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련
한참을 서성거렸다
서성거렸다
그래, 나는 이보다 더 적절한 표현은 찾지 못했다
더 이상 내 역할은 없었고
우연히라도 맡을 일도 없었다
막이 내리기 전에
불이 꺼지기도 전에
나는 어디로든 돌아가야 했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다
나는 그러지 못했다
나는 그저 서성거렸다
한참을 서성거렸다
막이 내릴 때까지
불이 꺼질 때까지
사유한 것도 아니었다
바라본 것도 아니었다
어울린 것도 아니었다
나는 그저 서성거렸다
주변을 서성거렸다
맴돌듯 그렇게 한참을
쓸쓸히 타오를 뿐이었다
막이 내리고도
불이 꺼지고도
나는 돌아가지 못했다
나는 돌아가지 않았다
나는 주변을 서성거렸다
이것이 마치 내 역할인 듯
한참을 서성거렸다
나는 알고 있다
이것은 내 역할이 아니다
이것은 누구의 역할도 아니다
막은 오래전에 내렸고
불빛이 사그라진지도 오래되었다
나는 어디로든 돌아가야 했다
온몸을 짓누르는 어둠을 품고
살갗을 파고드는 바람을 품고
어디로든 가야 했지만
한참을 서성거렸다
나는 그저 서성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