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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_습작모음] [시] 무덤덤 (0) 2022/10/11 PM 06:11

무덤덤 _ 박창선


가슴 팍이 붉게 젖어가도
아프지가 않다

무뎌진 날이
후비고 간 기억처럼
짓뭉개진 꽃잎
봄이 어지럽게 흩뿌려진 방은
패어진 흔적을 모두 간직한 달
아물지 못한 채 맴도는 서글픈 달

정처 없는 걸음 뒤엔
어째 선가 눈물이 떨어졌고
그마저도 내 것은 아니었단 현실만이
차갑게, 아주 시리게
삶을 일깨우곤 했다

"이것이 마지막 이별은 아닐 거야"
네가 남기고 간 잔인한 온기
차라리 얼어붙었다면 좋았을
응어리를 핥으며
외로움을 적셔본다

따르릉 따르르릉
아, 전화기가 울린다
어서 빨리 허우적거려
뻔한 답을 내어야 해
"잘 지내요"
언제고, 언제고, 언제까지고
변치 않을 답을 내어야 해

흠뻑 젖은 가슴 팍엔
선명하게 붉은 꽃이
아름드리 피어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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