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일담
용사가 검을 휘둘러 마왕을 물리쳤던 이야기도
풍화된 동상처럼 시간의 흐름에 바래지자
고요했던 광야에 검은 욕망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두려울 것 없어진 권력은 남겨진 부를 향해 달려들었고,
전설을 꿈꾸던 모험가는 서로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마법이라 불리던 지식은 새로운 계급이 되었고,
신화를 구전하던 승려는 거짓된 성서만 읊게 되었다.
하찮은 괴물들이 늘어나고, 다툼이 잦아지자
새로운 세대는 신앙을 버리고, 마왕을 찾았다.
그 시절이야말로 진정한 모험이 있었다며
퍽 잔혹했던 시대를 그리워했다.
신화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애타게 재래를 바랐지만
신탁도, 검도, 용사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나 남겨진 동상을 보라.
날카롭던 검 끝은 부서져 형체조차 없고
선명했던 얼굴은 무더져 윤곽조차 희미하여도
두 발을 딛고 힘차게 서있는 저 동상을 보라.
함께했던 동료들도 여전히 그의 곁을 지키고 있다.
우리는 결코 무릎 꿇지 않으리라, 그리 외치고 있다.
마왕이 사라진 세상.
용사도 사라진 세상.
시시한 악만 들끓는 세상.
하지만 우리는 굴복하지 않으리.
용사라면 분명 그랬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