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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_습작모음] [시] 아이스크림 (0) 2022/09/28 PM 05:54


아이스크림 _ 박창선



나는 무너지고 있다

아니, 나는 분명히 녹아내리고 있다

파사삭거리는 전조도 없이

흉물스럽게 녹아내리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하늘이 가라앉는다

바다에 닿을 듯 가라앉고 있다

꿈은 분명히 하늘에 걸었는데

천박한 숫자 몇 개를 덧붙여달라

당신과 흥정하고 있다


삶의 궤적 어딘가에

뚝 끊어져 버린 것이 분명했다

제멋대로 나풀거리는

손끝에 걸린 실오라기만이

한때를 증명하고 있을 뿐이었다


밤과 맞닿은 바다처럼

동경과 시기의 빛깔은 놀랍도록 닮았다

흐릿해진 수평선처럼

널 향한 박수는 찬사인지 조롱인지

쏟아지는 별들을 바라보며

그저 멍하니 마주치고 있다


나는 녹아내리고 있다

그래, 나는 다행히 녹아내리고 있다

판판히 부서져 그림자에 품을 날 섬 없이

그저 새벽녘 이슬이 되길 바랄 뿐이었다

그저 스며들 봄비가 되길 바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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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_습작모음] 너의 부재 (0) 2022/09/26 PM 06:25

너의 부재 _ 박창선


빼곡히 적은 깜지 대신
텅 빈 백지를 보냈다
너의 마음이 보고파서
자꾸만 미치도록 보고파져서

별은 타올라 재가 될 줄 알았다면
추억을 담지 말걸
속절없이 떨어지는
긴 꼬리만 쫓고 있다

깊은 바다 어딘가에 네가 있을까
별 진 자리 어딘가에 네가 있을까
쏟아지는 별 어디에도
너의 답장이 없다

흘리고 간 동전 주워
몇 번이고 되뇌던
너의 번호를 눌러보지만
한없이 늘여진 길고 긴 신호음 끝
한겨울 바닷바람보다 시린 목소리만이
너의 부재를 증명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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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_습작모음] 가장 완벽한 계획 (3) 2022/09/23 PM 06:55


가장 완벽한 계획 _ 박창선


사람이 자꾸만 떨어진다
마천루 꼭대기에서
사람이 자꾸만 떨어진다

계산기 연신 두드리던 당신은
안전고리 하나 매지 않은 네 탓이라
간단히 답을 내었지만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단 하루의 연장도 용납할 수 없다는
서슬 퍼런 눈빛 앞에
새파랗게 어린 인부가
감히 안된다는 말을 꺼낼 수 있었을까
언제 올지 모를 죽음보다
눈앞에 닥친 내일이 더 두려운 법이기에
일 초라도 바삐 움직이려 했을 텐데
그리도 쉽게 네 탓이라 답할 수 있을까

사람이 자꾸만 떨어진다
목숨 값을 저울질하는 동안
사람은 또다시 떨어진다

얼마나 더 많은 노잣돈이 모여야
탐욕스러운 개들의 짖음이 멎을까
개들이 세워둔 완벽한 계획에는
여전히 사람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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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멋진 글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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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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ㅜㅜ
[단편_습작모음] 시체들의 밤 (0) 2022/09/22 PM 06:17


시체들의 밤 _ 박창선



새벽이 섬뜩해진 것은

자판을 두드리던 광기가 걷히고야

심장소리마저 멎었음을 깨달아서겠지


아침 두려워진 것은

방 안 가득 메운 그림자를 걷어내고

비틀린 모습 마주  용기가 없어서겠지


걷기만 하는 몸뚱어리는

무엇을 보고

무엇을 듣고

무엇을 말하는지

탐하기만  뿐인 삶은

살아있다   있을까


굶주림에 추해질지언정

너의 삶을 물어뜯진 않으리

허기짐에 쓰러질지언정

너의 삶을 물어뜯진 않으리


시체들의 밤은 진다

시계 종소리에 아침이 피듯

기괴한 울음소리에게

지배당해 버린 거리에도

태양이 떠오른다


늘 그렇듯

시체들의 밤은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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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_습작모음] 변치 않을 것 (0) 2022/09/20 AM 11:56


변치 않을 것 _ 박창선



전하지 못한 말이 생각나

전화기를 들었다가 이내 놓아버렸다

너와  사이에 무슨 말을 더하겠어

홀로된다는 

슬프도록 당연한 것이기에

파랗고 파란 꿈을 꾸던 아이도

세월에 휩쓸려 어른이  것처럼

슬프지만 당연한 


변치 않을 것을 바란다니

나도  어리석지

밤하늘 가득 채울 이야기는

검정으로 검정을 칠하듯

덧없고 덧없다

서랍 가득 쌓인 소인(消印없는 편지처럼

부질없고 부질없다


결국 모든 것이 바스러져 바람이 된다면

결국 모든 것이 녹아내려 바다가 된다면

그때는 우리였으면 좋겠다

숱한 숱한 숱한 

남김없이 전할 테니

그때는 우리였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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