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용단일가의 두르가 바히니(Durga Vahini)에서 여성이 군사훈련을 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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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지브 간디 전 수상은 1991년 암살당했다. 그의 어머니인 인디라 간디가 자신의 초병에 의해 연발총으로 총격을 당해 죽은 후 불과 10년도 되지 않아 자신이 파견한 스리랑카 평화유지군에 앙심을 품은 타밀 반군이 저지른 자살 폭탄 테러에 의해 희생되었다. 충격적 사건이었다.
자살 폭탄 테러로 전 수상이 암살당한 것도 충격이었지만, 그때까지는 아직 시작되지 않은 힌두 여성이 자살 폭탄 테러리스트로 등장했다는 사실이 가히 충격적이었다.
그 후 우리는 의용단일가에서 활동하는 힌두 여성 전사를 자주 만날 수 있게 되었다. 그들은 노골적으로 테러를 말하고, 그 행위에 앞장서기도 한다. 여성이 폭력을 사용하는 일을 상상하기조차 힘든 힌두 세계에서 이런 일이 생긴 것은 도대체 어찌된 영문인가?
그 시작은 반영 민족주의 의식을 힌두교에서 찾은 힌두 근본주의 이데올로기인 ‘힌두트바’ 에서 찾을 수 있다. 그들은 영국 제국주의자들이 가져온 근대화와 이슬람이 힌두 전통 가치를 크게 훼손시켰다고 믿는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힌두의 전통 가치를 탄탄히 재구축하고 그 위에서 통일된 하나의 민족국가를 건설해야 한다고 믿었고 그 차원에서 힌두의 가치 또한 자신들이 말하는 민족주의 위에서 하나의 정치 사회 이데올로기로 통합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힌두 여성의 위치와 역할도 그 맥락 안에서 규정되었다. 식민 지배와 함께 들어온 빅토리아 시기 영국인들이 규정하는 정숙한 숙녀와 반대되는 개념을 만들었으니 제국주의에 저항하는 힌두 민족을 낳고 키우며 문명의 전수자로서의 여성과 제국주의라는 악마와 싸워 그를 물리치는 전사로서의 여성의 개념을 발전시켰다.
전자는 힌두교에서 인도라는 나라가 여신으로 묘사되는 ‘어머니 인도’의 개념으로 후자는 대중에게 널리 퍼진 악마를 물리치는 깔리, 두르가와 같은 여신의 모습으로 투사되었다.
하지만 여성의 전사로서의 역할은 독립을 쟁취해나가는 여정에서 그리 크게 두드러지지는 않았다. 차라리 독립 이후 힌두 공동체와 무슬림 공동체의 갈등이 본격적으로 불거지는 1990년대 이후로 심해져갔다.
그것은 상상으로 만들어진 여성에 대한 역할이 반식민 민족운동 때보다 반(反)이슬람 종교공동체 운동 때 훨씬 더 자극적으로 먹혀들어갈 수 있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어차피 여성 전사의 개념은 왜곡이고, 자극이며, 선동이기 때문에 ‘우리’와 ‘적’의 이분적 적대감이 훨씬 큰 종교 공동체적 갈등에 더 잘 활용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1990년대부터 힌두 수구 세력은 여성 전사의 역할을 세계화 반대와 결부시켰다. 과도한 소비 향락의 문화, 자유로운 성(性)문화, 핵가족의 성장과 이혼 증가, 카스트 체계의 쇠퇴, 달리트의 사회 지위 향상, 인권 의식의 팽배 등 때문에 발생한 가족의 해체를 막기 위해서는 힌두 고유의 정신문화 ? 이 또한 상상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를 보존하고 후세에 전수하는 일에 여성이 적극 역할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래서 여성이 앞장서서 힌두 고유의 전통 가치를 파괴하는 이슬람 세력을 응징해야 하고, 그러한 가치를 전파하는 세속적 정부를 전복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넓게 보면 인도를 여성화한 영국 식민주의에 저항하여 인도를 난성화한 힌두 민족주의의 전유 방식이다. 힌두 여성 전사는 남성화된 힌두 민족주의를 이루는 짝패의 한 부분이다.
이러한 사고는 도시 중산층 사이에서 널리 공유된다. 배운 사람이 민족과 문화를 생각하고, 가진 사람이 그 가치를 보존해야 함을 주장하는 것이지 못 배우고 못 가진 사람이 나서서 그런 일을 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그 배우고 가진 사람들이 갖는 영향력은 시간이 갈수록 사회 전반에 널리 퍼진다.
그러면서 그러한 이데올로기를 행동에 옮기는 사람들은 주로 하층 사람들로부터 나온다. 민족의용단, 세계힌두협회, 쉬브세나와 같은 의용단일가에 속한 단체와 정당은 도시 중산층에 기반을 두면서 그 행동대원을 농촌이나 산악 지대의 부족민에서 동원하는 것이 바로 그 모습이다.
그 행동대원들은 의용단일가에 속하는 몇몇 여성 전사 양성 단체로 배속되어 요가와 호신술을 배우고, 사격 훈련을 한다. 그러면서 그들은 달력 이미지나 사원의 우상 등을 통해 자주 접하는 힌두 여신의 성화에 나타난 무기를 들고 악마를 무찌르는 힌두 여신 두르가의 모습에서 자신의 모습을 본다. 그리고 그 가족 구성원은 그 여성 전사의 모습에 가문의 영광을 느낀다.
불평등의 힌두 사회에서 배운 사람, 가진 사람, 높은 사람들이 인정해주는 삶을 살아보지 못한 사람들의 심정을 교묘하게 이용한 수구 세력들의 교활함이다. 결국 자신의 모습을 신화 속 여신에서 찾는 여성 전사는 여성의 사회적 지위를 독립적으로 갖는 의미와는 정반대로 여성의 남성과 국가와 종교에 대한 더욱 심한 종속을 낳게 되는 것이다.
여성 전사가 갖추어야 할 이미지는 영락없이 힌두 신화에서 나오는 여신의 재현이다. 여신은 사자나 호랑이를 타고 창, 칼, 곤봉 등을 휘두르며 악마를 물리치는 존재다. 혼란과 도태에 빠진 우주의 조화가 다시 제자리를 찾는 것은 순전히 여신의 무한 능력 덕분이다. 실제로 민족의용단은 힌두교 여신의 모습을 차용하여 팔수여신(八手女神)의 개념을 만들기까지 했다.
그리고 그러한 여성 전사들의 집단을 그 여신의 이름을 따 의용단일가 안에 두르가 바히니(Durga Vahini) 즉 (악마를 무찌르는 힌두 여신) 두르가의 종(僕)이라는 이름으로 조직하였다. 그 안에서 두르가는 적을 무찌른 절대지존이기 때문에 그를 따라 힌두 민족을 지키는 여성 전사는 반드시 막강한 힘을 구비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여성 전사는 단순히 적과 싸우는 막강한 힘의 소지자를 넘어 힌두 민족을 낳고, 키우고, 보존하는 주체로 해석된다. 그래서 힌두 여성은 순결해야 하고, 정숙을 지켜야 하며, 남성의 육체적 공격으로부터 스스로를 지켜야 한다. 그래서 남성을 유혹하는 옷차림이나 화장 등을 해서는 절대 안 된다. 그들은 오로지 힌두 종교와 민족을 위해 몸과 마음을 다 바치는 존재여야 한다.
그들이 미스 월드 선발 대회나 발렌타이 데이를 공격하고 외국 여성을 테러하는 것은 바로 그러한 문화가 자신들의 고유 문화를 훼손하고 변질시키는 것으로부터 모욕을 당한다는 것을 널리 알리기 위해서이다.
이러한 ‘어머니 힌두’를 만드는 과정을 통해 힌두 여성이 받는 최고의 영광은 적과 피 흘리는 싸움을 마다하지 않고, 자신의 목숨을 초개같이 버리려 힌두 공동체의 전통 질서를 되찾기 위해 헌신하는 ‘여성 전사’에게 돌아간다. 그는 개인과 가족의 삶을 버리고 힌두 종교 공동체와 힌두 민족 공동체를 위해 앞장서고 자신을 희생하는 존재여야 한다.
여기에서 세속적 국가란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들에게 의미가 있는 것은 오로지 종교 공동체 일뿐이다. 마찬가지로 마하트마 간디의 비폭력주의 같은 것도 아무런 가치가 없다. 그것은 청산이 배제된 사랑으로, 힌두교의 일부에 지나지 않은 비폭력에 편집되어 있는 정신 나간 짓일 뿐이다.
종교와 민족 갈등에서 여성에 대한 강간이 빈번한 이유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종교를 위해 목숨을 바쳐라 그리고 너의 죽음을 통해 모든 것을 다 죽여라, 그 안에 너의 승리가 있고 정당한 통치가 있다.” 그리고 또 이렇게 말한다. “적(무슬림)의 여성을 강간하라. 그것은 적에게 모욕을 주고, 사기를 떨어뜨려 승리를 거두기 위해서다.”
여성이 강간의 표적이 되는 것은 여성이 그 문화를 보전하고 그것을 전수하는 존재라고 이해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폭력 갈등이 벌어질 때 항상 적의 여성을 강간 ? 가능하면 더욱 집단적으로, 그리고 공개적으로, 그리고 그 표식을 남기는 방식으로 ? 하는 것이 우선해야 하는 행동이고, 역으로 자신의 여성 구성원이 적으로부터 강간을 당하지 않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여성 전사가 반드시 호신술을 익혀야 하는 것은 바로 이 강간의 무기 때문인 것이다.
인도 최대의 도시인 뭄바이는 힌두와 무슬림 간의 종교 공동체 폭력 갈등이 가장 자주 터지는 곳으로도 악명이 높다. 뭄바이 시정을 맡고 있는 집권 여당은 인도국민당보다 더 수구적이고 폭력적인 쉬브세나(Shiv Sena: ‘쉬바지의 군대’라는 이름의 정당. 현재 인도의 집권 여당인 인도국민당과 연대 관계인 극우 정당. * 쉬바지는 영국이 침략할 때 인도 토착 세력 가운데 가장 강력한 저항한 이 지역 토호국의 지도자)다.
이 뭄바이에 의용단일가에 속한 많은 수구 세력이 강력한 기반을 잡고 있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다. 1992년 아요디아 사태가 터진 후 바로 발생한 무슬림의 뭄바이 테러와 힌두의 보복 학살이 끊이지 않을 때 그 차마 이루 말로 할 수 없는 무슬림 학살 난동에 적극적인 역할을 한 것이 여성 행동 대원이었고, 2002년 구자라트 사태에서 무슬림 인종 청소를 자행할 때 그 여성 행동 대원은 이제 공개적으로 조직적으로 참여를 했다는 것은 이제 증거나 목격에 의해 다 확인된 사실이다. 1990년대 이전에는 여성들이 시위를 할 때 참여를 한다거나 목청을 높이는 정도에 그쳤지만, 1992년 이후에는 여성들이 직접 폭력을 행사한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현상은 힌두 수구 세력들이 끊임없이 전통 힌두교 안에서 여성 전사의 이미지를 발명해내고, 그것을 이슬람이라는 악미로 상정된 적과 결부시키면서 적대감을 부여하는 작업을 해왔기 때문이다.
현재 힌두 민족으로서 여성 전사의 폭력 행위가 가장 적극적으로 드러난 경우는 이 글 모두에서 언급한 타밀민족해방호랑이(LTTE)의 여성 전사다. 그것은 그 지역이 스리랑카에서의 동족의 핍박을 겪으면서 종교와 민족을 위한 싸움이 가장 처절해 왔기 때문에 생긴 현상일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타밀 지역 외의 곳에서도 이런 여성 폭력 전사의 활동이 두드러지기 시작했다. 아직 남성만큼 적극적인 난동을 저지르지는 못하지만 점차 주인공으로 역할을 넓혀가는 것이 눈에 띈다. 그리 되다 보면 그들이 공공연하게 말 해온 이슬람 알카에다와 같은 여성 자살 행동대원이 나올 날도 머지않은 것 같다.
‘우리’와 ‘적’이라는 이분법 적 세계관에 기초한 두 이데올로기인 민족주의와 종교가 만나면서 이루어지는 현상이다. 그 둘이 만나는 지점에서는 항상 민족이 여성으로 상상되고, 그 민족을 지키는 자 또한 어머니로서 상상된다. 그리고 그 어머니의 희생은 곧 폭력과 결부되고, 그것은 곧 여성 테러리스트의 등장으로 연결된다.
인도의 경우만 해도 인도-파키스탄 분단 때나 2002년 구자라트 대학살 때에 가장 큰 피해를 본 것은 여성이었다. 그것은 상대방 적에게 공포심을 심어주고, 그 집단을 모욕을 주는 행위로 그들의 문화를 양육하고 보존하는 역할을 하는 여성을 폭행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그래서 적의 여성을 강간하고, 윤간하고, 음부를 드러내거나, 도려내는 천인공노할 패악 질을 자행하는 것이다.
그러한 만행은 힌두교나 이슬람 혹은 기독교라는 종교의 본래적 성격과 관계있는 일이 아니다. 권력을 쟁취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전통적으로 사회적 약자이면서 핍박받은 여성을 이용해 먹는 남성 기득권자들의 소행이다. 여성 전사가 등장하는 것 또한 자신들의 문화를 수호하는 것이야말로 어머니로서 여성이 감당해야 할 몫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결국 같은 맥락이다.
종교와 민족주의가 극적으로 만나는 일이 발생하지 않은 (혹은 그렇게 되기 어려운) 한국 사회에서는 이러한 일이 쉽게 일어나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 하지만 표현은 다르지만 비슷한 맥락은 최근에 어렴풋이 그 전조가 보이는 듯하다.
그것은 사회적으로 급격한 소외감을 느끼고, 자식 세대에게 극심한 배신감을 느끼는 주변부 노인들이 갖는 자유주의와 진보에 대한 격한 저항 의식과 같은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노년의 삶에 대한 불안감을 젊은 세대에게 투사하는 전략을 쓴 수구 세력들에게 쉽게 감화된다. 그리고 상당한 폭력적 문화로 표출된다.
현재로서는 단순한 세대 갈등 정도로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근본적으로 치유하지 않으면 더 큰 사회적 폭력 문제로 비화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한국에서도 수구 세력은 보통 사람이 상상하는 일을 저지르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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