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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_습작모음] [시] 후일담 (0) 2024/06/07 PM 04:50

후일담



용사가 검을 휘둘러 마왕을 물리쳤던 이야기도

풍화된 동상처럼 시간의 흐름에 바래지자

고요했던 광야에 검은 욕망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두려울 것 없어진 권력은 남겨진 부를 향해 달려들었고,

전설을 꿈꾸던 모험가는 서로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마법이라 불리던 지식은 새로운 계급이 되었고,

신화를 구전하던 승려는 거짓된 성서만 읊게 되었다.


하찮은 괴물들이 늘어나고, 다툼이 잦아지자

새로운 세대는 신앙을 버리고, 마왕을 찾았다.

그 시절이야말로 진정한 모험이 있었다며

퍽 잔혹했던 시대를 그리워했다.

신화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애타게 재래를 바랐지만

신탁도, 검도, 용사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나 남겨진 동상을 보라.

날카롭던 검 끝은 부서져 형체조차 없고

선명했던 얼굴은 무더져 윤곽조차 희미하여도

두 발을 딛고 힘차게 서있는 저 동상을 보라.

함께했던 동료들도 여전히 그의 곁을 지키고 있다.

우리는 결코 무릎 꿇지 않으리라, 그리 외치고 있다.


마왕이 사라진 세상.

용사도 사라진 세상.

시시한 악만 들끓는 세상.

하지만 우리는 굴복하지 않으리.

용사라면 분명 그랬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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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_습작모음] [시] 스물, 어느 봄날 (2) 2024/05/31 PM 05:17

스물, 어느 봄날



책갈피에 끼워둔 꽃잎처럼

바랠지언정

사라지진 않을 그리움.


너를 펼쳐볼 때면

봄결에 잠기다가도

재채기처럼 찾아드는

상실의 자각.

나는 너를 잃고 말았구나.


어느 봄날, 봄날마다

너를 보낸 내가 남아서

앙금처럼 남은 사랑.

다 녹일 때까지

난 더 울어야 하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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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어싸만코    친구신청

아 기가막히네요

사러가자!!    친구신청

표현법 : 직유법, 의인법, 반복법, 대구법
주제 : 스무살의 상실감, 비애
표현상 특징 :
특정 연에 명사형 종결 어미로 여운 형성,
다양한 종결 어미 활용.
[단편_습작모음] [시] 맑음, 때때로 흐림 (0) 2024/05/28 PM 05:32

맑음, 때때로 흐림



흐린 날에 태어난

축축한 쿠키.

눅진함이 좋다나

희한한 녀석.


우산은 두고 와.

비 올 기분은 아니니까.

혹여나 온다면

그때는 젖지 뭐.

네 말마따나

눅눅해지는 것도

썩 나쁘지만은 않다.

바삭한 쿠키가

시늉만 한다며

핀잔을 줄 테지만.


너는 알았니?

달력은 온통 생일날.

이러니 누군들 기억하겠어.

그러니까 축하해.

너만 울진 않았을 거야.

잔뜩 흐린 날이어도.

구름이 안 걷히면

부채질하면 되지.

그래도 흐리다면

비라도 뿌려보지 뭐.


일기장에 적어둘 테야.

"맑음, 때때로 흐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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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_습작모음] 눈물과 산성과, 그리고 또 모두에게. (0) 2024/05/13 PM 06:29

눈물과 산성과, 그리고 또 모두에게.



눈물에게.

한철 장사 마치고도

섬에 남을 거야?

저들의 분노.

저들의 걱정.

저들의 심정도 이해가 돼.

배 끊긴 섬을

결국 너도 떠날 거잖아.

새로운 황금을 찾아.

찌꺼기는 저들 몫으로 남긴 채.

함께 침몰하겠다.

가면 벗고 말할 수 있어?


산성에게.

축제는 끝났어.

이미 꽤 오래전에.

눈물 탓은 절대 아냐.

누구 탓도 전혀 아냐.

절로 그리되었다고

어쩌면 더 슬픈 이야기.

눈물에게 물었지.

너는 여전히 남을 거냐고.

자신에게도 물어봐.

또 친구들에게도 물어봐.

여전히 사랑할 수 있겠냐고.


모두에게.

산유국도 아닌 나라에서

참 오래도 태웠다. 그치?

너무 크게 타올라서

기름 한 방울 남지 않고

동나버렸을지 몰라.

모닥불이었던 적은 있어도

꺼진 적은 없어서

어찌할 바 모르겠다면

그냥 둥글게 모여 서로를 안으면 돼.

겨울은 아주 길고

무척이나 혹독할 테지만

반드시 봄은 올 거니까.


마지막으로.

어이, 이 씨.

쓰레기나 주워.

꺼드럭 거리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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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_습작모음] [시] 공란 (0) 2024/05/08 PM 05:15

공란



방송을 보며 한참을 웃다.

숨 고르는 짧은 침묵마저

못 견디게 지루해져 휙휙 넘겨버렸다.


이어붙인 자극에 익숙해져

여백없는 화면에 길들여져

짧디짧은 암전마저 못 견디게 되었다.


공란은 채워야 한다 배웠기에

억지로붙으며서로를숨막히게한걸까.

다닥다닥붙어버린탓에숨쉴틈도없다.


잠시 멈추어 침묵에 젖어보자.

비었다고 여긴 침묵 속엔 내 심장소리가 있으니.

나라는 감정을 한껏 곱씹어 보자.

깊게 들이쉬고, 마음껏 내쉬자.

공란은 나를 더 선명하게 할 띄어쓰기가 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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