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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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2014년 11월 18일에 쓰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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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近平)의 활약이 눈부시다. 우선 중국공산당의 총서기로서 내부적으로는 집권 직후부터 시작한 반부패 운동이 인민들의 광범위한 지지와 주요 정치세력들의 협력으로 순조롭게 진행되면서 강력하고 청렴한 지도자로서의 이미지 구축에 성공했다.
혁명 1세대로 부총리를 지냈던 부친(?仲?)의 후광과 전임 총서기 후진타오(胡??)와 개혁적인 공청단(共??) 세력의 적극적인 지원 덕분이기는 하지만, 민심이반의 가장 중요한 원인 중의 하나였던 고위 관료 집단의 부패문제에 강력하고 지속적으로 대처하면서 민심을 얻은 동시에 중앙정부는 물론 각 지역의 토착 관료들까지 통제 가능하게 되었다.
중화인민공화국 국가주석으로서의 국제적인 지위도 한결 단단해졌다. 미국의 강력한 정치-군사적 동맹국인 대한민국과 자유무역협정(한중FTA)을 체결했을 뿐 아니라 미국이 달가워하지 않는 중국 주도의 ‘아시아태평양자유무역지대’(FTAAP)에 대한 한국의 적극적인 지지도 끌어냈다.
안보 동맹인 미국과 최대 무역상대국인 중국 사이에서 불가피한 측면이 있지만 미국이 불편해 하는 중국 주도의 경제 체제에 한국의 적극적인 지지를 끌어낸 것은 적지 않은 성과라 할 수 있다.
동시에 미국의 중국 봉쇄를 겨냥해 새로운 ‘아시아 지역의 안보협력기구’의 설립을 제안(2014년 5월, 샹하이, 아시아교류 및 신뢰구축회의(CICA))하고, 베이징에서 개최된 제22차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기간 중에는 아베 신조(安倍晋三)일본 총리와의 회담으로 반중 동맹에서 아시아의 가장 강력한 축인 일본과 대화의 끈을 유지하는 등 외교-안보 분야의 대외 협력을 강화하기도 했다.
또 경제적으로는 인도 등 21개국이 창립멤버로 참여하는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설립 양해각서 체결(10월, 베이징)에 이어 베이징에서 개최된 제22차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는 ‘아시아·태평양 자유무역지대’ 구축을 위한 로드맵을 정식으로 채택하고, 실크로드 기금 조성 400억 달러 조성(11월 8일)에도 합의했다.
전임자와 비교해 좀 더 우호적인 정치적 조건 위에서 집권하기는 했지만, 중앙 정치권에서의 일천한 경력과 결코 우호적이지 않은 대외 환경을 감안하면 적지 않은 성과라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국내외에서 ‘중국공산당의 집단지도체제를 종식시키고 마오쩌뚱이나 떵샤오핑 같은 절대 권력의 1인자가 되었다.’는 등의 평가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시진핑의 권력 장악에 대한 평가는 좀 더 신중할 필요가 있다. 전임 후진타오는 총서기 등극 4년 만에 정치국 상무위원과 정치국원 구성에서 절대적으로 자신에게 불리한 상황에서도 당시 쟝쩌민의 황태자라 불리던 샹하이시 당 위원회 서기였던 정치국원 천량위(?良宇)를 처벌하고 당적까지 박탈했다. 반대로 상대적으로 우호적인 환경에서 전권을 이어받은 시진핑의 성적은 후진타오의 거사에 비하면 오히려 평범하다.
지난 10월 개최된 중국공산당 18기 4중전회는 반부패투쟁의 지속적인 전개와 법에 의한 국가 통치가 강조되었을 뿐이다. 국내외 언론을 뜨겁게 달궜던 전임 정법위(政法委) 서기이자 정치국 상무위원이었던 조우용캉(周永康)에 대한 공식적인 당의 처벌도 없었고, 반대로 중앙군사위원으로 승격될 것이라던 태자당 출신 장성들의 승격도 이뤄지지 않았다.
부패 혐의로 체포된 당과 정부를 비롯한 고위 간부들의 이름이 연일 언론에 대서특필 되었지만, 우리 방식으로 표현하자면 ‘깃털만 건드렸을 뿐 몸통은 손도 대지 못한 형국’이다. 여기서 몸통이라 함은 중국공산당의 최고 권력자들인 현직 ‘정치국원’을 말한다. 물론 이들 중의 어떤 인물이 이후 사법처리를 받을 수도 있겠지만, 현재 상황에서 판단하자면 중국공산당의 집단지도체제는 여전히 유효하며, 시진핑이 현재 당-정의 주요 10개 기구의 책임자 자리를 독차지하고 있지만 여전히 마오쩌뚱이나 떵샤오핑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외교무대에서의 화려한 활동도 아직은 구체적인 성과로 드러나지는 않고 있다. 중국의 한반도 정책의 핵심 축인 북한은 시진핑 집권 이후 중국의 중립적인 태도에 불만을 품고 러시아에 손을 내밀면서 미국과 일본에도 지속적으로 대화를 제의하고 있으며, 한국은 최대 교역국인 중국에 한중FTA 체결과 아시아태평양자유무역지대 적극 지지라는 호의를 표명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미국의 군사-안보적 대중국 봉쇄정책에 대해서도 대북 억제라는 이유를 들어 적극 호응하고 있다.
아베 정권의 태도는 좀 더 직접적인 고민거리다. 한국 못지않은 반일감정과 과거사에 대한 자괴감이 정치권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상황에서 일본의 과거사 부정과 (중국 입장에서) 영토(댜오위다오, ???-일본명 센가쿠열도) 문제에 대한 도발은 세계 3대 경제대국이자 미국의 최대 동맹인 일본을 중립지대로 견인하고 한-중-일 3국 협력을 강화해 미국의 아시아 회귀를 저지하고 동북아 공동체를 건설하는 여정의 최대 걸림돌이 되고 있다. 어떤 지도력을 발휘해 인민들의 반일 감정을 적절히 조절하고 일본과 일상적인 관계를 건설할 수 있을 것인지 궁금하다.
특히 국가안보와 관련해 군부의 강경한 목소리를 어떻게 통제할 수 있는지가 앞으로의 성패에 중요한 관건이 될 것이다. 쟝쩌민, 후진타오가 실질적인 군부 경력이 전무한데 반해, 시진핑은 공직의 첫 발을 부친의 친구가 재직하던 중앙군사위 판공청에서 시작해 상당기간 군 관련 직책을 겸임하면서 상당한 인맥을 확보하고 있다. 또 후진타오에게서 바로 군 통수권을 넘겨받아서 출발 시점부터 군부에 대한 강력한 통제권을 확보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의 중국 봉쇄정책에 대한 반감과 중국 근대사에서 지울 수 없는 치욕을 안긴 일본의 영토 문제에 대한 도발은 본능적으로 중국 군부의 강경한 입장을 강화시켜 주고 있으며, 현 상황에서 군부의 이런 강경한 입장이 인민들의 지지를 얻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군부의 이런 강경 대응 입장이 현실화할 경우 문제의 평화로운 해결은 멀어질 수밖에 없으며, 장기적으로 중국의 안정적인 발전에도 장애가 될 것이다. 따라서 군부와 인민들의 일본에 대한 강경한 입장을 어떻게 적절한 수준에서 관리할 것인지가 시진핑의 주요 과제가 될 수밖에 없다.
군부까지 확대된 반부패 운동이 주요 지휘관들을 옥죄면서 표면적으로는 연일 군부의 충성 맹세가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반대로 관행적으로 진행된 기득권의 박탈과 이에 대한 상실감도 존재하고 있다. 당의 가장 강력한지지 기반인 군부에 대한 확고한 통제가 국내외의 산적한 문제해결에 가장 중요한 고리가 될 것이다.
집권 2년을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시진핑에게 쏟아지는 지나친 찬사는 그의 수권능력에 대한 올바른 평가를 위해 적절하지 않다. 지속적인 반부패 사정과 과감한 개혁 그리고 시시가각 밀려오는 외부 환경의 변화에 대한 적절한 대응 등 시진핑의 집권 2년을 충분히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적지 않은 요소들이 있지만, 국내외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정책들의 좀 더 명확한 성패는 집권 1기가 마무리되는 시점에나 들어날 것으로 보인다.
다만 현 시점에서 중국의 변화와 시진핑 집권의 성과를 객관적으로 평가하기 위해서는 신문 지상에서 쏟아지는 찬사보다는 행간의 이면에 숨어 있는 변수를 살펴볼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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