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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서평] 다윈의 잃어버린 세계 - 마틴 브레이저 (0) 2014/05/25 PM 05:25
1859년, 런던에서 출간된 한 권의 책은 전세계를 뒤흔들었습니다. 찰스 다윈의《종의 기원》은 분명 지금까지 쓰인 가장 위대한 과학책들 중 하나였습니다. 모든 분야에서 과학적, 신학적, 철학적 반응이 일어났고, 언론인, 문필가, 상인, 사업가, 교육자, 그리고 평범한 사람들까지도 너도나도 의견을 피력했습니다. 주교, 시인, 개 사육자, 가정교사도 다윈의 책을 읽었습니다. 전 세계에서 신분과 직업과 관계없이 사람들은 자연선택을 통한 진화 개념을 논의하고, 그 쟁점을 자신의 문화적 맥락에 편입시켰습니다. 그것은 일반 사회에까지 뻗어나간 과학에 관한 최초의 진정한 대중논쟁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다윈의《종의 기원》은 신이 인간을 창조했다는 신학적인 현안에 도전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지만, 종교적인 차원에서 대규모의 反다윈 운동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다윈이 책을 내기 이전부터 기독교의 논리는 도전받고 있었고, 이미 성경의 내용은 하나의 비유에 불과하다고 대중들에게 인식되던 시기였습니다. 다윈의 책은 신학적인 부분보다는 정치적, 사회적 현안에 더 영향을 미쳤습니다. 다윈의 책에서 영감을 받은 사회다윈주의는 산업계의 부호들과 공장주들에게 환영을 받았고, 부자가 가난한 자를, 권력을 가진 자가 못 가진 자를 착취하는 것에 이론적 토대를 제공해줬습니다. 이러한 흐름은 더 나아가 제국주의와 우생학에 영향을 미쳤고 결과적으로 다윈의 책은 세계 역사에 의도하지 않았던 자국을 남겼습니다.

다윈이 남긴 기록을 보면 신중했던 그는 자신의 책이 미칠 영향력을 어느정도 예상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오랜 시간에 걸쳐 내용을 점검하고 수정했으며 출간 이후에도 계속적인 보완을 거쳤습니다. 특히 인간과 관련된 부분을 언급하는데 있어서 신중했는데,《인간과 동물의 감정 표현》의 출간은《종의 기원》출간 이후 꽤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이런 신중한 태도에도 불구하고 그의 책에서 가장 문제가 된 부분은 과학적인 영역에 있었습니다. 이 책은 우리가 오늘날 과학책이라고 하면 으레 떠올리는 이러저러한 일반적인 사항들에 들어맞지 않았습니다. 이 책의 문체는 놀라울 정도로 개인적이며, 그래프나 수식도 없고, 실험실에서 하얀 실험복을 입고 일하는 연구자도 언급되어 있지 않으며, 전문 용어도 전혀 나오지 않습니다.

다윈은 진화가 작용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결정적인 실험을 한 적이 없습니다. 그런 것들은 다윈 사후 한 세기가 더 지난 뒤에야 등장합니다. 다윈은 책을 통해 그저 생물들에서 변이가 논란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나타난다는 것을 보여줄 뿐이었습니다. 다윈은 어떤 경우엔 운이 없었고, 어떤 경우엔 기술이 없었습니다. 다윈은 동물의 돌연변이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는데, 이 문제는 운이 없었습니다. 다윈이 완두콩을 연구했거나 초파리를 연구했다면 더 나은 결과를 얻었을 것입니다. 마틴 브룩스의 지적처럼 다윈이 그런 행운을 얻을 수 있다면 턱수염을 밀고 린네 학회에서 알몸으로 춤이라도 추었을 것이며, 최신 부리 측정 장비까지 덤으로 제공하는 갈라파고스 제도행 무료 여행 티켓도 포기했을 것입니다.



틀림없이 다윈은 무덤 속에서 통곡했을 것이다. 그는 유전의 매커니즘을 제대로 알지 못해 평생 동안 자신의 진화론을 더 설득력 있게 주장할 수 없었다. 다윈이 제시한 진화론의 증거는 생물과 환경의 비교 연구와 화석기록, 동식물 사육에서 얻은 게 전부였다. 그 증거들은 특별한 것이었지만, 기술적이고 간접적인 것에 그쳤다. 그런데 초파리 염색체에 대한 연구는 실험적 증거라는 정통성을 더해 주었다. -《초파리》p.141

마틴 브레이저의《다윈의 잃어버린 세계》는 다윈이 활동했던 시대에는 절대로 알 수 없었던 문제를 다룹니다. 다윈이 활동하던 시절만 하더라도 캄브리아기에 해당하는 화석들이 폭발적으로 등장했던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문제는, 그 이전의 선캄브리아기의 화석들이 전혀 발견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화석기록만 보면 어느날 갑자기 폭발적으로 동물들이 등장한 것으로 보였던 것입니다. 때문에 화석기록은 다윈의 가설에 정면으로 도전했고, 창조론자들은 이 사실이 신이 동물들을 만들어낸 증거라고 주장했습니다. 캄브리아기 화석에 대해 화석 동물은 난데없이 등장하고, 지질 기록은 커다란 틈새로 가득하며, 골격이 전혀 없는 생물은 보존될 수 없다는 등 다윈은 다양한 가설을 통해 자신의 이론을 보완하고자 했습니다.

다윈의 숙제는 찰스 둘리틀 월컷이 해결했습니다. 월컷은 껍질이나 골격이 없는 연한 동물들의 화석을 발견함으로서 선캄브리아기가 동물 진화의 공백기가 아니라 과정의 일부였음을 입증했습니다. 이런 화석들은 현미경을 통해 관찰해야 했기 때문에 다윈에게는 불가능한 지식이었습니다. 마틴 브레이저 역시 전세계의 다양한 광물들, 특히 인산염 광산에서 얻은 광물들에서 등장하는 동물들을 보여줍니다. 다윈의 잃어버린 세계, 선캄브리아기의 역사는 다윈 후대의 과학자들에 의해 되찾아진 것입니다. 그러나 또 하나의 숙제는 남아 있습니다. 선캄브리아기도 끊임없이 진화의 역사가 계속되었다면, 왜 캄브리아기에 폭발적으로 골격을 갖춘 동물들이 등장했는가 하는 점입니다.

기존의 주류 가설은 캄브리아기가 시작되던 시기에 동물들의 눈이 발달했고, 눈으로 인해 빛에 적응했고, 갑옷을 두르고, 보호색을 갖추는 등의 변화가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마틴 브레이저는 동물들이 골격을 갖추기 시작된 원인으로 입을 지목하며 화석기록에 최초로 나타난 육식 동물을 지목합니다. 단순히 플랑크톤을 흡수하던 동물들이 입을 만들면서 생태계 피라미드가 형성되기 시작했고, 포식자와 피식자의 관계구도에서 골격이 발달할 필요가 생겼다는 것입니다. 다윈의 잃어버린 세계에 대한 호기심으로 과학자가 된 마틴 브레이저는 오랜 여정을 통해 다윈으로부터 시작된 선캄브리아기와 캄브리아기의 난제에 도전하면서 눈에 보이지 않는 미생물부터 지렁이, 대구, 토끼, 고래, 늑대, 코끼리, 그리고 사람에 이르기까지 공진화를 하는 공생관계에 있는 생태계의 아름다움을 독자들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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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서평] 조선의 탐식가들 - 김정호 (2) 2014/05/25 PM 05:04
이 세상이 흑백이었던 적은 단 한번도 없었지만, 한국전쟁 이전 서울의 모습을 컬러사진으로 보게 되면 과거의 사진이 아닌것 같은 묘한 느낌을 받곤 합니다. 1950년대의 한반도가 컬러인 것마저 어색한 마당에 조선시대가 컬러였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듭니다. 테크놀로지는 인간이 세상을 경험하고 지각하는 방식 자체를 변화시키고, 공진화합니다. 인간을 둘러싼 기술생태계 자체가 근본적으로 변화하면, 사회와 개인의 존재 양식 자체를 다르게 규정짓게 됩니다. 우리는 사진을 통해 과거를 생각하면, 흑백사진의 모습을 과거의 모습으로 인식합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조선시대의 음식문화 역시 자료의 부족 때문에 많은 오해를 받고 있습니다. 저자 김정호는《조선의 탐식가들》을 통해 독자들에게 진짜 조선시대의 음식문화라는 대동여지도를 보여줍니다.

불교를 기반으로 한 고려가 멸망하면서 육식 금지는 해제되었지만 성리학을 기반으로 하는 조선 역시 이념적으로 음식을 즐기는 것에 대해 엄격했습니다. 3첩, 5첩 밥상과 같은 규제를 통해 백성들의 밥상을 통제했고, 사대부들도 성리학의 예를 식사예절로 시작했습니다. 청백리처럼 간소한 식사를 하는 것은 이념적으로 장려된 부분이기도 하지만, 더 중요한 이유는 경제적 이유였습니다. 너도나도 풍족하게 먹을 수 있는 시대가 아니었고, 주로 먹던 고기가 소고기였기 때문에 농촌의 농사역량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문제였습니다. 정부에서 소고기 금령을 내리자 율곡이이 같은 사람은 평생 소고기를 먹지 않았습니다.

정부의 규제로 대중의 기호를 억제하고자 하는 시도는 역사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미국의 금주령처럼 조선시대의 소고기 금지령 또한 그런 정부의 시도 중 하나였습니다. 소고기 금령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역사를 조금만 알고 있다면 누구나 예상할 수 있습니다. 소고기 금령으로 인해 유통, 판매가 음성화되었고 가격이 상승했습니다. 사대부는 금령을 지킬 생각도 없었고 정부도 단속할 능력이 없었습니다. 사대부들 뿐만 아니라 양민들도 소고기를 즐기다 보니 농사를 짓는 주요 동력인 소가 줄어들었고, 이는 개인적인 차원이나 국가적인 차원에서 모두 심각한 문제였습니다. 하지만 조선사람들은 소고기를 먹는것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동국세시기》(1849)에 따르면, "서울 풍속에 음력 10월 초하룻날, 화로 안에 숯을 시뻘겋게 피워 석쇠를 올려놓고 소고기를 기름장, 달걀, 파, 마늘, 산초가루로 양념한 후 구우면서 둘러앉아 먹는 것을 '난로회'라고 한다."라고 하였다. - p.73

조선사람들은 소고기 뿐만 아니라 개고기, 양고기 등 다양한 고기를 즐겨먹었습니다. 개고기의 경우 당시에도 애완용 개와 식용 개의 구별을 해서 전문적으로 키워먹었을 정도였습니다. 기술을 가진 절의 스님들을 착취해서 다양한 두부요리를 해먹었고, 순챗국과 농어회, 대게 등 현대인도 별미라고 인정할만한 음식들을 먹었습니다. 양세욱이 모든 음식은 퓨전이라고 지적한 것처럼 조선시대에도 중국과 일본의 음식들이 들어오면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일정 부분 변화해서 조선화되기도 했습니다. 특히 일본요리는 큰 인기를 끌었는데, 일본음식은 설탕을 사용했기 때문에 그 단맛은 조선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았습니다.

역사학자 하비 레벤슈타인은 음식문화의 발달, 전파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상층민의 음식문화라고 지적합니다. 중세 유럽인들의 고혈을 짜서 만든 호화로운 교회들이 그 당시에는 민중들에게 고통을 안겨줬지만 현대에 문화재산으로 남은 것처럼, 조선의 음식문화 역시 사대부를 중심으로 꽃피웠고 계속 이어져 현대의 한국 음식문화의 기원이 됩니다. 저자는 조선시대의 문헌을 바탕으로 당시에도 기름진 음식문화와 현대의 음식 칼럼니스트와 같은 사람도, 대식가도 존재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결국 조선시대나 현대나 사람 사는것은 공통점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저자는 당시의 사대부들이 '탐식가'였다는 사실을 지적합니다. 조선시대에도 현대인들처럼 고기와 별미를 즐기는 사람들이 존재했지만, 그것은 일부 사대부의 특권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중세 기독교의 7대 죄악론에서 언급하듯 사대부들의 음식문화는 '탐식'이었습니다. 조선시대의 음식문화를 조명하면서 저자는 현대인의 음식문화를 말합니다. 음식이 많다못해 절반이 버려지는 현대사회에서 우리는 음식을 여전히 '탐식'으로 즐기고 있지는 않은지 저자는 묻습니다. 저자는 '탐식'에서 '미식'으로 나아갈 것을 주장합니다. 그것은 음식에 담긴 삶을 맛보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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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를 먹으려면 세종대왕님을 내야하죠 ㅎㅎ
[도서] 반란의 도시 - 데이비드 하비 (0) 2014/05/23 PM 05:46
도시는 현대인들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공간입니다. 도시에 사는 사람의 수가 농촌에 사는 사람보다 많아졌다는 통계가 말해주듯이 가장 주요한 생활공간이며, 생산공간이자, 소비공간입니다. 테크놀로지가 인간이 세상을 경험하고 지각하는 방식 자체를 변화시키고 공진화하는 것처럼, 도시라는 공간 또한 그곳에서 거주하는 사람들을 변화시킵니다. 그렇다면 어떤 도시를 원하는가 하는 문제는 우리가 어떤 사람이 되려고 하는가, 사회 혹은 자연과 어떤 관계를 맺고 싶어 하는가, 어떤 생활양식을 원하는가, 어떤 가치관을 품고 있는가라는 문제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삶을 관통하는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도시를 만드는 주체는 누구인가? 데이비드 하비는 자본이라고 말합니다.

도시는 어떤 무엇보다도 자본적이고, 자본주의적입니다. 자본주의의 토대엔 잉여가치의 영속적 추구가 있습니다. 기술의 발달로 끊임없이 생산되는 잉여생산물을 어떻게 흡수할 것인가는 자본주의의 생존에 있어서 중요한 문제입니다. 고밀도, 고합리적 도시 공간의 형성은 잉여생산물을 흡수하는 역할을 적극적으로 수행합니다. 자본주의는 상품의 세계와 나름대로의 논리, 세계차원의 전략, 화폐의 힘과 정치적인 국가의 권력을 포함하는 추상 공간을 생산함으로써 도시는 자본주의 구조의 핵이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본주의에 강점이 있다면 그것은 도시에 있으며, 단점이 있다면 그 역시 도시에 있습니다. 저자는 자본주의에 위기라는 지진이 온다면, 그 진원지는 도시라고 말합니다.



도시가 슬럼화되는 근본적인 원인은 도시가 가난하기 때문이 아니라 부유하기 때문이다. - 지타 베르마

노동운동, 혹은 마르크스주의 전통 안에서 도시 투쟁은 혁명적 잠재력과 혁명적 의의가 없는 것으로 무시되고 묵살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도시 사회운동은 당연히 생산과정에서 발생하는 노동의 착취와 소외에 뿌리를 둔 반자본주의 계급투쟁과는 분리된 것이며, 도시 투쟁은 생산 문제보다는 재생산문제, 또는 권리와 주장, 주권, 시민권 문제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해석할 뿐 계급과 관련 있는 것으로 해석하지 않았기 때문에, 급진적이고 혁명적인 변화의 불을 지피는 도시 기반 운동의 잠재력을 과소평가하고 오해하는 사례가 많았습니다. 이는 마르크스가 공장 노동자들이 혁명의 주체라고 말한 것처럼, 노동자의 상징이 공장에서 일하는, 프롤레타리아라고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비는 자본 이론에 있어서 생산의 주체, 변화의 주체는 전통적인 프롤레타리아에서 도시의 노동자들과 프리케리아트들로 변화했다고 말합니다.

하비는 변화의 원동력을 1871년 파리 코뮌으로 거슬러 올라가서 찾고자 합니다. 많은 나라의 망명객과 혁명가들에게 피난처를 제공한 덕분에 파리는 다양한 지적 조류를 폭넓게 수용하는 도시로 오랜 동안 명성이 자자했고, 파리의 지적 분위기는 흥분과 이상으로 들떠 있었습니다. 구체제, 군주들과 폭군들, 교회, 군대, 지성이 결여된 속물적 대중, 노예와 압제자들, 생명과 자유로운 인권의 적들에 대한 열정적인 저항의 분위기는 매우 다양한 요소들로 이루어진 이 떠들썩한 사회를 하나로 묶는 정서적 연대감을 만들어 냈고, 혁명적이고 인도주의적인 구호는 목숨까지 바칠 각오가 되어 있는 사람들에 의해 열렬하게 되풀이되었습니다. 프랑스 혁명과 파리코뮌으로 대변되는 혁명의 기반에 파리라는 도시에 대한 권리 요구가 있었던 것입니다.



사회주의, 다시 말해서 국가 사회주의는 나름대로의 공간을 생산했는가? 이 질문은 매우 중요하다. 새로운 공간을 생산하지 못하는 혁명은 애초의 의도를 끝까지 밀고가지 못한다. 요컨대 실패한다는 말이다. 그런 혁명은 삶은 바꾸지 못하며, 오직 이념의 상부구조, 제도, 정치 기구만을 바꾸어놓을 뿐이다. -《공간의 생산》p.108

저자가 말하는 것은 자본주의가 만들어내는 문제 해결을 위해선 그 핵심인 도시에 대한 권리, 도시권을 자본이 아니라 도시 노동자들, 더 나아가 도시에 사는 모든 사람이 가질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도시권은 도시를 우리의 마음속 바람에 가깝게 바꿔나가고 재창조할 권리이며 도시 공간의 형성 과정에 행사하는 권력, 우리가 살아가는 도시를 만들고 뜯어고치는 방법을 지배하는 권력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도시에서 발생하는 잉여의 생산과 이용의 민주적 관리를 시민들이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삶을 바꾸다, 사회를 바꾸다는 식의 말은 적합한 공간의 생산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무의미합니다. 저자 데이비드 하비는《반란의 도시》를 통해 도시에 대한 권리를 외치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도시권에 대한 요구는 우리 삶을 개선하기 위한 방법의 끝이 아니라 시작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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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서평 : 상실의 시대 (2) 2014/05/22 PM 11:13
상실의 시대




예전에 모 주간지에서 어떤 칼럼을 본적이 있다. 칼럼의 내용은 이런 것인데, <응답하라1994>라는 케이블방송 드라마가 높은 시청률과 인터넷 담론을 지배하는 이유이다. 칼럼 저자는 그 이유를 단순히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정취라는 개념으로 보지 않았다. 저자는 “‘현재의 결핍’을 자양분”삼아 과거로 회귀하고자 한다고 했다. 좋았던 그 시절, 혹은 어느 노래의 가사처럼 “아, 옛날이여”라고 부를 그런 과거를 말이다.

과거의 불우했던 어린 시절보다 잿빛으로 뒤덮일 미래를 걱정하는 시대가 찾아 온 듯하다. 응답하라 시리즈를 위시한 복고물은 그런 우리의 불안을 자극하는 게 아닐까.




그렇다면 여기서 질문 하나를 던질 수 있겠다. 우리는 과거에 무엇을 놓아두고 왔던가. 혹은 무엇을 놓쳤는가, 잃어버렸는가. 그렇게 스스로에게 되물었을 때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대답을 할 수 있을까. “그래 내가 바라고 있는 것, 그것은 무엇이다”라고 속 시원하게 말할 수 있는가 말이다.

사실 우리는 과거의 ‘유물’을 정확하게 지목하지 못 한다. 과거의 유물은 항상 그것이라는 비인칭 대명사로 남는다. 불분명한 그것, 우리를 불안하게 만들거나 향수에 젖게 만든다. 모호한 형상을 하고 선 말이다.




과거로 회귀해 잃어버린 무엇을 찾는 여정, 이것이 우리의 필생의 과정이라고 한다면, 하루키의 소설 <상실의 시대>가 가지고 있는 대중성은 그런 의미일 것이다. <상실의 시대는> 매년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여러 작품 중에서도 대표작으로 손꼽힌다.

하지만 이 소설의 작품성은 간혹 가볍게 취급당하고는 한다. 혹은 무라카미의 대부분의 작품이 섹슈얼리티를 가미한 대중소설이란 평가를 받기도 한다. 물론 잘못된 평가라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이 글의 주요흐름은 앞서 얘기했던 ‘잃어버린 유물’을 찾는, 우리의 필생의 과정과 소설 <상실의 시대>를 같은 궤로 놓고 볼 것이다. 글쓴이는 이 소설을 읽으며 우리가 도저히 피할 수 없는 보편성을 보았고 이것이 하루키 작품(상실의 시대)의 대중성을 설명해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상실의 시대라는 작품은 애도의 글이다. 애도란, ‘사람의 죽음을 슬퍼함’이라는 단순한 사전적 정의가 아니다. 애도의 함의는 ‘애도는 살아있는 자’들을 위한 것이다. 그렇다, 우리는 애도를 통해 즉 소급적 상징화를 통해 기억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리워하고 결여를 채워나가는 것이다. 하루키 작품은 바로 상실의 아픔, 죽음, 부재가 뒤섞인 젊은 날의 ‘나’에 대한 애도의 표현이다. 그리고 이 글로써 앞으로 더 나아갈 수 있는 역동성을 얻는다.







기억의 본질이 망각이라 한다면 웃기는 소리일까. 모든 것을 집어 삼키는 망각의 늪에서 소중한 것들을 하나하나 건져 올리는 행위로 인해 지금의 내가 만들어졌고 미래의 내가 만들어진다. 세월이 흘러 어른이 되고 변해간다면, 꿈 많은 청년에서 현실 감각 있는 중년의 남자로 변해간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겠는가. 그것은 지난날의 기억을 소급적으로 상징화(의미)하며 변화를 주는 것이다. 의미는 항상 소급적일 수밖에 없다. 우리가 변하는 시점은 과거를 소급적용하는 곳에서 시작된다. “내가 왜 그랬지?” 혹은 “이제 두 번 다시 그런 실수는 하지 않겠어”라는 다짐들 속에 우리는 변화한다. 그것은 항상 과거로부터 시작된다.




<상실의 시대>의 시작은 정확히 그런 것이다. 기억의‘소급적 상징화’라는 여정의 끝은 항상 미래의 내가 위치한다. 왜냐하면 다시 뒤돌아 봤을 때에는 항상 이미 지난 후이기 때문이다.




<기억의 소급적 적용>

소설의 첫 머리는 이렇다. “그때 서른일곱 살이던 나는 보잉 747기의 한 좌석에 앉아 있었다.” 함부르크 공황으로 향하는 비행기는 와타나베가 어디론가 향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물론, 함부르크 공황으로 보아 독일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 ‘여행’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




비행기창 밖으로 보이는 북해 하늘에 떠 있는 구름을 보며 와타나베는 생각한다.




내가 이제까지 살아오는 여러 길목에서 잃어버린 많은 것들을 생각했다. 잃어버린 시간, 죽었거나 또는 사라져 간 사람들, 이젠 돌이킬 수 없는 지난 추억들, 그리고 그 모든 상실의 아픔들.(14)




지난 과거를 생각하고 있으며 왠지 모를 ‘서글픈’ 감정은 누구나 겪어봤을 것이다. 돌이킬 수 없기에, 과거이기에 더욱 그렇다. 가끔 그런 감정을 못이길 때면 와타나베처럼 이런 생각이 들곤 한다.




“괜찮아요, 고마워요. 왠지 좀 서글퍼졌을 뿐인데, 이해하겠어요?”(14)




현기증이 일 듯한 그런 생각에 우리는 입술을 깨문다. 그리고 기억을 더듬으며 하나하나 곱씹어 본다. 이미 지난 기억이고 몇 번이고 곱씹어도 항상 다르게 다가온다. 이번에는 그 기억은 와타나베를‘서글프게’만들었을 뿐이다. 의미는 고정되지 않고 계속 미끄러진다. 와타나베 또한 그 미끄러짐을 통해 계속해서 회상한다.

기억을 더듬는 행위는 미끄러짐의 연속이다. 하지만 이것으로 하여금 우리는 뜻밖의 풍경을 찾게 된다. 그것에 대한(기억에 대한) 대한 벤야민의 묘사를 인상적이다.




“이때 우리들이 침잠하는 무의지적 기억의 심층에서는, 기억의 여러 계기들은 우리들에게 더 이상 개별적 이미지로서가 아니라, 마치 그물의 무게를 보고 고기가 얼마나 잡혔는가를 아는 어부처럼, 무정형적이고 이미지가 없는 상태로 또 확실히 알지 못하면서도 무게의 어림짐작으로 떠오르는 전체적 이미지로서 부각되는 것이다.”(발터벤야민의 문예이론, 117)




망각이라는 바다에 원하는 기억을 건지기 위해 그물을 던진다고 생각해보자. 하지만 그물에 걸리어 올라오는 것들은 내가 원했던 ‘그’ 기억은 물론이고 미처 의식하지 못한 다른 기억들까지 올라온다. 아니면 원하는 기억은 없이 다른 것들만 올라올 때도 있다. 이렇듯 기억이라는 것은 원하는 대상만을 찾을 수 있는 그런 성질의 것이 아니다. 무엇을 회상할 때에는 그것과 관련된 다른 것들도 포함되어 올라온다. 가끔은 원하는 기억을 찾을 수 없어 이것저것 생각해보다 미처 의식하지 못한 행복한 기억(혹은 불행한)이 그물에 걸려 올라오곤 한다. 와타나베 또한 마찬가지이다.




18년이라는 세월이 흘러버린 지금에 와서도 나는 그 초원의 풍경을 선명하게 떠올릴 수가 있었다. …… 10월의 바람에 억새풀 이삭이 한들거리고 있었으며, …… 그녀의 머리카락은 잔잔히 흔들고는 잡목 숲으로 빠져나갔다. (15)




지금의 나로선 그녀의 얼굴을 바로 떠올릴 수조차 없게 됐다. 내가 지금 머릿속에 떠올리고 있는 건 사람 그림자 하나 없는 배경뿐이다. (16)




그녀의 얼굴이 떠오르기 까지는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린다. (17)




나오코에 대한 추억을 떠올리면서 정작 그녀의 얼굴은 기억나질 않는다. 그녀와 함께 했었던, 그 당시에는 무신경하게 보았던 초원의 풍경만이 선명히 남아있다. 벤야민의 말처럼 망각의 바다에는 내가 원했던 것 이외에 수많은 것들도 함께 포함되는 법이다. 그리고 그게 기억의 본질일지 모른다.

그렇기에 침잠해 있는 기억을 꺼내어 올리는 일이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고통과 인내를 요하고 때론 강한 힘이 필요하다. 벤야민은 그것을 “사유하는 육체의 전 근육에 의한 활동”이라고 표현했다면, 우리는 앞서 말했던 것처럼 ‘잃어버린 무엇을 찾는 여정’이라 할 수 있겠다.




그래서 나는 바로 이 글을 쓰고 있다. 나는 무슨 일이든 글로 써보지 않고선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17)




와타나베 또한 그 여정을 향해 사유의 근육을 움직인다. 그것은 기록하는 일, 글로 남기는 것이다. <상실의 시대>는 기억을 찾는 사유의 운동, 혹은 ‘나’에게 바치는 애도의 행위이다.

상실의 시대의 첫 흐름을 이렇게 해석한다면 와타나베와 스튜어디스가 나눴던 대화는 인상적이다. 그녀는 마치 함부르크 공황에 내리는 와타나베의 끝없는 여정, 상실을 받아들이고 상징화하는 애도의 여정을 예견한 듯하다.




“즐거운 여행이 되시기를 빌겠어요. 안녕”

“안녕”하고 나도 인사했다. (14)







<죽음>

이 여정이 시작됨과 동시에 마주하는 것은 죽임이다. 이미 ‘1장 : 18년 전 아련한 추억 속의 나오코’마지막에 어렴풋이 <상실의 시대> 전체를 뒤덮는 ‘죽음’의 손끝이 보이기 시작한다.




물론 그녀는 알고 있었던 게 분명하다. 내 안에 그녀에 관한 기억이 언젠가는 희미해져 가리라는 것을. 그래서 그녀는 나를 향해 자기를 잊지 말아 달라고 간절히 호소하지 않았던가.

“나를 언제까지라도 잊지 말아줘. 내가 존재하고 있었다는 걸 기억해 줘”하고. (25)




그리고 1장이 지나고 숨 돌릴 틈 없이 죽음은 자신의 형상을 드러낸다. 실질적으로 이 책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2장 : 죽음과 마주했던 열입곱 살의 봄남’에는 와타나베와 나오코 사이의 결정적인 사건이 있다. 그것은 키즈키의 죽음이다.

와타나베와 나오코 양자에게 소중했던 인물이었던 키즈키의 자살은 소설 마지막까지 따라붙는다. 언제나 싱그러운 열일곱의 나이로서의 그로 말이다. 죽은 자는 변하지 않고 삶을 살아가는 자만이 변하는 법이다. 그리고 그 변화의 중심에 그려지고 있는 게 이 소설이다.

나오코는 키즈키의 죽음으로 큰 정신적 충격을 받았고 그것을 계기로 깊은 수렁에 빠진다. 아마 그곳은 딛을 곳이 없는 낭떠러지와 같은 곳일 게다. 와타나베 또한 키즈키의 모든 자극에 무감각적으로 관조하는 관찰자로 살아간다. 하루키 소설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주인공의 특징이다. 흔히 ‘모던보이’라고 불리는 인물들은 특별한 기호성을 가지지 않은 채 살아간다.




키즈키가 죽고 나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기까지 한 10개월 동안, 나는 나를 둘러싸고 있는 세계 속에서 나 자신의 위치를 분명하게 정할 수 없었다. (48)




나는 특별히 공부를 하지 않아도 들어갈 듯싶은 도쿄의 사립대학을 택해 시험을 보았고 특별히 어떤 기쁨도 없이 입학했다. (같은 쪽)




모든 사물을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말 것, 모든 사물과 나 자신 사이에 적당한 거리를 둘 것 그것뿐이었다. (같은 쪽)




키즈키의 죽음으로 와타나베는 또한 어떠한 죽음을 경험하게 된다. 그것은 정신분석에서 흔히 상징계적 죽음이라 부르는 것이다.




열일곱 살의 5월 어느 날 밤에 키즈키를 잡아간 죽음은, 그때 동시에 나를 사로잡았던 것이다. (같은 쪽)




흔히 죽음은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첫 번째 죽음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실제죽음과 같은 것이다. 주목해야 할 것은 두 번째 죽음이다.




‘두번째 죽음’, 즉 자연의 순환 운동의 근본적 무화는 오직 이 순환 운동이 이미 상징적 그물망에 사로잡혀 그 속에 새겨지고 상징화되어/역사화 되어 있다는 한에서만 생각해볼 수 있다. 절대적 죽음 곧 ‘세계의 파괴’는 항상 상징적 세계의 파괴이다. (이데올로기의 숭고한 대상, 220)




와타나베의 의미의 그물망을 찢어놓은, 그에게 상징성을 부여하던 대타자로 불리는 세계의 붕괴는 그를 ‘모던보이’로 만들어 놓았다. 특히 이 절대적 죽음, 세계의 파괴는 나오코에게서 극단적으로 나타난다. 나오코에게 두 번의 상실이 찾아온다. 키즈키의 죽음이 두 번의 상실 중 하나라는 것은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하지만 키즈키의 죽음이 도래하기 전, 나오코는 이미 소중한 한 사람을 이미 잃은 뒤였다.




“(……)그 언니가 왜 자살했는지 누구도 그 까닭을 알 수가 없었지. 키즈키의 경우도 마찬가지야. 나이도 열일곱밖에 안 되었고, 그 직전까지도 자살할 것 같은 눈치는 전혀 없었고, 유서도 없었고…… 똑같지?”(228)




언니의 자살과 키즈키의 자살이 서로 연결되면서 나오코는 스스로를 세상과 격리시키는 극단적인 방법을 취한다.




“‘난 다만 이제 누구도 내 안으로 들어오길 원치 않을 뿐이에요. 이젠 누구에 의해서도 어지럽혀지기 싫을 뿐이에요.’”(428)




누군가가 자신의 곁을 떠나간다는 것, 그것은 때론 견딜 수 없는 고통과도 같다. 그리고 떠나간 이가 나의 세상에 있어 의미를 부여하는 대타자 역할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면 그의 부재의 빈자리는 더더욱 클 것이다.

죽음이란 요소는 <상실의 시대> 전체를 뒤덮는다. 나오코와 와타나베는 물론, 그들 주위에 관계 맺고 있는 주변인물 또한 그렇다. 미도리의 어머니는 돌아가셨고, 아버지는 소설이 전개에 맞춰 죽음을 맞이한다. 나가사와 선배의 애인이었던 하츠미 또한 자살을 선택한다. 하츠미의 자살은 와타나베와 나가사와의 관계가 단절되는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그리고 레이코는 조금 다른 성격의 죽음과 결부되어 있다. 정신요양원에서 나오코의 룸메이트였던 그녀는 앞서 말한 두 번째 죽음으로 인해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일련의 사건들로 자신의 꿈과 가정 모두 잃은 그로서 세상은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이렇듯 소설 <상실의 시대>는 죽음의 시대라고 불릴 수 있을 정도로 죽음이 도처에 깔려있다. 하지만 소설의 핵심을 죽음이라고 표현한다면 의미의 범위가 좁아 질 수 있다. 소설의 제목이 <상실의 시대>인 것은 매우 적확해 보이는데, 그 이유는 이 상실(喪失)이 가진 넓은 의미 폭 때문이다.




喪失상실 (喪 잃을 상, 失 잃을 실, 놓을 일)

종래(從來) 가지고 있던 기억(記憶), 자신(自身), 권리(權利), 신분(身分), 능력(能力), 자격(資格) 등(等)을 잃어버림 (네이버 사전)




우리는 삶을 살아감에 있어서 많은 것들을 상실한다. 그것은 어느 것 하나에 국한되어 있는 게 아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아니 내가 의식하고 있는 모든 것들은 상실이라는 자기부정성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죽음은 삶의 이면이 아닌 삶 자체인 것이다. 변증법적 사고처럼 ‘그것은 이미 그것인 것이다’




“삶의 한복판에서 모든 것이 죽음을 중심으로 회전하고 있었던 것이다”(50)라는 와타나베의 말은 소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즉, 자신이 관계 맺고 있는 누군가(나오코, 키즈키, 레이코, 나가사와, 하츠미)는 반드시 상실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상실을 중심으로 그들의 관계는 구축되는 것이다.

상징계의 견고한 총체성은 그 결여(구멍)을 중심으로 세워진다. 그리고 그 구멍은 필연적으로 총체성을 무너뜨린다. 결여를 내포하지 않은 주체란 없고 그런 대타자 또한 없다. 그렇기에 우리는 상실을 통해서 모든 것이 구축되는 것이다.










<어른이 된다는 것>

그리고 난 지금보다 더 강해질 거야. 그리고 성숙해질 거야. 어른이 되는 거야. 그러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지.

난 지금까지 그럴 수만 있다면 열일곱, 열여덟인 채로 있고 싶었어. 하지만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나는 십대 소년이 아니니까. 난 책임을 느낀다. 아아, 기즈키, 난 너와 함께 있었을 때의 내가 아냐. 난 이미 스무 살이 된 거라구. 그래서 난 계속 살아가기 위한 대가를 치러야만 해. (379)







와타나베는 어른이 된다는 것은 책임을 느끼는 것이라 말한다. 그리고 책임을 느끼는 건 대가를 치르는 것이다. 와타나베가 말한 대가는 무엇일까. 우리는 무엇을 견디고 받아들여야 어른이 되고 성장할 수 있는 것일까. 그 해답은 소설 말미, 와타나베와 레이코의 대화에서 찾아볼 수 있다.




“와타나베가 만일 나오코의 죽음에 대해서 뭔가 아픔 같은 걸 느끼고 있다면, 와타나베는 그 아픔을 앞으로 인생을 꾸려 가는 동안 계속 간직하면 되는 거야. 그래서 만일 배울 게 있다면 거기에서 뭔가를 배우면 돼. (……) 그러니 괴롭겠지만 좀 강해져야 해. 좀더 성장해서 어른이 돼야 하는 거야. 난 와타나베에게 그 말을 하려고 그곳을 나와 일부러 여기까지 온 거야. 그 먼 길을 그 관 같은 전철을 타고서.”(433)




레이코는 와타나베에게 강해져야 한다고, 그리고 어른이 돼야 한다고 말한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결국 상실을 받아들이고 품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상실을 통해 무언가를 배우고 깨닫는다. 마치 그녀를 잃고 나서야 소중함을 깨닫는 단순한 연애소설의 이치와 같은 것이다.

와타나베에게 진심어린 말을 전하는 레이코도 불완전한 사람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레이코 또한 상징적 죽음을 경험한 이다. 와타나베에게 어떠한 충고를 한다고 해서 그녀가 와타나베보다 완벽한 사람은 아니다. 그리고 레이코 또한 이 계기로 인해 아미료(요양원)의 세계를 깰 수 있었던 것이다. 결국 이 둘을 미래로 내모는 것은 나오코의 죽음(상실)이다.

와타나베와 레이코는 나오코의 죽음을 받아들이면서 앞으로 나갈 수 있었다. 그것은 이 글 서문에서 밝힌 애도의 행위와 유사하다. 애도는 산 사람들을 위한 행위, 죽은 자를 상징화 시키는 행위이다. 소설에서 애도가 엿보이는 장면을 보자.




“쓸쓸한 장례식이었어요” 하고 나는 말했다. “너무 조용하고, 사람도 적었고, 그 집 사람들은 나오코가 죽은 걸 내가 어떻게 알았는지에만 신경 쓰고 있고. 아무도 주위 사람들에게 자살이란 건 알리고 싶지 않았던가 봐요. 사실 장례식엔 가지 말았어야 했던 것 같아요. (429)




나오코는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그런 나오코의 자살은 어른들의 세계에서는 불순한 행동, 세계에서는 인정될 수 없는 행위였다. 나오코의 죽음 앞에서 그녀의 부모는 딸아이가 자살을 했다는 걸 애써 감추려고 했고, 조용히 아무도 모르게 지나갔으면 했다. 소설배경이 60~70년대 일본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니, 이런 권위적이고 폐쇄적인 통념은 그 시대의 일반적인 사고라고 볼 수 있다. 나오코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않고, 정확히 표현하면 자살을 상징화 하지 않고 은폐하기 급급한 상황에서 그녀라는 존재의 상실은 온전히 기록될 수가 없었다.

와타나베와 레이코에겐 나오코의 죽음에 대한 애도가 필요했다. 그녀를 그 자체로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는 애도의 작업이 말이다.




“지금부터 둘이서 나오코의 장례식을 치르는 거야”하고 레이코씨가 말했다. “쓸쓸하지 않은 장례식을”(434)




“레이코 씨는 이어서 비틀스의 <노르웨이의 숲>을 연주하고, <예스터데이>를 치고, 다음엔 <미셸>과 <섬싱>을 치고, <히어 컴즈 더 선>과 <풀 온 더 힐>을 연주하였다.(434)




그리고 그녀는 기타용으로 편곡된 라벨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와 드뷔시의 <월광>을 정성스럽고 아름답게 연주했다.

“이 두 곡은 나오코가 죽은 뒤에 마스터한 거야”하고 레이코씨는 말했다. “나오코의 음악적 취향은 마지막까지 센티멘털리즘이란 지편을 떠나지 못했어.”(435)




그녀는 가끔 눈이 감기도 하고 가볍게 고개를 흔들기도 했으며, 멜로디에 맞춰 콧노래를 흥얼거리기도 했다.(436)




“좋아, 와타나베. 이젠 쓸쓸한 장례식 같은 건 깨끗이 잊어버려”하고 그녀는 내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 장례식만을 기억해, 멋있었지?(436)




마치 아미료에서 그들이 기타 치며 즐겼던, 행복했던 그때로 돌아간 듯하다. 다만 나오코는 죽음으로 영원히 그들의 기억 속에서만 자리 잡고 있다.

이들의 ‘쓸쓸하지 않은’ 장례식은 온전한 그녀(나오코)의 선택을 존중해주는 제스처로 보인다. 하지만 엄밀히 보면 나오코를 위한 제스처가 아닌, 그들을 위한 것이다. 자살이라는 그녀의 극단적인 선택에서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그녀, 그 자체를 받아들이는 행위이다. 이들에게 나오코에 대한 기억은 은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키즈키의 죽음이 나오코를 따라잡았던 것처럼, 나오코의 죽음도 그들을 항상 쫓아다닐 것이다. 만약 나오코가 키즈키의 죽음을 상징화하지 못했던 것처럼, 그들도 계속해서 나오코의 자살을 은폐하려고 한다면, 영원히 그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상실을 수긍할 수 있는 단계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끊임없이 성숙해지는 것이다. 어느 한 시점을 정점으로 성장이 멈추는 것이 아니다. 상실이 계속되는 한, 상실을 극복하고 삶을 지향할 수 있는 한에서 우리는 성장할 수밖에 없다. 성장 그것은 필연적으로 상실이 바탕 되어야 하는 것이다.

상실의 시대에서 와타나베의 분열적인 모습은 어른이 되어가는 그 혼란스러운 과정에 연유한다.




“나는 대체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것인가?”(324)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조차 확실치 않았다.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확신조차 없었다. 그저 어디론가 가지 않을 수가 없어서 한 걸음 한 걸음 움직이고 있을 뿐이다.(362)




난 대체 앞으로 어떻게 되어 갈 것인가, 나를 둘러싼 세상은 어떻게 달라질 것인가 골똘히 생각해 보았다.(404)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나는 수화기를 든 채 고개를 들고, 공중전화 부스 주변을 둘러보았다.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그러나 그곳이 어딘지 나로서는 알 수가 없었다.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내 눈에 비치는 것은 어디랄 것도 없이 걸음을 재촉하는 무수한 사람들의 모습뿐이다.(441)




우리가 늘 묻는 질문 아닌가. 난 무엇을 하고 있는 걸까.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게 옳은 걸까. 내가 선택한 이것이 최선인가. 이 끝도 없는 자기-분열적 질문은 우리에게 내장된 프로그램처럼 계속해서 반복한다. 이 질문이 끝날 시점이란 게 있을까. 사실이 질문은 삶과 연관되어 있다.

인과관계, 원인-결과라는 것들이 소급적으로 적용되었을 때에만, 그 말은 즉 결과가 도출 되었을 때만 가능하다는 얘기이다. 결국 그것들은 소급적 귀결인 것이다.




이상의 결론까지 도출했으면 <상실의 시대>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 와타나베의 분열은 당연한 것이다. 우리가 현재 걷고 있는 이 길에서 의미를 찾을 수 없다. 의미를 부여하고 정오를 판단하는 것은 미래의 ‘나’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곳이 어디인지 알 수 없다. 내가 하는 일이 옳은지 물어봐도 돌아오는 것은 메아리뿐이다. 레이코와 와타나베가 애도를 통해 나오코의 죽음을 받아들였다고 해서 이 질문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에게는 이제 나오코가 아닌 새로운 사람이 곁에 있고 계속해서 이어가야할 삶이 기다리고 있다. 그곳은 새로운 선택의 연속이다. 이 글에서는 분석하지 않았지만 미도리라는 존재의 의미, 세계와 세계를 잇는 커넥터와 같은 역할이다. 여기서 세계와 세계는 아미료가 대표하는 세계(상징계에서 배제된 세계)와 현실사회(제도적, 관습적 통념이 얽혀있는 흔히 우리가 말하는 규범적 사회)를 뜻한다. 와타나베는 키즈키의 죽음과 나오코가 있는 아미료를 갔다 온 뒤부터 혼란을 겪곤 한다. 모든 것이 정지한 듯한 세계와 모든 것이 과잉된 스펙터클 세계. 이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게 혹은 현실사회(상징계)와 연결해주는 인물이 미도리인 것이다.




그녀와 둘이서 윈도 쇼핑을 하며 걷고 있으려니까, 조금 전까지만 해도 부자연스럽던 거리의 광경이 제법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미도리를 만난 덕분에 이 세계에 약간 정이 든 것 같은 기분이 드는데”하고 나는 말했다.(271)








‘우리는 과거에 무엇을 놓아두고 왔던가. 혹은 무엇을 놓쳤는가, 잃어버렸는가.’




우리는 다시금 이 질문으로 돌아간다. 이 질문이야 말로 ‘상실의 시대’를 구성하는 그리고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동인이기 때문이다.

어느 누구 할 것 없이 모두들 기억을 가지고 있으며, 그 속에는 미처 챙기지 못한 ‘대상a’가 있을 것이다. 그것은 죽은 자의 기억으로 변하지 않을 무엇이다. 변하는 것은 산 자들의 몫이라는 건 이미 여러 번 강조했다.

우리가 때론 슬픔을 느끼기도, 행복을 느끼게 하는 이 기억의 숭고함은 바로 산 자와 죽은 자 사이에 있기 때문이다. 분명 과거에 있었던 어떤 것들은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의미는 계속해서 변화한다. 의미를 부여하는 것 상징화하는 것은 오로지 삶을 영위하는 이들의 몫이기 때문이다.

<상실의 시대>는 바로 그 과정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숭고한 기억’은 우리로 하여금 역동하게 만드는 필연적인 부분이다.




그렇다면 나오코가 와타나베에게 했던 처음이자 마지막 부탁. 그 대목을 다시금 생각해 봐야한다.




“나를 언제까지라도 잊지 말아줘. 내가 존재하고 있었다는 걸 기억해 줘”



기억에 대한 약속. 그것은 바로 존재에 대한 약속이기도 하다. 아마 나오코는 자신이 죽을 것이라는 걸 어느 정도 예상한 듯하다. 그렇기에 자신의 기억에 대한 당부, 존재를 각인시키는 말을 한 것이다.

우리 또한 삶에서 그렇다.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길을 걸어가는 순간에도 누구인지 모를 타자와 조우한다. 그리고 우리는 존재조차 기억하지 못할 타자들 사이에서 삶을 영위한다. 그렇게 많은 만남 속에서 내 곁에 있는 소중한 사람에게 반드시 전해야 하는 말이 있다면 바로, 나오코의 저 말이 아닐까.




훗날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내가 존재한다는 것. 나의 존재로 하여금 당신이 살아갈 수 있다는 것. 그것이 바로 세상에서 가장 큰 기쁨이자 사랑일 것이다.

하루키의 소설을 로맨스라고 말하는 것은 틀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은 가장 순수한 형태의 로맨스, 기억에 대한 로맨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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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잉    친구신청

상실의 시대는 나오코랑 정신병원 밖에서 한거랑
책방집 딸래미랑 한거 밖에 기억안나내요 ㅋ

곰방WUG    친구신청

상실의 시대는 정말..제목을 바꾼게 우리나라 흥행에 큰 역할을 한 것 같아요. 잘바꾸기도 했고
[도서] 인체 재활용 - 매리 로치 (0) 2014/05/21 PM 08:19

[서지 정보]

유명 저널리스트인 메리 로치가 시체와 인체, 영혼에 대한 중세의 수술이었던 고문서부터 최근 저잣거리에 나도는 소문인 인육 만두까지 연구용으로 기증된 시체가 어떻게 활용되고 있는지 취재한 결과물이다. 끔찍하고 혐오스러울 수 있는 이야기지만 저자만의 독특한 필체가 만나 밝고 유쾌한 글로 탄생됐다.

시체는 해부학 실습뿐 아니라 수술 연습용, 과학 실험용으로 사용되기도 하고, 뇌사자의 시체는 다른 사람들을 살리는 데 이용되기도 한다. 또한 표본이 되어 교육용 자료가 되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퇴비가 되어 다시 땅으로 돌아가기도 한다. 이 책을 덮을 때쯤 독자는 죽음과 사체에 대한 자신의 생각이 변화되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죽음 후에 인체를 기증하는 것이 저자가 서문에서 밝힌 대로 ‘세상을 뜨면서 공원 벤치를 하나 기증하는 것과 다를 바 없이’ 느껴질 것이다.

학창 시절 대학병원에 부속된 장례식장에서 시신을 염(殮)하는 보조 인원을 구한다는 소문이 있었다. 확인되지 않은 풍문에 의하면, 그곳에 들어가면 일단 혼란스러운 정신을 가라앉히기 위해 술을 내어준다고 했고 집에 돌아와서도 며칠 혹은 몇 주간 몸에서 죽음의 냄새가 가시질 않는다고 했다. 내게 이야기를 들려준 친구는 그러면서도 무더운 여름의 찝찝함을 날려 보낼 수 있으며 적지 않은 '쏠쏠한' 돈까지 벌 수 있다고 덧붙였다ㅡ 나는 망자의 몸을 두고 얘기하면서 '쏠쏠하다'는 형용사를 붙이는 것에 약간 거리낌을 느꼈고 동시에 다른 종류의 새로운 찝찝함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지금과 매한가지로 순전히 호기심 충만한 꼬마둥이였던 나는 그것이 그저 뜬소문인지 사실인지를 확인하기 위해 전화를 들었다. 물론 시기적으로 여름방학이어서 집에 처박혀있는 것 말고는 할 일이 없었기도 했다. 하지만 전화를 걸어본 곳마다 쌀쌀맞은 대답밖에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런 사람은 구하지 않습니다.」


죽은 상태라는 건 크루즈 여행을 하고 있는 것과 그다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누워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뇌는 휴업 상태다.

살은 물러진다.

새로운 사건이 별로 일어나지도 않고 할 일도 없다.

― 머리말

커대버(cadaver). 의학 용어로 의학 교육과 연구에 쓰이는 시체를 의미하는 단어다. 『인체재활용』을 읽게 되면 '인체'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는 자리에 '시체' 혹은 '시신'을 넣었어야 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머리가 잘려 실습을 기다리는 시체, 부패된 시체, 비행기 사고로 추락한 시체, 총에 맞은 시체(총에 맞아 죽었거나 반대로 죽은 다음 탄도학 연구를 위해 실험되는 시체), 뇌사 상태인 시체(이때는 시체라 표현하는 것이 다소 저어될 수 있으나), 식인 행위나 의료 목적으로 쓰이는 시체, 화장(火葬)되는 시체ㅡ 이 책에는 온통 시체밖에는 없다. 당연하고 확실히 벌어질 일이지만 나 역시 죽는 순간부터 시체라 불리기 시작할 것이며, 몇 시간 이내에 신장이나 심장, 각막 등은 내 몸을 떠나 다른 사람에 들러붙어 새로운 주인을 만나게 될 것이다ㅡ 근육질의 멋진 몸은 아니지만 쓸 만한 곳 한두 군데는 있을 테지. 쓸데없어 보이는 이야기를 하나 덧붙이자면, 장기기증 서약을 하게 되면 (갱신 시) 운전 면허증 사진 하단에 '장기기증'이라는 글씨가 인쇄된다. 아니면 우편으로 도착한 스티커를 여기저기 붙여도 되는데 신분증을 제시할 경우 장기기증이란 글씨가 잘 보이게 하여 상대에게 어필하는 호사를 누릴 수도 있다ㅡ 그런데 대체 무엇을 어필한다는 말인가?

나는 내가 죽은 뒤 내 몸에서 작동하고 있던 신체 조직들이 어떻게 쓰일지 알지 못한다. 아직 죽지 않았으니까, 또 죽고 나면 알 수 있는 방법도 없으므로. 하지만 책을 읽다 보니 어딘지 모르게 미심쩍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이를테면 화상을 입은 환자에게 피부를 이식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할 때인데, 그럴 경우에는 별도의 처리 과정을 거쳐 주름살 제거나 남성 성기 확대에 이용되기도 한다는 사실이다(「나는 다른 사람의 팬티 형태를 띠어서는 안 된다는 입장만큼은 확고히 지니고 있다.」). 그러나 글쎄, 오로지 마스터베이션만 할 것이 아니라면(당연히 아닐 것이다), 요철(凹凸)의 명백한 논리로 보건대 그것을 '받아들이는' 여자의 입장은 어떨까. 「어머! 갓 죽은 따끈따끈한 게 내 몸에 들어오고 있어!」 이런 반응을 보이지는 않을 공산이 크다. 아랫도리 가벼운 남자들이여, 입만은 무겁게 하시라.


대부분의 사람들은 새끼 통돼지보다는 원래의 모양을 유추할 수 없는 고기 한 점을 더 좋아한다.

또한 소(cow)나 돼지(pig)가 아니라 돼지고기(pork)나 쇠고기(beef)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 본문 p.18


우리는 매일같이 시체를 ㅡ '대부분' 인간을 제외하고 ㅡ 먹는다. 그러나 생선을 먹을 때는 눈알이 그대로 붙어있어도 아무렇지 않게 입으로 가져가지만 육류일 경우에는 다르다. 위생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도록 조치를 취했다 하더라도 소나 돼지가 빤히 쳐다보고 있는 상태에서 식사를 하기란 쉽지 않을 것 같다. 내가 보기에 인간은 자신과 닮아있는 무언가를 마주하는 입장이 되면 상당한 거부감을 드러낸다. 영화 《스타워즈》에서는 그렇지 않았지만 《아이, 로봇》을 보면 여실히 알 수가 있는데ㅡ 이보다 더 사람과 닮은 '사람이 아닌 것'이 있다면 그 이상일 것이다. 「우리는 사람의 피를 주입하는 것에는 전혀 혐오감을 품지 않으면서도 거기에 몸을 담그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소름끼쳐한다.」 이 말이 부드러운 비유가 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더군다나 스스로가 죽는다는 것은 인정하면서도 죽은 이후 자신의 몸이 이리저리 쓰임새 있게 구획되고 잘려나간다는 상황에는 고개를 젓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죽음을 맞은 이후의 인체는 생각보다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다. 오븐 팬에 놓인 바비큐용 닭처럼 머리통만 잘려 성형외과 의사들의 수술 연습용이 될 수도 있고 과학수사 발전을 위해 부패 연구자들에게 도움을 줄 수도 있다. 그게 아니라면 다른 환자들에게 기증을 할 수도 있다. 죽고 나서 묻으면 뭘 하겠나, 어차피 썩어 문드러질 것, 이런 고담준론을 하려고 했던 것은 아니지만 우리 몸은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것보다 더 넓은 범위에서 요긴하게 살아갈 수 있는 게 사실이다. 그리고 이제야 조금씩 이해가 가기 시작한다. 한국어판 제목에 왜 '재활용'이 들어가게 되었는지. 또한 왜 '당신이 몰랐던 사체 실험 리포트'라는 부제가 붙어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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