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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중국인] 시진핑 1년과 권력구조 재조정 (1) 2015/06/15 PM 12:29


전인대 폐막 연설을 하고 있는 시진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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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2014년 3월 19일에 쓰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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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가을에 개최되는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전체회의(9~10월 중 개최)와 함께 중국의 가장 중요한 연례 정치행사인 양회(??,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中?人民政治?商??, 3.3~3.12)와 전국인민대표대회(全?人民代表大?, 3.5~3.13)의 12기(?) 2차 회의)가 막을 내렸다.

양회 개막 직전 민족분리주의자들의 소행인 것으로 추정되는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잔혹한 살인사건이 남서부의 주요 도시 쿤밍(昆明)의 기차역에서 발생해 백 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고, 곧 이어 양회 기간 중에는 중국인들이 대거 탑승한 쿠알라룸푸르발 베이징행 비행기가 실종되는 등 어수선한 상황에서도 예정된 의사일정을 모두 순조롭게 처리하고 막을 내렸다.

특히 정치 분야에서는 양회 개막 전, 전임 정법위 서기 조우용캉(周永康)의 법적 처리에 관한 당국의 입장 표명이 있을 것이라는 외신들의 추측을 뒤로한 채, 시진핑(?近平)이 중앙군사위원회 국방과 군대 개혁 심화 소조 조장(中央?委深化?防和??改革??小?)직을 맡게 되었다는 소식을 전했다.

조우용캉의 의법 조치에 대한 침묵과 시진핑이 또 다른 핵심 소조의 책임자가 되었다는 발표에서 중국의 고민을 발견할 수 있다.

후진타오(胡??) 퇴임 전부터 시작된 조우용캉에 대한 공세는 그의 정치적 기반이었던 중앙과 지방의 정법위 및 공안 계통 간부들에 대한 처리 및 경제적 기반인 석유 계통 고위 국영기업 간부들의 연이은 해임과 체포와 함께 최근에는 그의 아들(조우빈, 周斌)을 포함한 가족들까지 부정부패 혐의로 체포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이미 마침표를 찍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우용캉에 대해 보시라이(薄熙?)처럼 공개적인 법적 조치를 취하지 못하는 이유는 그에 대한 법적 조치가 곧 바로 그의 정치적 후견인인 전임 총서기 쟝쩌민(江?民)과 그의 심복 쩡칭홍(曾??) 등에 대한 관계와 직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쟝쩌민이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 형성한 샹하이방의 세력이 그의 정계은퇴를 기점으로 쇠퇴하고 있기는 하지만 13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당과 정부 곳곳에 거점을 확보하고 있어서 완전히 제거하기가 쉽지 않으며, 시진핑이 총서기직에 오를 수 있었던 것도 후진타오의 공청단파를 견제하기 위한 쟝쩌민, 쩡칭홍의 강력한 지지 때문이었다.

시진핑에게 이들은 정치적 은인인 동시에 개혁의 대상이다. 조우용캉에 대한 법적 처리의 어려움이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또 다른 이유는 시진핑 집권 후 강력하게 진행되고 있는 반부패 운동이 갖고 있는 양면성이다. 소위 태자당으로 불리는 혁명 열사들의 후예들과 당-정 고위 간부들은 정치적 권력과 함께 엄청난 경제적 부를 소유하고 있다. 쟝쩌민과 후진타오 시대의 고위 지도자들뿐 아니라 현 시진핑 체제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시진핑을 비롯한 정치국원 이상의 고위 간부들과 그의 가족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부를 축적해 왔으며, 따라서 어느 누구도 부정부패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시진핑의 공세가 조우용캉의 배후까지 겨눌 무렵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를 통해 보도된 시진핑, 후진타오, 떵샤오핑을 비롯한 전-현직 고위 지도자들의 조세회피지역 비자금 문제는 시진핑 개혁의 한계를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주목해야 할 지점이 또 하나 있다. 3월 15일 전국인민대표대회 폐막과 동시에 시진핑이 국방과 군대 개혁 심화 소조의 조장으로 회의를 주최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미 시진핑은 당의 총서기, 국가주석, 중앙군사위원회주석 등 중국의 권력구조에서 가장 중요한 3개 기구의 최고 책임자에 올랐다.

후진타오는 전임 쟝쩌민의 견제로 총서기에 당선되고 2년 반이 지나고서야 군에 대한 명목상의 통수권을 차지할 수 있었으며, 은퇴를 불과 2~3년 앞두고서야 군에 대한 실질적인 통제권을 확보할 수 있었다. 시진핑은 이와 반대로 자신의 전임인 후진타오의 적극적인 협력으로 이 3개의 직책을 동시에 차지하면서 짧은 자신의 정치경력에 비해 빠른 속도로 권력을 강화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진핑은 집권 이후 끊임없이 새로운 기구를 설립하고 이 모든 주요 기구의 지휘권을 차지하고 있다. 기존의 총서기가 겸임했던 대만문제 소조(中央?台工作??小?), 국가안전지도소조(中央?家安全??小?)와 대외업무지도소조(中央外事工作??小?) 뿐이 아니다.

2013년 11월 개최된 3중전회(중국공산당 제18기 중앙위원회 제3차 전체회의)에서 결정된 전면심화개혁지도소조(中央全面深化改革??小?, 2013년 12월 30일)와 국가안전위위회(中央?家安全委??, 2014년 1월 24일)의 주석 뿐 아니라 계속해서 새롭게 설치된 인터넷 보안과 정보화 소조(中央??安全和信息化小?, 2014년 2월 27일) 그리고 가장 최근에 설치된 국방과 군대 개혁 심화 소조(2014년 3월 15일)의 조장 등 모든 중요한 직책을 독점하고 있다. 마오쩌뚱이나 떵샤오핑도 이렇게 많은 직책을 가진 적이 없었다.

시진핑의 권력 강화인가 아니면 시진핑이 여전히 자신의 권력 기반에 확신을 갖지 못한 것인가 아니면 진정한 정치개혁의 과정인가?

정치국과 정치국 상무위원으로 이어지는 현재 중국공산당의 권력 구조상 시진핑이 몇 개의 직책을 더 독점한다 하더라도 당의 기본적인 집단적인 의사 결정 구조를 변화시키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여전히 각각의 정치국상무위원들과 정치국원들은 자신들이 담당하고 있는 직책에서 고유의 권한을 행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자신들의 권한을 내주면서 과거처럼 1인 지배체제로 회귀하는 것에 선뜻 동의하지도 않을 것이다.

오히려 쟝쩌민과 후진타오를 거치면서 형성된 집단지도체제 하에서의 지나치게 독자적인 권력행사가 당의 단결을 해치고 통일적 정책집행에 엇박자를 가져오기도 했다는 사실에 최소한의 공감대가 형성되었으며, 이에 따라 권력분점의 내용을 유지하면서도 통일적이고 원활한 정책집행을 위한 변화과정일 수도 있다.

새로 설립된 기구들에 기존의 고위 지도자들이 각자의 권한과 역할에 부합하게 재배치되는 점에서 이러한 해석이 가능하다.

물론 이러한 변화가 시진핑의 권력강화로 이어질 수 있는 가능성도 상존한다. 시진핑이 집권한 지 이제 겨우 1년이 지났다. 물론 이 1년 동안 적잖은 변화가 있었지만 이것만으로 중국정치의 향방을 예측하기에는 충분하지 않다. 중국의 정치구조는 중국의 국-내외적 상황 변화에 따라 앞으로도 계속해서 변화할 것이며, 새로운 시대에 부합하는 인물들도 계속해서 등장할 것이다.

중국정치의 변화에 대한 좀 더 확실한 그림은 적어도 조우용캉의 법적 처리와 쟝쩌민과의 관계 정립 등이 정리되는 시점 이후에나 그려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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