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만화는 원작 소설을 먼저 읽으시고 보시면 더욱 재미 있습니다.
이정태 기자는 조 원장에게서 '지친 중년'의 모습과 '광기 어린 독재자'의 모습을 동시에 발견합니다. 이것은 두 가지 사실을 시사합니다.
1. 독재자도 권력을 잃으면 평범한 소시민으로 변한다.
2. 하지만 다시 권력을 쥐게 되면, 언제라도 독재자로 부활한다.
조 원장은 간척공사를 시작하면서부터 가족과 떨어져 살았습니다.
지금도 가족과 헤어져 혼자 소록도로 돌아와 있습니다.
즉, 지금의 그는 모든 것을 버리고 오직 동상만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344 페이지에서 이정태는 이렇게 말합니다.
'어느 잡지에 원장님과 이 섬사람들의 이야기를 쓴 적이 있었지요.'
이것은 당시 <신동아>에 연재되고 있던 이 소설을 말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어서 이정태는 장황하게 자신의 괴로움을 토로하다가, 불쑥
'전 원장님 개인만은 구해드리고 싶었다는 말씀입니다.'
라고 말하는데, 소설 내적 상황으로만 본다면 이 대사는 다소 어색합니다.
하지만 여기에 작가가 조창원 씨에 대한 미안함을 담았다면 전혀 어색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기존의 해석에서는 이정태를 이규태 씨와 연결시키지만 저는 그를 작가인 이청준 씨와 연결시킵니다.
즉, 현실의 미안함에 대해 작가의 대리인인 이정태가 조창원 씨의 대리인인 조백헌에게 소설 속에서 사과를 한 것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345 페이지에서 조 원장의 태도를 보면, 그는 지금도 간척공사가 실패라고 인정하지 못하는 듯 합니다.
독재를 다룬 소설에서는 보통 독재자의 처절한 몰락으로 끝을 맺습니다.
그런데 이 소설은 거기서 끝나지 않고, 몰락한 독재자가 마무리되지 못한 자신의 욕망 때문에 새로운 사회에서 잠재적인 위험요소로 자리잡게 되는 과정까지도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비록 3부에 와서 이야기가 많이 모호해졌음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으로는 바로 이 3부 때문에 이 작품이 명작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조 원장은 섬을 다시 과거로 되돌릴 기회만 노리고 있습니다.
이처럼 단 한 번이라도 권력을 쥐고 동상에 대한 욕망을 품은 사람은 비록 처참한 실패를 겪은 후라도 차마 그 욕망을 버리지 못하고 기회만 주어진다면 같은 실수를 반복하게 됩니다.
따라서 이런 불행을 막으려면 지배자 한 사람의 인성에 기댈 것이 아니라 시스템적인 감시가 필요하다는 것이 작가의 생각인 것 같습니다.
이것은 소설의 결말에서 이상욱과 이정태가 함께 문틈으로 조 원장을 훔쳐보는 모습으로 구체화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