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untainWebzine
접속 : 67   Lv. 6

Category

Profile

Counter

  • 오늘 : 12 명
  • 전체 : 58404 명
  • Mypi Ver. 0.3.1 β
[도서] [서평] 승부조작의 진실 - 데클란 힐 (2) 2014/06/25 PM 06:34

 원문바로가기  ▶ 여기를 클릭하세요

스포츠 선수는 신사적인 페어플레이 정신을 가져야 하고, 공명정대한 방법으로 경기규칙을 준수해야 하며, 참가자로서 활동자체를 중시하며 스포츠맨십을 통해 만족감, 즐거움, 욕구충족, 자아실현을 추구합니다. 그렇기에 스포츠는 아름답습니다. 이런 아름다운 스포츠는 현재 아이들이 뛰노는 운동장에서나 찾아볼 수 있습니다. 현대 스포츠는 프로페셔널리즘을 추구합니다. 스포츠는 금전적, 물질적 이익을 추구하는 행동이 되었고, 스포츠 선수는 재정적, 물질적 보상을 받기 위한 스포츠 활동을 본업으로 삼고 있는 직업적 의미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심판의 눈을 피해 효과적으로 반칙을 함으로써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는 선수는 프로선수로서 긍정되며, 공명정대하게 경기하다 나쁜 성과를 내는 선수는 선수의 자격이 없습니다.

올림픽과 같은 거대 스포츠 경기가 순수한 아마추어리즘을 포기하고 상업화와 연합하여 경제적인 수단으로 활용되거나,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된다는 것은 흔히 알려져 있는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아름답지 못한 스포츠에서 아름다운 스포츠의 모습을 찾고자 합니다. 상업화는 경기 외적인 일이며, 막상 경기가 시작되면 선수들이 최선을 다해 플레이할 것이라고 스포츠 팬들은 믿습니다. 최후의 선은 지켜줄 것이라 믿고 있기에 여전히 팬들은 선수들을 응원하고, 스포츠에 열광합니다. 그러나 최후의 선을 넘는 경우도 있습니다. 데클란 힐이 보여주는 그것은 바로 승부 조작입니다.

승부 조작은 아마도 모든 스포츠에 존재할 것입니다. 아이스하키, 농구, 야구.. 심지어는 e스포츠에서도 존재합니다. 날아오르라 주작이여. 다른 스포츠에 비하면 한없이 작은 규모의 e스포츠마저 마재윤 사건이라는 승부 조작이 존재했습니다. 데클란 힐은 많은 스포츠 중에서도 전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팬을 지니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가장 승부 조작이 많을 것이라 예상되는 축구를 중심으로 승부 조작의 세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어떤 스포츠도 승부 조작의 마수를 피해갈 수 없듯이, 축구의 어떤 경기도 승부조작의 대상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청소년 축구 대회인 FIFA U-17 월드컵부터 각 국가들의 지역 리그들, 각종 컵 대회, UEFA 챔피언스리그, 심지어 가장 권위있는 월드컵 본선에서도 승부조작은 끊임없이 시도됩니다.



1950년대 영국 선수들 상당수가 승부 조작에 흔쾌히 가담한 이유는 간단하다. 가난한 환경에서 자란 선수들이 구단으로부터 가혹한 착취를 당했기 때문이다. 당시 선수들의 처우를 살펴보면, 요즘의 노동계가 경악할 만한 내용이 많다. 구단은 선수의 생살여탈권을 쥐고 있었다. - p.160

승부조작을 왜 하느냐고 묻는다면 가장 큰 이유는 돈 때문입니다. 가난한 나라의 축구리그일수록, 구단이 선수들을 착취할수록, 돈을 적게 버는 선수일수록 승부조작을 할 확률이 높습니다. 그러나 가장 부유한 나라의 축구리그에서 가장 잘 버는 선수일지라도 돈 때문에 승부조작에 가담할 수도 있습니다. 100억을 버는 사업가 중에도 1억을 더 벌기 위해 부정행위를 저지르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입니다. 강팀이라고 해서 승부조작의 유혹에 자유로운 것은 아닙니다. 아무리 강한 팀이라도 약팀에게 덜미를 잡힐 수 있기 때문에 경기의 중요도가 높을수록 낮은 확률의 위험을 감수하는 것 대신 확실하게 이기는 방법을 선호할 수밖에 없습니다. 구단 관계자들은 늘 불확실한 축구계에서 확실한 승리와 성공을 원합니다. 강등 위기의 팀과 시즌 결과가 이미 정해져서 지더라도 큰 피해가 없는 팀의 경기라면 승부 조작을 하고 싶은 유혹이 들 것입니다. 때론 독특한 이유로 승부조작을 하는 사례도 있었는데, 과거에 인종차별에 저항하는 의미로 승부조작을 한 선수도 있었습니다.

승부조작 사건을 잡기 어려운 이유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사람들이 스포츠 정신이란 가치를 여전히 선호하기 때문에 승부조작이라는 사안을 민감하게 받아들이며 회피하기 때문이고, 둘째는 승부조작이라는 것 자체가 의도적으로 했다고 입증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데클란 힐은 과거에 일어났던 확실한 정황만을 보여줍니다. 선수들에게 승부조작을 의뢰한 도박사들의 음성을 녹음했거나, 감독의 전화를 도청함으로써 발각되어 나라를 발칵 뒤집어놨던 승부조작 사건들을 소개합니다.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가나, 러시아 등과 같은 곳에서 일어나는 승부조작 사건들을 주로 다루고 있지만, 영국, 이탈리아 등과 같은 선진국도 예외는 아닙니다.



리그 최종전을 앞두고 FC나니아는 라이벌 그레이트 마리너스와 승점이 같았다. 두 팀이 모두 최종전에서 승리를 거둘 경우 프리미어 리그 승격팀은 골 득실로 가려지게 될 상황이었다. 두 팀의 경기는 같은 시각에 개시됐고 두 경기 모두 정상적인 초반 흐름을 보였다. 전반전이 종료됬을 때, FC나니아와 그레이트 마리너스는 각각 상대 팀을 1-0, 2-0으로 앞섰다. 하지만 경기의 흐름은 이상한 방향으로 급변했다. 두 경기에서 동시에 골의 홍수가 터진 것이다. 경기가 끝났을 때 FC나니아는 31-0으로 대승을 거뒀다. 라이벌 그레이트 마리너스는 28-0으로 경기를 마쳤다. 물론 골이 많이 나온 것은 우연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 pp.351~352

세계적 강팀 브라질과 약체팀 도미니카 공화국이 경기를 하는 것이 승부조작의 대상이 될 수 있을까 의문이 들지만, 승부조작의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도박에서 맞추는 것은 승, 패가 아니라 총 점수 맞추기, 오프사이드 개수 맞추기, 첫 골 득점 시간대 맞추기 등 수많은 방법이 있기 때문입니다. 승부 조작꾼은 골기퍼, 스트라이커 같은 핵심 선수들 뿐만 아니라 심판, 감독 등 누구든 조작의 세계로 유혹합니다. 조작꾼들은 돈으로 매수하는 일은 늘 실패할 가능성이 있지만, 섹스는 언제나 통한다고 말합니다. 돈은 거절하는 강직한 선수나 심판이라도 미녀의 성접대 앞에선 속수무책이라는 것입니다.

1994년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의 경찰이 스포츠 승부 조작 단속에 나선 결과, 자국 리그 경기의 80퍼센트가 조작된 것으로 추산했습니다. 승부 조작이 가져다 주는 결과는 치명적입니다. 사람들이 스포츠에 관심을 보내지 않게 되어 스포츠 자체가 붕괴해버리기 때문입니다. 말레이시아 사람들은 이제 국내 리그를 보지 않고 멀리 떨어진 유럽의 리그를 봅니다. 데클란 힐은 과거 서유럽과 미국에서 현재 축구처럼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조정 스포츠가 승부조작 때문에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져 거의 관심받지 못하는 스포츠가 된 현실을 말하며 승부조작이 가진 위험성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케냐의 수도 나이로비에서 한 아저씨와 소녀들이 축구를 통해 폭력과 빈곤, 부정한 축구협회를 물리치는 희망찬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수많은 악재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람들이, 그리고 저자가 스포츠를 보는 것은 그곳에 희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스포츠라는 희망을 지키기 위해선 가장 경계해야 할 행동, 승부조작을 직시하고 해결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원문바로가기  ▶ 여기를 클릭하세요

신고

 

wii제시카    친구신청

토토 하다보면 알게되죠 조작이 수없이 발생하는것을 이번 월드컵만 봐도 뭐 ㅋㅋ 토토가 없어지지 않는이상 스포츠조작은 없어질수가 없음 진짜 공정한 시합은 조기축구나 아마추어에서만 존재합니다 ㅠㅠ

FountainWebzine    친구신청

주변에 사설토토 하는 사람들이 꽤 많은데 이건 걸린게 너무 많아서 정말조작의 유혹이 있을만 합니다 ㅎㅎ
[도서] 중국 당나라의 살인사건, 영화 의 실제 모델 - (1958) (3) 2014/06/25 PM 06:27

 원문바로가기  ▶ 여기를 클릭하세요



로베르트 반 훌릭 <쇠종 살인자>(1958)

찰리 챈이 미국에서 활동하던 중국인 형사라면, 디런지에(狄仁傑)는 당나라 시대 중국의 작은 읍에서 범인을 검거하던 판관이다. 공직에 종사하고 있고 작은 읍의 수령을 맡고 있기에 디런지에를 가리켜서 디 공(公)이라고 부른다.

서극이 감독하고 유덕화가 주연했던 영화 <적인걸>의 모델이기도 했던 디 공은 중국 당나라 시대의 실존인물이다. 630년에 태어나서 700년에 사망한 디 공은 수많은 사건을 올바로 해결하면서 억울한 사람이 생기지 않도록 했던 유능한 관리이자 수사관이었다. 측천무후 시대에는 재상의 자리에 올라서 정치를 쇄신하고 민생을 안정시키며 당나라의 전성기를 열어젖힌 인물이기도 하다.

디 공이 살던 시대에 당나라의 위세는 대단했다. 당의 군대는 파미르 고원을 넘어서 중앙아시아를 넘나들었고 타타르족을 정벌해서 북쪽으로도 국경을 넓혀갔다. 상선들도 페르시아 만까지 오가며 교역했다. 당나라의 수도 장안은 실크로드를 따라서 들어온 수많은 외국인들이 붐비는 국제도시였다.

명탐정으로 되살아난 실존인물 디 공

그렇다고 해서 범죄가 없을 수는 없다. 사람이 사는 곳이라면 언제 어디서나 범죄가 발생하듯이 당나라 시대에도 마찬가지다. <쇠종 살인자>에서 디 공은 장쑤성(江蘇省)의 지방 읍인 푸양(浦陽)에 수령으로 부임한다. 수령으로 부임한 첫 날, 디 공은 푸양이 하늘의 축복을 받은 고장이라고 칭찬하는 말을 늘어놓는다.

푸양은 땅이 기름진 데다가 홍수나 가뭄으로 피해를 보는 일도 없으니 농부들에게는 살맛 나는 곳이다. 당나라를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대운하에 맞닿아 있으니 교통의 요충지로서 누리는 이점도 한두 가지가 아니다. 대운하와 그곳으로 흘러드는 강에는 물고기가 지천이니 가난뱅이도 배를 채울 수 있다.

이렇게 살기 좋은 곳에 범죄까지 없다면 금상첨화겠지만, 디 공은 부임하자마자 전임 수령이 미해결로 남겨놓은 사건을 마주하게 된다. 잔혹한 강간 치사 사건으로 얼마전에 푸줏간집의 딸이 자기 방에서 능욕당한 채 시체로 발견되었다. 그 처녀는 과거시험 준비를 하고 있는 이웃집의 왕 서생과 그렇고 그런 사이였다고 한다.

딸의 아버지는 왕 서생을 범인으로 고발하였고 나름대로의 증거와 증인도 확보했다. 그런데도 피의자인 왕 서생은 자신의 짓이 아니라고 극구 부인한다는 것이다. 당시 중국의 법은 본인이 자백하지 않는 한 유죄로 간주하지 않는다는 원칙이 있었다. 그래서 명백한 증거가 있는데도 죄인이 끝까지 자백을 거부한다면, 적절한 수준의 고문을 동원할 수 있었다.

푸양의 전임 수령은 왕 서생에게 자백을 받아내기 위해 가벼운 고문을 했지만, 왕은 끝까지 굽히지 않은 채 고문을 받다가 실신했다고 한다. 피의자가 고문을 받다가 불구가 되거나 최악의 경우 사망한다면, 그 수령과 부하들은 무거운 처벌을 받게 된다. 전임 수령은 어쩔 수 없이 심문을 중단한 채 임기를 마쳤고, 이제 이 미결사건은 디 공에게 넘어온 것이다.

작은 읍에서 연달아 발생하는 강력범죄

강간사건도 중요하지만, 푸양 읍에서는 괴상한 소문이 하나 떠돌고 있다. 디 공의 부하가 푸양 읍을 돌아다니면서 이 지역의 돈줄을 누가 쥐고 있는지 알아보던 도중에 듣게 된 이야기다. 푸양에는 대지주가 네댓 명 되지만, 변두리에 있는 절 보자사 주지승의 재산에 비하면 새발의 피라는 것이다.

작은 읍에 있는 절의 승려가 어떻게 그렇게 많은 돈을 만지게 되었을까. 소문에 의하면 보자사의 중들은 도 닦을 생각은 하지 않고 술 마시고 고기나 뜯으면서 백성들을 등쳐먹고 산다는 것이다.

이렇게 복잡한 문제를 가지고 있는 디 공에게 한 중년 여인이 찾아온다. 관아의 부하들이 전부 '미친 여자'라고 부르는 여인이다. 그 여인은 전임 수령 시절부터 걸핏하면 수령을 졸졸 따라다니면서 억울한 일을 당했다고 하소연했다고 한다. 디 공을 찾아온 이 여인은 놀라운 이야기를 들려준다. 20년 전부터 반목해왔던 두 집안의 이야기다. 여인은 상대 집안이 어떻게 비열하고 잔인한 방법으로 자신의 집안을 몰락시켰는지 호소한다.

이제 디 공이 다루어야 할 사안은 세 가지로 늘어났다. 실제로 당나라 시대에 지방 수령들은 이렇게 한 번에 여러가지 사건을 취급하는 경우가 많았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사는 곳이니 같은 날 살인과 절도, 강간이 각기 다른 장소에서 제각각 일어난다고 해도 이상할 것이 없다.

그렇다고 수령이 사건수사에만 집중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수령에게는 다른 중요한 책무들도 있다. 조세 징수, 출생과 사망 기록, 토지 대장 작성 등의 전반적인 행정업무도 책임져야한다. 이런 상황에서 강력범죄가 여기저기서 펑펑 터져버리면 정말 몸이 열개고 머리가 다섯 개라도 부족할 지경일 것이다.

네덜란드 작가가 묘사하는 당나라 서민들의 삶

<쇠종 살인자>의 저자는 네덜란드 출신의 작가 로베트르 반 훌릭이다. 그는 외교관 생활을 하면서 중국을 비롯한 동양의 문화와 역사를 오랫동안 연구했다고 한다. 미국 작가가 찰리 챈을 창조한 것처럼, 네덜란드의 작가는 펜 끝으로 당나라의 실존인물을 명탐정으로 되살려낸 것이다. 그것도 7세기 당나라를 무대로 해서. 작가는 당시의 중국과 유럽을 비교하며 작품 후기에서 이런 말을 한다.

‘모든 중국 백성은 빈부라든지 사회적 신분에 구애받지 않고 과거시험에만 붙으면 누구나 관직의 길로 들어서서 고을 수령이 될 수 있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중국은, 유럽이 중세 장원제의 질곡에 빠져 있을 무렵 상당한 수준의 민주적 제도를 운영하고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작품을 읽다보면 작가가 묘사하는 지방 서민들의 삶을 그려볼 수 있다. 빈부격차는 심하고 그 간격이 줄어들것 같지도 않다. 부유한 남자들은 여러 명의 부인을 두고 살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자식을 팔아서 생계를 이어간다. 생활이 어려운 사람들은 푼돈과 금붙이를 훔치고, 돈 많은 사람들은 부정한 방법으로 더 많은 재물을 모으려고 한다. 그리고 끊임없이 살인과 사기사건들이 발생한다.

작품의 마지막 장면에서 디 공은 하늘이 어쩌면 그렇게 참혹한 고통과 역겨운 피비린내를 내리는 것인지 스스로에게 묻는다.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은 없다. 그렇기에 디 공은 잔인한 현실에 절망하면서도 계속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그에게 백성은 자신이 보듬고 안아주어야할 자식들과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디 공은 뛰어난 수사관이기 이전에 자신의 백성들을 믿었던 자상하고 현명한 수령이었다.


 원문바로가기  ▶ 여기를 클릭하세요

신고

 

충전완료    친구신청

오 재밌겠네요

FountainWebzine    친구신청

네 재미있는 책입니다 한번 읽어보세요 ㅎㅎ

사진검    친구신청

소재가 신선 하네요,,외국인이 그린 동양 역사 추리물이라,,
[도서] [서평] 나카노 교코『무서운 그림1』 (0) 2014/06/23 PM 01:42
나카노 교코『무서운 그림1』


무서운그림.JPG


  표지와 제목에 끌려 구입한 책입니다. 라 투르의 《사기꾼》이라는 작품의 부분인데 여자의 눈빛이 섬뜩하지 않나요? 적어도 저는 그점에 끌렸습니다.

  이 책은 미술을 잘 모르는 독자들도 쉽게 접할 수 있도록 전문적인 용어 대신 흥미로운 이야기로 가득 채워져 있습니다. 그림과 관련 된 역사적 사실들과 화가의 개인적인 편력들, 그리고 그림에서 끄집어 낼 수 있는 으스스한 괴담들이 버무려져 있지요. 마치 어릴 적 자주 접했던 괴담책을 다시 읽는 느낌이라고 한다면 과장일까요? '공포'라는 사람들의 관심을 받기 좋은 요소와 미술을 함께 이야기 하는 작가의 관점은 유효한 판단이라고 보입니다. 미술에 문외한인 사람들도 분명 한 번쯤은 눈길을 돌리게 만드는 책인 것은 분명합니다.

  다만 대중성을 의식한 탓인지 작품 외적인 부분이 내용의 주를 이루고, 내적인 부분의 감상은 약하다는 점은 단점인 것 같습니다. 주로 고전 회화만을 다루고 있다는 점도 아쉽고요. 고전 회화의 대부분이 시대상과 밀접한 관계를 맺다보니 작품 외적인 설명이 많은 것도 이해는 갑니다. 하지만 그림이 무섭다고 해서 구입했더니 정작 그림 자체의 무서움은 별로 없다보니 김이 빠지는 부분도 있네요. 

  그림을 조금이라도 볼 줄 아는 분들보다 아예 회화에 관심이 없던 분들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책이네요. 개인적으로는 그뤼네발트의 《이젠하임 제단화》부분이 인상깊었습니다. 가상의 인물이 겪는 이야기를 대상 작품과 연결 시켜 보여주는데, 한 편의 단편 소설을 읽는 느낌이었어요. 아예 이런 컨셉으로 책 한 권 내는 것도 나쁘지 않겠네요.


 원문바로가기  → 여기를 클릭하세요

신고

 
[도서] [서평] 약탈 문화재는 누구의 것인가 - 아라이 신이치 (0) 2014/06/23 PM 01:32

8959666408_1.jpg


식민주의가 남긴 상흔은 아직도 세계 곳곳에 남아 있습니다. 최근에 일본이 일제강점기 시절에 가져갔던《조선왕실의궤》가 다시 한국으로 반환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일본엔 한국의 문화재가 많이 남아 있습니다. 일본 쇼비대학교의 하야시 요코는 일본에 있는 한국 문화재가 개인이 보유하는 것까지 합친다면 30만 점 가까이 될 것이라고 추산하고 있습니다.《조선왕실의궤》가 한국으로 반환될 수 있도록 일본 국회를 설득한 저자 아라이 신이치는 과거의 상처, 식민주의를 극복하고 미래로 다함께 나아가기 위해선 문화재 문제가 꼭 해결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한국 근대사의 역사는 문화재 약탈의 역사이기도 합니다. 병인양요때 프랑스군이 강화도에 있던 한국 문화재를 약탈해간 것을 시작으로 일본으로부터 광복할때까지 수많은 문화재가 국외로 사라졌습니다. 문화재 약탈은 학자들과 군대가 일체가 되어 국가적 사업으로 수행되었습니다. 궁중에서 수백 년 간 축적해 온 재화와 보물이 하루아침에 없어졌고, 조상의 묘들은 파헤쳐졌습니다. 조선시대, 고려시대의 유물은 물론이고 삼국시대나 석기시대의 유물까지 역사적 가치가 있는 것들은 모두 표적이 되었습니다. 문화재 약탈은 곧 역사의 약탈이기도 합니다.

일본은 한국과 중국의 문화재를 수집함으로써 국력을 과시하고자 했고, 동시에 동양 학술과 미술의 정수를 한군데 집결시킴으로써 동양의 정점에 서고자 했습니다. 문화재 약탈은 군사, 경제 뿐만 아니라 문화적인 면에서도 아시아의 유일무이한 패권국가를 꿈꾸는 것으로써 탈아입구론과도 통하는 면이 있습니다. 수집한 문화재는 식민지를 다스리는 방법으로도 사용되었는데, 조선 쇠망의 원인이 상류 사회의 부패에 있다는 정체사관으로 사용되는가 하면, 일본과 한국이 본가와 분가와 같은 관계라는 일한동종설설, 고대 일본이 한반도 일부를 다스렸다는 임나일본부설 등이 등장했습니다.


중요한 역사 문서가 개인 수집가에게 매각되면 일반 사람들이 도서관이나 사료관을 통하여 집단적인 정체성이나 기억의 원천에 접근할 기회가 사라지고 만다. 과거를 상품화하면 공공 영역은 좁아진다. -《공공 철학》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전세계 곳곳에서 식민국가들이 독립하기 시작하면서 약탈 문화재 문제는 중요한 안건 중 하나로 떠올랐습니다. 일본에 대한 연합군의 방침도 어떤 재산이 약탈품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즉시 그 일체를 반환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었습니다. 문제는 약탈 문화재인지 아닌지를 결정하기 위해 일본의 한반도 점령 기간을 1910년부터 할 것인지, 1931년(만주사변) 이후로 할 것인지의 논쟁이었습니다. 기본 규칙은 1910년(한국병합)을 언급했지만 연합군 미술기념물 과장이었던 존 스타우트 소령과 프리어미술관의 아치볼트 웬리는 1931년 이전에 있었던 한국과 일본의 불평등조약, 한국병합 등은 당시 합법적으로 성사되었기 때문에 그 이전은 비현실적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결국 연합군 총사령부는 최종적으로 중일전쟁이 시작된 1937년으로 결정했고 그 이전에 유출된 한국의 문화재는 반환 정책에서 제외되어버렸습니다.

연합군의 전후조치는 독도문제처럼 문화재 반환에 있어서도 많은 분쟁거리를 낳았습니다. 연합국의 대일 정책에 관한 최고 결정 기관인 극동위원회는 한국은 극동위원회의 멤버가 아니기 때문에 배상받을 수 없고, 일본인이 한반도에 남기고 간 재산 취득으로 만족해야 한다고 결정해버립니다. 극동위원회에는 아시아에 식민지를 많이 가지고 있었던 영국, 프랑스, 네델란드가 참여했기 때문에 탈식민지적인 의식이 부족했습니다. 샌프란시스코강화회의 역시 한국의 참가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문화재 문제는 한일 간 직접 교섭으로 해야 했고 약탈 문화재를 가지고 있었던 일본이 쉽게 돌려줄리가 만무했습니다.


대영박물관의 논리는 세계의 식민지에 군림한 대영제국시대의 의식, 제국의식을 노골적으로 보여준다. 영국의 보수적인 정치가나 박물관 관계자가 두려워하는 것은, 위험한 선례가 생겨서 유럽 일대의 박물관이 세계에서 수집한 유물이나 문화재를 잃는 곤란한 상황이다. - p.193 

헤이그협약, 유네스코협약, 유니드로아협약 등이 생겨났고 세계적으로 식민주의 청산을 위한 문화재 반환은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문화재 반환을 거부하는 선진국들의 태도로 인해 난항을 빚고 있습니다. 한국과 프랑스의 관계 뿐만 아니라 그리스와 영국 간의 엘긴 마블(파르테논 대리석 조각군) 반환 문제, 영국과 이집트의 로제타 스톤 반환 문제, 프랑스와 이집트의 오벨리스크 문제 등 돌려받고자 하는 과거 식민지 국가들과 어떻게든 오래 보유하고 싶은 과거 제국국가들간의 문화재를 둘러싼 힘싸움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문화재는 원산지 사람들의 정체성이나 역사에 대한 기억과 깊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것을 되찾고자 하는 움직임은 지역이나 민족의 자립과 정신적 독립의 증표이자 해방의 상징인 것입니다. 아라이 신이치는 미래는 전쟁 방지와 평화 정착의 길로 가야 하며, 평화 정착의 핵심에 문화재가 있다고 말합니다. 문화재 문제는 식민지 시대를 청산하는 상징적인 문제인 것입니다.《조선왕실의궤》뿐만 아니라 데라우치문고, 북관대첩비,《조선왕조실록》등이 반환되었고 프랑스도 외규장각에서 약탈한 도서들을 영구 대여하는 형태로 돌려주긴 했지만 아직 갈 길은 멉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자는 일본에 한국에서 약탈해간 문화재가 남아있는 한, 계속해서 사죄와 배상을 요구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원문바로가기  → 여기를 클릭하세요

신고

 
[도서] [서평] 니콜로 마키아벨리, 군주론 (최장집 한국어판 서문) (0) 2014/06/23 PM 12:33

ma.jpg













[서지 정보] 




최장집 교수의 정치철학 강의 두 번째 책.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독해를 위해 이 책은 두 부분으로 구성했다. 1부 “강의 : 마키아벨리의 정치철학적 도전과
성취”(최장집)에서는 최근까지 학계에서 깊이 있게 논의되어 온 연구 성과를 포괄해 마키아벨리의 정치 이론을 좀 더 내실 있게
소개하고자 했다.


2부 “텍스트 읽기 :
『군주론』”(박상훈 옮김)은 『군주론』을 가능한 한 현대적 변형이나 의역을 최소화하고 원문 안에서 좀 더 풍부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우리말로 옮긴 것이다. 요컨대 정치철학적 맥락과 당시의 역사적 맥락에 따른 해석(1부)과 텍스트 그 자체를 통한
해석(2부)을 분리해 <군주론>의 한국어판 서문을 만들어 보려 했다.













마키아벨리는 정치를 윤리(도덕)와 종교로부터 분리시키는 데 성공했을까(실제로 그것이 분리 가능할까? 아니 반대로 이 둘을 접붙이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 성공 여부는 차치하고라도 이것들을 서로 격리시키는 것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슈미트 역시 그의 책(『정치적인 것의 개념』)에서 말한 바 있다. 「선악의 대립이 그대로 간단히 미추 또는 이해의 대립과 동일시되지 않고, 또한 곧바로 그와 같은 대립으로 환원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다면, 적과 동지의 대립은 더구나 이러한 대립들과 혼동하거나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 (...) 적과 동지의 구별은…… 도덕적, 미학적, 경제적 또는 다른 모든 구별을 그것과 동시에 적용하지 않아도 이론적으로나 실천적으로 존립할 수 있다.」 그러나 물론 마키아벨리가 군주에게 도덕 혹은 종교적 제스처를 권장하는 것은 그러한 통념 속에 빠져있는 피통치자들로 하여금 더욱 오랫동안 머물 수 있게끔 만들려는 의도에서 기인한다(그러므로 시각만큼은 철저하게 통치자의 입장에 있다). 실은 『군주론』은 아무것도 아닌 것일 수 있다. 『군주론』의 해석에 이런저런 시도를 가하는 세간의 논쟁이 불쏘시개 역할을 한 것일는지도. 풀이하고, 해석하고, 점수를 매기는ㅡ 평론가, 비평가, 일반인ㅡ 그러나 이러한 '거간꾼'이 없다면 이 지구상에서 비평가의 존재는 물론이거니와 물건을 사고 소비하는 사람 역시 사라질 것이다. 동시에 우리의 삶은 그만큼 재미없고 의미 없는 것이 되어버린다. 애초 마키아벨리의 정치 이론을 내실 있게 소개하려는 이 책의 취지는 소위 '한국어판 서문'을 만들어보겠다는 최장집의 머리말에서 드러난다. 그는 세 가지 주제에 초점을 두고자 했다고 밝혔다. 하나는 국가에 관한 새로운 비전, 그리고 정치적 현실주의, 마지막으로 민주적 공화주의가 그것들이다. 상대적으로 내가 눈여겨보는 것은 정치적 현실주의인데, 하나의 사회는 공공선의 추구나 공적 질서의 창출과 같은 공적 문제를 위한 집합적 결정을 필요로 하게 된다(p.41)ㅡ 이것은 분명 공리주의와도 맞닿아 있을 것이다. 여기에는 대의제 민주주의, 즉 국민들이 대표를 뽑아 자신의 정치적 의사를 대신하게 하는 제도를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가 간섭하게 되고, 그렇기 때문에야말로 선출직 대표의 역할이 불가피하게 된다. 다시 말해 우리는 특정 엘리트를 선출해 그 엘리트(라 불리는 자)의 통치에 동의하게 되는 것이다(이 메커니즘은 실은 이렇게도 변용될 수 있다. 우리는 우리보다 나은 엘리트를 대표로 만든 것이 아니라 우리를 위해 대신 정치판에서 싸워 줄 용병을 뽑은 것이므로 언제나 감시, 감독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그러나 어쨌든 민주주의란 것 역시 통치 체제의 하나일 뿐이다). 여기에 붙어야만 하는 단어가 하나 있다. 바로 '참여'다. 최장집은 다음과 같이 기술한다. 「귀족들은 민중에 반해 군주와 동맹하거나 귀족주의적 공화정을 고수하기보다 민중의 정치 참여를 허용하는 것이 그들의 부와 명성을 확대하고 고양하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는 점을 이해할 필요가 있었다.」 마키아벨리가 '갈등'의 유익함과 그것의 제도화를 이야기한 것과 함께, 『군주론』이 이율배반적이라는 것을 재차 확인시켜주는 대목이다. 그가 마키아벨리에게서 추론한 관점 중의 하나는 바로 이 갈등을 인간 정치 행위의 본질로 이해했다는 것이며, 정치에서의 선택은 이상주의적인 최선이 허용되지 않으므로 최소주의적 접근 내지는 원리를 따라야 한다는 점이다.(p.52) 그러니까 우리는 최선(이란 것은 존재하지 않으므로)이 아니라 차악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ㅡ 뜬금없지만 이것을 다음의 노랫말로 풀면 이렇다: 「투표는 최선을 선택하는 게 아니고 최악을 피하는 거야.」(「Bullets」 UMC) 처음부터 『군주론』이 민중을 대상으로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최장집이 말하는 20장의 중요성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군주는 '최선의 요새는 민중으로부터 미움을 사지 않는 것이며', '민중이 당신을 미워한다면 어떠한 요새도 당신을 지켜 주지 못한다'는 점을 군주에게 일깨우고 있기 때문이다.(p.67) 이것은 '민중을 다루는 법'으로 보아도 무방할 것만 같다. 그런가하면 『군주론』을 우리말로 옮긴 박상훈 대표는 또 흥미로운 이야기를 했다. 애초 『군주론』은 메디치 가문에 헌정될 의도를 지니고 있었으나 그렇지 못했으며, 오늘날 우리가 읽고 있는 것은 첨언된 내용을 포함하고 있는데ㅡ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을 쓴 진정한 이유가 메디치 가문의 통치자들에게 '덫을 놓기'위해서였다는 식의 다소 믿기 어려운 이야기가 따라붙는다고 말이다.(p.101) 이것은 그의 저작이 통치자들에게만 헌정되었다면 모르겠으나 이미 『군주론』이 일반 대중에게 널리 읽히고 있으므로 마키아벨리 자신과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엘리트(위에서 언급한)를 '엿 먹일 수 있는' 기회로 탈바꿈했을는지도 모른다는 의미가 된다. 최장집은 현실주의가 약한 한국 정치에서 우리 모두가 겉으로 좋은 것만 말하고 속으로는 거짓말하는 '숨은 마키아벨리'일지 모른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동시에 그의 다른 책(『노동 없는 민주주의의 인간적 상처들』)에서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시민권'을 주장했다. 스키너(Quentin Skinner) 역시 마키아벨리의 주요 관심사 중 하나가 통치자들에게 무엇보다 가장 기본적인 의무를 상기시키는 것이라 했다. 그러므로 어떻게 보아도 『군주론』이 통치자의 시각에서 쓰였고 그들에게 읽히는 것이 최초의 목적이었다손 치더라도 여기에는 지극히 당연한 명제, 즉 민중과 참여라는 두 개의 근본적인 모탕이 있어야 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귀결인 셈이다.









 원문바로가기  → 여기를 클릭하세요

신고

 
1 2 3 4 현재페이지5 다음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