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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정치 경제 역사] 영국과 소련의 합동작전 페르시아 침공 (0) 2022/08/07 PM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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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타브리즈에 진주한 소련군 전차 1941년>



한창 독일이 프랑스를 점령하고 소련을 침공하기 시작한 2차세계대전 초기. 영국과 소련은 당시 이란을 함께 침공하기로 하는데....


당시 아랍과 페르시아에서는 반영정서가 강했는데 2차대전이 독일에게 유리하게 돌아가자 각지에서 반란이 일어나고 친독 정권이 들어설 위기에 처함


특히 당시 이라크 왕국은 자진해서 친독정책을 취하고 반영에 선두인 나라였는데


북아프리카와 유럽전선에서 독일에게 연전연패 하고 있던 영국은 중동의 석유가 무조건 필요했기 때문에 반영국가 이라크를 침공해 무너뜨림


하지만 팔레비 왕조의 이란 역시 반영정서가 심한 나라였고 당시 페르시아만의 석유를 영국이 독점했기 때문에 친독정책으로 언제든지 돌아설 수 있었음


그래서 마침 이라크에 주둔한 영국군이 석유자원을 지키기 위해서 이란을 침공하기로 하는데


이 작전을 단독으로 하기엔 당시 이란군도 2개 기갑사단과 여러 보병사단이 있었기에 약간 부담감을 안고 있었음


그런데 여기에 갑자기 소련이 참전하기로 하면서 이란은 양쪽에서 영국군과 소련군의 침공을 당함.


당시 소련은 독일군에게 동부전선에서 계속 밀리자 산업시설을 죄다 뜯어내서


우랄산맥 동쪽으로 이전하는등 고군분투 하고 있었는데 이때문에 서방의 랜드리스 지원이 급박한 상황.


그런데 미국 대서양 노르웨이 북극해 무르만스크를 거쳐 소련으로 오는 랜드리스 루트가


당시 독일군의 동부 진격 대서양 유보트의 활약으로 끊길 위험에 처했고 그 다음 랜드리스 루트로 페르시아만과 이란을 통한 루트가 새롭게 떠오름


서방의 랜드리스가 급한 소련은 이로서 반영국가 이란 정권을 침공할 완벽한 명분이 생겼고 이에 영국군과 소련군이 동시에 페르시아 침공을 감행.


침공이 시작된지 불과 얼마안되 테헤란에서 양군이 만나고 이란의 팔레비 왕은 쫒겨남.


그리고 2차대전 기간동안 이란은 연합군의 식민지가 되고 이 페르시아 침공은 전후 이란에 친미정권이 수립되는 계기가 됨


이때 연합군의 꼭두각시로 이란의 왕이된 레자 팔라비가 1979년 이란혁명으로 쫒겨나는 바로 그 팔레비 왕...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가장 대립하는 양국이 바로 영국과 러시아인 현상황을 생각해보면 참 아이러니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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