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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_습작모음] [시] 기도 (0) 2023/12/25 AM 12:11

기도



하얀 눈 덮은 절에서

종소리가 울린다네

꽃향기 덮은 성당에서

목탁 소리 울리듯이


믿음은

우리에게 아집만을 주지 않았네

절로 고개 숙일 자성도 주었지

내려다보는 자는

서슴없이 이름을 팔려 들고

올려다보는 자는

고된 언덕길조차 따르려 하겠지


종소리면 어떠하고

목탁 소리면 어떠하고

또 다른 소리면 어떠할까

우린 모두 어리디 어린 양이자

유일무이한 존재일 텐데


특별하고도

특별하지 않은 날

하얀 눈 내리는 오늘만큼은

종소리만 가득하길

만인의 성당에서

종소리만 가득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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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_습작모음] [시] 실패에게 마침표를 주어야지 (0) 2023/12/18 PM 07:18

실패에게 마침표를 주어야지



미처 여물지 못한 탓

적절한 때를 놓친 탓

증발해버린 영감 탓

알맞은 단어를 찾지 못한 탓

이런 저런 탓만 하며

서랍 속에 숨겨버린 문장에게

마침표를 주어야지

실패라는 쓰라린 흔적에게도

다음이라는 숨가쁜 희망을 주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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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_습작모음] [시] XXX-XXXX-XXXX (0) 2023/12/13 PM 05:33

XXX-XXXX-XXXX



꽤 오랫동안 편지가 오질 않는다

쉼 없이 뛰어야 하는 서로에게는

사치스러운 매개체였나

나지막한 울림은

푸르던 어느 날에서

표류하고 있나 보다

애꿎은 우편함에 하소연하다

어쩔 수 없이 전화기를 든다

긴급 상황이야

응급 상황이야

홀로이기엔 밤이 너무 길다


이따금 후회가 쌓일 때면

알약 몇 개를 털어 넘긴다

좋은 거라니 좋은 것이겠지

믿을 수 있는 몇 사람 말 따라

어긋나지 않는 날을 지낸다

숙련된 모범 조교는 드물고

오류 교정 담당자만 바글거리니

한 걸음 디디기도 조심스러워진다

이래도 큰일이야

저래도 큰일이야

마냥 걷기엔 날이 너무 차다


사진을 잔뜩 찍었다

하늘이 너무 파래서

쏜살같이 보낼 수야 있겠지만

열화 된 하늘은 사뭇 다른 빛을 띄겠지

너무도 푸르던 날은

두 눈 가득 담아둬야겠다

다시 볼 날에

마주볼 수 있을 거리에서

바래지 않은 울림을 전해야지

밤은 여전히 길고

날은 여전히 차고

하늘은 여전히 푸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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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_습작모음] [시] 미련 (3) 2023/12/08 PM 05:41

미련



한참을 서성거렸다

서성거렸다

그래, 나는 이보다 더 적절한 표현은 찾지 못했다

더 이상 내 역할은 없었고

우연히라도 맡을 일도 없었다

막이 내리기 전에

불이 꺼지기도 전에

나는 어디로든 돌아가야 했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다

나는 그러지 못했다

나는 그저 서성거렸다

한참을 서성거렸다

막이 내릴 때까지

불이 꺼질 때까지

사유한 것도 아니었다

바라본 것도 아니었다

어울린 것도 아니었다

나는 그저 서성거렸다

주변을 서성거렸다

맴돌듯 그렇게 한참을

쓸쓸히 타오를 뿐이었다

막이 내리고도

불이 꺼지고도

나는 돌아가지 못했다

나는 돌아가지 않았다

나는 주변을 서성거렸다

이것이 마치 내 역할인 듯

한참을 서성거렸다

나는 알고 있다

이것은 내 역할이 아니다

이것은 누구의 역할도 아니다

막은 오래전에 내렸고

불빛이 사그라진지도 오래되었다

나는 어디로든 돌아가야 했다

온몸을 짓누르는 어둠을 품고

살갗을 파고드는 바람을 품고

어디로든 가야 했지만

한참을 서성거렸다

나는 그저 서성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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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일방적인 미련은 스토커라고 부를 수 있겠네요.

사러가자!!    친구신청

반복만 되면 시야?

치즈맛나쵸    친구신청

나도 몰라.
변명을 해보자면, 미련이란 두 글자를 길-게 길-게 늘린건데.
별로였다면 어쩔 수 없지.
[단편_습작모음] [시] 사건 3 (1) 2023/11/23 PM 05:04

사건 3



뜻밖의 소용돌이가

너를 집어삼킬 때

허둥지둥 버튼을 눌렀지만

기계는 멈추지 않았다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을 집어삼킨 듯

까드득 까드득

섬뜩한 비명을 내뿜으면서도

기계는 멈추지 않았다


사냥개들이 달려들어

잔해를 먹어치우고는

손해를 들먹거렸다

손이 끼인 것도

발을 헛디딘 것도

판이 쏟아진 것도

네 탓이란다

가슴에 박혀버린 자책도

뇌리에 박혀버린 공포도

현장에 남겨진 공기마저도

다 네 탓이란다

모두 다, 모두 다 네 탓이란다


어느새 멀끔해진 기계 앞

새파랗게 어린 신입이 서 있다

눈물이 마르지도 않은

그 자리에 서 있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성난 황소처럼 달려들어

비상 버튼을 마구 두드렸지만

기계는 계속 돌아갔다

멈추는 것 하나 없이

그렇게, 그렇게 돌아갈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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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르메스고양이    친구신청

뭐 아수라장이 그런거겠죠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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