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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탐사스페셜 JTBC 성폭력 보고서' 내용 중... (2)
2015/02/16 PM 06:59 |
LINK : //mypi.ruliweb.daum.net/mypi.htm?id=syz_da&num=10365&cut=1 | [링크에 게시된 스크랩 본문은 성폭력 피해자들에게 사건 이후에도 고통을 가져다주는 사회의 부조리한 일면에 대한 내용이며 그 중 성폭행을 당한 피해자가 만약 더 주의했으면 성폭력을 피할 수 있었으며 모르는 남자의 차를 얻어타다가 강간을 당하면 여성에게도 책임이 있고 술에 취한 상태에서 성폭력을 당했다면 이는 여자도 잘못이 있다 등등 성폭력 피해자에게도 잘못이 있을 수 있다는 시각이 사회적으로 만연해있고 이것이 피해자들에게 더 큰 고통을 가져다주는 경우가 많다는 것에 대한 이슈가 해석에 따른 논란의 여지가 있는 부분이라고 봅니다.]
플레시브님이 마이피에 올린 '탐사스페셜 JTBC 성폭력 보고서' 에 대한 스크랩을 보고, 또 다른 분들이 이에 대한 감상을 아래 댓글로 달아둔걸 읽다가 하트언더블레이드라는 분이 작성한 '세상이 그렇게 맑고 깨끗하지 못한데 무방비하게 다니는것도 문제 아닐까요? 남자고 여자고를 떠나서 적당히 사리면서 살아야죠;' 라는 댓글과 이에 대한 다른분들의 비난조의 의견을 보고 문득 생각이 난 것을 말해보고자 합니다.
분명한 법과 도덕의 기준을 따지고 다른 예를 들어보자면 누군가가 만약 길에서 칠칠맞게 지갑을 흘리고 다녀도 그로 인해 다른 사람이 피해를 본 게 아닌 한 지갑을 잃어버린 사람의 잘못은 원칙적으로는 하나도 없습니다. 또한, 타인의 유실물을 가져가는 것은 엄연히 법에 근거하여 처벌을 받게 되어있으며(점유이탈물횡령죄) 도덕적인 기준에서 봐도 더없이 비도덕적인 행위이므로 법질서가 온전히 지켜지고 도덕률이 올바르게 형성된 사회에선 지갑을 잃어버린다 해도 거의 대부분 지갑 안의 내용물이 하나도 사라지지 않은 채 그대로 본인에게 돌아올 수 있겠죠.
근데 현실은 그렇지가 않아요. 지갑을 잃어버렸다는 것은 칠칠맞은 행동이긴 해도 사실 잘못을 저지른 것은 아닙니다(지갑안에 공금같은게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마찬가지로 술을 마시고 인사불성 고주망태가 되서 거리를 활보하거나(다른 이들에게 꼬장을 피우지 않았다고 칩시다) 혹은 전혀 모르는 이성이 모는 자동차에 얻어타는 행동 역시 부주의한 행동일순 있어도 잘못은 아니에요. 근데 문제는 우리가 사는 사회가 전혀 도덕적으로 이상적이지도 않을뿐더러 오히려 위험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에 길에서 지갑을 잃어버리면 그 내용물이 내게 온전히 돌아오기 힘든 것과 마찬가지로 자신을 안전하지 못한 환경에 스스로 방치해뒀다간 큰 일을 당할수도 있지요.
몇몇 분들은 하트언더블레이드님의 발언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셨는데 하트언더블레이드님이 말하고자 한 바가 그저 '성폭행 당한 여자도 잘못이 있다' 는 이야기는 아니지 않을까 싶습니다. 혹시 딸을 가진 부모님이 딸에게 '너가 술을 마시고 아무데나 다니던지 혹은 인적없는 곳을 밤늦게 쏘다닌다 하더라도 다른 이에게 피해만 안끼치면 너한텐 아무 잘못도 없으니 걱정하지 말고 다녀라' 라고 말하는 가정이 주변에 있거나 알고있는 분들이 계신가요? 저희집 역시 제 밑으로 여동생이 둘이 있고 부모님은 동생 둘에게 종종 밤늦게 다니거나 술에 취하거나 하지 말라고 주의를 줬었습니다.
대개 선량한 사람들이 피해를 쉽게 입는 이유 중 하나는 외부 환경의 위험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대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중심으로 타인을 보고 판단하거든요. 내가 선하듯이 다른 사람들도 그러리라 라는 기대는 사실 지금 대한민국에서 지내는 사람이 하기엔 상당히 위험천만한 생각일 수 있어요. 전 저렇게 본인이 위험할 수 있는 환경에 스스로를 노출했다 하더라도 그것이 다른 이들에게 피해를 준 것도 아니고 적법한 행동을 준수했다면 결코 잘못이 있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적어도 제가 딸이 있다거나, 혹은 제 동생들에게 주의를 준다거나 할 땐, 절대 밤늦게 다니지말고 모르는 사람을 믿지 말고 함부로 남 앞에서 술에 취하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할겁니다. 우리가 아무런 잘못을 안저질렀어도 충분히 모르는 이의 악의로 인해 고통을 받을 수 있는 세상에 살고있다는 것 정도는 스스로 염두해뒀어야 하는데 간혹 그러지 못해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결코 적지 않다는게 참 안타까운 일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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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GOP 총기난사 병장 사형 구형 (10)
2015/01/17 PM 07:17 |
제1야전군사령부 검찰부는 16일 22사단 GOP(일반전초)에서
총기를 난사하고 수류탄을 터뜨려 5명을 살해하고 7명에게 부상을
입힌 혐의로 기소된 임모(23) 병장에게 사형을 구형했다.
군 검찰은 "비무장 상태인 소초원을 대상으로 계획적이고 잔혹한
범행을 저지른 만큼 법정 최고형에 처해야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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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반년이 넘게 지나면서 사람들 뇌리에서 잊혀지려고 하던 사건이 오늘 신문 구석에 작게 실렸더군요. 임 병장에게 사형 구형은 당연하고 구형만이 아니라 당장 집행을 해도 전혀 도리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만 동정여론을 가진 사람들도 적진 않은듯 하네요.
임 병장이 괴롭힘 당한 사항은
1. 간부 주도하에 하루 16시간 근무
2. 초소 벽화에 간부와 병사가 함께 임 병장 대머리 그림을 그림
3. 이등병 앞에서 간부가 임 병장 뒷통수를 때리는 등의 폭행
4. 계급 상하를 막론하여 부대원 모두가 괴롭힘
이상이라고 하는데 괴롭힘 및 왕따를 당한 사람의 고통은 겪어보지 않으면 절대로 이해못한다고는 하지만 그게 살인행위에 정당성을 부여해주진 못하지요. 평소 자신을 괴롭히지 않은 사람들까지 죽이거나 중상을 입혔고 그 과정으로 수류탄을 던져서 죽지 않은 사람들한테까지 확인 사살을 하는 놈한텐 무기징역으로도 처벌이 부족하단 생각이 드네요. 넓게 보자면 임 병장도 결국 뒤틀린 대한민국 군대 시스템의 희생자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말이죠. 매번 사건사고가 터지면 온갖 요란법석을 떨면서 쑈를 떱니다만 대한민국 군대 문화가 개선될 길은 까마득할정도로 멀어보인다는게 참 안타까운 일이네요.
추가) 우리나라는 잠정적 사형 폐지 국가라서 사형 구형이 된다 하더라도
집행이 안이루어지기때문에 사실상 무기징역 처벌이라고 봐야 합니다.
혹시해서 덧붙여둡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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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교황의 샤를리 에브도 만평 비판을 본 후... (5)
2015/01/16 PM 12:50 |
첫번째 사진 - 샤를리 에브도 테러 당일의 만평
두번째 사진 - 14일 최신간 샤를리 에브도의 만평
‘내가 샤를리다(Je suis Charlie)’
‘모두 다 용서한다(Tout est pardonne)’
며칠전에 올렸던 칼럼인데 교황의 샤를리 에브도 만평 비판 소식을 듣고 다시 올려봅니다.
문유석 판사의 일상有感
“나는 샤를리가 아니다
나는 아메드다”
“나는 샤를리가 아니다. 나는 숨진 경찰관 아메드다. 샤를리는 나의 신앙과 문화를 조롱했다. 하지만 나는 샤를리가 그렇게 할 수 있는 권리를 지키기 위해 죽었다.” 시사주간지 ‘샤를리 에브도’ 테러로 숨진 무슬림 경찰관에 대한 한 무슬림의 트윗이다. 끝 문장은 표현의 자유를 옹호함을 말한다. 하지만 첫 문장은 자신의 신앙을 조롱하는 행위에는 동의하지 않음을 말한다.
샤를리 에브도는 예언자 마호메트가 카메라 앞에 벌거벗고 엎드려 “내 엉덩이 마음에 들어?” 라고 묻는 만평을 게재했다. 이들은 모든 권위에 도전함을 모토로 교황도, 자국 대통령도 이런 식으로 풍자했다. 이들의 표현의 자유는 옹호해야 한다. 타인의 의사 표현을 이유로 테러를 가하는 것은 문명세계에서 정당화할 수 없는 행위다. 하지만 이들의 표현방법이 현명했는지에 관해 합리적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가능하다. 이들 스스로도 자신에 대한 무슬림의 반대시위 권리를 옹호했다.
일부 이슬람 국가에서 벌어지는 심각한 인권 침해, 성차별에 대한 책임을 마호메트에게 묻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일까? 그렇다면 가톨릭의 중세 마녀사냥에 대한 책임은 야훼 또는 성모 마리아에게 물어야 하나? 고대 중근동 사회를 배경으로 성립한 종교들이 전근대적 요소를 품고 있는 것은 당연하다.
하버드대 스티븐 핑커 교수는 구약엔 폭력적?차별적 요소가 많지만 근대 계몽적 인도주의에 적응한 현대 기독교는 이를 그대로 따르지 않는 예를 들며 종교는 인간사의 지적?사회적 흐름에 반응한다고 분석한다. 7세기에 쓰인 코란의 문제라기보다 이런 근대적 변용이 지체되고 있는 후진성의 문제 아닐까. 그렇다면 비판의 타깃은 시대착오적인 근본주의 종교지도자와 권력자들일 것이다. 타깃을 정밀하게 좁혀 이들을 고립시켜야 하는데, 반대로 20억 무슬림 일반을 자극해 위 트위터리안 같은 온건한 이슬람 세력을 고립시키는 것이 현명한 전술일까.
버지니아대 조너선 하이트 교수는 인간은 합리적 추론보다 도덕적 직관에 의존하는데, 미국 진보세력은 인간이 진화 과정에서 공통적으로 발달시킨 도덕성 중 자유?배려에만 치중하고 정당한 권위?고결함?소속 집단에 대한 충성심은 무시해 지지세력을 확장하지 못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상대의 도덕감정을 모욕하는 것보다 상대도 공감할 만한 부분을 넓혀가는 것이 현명하다. 샤를리 에브도는 ‘금지하는 것을 금지한다’는 68혁명의 후예다. 그들은 저항의 목적인 휴머니즘보다 저항 그 자체를 더 신성시하는 근본주의에 빠진 것은 아닐까.
위 글은 2015년 1월 13일 화요일 중앙일보에 게재된 칼럼이며 저자 문유석 씨는 인천지법의 부장판사라고 합니다.
주장하는 바가 아무리 옳고 좋아도 전달방식이 적절하지 못하다면 그 가치가 빛이 바랩니다. 풍자의 칼날은 날카롭고 예리하게, 감히 찌르기 힘든 곳을 명쾌하게 찔러내는 것이 제일 중요합니다만 좀 더 완만하고 지혜로운 방식에 대해서도 고려했었으면 싶네요.
신문 만평이란게 사실 어찌보면 얄밉고 무례한 표현이 많이 보입니다만 그러한 표현으로라도 의미가 잘 전달되고 독자들에게 계몽의 효과를 준다면 의미가 있는 일이겠죠. 근데 제가봐도 첫번째 사진같은 경우엔 솔직히 좀 저열한 조롱에 가깝고 실제로 무슬림들이 볼땐 충분히 모욕스러웠으리라고 보여요. 표현의 자유는 보장되어야 한다지만 반대로 말하면 자유라는 기치 하에 다른 이들에게 무분별한 수치와 굴욕을 주는 것은 폭력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들이 비단 종교나 권위에 대한 신문 만평만이 아니라 사람들과의 대화나 인터넷 커뮤니티에서의 댓글같은 데서도 해당되는 부분이 많은데 이러한 부분에선 누구던지 한번쯤은 반성해볼 문제가 아닐까 싶네요-_-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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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샤를리 에브도의 만평에 대한 인상깊은 칼럼 (5)
2015/01/14 AM 09:26 |
첫번째 사진 - 샤를리 에브도 테러 당일의 만평
두번째 사진 - 14일 최신간 샤를리 에브도의 만평
‘내가 샤를리다(Je suis Charlie)’
‘모두 다 용서한다(Tout est pardonne)’
13일자 신문을 읽던 중 인상 깊은 칼럼을 발견하여 같이 나누고자 올립니다.
문유석 판사의 일상有感
“나는 샤를리가 아니다
나는 아메드다”
“나는 샤를리가 아니다. 나는 숨진 경찰관 아메드다. 샤를리는 나의 신앙과 문화를 조롱했다. 하지만 나는 샤를리가 그렇게 할 수 있는 권리를 지키기 위해 죽었다.” 시사주간지 ‘샤를리 에브도’ 테러로 숨진 무슬림 경찰관에 대한 한 무슬림의 트윗이다. 끝 문장은 표현의 자유를 옹호함을 말한다. 하지만 첫 문장은 자신의 신앙을 조롱하는 행위에는 동의하지 않음을 말한다.
샤를리 에브도는 예언자 마호메트가 카메라 앞에 벌거벗고 엎드려 “내 엉덩이 마음에 들어?” 라고 묻는 만평을 게재했다. 이들은 모든 권위에 도전함을 모토로 교황도, 자국 대통령도 이런 식으로 풍자했다. 이들의 표현의 자유는 옹호해야 한다. 타인의 의사 표현을 이유로 테러를 가하는 것은 문명세계에서 정당화할 수 없는 행위다. 하지만 이들의 표현방법이 현명했는지에 관해 합리적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가능하다. 이들 스스로도 자신에 대한 무슬림의 반대시위 권리를 옹호했다.
일부 이슬람 국가에서 벌어지는 심각한 인권 침해, 성차별에 대한 책임을 마호메트에게 묻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일까? 그렇다면 가톨릭의 중세 마녀사냥에 대한 책임은 야훼 또는 성모 마리아에게 물어야 하나? 고대 중근동 사회를 배경으로 성립한 종교들이 전근대적 요소를 품고 있는 것은 당연하다.
하버드대 스티븐 핑커 교수는 구약엔 폭력적?차별적 요소가 많지만 근대 계몽적 인도주의에 적응한 현대 기독교는 이를 그대로 따르지 않는 예를 들며 종교는 인간사의 지적?사회적 흐름에 반응한다고 분석한다. 7세기에 쓰인 코란의 문제라기보다 이런 근대적 변용이 지체되고 있는 후진성의 문제 아닐까. 그렇다면 비판의 타깃은 시대착오적인 근본주의 종교지도자와 권력자들일 것이다. 타깃을 정밀하게 좁혀 이들을 고립시켜야 하는데, 반대로 20억 무슬림 일반을 자극해 위 트위터리안 같은 온건한 이슬람 세력을 고립시키는 것이 현명한 전술일까.
버지니아대 조너선 하이트 교수는 인간은 합리적 추론보다 도덕적 직관에 의존하는데, 미국 진보세력은 인간이 진화 과정에서 공통적으로 발달시킨 도덕성 중 자유?배려에만 치중하고 정당한 권위?고결함?소속 집단에 대한 충성심은 무시해 지지세력을 확장하지 못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상대의 도덕감정을 모욕하는 것보다 상대도 공감할 만한 부분을 넓혀가는 것이 현명하다. 샤를리 에브도는 ‘금지하는 것을 금지한다’는 68혁명의 후예다. 그들은 저항의 목적인 휴머니즘보다 저항 그 자체를 더 신성시하는 근본주의에 빠진 것은 아닐까.
위 글은 2015년 1월 13일 화요일 중앙일보에 게재된 칼럼이며 저자 문유석 씨는 인천지법의 부장판사라고 합니다.
주장하는 바가 아무리 옳고 좋아도 전달방식이 적절하지 못하다면 그 가치가 빛이 바랜다 란 생각이 드네요. 풍자의 칼날은 날카롭고 예리하게, 감히 찌르기 힘든 곳을 명쾌하게 찔러내는 것이 제일 중요합니다만 좀 더 완만하고 지혜로운 방식에 대해서도 고려했었으면 싶네요.
그리고 위 글의 논지와 일치하진 않지만 읽고나서
문득 요즘 인터넷 댓글 문화에 대해 생각한 바가 있네요.
흔히 넷상에서 다른 이들에게 쓴 소리나 욕설, 비난을 서슴없이 날리는 사람들을 볼 수 있고 우리 역시 그런 행동을 하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다른 이를 비난하려고 할 때, 혹은 다른 사람들이 누군가를 비난할 때 우리는, 혹은 그들은 어떠한 목적을 위해 비난을 하는가를 곰곰히 생각해보세요. 무언가를 옳지 않다고 보고 이런 의사를 개진하기 위해 비판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그저 내면에 고여있는 부정적인 감정을 배설, 해소하고자 비난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떤 목적을 갖고 있는가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만약 우리가 그저 스스로 생각하는 것을 일방적으로 남에게 표명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 또한 내 말에 대해 경청해주길 원하고 상호간의 건설적인 의사소통을 원한다면 적어도 기본적인 예절은 지켜야 하는 것이 옳습니다. 그런데 다른 이를 설득하고 서로 공감하는 것은 예의와 노력, 시간이 필요하며 난이도가 어렵지만 상대를 모욕하고 근거없이 비방하는 것은 아무 준비도 필요없고 지극히 쉬우니 인터넷이나 현실 생활에서 쉬운걸 선호하는 많은 사람들이 서로 욕을 하고 헐뜯는게 일상다반사가 되어버렸네요(특히 다혈질적인 한국인들의 사회에선 더더욱).
전 그래도 오프라인이던 온라인이던 사람과 사람의 소통은 어렵더라도 부디 건전한 방식을 다들 지향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그저 비난하기 위한 비난은 좀 지양됬으면 합니다. 더불어 사는 사람들끼리 서로 예절좀 지켰으면 좋겠구요- .-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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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크리스마스 특집 인실좃 - 후일담 (7)
2014/12/29 PM 01:32 |
LINK : //mypi.ruliweb.daum.net/mypi.htm?id=jack0lantern&num=4169 | 크리스마스날, 한 청년에게 눈물과 교훈의 인실좃 선물을 준 사건(링크 참조) 이후로 며칠 후.
일요일에 고등학교 친구 셋(시계 잃어버린 친구 포함)과 만나 잠깐 시간을 보냈는데
자연스럽게 멍청한 친구에게 덕담을 해주는 토크 타임이 시작되면서
바로 며칠전의 시계 찾는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됬습니다.
범인을 붙잡아두고 처벌과 합의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 의견이 갈렸는데
저랑 다른 친구는 '모질고 독하게 죗값을 받아내야 한다'
(특히 다른 친구의 경우엔 아주 몇백만원이라도 울궈내서 끔찍한 고통을 겪게 해준다고 함)
시계를 잃어버린 당사자의 경우엔 '내 잘못도 있으니 물건만 받는 선에서 끝낸다'
마지막 친구의 경우엔 '그 때의 기분에 따라 처벌' (?)
제 개인적으론 기분에 따라 처벌한다는게 제일 말도 안되는 방식 같지만-_-;
실제로 크리스마스날 내가 다른 사람에게 이렇게 모질게 대하는게 '주님 보시기에
좋으실 것 같진 않다'는 감상적인 이유로 그나마 너그럽게 행동했던 부분도 있었고해서
이해가 안가진 않았네요.
다만 죗값에 대해선 상식적으로 가능한 선 내에서 일찍 잊지 못할 후회는 남을 정도로
엿을 먹여줬어야 하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은 드는데 뭐 제 시계는 아니었고
결국 당사자가 원하는대로 해결됬으니 바람직하게 끝났다고 볼 수는 있겠네요.
나라면 과연 어떻게 손봐줬을까...하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사건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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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사회가 잘못됐음을 탓해야 하는건데 그걸 개인의 경계심 탓으로 돌리는건 경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외부 환경때문에 자기 스스로의 자유를 스스로 검열 해야 한다는것도 매우 잘못된 일이구요.
때문에 다양한 시각에서 바라 볼수 있는 발언이지만 성폭행 당한 여자에게는 미니스커트를 입고 우범지역을 다녔다고 해도 잘못은 없는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