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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바그다드 까페(Out Of Rosenheim, Bagdad Cafe, 1987) (5) 2014/07/14 PM 07:41

바그다드 까페(Out Of Rosenheim, Bagdad Cafe, 1987)




관광차 미국 여행을 왔던 자스민은 사막의 도로 위에서 남편과 싸우고는 헤어집니다. 그녀는 트렁크에서 짐을 꺼내 사막을 걷고 걸어 바그다드 카페에 도착하게 됩니다. 한편 바그다드 까페의 여주인인 브렌다도 방금 남편과 싸우고는 헤어진 상황입니다. 두 사람이 남편과 싸우는 모습은 대조적입니다. 자스민의 경우 남편이 화를 내고 자스민은 묵묵히 그가 마시고 던져 놓은 캔을 주워서 다시 차 안에 넣습니다. 반대로 브렌다는 무능력한 남편에게 화를 내며 그가 떠나겠다고 하자 쓰레기통 옆의 캔을 주워서 마구잡이로 던집니다. 두 여자는 분명히 달라보입니다.
어쨌든 자스민의 등장으로 바그다드 까페는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자스민은 아마도 남편에 의해 억압된 여성이겠지요. 그녀의 자아는 남편과의 이별을 통해 회복되고 있는 중일겁니다. 반면, 인생에 찌들어 있는 브렌다의 경우 남편이 떠나가면서 더 본질적인 자아를 회복하는 일에서 멀어지게 됩니다. 여성성을 회복하면서 자신의 가족들 사이에서 어머니의 역할을 대신하게 되는 자스민에 대한 반감은 이에 따른 질투일 수도 있겠죠. 브렌다가 자스민을 인정하게 되는 가장 큰 계기는 여성만이 도달할 수 있는 어머니란 특별한 역할에 대한 여성으로서의 동질감입니다. 브렌다에게 다가가고 싶어하는 자스민의 감정, 브렌다의 가족과 살라모의 아이에 대한 자스민의 기묘한 집착은 어머니란 위대함에 대한 그녀의 존경에 기인하겠지요.
자스민에게 아이가 없는 것을 보면 남편이 자스민에게 그다지 성적 매력을 느끼지 못한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듭니다. 온 몸 전체를 가린 그녀의 옷이나, 루디 콕스가 그녀의 그림을 그리는 장면을 떠올려보면 그녀의 여성성이 억압되어 있는 것은 성적인 문제에 있는 것이 분명해보입니다. 마지막 그림을 그릴 때의 그녀의 모습은 상당히 노골적이기까지 하니까요.
자스민은 어머니라는 브렌다의 존재에 존중을, 브렌다는 자아를 회복하려고 애쓰는 자스민의 존재를 존중하면서 서로에게 다가가고 친구가 됩니다. 두 사람이 꽃밭에 가는 장면은 그 자체로 굉장히 아름답습니다. 미국에 있는 바그다드 까페, 커피 머신이 없는 까페같은 전혀 조화되지 않을 것만 같은 공간에서 구성원 거의 모두가 조화되어 어우러지고 그 중심에는 자신의 자아를 회복하려고 애쓴 여인들이 있으니까요.

자스민의 외모는 페르난도 보테로의 그림에서 꺼내어 놓은 것만 같습니다.
이 영화는 대체로 여자분들이 많이 좋아하는 것 같더군요.
마지막 장면이 정말 멋집니다.
그리고 OST인 Calling you가 흘러 나오는 장면은 정말 멋집니다. 영화에 잘 어울리는 음악을 사용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잘 보여주는 예가 아닌가 싶습니다.


여성성이라는 말을 쓰는 것은 상당히 신경이 많이 쓰이네요. 마치 여성성이라는 말을 일반적인 편견에 가두어 놓는 것만 같아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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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kejun    친구신청

어릴 때 엠병신에서 틀어주는 걸 딱 한번 봤는데 기억에서 오래 남아 있네요. 그렇다고 해도 어릴 때 봤던지라 걍 스토리만 얼추 기억 나지만 뭐랄까 아련하게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랄까, 노래도 그렇고..

그 덕에 두번 다시 보지 않고 있음. 지금 기억이 깨질까봐 ㅠ_ㅠ)

Egyptian Blue    친구신청

그런 영화는 다시 보지 않는 편이 나을 때도 많더라구요. 저도 옛 기억에 좋아더라 싶어서 다시 보고는 후회한 경우 상당히 많아요 ㅜㅜ

이마도꼬    친구신청

명작.

지갑.    친구신청

아 보고싶은데... 잘까봐... ㅠㅠ 명화 엄청 즐겨 보는데...

peaceguns    친구신청

농구 좋아하세요?
[손바닥 소설] 남쪽으로 가요 (0) 2014/07/11 PM 06:50
남쪽으로 가요.
남쪽?
네. 남쪽으로 가면 내려가는 기분이 들어요. 지금은 오르막길로 갈 자신이 없어요.
하지만 남쪽이 어느 방향인지 알지 못하겠는걸.
내려가는 쪽이 남쪽이에요. 대신 손을 잡아줘요.
우리 목적지는 북쪽이야라는 말은 그냥 담아두었다. 목적지에 도착할 수 없다면 그만두고 헤어지면 그만이지 싶었던 것도 부인할 수 없었다. 그런데 손을 잡고 걷다보니 어느새 도착이다.
남쪽으로 가요.
그녀가 다시 말했다.
손을 잡아줘요.
손을 잡으면 내려가는 기분이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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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400번의 구타 (Les Quatre Cents Coups, The 400 Blows, 1959) (2) 2014/07/10 PM 09:08


400번의 구타 (Les Quatre Cents Coups, The 400 Blows, 1959)

프랑소와 트뤼포 감독의 첫 영화.
앙트완이라는 소년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 놓고 있다. 영화 속의 에피소드 대부분은 감독이 실제로 겪은 일이다.
소년 앙트완은 말썽꾸러기다. 학교가 끝나고 집에 들어가면 아무도 없고, 계부와 어머니 사이의 위치는 불편하기 그지 없다. 늘 눈치보고 살아야 하는 집은 안식처가 되지 못하고 친구와 바깥 세상을 떠돈다.
어느 날 결석 이유를 묻는 선생에게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터무니 없는 이유를 대고, 혼난 뒤 집에 돌아가지 못한다. 그 후에도 비행은 계속된다.
결정적으로 앙트완을 궁지에 몰아넣는 것은 작문시험이다. 영화 속에서 글쓰기에 대한 에피소드는 반복되는데, 글을 쓴다는 행위는 아마 시험이든 뭐든 '문서'로 대표되는 모든 권위를 의미하는 것 같다. 어머니와 시험을 잘 보기로 약속했는데, 이건 일종의 권위에 대한 순응으로 그간 학교에서, 집에서 권위를 무시하고 바깥세상으로 탈출하려고만 했던 앙트완에게는 대단한 결심이고 변화였다. 앙트완과 가족들의 행복한 모습을 보여주는 씬들이 지나가고, 발자크를 좋아하는 앙트완은 작문시험에 발자크의 글을 인용한다. 발자크를 좋아했던 일은 상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선생은 표절이라며 앙트완에게 0점을 주고, 비행은 가속화된다. 친구인 르네와 함께 아버지의 회사에서 타자기를 훔치고 팔아버리려다 돌려 놓지만 결국 경비원에게 잡힌다. 감화원으로 가는 호송차량에서 보는 빛나는 도시는 아름답기 그지없다.
감화원에서의 에피소드들은 더 인상적이다. 정신 상담사와의 대화는 앙트완이 대화에 얼마나 굶주렸으며, 이해와 관심을 필요로 했는지를 담담하게 담아낸다. 어머니의 면회 장면에서는 그녀가 자신을 별로 사랑하지 않음을 깨닫고, 축구를 하던 도중 앙트완은 감화원을 탈출해 무작정 달린다. 우리의 영혼은 순간마다 어머니인 바다로 뛰쳐나가게 되어있는지 앙트완은 해변에 도달한다. 흑백의 화면이라 더 황량해보이는 바다에는 어머니의 마음처럼 아무 것도 없다.

400번의 구타가 오역이라지만, 생각해보면 400번의 구타만 있었을까 싶다. 혀에 숨긴 칼은 잘 벼린 명도보다도 훨씬 날카로와서 베이면 상처가 아물지 않는다. 거기에 응당 서로를 사랑하고 사랑받아야 함이 마땅하다고 믿는 가족이 주는 상처는 어떠한가. 이는 훨씬 더 깊게 영혼의 조각조각에 새겨지기 마련이다. 꽃으로도 때리지 말아야 함은 물론이고, 무심코 어느 날 던진 사소한 말로도 때리지 말아야 할 것은 더 분명하다.
400번 아닌 4000번, 40000번의 구타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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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트존    친구신청

언젠간 꼭 보고 싶은 영화입니다
이상하게 뉴벨바그에서 그 호불호가 극심하게 갈린다는 고다르 작품들만 봤네요. 장 피에르 멜빌 작품들도 못봤고...

Egyptian Blue    친구신청

고다르 영화는 정말 호불호가 심하게 갈리나봐요. 저랑 대체로 평이 비슷하던 친구들도 경멸 같은 영화를 볼 때면 평가가 다 다르기도 하고....
전 아직 고다르 영화를 제대로 본 게 없어서 잘 모르겠지만 조만간에 볼 예정입니다
[시] 바다 (0) 2014/07/05 AM 11:48

바다

우리의 사랑을 끊으려 한다.
서로의 상처는 전리품이 될 수 없었다.

그리워 혹은 그리움이 모자라
찾아오는 기나긴 쓰라림
웃음 뒤에 흩어지는 쓸쓸한 이별

오해할 내 사랑의 끝을
여전히 아련히 붙잡고
나는 이제 애써 끊으려 한다

그러나 차마 어려운 것은
사랑이란 물과 같아서
얼리지 않고는 끊을 수 없다는 것을
그 것을 알아서
마주치는 우리의 두 눈 속에는
서로를 향해 흐르는
소금기 가득한 바다가 존재한다는 것을
자신도 모르게 내비치는
바로 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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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오독 (五毒, The Five Venoms, 1978) (1) 2014/07/05 AM 10:40

오독 (五毒, The Five Venoms, 1978)

킬 빌의 5인 암살단 데들리 바이퍼스에 영향을 미쳤다는 장철 감독의 1978년작 오독.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사부가 오독문의 마지막 제자인 양덕에게 다섯 명의 사형이 있으며 강호에서 오독문은 악행을 저지르고 다니는 집단이라 이 악행의 고리와 오독문의 맥을 끊어주기를 당부하면서 영화는 시작한다. 사형들은 각자 지네, 뱀, 전갈, 도마뱀, 두꺼비를 형상화한 무공을 익히고 있다. 각자 다른 시기에 제자로 들어와 서로의 정체를 잘 모르는 사제들이 오독문의 숨겨진 보물이란 하나의 목적을 가지고 한 마을에서 얽히고 설켜 싸우게 되는 내용을 가지고 있다.
다섯 사제들 모두의 화려한 무술에 더해진 스릴러적 요소가 영화에 몰입감을 더한다. 같은 합이 단 하나도 없는 듯 잘 짜여진 맨몸 액션씬이 주는 카타르시스는 현재의 무협 영화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것. 특히 영화 초반 그들의 연공실을 보여주면서 사부가 각자의 무공을 보여주는 장면은 정말 멋지다. (떨어지는 접시를 끊임없이 차고 부수는 장면이나, 벽에 매달려 촛불을 끄는 장면) 그래서 주인공이 많은 편인데도 각자의 이미지가 영화가 끝난 후에도 인상적으로 남는다. 영사낭군의 대사처럼 다소 잔인한 장면 속에서 이따금씩 느껴지는 비장미는 '이런게 남자의 영화였지'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오독이란 제목은 아마도 고독(蠱毒 : 독을 가진 생물들을 한 곳에 모아두고 살아남은 최후의 한 마리를 취하는) 에서 영감을 얻은 것 같다. 싸우는 사이에 독을 모두 사용했는지 오독문은 사라져 버렸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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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구해서 봐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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