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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서평] 더 이상 숨을 곳이 없다 - 글렌 그린월드 (0) 2014/07/12 PM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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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윤리적이고, 위험하죠"

영화『다크 나이트』에서 배트맨이 조커를 잡기 위해 만든 모든 휴대폰을 도청하는 장치를 보여주자, 배트맨의 조력자 루시우스 폭스는 이렇게 말합니다. 영화는 악을 해결하기 위해 악을 사용하는 것에 대한 질문을 관객에게 던지면서, 결국 모든 휴대폰을 도청하는 장치는 파괴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개인의 모든 생활을 체제가 빠짐없이 감시하는 빅브라더는 영화만의 이야기는 아닙니다. 미국의 에드워드 스노든은 미국의 NSA(국가안보국)이 하고 있는 범죄 행위를 폭로했습니다. 그것은 NSA국장 키스 알렉산더가 내세운 핵심 목표, '전부 수집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오늘날 현대인들에게 휴대폰, 인터넷은 단순한 도구 이상의 가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휴대폰과 인터넷은 현대인들의 상호 커뮤니케이션의 핵심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때문에 독재자들은 큰 사건이 터지면 인터넷부터 감시하고, 통제합니다. 유무선 통신 시스템의 장악은 현대인들의 생각과 입을 장악하는 의미가 되었습니다. 휴대전화를 원격 조종해서 도청 장치로 전환하는 기술인 로빙벅스roving bugs 기술은 이미 몇 년 전부터 현실에서 사용되고 있습니다. 과거에도 정치적 정적의 대화를 도청하거나, 적국의 정보를 빼내기 위한 스파이 활동은 언제나 이루어져 왔습니다. 그러나 스노든의 폭로에서 중요한 점은 그런 감시 체제가 미국 정부를 제외한 모든 국가, 모든 시민으로 확대되었다는 점입니다.


NSA 내부 파일에 따르면 블라니 프로그램의 2010년 목표에는 브라질, 프랑스, 독일, 그리스, 이스라엘, 이탈리아, 일본, 멕시코, 대한민국, 베네수엘라를 비롯해 유럽연합과 유엔이 포함되었다. - p.155

NSA의 범죄 행위를 고발한 내부고발자 에드워드 스노든은 CIA와 NSA에서 일했고, 그가 하는 일은 모든 사람의 전자통신을 NSA의 수집, 저장, 분석 활동의 대상에 포함시킴으로서 전 세계인의 프라이버시를 제거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NSA가 채용하지 못해 안달이 난 수준의 사이버 보안 전문가였고, 하와이에 있는 연봉 2억 이상의 직장을 가진 장래유망한 29살 청년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부와 명예가 약속된 삶을 버리고 배신자라는 모욕을 들어가며 수십 년 동안 감옥에 갇힐 것을 각오하면서까지 내부고발자가 된 데에는 인터넷은 자유로워야 한다는 그의 신념이 있었습니다. 그의 지적 발전 경로중엔 독특하게도 비디오 게임이 포함되어 있는데, 스노든이 비디오 게임에서 배운 교훈은 단 한 사람이 거대한 불의에 맞설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스노든은 저널리스트이자 변호사인 글렌 그린월드와 다큐멘터리 영화감독인 로라 포이트러스에게 연락해 신문〈가디언〉을 통해 NSA의 범죄 활동을 폭로합니다. NSA가 미국 최대 통신 사업자인 버라이즌의 미국인 고객 수백만 명의 통화 기록을 수집했다는 기사를 시작으로 페이스북, 구글, 애플, 유튜브, 마이크로소프트, 스카이프 같은 기업들에서 정보를 수집하는 '프리즘 프로그램'의 존재를 폭로했고, 미국 전역의 이동 통신 인프라를 이용해 수십억 건의 전화통화와 이메일을 수집, 분석, 저장하는 '국경없는정보원 프로그램'의 정체도 폭로했습니다. 스노든의 자료는 미국 자국민들 뿐만 아니라 미국의 동맹이었던 민주 국가들도 무차별 대량 감시의 목표였음을 말해줍니다. 감시 목표는 테러 혐의자부터 동맹국의 민주적으로 선출된 지도자 뿐만 아니라 평범한 시민까지 망라되었습니다.

NSA는 기업이 미국산 네트워크 장비를 구입하면 배송 도중에 가로채 몰래 포장을 뜯어 감시 프로그램을 심어놓는 등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도 중국 네트워크 장비는 의심스럽다며 위선적인 태도를 보였습니다. 또한 해킹 행위를 통해 전세계의 컴퓨터 10만 대에 멀웨어를 감염시키기도 했습니다. NSA의 메타데이터 수집은 연간 1조 건에 달하는데, 이 자료들은 미국의 다른 부처에 공유되어 미국의 외교 스파이 활동과 경제 스파이 활동 등에 사용됩니다.



자기검열은 저자나 기자의 생각을 뿌리부터 뽑아버린다는 점에서 폭력적인 검열보다 더 나쁘다. 검열은 판결이든 법이든 유혈이든 흔적을 남기지만, 자기검열은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이는 처음부터 아예 없던 것으로 만들어버린다. 자기검열된 것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 된다. 자기검열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검열이다. -《검열에 관한 검은책》p.88

미셸 푸코는 국가의 근본적인 매커니즘 가운데 하나로 감시와 처벌을 지적합니다. 지속적인 감시는 권력의 유형이며, 개인의 순종을 강요할 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자신이 통제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도 못한 채 강요된 행동을 본능적으로 하게 된다고 말합니다. NSA의 전방위적인 정보 감시는 그러한 현대국가의 일면이 극대화된 것입니다. 스노든의 폭로로 인해 개인 프라이버시와 국가 감시체제에 대한 논의가 이어졌는데, 특정 극우파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정보를 감시당해도 그 대부분은 쓸모없는 정보라면서 NSA의 행동을 옹호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막상 그 사람들도 자신의 거의 모든 정보가 유출되는 것을 찬성하지는 못했습니다. 만약 모든 사람들이 자신만이 가지고 싶어하는 프라이버시들, 예를 들면 성적 취향 같은 것이 빅데이터로 유출된다면 설령 결과적으로 아무도 그 정보를 보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정보가 유출되는 것을 원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우리 헌법을 제정한 사람들은 행복 추구에 유리한 조건을 보장하기로 약속했다. 이들은 인간의 정신적인 본성인 감성과 지성의 중요성을 인식했다. 삶의 희로애락 가운데 일부분만을 물질적인 것에서 찾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믿음, 생각, 감정, 감각을 보호하려 했다. 정부에 대항해서 혼자 있을 권리를 부여했다. - p.226

9.11 이후 미국 정부의 무차별 대량 감시는 테러를 막겠다는 이유로 용인되었지만, 여러 연구들, 심지어는 미국 행정부조차도 NSA식의 정보 수집은 테러를 막는데 아무런 효과가 없을 뿐더러 오히려 방해가 되고 있음을 인정했습니다. NSA가 이룬 일은 미국 시민들의 자기검열 효과만 불러일으켜 실질적으로 미국사회를 더 폐쇄적이고 순종적이고 비자유적인 나라를 만들었을 뿐입니다. 스노든과 로라, 그린월드는 정부와 미디어로부터 배신자 취급을 받고 더 실질적인 처벌, 감옥행이나 최악의 경우 고문까지 감안하면서까지 내부 고발과 고발을 돕는 역할을 하기로 했습니다. 이는 점점 더 심각해지는 정부의 감시체제를 막기 위해 라 트리콜로레를 든 것입니다. 그들이 전해주는 메시지는 간단합니다. 모든 시민들의 핸드폰을 도청할 수 있었던 배트맨의 장치는 파괴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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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서평] 블루게이트 (장진수) (0) 2014/07/12 PM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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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정보]




민간인 불법 사찰 증거인멸 사건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장진수의 이야기’다. 책 제목 <블루게이트>는 정부 또는 정치권력과
관련된 대형 비리 의혹사건의 뜻하는 ‘게이트’와 ‘블루(blue: 파란, 우울한)’의 합성어인데, ‘블루’는 청와대를 뜻하는
블루하우스(BH)이자 장진수 개인의 우울하고 힘들었던 시간을 의미한다.



책에서 장진수 전 주무관은 ‘블루게이트’와의 첫 만남부터 증거인멸, 검찰 수사, 재판, 그리고 진실 폭로와 이후의 과정까지 직접
보고 듣고 느끼고 걸어온 길을 솔직하게 기록했다. 독자들이 사건의 진실을 더 깊이 이해하고, 정의와 상식이 무엇인지 돌아보고, 더
이상 권력에 속는 억울한 희생자가 생기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용기 내어 펜을 들었다.



만 아니라 장진수 개인으로서도 가슴 한편에 응어리진 어두운 기억과 상처를 훌훌 털어버리고, 2010년 7월 이후 멈춰버린 인생의
시곗바늘을 다시 힘차게 돌리고 싶었다. 이 책은 권력에 속박돼 있던 한 공무원이 영혼을 되찾고, 이권에 끌려갈 뻔했던 한 인간이
양심을 되찾는 과정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내부 고발자를 다룬 영화 《인사이더(The Insider)》에서는 담배 회사의 비도덕적인 면을 폭로하는 제프리 위갠드(러셀 크로우 분)가 등장한다. 『블루게이트』도 다르지 않다. 장진수는 인사이동을 하자마자 힘의 논리를 터득했다. 동료들의 축하 인사를 받으면서도 그곳에서 불법적인 일을 하게 되는 동시에 자신 또한 증거인멸에 가담하게 될 줄은 알지 못했으며, ‘암행감찰반’으로 불리는 공직윤리지원관실에 발령이 난 뒤 윗선에 상납을 하는 등 황당한 지휘체계를 지닌 자신의 조직을 의아히 여길 수밖에는 없었다. 그리고 훗날 그는, 자기 스스로마저 고발하는 고통을 안게 되었다. 그의 기록을 읽어 내려가면 흡사 과거 중앙정보부의 모습을 보는 것만 같은 기분을 느끼게 된다. 역시 용기 있는 기록이었던 『남산의 부장들』(김충식, 폴리티쿠스, 2012)에서 찾아볼 수 있는 무소불위의 권력은― 최근 몇 년에 이르기까지 사라지지 않았고, 지금도 있을지 모르며, 앞으로도 영원히 불사의 존재로 남을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은행에서 돈을 받았더라고.」
「예? ○○은행이 돈을 왜요? 얼마를요?」
「200만 원. ○○은행 좀 잘 봐달라고 준 거지 (...) 함께 밥 먹다가 부행장이 돈 봉투를 주니까 냅다 받아 온 거예요. 감사를 하러 나간 사람이…….」




장진수의 기록에는 이런 식의 대화가 끊이지 않는다. 그리고 이어진 김종익 사건. 개인 블로그에 정부 비판 동영상을 올렸다는 이유로 민간기업인인 김종익 씨를 사찰하는 일이 벌어지고 이 사건이 텔레비전 탐사보도 프로그램에서 방영이 되었다. 컴퓨터에 저장된 파일을 삭제하고, 관련 문건을 파쇄하고, 검사들은 그런 사실을 알고도 묵인했다. 더군다나 법정에 선 장진수의 상관은 자료 삭제를 지시한 적이 없다는 변명을 한다. 음해에 관해서는 어떤가? 그의 상관은 ‘지원관실에 쏟아지는 비난의 여론을 김종익에게 돌려서 사건을 무마해야 한다’며 문건을 작성해 여당 의원에게 전달했고 ― 장진수는 왜 갑작스레 여당 의원이 등장하는지에 의구심을 품는데, 그 의원이 청와대 사회정책수석실의 행정관과 친분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됨으로써 ‘의문이 해소되었다’고 씁쓸히 덧붙이고 있다 ― 자료를 건네받은 해당 의원은 국회에서 김종익 씨를 음해하는 공세를 펴며 그를 검찰에 고발하기에 이른다. 국회의원이란 무엇인가? 국회의원이란 수많은 사람이 제 목소리를 내기 어려우므로 국민들을 대리하는 책임이 지워진 사람인데, 이것은 개인적으로 일전에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읽으면서 느꼈던 것을 새삼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대의 민주주의 하에서 국민의 정치적 의사와 권리를 대리하게 되는 국회의원은, 바로 우리를 대신해 정치판에서 싸우는 용병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것. 그런 임무를 지닌 자가, 정부를 감시하고 견제하는 것이 아닌 민간인을 감시하고 고발하는 이상한 일이 벌어진 상황이다. 이래저래 한국 정치와 한국 사회가 배를 타고 산을 향한다는 현실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질 않나.




불법사찰 사건에는 이 시대의 암울한 분위기가 반영되어 있다. 방식만 바뀌었을 뿐 군사정권 시절의 자기검열 시대로 회귀했다. 실제로 지금 정부를 비판하면 선동한다고 하지 않나. 그 발단이 바로 불법사찰 사건이다. 국가정보원의 대선개입 사건 등도 연장선에 있다고 본다.



― 한국일보 장진수 인터뷰(2014. 5. 25)




허울뿐인 압수수색과 증거인멸이라는 범죄, 여론몰이, 꼬리 자르기, 그리고 ‘말 한마디 잘못한’ 장진수의 양심선언. 물론 그 역시 범죄에 가담한 셈이었지만 내부 고발이 가져온 후폭풍은 그에게 ‘독박’을 안겨주었다. 그 심난하고 지난했던 과정이 이 『블루게이트』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허두에 언급한 《인사이더》로 돌아가 보자. 알 파치노가 연기한 로웰 버그만은 제프리와 더불어 ‘진실이기 때문에, 너무 진실해서 오히려 손해를 본다’는 조직에 철퇴를 가하고 언론인의 사명을 지키려 했다. 장진수는 용기 있는 고백을 시작한 후 공직에서 물러났지만 적어도 부끄러운 인간이 되지 않아 다행이라고 말한다. 이것이 그가 말한 건강한 에너지일는지도 모르겠다. 영화 《매트릭스》에서 나타나듯 알량한 회유라는 파란색 알약을 버리고서 빨간색의 것을 취한 것은 단순히 선택의 고민과 방황에만은 그치지 않는다. 갈림길에 서서 한번 선택을 하게 되면, 그것이 최선의 길일는지 아니면 최후의 운명을 맞게 될는지 아무것도 장담할 수 없고 그 어떤 것도 보장되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값진 양심 앞에서의 힘든 머뭇거림은 그만큼 우리에게 장진수를 기억해야만 하는 분명한 이유를 던져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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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연쇄살인범과 전신마비탐정 - (1997) (0) 2014/07/12 PM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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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프리 디버 <본 컬렉터> (1997)

살인사건 (특히 연속살인사건)이 발생하면 탐정은 이를 추적한다. 범인을 검거하기 위해서 필요한 여러 가지 요소들 중에서, 탐정이나 수사관이 가진 육체적인 능력은 어느 정도의 비중을 차지할까?

고전추리소설의 탐정들은 거의 혼자서 북치고 장구치면서 범인을 추적해갔다. 응접실에 앉아서 추리하고, 필요하다면 거리로 뛰쳐나가서 주먹을 휘둘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런 수사방식은 점점 사라져간다. 살인이 보다 지능적이 되어가고, 범죄가 대형화되면서 거기에 대응하는 수사진들도 조직적으로 움직여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수사진들 전체가 거리를 뛰어다닐 필요는 없다. 그중 두뇌역할을 하는 사람은 보고를 받고 추리하고 지시를 내린다. 그 부하직원들은 손발이 되어서 움직이면 되는 것이다.

전신마비탐정 링컨 라임 시리즈

미국작가 제프리 디버는 여기에 딱 적합한 인물을 창조해냈다. 1997년에 발표한 <본 컬렉터>의 주인공 링컨 라임이 바로 그 인물이다. 링컨 라임은 사고로 전신이 마비된 채 침대에 누워서 도우미의 도움을 받으며 생활한다. 라임은 보고 듣고 말하고 생각하는데는 지장이 없지만 스스로 움직이지 못한다. 그가 움직일 수 있는 부위는 오직 왼손 약지 하나뿐이다. 뺨이 가려워도 직접 긁을 수 없다.

라임은 예전에 뉴욕시경 과학수사국장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현장감식 도중에 사고를 당해서 척추뼈 중에서 제4경추가 박살나는 중상을 입으며 전신마비환자가 된다. 그는 수사관이기 이전에 뛰어난 과학자이기도 했다. 특히 각종 첨단장비를 활용한 증거물 분석에 있어서 뛰어난 능력을 발휘한다.

이 정도면 전신이 마비되더라도 충분히 ‘두뇌’의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라임은 사고 이후에 뉴욕시경에서 은퇴하고 뉴욕의 고급맨션 침대에 누워서 주로 생각을 하면서 보낸다. 가끔씩은 자살을 꿈꾼다. ‘모든 사람은 자신을 죽일 권리가 있다’라고 말하면서.

그러던 어느날 뉴욕에서 잔인한 살인사건이 발생한다. 비즈니스를 마치고 뉴욕으로 돌아온 남녀가 실종되었는데 그 중 남자가 살해당한 채 발견된다. 남자는 땅 속에 생매장되었고 땅 밖으로는 손목과 손이 노출되어 있다. 특이한 점은 손가락 하나의 살점을 모두 발라내서 뼈를 드러나게 한 후에 거기에 여자의 반지를 끼워두었다는 점이다.

이렇게 엽기적인 사건이 발생하자 라임의 예전 동료였던 담당 수사관은 부하들과 함께 라임을 찾아온다. 현장감식과 증거물에 대한 조언을 구하려고 하는 것이다. 여기에 처음 시체를 발견한 순찰계 여경 아멜리아 색스도 합류한다.

이제 링컨 라임은 두뇌가 된 것이다. 지시를 내릴 손발들도 갖추어졌다. 라임은 수사관들이 가져오는 증거물과 정보를, 자신의 두뇌를 이용해서 분석하며 연쇄살인범을 추적하기 시작한다.

원작과 영화의 공통점과 차이점

이 작품은 이후에 덴젤 워싱턴(링컨 라임), 안젤리나 졸리(아멜리아 색스) 주연의 동명의 영화로 만들어진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이 캐스팅은 상당히 적절했다고 본다. 덴젤 워싱턴은 침대에 누워서 무기력하지만 정신만은 살아있는 캐릭터의 역할을 눈빛과 말투로 해냈다.

안젤리나 졸리 역시 수사과정 중에 링컨 라임에게 때로는 반항하면서도 연민을 느끼는 역할을 한다. <양들의 침묵>의 조디 포스터를 제외하면, 여형사역으로 안젤리나 졸리 만큼 적절한 여배우가 또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연쇄살인범을 다루었다는 면에서 <양들의 침묵>과 <본 컬렉터> 사이에는 공통점도 있고 차이점도 있다.

두 작품에서 두 명의 여형사는 모두 과거의 상처를 가지고 있고 그 상처를 아직 극복하지 못했다. 또다른 공통점은 중년의 남성과 젊은 여성이 일종의 콤비를 이루어서 연쇄살인범을 추적한다는 것이다. <양들의 침묵>에서도 한니발 렉터가 두뇌 역할을 맡는다. 그리고 한니발 렉터는 구속복을 입은 채로 정신병동에 수감되어 있다. 그 역시 신체의 자유를 제한 받고 있는 상태에서 외부에서 가져오는 정보를 듣고 두뇌만으로 조언해주는 입장이다.

차이점도 있다. 한니발 렉터는 분석심리학자로서 범인의 심리를 꿰뚫어보려 한다. 반면에 링컨 라임은 과학자이기 때문에 증거물에만 관심을 갖는다.

“범인의 동기가 무엇일까요?”

“동기? 난 동기에는 관심없어. 내가 관심을 갖는 것은 오직 증거물 뿐이야”

한 수사관의 질문에 링컨 라임은 이런 대답을 던진다. 두 영화 모두 탄탄한 스토리와 구성의 원작을 바탕으로 만들어졌고 캐스팅도 적절했지만, 그 이후의 흥행이나 비평에서는 다소 다른 길을 걸어갔다. <본 컬렉터>의 경우 원작의 설정을 비교적 많이 바꾸어놓은 것이 그 원인 중 하나가 아니었을까 한다.

라임-색스 콤비가 벌이는 활약 그리고 미래

다시 원작으로 돌아오자. <본 컬렉터>에서 데뷔한 링컨 라임은 이후로도 시리즈 내에서 아멜리아 색스와 손을 잡고 수많은 사건들을 해결한다. 뉴욕시경은 난해한 사건이 발생하면 어김없이 라임을 찾아온다. 중국에서 건너온 범죄자가 밀입국자들의 배를 폭파시키고(<돌원숭이>), 냉혈한 살인청부업자가 희생자의 뒤를 쫓는다(<코핀댄서>). 희대의 마술사는 마술을 이용해서 사람들을 죽이고 다닌다(<사라진 마술사>).

이렇게 엽기적인 사건도 사건이지만 독자들의 관심사는 다른 곳에 있을 수도 있다. 시리즈가 진행되다 보면, 링컨 라임은 전신마비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어쩌면 이것은 양날의 칼과 같다.

링컨 라임의 존재의의는 그의 ‘전신마비상태’에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라임에게 추적당하는 범죄자들은 라임이 전신마비환자라는 것을 알고서도 그다지 놀라지 않는다. 라임에게 육체는 중요하지 않다. 오직 정신만이 존재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라임이 마비상태를 치료해서 일반인처럼 걸어다니고 행동하는 것을 보고도 싶지만, 만일 그런 사건이 일어나면 링컨 라임은 더 이상 링컨 라임이 아닐 것만 같다. 라임이 침대 밖으로 걸어나올 때, 어쩌면 그 때가 이 시리즈가 끝나는 때 일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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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도치서술, 도서추리소설의 매력 - (1931) (6) 2014/06/25 PM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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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랜시스 아일스 <살의> (1931)

추리 소설의 여러 장르 중에 '도서추리'라는 것이 있다. '도서'라는 단어는 도치서술(倒置敍述)의 줄인 말이다. 글자 그대로 일반적인 추리소설의 서술방식을 뒤집어서 전개하는 형태의 추리소설이다. 도서추리소설과 일반추리소설을 비교하면 몇 가지 차이가 나타난다. 그 차이점은 모두 일반추리소설의 전개방식을 뒤집음으로서 발생하는데, 이런 점들을 도서추리소설의 특징으로 꼽을 수 있다. 그 특징은 다음과 같다.

1. 작품의 주인공은 탐정이나 관찰자가 아닌 범인이다.

2. 작품의 흐름은 범인의 입장에서 전개된다.

3. 범인이 범죄를 구상하고 실행하는 과정, 이후에 형사와 공방전을 벌이는 모습이 기술된다.



4. 밀실이나 초자연 같은 불가능한 상황의 설정을 배제한다.

5. 범인은 완전범죄를 노리고 철벽같은 알리바이를 만들지만, 형사의 끈질긴 추적으로 결국 사건의 전모가 드러난다.

6. 범인을 추적하는 형사의 입장이 아니라 형사에게 쫓기는 범인의 내면을 묘사한다.





요약하자면, 일반적인 추리소설은 대부분 범죄가 발견되는 시점을 시작으로 한다. 그리고 탐정 또는 주위의 관찰자를 주인공으로 범인을 추적해나간다. 반면에 도서추리소설은 범인이 범죄를 구상하는 단계에서 시작한다. 그러면서 범죄의 구상과 실행, 추적하는 형사와의 대결까지 각 장면마다 범인의 심리를 묘사하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범인의 입장에서 전개되는 추리소설

이런 도서추리소설의 대표적인 작품들로는 크로프츠의 <크로이든발 12시 30분>, 리처드 힐의 <백모살인사건>, 프랜시스 아일즈의 <살의>를 꼽을 수 있다. 흔히 이 세 작품을 가리켜서 '도서추리소설의 3대 명작'이라고 표현한다. 좀더 현대로 와서는 로렌스 샌더스의 <제 1의 대죄>도 도서추리의 형식을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몇 가지 세부적인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이 작품들은 모두 위의 특징을 담고 있다. 이유없는 연쇄살인범을 다룬 작품인 <제1의 대죄>를 제외하면, 다른 세 작품의 범인들은 모두 친인척을 범행대상으로 삼는다는 것도 재미있는 공통점이다.

또 다른 공통점으로는 범인의 범행과정을 자세하게 서술한다는 점이다. <크로이든발 12시 30분>에서는 범인이 독약을 손에 넣기 까지의 과정을 세밀하게 다루고 있고, <백모살인사건>에서는 독을 가진 식물과 독약에 관한 이야기를 길게 펼쳐 놓는다. 하지만 이런 전문적인 이야기가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 이유는 아마도 독자가 범인의 입장이 되어서 그의 내면을 따라가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제 1의 대죄>를 제외한 다른 세 작품에서 살인의 수단으로 약물과 독약을 사용한다는 점도 공통점이다.

개인적으로는 이중에서 <살의>를 가장 흥미롭게 읽었다. <백모살인사건>이 약간 우스꽝스럽고 <크로이든발 12시 30분>이 너무 진지하다면, <살의>는 딱 그 중간 지점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살의>에는 30대 후반의 의사 에드먼드 비클리 박사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시골의 작은 마을에서 개업의로 활동하고 있는 그는 사사건건 자신을 무시하고 함부로 대하는 부인 줄리아와 함께 살고 있다. 줄리아는 비클리보다 8살이 많다. 애초에 줄리아는 비클리를 사랑했기 때문에 결혼한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친정생활을 견딜 수 없어서 도망치듯이 결혼한 것이다. 사랑만 가지고 결혼을 할 수는 없지만, 사랑이 없는 결혼생활도 힘들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비클리가 줄리아와 결혼한 것은 일종의 열등감 때문이었다. 비클리의 아버지는 작은 도시에서 약국을 운영했다. 비클리는 아버지 밑에서 약국일을 돕다가 의학에 흥미가 생겨서 의과대학에 진학한 것이다.

의사가 되었다고 해서 신분상승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의 가문은 대대로 보잘것 없었기 때문에 신분상승을 위해서는 그럴듯한 집안의 여자와 결혼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좋은 가문의 딸인 줄리아와 결혼하게 된 것이다.

이런 결혼생활이 제대로 유지될리가 없다. 줄리아는 마을 주민들이 모인 파티장소에서도 비클리에게 명령조로 말을 하고 비클리는 그것을 거역하지 못한다. 그러면서 속으로 '개한테도 저런 투로 말하지는 않을 거야'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비클리는 줄리아를 죽여버리겠다고 다짐한다.

그는 조심스럽게 계획을 세운다. 절대로 발각되지 않는 방법을 발견할 때까지는 함부로 손을 대서는 안된다. 형사의 무능함에 의지해서도 안된다. 사고사 또는 자연사처럼 보여야지 절대로 타살로 보여서는 안된다. 이 살인이 성공적으로 끝나게 되면 자신은 행복해진다. 살인도 경우에 따라서는 살인이 아니라 자비로운 구원이 되는 것이다.

비클리는 희망과 함께 두려움도 느낀다. 그것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크나큰 힘에 대한 두려움이다. 사람을 살리는 일도 죽이는 일도 모두 자신의 손안에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매일 부인의 경멸 속에서 살아오던 그가 사실은 이렇게 커다란 힘을 가지고 있는 사나이 였다니!

살인을 계획하고 실행에 옮기는 사람의 심리

작품의 흐름을 범인의 입장에서 서술해서인지, 이런 작품을 읽다보면 범인의 입장을 자꾸 동정하게 된다. <살의>에서도 마찬가지다. 비클리는 공포에 사로잡혀 몸을 떨고 초조해하며 안절부절 못한다. 그런가하면 형사들의 날카로운 공격이 계속되도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살아있는 한 희망도 있는 법이니까.

도서추리의 매력은 어디에 있을까. 이런 작품을 읽다보면 독자들은 범인이 누구인지 고민할 필요도 없고, 어떤 트릭을 사용하는지 생각할 필요도 없다. 도서추리의 매력은 범죄를 구상하고 실행하는 범인의 내면을 읽어가면서, 범인과 형사가 맞서서 교묘하게 벌이는 심리전을 바라보는 것에 있다.

또 한가지, 범인이 (거의) 완벽하게 만들어놓은 완전범죄를 형사가 어떻게 무너뜨리느냐를 지켜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다. <살의>, <크로이든발 12시 30분>등의 작품에는 이런 재미가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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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오브스더    친구신청

흥미롭네요 전 히가시노 게이고 팬이라, 애거서나 홈즈시리즈외엔 외국추리소설은 거의 본적없는데, 한번 보고싶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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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소설도 정말 여러가지 장르가 있고 작가마다 서로 다른 전개방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충분히 읽어볼만한 소설이라고 생각해요 ㅎㅎ

또랭    친구신청

예전에 읽었던 좀비라는 소설도 도치서술이었던거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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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가 잘 인지하지 못할뿐이지 인지를 하고 보게 된다면 비슷한 유형의 글이 많이 있을거라고 생각됩니다 ㅎㅎ

소년 날다    친구신청

역시 무더운 여름에 추천 도서로는 추리소설만한 것이 없죠. 좋은 책 추천 감사합니다. 이제 보니 웹진에 기고하시는 분인가 본데..건방지게 어제 뮤지컬에 대한 건방진 사견을 써서 죄송합니다. 앞으로도 문화 전방위에 걸쳐 좋은 글들 많이 부탁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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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파운틴 웹진입니다.
이 글은 웹진의 집필위원이자 오마이뉴스에서 활동하고 계신 김준희님의 글입니다.
서로 다른 분들이 쓰신 글이구요.
좋은 의견은 언제든지 감사히 듣겠습니다 ㅎㅎ
[도서] [서평] 세계를 읽다: 터키 (아른 바이락타롤루) (0) 2014/06/25 PM 10:04

마이피에서는 잘 보이지 않을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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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 정보]




'세계를 읽다'라는 인문여행 시리즈 명으로 출간되는 첫 번째 책이다. 이
시리즈 '세계를 읽다'는 유명 여행지 중심의 기존 세계여행 정보서들과는 달리 그곳의 사람과 삶에 초점을 맞춘 본격 세계문화
안내서로서, 외지인들이 처음 가보고는 포착하기 어려운 그 나라의 역사와 문화, 생활환경과 관습에 관한 방대한 지식과 해설을
다룬다.


'터키' 편은 터키에서 직접 살아본
영국인 저자가 써서 정보는 더욱 생생하고 글은 생활 에세이처럼 쉽게 읽힌다. 유럽과 아시아 두 대륙의 경계에서 역사상 가장 거대한
제국(오스만 제국)을 이루었던 터키인의 뿌리에서부터 출발해 동양적인 것과 서양적인 것, 이슬람과 기독교 문화, 케밥 가게와
최고급 레스토랑 등 서로 이질적인 것들이 공존하며 더욱 역동적으로 변모해가는 터키의 오늘과 그 이면의 이야기들을 속속들이
전해준다.











지금으로부터 10여 년 전 한일 월드컵이 열렸을 때로 기억한다. 터키와 한국을 두고 '형제의 나라'라 불렀던 것을 말이다. 내가 터키에 대해 알고 있던 것은 고작 그 정도였다ㅡ 물론 그들의 한국전쟁 참전에는 나토 가입과도 뗄 수 없는 이유가 있었을 터이지만. 월드컵 당시 3, 4위전을 벌였던 터키와 한국 선수들은 경기가 끝나자마자 유니폼을 바꿔 입고 서로의 어깨에 팔을 두른 채(양국의 국기를 함께 펼쳐들기도 했다) 관중 앞에서 세리머니를 했다. 그러나 내가 터키에 대해 가지고 있던 정보나 기억 혹은 감정은 그뿐이었다. 그런 측면에서 이 '세계를 읽다' 시리즈가 여행지 중심의 관광에 관한, 소위 여행 정보서와 다르다는 점이 좋다. 이를테면 터키의 정보를 알려준다기보다는 터키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돕는다ㅡ 그러므로 여행 정보서가 아니라 문화 안내서라고 하는 편이 적절하겠다. 터키의 문화나 관습, 사교, 터키 사람들의 모습, 그들과 친해지는 방법, 터키에서 살아가기 위한 주택, 교육, 교통, 예술, 건축, 스포츠, 대중매체, 일자리…… 어느 하나 버릴 것이 없다. 이 책이 정말 교양서가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재미있는데다가, 시쳇말로 '깨알 같은' 일화도 곳곳에 담겨 있어 빨리 다음 페이지를 넘기지 않으면 안 된다. 특히 이슬람 국가인데도 불구하고 동성애자의 생활에 대해 친화적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을 정도의 포용력을 지닌 것을 보면 놀랍기 그지없다. 물론 지금도 공식적인 장소에서는 종교적 복장(이를테면 히잡)을 금지하고 있다지만 또 다른 면에서 터키 사람들이 보이는 자유스러움과 다양성을 인정하려는 모습은 그들의 삶의 방식을 다채롭게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책에 실린 다양한 이야기 중에서 나는 '터키 사람/사람들'에 관한 부분이 가장 좋았다. 그들은 만나면 보통 날씨 얘기는 하지 않는단다. 날씨가 늘 안정적이어서 흥미로운 대화거리가 되지 않는다는 거다. 책에 적힌 지역별 평균 기온으로 보건대 터키의 기온은 평균 13℃ 정도인 것 같다ㅡ 그러면서 '겨울에는 항상 춥고 여름에는 항상 덥다'며 토를 달아놓았다. 남녀가 연애할 때는 어떨까. 터키에서는 남성과 여성에게 기대되는 행동 패턴이 정반대라고 하는데, 요컨대 이런 식이다. 터키 문화는 성적인 면에서 남자들을 억압하지 않는 반면 여자들에게는 정조가 중요해 신부에게는 처녀성이 요구된다. 또 많은 여성들이 공개적인 장소에서 남자와 손잡는 것조차 꺼린다고 한다(이 말을 온전히 믿어야만 할까? 정말?). 그래서 여자는 항상 달아나고 남자는 휘파람을 불며 쫓아다니는데, 타국에 정착한 한 터키 여성은 자신을 쫓아다니던 터키 남자들과는 다른 외국의 남자들을 보며 자신에게 매력이 없다는 열등감에 빠지기도 했었단다. 그런가하면 젊은 연인들은 패스트푸드점 꼭대기 층을 즐겨 찾는단다. 이는 부모의 눈을 피해 밀회를 즐기기 위해서라고. 거리에서 손을 맞잡는 것에 약간의 부담을 느낀다니 충분히 이해할만한 대목이다. 아, 그리고 또 있다. 바로 목욕탕이다! 터키의 대중목욕탕에는 한국에서와 같이 때를 닦아낼 수가 있다는 것이다. 일행끼리 같이 오면 서로 때수건을 사용해 등을 밀어주고, 그렇지 않은 경우 목욕탕의 종업원에게 약간의 돈을 주면 같은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고 한다. 계속해서 책을 읽다 보니 두 남자가 상의를 벗은 채 부둥켜안고 있는 사진이 있었다. 레슬링 대회의 한 장면이었다. 터키에서 레슬링은 국민 스포츠로 인정받고 있는데 전국 각지에서 여름 내내 대회가 열린단다. 특히 7월에 열리는 크르크프나르(오일 레슬링) 대회가 가장 유명한데, 몸을 미끄럽게 만들어서 보는 즐거움을 배가시키기 위해 선수들이 온몸에 오일을 바르고 시합을 치른다. 그러고 보니 생각나는 것이 있다. 작년 레슬링 세계선수권 대회에 참가한 한국의 김현우 선수가 그레코로만형에서 금메달을 획득했었는데 당시 준결승에서 만난 상대가 터키 선수였던 거다ㅡ 뭐, 우연찮게 한국이 터키를 상대로 이긴 경기를 기억하고 있는 것이 희한할 법도 하건만 지난 월드컵에서는 터키가 이겼으니 (나 혼자만의 생각으로) 비긴 셈이라 치겠다……. 하여간에 책을 읽으며 과연 터키에 관해 얼마나 알 수 있을지 내심 수상쩍은 기분이 들기도 했었지만, 다른 여행 정보서와는 확연히 다른 내실을 갖추고 있어서 '대단히 대단하고 굉장히 굉장하게' 만족하는 바다. 이제 나도 터키어 한마디쯤은 할 수 있을 정도니까 말이다.




「T?rkiye, seni sevdim(튀르키예, 세니 세브딤; 터키, 당신이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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