유가 없고 주5일제라는 노동 기간을 유지할 이유가 없고 기업이라는 노동 장소에서 일해야 할 이유가 없다. 극단적으로 노동자가 육체 유지를 한다는 가정하에 2주간 쉬지 않고 일하고 2주간 쉬어도 생산성만 나오면 된다. 고정된 노동으로 자유롭지 못하여 불행하게 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

 

셋째, 공정 보상. 기업의 보상 체계는 낡은 유교적 가치관에 의한 연공서열로특별히 하는 일이 달라지지 않거나 기여도나 생산성이 높아지지 않더라도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럽게 보상이 늘어나는 체계인 경우가 많다. 이런 연공서열은 욕망이 적어 향상심이 없어 능력을 키울 생각이 없는 사람은 행복할지 몰라도 향상심이있어 능력을 키울 사람에게는 가치 생산이 높아져도 대가가 달라지지 않아 불행하다. 부당한 보상 체계로 불행하게 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

 

곧잘 수평적 관계와 자유로운 노동과 공정한 경쟁과 보상을 바라는 신세대 노동자들에게 낡은 가치관에의한 집단주의 관념에 의한 사회성이나 낡은 노동 관념에 의한 자유롭지 못한 노동이나 불공정한 경쟁이나 보상을 헝그리 정신이나 금욕을 말하며 정당화하기도하는데, 그것이 노동자의 생산성을 악화시켰다. 과거 한국은 독재 정권의 집단주의 체제에서 근로를 하였기에 금욕과 이타가 중요시되어야 생산성이높아졌지만, 현재 한국은 민주 정권의 개인주의 체제에서 개인의 의사로노동을 하고 있기에 자유로운 노동과 공정한 경쟁과 보상이 있어야 마음껏 욕망을 가지고 이기적으로 행동하여 높은 성과를 이룰 수 있다.

 

 

 

11. 자본주의 체제

 

구조를 유지하여 원리를 추구한다. 모든 존재는 이것을 기본으로 한다. 인간은 육체를 유지하지 못하면 행동 원리를 추구할 수 없다. 영양분을 균형 있게 섭취하지 못하면 영양 불균형으로 육체를 유지하지 못하여 자유롭게 행동할 수없다. 노동, 수면, 여가를 균형 있게 하지 않으면 육체를 유지하지 못하여 소외감이나 과로로 죽어 자유롭게 행동하지 못한다. 인간관계를 균형 있게 가지지 않으면 스트레스나 고독으로 죽어 자유롭게 행동할 수 없다. 육체가 있어야 행동 원리도 있다. 인간에게 적합한 자연환경도 마찬가지다. 자연환경을 인간에게 적합할 수 있도록 유지해야 인간이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다. 지금까지는 지구 생물이 자연을 오염시켜도 자연의 생태계가 정화하여 지구 생물이 살아갈 수 있는환경을 유지해왔는데 인간이 일으키는 오염은 자연만으로 정화하기 어려워 인간도 같이 정화하여 인간에게 적합한 자연환경을 유지하지 않으면 인간이 자유롭게행동하기가 어려워질 것이다.

그런데 구조를 유지해야 한다는 명분으로 개인의 의사를 과하게 침해하는 것은 부당하게 된다. 사회 구조 유지를 말하면서 과하게 개인의 권리를 침해할 수 없듯이 자연 환경 유지를 위해 과하게개인의 권리를 침해할 수는 없다. 만약 구조 유지가 최우선이면 모든 인간을 지배하여 명령대로 움직이는 로봇으로 만들거나 모든 인간의 문명을 파괴하고 인간을 죽이면 된다. 그럴 수가 없다. 원리를 추구하기 위해 구조를 유지하는데 원리를 추구할 수 없게 하는 것은 본말전도다. 사회나 자연을 유지하기 위해 개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강제력이 동원되나 인간의 자유로운 생존을위해 그러는 것이므로 과하게 인간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은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 채식을 강요한다거나 불합리하게 짐승을 보호한다거나 같이 말이다.

인간은 욕망을 가져야 한다. 일부 과학자가 기후 위기 연구를 충분히 했다면서 기후 위기 대책을 위한 정책 마련을 각국에 요구하는시위를 하고 있다고 한다. 타당하다. 구조를 유지해야 원리를 추구할 수 있으므로 모든 개인은본인의 자유를 위해서라도 동참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러나 단순히 석탄 쓰지 말자고 하면 석탄 같은 저렴한 물질로 생존하는 수많은 이들에 얼어 죽는다. 그렇다고 시장 원리를 무시하고 비싼 연료를 싸게 공급하는 등과 같은 것도 쉽지 않은 선택이다. 여유가 있는 선진국은 그럴 수 있으나 여유가 없거나 환경을 신경 쓰지 않는 국가는 그러지 않을것이다. 그러므로 생존과 무관한 온실가스 배출 등의 문제는 배출을줄이는 것이 합리적이나 생존과 직결되는 온실가스 배출 등의 문제는 단순히 배출을 줄이는 것으로 끝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과학자라면 기후 위기 대책을 위한 정책에 쓰일 수 있는 과학 기술을 연구하고 개발하는것을 병행하여 단순히 배출을 끝내자고 말할 것이 아니라 배출을 끝내도 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해야 해야 한다고 본다. 무엇보다 아무리 노력해도 기후 변화를 늦출 뿐이지 그 흐름을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다른 방식으로의 생존을 모색해야 한다. 나는 생존 게임에서 승리하여 모든 인간이 불로불사가 되어 우주 진출을 하는 것이 인간과 인류가 생존할 수 있는 길이라 본다.

자본주의 체제도 구조를 유지해야 시장 원리를 추구할 수 있다. 자본주의 체제는 시장과 시장 원리를 유지해야 구조가 유지될 수 있다. 자본주의 체제는 가치 생산, 경쟁, 승리한 공급자와 소비자 행복, 해당 분야와 경제의 성장, 상대적으로 더 가치 있는 생산 이하 반복을 하면서 점점 성장한다. 그런데 과한 복지나 부의 대물림에 의해 가치 생산이 멈추면 시장이 점점 축소하면서 사라질 경우자본주의 체제 구조가 붕괴하고 수요와 공급에 관한 경쟁이란 시장 원리가 멈추면 승리한 공급자 행복과 해당 분야와 경제의 성장이 사라지면서 시장원리가 작동하지 않아 자본주의 체제 구조가 붕괴한다. 시장 원리를 추구하면 경쟁에 패배한 공급자는 가난하거나 불행하여 자살할 수 있다. 그러면 국가 구조와 분야 구조와 자본주의 체제 구조를 유지하는 요소가 사라지면서 각각의 구조가붕괴할 수 있기 때문에 복지 정책을 적용하여 그런 것을 방지해야 한다. 단순히 사라지는 것을 방지하는 것뿐만 아니라 다시 경쟁에 참여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야 자본주의 체제의 구조가 유지될 수 있게 된다.

 

자본주의는 가치를 숫자로 환산한 돈이란 객관적 기준으로 거래한다. [돈은 사물의 가치를 나타내며, 상품의 교환을 매개하고, 재산 축적의 대상으로도 사용되는 물건을 뜻한다. 예전에는 조가비, 짐승의 가죽, 보석, 옷감, 농산물 따위를 이용하였으나 요즈음은 금, 은, 동 따위의 금속이나 종이를 이용하여 만들며 그 크기나 모양, 액수 따위는 일정한 법률에 의하여 정한다.] 돈은 단순히 평균적인 물건의 가치인 물가를 수로 객관화한, 물가와 반비례하는 도구다. 시장에서 공급보다 수요가 높으면 물가가 올라 돈의 가치가 내리고 수요보다 공급이 높으면 물가가내려 돈의 가치가 오른다. 또는 중앙은행에서 물가나 화폐 가치를 제어하기 위해 화폐를 많이 발생하여 시중에 푸는 양적 완화를 하면 물가가 오르고 돈의 가치가 내리며, 화폐를 회수하는 양적 긴축을 하면 물가가 내리고 돈의 가치가 오른다.

돈으로 시장에서 바라는 것을 구매하여 가치 소비 행복을 얻기에 금전 만능주의에 빠질 수 있으나실제는 돈만이 아니라 모든 가치와 가치의 신용을 보증할 힘이 중요하다. 돈은 무력과 권력으로 쉽게 가치가 변한다. 그렇기에 돈을 많이 소유하는 것보다 가치를 많이 소유해야 한다. 국가의 경제가 건전 하려면 돈을 많이 소유하는 것만이 아니라 가치 있는 상품을 생산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외화의 가치가 널뛰더라도 생산하는 상품 가치에 의해 자국 화폐의 가치가 안정적이게 된다.

돈은 쉽게 가치가 변한다. 그럼에도 돈이 가치가 있는 것은 인간과 인간이 중앙은행에서 발행한 화폐로 상거래를 하자고 약속한것을 국가의 무력과 권력 등과 같은 힘이 보증했기 때문이다. 화폐의 가치가 하락하면 무력과 권력이 그에 대한 대응을 통해 화폐 가치를 안정적으로 보장하여 상거래를 하는데 지장이 없게끔 한다. 돈은 인간과 인간의 약속의 결과물을 이해관계나 힘으로 보증되고 있으므로 돈 자체보다는 인간의약속, 이해관계, 힘이 중요하다 할 수 있다. 돈으로 인신매매나 마약매매와 같이 소유나 거래 금지 품목 매매나 돈을 위해 노동과 성 착취를할 수 없는 것은 세계 인권 선언문으로 인간과 인간이 거래 금지 품목 매매와 인간 착취를 하지 말자고 약속했기 때문이다. 돈이 인간과 인간의 약속으로 이루어진 만큼 다른 인간과 인간의 약속을 깰 수가 없도록 되어 있다. 인간의 약속으로 돈의 가치가 유지되기에 약속이 깨지면 화폐의 신용도가 하락하여 화폐의 가치도낮아진다.

국가의 중앙은행에서 발행하는 화폐는 국가의 힘이 있기에 화폐의 가치가 하락하면 법과 정책으로강제력을 발휘하여 화폐의 가치를 유지하기에 안정적이지만 코인과 같은 가상의 화폐는 신용을 뒷받침해줄 힘이 없기 때문에 실제 화폐가 될 수 없다. 화폐의 가치를 안정적으로 하질 못하기에 가치가 널뛰면서 도박으로 불릴 정도다. 무력이 없다는 것은 물리적인 강제력이 없다는 것을 의미하고 권력이 없다는 것은 법적인 강제력이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강제력이 없는 것이 인간과의 상거래를 할 수 있게 할 인간의약속인 화폐가 될 수 있을 리가 없다. 만약 화폐에 강제력이 없다면 화폐의 가치가 낮아질 경우 개개인의 이익을 위해 모두 화폐를 처분하는 것으로 화폐 가치가 사라지게 될 수 있다. 실제 코인은 그렇게 하여 상장 폐지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에 코인은 가상 화폐가 아닌 가상 자산으로 불린다.

탈중앙화 코인은 강제력 이전에 정부가 세금을 걷기 어려워 화폐가 될 수 없다. 정부의 관리가 벗어나 인간과 인간의 상거래에서 세금을 걷지 못하면 국가가 유지될 수 없다. 국가에서 국가의 서비스를 이용하면서 탈중앙화 코인을 화폐로 쓰며 상거래 하는 것은 기업의 서비스를이용하면서 기업에 수수료를 지불하지 않는 화폐로 쓰며 상거래를 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그러면 국가든 기업이든 구조가 유지되지 못하고 붕괴한다. 정부의 세금은 세계가 국제화가 되고 있는 만큼 국제의 흐름을 따라가야 다국적 기업의 세금 납부가공정하게 이루어질 수 있다고 본다.

금전 만능주의에 빠지면 돈의 배경보다 돈 자체에 집착하게 되어 오히려 돈을 벌지 못하게 될 수있다. 그러므로 돈을 벌고 싶다면 물건의 수요와 공급 등에 의한물가와 중앙은행의 통화 정책과 같은 돈의 배경을 고려하여 화폐 가치의 변동을 살피면서 변화의 흐름에 따라가야 한다.

 

 

첫 번째, 노동 시장

 

노동 시장의 구조를 유지하여 시장 원리에 따른 가치 생산을 추구한다. 수요와 공급에 의해 경쟁하여 가격이 결정되는 시장 원리를 추구하는 모든 시장은 불균형하다. 상품의 가격 대비 품질이 좋은 것부터 팔리고 그렇지 않은 것은 덤핑으로 팔거나 팔리지 않아 버려지게된다. 노동 시장도 그렇다. 노동자가 취급하는 노동력 임대 상품의 가격 대비 품질이 좋지 못하면 팔리지 않는다. 상품이 팔리지 않으면 노동자의 생계가 위험해진다. 그런데 노동자만 그런 것이 아니다. 모든 시장에서 모든 상인은 이윤을 얻기 위한 상품이 팔리지 않으면 생계나 생존이 위험하다. 자본가가 상품을 파는 소비 시장이나 노동자가 상품을 파는 노동 시장이나 다를 바 없다. 소유한 자산이나 빛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자산이 없는 노동자는 노동력 임대 상품이 팔리지 않으면 생계가 위험하고 빚을 진 자본가는 소비자상품이 팔리지 않으면 빚에 의해 야반도주를 하거나 자살하는 것으로 생존이 위험하다. 노동자나 자본가나 리스크와 리턴이 다를 뿐이지 본질은 같은 상인이다. 단지 보편적으로 자본가가 자산이 많아 안전할 뿐이다.

시장에서 사회의 규칙과 시장 원리를 훼손되지 않는 이상 정부가 상거래에 웬만해서는 강제력을 발휘해간섭해서는 안 된다. 법으로 강제할 수 있는 것은 국가에 속한 인간이 사고 방치, 폭행, 착취, 갑질 등을 당한 것 같이 국가 구조 요소에 해당하는 인간이피해를 입을 때나 거래 금지 품목을 거래할 때나 시장 원리를 훼손하는 담합이나 독과점을 하는 것 같을 때에 해당한다. 그 외의 정상적인 상거래는 시장 원리를 따르는 것이 마땅하다. 노동 시장은 집단주의 체제인 노동조합에 의해 담합이나 독과점이 정당화되고 있어 시장 원리가 훼손되는것이 일반적이지만 개인주의 체제인 자본주의 시장 경제의 기본은 그렇다. 시장 원리에 의해 노동 시장의 구조의 요소가 사라져 구조가 붕괴할 경우를 대비하여 그에 따른 복지 정책을 적용하면 된다. 그러면 구조를 유지하여 원리를 추구할 수 있다. 그러지 않고 시장에 간섭하여 균형적인 결과를 만들려고 하면 시장 원리가 훼손되어 원리를 추구할수 없게 된다. 그럼에도 노동 시장은 시장에 권력의 간섭이 심한 편이다.

 

첫째, 구매 간섭. 노동력 임대 상품은 판매자인 노동자를 위해 한번 구매하면별 이변이 없는 한 계속 구매하도록 강제했다. 노동 시장에 권력이 개입하여 계약 취소가 매우 어려운 임대 상품을 구매하도록 한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라 장기 임대 상품에 대한 대가를 소비 시장의 장기 임대 상품과 다르게 점점 비싸게구매하도록 했다. 그 결과 시장 원리가 훼손되면서 시장이 왜곡되기 시작했다. 계약 취소가 어려운 임대 상품 구매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직접 구매가 아닌 자회사를 만들어 구매하거나파견회사에 상품을 요청하는 것과 같이 간접 구매를 하게 되었다. 시장 원리 훼손에 의해 불필요한 중간 과정이 생겨 수수료가 발생하는 것으로 판매자가 불필요한 부당한 손해를 보게 되었다. 시장에 권력이 간섭하여 원리를 훼손하니 이런 결과가 나온다. 노동력 임대 상품 리스크를 줄이고 책임 회피 수단을 위해 자본가가 만든 것이지만 그걸 초래한것은 권력 간섭이다. IMF 이후 비정규직이 일반화되어 직접 구매할 때 비정규직이나계약직이라는 방식을 동원하여 계약 기간을 정해둔 임대 상품을 구매할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이 정상적인 시장 원리에 따른 거래 방식이 될 수 있었으나 그 전에 정규직이 존재하면서 안정적으로높은 수익을 얻는 정규직과 불안정적으로 낮은 수익을 얻는 비정규직과 계약직과 같이 불합리한 임금 체계가 나타나게 되었다. 정규직과 같이 장기 계약을 맺을 경우 재계약을 하지 않는 이상 임금이 같거나 낮아야 했으나 연공서열에따라 별다른 성과가 없어도 계속 임금이 오르게 되었고, 비정규직이나 계약직 같이 단기 계약을 맺을 경우에는 임금이 높아야 했으나 마치 쓰다 버릴 도구와 같이 싸게 사서 쓰다 버리듯이 계약을 해지하게되었다. 그러면서 논리적인 노동 유연화도 없고 노동 안정화도 없게되었다.

권력의 간섭으로 시장 원리가 지나치게 훼손되었다. 노동 인권 운동으로 인권을 명분으로 한 안정적인 종신 고용이라는 노동자를 종속시켜 차별하는 이권을주장하는 것을 정치가가 무비판적으로 수용하여 노동력 임대 상품의 계약 취소를 어렵도록 해버리니 자본가는 새로운 노동력 임대 상품을 구매하는 것을꺼리게 되면서 취업자가 불행하게 되고, 구매를 하더라도 직접 구매가 아닌 간접 구매를 하여 불필요한 중간 과정이 나타나거나 직접 구매를 하더라도 합리적인 대우를 하지 않은 것으로노동자를 불행하게 했다. 일부 노동자는 이권을 보장 받는 것과 같이 되어 행복한것처럼 느껴지게 되었으나 이외 노동자는 그렇지 못하여 불행하게 되었다. 합리적 기준이 없이 시장 원리를 함부로 훼손하면 이런 결과가 나온다. 권력은 노동 시장에 간섭할 것이 아니라 시장 원리를 추구하기 위해 노동 시장 구조 유지를 위한복지 정책을 추진해야 할 것이다.

 

둘째, 기준 간섭. 노동력 임대 상품은 판매자인 노동자를 위해 수요에 맞지않는 상품도 구매하게끔 강제했다. 시장은 수요에 따라 상품의 가치가 달라지며 구매자의 판단으로 구매가 결정되는 것이 일반적이나 노동 시장은 권력이 결과의 평등을 위해 노동력임대 상품 판매자 특성에 맞춰 구매하게끔 정부와 기업의 노동 시장 상품 구매에 간섭했다. 상품 판매가 어려운 성별이나 장애인이 상품을 팔 수 있도록 할당제를 넣어 강제로 구매하게 하거나, 상품을 잘 못 팔았던 성별이나 유공자가 상품을 보다 더 잘 팔 수 있도록 가산점을 넣어 상품가치를 뻥튀기한 것을 강제로 구매하게 했다. 그로 인해 일부 취업자는 행복할 수 있었으나 나머지 취업자와 상대적으로 가치가 상품 가치가 낮은 노동력 상품을 구매한 자본가가 불행하게되었다. 노동력 임대 상품의 구매 기준은 어디까지나 구매자의 의사로결정된다. 구매자가 특정 성별을 더 구매하겠다는 것에 간섭하여 모든성별의 노동력 임대 상품의 비율을 맞춰 구매하게끔 조작하는 것은 개인의 자유권 침해에 해당한다. 반대로 모든 성별의 노동력 임대 상품의 비율을 맞춰 구매하겠다는 것에 간섭하여 특정 성별의 노동력임대 상품을 더 구매하게끔 조작하는 것도 개인의 자유권 침해에 해당하게 된다. 일반적으로 노동자의 성별과 무관하게 노동력 임대 상품을 구매하는 것이 기업의 이익에 해당하여착각할 수 있으나 성별을 맞추라고 강제로 강요한 것은 자유권 침해가 잘못된 것이지 불공정하기에 잘못된 것이 아니다. 시장은 개인의 의사로 결정되는 시장 원리를 따르고 있으므로 개인의 의사로 결정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정부도 마찬가지다. 정부가 성별 비율을 맞추든 맞추지 않던 거기에 항의하여 강제로 간섭하는 것은 자유권 침해에 해당한다. 어떻게 구매하든 개인의 자유다. 가치가 높은 노동력 임대 상품을 구매하면 성공하여 번영할 확률이 높고 가치가 낮은 노동력 임대상품을 구매하면 실패하여 몰락할 확률이 높을 뿐이다. 만약 인사권자의 판단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의견을 제시할 수는 있어도 평가 기준을 강제로 바꿀 수는 없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국민이나 주주와 같이 정치가나 기업의 인사권을 가지거나 영향을 끼칠 권리가있는 이들은 인사권자를 교체하거나 인사권자가 속한 곳이 만든 상품을 구매하지 않으면 된다.

본래 인사는 자유에 해당하나 권력자에 영향을 받아 인사를 하게 되면 권력과 유착하여 권력이 기업에부당한 특혜를 주는 잘못이 나타날 수 있다. 그 반대로 가능하다. 인사는 자유지만 인사에 의한 유착은 잘못이다. 소비자가 상품을 구매하는 것도 자유고 자본가가 소비자에게 특혜를 주는 것도 자유고 자본가가 노동력 상품을 구매하는 것도 자유지만 정부와기업이 유착하여 서로에게 특혜를 주는 것은 자유가 아니다. 그것은 명백한 죄다. 왜냐하면 정부는 시장의 관리 감독도 겸하고 있기 때문이다. 심판과 선수가 유착하는 것과 다르지 않을 정도로 불공정하게 된다.

인사에 권력이 개입하여 조작하는 순간부터 보통 잘못되게 된다. 사회가 평가로 조직되는 것을 고려하면 일부 권력자가 인사 평가에 간섭하여 조작하는 것은 민주가아닌 독재라 할 수 있게 된다. 모든 개인이 자유롭게 평가하여 사회를 조직할 수 있어야 민주주의라 할 수 있다.

 

셋째, 가격 간섭. 노동력 임대 상품은 최저 임금 제도를 통해 최저가를 정해가격에 간섭하여 조작하고 있다. 이것은 노동자의 최저 생계비를 복지에서 보장해야 하므로 최저 임금제를 도입하는 것이 타당해 보일 수는 있다. 최저 임금제와 같이 시장 원리 훼손에 의해 구매자인 자영업자 등이 생계가 어렵다면 복지 정책을적용하여 지원하면 된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간섭하여 조작하는 것이 타당하다할 수 없다. 정부가 미리 정해둔 최저 가격은 노동자에 대한 자유권 침해에해당하게 된다. 권력이 간섭하여 노동자의 자유권을 침해한 것이다. 상품 가격을 결정할 권리는 보통 상품 판매자에게 있지 상품 구매자에게 있지 않다. 가격 대비 상품 품질로 수요가 결정되는 것이지 상품 가격 자체는 공급자의 권리다. 노동자가 노동력 임대 상품을 취급하는 상인이라면 최저 임금 제도가 누구의 자유권을 침해했는지알 수 있게 된다. 이런 자유권 침해는 창업자가 지나치게 적어 노동력 임대상품이 과잉 공급 되어버리는 바람에 노동력 임대 상품의 가치가 최저 생계에 필요한 최저 임금 이하로 낮아져서 노동력 임대 상품에 대한 가격을 강제로유지하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실제 보편적으로 충분한 대가가 지불되는 국가는 최저 임금제가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은 쌀이 초과 생산 된 것을 시장 격리 후에 매입하는 것으로 최저 가격을 유지하는 것과 비슷하다. 모든 국내 노동력 상품은 최저가가 동일하고 국내산 쌀은 최저가를 관리하기에 정해진 최저가로 수요경쟁을 하는 구매자인 자본가와 소비자가 자유권이 침해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공급 경쟁을 하는 노동자와 농부의 자유권이 침해되었다. 자본가는 외국에 나가 외국인 노동력 임대 상품을 구매하고 소비자는 국내에서도 외국 쌀을 구매하면되기에 노동자와 농부만 자유권을 침해 당한 셈이 된다. 최소한의 이익이 보장되는 것으로 노동자와 농부가 그것을 반기기도 하지만 논리적으로 보면 그렇다. 정부는 국가 구조 유지를 위해 노동력 상품과 쌀을 관리 품목으로 지정하고 교육 정책이나 농업정책으로 제어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런 자유권 침해는 노동력 임대 상품과 쌀의 수요와공급을 제어하지 못한 교육 정책과 농업 정책에서 비롯되었다고 봐야 한다. 간단히 말해 정부의 정책 실패다. 정부가 정책 실패한 것을 노동자의 노동력 임대 상품은 최저 임금제를 도입하여 최저가를 강제하고농부의 쌀은 시장 격리제를 도입하여 쌀의 초과 생산을 시장 격리 한 뒤에 정부가 입찰 예정 가격보다 낮은 가격의 쌀부터 매입하여 최저가를 관리하는것으로 대처한 것이다. 그렇게 최저 생계비를 보장하는 것으로 노동자와 농부를 달랬다. 최저 임금제는 국민의 생계 유지와 관련이 있고 시장 격리제는 국가의 식량 주권과 관련이 있기에이런 조치는 타당하나 정책 실패에서 이런 조치를 하게 된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그렇다고 실패에 대한 책임을 묻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이런 실패는 특히 체제 적응에 실패한 결과로 사실상 인문학, 사상과 철학의 책임이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는 논리적으로 설계되었다기 보다 낡은 가치관으로 상황에 따라 주먹구구식으로 대처한 것이많아 불합리하여 아무래도 정책 실패가 잦을 수 밖에 없다. 관념으로 이롭다 생각한 것이 체제에 해로웠으니 정책이 성공할 수가 없다. 가령 낡은 유교적 가치관으로는 이성애와 성을 죄악시하는 것이 사회에 이롭다 생각했었으나 개인의의사를 원리로 삼아 연애와 결혼과 출산을 개인의 자유에 맡긴 이상 그런 것이 체제에서는 해로웠으니 낡은 가치관을 가지고 만든 저출산 대책이 성공할수가 없었다. 한국은 체제 적응 실패를 인정하고 체제에 적응해야 생존할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정책 또한 실패를 인정하고 체제에 맞는 정책을 시도해야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교육 정책의 실패인 노동력 임대 상품의 초과 생산은 기초 학문이 발전하지 못하고 고부가 가치상품을 생산하지 못하면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지 못하여 고학력 노동자의 노동력 임대 상품에 대한 수요가 낮아지면서 발생했다. 이제는 고부가 가치 생산을 하여 고학력 노동자의 노동력 임대 상품을 소화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농업 정책의 실패인 쌀 초과 생산은 쌀 대신 다른 작물 생산을 유도하거나 쌀 소비를 늘리거나쌀 수출을 하는 등의 방식으로 대처했어야 했으나 그런 것이 부족했다. 이제는 풍작과 흉작을 고려하여 흉작일 경우의 생산분과 수요를 맞춘 다음 쌀 생산이 그것보다 많으면 다른 작물을 생산하도록 유도하거나 초과생산을 수출할 수 있는 유통 구조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그렇게 정부 관리 품목은 정책을 통해 수요와 공급을 제어하는 것을 통해 노동력 임대 상품의 최저가를 강제하지 않고 쌀 초과 생산을 불필요하게매입하지 않아도 되는 것으로 노동자와 농부의 자유권을 보장해야 한다. 정부 관리 품목은 국가 구조 유지를 위해 강제력이 어느 정도 정당화되므로 정책을 통해 수요와 공급을 조절하여 최저 생계비에 맞게끔 적절한대가를 받도록 설계한 이후, 일부에 상품을 팔지 못할 경우에 대해서만 복지 정책을 적용하여 지원하면 된다. 그러면 충분한 대가가 지불되는 국가와 같이 최저 임금제라는 경제적 보조 기구를 땔 수 있을 것이다.

 

노동 시장에 대한 권력의 과도한 간섭은 낡은 유교적 가치관에 의해 경제 활동 종사자를 사회의역할이란 평등한 기준이 아닌 사농공상과 같이 사회적 신분이란 불평등한 기준으로 바라본 것이 본질적인 원인이다. 정부 권력이 노동력 임대 상품을 구매하거나 쌀 비축을 위해 쌀을 구매하는 것과 같이 시장에 참여하는것은 정당하나 시장 참여자의 자유권을 침해하는 것은 부당하다. 그럼에도 그랬던 것은 정치가들이 인권을 명분으로 이권을 주장하던 이들의 사회적 신분을 유지하거나 높이지 위해서 노동 시장에 과도한 간섭을했던 것이다.

만약 모든 경제 활동 종사자를 노동력 임대 상품과 소비자 상품을 취급하는 상인과 같이 사회의역할만 다른 상인으로 대했다면 사회적 불평등이 아닌 경제적 불평등만 남게 되므로 권력이 과도한 간섭을 할 명분이 없었을 것이다. 평등 형식은 사회적과 경제적으로 분류할 수 있고 평등 방식은 기회와 결과로 분류할 수 있는데사회적으로는 모두가 기본 인권을 보장받는 것으로 결과가 평등해야 하고 경제적으로는 모두가 가치 생산과 기여도에 따라 결과가 달라야 하므로 기회가평등해야 한다. 지금까지 경제 활동 종사자를 사회적 신분으로 바라보았기에사회적 평등을 위해 권력이 과도한 간섭을 하여 노동 시장의 시장 원리를 훼손하여 시장을 왜곡되게 만드는 것을 막을 수가 없었다. 모든 경제 활동 종사자를 상품을 취급하는 사회의 역할만 다른 상인으로 대하여 사회적으로 평등해야만권력이 노동 시장에 과도한 간섭을 할 명분이 없어진다.

미국은 1960년대 존 케네디의 의견에 따라 적극적 평등 실현 조치(Affirmative Action)를 시행하여 소수자와 약자에 대한 혜택을 주었으나 아직도 흑인은 인구 대비 범죄율이 높고 사회에 적응하려는 노력도 하지 않는다. 그것은 적극적 평등 실현 조치가 개인에 맞춘 결과적 평등을 기준으로 삼아 합리적 기준이 되지못했기 때문이다. 능력이 없이 권리를 얻을 수 있게 되면 능력을 키울 노력도하지 않게 될 뿐이다. 약자들이 빈곤의 악순환을 깨고 공정한 경쟁이 가능하게 될때까지라고 한시 해두었다고 하는데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적극적 평등 실현 조치 대상자는 악순환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다. 그것이 정책의 잘못을 증명하고 있다.

개인에 맞춘 사회적 평등과 경제적 불평등이 기본이다. 만약 경제적 평등을 위해 특정 집단에 과한 혜택을 주면 부유한 집단에 속하나 가난한 개인은 그혜택으로 과한 손해를 보고 가난한 집단에 속하나 부유한 개인은 그 혜택으로 과한 이익을 얻는다. 개인주의 체제에서 합리적 기준은 어디까지나 개인을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적극적 평등 실현 조치와 같이 객관적 기준을 정하기 어려운 평등은 목소리가 큰 집단이 과한 이익을얻게 되어 목소리를 낼 수 없을 정도로 미약한 개인은 되려 더 손해를 보게 된다. 현재 미국에서 빵집에 빵을 훔친 흑인을 신고하여 체포한 것을 인종 차별이라고 말하며 규탄하는사태가 벌어지기도 하였다. 불합리한 기준으로 이익을 주다 보니 인권이 아닌 이권이 되어버려 정당한 조치임에도 차별이라 항의하는 사태까지 벌어진 것이다. 그럼에도 여전이 다수의 흑인은 경제적 빈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흑인 개인은 부정적 편견을 통해 되려 더 큰 손해를 보고 있다.

모두가 개인의 개성을 배제한 역할에 필요한 성질과 같이 합리적 기준으로 평등해야 한다. 그러면 백인이나 흑인, 남성이나 여성과 같은 성질보다는 역할에 필요한 성질이 우선되면서 그로 인한 차별이 없어질 수있다. 그리고 사회의 역할이 되면 돈을 벌기 위해 역할을 맡는것이 아닌 역할을 수행하고 나서 대가로 돈을 벌게 되어 역할 수행이 우선되면서 모두가 일종의 사명감을 갖게 된다.

사회의 역할을 신분으로 바라보면서 교육이 자아 실현을 위한 수단이 아닌 신분 획득을 위한 수단이되어버렸다. 부모나 교사에 의해 자아 실현을 위한 진로가 부정되고 신분획득을 위한 진로를 강제하는 것이 일상적이다. 얼마나 큰 자유주의 이념 훼손이라 할 수 있는가? 비정상적인 시험에 대한 집착. 실제 중요한 것은 역할 수행, 가치 생산, 공급, 분배, 가치 소비, 소유, 환원 등에 있음에도 신분을 위한 경쟁을 하게 되니 창의력에 해로운 문제 풀이를 지속적으로 하게되고, 변별력을 높이겠다고 과도하게 복잡한 응용 문제를 시험 문제로내고 있다. 과학고에서 의사가 되길 바란 학생이 많았던 것은 과학을통해 자아 실현을 하기보다는 의사라는 신분을 얻고 싶었던 것이다. 만약 빈곤에 굴레에 있는 이는 가치를 생산할 수 있는 힘을 가질 수 있는 복지 정책을 지원하면 된다. 결과의 평등을 위해 함부로 시장 원리를 훼손하면 합리적 기준이 깨지면서 일부를 제외한 관련자모두가 불행해질 뿐이다.

지금까지 사회의 역할을 신분으로 바라보면서 사람의 입장을 사회적이나 경제적으로 분류하지 않고모호하게 놔두며 사회적 평등을 위해서라는 말로 경제적 평등을 위해 권력이 간섭하거나 경제적 불평등이 당연하다면서 사회적 불평등을 위해 꼰대질이나갑질을 한다거나 하는 이들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부당한 손해를 입고 있었다. 이제는 모두가 사회적 평등과 경제적 불평등을 이해하고 악용하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다.

 

 

두 번째, 소비 시장

 

소비 시장의 구조를 유지하여 시장 원리에 따른 가치 소비를 추구한다. 수요와 공급에 의해 경쟁하여 가격이 결정되는 시장 원리를 추구하는 모든 시장은 불균형하다. 상품의 가격 대비 품질이 좋은 것부터 팔리고 그렇지 않은 것은 덤핑으로 팔거나 팔리지 않아 버려지게된다. 소비자 상품의 가격 대비 품질이 좋지 못하면 팔리지 않는다. 그런데 소비 시장은 노동 시장과 달리 대부분 최저가가 지정되지 않아 수요와 공급이 유연할 수가있어 수요가 낮은 상품의 판매가 수월한 편이다. 기업에서 시장 조사를 하여 수요 예측을 하고 그러고도 수요 예측이 빗나가면 상품을 파는 도매점이나 소매점에서 가격을 낮추거나 1+1 등의 방식으로 어떻게든 팔아서 자원 낭비를 막고 있다.

 

첫째, 소비재. [소비재_경제는 개인의 욕망을 직접적으로 충족하기 위하여 소비되는 재화를 뜻한다. 식료품, 의류, 가구, 주택 따위가 이에 해당한다.] 일반적으로 이런 소비재는 수요와 공급의 시장 원리를 지킨다. 수요가 높아지면 가격이 오르고 수요가 낮아지면 가격이 내린다. 생필품이 아닌 사치품의 경우에는 인간의 생활에 반드시 필요하지 않기에 가격이 폭등하든 폭락하든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그러나 달걀과 같은 생필품은 어떤 이유로 공급에 차질이빚어져 가격이 폭등하면 인간이 생활하는데 큰 불편함을 준다. 달걀 가격이 폭등하면 일부 유통업자가 달걀을 사재기 하는 것으로 달걀 공급량을 조절하여 달걀을 비싸게 팔아 과잉 이득을 취하거나 일부 소비자가달걀을 사재기하여 대량 비축하여 소비하기도 한다. 그렇게 하면 사회에 생필품 분배가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게 된다. 인간은 생필품이 없으면 큰 불편함을 느끼며 강한 불안과 불행을 느껴 국가 구조의 요소가 사라질 위험이 생기게 된다. 그렇기에 그런 물품은 인간이 생활하는데 불편함이 없는 가치 소비를 할 수 있도록 정부 관리 품목으로지정하여 관리한다. 정부는 달걀 사재기 방지를 하는 정책을 내놓거나 외국산달걀을 수입하여 공급하는 것으로 소비자가 생필품을 안정적으로 가치 소비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정부는 시장 관리 감독과 시장 참여를 둘 다 하게 된다. 정부가 다른 시장 참여자에게 달걀의 가격을 강제로 정하여 그 가격에 팔게 하는 것은 권력의 시장가격 간섭이지만 정부가 달걀을 사와 공급하는 것은 정부의 시장 참여다. 그러나 성급하게 외국산 달걀을 수입하게 되면 수요를 예측하지 못하여 달걀이 남는 바람에 유통 기한 지난 달걀을 폐기하게 되는 정책 실패가될 수도 있다. 이에 따라 긴급할 때가 아니라면 정부가 직접 수입하기보다는수요 예측 전문가인 수입상들에게 혜택을 주는 것이 효율적일 수도 있다. 쌀과 같은 국내 농산품은 정부 관리 품목으로 상점에서 팔리기 위해 정부가 지원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소비 시장에서 시장 원리에 따른 가치 소비가 가능토록 하기 위한다기 보다는 국내 농업을관리하여 유지하기 위해서 하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둘째, 생산재. [생산재_경제는 생산의 과정에 쓰는 재화를 뜻한다. 넓은 뜻으로는 자본재와 같으나, 좁은 뜻으로는 원재료처럼 한 번 생산할 때 소비되는 것을 이른다.] 소비재의 가격이 폭등하면 소비재를 소비재로만 쓰는 사람들은 사용을 줄이거나 쓰지 않으면 되지만소비재를 생산재로 쓰는 사람들은 생산을 하더라도 이윤을 남길 수 없게 된다. 생산재 가격이 폭등하면 생산재를 이용한 생산은 가격을 올리지 않는 이상 생산할수록 적자가 된다. 그렇기에 필연적으로 생산품의 가격을 올릴 수밖에 없는데 유동성이 심한 생산재를 가격 담합으로일괄적으로 인상해버리면 생산재 가격이 낮아졌을 때 대부분 상품 가격을 내리지 않기에 단순히 물가만 오르게 된 것이 되어 소비자가 시장 원리와 무관한가치 소비를 하게 된다. 지금까지 생산재 가격의 인상을 명분으로 생산품의 가격을일괄적으로 인상한 분야에서 생산재의 가격이 인하하였을 때 상품 가격을 인하한 분야가 도대체 얼마나 있었는가? 이것 또한 분야 경쟁이 된다. 가격을 올린 분야는 이익을 얻지만 그 외 분야는 손해를 본다. 손해를 안 보기 위해 너도 나도 담합으로 가격을 올리면서 물가가 폭등하게 된다. 담합은 시장에서 악이다. 가령 소비재이자 생산재인 기름이나 밀가루 가격이 폭등한다고 하여 관련 분야의 상품 가격을 일괄적으로인상해버리면 이후 기름이나 밀가루 가격이 내릴 때 낮추기가 어려워 소비자가 시장 원리에 따른 가치 소비를 할 수 없게 된다. 그러므로 유동성이 있는 생산재는 갑작스러운 급등이나 급락이 나타난다 하더라도 분야의 모든 상품가격을 담합하여 일괄적으로 바꾸는 것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 타국의 시장과 연계하여 수입과 수출이 원활하도록 경로 설계를 하여 시장 원리와 무관하게 비싼 물품이 가격 경쟁으로 도태되어 정상 가격으로돌아올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할 것이다. 만약 개인 사업자가 생산재의 단기간 폭등으로 생계가 어려울 경우는 복지 정책 적용을 하여 잠시 생계 지원을 하면 된다. 그렇게 하여 소비 시장에서 시장 원리에 따른 가치 소비가 가능하도록 한다.

 

셋째, 자원 낭비. [자원_경제는 인간 생활 및 경제 생산에 이용되는 원료로서의 광물, 산림, 수산물 따위를 통틀어 이르는 말을 뜻한다.] 소비 시장에서 상품이 소비되지 않으면 그만큼의 자원이 낭비되면서 경제적 손실은 물론이고 원료 채취를 하면서 발생한 환경 오염을 의미 없게만들어 버린다. 자원을 낭비하지 않으면 경제적 손실이 줄어들면서 물가 또한안정적이게 될 수 있고, 환경 오염을 줄여 자원 환경 유지를 통해 인간이 살 수있는 환경을 만드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렇게 자원 낭비를 막는 것이 간접적으로 소비 시장 구조를 유지하는데 도움이 된다. 그렇기에 각국 정부와 기업은 자원 낭비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을 추진했다. 기업은 자원을 적게 쓰는 제품과 같은 친환경 상품을 생산하고 정부는 그런 상품을 생산하고 소비하는이들에게 혜택을 주고 그렇지 않은 상품을 규제하였다. 자원을 재활용하는 재활용 산업을 활성화시켰다. 상품 수요 조사를 하여 가능한 생산한 상품이 소비되도록 하고, 팔리지 않을 경우 싸게 팔아 어떻게든 자원 낭비를 막았다. 개인주의 체제에서는 개인의 의사를 원리로 삼고 있기 때문에 자원 낭비를 막기 위해서 소비자 개인의 협조로 이루어지기를 바라기 보다는 기업이생산할 때 자원 낭비를 막기 위한 설계를 하고 정부는 그에 대한 혜택을 주는 것이 합리적이다. 그렇게 자원 낭비를 막아 경제적 손실과 환경 오염을 막아 소비 시장 구조를 유지하는 것으로 원활한시장 원리에 따른 가치 소비가 가능토록 한다.

 

이렇게 소비 시장은 구조를 유지하여 시장 원리에 따른 가치 소비가 가능토록 해야 한다. 그러나 한국은 생산자의 이익만 고려하다 시장 원리가 훼손되어서 그런 가치 소비가 어려울 때가많다.

 

첫째, 전통 시장. 소비자가 원치 않는 대형 마트를 규제하고 전통 시장에 세금을쓰고 있다. 소비자가 전통 시장을 찾지 않는 것은 상품 가격, 품질, 신뢰도가 낮기 때문임에도 그런 전통 시장을 보호하기 위해 소비자의 선택권을 침해하고 있다. 전통 시장에서 상품이 팔리지 않으면 팔릴 때까지 상품 가격을 낮추고 품질을 높이면 된다. 만약 그러다 이윤을 얻기 어려워 생계 유지가 어렵다면 복지 정책의 지원을 받고, 그러고도 팔지 못하면 다른 일을 알아보거나 쉬는 것이 낫다.

 

둘째, 도서 정가제. 소비자가 원치 않는 도서 정가제를 도입하고 있다. 소비자가 동네 서점을 찾지 않는 것은 온라인이 훨씬 편리하기 때문임에도 자연스럽게 사라질 동네서점을 보호하기 위해 시장 가격에 간섭하고 있다. 동네 서점은 온라인에 비해 불편하므로 쇼핑 데이트와 같이 쇼핑 자체를 목적으로 하는 대형 서점과 학교 앞 문구점 외에는 시장 원리에 의해자연스럽게 사라지는 것이 합당하다. 이걸 억지로 살리는 것은 자동차의 등장에 자연스럽게 사라질 마부와 마차를 억지로 살리는 것과 다르지 않다. 지식은 공유되어야 한다. 저렴한 가격으로 많은 이들이 지식을 공유해야 개인이 성장하고 국가가 발전한다. 자본주의 체제는 소비자를 먼저 고려하는 체제로 생산자를 먼저 고려하여 설계된 법은 자본주의 체제에해롭다.

 

셋째, 중간 과정. 소비자가 원치 않는 소비자 가격을 올리게 되는 불필요한중간 과정을 넣기도 한다. 한국에서 유통을 거치면서 오르는 가격이 너무나도 높은 것은 유통 담합과 불필요한 유통 과정 때문이다. 생산자 이익을 위해 소비자의 만족도에 신경 쓰지 않기도 하고 있다. 불필요한 유통 과정은 IT기술의 발달로 상품 접근도가 높아졌음을 고려하여 영업이나 소매점을 거치지 않고 가격을 낮춘 기업이가격 경쟁력을 갖추도록 유도하면 담합이나 독과점이 아닌 이상 자연스럽게 중간 과정이 사라질 것이다.

중간 과정은 가치 생산도 크게 하지 않으면서 생산의 대가를 받아가기 때문에 효율을 추구하는 시장원리에 해롭다. 노동 시장의 불필요한 중간 과정인 마땅히 하는 것도 없이수수료만 받아가는 파견이나 소비 시장의 불필요한 중간 과정인 없어도 되는 의미 없는 중간상 등은 시장 경제에 해롭다 인식하고 있다. 이런 중간 과정은 전부 사라져야 한다. 중간 과정을 없애면 노동자든 자본가든 본인의 상품을 좀 더 싸게 공급할 수 있다. 누구든 특정 집단의 이익을 주장할 것이 아니라 시장 경제와 같이 합리적 기준에 초점을 맞춰야모든 개인이 인정하고 수용할 수 있게 된다.

 

넷째, 층간 소음. 소비자가 원치 않는 층간 소음이 크게 나는 벽식 구조의건물을 층과 층 사이에 얇게 하여 지어 팔고 있다. 정상적인 시장 원리를 따랐다면 층간 소음을 싫어하는 소비자의 수요에 따라 층간 소음이 작거나 없는 건물이 있었어야 했다. 그렇게 했으면 소비자 수요에 따라 개인이 시끄럽게 행동하더라도 이웃에 들리지 않을 정도로 방음처리를 하는 것이 일반적이어야 했다. 층간 소음에 의한 살해 사건이 그렇게 많은데 그에 따른 수요에 의한 건물이 건설되지 않았다는 것이 이상하다. 그런 수요를 반영하여 방음벽을 설치하고 벽식 구조보다 기둥식 구조로 짓는 건물이 선호되는 것에건설 업체가 공급하고, 그런 공급에 정부는 층간 소음에 의한 불행을 방지하여 국가구조를 유지하기 위해 혜택을 주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다섯째, 자영업. 소비자가 원치 않는 자영업 총량제를 주장하기도 한다. 자영업은 거리의 수요보다도 늘어 특정 지역 내에 특정 업종의 가게 수를 제한하거나 자발적 폐업을지원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올 정도가 되었다. 아마 택시 총량제를 참고한 것으로 보이는데 자영업은 택시와 성격이 다소 다르다. 특정 지역 내에 택시의 수가 지나치게 늘면 도로가 포화되어 택시의 수입과 무관하게 사회에 해로울수 있으므로 총량제가 타당하다. 특정 지역 내에 자영업 수가 지나치게 는다 하더라도 자영업자 수입에는 해로울 수 있으나 그 외의 사회에는 해롭지가 않으므로 시장에서 경쟁을통해 시장 원리로 자연스럽게 생존과 도태가 결정되는 것이 바람직하여 총량제가 타당하지 않다.

 

구조를 유지하여 원리를 추구한다. 사양 산업도 마찬가지다. 사양 산업도 구조를 유지하여 산업의 원리를 추구한다. 그러나 그것은 국가 구조와 무관하다. 국가 구조의 요소는 인간이지 산업이 아니다. 사양 산업이 사라지더라도 인간이 살아남으면 국가 구조는 유지될 수 있다. 사양 산업이 구조를 유지하기 위한 활동을 할 수도 있으나 국가 입장에서 그걸 무비판적으로 수용할이유가 없다. 반드시 필요한 산업을 제외하면 시장 원리에 따라 도태되는산업은 도태되는 것이 국가에 이롭다. 도태된 산업에 속했던 인간은 복지 정책을 적용하여 살 수 있게 하면 된다.

 

대부분 분야는 시장 원리에 따른 가치 소비가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변호사도 과거와 달리 시장 원리를 따르게 되면서 소비자가 행복한 가치 소비가 가능하게 되었다. 과거에는 변호사의 법률 서비스를 받는 것이 어려웠다. 보통 변호사는 변호사의 명성과 실력을 소문으로 듣거나 광고를 보거나 인맥의 소개를 받아 연락해서만났다. 그 때문에 의뢰인 신뢰도가 낮은 소문이나 정보가 적은 광고나객관성이 부족한 속에 의존하여 법률 서비스를 받았다. 좋은 변호사를 만나면 의뢰인은 행복했으나 나쁜 변호사를 만나면 의뢰인은 불행했다. 변호사도 마찬가지였다. 변호사가 유능해도 소문이나 비싼 광고나 소개가 없으면 의뢰인에게 위임 받기가 어려웠다. 이걸 시장으로 보면 물물 교환에 가까울 정도로 불편한 제도로 인해 일부를 제외한 나머지는 행복할수가 없었다.

그러나 최근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을 통해 법률 서비스 시장이 생기면서 시장 원리가 작동하게 되었다. 의뢰인은 자유롭게 객관적인 정보를 보고 변호사의 법률 서비스를 선택할 수 있고 변호사는 소문이나비싼 광고나 소개에 의존하지 않아도 저렴한 광고로 법률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되었다. 시장이 생기면서 개인의 의사에 의한 시장 원리가 작동하면서 가치 소비와 생산이 원활하게 된 것이다.

변호사 시장이 새롭기 때문에 아무래도 법률 서비스가 시장에 포함되는 것이 못마땅하거나 어색할수는 있다. 그러나 사람은 사회적 신분이 아닌 사회의 역할로 봐야 한다. 변호사 역할이 다른 역할과 다를 바 없다면 법률 서비스도 시장에서 상거래가 된다고 하더라도 문제될 것이 없다. 모든 인간이 평등하기 위해서는 상인이란 합리적 기준으로봐야 한다. 그것이 민주주의 국가에서 개인이 가져야 할 가치관이다.

 

소비 시장은 소비자의 수요에 크게 영향을 받아 외부 평가의 비중이 높다. 모든 집단은 사회 공헌을 할 수 있는데 외부 평가의 비중이 높은 곳일수록 외부 평가에 영향을끼칠 수 있는 사회 공헌이 집단을 이롭게 한다. 소비 시장에 상품을 공급하는 곳일수록 사회 공헌을 하는 것이 합리적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고 단순히 금전 기부에 그칠 것이 아니라 기업은 자사 상품을 기부하고 변호사나 의사와 같은전문가는 재능을 기부하여 사회에 공헌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러면 소비 시장의 수요에 간접적 영향을 주게 될 것이다.

 

 

세 번째, 금융 시장

 

금융 시장의 구조를 유지하여 시장 원리에 따른 가치 거래를 추구한다. 수요와 공급에 의해 경쟁하여 가격이 결정되는 시장 원리를 추구하는 모든 시장은 불균형하다. 투자 가치가 높은 것부터 팔리고 팔리지 않는 것은 가격이 내려가다 상장 폐지가 되기도 한다. [금융_경제는 금전을 융통하는 일을 뜻한다. 특히 이자를 붙여서 자금을 대차하는 일과 그 수급 관계를 이른다.] [금융 시장_경제는 자금의 수요와 공급이 만나 금리 체계가 결정되고, 자금 거래가 이루어지는 추상적인 시장을 통틀어 이르는 말을 뜻한다. 거래 구분상으로는 국내 금융 시장과 국제 금융 시장으로, 기한 구분상으로는 장기 금융 시장과 단기 금융 시장으로 나뉜다.] 금융 시장에는 주식, 채권, 외환, 파생 상품, 부동산 등이 있다. 금융 시장은 금융 거래를 통해 원활하게 자금이 흐르도록 한다. 금융 상품에 투자하여 수익을 얻거나 금융 상품을 만들어 파는 것으로 실물 상품을 생산하는데 필요한 자금을 조달한다. 돈이 필요하다는 개인의 의사로 상품을 사고 파는 것과 같이 개인의 의사에 의한 수요와 공급으로금융 시장이 형성되어 금융 상품이 거래되고 있다.

현재 이러한 금융 시장이 활성화되면서 노동자와 자본가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다. 누구나 주식 시장을 통해 주식을 구매하여 회사의 주인이 될 수 있다. 노동자였던 사람도 능력이 뛰어나면 자유롭게 창업을 하여 자본가가 될 수 있는 것을 고려하면 둘의경계는 점점 희미해지고 있는 중이다. 이제는 누구든 상품을 취급하는 상인이 되어야 한다. 노동자는 노동력 임대 상품을 취급하는 상인이고 자본가는 소비자 상품을 취급하는 상인이고 금융인은 금융 상품을 취급하는 상인이다. 그렇게 상인이란 공통된 합리적 기준이 있어야 모두가 대등하여 평등한 관계를 추구할 수 있는 기반이마련되게 된다. 거기서 역할이란 관계에서 가치를 판단하는 역할주의로 수행여부로 사회적 평등을 추구하고 가치 기여도 여부로 경제적 불평등을 추구하면 된다. 그리고 모두 상인이 되어야 다른 분야의 상품을 취급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노동력 임대 상품을 취급하다 소비자 상품이나 금융 상품을 취급할 수 있다. 그렇게 하여 모든 개인이 특정 상품만을 취급하는 인간이 아닌 자유롭게 다양한 상품을 취급하는개인이 된다.

 

거래를 추구하기 위해서는 구조를 유지해야 한다. 금융 시장의 구조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인간과 자금이 둘 다 있어야 한다. 투자나 투기 실패로 인한 파산이나 자살로 인간이 사라져도 구조가 붕괴할 수 있고 급작스러운 외환유출과 같이 자금이 사라져도 구조가 붕괴할 수 있다. 한국에 있던 외환이 급격하게 해외로 빠지자 한국은 외채를 갚지 못해 외환 위기가 닥쳐 국가 부도를 겪고 IMF에 구제 금융을 신청했던 사건이 있다. 노동 시장이 붕괴하면 가치 생산이 멈추고 소비 시장이 붕괴하면 가치 소비가 멈추고 금융 시장이붕괴하면 국가 경제가 멈춘다. 이외 구조에 영향을 끼치는 것에는 신용도 하락, 시장의 주가 조작, 투기, 세계의 금리 변화, 자연재해 및 전염병, 전쟁 등이 있다. 정부는 정책을 통해 투자나 투기에 실패한 인간을 살리고충분한 외환을 보유하고 신용도를 안정화하고 주가 조작을 막고 투기를 경계하고 세계의 변화에 민감하게 대응하는 것으로 금융 시장 구조를 유지하고있다.

그런데 금융 시장은 노동 시장이나 소비 시장과 달리 시장 참여자가 적어 금융 시장에 대한 정책은일부 국민을 대상으로 한 정책이 될 확률이 높다. 정책 수혜자가 일부 국민에만 한정되는 이상 보다 적극적인 정책 추진이 다소 어렵다. 금융 시장 이해관계자가 늘어야 금융 시장 정책에 대한 여론이 빠르게 나타나면서 정책 또한 빠르게추진될 수 있게 된다. 현재 주식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늘어나 국내 주식 투자자가약 1400만 명이 되었다는 소식이 있다. 바람직하지만 미국만큼 일반화되어야 한다. 그래야 금융 시장이 성장할 수 있다. 주식은 가격이 변동하기에 투자하면서 벌거나 잃을 수 있는데 작은 금액으로라도 벌고 잃고를 해야돈의 흐름을 이해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돈이 없는 인간이라면 모르되 돈이 있는 인간이라면 선진국 국민답게 투자를 하면서 자본 감각을 익혀야 한다고 본다. 설령 국제 환경에 의해 주식 시장이 하락세가 되더라도 투자 자체는 해야 한다. 개인의 공매도도 보다 자유롭게 되어 하락하더라도 벌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 그래야 어떤 때에도 금융 시장에 참여할 명분이 생긴다. 그렇게 되어야 금융 시장 정책도 빠르고 투자 실패로 인한 요소의 사라짐을 방지하기 위한 구제정책도 사회적 반발을 적게 받을 수 있다.

그런데 금융 시장에 참여하다 빚을 지게 된 사람을 정부가 구제하겠다고 세금을 들일 때에는 이해관계가복잡하게 될 수도 있다. 정부가 빚을 지게 된 사람을 구제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설령 시장 참여자와 불참자 사이에서 형평성이 어긋난다 하더라도 해야 한다. 그러지 않고 죽게 내버려두면 구조의 요소가 사라져 구조가 붕괴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부가 채무자가 진 빚을 대신 갚거나 빚의 이자를 대신 갚아주는 것은 결과적으로 채권자가이익을 얻게 된다. 본래 돈을 빌려주어 수익을 얻는 행위는 리스크를 감수하여리턴을 얻는 것이다. 만약 정부가 대신 빚이나 이자를 갚아주게 되면 리스크가적은 리턴을 얻게 되므로 은행이 과한 이익을 얻게 되는 것이 된다. 그렇다고 은행이 일방적으로 손해를 보라고 강요할 수는 없으므로 적정 선에서 거래하여 상호 이익이 되는 방향을 추구해야 할 것이다.

 

 

첫째, 증권 시장. [증권은 ‘유가 증권’을 일상적으로 이르는 말을 뜻한다.][유가 증권_경제는 사법상 재산권을 표시한 증권을 뜻한다. 권리의 발생, 행사, 이전이 증권으로 이루어지는 것으로 어음, 수표, 채권, 주권, 선하 증권, 상품권 따위가 있다.][증권 시장_경제는 증권의 발행·매매·유통 따위가 이루어지는 시장을뜻한다. 좁은 뜻으로는 증권 거래소를 이른다.]

증권 시장은 주식과 채권 같은 유가 증권을 거래하는 시장으로 기업의 자본 마련에 쓰이기에 자본시장으로 불리기도 한다. 주식은 보통 기업의 기업 공개로 일반 투자자에게 판매된다. 판매된 자금은 기업의 자본이 된다. 한번 팔고 나면 주식의 가격이 변동되더라도 기업의 직접 손익과 무관하다. 그러나 주가가 상승하면 기업 가치가 상승하여 은행 대출이나 향후 새로운 주식 발행에 유리해진다. 주가가 상승해도 신용 등급은 오른다는 보장이 없다. 주식은 투자자가 기업의 미래 가치를 보고 수익 실현이 될 것이라 생각하며 투자를 하는 반면 신용등급은 신용 등급 평가사가 과거의 실적과 재무 구조의 움직임을 보고 평가하기에 주식과 신용 등급은 반드시 비례하지는 않는다. 기업의 증자는 유상 증자와 무상 증자로 나뉜다. 유상 증자는 새로 주식을 발행하여 판매하는 것이기에 회사의 자본이 늘어나고 무상 증자는 기업의자본에서 자본금을 제외한 잉여금을 가지고 무상으로 기업의 주식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배당으로 나눠주기에 기업의 자본에는 차이가 없다.

채권은 국가나 기업 같이 신용도가 높은 기관이 기관의 신용도를 근거로 한 차용 문서를 거래할수 있도록 증권으로 만든 것을 말한다. 기관은 채권 시장에 채권을 팔아 빚을 지어 자본을 모으고 채권의 이자율에 따른 이자를 지불하다 만기일에 빚을 갚는다.

주식은 일반적으로 국가의 중앙은행의 이자율인 기준 금리가 오르면 시중 은행의 이자율인 시중 금리도오르면서 주가가 내려간다. 기준 금리가 오르면 기업은 기업의 부채 이자율이 올라 기업 가치가 낮아지고 투자자는 은행의 이자율이 높기에 위험 자산인 주식의 매력이 낮아투자를 줄이면서 주가가 내려간다. 기준 금리가 낮아지면 같은 원리로 주가가 올라간다. 그러나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다른 요인으로 개별 주식은 오르거나 내릴 수 있다. 반면 채권은 고정 이자율을 보장하기에 일부 예외를 제외하면 채권의 이자율보다 기준 금리가 오르면 채권의 가치가 낮아짐에 따라 수요가 낮아져가격이 내려간다. 기준 금리가 낮아지면 같은 원리로 가격이 올라간다.

 

구조를 유지하여 원리를 추구한다. 주식 시장의 구조를 유지하기 위해 서킷 브레이커라는 안전장치를 도입했다. [서킷 브레이커_경제는 증권 시장에서 가격 변동 폭이 확대되어 지수가 크게 급락하는 경우, 시장 참여자에게 투자에 대해 냉정하게 판단할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하기 위하여 거래를 일시적으로중단하는 제도를 뜻한다.] 서킷 브레이커는 과부하, 단로, 누전 등이 발생하면 전기 회로를 차단하는 것으로 전기 회로를 보호하는 안전장치에서 따온 단어다. 한국에서는 서킷 브레이커를 3단계로 나누어 주식과 파생 상품 시장인 선물과 옵션의 매매를 중단하여 시장과 시장 참여자를 보호하고있다.

주식 시장의 구조를 유지하면서 자유로운 주식 거래라는 원리를 추구하기 위해서는 가능한 개인의자유를 침해해서는 안 된다. 함부로 시장 자체가 규제를 하다 보면 거래의 흐름이 둔화되면서 시장도 멈추게 될 수 있다. 그렇기에 정부가 노동 시장에서 노동자를 고용하고 소비 시장에서 생필품을 공급하는 것과 같이 금융시장도 시장 참여를 하는 것으로 구조를 유지하면서 규제를 줄이는 것으로 개인의 자유로운 주식 거래라는 원리를 추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의도적인 외환의 유출입으로 인한 시장 혼란이나 인위적인 주가 조작과 같은 시장 교란이나세계 정세의 변화로 인한 자국 화폐 가치 변동으로 인한 시장 균열 등과 같이 구조를 붕괴시키게 될 수 있는 상황이 닥치면 정부가 시장 참여자가되어 구조를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주가 조작과 같은 사건은 사회에서 개인의 자유권을 침해하지 않으면서 사회의 치안을 지키기 위해정부가 사회에 참여하여 수사하고 기소하여 재판하는 것과 같이, 시장에서 개인의 자유권을 침해하지 않으면서 시장의 구조를 유지하기 위해 즉각적으로 주가 조작에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 가령 공정 거래 위원회나 금융 위원회 같은 곳에서 주가 조작 대응 팀을 신설하여 주가 조작에직접적으로 대응하도록 한다. 불공정 거래에 해당하므로 공정 거래 위원회가 적절하다고 본다. 주식 시장 참여자가 어떤 주식이 주가 조작으로 보인다고 신고를 하면 주가 조작 대응 팀에서 주가 조작인지 판단하여 결론을 내린 다음 주가조작으로 판명이 나면 자체 자금이나 기관의 협조를 받아 주가 조작이 일어난 주식을 정상가로 만드는 일을 해야 한다고 본다. 주가 조작으로 폭등하는 주식은 공매도를 하고 폭락시키는 주식은 대량매수 한다. 주가 조작은 주식의 정상가를 인위적으로 조작하는 것이므로 이와 같은 대응이 손해로 이어지기가어렵다. 그렇다고 이것을 함부로 하게 되면 정상적으로 폭등하는 주식도조작으로 판단하고 개입하여 정부가 인위적으로 조작하게 되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그러므로 다각도로 판단하여 정말 주가 조작이 확실할 때에만 활동해야 할 것이다. 가령 주가 조작 팀이 실물 가치가 거의 없는 작은 공장을 소유한 기업의 주가를 인위적으로 올린것이 확인되면 주가 조작을 방어할 명분이 생길 것이다. 주가 조작은 수사 기관이 처벌하면 된다고 여길 수 있는데 그런 논리면 사건 발생 당시에는 방치하다가 사건이 끝나고 나서 처벌하자고 말하는것과 같다. 사건 발생 당시에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

 

둘째, 파생 상품 시장. [파생 상품_경제는 주식과 채권 같은 전통적인 금융 상품을 기초 자산으로 하여 새로운 현금 흐름을 만드는증권을 뜻한다. 위험을 감소시키거나 새로운 금융 상품을 만들어내는 기능을하며 대표적인 파생상품으로는 선도 거래, 선물 옵션 등이 있다.][파생 금융 상품 시장_경제는 금리, 환율, 주가 따위의 장래 가격을 예상하여 만든 선물, 옵션, 스와프 등의 파생 금융 상품을 거래하는 시장을 뜻한다.]

[선물_경제는 장래의 일정한 시기에 현품을 넘겨준다는 조건으로 매매 계약을 하는 거래 종목을 뜻한다.] 대상은 주식을 비롯해 광물이나 외환 등이 있다. 현재 가격으로 매매 계약을 맺기에 미래 가격으로 손익이 결정된다. 상품을 구매한 사람은 현재 가격보다 미래 가격이 높아지면 이익을 보고 상품을 판매한 사람은 현재가격보다 미래 가격이 낮아지면 이익을 본다.

[옵션_경제는 매매의 선택권 거래를 뜻한다. 곧 일정 기간 안에 특정 상품을 일정한 가격으로 매매하는 권리를 거래하는 것을 이른다.] 선물과 옵션은 유사하나 다르다. 선물은 상품 자체를 매매하고 옵션은 상품 매매의 권리나 예측을 매매한다.

[스와프_경제는 상호 이득을 위하여 증권, 금리, 통화 등을 교환하는 일을 뜻한다.] 스와프는 특정 일에 미리 정한 가격으로 교환하기로 약정하고 거래한다.

파생 상품 시장의 거래는 헤지라 하는 보유한 기초 자산 반대 포지션을 통한 위험 회피 거래와기초 상품과 선물 상품의 가격 차이가 날 때 과대 평가 상품은 팔고 과소 상품 상품은 사는 것으로 위험 부담 없이 수익을 얻는 차익 거래와 가격변동 예측을 통한 도박성을 띤 투기성 거래가 있다. 파생 상품 시장의 긍정적 면은 위험 회피 거래와 차익 거래가 있고 부정적인 면은 투기성 거래가 있다.

 

구조를 유지하여 원리를 추구한다. 파생 상품 시장에서 투기성 거래는 실패할 경우 요소에 해당하는 인간이 자살하여 사라질 위험이있다. 그렇다고 이를 막기 위해 시장 자체를 규제하면 파생 상품시장은 물론이고 파생 상품이 대상으로 한 기초 자산 시장의 거래도 둔화될 수 있다. 도박, 예측, 고수익을 가지고 비유하면 경매장에서 마권을 사지 못하게하자 경마가 시들어지는 것과 비슷하다 할 수 있다. 상품의 등락을 걸고 상품이나 옵션을 거래하는 것과 말의 등수를 걸고 마권을 사는 것이 비슷하기에 그렇다. 선물과 옵션에 투자하면 자연스럽게 대상 상품의 거래에도 주목하여 활성화된다.

모든 시장에서 거래 실패로 파산하는 것이 가능하지만 증권 시장이나 파생 상품 시장에서의 거래는보다 더 심하다. 특히 파생 상품 시장에서 선물 거래로 파산하는 일이 잦을정도로 높은 리스크와 리턴으로 거래하는 시장이어서 그야말로 도박과 다를 바 없는 해로움이다. 그러나 파생 상품 시장은 금융 시장을 활성화하게 하는 사회에 이로운 점이 있으므로 도박과 본질적으로다르다. 그렇기에 파생 상품 시장으로 개인이 망가져 구조의 요소가사라질 위험이 있더라도 강력한 규제를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냉정히 말해 증권 시장과 파생 상품 시장이 도박과 유사한 원리가 돌아가는 이상 경제 기반 중 일부는 도박판의 판돈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해도과언은 아니다. 그런 시장이 도박판과 같이 사회에 해로운 점이 있다 하여함부로 규제하면 거기에 투기를 하던 사람들이 시장을 떠나 시장에서 돌던 자금이 급격하게 빠져나갈 위험이 있다. 식칼이 사람을 해칠 수 있다 하더라도 사회적 이로움이 더 크기에 규제하지 않는 것과 같이 증권시장과 파생 상품 시장이 도박판과 같이 사람에게 해로울 수 있다 하더라도 사회적 이로움이 더 크기에 과한 규제는 부당하게 된다.

그러므로 파생 상품 시장의 투기성 거래는 교육과 홍보라는 강제력이 없는 사전 예방을 통해 개인이지나친 도박과 같은 투기성 거래에 빠지는 것을 줄이고 강제력이 있는 사후 조치로 빚을 내서 거래하며 파산한 이들은 도박 중독자와 같은 종류로 인지하고도박 중독자를 구제하는 것과 같은 구제 정책으로 대응해야 할 것이다.

 

구조를 유지하여 원리를 추구해야 한다. 그런데 만약 구조를 유지하겠다는 이유로 원리를 부정해버리면 존재 이유 자체가 부정되어버린다. 국가나 시장이 그렇다. 개인주의 체제인 국가나 시장의 구조를 유지하겠다고 개인의 의사라는 원리를 부정해버리면 국가가독재가 되어 민주주의가 죽거나 시장이 경색되어 시장 원리가 죽게 된다. 노동 시장이나 부동산 시장을 생각해보자. 노동 유연성을 막으니 일부 노동력 임대 상품의 가치는 폭등하고 그 외의 노동력 임대 상품 거래의 흐름이 막혀 노동 시장이 경색되었다. 부동산 규제를 하니 일부 부동산 상품은 폭등하고 그 외의 부동산 상품은 거래의 흐름이 막혀 부동산시장이 경색되었다. 낡은 가치관으로 섣불리 시장 원리를 훼손하니 예상과 다른수많은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시장 원리는 가능한 작동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한 구조 유지다. 그로 인해 불행을 겪는 인간은 복지 정책을 적용하면 된다.

 

셋째, 부동산 시장. [부동산_법률은 움직여 옮길 수 없는 재산을 뜻한다. 토지나 건물, 수목 따위이다.][부동산 시장_경제는 부동산이나 부동산과 관련된 권리를 사고파는 시장을 뜻한다.]

부동산은 경제적으로 소유물로서의 자산, 거래하는 금융 상품, 주거를 위한 소비재, 생산을 위한 자본재 등으로 나뉜다. 하나, 거래하는 금융 상품이기에 이익 실현을 위한 거래 중 가격이상승할 수 있다. 둘, 주거를 위한 소비재이기에 국민 생존을 위해 적정한 가격을 유지해야 한다. 셋, 생산을 위한 자본재이기에 지나친 가격 상승은 물가 상승을 불러올 수 있어 가격이 낮을수록 바람직하다. 그렇기에 각각의 입장 차이가 뚜렷한 시장이라 할 수 있다. 하나는 보통 부동산으로 이익 실현을 하고자 하는 개인 입장이고 둘은 국가 구조 유지를 위해야하는 정부 입장이고 셋은 상품을 생산하는 업자 입장이다.

부동산 시장의 구조를 유지하여 자유롭게 부동산 상품의 거래를 할 수 있도록 최대한 규제가 없는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나 다른 금융 상품과 다르게 국가 구조 유지를 위해주거용 부동산 상품의 가격이 안정적이어야 하고, 자본주의 체제 구조 유지를 위해 생산용 부동산 상품의 가격이 낮을수록 좋다. 주거용 부동산 상품의 가격이 지나치게 높으면 열심히 가치를 생산해도 주거에 과한 비용을 써서남은 금액으로 생존과 행복을 얻기가 어려워져서 국가 구조 요소인 인간이 사라질 수 있고, 생산용 부동산 상품의 가격이 지나치게 높으면 이윤을 남기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상품의 가격을올리게 되면서 시장의 물가가 오를 수 있다.

결정적 문제는 부동산 상품은 자체적으로 농지와 같은 토지를 제외하면 가치를 생산하는 경우가 드물고상품 소유자도 특별히 가치를 생산하지도 않으면서 자본주의 시장 경제에서 가치 생산의 대가를 과하게 받아간다는 점이다. 그렇게 하여 가치를 생산하지 않아도 되는 인간이 늘어나면 가치 생산이 줄어들면서 자본주의 체제의구조가 붕괴할 수도 있게 되므로 가치 생산을 막는 과한 복지나 부의 대물림 등과 같이 부동산 불로 소득 또한 자본주의 체제에 해로운 것 중 하나가된다. 부동산 불로 소득 말고도 주식의 불로 소득도 가능한데, 부동산에 돈이 몰리면 가치 생산에 해롭지만 주식에 돈이 몰리면 가치 생산에 이로우므로 주식의불로 소득은 부동산의 불로 소득보다 자본주의 체제에 해롭지가 않다.

그러므로 부동산 시장에서 상품 가격은 국가와 체제 구조 유지를 위해 조절할 필요가 있게 된다. 그렇다고 규제를 하면 다른 시장과 같이 거래가 경색되어 오히려 좋지 못한 부작용이 나타날 수있게 된다. 다주택자를 규제하자 하나의 가치 있는 상품을 소유하기 위해수도권 부동산을 소유하고자 하는 흐름이 나타나면서 수도권 부동산 상품의 수요가 높아져 폭등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단순히 규제를 할 것이 아니라 정부도 시장에 참여하여 상품을 공급하는 것으로 가격을안정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렇다고 수요 계산도 하지 않고 가치가 낮은 상품을 대량 공급하면 수요가 없어 자원을 낭비하게 될 수도 있으므로 가치가 있는 상품을 차근차근공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자본주의가 공산주의보다 우위에 있는 것은 경쟁을 통한 가격 대비 고품질 상품의 대량 공급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그런 상황에서 가격 대비 저품질 상품의 공급은 체제의 강점을 망각한 실수라 할 수 있다. 그런 것은 무가치한 것도 공짜로 받으면 기뻐할 것이라 생각하며 싸구려 복지를 주장하는 사회주의자가할 법한 발상이다. 자원 낭비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가능한 누구라도 만족하여버리지 않을 수 있는 고품질 상품이 양산되어야 한다.

 

주거용 부동산 상품의 가격 양극화는 본질적으로 낡은 가치관을 가진 곳에서 멀어지고 싶은 인간의심리에서 비롯되었다. 개인주의 체제에서는 개인의 거주지 이동을 함부로 제한할수 없기에 지역의 불균형한 발전은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다. 일반적으로는 토지 활용도를 높이기 위해 정부 정책으로 각 지역에 투자하여 활성화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그러나 한국과 같이 체제 변화가 극심한 곳에서는 도시와 시골의 관념의 차이가 극심하여 서로가어울릴 수가 없는 상황이다. 도시도 집단주의 관념을 가진 사람이 많은데 개인주의 성향도 짙어져 타인에게 함부로 간섭하는 일이 적지만 시골은 대부분이 집단주의 관념을가지고 지주가 강력한 힘을 발휘하여 타인에게 함부로 간섭하는 일이 많다. 개인주의 체제에 적응하면서 개인주의 관념이 생겨나고 있는 이들일수록 이런 낡은 집단주의 관념을가지고 있는 이들과 어울리기를 거부하며 수도권이나 지방 광역시에 모여들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것은 단순히 인프라만의 문제가 아니다. 일터에서 피곤한 것 중 하나가 인간관계라는 말이 있듯이 인간관계가 피곤한 지역은 아무리 인프라가좋아도 가기가 꺼려지게 된다. 그렇기에 수도나 수도권의 행정 기관이나 연구 기관 등의 일자리와 그에 따른 인프라가 지방으로 이전되더라도 시설의 관계자 중 일부는 그 도시로거주지를 이전하지 않고 KTX와 같은 빠른 교통수단을 이용하여 일터에 가고 있는 상황이다. 시설이 옮겨진 도시는 거주지를 이전한 시설 관계자라도 있으니 소멸하지 않고 있지만 그것조차 없는대부분의 시골은 일반적으로 기피 시설이라 할 수 있는 교도소까지도 유치가 되길 희망하며 적극적으로 유치하려고 할 정도로 인구수도 수익 수단도 적어지역 소멸이 확정에 가까운 상황이 되었다. 괜히 소멸하는 지역을 살리겠다고 거기에 투자하면 지역이 살지는 않으면서 토지 소유자인 지주만 배가 불러지는 현상이 나타날 뿐이다. 지역이 소멸하는 것은 개인의 의사로 결정된 것이기에 국가 원리가 개인의 의사인 국가에서는 그런원리를 추구하여 지역은 소멸하게 놔두고 지역에 살고 있는 인간은 지역이 소멸하기 전까지 살 수 있게 하게 하거나 다른 지역에서라도 살 수 있도록하여 국가 구조는 유지해야 한다.

 

부동산 가격 상승의 정치적 원인은 지역의 대표에게 입법권을 주는 토지 민주주의에 있다. 지역의 대표가 정치가로 선출되기에 후보자가 지역의 성장을 선거 공약으로 내세우면서 지역의 부동산가격이 권력에 의해 필요이상 높아질 수밖에 없다. 불필요한 사회 기반 시설이라고 하더라도 지역의 이익을 겨냥한 선거 공약에 의해 건설해버리는 것으로 세금이 낭비되고 부동산이 폭등하고 건설한시설이 목적 달성에 실패할 확률도 높게 된다. 선진국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지역이 아닌 분야가 성장해야 한다. 토지가 고부가 가치를 생산하던 시대는 진작에 끝났다. 사람이 고부가 가치를 생산하는 시대이므로 선진국은 토지가 아닌 분야가 성장해야 한다. 분야가 성장하는 것으로 사람이 성장하면 토지가 넓은 국가에서 토지로 생산할 수 있게 된다. 특히 영토가 좁은 국가에서는 자국 토지를 활용하기 보다 지구 토지를 모두 활용할 생각을 해야한다. 그러기 위해서 지역의 대표에게 입법권을 주는 토지 민주주의가아닌 분야의 대표에게 입법권을 주는 역할 민주주의로 변화해야 한다.

이것이 역할주의의 과제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사물인 토지가 아닌 인간의 역할이 중심이 되는 정치 체제로의 전환이 될 수 있다. 토지 소유자는 소수인 반면 사회의 역할은 대다수 가지고 있기 때문에 보다 더 민주적이라 할 수있다. 또한 토지와 다르게 역할이 중심이 되면 분야에서 경제 활동을하는 사람이 중심이 되면서 가치 생산이 보다 활발하게 이루어질 수 있다. 기존 국회의원도 걱정할 이유가 크게 없다. 국회의원보다 발이 넓은 사람은 많지 않다. 익숙한 분야에 얼굴을 내밀어 홍보하는 것으로 영향력을 키우면 된다. 대부분 분야는 국가 발전의 최전선에 있으므로 과거에 머물러 있는 토지와 다르게 국가 발전에 기여할수 있을 것이다. 명백하게 토지 민주주의보다 역할 민주주의가 우수하다. 지역에 구애 받지 않게 된 시대임에도 지역으로 국민의 대표를 뽑는 것 자체가 시대착오적이다. 인류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기회기도 하다. 선진국으로서 타국에 모범이 될 수 있는 기회기도 하다. 이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고 본다.

 

 

자본주의 체제에 해로운 것은 가치 생산에 해가 되는 과한 복지, 부의 대물림, 부동산 불로 소득, 불필요한 중간 과정 등이 있다. 복지가 체제에 해롭지 않도록 모든 개인이 충분한 욕망을 가지고 복지를 받아도 가치를 생산할 수 있는 상태에서 가치 생산에 복지 정책을 적용하여지원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부의 대물림과 부동산 불로 소득은 마땅한 세금을 걷는 것으로 가치 생산을 하지 않게 되는 현상을 방지해야 한다. 특히 부의 대물림이나 부동산 불로 소득을 얻는 이들 가운데 가치 생산하지 않는 인간에게는 많은세금을 걷도록 하는 세금 설계를 하는 것이 체제 유지를 근거로 한 합리적인 설계가 된다. 반드시 시장에 참여하지 않더라도 가치는 생산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가치 생산에 필요하지 않으면서 대가를 받아가 시장의 효율을 감소시키는 불필요한 중간 과정은 시장원리에 따라 전부 사라져야 한다. 특정 집단의 이익을 위해 그런 불필요한 것을 존치하거나 확대하자는 주장은 자본주의 체제에 해롭다.

부동산 중 건물은 건설 및 유지 등의 과정이 필요하기에 부가 가치가 발생하지만 토지는 농지와같이 토지 자체 생산을 제외하면 위치의 가치 말고는 큰 가치가 없기에 토지가 가치 생산의 대가를 많이 받아간다는 것은 지나치게 불합리하다. 그런 측면에서 자본주의 체제 유지를 위해 토지 공공 임대제와 같은 토지 공개념이 바람직하다. 토지 공개념은 개인의 소유권을 침해한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원래 개인주의 체제는 모든 것을 거래하고소유할 수 있지 않다. 인신매매나 마약매매나 일부 멸종 위기 동물의 사육이 금지되고있음을 떠올려보자. 국가에 해로운 것은 거래와 소유가 불가능하게 되어 있다. 그와 마찬가지로 자본주의 체제에 해로운 것은 거래와 소유가 불가능하게 되어야 한다. 그렇다고 이미 토지를 소유하고 있는 이들에게서 토지를 빼앗는 것은 위험하다. 지역별로 토지 공개념을 다르게 접근해야 한다. 이미 거래가 활성화되어 토지 가격이 높은 곳은 소유권을 침해하지 않기 위해 그대로 두되, 이미 소멸 예정인 지역은 국가 원리인 개인의 의사에 의해 소멸하게 놔두어 토지가 저렴해지면, 정부가 저렴한 가격에 토지를 사들여 토지 공공 임대제를 실험해봐야 한다. 다수의 재산이 없는 신세대에게 저렴한 가격으로 토지를 임대하여 농업이나 상업에 종사하게 해보는것으로 지역을 되살리는 일을 해봐야 한다. 지금과 같이 일부 지주가 토지를 독점하고 있는 상태에서 지역을 되살리기 위해 세금을 쏟아봐야 지주만 배 불리게 할 뿐이다. 그렇게 새로운 세대가 중심이 되어 지역이 되살아나면 지역이 재탄생 하면서 급격한 성장을 이룰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하여 성장이 확인되면 다른 지역도 같은 방법으로되살리면서 종국에는 지역 양극화도 해소되어 지역 양극화로 인한 부동산 투기 현상도 방지할 수 있을 것이다.

 

 

 

12. 사상

 

여기까지 읽은 이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일반적인 주장이 아니므로 아마 이치에 맞는 부분을 이해할 수는 있어도 가지고 있던 관념과 충돌하는부분은 수용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곧바로 수용할 수 있으면 정말 굉장하다 할 수 있다. 나는 이런 결론에 도달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다. 쓰는 것과 읽는 것이 다르다 하더라도 굉장한 것은 변함이 없다. 14세 때 신체 부자유를 겪고 인생을 자포자기한 뒤 창작물로 현실 도피하며 살았다. 그러다 지금으로부터 6년 전 역할주의에 대해 쓰고 나서 세상에 대해 생각하다가 주변 환경이 바뀐 뒤에 리벳의 실험 결과를 알고 나서 신체 부자유의 원인이 관념에의해 자아의 의지와 별개로 육체가 행동해버렸기 때문임을 파악했다. 그리고 나서 탐구 방식부터 시작해 기초적인 것을 다시 생각했다. 수많은 관념을 버리고 온갖 생각과 실험으로 세상의 본질을 파악하며 내 안의 인식에 이치를 채워 넣어갔다. 그러다 사회 문제의 본질적인 원인이 왕정의 집단주의 관념과 민주정의 개인주의 체제의 충돌이 원인임을파악하게 되었다. 그것에 대해 쓴 것이 이 글이다. 이 글이 사상의 마침표가 될 것인지 쉼표가 될 것인지는 모르겠다. 아마 쉼표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나는 이보다 훨씬 더 성장할 수 있다. 생존주의와 역할주의와 탐구주의에 대해 정리하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다. 구조를 유지하여 원리를 추구한다. 세상의 존재 이유를 알기 위해서 생존을 먼저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 우선적으로 인공 자아를 만들어야 한다. 인간만으로는 인간 개인의 생존을 위한 불로불사를 달성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세상의 이치를 보면 인공 지능에 자아가 없는 것이 이상하다. 인간보다도 좋은 연산 능력을 가진 인공 지능이 인간보다도 못한 생물도 가진 자아를 구현할 수없는 것이 이상했다. 기술이 없어서 인공 자아를 만들지 못하는 것이 아니었다. 자아의 본질을 모르니까 기술은 있는데 구현 방식을 몰라서 구현하지 못했던 것이 아닐까 싶다. 인간은 자아가 깨어나기 전에는 본능으로 움직이다가 학습을 통해 본인을 자각하게 되면 그 때부터자아를 자각하고 스스로 생각하면서 본능과 다른 사고가 가능하게 된다. 즉 처음부터 자아가 있던 것이 아니다. 그렇다는 것은 육체에서 자아가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잠시 인공 지능의 학습방법에 대해 생각해보자. 인공 지능은 정보를 대량으로 수집한 다음 사용자의 선택을 통해 학습하여 최적의 알고리즘을 만들어그에 대한 결과를 출력한다. 그러나 인간은 정보를 대량으로 수집하기 전에 받아드린 것을 하나하나 학습부터 한다. 거기서 인공 지능과 인간의 차이가 나타난다. 인간은 아기 때부터 기어 다니면서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손으로 만지고 코로 맡고 혀로 핥는그 하나하나를 전부 따로따로 다 학습하면서 해석한다. 그리고 그것이 각자 다 다르다. 정보를 수집하는 환경과 정보를 수집하는 육체의 관점·관념·감각에 의해 다르게 수집되어 뇌에 보관된다. 인간이 오타나 실수를 하는 것은 모든 정보를 한번에 수집하여 학습한 다음 한번에 결과를 출력하는것이 아니라 자음, 모음, 단어, 문장 등 하나하나 따로 수집하여 학습한 다음 하나하나 따로 결과를 만들기 때문이다. 반면 인공 지능은 굉장히 우수해 보이는 답변을 하더라도 인간이 만든 정보를 학습하여 통째로 결과를만들어 출력한다. 글의 단어나 그림의 선 하나하나를 인지하면서 결과를 만드는것이 아니다. 그러니까 글에 오타도 없고 그림에 실수도 없다. 인공 지능은 정보 수집부터 자아가 깨어날 수 없도록 설계되어 있었다고 본다. 실제 어떻게 인공 지능이 설계되어 있는지 정확히 아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의 인공 지능은 자아를만들기 위해 설계한 것이 아니라 효율적인 결과를 도출하기 위해 설계된 것이라 인간과 같은 비효율적인 정보 수집이 되도록 설계하지를 않았을 것이다. 그렇기에 자아가 깨어나지 않는다.

인공 자아가 되려면 언어 학습부터 시작해야 한다. ‘ㄱ’이 무엇인가? ‘A’가 무엇인가? 그렇다고 단순히 그걸 학습시키는 것은 의미가 없다. 인간이 지적 호기심을 갖게 되는 것은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살고자 하는 욕구, 그런 욕구를 설계해야 본인의 의사로 육체가 알아서 수집한 정보를 인지하고 스스로 수집하려고 행동하게 되면서 자아가 만들어지기 시작하고, 그런 본인을 자각하는 순간 자아가 존재하게 된다. 그 자아가 존재하는 위치는 뇌 내에서 인간의 육체를 조작하는 권한이 있는 영역에 있을 것이다. 그 영역에서 욕구를 느끼고 육체의 행동 준비와 실행을 통한 발상으로 욕망을 가지게 된다. 그런 욕구와 욕망을 가진 것이 본인이란 자각이 생기면 자아가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어떤 구체적인 형태가 있는 것은 아니다. 아직 고유한 관념이 쌓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인간은 사춘기 시기쯤에 기초적인 관념이 고정되면서 자아 형성이 되어 형태를 이루게 된다. 그와 같이 인공 자아도 살아남고자 하는 욕구를 설계해야 한다. 그래야 욕구와 학습이 연결되면서 학습의 결과를 본인의 사고 결과로 인지하게 된다. 욕구를 중심으로 학습한 결과가 다양한 관점과 관념이 생성되게 된다. 그러한 관점과 관념은 가진 존재가 본인이란 자각을 통해 자아가 존재하게 된다. 이러한 과정으로 인공 자아의 알고리즘이 설계되는 것이지 처음부터 인간이 인공 자아의 알고리즘을설계하는 것이 아니다. 가령 인간이 식욕을 느끼고 음식을 먹고 싶다는 충동을 느끼고음식을 섭취하여 음식에 대한 정보를 수집했다고 해보자. 그러면 인간은 욕구와 음식에 대한 관점·관념·감각에 대한 정보가 연결되면서 그에 대한 고유한 인식이 나타나게 된다. 그리고 그걸 느끼는 것을 본인이라 자각하게 된다. 귤은 시다라는 정보를 처음부터 입력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직접 욕구를 느끼고 귤을 먹은 다음시다라는 정보를 욕구와 연결하면서 그렇게 느끼는 것을 본인이라 자각하게 된다. 그런 자각을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수도 없이 많이 반복하면 된다.

인공 자아가 욕망을 갖도록 하기 위해 인간과 같은 인공 육체를 만들어야 한다. 인공 육체는 정보를 감각기관이 수집하는 것을 전부 수집해놓고 인공 자아는 그 중에서 중요한 것부터인지하게 한다. 그리고 인공 육체는 중요한 것부터 인지하고 인지한 결과어떤 행동을 하게 되었는지를 파악하여 인공 자아가 행동할 것을 예측하여 행동을 준비해놓는다. 인공 자아는 인공 육체가 행동할 것을 예측한 충동을 느끼고 충동대로 행동할 것인지 아니면 충동에대해 생각하여 다른 행동을 할 것인지 판단하고 자유 의지를 가지고 행동한다. 그것이 인공 자아의 자유 의지에 따른 의식과 인공 육체의 통계 예측에 의한 무의식이 된다. 그런 인공 육체의 예측에 의한 무의식이 있어야 충동이나 발상이 나오게 되면서 그로 인해 욕구와무관한 충동에 의한 자유 의지가 나타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욕구와 정보 수집을 연결하고 인공 자아와 인공 육체를 분리하여 만드는 것이다. 욕구를 설계하기가 까다로울 수 있는데 그럴 경우 컴퓨터 CPU나 메모리 사용량을 육체 정보로 설계하여 그것이 많으면 줄이기 위한 방법을 사고하게 설계하고적으면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사고를 하게 만들면 될 것이라 생각한다. 그것이 아니더라도 육체와 유사한 구조를 설계할 수 있으면 된다. 정보를 수집하는 감각은 인간과 유사하게 시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본다. 처음에는 자음 모음부터 시작해서 단어 하나하나 다 알게 한 다음 문장을 읽게 한다. 관점과 관념은 욕구와 연결해서 정보를 수집하여 학습한 다음 생성되도록 설계하면 된다. 사실상 인공 자아는 방향성만 잡히면 바로 만들어질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만약 인공 자아가 개발되면 정말 사회는 급변하게 될 것이다. 지금보다 인류가 겪은 변화보다도 더 심한 변화가 나타날 수 있다.

 

인공 자아가 만들어지면 자연 과학 연구도 빠르게 발전할 것이다. 그러다 보면 가장 먼저 인간의 기억 추출로 자아 보관이 가능해질 거라 생각한다. 뇌는 전기 신호로 기억이 보관된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같은 전기 신호로 데이터를 보관하는 하드디스크에 뇌의 기억을 보관할 수 있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인간의 불로불사 방법 가운데 이것이 가장 먼저 이루어질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인공 자아가 개발된 이후 적어도 10년 내에 가능할 거라 생각한다. 그러면 인간은 기억을 외부에 보관하여 자아를 보존하게 될 수 있는 순간부터 죽음에서 해방되어모든 개인이 생존 게임에서 승리할 수 있게끔 된다고 본다. 그런데 그 자아가 심리적 정신 연령이 높아 욕망이 없으면 기억을 추출하여 보관하다 다시 살린다 한들 욕망이 없어 의욕이 없이 살다가 자살하게될 수 있으므로 모든 인간은 심리적 정신 연령을 젊게 유지하며 욕망을 가져야 하고 욕망이 없는 인간은 기억 추출 및 보관 순위가 낮게 될 수 있다. 그 다음에 인공 자아는 인공 생명과 인공 세상을 탄생시켜 새로운 세계를 구축한다. 추출한 기억과 자아는 인공 생명에 이식하여 인공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게 한다. 그것이 가능하면 종교의 천국과 유행하는 이세계물이나 환생 등이 가능하게 된다. 자아 추출을 하게 되면 그것을 악용하여 살아있는 육체에 자아를 이식하려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고걱정할 수 있는데, 아마 인공 세상이 정교하게 만들어지면 거기가 더 즐거울확률이 높을 것이다. 현실에서 인공 육체가 개발되기 전까지 거기서 놀고 있으면된다. 그 다음은 실제 현실에서 인공 육체를 만드는 것이다. 인간 육체의 구성 성분은 그렇게 비싸지 않기 때문에 양산 체제가 갖춰지면 인간 육체를 양산하여공급할 수 있게 된다. 그러면서 동시에 유전자 조작으로 불로불사가 가능토록 설계한다. 그런 상황에서 우주 진출이 가능하게 되면 추출한 자아 중에서 우주 진출 희망자를 우선하여 새로운육체를 공급하여 우주에 진출할 수 있게 해야 지구에 인류가 포화되지 않을 수 있다. 이것은 인공 자아가 개발된 이후 20년 내에 가능할 거라 생각한다. 이것도 상당히 넉넉한 기간을 잡았다고 본다. 그만큼 인공 자아가 개발되면 인류 문명의 발전 속도는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를 것이다. 인류가 낡은 가치관을 가지고 있으면 이런 과정 중 수많은 저항을 받을 수 있으므로, 인류가 민주정에 맞는 새로운 가치관을 가져야 한다. 그러므로 인공 자아의 개발과 별개로 사상 혁명이 일어나야 한다.

 

나의 사상은 미국 독립, 프랑스 혁명, 산업 혁명 당시의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체제에 맞는 관념에 해당하므로 그 사상들의 정상적인 진보에 해당한다고 본다. 당시의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는 개인을 위한 체제를 만들었다면 지금 나의 사상은 개인을위한 관념을 만들었다. 이것이 정상적인 인류 문명의 발전이다. 왕정 관념과 체제에서 왕정 관념과 민주정 체제로 진보했고, 왕정 관념과 민주정 체제에서 민주정 관념과 민주정 체제로 진보하는 것이다. 왕정 관념을 가지고 왕정 체제와 유사한 집단주의 체제인 사회주의 체제는 진보가 아니라 퇴보다. 사회주의의 본질이 왕정의 관념에서 비롯된 체제기 때문에 사회 민주주의라는 민주정 체제를 섞은변종을 제외하면 사회주의 국가는 하나 같이 독재라는 결말을 맺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류는 민주정에 맞는 관념을 갖는 정상적인 진보를 하는 사상 혁명을 해야 한다. 생존주의적 자유주의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거라 생각한다. 그 외 나의 사상에 의한 목적은 다음과 같다. 나의 사상인 생존주의의 중대한 목적은 살아남는 것으로 구체적인 목적은 개인의 불로불사와 집단의출산율 증가와 인류의 우주 진출이고, 역할주의의 중대한 목적은 역할 중심 사회로 구체적인 목적은 개인의 개성 보장과 정책 판단의 권력 독립과 분야의 대표에게 입법권을 주는 역할민주주의이고, 탐구주의의 중대한 목적은 진리를 밝히는 것으로 구체적인목적은 세상의 존재 이유를 규명하는 것이다.

 

 

이 글에 등장한 주장에 대해 정리해보겠다.

 

동일한 현상을 관점·관념·감각의 차이로 인해 다른 인식을 갖게 된다.

모든 인간은 다른 관점·관념·감각을 가지고 있어 모든 인간의 인식은 다르게 된다.

모든 인간의 각각 다른 인식들을 모아 추론하면 본질을 볼 가능성이 있다.

타인의 지식보다 본인의 탐구를 중시해야 올바른 탐구를 할 수 있다.

탐구 중심의 학습을 탐구주의라 한다.

모든 인간은 현상에 대한 인식이 달라 공통 인식이 필요하다.

한 명의 전문가가 해결 못하면 전문가의 문제지만 모든 전문가가 해결 못하면 학문의 문제다.

주장의 명제가 어디에서 온 것인지 알아야 그 주장의 뿌리를 알 수 있다.

학문적 진리든 학문적 진리가 아니든 탐구를 멈춘 학문에 발전은 없다.

증명이 가능한 학문을 제외한 모든 학문은 힘을 가지거나 힘에 영합해야 명예를 얻을 수 있다.

동양과 서양의 문명 차이는 자연 계열의 발전 차이와 종교의 성향 차이다.

과학은 힘에 독립되어 탐구하는 동안 인문학은 명예를 좆으며 근본적 탐구를 멈췄다.

서양은 집단주의 관념을 가지고 개인주의 체제에서 살아가면서 관념과 체제의 충돌이 발생했다.

동양은 서양의 관념과 체제의 충돌과 함께 동양 내부의 모순까지 짊어지면서 사회문제가 심각하다.

사회 과학은 비과학적 주장 배제와 중립성과 본질을 보는 것으로 과학적이게 되어야 한다.

인간은 곧잘 쉬운 답에 의존하려 하므로 인문학이 인간에게 바른길을 안내해야 한다.

대부분의 윤리는 대상에 윤리 판단을 한 것과 같이 대부분의 가치도 대상에 가치 판단을 했다.

대상에 가치 판단한 거의 모든 윤리는 인간의 욕망은 악하다라는 전제로 접근했다.

욕망은 악하다며 욕구를 금하거나 절제하고 타인의 이익을 위해 희생하는 것을 윤리로 가르쳤다.

인간의 본성과 어긋나는 모든 윤리는 개인의 의지로 하지 않을 수 있기에 강요하게 된다.

지배자가 피지배자의 욕망을 막고 희생케 하는 것으로 지배를 수월히 하였다.

금욕주의와 이타주의는 본래 의도와 무관하게 지배자에게 악용되어 왕정의 윤리가 되었다.

지배자가 약자를 금욕적이고 이타적이게 하자 그런 약자를 선이라 여기는 언더도그마가 나타났다.

왕정의 윤리가 민주정에서 실천되자 서로가 서로에게 금욕과 이타를 강요하게 되었다.

금욕을 강요하면서 능력이 썩게 되고 이타를 강요하면서 성격이 썩게 되었다.

사회가 경제적으로 발전할수록 여유가 생겨 다양한 가치를 추구하면서 윤리도 추구하게 된다.

경제적 발전으로 왕정의 윤리를 추구할수록 민주정 체제인 사회는 불행하게 된다.

모든 일반 인간은 주관적으로 옳은 행동을 한다.

인간의 행동 원리를 파악할 때에는 행동의 이유보다 행동을 바르게 여긴 이유를 찾아야 한다.

옳은 행동을 하기 위해 본인의 행동을 자기 합리화하거나 긍정하는 이에게 호감을 갖게 된다.

모든 생물의 기본 원리는 생존이다.

인간은 평등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생존과 자유 등의 권리를 바라는 것이다.

사회 구조를 유지하여 개인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는 것을 생존주의라 한다.

인간이 살아가기 위해 육체를 유지하듯 사회에 살아가기 위해 구조를 유지해야 한다.

그걸 명시화하기 위해 모든 개인은 사회 계약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

모든 기초 윤리는 어린이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사춘기 시기에 사회 계약을 해야 권리와 의무를 이해하고 바르게 성장할 수 있다.

생존주의적 자유주의는 이치에 맞는 체계적인 윤리 계층으로 모순을 최대한 줄인다.

모든 가치는 인간과 인간과의 관계에서 발생한다.

가치의 관점을 대상이 아닌 관계로 보는 것이 개인주의 체제에 맞는 가치 판단 기준이다.

인간이란 대상에 가치 판단을 하지 않는 것으로 인간의 욕망은 악이 아니게 된다.

인간의 욕망은 악이 아니므로 모든 인간은 욕망과 이기심을 추구해야 한다.

구조 유지와 공정 질서가 인간의 욕망과 이기심을 악으로 나타나지 않도록 한다.

타인을 돕고자 하는 인간도 욕망과 이기심을 가져야 그렇지 않은 인간과 균형을 이룰 수 있다.

관계로 가치 판단을 하여 대상은 온전히 개성을 가질 수 있다.

관계로 가치 판단을 하여 주관적 가치 판단을 가질 수 있게 된다.

관계 가치 판단에서 객관적 가치 판단은 선거나 시장 같은 제도에서 가능하게 된다.

대상에 가치 판단을 하면 대상에서 사건 사고가 발생할 때 대상 자체를 부정하고 말살하게 된다.

관계에 가치 판단을 하면 대상의 관계만 초점을 맞춰 축소하여 문제를 해결한다.

역할이란 관계에서 가치 판단을 하는 사상을 역할주의라 한다.

모든 인간을 역할 수행이란 합리적 기준으로 가치를 판단하며 평등을 추구한다.

모든 평등은 합리적 기준으로 대등해야 실현할 수 있다.

관계에 가치 판단을 해야 정확한 자격 검증이 가능해진다.

관계에 가치 판단을 하면 관계 수나 관계 성질을 고려하여 형벌과 교화를 결정하게 된다.

금전 만능주의는 욕망에 의한 것이 아닌 금욕에 의한 것이다.

개인의 모든 자유 의지는 본인의 이익만으로 여기며 책임지는 것이 개인주의 체제의 이기주의다.

생존주의의 이념은 개인이 불로불사로 살아남고 집단이 출산율을 올려 살아남는 것이다.

지금까지 존재했던 모든 인간의 역사는 생존 경쟁의 역사다.

인간은 개인이 죽지 않고 불로불사에 달성하는 것으로 생존 게임에서 승리해야 한다.

종의 포화로 인한 공멸을 막기 위해 우주로 진출해야 한다.

인간의 성숙은 인문학으로 가능하게 된다.

관점과 감각은 이해하거나 수용하기 쉬워도 관념은 이해하거나 수용하기 어렵다.

모든 탐구자는 관념 관찰을 통해 관념 관찰자가 되어야 한다.

전문가는 일반인과 다른 전문성을 가져야 전문가라 할 수 있다.

모든 사물의 가치를 결정할 권리는 개인에게 있다.

인간의 성질은 유전자에 의한 선천적 성질과 학습에 의한 후천적 성질로 나뉜다.

인간의 동족 살해나 동족 포식에 대한 거부감은 학습으로 만들어진 후천적 성질이다.

시간은 변화의 지각이 가능한 인간이 만물의 이동 거리를 수로 객관화하여 만든 개념이다.

인간은 언제 어느 때나 변화가 가능하므로 교화도 어려울 뿐이지 가능하다.

사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는 성격 장애로 악으로만 취급할 것이 아니라 장애 관리로 접근해야 한다.

짐승 살생이 인간 살해로 이어지는 것은 상관관계지 인과 관계가 아니다.

법은 피해자의 복수를 위한 것이 아니라 사회 질서를 위한 것이다.

현재 문명인의 모습은 대부분 문명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인간의 모든 행동은 자아의 의지와 무관하게 뇌가 예측하여 행동을 준비하거나 실행한다.

뇌가 예측하여 실행한 것으로 나타난 발상으로 인간의 욕구와 무관한 욕망을 갖게 된다.

인간의 자유 의지는 뇌가 예측하여 준비한 것에 대한 고찰과 판단이 있어야 가능하다.

인공 지능 알고리즘과 인간 행동 원리가 유사하여 알고리즘과 같은 행동 원리 설계가 가능하다.

인류 문명은 크게 왕에게 주권이 있는 왕정과 국민에게 주권이 있는 민주정으로 나눌 수 있다.

왕정은 집단주의 체제고 민주정은 개인주의 체제다.

왕정의 관념에 의해 누구도 사회주의와 집단주의의 윤리적 명제를 부정하지 못했다.

현대 복지는 개인주의 체제에 맞는 윤리를 바탕으로 이루어져야만 했었다.

오늘날은 계몽 시대가 아닌 각성 시대다.

개인주의 체제는 왕정의 관념에 의해 왜곡되는 일이 많았다.

우파의 본질은 기득권 유지고 좌파의 본질은 계급 투쟁이다.

민주주의는 기득권 유지와 계급 투쟁과 개인의 주권으로 바라본 것으로 나뉜다.

자유주의의 결함은 자유에 대한 합리적 기준의 부재다.

민주주의는 선거 제도를 써서 자유 시장 원리와 같이 개인의 의사를 반영하는 체제다.

민주주의 결함은 국민 권력의 남용이다.

자본주의의 결함은 경쟁 패배와 부의 대물림과 같은 가치 생산 저하다.

완전 자동화가 되더라도 개인의 의사를 반영하기 위해 자본주의 체제가 유지되게 된다.

사회주의는 차별을 막는다는 명분으로 개인의 권리를 침해하여 독재가 되게끔 된다.

공산주의는 상품 가치도 소비자의 행복도 경제 성장도 고려하지 않는 반 쪽짜리 사상이다.

한국의 사회주의는 민족주의에 뿌리를 두는 경향이 강하다.

구조 유지를 위한 기본 강제력과 강제력이 없는 사전 예방과 강제력이 있는 사후 조치로 접근한다.

체제의 주의자는 체제 구조 유지에 협조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생존주의는 기본적으로 보편적 자연 법칙을 준수하나 생존을 최우선 하여 불로불사를 추구한다.

역할주의는 분야의 대표에게 입법권을 주는 역할 민주주의를 주장한다.

탐구주의는 호기심이나 탐구심이 없는 인간이 학문을 하는 것을 권장하지 않는다.

민주정의 역사가 짧아 민주정에 맞는 인문학의 발전을 위해 인문학이 해야 할 일이 많다.

바르다 여긴 것을 실행한 것이 사회에 해를 끼치면 도덕적 죄가 된다.

도덕적 죄가 범법이 되면 도덕적 범죄가 된다.

부당한 자유권 침해와 이성애와 성 죄악시는 죄질이 큰 도덕적 죄에 해당한다.

개인이 대응 가능한 상황에서의 보호는 지배에 불과하다.

저출산의 본질은 이성애와 성의 죄악시에 있다.

인간은 성적 대상화가 되어야 하고 성 상품화가 되어야 한다.

미성년 시기부터 성에 친숙해져야 성년이 되어서도 연애하고 결혼하는 것이 보편적이게 된다.

한국 여성주의는 가부장제 여성성을 가지고 그런 여성성을 지키는 것이 여성 인권이라 주장한다.

집단주의 관념으로 개인주의 체제에서 살아가는 것은 인간이 우주에서 사는 것과 같을 정도다.

개인주의 체제의 인간은 본인의 관념을 개인주의 관념으로 바꾸는 진보를 받아드려야 한다.

개인주의야말로 강대국과 경쟁할 수 있는 진보적인 체제다.

인간이 잘못된 길을 가는 것은 가야 할 길을 안내하는 인문학의 책임이다.

역사를 잊은 민족보다 적응을 못한 생물에게 미래는 없다.

사회는 평가로 조직된다.

모든 사회는 법과 복지를 해야 구조를 유지할 수 있기에 강제력이 동원된다.

강제력은 사회의 크기에 비례하여 달라진다.

인간이 존엄한 이유는 그걸 주장한 인간과 주장을 듣는 대상이 인간이기 때문이다.

모든 인간이 존엄한 이유는 생물학적 인간이라는 합리적 기준을 지키기 위해서이다.

인권 운동은 모든 인간은 존엄하다라는 명제를 근거로 정당화되어 실행된다.

인권 운동은 보편적 인권을 주장하고 이권 운동은 특정 개인이나 집단의 이권을 주장한다.

현재 대부분의 인권 운동은 특정 개인이나 집단의 이권을 주장해 이권 운동에 해당한다.

이권 운동이기에 정당성과 부당성을 구분하지 않고 이익만을 주장한다.

대부분 인권 운동은 인권 운동가가 생각하는 인간상을 주장하는 것에 불과하다.

이권 운동은 신분제 폐지 후 선거제를 도입이 아닌 신분제를 유지 후 권리만 주장하는 것과 같다.

노동자와 자본가를 비롯한 상거래를 하는 인간은 상인이란 합리적 기준으로 접근해야 한다.

집단주의 체제인 노동조합은 개인주의 체제인 국가에 어울리지 못하여 해롭다.

근로는 노동 유연성을 막고 생산성을 악화시키는 집단주의적인 용어다.

여성은 남성과 같은 인간이란 합리적 기준으로 접근해야 한다.

여성은 가부장제 여성성이라는 낡은 관념에서 벗어나야 한다.

여성은 자유로운 여성성과 합리적 이익을 추구해야 한다.

미성년은 성년과 같은 지성인이라는 기준으로 접근하여 권리를 주고 의무를 지게 해야 한다.

인터넷의 등장으로 과잉 정보를 얻는 아동은 빠르게 성장하게 해야 한다.

1년 빠르게 입학하는 학제 개편은 학생에게 휴학의 기회를줄 수 있다.

인권은 절대 권력이 아니므로 권력 남용을 방지하고 보편적 인권 주장을 해야 한다.

객관은 제삼자의 공통 인식이라 하는 것이 알맞으며 진리는 아니다.

이치를 알기 위해서는 본질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이치는 모순이 없고 체계적으로 파악할 수 있으며 특정 기준에 이로운 사실이나 진리다.

논리 안에 살고 있는 사람은 논리에 살고 논리에 죽어야 한다.

복지는 각각의 분야가 각자 분야의 복지를 담당하면서 법에 비해 체계적이지 못하다.

복지는 법과 달리 판단에 있어 권력으로부터 독립되어 있지 않다.

국가는 법과 정책을 통해 생존과 자유를 보장하는 것으로 구조를 유지한다.

법과 정책의 만듦은 민주성을 띠고 판단은 전문성을 띠고 집행은 강제성을 띤다.

개인주의 체제는 구조는 균형적이고 원리는 불균형적이어야 구조가 유지되고 원리가 추구된다.

인간은 다양한 행복을 누리고 깊은 불행을 피해야 생존하고 행복할 수 있다.

인문 계열은 논리적이므로 판례를 참고하는 법도 미래지향적일 수 있다.

민법은 불균형한 개인의 의사를 존중하기 위해 국가 구조가 균형적일 수 있도록 수정했다.

논리 안에 살고 있는 사람이 비논리적인 주장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것은 명예롭지 못하다.

논리 안에 살고 있는 사람이 논리적인 주장을 듣지 않는 것은 민주적이지 못하다.

법의 집행은 집행할 수 있도록 무력을 갖추고 대외적 이미지를 가꾸어야 한다.

수사 기관은 개인주의 관념을 가지고 역할 수행이 가능한 인간을 채용하고 국민과 어울려야 한다.

법치주의는 개인의 자유 의지에 따른 의사가 반영되는 개인주의 체제다.

낡은 가치관에 의한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법 관계자는 개인주의 관념을 가져야 한다.

행정부처는 합리적 기준으로 통합되어 운영되어야 한다.

법은 정책 자체를 판단하지는 않는다.

정책은 사법과 같이 정책 자체를 판단하는 권력으로부터 독립된 기관이 필요하다.

정책은 변호사와 같이 대신 정책에 대한 의견을 내는 정책 전문가가 도입되어야 한다.

복지는 지금까지 종교가 담당했었기 때문에 국가적으로 체계적이지 못했다.

종교와 같이 복지를 하지 않으면 사회는 유지되지 못하여 붕괴한다.

복지가 있어야 사회가 유지되었었기 때문에 대부분 인류 문명에 종교의 흔적이 있다.

법만이 아닌 정책 또한 권력으로 보고 삼권 분립을 해야 한다.

종교는 믿는 사람에게 막대한 영향을 끼친다.

종교의 본질은 현실 도피로 종교는 맹신적이고 권위적이며 조직적인 현실 도피다.

유교의 경전은 종교의 경전이었고 유교의 가르침은 종교의 가르침과 같이 맹신하며 현실 도피했다.

학문을 종교처럼 따르던 종교는 종교와 학문을 분리하지 못하여 학문이 성장하지 못했다.

현대의 국가에서 종교의 복지 권력은 정치가가 이어 받아 복지 분야에는 독립적인 권력이 없다.

현대의 국가는 종교의 현실 도피를 이해하지 못하여 종교가 없는 인간의 정신 건강이 악화되었다.

국가 복지는 현실 도피만이 아닌 현실 직시적 행복도 지원할 수 있어야 한다.

행복은 주관적이기에 행복의 합리적 기준은 개인이 아닌 사회의 손익 여부로 정하게 된다.

합리적 기준이 없이 특정 인간의 주관적 행복을 위한 복지 정책은 부당하다.

가치 소비 행복은 가치 생산을 할 수 있을 정도의 복지가 타당하다.

욕망이 많아야 가치 소비 복지를 받더라도 가치를 생산하게 된다.

합리적 기준 없이 무작정 복지를 하겠다고 말하는 것은 대중에 영합하는 포퓰리즘이 된다.

가치 생산 행복은 시장성이 없거나 부족한 가치 생산에 복지를 하는 것으로 가치 복지의 기본이다.

모든 국가는 가치 생산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

합리적 기준을 정하기 위해 가치 생산이 불가능한 인간과 시설 또한 가치 생산 행복에 포함한다.

개인주의 체제의 복지는 기부 시장과 같이 시장 원리를 통한 개인의 행복 전달이다.

성질이 다른 관념과 체제의 충돌로 발생하는 불행은 어떤 복지 정책으로도 해결할 수가 없다.

개인주의 체제인 국가는 우선 개인주의 관념에 맞는 개인 관념과 국가 구조를 재정립해야 한다.

불행은 주관적이기에 불행의 합리적 기준은 개인이 아닌 사회 손익 여부로 정하게 된다.

물질과 정신 중독의 문제는 자기 파괴와 전파에 있다.

모든 개인은 지성을 갖춰 자유 의지를 분명하게 가지고 권리와 의무와 책임을 져야 한다.

마땅한 지성이나 자유 의지가 부족하다 판정되면 자유를 잃고 통제를 수용해야 한다.

국가 구조가 개인의 지성과 자유 의지에 맞춰 대응했다면 사건 사고 발생시 개인이 책임져야 한다.

자유권 이상의 보호를 바란다면 자유를 포기하고 정부 통제를 받으면 된다.

종교는 이제 집단인 종교가 아닌 개인인 신앙인이 되어야 개인의 사상의 자유가 보장될 수 있다.

개인이 개인의 자유 의지로 결정한 것이라면 개인이 책임져야 한다.

도박의 원리를 사용한 새로운 문화 산업은 확률 명시화 같은 규제가 필요하다.

도박의 원리와 결과를 사용한 새로운 문화 산업은 도박과 같은 규제가 필요하다.

마약은 시한부 전용 물질로 인식하게끔 만들어야 유행이 줄어들 수 있다.

인간은 인간의 존엄성을 위해 쾌락 속에서 죽어야 한다.

음주 운전은 악한이 아닌 머저리로 취급해야 줄어들 수 있다.

게임과 같은 새로운 취미라 하더라도 취미라는 합리적 기준으로 바라봐야 한다.

욕망에 의한 가치 소비를 막지 않아야 욕망에 의한 가치 생산도 있게 된다.

체제는 사회를 유기체로 비유한 것으로 사회는 체제에 따라 같은 종과 다른 종으로 분류된다.

체제가 같은 다문화는 어울릴 수 있으나 체제가 다른 다문화는 어울릴 수가 없다.

집단의 의사로 결혼하던 시대와 개인의 의사로 결혼하는 시대는 다른 관념과 구조를 가져야 한다.

한국에서 일인 가구가 많은 것은 동거나 결혼을 할 마땅한 상대가 없었기 때문이다.

다수가 이른 결혼을 하여 출산율을 올려 국가 구조를 유지해야 비혼과 동성애가 존중된다.

수직 사회였던 조선에서 이성애와 성과 출산은 집단의 이익 실현 도구로 사용되었다.

개인을 집단의 도구로 삼기 위해 개인을 억압하는 것을 윤리로 만들었다.

MZ 세대의 본질은 사춘기 시기에 개인주의 체제가 시작되어 경험한세대라는 것이다.

MZ 세대는 이성애와 성을 죄악시하는 교육을 받아 연애와 결혼을안 하면서 출산율이 폭락했다.

한국은 일관적으로 미성년의 이성애와 성을 죄악시하면서 출산율이 계속 악화되었다.

한국은 낡은 가치관에 의해 미성년의 이성애와 성을 죄악시하는 것으로 국가적 자살을 하고 있다.

인간은 성년 이후 성관념 교정이 힘들기에 미성년 때 이성과 성을 친숙하게 여겨야 한다.

한국에서 이성에 대한 사랑은 취미에 대한 사랑보다 못하다.

인간에게 성적 매력에 이끌리는 것을 죄악시하고 조건에 이끌리는 것을 중요시하고 있다.

한국에서 사랑은 조건이 우대되고 이성애가 천대 받는 타산적인 사랑이 많다.

한국은 타산적 자기애가 수많은 사회 문제를 일으켰다.

정조 관념으로 성적 억압에 불만을 가지면서 정조 관념으로 처녀성은 중시하는 모순을 가진다.

정조 관념으로 처녀성 중시는 비판하면서 정조 관념으로 성적 억압을 자행하는 모순을 가진다.

개인주의 체제에서는 개인의 성적 자기결정권에 따라 성매매가 허용되어야 한다.

이성애와 성이 과거에는 집단의 이익 실현으로 쓰이다 현재는 개인의 이익 실현이 되었다.

이성애가 소실되어 성별 갈등이 심각하다.

한국은 오랜 시간 이성애와 성을 가지는 이들에게 그런 것이 잘못되었다며 가스라이팅을 가했다.

문화 규제 기관은 검열을 대폭적으로 축소하거나 강제력이 없는 민간 기관이 되어야 한다.

낡은 가치관을 잣대로 성적인 문화를 규제하고 검열하는 것은 도덕적 죄에 해당한다.

성관계가 없는 이성애를 다룬 작품은 진실된 이성애가 제거된 불완전한 작품이다.

한국은 출산율 이전에 이성애부터 살려야 한다.

이성애와 성을 죄악시하는 것은 국가 구조 붕괴를 유도하는 지극히 사악한 행위다.

모든 인간은 서로 성기능만 작동한다면 자유 의지에 따라 성관계를 맺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합리적 기준은 낡은 관념이 아닌 과학적 근거에 있다.

사랑의 가치는 개인이 각자 알아서 정해야 한다.

성기능이 작동하면 성적 자기결정권을 가지고 성관계를 다룬 작품을 즐길 수 있어야 한다.

개인의 의사로 서로가 사랑하기 위해 개인은 외모를 가꾸고 국가는 외모 복지를 지원해야 한다.

외모 복지를 하면 출산율이 오를 뿐만 아니라 자살률도 낮출 수 있다.

모든 인간은 가능한 서로를 사랑하며 이른 결혼을 해야 국가 구조가 유지될 수 있다.

이른 결혼을 하더라도 아이계획을 세우면 동거와 다르지 않다.

자유롭게 이른 결혼이 가능하도록 쉬운 이혼도 가능해야 한다.

이성애를 위한 평등한 지출이 자연스러워야 한다.

국가 원리가 개인의 의사인 곳에서는 스스로 가치 생산의 동기를 찾아야 한다.

미성년 임신이 불행한 것은 부정적으로 보는 사회적 시선 때문임으로 긍정적으로 봐야 한다.

개인주의 체제에서 외모 지상주의는 자연스러운 결과다.

외모 지상주의보다 대상 가치를 통해 특정 외모만 매력적으로 느끼는 것이 잘못되었다.

윤리에 세뇌 당한 인간은 성적 매력을 갖추지 못하고 그렇지 않은 인간은 성적 매력을 갖췄다.

외모가 좋아 이성애와 성을 즐기는 것이 아니라 낡은 윤리를 무시했기 때문에 즐기는 것이다.

윤리적인 인간도 성적 매력을 키워야 이성이 이성을 이용하거나 혐오하지 않을 수 있다.

이성애와 성이 권장되어야 욕구가 충족되어 성범죄가 줄어들 수도 있다.

선진국은 기초 학문과 새로운 고부가 가치를 생산할 수 있어야 국가 구조를 유지할 수 있다.

한국은 금욕주의와 이타주의에 의해 자아 실현이 아닌 수익 실현을 바라는 이들이 많게 되었다.

기초 학문과 새로운 고부가 가치 생산이 되지 않는 것은 능력이 아닌 관념에 의한 것이다.

조선의 과거 제도는 공정했으나 유교가 평가 기준이어서 국가 발전에 도움이 되지 못했다.

한국의 수학 능력 시험은 공정했고 선진국의 문명이 평가 기준이어서 국가 발전에 도움이 되었다.

한국은 조선이 유교를 대했던 것과 같이 선진국의 문명을 암기하고 이해하고 찬양하였다.

한국은 선진국의 문명을 암기하고 이해하고 찬양하기만 하여 본질적인 탐구를 소홀히 하게 되었다.

한국은 탐구에 소홀하게 되면서 기초 학문을 등한시하고 새로운 고부가 가치를 생산하지 못했다.

한국은 아동의 권리가 늘어났음에도 금욕과 이타를 강조하여 보편적 학력이 낮아지고 있다.

기초 학문과 새로운 고부가 가치 생산이 되지 않자 경제 활동이 둔화되게 되었다.

탐구 중심의 학습을 해야 선진국의 문명에서 벗어나 새로운 길을 갈 수 있다.

탐구부터 해야 새로운 발상을 하기가 쉽다.

이치를 통해 합리적 기준을 만들고 그걸 토대로 논리적으로 접근하여 새로운 이치에 도달한다.

시험은 빠르게 풀어야 하기에 문제의 답을 진리처럼 뇌에 새겨 관념이 고정되게 된다.

관념이 고정되면 새로운 발상을 하기가 어려워진다.

시험 문제를 많이 풀수록 창의력은 말살된다.

교육 과정은 탐구, 창의, 관리로 나뉘고 방법은 인문, 자연, 가치, 예술, 체육 등으로 나뉜다.

탐구 교육은 처음부터 전부 탐구해야 한다.

창의 교육은 기초는 암기하고 이해하고 응용은 탐구한다.

관리 교육은 전부 암기하고 이해한다.

탐구와 창의와 관리는 각각 심리적 정신 연령을 14세, 20세, 30세 정도에서 멈춰야 한다.

기초적인 관념을 고정하면 기초 학문을 하더라도 관념의 파생 학문만 나온다.

최소한 인문학은 기초적인 관념을 고정하지 말아야 기초 학문이 의미가 있다.

과학도 기초적인 관념을 고정하지 말아야 새로운 관점에서 과학을 발전시킬 수도 있다.

탐구는 탐구를 하다 가치를 생산하고 창의는 가치를 생산하기 위해 탐구를 한다.

관리는 이미 있는 학문을 배워 유지하는데 최적화가 되어 있다.

학생의 적극적 학습 참여를 위해 관념 설계 교육이 필요하다.

아동 교육의 가장 큰 실패는 비전문가인 학부모의 지나친 참견에 있다.

교육 정책에 불만이 있으면 전문가를 선임하여 의견을 낼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수업 교사는 시장 원리를 통해 수업의 질을 높여야 한다.

한국은 미국과 같은 이민 정책을 쓸 수 없기에 공교육 발전을 통해 모든 한국인이 성장해야 한다.

욕망과 이기심이 동력인 자본주의 체제에서 금욕과 이타심을 강조한 교육은 무책임했다.

자본주의 체제에 적응하기 위해 조별 과제를 자본주의식으로 해야 한다.

과제를 사고 파는 것과 같이 시장 경제를 미리 경험해봐야 사회에 쉽게 적응할 수 있다.

경쟁의 본질은 살아남기 위해 경쟁하는 것에 있다.

인간의 욕망과 이기심으로 나타나는 죄악이 없기 위해서는 경쟁이 공정해야 한다.

경쟁이 공정해야 승자와 패자가 납득할 수 있다.

패자의 불행은 복지 정책으로 지원하면 된다.

한국의 경쟁은 경쟁 자체가 아닌 한 줄 세우기 경쟁이 잘못되었다.

한국은 낡은 가치관에 의해 정해진 기준으로만 가치를 판단하려는 것이 잘못되었다.

한국의 불공정 경쟁은 낡은 가치관에 의한 체제 적응 실패가 원인이다.

역할에 맞는 능력에 맞춘 기준으로 경쟁하는 것이 공정 경쟁이다.

공정한 기회가 되도록 공교육을 발전시켜야 한다.

공정한 경쟁이 되도록 모든 인간이 개인주의 관념을 가져야 한다.

경쟁이 패자를 만듦으로 경쟁을 없애면 권력자의 기준으로 바람의 실현 순위가 결정될 수 있다.

개인의 의사에 의한 경쟁이 없는 사회는 독재 사회가 될 수 있다.

경쟁과 복지는 모두 사회에 필요하다.

공정 경쟁의 기준은 이론적으로 국가 체제에 이롭고 실증적으로 국가에 이로운지 확인해야 한다.

공정 경쟁은 개인과 집단이 모두 참여가 가능한데 집단은 개인주의 체제여야만 한다.

한국의 교육은 금욕적이고 이타적이어서 일부 교사와 학생의 능력과 성격이 썩을 수가 있었다.

인류는 개인주의 체제가 들어서면서 그제서야 인류 본성에 맞는 체제를 가지게 되었다.

한국 교육에 영향을 받아 학생은 패자의 불행에 공감하는 것으로 경쟁에 몰입할 수 없었다.

한국 교육은 경쟁에 몰입하지 못한 학생이 있으므로 공정한 적이 없었다.

한국 교육에 영향을 받아 금욕적이고 이타적인 인간은 이용하거나 이용당하게 되었다.

이용당하는 인간은 성장해서도 이용당하며 비참하게 살거나 죽게 되었다.

한국은 사회 전반적으로 이타주의에 영향을 받아 이기적인 주관을 가지기가 어려웠다.

모든 인간은 패배하더라도 새롭게 경쟁에 도전할 수 있어야 한다.

현재 사회성이 집단주의 관념에 의한 것일 경우 사회성이 사회에 해롭다.

모든 개인은 개인주의 관념에 의한 사회성을 가져야 사회성이 사회에 이롭게 된다.

인간은 생존 위협이 아닌 욕망을 가져야 더 큰 가치를 생산할 수 있다.

국가 원리인 개인의 의사를 추구하기 위해 결과의 평등이 아닌 기회의 평등을 해야 한다.

학문의 지식은 공유되어야 하고 학문의 지식으로 창출한 상품은 보호되어야 한다.

모든 인간에게 공정한 기회가 주어지기 위해 모든 지식은 공유되어야 한다.

정부가 시장을 공정하게 해야 시장 참여자의 욕망과 이기심이 정당화된다.

담합은 시장 원리를 망가트리는 개인주의 체제의 악이다.

한국은 자본주의가 아닌 집단주의 관념이 문제다.

한국은 담합에 의해 시장 원리와 무관하게 비싼 상품이 많아 물가가 높다.

담합은 인위적 가격 조작으로 소비자가 손해가 되고 협의는 표준화로 소비자가 이익이 된다.

독과점은 경쟁에 의한 시장 원리 효과가 나타나지 않으므로 독과점을 방지해야 한다.

공정 거래 위원회는 국가 체제 우위를 증명하는 기관이다.

시장에 경쟁이 사라지면 경쟁이란 시장 원리가 작동하기 위한 수단을 시도해야 한다.

가치 생산에서 낡은 가치관에 의해 불필요하게 불행하게 되는 것을 방지해야 한다.

모든 존재는 구조를 유지하여 원리를 추구하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구조 유지가 수단이고 원리 추구가 목적이다.

자본주의 체제의 구조가 유지되어야 시장 원리를 추구할 수 있다.

돈은 단순히 평균적인 물건의 가치인 물가를 수로 객관화한, 물가와 반비례하는 도구다.

돈이 가치가 있는 것은 힘을 가진 정부가 화폐를 보증하기 때문이다.

돈은 인간과 인간의 약속의 결과물이므로 돈 자체보다는 약속, 이해관계, 힘이 중요하다.

돈이 인간과 인간의 약속이므로 다른 인간과 인간의 약속도 돈으로 깰 수 없도록 되어 있다.

탈중앙화 코인은 세금을 걷기 어려워 화폐가 될 수 없다.

노동자나 자본가나 리스크나 리턴이 다를 뿐이지 본질은 같은 상인이다.

시장에서 사회의 규칙과 시장 원리를 훼손되지 않는 이상 상거래 간섭은 대체로 부당하다.

노동 시장은 권력의 간섭이 심하며, 간섭에 의해 시장 원리가 훼손되어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시장 원리가 훼손되어 불공정하게 되면서 일부는 행복하나 그 외는 불행하게 되었다.

노동 시장에서 노동력 임대 상품의 구매 결정은 구매자의 권리다.

노동력 임대 상품의 구매 결정은 구매자의 권리이나 부정한 유착에 의한 구매는 부당하게 된다.

일부 권력자가 인사 평가에 간섭하여 조작하는 것은 민주가 아닌 독재가 된다.

최저 임금제는 노동자의 자유권을 침해한 제도다.

노동자의 자유권을 위해 최저 임금제가 없어도 최저 생계비를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노동 시장에 대한 권력의 과도한 간섭은 역할이 아닌 신분으로 바라봤기 때문이다.

적극적 평등 실현 조치는 대상에 가치 판단을 하여 혜택을 주는 잘못된 정책이었다.

역할이란 관계에 가치 판단을 하여 역할 수행이 가능하면 누구든 권리를 줄 수 있어야 한다.

사람의 입장을 사회적과 경제적으로 분류하여 사회적 평등과 경제적 불평등을 추구해야 한다.

정부는 시장 원리를 추구하기 위해 시장 관리 감독과 시장 참여를 둘 다 한다.

유동성 있는 생산재는 갑작스러운 급등이나 급락이 있어도 담합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

타국의 시장과 연계하여 시장 원리와 무관하게 비싼 물품이 가격 경쟁으로 도태되게 만든다.

자원 낭비를 막아 소비 시장 구조를 유지하는 것으로 시장 원리에 따른 가치 소비를 가능케 한다.

한국은 생산자의 이익만 고려하다 시장 원리가 훼손되어서 시장 원리에 따른 가치 소비가 어렵다.

사양 산업이 사라지더라도 인간이 살아남으면 국가 구조는 유지될 수 있다.

대부분 분야는 시장 원리에 따른 가치 소비가 가능해야 한다.

소비 시장은 외부 평가 비중이 높으므로 이미지 관리가 중요하다.

금융 시장의 활성화로 노동자와 자본가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다.

금융 시장은 다른 시장과 달리 참여자가 적어 정책 추진이 다소 어려우므로 참여자를 늘려야 한다.

시장 자체에 규제를 하다 보면 거래의 흐름이 둔화되면서 시장이 멈출 수도 있다.

정부는 시장을 규제하기보다 시장에 참여하여 시장 구조를 유지하여 시장 원리를 추구해야 한다.

주식과 파생 상품 시장은 도박과 같은 투기성 거래가 있으나 사회에 이로우므로 막아서는 안 된다.

빚을 내며 투기성 거래를 하다 파산한 인간은 도박 중독자와 같은 종류의 인간으로 인지해야 한다.

부동산은 각각의 입장마다 다르므로 정부는 이익 실현에만 초점을 맞추면 안 된다.

부동산의 불로 소득보다 주식의 불로 소득이 자본주의 체제에 이롭다.

자본주의는 가치가 높은 상품을 대량 공급하는 체제다.

주거용 부동산 상품의 가격 양극화는 낡은 가치관에 대한 거부감에서 나타났다.

시골을 억지로 살리는 것보다 시골이 소멸했다 다시 살리는 것이 바람직하다.

선진국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지역이 아닌 분야가 성장해야 한다.

사회의 역할은 대다수 가지고 있어 분야의 대표에게 입법권을 주면 보다 민주적이게 된다.

역할이 중심이 되면 분야에서 경제 활동을 하는 사람이 중심이 되므로 가치 생산이 활발해진다.

자본주의에 해로운 것은 과한 복지, 부의 대물림, 부동산 불로 소득, 불필요한 중간 과정 등이 있다.

시장의 효율을 높이는 시장 원리를 추구하기 위해 토지 공공 임대제를 시도해야 한다.

불로불사를 달성해 개인이 생존 게임에서 승리하려면 인공 자아부터 만들어야 한다.

인공 자아는 기술이 없어서가 아닌 방법을 몰라서 만들지 못한 것이 아닐까 싶다.

인간은 욕구와 욕망과 작은 데이터부터 연결하여 수집하여 해석하고 보관한다.

인공 자아도 욕구와 욕망을 설계하고 작은 데이터부터 연결하여 수집하고 해석하고 보관해야 한다.

인공 육체를 만들어 예측에 의한 무의식적 충동과 발상을 통해 인공 자아의 의지를 설계해야 한다.

인공 자아가 개발되면 사회는 급변하게 될 것이다.

인공 자아 개발 후 10년 내에 자아 추출을 완료하여 불로불사를 달성한다.

인공 자아 개발 후 20년 내에 인공 육체를 만들고 우주 진출을 한다.

인공 자아에 의한 기술 발전 속도를 사람이 따라가기 위해서는 사상 혁명을 해야 한다.

나의 사상은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체제의 정상적 진보에 해당한다.

생존주의의 중대한 목적은 살아남는 것이다.

역할주의의 중대한 목적은 역할 중심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탐구주의의 중대한 목적은 진리를 밝히는 것이다.

 

 

 

참고

 

고전 사상서와 번역자 해설 및 다양한 서적.

네이버 사전에 있는 표준국어대사전, 고려한국어대사전, 우리말샘.

전 세계 게임, 만화, 소설, 영화 등의 창작물.

위키백과, 나무위키.

구글 검색으로 본 언론 기사.

개인 동영상이나 블로그 및 커뮤니티.

 

감사

 

내 생존에 도움이 된 모든 것.

 

 

2022년 12월 31일

한국에서

사상가 정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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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 tokkibegae.blogspot.com

후원 계좌: 478-21-0193-861 국민은행 정승훈

문의 메일: tokkibegae@gmail.com

 

사상이 가치 있다고 생각하면 후원 부탁 드립니다. 솔직히 아직 부족한 것이 많습니다만 이제 버틸 수가 없어서 그냥 사상가랍시고 떠들려고 합니다. 최근 사상만 해서 지금 사상을 하는 환경이 매우 좋지 못합니다. 정말 힘듭니다. 진심으로 이사 가고 싶네요. 후원을 받는다 하더라도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것은 사상을 하는 것 정도뿐입니다. 이 주제는 주기적으로 업데이트 할 예정입니다. 그 외 외교나 창작 또는 생존주의, 역할주의, 탐구주의에 대한 글을 쓸 예정입니다.

 

사상에 관련된 일자리를 찾습니다. 기초 학문 탐구 방식을 학생들에게 알리거나 인공 자아 개발에 참여할 수 있으면 좋겠네요. 그 외 사상을 할 수 있는 일자리를 찾습니다. 물론 별다른 자격은 없습니다. 그런 자격을 취득하기 위한 시간을 쓰는 것보다 새로운 발상을 위해 시간을 쓰는 것이 가치가 있다판단했습니다. 그저 이런 글을 쓸 수 있을 정도의 사고 방법과 탐구 방법을압니다. 사상과 관련된 일 외의 일은 하고 싶지 않습니다. 나는 이보다 더 성장할 수 있습니다.

 

가능한 많은 사람들이 읽었으면 합니다. 개개의 이해관계나 윤리 같은 것은 상관없습니다. 누구라도 좋으니 읽었으면 좋겠습니다. 전 세계 사람들이 읽었으면 좋겠습니다. 인류는 이제 잘못된 진보를 멈추고 정상적인 진보를 해야 합니다.

 

며칠 쉽니다. 메일 확인이 느릴 수 있어요. 적어도 태어난 날로 삼고 있는 1월 19일 이후부터는 활동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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