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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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나의 율리안
[기본] 인간과 기계의 공생적 통일성 (1) 2015/01/18 AM 05:30
돈 아이디는 기계에 대한 공생의 가능성을 모색한다. 그는 기술에 대한 생각을 세 가지 관계로 묘사한다. 우선, 인간은 기계를 사용할 때 그 기계를 통하여 세계를 경험하게 되는데, 이는 맨몸으로 경험하는 완전히 투명한 관계와는 다른, 부분적 투명의 관계인 것이다. 이러한 기계를 통한 경험은 필연적으로 확장과 축소를 동시에 경험하게 된다. 예를 들어, 망원경을 이용하여 맨 눈으로 보지 못했던 달과 행성을 볼 수 있다는 점은 확장이지만, 실제로 보는 것과는 다른 차이, 즉 축소를 경험하게 된다는 것이다.

다음은 기계가 경험의 대상으로서 타인이 되는 관계이다. 복잡한 기계일수록 기술이 하나의 타인, 타자로서 전자적 정보를 전문가에 의해 해석하여야하는 복잡한 과정이 필요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배경적 관계이다. 사회가 점점 복잡하게 기술화됨에 따라 기계가 숨을 쉴 수 있는 공기 같은 특성을 띄게 된다. 인간의 일상 속에서 기술과는 떨어질 수 없는 환경 속에서 생활하게 함으로써 기계의 내부 속에 있게 된다. 이것이 곧 기술권이다. 그는 기술이 인간의 의미를 변화시키기 때문에 기술적 인간은 이전의 인간상과는 다르다고 보았다. 우리가 인식하든 하지 못하든 간에, 기술의 사용이 인간에게 영향을 미치게 되면 우리는 이제 우리 자신만으로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고 기술과 더불어서야만 자신을 이해할 수 있는 기술적 인간이 된다는 것이다. 아이디는 이러한 인간과 기술 간의 상호 작용을 공생적 통일성이라고 부른다. 기계의 사용은 인간에게 잠재적인 위험성이 있지만, 동시에 공생적 통일성을 통하여 인간적 가능성을 확대시키고, 인간의 고유함을 넘어서는 새로운 가능성을 제공해 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공생적 통일성의 관점은 인간과 기계가 공존하는 가운데 영향을 주고 받으면서 기계가 인간의 필요한 영역에 개입하면서 인간을 닮아가게 되고, 인간도 스스로 기계적 인간으로 변해간다는 면에서 인간의 기계화와 기계의 인간화의 특징을 설명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관점은 기계와 인간이 공생하는 가운데 인간 자신의 변화를 자각할 수 있다면 기계와 관련된 부정적 사회현상을 극복할 수 있는 대안적 관점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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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H    친구신청

마이피 한번 와 봤는데 심오한 글이 있었군요...
유익하긴 하지만 복잡하네요.
[기본] 기계에 종속된 인간 (1) 2015/01/15 PM 10:09
산업혁명이 일어나고 수세기를 거치면서 기계의 도입이 인간을 점차 기계화시키는 현상을 경험하게 된다. 20세기 초에 등장한 기술 철학은 산업용 기계에 인간이 묶이게 되는 현상을 비판적으로 분석한다.

루이스 멈포드는 역사적이고 인류학적인 접근 방법을 통하여 거대 기계(megamachine)가 고대부터 권력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면서 최초로 등장하였다고 본다. 고대의 거대 기계는 인간이 주축이 되는 노동 기계였으나, 근대의 기계는 인간을 물리적 기계로 대체하면서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생산성을 거둘 수 있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인간은 이러한 기계의 부품에 불과한 존재가 되어버린 것이다.

한나 아렌트는 과학과 기술은 가능한 한 인간을 자연적 속박으로부터 해방시켜 인간에 대해 완전히 통제될 수 있는 인공세계를 구축하려는 경향을 가지고 있다고 보았다. 아렌트는 이를 기술시대에 존재했던 전체주의적 경향이라고 보았다. 생명체로서의 인간은 자연의 필연성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것이 불가능하다. 하지만 이것을 가능하게 만들고자 하는 과학과 기술의 시도가 결국 현대 기계문명의 근본적인 문제점일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인간조건의 파괴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기술은 근본적으로 인간을 비인간화시키는 경향이 있는 것이다.

기술 자체는 어떠한 예외와 여지 없이 사용될 수단을 선택한다. 인간은 더 이상 무엇을 선택할 수 없다. 그저 다양한 기술을 통해 획득한 효과와 결과를 기록하는 하나의 도구에 불과하며, 오직 최대의 효과를 거두기 위해 기계의 입장에서만 결정할 수 있다.

이제 기술은 더 이상 인간에 의한 결정적 간섭 없이 스스로 변형되고 발전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기술현상은 좋은 것은 가지고, 나쁜 것은 버리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분류될 수 없으며 기술 자체가 하나의 덩어리인 것이다.

기술 결합 필요성으로서 모든 새로운 기계는 생산의 균형을 깨며 또 다시 생산의 균형을 회복하기 위해 다른 분야의 작업에서 또 다른 기계의 창조를 야기한다.(Ex- 단순 로봇->바이오기술과의 결합을 통한 사이보그, 전신의체,etc)

기술의 보편성, 문명의 수준이 어느 정도이건 모든 국가에서는 동일한 기술적 과정을 적용하는 경향이 있다.

기술의 자율성, 공장은 그 자체가 하나의 폐쇄적 개체이자 하나의 목적이다. 현대인은 그의 목적을 선택할 수 없듯이 수단도 선택할 수 없다.

이처럼 기계는 인간성을 무너뜨리고 인간이 기계에 종속되는 상황을 거부할 수 없게 만드는 암울한 시각을 보여준다. 기계의 발전과 고도의 산업화에 따라 인간이 기계에 종속되는 현상은 인간의 기계화 특성을 잘 나타내는 예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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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ROP    친구신청

과학과 기술간의 정의의 오류가 있네요. 과학은 필연성에서 벗어나는 노력이라기보다 자연현상을 관찰하는 하나의 방법입니다.. 정의하는 인간조건이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과학과 기술이 비인간화시키는 수단이냐 아니냐는 해석의 차이인 것 같네요.
[기본] 인간 능력 확장으로서의 기계 (0) 2015/01/15 PM 09:57
인간이 생존하기 위한 조건 중 하나는 도구 혹은 기계를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의 기계에 대한 의존성은 석기 도구를 가지고 채집과 사냥을 통해 생활을 영위하였던 선사시대로부터 현대 사회까지 동일하게 해당된다. 산업혁명 이후 증기 기관과 같은 자동화 기계의 등장은 인류 문화의 새로운 신기원으로서 기계의 가능성에 대한 희망적 관점이 주류를 형성하게 만들었다. 이러한 긍정적인 관점은 17세기 과학혁명 이후 기계 기술의 발전과 함께 기계를 인간 신체의 확장으로 이해하는 시각이 등장하게 만들었다.

에른스트 카프는 기계를 인간 신체의 연장으로 보았다. 그는 도구들이 사냥, 어획, 정원 관리 등에 쓰이기 위한 인간 신체의 연장, 즉 도구로 적용되었다고 보았다. 카프는 여기에서 더 나아가 철도를 인간 신경망의 연장선상으로 이해하여, 국가 작용의 망으로 보았다.

토마스 칼라일은 자신의 시기를 기계의 시기라고 정의하였다. 외부적이고 물질적인 것만이 기계에 의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내부적, 정신적인 것 까지도 기계적으로 변화했다고 말했다.

기계가 인간의 능력을 확장시킬 수 있다는 측면은 페미니즘도 주목하는 것이다. 기계가 고도화되면서 여성이 가사 노동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는 여건이 갖추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기술 페미니즘은 고도의 기술이 접목된 기계 사회에서 여성이 임신과 출산, 그리고 가사 노동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으며, 기계가 남성 우위의 육체적 노동의 의의를 무너뜨리면서 여성과 남성이 동등한 지위를 획득할 수 있다고 보았다.

도나 해러웨이의 사이보그 페미니즘은 기술과 기계의 발전이 여성을 해방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여기서 사이보그는 인간과 기계의 합성된 상태를 의미하기 보다는 첨단 과학 기술에 둘러 쌓인 인간의 삶을 가리킨다. 로봇을 비롯한 과학 기술이 단순히 우리 주변에 존재하는 환경이 아니라, 이미 인간의 일부나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해러웨이는 사이보그의 개념을 확대하여 인간-기계의 측면만이 아니라 한 유기체와 기술적으로 매개된 다른 모든 존재들을 포괄하는 의미로 사용한다. 해러웨이는 인간과 기술 혹은 인간과 기계가 이미 긴밀히 연결된 관계라고 인식하였다. 그래서 기계화된 인간 및 인간화된 기계가 이미 서로 뒤섞이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20세기 후반의 기계는 자연적인 것과 인위적인 것, 마음과 몸, 스스로 발전하는 것과 외부에서 고안해주는 것, 그리고 유기체와 기계 등의 사이를 구분시켜주던 많은 것들의 차이를 전적으로 모호하게 만들어왔다. 기계는 불안을 야기할 정도로 생기에 넘쳐있고 우리 자신은 겁을 줄 정도로 활동성이 없다." -도나 해러웨이

사이보그 사회라는 기계적 미래 세계에서는 남성이 전통적으로 가져왔던 육체적 우위가 점차 무의미해 짐으로써 남성의 일방향적 지배가 더 이상 허용되지 않을 것이다. 해러웨이가 보는 사이보그의 개념은 인간 능력 확장으로서의 기계의 특징을 보여주며, 기계의 발전을 통해 성차별 문제에 대한 해결 가능성이 있음을 나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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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동북아 교육 교류 연구의 필요성 (1) 2015/01/15 AM 02:45
현재 한중일, 대표적인 동북아시아의 3국은 미묘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중국의 한자문화권에 속하여 유사하면서도 가까운 관계를 유지해왔던 3국은 20세기 초 일본 제국주의의 폐해와 중국의 공산화로 인하여 적대감과 공존의 필요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놓여 있다. 그러나 최근 불거지는 상황은 이 미묘한 관계를 악화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만들고 있다. 세계 2위의 경제 대국이었던 일본은 80년대 버블 경제의 붕괴로 인한 '잃어버린 10년' 이후, 지속적으로 사회의 활력을 잃어가는 중이다. 이러한 와중에 중국은 덩 샤오핑의 '흑묘백묘론'에 따른 실용주의 경제노선을 선택한 이후로 엄청난 발전을 이룩하여 미국과 더불어 세계 정세를 주도해 나가는 G2로 부상하였다. 동북아에서의 주도권을 중국에게 점차적으로 빼앗기는 형국의 일본은 자연스레 중국에 대한 반발을 가지게 되고 이윽고 우경화 노선을 걷고 있다. 이로 인해 독도 문제와 댜오위다오 분쟁과 같은 각종 영토 분쟁과 위안부 논쟁을 필두로 한 과거사 분쟁까지 벌어지는 등, 한중일 동북아 3국 간 외교 관계는 악화일로를 걷는 중이다.

이처럼 한중일 3국의 관계는 점점 악화되어 가고 있는 모양새이지만, 사실 3국 간의 상호의존도는 더욱 빨라지는 세계화의 속도와 발맞추어 각 종 다양한 분야에서 심화되고 있다. 바야흐로 동북아 시대가 시작되면서 이 지역의 경제 규모는 급속도로 성장하는 추세이며, 3국 간 교역 규모도 나날이 확대되어 가는 추세를 보인다. 이 같은 한중일 3국의 경제성장은 서로 간의 상호의존성을 심화시켜가는 주요한 요인이라 볼 수 있으며, 이는 '한류열풍', '일본만화' 등의 대중문화가 동북아 내에서 공유되는 현상을 통해서도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처럼 경제적, 문화적 교류도 활발하고 역사적으로도 깊은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한중일 3국이 현재 상황을 타파하기 위해선 EU(유럽연합)과 같은 대륙적 공동체를 형성하자는 제안도 나올 수 있다. 그러나 동북아 3국의 침략과 저항분쟁의 역사는 아직 100년도 지나지 않았을 뿐더러, 아직까지는 민족주의적 적대감이 세계주의적 관점보다 우세한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EU와 같은 탈국가적 통합 공동체가 동북아 3국의 적절한 롤모델이 될 가능성은 아직까지 희박하다 볼 수 있다.

여기서 고려해 봄직한 것이 바로 '교육'이다. 교육은 그 나라 사회의 구성원들이 직업을 가지고 경제생산활동에 참여하여, 그들을 국가 발전의 주체적 일원으로 키워내는 수단이자 국민들이 각 세대를 거치면서 축적해온 문화를 다음 세대에 전달하고 현세대의 가치를 미래 세대에게 유산으로 남겨 국가 정체성을 형성시키는 도구이다. 이와 같은 교육의 영향력을 단순한 국가의 범주에서 벗어나 현대 세계화의 흐름에 발맞춰 국가와 국가들을 연결시켜주는 교두보로써 활용한다면, 긍정적인 결과를 불러올 것이다. 따라서 현재 차가운 기류를 형성하고 있는 동북아 3국 간의 관계를 상호 협력적인 관계로 바꾸기 위해선 동북아 3국의 교육정책을 연구하고 이를 긍정적으로 통합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효과적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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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치구H    친구신청

좋은 글이지만
현실적으로 한국의 포지션이 애매하죠
일본과 중국이 한국을 필요로 하나? 라는 시점으로 보면 그렇죠
한국은 더욱 저들이 필요로 할 나라가 우선 되어야할 필요가 있습니다
[기본] 서구식 민주주의에 대한 중국의 궤변 (3) 2015/01/14 AM 03:18
현대사회는 로크의 시민정부론에 의해 디자인되었다고 보면 되겠죠. 감성이 인간본성에 담긴 힘을 인지하였고, 그 핵심으로서 욕망을 이해한 것이니... 그래서 국가가 욕망을 억압하기보단 그걸 인도함으로서 더 큰 발전을 이룩할 수 있다고 봤죠. 그래서 소유권의 보장을 그토록 중요시한거고

문제는 이 욕망이란 것이 끝이 없기에 무한한 화폐경제 하에서는 그 빈부격차 역시 무한정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에 있고, 대의제 사회의 구성원들에게는 그러한 격차가 곧 '참정'의 질적인 차이로 나타난다는 것에 있다는 거죠. 이 지점에서 자본주의가 민주주의의 본질을 잠식하고 있는 것이죠.


뭐 미국을 보면... 그리스발 경제위기를 막기 위해 투입된 그 막대한 금액.. 그리스 국채에 투자한 프랑스 3대은행과 이를 보증한 미국은행들을 보호하려고 국민들 세금 끌어다 쓴거죠. 개인들의 재산권 지키려고 만들어진 체제에서 아이러니하게도 기업과 자본가라는 거대한 개인에 의해 그것들이 약탈당하는...ㅋㅋ 이런 맥락에서 우리 사회의 규율이 그네들이 입맛대로 만들어지고 있으니


이런 현실을 두고 중국이 펴내는 궤변이 '봐라 니네들 그거 기업들 입맛대로 하는게 민주주의니? 우린 좋은 법 학자들이 연구해서 다 만들 수 있어. 응. 우리 공산당은 그거에 따라 정의를 집행할뿐이야. 그러니깐 공산당한테 개기면 안되는거야.' 라는건데..ㅋㅋ

사실 근본적으로 반대세력에 대한 인권탄압을 자행한다는 점에서 그네들이 민주주의를 논한다는 거 자체가 넌센스이지만, 그걸 빼고 본다면 꽤 의미있는 지적이 아닐까 싶네요.


개인적으론 인터넷 변혁기에 살아서 그런지, 인터넷사회가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은데... 회의적인 것이 그걸 이끌어나가야 할 우리 세대들의 행태를 보면 헉슬리의 우려대로 넘쳐나는 정보 속에서 '누군가'의 의도에 의해 형성된 흐름에 호도되어 본질을 보려 하지 않는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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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leejh    친구신청

70년대 박정희도 한국식민주주의라는 개소릴 지껄였죠

합리적인세상    친구신청

슬프게도 2015년 신년연설에서 우리나라 대통령도 비슷한 소리했죠.
종북콘서트 관련해서 미국기자가 물었을때;

야자와 니코니코    친구신청

인터넷이란 것의 가장 큰 장점이자 단점이 익명성이라는 거죠. 자신을 감추면서 민감한 사안에 대해 이야기 할 수 있는 반면에 자신을 감춘 자에 의해서 선동을 당할 수 있는 거죠. SNS만 봐도 인터넷의 한계를 뼈저리게 느낄 수 있습니다.
결국 사회는 불특정 다수에 의해 돌아가는 겁니다. 그 중에는 사회에 대해 하나도 모르는 사람도 있고 관심을 가지지 않는 사람도 있죠. 그런 자들의 총의에 의해 사회가 돌아가는 것이 문제로 보일 수 있지만 소수의 사람에게 그런 다수의 힘이 주어진다면 독재로 이어질 수 있고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 있죠.
그게 중국의 현실입니다. 공산당이다 뭐다 하지만 결국 뇌물을 제대로 바치는 기업인에 의해 돌아가는 나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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