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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브컬쳐] 창세인의 마법공방 : Chapter. 2 신들의 시대 (2) - 약속의 땅 이스라엘 (0) 2014/07/18 PM 0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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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인의 마법 공방 Chapter. 2 - 신들의 시대 (2)


 


약속의 땅 이스라엘


 


모세.jpg


 



기원전 13세기 경. 이집트에서 부역에 종사하던 일단의 노예들이 왕자인 모세를 따라서 홍해를 건너 탈출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이 노예들은 약 40년을 광야에서 방랑한 끝에 마침내 '약속의 땅'인 가나안에 도착해 자신들의 왕국을 세운다.


 


바로 이스라엘(헤브라이) 왕국의 탄생이었다.


 


이스라엘 왕국은 3대 왕인 솔로몬 대까지 번성했지만, 이후 북쪽의 이스라엘 왕국과 남쪽의 유다 왕국으로 분열되었다. 결국 이스라엘은 BC 7222년 앗시리아의 침공을 받아 멸망했으며, 유다는 BC 587년 바빌로니아의 침략으로 멸망하고 백성들은 바빌로니아로 끌려갔다. (바빌론 유수)


 


그러나 왕국이 멸망했다고 해서 이스라엘 왕국민인 유대인의 전통마저 끊긴 것은 아니었다. 바빌론 유수 이후 50년 만에 바빌로니아가 페르시아의 키루스 2세에 의해 멸망하자, 유대인들은 고향으로 돌아와 자신들의 성전을 재건하고 신앙 활동을 이어갈 수 있었다.


 


이후 유대인들은 이 지역을 정복한 셀레우코스 왕조와 로마 제국의 지배 하에 들어갔다. 로마 시대의 유대인들은 로마 제국의 압제에 맞서 총 2차례 반란을 일으켰지만 모두 패배하여, 결국 AD 2세기 경,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으로 들어가는 것 자체가 금지되고 많은 수의 유대인들이 노예로 팔리거나, 세계 곳곳을 떠돌면서 방랑하게 되었다. 이것이 유대 민족의 고난의 상징인 '디아스포라'이다.


 


유대인들은 로마와 지중해 연안 뿐 아니라, 일부는 인도 , 중국, 그리고 미 대륙으로 진출하였다. 그들은 대부분 이주한 사회에 녹아들지 않고 자신들만의 전통과 종교를 지켰기 때문에 심한 배척과 미움을 받았다. 2차 세계 대전 때 나치 독일에 의해 자행된 유대인 학살은 사실 유대인에 대한 유럽인의 뿌리 깊은 증오가 표면화된 것이었다.


 


2차 세계 대전 이후 일어난 시오니즘 운동의 결과로, 유대인들은 마침내 2천년 동안 잃어버렸던 자신들의 고향을 찾았으나, 아이러닉하게도 그들이 비운 2천년 동안 그곳에 정착한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자신들이 겪었던 망국의 설움을 그대로 되갚아주고 있는 실정이다.


 


오랜 방랑 기간을 거친 유대인들은 여러 인종과 핏줄이 섞였기 때문에, 혈연보다는 신앙을 민족의 척도로 삼고 있다. 2천년동안 지속되어 온 그들의 신앙은 당연히 다양한 분파를 낳았고, 신비주의적인 색채를 띈 분파도 다수 생겨나 중세 및 근대의 마법 계보에 큰 영향을 미쳤다.


 


랍비.jpg


 



- 율법의 계승자들


 


유대 민족의 종교인 유대교는 앞서 '광명의 제국 페르시아' 편에서도 언급되었 듯이 페르시아의 조로아스터교를 비롯한 다양한 당대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종교의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유대교의 잘 정비된 율법과 경전은 이후 크리스트교, 이슬람교 등 세계적으로 영향을 떨치는 종교의 모태가 되었고, 따라서 그 영향력 면에서는 모든 종교 중 으뜸이라고 할 수 있다.


 


유대교는 현존하는 가장 뿌리 깊은 유일신교 중 하나이다. 그들이 모시는 신은 바로 야훼. 우리 나라에서는 여호와, 혹은 하나님으로 더 잘 알려져 있는 신이다. 그러나 이러한 명칭은 가칭일 뿐으로, 히브리 고문서에 전해져오는 신의 이름은 ????(로마자로는 YHWH)의 4글자이다. 고대 유대인들은 신성한 신의 이름을 감히 함부로 부를 수 없다고 하여 신의 이름을 적을 때 이 4글자를 썼는데, 이를 '테트라 그라마톤(Tetra grammaton: 신성한 네 글자)'이라고 부른다. 야훼라는 이름은 이 4개의 자음에 편의상 모음을 붙여 부르는 것이다. 고대 유대인들은 신을 가리켜 나의 주님이라는 뜻의 '아도나이(???????)'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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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교에서 신을 지칭하는 신성 문자. YWHW의 네 글자는 모음을 붙여 YaHWHe라고 발음되었다.>


 


본래 고대 이스라엘에서는 유대교의 중심지인 예루살렘 성전이 있고, 그 성전에서 신께 예배를 드리는 제사장들이 있었다. 그러나 디아스포라 이후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되자 제사의 전통은 사라지고, 성직자들 역시 자취를 감추었다. 이스라엘이 재건된 현대에도 과거 예루살렘 성전이 있던 자리에는 이슬람교의 모스크가 위치하고 있으며, 따라서 제사의 전통은 부활하지 못하고 있다.


 


대신, 유대교는 야훼의 가르침인 할라카(????: 율법)를 공부하고 준수하는 것을 매우 중요시한다. 유대인의 정신적 스승인 랍비(??????)는 성직자는 아니지만, 바로 이러한 율법을 계승하고, 보존하는 일을 맡고 있어 유대교의 실질적인 성직자 역할을 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 본인도 바로 이러한 랍비 중 한 명이었다는 설이 있다. 


 


유대교의 율법서에는 모세가 남겼다는 5편의 경전인 <토라(혹은 펜타튜크)>, 예언서인 <네비임>, 성문서인 <케투빔>이 있으며, 이 세가지 율법서의 첫머리를 합쳐 <타나크>라고 부른다. 이 타나크는 곧 크리스트교의 구약 성경에 해당한다. 또한 유대교의 율법, 윤리, 철학, 관습, 역사를 담은 랍비들의 저서로 <탈무드(?????)>가 있는데, 이 탈무드는 전기 울법서인 <미슈나>와 후기 토론서인 <게마라>로 구성되어 있다.


 


예수 그리스도를 메시아(????????: 구세주)로 생각하고 숭배하는 크리스트교와, 예수를 위대한 선지자 중 하나로 보는 이슬람교와는 달리, 유대교는 예수를 선지자의 반열에 넣어주지도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유대인들에게 있어 메시아란, 그들의 잃어버린 왕국을 재건해줄 다윗왕과 같은 존재를 지칭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일부 유대교 원리주의자들은 현재 재건된 이스라엘 역시 메시아에 의해 건국되지 않았기 때문에 진정한 유대인의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다. (깐깐한 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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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리에의 탐구, 카발라


 


모든 종교에는 이면이 있듯이 유대교 역시 음지에서 뻗어나간 신비주의 종파들이 있었다. 이러한 종파의 성향을 통칭 '카발라(????????)'라고 한다. 카발라에서는 타나크 중에서도 모세가 집필한 <토라>를 가장 중요한 경전으로 치며, 그 안에 신이 모세에게 준 술법이 숨겨져 있다고 믿는다.


 


본래 유대교에서의 해석학은 크게 ① 페샤트(겉으로 나타난 뜻의 해석), ② 레메즈(비유나 은유를 찾음), ③ 데라쉬(랍비다운 고차원적인 해석), ④ 소드(토라에 내재한 비밀스러운 신비를 발견)의 4단계로 이루어지는 데, 카발라는 이 중 4번째 단계인 소드를 지칭하는 말이다.


 


따라서 본래 유대교에서의 카발라는 토라의 깊은 내면을 연구하는 일종의 해석학으로, 신비주의적 성향은 짙지 않았다. 그러나 크리스트교와 그 뿌리인 유대교의 영향을 받은 중세 신비주의자들이 이러한 카발라를 당시 유행하고 있던 영지주의, 악마주의, 연금술 등과 혼합하면서 카발라는 그야말로 중세 신비주의의 대명사로 둔갑하고 말았다.


 


카발리즘은 르네상스 시기인 15~16세기에 이탈리아, 스페인, 프랑스 등지에서 크게 퍼져나갔으며, 현대의 신비주의에까지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만화 '강철의 연금술사', '신세계 에반게리온' 등에 등장하는 생명의 나무(세피로트)나 소설 '가즈나이트'에 등장하는 대천사 메타트론은 바로 이러한 카발라에서 유래한 존재들이다.


 


카발라의 마법사인 카발리스트가 행하는 술법은 정령을 통해 자연계에 변화를 시키는 것이다. 단, 그 마법은 반드시 신의 율법을 기초로 하고 있다. 카발리스트는 언어의 힘을 통해 신의 힘인 열 개의 세피로트를 현실로 끌어내 그 힘을 빌려 술법을 행하는 것이다. 카발리스트는 관용, 인내, 용서, 동화, 분노의 억제, 박해자에 대한 자비, 복수심의 제거, 선행, 동정, 정직, 초월적인 자비, 성장, 그리고 순수라는 13가지 덕목을 통해 자신의 의식을 개발할 수 있으며, 생명의 나무를 통해 신과 접촉할 수 있게 된다. 


 


이렇게 자격을 갖춘 카발리스트는 목욕 재개를 한 후 신의 이름이 씌여진 법의를 입고 신의 이름을 영창하게 되는데, 이 때 그의 영혼은 신에게 이르는 일곱 궁전으로 올라가게 된다. 이를 메르카바(Merkabah)라고 부른다. 이 7궁전을 모두 거치고 나면 술자는 사물의 본질을 파악하고 자연을 직접 지배하는 권능을 얻게 된다.


 


토라 외에 카발라의 경전으로는 <세페르하 조하르(광휘의 서)>, <세페르 예치라(창조의 서)>, 그리고 여러 외경(성경으로 인정되지 않는 유대교의 경전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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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강철의 연금술사'에 나오는 진리의 문. 세피로트의 문양이 새겨져 있다.>


 


- 카발라의 용어들


 


세피로트(Sefirot): 통칭 생명의 나무라고 불리지만, 북구 신화의 세계수 이그드라실이 실제 나무인 것에 비하여 세피로트는 그저 뻗어나가는 모양이 나무처럼 생겼을 뿐이며, 세피로트라는 말 자체는 숫자, 혹은 글자를 의미한다. 세피로트는 이 세상에 현현한 신의 힘을 나타낸 것으로, 총 10개의 세피라로 이루어져 있는데, 케테르(Keter: 왕관), 호크마(Hochma: 지혜), 비나(Binah: 이해), 헤세드(Chesed: 자비), 게부라(Gevura: 힘), 티페레트(Tiferet: 아름다움), 호드(Hod: 위엄), 네짜흐(Netzach: 영원), 예소드(Jesod: 기초), 말쿠트(Malchut: 왕국)이 그것이다.


 


메르카바(Merkabah): 신의 전차라는 의미. 메르카바에는 상승 혹은 하강이 있는데, 상승은 7개의 궁전을 거쳐 천상으로 도약하는 것을 이야기하고, 하강은 자신의 내면으로 파고 들어가는 것을 이야기한다.


 


아인소프(??? ???): 무한함을 의미한다. 신 그 자체를 지칭하기도 한다.


 


엘리야(Elijah): 네비임의 열왕기(상)에 등장하는 하나님의 예언자. 모세, 사무엘과 함께 3대 예언자로 불린다. 바알과 아세라의 마법사들과 마법 대결(!)을 벌인 것으로 유명하다. 카발라에서는 카발리스트의 술법을 가능하게 해주는 신의 대리인으로, 술자는 반드시 엘리야와 만나야만 마법적이 힘을 행사할 수 있다.


 


골렘(Golem): 카발라의 비술 중 하나로, 진흙으로부터 살아 움직이는 인조 인간을 만드는 것이다. 현대의 판타지에서는 돌로 만들어진 스톤 골렘의 이미지가 더 대중 사이에 굳어져 있지만, 원래의 골렘은 야훼가 흙으로 인간을 빚은 행위를 모방한 것으로, 완성된 골렘은 완전히 사람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골렘을 만드는 법은, 우선 진흙을 사람 모양으로 빚고, 주문을 외우며 반시계 방향으로 그 주위를 7바퀴 돈 뒤, 마지막에 'emeth(???: 헤브라이어로 진리)'라고 쓰여 있는 양피지를 입에 붙이는 것이다. emeth라는 글자에서 e자를 지워 meth(??: 헤브라이어로 죽음)라는 글자가 되게 하면 다시 흙으로 돌아가게 된다. 골렘에 관한 전설은 주로 동유럽 쪽에 퍼져 있는데, 부로 유대인의 사이함과 음험함을 표현하기 위한 소재로 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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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리츠크랭크(증기 골렘): 야, 너 기름 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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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브컬쳐] 언어 · 문화 봉사단 - bbb 코리아의 신규 봉사자 채용현장을 가다 (0) 2014/07/12 PM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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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b 코리아라는 단체에 대해서 들어보셨나요?



bbb 코리아는 언어문화봉사 NGO로 2002년 월드컵을 시작으로 만들어진 재능나눔봉사단입니다.


문화를 논함에 있어 언어라는 것은 정말 중요한 요소중에 하나입니다.


 


2002년 월드컵 당시 한국을 방문한 외국 축구팬들은 언어적인 불편을 겪게 되었고, 이에 시민들은 자발적으로 봉사단체를 조직하여 월드컵을 전후로 두달동안 2만여건의 통역서비스를 제공하였습니다. 이후 이러한 운동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비영리 사단법인 한국 bbb운동이 출범하게 되었습니다.


 


 


bbb 코리아에서 bbb는 before babel brigade의 약자로, 바벨탑 이전의 시대라는 뜻입니다.


 



『인간이 신에게 도전하기 위해 바벨탑을 건축하였습니다. 하지만 이에 분노한 신이 인간의 말을 여러가지로 나누어 서로 소통을 할 수 없게 만들어 버립니다. 그렇게 인간의 말이 나누어지면서 사람들은 서로를 오해하고 싸우고, 미워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 사회 또한 타인과의 소통이 벽에 부딪힘으로 인해 생겨나는 불안, 단절, 소외감을 겪고 있습니다. 오해와 단절 대신 언어를 통한 문화이해와 포용으로 따뜻한 세상을 만들어가고자 하는 비비비코리아의 신념이 bbb 운동에 담겨져 있습니다.』 출처 : www.bbbkore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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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b 코리아에서 하는 가장 중요한 일은 서로 다른 언어간 통역을 해 주는 일입니다. 이러한 통역은 전화를 바탕으로한 삼자통화를 통해서 이루어지게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통역을 도와주는 사람들은 전부 직접 통역봉사에 지원한 자원봉사자들입니다.



 


통역을 하는 것에 있어서 중요한 요소는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언어구사가 능숙해야 하지만, 서로 다른 문화와 언어를 가진 상대방의 문화적 배경과 처한 상황을 잘 이해해야 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상대방을 얼마나 배려할 수 있는지, 문제를 해결해 주고자 하는 의욕이 얼마나 되는지도 중요하구요.


 


그렇다면 이러한 봉사자들은 과연 어떤 과정을 통해서 선발되게 될까요?


파운틴 웹진이 bbb 코리아의 신규 봉사자 선발과정을 직접 취재하러 다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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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역에 위치한 중앙일보 건물을 지나 국민은행 건물로 들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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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J Cafe에서 봉사자 분들을 기다리고 있는 직원분의 모습이 보이네요 (가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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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원의 안내를 따라 비밀 통로로 내려가보니 어떤 문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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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이 방에서 bbb 코리아 신규 봉사자들의 테스트가 이루어 지는 것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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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b 코리아의 신규봉사자를 선정하는 과정은 상당히 흥미로웠습니다.



새로운 봉사자들을 테스트하는 테스터들은 2인 1조로 이루어집니다.



 먼저 해당 언어를 사용하는 외국인의 역할을 해당 언어의 대학교수님이 담당하고


한국인 역할을 다른 봉사자가 담당하게 됩니다.




테스트는 bbb 코리아로 연결되는 실제 삼각통화 통역을 가정하고 이루어집니다.


bbb 코리아의 봉사자가 되면 언제 전화를 받아야 할지 모르기 때문에


모든 지원자들은 3번의 기회안에 전화를 받아 통역테스트를 진행해야 하며


만약 3번의 기회동안 전화를 받지 못하면 자동으로 탈락하게 됩니다.


 


 실제상황을 가정한 케이스는 크게  두 가지가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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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케이스에서는 외국인이 분실된 여권을 가지고 입국하려는 상황이 가정되었습니다.


 


한 외국인이 5년전에 여권을 잃어버려서 새로 여권을 발급받았으나 이내 곧 잃어버린 여권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한국으로 입국을 했는데 실수로 이전 여권을 가져 온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얼마나 정확하게 외국인이 처한 문제를 파악한 뒤에 대사관을 통해서 여권을 재발급 받는 방법을 설명해 주고, 나아가 재발급이 진행되는동안 공항에서 지낼 수 있는 시설까지 알아봐 주어야 했습니다. 한국어를 영어로, 영어를 한국어로 통역해 주어야 하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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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케이스에서는 외국인 환자와 간호사 사이를 통역해 주는 상황이 가정되었습니다.





한 외국인이 계단에서 넘어져서 다리를 다치게 되었고 치료를 위해 병원을 방문하였습니다.


이 외국인의 증상을 간호사에게 얼마나 정확하게 전달해 줄 수 있는지,


치료 절차 및 비용에 대해서 잘 전달해 줄 수 있는지가 핵심적인 내용이였습니다.


더불어 비용이 비쌀 경우 더욱 싸게 치료받는 방법까지 전달해 주어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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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평가는 어떻게 이루어 졌을까요?


 


신규 봉사자에 대한 평가는 총 100점 만점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얼마나 정확하게 말을 전달했는지가 40점


해당 언어를 얼마나 능숙하게 구사하는지가 30점


얼마나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는지가 20점


마지막으로 면접관의 가산점 10점이 부과되었습니다.


 


이러한 점수들을 합산해서 신규 봉사자에 대한 평가가 이루어 졌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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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보면 NGO의 활동은 파운틴 문화콘텐츠웹진과 아무 관련이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서로 다른 언어를 가진 사람들의 소통을 돕고 서로 이해하자는 취지의 bbb 운동


그리고 서로 다른 문화들이 한 곳에 어우러져 있기를 원하는 파운틴 문화콘텐츠웹진


 


이 둘의 연관관계를 찾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았습니다.


파운틴 문화콘텐츠웹진이 서로의 문화를 이해하고 알아갈 수 있는 장이 되기를 바라며 글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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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브컬쳐] 창세인의 마법공방 : Chapter. 2 신들의 시대 (1) - 광명의 제국 페르시아 (1) 2014/07/12 PM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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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인의 마법 공방 Chapter. 2 - 신들의 시대 (1)


 


광명의 제국 페르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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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539년, 아케메네즈 왕조의 키루스 2세는 약 1500년 간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맹주로 군림해온 바빌로니아 제국을 무너뜨렸다. 이후 그의 후손들은 서로는 이집트부터 동으로는 인더스 지역까지, 그리고 북으로는 그리스계 이오니아 지방을 아우르는 거대 제국을 건설했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페르시아 제국'이다.


 


사실 페르시아는 멀리는 기원전 8세기의 메디아 왕국부터 가까이는 1935년에 이란으로 국호를 바꾼 팔레피 왕조까지 이란계 민족에 의해 세워진 여러 왕국들을 아우르는 말이다. 좁은 의미에서는 BC 550년부터 BC 330년까지 존속했던 아케메네스 왕조와 AD 226년부터 AD 651년까지 있었던 사산조 페르시아 정도를 지칭한다.


 


페르시아는 알렉산더 대왕의 헬레니즘 제국 이전에 근동 지방에 존재하던 가장 큰 나라로, 유럽, 아프리카, 아시아의 3대륙을 아우르는 최초의 세계 제국이었기 때문에 사실상 헬레니즘 시대 이전에 이미 동서 문화 융합의 초석을 깔았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최근 영화 '300'등 서구적인 편견이 가득한 매체들에서 나오는  폭압적이고 야만스러운 이미지와는 달리, 페르시아는 피정복민의 관습을 존중하고 유일신교임에도 종교적 자유를 보장하는 등 이민족들에게 상당히 관용적인 태도를 취했는데, 이는 페르시아 안에 다양한 문화가 서로 융합되고 꽃피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키루스 2세는 모든 시민의 종교의 자유, 노에제 폐지, 부역에 동원된 인부들에게 급여 지급을 보장하는, 세계 최초의 인권 선언문인 '키루스 원통'을 발표할 정도로 관대한 군주였고, 바빌로니아에 잡혀있던 유대인들을 해방시키고 이스라엘로 돌아가 성전을 재건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었다. 때문에 성경에서도 외국인 지배자로서는 보기 드물게 '기름 부음을 받은 고레스(키루스)'라고 극찬 받았으며, 그리스의 크세노폰은 그를 가장 이상적인 군주의 모범으로 꼽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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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법사의 기원이 된 마구(Maγu)


 


고대 페르시아에서는 종교 의례를 담당하는 사제 계급을 '마구(Maγu)'라고 불렀다. 이것을 라틴어로 표기하면 '마기(Magi).' 바로 마법사(Magician, Mage)의 어원이 된다.


 


본래 마기는 페르시아 왕국의 전신인 메디아 왕국의 사제 계급으로, 메디아 왕의 부마였던 키루스 2세가 메디아를 복속시키고 메디아의 관습을 흡수하면서 페르시아의 사제 계급이 되었다. 이후 사산 왕조 대에는 조로아스터교가 페르시아의 국교가 되면서 모우바드(m?bad)라는 신관 계급이 탄생했는데, 이들 역시 그리스 등의 서구권에서는 그냥 '마기'라고 불리며 앞선 계급들과 동일시되었다. 서양에서 마기가 마법사의 대명사가 된 것도 마기가 동양적인 분위기의 사제, 점술가, 주술사 등 신비주의적 성격을 가진 인물을 통칭하는 두루뭉술한 표현으로 쓰였기 때문이다.


 


페르시아인들 자신이 마구에 대해 남긴 기록은 없어 그들이 정확히 어떤 성격을 가졌고, 어떤 제례를 행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헤로도토스의 <역사>에 따르면 마구들은 사체를 새나 개에게 먹이고, 개미와 뱀 등의 파충류를 무차별하게 죽인다고 기록되어 있다. (고대의 신관들은 현대의 세스코...?) 이로 미루어보아 그들은 페르시아 내에서 장례와 도시 안의 위생을 책임졌다고 추측할 수 있다.


 


이들 마구는 성경에서도 그 이름을 찾아볼 수 있다. 예수가 태어날 때 그를 찾아온 3명의 동방 박사가 바로 이 마구인 것이다. <마태 복음서>에 따르면 이들 동방 박사들은 하늘에서 동쪽으로 떨어지는 별을 보고 그 별의 방향을 따라가 예수가 태어난 마굿간에 도착했다. 그들은 예수 앞에 엎드려 황금, 유향, 몰약을 선물하고는 고향으로 내려갔다. 이를 통해 마구들은 하늘의 별을 보고 앞날을 점치는 점술가였으며, 의학에도 정통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대부분의 고대 마법사들이 그러하듯이 말이다!)


 


크리스트교에서는 세 동방 박사의 이름은 청년의 발타자르(Balthasar: 유향, 신성을 상징), 중년의 캐스퍼(Casper: 황금, 왕권을 상징), 노인의 멜키오르(Melchior: 몰약, 죽음을 상징)라고 이야기하지만, 시리아의 교회는 라르바다드(Larvandad), 호르미스다스(Hormisdas), 그슈나사파(Gushnasaph)라는 페르시아어 이름을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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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페르시아 문화 중 주로 천일야화를 모티브로 하는 애니메이션 '마기'>


 


- 이원론적 유일신교, 조로아스터교


 


강대했던 페르시아의 구심점이 되어준 국교는 바로 조로아스터교. 불을 숭상한다고 해서 배화교라고도 알려진 종교였다. (엄밀히 말해서 조로아스터교의 숭배 대상은 광명이고, 불은 그 상징일 뿐이지만.)


 


조로아스터교의 창시자인 자라투스트라(Zara?u?tra)는 현대의 이란, 혹은 아프가니스탄 부근에서 태어났다. 고대의 많은 성자들이 그러하듯 자라투스트라의 탄생 년도에 대해선 BC 660년부터 BC 6000년까지 이견이 분분하다.


 


조로아스터교는 빛과 지혜의 신인 아후라 마즈다를 단 한 명의 신으로 섬긴다. 때문에 유일신적인 색채를 강하게 띄고 있지만, 다신교를 인정하던 페르시아의 분위기 상 다른 신들을 전면적으로 부정하지는 않았다. 때문에 조로아스터교에서는 아후라 마즈다는 여러 이민족의 신들의 위에 있는 단 한 명의 진정한 신으로 삼고, 다른 신들은 그를 보좌하는 선한 영으로 배치하는 것 정도로 타협을 보았다.


 


조로아스터교가 단순한 유일신교가 아닌 이원론적 유일신교라고 불리는 이유는 선신인 아후라 마즈다와 악신인 앙그라 마이뉴의 대결을 골자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이 둘은 모두가 영원한 존재이고, 각자 위의 영역(하늘)과 밑의 영역(지하)를 관장하고 있으며, 이 세상을 차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서로 싸운다. 이렇듯 둘의 힘은 거의 대등하긴 하지만 둘의 위상이 정확히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조로아스터교에서 숭배하는 유일신은 어디까지나 아후라 마즈다이며, 강대하긴 하지만 앙그라 마이뉴 역시 그의 여러 피조물 중 하나일 뿐이다. 초기의 조로아스터교에서 앙그라 마이뉴에 대항하는 선한 영은 아후라 마즈다의 피조물인 스펜타 마이뉴(Spenta Mainyu: 지혜, 사랑, 봉사, 경건, 완전, 불멸의 여섯 덕목을 관장하는 6명의 영)였으나, 후대에 집필된 <아베스타>에서는 스펜타 마이뉴가 곧 아후라 마즈다 본인이며, 결국 아후라 마즈다가 앙그라 마이뉴를 꺾고 모든 악을 완전히 소멸시킬 것이라는 종말론을 내세우고 있다.


 


조로아스터교에서는 신에 대한 맹목적인 찬양이나 기원보다는 좋은 생각, 좋은 말, 좋은 행동의 세 가지 선을 추구할 것을 가르친다. 아후라 마즈다나 앙그라 마이뉴는 인간의 마음을 두고 서로 싸우고 있기 때문에 아후라 마즈다의 뜻에 따라 선을 행할지, 앙그라 마이뉴의 유혹에 따라 악을 행할지는 인간 스스로가 선택할 문제이다. 사후에 천사인 미트라의 저울대에 올라 선한 쪽으로 기울면 천국으로 가고, 악한 쪽으로 기울면 지옥으로 떨어지는 사후 심판의 개념 역시 조로아스터교에서 처음으로 만들어졌다.


 


본래 조로아스터교는 메디아를 비롯한 동부 이란 지역에서 믿는 소수 종교였으나 조로아스터교도인 키루스 2세가 메소포타미아 전역을 아우르는 제국을 건설하면서 이 지역의 국교가 되었다. 초기의 페르시아는 조로아스터교를 국교로 내세우긴 했으나, 이민족의 신들을 부정하지 않고 포용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알렉산더 대왕에게 제국이 한번 무너진 후 다시 일어선 사산조 페르시아는 아케메네스 왕조와는 달리 강력한 중앙 집권화를 추구하면서 국교로서의 조로아스터교의 권위를 더욱 강화했으며, 이교도에 대해서도 가혹하게 탄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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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트 스테이나이트에 등장하는 앙그라 마이뉴>


  


번창하던 조로아스터교의 몰락은 사산조 페르시아의 멸망과 궤를 같이 한다. 7세기에 일어난 이슬람교는 빠른 속도로 페르시아 전역을 정복해 갔다. 물론 이슬람교도 이민족의 종교를 완전히 금지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조로아스터교는 그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으나, 비무슬림에 대한 가혹한 세금과 차별은 점차로 조로아스터교도들이 이슬람교로 개종하는 결과를 낳았다. 더욱이 많은 수의 조로아스터교도들이 정치적인 분쟁에 참여했다가 목숨을 잃었고, 일부는 해외로 도망치기도 했다.


 


현재까지 남아있는 교도의 수는 조로아스터 주로 중앙 아시아를 중심으로 약 15만에서 20만 명 정도로 추정된다.


 


이렇듯 지금은 완연히 꺼져 가는 불인 조로아스터교지만, 후대의 종교에 미친 영향은 어마어마하다. 우선, 선신과 악신의 대립구도인 이원론적 세계관, 천국과 지옥으로 이루어진 사후 세계, 심판론, 종말론, 구세주와 부활에 관한 교리는 거의 전부가 조로아스터교에서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크리스트교는 물론이고, (유대인들이 바빌론 유수로부터 해방된 것이 누구 덕분인지, 타종교에 배타적인 성경이 유독 호의를 보낸 인물이 누구인지를 잘 상기해 보시라!) 인도의 힌두교나 동양의 불교 역시 이런 조로아스터교의 영향을 적든 많든 받았다. 한 가지 흥미로운 조로아스터교에서는 주신을 아후라 마즈다(줄여서 아후라), 악신의 하수인인 악마를 다에바라고 부르는 데에 반해, 힌두교에서는 선신이 데바, 악신을 아수라라고 부른다는 점이다. 두 문명의 사이를 짐작하게 해줄 수 있는 좋은 힌트라고 하겠다.


 


조로아스터교는 현대까지 약 2500년 이상을 존속해 왔기 때문에 수많은 분파를 낳았다. 천사인 미트라를 아후라 마즈다의 후계자로 숭배하는 미트라교는 로마로 넘어가 여러 황제들의 숭배의 대상이 되었으며, 페르시아를 벗어나 인도로 간 조로아스터교도들은 '파르시', 중국으로 넘어간 사람들은 '배화교도'가 되었다. 


 


이렇게 고대의 각종 종교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조로아스터교이기에 현대 판타지에 미치고 있는 영향 역시 막대하다. 게임 '디아블로'에서 선신 아누와 악의 용 티타멧으로부터 시작된 천사와 악마의 영원한 분쟁이나, 소설 '슬레이어즈'에서 마왕 샤브라니그두와 용신 쉬피드 사이에 벌어진 신마전쟁, 그 외에 신족과 마족의 대결을 골자로 하는 모든 판타지 작품들은 바로 조로아스터교의 세계관을 따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외에도 소설 '더 로그'에서는 조로아스터교의 미트라가 팔마교의 탄압을 받는 미트라교의 주신으로 나오며, 게임 '에이지 오브 코난'이나 '악튜러스'에는 앙그라 마이뉴의 이름을 딴 '아흐리만'이 등장한다. 페이트 스테이 나이트'와 그 후속작인 '페이트 할로우 아타락시아'에도 앙그라 마이뉴가 등장한다. 그런가 하면 무협 소설의 시초라고 할 수 있는 소설 '의천도룡기'에서는 주인공인 장무기가 조로아스터교의 중국 분파인 명교의 주인이 된다. 이 세계관에 따르면, 명나라를 세운 주원장은 본래 명교의 무사로 장무기의 부하였으나 명교를 배신하고 자신이 황제가 된다. 의천도룡기의 명교는 이후 '마교'라고도 불리며 수많은 무협 소설에 등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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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천일야화, 근동 판타지의 보고


 


조로아스터교 외에도 페르시아의 대표적인 아이덴티티이자, 후대의 판타지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작품으로는 역시 '천일야화(???? ??? ???? ?????, Arabian Nights)'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천일야화는 사산조 페르시아 후기에 페르시아를 비롯한 소아시아, 그리스, 이집트, 인도 등 여러 지역의 민담과 전설을 한 데 모아 만든 일종의 설화 모음집이다. 또한 후대의 여러 아랍권 국가들에서 번역되고 각색되면서 당대의 설화 뿐 아니라 이슬람 계열의 설화들도 다양하게 포함한, 말 그대로 근동 수백 년 망상의 보고가 되었다. (천일야화에서 가장 유명한 알라딘과 알리바바의 이야기는 사실 프랑스 번역가 갈랑에 의해 삽입된 아랍 계열 설화이다.)


 


천일야화 자체는 현명한 여인인 세라자드가 부군인 샤리아르에게 1001일동안 매일 밤 이야기를 들려주는 액자식 구성을 취하고 있다. 작품에 따르면, 샤리아르 왕은 어느날 노예와 부정을 저지르는 왕비의 모습을 보고 충격에 빠져 매일 새로운 처녀와 잠자리를 맺고 다음날 그녀를 처형하는 기행을 저지르게 된다. 당연히 나라 안의 처녀들이 씨가 마를 지경이 되자, 한 대신의 딸이었던 세라자드는 자진해서 왕에게 시집가 매일 밤 그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흥미 있을 만한 데서 끊는 악랄한 수법을 통해 1001일동안 목숨을 부지한다. 결국 왕은 그녀를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고(3년이나 걸려서...!) 그녀와 아들 딸 낳아서 남은 여생을 알콩달콩 살았다는 훈훈한 이야기로 마무리된다.


 


천일야화는 신비주의적 색채가 강한 설화도 많지만, 범죄, 여행담, 역사 이야기, 교훈담, 우화, 심지어는 야설에 가까울 정도로 적나라한 막장 로맨스도 포함하고 있다. 샤리아르의 입맛을 맞추기 위해 매일 밤 새로운 장르를 개척해야만 했던 세라자드의 노력이 아니었을까?


 


흔히 '지니'라고 알려져 있는 고대 근동의 정령인 '진'이나, 언데드의 대명사로 알려진 '구울', 신밧드의 모험에 나오는 거대 새 '로크' 등 판타지에 인용할 원형이 무궁무진하므로, 아랍 풍의 판타지 소설을 쓰고자 하는 분들께는 1888년에 완연된 R.F 버턴의 <아라비안 나이트>를 꼭 읽어보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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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훌륭한 글이네요
[서브컬쳐] 게이머의 관점으로 바라본 게임사 10년 1. 신인류의 탄생 (0) 2014/07/01 AM 12:07

마이피에서는 잘 보이지 않을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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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게임사는 게이머가 만들었다.



안녕하세요. 게임 칼럼니스트 1호 임희택입니다.

게이머가 바라본 게임사 10년이라는 주제로 글을 연재하며, 먼저 이야기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이 글을 방향과 영역에 대한 부분입니다. 국내외에서 게임과 관련된 전문가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많습니다. 그만큼 게임에 대해서도 ‘전문가’가 많이 등장하였고, 그런 분들에 비해서 저는 대단한 사람이 아닙니다.



또한 게임사 10년이라는 주제 설정에 대해서 글을 읽는 독자께서 의문을 가지실 겁니다. 그 이유는 국내외에서 게임을 등장한 시기는 10년 그 이전이라는 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게이머가 바라본 게임사 10년이라는 주제로 글을 적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온라인 게임이라는 한정적인 영역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글의 연재 방향에 대해서도 전문성을 가진 글보다는 국내 게이머의 입장에서 바라본 게임사 10년이라는 가급적 대중적인 시점에서 접근하고자 합니다. 저 스스로가 이번 연재를 통해서 발전할 수 있는 계기와 좋은 글로 보답해 드리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역사를 기반으로 볼 때, 게임사는 너무나 짧은 시간입니다. 그리고 국내 온라인 게임사는 정확히 1992년부터입니다. 불과 12년 전의 이야기라는 것이죠. 그럼 무엇일까요? 오늘날 온라인 게임 강국이라는 이미지를 만들었던 그 시초의 게임 말입니다. 바로 바람의 나라입니다. 격주간 발행되었던 순정 잡지 댕기에서 연재된 작품을 그래픽화 하면서 시작된 것이죠. 그런데 그 전에 이야기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바로 카이스트 학생들이죠. 온라인 게임의 역사를 찾기 위해서 카이스트를 말했지만, 정확히 웹 환경을 접한 카이스트 학생들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1989년 7월 4일, 한국과학기술원과 한국과학기술대학교가 통합해 대덕연구단지로 새 캠퍼스로 입주하게 되고, 지금은 일반인들도 잘 사용하고 있는 인터넷을 모르던 시절부터 인터넷을 활발히 사용했던 국내 유일한 곳에서 국내 게임사의 굵직한 인물들이 태어나기 시작합니다. 그 인물들은 조금 있다가 설명하도록 하고, 바로 그들이 즐겼던 게임들을 나열하자면, 넷핵과 로그라는 게임입니다. 그리고 텍스트 머드 게임이죠. 이 당시에 게임들을 살펴보면, 텍스트(문자)로만 이루어진 게임으로 모든 조작은 키보드로만 입력하는 방식이며, 그래픽적인 표현이 전혀 포함되지 않은 게임이죠. 즉 텍스트를 통해서 명령하고, 텍스트를 통해서 데미지를 주며, 텍스트를 통해서 자신의 현재 상태를 알 수 있는 ‘텍스트가 모든 것에 시작이다’ 라고 표현할 만큼 단순한 게임이었습니다. 오늘날 이런 게임들을 보여준다면... 사람들은 흥미롭지 않겠지만, 그 당시에는 너무나 재미있었죠?(분당 15원이라는 금액에도 많은 사용자들이 플레이, 90년대에 게임비로만 20~40만원을 지출한 게이머들도 있었음)



왜일까요?

그것은 오늘날 정형화 된 그래픽이 아닌 스스로 머릿속에서 상상하며, 게임을 플레이 했다는 겁니다. 즉 보이는 것이 아닌 상상하는 게임이라는 것이죠. 캐릭터, 스킬, 모션 등등의 상상 속에서 무궁무진한 행위를 연상하며 게임을 했다는 겁니다. 멋지지 않나요?



그런 그들이 원했던 것은 무엇일까요?

오늘날 단순히 텍스트로만 볼 것이 아니라, 그들은 보이는 텍스트를 통해서 상상하고, 또 상상하며 게임을 했다는 겁니다. 그런 그들이 만든 것이 바로 한국 게임사의 첫 발자국이라는 거죠. 바로 게임을 하던 게이머가 게임을 만들게 된 것이죠. 그 게임의 이름은 쥐라기 공연, 단군의 땅이라는 게임이죠. 그들이 있었기 때문에 오늘날의 게임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무엇보다 게임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상업 모델이 필요했습니다. 바로 카이스트 출신인 송재경씨죠. 바람의 나라와 리니지의 아버지라 불리는 사람인데 제가 과거에 비판했던 아키에이지와 문명 온라인을 개발 서비스를 하고 있는 회사의 대표이사입니다. 아무튼 머드 게임이 국내에 선보이자, 송재경씨 또한 머드 게임에 관심이 많았고, 과거에 머드 게임들은 오픈 소스였기 때문에 소스를 조작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는 장난감과 비슷한 것이었죠. 그 당시 한글과 컴퓨터에 재직하던 그는 쥬라기 공원이라는 게임을 제작하게 되고, 기존 텍스트 게임의 변화인 그래픽화에 착수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기존 소속된 자신의 회사에서는 그와 성향상 달랐습니다. 바로 회사를 나왔고, 현 넥슨 회장인 김정주씨와 게임을 제작하기로 합니다. 그 결과가 바로 바람의 나라인 것이죠. 그래서 머드였던 게임이 머그화 되었던 겁니다. 바로 현대 온라인 게임의 시초가 탄생하게 된 거죠. 물론 시초라고 부를 수 있는 머드 게임이 있지만, 현대의 온라인 게임과는 차별성이 존재합니다. 게이머의 입장에서 볼 때, 텍스트를 통해서 상상하며 플레이 하는 것과 그래픽을 보며 몰입하는 것과의 차이가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이죠. 바로 상상하게 만들지는 않다는 것입니다. 게이머의 관점에서 상상하며 플레이 하는 것과 몰입해서 하는 것과의 차이라는 것이며, 근본적인 차이는 받아드리는 방식의 차이겠죠. 이것은 현재 게임이 탄생할 수 있는 중요한 키워드였습니다. 바로 상상하며 텍스트 게임을 플레이 해왔던 1세대 게이머들이 만든 것이 현대 온라인 게임이기 때문이죠. 그래서 저는 초기 머드 게임을 했던 게이머들을 신인류라고 평하고 싶습니다. 만일 텍스트 게임을 그냥 받아드렸다면, 현재의 게임들은 나오지 않았을 겁니다. 바로 생각각의 차이이며, 재미를 갈구했던 사람들이 만들어 낸 결과를 저희가 즐기고 있는 것이죠. 그것이 국내 온라인 게임의 시작이며, 국내 게이머가 생긴 시초이며, 국내 게임 산업의 인력들이 발전하게 되는 계기를 아주 단순하게 볼 수 있는 사례이죠. 현재 게임업계에서 활동하는 인력의 대다수가 게이머였다는 점을 살펴본다면 국내 게이머는 곧 국내 게임의 아버지이자 어머니라는 겁니다. 아주 흥미롭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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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브컬쳐] 2014 제1회 미래문화포럼 인터뷰 - 대한민국 문화의 현주소를 진단하다. (0) 2014/05/26 PM 12:35

2014 제1회 미래문화포럼 인터뷰 - 대한민국 문화의 현주소를 진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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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제1회 미래문화포럼이 개최된 광화문의 대한역사박물관



(http://www.much.go.kr/)








안녕하세요. 파운틴 문화콘텐츠웹진 운영진 Culturelove입니다. 지난 5월 21일 한국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문화관광연구원이 주관하는 2014 제 1회 미래문화포럼이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개최되었습니다. 이번 미래문화포럼의 주제는 “간편하고 빠름, 어렵고 느림의 문화” 로 최근 문화의 트렌드로 부각된 스낵 컬쳐와 대한민국의 인문학 열풍, 그 두 현상을 바라보고 이에 대해 토의하는 자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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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에서 제작한 모바일 무비-미생 10분 이내의 짧은 상영시간으로 간단하게 즐길 수 있다.


(영상 링크)






스낵컬쳐(Snack Culture)란 마치 과자를 먹듯 간단하게 즐길 수 있는 문화들을 말합니다. 정보통신 기술이 발달하면서 현대인들은 스마트 폰을 통해 어디서든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게 되었으며, 보다 간편하고 직관적인 문화콘텐츠들이 증가하기 시작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인터넷을 통해 언제 어디서든 볼 수 있는 웹툰, 10분 이내의 짧은 상영시간을 가진 모바일 무비(미생) 그리고  짧은 시간 안에 진행되는 TED강연(강연기부프로그램) 등이 있습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접하기가 상대적으로 쉽지 않고, 많은 시간과 노력을 필요로 하는 인문학이 지난 수년간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구면서, 과연 이 두 문화현상이 우리 사회에 의미하는 것이 무엇이고 앞으로 대한민국의 문화발전을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이번 포럼에는 파운틴 문화콘텐츠웹진을 대표하여 운영진 대표로 저와 함께 집필위원 대표로 "sumE의 문학산책"을 연재해주시는 섬이님께서 함께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이번 포럼에서 듣고 나누었던 이야기들을 인터뷰를 통해 여러분들과 함께 공유하고 이야기 해 보고자 합니다.



인터뷰에 앞서 본 포럼의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신 분은 아래 링크를 참고해주시기 바랍니다.




2014 제1회 미래문화포럼 세부내용.hwp


2014 제1회 미래문화포럼 보도자료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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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럼이 시작되기전 비어있는 강의실. 


너무 크지도 작지도 않은 적당한 공간에서 강사 패널분들과 게스트들 간의 활발한 토론이 이루어졌다.






1.대한민국의 스낵컬쳐와 인문학 열풍의 원인은 무엇인가?




?Culturelove: 이 질문은 이번 포럼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내용이었고, 패널분들께서도 이 부분에 대한 많은 답변을 제시해 주셨습니다. 인문학 열풍의 이유로 서강대학교 철학과 교수이신 최진석 교수님께서는 대한민국이 중진국에서 선진국으로 가는 과정에서 인문학에 대한 추구는 필연이다. 선진국들은 역사를 보았을 때 모두 인문학을 중요시 했다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즉 대한민국 사회가 이제 인문학을 준비할 단계가 되었다는 의미인데요. 또 전경란 동의대학교 디지털콘텐츠학과 교수님께서는 IT기술의 발달이 간편하게 즐길 수 있는 스낵컬쳐 발달의 기초가 되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일각에서는 스낵컬쳐와 인문학은 특성 자체가 상반된 문화라고도 보는 시선도 있는데요. 섬이님께서는 두 문화트렌드가 떠오르게 된 이유를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여쭙고 싶습니다.





섬이: 먼저 최진석 강사님의 강의를 감명깊게 들었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습니다.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인문학이 세상에 미치는 힘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었네요. 사실 인문학은 우리와 가장 가깝지만 멀게 느껴지는 학문입니다. 사람들은 과학이 어떻게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는지, 혹은 여타 학문이 어떤 모습으로 우리 곁에 다가와있는지는 쉽게 알아차리지만 인문학이 어디에서, 얼마나, 어떻게 우리와 함께 하는 지는 잘 모르지요. 그 이유는 최진석 강사님의 말대로 그것이 인간에 대한 '개념'을 밝히는 일이기 때문일 겁니다. 개념은 여러 관념 속에서 공통 된 요소를 추상하여 종합한 하나의 관념이라고 사전에서는 말합니다. 말인즉슨, 강사님(최진석 강사)의 말마따나 인간의 '동선'이라는 거죠. 비록 추상적인 것을 다루고 있으며 물질화 되기 어려운 학문이기에 대중의 시선에 들기 어려운 점이 분명 존재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공통적인 문제의식, 삶에 대한 태도, 원하는 바 등의 관념이 곧 개념이고 그 개념이 인간의 '동선'이라면, 그 동선을 밝히는 인문학은 현재 우리가 가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키워드가 된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강의 내용과 연계해서 생각해 봤을 때, 그러한 해결의 절박함 때문에 현재 인문학의 열풍이 불고 있는 것이라 생각해 볼 수 있는데요. 사실 지금은 인문학 또한 스낵컬쳐와 깊이 연관되어 있습니다.




전경란 강사님께서는 스낵컬쳐가 모바일 미디어의 부상과 관련이있다고 설명하셨습니다. 사실 우리 문화는 어느 단계 이후로 꾸준히 미니멀리즘을 지향해 왔습니다. 예술 뿐만 아니라 생활 양식 자체가 점점 간결화 되고 단순해 지고 있지요. 그것은 단순히 편리함을 넘어서서 직관성을 추구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사물의 가장 단순한 핵심을 표현해야 진실을 꿰뚫을 수 있다는 미니멀리즘의 태동이유와 동일하지요. 현 인류가 추구하는 방향과 기술 발달의 방향이 정확히 일치하면, 그 기술에 따른 새로운 문화가 생겨납니다. 증기기관이 세상을 바꾼 것처럼 말이죠. 우리가 누리고 있는 스낵컬쳐또한 이와 동일합니다.




문제는 스낵컬쳐가 직관성과 편리함을 넘어서서 '사유의 나태'를 만들어내는 측면이 있다는 점입니다. 직관성의 최대의 문제가 그거죠. '과정'이 없으니 과정에서 읽어낼 수 있는 '사유'가 없습니다. 과정, 다른 말로 하면 동선을 읽어낼 수가 없으니 자연스럽게 사람들의 동선을 읽어내는 기능도 퇴화하게 됩니다. 위에서 이야기했듯 인문학이 인간의 동선을 밝혀내는 학문이라면, 동선을 읽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는 이 시대에는 대중 중심의 인문학도 함께 퇴화할 가능성이 많다는 겁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점이 있습니다. 이렇게 인문학의 적처럼 느껴지는 스낵컬쳐가 사실은 인문학에서 태동했다는 점입니다.




인문학과 스낵컬쳐가 서로 상반 된 문화라고 했던가요? 일단 정정하고 가야할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인문학은 문화가 아닙니다. 문화가 무엇인지 밝히고 어떻게 흘러왔으며 어떻게 흘러갈지를 연구하는 '학문'이지요. 반대로 스낵컬쳐는 이름 그대로 문화입니다. 스낵컬쳐와 상반된 관계에 인문학을 대입하고자 한다면 인문학 열풍이라는 문화현상을 넣어야겠죠.




여기서 이 둘의 관계를 잠시 진단해보고 넘어가야할 것 같습니다. 스낵컬쳐는 미니멀리즘이라는 인문학을 바탕으로한 예술, 사상적 경향을 바탕으로 탄생한 '문화'입니다. 그리고 현재의 인문학 열풍 또한 스낵컬쳐의 영향을 받은 캐주얼한 인문학의 열풍이지 결코 인문학 그 자체의 열풍이 아닙니다. 인문학에 대한 관심은 지금껏 꾸준히 있어왔습니다. 다만 접근하기 힘들었을 뿐이지요. 그런데 거기에 스낵컬쳐라는 문화현상이 결합되면서 자계서, 강의록, 강사의 브랜드가치를 위주로한 인문학이 팔리게 된 겁니다. 불황을 겪고 있는 관계사로서는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지요. 거기에 인문학 열풍이라는 현상을 명명합니다. 그런데 이 인문학 열풍이라는 건 사실 스낵컬쳐에 기생해있는 어떤 하나의 상품에 불과합니다. 그러니 현실적으로는 인문학 열풍이 스낵컬쳐의 대척점에 놓일 수 없는 것이지요. 스낵컬쳐는 '문화'지만 인문학 열풍은 '상품'이니까요.




정리하자면, '인문학'은 '학문'입니다. '스낵컬쳐'는 '문화'입니다. 그리고 '인문학 열풍'은 '상품'입니다. 인문학은 스낵컬쳐의 기반이 되었고 스낵컬쳐 안에서 인문학 열풍이라는 상품이 태어났습니다. 우리가 수평적 대립관계라고 생각했던게 사실은 수직적 종속관계였던거지요. 그런데 거기에 역전 현상이 벌어집니다. 스낵컬쳐는 과정의 결여라는 특성으로 인해 자신의 아버지인 인문학의 퇴화를 야기합니다. 그런데 스낵컬쳐의 자식인 인문학 열풍은 다시 스낵컬쳐에 대한 비판을 이끌어냅니다. 주목할만한 현상입니다. 이건 수직적 종속관계에 대한 하위 요소들의 수평적 관계를 획득하고자하는 반란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대립관계처럼 여겨지고 있고요. 앞으로 이러한 현상이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가 최대 관건이겠죠. 제 생각에 그 끝은 수직과 수평을 벗어난 융합 관계로 마무리 될 것 같습니다. 잘 해결 된다면 말이죠. 이번 포럼에서 이러한 부분에 대한 고찰은 조금 미흡했던 것 같기에 제 스스로 나름의 진단을 내려봤습니다. 물론 오진일 수도 있고요(웃음).






2.문화로서, 스낵컬쳐의 진정성과 질(Quality)은 충분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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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편하고 맛도 좋은 과자(Snack). 


그러나 과자가 건강에 좋은지에 대해 물어보면 쉽게 '그렇다'라고 대답할 수 없다.






Culturelove: 과자는 맛은 있지만 몸에는 좋지 않습니다. 이렇듯 스낵컬쳐 또한 쉽게 즐기기에는 좋지만 자칫 문화의 질을 떨어트리고 문화발전을 저해한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재미만을 추구하는 간단하고 대중적인 문화들이 주류 문화의 자리를 차지하게 되면서, 정작 우리에게 필요한 문화들이 설 자리를 잃게 된다는 주장입니다. 반면에 전경란 동의대학교 디지털콘텐츠학과 교수님께서는 스낵컬쳐는 그저 단순한 것이 아니라, 최신기술을 반영해 누구나 쉽게 향유할 수 있게 했다는 것이고, 그것이 곧 스낵컬쳐의 본질 자체가 단순한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스낵컬쳐가 오히려 다양한 매체를 통해 스낵컬쳐의 부족함(박영만 강사님께서는 그것이 진정성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을 보완한다면, 다양한 방향으로의 문화발전에 도움이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섬이님은 문화발전에 있어서 스낵컬쳐가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 지 그리고 결과적으로 보았을 때 문화발전에 있어서 득인지 실인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섬이: 먼저 인문학과 스낵컬쳐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이야기 해야 설명이 가능 할 것 같습니다. 위에서도 말했듯이 스낵컬쳐가 인문학의 퇴화를 조장하는 부분이 분명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경향이 있다고 꼭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말씀드린 것 처럼 가장 궁극적으로 추구해야 할 것은 융합이겠죠. 박영만 강사님께서 말씀하진 진정성 또한 그러한 융합을 가능하게 하는 핵심 요소임에 틀림 없습니다. 스낵컬쳐는 본질적으로 가벼움, 간결함, 단순함, 직관성을 추구합니다. 이러한 점이 긍정적인 영향도, 부정적인 영향도 줄 수 있겠죠. 모든 걸 얻을 순 없습니다. 문화란 대중들과의 소통에서 비롯되는 것이기 때문에 당시의 대중들이 공통적으로 추구하는 것에 극단적으로 달려가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에 대해 주의를 주고 극단화를 막는 것이 바로 인문학이 해야 할 일이고요. 여기서 착각하지 말아야 할 것이, 스낵컬쳐를 인문학의 적으로 받아들이고 파괴해야할 대상으로 여겨선 안된다는 점입니다. 오히려 스낵컬쳐의 든든한 친구가 되어야하지요. 친구는 무조건적으로 옹호만 하는 것이 친구가 아닙니다. 서로 협력하고 의지하고, 격려하지만, 필요할 때는 쓴소리도 할 줄 아는게 친구입니다. 문화와 인문학은 친구의 관계에 있어야만 합니다. 결국 인문학이 밝히고자 하는 것이 문화이기 때문이지요. 그러면서도 미래를 읽을 수 있기에 잘못 된 방향으로 가는 것을 막아 줄 수도 있고요. 경험많은 친구, 혹은 은사, 또는 부모가 되어야 하는 것이 인문학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융합으로 가는 길입니다.




만약 문화발전이 해당 문화가 가장 좋은 균형으로 완성되어가는 과정이라고 한다면 스낵컬쳐는 좋은 균형을 가질 조짐이 보입니다. 어찌됐건 인문학과의 연계에 많은 노력이 기울여지고 있으니까요. 이번 미래문화포럼 또한 그러한 노력의 한 단면이라고 생각합니다. 반면 스낵컬쳐를 아우르는 거시적인 문화 전체를 바라본다면 스낵컬쳐는 이러한 현상의 일부분에 불과합니다. 우리 앞에 더욱 부정적이고 극단적인 문화현상이 나타날 수도 있겠죠. 이에 대한 밸런싱 작업은 대중들의 비판의식과 인문학이 스낵컬쳐의 내부, 혹은 외부를 통해 해결해야 할 문제입니다. 이러한 작업이 어떻게, 얼마나 이루어지냐에 따라 후에 득과 실, 충분했는가, 충분하지 않았는가에 대한 판단이 날 수 있겠죠. 






3.앞으로 스낵컬쳐와 인문학이 우리나라에 끼치게 될 영향




Culturelove: 스낵컬쳐와 인문학이 득이냐 실이냐를 떠나서 분명한 것은 이 두가지 문화트렌드가 우리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미치고 있다는 것에는 이견이 없을 것 같습니다. 앞으로 우리 사회에 스낵컬쳐와 인문학이 가져올 변화에 대한 섬이님의 개인적인 의견을 묻고 싶습니다.




섬이: 위에서도 이미 많이 이야기했지만, 결국 태도의 문제가 앞으로의 미래를 결정할 것 같습니다. 스낵컬쳐와 인문학을 대립 관계로 놓는다면 문화와 학문은 결국 서로 유리되고 말것입니다. 이것 만한 파국도 없지요. 둘 모두 극단을 향해 치닫는 다는 뜻이니까요. 반면 둘을 융합하고 공생하는 관계로 바라본다면 긍정적인 방향으로 사회에 영향을 미칠 것을 확신합니다. 문화를 선도하느냐, 문화에 끌려가느냐, 아니면 문화와 함께하느냐. 지금까지 나온, 그리고 앞으로 나올 이에 대한 답들이 변화의 핵심이 될 것입니다.






4.소감




Culturelove: 마지막으로 본 포럼에 참여하시고 느낀 소감을 자유롭게 말씀해주세요^^




섬이: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배울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좁게 말하면 스낵컬쳐와 인문학 열풍, 넓게 보자면 문화와 학문의 관계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포럼이 지속적으로 열려, 우리의 사고를 재설계 해준다는게 얼마나 고맙고 의미 있는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제1차 2014 미래문화포럼을 주최, 주관한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의 관계자 여러분과 멋지고 유익한 강연을 해주신 최진석 강사님, 한기호 강사님, 전경란 강사님, 박영만 강사님께 깊은 감사를 전합니다. 




추가적으로 이후의 포럼에 대해 바라는 바가 있다면, 예술과 문화와 산업의 관계에 대해 정밀한 진단을 들어보고 싶습니다. 이를테면 예술과 문화의 기반 위에 산업을 육성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과 산업이 예술, 문화를 육성 '시키는' 피동적인 성장 형태 같은 것에 대해 말이죠. 또한 이번 포럼은 문화 관계자 위주의 강사진이었다면 문화 창작자인 강사분들의 이야기도 듣고 싶습니다. 앞으로도 다양한 이야기를 접할 수 있는 멋진 시간이 될 것 같아 벌써부터 맘이 설레네요(웃음).




Culturelove: 섬이님께서 이번 2014 제1회 미래문화포럼을 유익하게 즐기셔서 저도 기쁩니다^^ 저 역시 정말 뜯깊은 시간을 갖게 되어서 좋습니다. 함께 참석해주시고 인터뷰까지 응해주신 섬이님께 감사말씀드립니다. 또, 좋은 자리를 마련해주신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관광연구원 그리고 강사패널분들께도 감사말씀드리며, 앞으로도 유익한 포럼이 되길 기원하겠습니다. 






※ 본 행사는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주최, 한국문화관광연구원에서 주관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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