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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는 글쓰기] 매미소리 (4)
2014/09/21 AM 01:00 |
4호선에서 7호선으로 갈아탈 수 있는 노원역의 환승통로는 아주 길다. 무료하여 한참을 공상이나 하는 길에 뒤에서 매미 소리가 들려왔다. 올해는 도무지 매미 우는 소리를 들은 기억이 없다. 요새는 어제 일도 잘 기억하지 못하므로 줄기차게 들어왔는데도 기억하지 못하는건지도 모르고 아니면 세계를 뒤흔드는 이상 기온 탓에, 혹은 도시의 방역체계가 매미를 살 수 없도록 만들어버려서 실제로 한 마리도 울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반가운 마음에 뒤를 돌아보았다.
그 소리는 마치 밈과 맴의 중간 소리인 것 같기도 하고, 음과 옴의 중간 소리 같기도 했다. 훈민정음이 처음 만들어지던 시기였다면 이 음가도 모두 표기할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시간을 거스르지 못하는 태생적 한계로 정확한 표기는 그만 두기로 한다. 다만 입보다는 코, 코보다는 이마 아래의 미간에 가까운 쪽에서 나오는 소리인 것만은 분명했다. 그 소리는 실제로 내 뒤에서 걸어오던 한 노신사의 미간에서 공명했다. 악어가죽 스타일의 빨간 구두, 빨간 바지, 빨간 조끼, 하늘색 셔츠에 뿔테 안경을 쓴 노신사는 홀로 긴 통로를 걸으며 매미 소리를 냈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을 맞닥뜨렸을 때 나는 의미를 찾는 쪽이다. 마지막 남은 도시의 로맨티스트로 그는, 이제는 아무도 그리워하지 않는 자연의 소리를 재연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혹은 긴 통로 끝에서 끝으로 부딪혀오는 소리의 공명 속에서 사람들의 관심을 끌며 존재를 다시 확인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런 방법으로 스스로를 다시 확인하고 싶어하는 한 사람을 알고 있는 나로서는 씁쓸한 웃음이 배어나왔다. 시간이 흐를수록 대부분의 사람은 존재를 잃고 있다. 살아 있으면서 잊혀진다는 것은 괴로운 일이다. 어쩌면 모두, 때로는 소리를 지르는 방법으로 살아있음을 확인하고 싶다.
아!!!
밈밈밈. 나도 소리를 지르고 싶다. 존재함으로. 존재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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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는 글쓰기] 속초행 열차 (1)
2014/09/09 PM 06:40 |
카톡이 왔다.
야.
인터넷 기사를 재밌게 읽고 있던 중이라서 천천히 답하려고 했더니 어느새 같은 말로만 숫자가 이십하고도 육이다.
왜.
급한 일인가 싶어 서둘러 답하니 바람이나 쐬러 가자고 한다. 준비 다하고 어느새 속초로 가는 도로 위를 달리고 있다. 어제와 달리 오늘 서울에는 차가 없어 바퀴가 끊임없이 돈다. 속초행이라 하니 계속해서 '속초행 열차'라는 단어가 머리를 맴돌았다. 속초에는 기차역도 없는데. 그렇지 않나. 그래도 강원도는 기차로 가야지. 그런게 낭만이잖아 하던 생각이 달리는 차, 차창 밖에서 불어온 바람에 다 날아가 버렸다. 몇 년 전이었으면 이랬을까. 좀 피곤해도 기차를 타고 가까이 가보자고 친구를 졸랐을지도 모르지. 나도 어느새 낭만의 끄트머리에 서있다.
아. 속초행 열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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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는 글쓰기] 2014. 09. 06 (0)
2014/09/06 AM 01:51 |
1. 어제는 코엔 형제의 영화 시리어스 맨을 보았다. 이 영화를 관통하는 것은 오프닝의 씬으로 계속해서 무엇이 정상이고 무엇이 비정상인지에 대해 묻는다.
2. 집에 가는 길 충무로에서 한 무리의 대학생이 지하철에 탔다. 술을 좀 마셨는지 발그레해진 얼굴로 정신없이 떠들기를 몇 정거장, 도저히 참지 못하고 "조용히 좀 합시다."라고 말했다. 반응을 보인 것은 일고여덟 명의 일행 중에서 남자 한 명과 여자 한 명. 여자는 죄송하다고 말한 반면 남자는 아주 성의 없이 대답했고 내가 내릴 때까지도 시끄럽게 떠들었다.
3. 강준만 교수의 싸가지 없는 진보라는 책은 조너던 하이트 교수의 바른 마음에서 말하는 아이디어에 기초하고 있다고 들었다. 일종의 외국인 혐오 같은 것은 투표의 양상에서 진보 쪽에는 말도 안되는 이야기에 해당하지만, 보수 쪽은 마음대로 이용하며 도덕률을 자극할 수 있다. 따라서 진보는 계급적 대변자는 될 수 있지만, 도덕적 대변자가 되는 것은 실패. 보수에는 도덕적으로 공감하는 층이 더 많아지고 진보는 재수 없는 인간들의 모임처럼 보이기도 한다는 것.
읽고 싶었는데 아직 못 읽어서 맞기나 한 얘긴지도 모르겠다.
4. 웃긴 것이 인간의 도덕성에 기초하고 만든 담론이라 어디서나 적용이 된다. 아마 내 이야기에 내가 생각한 수준의 답변을 한 것은 나와 비슷한 도덕수준을 가진 사람일 것이고 그 반대는 아닐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공중도덕 안에서는 지하철에서 시끄럽게 떠드는 것이 몇 데시벨인지 기준을 두지 않아도 충분히 비도덕적인 일인데, 사람마다 기준이 달라서 다른 사람에게는 충분히 용인될 수 있는 수준일 수도 있다. 나 외 지하철 한 량에 탄 사람들이 모두 마침 이어폰을 끼고 스마트폰으로 음악을 듣고 있었다고 생각해보자. 내 행동은 지랄에 가깝고, 한없이 예민한 또라이 같은 일이 된다. 도덕은 기준이 다양하고 처벌이 불가능하므로 문제가 되어버린다. 그러니까 나는 내 기분에 맞춰서 다른 사람들이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는 권리를 방해한 것일수도 있다.
5. 다시 무엇이 정상이고 무엇이 비정상인가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온다. 영화에서도 마찬가지지만 애초에 이런 것이 의미가 있기는 할까. 어차피 현실은 비정상이 더 정상 같아져버린지 오래라서 이제 정상과 비정상을 가릴 수 없게 되었다. 게다가 내가 비정상과 정상을 판별할 수 있다는 것도 이제는 오만에 가까운 것처럼 보인다.
그래도 가장 화가 나는 일은 이런 생각 자체를 안하고 마음 가는대로 사는 사람이 더 편안한 마음 상태를 가질거라는 것. 참 개같은 일이기도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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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는 글쓰기] 수치 1 (0)
2014/08/30 AM 05:28 |
수치
짝사랑만을 계속하다가 갑작스레 죽음을 맞고 나서 나는 화가 나 따졌다. 왜 방향이 마주해야만 사랑이 성립되나요. 크기가 더 중요합니다.
눈을 뜨니 머리 위로 애정의 수치가 떠다니는 새로운 세계다.
내가 사랑하는 그녀는 그녀의 연인과 그녀의 사랑을 합친 것보다 내가 그녀를 수치적으로 훨씬 더 많이 사랑했기 때문에 연인을 버리고 내게로 왔다. 믿던대로 나보다 그녀를 사랑하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잠시의 행복 후엔 나를 짝사랑하던 옆집 여성의 사랑이 나와 그녀의 사랑 그 총합보다 수치적으로 우수하였으므로 나는 곧 그녀의 남편이 되었고, 다음 날에도 그 다음 날에도 이별이 계속되었다. 모두가 애정에 표류하고마는 끝을 알 수 없는 이별의 연속.
끝내는 내 외침만이 남았다.
알겠어요. 미안해요.
사랑에 수치를 매기다니 내가 잘못 생각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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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는 글쓰기] 심장병 (0)
2014/08/27 PM 06:10 |
심장병
어느 날, 왼팔을 내려 놓을 수가 없게 되었다. 팔은 시시때때로 방향을 바꾸기는 하였으나, 내 통제를 벗어나 다시는 몸에 닿지 않았다. 마치 내게서 멀리 떠나려는 듯이 이리저리 발광하고 있었다.
왼팔이 무슨 일을 저지를까 두려워 나는 급히 병원을 찾았다.
당신은 심장병을 앓고 있습니다.
그가 내 왼팔이 왜 자꾸만 내게서 떠나려 하는지 말해주지 않았기에 그 의사의 말을 나는 믿지 않았다.
왼팔이 다시 정상이 되려면 얼마나 걸릴까요.
2년? 3년? 나는 알 수 없습니다. 시간이 약입니다.
돌팔이군.
나는 날뛰는 왼팔과 함께 병원을 나왔다.
몇 개월이 지나자 나는 의사의 진단이 옳았음을 알았다.
내 심장은 나보다 더 똑똑한 놈이다. 통제할 수 없는 감정을 왼팔에 버리고선 자기는 규칙적으로 하던 일을 계속 해나가기로 마음먹은 모양이다.
왼팔의 발작은 줄었다. 비가 오거나 추억을 떠올리거나 또는 잠이 들기 전엔 통제에서 벗어나 혼자 난리를 치긴 하지만 그 정도는 그냥 견딜만 하다.
그냥 견딜만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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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문앞에서 발랑 뒤집어져 브레이크 댄스를 출때 화들짝 놀라...워이쿠!!!ㅋㅋㅋ
자연의 소리 좋죠. 산 중턱에서 살고 지내니 여름에는 꼭 매미소리에 잠이 깹니다.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