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gyptian Blue 접속 : 5256 Lv. 60 Category
Profile
Counter
- 오늘 : 42 명
- 전체 : 74266 명
- Mypi Ver. 0.3.1 β
|
[책] 손바닥 소설 (1)
2014/02/08 AM 07:12 |
심심할 때 자주 읽는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단편집입니다.
정말 재밌고 아름다운 글 들이 많은데, 스타일도 좋구요. 특히 '불을 향해 가는 그녀'는 정말 좋아해서 첨부합니다.
특히 무덤덤한 톤으로 마무리 짓는 마지막 구절이 제일 좋아요. 좁은 문의 마지막 구절 '하녀가 등불을 들고 들어왔다.'를 떠올리게 합니다.
저 멀리 호수가 아련히 반짝인다. 오래된 정원의 썩은 샘물을 달밤에 보는 것 같은 빛깔이다. 호수 건너편 둔덕 숲이 고요히 불타오른다. 불은 순식간에 번져간다. 산불인 모양이다. 물가를 장난감처럼 달리는 증기 펌프가 또렷이 수면에 비친다. 언덕을 시커먼 인파가 끝없이 올라온다. 정신을 차리니, 주변 공기가 소리 없이 바짝 마른 듯 환하다. 언덕 밑 시내 일대는 불바다.
-- 그녀가 빼곡한 사람들 무리를 휘휘 가르며 홀로 언덕을 내려간다. 언덕을 내려가는 이는 그녀 한 사람뿐이다. 신기하게도 소리 없는 세계이다. 불바다를 향해 똑바로 치닫는 그녀를 보며, 나는 안절부절 못한다. 그때, 말로써가 아닌 그녀의 마음과, 참으로 분명한 대화를 나눈다.
“어째서 당신만 언덕을 내려가는 거지? 불에 타 죽을 셈인가?” “죽고 싶지 않아요. 하지만 서쪽엔 당신의 집이 있잖아요. 그래서 난 동쪽으로 가요.”
화염 가득한 내 시야에 까만 한 점으로 남은 그녀의 모습을, 내 눈을 찌르는 통증처럼 느끼며 나는 잠을 깼다. 눈꼬리에 눈물이 흘렀다.
내 집이 있는 방향을 향해 걷는 것조차 싫다는 그녀의 말을 이미 난 잘 알고 있었다. 그녀가 어떻게 생각하건 상관 없다. 하지만 나로서는 이성에 채찍질하여, 나에 대한 그녀의 감정이 싸늘이 식어버렸다고 겉으로는 체념하고 있었다 해도, 그녀의 감정 어딘가에 나를 위한 한 방울이 있으려니 하면서 실제의 그녀와는 무관하게 오직 나 자신 제멋대로 생각하고 싶었다. 그러한 자신을 호되게 냉소하면서도 은밀히 담아두고 싶었다.
그렇지만 이런 꿈을 꾼 걸 보면, 그녀의 마음이 눈곱만치도 내게 없다고 나 자신의 마음 구석구석까지 굳게 믿어버리고 만 것일까.
꿈은 나의 감정이다. 꿈 속 그녀의 감정은, 내가 지어낸 그녀의 감정이다. 나의 감정이다. 게다가 꿈에는 감정의 허세나 허영이 없잖은가.
이런 생각에, 나는 쓸쓸했다.
|
|
|
[영화] 이창(1954) (1)
2014/02/07 PM 02:37 |
히치콕의 영화는 거의 모두가 명작이지만, 그 중에서도 저는 현기증과 더불어서 이창을 가장 좋아합니다.
생각해보니, 두 영화 모두 제임스 스튜어트가 주연이네요. 제임스 스튜어트는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 오명에 나온 캐리 그랜트와 다르게 사람을 편안하게 하는 면이 있습니다. 어디엔가 있을 법한 남자 같은 느낌이 영화에 생동감을 더해주는 것만 같습니다.
모험가적 기질이 다분한 주인공 사진기자 제프리스가 다리에 깁스를 하게 되어,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게 되자 아파트의 뒷 창으로 다른 아파트를 관찰하기 시작하는 것이 이야기의 시작으로 애인인 모델 리사와 함께 결국 살인 사건을 해결하게 되는 것이 줄거리입니다.
히치콕은 오프닝의 중요성에 대해서 역설했지만, 제가 좋아하는 영화들은 대개 엔딩이 기억에 남아있는 영화입니다. 이 영화가 서스펜스를 자아내는 방식은 대단하지만 그 것보다도 더 재미있는건 애인 사이인 두 남녀의 모습으로, 위트가 넘치는 엔딩씬 단 한 컷만으로도 이 영화는 볼만한 가치가 있죠.
★★★★★
|
|
|
[취미는 글쓰기] 그녀는 언제나 그의 평온과 조급함 사이에 존재한다 (1)
2014/02/07 AM 01:36 |
그녀에 대한 궁금증이 더해질 때마다 그의 마음은 조급함으로 바뀐다. 언제 어디서나 빠르게 정보를 주고 받을 수 있다는 것이 그렇게 좋은 것만은 아니다. 특히 이렇게 알고 싶은 것들을 알 수 없는 처지에 있을 때는 더욱 그렇다.
그는 늘 그녀의 모든 것을 알고 싶어한다. 물론 실제로 그가 알고 싶어하는 것이 그녀에게 존재하지 않는 부분이거나 그가 모든 것이라고 생각하는 그녀의 모습이 일부분에 지나지 않을지라도 표면적으로는 그렇다. 그의 마음은 평온한 상태를 유지하기 위하여 그녀의 진실한 모습 전부가 아닌 그가 알고 싶어하는 것만을 알기 원하는 것이 그의 진심임을 절대로 고백하지는 않을 것이다. 어쨌든 그가 그녀의 꽤 많은 부분을 알고 싶어하는 것만은 사실이며 그 자신은 자신도 모르게 이미 그녀에 대한 심리적 거리까지도 정해놓고 있다. 그 거리는 아마도 다음과 같다.
그녀에 대한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그녀 자신을 제외한다 치더라도 그가 절대로 넘을 수 없는 그녀의 부모, 형제(함께 지내온 시간이 다르다!), 또 넉넉한 마음으로 그녀의 가장 친한 친구들을 포함한 친인척 몇 명 정도는 용납하는 것이다. 최소한의 울타리 밖에서 생각한다. 007 정도가 어떨까. 살인면허를 가진 코드네임 007. 언제나 본드걸과 함께 하는 매력적인 남자. 그래서 자신은 도달하지 못할.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니 갑자기 마음이 식어, 그는 다시 심리적 거리를 늘린다.
이 행동은 절대로 그녀를 위한 것은 아니다. 어디까지나 그 자신의 심리적 평온 상태를 위한 것이다. 그러나 이는 왜곡되어 평온한 상태를 지나 그에게 심리적 우월감을 가져다 주었다. 잠시 느끼는 심리적 우월감은 평온한 상태를 유지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가 허용하는 범위 바깥으로 밀려난다면 그의 마음은 상처입고 조급함이 더해져 결국엔 지금의 관계를 넘어서 모든 것을 망칠 것이다.
마음은 겸손하게 정한다. 열손가락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
마음이 이렇게 겸손하게 굴 때 손가락이 과욕을 부린다.
열손가락이라!
그의 몸 가운데서도 특히 자존심이 센 손가락이 품 속을 뒤지기 시작한다. 그러더니 핸드폰을 꺼내어 몇 번 번쩍이는 화면 위를 분주히 움직이다가 꾸욱, 한 곳에서 오랫동안 멈춘다. 지워진 메시지와 점멸하는 커서를 바라보다가 그의 손가락은 다시 같은 일을 반복한다. 마음과 손가락의 혈투는 손가락의 승리로 결정난다.
"미안."
엄지손가락은 실수에 능하다.
실수로 전송 키를 누른 엄지손가락을 보며, 그는 힘없이 한숨을 내뱉는다.
욕망이 투영된 그의 조급함을 평온을 담당하는 마음은 완전히 제어하지 못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더해지는 조급함 앞에서 그는 또 무력한 인간이 된다.
메시지가 도착한다.
마음과 손가락이 서로 끙끙 앓으며 한참을 생각한 끝에 단 하나의 메시지를 전송하고 또 그 다음을 기다린다. 사이사이의 시간들마다 조급함은 더해진다.
예전보다 조금 더 길어진 대화가 끝나고 나서야 그의 마음에 평온이 찾아온다.
그는 평온하고 싶다. 그러나 그녀는 매번 다른 형태로 그의 모든 시간들마다 존재한다.
그녀는 언제나 그의 평온과 조급함 사이에 존재한다.
|
|
|
[영화] 12인의 노한 사람들(1957) (8)
2014/02/06 PM 11:56 |
정말 좋은 영화네요. 어쩌다보니 요새 법정 영화를 많이 보게 됐어요.
변호인을 비롯해서 대부분이 어퓨굿맨 식의 전개와 비슷해서 몰입감이 떨어졌는데 전혀 다르네요. 영화 보는 내내 추천해주신 분께 감사했습니다.
찬미론자는 아니지만 미국 사회라는 것이 하루 아침에 만들어진 게 아니구나 하는 감탄도 하게 되네요.
좁은 공간에서 다양한 인간을 표현해내고 결론에 이르는 과정이 아주 흥미로웠습니다. 보면서 짧은 시간 안에 영화가 완성되었을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실제로 제작기간이 19일 동안이었다고 하더군요.
지식백과 에서 찾아보니, 이런 글이 적혀 있습니다.
'영화는 베를린 영화제에서 황금곰상을 수상했지만 이 영화에 대한 가장 큰 찬사는 아마도 이 영화 이후로 배심으로 출석한 모든 사람이 자신을 폰다와 같은 끈질긴 정의의 수호자라고 상상해 보았다는 점일 것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12인의 노한 사람들 [12 ANGRY MEN]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영화 1001편, 2005.9.15, 마로니에북스)
저는 요새 문화라는 것이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지에 대해 자주 생각합니다.
더 정의로운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네요.
|
|
|
[손바닥 소설] 블루베리 (0)
2014/02/05 AM 07:56 |
언제 사인해두었는지 알 수 없었다. 다만 분명 나를 만나기 전일 것 같았다.
그녀를 처음 봤을 때, 나는 그 크고 아름다운 파란 눈이 블루베리 같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말하자, 그녀는 질색하며 눈을 과일에 비유하는건 무섭다고 말했다. 이제와 생각하니 정말 무서운 일이다. 마치 때가 무르익으면 그녀의 몸에서 그 과일을....... "이렇게 되지 않았더라면 그녀는 분명 취소했을거에요." 나는 그녀의 유지를 온몸으로 거부했다.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