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의 외적 갈등만 본다면 검은 각반은 패했고 제대병들은 승리했습니다.
그런 이유로 기존의 해석에서는 이 작품을 군사독재에 대한 비판으로 봅니다. 하지만 어딘가 석연치 않습니다.
분명히 제대병들이 외적 갈등에서 승리하고 열차안은 민주화가 됩니다.
하지만 그 민주주의의 모습은 광기와 폭력이고, 지켜보던 주인공은 오히려 민주주의에 강한 혐오감을 느낍니다.
아마도 그는 이 열차칸에서 그런 생각을 하는 유일한 인물일 것입니다.
그런데 작가는 하필 그 인물을 주인공으로 설정했습니다.
(이 공식은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에도 동일하게 적용할 수 있습니다.)
'작가의 의도는 외적 갈등에 있을까요, 주인공의 태도에 있을까요?'
이렇게 자신의 침묵을 합리화할 핑계를 찾아낸 주인공은 열차칸을 버리고 도망칩니다. (연재 처음에 말씀드린 것처럼 이 열차칸은 '대한민국'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만약 다시 이런 상황에 처한다면, 그때 주인공은 어떤 선택을 할까요? 검은 각반에 맞서 싸울까요, 아니면 그들의 지배에 적극 동조할까요?
저는 그가 적극 동조할 거라 생각합니다. 제대병들의 광기와 폭력을 억누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니까요.
그런데 도망간 곳에서 다시 한 번 홍동덕을 만납니다.
게다가 이번에는 그가 주인공보다 한 발 빨랐습니다.
주인공은 도저히 이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어 당황합니다. (결국 이 소설은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내가 지식인이라는 증명'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러다가 그는 이 소설의 제목이기도 한 '필론과 돼지'라는 우화에서 겨우 답을 찾아냅니다.
잠시 이 우화의 설정을 소설 속 이야기와 비교해보도록 하죠.
이처럼 주인공을 필론에 등치시키기엔 무리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