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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서평] 죽은 자의 정치학 - 하상복 (0) 2014/05/26 PM 12:03

선거철이 되면 정치인들은 어김없이 현충원에 갑니다. 공식선거운동의 시작을 현충원에서 하는 정치인도 있습니다. 그만큼 현충원, 국립묘지는 특별합니다. 국립묘지에는 죽은 자들만 묻혀있는 곳이 아닙니다. 그곳은 사상이 존재하고 정치가 존재하고 권력이 존재합니다. 국립묘지의 모습은 우리의 과거이며, 현재이고, 미래를 예상하게 합니다. 목포대학교에서 정치학을 가르치는 저자 하상복은《죽은 자의 정치학》을 통해 국립묘지의 이데아를 매력적인 언어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저자는 세 나라의 국립묘지를 비교함으로서 그 차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독자들에게 묻습니다.

"짐이 곧 국가다." 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군주제 국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왕의 신체입니다. 왕의 몸은 하나의 이미지요, 상징이기 때문입니다. 왕의 상징성은 죽어서도 유지됩니다. 그러나 근대국가가 등장하면서 왕이라는 한 인간의 몸에 집대성되던 정치적 이미지를 소실시키고 국민이라는 관념을 도입합니다. 왕과 달리 국민은 물질도 아니고 육체도 없는 근대국가의 이념들을 체현하는 정치적 의지의 개념적 집합체이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단일한 정치적 통합체를 현실로 느끼게 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근대국가의 주인은 국민이며, 국민 하나하나가 곧 국가이기 때문에 국민은 스스로 국가를 지켜야 하는데, 이는 죽음마저 감수해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따라서 국가는 죽음마저 불사하는 자랑스러운 국민을 위로할 상징적 장소가 필요했고, 그것이 바로 국립묘지입니다. 국립묘지는 묘지에 들어올 사람을 선정함으로서 현 체제의 국가가 어떤 인간상을 원하는지를 이야기합니다.



국가로서는 그들의 죽음을 방치해서는 안 된다. 특히 국민적 충격이 너무 커서 감당하기 어려운 죽음일 경우 상황은 더 예민해진다. 죽음의 방치는 국가의 주인이 국민이라는 헌법적 조항이 아무런 의미가 없음을 고백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 p.71

프랑스의 국립묘지, 빵떼옹은 앙시앵 레짐에서 프랑스 혁명에 이르기까지의 과도기적 시기에 새로운 체제, 새로운 국가의 요구에 의해 만들어졌습니다. 프랑스는 왕과 신을 떠나 자유와 평등을 받아들였고, 빵떼옹은 혁명이 요구하는 가치를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소였습니다. 강베타, 볼테르, 루소 등의 인물들이 안장되면서 빵떼옹은 위인들의 삶과 몸에 함축되어 있는 공화주의 이념과 가치를 재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상징성으로 인해 나폴레옹과 왕정복고 시대엔 빵떼옹이 다시 만들어졌고, 결국 완전히 공화국 체제로 전환되면서 현재의 빵떼옹이 됩니다.

미국의 국립묘지, 그중에서도 알링턴 국립묘지는 남북전쟁이 야기한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대립을 재현하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연방 해체라는 정치적 위기 끝에 남북전쟁이 일어났고, 알링턴 국립묘지는 북부의, 북부에 의한, 북부를 위한 공간이 되어야 했습니다. 국립묘지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북부의 군인뿐이었고, 북부의 사상에 동조한 사람뿐이었습니다. 국립묘지를 통해 연방을 위해 싸우다 희생된 북부의 병사들은 영웅적이고 애국적인 국민으로 부활했지만, 남부의 병사들은 반역을 기도한 적으로 간주되어 국민이 될 수 없었습니다. 국립묘지의 추모의례는 단순히 사자의 위로가 아니라 이념적이고 정치적인 분리를 완성시키는 문화적 공간이자 행위였습니다.

우리나라의 국립묘지는 여순사건으로 필요성이 제기되고 6.25 전쟁으로 인해 만들어졌습니다. 광복 이후 새로운 체제가 출범했지만 아직 국민적 정체성은 부족한 상황이었습니다. 그 와중에 일어난 두 사건은 반공주의라는 정체성을 국민들에게 심어주었고, 이승만 시절의 현충원은 반공주의라는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들의 것이었습니다. 군부독재 시절의 현충원은 반공주의에 추가로 군사주의와 민족주의를 받아들였습니다. 한국사회에 민주화가 시작되면서 현충원 역시 민주주의라는 새로운 도전을 받게 되었습니다. 4.19, 3.15, 5.18 민주묘지가 등장해 국립 현충원과 대립구조를 만들었고, 2005년에 있었던 북한 대표단의 현충원 참배나 2009년 김대중 전 대통령의 현충원 안장은 현충원이 지닌 반공주의와 군사주의의 상징성을 흔들고 있습니다.



민주묘지가 건립되면서 애국의 공간으로서 국립묘지의 유일함과 절대성의 위상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곳은 더 이상 보통명사 국립묘지가 아니라 국립 현충원으로 호명되어야 했다. 두 국립묘지는 단순히 명칭만이 아니라 역사와 이념에서 다르다. 현충원이 독립과 호국의 가치로 공동체에 대한 절대적 희생과 충성이라는 국가주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면, 민주묘지는 민주의 이름으로 국가권력과의 정치적 긴장을 말해주고 있다. 현충원이 권력의 표상을 중심으로 사자들이 위계적이고 수직적인 계급 논리로 포섭되고 있는 반면, 민주묘지에는 자유와 민주를 지향한 사자들이 평등을 표상하는 공간에 잠들어 있다. - p.450

국립묘지는 변화합니다. 미국과 프랑스의 국립묘지는 근대사의 전개 과정에서 발생한 정치적 분열과 갈등을 표상하는 공간으로 조형되었지만 프랑스는 빅토르 위고의 안장, 미국은 스페인과의 전쟁을 통해 남부를 받아들이면서 점차 화해와 통합의 기억을 표출하는 정치적 장소로 전환되었습니다. 그러나 저자는 국립 현충원이 여전히 본래의 이념과 가치인 반공군사주의를 고수하면서 국민적 연대와 결속보다는 이데올로기적 강고함과 대립을 계속하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국가는 국민에게 독립, 호국, 민주라는 세 가치를 요구하고 있지만, 국립묘지와 민주묘지의 대립은 가치의 분열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에서 현충원 최대의 크기를 자랑하는 박정희 대통령묘와 전재규 연구원의 묘의 크기를 똑같이 만드는 것과 같은 파격적 변화가 이루어질 수 있을까요? 저자는 좌와 우, 모두가 인정하는 사람을 받을 수 있는 새로운 묘지를 대안으로 말합니다. 그로 인해 저자가 원하는 것은 국립묘지를 통한 정치적 화해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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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서평] 문화가 제품이 되는 나라, 일본을 말한다 - 카와구치 모리노스케 (0) 2014/05/26 PM 12:02

화장실에 들어가자 적외선 센서가 감지하고 변기의 뚜껑을 자동적으로 올립니다. 좌변기는 급속 가열을 사용해 시트 보온기능을 활성화합니다. 용변을 볼 때는 그 소리를 감추기 위해 물 소리가 나는 에티켓벨이 사용됩니다. 화장실 휴지는 뽑기 편하게 삼각형으로 접어져 있습니다. 볼일을 다 보고 손을 씻을때도 센서가 감지하고 액체비누와 물을 자동으로 나오게 합니다. 화장실 내의 비품에는 단 하나도 손을 대지 않고도 모든 용무를 마칠 수 있는 시스템입니다. 이것은 일본의 화장실 시스템입니다.

저자 카와구치 모리노스케는 현재 기업들이 요구하는 것이 어떻게 일을 하느냐보다 무엇을 만들 것이냐로 변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저자는 그 요구를 소화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문화가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문화가 제품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앞서 말한 첨단 화장실 시스템은 문화가 제품에 반영된 케이스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부끄러움과 배려, 청결지향 등 여성스럽고 아이같은, 즉 소녀같은 기질이 일본문화에 강하게 보이며, 이러한 성향을 제품에 반영하는 것이 일본이 나아가야 할 방향성이라는 것입니다. 저자는 실제로 그러한 문화가 반영된 제품 중에서 성공적인 사례들을 예로 듭니다.

책에서 등장하는 제품들은 독특한 제품들이 많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들리지 않도록 개봉할 때 소리가 나지 않는 생리대 제품이나 운전중에 다른 운전자에게 감사함을 표시할 수 있는 땡큐 테일이란 제품을 보면 확실히 배려지향적인 제품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외에도 자전거 라이더와 보행자 사이에서 더 완곡한 의사표현을 할 수 있는 토오량세란 차임벨이나 다른사람이 신경쓰지 않도록 하는 무소음 슬리퍼, 독신 남성들에게 유용한 아저씨 냄새를 없애주는 껌, 심야 저소음 옵션을 갖춘 에어컨과 청소기, 세탁기 등은 자신을 위한 제품이라기보단 다른 사람들을 위한 제품입니다.



일본에서는 딸이 "아빠의 맨살이 닿았던 것은 더러워"라며, 아버지의 팬티를 젓가락으로 집어서 세탁기에 넣었다고 하는 뉴스가 화제가 된 적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현상을 계기로 새로운 제품이 개발되었습니다. 아버지와 딸의 세탁물이 물속에서 뒤섞이지 않게끔, 세탁조 속에 또 하나의 작은 세탁조를 만들어 넣을 수 있는 옵션 부품이 출현한 것입니다. - p.149

저자는 일본 문화가 기반이 되는 제품의 특징에는 의인화, 커스터마이징 지향, 중독 지향, 완벽을 추구하지 않는 문화, 부끄러움, 건강, 극장화, 축소지향, 환경지향적 요소가 들어있다고 말합니다. 부엌칼 공양이나 바늘 공양 문화에서 비롯되는 인간과 기계의 독특한 연결은 애완용 로봇개를 만들고, 순정만화의 케릭터처럼 반짝반짝 빛나는 별이 그려진 커다란 눈동자를 지닌 자동차 헤드라이트 제품이 등장합니다. 차내의 소음을 완전히 없애는것보단 엔진음을 살려서 운전자들이 엔진음을 즐길 수 있도록 합니다. 볼펜을 만들 때 볼펜 돌리기를 하기 좋은 감촉을 가질 수 있도록 고안합니다.



어른스러움 혹은 남성스러움의 특징을 보이는 서양 문화의 구조를 빌려 계속해서 효율을 우선시하는 제품을 만들어나간다면, 일본이 세계를 이끌어 나가는 모습은 보기 어려울 것이라 생각합니다. 소녀적인 기질을 의식적으로 분석하여, 확신을 가지고 제조업에 이를 충분히 활용해나가야 합니다. 실제로 일본은 이미 사람의 개성을 존중하는 기계, 주변 사람들을 배려하는 기계,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연결고리 역할을 해주는 기계를 만들어내는데 있어서 가능성이 보이고 있습니다. - p.210

일본의 문화를 잘 구현한 제품은 일차적으로는 일본에서 판매되는 것을 목표로 하지만, 그런 제품의 경향이 세계적인 관점에서도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예를들어 자동차로 비교하면 남성적이고 성인적인 차가 독일과 북유럽이라면, 남성적이고 아이적인 차가 미국이고, 여성적이고 성인적인 차가 서유럽이라면, 여성적이고 아이적인 차가 일본이 지향하는 차라는 것입니다. 일본이 가진 개성, 오타쿠와 갸루로 대표되는 소녀적인 특수한 문화를 이해하고 제조업으로 효과적으로 연결할 때 새로운 형태의 부를 창초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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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서평] 역사는 누구의 편에 서는가 - 아이리스 장 (6) 2014/05/25 PM 05:58
사드 후작이 쓴《소돔의 120일》에는 보통 사람은 읽기 힘든 표현이 많이 나옵니다. 인간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물어보는 듯한 이 작품은 세계문학 중에서도 기념비적인 작품이지만 그 잔혹성 때문에 국내에서는 오랫동안 금서로 지정되었습니다. 만약 잔혹한 장면이 등장하는 책이 금서로 지정되어야 한다면,《역사는 누구의 편에 서는가》(원제 : The Rape of Nanking)는《소돔의 120일》보다도 먼저 금서로 지정되어야 할 것입니다. 난징대학살을 다룬 이 책은 실제로 있었던 일이면서 아직 관련인들이 살아있을 정도로 최근의 일이기에 더 잔혹합니다. 난징대학살의 기록은 야만스러워 보이지만, 실제론 이성과 합리성이 낳은 현대의 비극이었습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벌인 중국과 일본의 전쟁에서 난징의 함락은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중국 국민당의 수도가 난징이었기 때문입니다. 일본군 사령관 마쓰이는 난징에 입성하기 전에 난징에서 불법적인 행위를 하지 말 것을 명령했습니다. 하지만 마쓰이가 지병으로 인해 잠시 일선에서 물러나고 왕족 출신이었던 아사카가 대리로 들어온 상황에서 난징은 함락되었고, 난징에서 비극이 시작됩니다. 난징을 점령한 일본군이 받은 첫 명령은 항복한 모든 전쟁포로를 죽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조나라 병사 30만명이 생매장됬다고 하는 장평대전을 연상케 하는 이 명령으로 인해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첫 번째 줄에 서 있던 포로들의 목이 잘렸다. 두 번째 줄에 서 있던 포로들은 자신들의 목이 잘리기 전에 앞줄에 서 있던 포로들의, 목이 잘린 몸통을 강물에 던져 넣어야 했다. 살육은 아침부터 밤까지 계속되었지만 이런 방식으로는 2천 명밖에 처리할 수 없었다. 그 다음날 이런 처형 방식에 싫증이 난 일본군은 포로들을 한 줄로 세운 후 기관총을 난사했다. - p.98

중국군을 처리한 일본군은 그 다음엔 민간인, 특히 여성에게 관심을 가졌습니다. 8만 명의 난징 여성이 강간당한 것으로 추산되는데, 장소도, 나이도, 임신부도 상관없었습니다. 열 살짜리 소녀가 대낮에 길거리에서 강간당한 후 살해당했고, 태아를 꺼내 살해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일본군은 시민들을 산 채로 파묻거나, 가슴까지 파묻고 그 위를 탱크로 지나갔고, 사지를 절단하거나, 태우고, 동사시키고, 염산이나 황산에 담그고, 산채로 개의 먹이로 주는 등 잔혹한 행위를 계속했습니다. 이런 행위들은 사진으로 기록되었는데, 무카이 토시아키와 노다 타케시 중위의 100인 목 베기 시합의 경우 일본의 신문에도 보도되어 그 행동을 자랑스럽다는듯이 과시했습니다.

30에서 40만명의 희생자가 나왔을 것으로 추산되는 난징대학살은 일본인이 잔인한 사람들이라서 생긴 일은 아닙니다. 아이리스 장은 난징대학살을 낳은 근본적 원인에도 관심을 가집니다. 장은 그 원인 중 하나로 일본의 교육제도를 주목하는데, 아이들에게 똑같은 옷을 입고 똑같은 헤어스타일을 하고 똑같은 과목을 배우게 하는 것이 얼마나 치명적인지를 언급합니다. 그것은 교육이 아니라 군대였고, 어떠한 사람도 악마로 만들 수 있게 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폭력에 노출되고, 권위에 복종하게 됨으로써 누구나 아이히만이 될 수 있었고, 군대는 그런 토양 위에 사람을 살인병기로 바꿔놓습니다. 권위에의 복종, 타자의 탈인간화와 같은 방식을 도입해 군대는 평범한 사람을 100명의 목을 벨 수 있는 사람으로 변화시킵니다.



착한 아들, 훌륭한 아버지, 다정한 오빠였던 사람들이 전장에 나와서는 양심의 가책없이 다른 사람들을 죽인다. 살인마로 변해 가는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세 달만에 악마로 변해버렸다. - p.111

전쟁이 평범한 사람을 악마로 변신시키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동시에 영웅의 탄생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장은 대학살 와중에도 수많은 사람들을 구원한 사람들 가운데서도 존 라베를 주목합니다. 독일인 사업가이자 난징의 나치당 리더였던 존 라베는 난징에 국제안전지대를 설치해 지도자가 되었고 수십만 명의 중국인을 구합니다. 라베는 중국인을 돕기 위해 히틀러에게 전보를 쳤고, 목숨을 걸고 식량을 구합니다. 라베는 어린 소녀를 강간하려는 일본군과 몸싸움을 벌여서라도 희생자를 구해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독일의 나치가 유대인을 학살하고 있었을 때, 중국의 나치는 중국인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일본군과 싸우고 있었던 것입니다.

지그문트 바우만은 홀로코스트를 분석하면서 폭력, 복종, 합리성으로 구성된 현대 문명의 꽃이라고 지적합니다. 바우만은 홀로코스트는 한때의 광기가 아니라 문명화된 현대는 언제, 어느 곳에서나 또다시 홀로코스트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경고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난징대학살 역시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가공할만한 대량 학살, 효율적 살해, 체계적인 잔혹성은 우리 인간에 내재되어 있는 것이며, 그것이 교육, 군대문화 등으로 언제든지 발산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존 라베의 이야기에도 주목해야 합니다. 대량학살을 주도하던 나치의 사상에 동의하던 나치당원이 대량학살에 저항하는 웃지못할 이야기는, 우리에게 작은 희망을 전해줍니다. 서구인 기준으로 난징대학살은 홀로코스트에 비하면 너무나 초라할 정도로 알려져 있지 않았던 이야기였습니다. 아이리스 장이 1997년에 쓴 이 책은 난징대학살을 영어로 알린 최초의 보고서로 평가받고 있으며, 언제 또 일어날지 모르는 제2의 난징대학살을 경고한다는 점에서 값진 가치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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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력    친구신청

이번에 새판이 출간되면서 제목이 약간 바뀌었군요. 가능하다면 MBC 세기를 뒤흔든 사건의 '난징 대학살' 다큐도 꼭 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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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

헤이토마토    친구신청

아이리스 장 이라길래 "역사는 힘있는 자가 쓰는가" 이 책인 줄 알았는데. 표지랑 부제(난징의 강간)가 비슷한 거 보니 아마 제목이 바뀐거같네요.

앙력    친구신청

제목만 바뀐 것 맞습니다 ㅎ 영문 원제 또한 "역사는 힘있는 자가 쓰는가, 난징대학살 잊혀진 홀로코스트" 이게 맞죠.

앙력    친구신청

아이리스의 죽음이 더 아쉽게 느껴지는 것은, 그녀가 후속으로 집필하고 있던 작품의 내용이 바탄, 죽음의 행진이었던지라.. 어찌 나치의 만행은 기억하면서 일본이 저지른 전쟁범죄를 외면하는 서구세계의 행동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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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의 합니다. 참 안타깝습니다.
[도서] [서평] 다윈의 잃어버린 세계 - 마틴 브레이저 (0) 2014/05/25 PM 05:25
1859년, 런던에서 출간된 한 권의 책은 전세계를 뒤흔들었습니다. 찰스 다윈의《종의 기원》은 분명 지금까지 쓰인 가장 위대한 과학책들 중 하나였습니다. 모든 분야에서 과학적, 신학적, 철학적 반응이 일어났고, 언론인, 문필가, 상인, 사업가, 교육자, 그리고 평범한 사람들까지도 너도나도 의견을 피력했습니다. 주교, 시인, 개 사육자, 가정교사도 다윈의 책을 읽었습니다. 전 세계에서 신분과 직업과 관계없이 사람들은 자연선택을 통한 진화 개념을 논의하고, 그 쟁점을 자신의 문화적 맥락에 편입시켰습니다. 그것은 일반 사회에까지 뻗어나간 과학에 관한 최초의 진정한 대중논쟁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다윈의《종의 기원》은 신이 인간을 창조했다는 신학적인 현안에 도전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지만, 종교적인 차원에서 대규모의 反다윈 운동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다윈이 책을 내기 이전부터 기독교의 논리는 도전받고 있었고, 이미 성경의 내용은 하나의 비유에 불과하다고 대중들에게 인식되던 시기였습니다. 다윈의 책은 신학적인 부분보다는 정치적, 사회적 현안에 더 영향을 미쳤습니다. 다윈의 책에서 영감을 받은 사회다윈주의는 산업계의 부호들과 공장주들에게 환영을 받았고, 부자가 가난한 자를, 권력을 가진 자가 못 가진 자를 착취하는 것에 이론적 토대를 제공해줬습니다. 이러한 흐름은 더 나아가 제국주의와 우생학에 영향을 미쳤고 결과적으로 다윈의 책은 세계 역사에 의도하지 않았던 자국을 남겼습니다.

다윈이 남긴 기록을 보면 신중했던 그는 자신의 책이 미칠 영향력을 어느정도 예상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오랜 시간에 걸쳐 내용을 점검하고 수정했으며 출간 이후에도 계속적인 보완을 거쳤습니다. 특히 인간과 관련된 부분을 언급하는데 있어서 신중했는데,《인간과 동물의 감정 표현》의 출간은《종의 기원》출간 이후 꽤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이런 신중한 태도에도 불구하고 그의 책에서 가장 문제가 된 부분은 과학적인 영역에 있었습니다. 이 책은 우리가 오늘날 과학책이라고 하면 으레 떠올리는 이러저러한 일반적인 사항들에 들어맞지 않았습니다. 이 책의 문체는 놀라울 정도로 개인적이며, 그래프나 수식도 없고, 실험실에서 하얀 실험복을 입고 일하는 연구자도 언급되어 있지 않으며, 전문 용어도 전혀 나오지 않습니다.

다윈은 진화가 작용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결정적인 실험을 한 적이 없습니다. 그런 것들은 다윈 사후 한 세기가 더 지난 뒤에야 등장합니다. 다윈은 책을 통해 그저 생물들에서 변이가 논란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나타난다는 것을 보여줄 뿐이었습니다. 다윈은 어떤 경우엔 운이 없었고, 어떤 경우엔 기술이 없었습니다. 다윈은 동물의 돌연변이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는데, 이 문제는 운이 없었습니다. 다윈이 완두콩을 연구했거나 초파리를 연구했다면 더 나은 결과를 얻었을 것입니다. 마틴 브룩스의 지적처럼 다윈이 그런 행운을 얻을 수 있다면 턱수염을 밀고 린네 학회에서 알몸으로 춤이라도 추었을 것이며, 최신 부리 측정 장비까지 덤으로 제공하는 갈라파고스 제도행 무료 여행 티켓도 포기했을 것입니다.



틀림없이 다윈은 무덤 속에서 통곡했을 것이다. 그는 유전의 매커니즘을 제대로 알지 못해 평생 동안 자신의 진화론을 더 설득력 있게 주장할 수 없었다. 다윈이 제시한 진화론의 증거는 생물과 환경의 비교 연구와 화석기록, 동식물 사육에서 얻은 게 전부였다. 그 증거들은 특별한 것이었지만, 기술적이고 간접적인 것에 그쳤다. 그런데 초파리 염색체에 대한 연구는 실험적 증거라는 정통성을 더해 주었다. -《초파리》p.141

마틴 브레이저의《다윈의 잃어버린 세계》는 다윈이 활동했던 시대에는 절대로 알 수 없었던 문제를 다룹니다. 다윈이 활동하던 시절만 하더라도 캄브리아기에 해당하는 화석들이 폭발적으로 등장했던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문제는, 그 이전의 선캄브리아기의 화석들이 전혀 발견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화석기록만 보면 어느날 갑자기 폭발적으로 동물들이 등장한 것으로 보였던 것입니다. 때문에 화석기록은 다윈의 가설에 정면으로 도전했고, 창조론자들은 이 사실이 신이 동물들을 만들어낸 증거라고 주장했습니다. 캄브리아기 화석에 대해 화석 동물은 난데없이 등장하고, 지질 기록은 커다란 틈새로 가득하며, 골격이 전혀 없는 생물은 보존될 수 없다는 등 다윈은 다양한 가설을 통해 자신의 이론을 보완하고자 했습니다.

다윈의 숙제는 찰스 둘리틀 월컷이 해결했습니다. 월컷은 껍질이나 골격이 없는 연한 동물들의 화석을 발견함으로서 선캄브리아기가 동물 진화의 공백기가 아니라 과정의 일부였음을 입증했습니다. 이런 화석들은 현미경을 통해 관찰해야 했기 때문에 다윈에게는 불가능한 지식이었습니다. 마틴 브레이저 역시 전세계의 다양한 광물들, 특히 인산염 광산에서 얻은 광물들에서 등장하는 동물들을 보여줍니다. 다윈의 잃어버린 세계, 선캄브리아기의 역사는 다윈 후대의 과학자들에 의해 되찾아진 것입니다. 그러나 또 하나의 숙제는 남아 있습니다. 선캄브리아기도 끊임없이 진화의 역사가 계속되었다면, 왜 캄브리아기에 폭발적으로 골격을 갖춘 동물들이 등장했는가 하는 점입니다.

기존의 주류 가설은 캄브리아기가 시작되던 시기에 동물들의 눈이 발달했고, 눈으로 인해 빛에 적응했고, 갑옷을 두르고, 보호색을 갖추는 등의 변화가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마틴 브레이저는 동물들이 골격을 갖추기 시작된 원인으로 입을 지목하며 화석기록에 최초로 나타난 육식 동물을 지목합니다. 단순히 플랑크톤을 흡수하던 동물들이 입을 만들면서 생태계 피라미드가 형성되기 시작했고, 포식자와 피식자의 관계구도에서 골격이 발달할 필요가 생겼다는 것입니다. 다윈의 잃어버린 세계에 대한 호기심으로 과학자가 된 마틴 브레이저는 오랜 여정을 통해 다윈으로부터 시작된 선캄브리아기와 캄브리아기의 난제에 도전하면서 눈에 보이지 않는 미생물부터 지렁이, 대구, 토끼, 고래, 늑대, 코끼리, 그리고 사람에 이르기까지 공진화를 하는 공생관계에 있는 생태계의 아름다움을 독자들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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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서평] 조선의 탐식가들 - 김정호 (2) 2014/05/25 PM 05:04
이 세상이 흑백이었던 적은 단 한번도 없었지만, 한국전쟁 이전 서울의 모습을 컬러사진으로 보게 되면 과거의 사진이 아닌것 같은 묘한 느낌을 받곤 합니다. 1950년대의 한반도가 컬러인 것마저 어색한 마당에 조선시대가 컬러였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듭니다. 테크놀로지는 인간이 세상을 경험하고 지각하는 방식 자체를 변화시키고, 공진화합니다. 인간을 둘러싼 기술생태계 자체가 근본적으로 변화하면, 사회와 개인의 존재 양식 자체를 다르게 규정짓게 됩니다. 우리는 사진을 통해 과거를 생각하면, 흑백사진의 모습을 과거의 모습으로 인식합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조선시대의 음식문화 역시 자료의 부족 때문에 많은 오해를 받고 있습니다. 저자 김정호는《조선의 탐식가들》을 통해 독자들에게 진짜 조선시대의 음식문화라는 대동여지도를 보여줍니다.

불교를 기반으로 한 고려가 멸망하면서 육식 금지는 해제되었지만 성리학을 기반으로 하는 조선 역시 이념적으로 음식을 즐기는 것에 대해 엄격했습니다. 3첩, 5첩 밥상과 같은 규제를 통해 백성들의 밥상을 통제했고, 사대부들도 성리학의 예를 식사예절로 시작했습니다. 청백리처럼 간소한 식사를 하는 것은 이념적으로 장려된 부분이기도 하지만, 더 중요한 이유는 경제적 이유였습니다. 너도나도 풍족하게 먹을 수 있는 시대가 아니었고, 주로 먹던 고기가 소고기였기 때문에 농촌의 농사역량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문제였습니다. 정부에서 소고기 금령을 내리자 율곡이이 같은 사람은 평생 소고기를 먹지 않았습니다.

정부의 규제로 대중의 기호를 억제하고자 하는 시도는 역사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미국의 금주령처럼 조선시대의 소고기 금지령 또한 그런 정부의 시도 중 하나였습니다. 소고기 금령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역사를 조금만 알고 있다면 누구나 예상할 수 있습니다. 소고기 금령으로 인해 유통, 판매가 음성화되었고 가격이 상승했습니다. 사대부는 금령을 지킬 생각도 없었고 정부도 단속할 능력이 없었습니다. 사대부들 뿐만 아니라 양민들도 소고기를 즐기다 보니 농사를 짓는 주요 동력인 소가 줄어들었고, 이는 개인적인 차원이나 국가적인 차원에서 모두 심각한 문제였습니다. 하지만 조선사람들은 소고기를 먹는것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동국세시기》(1849)에 따르면, "서울 풍속에 음력 10월 초하룻날, 화로 안에 숯을 시뻘겋게 피워 석쇠를 올려놓고 소고기를 기름장, 달걀, 파, 마늘, 산초가루로 양념한 후 구우면서 둘러앉아 먹는 것을 '난로회'라고 한다."라고 하였다. - p.73

조선사람들은 소고기 뿐만 아니라 개고기, 양고기 등 다양한 고기를 즐겨먹었습니다. 개고기의 경우 당시에도 애완용 개와 식용 개의 구별을 해서 전문적으로 키워먹었을 정도였습니다. 기술을 가진 절의 스님들을 착취해서 다양한 두부요리를 해먹었고, 순챗국과 농어회, 대게 등 현대인도 별미라고 인정할만한 음식들을 먹었습니다. 양세욱이 모든 음식은 퓨전이라고 지적한 것처럼 조선시대에도 중국과 일본의 음식들이 들어오면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일정 부분 변화해서 조선화되기도 했습니다. 특히 일본요리는 큰 인기를 끌었는데, 일본음식은 설탕을 사용했기 때문에 그 단맛은 조선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았습니다.

역사학자 하비 레벤슈타인은 음식문화의 발달, 전파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상층민의 음식문화라고 지적합니다. 중세 유럽인들의 고혈을 짜서 만든 호화로운 교회들이 그 당시에는 민중들에게 고통을 안겨줬지만 현대에 문화재산으로 남은 것처럼, 조선의 음식문화 역시 사대부를 중심으로 꽃피웠고 계속 이어져 현대의 한국 음식문화의 기원이 됩니다. 저자는 조선시대의 문헌을 바탕으로 당시에도 기름진 음식문화와 현대의 음식 칼럼니스트와 같은 사람도, 대식가도 존재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결국 조선시대나 현대나 사람 사는것은 공통점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저자는 당시의 사대부들이 '탐식가'였다는 사실을 지적합니다. 조선시대에도 현대인들처럼 고기와 별미를 즐기는 사람들이 존재했지만, 그것은 일부 사대부의 특권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중세 기독교의 7대 죄악론에서 언급하듯 사대부들의 음식문화는 '탐식'이었습니다. 조선시대의 음식문화를 조명하면서 저자는 현대인의 음식문화를 말합니다. 음식이 많다못해 절반이 버려지는 현대사회에서 우리는 음식을 여전히 '탐식'으로 즐기고 있지는 않은지 저자는 묻습니다. 저자는 '탐식'에서 '미식'으로 나아갈 것을 주장합니다. 그것은 음식에 담긴 삶을 맛보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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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를 먹으려면 세종대왕님을 내야하죠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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