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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브컬쳐] 2014 제1회 미래문화포럼 인터뷰 - 대한민국 문화의 현주소를 진단하다. (0) 2014/05/26 PM 12:35

2014 제1회 미래문화포럼 인터뷰 - 대한민국 문화의 현주소를 진단하다.




20140521_113940.jpg


▲2014 제1회 미래문화포럼이 개최된 광화문의 대한역사박물관



(http://www.much.go.kr/)








안녕하세요. 파운틴 문화콘텐츠웹진 운영진 Culturelove입니다. 지난 5월 21일 한국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문화관광연구원이 주관하는 2014 제 1회 미래문화포럼이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개최되었습니다. 이번 미래문화포럼의 주제는 “간편하고 빠름, 어렵고 느림의 문화” 로 최근 문화의 트렌드로 부각된 스낵 컬쳐와 대한민국의 인문학 열풍, 그 두 현상을 바라보고 이에 대해 토의하는 자리였습니다. 






미생.JPG


▲다음에서 제작한 모바일 무비-미생 10분 이내의 짧은 상영시간으로 간단하게 즐길 수 있다.


(영상 링크)






스낵컬쳐(Snack Culture)란 마치 과자를 먹듯 간단하게 즐길 수 있는 문화들을 말합니다. 정보통신 기술이 발달하면서 현대인들은 스마트 폰을 통해 어디서든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게 되었으며, 보다 간편하고 직관적인 문화콘텐츠들이 증가하기 시작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인터넷을 통해 언제 어디서든 볼 수 있는 웹툰, 10분 이내의 짧은 상영시간을 가진 모바일 무비(미생) 그리고  짧은 시간 안에 진행되는 TED강연(강연기부프로그램) 등이 있습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접하기가 상대적으로 쉽지 않고, 많은 시간과 노력을 필요로 하는 인문학이 지난 수년간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구면서, 과연 이 두 문화현상이 우리 사회에 의미하는 것이 무엇이고 앞으로 대한민국의 문화발전을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이번 포럼에는 파운틴 문화콘텐츠웹진을 대표하여 운영진 대표로 저와 함께 집필위원 대표로 "sumE의 문학산책"을 연재해주시는 섬이님께서 함께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이번 포럼에서 듣고 나누었던 이야기들을 인터뷰를 통해 여러분들과 함께 공유하고 이야기 해 보고자 합니다.



인터뷰에 앞서 본 포럼의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신 분은 아래 링크를 참고해주시기 바랍니다.




2014 제1회 미래문화포럼 세부내용.hwp


2014 제1회 미래문화포럼 보도자료 링크




20140521_123420.jpg


▲포럼이 시작되기전 비어있는 강의실. 


너무 크지도 작지도 않은 적당한 공간에서 강사 패널분들과 게스트들 간의 활발한 토론이 이루어졌다.






1.대한민국의 스낵컬쳐와 인문학 열풍의 원인은 무엇인가?




?Culturelove: 이 질문은 이번 포럼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내용이었고, 패널분들께서도 이 부분에 대한 많은 답변을 제시해 주셨습니다. 인문학 열풍의 이유로 서강대학교 철학과 교수이신 최진석 교수님께서는 대한민국이 중진국에서 선진국으로 가는 과정에서 인문학에 대한 추구는 필연이다. 선진국들은 역사를 보았을 때 모두 인문학을 중요시 했다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즉 대한민국 사회가 이제 인문학을 준비할 단계가 되었다는 의미인데요. 또 전경란 동의대학교 디지털콘텐츠학과 교수님께서는 IT기술의 발달이 간편하게 즐길 수 있는 스낵컬쳐 발달의 기초가 되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일각에서는 스낵컬쳐와 인문학은 특성 자체가 상반된 문화라고도 보는 시선도 있는데요. 섬이님께서는 두 문화트렌드가 떠오르게 된 이유를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여쭙고 싶습니다.





섬이: 먼저 최진석 강사님의 강의를 감명깊게 들었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습니다.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인문학이 세상에 미치는 힘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었네요. 사실 인문학은 우리와 가장 가깝지만 멀게 느껴지는 학문입니다. 사람들은 과학이 어떻게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는지, 혹은 여타 학문이 어떤 모습으로 우리 곁에 다가와있는지는 쉽게 알아차리지만 인문학이 어디에서, 얼마나, 어떻게 우리와 함께 하는 지는 잘 모르지요. 그 이유는 최진석 강사님의 말대로 그것이 인간에 대한 '개념'을 밝히는 일이기 때문일 겁니다. 개념은 여러 관념 속에서 공통 된 요소를 추상하여 종합한 하나의 관념이라고 사전에서는 말합니다. 말인즉슨, 강사님(최진석 강사)의 말마따나 인간의 '동선'이라는 거죠. 비록 추상적인 것을 다루고 있으며 물질화 되기 어려운 학문이기에 대중의 시선에 들기 어려운 점이 분명 존재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공통적인 문제의식, 삶에 대한 태도, 원하는 바 등의 관념이 곧 개념이고 그 개념이 인간의 '동선'이라면, 그 동선을 밝히는 인문학은 현재 우리가 가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키워드가 된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강의 내용과 연계해서 생각해 봤을 때, 그러한 해결의 절박함 때문에 현재 인문학의 열풍이 불고 있는 것이라 생각해 볼 수 있는데요. 사실 지금은 인문학 또한 스낵컬쳐와 깊이 연관되어 있습니다.




전경란 강사님께서는 스낵컬쳐가 모바일 미디어의 부상과 관련이있다고 설명하셨습니다. 사실 우리 문화는 어느 단계 이후로 꾸준히 미니멀리즘을 지향해 왔습니다. 예술 뿐만 아니라 생활 양식 자체가 점점 간결화 되고 단순해 지고 있지요. 그것은 단순히 편리함을 넘어서서 직관성을 추구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사물의 가장 단순한 핵심을 표현해야 진실을 꿰뚫을 수 있다는 미니멀리즘의 태동이유와 동일하지요. 현 인류가 추구하는 방향과 기술 발달의 방향이 정확히 일치하면, 그 기술에 따른 새로운 문화가 생겨납니다. 증기기관이 세상을 바꾼 것처럼 말이죠. 우리가 누리고 있는 스낵컬쳐또한 이와 동일합니다.




문제는 스낵컬쳐가 직관성과 편리함을 넘어서서 '사유의 나태'를 만들어내는 측면이 있다는 점입니다. 직관성의 최대의 문제가 그거죠. '과정'이 없으니 과정에서 읽어낼 수 있는 '사유'가 없습니다. 과정, 다른 말로 하면 동선을 읽어낼 수가 없으니 자연스럽게 사람들의 동선을 읽어내는 기능도 퇴화하게 됩니다. 위에서 이야기했듯 인문학이 인간의 동선을 밝혀내는 학문이라면, 동선을 읽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는 이 시대에는 대중 중심의 인문학도 함께 퇴화할 가능성이 많다는 겁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점이 있습니다. 이렇게 인문학의 적처럼 느껴지는 스낵컬쳐가 사실은 인문학에서 태동했다는 점입니다.




인문학과 스낵컬쳐가 서로 상반 된 문화라고 했던가요? 일단 정정하고 가야할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인문학은 문화가 아닙니다. 문화가 무엇인지 밝히고 어떻게 흘러왔으며 어떻게 흘러갈지를 연구하는 '학문'이지요. 반대로 스낵컬쳐는 이름 그대로 문화입니다. 스낵컬쳐와 상반된 관계에 인문학을 대입하고자 한다면 인문학 열풍이라는 문화현상을 넣어야겠죠.




여기서 이 둘의 관계를 잠시 진단해보고 넘어가야할 것 같습니다. 스낵컬쳐는 미니멀리즘이라는 인문학을 바탕으로한 예술, 사상적 경향을 바탕으로 탄생한 '문화'입니다. 그리고 현재의 인문학 열풍 또한 스낵컬쳐의 영향을 받은 캐주얼한 인문학의 열풍이지 결코 인문학 그 자체의 열풍이 아닙니다. 인문학에 대한 관심은 지금껏 꾸준히 있어왔습니다. 다만 접근하기 힘들었을 뿐이지요. 그런데 거기에 스낵컬쳐라는 문화현상이 결합되면서 자계서, 강의록, 강사의 브랜드가치를 위주로한 인문학이 팔리게 된 겁니다. 불황을 겪고 있는 관계사로서는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지요. 거기에 인문학 열풍이라는 현상을 명명합니다. 그런데 이 인문학 열풍이라는 건 사실 스낵컬쳐에 기생해있는 어떤 하나의 상품에 불과합니다. 그러니 현실적으로는 인문학 열풍이 스낵컬쳐의 대척점에 놓일 수 없는 것이지요. 스낵컬쳐는 '문화'지만 인문학 열풍은 '상품'이니까요.




정리하자면, '인문학'은 '학문'입니다. '스낵컬쳐'는 '문화'입니다. 그리고 '인문학 열풍'은 '상품'입니다. 인문학은 스낵컬쳐의 기반이 되었고 스낵컬쳐 안에서 인문학 열풍이라는 상품이 태어났습니다. 우리가 수평적 대립관계라고 생각했던게 사실은 수직적 종속관계였던거지요. 그런데 거기에 역전 현상이 벌어집니다. 스낵컬쳐는 과정의 결여라는 특성으로 인해 자신의 아버지인 인문학의 퇴화를 야기합니다. 그런데 스낵컬쳐의 자식인 인문학 열풍은 다시 스낵컬쳐에 대한 비판을 이끌어냅니다. 주목할만한 현상입니다. 이건 수직적 종속관계에 대한 하위 요소들의 수평적 관계를 획득하고자하는 반란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대립관계처럼 여겨지고 있고요. 앞으로 이러한 현상이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가 최대 관건이겠죠. 제 생각에 그 끝은 수직과 수평을 벗어난 융합 관계로 마무리 될 것 같습니다. 잘 해결 된다면 말이죠. 이번 포럼에서 이러한 부분에 대한 고찰은 조금 미흡했던 것 같기에 제 스스로 나름의 진단을 내려봤습니다. 물론 오진일 수도 있고요(웃음).






2.문화로서, 스낵컬쳐의 진정성과 질(Quality)은 충분한가?






스넥컬쳐.JPG


▲간편하고 맛도 좋은 과자(Snack). 


그러나 과자가 건강에 좋은지에 대해 물어보면 쉽게 '그렇다'라고 대답할 수 없다.






Culturelove: 과자는 맛은 있지만 몸에는 좋지 않습니다. 이렇듯 스낵컬쳐 또한 쉽게 즐기기에는 좋지만 자칫 문화의 질을 떨어트리고 문화발전을 저해한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재미만을 추구하는 간단하고 대중적인 문화들이 주류 문화의 자리를 차지하게 되면서, 정작 우리에게 필요한 문화들이 설 자리를 잃게 된다는 주장입니다. 반면에 전경란 동의대학교 디지털콘텐츠학과 교수님께서는 스낵컬쳐는 그저 단순한 것이 아니라, 최신기술을 반영해 누구나 쉽게 향유할 수 있게 했다는 것이고, 그것이 곧 스낵컬쳐의 본질 자체가 단순한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스낵컬쳐가 오히려 다양한 매체를 통해 스낵컬쳐의 부족함(박영만 강사님께서는 그것이 진정성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을 보완한다면, 다양한 방향으로의 문화발전에 도움이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섬이님은 문화발전에 있어서 스낵컬쳐가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 지 그리고 결과적으로 보았을 때 문화발전에 있어서 득인지 실인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섬이: 먼저 인문학과 스낵컬쳐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이야기 해야 설명이 가능 할 것 같습니다. 위에서도 말했듯이 스낵컬쳐가 인문학의 퇴화를 조장하는 부분이 분명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경향이 있다고 꼭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말씀드린 것 처럼 가장 궁극적으로 추구해야 할 것은 융합이겠죠. 박영만 강사님께서 말씀하진 진정성 또한 그러한 융합을 가능하게 하는 핵심 요소임에 틀림 없습니다. 스낵컬쳐는 본질적으로 가벼움, 간결함, 단순함, 직관성을 추구합니다. 이러한 점이 긍정적인 영향도, 부정적인 영향도 줄 수 있겠죠. 모든 걸 얻을 순 없습니다. 문화란 대중들과의 소통에서 비롯되는 것이기 때문에 당시의 대중들이 공통적으로 추구하는 것에 극단적으로 달려가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에 대해 주의를 주고 극단화를 막는 것이 바로 인문학이 해야 할 일이고요. 여기서 착각하지 말아야 할 것이, 스낵컬쳐를 인문학의 적으로 받아들이고 파괴해야할 대상으로 여겨선 안된다는 점입니다. 오히려 스낵컬쳐의 든든한 친구가 되어야하지요. 친구는 무조건적으로 옹호만 하는 것이 친구가 아닙니다. 서로 협력하고 의지하고, 격려하지만, 필요할 때는 쓴소리도 할 줄 아는게 친구입니다. 문화와 인문학은 친구의 관계에 있어야만 합니다. 결국 인문학이 밝히고자 하는 것이 문화이기 때문이지요. 그러면서도 미래를 읽을 수 있기에 잘못 된 방향으로 가는 것을 막아 줄 수도 있고요. 경험많은 친구, 혹은 은사, 또는 부모가 되어야 하는 것이 인문학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융합으로 가는 길입니다.




만약 문화발전이 해당 문화가 가장 좋은 균형으로 완성되어가는 과정이라고 한다면 스낵컬쳐는 좋은 균형을 가질 조짐이 보입니다. 어찌됐건 인문학과의 연계에 많은 노력이 기울여지고 있으니까요. 이번 미래문화포럼 또한 그러한 노력의 한 단면이라고 생각합니다. 반면 스낵컬쳐를 아우르는 거시적인 문화 전체를 바라본다면 스낵컬쳐는 이러한 현상의 일부분에 불과합니다. 우리 앞에 더욱 부정적이고 극단적인 문화현상이 나타날 수도 있겠죠. 이에 대한 밸런싱 작업은 대중들의 비판의식과 인문학이 스낵컬쳐의 내부, 혹은 외부를 통해 해결해야 할 문제입니다. 이러한 작업이 어떻게, 얼마나 이루어지냐에 따라 후에 득과 실, 충분했는가, 충분하지 않았는가에 대한 판단이 날 수 있겠죠. 






3.앞으로 스낵컬쳐와 인문학이 우리나라에 끼치게 될 영향




Culturelove: 스낵컬쳐와 인문학이 득이냐 실이냐를 떠나서 분명한 것은 이 두가지 문화트렌드가 우리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미치고 있다는 것에는 이견이 없을 것 같습니다. 앞으로 우리 사회에 스낵컬쳐와 인문학이 가져올 변화에 대한 섬이님의 개인적인 의견을 묻고 싶습니다.




섬이: 위에서도 이미 많이 이야기했지만, 결국 태도의 문제가 앞으로의 미래를 결정할 것 같습니다. 스낵컬쳐와 인문학을 대립 관계로 놓는다면 문화와 학문은 결국 서로 유리되고 말것입니다. 이것 만한 파국도 없지요. 둘 모두 극단을 향해 치닫는 다는 뜻이니까요. 반면 둘을 융합하고 공생하는 관계로 바라본다면 긍정적인 방향으로 사회에 영향을 미칠 것을 확신합니다. 문화를 선도하느냐, 문화에 끌려가느냐, 아니면 문화와 함께하느냐. 지금까지 나온, 그리고 앞으로 나올 이에 대한 답들이 변화의 핵심이 될 것입니다.






4.소감




Culturelove: 마지막으로 본 포럼에 참여하시고 느낀 소감을 자유롭게 말씀해주세요^^




섬이: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배울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좁게 말하면 스낵컬쳐와 인문학 열풍, 넓게 보자면 문화와 학문의 관계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포럼이 지속적으로 열려, 우리의 사고를 재설계 해준다는게 얼마나 고맙고 의미 있는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제1차 2014 미래문화포럼을 주최, 주관한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의 관계자 여러분과 멋지고 유익한 강연을 해주신 최진석 강사님, 한기호 강사님, 전경란 강사님, 박영만 강사님께 깊은 감사를 전합니다. 




추가적으로 이후의 포럼에 대해 바라는 바가 있다면, 예술과 문화와 산업의 관계에 대해 정밀한 진단을 들어보고 싶습니다. 이를테면 예술과 문화의 기반 위에 산업을 육성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과 산업이 예술, 문화를 육성 '시키는' 피동적인 성장 형태 같은 것에 대해 말이죠. 또한 이번 포럼은 문화 관계자 위주의 강사진이었다면 문화 창작자인 강사분들의 이야기도 듣고 싶습니다. 앞으로도 다양한 이야기를 접할 수 있는 멋진 시간이 될 것 같아 벌써부터 맘이 설레네요(웃음).




Culturelove: 섬이님께서 이번 2014 제1회 미래문화포럼을 유익하게 즐기셔서 저도 기쁩니다^^ 저 역시 정말 뜯깊은 시간을 갖게 되어서 좋습니다. 함께 참석해주시고 인터뷰까지 응해주신 섬이님께 감사말씀드립니다. 또, 좋은 자리를 마련해주신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관광연구원 그리고 강사패널분들께도 감사말씀드리며, 앞으로도 유익한 포럼이 되길 기원하겠습니다. 






※ 본 행사는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주최, 한국문화관광연구원에서 주관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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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서평] 다윈의 잃어버린 세계 - 마틴 브레이저 (0) 2014/05/26 PM 12:05
1859년, 런던에서 출간된 한 권의 책은 전세계를 뒤흔들었습니다. 찰스 다윈의《종의 기원》은 분명 지금까지 쓰인 가장 위대한 과학책들 중 하나였습니다. 모든 분야에서 과학적, 신학적, 철학적 반응이 일어났고, 언론인, 문필가, 상인, 사업가, 교육자, 그리고 평범한 사람들까지도 너도나도 의견을 피력했습니다. 주교, 시인, 개 사육자, 가정교사도 다윈의 책을 읽었습니다. 전 세계에서 신분과 직업과 관계없이 사람들은 자연선택을 통한 진화 개념을 논의하고, 그 쟁점을 자신의 문화적 맥락에 편입시켰습니다. 그것은 일반 사회에까지 뻗어나간 과학에 관한 최초의 진정한 대중논쟁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다윈의《종의 기원》은 신이 인간을 창조했다는 신학적인 현안에 도전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지만, 종교적인 차원에서 대규모의 反다윈 운동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다윈이 책을 내기 이전부터 기독교의 논리는 도전받고 있었고, 이미 성경의 내용은 하나의 비유에 불과하다고 대중들에게 인식되던 시기였습니다. 다윈의 책은 신학적인 부분보다는 정치적, 사회적 현안에 더 영향을 미쳤습니다. 다윈의 책에서 영감을 받은 사회다윈주의는 산업계의 부호들과 공장주들에게 환영을 받았고, 부자가 가난한 자를, 권력을 가진 자가 못 가진 자를 착취하는 것에 이론적 토대를 제공해줬습니다. 이러한 흐름은 더 나아가 제국주의와 우생학에 영향을 미쳤고 결과적으로 다윈의 책은 세계 역사에 의도하지 않았던 자국을 남겼습니다.

다윈이 남긴 기록을 보면 신중했던 그는 자신의 책이 미칠 영향력을 어느정도 예상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오랜 시간에 걸쳐 내용을 점검하고 수정했으며 출간 이후에도 계속적인 보완을 거쳤습니다. 특히 인간과 관련된 부분을 언급하는데 있어서 신중했는데,《인간과 동물의 감정 표현》의 출간은《종의 기원》출간 이후 꽤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이런 신중한 태도에도 불구하고 그의 책에서 가장 문제가 된 부분은 과학적인 영역에 있었습니다. 이 책은 우리가 오늘날 과학책이라고 하면 으레 떠올리는 이러저러한 일반적인 사항들에 들어맞지 않았습니다. 이 책의 문체는 놀라울 정도로 개인적이며, 그래프나 수식도 없고, 실험실에서 하얀 실험복을 입고 일하는 연구자도 언급되어 있지 않으며, 전문 용어도 전혀 나오지 않습니다.

다윈은 진화가 작용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결정적인 실험을 한 적이 없습니다. 그런 것들은 다윈 사후 한 세기가 더 지난 뒤에야 등장합니다. 다윈은 책을 통해 그저 생물들에서 변이가 논란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나타난다는 것을 보여줄 뿐이었습니다. 다윈은 어떤 경우엔 운이 없었고, 어떤 경우엔 기술이 없었습니다. 다윈은 동물의 돌연변이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는데, 이 문제는 운이 없었습니다. 다윈이 완두콩을 연구했거나 초파리를 연구했다면 더 나은 결과를 얻었을 것입니다. 마틴 브룩스의 지적처럼 다윈이 그런 행운을 얻을 수 있다면 턱수염을 밀고 린네 학회에서 알몸으로 춤이라도 추었을 것이며, 최신 부리 측정 장비까지 덤으로 제공하는 갈라파고스 제도행 무료 여행 티켓도 포기했을 것입니다.



틀림없이 다윈은 무덤 속에서 통곡했을 것이다. 그는 유전의 매커니즘을 제대로 알지 못해 평생 동안 자신의 진화론을 더 설득력 있게 주장할 수 없었다. 다윈이 제시한 진화론의 증거는 생물과 환경의 비교 연구와 화석기록, 동식물 사육에서 얻은 게 전부였다. 그 증거들은 특별한 것이었지만, 기술적이고 간접적인 것에 그쳤다. 그런데 초파리 염색체에 대한 연구는 실험적 증거라는 정통성을 더해 주었다. -《초파리》p.141

마틴 브레이저의《다윈의 잃어버린 세계》는 다윈이 활동했던 시대에는 절대로 알 수 없었던 문제를 다룹니다. 다윈이 활동하던 시절만 하더라도 캄브리아기에 해당하는 화석들이 폭발적으로 등장했던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문제는, 그 이전의 선캄브리아기의 화석들이 전혀 발견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화석기록만 보면 어느날 갑자기 폭발적으로 동물들이 등장한 것으로 보였던 것입니다. 때문에 화석기록은 다윈의 가설에 정면으로 도전했고, 창조론자들은 이 사실이 신이 동물들을 만들어낸 증거라고 주장했습니다. 캄브리아기 화석에 대해 화석 동물은 난데없이 등장하고, 지질 기록은 커다란 틈새로 가득하며, 골격이 전혀 없는 생물은 보존될 수 없다는 등 다윈은 다양한 가설을 통해 자신의 이론을 보완하고자 했습니다.

다윈의 숙제는 찰스 둘리틀 월컷이 해결했습니다. 월컷은 껍질이나 골격이 없는 연한 동물들의 화석을 발견함으로서 선캄브리아기가 동물 진화의 공백기가 아니라 과정의 일부였음을 입증했습니다. 이런 화석들은 현미경을 통해 관찰해야 했기 때문에 다윈에게는 불가능한 지식이었습니다. 마틴 브레이저 역시 전세계의 다양한 광물들, 특히 인산염 광산에서 얻은 광물들에서 등장하는 동물들을 보여줍니다. 다윈의 잃어버린 세계, 선캄브리아기의 역사는 다윈 후대의 과학자들에 의해 되찾아진 것입니다. 그러나 또 하나의 숙제는 남아 있습니다. 선캄브리아기도 끊임없이 진화의 역사가 계속되었다면, 왜 캄브리아기에 폭발적으로 골격을 갖춘 동물들이 등장했는가 하는 점입니다.

기존의 주류 가설은 캄브리아기가 시작되던 시기에 동물들의 눈이 발달했고, 눈으로 인해 빛에 적응했고, 갑옷을 두르고, 보호색을 갖추는 등의 변화가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마틴 브레이저는 동물들이 골격을 갖추기 시작된 원인으로 입을 지목하며 화석기록에 최초로 나타난 육식 동물을 지목합니다. 단순히 플랑크톤을 흡수하던 동물들이 입을 만들면서 생태계 피라미드가 형성되기 시작했고, 포식자와 피식자의 관계구도에서 골격이 발달할 필요가 생겼다는 것입니다. 다윈의 잃어버린 세계에 대한 호기심으로 과학자가 된 마틴 브레이저는 오랜 여정을 통해 다윈으로부터 시작된 선캄브리아기와 캄브리아기의 난제에 도전하면서 눈에 보이지 않는 미생물부터 지렁이, 대구, 토끼, 고래, 늑대, 코끼리, 그리고 사람에 이르기까지 공진화를 하는 공생관계에 있는 생태계의 아름다움을 독자들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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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서평] 죽은 자의 정치학 - 하상복 (0) 2014/05/26 PM 12:03

선거철이 되면 정치인들은 어김없이 현충원에 갑니다. 공식선거운동의 시작을 현충원에서 하는 정치인도 있습니다. 그만큼 현충원, 국립묘지는 특별합니다. 국립묘지에는 죽은 자들만 묻혀있는 곳이 아닙니다. 그곳은 사상이 존재하고 정치가 존재하고 권력이 존재합니다. 국립묘지의 모습은 우리의 과거이며, 현재이고, 미래를 예상하게 합니다. 목포대학교에서 정치학을 가르치는 저자 하상복은《죽은 자의 정치학》을 통해 국립묘지의 이데아를 매력적인 언어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저자는 세 나라의 국립묘지를 비교함으로서 그 차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독자들에게 묻습니다.

"짐이 곧 국가다." 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군주제 국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왕의 신체입니다. 왕의 몸은 하나의 이미지요, 상징이기 때문입니다. 왕의 상징성은 죽어서도 유지됩니다. 그러나 근대국가가 등장하면서 왕이라는 한 인간의 몸에 집대성되던 정치적 이미지를 소실시키고 국민이라는 관념을 도입합니다. 왕과 달리 국민은 물질도 아니고 육체도 없는 근대국가의 이념들을 체현하는 정치적 의지의 개념적 집합체이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단일한 정치적 통합체를 현실로 느끼게 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근대국가의 주인은 국민이며, 국민 하나하나가 곧 국가이기 때문에 국민은 스스로 국가를 지켜야 하는데, 이는 죽음마저 감수해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따라서 국가는 죽음마저 불사하는 자랑스러운 국민을 위로할 상징적 장소가 필요했고, 그것이 바로 국립묘지입니다. 국립묘지는 묘지에 들어올 사람을 선정함으로서 현 체제의 국가가 어떤 인간상을 원하는지를 이야기합니다.



국가로서는 그들의 죽음을 방치해서는 안 된다. 특히 국민적 충격이 너무 커서 감당하기 어려운 죽음일 경우 상황은 더 예민해진다. 죽음의 방치는 국가의 주인이 국민이라는 헌법적 조항이 아무런 의미가 없음을 고백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 p.71

프랑스의 국립묘지, 빵떼옹은 앙시앵 레짐에서 프랑스 혁명에 이르기까지의 과도기적 시기에 새로운 체제, 새로운 국가의 요구에 의해 만들어졌습니다. 프랑스는 왕과 신을 떠나 자유와 평등을 받아들였고, 빵떼옹은 혁명이 요구하는 가치를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소였습니다. 강베타, 볼테르, 루소 등의 인물들이 안장되면서 빵떼옹은 위인들의 삶과 몸에 함축되어 있는 공화주의 이념과 가치를 재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상징성으로 인해 나폴레옹과 왕정복고 시대엔 빵떼옹이 다시 만들어졌고, 결국 완전히 공화국 체제로 전환되면서 현재의 빵떼옹이 됩니다.

미국의 국립묘지, 그중에서도 알링턴 국립묘지는 남북전쟁이 야기한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대립을 재현하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연방 해체라는 정치적 위기 끝에 남북전쟁이 일어났고, 알링턴 국립묘지는 북부의, 북부에 의한, 북부를 위한 공간이 되어야 했습니다. 국립묘지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북부의 군인뿐이었고, 북부의 사상에 동조한 사람뿐이었습니다. 국립묘지를 통해 연방을 위해 싸우다 희생된 북부의 병사들은 영웅적이고 애국적인 국민으로 부활했지만, 남부의 병사들은 반역을 기도한 적으로 간주되어 국민이 될 수 없었습니다. 국립묘지의 추모의례는 단순히 사자의 위로가 아니라 이념적이고 정치적인 분리를 완성시키는 문화적 공간이자 행위였습니다.

우리나라의 국립묘지는 여순사건으로 필요성이 제기되고 6.25 전쟁으로 인해 만들어졌습니다. 광복 이후 새로운 체제가 출범했지만 아직 국민적 정체성은 부족한 상황이었습니다. 그 와중에 일어난 두 사건은 반공주의라는 정체성을 국민들에게 심어주었고, 이승만 시절의 현충원은 반공주의라는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들의 것이었습니다. 군부독재 시절의 현충원은 반공주의에 추가로 군사주의와 민족주의를 받아들였습니다. 한국사회에 민주화가 시작되면서 현충원 역시 민주주의라는 새로운 도전을 받게 되었습니다. 4.19, 3.15, 5.18 민주묘지가 등장해 국립 현충원과 대립구조를 만들었고, 2005년에 있었던 북한 대표단의 현충원 참배나 2009년 김대중 전 대통령의 현충원 안장은 현충원이 지닌 반공주의와 군사주의의 상징성을 흔들고 있습니다.



민주묘지가 건립되면서 애국의 공간으로서 국립묘지의 유일함과 절대성의 위상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곳은 더 이상 보통명사 국립묘지가 아니라 국립 현충원으로 호명되어야 했다. 두 국립묘지는 단순히 명칭만이 아니라 역사와 이념에서 다르다. 현충원이 독립과 호국의 가치로 공동체에 대한 절대적 희생과 충성이라는 국가주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면, 민주묘지는 민주의 이름으로 국가권력과의 정치적 긴장을 말해주고 있다. 현충원이 권력의 표상을 중심으로 사자들이 위계적이고 수직적인 계급 논리로 포섭되고 있는 반면, 민주묘지에는 자유와 민주를 지향한 사자들이 평등을 표상하는 공간에 잠들어 있다. - p.450

국립묘지는 변화합니다. 미국과 프랑스의 국립묘지는 근대사의 전개 과정에서 발생한 정치적 분열과 갈등을 표상하는 공간으로 조형되었지만 프랑스는 빅토르 위고의 안장, 미국은 스페인과의 전쟁을 통해 남부를 받아들이면서 점차 화해와 통합의 기억을 표출하는 정치적 장소로 전환되었습니다. 그러나 저자는 국립 현충원이 여전히 본래의 이념과 가치인 반공군사주의를 고수하면서 국민적 연대와 결속보다는 이데올로기적 강고함과 대립을 계속하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국가는 국민에게 독립, 호국, 민주라는 세 가치를 요구하고 있지만, 국립묘지와 민주묘지의 대립은 가치의 분열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에서 현충원 최대의 크기를 자랑하는 박정희 대통령묘와 전재규 연구원의 묘의 크기를 똑같이 만드는 것과 같은 파격적 변화가 이루어질 수 있을까요? 저자는 좌와 우, 모두가 인정하는 사람을 받을 수 있는 새로운 묘지를 대안으로 말합니다. 그로 인해 저자가 원하는 것은 국립묘지를 통한 정치적 화해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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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서평] 문화가 제품이 되는 나라, 일본을 말한다 - 카와구치 모리노스케 (0) 2014/05/26 PM 12:02

화장실에 들어가자 적외선 센서가 감지하고 변기의 뚜껑을 자동적으로 올립니다. 좌변기는 급속 가열을 사용해 시트 보온기능을 활성화합니다. 용변을 볼 때는 그 소리를 감추기 위해 물 소리가 나는 에티켓벨이 사용됩니다. 화장실 휴지는 뽑기 편하게 삼각형으로 접어져 있습니다. 볼일을 다 보고 손을 씻을때도 센서가 감지하고 액체비누와 물을 자동으로 나오게 합니다. 화장실 내의 비품에는 단 하나도 손을 대지 않고도 모든 용무를 마칠 수 있는 시스템입니다. 이것은 일본의 화장실 시스템입니다.

저자 카와구치 모리노스케는 현재 기업들이 요구하는 것이 어떻게 일을 하느냐보다 무엇을 만들 것이냐로 변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저자는 그 요구를 소화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문화가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문화가 제품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앞서 말한 첨단 화장실 시스템은 문화가 제품에 반영된 케이스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부끄러움과 배려, 청결지향 등 여성스럽고 아이같은, 즉 소녀같은 기질이 일본문화에 강하게 보이며, 이러한 성향을 제품에 반영하는 것이 일본이 나아가야 할 방향성이라는 것입니다. 저자는 실제로 그러한 문화가 반영된 제품 중에서 성공적인 사례들을 예로 듭니다.

책에서 등장하는 제품들은 독특한 제품들이 많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들리지 않도록 개봉할 때 소리가 나지 않는 생리대 제품이나 운전중에 다른 운전자에게 감사함을 표시할 수 있는 땡큐 테일이란 제품을 보면 확실히 배려지향적인 제품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외에도 자전거 라이더와 보행자 사이에서 더 완곡한 의사표현을 할 수 있는 토오량세란 차임벨이나 다른사람이 신경쓰지 않도록 하는 무소음 슬리퍼, 독신 남성들에게 유용한 아저씨 냄새를 없애주는 껌, 심야 저소음 옵션을 갖춘 에어컨과 청소기, 세탁기 등은 자신을 위한 제품이라기보단 다른 사람들을 위한 제품입니다.



일본에서는 딸이 "아빠의 맨살이 닿았던 것은 더러워"라며, 아버지의 팬티를 젓가락으로 집어서 세탁기에 넣었다고 하는 뉴스가 화제가 된 적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현상을 계기로 새로운 제품이 개발되었습니다. 아버지와 딸의 세탁물이 물속에서 뒤섞이지 않게끔, 세탁조 속에 또 하나의 작은 세탁조를 만들어 넣을 수 있는 옵션 부품이 출현한 것입니다. - p.149

저자는 일본 문화가 기반이 되는 제품의 특징에는 의인화, 커스터마이징 지향, 중독 지향, 완벽을 추구하지 않는 문화, 부끄러움, 건강, 극장화, 축소지향, 환경지향적 요소가 들어있다고 말합니다. 부엌칼 공양이나 바늘 공양 문화에서 비롯되는 인간과 기계의 독특한 연결은 애완용 로봇개를 만들고, 순정만화의 케릭터처럼 반짝반짝 빛나는 별이 그려진 커다란 눈동자를 지닌 자동차 헤드라이트 제품이 등장합니다. 차내의 소음을 완전히 없애는것보단 엔진음을 살려서 운전자들이 엔진음을 즐길 수 있도록 합니다. 볼펜을 만들 때 볼펜 돌리기를 하기 좋은 감촉을 가질 수 있도록 고안합니다.



어른스러움 혹은 남성스러움의 특징을 보이는 서양 문화의 구조를 빌려 계속해서 효율을 우선시하는 제품을 만들어나간다면, 일본이 세계를 이끌어 나가는 모습은 보기 어려울 것이라 생각합니다. 소녀적인 기질을 의식적으로 분석하여, 확신을 가지고 제조업에 이를 충분히 활용해나가야 합니다. 실제로 일본은 이미 사람의 개성을 존중하는 기계, 주변 사람들을 배려하는 기계,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연결고리 역할을 해주는 기계를 만들어내는데 있어서 가능성이 보이고 있습니다. - p.210

일본의 문화를 잘 구현한 제품은 일차적으로는 일본에서 판매되는 것을 목표로 하지만, 그런 제품의 경향이 세계적인 관점에서도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예를들어 자동차로 비교하면 남성적이고 성인적인 차가 독일과 북유럽이라면, 남성적이고 아이적인 차가 미국이고, 여성적이고 성인적인 차가 서유럽이라면, 여성적이고 아이적인 차가 일본이 지향하는 차라는 것입니다. 일본이 가진 개성, 오타쿠와 갸루로 대표되는 소녀적인 특수한 문화를 이해하고 제조업으로 효과적으로 연결할 때 새로운 형태의 부를 창초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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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서평] 역사는 누구의 편에 서는가 - 아이리스 장 (6) 2014/05/25 PM 05:58
사드 후작이 쓴《소돔의 120일》에는 보통 사람은 읽기 힘든 표현이 많이 나옵니다. 인간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물어보는 듯한 이 작품은 세계문학 중에서도 기념비적인 작품이지만 그 잔혹성 때문에 국내에서는 오랫동안 금서로 지정되었습니다. 만약 잔혹한 장면이 등장하는 책이 금서로 지정되어야 한다면,《역사는 누구의 편에 서는가》(원제 : The Rape of Nanking)는《소돔의 120일》보다도 먼저 금서로 지정되어야 할 것입니다. 난징대학살을 다룬 이 책은 실제로 있었던 일이면서 아직 관련인들이 살아있을 정도로 최근의 일이기에 더 잔혹합니다. 난징대학살의 기록은 야만스러워 보이지만, 실제론 이성과 합리성이 낳은 현대의 비극이었습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벌인 중국과 일본의 전쟁에서 난징의 함락은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중국 국민당의 수도가 난징이었기 때문입니다. 일본군 사령관 마쓰이는 난징에 입성하기 전에 난징에서 불법적인 행위를 하지 말 것을 명령했습니다. 하지만 마쓰이가 지병으로 인해 잠시 일선에서 물러나고 왕족 출신이었던 아사카가 대리로 들어온 상황에서 난징은 함락되었고, 난징에서 비극이 시작됩니다. 난징을 점령한 일본군이 받은 첫 명령은 항복한 모든 전쟁포로를 죽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조나라 병사 30만명이 생매장됬다고 하는 장평대전을 연상케 하는 이 명령으로 인해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첫 번째 줄에 서 있던 포로들의 목이 잘렸다. 두 번째 줄에 서 있던 포로들은 자신들의 목이 잘리기 전에 앞줄에 서 있던 포로들의, 목이 잘린 몸통을 강물에 던져 넣어야 했다. 살육은 아침부터 밤까지 계속되었지만 이런 방식으로는 2천 명밖에 처리할 수 없었다. 그 다음날 이런 처형 방식에 싫증이 난 일본군은 포로들을 한 줄로 세운 후 기관총을 난사했다. - p.98

중국군을 처리한 일본군은 그 다음엔 민간인, 특히 여성에게 관심을 가졌습니다. 8만 명의 난징 여성이 강간당한 것으로 추산되는데, 장소도, 나이도, 임신부도 상관없었습니다. 열 살짜리 소녀가 대낮에 길거리에서 강간당한 후 살해당했고, 태아를 꺼내 살해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일본군은 시민들을 산 채로 파묻거나, 가슴까지 파묻고 그 위를 탱크로 지나갔고, 사지를 절단하거나, 태우고, 동사시키고, 염산이나 황산에 담그고, 산채로 개의 먹이로 주는 등 잔혹한 행위를 계속했습니다. 이런 행위들은 사진으로 기록되었는데, 무카이 토시아키와 노다 타케시 중위의 100인 목 베기 시합의 경우 일본의 신문에도 보도되어 그 행동을 자랑스럽다는듯이 과시했습니다.

30에서 40만명의 희생자가 나왔을 것으로 추산되는 난징대학살은 일본인이 잔인한 사람들이라서 생긴 일은 아닙니다. 아이리스 장은 난징대학살을 낳은 근본적 원인에도 관심을 가집니다. 장은 그 원인 중 하나로 일본의 교육제도를 주목하는데, 아이들에게 똑같은 옷을 입고 똑같은 헤어스타일을 하고 똑같은 과목을 배우게 하는 것이 얼마나 치명적인지를 언급합니다. 그것은 교육이 아니라 군대였고, 어떠한 사람도 악마로 만들 수 있게 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폭력에 노출되고, 권위에 복종하게 됨으로써 누구나 아이히만이 될 수 있었고, 군대는 그런 토양 위에 사람을 살인병기로 바꿔놓습니다. 권위에의 복종, 타자의 탈인간화와 같은 방식을 도입해 군대는 평범한 사람을 100명의 목을 벨 수 있는 사람으로 변화시킵니다.



착한 아들, 훌륭한 아버지, 다정한 오빠였던 사람들이 전장에 나와서는 양심의 가책없이 다른 사람들을 죽인다. 살인마로 변해 가는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세 달만에 악마로 변해버렸다. - p.111

전쟁이 평범한 사람을 악마로 변신시키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동시에 영웅의 탄생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장은 대학살 와중에도 수많은 사람들을 구원한 사람들 가운데서도 존 라베를 주목합니다. 독일인 사업가이자 난징의 나치당 리더였던 존 라베는 난징에 국제안전지대를 설치해 지도자가 되었고 수십만 명의 중국인을 구합니다. 라베는 중국인을 돕기 위해 히틀러에게 전보를 쳤고, 목숨을 걸고 식량을 구합니다. 라베는 어린 소녀를 강간하려는 일본군과 몸싸움을 벌여서라도 희생자를 구해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독일의 나치가 유대인을 학살하고 있었을 때, 중국의 나치는 중국인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일본군과 싸우고 있었던 것입니다.

지그문트 바우만은 홀로코스트를 분석하면서 폭력, 복종, 합리성으로 구성된 현대 문명의 꽃이라고 지적합니다. 바우만은 홀로코스트는 한때의 광기가 아니라 문명화된 현대는 언제, 어느 곳에서나 또다시 홀로코스트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경고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난징대학살 역시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가공할만한 대량 학살, 효율적 살해, 체계적인 잔혹성은 우리 인간에 내재되어 있는 것이며, 그것이 교육, 군대문화 등으로 언제든지 발산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존 라베의 이야기에도 주목해야 합니다. 대량학살을 주도하던 나치의 사상에 동의하던 나치당원이 대량학살에 저항하는 웃지못할 이야기는, 우리에게 작은 희망을 전해줍니다. 서구인 기준으로 난징대학살은 홀로코스트에 비하면 너무나 초라할 정도로 알려져 있지 않았던 이야기였습니다. 아이리스 장이 1997년에 쓴 이 책은 난징대학살을 영어로 알린 최초의 보고서로 평가받고 있으며, 언제 또 일어날지 모르는 제2의 난징대학살을 경고한다는 점에서 값진 가치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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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력    친구신청

이번에 새판이 출간되면서 제목이 약간 바뀌었군요. 가능하다면 MBC 세기를 뒤흔든 사건의 '난징 대학살' 다큐도 꼭 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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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

헤이토마토    친구신청

아이리스 장 이라길래 "역사는 힘있는 자가 쓰는가" 이 책인 줄 알았는데. 표지랑 부제(난징의 강간)가 비슷한 거 보니 아마 제목이 바뀐거같네요.

앙력    친구신청

제목만 바뀐 것 맞습니다 ㅎ 영문 원제 또한 "역사는 힘있는 자가 쓰는가, 난징대학살 잊혀진 홀로코스트" 이게 맞죠.

앙력    친구신청

아이리스의 죽음이 더 아쉽게 느껴지는 것은, 그녀가 후속으로 집필하고 있던 작품의 내용이 바탄, 죽음의 행진이었던지라.. 어찌 나치의 만행은 기억하면서 일본이 저지른 전쟁범죄를 외면하는 서구세계의 행동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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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의 합니다. 참 안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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