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분 마이피에 댓글알림이 계속 가게 하는 것도 민폐인 듯하여 제 마이피에 올립니다.
이런 면에서는 글타래 형식의 포럼이 부럽기도 하네요ㅎ
1.
표준국어대사전에 등재된 '토론'의 사전적 정의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지만
구태여 학술적 정의를 끌고 온 이유는
사전적 정의만으로는 그 함의를 충분히 설명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는 그 표준국어대사전을 편찬한 국립국어원에서도 인정하는 내용이고요.
<참조: '토의'와 '토론'의 차이점에 대한 국립국어원 온라인가나다 답변>
http://www.korean.go.kr/front/onlineQna/onlineQnaView.do?mn_id=60&qna_seq=118141&pageIndex=1
제가 지적했던 부분이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의 주제를 두고 참여자들이 공감하며 각자의 의견을 조각조각 모아 합의점으로 수렴하는 과정은 토의.
하나의 주제에 대해 참여자들이 큰 틀에서 서로 상충하는 논지를 펼치며 주장의 우열을 가리는 과정은 토론.
'한국 최고의 미녀는 누구인가'라는 주제를 두고
"이영애 눈이 예뻐." "김희선 코가 오똑해." "김태희 입이 이쁘지." -> 의견을 모으니 토의.
"이영애가 최고야." "김희선이 더 이쁜걸?" "김태희보다? 난 동의 못 함." -> 주장이 대립하니 토론.
'동수 민주주의를 위한 성평등 개헌과 정치제도 개혁'이라는 주제를 두고
큰 틀에서 공감하지만 이런저런 부분을 보충하면 더 좋을 것이다고 의견을 나누면 토의.
큰 틀에서부터 상충하며 그걸 반드시 해야 하는가? 이러이러하니 그게 맞지 않나? 하며 주장이 대립하면 토론.
또한 '토론 대회'는 있지만 '토의 대회'는 애초에 존재할 수 없다는 점에서도
토의와 차별화되는 토론만의 특징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제가 "찬반을 다투지 않아도 토론이 가능함을 인정하"는 것은
주제가 하나의 명확한 쟁점이 있어서 찬반으로 나뉘는 경우가 아니라면
토론 과정 내내 통일되지 않은 수많은 쟁점을 두고 다각도에서 다양한 주장들이 각축을 벌이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며
그러한 상황 역시 각자의 주장이 큰 틀에서부터 상충함을 전제하기에 토론으로 볼 수 있다는 의미였습니다.
'찬반을 나누지 앉아도 토론이지만 저건 찬반을 나누지 않기에 토론이 아니다'는 자가당착적인 주장이 결코 아닙니다.
2.
제 안좋은 버릇이지만, 항상 '내가 잘못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를 먼저 고민한 뒤에야 말을 하거나 글을 씁니다.
이번에도 역시 "각각 여성, 성소수자, 민변에서 활동하는 분들인데 이들의 생각이 비슷할거라는 편견"이 들어간 것은 아닌가 싶어
해당 댓글을 작성하기 전에 발제자와 패널들의 프로필, 인터뷰, 최근 연구 주제 등을 살펴보았죠.
물론 가장 좋은 것은 발제문이나 토론 속기록을 읽어보는 것이지만 구할 길이 없었네요;
그렇기에 그 밑의 대댓글에서 '동수 민주주의를 논하는 자리에 남자는 단 한 명'이라고 말할 수도 있었고요.
그러나 제가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발제자들과 패널들이 각각 여성주의자, 성소수자, 남성 변호사지만
동수 민주주의를 위한 성평등 개헌과 정치체제 개혁에 대해 큰 틀에서 다들 공감하는 사람들이라는 점입니다.
성소수자인 한채윤 비온뒤무지개재단 상임이사는
-젠더 감수성을 강조하면서도 '여성과 성소수자 등 약자를 대변하는 활동'을 하고
-여성민우회에서 '딸들을 위한 페미니즘'의 교육 주제로 '혐오의 정치 vs 페미니스트 정치'를 논하며
-동성애 혐오의 원인을 남성우위적 가부장제에서 찾는 등
탈 젠더리즘을 말하면서도 그 양태는 페미니즘이 혼합된 양상을 보이고 있었습니다.
또한 가장 이질적이라 생각했던 민변 김준우 변호사도 몇 가지 인터뷰를 보니
-노동법 전공의 공익 전공 변호사로서 민변 노동위에서 활동
-다인종 다문화되는 사회 현실을 개헌안에 반영하고
-기본권에 집중되는 개헌 논의를 정부형태, 정치 및 선거제도까지 확대하며
-개헌 논의에 시민들의 참여를 보장하되
-참여의 창구가 일부 시민단체의 고유 영역에만 국한되는 경향이 있으니 시민단체들의 연대가 필요함을 주장하는 등
정의당의 방향성과 그 결을 같이한다는 점에서
'동수 민주주의를 위한 성평등 개헌과 정치제도 개혁'에 대해 다른 패널들과 근본적으로 차별화되는 부분이 없을 거라 판단했습니다.
이러한 자료에 기초하여
"주제에 대해 찬반이 갈릴 껀덕지가 없"고
"끽해야 '남녀동수만 하지 말고 성소수자도 포함해달라' 정도의 이견이나 나왔"을 거라 추측하는 것이
과연 근거 없는 비약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혹시 제가 미처 살피지 못해 잘못 판단한 부분이 있다면 말씀해주시되
제가 "이들의 생각이 비슷할거라는 편견을 당연한 전제로 이야기를 하"지는 않았음을 알아주시기 바랍니다.
3.
"설사 해당 주제에 대해 패널 모두 찬성하는 입장이라고 하더라도 방법적인 면에서 얼마든지 의견은 갈라"진다면
앞서 말씀드렸던 것처럼 그 자리는 '토론'이 아니라 '토의'의 장소라고 봐야죠.
대전제에 대해 공감하되 방법론적인 차원에서 더 나은 합의점을 위해 의견을 나누는 것. '토의'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제가 말씀드린 "유의미한 차이가 없다"는 것은
저런 지엽적 차이는 '토론'의 전제조건인 '큰 틀에서의 유의미한 차이'가 되지 못하기에
저 자리에서 '토론이 이루어졌다'고 하기에는 충분치 않다는 얘기였지
'다 찬성 입장의 패널이라서 (저 자리에서 나눈 모든 이야기는 그 자체로) 의미가 없다'는 뜻이 아니었습니다.
4.
패널 외 참여자의 의견을 가장 적극적으로 수렴하는 것은 오히려 '토의'입니다.
'토의' 자체가 다양한 의견을 수혐해 합의점으로 나아가는 과정이기에 다수 관계자의 참여는 환영할 만한 일이며
그렇기에 때로는 그 자리에 참석한 모두를 패널로 보기도 하죠.
그렇기에 '청중이 참여할 시간이 마련되어 있으니 토론이다'라고 하기에는 정확하지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저 자리는 차라리 '심포지움'이나 '학술 발표회'로 봐야 한다고 말한 이유는
심포지움이나 학술 발표회 또한 질의응답 시간이 있고, 발제자나 패널들과 자유로이 의견을 나눌 수도 있으나
주제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은 제한되고
질문과 답변의 목적이 대체로 발제자나 패널로부터 지식을 구하는 과정이며
청중을 '동등한 토론 상대방'이라기보다는 '가르침의 대상'으로 보는 등의 특징이 유사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동수 민주주의가 필요하다'는 대전제를 발제자와 패널들이 모두 공감했는데
질의응답 시간에 와서야 누군가 "그런데 동수 민주주의가 꼭 필요합니까?" 같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면
내내 '토의'나 '심포지움', '학술 발표회'만 하다가 그 때 비로소 '토론'이 시작되었다고 봐야죠.
5.
어쩌다보니 특정 정당의 특정 토론회만을 두고 저격하는 모양새가 됐는데,
제가 걱정하는 것은 '토론'과 '토의'를 혼용하는 세태 전부입니다.
언어는 곧 사유이고 사유는 곧 생각이며 생각은 곧 개개인의 세계관이기에
어휘의 순수성이 퇴색되면 세계관까지도 영향을 받기 마련이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토론'의 탈을 썼지만 오히려 '토의'에 더 가까운 자리는
지엽적인 차이만을 보여주면서 반복적으로 대전제를 긍정하는 과정에서
'패널들이 공감하는 배경'을 청중들에게 주입하는 교육장으로 변질될 가능성이 있기에 우려스러웠습니다.
토론으로 유명한 관훈클럽의 관훈토론회는 방송3사 + 조중동부터 한경오까지 넓은 스펙트럼의 기자들이 다양한 논지를 펼치고
국회토론회만 보더라도 당정청 + 각계 전문가 + 여러 당의 의원들이 난상토론을 벌이며
'심야토론', '백분토론' 등 TV토론 프로그램도 패널들의 성향이 뚜렷이 갈리죠.
과연 저 '모임'을 이런 '토론회들'과 같은 선상에 두어도 될 지 모르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