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한 주주자본주의와 결합된 잘못된 재벌 규제는 영세자영업자의 처지를 악화시킨다. 우리나라 경제활동 인구의 33% 즉 1/3 가량이 자영업에 종사하고 있다. 즉 돈을 버는 이들의 1/3 가량이 식당, 술집, 호프집, 이발소/미용실, 카페, 문방구, 꽃집 등의 주인 또는 종업원이다. 자영업자들의 고달픈 살림살이는 곧 5천만 국민의 1/3이 살아가는 고달픈 삶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재벌 빵집 논란과 함께 여와 야,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모두가 빈곤한 영세자영업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통닭과 커피를 아무리 팔아도 도무지 수익을 낼 수 없는 점포들, 달콤한 말로 편의점 창업을 꼬여놓고는 패망하면 막대한 돈을 약탈하는 프랜차이즈 지점들, 음식이 날개 돋친 듯 팔려도 망할 수밖에 없는 높은 임대료 문제 등이 그들의 이야기이다.
또한 가게를 운영하기 위해 빌린 은행대출, 카드대출의 연체와 신용불량자로의 전락, 채권추심 또한 그들의 이야기이다. 전체 자영업 창업자의 80%가 실패하여 신용불량자로 전락하고 그 중 상당수가 자살로 인생을 마감한다.
자영업자들의 삶은 왜 이렇게 힘든 것일까? 가장 큰 이유는 너무 많은 사람들이 자영업에 뛰어들기 때문이다. 그러면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자영업에 뛰어들까?
그 이유는 우리 모두가 알고 있다. 1997년의 외환위기 이후 허리 역할을 하는 중견 대기업들이 재벌개혁 과정에서 대거 퇴출되었고, 기업의 명예퇴직과 희망퇴직, 정리해고와 인력 절감도 상시화되었다. 어느 누구도 안정적인 일자리를 보장받지 못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그 결과 비정규직과 함께 생계형 자영업자가 급증하고 있다. 망한 자영업자들이 속출하는데도 여전히 무수한 사람들이 신규로 자영업에 뛰어든다. 뒤로 물러날 곳이 없는데도 앞에서 밀려드는 군중의 미는 힘을 이기지 못하여 절벽 가장자리에 선 사람들은 결국 절벽 아래로 떨어진다. 참혹한 상황이다.
공정시장 우선론자들(즉 경제민주화론자들)은 재벌-대기업 규제가 영세자영업 보호를 위해서도 가장 시급하고 중요하다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재벌 빵집 논란과 대형마트 골목상권 침식 논란에서 볼 수 있듯이, 빵집과 통닭집, 피자집과 같은 골목 상권에 대자본이 마구잡이로 진입하는 것은 법률로 막아 규제해야 한다. 신용카드 대기업의 수수료 횡포도 규제해야 한다.
그렇지만 그것만으로는 영세자영업종에서의 무시무시한 과당 경쟁을 막을 수 없다. 불공정 경쟁(따라서 공정한 시장질서의 확립)도 중요하지만, 더 심각한 문제는 과당 경쟁이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까?
1998년 이후 만성화 되어 지금도 상시적으로 계속되는 대기업과 은행, 금융권 등에서의 대규모 명예퇴직과 정리해고는 불가항력적인 운명적 힘에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명백하게 1998년 이후 대기업과 은행, 금융회사들의 기업지배구조 및 경영원리가 미국 월스트리트 형의 단기수익성 제일주의, 현금흐름(cash flow) 및 자기자본 수익률(ROE) 제일주의로 재편되면서 일어난 일이다.
1년 안에 매출 및 수익 증대에 도움이 되지 않는 사업부와 종업원을 바로 퇴출, 퇴직시키는 일은 97년 이전에는 생소한 일이었는데, 미국식 회계기준과 수익기준이 모든 대기업들의 경영에 전면화된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에 그것은 흔해빠진 일이 되었다. 이 모든 일이 ‘경제민주화’라는 아름다운 이름하에 일어났다.
경제민주화는 새롭게 거듭나야 한다
경제민주주의는 반드시 필요하다. 민주주의 즉 민(people)이 주인이 되는 통치 원리는 정치 및 국가 영역만이 아니라 경제 영역에서도 관철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가 살고 있는 경제체제는 자본주의 시장 경제이고, 민(民)이 아닌 자본과 시장이 주인인 체제이다. 과연 자본과 시장이 지배하는 이 체제를 5대 재벌 또는 30대 재벌을 규제하여 그 계열사 숫자를 줄이고, 재벌 총수들의 범법 행위를 엄단한다고 해서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을까? 그렇게 하면 민이 지배하는 새로운 경제 체제로 바꿀 수 있을까?
지난 민주 정부의 경험을 보면 별로 성공적이지 못했다. 오히려 거꾸로, 주식투자 펀드들, 재테크 세력, 금융자산가 등 국내외 금융자본의 힘은 엄청나게 커졌는데 반하여 서민들과 노동자들, 빈민들의 처지는 크게 악화되었다. 경제 민주화가 아니라 경제 독재화의 길을 간 것이다.
앞에서 말한 50대의 변절(?)로 되돌아 가보자.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간 그들의 살림살이는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유린되었다. 경제민주화의 이면은 대규모의 기업구조조정이었고, 재벌개혁 및 재벌해체와 함께 대규모의 계열분리, 해외매각, 인수합병, 사업재편, 부채축소 등의 사태가 일어났다.
그 과정에서 대규모 인력 구조조정이 일어났고 그 와중에서 명퇴, 정리해고 당한 당시 40대, 50대 사람들에게 우리 사회는 ‘사오정’이라는 이름도 붙여줬다. 당시 30대였던 386 세대는 경제 민주화와 재벌 개혁에 열광했다. 기업의 인력 및 사업 구조조정과 함께 진행된 인사제도 재편(팀제 도입)과 임금 제도 재편(성과주의 및 미국식 연봉제 도입) 등에 앞장서면서 미국식 기업 문화를 도입하는데 열심이었던 것도 386 세대였다.
그 ‘경제 민주화’ 과정에서 당시 40대, 50대였던 인물들은 ‘사오정’으로 낙인찍혀 쓸쓸히 퇴출당했다. 그리고 그로부터 10년이 흐른 이번 선거에서 이제 50~60대에 접어든 된 왕년의 ‘사오정’이 자신들의 살림살이를 망가뜨린 민주주의 및 경제민주화에 정치적으로 복수한다.
50-60대 인구의 비중 확대를 고려할 때, 앞으로 50-60대의 정치적 지지가 없다면 민주주의가 전진하기 힘들다. 그런데 그들의 바람은 소박하다. 20-30대에 비해 더 불안하고 더 빈곤한 자신들의 살림살이도 풍요롭고 여유로우며 안정되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이 바램을 학자들은 ‘실질적 자유’(형식적·절차적 자유가 아닌)라고 말한다. 그에 반해 지금까지 진보 정치권이 주장해온 민주주의와 경제민주화는 여전히 구자유주의의 패러다임에 머무르고 있다. 즉 실질적 자유가 아닌 형식적·절차적 자유에 불과하다.
구자유주의로는 5년 뒤에도 희망이 없다. 지금부터라도 구자유주의를 넘어서는 새로운 민주주의 즉 실질적 민주주의와 실질적 자유, 그것을 위한 새로운 경제민주주의를 이야기하여야 한다. 20-30대만이 아니라 40대와 50-60대까지 모든 세대에서 지지받는 ‘밥 먹여주는 민주주의’를 이야기하여야 한다. 그리고 모든 세대, 모든 국민들이 골고루 풍요롭고 여유로울 수 있는 살림살이 경제에 대한 해답은 구자유주의 또는 개혁적(진보적) 자유주의가 아니라 사회민주주의, 특히 북유럽식 사회민주주의에 있다고 나는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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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준식 해법을 제시하면서 북유럽식 노사정 대타협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네여...
재벌의 기득권을 일정부분 인정하고 반대로 고용안정 노조설립과 활동 보장 등과 같은
양보와 타협으로 상생을 추구하자는...식의... 그리고 복지국가의 길...
솔직히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경제 정책은 97년 아엠에푸 후의 체제에서
신자유주의에 물들어서 실망도 많이 했었는데...
미국과의 FTA를 추진하면서 좌파 신자유주의라는 말을 되뇌이던 고 노무현 전 대톨령을
생각하면... 당시엔 좀 어이없었던 기억이 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