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에도 적었지만 당연하게도 스포 있습니다.
주말 관람을 원하시거나 북적거리는 상영관이 싫어서 관람을 미루신 분들이라면 빠르게 뒤로가기 하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원래 개봉일은 저도 사람 많은거 싫어해서 좀 천천히 보려 하다가
도저히 스포를 피할 방법이 없을 것 같아서
속편하게 개봉일에 급하게 보고 왔습니다.
그런고로 지금 쓰는 이 글은
관람 직후 쓰는게 아닌
이틀동안 이것저것 찾아보고 종합한 결과물 되겠습니다.
우선은, 간단하게 말할 수 있는 이번 인피니티 워 의 문제점이라 한다면..
무려 10년간 18편의 영화를 통해 준비기간을 다져온,
일종의 장기 시리즈물의 하이라이트라는 점이겠지요.
일반적인 경우 팬층이 두터운 장편 시리즈물이라면
당연하게도 중간에 갑자기 팬이 되기는 힘든 법입니다.
MCU라면 아직 18편밖에 안되니 상대적으로 쉽지 않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강산도 변한다는 10년이라는 기간임을 생각해보면
이번 영화 한편을 위해 10년 된 영화부터 전부 찾아서 예습하라고 하는건 사실 좀 무리겠지요.
그런 의미에서 인피니티 워 자체는
그동안 MCU를 좋아하고 응원했던,
시리즈의 팬들을 위한 영화라고 생각해야 하며
'남들 다 보니까 나도 봐야지' 라든가
'히어로 무비라는건 시간때우기용 팝콘무비 아냐?' 라고 생각하며 가볍게 보는 분들에겐 굉장히 불친절한 영화일수밖에 없다는 말이죠.
이번 한편을 위해
그 수많은 등장인물들의 능력과 정체성과 갈등과 관계들을 일일히 서술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타노스라는 악역도 마찬가지입니다.
진작부터 팬이었던 분들이나
인피니티 워 한편을 위해 미리 예습하신 분들이라면
새로운 인물이 등장해도 이름과 능력정도는 다 알고있으니 설명할 필요가 없겠지만
타노스가 주인공인 영화임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상당한 비중을 가지고 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타노스의 자식들은 극중에서 이름 한번 불리지 않습니다.
서사를 위해 그들이 누구인지, 어떤 능력을 가진 인물인지에 대해 설명할 필요가 없다는거죠.
이런 불친절함 때문에
중간에 뛰어든 사람들이나
별 관심없지만 인기많은 영화라 보는 일반 관객들에게는
앞서 나왔던 마블 스튜디오의 다른 영화들보다 어렵고 재미없는 영화가 될 수도 있습니다.
더해서, 인피니티 워 자체의 엔딩조차 일반 관객에게는 실망 그 자체일수도 있지요.
앞서 나왔던 18편의 영화에서는
줄기차게 히어로들이 처맞고 깨지고 핀치에 몰리고
심지어 죽었다 살아나기까지 하면서도
결국 엔딩에서는 악당을 물리치고 승리하는 모습을 보여줬는데
이번에는 질듯 질듯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유지하다가
결국 마지막에 타농부에게 져버리고,
살아남은 히어로들은 동료들이 사라져가는 모습을 지켜볼 수 밖에 없는 무력한 모습을 보여주어
악역의 승리로 끝난 영화가 되었습니다.
여태 봐왔던 영화들처럼
신나게 롤러코스터를 타다가
마지막은 선역의 승리로 끝나는
기분 좋은 영화를 보러 왔는데
엔딩이 이게 뭐야??? 라는 반응이 나올 수도 있다는 말이지요.
물론 어벤져스 4편이 기다리고 있으며
그 엔딩에서는 히어로들의 승리가 약속되어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있는 팬들의 입장에서는
이번 타농부의 승리가
다음편을 더욱 기대하게 만드는 흥분제와도 같은 역할을 하겠지만 말입니다.
이런 특수성때문에 관객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수 있다는 점은 충분히 염두에 두어야 할 것입니다.
둘째로, 간단하게 설명하기 힘든.. 국내 한정의 문제에 대해 얘기하자면.
역시 번역의 질이죠.
쿠키영상의 프로 머더뻐커러를 세상 둘도 없는 효자로 만들어버린 것이나
타농부를 실패한 정책을 똥고집으로 밀고있는 대량학살자로 둔갑시켜버린 것이나
큰 그림 그리고 있던 의사선생을 한순간에 신념이고 뭐고 저버리는 트롤러로 만들어버린 것 등.
이미 다들 알고계실거라 생각합니다.
거기에 더해,
DC에서는 수퍼맨을, 마블에서는 캡틴을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라 더더욱 환장할 수 밖에 없는 번역문제를 하나 더 가져와 보겠습니다.
캡틴과 비젼이 어벤져스 본부에서 대화를 나누는 장면에서
비젼의 질문에 대한 캡틴의 답변.
.....친구를 버리지 않는다구요....?
이거야말로 정말 결정적인 오역이자 잘못된 창작입니다.
네. 물론 극의 흐름이나 히어로들이 뭉쳐서 사건을 해결한다는 어벤져스의 지난 행보를 생각한다면
일견 가장 적절한 대사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만.
원래 대사는 타농부의 신념과 정 반대되는 캡틴과 어벤져스의 생각을 고스란히 드러내주는
굉장히 상징적인 대사지요.
거기다 퍼스트 어벤져 이후로 계속해서 쌓아온 캡틴의 캐릭터를 다시 한번 확실히 보여주는, 정말 중요한 대사임에도 불구하고
자막을 저렇게 깔아버리는 바람에
나카마 마모루 타령이나 하는 일뽕 애니/게임 캐릭터들과 하등 다를것 없는 스테레오타입 히어로로 만들어버린 것은
앞서 언급했던, 이미 널리 알려진 오역 문제들 만큼이나 심각한 문제로 봐야합니다.
좀 더 설명해보자면
타농부의 신념은 흔하게 알려진 트롤리의 딜레마와 비슷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요.
그.. 짤이 어디 있었는데...
여깄네요.
무작위로 전체 생명체의 절반을 죽인다면 자연(우주)이 회복할 시간을 벌게되어
생존한 절반은 풍요를 누리게 된다 라는 선택의 문제는
결국 트롤리의 딜레마에서 공리주의에 입각해 소수(무작위 절반)의 희생을 통해 다수(생존인원의 미래 자손들까지 포함한)가 생존하는 선택을 내리는 것과 같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반면에 캡틴의 선택은
둘 중 어느쪽의 희생도 그 생명의 무게에 대해 저울질할 수 없기 때문에 트롤리 그 자체(이 경우는 타농부가 되겠죠)를 막겠다는거고 그 과정에서 자기나 동료들이 희생할 수도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행동입니다.
실제로 타농부와의 최종결전 전에는
무슨 수를 쓰더라도 비젼을 지키고 마인드스톤만을 분리하라고 하던 캡틴이
더 이상 막을 수 없다고 판단하자 최후의 수단으로 비젼이 희생하겠다는 것을 인정하고 말지요.
이게 저 망할 자막으로 보자면
동료 안버린다고 립서비스 다 해놓고
위험할것같으니 동료 버리라고 하는,
캡틴의 왜곡된 인성짤에 흑역사로 한줄 추가될만한
좀 ㅂㅅ같은 극의 흐름이 되어버린거구요.
또 비교되는 것은
거의 비슷한 선택이긴 하지만
어벤져스 1편부터의 사건들을 겪고
시빌워에서 더 확고하게 굳어진 토니의 신념이지요.
일단 트롤리(타농부)를 막긴 하되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불필요한 민간인 피해는 최소화하기 위해
우주선의 방향을 돌리지 않고
타임스톤을 미끼로 본진에서 결전을 치룬다... 라는 선택 말입니다.
신형 슈트의 성능을 매우 과신한데다
미숙하지만 쓸만한 능력을 가진 피터,
대하기 껄끄럽지만 강력한 의사선생의 능력만을 믿고 저지른,
지극히 토니 스타크 다운 자만심 가득한 선택이지만요.
본진에서 스타로드 일행과 합류하지 못하고
타이탄 행성이 멸망하지 않아서
타농부의 군단이 셋을 맞이했다면
제대로 손 써보기도 전에 박살날 수도 있었으니까요.
이쯤 하고 다시 대사 얘기로 돌아가서...
극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와도 관련있는
매우 상징적이고 중요한 대사를
길고 철학적인 문장이라고 해서
멋대로 관객의 눈높이를 낮춰버리고
원래 의미와는 전혀 다른 대사로 바꾸는 것은
작품을 통째로 망쳐놓는 행위이며
관객과 배우, 감독, 각본가를 포함한
관련된 사람들 모두를 무시하고 바보취급하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영화 자체는
10년을 함께한 팬의 입장에서
축제와도 같은 물건인데
그놈의 번역때문에 영 기분이 좋지 못하게 됐네요.
제발 이후의 마블 영화에서는
이런 번역을 접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뭐.. 가능하면 다른 모든 영화에서도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