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는 (가물가물하지만) 샐러드, 빵, 닭고기 볶음밥, 과일?이 트레이에 받쳐진
하여튼 평범한 이코노미석 기내식이었는데요
빵부터 버터 발라 먹으려는데 버터 용기가 핫밀 아래에 깔려있더라구요.
이 때 멈췄어야 했는데ㅠㅠ
뜨겁게 덥힌 볶음밥 용기 아래서 버터는 이미 녹을 만큼 녹아있었고
제가 아무 생각 없이 버터 용기 뚜껑을 까는 순간
녹은 버터는 주르르륵 흐르면서 그 아래에 있던 제 고간(!!!!)으로 자유낙하를 했습니다.
다행히 여권, 티켓, 지갑 등 간단한 잡동사니 넣어두는 얇은 크로스백을 조신하게 다리 위로 올려뒀던 터라
버터 폭포는 소기의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가방만 적시는 데 그쳤습니다.
당황한 저는 서빙하던 승무원들 뒤에 따라오던 분(혼자 남자분이셨으니 아마 사무장?)에게 '버터가 녹아서 흘렸는데 혹시 키친타올이나 티슈 있나요?'하고 물어봤고
상황판단력이 뛰어난 승무원분은 버터가 식으면 닦이지 않을 것을 감안하여 (아마 일등석 승객용일) 스팀타월을 넉넉히 가져다주셔서 수습 잘 했던 기억이 나네요.
===========이하 15금=============
그런데 그 수습 과정이;;
닦을 것 있는지 부탁드린 분은 분명 남성승무원인데
여성승무원분이 연신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하면서 미니스커트 차림으로 제 자리 옆 복도에 무릎을 꿇고;;;
제가 직접 닦으면 되는데 굳이 그 섬섬옥수로 슥슥슥슥;;;
가방에만 흘린 거라 가방만 들고 닦아도 되는데 굳이 제 센터 위에 둔 그 상태로 슥슥슥슥;;;
게다가 버터를 어느 정도 닦아낸 뒤에는 크로스백 천에 녹아든 버터도 흡수해내야 한다는 듯이 아예 꾹꾹 눌러가면서 슥슥슥슥;;;;
안그래도 얇은 크로스백인데다가 안에 있던 여권 등도 버터 번질까봐 꺼내놔서 그 위를 닦는 손길이 너무 적나라하게 느껴지더라구요😳😳😳😳😳
제가 얼굴 빨개져서 직접 닦겠다고 하니까
승무원분은 제가 화난 줄 아셨는지 더 사색이 되셔서
아니에요 죄송합니다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만 되뇌이시면서
결국 3개 째의 스팀타월까지 다 써서 가방이 새것처럼 된 뒤에야 손길을 멈추고 일어나시더라구요.
...맡은 바 소임을 다 마치셔서였는지, 아니면 피끓는 청년의 갈 곳 없는 분기탱천(...)을 느끼셔서였는지는 모르겠지만
하여튼 그렇게 민망민망한 상태에서 서로 감사합니다 죄송합니다만 말하고 끝난 기억이 나네요.
어떻게 보면 논란이 될 부분도, 불편하게 느껴질 부분도, 클레임 관리 면에서 이해가 가는 부분도 있겠지만
제 개인적으로는 '진상부리려는 마음도 없었는데 극도의 저자세로 나오니까 오히려 제가 더 미안해지는' 경험을 하면서
어쩌면 친절한 서비스라는 게 고객들의 사소한 불만도 조기에 진압하는 고도의 접객전략의 측면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더라구요.
....네. 현자타임에 생각한 겁니다ㅠㅠㅠ 십 년이 다 되어가는데 아직도 가끔 그 상황이 떠올라요ㅠㅠ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