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에고 벨라스케스
디에고 벨라스케스
17세기 바로크 시대 최고의 화가로 스페인 세비야 태생
그는 스페인의 하급 귀족인 이달고 출신으로 평생 정식 귀족이 되기 위해 노력했는데
항상 귀족과 왕족들에게 차별을 받았기 때문에 당시 난장이들의 처지도 이해하고 있었다.
당시 인권이라는 개념이 없었던 유럽에서 난장이들은 귀족과 왕족들의 장난감으로 아주 천한 취급을 받았다.
난장이들은 귀족들을 돋보여주는 도구로 사용되었고 서커스를 하거나 유희꺼리밖에 되지 않았다.
귀족이나 왕족의 그림을 그릴때 그 옆에 서있는 난장이들을 같이 그려서 그림 주인공을 돋보여주기 위한 장치에 불과했다.
그시절 유럽의 그림 속의 난장이들은 모두 우스꽝스럽게 그려질 뿐이었다.
또 왕족이 잘못하면 대신 매를 맞거나 귀족들은 단지 재미로 지나가는 난장이들을 뻥뻥 차기를 반복했다.
그러면 난장이들은 그저 웃으며 자신들의 운명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어느날 스페인 펠리페4세의 궁정화가였던 벨라스케스는 자신이 섬기는 왕녀의 매를 대신 맞고온 세바스찬 데 모라 라는 난장이를 불렀다.
영문을 모르고 따라온 난장이 모라는 그에게 주어진 값비싼 빨간 옷감을 두르고 거기 앉아보라는 벨라세케스의 말에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벨라스케스는 모라에게 말했다. 자연스럽게 네가 평소에 생각하던 것들을 떠올리며 앉아있으라고 말할 뿐이었다.
벨라스케스는 모라를 우스꽝스럽게 그리지 않았다. 이 그림은 유럽에서 처음으로 오로지 난장이만을 위한 초상화였다.
그림속의 난장이 모라는 자신의 힘들었던 삶을 마주하듯 그려졌다.
벨라스케스는 난장이로서 장난감으로서가 아니라 인간의 존엄성을 나타내도록 그림을 그려내었다.
몇시간이 지난후 벨라스케스는 모라에게 그림을 보여주었다. 모라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벨라스케스 자신조차 차별받았기에 누구보다 당시 난장이의 삶과 고난 차별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벨라스케스는 모라에게 말했다. 늘 미안했다고..
그런 벨라스케스도 차별을 피해 진정한 귀족이 되기위해 엄청나게 노력했다. 그리고 그의 평생 소원은 죽기직전에 이뤄졌다.
마침내 궁정화가로 무슨 일이든 하며 잘보인 덕분에 펠리페4세가 그에게 귀족을 칭할 수 있도록 허락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후 얼마안가 벨라스케스는 수많은 작업에 몸이 약해진후 61세의 나이에 열병으로 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