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볕은 지지 않는다
바람이 온 나무를 헝클이며
자신을 뽐내듯 휘몰아치고
지나간 자리마다 잔해를 남기며
고삐풀린 망아지처럼 날뛰어도
햇볕을 어찌하진 못 하더라.
구름이 온 지붕을 뒤덮으며
먹빛 장막으로 마을을 감싸고
축 처진 이불처럼 내려앉아
찡그린 얼굴로 침을 튀겨도
햇볕을 어찌하진 못 하더라.
서리가 온 창문을 두드리며
자신이 왔음을 소란스럽게 알리고
떠날 때마저 구질구질하게 젖어들어
한참을 성가시게 굴어도
햇볕을 어찌하진 못 하더라.
온 세상이 야단스럽게
들이치는 와중에도
햇볕은 말없이 스며들어
한참을 비추다
왔듯이 스르륵
발걸음을 옮기는 중에도
깊고 깊은 노을에다
내일 또 보자 적어두었네.
보아라, 세상 그 무엇도
햇볕을 어찌하진 못 하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