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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 2019년 3월 3일 일요일 (0) 2019/03/03 PM 05:15

기절했다가 지금 각성해서 아무래도 이번 주는 힘들 것 같습니다.

다음 주는 가능하면 인간교육에 대해 작성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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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오컬트, 바람과 이용 (0) 2019/02/24 PM 11:41

오컬트, 바람과 이용

 

 

 

바람

 

오컬트나 종교는 인간의 바람이 형상화된 것입니다. 죽음에 대한 공포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나타난 사후세계나 앞날에 대한 두려움으로 나타난 예언이나 무력한 자신을 넘기 위해 나타난 인간의 힘을 벗어난 능력 같이 말이죠. 그런데 이러한 바람은 과학적으로 증명된 사례는 없습니다. 만약 증명되었다면 그건 더 이상 오컬트나 종교가 아니라 과학이라 불러야 되겠죠.

 

증명되지 않았기 때문에 오컬트는 거짓을 전제로 합니다. 기본적으로 없다고 생각하지만 어쩌면 있을지도 모른다는 관점으로 접근하는 것이죠. 반면 종교는 사실을 전제로 합니다. 신앙에는 과학적 증명이 필요하지 않으니까요. 이 둘의 차이는 이 정도입니다. 거짓과 사실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커 보일지 모르겠지만 그리 차이나진 않습니다. 둘 다 현대과학이 없던 시대에 나타난 인간의 바람이니까요.

 

재미있게도 이러한 인간의 바람으로 나타난 오컬트는 현대과학이 있는 지금도 존재합니다. 과학적 오컬트라 부를 수 있겠네요. 타임머신이라거나 다중세계라거나 증명되진 않았지만 가설로서 존재하고 있는 인간의 바람으로 나타난 과학적 오컬트라고 생각합니다. 과거로 가고 싶길 바란다거나 다른 세계가 존재하길 바란다거나 말이죠. 증명이 가능하다면야, 과학이라 부를 수 있겠지만 타임머신이 부르는 타임패러독스라거나 다중세계.. 증명이 가능할지는 의문이 들게 되네요. 뭐 어쨌든 요는 인간의 바람이라는 것입니다.

 

 

 

이용

 

이러한 것들이 단순히 인간의 바람만으로 끝난다면 그리 큰 문제가 되지는 않습니다. 사후세계가 있다고 믿으며 사는 쪽이 어쩌면 좀 더 마음이 편할지도 모르지요. 예언 같은 게 있어 그걸 보고 위험을 피할 수 있다고 믿는 쪽이 어쩌면 좀 더 마음이 편할지도 모르지요. , 마법이나 초능력이 있으면 얼마나 즐거울까요! 정말 재미있겠지요. 이런 것은 증명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닙니다. 있다고 생각되는 쪽이 더 즐거우니까, 그냥 그러려니 하는 거지요. 그래서 창작계열에서 오컬트를 활용하는 건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다고 생각해요. 즐기면 되는 문제니까.

 

하지만 문제는 거기에 있는 게 아니에요. 이런 순수한 바람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존재하니까 문제죠. 사후세계를 빌미로 거액의 재산을 요구하는 사이비종교나 자신이 바라는 것을 이루기 위해 거짓 예언을 하는 사람들이 있으니까요. 인간의 약한 부분을 파고들어 자신의 사리사욕을 챙기는 사람이 존재하는 한 오컬트를 그냥 방치할 수는 없어요. 오컬트와 과학의 경계를 분명하게 알고 나서 오컬트를 즐기도록 권장해야겠지요. 뭐 그러한 이유로 오컬트에 대해 한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몇 가지 오컬트적인 요소들을 다뤄볼 테니 재미로 읽어주세요.

 

 

 

영혼

 

영혼은 대부분의 오컬트와 종교의 근본입니다. 영적인 존재가 존재하지 않는 한 성립될 수가 없어요. 그런데 이 영혼이라는 건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가 없답니다. 물질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니까요.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긴가민가하게 되었어요. 확실하지 않다면야, 바람이 이루어지는 쪽이 더 좋겠지요. 아마 그래서 현대과학이 존재하는 이 시대에도 많은 사람들이 종교나 오컬트에 기대고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자아의 증명이 영혼의 부정을 이끌어낼 수는 있다고 생각해요. 영혼은 지성을 갖게 된 인간이 자아에 대한 의구심으로 탄생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으니까요. 옛날 사람들이 나는 누구지?’ 에 대한 답을 내놓을 수 없게 되자, 영혼이란 어떤 특정 형태를 갖춘 물질세계 밖의 존재를 구상하게 된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되요. 물론 다른 이유도 있겠습니다만 이것이 가장 큰 이유라 생각합니다.

 

좀 더 개인적인 생각으로 들어가면, 자아의 근원이 세포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영혼은 존재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종종 창작물에서 자아를 갖춘 인공적인 존재가 등장하면 스스로에게 묻는 것이 있지요. ‘나도 영혼을 가지고 있는 걸까?’ 그런데 만약 자아의 근원이 세포라면 그러한 의문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요. 인간의 자아가 세포라면, 인간은 매시간 매초 기억을 공유하는 타인이라는 겁니다. 영혼이란 하나의 형태로 구속될 수가 없어요. 자아와 영혼은 서로 성립될 수 없는 관계가 되는 겁니다. 그러니 제가 생각하는 인공생명이 탄생하는 순간 영혼은 부정될 거라 생각하고 있어요.

 

그리고 그러한 증명은 영혼의 존재를 믿는 사람이나 믿지 않는 사람이나 흥미로운 사건이 될 거라 생각해요. 우리는 특별한 시대를 살고 있어요. 인류 역사상 그 누구도 경험하지 못했던 혁신적인 기술발달을 경험하고 있지요. 그 어떤 시대에 인터넷이 존재했었나요? 그런데 자아의 증명은 그 이상의 특별함을 선사하게 될 거라 생각해요. 인류가 초기부터 가지고 있던 사상이 종말 할지도 모르는 사건이니까요.

 

 

 

마법과 초능력

 

개인적으로는 매우 아쉽습니다만 증명되지 못했으니 마법이나 초능력은 없다고 해야겠죠. 뭐 그런 당연한 걸 이야기하려고 한 건 아닙니다. 종종 창작물에서 마법이 존재하는 세상에서 마법을 부정하며 마법사를 차별하고 학대하는데, 그건 너무 현실의 과거에 얽매이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요. 현실의 과거에 마녀가 사냥을 당했던 것은 마녀라서 사냥을 당한 것이 아니라 마녀가 아니라서 사냥을 당한 겁니다. 실제로 힘이 있었다면 어쩌면 사냥하는 측에 서 있을지도 모르지요. 더구나 과학은 진리를 규명하는 학문이라 생각하고 있어요. 그렇다면 마법이 존재하는 세상에선 마법이 과학의 학문 중 하나가 되지 않겠어요?

 

물론 창작물에서 그런 식으로 표현하는 것은 현실에 대한 풍자적인 의미가 강하겠습니다만, 만약 마법이나 초능력이 존재한다면, 과학으로 대접받을 것을 거라 생각해요.

 

 

 

믿음의 실체화

 

예언, , 사주팔자, 관상, 혈액형 등은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니라, 믿기 때문에 실체화가 된 것이라 생각해요. 예언이 실제 하는 것이 아니라 예언을 믿기 때문에 실체화가 되었다- 뭐 그런 것이죠.

 

좀 더 자세히 설명하죠. 점이나 사주팔자나 관상이나 혈액형 등을 통계의 과학이라며 실제로 있는 것처럼 말하는 사람이 있지요. 그런데 그건 실제 하는 것이 아니라 믿기 때문에 실체화가 된 것이에요. 인간은 어떤 형태로 분명하게 규정될 수 있는 만큼 단순한 존재가 아니에요. 너무 복잡해서 인간 스스로 자신의 감정도 모르고 있지요. 흔들다리 효과 같은 예가 있겠네요. 사랑과 공포를 정확하게 분간하지 못하니까 나타나는 현상이라 생각해요. 사람의 감정은 세포의 여론이 의식 위로 올라온 것에 이름을 붙인 것일 뿐이니 뭔지 모르는 게 당연하죠.

 

이렇게 복잡한 존재를 어떤 형태로 규정할 수 있기 어렵겠지요. 적당히 타입을 나눠서 거기에 집어넣은 것에 불과하다고 생각해요.

 

믿음의 실체화 중 하나가 최면이 아닐까- 최면을 믿는 것으로 실제 적용되는 것, 가까운 것이 플라시보 효과가 아닐까- 이건 잘 모르겠네요. 최면이 실제로 되는 건가? 경험 해 본적은 없는데 어쩌면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외계생명

 

그들은 어디에 있는가정확히는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만, 외계인에 대한 담론에서 나온 말 중 하나라고 알고 있습니다. 만약 외계인이 존재한다면 그들이 어디에 있느냐고 묻는 말이지요. 그래서 오컬트의 한 종류가 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같은 분류로 엮이는 영혼과 외계인은 다른 분류로 바라봐야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요. 영혼은 모르지만 외계인은 존재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까요. 그들(외계인)이 어디 있는지는 모르지만 그들이 있을 거라 생각되게 만드는 우리(사람)는 여기 있거든요. 우리의 존재를 통해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는 거지요. 뭐 흔히 생각하는 형태의 외계인은 아닐 확률이 높지만, 이 우주 어딘가에 생명체는 있을 거라 생각해요.

 

 

 

다중인격

 

가끔 다중인격을 영혼의 수로 생각하게 되기도 하는데요, 음 제 생각엔 다중인격은 기억상실의 일종이 아닐까 생각해요. 인격을 유지시키는 기억을 잊으면 새로운 인격이 탄생하는 거겠죠. 인격을 유지시키는 기억을 다시 떠올리면 예전 인격이 다시 깨어나는 거고요. 다중인격을 복잡하게 생각했던 건 인격의 근원을 영혼으로 생각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하게 되네요.

 

 

 

타임머신, 다중세계 등 과학적 오컬트들

 

타임머신이니 타임패러독스니 예전에는 과학이 엮여 있다 보니 정말이지 않을까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현상이 나타나 증명되지 않는 한 오컬트라고 여기기로 했습니다. 앞서 설명한 과학적 오컬트들이지요. 과거로 돌아가고 싶다는 바람으로 타임머신의 존재를 믿는 것은 상관없습니다만, 그러한 것을 진짜로 있다고 가정을 하면 세상의 현상을 보는데 방해가 되거든요. 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한다고 가정하는 순간 사물을 제대로 볼 수 없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불노불사

 

처음에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었어요. 그런데 홍해파리라고 하던가요? 이름은 정확히 모르겠는데 어쨌든 그 생물이 불사라고 들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죽었다가 다시 또 태어난다고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 사례가 있는 거 보면 어쩌면 가능할지도 모른다고 생각이 드네요.

 

인간의 자아가 세포의 여론으로 인간이 기억을 공유하는 다른 존재라면특별히 어떤 존재, 가령 영혼 같은 것이 있어 그것의 수명이 결정된 것은 아니지 않을까- 그러면 유전자 변형을 통해 시간을 늘릴 수 있는 게 아닐까- 생각이 되네요. 홍해파리처럼 인체 내부의 시간을 반복하는 것으로 불노불사를 유지할 수 있지 않을까-

 

 

 

안드로이드

 

저는 자아를 갖춘 존재가 탄생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만 그 전에 사람들이 생각하던 안드로이드 같은 형태로 만들어지지는 않을 거라 생각해요. 안드로이드는 어디까지나 인간의 자아가 어떤 것인지 모르는 상황에서 만들어진 공상의 존재가 아닐까- 자아가 세포의 여론이라면 안드로이드가 기계적인 단순함을 가질 리 없다고 생각해요.

 

 

 

가상현실

 

오컬트를 바라는 분들이 현실적으로 즐길 수 있는 공간은 가상현실이 될 거라 생각해요. 가상의 세계에서 마법도 써보고 초능력도 써보는 거죠. 그런데 그 가상현실이라는 게 과연 어디까지 구현이 가능할까요? VR로 시각과 청각은 속이고 있지요. 그런데 그 이상은? 과연 가능할까요? 가상의 세계에서 먹고 자는 것을 체험할 수 있을까요?

 

한번 그것에 대해 생각해봤어요. 지금 이대로라면 아마 감각기관을 속이는 것으로 가상의 세계를 즐겨볼 수 있겠지요. 뇌에 직접적으로 어떤 걸 전달하는 걸로 속이는 건 지금 당장은 어렵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요. 시각만 해도 어떤 이미지를 한번에 받아드리는 것이 아니라, 각 색을 맡고 있는 세포들의 자료를 종합해서 인식하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그러한 것을 담당하여 뇌를 속일 어떤 것이 필요하다는 거지요.

 

그래요. 그런 어떤 것인 인공생명이 탄생한다면, 그 인공생명의 몸을 빌려 신호를 뇌에 전달하게 된다면, 현실과 근접한 가상현실이 가능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그러면 완전히 새로운 몸을 뇌가 적응해야 되는 문제가 있는데, 그걸 어떻게 적응할지는 모르겠네요. 만약 가능하다면 뇌를 제외한 나머지는 완전 다른 사람이 되어 새로운 세상을 접하는 게 되겠네요. 그리고 그건 진짜 몸과 상호작용하지는 않을 거라 생각해요. 뇌와 가상의 몸이 상호작용하고 있을 테니까요.

 

 

 

마무리

 

오컬트를 단순한 미신이나 잡학 따위로 치부해선 안 된다고 생각해요. 이렇게나 인간에게 큰 영향을 끼치는데, 어찌 그 정도로 취급할 수 있겠어요. 이미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인간심리학적인 측면에서 중요하게 다뤄야 한다고 생각해요. 오컬트를 전면 부정하는 사람이라도 뭐 오컬트?’ 라면서 오컬트를 믿는 사람을 부정하고 끝낼 것이 아니라 왜 믿게 되는 가에 대한 분석을 통해 더 나은 길을 생각해보는 거죠. 어쨌든 오컬트를 믿는 건 크게 상관없지만 그 믿음 때문에 상처받을 수 있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건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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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인간교육에 대해 쓸 예정입니다만어려운 주제네요. 이렇게 편하게 쓰면 쓰기야 쓰겠는데 아, 하하

 

몸과 마음이 나아질수록 잠들었던 욕구나 욕망이 깨어나네요. 바람이 많아지고 있어요. 어쩌려나

 

 

 

그럼 또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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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감] [소감] 히어로즈 오브 더 스톰 (0) 2019/02/17 PM 11:00

[소감] 히어로즈 오브 더 스톰

 

 

 

계기

 

작년 말, 블리자드가 급작스러운 ‘히어로즈 오브 더 스톰’(이하 히오스) 대회 중지라는 황당한 결정을 내린 사실을 최근 우연찮게 알게 되어 그에 자극 받아 간단히 작성하게 되었습니다. 사건 발생으로부터 시간이 좀 지난 터라 글의 작성이유로는 조금 겸연쩍은 기분이 듭니다. 다들 어느 정도 진정되었을 테니까요. 만약 당시에 작성했더라면 조금 흥분하면서 작성했을 것 같습니다. ‘명예가 중요시 되던 옛날이라면 히오스 관계자가 결정자에게 결투 신청해도 용납 받았을 겁니다!’ 라거나 ‘나의 예술가들을 모욕하다니!’ 라거나 말이죠. 지금이야 뭐.. 항거할 수 없는 힘의 횡포에 상처받는 사람들에 대한 동정심으로 마음이 아픈 정도네요. 기업의 크기와 관계없이 게임 업계의 오랜 중진인 만큼 블리자드는 어른스럽게 행동했으면 좋겠습니다.

 

블리자드의 히오스 대회 중지는 자금난을 이유로 알고 있습니다. 부진한 게임에 더 이상 투자할 수 없다는 방침이겠지요. 그것만 보면 어쩌면 타당하게 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거기에 있지 않습니다. 관계자는 물론이고 개발자조차 모르는 상황에서 급작스럽게 결정을 내렸더군요. 갓 사회초년생도(조금 과장하면 아이들도) 알고 있는 ‘그만두기 전에 미리 말하는 것’을 하지 않았던 겁니다. 잘잘못이 너무 간단하여 이 이상 이야기는 하지 않아도 될 거라 생각합니다. 그 대신에 히오스의 부진이유에 대한 생각을 작성하겠습니다. 이번 사건은 결국 거기부터 시작해야 하니까요. 지극히 개인적인 소감이니 편안하게 들어주세요.

 

 

 

고유성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습니다. 이 게임은 사실 처음부터 주류가 될 수 없었습니다. 게임의 기획초기부터 이 상황이 예견되었다는 겁니다. 놀랄 것은 없어요. 차근차근 들어보면 당연하다고 느낄지도 모릅니다. 그럼 이 게임의 기획부터 시작하죠. 이 게임의 기획의도는 ‘블리자드 게임 내에 등장하는 캐릭터들로 AOS 또는 MOBA(이하 MOBA) 장르를 즐겨보자!’ 일거라 생각합니다. 간단히 블리자드 게임을 즐겨 하는 팬들을 위한 게임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네. 팬들을 위한 게임입니다. 그리고 그러니 부진한 겁니다.

 

이 게임은 성공해봐야 블리자드 팬 게임일 뿐입니다. 거기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결국 블리자드 게임을 즐겨 하던 사람들이 주로 하는 게임에 불과할 뿐, 히오스 자체의 팬은 적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한 게임이 MOBA 장르의 주류가 될 수 있겠습니까? 블리자드 게임을 즐겨 하던 사람이야 자신이 좋아하는 캐릭터가 나와 좋겠지만, 즐기지 않았던 사람의 입장에서는 신선미 없는 구식캐릭터의 재등장에 불과합니다. 히오스에서는 새로운 캐릭터라고 하더라도 문화적인 의미에서는 케케묵은 구식캐릭터일 뿐, 처음 접하는 사람이 신선미를 느끼기는 어려울 겁니다.

 

그렇지 않아도 블리자드 게임 층이 연령대가 높아 새로운 사람이 적은 판국에 그에 대한 팬 게임에 새로운 사람이 얼마나 들어올 수 있을까요? 비슷한 예로 닌텐도의 스매시브라더스, 그 게임은 그래도 아이들이 좋아하는 캐릭터들이 많아 새로운 유저가 유입되기 쉬움에도 닌텐도 게임을 즐겨 하던 사람들이 주로 하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이 팬 게임의 한계입니다.

 

그러니 이 게임이 MOBA 장르의 주류로 올라가 성공하려 했었으면 애초부터 히오스 전용의 캐릭터와 시나리오가 준비되었어야 했습니다. 다른 블리자드 캐릭터는 어디까지나 손님으로 초대하는 형식이 되었어야 했습니다. 그래야 새로운 게임, 그래야 팬 게임이 아니게 되는 거죠. 팬 게임으로 MOBA장르의 주류가 되어 리그 오브 레전드(이하 롤)를 넘어서려고 했던 것은 블리자드의 오만이 섞인 실수가 아니었을까 생각해봅니다.

 

이러한 팬 게임 개발은 개발자들의 의욕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을 거라 생각합니다. 최근에서야 간신히 히오스를 상징하는 캐릭터인 오르피아가 등장했는데, 왜 그 오르피아에 정성이 깃들었는지에 대해 생각해보셨나요? 다른 캐릭터는 어차피 다른 개발자가 만든 캐릭터입니다. 아무리 잘 만들어도 ‘나의 캐릭터’가 아닌 셈이지요. 의도치 않게 모작만 하는 예술가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뭐 일이니까 열심히 했겠습니다만, 본심으로 열심히 하기는 어려웠겠지요.

 

간단히 요약하자면 히오스의 부진은 ‘고유성을 갖추지 못한 팬 게임의 한계’ 라고 해두고 싶네요.

 

 

 

긴장감

 

흔히 말해 히오스는 타격감이 없다고들 하지요. 그렇다면 왜 타격감이 없다고 느껴지는 걸까요? 그건 게임 자체가 다른 게임에 비해 긴장감이 적기 때문입니다.

 

긴장감 넘치는 게임인 롤을 예시로 시작하도록 하죠. 롤은 초반의 실수가 치명적입니다. 한번 킬을 내주면 게임 내내 힘들게 될 수가 있지요. 그래서 초반부터 긴장감을 갖고 플레이 하게 됩니다. 초반에 킬을 따면 영웅이 될 수도 있고, 킬을 따이면 역적이 될 수도 있지요. 그러다 보니 그에 대한 책임을 떠넘기기 위해 다른 게임에 비해 정치질이나 욕설이 많다는 단점이 있습니다만, 그건 결국 긴장감의 부작용일 뿐입니다. 적절한 긴장감과 그에 대한 보상은 굉장한 쾌감으로 돌아오게 되어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공격 하나하나가 긴장의 연속이라 타격, 치고 있다는 감각이 생생하게 느껴졌던 겁니다. 이러니 롤이 성공한 겁니다.

 

반면 히오스는 긴장감이 적습니다. 조금 실수해도 다시 따라잡을 수 있지요. 그래서 히오스가 조합을 많이 타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실수로 변수를 만들기 어려우니까요. 대신에 그만큼 편안합니다. 플레이에 부담이 적거든요. 그렇지만 이렇기 때문에 롤의 자극에 익숙해있던 사람들은 히오스가 타격감이 적다고 느끼게 되었습니다. 롤이 가져다 주는 쾌감을 잊지 못하고 다시 롤로 돌아갔던 것이지요. 히오스의 타격감 부재는 결국 긴장감 부재 때문인데, 이러한 긴장감 부재는 히오스 설계 자체의 문제이므로 처음부터 바꾸지 않는 한 타격감을 개선하기는 어려울 겁니다. 대신에 그만큼 편안하니까- 대상층이 다른 것일 뿐이라고 생각하면 되겠습니다.

 

긴장감을 좀 더 설명하자면,

 

리그 오브 레전드 고 긴장감, 장시간 반강제 플레이

배틀그라운드 최고 긴장감, 단시간 플레이 가능

히오스 중저 긴장감, 장시간 강제 플레이

 

정도로 요약이 가능하겠네요. 롤 이후 배그가 성공한 것은 어쩌면 긴장감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롤보다 더 큰 긴장감을 주는 게임이 등장한 셈이니까요. 단지 배그는 캐릭터에 대한 애정을 가지기 어려워 다시금 롤로 돌아갈 확률이 높을 뿐이지요.

 

 

 

장르

 

AOS로 시작된 MOBA 장르의 본질은 맵과 아이템입니다. 축구를 생각해주세요. 축구장 크기를 다르게 하면 풋살이 되고, 네트를 달면 족구가 되고, 손으로 하면 배구가 됩니다. 공 크기를 줄이고 도구를 쓰면 테니스나 배드민턴이 되겠네요. 장소와 도구를 바꿔놓고 같은 장르라고 말하는 건 좀 어려움이 따르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히오스가 맵을 바꿀 생각이었다면 장르에 구애 받아서는 안되었습니다. 차별화를 위해 이것저것 붙였지만 캐릭터 스킬이나 맵 구성이 장르에 구애 받았지요. 맵을 바꿀 생각이었다면 처음부터 다른 장르라고 생각하여 자신만의 개성을 덧붙였어야 했습니다. 아마 저라면 워크래프트와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를 참고하여 유닛을 잡아 돈을 얻게 하고, 그 돈으로 유닛의 업그레이드를 가능하게 하여 기존 전장을 구현하는 방향으로 기획을 잡았을 거라 생각합니다. 전장의 영웅이 되기 위해서는 유닛도 중요한 법이니까요.

 

요는 어차피 MOBA장르가 아니니 블리자드의 우수한 개발력을 바탕으로 새로운 장르개척에 나섰어야 했을 거란 이야기입니다.

 

 

 

수익성

 

이러한 장르의 주수입원은 많은 유저 수의 스킨 구매가 되겠지요. 애초에 고유성이 없고 긴장감이 적은 탓에 유저 층이 적어 수입에 한계가 있는 것도 있습니다만, 스킨 자체가 좀 난잡하다고 느꼈습니다. 뭔가 예술적인 느낌은 드는데, 상업적인 느낌은 없었다고 해야 할까요? 모작을 하게 된 예술가들에게 스킨은 마음대로 만들라고 한 건지는 모르겠는데, 너무 개성적이라서 팔리기 어려운 느낌이 들었습니다. 뭐 요즘 게임 캐릭터 스킨이 대체로 색 바꾸기 등으로 좀 질이 낮은 대신 많은 수로 대체하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만, 그러한 행동은 게임 자체의 질을 낮추는 것이 아닐까도 생각해봅니다.

 

요는 스킨을 좀 노린듯한, 팔릴만한 것으로 만들도록 했어야 했다는 겁니다.

 

 

미래

 

우리도 이런 장르를 서비스하고 있다, 라는 식으로 운영은 계속할지도 모릅니다만, 개발자를 빼돌린 것을 보면 긴- 침체기가 될 확률이 높다고 봅니다. 남은 개발자들은 생각해야 할 거예요. 이대로 그냥 대충대충 개발하고 말 건지, 아니면 이왕 이렇게 된 거 제멋대로 개발해볼 건지.

 

저라면 아마 제멋대로 개발해볼 겁니다. 우선 주인과 손님의 구분을 명확히 하겠지요. 히오스의 고유성을 살리는데 최선을 다할 겁니다. 새로운 유저들이 주인의 입장에서 오래된 캐릭터들을 맞이할 수 있도록 할겁니다. 그리고 타격감을 개선하기 위해 긴장감을 조금 더 늘려 초반의 죽음이 조금은 타격이 되도록 조금 다시 설계해야겠지요. 그리고 골드수급을 할 수 있도록 하여 유닛 업그레이드가 가능하게 만들 겁니다. 5인이서 한 진영인 RTS가 될지도 모르겠네요. 소통하면서 업그레이드할 유닛을 정하며 플레이하는 건 어쩌면 재미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스킨도 개선할 겁니다. 조잡한 스킨은 더 이상 개발조차 하지 말고 구매할 가치가 있는 우수한 스킨만 만들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볼 겁니다.

 

이상 적당히 써본 히오스 소감이었습니다.

 

 

 

--

왜 이렇게 쓰기 어려운지 모르겠네요. 뭔가 걸리는데 이유를 모르겠네.

 

개인적으로 정보포화상태여서 잠시 뉴스를 접하지 않고 있습니다만 우연찮게 황당한 사건을 들어 작성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글은 아마도 오컬트 아니면 인간교육을 쓸 겁니다. 하아아.. 앞으로 뭘 어떻게 해야 하나… 미뤄둔 것이 너무 많아서 뭐부터 해야 할지 아, 슬퍼라.

 

 

우연찮게 성인 사이트 접속불가 사건도 접하게 되었는데 그에 관해 간단히 의견을 정리해보죠.

 

쟁점은 두 가지로 알고 있습니다.

 

첫째, 성인 사이트를 막기 위해 개인정보에 관련된 무언가가 있다.

둘째, 성인이 성인 사이트를 접속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개인의 자유 침해다.

 

첫째는 기술적인 문제라 잘 모르겠네요. 단지 이렇게만 말해둘게요. 어떤 이유라고 하더라도 개인정보누출이 바르다고 생각되지는 않습니다. 기술이 부족한 거라면 기술을 늘리도록 노력해야겠지요. 누출은 되는데 보지는 않을 거라는 건, 지금 당장 믿는 건 둘째치고 미래에는 또 모르니 애초에 누출이 되지 않도록 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둘째는 인터넷이 성인만 이용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막는 것은 타당하다고 봅니다. 아동도 쉽게 음란물을 접할 수 있는 상황이 바람직하지는 않지요. 그러한 상황 속에서 성인의 자유만 찾는 건 조금 무책임하다 볼 수 있겠습니다.

 

저는 성에 눈을 뜨는 시기인 사춘기 때부터 음란물을 감상할 수 있도록 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보호자의 동의가 있어야겠지만요. 죄를 미화하거나 성 정체성을 흔들 수 있는 음란물은 위험하니까요. 왜 이런 생각을 하느냐면, 이것이 죄의 원인을 줄일 수 있는 방향이기 때문입니다. 죄는 무엇입니까? 절제하지 못한 욕구가 사회의 규칙을 깰 때 발생하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욕구를 제어하는 방법을 익히는 것이 죄의 원인을 줄일 수 있는 방향이겠지요. 그러니 저는 사춘기 때부터 음란물을 통해 자신의 욕구를 제어하는 방법을 익혀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성에 눈을 뜬 아이들보고 무작정 욕구를 금하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무책임한 겁니다. 어떻게든 제어할 수 있도록 도와야겠지요.

 

그렇지만 그 아래는? 그 아래의 아동은 성에 눈을 뜨지 않았으므로 음란물이 필요가 없습니다. 물론 성에 눈을 뜨지 않았기 때문에 음란물을 봐봐야 별다른 자극을 받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만, 호기심으로 실수를 저지를 수도 있습니다. 물론 조숙한 아이들도 있겠지만 일반적이지는 않겠지요. 필요는 없는데 위험만 존재한다. 그렇다면 아동에게 음란물을 접하게 하면 안되겠지요. 그러한 상황에서 아동도 음란물을 쉽게 접할 수 있는 상황을 방치하는 것은 바르지 않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하지만 성인의 권리도 보호는 받아야 되는 법입니다. 그러니 마음 편하게 음란물을 시청할 수 있는 방법이 필요하게 될 겁니다. 현재 음란물이 어느 정도 합법화 된 건지는 모르겠는데, 남성용 자위기구가 정당하게 들어온 것을 고려해보면 합법적인 음란 사이트가 탄생하는 게 아닐까 생각도 해봅니다. 음란물 합법화? 라고 해야 하나요? 이어질 흐름을 생각해보면 이렇게 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그렇게 합법화 하면서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들도 보호자 동의 아래 감상할 수 있는 음란물도 지정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이 듭니다. 자신의 욕구를 제어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야말로 인간교육이라 할 수 있겠지요. 지금까진 너무 주먹구구식이 아니었을까- 사실 막는다고 해도 다 알아서 보기 마련이니까요. 저도 사춘기 때부터 음란물을 접했으니 뭐…

 

 

그럼 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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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죄의 원인, 유전자와 환경 (0) 2019/02/10 PM 11:58

죄의 원인, 유전자와 환경

 

 

성악설

 

아이는 곧잘 아무렇지도 않게 죄를 범합니다. 그것이 죄임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이의 죄는 보호자가 대신 책임지고 있습니다. 이것을 보고 먼 옛날에 성악설이 나타났습니다. ‘인간은 본디 악한 존재이니 가르쳐서 선하게 만들어야 한다.’ 얼핏 보면 맞는 말 같습니다만 진화론을 떠올려보면 맞는 말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인간의 죄는 사회가 있어야만 존재할 수 있는데, 인간은 처음부터 사회를 이룬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인간은 본디 악하다는 맞는 말이 아니게 됩니다. 인간이 본래부터 악하게 보였던 건, 동물인 인간이 사회화 되면서 생겼던 부작용이었을 뿐입니다.

 

그러나 사회에선 무절제한 인간의 욕구를 죄로 규정하고 있는 만큼 죄를 알아야 범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에 모르는 상태에서는 악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본디 악한 것은 아니나, 사회에 속할 때엔 악하다고 볼 수는 있겠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인간이 악하다고 하고 싶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을 빌미로 모든 책임을 죄를 저지른 당사자에게만 떠넘기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죄는 분명 저지른 사람이 책임져야 하는 것입니다만, 그 죄의 원인에 대한 책임은 그 사람에게 영향을 끼친 모두가 조금씩 짊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죄의 원인

 

사실 말이죠, 사회에 속한 사람의 모든 것은 다른 누군가에 영향을 받은 겁니다. 부모에게 물려받은 유전자는 물론이고 생각하는 것조차 사회에 영향을 받은 겁니다. 우리가 체계적인 생각할 수 있는 건 사회에서 알려준 언어를 알고 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겁니다. 자아와 지성 전부, 다른 이들에게 영향을 받고 시작합니다. 시작만이 아니죠. 사회에 속한 이상, 시작부터 끝까지 영향을 주고 받으며 살아갑니다. 어떤 사람이 위대한 발견을 했을 때도, 어떤 사람이 지독한 악행을 저질렀을 때도, 전부 다른 이들에게 영향을 받은 겁니다. 사회에 좋은 일이 나타나면 그 사회에 속한 모든 사람의 덕이기도 하지만, 사회에 나쁜 일이 나타나면 그 사회에 속한 모든 사람의 책임이기도 합니다. 모든 죄의 원인은 여기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사회에 속한 모든 사람은 영향을 주고 받았다, 이것을 부정하면 아무것도 시작할 수 없습니다.

 

어떤 아이를 괴롭힌 아이가 있다고 가정해보죠. 그 때 그 괴롭힌 아이에게 영향을 끼친 건 누구일까요? 부모, 친구, 교사, 지인, 언론, 창작물, 인터넷 등등이 있겠지요. 그리고 그 부모와 친구와 교사와 지인 등에게 영향을 끼친 건 또 누구일까요? 이처럼 생각해보면 끝이 없습니다. 결국 사회 전체로 확대되게 됩니다. 죄의 원인에 대한 원인, 그리고 그 원인에 대한 원인을 추적해 나가다 보면 사회에 속한 모든 사람이 조금씩은 원인이 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겁니다. 누군가에게 욕, 비난 조롱, 비아냥, 깔봄, 무시 빈곤, 절망, 불행 등등에 영향을 받은 끝에 나타난 것이 죄라고 할 수 있겠죠. 이것이 환경입니다.

 

물론 환경이 죄의 원인만은 아닙니다. 유전자 자체가 죄에 취약할 수도 있습니다. 극단적인 예로 사이코패스가 있겠네요. 공감능력결여라고 하던가? 사실 저도 잘 모릅니다. 단지 확실한 것은 죄에 취약한 유전자가 있을 수 있다는 겁니다. 이것이 유전자입니다. 그리고 이 두 가지를 합쳐 죄의 원인이라 부를 수 있을 것입니다.

 

 

 

사이코패스

 

평범한 사람이라면 이러한 환경이 절대적인 영향을 끼쳤을 겁니다. 누구라도 그 환경에 놓이면 죄를 범할 수 밖에 없다는 상황이 있을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물론 그런다고 하더라도 죄인을 변호할 수는 없습니다. 사회가 멀쩡한 상황일 때엔 자신이 범한 죄는 자신이 책임질 수 밖에 없습니다. 사회가 할 수 있는 건 죄에 대한 책임이 아니라, 죄의 원인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뿐입니다. 그러한 환경이 나타나지 않도록 노력할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똑같지는 않습니다. 어떤 환경에 누구는 죄를 짓지 않더라도 누구는 죄를 지을 수 있지요. 유전자에 따라 죄에 취약한 사람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면 의문이 생길 수 있습니다. 원래부터 죄에 취약한 사람의 저지른 죄의 원인 또한 사회가 책임을 져야 하는 걸까요?

 

어쩌면 죄에 취약한 사람을 가리켜 원래부터 악한 사람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보다 쉽게 죄에 물들 수 있기 때문이지요. 그렇기에 극단적인 사람은 죄에 약한 타입인 사이코패스를 미리미리 가두거나 추방하자고 주장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죄에 약해 죄를 범할지도 모르는 사람은 잘라 내어버리자- 라는 거지요. 하지만 이건 사이코패스를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에게 사이코패스를 이해할 수 있게끔 해보겠습니다.

 

공감할 수 없다, 이해할 수 없다, 왜 눈물을 흘리는지 알 수가 없다. 왜 화를 내는지 알 수가 없다. 그래서 죄를 범하게 되었다. 보통 이런 예가 있을 수 있을 겁니다. 이걸 중점으로 시작해보죠.

 

 

일단 채식주의자가 사회 주류가 되었다고 가정해보겠습니다. 이건 예시일 뿐이니 참고만 해주세요. 이런 사회에서는 동물이 식용으로 쓰이는 걸 보고 눈물을 흘릴 겁니다. 그리고 동물을 식용으로 삼는 사람을 보고 화를 내겠지요. 잡식인 사람들을 왜 그런지 공감할 수 없고 이해할 수 없을 겁니다. 물론 피상적으로는 이해하겠지만 왜 육식을 하면 안 되는지 마음 깊숙이는 알 수 없는 노릇이겠죠. 잡식인 사람은 본래부터 육식을 해야 건강할 수 있는 인간이니만큼 채식주의자를 이해할 수 없는 건 당연할 겁니다. 사회 규칙이 그러하니 채식으로 참다 참다가 결국 육식이란 죄를 범하게 되었다.

 

사이코패스와 똑같지는 않습니다만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본래부터 사회에 맞지 않게 태어난 사람은 괴로울 겁니다. 죄에 약한 사람뿐만 아니라 마음이 약한 사람, 도덕에 약한 사람, 사랑에 약한 사람 등등 또는 육체적으로 약하게 태어난 사람들, 눈이 잘 안 보이는 사람, 귀가 잘 안 들리는 사람, 체력이 약한 사람 등등 전부 똑같이 단지 약하게 태어난 사람일 뿐입니다. 죄를 범하지 않는 이상 사이코패스라고 하더라도 보호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사이코패스의 죄의 원인이라고 하더라도 그 죄의 원인에 대한 책임은 사회가 질 수밖에 없습니다. 단순히 그렇게 태어난 사람들이니까요. 단지 죄에 약한 사람은 피해자를 만들 수 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유별나 보일 뿐입니다.

 

죄에 약한 사람은 슬플 겁니다. 평범한 사람들이 죄를 짓지 않기 위해 쓰이는 노력의 몇 배는 더 노력해야 하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이해해주는 사람도 얼마 없을 겁니다. 괴롭겠지요. 죄를 범한 사람을 동정할 수는 없지만 죄를 범하지 않은 죄에 약한 사람은 동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다른 약한 사람들과 마찬가지로요. 도덕에 약한 사람이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올바른 일에 구애 받으며 자유롭지 못하게 사는 건 불쌍한 일이지요. 마음에 약한 사람이 자신의 의지와 관계 없이 타인의 의견에 휘둘리는 건 불쌍한 일이지요. 결국 약한 사람들이라는 겁니다. 우리 사회는 강해지기 위해서,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서, 강자뿐만이 아니라 약자도 보호를 해야 하지요. 거기에 죄에 약한 사람도 포함되어야 최대한 죄를 짓지 않도록 유도할 수 있을 겁니다.

 

 

 

책임

 

아이의 죄는 어른이 책임을 지도록 되어있습니다. 힘이 책임을 지는 셈이지요. 그래서 미성년자가 술, 담배를 사면 어른들이 책임을 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책임이라는 것이 조금 일방적입니다. 가해자가 저지른 죄는 책임지지만 피해자가 받은 죄의 피해는 책임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술 담배의 경우엔 피해자가 어른이니 어른이 책임지는 것이 아니냐고 말할 수 있겠지만 왕따 따위의 미성년끼리의 범죄일 때엔 피해자도 미성년이니만큼 피해자도 책임을 지어야 하는데 지고 있지 않고 있지요. 미성년 가해자는 미성년자라 죄가 경감되는데, 미성년 피해자는 그런 것이 없으니까요. 그 때문에 미성년 범죄만 나오면 불만이 나오는 거고, 그 때문에 죄의 원인에 대한 대책이 흐지부지 한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좀 더 크게 확장하여 다른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도록 하죠. 국가와 국민의 관점으로 보면 국가가 국민을 보호하고 있습니다. 국가가 보호자고, 국민이 피보호자지요. 그래서 가해자도 책임지고 있습니다. 가해자가 저지른 죄 자체는 스스로가 책임을 지고 있지만, 가해자 자체는 국가가 책임을 지고 있지요. 먹여주고 재워주고 다치면 보살펴주고. 그런데 피해자는 책임을 지지 않는 게 아닐까생각해봅니다. 이 부분은 잘 모르겠네요. , 가해자보고 피해자가 겪은 죄의 피해에 대한 책임을 지라고 하는데, 가해자가 책임질 수 없을 경우 그냥 거기서 끝나는 거 같더라고요. 경험과 관찰로요.

 

어쨌든 가해자만 책임지는 것이 아니라, 피해자도 책임지는 방향이 되어야 사회의 불만이 줄어드는 게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그리고 피해자도 책임져야 사회 전체가 죄의 원인에 대한 대책에 좀 더 심도 있게 접근해 나갈 거라 생각합니다.

 

 

 

대책

 

교육입니다.

인간은 한번 설계되면 그것에 크게 영향을 받게 됩니다. 세 살 버릇 여든 간다고, 어렸을 적 도둑질을 관대하게 넘어가면, 커서도 도둑질 할 확률이 높아지겠죠. 보통 사람들은 재난 상황에 사람을 구하려 하겠지만, 어떤 사람은 사람이 죽어나가도 재물부터 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한 인성, 자아가 형성되는 시기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시작된다고 생각해요. 아이의 세계는 몹시 작지요. 어른에게 아무렇지도 않은 사건이라도 아이에겐 큰 사건이 됩니다. 보통의 인간이 보통의 환경에서 죄를 저지른다면 아이 시기 무언가 겪은 것이 큰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교육은 단순히 교사만 담당할 것이 아닙니다. 영향력이 클수록 그 책임은 커지겠지요. 간간히 교육에 대한 모든 책임을 부모에게 떠넘기거나 교사에게 떠넘기는 걸 볼 수 있는데, 그건자신의 영향력이 미미하다고 주장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그리고 사회에 속한 사람은 사회에 속한 모든 사람에게 영향을 주고 받고 있습니다. 그 사실을 모두에게 인식시켜 언행에 책임감을 가지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강요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일일이 신경 쓰는 건 피곤하니까 애초부터 그것이 자연스럽게 되도록, 예의와 예절, 품위와 품성을 갖춰 스스로 판단하여 행동할 수 있도록 해야겠지요. 뭐 언행을 대충해도 되는데, 그것이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것만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이런 평범한 교육으로도 충분할지 모르겠지만 죄에 취약한 사람, 약한 사람은 좀 더 세심한 교육이 필요할 겁니다. 언젠가 사이코패스 누나를 가진 남동생의 이야기를 본 적이 있습니다. 정말 고생하고 있던 것 같았습니다. 세세한 부분에 신경 써야 된다고 하더군요. 그런 사람들을 위한 대책이 아마 있겠습니다만, 그러한 것이 일반화되어 죄에 약한 사람들이 죄를 짓지 않도록 유도하여 사회 전체에 죄가 줄어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사실 죄 자체가 없어질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은 약하니까요. 하지만 죄가 어떻게 생겨나고, 어떻게 해야 죄가 줄어들 수 있는지 알기만 한다면 사람들이 좀 더 올바른 처신을 할 수 있겠지요. 사회의 죄는 모르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니까요. 앞으로 좀 더 나은 세상이 되길 바라며 마칩니다.

 

 

 

---

내가 뭘 쓴 거지.. 좀 몽롱하네요. 오늘따라 더 잘 안 써지네요. 나중에 좀 더 정리하겠습니다.

글로 정리할 날이 있겠죠. .

 

뭐 어쨌든

 

교육받은 자아와 실제 자아의 불일치가 사춘기의 자아 찾기를 만들었고

교육받은 세상과 실제 세상의 불일치가 사춘기의 불신과 반항을 만들었다. 고 생각합니다.

 

만약 뇌를 가진 동물이 매시간 매초 기억을 공유하는 다른 존재라는 걸 알고 있었더라면,

극변하는 사춘기 시절 자신의 변화에 좀 더 쉽게 적응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생각해보기도 하네요.

다른 사람이니 변하는 게 당연하니까 고민할 필요도 없게 되는 거지요.

 

….

그리고 더 이상 평범에 구애 받는 건 포기해야 할까 봐요. 뭐 자신이 평범하지 않다는 건 알고 있지만그렇기 때문에 어렸을 때부터 평범에 구애 받으며 살아왔었거든요. 어떻게든 다른 사람 흉내내면서까지. 화가 나지 않는데도 상황에 맞춰 일부로 화를 낼 정도로 평범에 구애 받았죠. 의미가 있었던 걸까, 잘 모르겠어요. 이젠 지쳤네요. 이도 저도 전부 지쳤어.

 

그럼 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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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 2019년 2월 3일 일요일 (0) 2019/02/03 PM 08:53

아파서 쉽니다.

유통기한 지난 케챱먹었더니 열이나고 배가 아프고 속이 안좋네요.

 

쓸 내용은 다 생각해둬서

쓰려면 쓸 수는 있는데...

 

새복 많이 받으시고 명절 잘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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