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공개된 라스트 오브 어스 파트 2의 트레일러가 화제입니다. 첫 공개된 게임 플레이 영상도 인상적이었지만 적어도 루리웹에서는 그 전후의 영상이 화제 이상이 되었습니다. 엘리와 다른 여성 캐릭터간의 키스 신이 트레일러 영상의 연출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졌는데, 이 부분에 대해 부정적 의견이 여럿 나왔습니다. 맥락없이 동성애 장면의 비중이 높게 다루어진 것은 불쾌감을 유발할수 있다는 것이 요지로 보입니다. 그 표현에 대한 판단보다는 논쟁 과정에서 흥미롭게 본 부분이 있어 생각을 정리해봅니다.
사실 진지하게 논쟁을 보진 않았습니다. 여러분들도 아시겠지만, 여기서 벌어지는 논쟁이나 키배가 실질적으로 그렇게 의미있는 일은 아니니까요. 정작 논쟁이 벌어지는 글들 보다는 유머 베스트 글들이 더 재밌었습니다. 오늘 베스트에 여성 캐릭터가 키스를 하는 백합 만화가 올라왔었거든요. 베스트 챙겨보시는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유머 베스테 픽시브발 번역 만화가 자주 올라오고, 그 중에는 소위 백합이라고 하는 만화도 정말 많죠. 굳이 오늘 뿐만 아니라 하루에 한 번씩은 보는 게 아닐까 싶은 정도로 빈도가 잦습니다. 으레 그런 글의 댓글은 농후한 민달팽이 등등 이라든지 이젠 백합홍보대사가 돼버린 2대 호카게 짤이 올라오거나 하죠. 여기서는 전혀 특이할 것도 없는 풍경인데, 이런 게시물에는 '엘리의 키스'와는 달리 불만이나 불편함을 호소하거나 그로 인해 키배가 촉발되는 일이 없습니다.
두 가지의 경우가 완전히 동일한 사례라고 규정할 수는 없겠습니다. 반례로 BL을 좋아한다고 게이 커플을 지지하는것은 아니지 않느냐고 금방 얘기할수도 있는 문제이죠. '남성향'의 백합, '여성향'의 BL 처럼 소비되는 동성애 컨텐츠와 실재하는 동성애가 다르다는 점은 언급하기도 귀찮은 일 아닙니까? 그럼 역으로 흥미로운 부분이 생기죠. 그럼 여러 루리웹 유저들이 엘리의 키스신을 불편하게 여겼다면, 곧 유머 베스트에 올라오는 만화와 달리, 실재하는 동성애 러브신과 같은 수준의 표현으로 받아들였다는 의미가 됩니다. 일단 적어도 너티독의 연출이 불편함을 유발할만큼 리얼했다는 증거는 되겠고... 창작물, 특히 게임에서 표현의 범위와 수준이 넓어지고 또 높아졌다는 얘기도 되겠죠. 하지만 엘리의 키스에 대해서는 이 이상의 논의는 크게 영양가가 있을 것 같진 않습니다. 맥락이고 적절하고 뭐고, 이제 깍두기 한 접시 나온 걸 보고 한상 차림과 요리사의 의도를 논하는 건 말싸움 이상이 되긴 어렵겠지요.
제가 중요하게 보는 지점은 다른 부분입니다. 일단... 최근이라기도 뭐하죠, 근래 오랫동안, 여러 이슈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젠더, LGBT, PC의 가치관이 게임을 비롯한 문화, 엔터테인먼트 컨텐츠 전반에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루리웹 유저들의 입장에서는 부정적인 방향의 이슈가 많았기에 상기한 주제에 대해 언급 자체로 민감 내지는 과민해진 부분도 없잖아 있다는 점도 느껴집니다. 현재 제작자들도 해당 주제들을 너무 직설적이거나 거칠게, 유기적으로 화합하거나 방법을 고민하고 설득하는 대신 유저의 적응을 강요하는 방식으로 다루고 있는 문제가 있습니다(개인적으로는 과도기적인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상품은 소비자가 소비하지 않는다면 변화하거나 결국 도태될 수 밖에 없으니.).
더불어 소비자인 우리, 저와 여러분을 포함한 사람들은 과연 앞선 주제들에 대해 확실한 기준을 갖고 있는 걸까요? 앞서 엘리의 키스신과 백합만화를 비교했습니다만 더 판단하기 어려운 경우가 얼마든지 나올 수 있습니다. 가령 주근깨 소녀와 땀흘려 상기된 소녀의 키스신과 동일한 연출을, 일본 개발사에서 망가풍 그래픽으로 한다면 어떻게 봐야 할까요? 그것은 백합을 묘사한 것입니까 아니면 레즈비언의 애정표현을 연출한 것입니까? 짓궃은 질문 같지만요. 루리웹 유저들을 포비아적인, 생각이 닫힌 사람들로 생각지는 않습니다. 백합만화에 낄낄대는 사람이 있는 반면, 레즈비언 가정에서 자라난 남성의 호소를 담은 게시물에 진지하게 댓글을 달아주는 사람들이 공존하고, 어쩌면 두 경우가 동일인물일 수도 충분히 있으니까요. 그 판단의 기준선을 어디로 잡는가에 대해서는 각자 차이가 있는 것도 당연하죠. 그러나 외국의 여러 소스의 리액션들 퍼와서, 현장분위기가 어땠으니 잘못된거다, 유튜브 좋아야 갯수는 반응이 다르다, 그런 부분엔 관심이 없었다... 따위로, 남의 리액션만을 자꾸 참조해서 주장하고 논쟁하다 뒤집히는 모습은, 정작 자신의 확고한 기준없이 세에 쓸려 혼란해하는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 같아 씁쓸합니다.
앞으로도 비슷한 이슈들은 예견되어있습니다. 그러나 아런 이슈에 일부 사람들처럼, 약간의 기미만 보여도 'XX 묻었으니 안한다.'라고 하는 것은 너무나 쉬운 방법입니다. 고민도 생각도 확신도 필요없죠. 그러나 더불어 어떤 발전도 기대하기 어려운 태도이기도 합니다. 라스트 오브 어스가 이번 논쟁이 되었던 것은 '갓겜'이자 '필구'가 붙을만큼 사랑받는 작품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모두가 어렵게 고민하고 자신의 확실한 기준을 갖지 않으면, 다른 우리가 사랑하는 다른 작품들이 문제가 되었을 때, 허무하게 떨어내는 어리석은 선택을 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굳이 트레일러에서 그렇게 직접적으로 강조할 필요가 있었나 하는 생각은 들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