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제목을 짓는게 창작행위에 있어서 가장 어려운 부분임을 생각해보면, 제목에서부터 이렇게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명확히 드러내면서도 내포하고 있기는 쉽지 않다. 정경유착의 단순한 소재 뒤에 깔린 복잡한 인간 군상들과 이야기의 결말은 현대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관통하는 동시에, 나쁜 놈들이 더 잘 자는 세상을 작품 안에 작게나마라도 충실히 찔릴만큼이나 고스란히 담아놓았다.
뺏어간 사람들, 때린 사람들 즉, 나쁜 사람들이 더 잘 사는건 비단 어제 오늘일은 아니지만,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이 바라 본 전후의 일본도 별반 다르진 않았던 모양이다. 1960년에 발표된 이 스릴러 영화는 정경유착에 의한 비리와 그로 인한 피해자들의 복수를 줄거리로 하고 있는데, 아주 흥미진진한 느와르를 보여주는 동시에 발전의 이면에 가리워진 끊을 수 없는 사회의 구조적 병폐를 섬뜩하리만치 적나라하게 드러내어 보여주고 있다. 특히 감독은 모든것이 올바르게 되돌아가는 동화적 결말대신 비릿한 조소로 마무리함으로써 스크린 밖에서 활개치는 진짜 나쁜 놈들을 겨냥한 것임을 다시 한번 강조 하고 있다.
이처럼 시사성 짙은 작품을 만들면서 메시지에만 신경쓰다보면 자칫 간과하기 쉬운 것들이 있다. 그 중에서도 캐릭터에게 동기를 만들어주고 관객들이 감정을 이입할 수 있도록 설득을 구하는 과정이 다분히 강요하듯이 전개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는데,
다행히 이 작품에서 감독은 그의 다른 작품들처럼 영화를 읽는 과정에서 관객의 심리가 작용하는 범위를 잘 이해하고, 과히 침범하지 않으며 오히려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해 몰입감을 높히고 있다. 각본이 치밀해 동시에 여러사건들이 톱니바퀴처럼 얽혀 돌아가면서도, 장면마다 꼭 필요한것만 보여주고는 군더더기를 덧붙이지 않고 깔끔하게 이야기가 전환된다. 극단적인 캐릭터를 도입, 등장인물들의 인감됨을 밑바닥까지 파헤치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아버지의 자살을 살해로 규정하고 복수를 진행하나 원수의 딸을 사랑하는 주인공, 딸까지도 철저하게 이용하는 권력욕에 눈이 먼 개발공단 부총재, 친구의 복수를 위해 본인의 모든 것을 포기하는 주인공의 친구 등 극단적인 캐릭터들을 활용해서 메시지 전달 효과를 극대화시킨다. 고전적이면서 전형적인 캐릭터들의 적절한 조합, 활용 및 시너지의 극대화라고 할까.
거기에 굳이 말로 설명할 필요 없는 강렬한 감정표현등은 적극적인 핀 조명의 활용과 인물들의 눈앞에 바짝 드리워진 카메라 연출을 통해 표정과 몸짓만으로도 온전히 전달하고 있다.
과연 그 다운 솜씨다.
특정 장면의 경우엔 긴 설명 없이도 대번에 관객들의 이해와 동의를 이끌어내 주는 이 영화속 연출의 특징을 보여주기도 한다. 화면으로만 보면 두 사람이 어느 남자의 장례식에 와서 조문을 하고 있는 모습일 뿐인데, 이를 지켜보는 주인공들은 차 속에서 이 두 사람이 지난 밤, 영정사진 속의 남자를 죽음으로 내몰기 위해 작당을 하던 이야기가 녹음된 음성을 듣고 있다.
두 사람이 자못 침통한 표정으로 절을하고 돌아설 때에 녹음기에선 일이 잘 해결되었다며 서로 축하하며 부어라 마셔라 희희낙락 하는 지난 밤의 대화가 흘러나온다.
참 기발한 연출인데, 느슨해지지 않도록 아주 경제적으로 알뜰하게 보여주고 지나가면서도 감정은 오히려 실제 두사람의 지난 밤일을 눈앞에서 재연해내는것보다 훨씬 강렬하게 전달한다.
그 밖에도 일부 사건의 결말을 임의적으로 감추어서 궁금증을 유발한다던가, 사건을 먼저 터뜨리고 난다음 흘러가는 양상속에서 인물들의 반응을 보며 사건의 동기와 전말에 대해 짐작해보게끔 한다던지 하는 식으로 잠시라도 느슨해질 틈을 주지 않는다.
배신, 이중스파이, 정략결혼, 죄수의 딜레마, 이간질, 오해로 인한 의심.
고전 스릴러물의 집대성이라고 할만큼 예측할 수 없는 사건들이 연달아 일어나는데도 피로하거나 짜증스럽지 않고 즐겁기만 하다. 위에 말한대로 감독의 관객 심리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면 느껴보지 못했을 종류의 즐거움이다.
이 영화를 한 마디로 말하자면 시스템의 껍질 뒤에 숨겨진 탐욕이라는 괴물과 싸우는 한 영웅의 전기이다. 신화와 영웅담 속에서 작은 영웅이 몇배는 강한 적들을 쓰러뜨리는 것을 우리는 수없이 목격했지만, 대를 물려 악당의 술수를 더욱 치밀하게 갈고 닦아온 현대 사회의 괴물들은 그처럼 녹록치가 않다. 목숨이 하나밖에 남지 않은 오락실 게임마냥, 단 하나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 것. 영화 자체로는 아키라가 걸작들을 대량생산하던 시절에 만들어낸 상대적인 범작이기는 하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구로자와 아키라의 작품들 중 일본사회에 대해서 가장 노골적으로 비판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흥미로운 논의가 이끌어질 수 있기도 한 작품인 것 같다.
이와부치가 마지막 어디에선가 걸려온 전활 잔뜩 긴장한채 그야말로 받들어 모신다. 진짜 싸움은 사실 시작도 못해봤다는 씁쓸한 패배감이 올라온다. 최종 보스마저 전화 한통에 목숨을 바쳐서라도 윗쪽에 피해가가지 않도록 하겠다고 벌벌떠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제일 처음에 했던 '맞은 놈은 펴고 자도 때린 놈은 오그리고 잔다.'는 말이 일견 맞아 보이기는 하나, 정작 보면 아마도 '때린 놈이 오그리고 잔다 치더라도 맞은 놈 말고 시킨 놈이야 말로 펴고 자는 것'이 맞지 않을까 싶다.
2화입니다. 1화와는 조금 다를 것입니다. 1화는 완전히 소개편이니 그럴 수 밖에 없었던 면이 많아서..
STORY
먹이는 중
토하는 중
지켜보는 중
죽일까 말까 고민하는 중
더욱 거세게 몰아부치는 토우카양. 고생이 많습니다.
일단 상황정리를 위해서 점장님이 나타났습니다.
커피는 먹을만한 구울들
그리고 점장은 카네키에게 뭔가를 줍니다.
카네키가 구울의 장기를 이식받은 사실을 알고 있는 점장
그리고 카네키는 공복감에도 점장의 선물을 먹지 못하고 리제의 환상을 보고만 있습니다.
먹고 싶으나 먹을 수가 없어!
히데의 부름에 대학에 나온 카네키
과거나 지금이나 그는 친구입니다.
그리고 그를 걱정해주는 유일한 사람이기도 하죠.
날카로운 감을 가졌지만 어쨋거나 친구인 히데요시
그리고 히데요시는 선배에게 카네키를 소개하는데...
그 분이군요.
새삼 자신이 구울의 세상에 들어와버렸다는 사실을 자각하는 카네키
완벽한 대학생 니시오.
그리고 본색을 드러냅니다.
히데요시를 가축이라 부르면서 언제 잡아먹을거냐고 묻고는
죽이려듭니다.
그러자 카네키의 폭발적인 허리 움직임!!!(린카쿠입니다.)
리제의 유산입니다.
그리고 카쿠네를 꺼낸 댓가로 더욱더 공복감에 시달리는 카네키(카쿠네는 피를 소모합니다.)
그리고 폭주
어디선가 나타난 토우카가 적당히 처리해줍니다.
친절한 토우카양
히데요시도 무사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이도저도 아니라는 사실에 슬퍼하지만
점장은 그렇기에 그를
자신들의 본거지 얀테이크에 초대합니다.
한편, 어디선가
냄새를 맡고 있는 백구(비둘기)들...
2화
갑자기 나타난 또 다른 구울, 키리시마 토우카에 의해서 강제로 인육을 먹을 뻔 했지만 다시 토해낸다. 그녀에게서 자신들은 최악이냐는 물음을 듣게 되고 얀테이크의 점장이 나타나 사태를 무마시키고 카네키에게 고기를 조금 나누어 준다. 공복감에 시달리면서도 고기를 건드리지 못하는 카네키. 그는 안대를 하고 학교에 나가 다시 일상을 지내려 해보지만 히데요시가 소개한 선배 니시오를 만나면서 자신은 구울의 세계에 발을 들이고 말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초조한 감정으로 그와 함께 다니다가 결국에는 본색을 드러내는 니시오. 히데요시를 죽이려하는 그의 모습에 카네키는 자신의 몸 안에 있는 리제의 힘을 빌어 그를 처리한다. 하지만 폭주하기 시작한 카네키는 히데요시를 먹으려하고 그의 앞에 나타난 토우카가 그를 막는다. 다시 일어난 그는 얀테이크에 있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구울의 세계에 들어왔다는 것을 절감하며 좌절하려 하지만 점장은 그에게 또다른 희망을 선사하는데...
CHARACTER
-1화에서 소개만 했던 것과는 달리 인물의 심리상태를 조금 들추어내고 신규캐릭터를 정리하게 됩니다.
공복감에 시달리며
눈을 가리고
폭주도 하는 그에게
자신이 만든 리제의 환상이 곁에 있습니다.
카네키 켄.
그는 심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매우 불안정한 상태를 겪고 있습니다. 스스로를 인간이라고 생각하지만 동시에 자신의 몸은 구울에 가까워졌다는 사실을 자각합니다. 그 덕에 그는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인지 고민하는 시간을 가지게 됩니다. 그의 몸 안에는 리제의 장기가 들어왔다는 사실(작중에는 잘 안나오지만 카네키도 사실을 압니다.)에 의해서 리제의 환상을 보면서 스스로의 충동성을 자기자신과 분리시켜서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마음 깊은 곳으로는 그것이 환상일 뿐, 자신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죠. 그렇게 겨우 위태로운 외줄타기를 하고 있는 셈입니다. 그리고 결국에는 히데요시를 공격했다는 죄책감에 모든 것을 시인하게 됩니다만 점장의 말로 최소한의 희망을 얻게 됩니다.
일반인처럼 보이지만
구울!
그녀의 카구네는 우카쿠!(스피드형)
키리시마 토우카.
이 작품에서 빛나고 있는 히로인, 구울 소녀. 2화에서도 여전히 성격이 더러워보이게 나왔습니다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카네키가 말했던 최악이라는 말에 자신들이 최악이라냐며 화를 내는 모습에서도 자신이 구울이라는 사실에 고통스러워하고 있는 모습이 단편적으로 보이고 있습니다. 거기에 사실 커피숍 얀테이크는 온순한 구울들의 본거지다보니 토우카는 사춘기를 맞이해서(작중 카네키는 대학생이고 토우카는 고등학생입니다.) 더욱 까칠할 뿐이죠. 예를 들자면 쿨데레+츤데레에 가깝겠군요. 뭐 아직 그녀와 카네키가 가깝지 않은 관계로 2화까지의 내용으로 그녀의 성격을 완벽하게 정리할 수는 없을 듯 싶군요. 나중에 더 보기로 하죠.
어릴적에도
지금도 친구인 히데요시
카네키를 걱정해주는데에는 일등
그리고 소심한 카네키에게 먼저 다가서기까지
그런 친구가 죽어갑니다.
다행히도 살았지만
나가치카 히데요시.
카네키의 오래된 친구이자 유일하게 카네키가 자신의 모든 것을 터놓고 지내는 친구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카네키는 그에게서 멀어져야 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죠. 사교성이 좋고 누구에게나 친근한 성격이고 외부적으로 보이는 모습이 그의 진짜 성격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역시 숨기고 잇는 것이 있으니 그가 좋아하는 일은 탐정처럼 행동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만한 능력도 있죠. 카네키나 니시오나 히데요시를 헛점을 찌를 수 있는 인간으로 취급하는데, 사실 그보다 더욱 날카로운 감을 가진 사람입니다. 역시 이 뒤의 내용도 나중에.
그때 그 사람
카네키의 대학 선배입니다.
붕어빵을 맛있게 먹는 능력을 소유했습니다.(미각은 구울의 그것입니다.)
그의 카구네는 비카쿠(꼬리꼬리~ 꼬리꼬리~)
니시오 니시키.
카네키가 다니는 대학의 약학부 2학년인 선배입니다만 그 실체는 구울입니다. 하지만 작 중에서 나오다시피 인간과 정상적인 관계... 크흠.. 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보시다시피 성격이 참 뭐 같습니다. 하지만 그닥 강하진 않습니다. 그냥 성격이 뭐 같은거죠. 이 사람에 대한 이야기는 좀 더 나중에 가야 나오니 그냥 넘어가도록 합시다.
선선한 할아버지
그도 구울입니다.
빛난다!!
점장님.
네, 얀테이크의 점장닙이자. 구역 담당자입니다. 이래봬도 저렇게 나이를 먹고도 살아있는 구울이라는 것은 상당한 실력가라는 소리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점장님의 실력에 대한 이야기는 1쿨내에 나오지 않을테니 패스.
KEY POINT & HINT
커피.
구울들이 먹을 수 있는 유일한 인간들의 음식. 커피향을 진하게 느끼며 다른 음식에 비해서 맛있다고 느낀다. 그렇기 때문에 구울을 판별하는 것으로도 사용되기도 한다. 구울은 커피향을 좋아하기 때문에... 잘 보면 니시오의 방에도 커피가 잔뜩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카네키 촉수 소환!!
이것이 바로 나의 촉수다!!(린카쿠-비늘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꼬리꼬리 비카쿠입니다.
히로인 토우카는 날개의 우카쿠입니다.
카구네.
저번에도 말했지만 구울의 무기이다. 하지만 그 종류는 우카코, 린카쿠, 코카쿠, 비카쿠의 4가지로 나뉘며 각자 특징이 있습니다. 특별한 5번째도 있지만 말그대로 특별하니까 제외!
SUBSTANCE
이제 본격적인 내용으로 진입했습니다. 1권의 내용을 2화에서 전부 써먹었군요. 여러가지로 빼먹은 것들이 많습니다만 큰 문제는 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원작을 봣던 저도 지극히 당연하게 흘러가는 것처럼 느끼고 있으니까요. 간간히 좀 위화감이야 있지만 말입니다. 아마도 본격적으로 재미있는 부분을 1쿨 내에 어서 이끌어내기 위해서 여러가지로 필요없는 부분을 설정해서 잘라내는 방식을 취한 것 같습니다. 카네키가 커피는 먹을 수 있다.라고 생각하고는 여러가지 실험을 하는 장면이라든지가 생략되어있죠. 또한 그러면서도 장면을 합치는 센스도 보이고 있습니다. 원래는 카네키가 인간의 고기때문에 고민하는 장면이 3번 있지만 그것을 2번으로 줄이면서 3번의 장면은 2번을 합치는 술수를 부렸습니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큰 문제가 되지 않는 부분이자 동시에 꽤나 센스있는 방식이 아닌가 생각도 듭니다. 일단은 이런 것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해보지만 일단은 지켜보는게 우선순위겠지요. 한 8화쯤가면 전체적인 양상이 보일테니까요.
카네키는 정신적으로 큰 부담을 지고 있습니다. 자신은 인간이지만 구울처럼 행동한다는 것을 깨닫고 있으며 동시에 그것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스스로의 상태를 최악이라고 말하지만 그 말에 오히려 토우카가 상처를 받죠. 왜냐하면 그녀는 본디 구울이니까요. 구울로 태어난 것이 죄인가. 그렇지 아니한가.
저번화에서도 말했던 주제입니다만 구울 역시 생명체입니다.
그런 소리가 잇습니다. 인간과 비슷한 레벨의 영장류는 왜 없는가. 다른 종을 본다고 했을 때, 호랑이나 사자나 다 고양이과의 종입니다. 그런데 인간만 일과일종으로 이루어져있습니다. 그 이유로 손꼽히고 있는 것이 바로 오래전 인간은 자신과 비슷한 수준의 종을 죽였다. 그 결과 살아남은 것인 인간이라는 종이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실 인간은 모든 것을 통째로 조종하고 싶은 욕구를 가지고 있는 듯 보입니다. 그런 사실을 이 구울과 인간의 세계에 집어넣는다면 결론은 뻔하죠. 생존투쟁.
만약에 구울이 인간을 먹지 않고 살 수 있더라도 인간은 구울과 대치했을 것입니다. 그 결과는 크게 달라지지 않습니다. 그저 구울이 인간을 먹기 때문에 더 좋은 이유가 생겨났을 뿐입니다. 인간에게 있어 구울이란 자신들의 살 곳을 빼앗는 존재일 뿐이니까요. 애당초 공존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울과 인간이라는 거대한 벽 사이에 걸치게 된 자가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카네키입니다.(나중에 가면 카네키 뿐 아니라 꽤 많은 것을 알 수 있지만..)카네키에게 있어서 인간은 원래의 자신이고 구울은 지금의 자신이죠. 어쩔 수 없이 인정해야되는 이야기 속에서 카네키는 점장의 말을 통해서 뭔가를 느낍니다.
중간에 걸쳐있는 자이기 때문에 해결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는. 그것은 카네키를 위로하는 말이자 동시에 점장의 소원이기도 합니다. 인간을 먹을 수 밖에 없는 자신들을 인간은 이해할 수 없기에, 이해하려들지 않기에 그들은 이해받지 못합니다. 하지만 앞으로 카네키의 눈에 비춰지는 구울이란 과연 인간답지 않고 흉포하고 괴물같은 존재일까요? 과연 그것이 구울이라는 것의 정체일까요? 인간을 먹고 살아갈 수 밖에 없기에 인간에 비해서는 강력하고 흉포할지도 모르나 그것이 과연 그들의 전부일지는 모릅니다.
그리고 그것이 카네키를 통해서 우리가 봐야되는 것이죠.
딱히 작가에게 그런 의도는 없었을지도 모르지만 이것은 백인과 흑인의 인종대립이나 다름없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용납할 수 없기에 생겨나는 것이죠. 인종 뿐 아닙니다. 종교간의 대립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서로를 이해하기에는 너무나 멀기에 서로를 이해하려 들지 않기에 서로 싸울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사실은 결국 인간과 구울은 그닥 다르지 않습니다. 식습관을 제외하곤 말이죠.
그나저나 오프닝은 꽤 잘 삽입했다고 생각됩니다. 오프닝가사가 딱 카네키의 인생이네요. 앞으로 더욱 더 많은 고통을 안고 살아갈 그. 애도합시다, 먼저.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하도록 하고.
그럼 이번에는 이정도로 끝마치도록 할까요. 더 말했다가는 이것저것 술술 불고 있을 것 같아서 걱정이 되려 앞서는군요.
다음 주도 잘 봐주시길 바랍니다.
그럼 전 이만, 다음 주에 다시 뵙겠습니다.
p.s. 소아온2기를 격주제로 올려야되나 그냥 블로그에 간단하게 리뷰를 해야되나 생각중입니다. 그러나 격주제로 한다고 해도 꽤 길게 되고 저 또한 많은 시간을 투자할 수 있을지 아닐지 잘 모르겠는터라 간단하게 블로그에서 리뷰를 하고 있는 편이 낫지 않을까 생각중입니다.
전편에서 바람의 나라를 이야기를 했고, 그 게임의 성공하게 된 계기에 대해서 간략하게 설명을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국내 온라인 게임이 장수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가장 근본적인 차이는 Never Ending Story가 도입되었기 때문이며, 이 Never Ending Story를 요구한 사람은 게이머라는 점입니다.
온라인 게임의 원조라고 부를 수 있는 리니지 또한 특정 퀘스트까지 도달하게 되면 게임의 크레딧이 올라오며, 게임이 종료된 적이 있었고, 게이머의 요청으로 지속적으로 플레이를 할 수 있는 방향으로 수정된 사실을 알게 된다면, 과거에는 게임 개발을 게이머와 함께 했다는 걸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 부분은 알파 테스터의 이야기로 넘어가면 자세하게 이야기를 하고 오늘의 초점인 게이머의 장시간의 체류가 불러온 변화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야겠죠.
바로 커뮤니티입니다.
과거에 다르게 게임을 혼자 플레이를 해야만 했던 오프라인 게임과 다르게 협력의 구도나 게임 내에서 레벨, 서열, 길드, 결혼 등등의 시스템이 등장하게 되고 퀘스트를 통한 스토리텔링이 아닌 게이머 스스로가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는 방식이라는 점이죠.
실제로 오프라인 게임의 생명력은 게임이 클리어 되는 순간부터 확연하게 줄어들지만, 온라인 게임은 Never Ending Story라서 클리어 되는 순간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죠. 결국 반복적 행위를 위해서 만나게 되는 집단은 게임을 통해서 커뮤니티를 형성하게 되고, 그 커뮤니티가 형성이 된다면, 몇 년 동안 지속되는 무서운 힘이 되었죠.
바람의 나라는 이 부분을 잘 살린 게임입니다. 온라인 게임의 장점인 네트워크 게임의 한계를 돌파하고자 부단한 노력을 했기 때문이죠. 흔히 말하는 채팅 게임화 시킨 것이죠. 게이머를 특정한 공간이나 필드에 집중시킴으로 소소한 일상 이야기를 커뮤니티 장에서 풀어낼 수 있는 형태를 만들어 낸 것이죠.
바람의 나라가 나오고, 리니지나 미르의 전설 등등 상대적으로 그래픽이 월등한 게임들이 등장하였지만, 결과적으로 바람의 나라가 장수할 수 있었던 근본적인 이유는 탄탄한 커뮤니티성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17년 간 1800명이 넘는 누적가입자 수를 기록했으며, 1000회가 넘는 업데이트를 통해 유저들의 취향에 맞게 변화와 진화를 거듭해 왔다는 점이며, 현재는 기네스북에 등재되었다는 점에서 “역사”라고 표현할 수 있는 것이 바람의 나라입니다.
물론 바람의 나라가 등장함으로 국내 패키지 게임 시장은 몰락의 전조를 달렸으며, 온라인 게임의 시대가 오게 되었습니다. 결국 게임의 원동력은 게이머의 수와 커뮤니티성이며 그것이 존재하지 않는 게임은 쉽게 몰락하며, 생명력을 잃고 우리에게 멀어져 갔습니다. 그 이유를 찾아보면 바로 패키지 게임에서는 다른 게이머와의 커뮤니티가 없었기 때문이며, 함께 게임을 즐기고 싶은 온라인 게임으로 가게 되는 것이죠.
그리고 더 발전하면서 무엇이 되었을까요?
실제로 만나서 게임을 할 수 있는 PC방의 탄생 비화 또한 게이머의 이 마음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영화『다크 나이트』에서 배트맨이 조커를 잡기 위해 만든 모든 휴대폰을 도청하는 장치를 보여주자, 배트맨의 조력자 루시우스 폭스는 이렇게 말합니다. 영화는 악을 해결하기 위해 악을 사용하는 것에 대한 질문을 관객에게 던지면서, 결국 모든 휴대폰을 도청하는 장치는 파괴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개인의 모든 생활을 체제가 빠짐없이 감시하는 빅브라더는 영화만의 이야기는 아닙니다. 미국의 에드워드 스노든은 미국의 NSA(국가안보국)이 하고 있는 범죄 행위를 폭로했습니다. 그것은 NSA국장 키스 알렉산더가 내세운 핵심 목표, '전부 수집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오늘날 현대인들에게 휴대폰, 인터넷은 단순한 도구 이상의 가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휴대폰과 인터넷은 현대인들의 상호 커뮤니케이션의 핵심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때문에 독재자들은 큰 사건이 터지면 인터넷부터 감시하고, 통제합니다. 유무선 통신 시스템의 장악은 현대인들의 생각과 입을 장악하는 의미가 되었습니다. 휴대전화를 원격 조종해서 도청 장치로 전환하는 기술인 로빙벅스roving bugs 기술은 이미 몇 년 전부터 현실에서 사용되고 있습니다. 과거에도 정치적 정적의 대화를 도청하거나, 적국의 정보를 빼내기 위한 스파이 활동은 언제나 이루어져 왔습니다. 그러나 스노든의 폭로에서 중요한 점은 그런 감시 체제가 미국 정부를 제외한 모든 국가, 모든 시민으로 확대되었다는 점입니다.
NSA 내부 파일에 따르면 블라니 프로그램의 2010년 목표에는 브라질, 프랑스, 독일, 그리스, 이스라엘, 이탈리아, 일본, 멕시코, 대한민국, 베네수엘라를 비롯해 유럽연합과 유엔이 포함되었다. - p.155
NSA의 범죄 행위를 고발한 내부고발자 에드워드 스노든은 CIA와 NSA에서 일했고, 그가 하는 일은 모든 사람의 전자통신을 NSA의 수집, 저장, 분석 활동의 대상에 포함시킴으로서 전 세계인의 프라이버시를 제거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NSA가 채용하지 못해 안달이 난 수준의 사이버 보안 전문가였고, 하와이에 있는 연봉 2억 이상의 직장을 가진 장래유망한 29살 청년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부와 명예가 약속된 삶을 버리고 배신자라는 모욕을 들어가며 수십 년 동안 감옥에 갇힐 것을 각오하면서까지 내부고발자가 된 데에는 인터넷은 자유로워야 한다는 그의 신념이 있었습니다. 그의 지적 발전 경로중엔 독특하게도 비디오 게임이 포함되어 있는데, 스노든이 비디오 게임에서 배운 교훈은 단 한 사람이 거대한 불의에 맞설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스노든은 저널리스트이자 변호사인 글렌 그린월드와 다큐멘터리 영화감독인 로라 포이트러스에게 연락해 신문〈가디언〉을 통해 NSA의 범죄 활동을 폭로합니다. NSA가 미국 최대 통신 사업자인 버라이즌의 미국인 고객 수백만 명의 통화 기록을 수집했다는 기사를 시작으로 페이스북, 구글, 애플, 유튜브, 마이크로소프트, 스카이프 같은 기업들에서 정보를 수집하는 '프리즘 프로그램'의 존재를 폭로했고, 미국 전역의 이동 통신 인프라를 이용해 수십억 건의 전화통화와 이메일을 수집, 분석, 저장하는 '국경없는정보원 프로그램'의 정체도 폭로했습니다. 스노든의 자료는 미국 자국민들 뿐만 아니라 미국의 동맹이었던 민주 국가들도 무차별 대량 감시의 목표였음을 말해줍니다. 감시 목표는 테러 혐의자부터 동맹국의 민주적으로 선출된 지도자 뿐만 아니라 평범한 시민까지 망라되었습니다.
NSA는 기업이 미국산 네트워크 장비를 구입하면 배송 도중에 가로채 몰래 포장을 뜯어 감시 프로그램을 심어놓는 등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도 중국 네트워크 장비는 의심스럽다며 위선적인 태도를 보였습니다. 또한 해킹 행위를 통해 전세계의 컴퓨터 10만 대에 멀웨어를 감염시키기도 했습니다. NSA의 메타데이터 수집은 연간 1조 건에 달하는데, 이 자료들은 미국의 다른 부처에 공유되어 미국의 외교 스파이 활동과 경제 스파이 활동 등에 사용됩니다.
자기검열은 저자나 기자의 생각을 뿌리부터 뽑아버린다는 점에서 폭력적인 검열보다 더 나쁘다. 검열은 판결이든 법이든 유혈이든 흔적을 남기지만, 자기검열은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이는 처음부터 아예 없던 것으로 만들어버린다. 자기검열된 것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 된다. 자기검열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검열이다. -《검열에 관한 검은책》p.88
미셸 푸코는 국가의 근본적인 매커니즘 가운데 하나로 감시와 처벌을 지적합니다. 지속적인 감시는 권력의 유형이며, 개인의 순종을 강요할 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자신이 통제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도 못한 채 강요된 행동을 본능적으로 하게 된다고 말합니다. NSA의 전방위적인 정보 감시는 그러한 현대국가의 일면이 극대화된 것입니다. 스노든의 폭로로 인해 개인 프라이버시와 국가 감시체제에 대한 논의가 이어졌는데, 특정 극우파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정보를 감시당해도 그 대부분은 쓸모없는 정보라면서 NSA의 행동을 옹호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막상 그 사람들도 자신의 거의 모든 정보가 유출되는 것을 찬성하지는 못했습니다. 만약 모든 사람들이 자신만이 가지고 싶어하는 프라이버시들, 예를 들면 성적 취향 같은 것이 빅데이터로 유출된다면 설령 결과적으로 아무도 그 정보를 보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정보가 유출되는 것을 원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우리 헌법을 제정한 사람들은 행복 추구에 유리한 조건을 보장하기로 약속했다. 이들은 인간의 정신적인 본성인 감성과 지성의 중요성을 인식했다. 삶의 희로애락 가운데 일부분만을 물질적인 것에서 찾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믿음, 생각, 감정, 감각을 보호하려 했다. 정부에 대항해서 혼자 있을 권리를 부여했다. - p.226
9.11 이후 미국 정부의 무차별 대량 감시는 테러를 막겠다는 이유로 용인되었지만, 여러 연구들, 심지어는 미국 행정부조차도 NSA식의 정보 수집은 테러를 막는데 아무런 효과가 없을 뿐더러 오히려 방해가 되고 있음을 인정했습니다. NSA가 이룬 일은 미국 시민들의 자기검열 효과만 불러일으켜 실질적으로 미국사회를 더 폐쇄적이고 순종적이고 비자유적인 나라를 만들었을 뿐입니다. 스노든과 로라, 그린월드는 정부와 미디어로부터 배신자 취급을 받고 더 실질적인 처벌, 감옥행이나 최악의 경우 고문까지 감안하면서까지 내부 고발과 고발을 돕는 역할을 하기로 했습니다. 이는 점점 더 심각해지는 정부의 감시체제를 막기 위해 라 트리콜로레를 든 것입니다. 그들이 전해주는 메시지는 간단합니다. 모든 시민들의 핸드폰을 도청할 수 있었던 배트맨의 장치는 파괴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