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글은 여러 작품들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 점을 유의하여주시기 바랍니다.
<모험을 하는 모험>
인생을 비유하는 많은 소재와 명칭이 있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인생을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단어는 ‘모험’이 아닐까 싶다. 사전에서 찾아본 모험의 의미는 ‘위험을 무릅쓰고 어떠한 일을 함. 또는 그 일.’ 이라고 한다. 사실, 따지고
본다면 소수의 장르를 제외한 거의 모든 작품에서 모험이라는 소재를 사용하고 있다. 왜 인생을 모험이라고
표현하기 적절한지 예를 들어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가령 판타지 세계에서 공주를 납치하고 세계를 멸망시키려
하는 마왕을 타도하는 용사를 다룬 작품에 비유하자면, 삶은 이 작품이요, 모험가이자 용사(현실의 직업)는
당신이고, 마왕을 무찔러 세계를 구하고자 하는 건 당신의 목표. 당신과
뜻을 함께하여 동행하는 동료들은 현실의 친구들. 그리고 그 목표를 이룬 용사와 사랑에 빠지는 공주는
곧 당신의 (미래의)아내.
제법 잘 들어맞지 않는가?
예로부터 ‘모험’이라는 소재는 각종 매체와 작품들 속에서 활용되어 왔고 사람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아왔다. 그러나 그만큼 많은 작품들이 나오다 보니, ‘클리셰’라는, 일정한 패턴 하에 의도된 연출이 일어나는 극적 장치들이 많이
만들어지고 정형화되었다. 또다른 말로는 본래 프로그램 진행 중 특정 이벤트를 발생시키기 위한 조건이
충족되었을 때 '플래그가 서다'고 표현했던 프로그래밍 용어인
‘플래그’ 라고 칭하기도 한다. 이런 틀에 박힌 연출들은 처음 접할 때는 신선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다음 전개를 예측하게 만들어 스토리를 진부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모험물들, 개중에는 클리셰들로
가득찬 이른바 ‘정통파’들도 있고, 기존의 식상함을 탈피하기 위해서 그런 클리셰들을 타파한 작품들도 있다. 만화와
애니메이션이 시작된 때부터 지금까지 흐른 시간동안 정말로 많은 작품들이 있지만 아쉽게도 모두 다 다룰 수는 없고,
이 칼럼에서는 그런 모험물의 특징들에서 나타나는 몇 가지 클리셰들에 대해서 알아보고 그 특징을 가지고 있는 작품들의 예시와 간략한
설명을 덧붙일 것이다.
‘’오늘은 이만 물러가주지……”
적들이 주인공을 거의 다 이겨놓고서 제압, 혹은 죽일 수 있는 기회인데도 그러지 않고 뒤로 빼는 상황에서 쓰이는 클리셰다. 대체로 주인공의 능력이 아직 모자란 초반부에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작가가 이 때 각종 암시와 복선을 깔아두며, 강적을 등장시켜서 주인공을 무참하게 쓰러뜨려 주인공의 신념 (예) 더 강해져서 사람들을 지키겠어!)을 강화시킨다. 이 이벤트를 통해서 순조로운 모험을 하는 주인공에게 패배라는 좌절을 안겨주고 그 악역의 존재감을 띄워주면서 주인공이
결의를 다잡게 하는 동기를 만든다.
당연히, 그 강적, 악역은 반드시
주인공이 능력을 갖췄을 때 제일 먼저 복수의 대상이 된다. 이럴 때 악당은 성장한 주인공의 새로운 능력에
가차없이 당하고 마는데 일각에서는 이 때 악당의 역할이 악역이 아닌 주인공의 ‘전투력 측정기’라는 별명을 선사하기도 한다. 물론 악역이 너무 강해서 주인공이 도전해도
계속해서 당하는 경우도 있지만 최후에는 주인공이 이긴다. 그렇지 않으면 꿈과 희망이 가득찬 모험물이
아니니까. 만약 끝까지 악역을 이기지 못하고 패한다면 그 작품은 베드 엔딩을 맞이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어쨌든, 이 패턴을 시전하는 적들의 타입을 알아보도록 하자.
<이런 경우>
주인공을 인정하는 적.
주인공을 높이 평가해서 이 자리에서 제압하지 않고 장래를
기대하는 컨셉이다. 가끔 주인공의 신념에 감동 받아 역으로 설득 당해 악역에서 선역으로 전환하는 사례도
있으며 분위기가 가벼운 작품에서는 악역보다는 ‘라이벌’의
느낌이 나기도 한다. 물론 다른 악역 입장에서는 주인공을 죽일 수 있는 기회가 여러 번 있는 데도 번번히
놔주는 걸 보면서 속이 터지지만 이런 적은 대부분 다른 악역보다 강하기에 아무 말도 못하거나, 아니면
일부러 실수를 하는 등 눈치채지 못하게 주인공을 놓아주는 방법을 쓰기도 한다. 이럴 때는 그 에피소드의
마지막 부분에 이 악역이 보스와 대면하면서 너답지 않다, 두 번 실패는 없어야 한다, 라는 소리를 듣는 건 덤이다.
이 타입의 적들이 하는 대사는,
“흠, 여기서 끝내기에는 네 능력이 아깝군.”
“호오, 적이지만 대단하구나…...”
“다음에 만날 때는 제대로 된 상태에서
싸우자....!”
“후후, 제법이군. 더 성장한 너를 기대하겠다.”
등이 있다. 헌터X헌터’의 히소카가 곤과 키르아를 죽이지 않고, 특히 곤에 대해 관심을 보이며 성장할 수 있도록 살려두는 게 좋은 예이다. 물론
이 인물은 알고 보니 선역이라기 보다는 그저 그 자신이 싸움에 미친 성격이라 주인공을 가지고 노는 걸 좋아하는 악역에 가깝다. 악역이라고 보기에는 애매한 경우는 ‘원피스’에서 루피를 얼려두기만 하고 살려두는 아오키지, 그리고 롤로노아 조로의
투지를 보고 감탄하면서 역시 죽이지 않고 큰 상처만 입히고 떠나는 쥬라큘 미호크 또한 마찬가지다. 이외에도
웹툰의 경우 ‘신의 탑’에서 탑의 최강자 중 한 명인 우렉
마지노가 목숨을 건 내기에서 진 주인공(쥬 비올레 그레이스=스물다섯번째밤)을 마음을 바꿔서 살려주는 케이스도 이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만화 ‘블리치’의 악역 ‘우르키오라 시파’>
주인공을 무시하는 적.
주인공과 악역의 능력 차이가 너무 나서 악역이 압도적으로
주인공을 박살내고 흥미를 잃거나 관심조차 두지 않는 케이스이다. 나중에야 주인공이 ‘주인공’으로 격상하지 초반부에 주인공은 그저 악당에게는 새로운 엑스트라
정도로 인식되기에, 악당이 아예 신경조차 쓰지 않는다. 처음부터
악당들의 보스를 대면했을 때 주인공이 살아남을 수 있게 하는 중요한 클리셰이다. 이 패턴에서 주인공의
자존심은 나락으로 떨어지며 매우 높은 확률로 무력해진 주인공 앞에서 주인공의 동료나 가족 같은 지켜야 할 소중한 것들의 희생된다.
따라서 주인공은 절망하고 이 때의 경험이 트라우마가 되며, 이게
계기가 되어 나약한 자신을 바꾸고 수련해서 강해져야 한다는 집착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 작품의 분위기에
따라서 증오의 화신이 될지, 아니면 아직 남은 정신적 지주 혹은 동료가 설득해서 정신을 차리는 분기로
나뉜다. 이 타입의 적의 대사는,
“하. 시시해. 죽일 가치도
없어.”
“목숨은 살려주마. 오늘은 물러가주지.”
“목적은 이뤘으니, 네게 볼일은 없다.”
정도. 두 번째
대사는 주인공이 자존심이 세면 굴욕감에 절규하면서 “동정은 필요 없어! 차라리 날 죽여!”
까지 말하는 추가 패턴도 있다. ‘블리치’에서
몇 번씩이나 주인공 이치고데도 아예 위혐 요소가 되지도 못한다고 판단, 그대로 물러나버린다. 같은 작품의 아이젠 소스케도 이치고를
죽일 수 있는 기회가 두 번이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역시 그러지 않았다. ‘나루토’의 초반부 때 오로치마루도 사스케에게나 눈독들였을 뿐 옆에 있던 나루토는 아예 신경도 쓰지 않았다.
<령인 지룽을 영멸, 즉 소멸 시킬 수 있는 데도 아군이 당할 위기에 처하자 그를 놓아주는 사신, 백서. (네이버 웹툰, 헬퍼.)>
적에게도 사정이 있어요.
주인공 편 뿐만 아니라 적들에게도 사정이 있다. 주인공을 쓰러뜨려야 할 역할은 그 적이 아닌 다른 적이 맡은 역할이라 지금 쓰러뜨리면 안 된다던지, 혹은 주인공이 당하기 직전 동료나 아군의 지원이 나타나는 것 같이 결정적인 때에 누군가 훼방을 놓는다던지, 아니면 다른 악역이 주인공을 쓰러뜨리려는 악역을 만류하는 경우가 있다. 다른
악역이 말리는 경우는 앞서 말한 것처럼 살인은 하지 않는 주의를 따르는 인물이거나, 보스의 명령에 따르지
않는 이들이 하는 대사는,
“널 상대할 자는 따로 있다. 내 역할은
여기서 끝이다.”
“뭐라고?! 칫, 아깝군. 여기서 물러나야 하다니…...”
“하필이면 이럴 때……!”
A : “왜 날 막는 건가?” B: “굳이
죽일 필요 까지는 없어.”
같은 것들이다. 여기다 적이 분을 참고 물러나면서 “다시 만나면 그땐 반드시 죽이고 말겠다!” 까지 하면 금상 첨화. 이 패턴에 해당되는 가장 유명한 사례로는
해리 포터를 죽일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음에도 (불사조 기사단, 죽음의
성물) 볼드모트에게 갖다 바치기 위해 노력하다가 결국 항상 당하고 마는 ‘죽음을 먹는 자들’ 되시겠다. 또
인용되는 ‘블리치’에서는 그림죠 재거잭이 명령을 어기고 이치고와
상대하다가 발각되어 도로 물러나는 상황이 있다.
<입체적인 캐릭터성으로 주인공인 손오공을 제치고 높은 인기에 힘입어, 그 자신이 주인공으로 라이트 노벨도 출판된 혼세마왕, 마법천자문>
또는, 주인공과
알고 보니 아는 사이, 즉 적이알고 보니 쓰러뜨린 주인공과 어떤 관계가 있어서 물러날 수 밖에 없는
상황도 있다. 그 사정은 숨겨진 혈연 관계라던가, 과거에
주인공 혹은 주인공과 가까운 인물에게 빚을 지는 것 같은 예가 있다. 혹은 악의 조직이 잘못된, 조작된 정보를 이 인물에게 주입하여 주인공을 적대하게 하는 경우도 많으며 이 때는 보통 악역이 주인공에게 진실을
듣는다. 물론 그 때 바로 알아차리지는 않고 ‘헛소리 하지마!’ 하면서 주인공을 쓰러뜨리지만 이 마음에 동요가 생겨 끝장을 내지는 못하고 퇴각한다.
이후 자신이 속한 악의 조직에 대해 회의감을 지니고 고뇌하는 장면이 삽입되며 나중에 주인공이 다른 적에 의해
위기에 처했을 때 나타나서 구해주고 든든한 아군이 되거나 주인공이 보스를 쓰러뜨릴 때 희생 등의 형태로 도움을 주는 건 익숙한 전개. 그 예로 '원피스'의 에니에스 로비 에피소드에서, 해군의 거짓말에 속아서 에니에스 로비의 문을 지키는 거인족, 오이모와 키아시가 있다. 이들은 처음에는 밀짚모자 해적단과 프랑키 패밀리를 적대한다. 그러나, 후에 진실을 알고 있는 저격왕, 우솝에게 사실을 전해 듣고, 자신들을 속인 해군에 분개하여 루피 일행을 돕는다. 인기 학습(?)만화인 '마법천자문'의 악역, 혼세마왕도 본래는 선역 쪽 캐릭터였으나 작중 악역 대마왕에 의해 악마가 된 후, 선역 쪽 인물들과 재회하면서 자신이 누군지에 대해 고뇌하는 모습을 보인다.
<다음 편에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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