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의 몰락
가난은 저마다의 이야기를 품었다지만
바닥을 기는 것은 그놈이 그놈 같아.
어제 온 바퀴벌레가 아니라 항변한들
뺨 맞고 내쫓기는 게 일상이지.
불행도 알약처럼 셀 수 있었으면 좋겠어.
떨어지면 채워지고, 떨어지면 채워지더라도.
어렴풋이 눈 뜨면 창밖은 왜 그리 밝은지.
가끔은 모든 게 무너져버렸으면 좋겠어.
실없는 상상이나 하며 낄낄거리다가도.
종의 몰락이 나의 승리가 아님에
욕지거리만 내뱉으며 가라앉지.
바닥을 기는 불결한 것을 혐오해 보세요.
불결한 바닥을 기는 것을 연민해 보세요.
불결한 바닥을 기는 것을 혐오해 보세요.
바닥을 기는 불결한 것을 연민해 보세요.
너무도 흡사해 구분할 수 없는 것들은
드글드글할 정도로 넘쳐 보이고
징글징글할 정도로 질겨 보이지만
어제 본 바퀴벌레는 이미 이 세상을 떠났는걸.
신문배달부의 부고처럼 누구도 궁금해하지 않겠지만.
나의 패배가 종의 몰락이 아님에 안심하다가도
가끔은 변치 않는 그 사실이 너무 분해.
만취된 그들 앞을 보란 듯이 스치곤 해.
잔반이 가득한 식탁 위를 지나치면
화들짝 놀라 손바닥을 내려치곤 하지.
난장판이 된 꼴을 보며 한참을 웃다
저들의 건배를 외쳐본다.
종의 부흥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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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고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