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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 2018년 7월 29일 (0) 2018/07/29 PM 07:17

이번 주 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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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애완과 식용, 관점 (0) 2018/07/22 PM 09:59

애완과 식용, 관점

 

 

오랜만에 세상살이를 구경하느라 이번 주도 욕망의 한계에 대해 쓰는 것이 힘들 것 같아 예전에 생각했던 주제를 잡담으로 써볼게요. 개고기 문제,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요? 그것에 대해 제 개인적인 생각을 정리해볼게요. 사실 이미 선과 악에서 간접적으로 주장한 내용이에요.

 

먼저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 있어요. 저는 개고기를 먹지 않아요. 내키지 않더군요. 애완동물은 키워본 적이 없어 식용을 하는데 별 저항이 없을 것 같았는데, 실제로 접하니 힘들더군요. 아무래도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받은 것 같아요. 애견인들의 주장이나, 위생문제, 비합법적인 절차 등에 영향을 받았겠지요. 그렇지만 저는 개를 식용으로 삼는 사람들을 비난하지 않아요. 그리고 동시에 개를 다른 종보다 귀하게 여기는 사람들도 비난하지 않아요. 어떻게 해서 그런 관점을 가지게 되었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해볼게요.

 

간단히 말하자면 제 관점은 인간중심이에요. 모든 것은 인간중심이 되어야 해요.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인간이 특별해서 인간중심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란 거예요. 오히려 특별하지 않기 때문에 인간중심을 주장해요. 인간은 다른 종과 달리 특별하지 않아요. 인간이라고 자연재해를 벗어날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더워 죽겠어요) 그저 지구에 사는 지능이 높은 동물일 뿐이에요. 그렇게 인간이 다른 종과 달리 특별한 것이 없다면, 지구 내 먹이사슬의 생존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인간이 같은 인간을 우선시하는 것이 올바르지 않겠어요? 그러니까 저는 모든 것을 인간중심으로 바라보고 있어요.

 

이 생각의 근원은 제가 특별함을 구별하게 된 생각인 ‘A는 특별하지 않지만, 내가 A니까 특별하다예요. 인간은 특별하지 않더라도 제가 인간이니까 인간을 특별하게 여기는 거죠. 오히려 인간이란 종을 특별하게 여기고, 인간 외의 동물을 보호할 의무가 있다는 듯이 행동하는 것이야말로 인간의 오만이라 생각해요. 지구에 존재하는 수많은 종 중 하나인 인간이 어찌 다른 종을 보호할 의무가 있을까요? 의무 또한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에요.

 

사실 이런 인간중심은 이미 그렇게 하고 있어요. 알고 계시겠지만 가축은 물론이고 인간에게 해를 끼친 동물은 사살하죠. 그러니까 익충이나 해충의 구분이 있는 거구요. 모기는 정말 짜증난답니다.

 

이렇게 인간중심적 관점으로 바라보고 있지만, 그럼에도 저는 자연보호와 동물보호를 주장해요. 왜냐하면 그것이 인간의 이익으로 이어지기 때문이에요. 자연이 파괴되고 동물이 사라지면 인간도 괴롭답니다. 인간도 동물이잖아요. 그러니까 자연과 동물을 보호해야 하는 거지, 인간에게 해가 되면서까지 자연과 동물을 보호해야 하는 것은 아니에요. 인간이 손해를 보면서까지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인간을 다른 종보다 상위 종으로 바라보고 있다고 봐야겠지요. 원시인 시절에는 없던 의무를 만들어 고생하고 있는 거예요. A종이라면 A종 위주로, 인류라면 인류를 중심으로 하는 것이 맞는다고 생각해요. 그게 모든 종의 가장 기본적인 선이죠.

 

 

, 이제 인간중심적 관점에서 애완과 식용에 대해 바라보죠.

 

먼저 개는 불쌍하고 소는 안 불쌍하냐라는 논리에 대해 이야기해볼게요. 이건 기본적으로 비꼬는 말이에요. 애견인들이 개식용을 비난하며 하는 말이 개는 불쌍하니까로 귀결되니, 그에 대한 반박으로 나온 논리죠. 그런데 이건 애초에 비꼬는 말이기 때문에 논리적으로 맞는 말은 아니에요. 우리 인간은 애초부터 다른 종을 평등하게 대하지 않으니까요. 인간중심으로 이익이 되면 익충, 손해가 되면 해충이라 부르고 있는 판국에 특정 종을 더 아끼는 게 무슨 문제가 되겠어요? 개는 불쌍하고 소는 안 불쌍해도 되요. 인간중심이기 때문에 개를 귀하게 여기는 건 그 사람 마음이에요. 그들의 문제는 거기에 있는 것이 아니에요. 마찬가지로 인간중심이기 때문에 개를 식용으로 삼는 것 또한 그 사람 마음인데, 그걸 몰라주고 비난하는 것에 있는 거예요. 인간중심의 관점으로 바라보면 어디에 문제가 있는지 보이지요.

 

그러니까 저는 개를 식용으로 삼는 사람도 비난하지 않고, 개를 다른 종보다 더 귀하게 여기는 것도 비난하지 않아요. 그건 그 사람의 마음이니까요.

 

저 또한 특정 종을 귀여워하고 있어요. 모기보다 훨씬 이로운 녀석들이죠. 그렇지만 그건 제가 그 종을 좋아하고 귀여워하고 있을 뿐이지,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그걸 요구하지는 않아요. 만약 제가 특정 종이 귀여워 그 종의 개체를 기른다고 가정해볼게요. 그럴 때 다른 사람에게 요구하는 것은 그 개체를 좋아해달라는 것이 아니라, 그 개체를 좋아하는 나를 존중해달라고 할거예요. 이런 관점이라면 다른 애완동물들을 잡아다가 식용으로 삼는 것은 문제가 되겠지요. 애완동물을 식용으로 삼은 게 문제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애완동물을 아끼는 사람을 무시해서 문제가 되었다고 봐야겠네요.

 

 

이런 관점이라면 서로가 주장해야 할 부분이 명확해져요. 각자의 입장에서 한번 살펴보죠.

 

첫째, 애견인

 

제가 애견인 입장이라면, 애견과 식용을 분명하게 나누어 애견들이 괴로움을 겪을 일을 없도록 할 거예요. 그래도 개가 식용이 되는 것이 가슴 아프다면, 당당하게 다른 종보다 개를 더 귀하게 여기니 가능하면 먹는 것을 자제해달라고 요청할 거예요. 강요가 아닌 요청이에요. 같은 사람으로서 말이죠. 물론 애견인들은 그 이상을 이루기 위해서 개를 식용으로 삼는 사람들에게 이익이 될 법한 것을 제시해야 할 거예요. 예전부터 해외에서 개고기 먹는 것으로 항의가 많이 들어오던데, 그들과 협상하여 우리나라가 개고기를 먹지 않게 될 경우 얻는 이익에 대해 논해볼 거예요. 그리고 그걸로 개를 식용으로 삼는 사람들을 설득해 보겠어요. 이익이 됨이 분명하면, 다른 먹거리도 많은 세상 속에서 굳이 그걸 고집할 이유는 없어지겠지요.

 

둘째, 개식용

 

제가 개를 식용으로 삼는 입장이라면, 먼저 애견인들이 개를 다른 종보다 더 귀하게 여기는 것을 인정할 거예요. 그건 애견인들의 마음이에요. 그리고 개가 아닌 애견인을 존중하는 마음에서 그들이 아끼는 애완견은 건드리지 않겠어요. 그 상태에서 똑같이, 마찬가지로, 식용으로 쓰는 다른 종과 마찬가지로 개를 식용으로 삼는 것 또한 인정해달라고 요구할 거예요. 그건 개를 식용으로 삼는 사람들의 마음이니까요. 다른 나라는 더 심하다는 둥 이야기 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어요. 그쪽도 항의할거라고 말하거나 손익문제로 회피할 것이 분명하니까요. 그리고 유기견 문제도 큰 의미가 없어요. 항의하는 사람들은 버리지 않았을 확률이 굉장히 높기 때문이에요. 그러니 별 타격을 받지 않죠. 이런 이유들 때문에 오로지 같은 인간으로서, 대등한 인간으로서 존중해달라고 요구하는 것이 맞는다고 생각해요. 적어도 저는 그런 이유로 개를 식용으로 삼는 사람들을 존중해요.

 

 

여기까지. 기준이 분명하면 사물을 바라보는데 편해진답니다. 뭐 이건 그저 제 생각일 뿐이지만요.

 

최근 세상살이를 보고 있는데 슬픈 사건을 접하게 되었네요. 아직도 구시대적인 발상을 지닌 분들의 실태를 보면 가슴이 아파요. 그렇지만 이전 국정농단처럼 밝혀진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어느 쪽이나 알려지지 않는 것이 오히려 더 심각한 거죠. 밝혀낸 분들, 정말 잘했어요. 칭찬해주고 싶어요.

 

그렇지만 말해두고 싶은 것 하나 있어요. 감성은 이성을 취하게 만들어요. 그래서 논리를 파탄 내죠. 이성적으로 논리에 맞게 정론으로 접근해서 올바른 해결책으로 많은 이들의 공감을 사서 부디 제대로 해결되길 바라볼게요. 그리고 eSports를 보고 있는데 저는 잘하는 걸 보는 게 재미있어요. 그래서 장인들을 좋아해요. 앞으로도 재미있는 경기 봤으면 좋겠네요. 그럼 또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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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 2018년 7월 15일 (0) 2018/07/15 PM 05:38

 

이번 주는 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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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욕망의 한계에 대해 쓰고 있어요. 쓸 때마다 아쉬워서 조금 더, 조금 더, 노력해보고 있네요.

일단 평등, 자유, 감정, , 욕망, 욕구, 제어, 한계 등을 가지고 쓰고 있는데,

몇 가지가 정리하기 어려워요. 그래서 한 주 더 늦었네요. 기다리신 분이 있다면 미안해요.

 

 

특정 개인의 죄의 원인은 개인인가, 집단인가?

 

악덕을 향한 악행은 어디까지 정당한가?

 

욕망은 양식만으로 충족이 가능한가? (본 주제)

 

그리고 구어체가 쓰기도 편하고 읽기도 편한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한번 구어체로 다시 써보려고 해요.

 

 

피보호자의 의무와 보호자의 의무에 대해 요점만 잡아볼게요.

 

피보호자의 의무는 보호자의 보호를 따를 의무가 있겠지요.

피보호자는 의사결정권을 보호자에게 동의를 받아야 돼요.

 

국민은 보호해주는 국가의 법에 동의를 받고 의사결정을 하겠죠.

 

자녀는 보호해주는 부모의 동의를 받고 의사결정을 하겠죠.

 

이렇게 피보호자는 일정한 자유를 빼앗기는 대신에 보호를 받는 거에요.

이것이 피보호자가 보호를 받을 권리이자 의무입니다.

 

 

보호자의 의무는 피보호자를 보호하는 것이겠지요.

여기서 보호한다는 것은 단순히 몸만 보호하는 것이 아니에요.

국가가 국민을 보호할 때, 단순히 몸만 보호해주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권리들을 보호해주고 있지 않나요?

 

다양한 것들을 보호해주는 대신에 보호를 위해 필요한 것을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있는 게 보호자구요..

국가는 법을 통해 이래라 저래라 하고 있지요. 그것이 보호자의 권리예요.

 

미성년이 보호자의 동의 없이 행동하려면, 피보호자에서 벗어나야겠지요.

국민이 국가의 동의 없이 행동하라면, 국가에서 벗어나야겠지요.

인간이 인류의 동의 없이 행동하려면, 인간에서 벗어나야겠지요. (인권)

 

이 정도로 정리해볼게요.

 

또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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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남녀평등, 약자의 이기주의 (4) 2018/07/13 PM 09:05

 

남녀평등, 약자의 이기주의

 

 

저는 되도록 남녀구분을 하지 않으려고 했어요. 글 속에 되도록 편견의 색이 섞이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죠. 그래서 이건 그냥 제 잡담이에요. 사실 이런 주제는 쓰지 않으려고 했는데, 좀 위험해 보여서 작성해볼게요. 그냥 제 개인적인 생각이에요.

 

요새 이슈가 되고 있는 남녀갈등은 사실 별로 특별한 것이 아니에요. 그냥 이기주의죠. 제가 바라보는 이기주의는 크게 강자의 이기주의와 약자의 이기주의로 구분해요.

 

강자의 이기주의는 보편적으로 사람들이 알고 있는 약자에 대한 착취 따위를 예로 들 수 있겠네요. 비정규직 천대라던가, 하청업체 쥐어짜기라던가, 프랜차이저 물품 강매라던가, 뭐 다양하지요. 약자의 이기주의가 주제이기 때문에 여기까지만 쓰겠지만, 본래 강자의 이기주의가 더 심각하다는 것을 말해두고 싶네요.

 

약자의 이기주의는 ‘약자로서 받는 보호(혜택)은 포기하지 않으면서 강자와 동등한 권리를 요구하는 것’ 정도로 정의하면 되겠네요. 그럼 세가지 예시를 들어볼게요.

 

 

첫째, 미성년

 

미성년자는 예부터 약자로서 억압받았고, 약자기 때문에 보호받았어요. 그런데 최근 들어 학생인권 등의 다양한 이유로 미성년의 권리가 상승했지요. 이건 올바른 것이 맞아요. 그런데 여기서 권리는 상승했는데, 보호받던 시절의 혜택은 그대로니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어요. 예를 하나 들어볼게요. 지금 편의점에서 미성년자에게 담배를 판매하면 판매자만 처벌받아요. 이상해 보이지요? 그런데 예전 기준이면 이게 맞아요. 예전에 미성년은 보호받는 대신 권리도 없었으니까요. 그래서 책임을 어른이 지게 되었죠. 그러나 지금은 달라졌어요. 설령 교육의 이유를 들더라도 때리면 사회문제가 일어날 정도로 인권이 높아졌어요. 권리가 높아진 만큼 책임을 져야 하는데, 지지 않고 있기 때문에 사회갈등을 빚고 있는 거예요. 음, 편의점 문제에 대한 생각은 학교에서 도덕심 점수를 만들어서 감점하면 되지 않을까도 생각해보네요. 악덕을 향한 악행이 만연한 만큼, 나쁘다는 평가를 받는 것은 생각 이상으로 괴로울 거니까요.

 

뭐 여기서 미성년들을 변호하자면, 아직 그들은 책임을 지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는 거예요. 알려줘야 해요.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학교에서 일정한 역할을 받아 의무와 책임을 지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이제 아이들은 인터넷의 등장으로 모든 사람들에게 영향을 받고 있으니 그들의 무책임함은 이제 인터넷을 이용하는 모든 사람들이 약간씩 책임을 지게 되었다는 점을 말해두고 싶어요.

 

 

둘째, 난민

 

외국의 내전으로 많은 난민들이 생겨났지요. 난민인 그들은 약자예요. 그래서 보호해주는 것은 맞아요. 그러나 보호받는다면 보호를 따를 의무가 있어요. 이건 기본이에요. 어느 나라든 국민이 나라의 보호를 받기 위해서는 그 나라를 법을 지켜야 하지요. 그런데 세계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대다수는 이 기본을 무시했어요. 피난 온 나라의 법을 포함한 다양한 질서를 지키지 않으면서 보호받기만을 원해요. 그래서 문제가 일어나는 거예요. 이것 또한 약자의 이기주의지요. 국제사회는 무엇이 올바른 것인가를 분명하게 알아두길 바라요.

 

여기서 첨언하자면, 법을 포함한 다양한 질서를 지키는 이기적이지 않는 난민은 보호하는 게 맞는다고 생각해요.

 

 

셋째, 성소수자

 

최근에 퀴어 축제 청원이 있다는 이야기를 봐서 써봐요. 저는 그 축제에 대해 잘 몰라요. 단지 예전에 유머게시판에서 그 축제 사진 몇 장을 보고 깜짝 놀란 적이 있었어요. 보통이면 공연음란죄로 처벌받을 것 같은데도 공공연하게 그런 짓을 하고 있다는 것에 놀랐어요. 뭐 이 또한 기본적인 규칙은 지키지 않으면서 약자라는 이유로 보호받기를 원하는 약자의 이기주의겠지요.

 

여기서 첨언하자면, 저는 이성애자입니다만, 이기적이지 않은 성소수자는 존중하려고 해요.

 

 

이 세 가지의 공통점은 앞서 정의한 것과 동일하게 약자의 혜택은 포기하지 못하면서 강자의 권리를 요구하는 것이에요. 약자의 이기주의죠. 뭐 사실 우리 사회에 일어나는 문제를 잘 살펴보면 거의 대부분 그 근본에는 이기주의가 있답니다. 별로 특별한 것은 아니에요. 그리고 그 이기주의를 부른 것이 상하존중이고요. 뭐 이건 그냥 제 생각이니 넘겨도 좋습니다.

 

이제 사건의 본질이 무엇인지 알 수 있으셨을 거라 생각해요. 간단히 일부 여성의 이기주의죠. 약자였던 시절에 받던 (억압을 통한) 보호나 혜택은 포기하지 못하면서, 강자와 동일한 권리를 요구하죠. 그래서 역차별이 일어나고 있는 거예요. 동등한 상황에서 혜택들 더하니까요. 간단하죠. 이해를 돕기 위해 세가지를 집어볼게요.

 

 

첫째, 여성보호

 

우리나라를 살펴보면 여성우대, 여성보호가 많이 있지요. 여성전용 주차장이나 지하철의 여성전용 칸, 여성전용 아파트… 이러한 것의 기본 논리는 ‘여성은 남성보다 약하기 때문에 보호받아야 한다’ 예요. 그래요. 그건 맞아요. 일반적으로는 남성보다 힘이 약하기 때문에 범죄에 노출되기 쉽지요. 그렇지만 미성년과 마찬가지로 일방적으로 보호받는다면, 피보호자가 되는 거예요. 피보호자로서의 혜택과 더불어 보호자의 보호에 따를 의무가 생기겠지요. 이게 예전에는 말이 되었어요. 옛날에는 여성 인권이 낮았으니까요. 그러나 이제 여성인권이 높아졌으니까, 남녀평등으로 대등해지기 위해서는 여성만을 위한 보호를 주장할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 즉 시민보호를 주장하면서 그 안에 여성도 보호를 받겠다고 주장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그게 아니면 피보호자로서의 의무를 지키면 되는데, 그걸 바라는 여성은 별로 없겠지요.

 

 

둘째, 할당제

 

기본적으로 역할에 맞는 능력을 갖추지도 못하면서 그 역할을 맡는 것은 부당하고 불공평하며 비효율적이라는 전제로 시작하죠. 그건 누구나 동의할 거예요. 그리고 할당제는 그런 위험요소를 내포하고 있어요. 그래서 많은 남성들은 역차별이라고 주장하고 있지요. 그럼에도 할당제를 도입한 것은 달리 방도가 없었기 때문이에요. 할당제의 기본 논리는 유리천장으로 알고 있어요. 유리천장이 여성들의 고위직 진출을 가로막고 있다는 주장이에요. 그리고 실제로 여성의 고위직 비율은 낮아요. 세대에 따라 다르지만, 우리 사회 속에서 아직도 여성에 대한 차별적인 시각은 남아있으니까요. 최근에도 여성 점수를 일부로 낮게 줘서 차등 선발하는 예도 있었어요. 이런 예들 때문에 역차별임에도 불구하고 진행하고 있어요.

 

그런데 이건 여성보호의 연장선상이에요. 보호자가 피보호자를 우선시하는 것처럼 말이죠. 그리고 그에 따른 문제도 별로 다르지 않고요. 남녀평등은 해야 한다. 그런데 불공평했던 과거 잔재 때문에 여성에게 혜택은 줘야 한다. 이 두 가지 때문에 여성이 차별 받지 않는 상황에서는 역차별이 일어날 수 밖에 없어요.

 

통계청 기록 중 ‘2017년 통계로 보는 여성의 삶’에 따르면 2016년 근로자 여성의 비율은 37.8%, 관리자 중 여성의 비율은 20.1%라고 해요. 그런데 2016년 여성 고용률은 50.2%, 취업자의 임금근로자 비율은 77.2%로 계속 증가 추세라고 해요. 과거와 현재가 다르죠. 이렇게 평등한 사회로 나아가고 있는 상황 속에서 여성이 차별 받지 않을 때에는 역차별이 일어나고 있고, 그 역차별 때문에 남성이 항의하고 있다는 점을 이해했으면 좋겠네요.

 

 

셋째, 성

 

왜 남성의 성과 여성의 성은 다른 취급을 받는 걸까요? 간단해요. 여성이 보호받는 존재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여성이 성적인 고통을 받았다고 증언하면 제대로 조사도 하지 않고 비난부터 퍼붓는 거죠. 한 사건을 예시로 들어볼게요. 2006년 한 대학의 국문학과 명예교수가 무속인을 성폭행했다는 루머가 돌았다고 해요. 그 당시에 제대로 된 증거도 없이 무속인의 증언만으로 각종 비난이란 비난은 다 퍼부었고, 그 결과 명예교수는 직위해제까지 당했다고 해요. 그런데 검찰조사 결과 무속인의 거짓말이었던 거예요. 왜 그랬냐고 물어보니까, 그저 자신을 무시하는 것 같아서 그랬다고 하네요. 황당하죠. 검찰은 이 사건 후에 무속인을 무고죄로 고발하였고, 학교는 명예교수에게 복귀할 것을 요청했지만 거절하고 2년 후 사망했다고 해요.

 

분명하게 말해두는 것은, 여성이 남성보다 힘이 약해 성적인 고통을 받을 수 있는 확률은 높은 것이 맞아요. 하지만 말이에요, 앞에 여성보호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일방적으로 여성만 보호받는다면, 여성들은 피보호자가 된다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남성과 여성이 대등한 관계를 구축하려면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보호받는 관계가 되어서는 안돼요.

 

 

이제 사회 현상들이 이해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여성을 피보호자로 생각하고 바라보면 왜 그런지 알 수 있지요. 아껴주길 바라고, 돌봐주길 바라고, 보호해주길 바라는, 그럼에도 보호자와 동등한 권리를 요구하는, 이것이 약자의 이기주의입니다.

 

그런데 이 문제는 사람들의 손익에 걸린 문제라 쉽게 해결될 수가 없어요. 많은 사람들은 그것이 부당하더라도 자신에게 이익이 되면 조용히 있거든요. 손해가 되면 정당하더라도 불만을 표시하고요.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보기 힘들다면, 다른 사람들을 관찰해보세요. 그럼 알 수 있을 거예요. 손익은 굉장히 예민한 문제랍니다.

 

요는 손익이에요. 그러니까 이걸 해결하려면 일부 여성들의 이기주의가 여성 전체에 해가 됨을 인식시킬 수 있으면 문제는 해결돼요. 아주 분명하게요. 여성 전체에 손해를 끼치는 일부 여성들의 행태는 여성들에게마저 소외되고 고립되어 사라지겠죠. 그런데 그걸 사람들이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어요. 이런 일부 여성들의 이기주의에 영향을 받은 일부 남성들은 일부 남성들이 가지고 있는 여성혐오에 가담하고, 그리고 그 현상을 본 일부 여성들은 자신들이 옳았다며 주장하죠. 악순환이에요.

 

이걸 일반 여성들 입장에서 살펴보죠. 일부 여성혐오자들의 행패로 일부 남성혐오자들이 수면위로 나타났고, 남성혐오자들의 행패로 여성혐오자들이 힘을 얻어 수를 늘리고 있죠. 둘 다 잘못된 것 같으면 이익이 되는 쪽을 쫓는 법입니다. 특별히 여성이라서 그런 게 아니고요. 그래서 일부 남성혐오자들이 문제를 일으키면 일부 여성혐오자들을 물고 늘어지는 거에요. 둘 다 나쁘면 이익이 되는 쪽을 선택하게 되어있으니까요. 그렇게 해서 일반 여성들에게 암묵적인 응원을 받게 되는 거죠. 정치에서 네거티브 전략이랑 비슷하지 않나요? 모든 정치가 나쁜 것 마냥 몰고 가면 사람들은 정치에 관심을 끊거나 이익이 되는 쪽을 뽑게 되니까요. 정확히 말하면 직접적인 이익일까요? 인맥? 지역? 하하. 구시대적이죠.

 

모두 나쁘게 받아드리는 경우는 대개 세가지로 분류할 수 있는데, 첫째는 무관심이에요. 관심이 별로 없으니까 다 나쁘구나, 하고 넘어가죠. 둘째는 이익에 눈을 가렸을 때에요. 옳고 그름을 보지 못하고 둘 다 나쁘구나 생각하죠. 셋째는 옳고 그름을 볼 수 있음에도 이익 때문에 보지 않을 때예요. 이익을 위해서 옳고 그름을 버렸지요.

 

이제 일반 남성들 입장에서 살펴보죠. 이런 현상은 일반 남성들에게 해가 되고 있어요. 하루 빨리 해결하는 쪽이 좋지요. 그러니 문제해결방법을 이야기 해볼게요.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태도를 정돈하고 표적을 정확히 지정해야 해요. 일부 여성들의 ‘이기주의’가 문제라고요. 여성이 문제가 아니라, 일부 여성의 이기주의가 여성 전체에 손해를 입히고 있다! 라고 꿋꿋하게 끝까지 흔들리지 않고 올바름을 유지하면서 정론을 기반으로 주장해야 해요. 일부 여성혐오자들에게 휘둘리지 말고 어떠한 욕설도 비난도 하지 않으며 꿋꿋하게 그 ‘행동’이 잘못되었다고 비판하고 지적해야 일반 여성들이 일부 여성들에게 등을 돌리겠지요. 앞서 말했지만, 다 나쁜 것처럼 보이게 되면 이익을 좇는 것이 사람이니까 주의, 또 주의해야 해요.

 

다른 이야기입니다만, 이제 시대는 무결의 시대에요. 결점이 적을수록 힘을 발휘하는 시대지요. 어떤 주장을 관철하고 싶다면, 자신의 올바름은 절대로 놓지 말아야 해요. 욕을 하면서 비난하는 것은 같은 주장을 펴는 사람의 호응은 받기 쉬울지 모르겠지만, 설득하려는 상대, 아니 제삼자에게마저 호응 받는 것은 어려워요. 목적이 욕을 하는 것인지, 흐름을 바꾸는 것인지 분명하게 생각했으면 좋겠네요.

 

그리고 손 뒤집듯, 태도를 바꾸는 것 또한 부정적으로 바라볼 것이 아니에요. 일부 여성들의 이기주의가 옳은 것이라고 착각했다가 이제 깨닫고 태도를 바꾸려고 하는데, 비난이 이어지면 누가 태도를 바꾸겠나요? 물론 직접적으로 행한 일부 여성들은 반성이 필요하겠지만, 그 이외라면 되도록 많은, 남녀 불문하고 많은 사람들을 끌어 모아야 힘을 키워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낙인을 찍는 것은 우월감 속에서 괴롭히는 재미를 부여할 뿐,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답니다. 악덕을 향한 악행은 적으로 한정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남성 여러분, 여성이 적인가요? 아니라면 여성 자체가 아닌 일부 여성의 이기주의를 비판하고, 비판을 공감한 여성들을 받아드릴 수 있어야 된다고 생각해요.

 

뭐… 이게 더 설득력이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이런 건 수가 많은 쪽이 이깁니다. 수가 늘어나는 걸 부정적으로 바라보면 안 돼요. 아, 이건 남녀갈등에 이기고 지고가 있는 게 아니라 이기주의에 이기고 지고가 있는 거예요. 상당히 정치적인 방법입니다만, 저는 우리나라에 올바른 평등이 바로 서길 바라는 입장에서, 이 정도의 수단은 가리지 않아요.

 

여기까지. 물론 예외는 있습니다. 처음부터 무엇이 옳고 그른지 판단이 되는 사람들도 있으니까요.

 

지금까지 설명한 것을 반대로도 적용이 가능해요. 일반 남성 입장에서도 지켜보고 있으면 둘 다 나빠 보이죠. 그리고 일반 여성 입장에서도 이런 현상은 해가 되기 때문에 빨리 해결해야 하니, 일부 남성혐오자들에게 휘둘리지 말고 어떠한 욕설도 비난도 하지 않으며 꿋꿋하게 일부 남성들의 여성혐오나 이기주의가 잘못되었다고 비판하고 지적해야 일반 남성들이 일부 남성들에게 등을 돌리겠지요. 똑같아요.

 

 

글은 여기까지예요. 평등을 바라는 입장에서, 올바른 평등이 자리잡길 바라며 마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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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바다    친구신청

쓰신대로 모든 건 권리(혜택)와 의무만 공평하게 지켜지면 문제없는 것들이죠.
권리를 주니 뿅뿅으로 아는 것들이 문제죠

솔져 블루    친구신청

지금까지 설명한 것을 반대로도 적용이 가능해요. 일반 남성 입장에서도 지켜보고 있으면 둘 다 나빠 보이죠. 그리고 일반 여성 입장에서도 이런 현상은 해가 되기 때문에 빨리 해결해야 하니, 일부 남성혐오자들에게 휘둘리지 말고 어떠한 욕설도 비난도 하지 않으며 꿋꿋하게 일부 남성들의 여성혐오나 이기주의가 잘못되었다고 비판하고 지적해야 일반 남성들이 일부 남성들에게 등을 돌리겠지요. 똑같아요.

이부분 굉장히 공감합니다

루리웹-1291596817    친구신청

미성년 문제는 법을 악랄하게 이용해 먹는 뿅뿅들 때문이라도 엄하게 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일벌백계가 필요합니다. 안좋은걸 사서 남에게 피해를 주면 그만큼 돌아오는 게 있다는 걸 뼈에 사무치게 보여줘야 합니다. 지금 법 시스템은 잘못되었습니다.

흔한곰    친구신청

좋은 글입니다. 평소에 어렴풋하게 생각하고 있던게 명확하게 정리된 것 같네요. 약자의 이기주의, 무결점의 시대라는 말이 딱 요점을 짚으신것 같네요. 주로 방관자의 입장에서 사건을 바라보는 편이지만 이젠 그마저도 좀 더 고민하고 생각할 거리가 생기는군요.
[소식] 2018년 7월 8일 (0) 2018/07/08 PM 08:06

이번주는 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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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신고 겸 작성해요. 아마 다음주는 쓸 수 있을 거예요.

 

흔들리는 파도에 생각을 적은 쪽지가 담긴 병을 던지는 기분으로 몇가지 써볼게요.

누군가에게 닿는다면 기쁠 거라 생각해요.

 

주관과 객관

 

주관이야 다들 알다시피 자기의 생각이죠. 딱히 정리할 것은 없어요. 

사전으로는 [자기만의 견해나 관점]이라고 하네요.

 

객관은 조금 설명이 필요해요. 종종 객관적으로 본다고 말을 핸호고 정작 객관에 대한 설명은 부족했던 것 같네요. 

사전으로는 [자기와의 관계에서 벗어나 제삼자의 입장에서 사물을 보거나 생각함]이라고 해요.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제삼자'예요. [일정한 일에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사람] 왜 '제삼자'일까요?

그건 직접적인 관계가 없어야 손익, 편견, 가치관 따위에서 보다 자유롭게 사물을 보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에요.

 

결국 객관적으로 본다는 말은 자신의 손익, 편견, 가치관 따위를 벗어던지고 사물을 보고 생각하는 것이라 생각해요.

그리고 그건 사물의 본질을 보는 것과 다르지 않아요. 저는 '객관'이란 단어를 이런 의미로 사용하고 있어요.

 

객관적으로 보기 때문에 

선과 악과 능력유무를 분리해서 바라볼 수 있고, 

자신의 손익에서 벗어나 사물을 바라볼 수 있고,

다른 사람들의 주관에 흔들리지 쉽게 않아요.

 

진실과 진리는 그 무엇에 영향을 받아도 변하지 않기에 진실과 진리라고 불리니까요.

 

 

이상

 

어떤 사람이 자신의 이상을 추구할 때엔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야 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그 이상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수단이 되기도 했더군요.

 

제가 세계평화를 바랬던 것은, 행복이란 결국 다른 이들이 행복해야 저도 행복한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제가 접하는 상대가 다른 곳에서 불행한 경험을 겪었다면, 분명 저를 대할 때도 그 불행이 티가 날 거예요.

관계에 따라 다르지만 즐거울 때의 태도와 즐겁지 않을 때의 태도는 확실하게 다르겠지요.

그리고 즐겁지 않을 때의 태도에 저는 불쾌함을 느낄 가능성이 높아요. 보통 그래왔으니까요.

요컨대 제가 접하는 상대가 불행하지 않았다면 저 또한 불쾌함을 느끼지 않았겠지요.

크게 보면 그런거예요. 행복이든 불행이든 연쇄작용이 일어나게 되어있어요. 

그러니 다른 사람들이 행복하면 저 또한 행복할 가능성이 높아지는 거죠.

 

그런데 이 생각은 모든 사람들을 설득 할 수는 없을 거예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할 사람도 있을 테니까요.

그러니 세계평화를 설득할 때엔 그 자체로 안될 것 같아요. 어렵네요. 하하

 

지금은 정리가 덜 되어 있어요. 나중에 언젠가 목적과 수단, 그리고 이상에 대해 써보고 싶네요.


 

예술

 

저번 글에서 설명이 조금 부족했지요. 

예술의 정체로 인해 수준 높은 작품들의 우열을 가리기 위해 작품 외의 것이 필요한 것이라 생각해요.

사실 누가 봐도 분명하게 우열이 가려진다면 굳이 작품 외의 것들이 필요하지 않지요. 그러나 그렇지 않아요.

어느 일정 수준이 넘으면 다들 잘그리고 있어요. 아름답고 사랑스럽고 화려하기도 하고 잔잔하기도 하죠.

이런 아름다움을 수치로 분명하게 표시하여 우열을 가릴 수 없자 작품 외의 것을 가져와서라도 우열을 가리게 되었다고 생각해요.

 

전자제품 같이 성능이 분명하다면 만든이의 철학이나 방식이 우선되지는 않겠지요. 뭐 그런거예요.

 

 

쓰고 싶은 것이 있지만 글솜씨가 부족해요. 그래서 글공부를 하고 싶은데... 사실 좀 답답해요. 혼자는 한계가 있네요. 슬프게도. 


그럼 또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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