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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음모론, 코로나바이러스 (1) 2020/03/12 PM 11:31

음모론, 코로나바이러스

 

 

 

비현실이 현실이 등장했습니다. 비정상적인 바이러스가 전세계를 혼란에 빠뜨리고 있습니다. 명확한 원인도 모르고 결과도 알 수 없기에, 다양한 음모론들이 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 널리 알려진 사실은 이렇습니다.

 

「중국 우한에 있는 시장에서 중국인이 야생의 박쥐를 잡아먹다가 감염되었다.= 자연발생

 

당연했습니다. 인간이 인간을 해칠 전염병을 만들고, 그걸 고의던 실수던 퍼뜨렸다고 생각하기는 어렵겠지요. 그것이 일반적인 시각입니다. 하지만 몇몇 의혹들이 나타나자, 사고가 아니냐는 의심을 하게 됩니다.

 

「중국 우한 시장 근처에 있는 연구소에서 유출된 동물 사체로부터 감염되었다.= 사고

 

지금 사태가 인간이 만든 합성바이러스 유출로 인한 사고가 아니냐는 의심을 하고 있다는 겁니다. 시장과 연관이 없는 최초 감염자, 시장 근처에 있는 바이러스 연구소, 이해하기 어려운 야생 박쥐 전염, 바이러스 자체에 있는 인위적인 조작의 흔적, 고령자가 주로 죽는 바이러스 다양한 정황증거가 의심을 사게 만들었습니다. 특히 2015년도 우한 바이러스 연구소에서 코로나 바이러스 연구논문을 작성했다는 사실이 드러나 심증이 가중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미리 바이러스를 만들어 그와 대응되는 백신을 개발하려는데 실패했었다고 합니다. 요는 합성바이러스를 만든 적이 있었다는 겁니다.

 

그걸 한국 방송국에서 진실확인을 해봤다고 합니다. 한국 연구진들의 의견에 따르면, 코로나19와 논문의 바이러스는 일치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5년의 시간차이와 논문 외 바이러스의 가능성을 고려했을 때, 사고가 아니라고 일축하기는 어렵습니다. 더구나 현재 중국에서는 해당 연구소 진입을 막아놓은 상황입니다. 방송국에서도 의심을 피하고 싶으면 중국은 연구소를 개방해 검증을 받으라고 조언을 했습니다.

 

여기까지가 현재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한 일반적인 여론입니다. 공표된 사실은 자연발생이고 심증이 가는 건 사고입니다. 여기서 사고일 경우에는 빼도 박도 못하고 중국이 책임져야 하는 문제기 때문에 설령 정말 사고라고 하더라도 인정하지 않을 겁니다. 결정적인 물증이 나오더라도 부정하겠지요. 미세먼지가 그러했던 것처럼. 자연발생에 대한 책임조차 지고 싶지 않은 모양인지, 다른 나라에 책임을 떠넘기다가 전세계로부터 빈축을 사기도 했습니다. 정말 쓴웃음이 나옵니다. 이 사태가 자연발생이건 사고이건 중국에서 널리 퍼지기 시작했다는 건 모르는 국가가 없는데 말이죠. 어쩌면 중국 내 여론호도가 목적이 아닐까도 생각이 됩니다.

 

여기까지는 음모론이라 하기도 어렵습니다. 사고는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자연발생이건 사고건 둘 다 의도적으로 바이러스를 살포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책임소재 문제를 떠나면 그다지 차이는 없는 상황입니다. 뭐 사고라면 백신이 있을 수도 있는데, 현재까지 백신장사를 하지 않는 걸 보면, 자연발생 또는 백신이 없는 합성바이러스라고 추론하는 것이 타당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겁니다. 자연발생과 사고는 인간이 의도적으로 살포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전문가의 예측대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과거의 데이터와 현재의 데이터, 그리고 바이러스의 연구로 언제쯤 진정되고 종식될 것인가에 대한 분석이 나왔을 겁니다. 학교 개학이나 개강을 기준으로 본다면, 아마 이번 달까지는 어떻게든 해보려고 하겠지요. 만약 전문가의 예상대로 진행이 된다면, 자연발생 또는 사고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정리가 된 후 책임소재를 가릴 때 사고인지 아닌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겠지요.

 

하지만 만약 전문가의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면 어떻겠습니까? 충분히 검역해서 진정되었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한번 감염경로를 알 수 없는 환자들이 나온다거나, 우여곡절 끝에 백신을 만들어서 치료했는데 변종이 나와서 다시 감염된다거나. 뭘 해도 사태가 진정되지 않는다면 자연발생이나 사고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여기서부터가 음모론입니다. 뭘 해도 진정되지 않는다면 누군가 의도적으로 바이러스를 살포한 사건일 수 있음을 고려해야 합니다.

 

미리 요약하자면 이렇습니다. 「전문가의 예상대로 흘러가면 자연발생이나 사고일 확률이 높고,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면 사건일 확률이 높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바이러스를 살포했다. = 사건

 

여론을 살펴보니 사건임을 의심하는 사람들은 주로 일루미타니나 로스차일드 또는 빌게이츠를 언급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그런 이야기를 듣고는 황당무계한 말이라며 일축합니다. 「에이 음모론」 하고 넘어가지요. 저 또한 무슨 이야기인지 모르겠습니다. 이번 사태에서 사건일 가능성이 있는 것은 누가에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번 사태가 사건일 경우, ‘누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설령 누군가 자진신고를 해도 믿어줄 사람이 얼마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일으킨 겁니다」라고 말해도 국가, 기업, 언론, 학자 등의 발표가 아니라면 믿어주지 않겠지요. 그래서 보통 기득권이 했을 거라 생각할 수 있어요. 그런데 모든 기득권이 했을 리는 없습니다. 인류의 1%가 몇 명인지 아실 겁니다. 약 칠천만. 너무 많죠. 비밀유지가 가능할 리가 없어요. 더 줄여볼까요? 칠백만? 칠십만? 칠만? 칠천? 애초에 적은 수로도 일으킬 수 있는 사건이기 때문에 굳이 많은 사람이 알 필요가 없습니다. 이것이 사건이라도 대부분의 기득권은 알지도 못하고 있는 상황일 겁니다. 위에 언급된 사람들이 아닐 수도 있어요. 그러니 이런 상황에서 누가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그다지 현명한 방법이 아닙니다. ‘누가보다는 가능성필요성에 초점을 두는 것이 좋습니다.

 

 

어떤 현상에서 합리적인 추론을 하기 위해서는 객관적으로 증명될 수 있는 사실을 토대로 해야 합니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바이러스를 살포할 수 있다.= 가능성

 

아주 쉽게 가능합니다. 자연바이러스건 합성바이러스건 손에 쥐고 있으면 누구든 살포가 가능합니다. 우연찮게 바이러스를 찾은 걸 수도 있고, 연구 끝에 만든 합성바이러스일 수도 있습니다. 그걸 사람들이 모인 곳에 살포하는 건 지극히 쉬운 일입니다. 도덕윤리적 관점에서나 불가능하지, 거기에 얽매이지 않는다면 누구나 다 쉽게 가능합니다. 인류역사를 생각해보면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를 알 것이라 생각합니다.

 

제가 사건임을 의심하는 것은 사건을 일으키기가 너무 쉽다는 점 때문입니다. 더구나 막기는 또 어렵습니다. 지금 당장 통제 받지 않는 사람들이 퍼트리는 것도 막기 힘든 판국에 의도적으로 퍼트리는 걸 막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겠지요. 최초 중국에 바이러스 살포한 후, 자연스럽게 퍼져나가는 건 내버려두고, 확진자가 없는 국가는 해당 국가 국민에게 전염시켜 출입시키거나, 직접 해당 국가에 입국하여 몰래 살포하면 됩니다. 에어로졸(공기 중 미세한 액체입자) 전파가 가능하다지요? 분무기로 가지고 다니면서 뿌리면 끝입니다.

 

필요 인원 수도 적습니다. 이거, 몇 명이면 사건을 일으킬 수 있겠습니까? 열 명? 백 명? 적은 수로도 너무 쉽습니다. 그리고 들킬 수도 없어요. 의도적이라 의심조차 할 수 없으니까요. 전염된 곳에 있던 사람은 보통 피해자라 인식하지, 가해자라 인식하지 않습니다. 그 누가 일부로 퍼뜨렸다고 생각할까요? 몰래 살포하기 때문에 들키지 않을뿐더러, 들키더라도 피해자라 생각하여 자가격리로 끝이 나겠지요. 바이러스 살포에 위험부담이 없다는 이야깁니다. 쉽게 가능하고 막기도 어려우며 의심조차 할 수 없는 상황. 이것이 첫 번째 의심조각입니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바이러스를 살포할 이유가 있었다.= 필요성

 

2019년은 기상이변의 해였습니다. 한번 검색해보세요. 2019 기상이변으로 검색해보면 다양한 정보를 접할 수 있습니다. 호주 폭염으로 산불이 두 달 가까이 지속되었지요. 러시아는 133년만의 온난 기록이 있었다고 합니다. 반면 좀처럼 눈이 내리지 않는 베이징에서는 폭설이 내렸다고 합니다. 한국에서도 체감했었지요. 한 겨울 제주도 영상 23. 원래 지구가 더워졌다 추워졌다 한다고 하는데, 이렇게 빠르게 변화하는 것은 환경오염의 영향이 크다고 합니다. 2019년에는 비도 많이 오고 해서 메뚜기 떼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고 해요.

 

환경오염을 막아야 인류가 살아갈 수 있는 지구가 보존됩니다. 환경보호는 자연을 위해서 아니라 인간을 위해서죠. 그렇다면 환경보호를 하기 위해 가장 적절한 대책은 무엇일까요? 보통 각국에서 환경보호 정책을 내놓고 실천하는 걸로 생각할 겁니다. 하지만 모든 국가가 그 정책에 동의하는 건 아닙니다. 환경보호도 자본이 들어가기 때문에 자본논리에 의해 실패하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으로 중국이 그러하지요. 작년 5월 오존 파괴하는 프레온 가스를 연간 7000톤 배출했다는 기사가 나온 적이 있습니다. 전세계가 환경보호를 위해 금지한 프레온 가스 배출을 자본논리로 무시했던 것이지요.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도 결국 자본논리 때문에 커진 걸로 알고 있습니다. 5조원 가량의 원전이 아까워서 폐쇄 결단을 미루다가 커졌다고 합니다. 미국도 파리 기후 협정을 탈퇴했지요. 이유는 미국이익에 반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환경보호는 자본논리로 쉽게 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겁니다.

 

이런 상황에서 환경보호를 하기 위한 가장 적절한 방법은 인구감축 말고는 없습니다. 그거 말고는 답이 없어요. 모두가 지구에 살고 있는 이상 모두가 다 같이 환경보호를 해야 하는데, 자본논리로 불가능한 상황입니다. 눈치 보면서 가능한 최대한 하지 않으려고 하겠죠. 그래서 아이 적게 낳자는 주장이 있었습니다. 한국의 경우엔 애초에 저출산이니 그 주장에 따르고 있는 셈이지요. 하지만 그렇다고 한국 저출산이 긍정적인 것은 아닙니다. 한국만 적게 낳는다고 환경문제가 해결될 것도 아니고, 한국만 적게 낳는다면 미래 한국은 존속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출산 문제는 국가의 생존 문제입니다. 일 자녀 정책을 하던 국가도 폐기한 마당에 자발적으로 인구감축을 시도하는 나라는 아마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래서 저출산으로 환경문제를 극복하자는 주장 또한 공허할 뿐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감축해야 하겠습니까? 지금까지 인구 수가 급격하게 줄어든 원인은 대표적으로 세가지.

 

전쟁, 기아, 전염병이었습니다.

 

전쟁은 인구조절이 아니라 인구멸종을 부를 것이고, 기아는 사회체계가 붕괴될 정도가 되야 하기 때문에 인구감축에 어울리지는 않습니다.

 

전염병은 어떨까요? 전쟁처럼 공멸하는 것도 아니고 기아처럼 사회체계가 붕괴되지도 않습니다. 현재 사회질서가 유지되면서 조용히 고령자만 줄어드는 상황입니다. 지금도 조용히 자가격리 중에 사망하고 있지요. 소름 끼칠 정도로 조용히. 애초에 이 바이러스는 어린이 사망확률이 적다는 점에서 이상했습니다. 독감의 경우엔 어린이 사망확률이 높았거든요. 「초고령자 세계에서 고령자만 주로 죽는 질병이 전세계에 유행하고 있다.」이상하죠.

 

이것이 사건이라면, 인류존속을 위한 환경보호와 겸사겸사 세계적인 초고령화를 해결하기 위해 살포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고 기폭제는 아마 작년의 기상이변이라 생각됩니다. 이제 시간이 없다는 것이겠지요. 어떻게든 환경보호 해야 할 상황. 이것이 두 번째 의심조각입니다.

 

그 외엔 공산당 몰락이나 인류멸종 등의 이유가 있을 수 있지만, 확률이 낮다고 보기에 간단히 정리만 하겠습니다. 공산당 몰락이라면, 중국 위주로만 퍼져나갔어야 했고, 인류멸종이라면 코로나 바이러스의 치사율이 낮아 멸종까지는 어려울 것입니다.

 

 

가능성과 필요성, 그리고 바이러스의 이상한 특징(고령자만 주로 사망하는)이 있다 하더라도 무조건 사건이 확실하다는 건 아닙니다. 단지 그럴 확률이 있다는 거지요. 여기서 만약, 전문가의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면, 점점 더 확률이 높아질 겁니다. 감염경로를 알 수 없는 환자가 계속 늘어간다거나, 변종이 발생하여 개발한 백신이 쓸모 없어진다거나, 다른 종류의 바이러스가 발생한다거나. 뭘 해도 종식이 안되면, 사건을 일으킨 그 누군가의 목적이 달성될 때까지 지속될 것입니다.

 

자연발생이든, 사고이든, 사건이든,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건 동일합니다. 할 수 있는 건 한정되어 있습니다. 격리를 통한 확산방지와 백신개발 말고는 마땅한 대책이 없는 상황입니다. 그러니까 그냥 흥미 위주로 상황을 지켜보세요. 어떻게 흘러가게 되는가. 그러다가 만약 정말로 이것이 사건일 것 같으면, 다른 대책을 한번 시도해야 합니다. 사건을 일으킨 존재는 찾을 수 없어요. 누가 일으켰는지 어떻게 압니까? 단지, 만약에 정말 누군가가 고의적으로 살포한 것이라면, 그리고 그 이유가 환경보호 때문이라면, 환경보호 정책을 강하게 주장할수록 의도적 바이러스 살포지역에서 벗어날 수 있겠지요.

 

사실 이상했어요. 「환경오염이 심한 중국에서 인구이동이 많은 춘절에 바이러스 전파가 시작되었다.」 이번에 코로나 때문에 공장가동이 멈추자 중국 대기가 파랗게 변했다고 합니다. 얼마나 환경오염이 심했으면 그랬겠습니까? 내심 사건이라면 환경 때문에 중국에서 시작한 게 아닐까 싶었습니다. 그런데 다른 환경오염 국가는 확진자가 얼마 없는 걸 보고 아닌가 싶기도 했어요. 그러다가 며칠 전 환경오염이 심한 인도에서 코로나 확진자가 30명이 발생했다는 걸 봤어요. 좀 더 지켜봐야 하겠지만, 만약 환경오염 때문에 인구감축을 시작한 것이라면, 환경오염국가에 코로나가 퍼지지 않을 리가 없다고 봅니다.

 

결론을 내릴게요. 자연발생이든 사고든 사건이든 할 수 있는 것은 정해져 있으니 하던 대로 하되, 만약 뭘 해도 진정되지 않는다면, 국가는 사건을 가정하고 환경정책을 추진해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국민들은 보다 더 수준 높은 시민의식을 전세계에 널리 알리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가치 있는 국가임을 증명한다면, 어쩌면 감축 대상에서 제외될 수도 있겠지요. 가치 있는 국가가 되는 것이 손해 되는 길도 아니고, 겸사 겸사 노력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한국이 미래로 갈 수 있는 국가에 포함될 수 있을까요?

 

자연발생이든 사고든 사건이든 쉽게 진정될 것 같지는 않으니 길게 보고 가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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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족 여론조작(차이나게이트)에 대해 요약하면「있는 사실을 부풀려 선동한 사건.」으로 보입니다.

 

아예 없는 사실은 아니에요. 원래 국적 숨기고 여론 선동하는 일은 많았거든요. A국적이 B국적인 마냥 행동하는, 뭐 그런 거요. 단적인 예로 미국 커뮤니티에서 미국인이 아님에도 미국인인 척 이야기를 하기도 하지요. 잘못된 일이되, 특별한 사건은 아니죠. 이걸 막을 수도 없어요. 꼭 외국에서 접속하리란 보장은 없거든요. 모든 커뮤니티가 개인정보가 포함된 실명제를 하면 또 모르겠는데, 그건 지나치게 통제하는 거죠.

 

이런 당연한 일을 가지고 정부와 조선족에 대한 안 좋은 감정이 있는 사람들을 선동한 거죠. 중국 정부에서 여론조작 단체를 운영하는 것이 맞을 거예요. 애초에 스파이도 많았고, 우마오당이란 사례도 있었으니까요. 그리고 조선족이 자기 집단 이익을 위해 조작했을 수도 있어요. 그런데 그게 정치인과의 연결고리를 증명하는 건 아니에요. 뭐 선동 당한 사람들은 이해 못할 수도 있으니까 거울을 가져다 줄게요. 일본에서 재일이 방송국을 장악했다고 주장하는 것이나, 모든 사회문제가 유대인 탓이라던 나치나 같아요. 재일이 방송국에 있을 것이고, 유대인이 금융을 장악했었으니 아예 없는 사실은 아니에요. 부풀려서 선동했을 뿐이죠.

 

게이트라고 하고 싶으면 정치인과의 연결고리는 증명하고 오세요.

 

음모론을 볼 때, 객관성(객관적으로 타당한가?), 사실성(사실이 증명되었는가?), 가능성(가능한 일인가?), 필요성(필요한 일인가?), 선동성(이해관계가 있는가?)을 생각해보세요. 보통 누가인지는 중요하지 않을 때가 많아요. 환경으로 사람을 만들기 때문에 예외를 제외하고는 대체로 현상 속에 답이 있죠.

 

제국주의나 반제국주의에서 벗어나 국익을 위했으면 좋겠습니다. 감정에 치우쳐 행동하면 제삼자가 보기에 좀 보기가 좋지 못합니다. 아마 이번에 그걸 목격했으리라 생각합니다.

 

대리라참 염치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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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모론으로 가면 new world order 라고 음모론가들이 외치는 것으로 가게 됩니다.
[과학당] 한국정치, 동양파[좌파]와 서양파[우파] (7) 2020/02/29 PM 11:20

한국정치, 동양파[좌파]와 서양파[우파]

 

 

 

한국정치를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콤플렉스와 트라우마로 인한 극단적인 진영논리」

 

 

혼란스러운 한국정치. 그 한국정치를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동양파(쇄국파)와 서양파(개화파)의 갈등입니다. 조선 개화기 시절의 정치적 갈등이 아직도 정리되지 않았다는 겁니다. 언제적 이야기를 하냐며 황당해하겠지만 그게 맞습니다. 물론 현재 쇄국과 개화라는 게 아니라 뿌리가 그렇다는 겁니다.

 

요즘 세계적 추세로는 좌파와 우파의 구분이 희미해질 정도로 양 진영의 정책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수정자본주의나 사회민주주의 같이 방향성이 다를 뿐, 필요하면 좌파의 정책이나 우파의 정책을 사용하는데 별 거부감이 없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좌파와 우파가 그렇게까지 극단적으로 대립할 이유는 없습니다. 국익을 위해서라면 하나가 될 수 있어야죠. 그런데 한국정치는 그렇지 못하고 있어요. 식물국회가 될 정도로 대립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한국정치의 본질이 서양의 정치이념에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동양파「서양(제국주의)의 것을 받아드리지 않을 것이다.

서양파「서양(제국주의)의 것을 받아드릴 것이다.

 

동양의 정치는 대부분 이렇습니다. 서양과의 문명경쟁에서 패배한 동양에게 정치적 선택지는 수용여부밖에 없었던 겁니다. 대표적인 동양파는 중국과 북한이고 서양파는 일본입니다. 한국은 동양파와 서양파가 아직도 대립하고 있어 혼란스러운 상황입니다. 보수적인 동양파가 좌파라 불리는 까닭은 반제국주의적 사상으로 자본주의에 대립하는 공산주의를 받아드렸기 때문이고, 진보적인 서양파가 우파라 불리는 까닭은 친제국주의적 사상으로 자본주의를 수용했기 때문입니다.

 

본래 서양정치의 좌우 구분은 프랑스 혁명시기, 공화파와 왕당파의 의석 위치를 기원으로 한다고 합니다. 공화파가 좌측에 위치하여 진보가 좌파가 되었고, 왕당파가 우측에 위치하여 보수가 우파가 되었다고 합니다. 이걸 한국에 적용하면 동양파가 보수가 되고 서양파가 진보가 될 것입니다. 동양의 것을 버리고 서양의 것을 받아드리자는 세력이 진보적이지 않으면 누가 진보겠습니까?

 

그럼에도 현재 한국에서 보수적인 동양파가 좌파라 불리고 진보적인 서양파가 우파로 불리는 까닭은 서양의 정치이념구분을 따르기 때문입니다. 반제국주의적 사상을 가진 동양파는 제국주의자들의 이념인 자본주의와 대립하는 공산주의를 따르게 되어 좌파가 되었고, 친제국주의적 사상을 가진 서양파는 제국주의자들의 이념인 자본주의를 받아드려 우파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한국은 보수가 좌파로 불리고 진보가 우파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현대 한국정치를 복잡하게 하는 이유 중 하나가 되겠습니다.

 

본래 한국이 정상적으로 정치가 시작되었다면 개화파가 사회적 정의가 되었을 겁니다. 민족의 왕정보다는 이민족의 민주주의가 보다 더 민중을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식인들이 민중을 교육하고 민중이 일어나서 왕정을 폐지하는 그러한 자연스러운 흐름이 있었다면 현재의 한국정치가 이렇게까지 혼란스럽지는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매국노가 일본에 나라를 팔아먹는 순간 모든 것이 일그러지게 됩니다. 일본에 지배 받는 순간, 민족주의가 고취되면서 쇄국의 정의가 되어버렸던 것입니다. 본래라면 민주주의를 위해 국가의 기득권과 싸워야 할 정의로운 사람들이 민족주의를 위해 일본의 지배와 싸우게 된 것입니다. 이 순간, 한국에서는 보수가 정의가 되고 진보는 악이 되었습니다. 쇄국파를 뿌리로 두고 있는 동양파가 어째서 도덕에 집착하는가, 개화파를 뿌리로 두고 있는 서양파가 어째서 도덕에 신경 쓰지 않는가, 그에 대한 답이 되었다고 봅니다. 매국으로 국가정치의 첫 단추를 잘못 꿰는 순간, 도덕적인 자들이 동양파에 몰리고, 부도덕적인 자들이 서양파로 몰리게 되어서 그랬던 겁니다. 물론 일반화는 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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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동양파와 서양파는 각각의 콤플렉스를 가지게 됩니다. 동양파는 무력한 민족 콤플렉스. 서양파는 민족의 배신자 콤플렉스. 두 콤플렉스가 두 진영을 극단적으로 대립하게 만드는 요인 중 하나로 자리잡게 됩니다. 동양파는 무력한 민족 콤플렉스가 있어 당시 무력한 기득권을 최대한 옹호하려고 애를 씁니다. 쇄국을 민족자결주의적 결정이었다고 해석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무력한 민족을 인정하게 되면 일본의 침략을 정당화하는 흐름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함부로 인정할 수가 없습니다. 서양파는 민족의 배신자 콤플렉스가 있어 친일파를 최대한 옹호하려 애를 씁니다. 식민지 근대화론을 주장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민족의 배신자 콤플렉스에서 벗어나려면 그 배신을 정당화할 수 있는 수단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두 진영 다 콤플렉스 때문에 왜곡된 주장을 펼치는 걸 보면 씁쓸하기 짝이 없습니다. 당시 동양의 기득권은 무력하고 무능했습니다. 그걸 부정하는 것은 기만입니다. 당시 동양에게 식민지 근대화는 필요 없었습니다. 시간이 필요했겠지만 자주적으로 발전할 수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니 그랬어야 한국정치가 정상적으로 진행되어 개화파가 사회적 정의가 되었을 겁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보수가 선이고 진보가 악이다.」이러한 사회적 풍조 때문에 어쩌면 현재 서양파가 보수를 자칭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대만에서는 친중파(동양파)인 국민당이 보수고 친미파(서양파)인 민진당이 진보거든요. 원래 이게 정상적인 정치구조입니다. 자국을 기준으로 좌파와 우파를 구분해야지, 서양정치이념으로 구분하다니. 한국이 비정상이죠. 두 진영의 콤플렉스로 국익과는 별개의 사안으로도 갈등을 빚고 있는 상황입니다. 아무래도 좋은 일에 싸우고 있어요. 콤플렉스가 아니라면 일어날 수 없는 일입니다.

 

광복을 맞이하고 새로운 정부가 들어섭니다. 그 구성원 중에 친일파가 많았다고 불만을 터뜨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동양파와 서양파를 기준으로 생각하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친미파와 친일파는 같은 서양파(서양의 것을 받아드리자)에 속했기 때문에 서로 섞이는 것에 별 거부감이 없었을 겁니다. 극단적인 동양파는 제국주의자들의 자본주의를 받아드릴 수 없다며 공산주의 국가로 향하게 됩니다. 그러지 않은 동양파는 한국에서 사회주의를 주장하게 됩니다. 이를 빌미로 서양파는 모든 동양파를 가리켜 공산주의자라고 공격합니다. 간첩 몰이가 시작된 겁니다. 애초에 민족의 배신자 콤플렉스가 있었던 서양파는 서양의 이념을 가지고 보수라 자칭하며 동양파를 공산주의자로 몰아가며 공격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서양파의 독재가 시작됩니다. 여기서 진보는 분열로 망하고 보수는 부패로 망한다는 속설이 시작됩니다. 진보는 동양파와 민주주의자들이 섞였기 때문에 서로 분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보수는 서양파를 뿌리로 두고 있기 때문에 사리사욕을 탐하는 이들이 모이는 진영이 되었기 때문에 부패할 가능성이 높았습니다. 흔히 경제성장을 보수가 했다고 말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보수적이기 때문에 경제성장을 한 것이 아닙니다. 당시 서양파가 진보적으로 서양의 것을 받아드리고 일본과 거래하여 독립축하금 형태로 돈을 받아 중공업을 성장시키고 베트남 전쟁에 파병하여 이익을 얻었기 때문에 경제가 성장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서양파가 독재하거나 부패해서 경제가 성장한 것이 아니라, 단지 서양의 것을 수용했기 때문에 성장했다는 겁니다. 동양파는 이걸 할 수가 없어요. 반미, 반일, 반제국주의를 외치는 동양파가 서양의 것을 받아드리거나 일본과 거래를 하거나 베트남 파병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것이 옳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할 수 있느냐 없느냐에 초점을 둔 것입니다. 다른 방식으로 경제성장이 가능할지 모르겠으나, 동양의 것을 지키자는 동양파가 서양과 손을 잡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만약 동양파가 집권했다면 중국과 손을 잡았을 확률이 높았겠지요. 그건 부정할 수가 없습니다.

 

만약 처음부터 매국을 하지 않아 쇄국이 정의가 되지 않았다면, 개화파에 정의로운 사람들이 모여 당대 기득권(왕과 양반)과 싸워 민주주의를 쟁취하고 서양과 교류하여 국가를 발전시켰을 수도 있었을 겁니다.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어째서 독재를 하는 부도덕한 자들이 국가를 성장시킬 수 있었는가에 대한 답이 되었을 거라 봅니다. 서양파라서 그런 겁니다.

 

독재를 거치며 동양파와 서양파는 또 다른 콤플렉스를 가지게 됩니다. 공산주의 콤플렉스와 독재주의 콤플렉스입니다. 정의로운 사람들은 동양파에 모이면서 서양파의 독재를 타도하게 됩니다. 그런데 한국에서 정의는 일본 침략을 비롯한 반제국주의기 때문에 자본주의와 대립하는 공산주의를 공부하게 됩니다. 서양파가 민주주의 운동을 공산주의자들의 선동이라고 공격하는 까닭은 여기에 있습니다. 당시 독재는 표면은 독재와 반독재의 대립이었지만 이면은 서양파와 동양파의 대립이었습니다.

 

지식인들 중 도덕적인 자들은 동양파에, 실리적인 자들은 서양파에 모여 진영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국민들은 침략의 트라우마로 지지진영을 결정했습니다. 도덕적인 동양파는 자신들의 정의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침략의 트라우마에 공포에 떨고 있는 국민들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실리적인 서양파는 트라우마를 이용해 정권을 유지하는 일을 하게 됩니다. 북풍이 대표적일 것입니다.

 

동양파는「무력한 민족 콤플렉스, 공산주의 콤플렉스, 일제침략 트라우마」

서양파는「민족의 배신 콤플렉스, 독재주의 콤플렉스, 북한침공 트라우마」

 

여기서 콤플렉스는 주로 지식인들이 가지고 있었고, 트라우마는 주로 국민들이 가지고 있었습니다. 지식인은 자신들의 정의와 실리를 비롯한 콤플렉스에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민중의 트라우마를 보살피지 않았고, 국민들은 트라우마로 정치진영을 결정했기 때문에 한국정치의 본질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친일파 나쁨」「친북파 나쁨」 현재까지도 왜구니 빨갱이니 소리 나오면서 감정적으로 공격하는 건, 트라우마로 정치진영을 결정했기 때문입니다. 국가정치와 문명이 서양의 것을 따르고 있는 시점에서 국민들은 일제침략보다 북한침공에 대한 트라우마가 더 심해지기 시작했습니다. 혹자는 선동 당했다고 단순하게 생각할 수 있지만, 선동되는 사람들은 전부 선동되는 다 이유가 있기 마련입니다. 아무래도 일제침략은 수십 년 걸쳐서 지배 받은 거기 때문에 무뎌질 수밖에 없습니다. 순간적으로 파괴력이 높은 북한침공이 더 공포스럽겠지요. 그래서 오랜 세월 한국은 서양파가 집권하게 됩니다. 여기까지가 기본적인 한국정치입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동양파와 서양파와 관계 없이 순수한 민주주의자들이 태어나기 시작합니다. 그냥「독재자 나쁨」이라며 독재횡포 트라우마를 가진 이들이 도덕적인 동양파에 섞이면서 점차, 점차 동양파 정치인들에게 힘이 실리기 시작합니다. 그 결과 현재 동양파가 집권하게 되었습니다. 현재 서양파의 가열찬 공격에서 지지율이 유지될 수 있는 것은 독재횡포의 트라우마를 가진 이들이 동양파에 섞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동양파는 도덕적인 실수를 저지릅니다. 아무래도 동양파가 도덕적인 자들이 모인 진영이다 보니까 도덕에 집착하는 면이 좀 있어요. 실리보다는 도덕을 우선시한다는 이야기입니다. 민족주의라는 도덕을 지키기 위해 북한과의 교류에 힘을 쓰고 여성주의라는 도덕을 지키기 위해 여성 특혜를 추진하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 북한침공의 트라우마를 가진 이들은 집결하게 되고 여성주의에 차별 받은 젊은 남성들이 서양파로 몰리게 됩니다.

 

사실 현재 시점에서 동양파와 서양파의 뿌리는 큰 의미가 없습니다. 동양파도 서양과 적극적으로 교류 중에 있습니다. 단지 남은 민족주의 때문에 중국과 북한과 교류하고 일본에 공격적으로 대하고 있지요. 서양파도 중국과 적극적으로 교류하고 있습니다. 단지 남은 콤플렉스 때문에 미국과 일본의 것을 무조건 수용하겠다는 식으로 나오는 것이지요. 두 진영 다 중국과도 교류하고 있기 때문에 반중친미를 외치는 반공주의자들이 여당야당 가리지 않고 친중파가 많다며 불만을 토로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걸로「왜 한국정치는 정치이념으로 싸우는 것이 아니라 친한 국가로 싸우는가?」에 대한 답이 되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동양파와 서양파 때문에 친중, 친북, 친미, 친일에 휘둘리고 있는 것이지요. 아이가 성장으로 인한 변화를 받아드리지 못하고 내적갈등을 겪는 것을 사춘기라고 하지요. 국가도 마찬가지입니다. 한국은 아직 사춘기에 머물러 있는 상황입니다. 자주적으로 정치이념을 만들어 그걸로 국가정책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친한 국가의 정책에 휘둘리고 있는 상황. 아직 어른이 되지 못했다는 증거입니다. 종종 한국은 선진국인데 정치는 부족하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식물국회를 보면 반박하기 어렵겠지요. 이는 아직도 정치가 사춘기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제 한국도 어른이 될 때가 되었습니다.

 

 

 

끝나기 전에 동양파인 중국과 북한에 대해 간단히 설명하겠습니다. 중국인과 북한인이 공산주의를 지지하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제국주의의 이념인 자본주의와 대립해서입니다. 그래서 반제국주의를 외치며 공산주의를 지지하고 있는 것이지요. 공산주의 자체도 서양에서 온 것이지만, 반제국주의자 입장에서 선택지는 없었습니다. 동양의 정치는 왕정에서 끝이 났으니까요. 문명경쟁에서 패배하게 만든 왕정을 다시 세우는 것도 우습고 새로운 정치이념을 만드는 것도 복잡하니 그냥 있는 것을 차용했겠지요. 공산독재자야 독재하면서 이익을 보니까 공산주의를 할 이유가 있지만 민중은 그럴 이유가 없지요. 중국이나 북한의 공산주의를 보면 민중에게 이익이 되는 사상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을 겁니다. 그럼에도 공산주의가 작동할 수 있는 것은 반제국주의가 사회적 정의로 자리잡았기 때문입니다. 동양의 공산주의는 반제국주의 때문에 시작된 것이므로 평등하지 않아도 상관 없었습니다. 그래서 쉽게 변질되고 말았습니다. 중국은 황제로 북한은 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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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새로운 한국정치이념에 과학주의와 역할주의를 주장합니다. 자원분배 중점을 자본이나 노동이 아닌 기술에 맞추는 과학주의, 존중의 척도를 서열이 아닌 역할에 맞추는 역할주의.

 

사이비 종교라

 

여러분 건강하세요!

 

한국이 대외적을 무시당하는 일도 있는데, 그걸 극복하려면 한국이 성장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들은 동양파와 서양파에 속할 것이 아니라 한국의 이익을 위해서 생각하고 행동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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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KkArAnG    친구신청

뭔소리야

나루터기    친구신청

글쓴이 뇌피셜일 뿐인 글...
좌파 우파 구분도 틀렸고 그걸 동양파 서양파에 우겨넣는것도 틀렸음...
그냥 인간은 고대부터 세력싸움을 해왔던것 뿐.
조선시대 당파싸움만 가져와도 이글은 그냥 글쓴이의 환타지에 불과한 글이 됨.

S@nic    친구신청

세상에 좌우를 외교로 구분하는 머저리가 있을줄이야

SIROP    친구신청

이분법으로 나눠 과학이 뭔지도 모르는 수준의 글을 써놓고 과학같은 소리하지 마세요

월화수목금퉷    친구신청

일단 첫 문장 부터 개소리
한국적인게 뭔데
민주주의가 무슨 신토불이냐?

一目瞭然    친구신청

신토불이는 쪽본이 참 좋아하던 거임.

우리나라는 본래 흥선대원군을 제외하면 개방적인 나라였음.

기본적으로 제대로 된 지식이 아닌 듯.

당근천국    친구신청

환빠인가?
뭐지 혼란하다 혼란해
[과학당] 한국정치, 우민화와 무책임 (1) 2020/01/27 AM 04:58

한국정치, 우민화와 무책임

 

 

 

「대중은 개돼지다.」어떤 영화에서 대중을 개돼지로 비유하여 유명해진 말입니다. 개돼지마냥 사료만 잘 챙겨주면 부당한 일에도 짖지 않고 금방 잊는다는 의미에서 비유한 것이지요. 그런데 정말로 어리석은 걸까요? 분명 대중을 보면 어리석어 보이는 일들이 한둘이 아닙니다. 감정적이고 충동적이죠. 익명이 보장된 인터넷에서는 대중의 어리석은 발언들을 쉽게 접할 수 있습니다. 앞뒤 고려하지 않고 자기 욕구와 감정이 부르는 충동이 이루어지기만을 바라고 있지요. 감성정치, 감성법치가 문제시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이러한 충동적인 대중정치를 가리켜 중우정치라 말하며 경계한 바가 있습니다. 어리석은 이들의 의견도 수용해야 하는 정치체제의 결점이라 할 수 있겠지요. 이러한 이유로 민주주의는 완전무결한 정치체계는 아닙니다. 대다수가 현명해야 잘 작동할 수가 있지요. 그렇다면 한국은 우민화가 되었기 때문에 이런 중우정치가 나타나게 되는 걸까요?

 

흔히 한국을 가리켜 고학력사회라고 합니다. 무한경쟁체제 속에서 우수한 인재가 쏟아져 나오기 때문에 능력에 맞는 직업을 구하기가 어려운 학력과잉사회가 되었지요. 그런데 이는 앞으로 있을 완전자동화를 생각해보면 그리 나쁘지만은 않은 상황입니다. 어차피 단순노동의 일은 로봇이 하게 될 전망이므로 고학력 직업에 많은 인력이 경쟁하여 더 나은 인재가 선별되는 것이 국가 발전에 도움이 되는 것이겠죠. 국가가 할 일은 고학력사회를 막는 것이 아니라, 경쟁에 탈락해도 다시 한번 경쟁에 도전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안정적으로 경쟁을 즐기는 구조가 만들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경쟁과 안정이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일 것입니다.

 

이렇게 학력과잉사회가 된 이상 개개인이 어리석다고 보기는 어려울 겁니다. 우민화 때문에 중우정치가 나타난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겁니다. 「개개인은 우수한데 대중이 되면 어리석어진다.」 그렇지만 명백하게 현상으로 나타나서 부정할 수 없는 이 모순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걸까요? 왜 개인의 우수함이 대중으로 연결되지 않는 걸까요? 그건 인간의 본질을 알면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지성을 갖춘 동물이다.」단순하게 생각하면 됩니다. 취한 지성인은 똑똑한 걸까요? 만취한 인간이 지성을 갖춰서 행동할 수 있는 경우는 극히 드물 겁니다. 아무리 뛰어난들 취해서 자신의 몸을 제어할 수 없는 상황이 되면 어리석은 행동도 할 수 있게 됩니다. 사회에서 나타나는 고위직의 음주운전은 그러한 취기가 부른 실수이지요. 술에 취해 충동적으로 나타나는 욕구와 감정을 이성으로 제어할 수 없었던 겁니다.

 

인간은 본디 동물이므로 욕구와 감정이 먼저 나타나고, 그걸 제어하는 이성이 나중에 나타납니다. 보통은 욕구와 감정이 먼저 나타나도 이성이 제어를 하기 때문에 어리석은 행동을 하지 않게 되지요. 하지만 이때 이성이 제어를 하지 못하게 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욕구와 감정의 충동을 이루기 위해 어리석은 행동을 하게 될 것입니다. 아무리 뛰어난다 한들 말이지요. 술에 취한 인간이 어리석은 행동을 하는 것처럼, 익명의 인터넷에서 어리석은 행동을 하는 것처럼. 지성인의 중우정치는 감성을 제어하지 않는 무책임함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중우정치를 간단히 말하면 우민화 또는 무책임한 지성인들이 만드는 현상입니다. 애초에 우민화가 된 시점에서는 이성 또한 어리석은 행동을 하게 만들기 때문에 제어유무와 관계없이 중우정치가 되기 마련입니다. 우민화가 되지 않음에도 중우정치가 나타나는 것은 지성인들의 무책임함 때문인 것입니다. 그런 관점에서「대중은 개돼지다.」라기보다는「대중은 무책임하다.」라고 말하는 것이 좀 더 타당할 것입니다. 직접적인 연관이 없어 해당 사안을 책임지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감성정치, 감성법치를 요구할 수 있게 되는 것이지요. 책임져야 하는 정치인이나 관료입장에서는 골치 아플 것입니다. 중우정치에 실망하여 엘리트정치로 회귀하는 이유도 이런 책임문제가 가장 클 것입니다.

 

그렇다면 중우정치의 책임은 대중에게 있는 걸까요? 무책임하게 떠드는 대중들이 중우정치가 부르는 폐해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는 걸까요? 저는 아니라고 봅니다. 분명 중우정치의 원인은 대중의 무책임한 충동에 있습니다. 하지만 정치의 역할은 그런 충동을 건전하고 올바르게 이끌어야 하는 것입니다. 정치는 국민의 감성을 보고 정책을 짜고, 관료는 그 정책을 이성적으로 판단하여 가장 효율적이고 타당하게 실행해야 하는 것이겠죠. 설계와 실행은 분명 다른 역할입니다. 정치는 본디 인간이 동물인 만큼 모든 국민들에게 이성을 요구할 것이 아니라, 국민들의 감성이 만족할 수 있는 대안, 정책을 짜서 설득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 충동이 어리석어 보일지라도 외면하지 말고 설득해야 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감정을 언어화하는데 익숙한 사람은 드뭅니다. 애초에 감정은 교육으로 만들어지는 것이지요. 즐겁다, 슬프다, 같은 일차원적인 감정이 교육을 통해 구체적으로 진화합니다. 소설이나 영화를 보며「아, 이런 때엔 기뻐하는 거구나. , 이런 때엔 슬퍼하는 거구나.」라는 식으로 교육을 받습니다. 권선징악 같은 도덕적 교훈이 담긴 이야기를 접하면서 바른 일을 행할 때 기쁨을 느끼고, 바르지 않는 일을 행할 때 슬픔을 느끼도록 만듭니다. 이런 기초적인 윤리가 자리잡지 못한 국가에서는 약자를 멸시하며 쾌감을 느끼는 것이 당연하게 이루어지곤 합니다. 도덕을 절대선인 마냥 가르친 곳에서는 초식화로 인한 폐해가 드러나지만, 도덕 자체를 가르치지 않는 곳에서는 육식화로 인한 폐해가 드러나지 마련이지요.

 

이처럼 사람은 자신의 욕구와 감정을 이미 알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걸 누가 정리를 해줘야 해요. 「이유는 정확히 모르겠는데, 재미있다. 재미없다.」 이런 의견이 나오는 것 또한 자신의 욕구와 감정을 잘 모르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소설이나 영화를 봐도 정확히 모를 때가 있어요. 「왜 내가 재미있지?」 그걸 평론가들이 평론으로 정리해줍니다. 「아 이래서 재미있구나.」정치도 마찬가지입니다. 대중은 자신의 욕구와 감정을 정확하게 알고서 행동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선동을 당하고, 그러니까 중우정치가 되는 겁니다. 따라서 올바른 정치는 대중의 감성의 본질을 파악하여 그것을 만족시키면서 올바른 방향을 지향할 수 있도록 사상과 정책을 짜야 하는 것입니다.

 

「중우정치로 향하고 있다.」그 의미는 정치가들이 국민의 감성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는 뜻이기도 합니다. 예컨대 민족주의자에게 반민족행위를 했던 친일행적을 긍정하는 것, 예컨대 반공주의자에게 반체제주의자들이 했던 종북행위를 긍정하는 것, 예컨대 민주주의자에게 독재자들이 했던 독재를 긍정하는 것. 그들의 역린을 건들지 말고 설득할 수 있는 정책을 짰더라면, 민주주의가 중우정치화가 되는 일은 아마 적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정치가라면 국민의 무책임한 감성을 비난하지 마십시오. 정치의 역할이 그 감성을 이성적으로 듣고 올바른 길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아마 그건 몹시 어려운 일이 될 것입니다. 술 취한 인간을 말로 설득하는 것과 비견될 것입니다. 악플다는 인간을 말로 설득하는 것과 비견될 것입니다. 그래도 국가에서 정치가 하는 일이 바로 그겁니다. 특히 민주주의 국가에서라면 더더욱.

 

한국정치 갈등의 본질은 간단합니다.「피해자들로 형성된 진영논리가 만든 몰이해.」민족주의자는 반민족주의자를 비난합니다. 그런데 그 비난이 같은 진영으로 여겨지는 반공주의자에게도 향하게 됩니다. 반공주의자는 반체제주의자를 비난합니다. 그런데 그 비난이 같은 진영으로 여겨지는 민족주의자에게도 향하게 됩니다. 서로가 잘못된 대상을 상대로 공격하고 자신이 공격받았다고 생각하여 갈등이 일어나는 겁니다. 거기서 민주주의자는 독재자를 비난합니다. 그런데 그 비난이 같은 진영으로 여겨지는 반공주의자에게도 향하게 됩니다. 반공주의를 내세웠던 정치가가 독재를 했으니까요. 민족주의자, 반공주의자, 민주주의자는 모두 피해자들로 형성된 집단들로 그들에겐 모두 정의가 있습니다. 그 독선적인 정의가 이성을 마비시켜 감정으로 표출되게 만들어 한국정치를 중우정치로 향하게 만들었지요. 민족을 위해서 공산독재와 손을 잡은 민족주의자. 반공을 위해서 독재자를 지지했던 반공주의자. 그리고 그들을 이해하지 못했던 사람들. 각각의 콘크리트 같은 지지자들의 근본은 피해자의 정의에 있습니다.

 

부디 앞으로의 정책은 그들의 무책임한 감성을 설득할 수 있는 방향이 나오길 바랍니다. 제발 역린은 건드리지 마세요. 감성이 폭발합니다. 북한 얘기가 나오면 이성이 온데간데 없어지잖아요! 어느 쪽이든.

 

진영논리 때문에 뭘 하든 찬성하고 뭘 하던 반대하는 상황 속에서 대외적으로 골치 아픈 사건들이 터지고 있네요. 무언가를 행할 때엔 올바른 일도 좋지만, 그 올바른 일을 행할 때엔 국민들을 설득할 수 있는 방안을 반드시 마련하길 바랍니다. 어떤 정책이든 정론이 없으면 반대진영으로 인해 국론이 분열될 것입니다. 중우정치가 지속되는 한, 그리고 그 후에도 가능하면 어떤 정책이든 설득논리가 갖춰줘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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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로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반공주의자들은 공산주의에 맞서 자신들을 보수라고 주장하지요. 그런데 만약 반공주의자들과 갈등을 빚은 자들은 민족주의자들이라면, 반공주의자들은 보수가 아니라 진보라고 생각됩니다. 민족주의가 먼저 나왔잖아요. 보수와 진보는 시대별 사상에 따라 결정되는 것으로 생각되므로 한국의 반공주의는 진보였다고 말하는 것이 타당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과거의 진보죠. 그리고 현시대에서는 민족주의건 반공주의건 전부 보수적인 사상입니다. 바뀌는 것이 없으니까요. 새 사상이 필요할 때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건 생각하는 사람의 몫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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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세상이 새장이 세장이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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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온NT병사    친구신청

현재 우리나라는 분노와 혐오가 국민들을 지배하고 있죠
여,야 할것없이 정치가들은 이것을 이용하고 있고요
이런 상황이 계속 되어간다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결고 밝지않을겁니다
[기획] 예능프로그램 기획, “취중진담” (2) 2020/01/20 AM 12:06

예능프로그램 기획, “취중진담

 

 

 

표면은 게스트의 솔직한 이야기를 듣는 프로그램, 이면은 음주예절을 바로잡는 프로그램

 

기획요약: 취중진담은 어른용 인터뷰프로그램이다. 중상모략에 휩쓸리기 쉬운 유명인이 미리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공개함으로써 불필요한 가십거리에서 해방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다른 인터뷰 프로그램과 달리 알코올의 도움으로 보다 솔직하게 공개한다는 이미지를 줄 수 있다. 사람은 보고 배운다. 지금까지 잘못된 음주예절로 인해 음주로 인한 사회적 갈등과 피해가 많았다. 음주강요, 음주폭력, 음주운전이 바로 대표적이다. 자연스럽게 음주예절의 모범을 보여 사회의 음주예절을 바로잡는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은 통제된 것이 많은 사회입니다. 일정의 자유를 헌납하고 안전을 영위하고 있지요. 대표적인 것이 주민등록증입니다. 국민을 국가에서 관리하여 사건사고를 최대한 줄이고 있습니다. CCTV도 그렇지요. 그 외에 총기금지, 포르노금지, 마약금지 등 사회에 해를 끼칠 수 있는 것은 일률적으로 막아 그로 인한 사고를 미리 예방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통제를 우리는 자연스럽게 받아드리고 있지요. 반면 미국은 자유가 자연스럽습니다. 어떤 사건사고가 발생해도 총기소지의 자유를 막을 수는 없었지요. 유치원생이 총기사고 방지대책을 배워야 한다는 것은 상당한 문화충격이었습니다. 한국의 안전과 미국의 자유. 어떤 것이 더 가치 있는 걸까요?

 

어쨌든 이런 안전한 한국에서 음주는 골치가 아픕니다. 오랜 문화로 자리잡은 음주는 안전을 명목으로 통제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술로 인해 하루에 13명이 사망하고 10조에 가까운 사회경제적 손실비용이 나타나도 통제하기 어렵지요. 기껏해야 술 광고 통제나 음주사고의 형량증가 정도일 것입니다. 설령 금주법을 시행한다고 해도 막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막히기는커녕 국가를 비난하며 밀주가 성행하게 되겠지요. 역사가 그걸 증명하고 있습니다.

 

저 자신은 굳이 음주가 필요한 사람은 아닙니다. 마시지 않아도 괜찮기 때문에 막는다고 해도 별 상관은 없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바르게 느껴지지는 않습니다. 음주 자체가 마약이나 독약 같은 인체에 치명적인 영향을 끼치는 것이 아니라면 그 정도의 일탈을 허용되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단지 음주가 만드는 사고가 문제가 될 뿐이지요. 음주 자체가 아니라, 음주사고를 막을 수가 있다면 음주로 인한 인명피해와 손실이 줄어들 것입니다. 그리고 그걸 막을 수 있는 것은 강제적 통제(, 방송)이 아니라 자발적 통제(도덕, 예절)일 것입니다. 그래서 음주에 관련된 예능 프로그램을 생각해봤습니다.

 

 

 

저는 뒤에서 험담하는 걸 즐기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그걸 들어줄 수 밖에 없을 때가 있었습니다. 참고 견뎌야 했어요. 그냥 계속 들어주기만 하다가, 험담 자체를 줄이는 방법을 알게 되었습니다. 먼저 비교적 별로 중요하지 않는 부분의 결점을 이야기해보는 것이었어요. 예방주사 같은 거죠. A에 대한 험담이 주제로 올라갈 때, 미리 A의 약한 결점을 이야기하며 주제를 돌리면, 대화의 흐름을 끊지 않으면서 A에 대한 험담을 줄일 수가 있었습니다. 말하기 나름이라, 잘못하다간 A의 험담을 늘릴 수 있지만, 잘만 말하면 A에게 친근함을 느끼게 할 수 있는 결점을 이야기하여 결과적으로 호의를 느끼게 만들 수도 있었습니다. 범죄 수준의 결점보다는 말실수나 우스꽝스러운 태도 수준의 결점이 훨씬 더 나은 결과를 만들어냈습니다.

 

이후 햄릿에서 비슷한 이야기를 접했습니다. 폴로니우스가 아들의 품행을 알기 위해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 이런 식으로 먼저 물어보게 만듭니다. <그자의 아버지와 친구들, 그리고 그 당사자를 약간 알고 있는데.> <약간은 알지만, 잘은 모르오. 그렇지만 내가 아는 사람이 그 사람이 맞는다면, 그자는 매우 방종하고 이러이러한 것에 빠져 있지요.> 그는 이러한 비방이 아들의 이름을 더럽힌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비방은 조절하기 나름이라도 생각했지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다 경험하는 방종의 오점이라면 이미지에 상처를 주지 않는다는 거였습니다.

 

저도 그 의견에 동의합니다. 약한 결점은 이미지에 상처를 주지 않지요. 오히려 친근함을 주는 경우가 많을 겁니다. 남들이 안보일 때엔 코를 판다거나,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 방귀를 뀐다거나 하는 경험은 결점이 될 수도 있지만 이미지에 큰 타격을 주기는 어렵겠죠. 성직자나 아이돌 같은 맹목적인 대상이 아니라 같은 인간이라면, 오히려 친근함으로 호의를 안겨줄 수도 있을 것입니다. 더불어 약한 결점은 이미지구축에 도움을 주어 사소한 중상모략에 대중이 휩쓸리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미 이러이러한 사람이다, 라는 인식이 있기 때문에 의심하지 않는 것이지요. 지나치게 선한 장점만 알려진 사람은 오히려 의심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람이 그럴 수가 없을 텐데, 단점 하나쯤은 있을 텐데, 그게 그거 아닐까?

 

 

 

취중진담(가명)은 그러한 예방주사 역할을 하는 프로그램이 될 수 있을 거라 봅니다. 음주로 자신의 사소한 결점을 이야기하는 것이에요. 방송은 게스트의 결점으로 흥행을 하고, 게스트는 자신의 결점으로 이미지를 구축합니다. 술을 마시면서 과거에 그런 실수를 했었지, 라고 말하면 음주를 하며 솔직하게 이야기했던 자신들의 과거가 떠올라 많은 사람들이 진실로 받아드리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공감하게 될 것이고요.

 

지금까지 인터뷰프로그램은 많이 아는 건 아닌데, 고급적인 느낌은 아니었다, 라고 생각합니다. 좀 더 대중적이지 않았나 싶습니다. 좀 차별화를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더군요. 어떤 바 같은 곳에서 칵테일을 기울이며 마시는 것이 어떨까 싶습니다.

 

 

 

음주사고는 음주예절을 바로잡는 것에서 시작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강제로 막는 것은 음지에서 사고를 더 크게 만들 뿐이지요. 음주사건사고를 접하게 되면 짜증이 나서 아예 막는 것이 나은 게 아닐까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만, 그래서는 안되겠지요. 음주의 미화 때문에 양지의 방송에서는 공공연하게 방영하기 어려운 것을 압니다. 그러나 그런 것이 음주예절을 제대로 전파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차라리 음주예절(강요하지 않는다, 취하면 얌전하게 집에서 잔다, 운전하지 않는다. )을 자연스럽게 전파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음주사건사고를 줄이는 데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안전을 위해 통제된 것이 많은 사회, 술까지 통제하면 국민은 더 큰 일탈을 바라게 될지도 모릅니다. 인간은 선도 악도 아닙니다. 육식이 무조건 나쁜 것도 아니고, 초식이 무조건 바른 것도 아닙니다. 음주의 양면성을 고려하여, 무조건 막는 것이 아니라, 사건사고를 방지할 수 있도록 사회의 방향을 결정하는 것이 마땅하다 봅니다.

 

제발 좀 술 마시면 운전하지 마세요. 빨리 자율차량이 완성되어야지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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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상에서 스마트폰이 떨어지니 액정에 깨졌습니다. 그리 높지 않은데빠싹하고 깨지는데 허망하더군요. 다음에는 다른 회사 제품도 고려해야겠네요. 슬픕니다. 약정도 남아있는데 어떻게 하지.

 

 

 

초식의 죄는 천천히 써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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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중건담
술 마시면서 건담 조립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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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티비에서 음주와 관련된 것들은 빠지는 추세라 쉽지 않을 듯
캬~ 하는 것도 안되고 광고에 연예인들 나오는 것도 규제하자는 움직임이 있던데 음주를 주제로 하는 방송은 안 될 것 같습니다

뜬금없긴 하지만 실제 음주 사건 사고를 재현해서 최종 법원 판결을 얼마 받았는지 출연한 패널들이 맞추는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일반 시민들과 동떨어진 법원의 주취감경 판결 관례를 꼬집는 사회고발 프로는 어떨까요
[기획] 예능프로그램 기획, “귀소본능” (4) 2020/01/12 PM 11:55

예능프로그램 기획, “귀소본능

 

 

 

집으로 돌아가는 예능 귀소본능” (또는 비둘기)

 

기획요약: 귀소본능은 특정한 지역에서 초대 받은 게스트가 말을 듣지 않는 고정출연진들을 데리고 문명의 도움 없이 시간 내에 집으로 돌아가는 예능이다. 말을 듣지 않는 고정출연진에게 고통 받는 게스트를 보며 웃고, 이런 저런 다툼 끝에 협력하여 길을 찾는 것에 몰입하고, 고생 끝에 집에 돌아가 쉬는 모습에 공감한다. 게스트에게 감정이입을 하느냐, 고정출연진들에게 감정이입을 하느냐에 따라 만족하는 감정이 다를 것으로 예상한다. 이러한 구성은 이른바 조별과제나 스타크래프트 유즈맵의 협동 게임을 참고하면 이해에 도움이 될 것이다.

 

 

 

계기

 

어떤 것이든 생각해낼 수 있다. 이런 마음가짐으로 기획을 해봤습니다. 사실 예능을 자주 본 건 아니어서 스스로 의문이 들기도 했어요. 할 수 있을까? 정말 본 적도 적도 해본 적은 아예 없는 기획이었죠. 그래도 많은 고찰을 통해 인간은 어느 정도 안다고 생각하고 있으니까 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왜 웃고 왜 울고 왜 감동하는지 그에 대한 본질적인 탐구를 통한 결론이 나온다면 아마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어요. 그래서 생각했습니다.

 

우선 생각하는데 있어 도덕과 규율과 관습은 사고한계를 결정하는 요소는 아니었습니다. 생각하고 나서 어떤지 판단했죠. 자신의 도덕관념, 가치관, 사상을 접어두고 인간이 무엇을 즐기는지를 널리 알려진 사실 나열을 통해 객관적으로 떠올렸어요. 공감, 감동, 환희, 쾌락, 경외, 여유, 안전, 조소, 혐오, 미움, 질투, 지배 등 어떤 것에 충족되어야 만족감을 느끼는지에 대해 생각해봤습니다. 그걸 통해 나온 결론을 가지고 사회에 적용했죠. 그 적용은 이미 있는 예능프로그램들을 참고하는 것으로 사회적 허용범위를 고려했습니다. 12일이나 무한도전이나 냉장고를 부탁해 같은 프로그램들을 말이죠. 그렇게 나온 것 중 하나가 이 귀소본능입니다.

 

줄기 자체는 군 훈련 방식에서 따왔어요. 아무 곳에 부대를 떨군 다음 진지로 복귀하는 훈련이 있었거든요. 정확히는 기억이 나지 않는데, 적절한 장비를 주지 않고 시간 내에 걸어서 복귀하는 훈련 프로그램이었던 것 같아요. 그게 떠오르고 나자 귀소본능이라는 예능이 떠올랐습니다. 아무 곳에서 떨군 다음 집까지 돌아오는 예능.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이것저것 떠올려봤습니다. 어떻게 웃게 만들 것인가? 어떻게 몰입하게 만들 것인가? 어떻게 공감하게 만들 것인가?

 

처음엔 그저 집으로 돌아가는 예능 말고는 떠오른 게 없었어요. 그런데 미리 생각해둔 인간이 만족하는 것들에 대해 떠올려보니 누군가 고생해야 된다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아무 갈등 없이 화합해서 집으로 돌아가는 건 별 재미가 없을 것 같았어요. 그렇다면 누가? 여기서 현대사회의 인식이 작용했습니다. 약자가 고생하는 건 괴롭힘입니다. 그런데 강자가 고생하는 건 웃음거리입니다. 사실상 둘 다 웃음거리가 될 수 있지만, 도덕적인 관점에서 약자가 고생하는 건 사회적 허용범위 밖에 있는 것이었죠. 아마 과거 로마의 콜로세움에서는 사회적 허용범위 내였을 겁니다. 따라서 누군가 고생하는 모습으로 웃음거리가 되기 위해서는 강자 또는 대등한자가 필요했습니다. 그 결과가 어떤 리더가 말을 듣지 않는 사람들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예능입니다.

 

 

 

1. 제목: 귀소본능 또는 비둘기.

 

귀소본능이 프로그램을 설명하는 가장 적절한 단어긴 한데, 너무 딱딱하죠. 그래서 연상을 하게 만드는 비둘기도 괜찮을 것 같아요. 비둘기에게 귀소본능이 있으니까요. 근데 비둘기도 적절한 것 같지는 않은데어쨌든 오프닝에 비둘기 날게 만들어서 어디론가 가는 장면을 촬영하면 괜찮을 것 같네요.

 

 

2. 방식: 특정한 지역에서 초대 받은 게스트가 말을 듣지 않는 고정출연진들을 데리고 문명의 도움 없이 시간 내에 집으로 돌아감.

 

처음은 헬기나 차량에서 별다른 장비 없이 오지에 떨어지게 만들면 될 것 같아요. 조난 컨셉이죠. 어디에 떨궈도 귀소본능으로 집으로 돌아가는 비둘기처럼 어디에 떨궈도 지식으로 집으로 돌아가는 인간을 보여주는 예능이 될 것입니다.

 

처음에는 팀을 나눠서 먼저 도착하는 쪽이 승리하는 걸 떠올려보기도 했어요. 서로 빠르게 도착하는 것에만 진지하게 몰두하는 것이었죠. 그런데 그러면 재미가 없을 것 같더군요. 그건 예능이 아니라 다큐 같았어요. 아무래도 첫 발상이 군 훈련이다 보니까 그런 식으로 떠올랐던 것 같아요. 그리고 그건 감정이 분산될 우려가 있을 것 같았어요. 그냥 차라리 한 팀에 몰입하는 게 나을 것 같았습니다. 다른 예능프로그램을 보면 두 팀도 괜찮을 것 같기도 한데, 결과적으로 한 팀이 낫다고 판단했습니다.

 

한 팀으로 생각하니 경쟁요소나 갈등요소를 다시 생각해야 됐어요. 그 결과 팀장과 팀원의 경쟁과 갈등이 떠올랐습니다. 집으로 가고 싶은 팀장과 말을 듣지 않는 팀원의 갈등은 상당한 재미를 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팀장을 게스트로 결정한 것은 매번 바뀌어야 신선할 것 같았어요. 그렇다고 전부 매번 바뀌면 캐릭터가 고착될 수 없기 때문에 팀원은 고정출연진으로 했습니다. 고생하는 팀장이 아무런 이익이 없다면 동기부여도 안되고, 시청자들이 공감할 수도 없기 때문에, 시간 내에 집으로 돌아가게 되면 방송국에서 작은 소원을 들어주는 것으로 하면 좋을 것 같더군요. 어느 방송 출연 요구를 들어주거나, 어떤 사람을 만나게 해주거나, 상금을 주거나 등.

 

특정한 지역에서 집으로 돌아갈 때, 문명의 도움을 받으면 너무 쉽기 때문에 재미가 없을 것 같았어요. 그래서 기본적으로 문명의 도움을 받지 않고 출발합니다. 제작진 측과 거래하여 몇 가지 문명의 도구를 사용할 수 있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요. 협상에 따라 대중교통 이용권 30분 가령 부여 뭐 이런 것도 괜찮아 보입니다. 다른 예능프로그램에서 이미 이런 것은 많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적용하는 데는 그리 어렵지 않을 거라 봅니다.

 

갈등이 일어나라면 팀원들이 말을 듣지 않아야 하죠. 그럴 때 미리 캐릭터를 정해줄 것인지, 아니면 출연진의 개성에 기댈 것인지, 아니면 매 편 역할을 정해서 말을 듣지 않게 할 것인지 고민해봤어요. 여긴 아직 명확하게 결론이 나오진 않았어요. 미리 캐릭터를 정해주거나 개성에 기대는 건 아무래도 잘 이미지가 떠오르질 않아요. 출연진이 결정된 것이 아니기 때문인 것 같아요. 아마 그럴 때엔 캐릭터를 정하고 출연진을 고르는 것이 타당하겠죠. 매 편 역할을 정하는 것은, 아이 역할, 겁쟁이 역할, 옹졸이 역할 같은 걸 주고 연기하라고 하는 건데그건 너무 인위적이라 몰입에 해가 될 것 같더군요. 매칭되지 않는 역할은 그것 나름대로 웃음을 줄 수 있겠지만, 출연자 자체가 캐릭터가 되기는 어렵겠죠. 그래서 가능하면 센스 있는 출연진을 모집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협동. 갈등을 마치고 협동하는 장면이 하나쯤은 있어야 하는데, 도대체 언제 협동하게 해야 할지. 가령 대중교통 이용권을 얻을 수 있는 게임을 제안해주면 그 때 협동하게 하면 괜찮을 것 같은데.. 좀 인위적인가요? 아니면 팀장이 시간 내에 도착하면 맛있는 걸 주겠다면서 설득하거나, 어떤 위기의 상황에서 협동하게 만들면 좋을 것 같네요. 애초에 예능인데 어떤 위기를 조성해야 할지 음. 허용범위가 어디까지인지. . 이 부분은 아직 장면이 잘 그려지지 않네요.

 

돌아갈 곳은 집과 방송국 중에 하나를 고르게 할 것입니다. 가능하면 집이 좋을 것 같아요. 여행이나 모험이나 조난을 마치고 집에서 쉬는 모습은 좋은 장면이 나올 것 같아서요. 게스트인 팀장의 집에 가서 마무리의 식사를 하며 마치는 거죠. 따스한 가정으로 돌아왔다. 기승전결이 적절하게 사용될 것 같습니다.

 

 

3. 대상: 기존 예능에 익숙한 사람들, 조별과제 피해자, 협동 게임을 즐기는 사람

 

기존 예능과 포맷이 크게 차이 나진 않은 것 같아요. 그래서 기존 예능에 익숙한 사람들도 어렵지 않게 즐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거기에 고생하는 팀장에 공감하거나, 고생하는 팀장을 보고 웃거나 하면 될 것 같아요. 빨강이 말을 안 들어! 파랑이 트롤을 했어! 보라 오른쪽이 아니라 왼쪽이라고! 이러면서 화내고 웃는 협동 유즈맵이 많았거든요. 이게 떠오른 건 기획을 만들고 비슷하다고 깨닫고 나서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예전부터 이런 류의 개그를 좋아했던 것 같기도 해요. 재미있어요.

 

 

4. 가치: 생존, 협동, 지식

 

초기안이니 보니까 어떻게 구성될지는 정확하진 않지만, 일단은 조난 컨셉이므로 생존이나 협동을 하는 모습이 가치가 있을 것 같아요.

 

 

5. 유머: 갈등, 고생

 

빨리 가야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는 팀장과 천천히 가도 괜찮은 팀원간의 갈등이 웃음을 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힘들어 쉬다 가요! 밥 먹고 가죠! 나 졸려요! 그러면 업어줘요! 트롤링이 뭐가 더 있더라 

 

 

6. 공감: 조난의 위험, 협동의 어려움, 집의 편안함

 

밖에서 고생하는 모습에 공감하고, 협동에 어려움을 느끼는 것에 공감하고, 집에서 편히 쉬는 모습에 공감.

 

 

7. 위험: 조난

 

보통 걸어서 하루 거리 정도에서 출발할 예정인데, 그러다 보면 밖에서 잠을 자게 돼요. 밖에서 잠을 자는 것 자체가 위험할 것 같네요.

 

 

8. 출연진: 개그 센스

 

개그 센스가 있는 사람이 필요할 것 같아요. 새로운 인물이 좋을 것 같습니다.

 

 

9. 캐스팅: 유능한 사람

 

다방면에 유능한 사람들이 조난 시 사람들을 어떻게 달래고 협동하게 만드는가를 지켜볼 거예요. 유명한 사람이 좋을 것 같습니다.

 

 

10. 프로그램시간: 1시간 가량. 촬영시간은 약 이틀 (걸어서 집까지 가는 시간)

 

너무 길어도 질리고 너무 짧아도 시시하니 하루에서 이틀 거리가 좋을 것 같네요.

 

 

11. 가능성: 해외까지 가능.

 

예전에 80일간의 세계일주를 읽은 적이 있어요. 만약 이 예능이 성공하면 언젠가 세계일주를 기획해 볼만 할 것 같네요.

 

 

 

대본

 

기승전결을 적절히 나눠서 큰 단락만 정해두고 나머지는 출연진에게 맡길 것인지, 아니면 전부 하나하나 대본을 짤 것인지. 어렵네요. 초반에는 어느 정도 대본을 짜다가 캐릭터가 점점 형성되면 출연진 센스에 맡겨도 좋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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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리네요. 다음에 다시 써보죠.

 

다음은 초식의 죄악에 대해 써보려고 합니다. 현대사회의 감춰진 큰 문제가 바로 이것 같아서요.

 

새로운 철학이나 사상이 없는 정당이 새로운 정당이 될 수 있는 건가. 사람만 바꾼다고 새로운 건 아닌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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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허의 강슬기♥    친구신청

브금은 강산에 거꾸로 강을 거슬러 오르는 저 힘찬 연어들처럼

해당금이    친구신청

고장출연진이 계속 말을 안 들으면 민폐캐릭터가 되서 오히려 안 좋아보임
차라리 절친같이 친밀한 사이를 섭외해서 극한 상황에서의 행동을 보는게 더 자연스러울 듯
끝까지 사이 좋게 협조적이면 협조적인대로 아니면 극한 대립이면 대립인대로 혹은 리더십과 팔로워십이 생성되는 과정 등 등장인물마다 다양한 그림이 나올 듯
군대 훈련에서 생각했다고 하니 고정출연자가 있어야 한다면 전문가급 출연진을 섭외해서 정말 필요한 순간이나 위급한 순간에 도움을 주는 역할이 적절할 듯

아리노    친구신청

일본예능에 이런 기획들이 많았죠. 단발성도 있고 장기 플랜으로도 있었고. 요즘 예능들이 너무 길다보니 짧게짧게 편을 나눠서 해도 재밌을거같아요. 그리고 너무 진지 하지 않고 가벼운 예능이 잘 어울렸던거 같습니다. 경쟁적인 부분을 없애고 자기와의 싸움을 중점적으로 해도 괜찮을거 같아요.

그리고 룰이 굉장히 중요했던 것으로 기억.(예를 들면 지나가는 사람한테 먼저 먹을것을 달라고 해선 안된다. 돈은 일해야만 벌수 있다. 등등)

장기 플랜은 웃음과 감동. 그리고 노동에 대한 가치 등등을 알려줄수 있는 좋은 기획의 예능이 될거 같다고 생각합니다.

아 물론 출연자가 유명인이면 좋지만 상당히 고생하는 플랜이라 출연을 해줄지가 문제인거죠 ㅎㅎ

H중의GH    친구신청

kbs에서 했던 "거기가 어딘데"가 좀 비슷해 보이네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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