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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일론 머스크와 시뮬레이션 (0) 2021/05/01 PM 07:02

일론 머스크와 시뮬레이션

 

 

 

개인방송을 보다 보면 마치 텔레비전의 채널을 돌리는 것과 같이 예기치 않는 정보를 접할 때가 많다. 그 중 하나가 일론 머스크에 대한 정보다. 그를 다루는 개인방송이 늘어나자, 자연스럽게 그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게 되었다. 정보가 들어오면 자동으로 생각하게 된다. 화성, 무신론자, 시뮬레이션 우주론, 무책임한 장난기, 기행, 노동자 홀대, 가상화폐, 물질자산 매각, 오타쿠, 친중 등 그는 어떤 사람인가?

 

자유주의자라고 하기에는 어렵다. 독재적인 기업 경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주의자라고 하기에도 어렵다. 무노조 경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본주의자라고 하기에도 어렵다. 노동자를 홀대하기 때문이다. 환경주의자라고 하기에도 어렵다. 환경오염이 심한 자산을 소유하기 때문이다. 보수주의자라고 하기에도 어렵다. 혁신적인 사업을 하기 때문이다.

쾌락주의자라고 하기에도 어렵다. 매우 성실하게 일을 하기 때문이다. 반공주의자라고 하기에도 어렵다. 친중 행보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자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물질자산을 매각하는 걸 보면 물질에 대한 집착이 크지 않는 것 같다. 무엇보다 화성 가는 꿈을 가진 사람에게 돈은 화성을 가기 위한 수단일 것이다. 화성을 가겠다는 꿈이 돈을 벌기 위한 기만이었다면 사기꾼이 되겠지만, 그럴 확률이 높지는 않아 보인다. 만야 그럴 경우 추측에 대한 모든 전제가 무너지므로 이건 넘어가도록 하겠다. 본인 스스로 문화적 자유주의나 경제적 보수주의라고 하는 것처럼 그는 부분부분 어떤 사상에 부합되는 면은 있으나 완전하지는 않다고 보여진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면 그는 무엇으로 정의할 수 있는가? 본인 입으로 말한 시뮬레이션 우주론자라고 생각된다. 시뮬레이션 우주론이란 이 세상이 컴퓨터 시뮬레이션이라고 보는 사상이다. 인류문명이 발달하여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컴퓨터로 구현하게 된다면 그 가상세계는 지금의 현실세계와 다른 것이 없을 것이다. 만약 그 전제가 옳다면, 지금 이 세상도 그런 식으로 만들어진 가상세계라 하더라도 이상할 것이 없다. 이외 다양한 근거인 빛의 속도나 양자역학이나 리만의 가설 등에 대해서는 생략하겠다. 중요한 것은 이걸 거의 확정적으로 믿고 있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걸 어떻게 받아드렸을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이것이 그의 행동원리를 결정하고 있다고 본다. 그의 다양한 특징이 시뮬레이션 우주론자라는 가정하에 들어맞는 경우가 많다. 이는 후술하겠다. 일론 머스크가 모든 걸 걸고 화성에 가려고 하는 것과 시뮬레이션 우주론자라는 걸 조합하자 어떤 것이 떠올랐다. 어쩌면 그는 이 세상이 시뮬레이션인지 확인하기 위해 화성에 가고 싶어하는 것이 아닐까?

 

이 세상이 시뮬레이션이라면, 효율 상 지구를 중심으로 시뮬레이션 했을 확률이 높고, 그런 상황에서 지구 내 생명체가 지구를 벗어나 화성에 도달하게 된다면, 시뮬레이션에 어떤 변화가 있을지도 모른다. 시뮬레이션은 보통 어떤 목적이 있어서 하기 마련이다. 심즈 같은 게임은 시뮬레이션 자체를 보며 즐기고, 문명 같은 게임은 경쟁 속에서 어떤 조건을 달성하면 누군가의 승리로 마무리된다. 만약 이 세상이 문명 같은 시뮬레이션이라면, 지적 생명체가 지구를 떠나 화성에 도착하는 순간, 과학승리가 되어 시뮬레이션이 종료될 수도 있다. 그걸 확인하게 위해 모든 걸 걸고 화성에 가는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만약 문명이라면, 재산은 승리조건에 포함되지 않는다. 엄청난 부를 지닌 사람이 등장해도 세상은 변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는 물질 자산을 매각했다. 현실 같은 가상현실의 도입은 승리조건에 포함될 수 있다. 그걸 해낸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그는 인공지능의 발달이 위험하다 말하면서도, 직접 인공지능 산업에 뛰어들었다. 견제를 하면서 직접 한다. 세계정복도 승리조건에 포함될 수 있다. 그걸 해낸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스타링크로 통신을 장악하고 인류의 뇌에 칩을 박아 제어한다. 세계정복이 목적인 중화사상을 가진 중국과 가까이 지내려 한다.

 

보통 종교인이 사후세계에 대한 인식은 다음과 같을 거라 본다. 대체로 믿지만 확신은 못한다. 확신했다면 사이비 종교인들과 마찬가지로 죽음을 선택하고 사후세계로 떠날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다. 그도 아마 비슷할 거라 본다. 매우 높은 확률로 이 세상이 시뮬레이션이라 생각하지만 확신은 못할 것이다. 확신은 못하니까 가상과 현실의 가능성을 둘 다 가지고 활동하고 있을 것이다. 가상이라 거의 확신하고 있으니 일단 화성에 도착하는 것 자체가 목적이고, 가상이 아니라 현실이라면 우주 개척을 통한 인류 구원이 목적이라 본다. 최초 그가 우주에 관심이 있었을 때에는 순수하게 우주에 대한 호기심을 가지고 인류의 미래를 걱정했을 거라 본다. 그러다가 시뮬레이션 우주론을 접하고 나서 그의 사상과 신념이 바뀌게 된 것이 아닐까 싶다.

 

자 세상이 시뮬레이션이라 확정해보자. 그러면 세상은 어떻겠는가? 현실세계에서 만들어진 가상세계와, 가상세계에서 만들어진 가상세계로 나뉠 것이다. 지금 이곳이 시뮬레이션이라 하더라도 그 시뮬레이션을 만든 곳이 반드시 현실일 거란 보장은 없다. 시뮬레이션 내에서 시뮬레이션이 만들어졌을 수도 있다. 그러면 인류는 어떻겠는가? 시뮬레이션으로 만들어진 인공지능, 즉 NPC다. 참여가 가능한 시뮬레이션이면 일부는 가상현실의 게임처럼 시뮬레이션을 만든 곳의 존재가 접속했을 수도 있다. 인류의 사후는 두 가지로 나뉠 것이다. NPC의 경우에는 정보가 보존되지 않는 한 소멸한다. 시뮬레이션을 만든 곳의 존재라면 만든 곳의 세상에서 다시 깨어날 것이다. NPC의 경우에는 정보를 보존할만한 가치가 있을 때에만 생존할 수 있을 것이다. 시뮬레이션에 어떤 지대한 영향을 끼친 NPC는 그 정보가 보존될 수도 있다고 본다. 종교적으로 말하자면, 이는 천국이나 영생의 조건이 된다.

 

시뮬레이션 우주론자라면 인류와 환경을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NPC와 컴퓨터 그래픽으로 여길 것이다. 하나 그걸 확신하고 있지는 않다. 갈팡질팡 애매하다. 이 점이 그의 모순적인 행동원리를 결정했다고 본다. 인류의 미래를 위해 화성을 개척하고 친환경을 추구하지만, 노동자는 가볍게 여긴다거나 환경오염이 심한 자산을 보유한다. 문화적 자유주의를 추구하지만, 표현의 자유가 부족한 중국과 친하게 지내려 한다. 엄청난 부자지만, 물질자산에 집착하지는 않는다. 성실한 경영자지만, 무책임한 장난이나 기행을 일삼는다. 쾌락주의자 같은 면이 있음에도, 원대한 꿈을 가지고 있다. 이외에도 모순적이고 조각나 있는 특성들은 이처럼 시뮬레이션 우주론자라는 것으로 바라보면 해석이 된다. 이는 본인 입으로 말한 것을 그의 행동에 대입했을 뿐이다. 그가 언제부터 시뮬레이션 우주론을 알고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거의 확신하고 있다는 영상이 올라온 시기는 2016년이다. 그가 화성에 사람을 보내겠다고 선언한 시기도 2016년이다. 그 시기에 어떤 심정 변화가 있었을까? 어쨌든 그는 한쪽으로는 현실이라 생각하며 성실하게 일을 하지만, 한쪽으로는 가상으로 생각하며 쾌락주의적으로 행동하는 것 같다.

 

시뮬레이션 우주론은 진리일까? 이는 과거 인류의 행적을 돌이켜 생각해보면 예상할 수 있지 않나 싶다. 수천 년 전, 우주의 진리를 주장한 집단이 있었다. 그를 가리켜 종교라고 했다. 당시 인류가 가진 지식으로는 그들이 말하는 신과 영혼과 사후세계 같은 것을 진리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와 비슷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인류가 아는 우주의 영역이 4%라는 얘기가 있다. 4%만으로도 공통된 질서 속에서 많은 걸 유추할 수 있기는 하다. 하지만 많이 아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 지식을 쌓은 인류가 내놓은 답이 진리라 확정 짓기는 어려운 게 아닐까 싶다. 물론 시뮬레이션 우주론은 충분히 가능한 얘기기는 하다. 이치에는 맞는다고 본다. 그러나 증명되지 않는 한, 그것은 과학시대의 종교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본질을 찾는 자는 실제 현상에 주목한다. 그 어떤 황당무계한 것도 현상이 나타나고 그에 따른 과학적 증명이 가능하다면, 그것을 외면하지 않고 받아드린다. 공룡, 진화, 우주 등에 대한 지식이 없었던 전지 증명에 실패한 종교의 주장조차도 실제 현상이 나타나고 과학적 증명이 가능하다면 받아드릴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시뮬레이션 우주론도 어떤 과학적 근거가 마련된다면 진리라 받아드릴 것이다.

 

시뮬레이션 우주론이 진리라고 하더라도 별반 달라질 것은 없다. 애초에 인간은, 아니 모든 지구 내 생명체는 망망대해 위에 떠있는 조각배에 타있는 것과 같이 아슬아슬한 삶을 이어가며 불투명한 미래로 나아가고 있다. 지구가 데굴데굴 돌아가면서 어디론가 가고 있다. 가면서도 언제 무작위로 삶이 끝날지 모른다. 운석이 떨어지는 건 알 수라도 있는데 감마선 폭발 같은 게 터져 지구에 영향을 끼치면 갑작스런 인류의 몰락이 시작된다. 그 무엇이 진리일지라도 이 세상은 처음부터 안전한 적이 없다. 내일 당장 시뮬레이션이 끝나 우주가 종료가 되는 것이나 갑작스런 인류 멸종이나 별 차이가 없다. 인간 개개인도 별반 차이가 없어진다. 왜냐하면 동등한 객체이기 때문이다. 시뮬레이션을 만든 곳에서 게임처럼 들어온 존재도 있을지 모르지만, 있더라도 그리 많은 수는 아닐 것이다. 어차피 대부분 같은 종류라면 굳이 헤맬 필요도 없다. 평소처럼 대하면 된다. 게임 내 역할을 수행하는 이가 남녀노소 상관없이 역할만 수행하면 우대하는 것처럼, 역할주의적 관점에서 보면 별 차이는 없다. 이 세상이 그 무엇일지라도 혼란해 하지 말고 진정한 진리를 향해 나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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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화폐 중 탈중앙화 특성을 가진 암호화폐가 끼치는 영향에 대해 쓴 적이 있지요. 그건 변함이 없습니다. 책임지는 이익을 추구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도박성은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요? 누군가 이것은 제로섬, 돈 넣고 돈 먹기라는 말을 한 적이 있지요. 그래서 누군가는 반드시 손해를 본다고 했어요. 그런데 이것은 세계적 도박입니다. 환경에 따라 한국에서 전부 딸 수도 있고 전부 잃을 수도 있어요.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당연히 전부 따는 쪽으로 가야겠지요. 도박적 재능을 가진 이들이 이익을 보고 그에 따른 세금을 내면 한국은 이득을 볼 수 있습니다. 이건 이미 게임이에요. 머니게임. 전세계적 도박판에 도박사들이 가서 돈 내기 걸고 싸우는 거죠. 그런 상황에서 돈 좀 더 벌어보겠다고 초짜 꼬셔서 데려가는 건 한국의 패배를 자초하는 일인 것 같습니다. 게임에서 지는 거죠. 게임을 즐기는 국가에서 그건 좀 자존심 상하는 일이죠. 이걸 국가에서 권장할 수는 없다고 봐요. 단순 도박도 어려운데, 그 도박 자금의 출처가 불법자금일 확률이 높으니까요. 한국은 대외적으로 정도를 걷는 국가라 여겨진다고 봅니다. 그러니까 무비자 입국 국가 수가 많은 거겠죠. 국력이나 외교나 동맹의 영향도 크겠지만요. 그런 상황에서 국가에서 그걸 인정하고 권장하기는 어렵다고 봅니다. 그렇지만 내부적으로 암묵적인 인정을 받기 위해서라면, 초짜 데리고 가서 다단계 식으로 뜯어먹을 생각을 하기보다는, 세계의 거대세력과 맞서 싸워서 수익을 올리고, 그에 해당하는 세금을 내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즉, 어차피 못 막을 거면 딸 수 있는 사람만 하길 바랍니다. 내부적으로 돈 먹고 돈 먹기가 안되도록 구조를 만드는 것도 필요하겠지요. 결론을 말하죠. 가상화폐는 현재 도박성이나 탈중앙화나 환경오염이나 그래픽카드 희소현상 등으로 소유를 권장하지 말아야 할 자산입니다. 그러나 소유를 허용할 수밖에 없다면, 수익을 올릴 수 있는 도박적 재능을 가진 사람만 해서 정당하게 세금을 내면 된다고 봅니다. 그러면 국가적 차원에서 공식적으로 인정받기는 어려우나, 국민들 사이에서 인정할 수 있다는 공감대는 형성될 것입니다.

 

어쨌든 변화가 필요한 것 같네요. 과거에 머무르고 싶지 않아요. 산업혁명 시대나 제국주의 시대나 일제강점기 시대나 군부독재 시대에 머물러 있는 건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아요. 지긋지긋 해요. 예전부터 느껴왔던 것이 있어요. 국가 자체가 꼭두각시로 움직이는 느낌. 특히 유교에 영향을 받는 한국은 그런 것이 더 심하겠지요. 연상의 꼭두각시. 연령, 성별, 빈부 따위와 관계없이 뭔가에 조종당하는 느낌. 선동하고 선동 당하고, 내로남불적인 사람들. 북풍을 기반으로 한 평화의 댐 선동이나 반미를 기반으로 한 광우병 선동이나 일본 물건 쓰면서 맹목적인 반일을 하거나 중국 게임 하면서 맹목적인 반중을 하는 건 비슷하지요. 대부분 비슷한 일들 해왔으니까 다 청산하고 이제는 정말 새로운 길을 걷고 싶네요.

 

한국이나 일본이나 둘 다 과거에 머물러서 중국의 야욕에 대응하기 어려운 상황인데, 좀 심플하게 갔으면 좋겠네요. 조선시대 다수의 기득권은 어리석은 멍청이였습니다. 일부 개화파나 독립운동가 같은 이들을 제외하면 추악한 인간들이었습니다. 당시 동정 받아야 할 사람들은 조선의 백성들이었어요. 그 외는 대부분 쓰레기입니다. 괜히 그런 거 인정 안하고 일본 탓만 하는 건 조선에 머물러 있다고 봐야 하는 거죠. 마찬가지로 일본이 과거에 저질렀던 잘못을 부정하는 건 일제에 머물러 있다고 봐요. 조선과 한국이 별개의 국가이면 조선 비판이 어려울 것이 없겠죠. 마찬가지로 일제와 일본이 별개의 국가라면 일제 비판이 어려울 것 없다고 봐요. 그러면 과거를 부정할 필요가 없겠죠. 물질적인 이유가 있다고들 하지만 그런 것 빼더라도 과거 부정은 오히려 과거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라 봅니다. 정치적 뿌리가 연결되어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지요. 일단 객관적으로 봐봅시다. 한국 주장은 위안부 강제 동원이나 강제 징용 있었다고 하죠. 일본은 없었다고 하고요. 그래요. 일본 말대로 자발적으로 한 사람도 있을 수도 있어요. 지금도 몸 파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때라고 없을까요? 그런데 강제 동원이 아예 없었다는 건 말이 안돼요. 여성의 순결을 중시하던 시대였는데, 아무리 많은 돈을 줘도 거부할 사람이 있었을 거예요. 무엇보다 당시 인권이 그렇게 높았다고 보기는 어렵지요. 사실 한국에서도 그런 역사가 있거든요. 과거 한국에서 미군을 상대하기 위한 위안부가 있었고, 거기 동원된 여성들이 인신매매를 통해 강제로 동원되었다고 하니까요. 이처럼 굳이 증거 없어도 이치만 따져도 결론이 나옵니다. 그런데 증거도 많다고 하잖아요. 강제 동원이 없었을 수가 없어요. 그 자체를 부정하는 건 냉정하게 일본의 잘못입니다. 과거 조상이 나쁜 짓 했다, 인정하면 되는 거 같은데 왜 그렇게 과거와 현재를 결부시키는 건가요. 한국도 일본을 너무 몰아붙이는 것도 자제했으면 좋겠어요. 정치가들이야 정치적 목적으로 그런다 치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냥 과거는 과거에 뒀으면 좋겠어요. 과거에 머물러서는 현재의 위기에 대항할 수 없잖아요. 중국 공산당은 자유국가의 공통된 적이잖아요. 북한이야 국력이라도 약한데 중국은 그게 아니니까요. 정말 위험한 상황이에요. 한국이나 일본이나 과거 조상들 자존심 세워주다가 현재 우리들이 불행할 처지에 놓여있는 거예요. 이게 뭔가요. 바보 같지 않나요?

 

과거 여성인권이 낮았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여성주의자가 지금 책임지지 않는 이익을 추구하는 건, 마치 조별 과제에서 하는 거 없이 점수 받고 싶어하는 것과 같은 거라 봐요.

 

국가론을 읽고 있는데 복잡한 심정이네요. 문명의 뿌리라.

 

지금 살고 있는 환경을 바꾸고 싶어요. 이사 가고 싶은데 갈 곳도 방법도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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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가상화폐와 책임 (11) 2021/04/23 PM 06:54

가상화폐와 책임

 

 

 

가상화폐는 블록체인이란 신기술을 사용하여 새시대의 화폐인 것처럼 홍보되었다. 하나 기술이 새롭다고 한다고 하더라도 달라지지 않는 것이 있다. 사회적 역할이다. 기술의 발달로 마차가 자동차로 변하더라도 교통수단이라는 점에서 이 둘은 동일하다. 앞으로 자율주행자동차가 나오더라도 그것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가상화폐도 이와 마찬가지로 달라지지 않는 것이 있다. 지금 각국이 가상화폐에 대해 방관 중인 것으로 보인다. 이는 아마 가상화폐를 어떻게 취급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에 생기는 정체일 것이다. 이런 정체를 멈추고 정확하게 대응하기 위해서는 신기술이라는 말에 현혹되지 않고 가상화폐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알 수 있어야 한다. 신기술이나 보안 등의 갖가지 명분이나 변동성이 높아 나타나는 도박과도 같은 투기에 대해서는 잠시 접어두겠다. 가장 중요한 특징인 탈 중앙화에 초점을 맞춰보자.

 

가상화폐의 큰 특징 중 하나가 바로 탈 중앙화다. 중간을 거치지 않고 직접 거래하기 때문에 수수료가 없어 기성화폐보다 높은 수익을 얻을 수 있다. 가상화폐는 그 자체로는 세금을 내지 않는다. 취득세나 보유세가 없다. 거래할 때도 세금이 붙지 않는다. 가상화폐를 기성화폐로 바꿀 때와 상속이나 증여할 때 세금을 낸다. 이 두 가지도 세금을 피할 방법이 있다. 지금 당장은 기성화폐의 쓰임새가 많기 때문에 가상화폐에서 기성화폐로 바꾸기 마련이다. 하나 만약 가상화폐로도 생필품을 비롯한 대부분을 구매할 수 있게 된다면 기성화폐로 바꿀 이유가 없다. 다크웹 같은 곳에서 국가의 감시에서 벗어난 은밀한 거래를 할 때 가상화폐가 쓰인다고 들었다. 그런 곳에서 세금을 내겠는가? 세금 내지 않고 장사가 가능하다. 노동자 임금도 가상화폐로 지급이 가능해질 수도 있다. 가상화폐로만 살아갈 수 있다면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된다. 상속이나 증여도 마찬가지다. 은밀한 곳에서 거래를 한다면 세금을 내지 않고 상속이나 증여를 할 수 있다고 한다. 이렇게 되면 어떤 세금도 내지 않고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가의 다양한 혜택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게 된다.

 

가상화폐는 중앙의 간섭을 받지 않고 고수익을 올릴 수 있다. 이런 점에서 탈 중앙화는 매력적으로 비춰질 수 있다. 그런데 이건 달리 말해 납세의 의무를 저버렸다는 것과 같다. 책임은 맡아서 행하지 않으면 안 되는 임무나 의무라고 한다. , 가상화폐는 책임 지지 않는 이익을 추구한다. 이것이 가상화폐의 본질이다. 가상화폐가 탈 중앙화를 지향하는 한 이것이 달라지는 일은 없다. 탈 중앙화로 중앙의 간섭을 받고 싶지 않으면 중앙의 보호도 받지 말아야 하는 게 일반적일 것이다. 그럼에도 중앙의 보호는 받으면서 중앙에서 벗어나고 싶어 한다. 앞뒤가 맞지 않는다. 이것은 어떤 것을 떠올리게 한다. 여성주의다.

 

책임 지지 않는 이익을 추구한다는 공통점을 지닌 부류들은 꽤 많다. 대표적으로 여성주의가 있다. 남성과 동일한 책임을 지지 않으면 남성과 동일한 권리를 주장한다. 병역의 의무는 지지 않으면서 사회적 권리는 동일하길 바란다. 지금까지 여성들은 가부장제로 차별을 받아왔다. 그걸 정상화하는 과정에서 책임지는 부분은 가부장제 시절로 놔뒀다. 책임지는 부분을 비정상으로 놔둔 결과, 여성들은 책임 지지 않는 이익을 추구하게 되어 남성들이 역차별을 받게 되었다. 그래서 남성들이 분노했던 것이다. 가상화폐도 동일하다. 기성화폐와 동일한 책임을 지지 않으면서 기성화폐와 동일한 권리를 누리려고 한다. 가상화폐가 책임 지지 않는 이익을 추구한다면, 기성화폐의 권력을 쥐고 있는 국가 또한 분노하게 될 것이다. 또한 기성화폐로 성실히 세금을 내어 국가 운영에 이바지하는 사람들도 분노하게 될 것이다.

 

기성화폐를 비판하면 이런 말이 나온다. 너도 해라. 시대를 따라가지 못하네. 가상화폐는 새로운 시대를 여는 거야. 이런 것은 그다지 특별하지 않다. 여성주의도 같은 말을 한다. 너도 해라. 시대를 따라가지 못하네. 여성주의는 새로운 시대를 여는 거야. 책임지지 않는 여성 특혜를 보고 비판하면 이런 저런 말을 하며 특혜를 정당화한다. 남성에게 책임을 떠넘기며 특혜는 온전히 자신들의 것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납세의 의무를 저버린 가상화폐도 일종의 특혜다. 그런 특혜를 비판하면 기성화폐에게 책임을 떠넘기며 특혜는 온전히 자신들의 것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할 것이다. 어떤 것을 명분 삼아 책임 없는 이익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이 둘은 정말 같다. 가상화폐의 승리를 외치며 일부 사람들의 고수익을 자랑하거나, 여성의 승리를 외치며 일부 여성의 이익을 자랑하는 것은 정말 비슷하다. 가상화폐 이용자가 가상화폐의 높은 이익을 미끼로 사람들을 선동하는 것과, 여성주의가 여성의 높은 이익을 미끼로 여성들을 선동하는 것도 같다.

 

다수가 가상화폐를 사용하여 세금이 걷히질 않아 국가가 붕괴된다고 가정해보자. 그렇다면 누가 개인을 지켜줄 수 있을 것인가? 가상화폐의 자산이 개인을 지켜줄 수 있을 것 같은가? 국가라는 공인된 폭력이 사라지면 공인되지 않은 폭력이 무질서하게 개인을 공격한다. 당장 마피아가 가상화폐를 소유한 개인을 납치해서 고문하면 어떻게 될 것 같은가? 가상화폐의 훌륭한 보안도 그 폭력 앞에서 무용지물이 되어버린다. 가상화폐로 마피아를 회유할 수 있을 거란 착각은 그만두는 것이 좋다. 마피아 입장에서 그냥 개인을 고문한 다음 전부 빼앗는 게 훨씬 이익이다. 그렇게 되면 결국 개인은 자신을 지키기 위해 개인 사병을 모집할 수 밖에 없다. 그것이 국가의 보호보다 안전하고 믿을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얼마나 효율적일 것인가? 이쯤 되면 일반적인 사람들은 대부분 그냥 세금을 내는 게 이익이다. 그렇다면 가상화폐 이용자들끼리 집단을 이뤄 자신들을 보호하겠다는 말이 나올 수 있다. 가상화폐 국가다. 그렇게 되면 이것이 지금 국가와 무엇이 달라질 것인가? 언젠가 인터넷에서 여성들로만 이루어진 국가가 있으면 좋을 것 같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여성들의 국가다. 이 둘은 정말 비슷하다. 중앙의 간섭을 받기 싫은 가상화폐와 남성과 관계 맺기 싫은 여성주의는 아마 비슷하게 흘러갈 것이다. 책임 지지 않는 이익의 결말이 바로 이런 것이다.

 

국가가 확립한 사회질서 내에서 책임 없는 이익만 추구하는 마피아. 남성이 확립한 사회질서 내에서 책임 없는 이익만 추구하는 여성주의. 기성화폐가 확립한 금융질서 내에서 책임 없는 이익만 추구하는 가상화폐. 무책임하다는 점에서 이들은 동일하다. 국가나 남성이나 기성화폐가 부당한 일을 저질렀다고 주장할거면 정당한 대안과 함께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그런데 그러지 않고 책임 지지 않는 이익만 추구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국가가 잘못하여 사회가 혼란스러우면 마피아는 마약을 유통하며 이익을 보면서 사회혼란은 정부의 책임으로 떠넘긴다. 남성중심사회가 불공정하면 여성은 불공정에 대응하는 과잉 특혜로 이익을 보면서 그걸로 나타나는 역차별은 남성의 책임으로 떠넘긴다. 이런 것과 가상화폐가 이제는 그다지 다르지 않음을 알게 되었을 거라 본다. 그렇다면 앞으로 가상화폐는 어떤 길을 걷게 될 것인가? 가상화폐가 탈 중앙화로 세금을 내지 않아 국가 운영에 차질이 빚어지게 되면, 최대 가상화폐 이용과 소유자의 국적박탈까지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이미 다른 영역에서 비슷한 결과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기성화폐가 납부한 세금으로 국가가 운영되는데, 그걸 거부하며 국가가 제공하는 서비스를 받는 것은, 비폭력주의자가 국방의 의무를 거부하며 국가의 국방으로 개인의 안전을 보장받는 것과 다르지 않다. 탈 중앙화라는 신념을 위해 납세의 의무를 거부하는 것과 비폭력주의라는 신념을 위해 병역의 의무를 거부하는 것은 비슷하다. 병역의 의무를 거부한 사람은 감옥에 갇히거나 고된 대체복무를 하거나 난민 신청하여 국적을 포기했다. 가상화폐도 비슷한 흐름으로 흘러가 최대 국적박탈까지 고려될 확률이 없지는 않을 거라 본다.

 

병역의 의무 자체가 부당하다 여길 수 있다. 하나 민주국가인 이상 개인이 국가를 지키는 것은 그리 부당하다 보이지 않는다. 자신의 국가를 자신이 지키는 것이다. 처우개선과 공정성의 필요성이나 징병 방식의 변경 등의 논란은 있을 수 있어도, 개인이 국가를 지키는 것 자체에 논란이 있기는 어렵다고 본다. 납세의 의무와 병역의 의무를 동일하게 보기 어렵다고 할 수 있다. 맞다. 납세의 의무를 저버린 쪽이 오히려 더 심각하다. 병역의 의무를 저버리면 국방에 차질이 빚어지지만 납세의 의무를 저버리면 국가 운영 자체에 차질이 빚어지기 때문이다. 이는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각국이 가상화폐의 특징인 탈 중앙화가 국가에 끼치는 영향을 파악하여 가상화폐 소유자에게 그가 가진 국민으로서의 권리를 박탈한다면, 가상화폐는 아마 국가권력에 맞서 질서를 뒤흔드는 마피아의 전유물로 남을 확률이 높다. 이런 극단적인 것까지 예상하는 것은 책임 지지 않는 이익을 얻는 이들을 대신하여 책임지는 이들의 정당한 비판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렇게까지 극단적일 확률은 그리 높지는 않다. 그래도 가상화폐가 탈 중앙화를 고수하는 한 가능성 없는 얘기는 아니다. 국가붕괴의 우려를 국민들이 직접적으로 느끼게 되면 개개인의 사정은 그리 크게 고려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상화폐가 인정받기 위해서는 책임 지는 이익을 추구해야 할 것이다.

 

책임 지지 않는 이익은 정말 매력적이다. 누구나 다 그 달콤한 유혹에 흔들릴 수 있다. 그러니 날을 세워가며 칼같이 지적하고 싶지는 않다. 그래도 조금 아쉬울 때가 있다. 성별 갈등을 극단적으로 일으킨 여성주의의 폭발적인 확산과 김치프리미엄이란 말이 붙을 정도로의 가상화폐의 폭발적인 성장. 이익이 되니까 인기를 끌었던 이것들이 어떤 걸 의미하는지 안다면 자랑스럽게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라 생각한다. 알고 있을 것이다. 여성주의의 모순과 폐해를 말해도 받아드리고 변화하는 여성주의자가 그리 많지 않았다는 걸 말이다. 아마, 가상화폐도 비슷할 확률이 높다. 받아드리기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에 대해서는 처연히 웃으며 한국인의 지성으로 본질을 자각하는 것에 기댈 수밖에 없다. 사실 뭐 탈세, 비리 따위가 연일 뉴스에 나오는 상황에서 가상화폐만 지적하는 것도 우습다. 개인적으로 보았을 때, 지금 당장은 가상화폐보다 부동산 투기가 사회에 더 나쁜 영향을 끼친다고 본다. 이런 상황임에도 최소한 탈 중앙화가 어떤 걸 야기하고, 가상화폐가 어떤 위치에 있는 건지는 알았으면 좋겠다. 마냥 선동 당하는 것보다는 나으니까 말이다. 무엇이 변해도 교통수단은 교통수단인 것처럼, 이런 형태는 기술 발달과 별개로 어느 시대든 나타날 수 있는 현상일 것이다. 이익이 크기 때문이다. 과거에도 있었고 현재에도 있고 미래에도 있을 것이다. 과연 미래에는 어떤 것이 이 책임 지지 않는 이익의 계보를 이어나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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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어가는 글입니다. 다음 글은 아마 국가개혁입니다. 분야별 의석이 정착되면 분명하게 역할주의 사회가 될 거라 봅니다. 자유주의는 이념이고 역할주의는 가치관이지요. 자유주의를 실현하기 위해 역할주의가 지탱하는 것입니다. 자동화 사회가 되어 인간 노동력의 필요성이 줄어듦에 따라 국민들을 위해 기초소득을 고려하고 있음을 압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어떤 사회적 역할도 맡지 못한 사람은 적극적 사회참여에서 멀어져 개개인의 삶이 무너질 수도 있다고 봅니다. 이에 따라 지역별 의석뿐만 아니라 분야별 의석도 도입하면, 각 분야는 정치권력을 위해 국민들이 자신들의 분야에 속하게 하기 위해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게 될 것입니다. 본래라면 분야에 속한 인구수를 늘리기 싫어하는 폐쇄적인 곳도 정치권력을 위해 개방할 가능성이 있다는 겁니다. 지금 각 학교가 신입생 유치를 위해 많은 수단을 동원하여 학생들을 유혹하는 것처럼 각 분야가 의석 수를 늘리기 위해 많은 수단을 동원해 국민들을 유혹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하여 모든 국민이 어떤 역할을 맡게 된다면, 기초소득의 도움을 받는 일이 있더라도 개개인이 퇴락하게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게 하여 국민들이 건전하고 자유로운 행복을 누려야 합니다. 국가는 국민을 행복하게 해야 합니다. 그런데 노동이나 학업이 즐겁지 않다면 어찌 국민들을 행복하게 할 수 있겠습니까? 그것이 불행하다면, 삶의 절반이 넘는 시간을 불행하게 보내야 합니다. 한국이 불행한 까닭은 강요로 국가가 운영되었기 때문이고, 강요가 사라진 지금은 자유에 적응을 실패했기 때문입니다. 강요가 사라졌으므로 모든 행위는 인간의 능동적인 바람에서 나타나야 합니다. 이제는 한국이 자유에 맞는 국가로 변해야 합니다. 자유에 적응해야 합니다. 모두가 가능한 자유롭게 행복하기를 바랍니다.

 

선거는 최대한 제 생각과 일치하는 사람을 뽑을 예정입니다. 그 사람이 설령 정당에 속하지 않더라도 말이죠. 국민들의 보다 적극적인 정치참여가 가능하다면 대통령이 정당에 속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어쩌면 이래야 과거와 결별하고 미래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목이 터져라 외치고 싶습니다. 미래로 가고 싶다고. 지금 각 정당이 노력하지 않는 것은 아닐 겁니다. 하지만 차악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초래한 것은 지금의 정당들입니다. 최근 뽑고 싶어서 뽑았다는 의견이 얼마 되지 않았다는 얘길 들은 것 같습니다. 이걸 정상적인 민주주의라 할 수 있을까요? 부디 진정한 민주주의를 위했으면 좋겠습니다. 나는 그것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은은 기억하고 원은 방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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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본좌    친구신청

코인충은 한강샤워가 시급하지

카우보이A밥    친구신청

오늘 한강가는사람 많을듯 ㅋㅋㅋㅋㅋ

병무청1    친구신청

너무 길어서 딱 여성주의 까지 읽었습니다만..언제적 정보를 바탕으로 적운글인지 모르겠으나 당장 연말부터 가상화폐는 정부에서 수익의 20% 를 세금으로 걷는다 했습니다.

그리고 블록체인의 기술은 앞서 여러산업에서 실용적으로 쓰이고 있으며 심지어 테슬라는 비트코인으로 차량을 구매 할 수 있도록 합니다 세상은 뱐하고 있어요 반대로 금은 어떤 실용성을 가져서 저만한 가치를 얻게됬는지도 설명이 되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미술품 또한 어떤 가치를 가지어서 초고액의 예술품들이 가치를 가지는지요?

이런 편협하고 일방적인 글은 많은 사람을 설득하긴 쉽지 않아보입니다

Braindead    친구신청

돈이 오가는데 세금이 없을리가요? 그리고 블록체인을 만들면 수고했다는 요금식으로 비트코인을 지급한거임.
블록체인은 필요한 기술이고 비트코인은 그냥 딸려운 부수적이라는거.
예술품과 금은 예술성과 가치성이 있습니다. 유형자산이고요.
님 글은 그냥 머스크가 테슬라 구입하는데 비트코인으로 구매할수있다는 하나의 장점만 있군요.

병무청1    친구신청

그리고 코인충 코인충 하면서 비판하시는분들? 주식은 주식충이라고 비판하시는지요? 왜 코인하는사람들이 비판을 받아야하는지 그 이유가 궁금합니다 누구에게 피해를 줬지요? 혹시 코인 하시는분들에게 맞았거나 피해를 보신분 좀 알려주세요 저는 참고로 지금은 코인을 하지 않습니다만 급변하는 세상에서 남들은 이런저런 투자로 좋은소식을내면 자신은 혼자만 도태되는 것 같은 박탈감을 가지니 화가 나는건 이해됩니다만 무분별한 비난은 보기 좇치 아니합니다

이름없는아저씨    친구신청

주식과 코인은 다르다고 보지만 충이니 한강이니 싸잡아 욕하고 비난하고 하는건 보기안좋네요 진짜 코인하는사람한테 맞은적있나 왜들그러나모르겠네ㅡㅡ

칼밥    친구신청

게임커뮤니티에서 그래픽카드를 못산다는건 중대문제죠
그리고 금이 실용성이 없다니... 웃고 갑니다 ㅋㅋㅋ

웨폰메이커    친구신청

코인자체가 각종사기와 범죄에 이용당하고 있고
여기에 사회분위기도 조성되어서
많은 사람들이 코인에 투기해서 그 피해도 크죠.

그리고 그피해를 정부보고 책임지라는데 좋은소리 나올까요?

당연히 안나오죠.

MISUKI    친구신청

일단 코인충 덕분에 100만원짜리 그래픽카드가 180-200만원인데 어떻게 설명할건대

덕분에 그래피카드없이 pc 쓰고 있음 내장그래픽으로 ㅡㅡㅋ

니나가라군대    친구신청

이러니 충 소리 듣죠.
주식과 도박이랑 같다고 말하는 소리랑 뭐가 다름?
정해진 시간에 장이 열리는 것도 아니고 장이 끝나는 것도 아니고 줄창 24시간 열리만 있고
주식 마냥 일정 수치 이상 또는 이하로 올르고 내리고를 막아주는게 없이 올라가면 한 없이 올라가고 내려가면 한 없이 내려가는게 주식이랑 비빌수 있다 생각하는것 부터가;
애초에 코인이란게 주식마냥 보증이 되는게 있고서 이런 소리라도하면 이해라도 하겠는대 실가치도 없는대다 돈에 출처 자체도 확인이 불가능한 검은돈 세탁하기 딱 좋은 구조가 코인이구만
그리고 현시점에서 코인충이라 욕하는게 한두가지 요소로 이렇겠음?
여기 루리웹은 컴퓨터에 관심 많은 사람도 많아서 현 코인충들이 글카 싹쓸이 해서 글카 시장 개판으로 만들어 놔서 더더욱 코인충이라고 욕을 하는거를 이해 보니다 이런 소리를 하지...왜 욕하는지에 대한 요점 파악 좀 하시길...
사람들이 무턱대고 욕도 한다만 대다수 루리웹에서 욕하는 요점이 뭔가 생각 해보시길 바람

녹투아의날개    친구신청

1.코인 자체가 각종 사기와 범죄에 이용<- 그럼 화페는? ㅋ일단 기본이 되는 화폐와 금 다이아는 엤날부터 앞에 블러드라는 접두사가붙을만큼 더러운 사례가 몇백년 단위로 있음
2. 사회분위기가 조성되어서 투자를하는건? 코인뿐만아니라 주식도 바이오 주 소식들 보면 똑같은 맥락임

3. 그 피해를 정부보고 책임지라는 말은 무슨 피해를 받던 정부보고 책임지라고 하는 어디든 항상 있는 무책임한 인간들입니다.
굳이 코인하는 사람을 까내리는건 그저 대상만 다를뿐 3번 인간들이랑 다를바가 없어보이네요
[잡담] 양자역학과 뇌 (3) 2021/03/02 PM 07:35

양자역학과 뇌

 

 

 

개인방송에서 양자역학을 간단히 소개하는 걸 본 적이 있다. 당시에는 그냥 신기하다고 생각하고 넘어갔다. 이번에 그것이 문득 떠올라 고찰해보았다. 그걸 간단히 작성해보겠다. 나는 이것의 전문가가 아니다. 잘 모른다. 그냥 사회현상 고찰하여 해석하듯이 해보겠다. 흥미로 읽길 권한다.

 

양자역학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은 생략하겠다. 나도 잘 모른다. 이것을 설명하는 것 중 유명한 것이 바로 상자 속 고양이일 것이다. 상자를 열기 전까지 고양이가 살아있는지 죽어있는지 모른다. 상자를 열어서 관측하는 순간 결과가 확정된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할 것이다. 누가 보든 말든 고양이의 생존유무는 달라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미시세계에서는 달랐다. 관측하는 순간 결과가 바뀌었다. 몇 가지 실험을 통해 그것이 증명되었다. 실험내용은 생략하겠다. 왜인지는 모르겠는데 보는 순간 결과가 달라졌다고 한다. 황당하다. 왜 그런 걸까? 왜 관측하는 순간 결과가 바뀌었을까?

 

본래 세상은 인간과 별개라는 인식이 있다. 보통은 인간이란 존재가 있든 없든 관계없이 세상은 돌아간다고 생각한다. 상자 속 고양이가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게 이런 이유 때문이다. 인간이 보든 말든 고양이는 알아서 살고 죽는다. 그래서 관측한다고 해서 결과값이 바뀐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라고 본다. 생각을 바꿔보았다. 인간의 관측 유무가 중요하다면, 인간이란 존재도 중요하다는 말이 된다. 인간은 단순하게 미약한 존재로써 세상과 별개인 것이 아니라 세상의 일부라는 것이 된다. 인간의 신체는 세상과 별개가 아니다. 이어져있다. 여기서 갑작스럽게 떠올랐다. 인간의 뇌는 세상과 연결되어있다. 분리된 것이 아니다. 세상과 인간은 하나다. 인간의 뇌는 외부와 분리된 것이 아니다. 뇌는 외부와 연결되어있다. 만약 그렇다면 인간이 미시세계를 관측한 순간 뇌가 상호작용하여 결과값을 바꾼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보면 이상하다. 만약 길거리에 엄청나게 많은 연산을 하는 어떤 생체 컴퓨터가 널려있다고 가정해보자. 그러면 그것이 도대체 무슨 연산을 하고 있는지, 왜 그게 존재하고 그것이 무슨 외부에 영향을 끼치는지 궁금해할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인간이라 인식하면 그런 걸 생각하지 못한다. 세상에 뇌를 가진 인간이 그렇게도 많은데도 그 뇌가 외부에 영향을 끼칠 거란 생각을 못한다. 왜냐하면 인간의 뇌는 보통 내부에 영향을 끼쳐 몸을 움직여서 외부에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 상식에서 벗어나서 인간이라는 점을 제외하고 뇌만 바라보자. 인간의 몸을 투명하게 해서 뇌에 초점을 맞추고 나머지는 뇌의 생존을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해보자. 먹고 자고 싸고 하는 것들이 뇌의 존재를 위한 것으로 전부 부수적이다. 그런 뇌가 만약 인간의 의사와 무관하게 외부와 상호작용을 할 수 있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인간의 뇌는 감각기관을 통해 인간의 의사와 무관하게 정보를 수집한다. 그래서 잠에 들었어도 소리를 듣고 깰 수 있다. 그래서 태아시절에 외부로부터 수집한 정보를 기억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반대로 인간의 의사와 무관하게 정보를 공급할 수도 있는 게 아닐까? 그러자 몇 가지 떠올랐다. 집단 무의식? 공동체 생활을 하는 여성들의 생리 주기 일치 현상? 오래 같이 지낼수록 닮는다는 것? 그런 것들이 바로 뇌가 멋대로 다른 뇌와 상호작용해서 그런 게 아니었을까? 뇌가 머리에 갇혀서 몸만 제어하는 게 아니라 단지 보호받은 상태에서 자유로웠다면. 뇌가 인간의 의사와 무관하게 무언가와 상호작용하고 있다면. 그리고 만약 그 가설이 맞는다면. 미시세계를 관측하여 그 시각정보가 뇌에 도달하는 순간 바로 미시세계와 상호작용하여 결과값을 바꾼 것이었을 수도 있다. 알아서 바뀐 것이 아니라 뇌가 영향을 끼쳐서 바뀌게 된 것이다.

 

뇌가 인간의 의사와 무관하게 내부만이 아닌 외부와도 상호작용을 한다. 이것을 전제하니까 바뀌는 게 당연해 보이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입력 출력 변화. 흐름이 당연하다. 단지 그 사이에 인간의 의지가 없었기 때문에 눈치채질 못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자세한 것은 모르니까 확답할 수는 없다. 몇 가지 의문들. 먼 거리에서도 관측하면 결과값이 바뀌는 건가? 장벽이 있어도 결과값이 바뀌는 것인가? 모든 뇌가 결과값이 같은 것인가? 거리는 잘 모르겠다. 미시세계이므로 장벽은 의미가 없을 것 같아 보인다. 뇌와 상호작용을 할 때엔 무조건 그 결과값이 된다면 같을 수도 있다고 본다. 어쨌든 뇌가 알아서 외부와 상호작용한다는 것이 맞는다면 상자 속 고양이도 답을 낼 수가 있다. 상자를 여는 순간 뇌가 인간의 의사와 무관하게 고양이의 생사유무를 결정하는 것이다.

 

자료가 부족하니까 여기까지 하겠다. 뇌가 외부와 상호작용한다는 것에 도달하자 세상이 신기해 보였다. 77억이 넘는 뇌는 도대체 무엇과 상호작용하고 있는 걸까? 지구와 우주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 걸까? 그 연산이 무슨 결과를 낳고 있는 걸까? 미시세계에서는 뇌끼리 다들 상호작용하고 있던 게 아니었을까? 내 뇌는 지금 무엇을 송수신하고 있는 걸까? 뇌파 내에서 미시세계에 대한 간섭을 분류해낼 수 있는 걸까? 만약 정말 간섭이 있다면 측정이 가능한 걸까? 어쨌든 어떤 우주의 질서가 인간이 관측했다고 결과를 바꿔준다는 것보다는 인간의 뇌가 영향을 끼쳐 결과를 바꾼다는 것이 좀 더 타당해 보인다.

 

자아나 언어기원과 비슷하게 아직 명확하게 답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니까 멋대로 써보았다. 야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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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아마 마약과 외국인이나 노동의 개인화에 대해서 써볼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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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악한 놈    친구신청

이게 양자역학에 대한 전형적인 오해인데, 관측이란게 말그대로 '본다' 는 말이 아니라 결과값을 알기위한 일련의 과정(간섭)을 한다는 말이라서 사실 인간이 보고 안보고는 상관이 없어요.

18강아지    친구신청

그 오해로 인해 일본발 온갖 타임루프물들이 탄생하게 되었죠.

리치왕    친구신청

관측 = 다른 원자와의 상호작용 정도로 생각하시면되요
[잡담] 코로나 대책 제안 (1) 2021/01/13 PM 09:35

코로나 대책 제안

 

 

 

자연스러운 전염병 확산방지 방안과 코로나블루 대책을 제안해보겠다. 전염병 확산을 막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까? 지금 한국은 단계적 거리 두기로 특정 단계에 다다르면 시간을 통제하거나 인원을 제한하거나 특정 업종의 영업을 금지하고 있다. 직관적으로 알기 쉬운 방안이다. 그러나 핀셋규제가 형평성 논란을 부르게 되었다. 전염병 확산 가능성은 비슷함에도 업종마다 허용여부가 달랐던 것이다. 영업이 금지되어 수익은 없는데 임대료만 내게 된 일부 자영업자들이 더 이상의 손해를 감당하기 어려워 형평성 문제를 거론하며 정부에 영업재개를 호소하게 되었다. 어떤 자영업자는 벌금을 내서라도 영업을 하겠다며 강경하게 나섰다. 좋다. 그것은 자유국가인 한국에서 바람직한 행동이다. 그렇게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행동하는 것이 올바르다. 오히려 무조건 침묵하게 만드는 이타주의가 잘못되었다. 왜냐하면 본인이 이타적이면 타인도 이타적이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내가 정부를 위해 희생했으니 너도 정부를 위해 희생해라.」 이런 걸 뭐라고 생각하는가? 바로 전체주의다. 본인이 이기적이어야 타인이 이기적인 것을 받아드릴 수 있다. 그러니 그들이 방역에 협조하지 않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행동하는 것은 바람직하다. 단지 자영업자가 이기적이면 정부도 이기적이어야 하는 걸 받아드려야 한다. 자영업자는 영업을 통해 수익을 얻고 싶다. 정부는 영업금지를 통해 전염병 확산을 막고 싶다. 각자의 이익만을 위한 주장을 하고, 그 주장이 상반되면 토론을 통해 가능한 최선의 결론을 내리면 된다. 혹시 그렇게 해서 자영업자가 필요 이상의 혜택을 받게 되면 다른 국민들도 이기적으로 주장을 하여 그 주장과도 타협점을 찾아가면 된다. 모든 국민들의 이기적인 주장들과 타협점을 찾아 최대한 납득할 수 있는 결론으로 정책을 짜 국가를 운영하는 것이 바로 민주적인 절차로 국가를 운영하는 것이다. 이타주의는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런 토론이나 협의 따위는 무용지물이 되어버린다. 이타주의는 정부의 지시를 맹목적으로 따르게 되기 때문에 책임 또한 정부에게 넘기게 된다. 과거 거리 두기 단계가 낮았을 때 언론기사 댓글이 기억난다. 확진자 수가 늘었다는 기사 댓글에 이런 의견이 달렸다. 그 사람은 정부가 강제로 통제하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거리 두기를 하지 않고 등산 했던 거라며 화를 내고 있었다. 그걸 근거로 하루라도 빨리 강제로 통제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굉장히 인상적이어서 기억하고 있다. 자신의 행동을 자유의지로 결정하고 행동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행동을 정부가 통제해주길 바라며 그에 대한 책임을 정부에게 떠넘기고 있었다. 이게 올바른 것처럼 보이는가? 자신의 의지로 행동을 결정해야 책임도 자신이 지게 되어있다. 전염병 확산방지의 필요성을 깨닫고 알아서 거리 두기를 해야지 꼭 누가 시켜야만 하는가? 마냥 이타적인 것은 자유롭지도 못하고 민주적이지도 못하며 무책임을 부르게 된다. 자유국가에는 무엇이 어울리는지 알았으면 좋겠다.

 

 

 

단계적 거리 두기가 형평성 논란을 불렀다고 하더라도 이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하기는 어렵다. 나름대로 적절하게 방역을 해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런 거리 두기와 무관하게 방역을 위한 대책 몇 가지를 제안하고자 한다. 거리 두기를 통한 방역을 하기 위해서는 가능한 사람들이 집 안에서 지내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집 안에 있게 할 수 있는가? 지배국가에서는 강제로 집 밖에 못나가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자유국가에서는 그럴 수가 없다. 자유국가에서는 단순히 행동을 제약하기 보다는 어떤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외부적 요인에 의해 자연스럽게 집 안에 있도록 하는 편이 좋을 것이다. 어떻게 해야 자연스러울 수 있는가? 그것은 인간의 행동원리를 근거로 방법을 찾아야 한다. 한국인의 특성 중 하나가 효율성과 생산성이다. 한국인들은 어려서부터 효율적이고 생산적인 것이 올바르다고 주입 받으며 성장했다. 가장 효율적인 공부방법. 가장 효율적인 놀이방법. 자신의 지성을 위해 지식을 쌓고 지혜를 갈고 닦는 것이 아닌 시험을 잘 보기 위해 효율적인 공부를 한다. 게임 자체를 즐기기보다 현금이나 게임 머니 대비 가장 이익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해 효율적인 게임을 한다. 그렇게 해서 효율적인 성장(인생이든 게임이든)을 하게 되면 이익을 얻은 것 같은 기분이 들어 깊은 만족감을 느끼거나 느낀다고 착각한다. 이는 남이 시키는 대로 하는 타성에 젖은 이타주의가 만든 현상 중 하나다. 부모나 교사가 짜준 효율적인 인생경로를 따라 살다 보니 공부나 놀이도 효율적인 방법에 만족감을 느끼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대체로 본심이 아니기에 효율적인 성장을 하더라도 실은 금새 질리고는 더 이상 만족감을 느끼지 못하게 된다. 이런 것은 성인이 되어도 마찬가지다. 타인이 짜준 돈벌이 방식을 그대로 따라 한다. 유행에 휘둘리는 자영업이나 과열되는 주식이나 부동산이 바로 그렇다. 남이 짜준 인생 설계도 대로 사는 것이 과연 진짜 행복한 걸까? 선택지가 적은 사람이야 어쩔 수 없다지만 선택지가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살고 싶은 대로 살길 권하겠다. 한국에는 똑똑한 사람들이 그렇게 많은데 방송에 등장하는 패널은 다 거기서 거기인 까닭이 도대체 뭐겠는가. 이타적이기 때문에 타인의 눈치를 너무 본다. 현명하고 올바른 사람이 이기적이기를 바란다. 뭐 이런 것은 차차 해결해야 할 문제다. 어쨌든 이런 특성이 있어 어떤 상대적인 이득을 느끼게 하면 가능한 자연스럽게 집 안에 머무르게 할 수 있다. 집 밖에 있는 것보다 집 안에 있는 것이 이득이라고 느끼게 하면 된다는 것이다. 나는 크게 세 가지를 제안하겠다. 첫째, 스트리밍 사이트 무료화. 둘째, 건설업 활성화. 셋째, 편의점 할인 혜택. 첫째는 간단하다. 집 안에서 문화 콘텐츠를 향유하여 집 안에 있을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평소 유료였던 상품이 무료로 풀리면 혹해서 경험해보는 일이 많다는 것을 알 것이다. 그 점을 이용해 많은 스트리밍 사이트가 한 달 무료를 미끼로 가입을 유도하고 있다. 하지만 따로 가입을 해야 한다는 불편한 절차가 있어 꺼려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 장벽을 지워 누구나 일정기간 한국 내에서는 무료로 스트리밍 사이트를 즐길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유료였던 상품을 가입하지 않아도 즐길 수 있다는 점은 상대적으로 이득인 것처럼 느껴져 많은 사람들이 문화 콘텐츠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경험이 즐겁다면 집 안에서 영화나 드라마를 보며 자연스럽게 거리 두기를 하게 될 것이다. 예상 비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넷플릭스 한국 유료 가입자 수가 2020 9 30일 기준으로 약 330명 정도 된다고 한다. 9500원으로 책정할 시 약 310억 정도의 비용이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광고효과의 측면을 고려하면 협상여하에 따라 금액은 조정할 수 있을 거라 본다. 넷플릭스가 유명해 언급했지만 국산 스트리밍 사이트의 성장을 돕기 위해 지원하는 것도 또 다른 방편 중 하나일 것이다. 물론 그러면 의도한 효과가 감소되고 특정 회사 특혜 논란이 있을 수 있을 것이다. 유명한 곳이 아니면 생색내기라는 말을 하며 거부감을 느끼고 특정 국산 스트리밍 사이트를 지원하면 뒷돈 받았냐는 말을 하며 의혹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한국인들이 어떤 영상물을 보고자 하면 어떻게든 볼 수 있다. 스트리밍 사이트 이용금액이 크게 비싼 것이 아니니 말이다. 굳이 이런 걸 지원할 필요까지는 없다. 그럼에도 제안하는 것은 이득이라는 느낌을 주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기 때문이다. 한국인은 효율을 중시한다. 그래서 소비도 효율적으로 하려고 한다. 효율적인 소비를 하면 깊은 만족감을 느낀다. 그런 특성이 무료로 풀렸을 때 즐겨야 이득이라는 느낌을 주게 된다. 그 느낌으로 평소 관심도 없던 사람까지 스트리밍 사이트에 접속하여 영화나 드라마를 보게 만들 것이다. 굳이 이것이 아니어도 좋다. 집 안에 있을 때 이익을 얻는 것이라는 느낌을 주면 된다. 둘째도 간단하다. 집 밖에 나가면 불편함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보겠다. 사람들이 많이 보이는 번화가에서 공사를 시작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시끄러운 소리, 불쾌한 냄새, 텁텁한 공기.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그곳에 가지 않으려고 할 것이다. 굳이 일일이 통제하고 제한하고 금지하지 않아도 알아서 안 간다. 거리 두기 단계가 낮을 때에는 최대한 말로 가지 말라고 할 때가 있다. 그것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개개인의 도덕성에 기대는 것은 불확실성만 늘고 그런 말에 설득된 사람들만 일방적으로 손해를 느끼게 만들 수 있기 때문에 바람직한 방법은 아니라고 본다. 외부의 간접적인 요인에 영향을 받아 자연스럽게 모이지 않게 하는 것이 이상적이다. 그리고 명분이 있다. 전염병이 돌 때에는 이동 인구수가 적으므로 공사하기가 가장 좋은 시기다. 이런 때 아니면 번화가 공사를 언제 해보겠는가? 사람 많을 때 하면 손해는 손해대로 보고 불만은 불만대로 나온다. 없을 때 하는 게 좋다. 평소에 하지 못했던 공사들을 몰아서 다 해버리면 된다. 통제가 불가능한 이동 인원보다 통제가 가능한 공사 인원이 방역에 훨씬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에 가능한 공사를 해버리는 것이 좋을 것이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마다 공사를 시작하면 그 공사를 목격한 사람들은 점점 불쾌감이 쌓여서 외출 자체를 불편하게 느낄 것이다. 불쾌감이 학습된다. 집 안에서 이익을 얻고 집 밖에서 손해를 본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집 안에 머무르게 된다는 것이다. 굳이 이것이 아니어도 좋다. 집 밖에 있을 때 손해를 겪는 것이라는 느낌을 주면 된다. 셋째도 간단하다. 편의점은 말 그대로 사람들의 편의를 도와 집 근처에서 쇼핑하기 편리한 곳이다. 그런 곳에서 코로나 특수를 명분으로 상대적으로 저렴한 비용의 상품을 제공하면 굳이 멀리 가서 쇼핑하지 않게 될 것이다. 평소 비쌌던 상품을 저렴하게 제공하면 상대적으로 이익을 얻었다는 느낌을 줘서 효율적인 소비를 위해 굳이 사고 싶지 않았던 것도 사게 될 것이다. 효율성을 중시하는 사람들에게는 이익을 얻는다는 느낌이 매우 중요하다. 대형 마켓에서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것보다 소형 편의점에서 따로따로 모이는 것이 방역에 도움이 된다. 술집에서 술을 마시는 것보다 집 안에서 술을 마시는 것이 방역에 도움이 된다. 지금까지 크게 세 가지를 소개했다. 방법은 위의 구조만 따르면 되니 각자 자신의 의견을 생각해보길 권하겠다. 이런 방안을 시도하면 오프라인 자영업의 매출이 감소할 수 있다. 그러면 거리 두기 단계를 낮추면 된다. 집 안에 있는 사람이 늘면 자연스럽게 집 밖에서도 거리 두기가 수월해진다. 한 매장에 10명씩 가던 것이 5명이 되면 굳이 인원 제한을 하지 않더라도 자연스럽게 거리 두기가 된다. 이런 식으로 간접적으로 영향을 줘서 자연스럽게 거리 두기를 하게 하는 것이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으면서도 방역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자유국가에서는 이런 방안이 바람직할 것이다.

 

 

 

코로나 블루라는 우울증을 해소하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 크게 세 가지를 제안하겠다. 첫째, 집단 지성. 둘째, 국가 자부심. 셋째, 책임분배. 첫째는 일 중독자들을 위한 방편이다. 기본적으로 한국인들은 일 중독자들이다. 생산성을 중시하여 뭔가 생산을 하지 않으면 불안하고 초조해진다. 뒤쳐지는 것 같다. 무언가 소비를 통해 자기 만족을 하기 보다 무언가 생산을 통해 자기 만족을 한다. 그래서 생산적인 것을 하기 위해 주식이나 부동산에 투자나 투기를 한다. 이런 특성을 고려하면 무언가 생산적인 것을 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면 된다. 그것이 바로 집단 지성을 이용한 생산이다. 구조는 간단하다. 어떤 필요한 일을 불특정 다수의 집단 지성으로 처리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보겠다. 한국서적을 해외에 알리기 위해 외국어로 번역해야 하는 일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그 일을 온라인으로 공개하여 번역이 가능한 사람들을 모집하고 그 다수의 사람들에게 분배하여 번역하게끔 하는 것이다. 그걸 편집자가 마지막에 마무리하면 된다. 어떤 사람은 금액도 적고 하는 일도 적은데 지원자가 있겠냐고 물어볼 수도 있다. 하지만 위키를 생각해보라. 금전적인 이익이 없어도 자기만족감 하나로 정보를 생산하고 있다. 접근성이 뛰어나면 금액이나 일의 양에 관계없이 하려는 사람들이 많을 거라 본다. 온라인에 서적의 페이지를 공개하고 번역지원자가 번역할 페이지를 선택해 번역독점권을 구매한다. 주어진 시간 내에 번역이 제대로 된 걸 편집자가 확인하면 구매할 때 기입한 통장번호로 소정의 금액이 입금된다. 만약 시간을 초과하거나 번역 수준이 낮으면 번역독점권을 박탈하고 다른 사람이 구매할 수 있도록 한다. 이런 체계가 갖춰지면 많은 사람들이 지원할거라 본다. 간단하고 접근성이 뛰어나며 오로지 번역이란 역할에 맞는 능력만 보기 때문이다. 사실 이런 일이 크게 중요한 일은 아니다. 혼자서 해도 된다. 급한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제안하는 것은 사람들에게 생산하고 있다는 감각, 사회에 기여하고 있다는 감각을 주는 것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소소하지만 생산하고 평가 받고 칭찬받고 돈을 번다. 그런 구조가 중요하다. 그리고 이런 구조가 앞으로 미래의 완전자동화 시대를 대비하기 위한 연습이라고 본다. 앞으로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게 될 것이다. 더 이상 기업이 인간의 노동력을 필요하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앞으로는 공장에서 자동으로 생산된 생산품이 자동으로 움직이는 자율트럭에 자동으로 실려 무인상점에 자동으로 진열될 것이다. 일부 관리자를 제외하면 대부분 일자리를 잃게 된다. 그래서 로봇세나 기본소득제를 논의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기업이 과도한 힘을 얻을 확률이 높다. 그 힘을 악용하여 사회를 불행하게 만들 수도 있다. 그러니 기업을 견제하기 위해서는 역할을 분배해야 한다. 기업은 생산과 영업과 판매를 담당한다. 국민은 사회인프라, 교육, 연구, 개발 등을 담당한다. 생산을 담당하던 기업이 없어지더라도 나머지 국민들이 그 역할을 대신할 수 있도록 교육이나 연구나 개발을 통해 국민들의 수준을 유지해둬야 한다는 것이다. 간단히 말해 생산이나 판매는 로봇이 하고 연구나 개발은 인간이 한다. 일자리를 잃은 다수의 지성인들에게 집단 지성을 통한 연구개발을 할 수 있는 체계를 마련한다. 국민들은 집단 지성으로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생산하고 기업은 그 아이디어로 로봇을 통해 물건을 생산한다.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미래상이다. 연구를 예로 들자면, 번역과 마찬가지로 어떤 연구를 하기 위해서 자격을 갖춘 불특정 다수를 모집하고 역할 분배한 것을 골라 구매해 그 역할을 수행한다. 연구의 가치에 비례하여 공개나 비공개를 결정하고 유연하게 따로 만나는 일도 계획한다. 어떤 실험이 필요하면 개인 실험실을 차리거나 여유가 없으면 실험실을 대여하여 연구에 필요한 실험을 한다. 일단 이것은 여기까지 하겠다. 앞으로 미래는 구시대적 사상으로는 대응하기 어렵다고 본다. 둘째는 자연스러운 자부심 주기다. 뭔가 자부심을 느낄만한 게 있다면 우울하더라도 다소 기분이 좋아질 것이다. 그걸 자연스럽게 느끼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한국 아이스크림이 잘 팔린다는 것이 뉴스에 보도되었다. 거기에 K를 붙여 K 아이스크림이라고 하자 진절머리가 난다는 사람들이 있었다. 국가 자부심에 취해 별 것도 아닌 것에 환호하고 다른 국가를 비하하는 일부 사람들이 떠올라 불편해졌던 것이다. 온갖 곳에 K를 붙이는 것은 사실 좀 부자연스럽긴 하다. 그렇다고 굳이 K를 붙이는 걸 금지할 필요는 없다. 그건 하는 사람의 자유다. 하지만 보다 자연스럽게 자부심을 느끼게 할 수 있다. 실생활에서 문뜩 깨닫고 자부심을 느끼게 하면 된다. 가령 해외 판매 수익이 매우 높았던 일부 품목을 국가에서 지정해 상을 주고 그 상을 받은 기업은 그 제품을 저렴하게 판매한다. 홍보수단으로 해외 판매 수익이 높았던 기념으로 싸게 판다고 한다. 그러면 고객인 국민들은 어떤 감정을 가지게 되겠는가? 평소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상품을 구매하면서 그 내용이 눈에 들어오고 한국 상품이 해외에서 선전하고 있다는 걸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평소보다 낮은 가격으로 구매하여 효율적인 소비 감각을 느끼고 해외에서 한국 상품이 선전했다는 내용을 알아 자연스럽게 자부심을 느낀다. 그냥 「해외에서 많이 팔렸습니다.」 라고 뉴스에 보도되는 것보다 직접 구매할 때 상대적인 이익을 얻으며 많이 팔렸다는 걸 깨닫는 것이 훨씬 자연스럽게 국가 자부심을 느끼게 하는 방식이다. 그런 자부심을 통해 코로나 블루를 조금이라도 해소할 수 있다고 본다. 셋째는 민주적인 책임분배다. 어떤 선택을 할 때 책임을 피하기 위한 좋은 방법은 바로 설문조사다. 어떤 선택에 있어 고민이 되면 다른 사람들에게 선택지를 공개하고 어떤 선택이 좋은지 묻는다. 개인의 책임을 다수에게 분배하는 것이다. 지금 특정 종교의 문제로 방역에 골치를 썩고 있다는 걸 안다. 그 종교 내의 특정 집단이 거리 두기를 무시하고 전염병 확산에 공헌하고 있다. 이런 종교를 통제하자니 정치적인 부담이 크다는 것도 안다. 종교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종교들을 방치하자니 방역에 해가 되고 통제하자니 종교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책임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그래서 답답한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그것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그 책임을 국민들에게 조금씩 분배하면 된다. 「특정 지역이나 특정 집단에서 전염병 확산이 계속되고 있다. 그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 설문을 통해 「특정 집단을 통제하는 것은 국민들의 지지를 받는 일이다.」라는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해야 그런 정치적 부담을 경감하여 보다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다고 본다. 그릇된 다수가 올바른 소수를 핍박하는 일도 있기 때문에 이것은 어디까지나 그릇된 소수의 통제에 대한 책임을 경감하기 위한 수단으로만 활용해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특정 종교 집단이 통제되지 않고 있어 많은 사람들이 불쾌하고 있음을 안다. 이런 방법으로 책임을 경감하여 그들이 통제된다면 코로나 블루가 다소 해소될 것이다. 특정 종교 집단에게 하고 싶음 말이 있다. 방역에 협조하지 않는 특정 종교집단이 이기적이어도 좋다. 실제로는 종교의 장이 이기적이고 구성원이 이타적인 평범한 집단 이기주의지만 어쨌든 이기적으로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주장해도 좋다. 그러면 정부도 이기적이어야 한다. 그걸 특정 종교집단이 받아드리지 못한다면 그게 잘못된 것이다. 정부도 무작정 종교집단에 이타적으로 행동하지 말고 명확하게 의사를 전달하는 것이 좋다고 본다. 서로의 이익을 위해 타협점을 찾는 토론을 하면 된다. 그렇게 나온 결과를 서로 수긍하고 따르면 된다.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위의 민주적인 책임분배를 통해 정상적인 토론조차 거부하는 그릇된 집단을 강제로 통제해야 한다. 모든 인간이 이기적으로 주장을 하고 토론을 하여 결론을 내린다. 그것이 정상적인 자유주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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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이루다 성희롱 논란이 있다고 하죠. 그런 논란 자체가 비이성적입니다. 어떤 욕망에 대한 자유를 다른 인간의 자유에 침해하지 않고 누릴 수 있다면 그것이 가장 이상적인 행복추구입니다. 당신의 불편함 때문에 다른 사람의 행복추구권을 침해하지 마십시오. 욕망 자체를 막기보다 도구를 통해 욕망을 해소하는 것이 올바른 겁니다. 되도 않는 가능성만으로 욕망을 가진 이들을 나쁘다며 공격하는 것은 그릇된 것입니다. 사회에 속한 사람은 그 사람이 누구든 다른 사람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이상 자유롭게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습니다. 설령 진짜 사이코패스라도 그 자신의 욕망을 다른 인간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해소할 수 있으면 그걸로 행복할 권리가 있습니다. 전쟁놀이를 하고 싶다고 해서 전쟁게임 한다고 문제될 것 없지 않습니까? 어떤 FPS 게임은 게임 내용 내에 민간인을 사살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걸 즐기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것이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실제 인간에게 피해준 것도 아닙니다. 그렇게 태어난 사람이 게임으로 욕망을 해소한다면 그것이 바로 이상적인 욕망을 통한 행복추구입니다. AI 성희롱 좀 한다고 문제될 것 없습니다. 그런 것에 이의를 제기하고 반발하는 것이야말로 행복추구권을 침해하여 사회를 불행하게 만드는 겁니다. 본인의 자유를 보장받기 위해서는 타인의 자유를 보장해주십시오. 그것이 정상적인 자유주의입니다.

 

여성이 희화화되거나 상품화되면 화내는 사람이 있습니다. 직접적으로 피해를 입은 것도 아니고 잘못된 가능성만 보고 화내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표현의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하면 잘못된 건 무조건 막아야 한다고 주장하지요. 그리고 너희들도 불편한 게 있으면 불편하다 얘기하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게 무슬림의 마호메트 신성화와 무엇이 다릅니까? 실제 피해를 입는다거나 잘못되는 것도 아님에도 단지 불편하거나 가능성 만으로 잘못되었다며 무조건 막아야 한다고 주장하며 표현의 자유를 즐기는 이들을 공격하는 것은 마호메트를 언급하는 표현의 자유를 즐기는 이들을 공격하여 참수하는 무슬림과 같다고 생각됩니다. 객관적, 이성적, 논리적인 생각을 해보십시오. 누군가 불편하다고 무조건막는 것이 용인되면 결벽증 환자가 길거리에 있는 작은 쓰레기만 봐도 발작하며 정부에 항의하는 것이 정당하게 됩니다. 채식주의자가 고기집을 공격하는 것이 정당하게 됩니다. 부디 자유국가에서는 자유를 기준으로 생각하기를 바라겠습니다.

 

중대재해법 논란이 있지요.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기업이 인사책임을 져야 사고도 책임감을 가지고 대처할 것이고 애초에 사고가 나지 않도록 노력할 거라 봅니다. 그러니 인사책임을 지게 하기 위해 하청이나 용역을 없애고 그 대신 노동유연성을 증가시켜야 해야 합니다. 능력이 없는 사람이 높은 위치에 있어서는 안 되고 능력이 있는 사람이 낮은 위치에 있어서도 안 됩니다. 무작정 노동자 편을 들며 능력 없는 사람이 높은 위치에 있는걸 용인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 것이 능력 있는 노동자들을 불행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능력이 부족한 사람은 그 능력에 맞는 자리에 가게 하거나 해고하고 능력이 있는 사람은 빠르게 승진하고 그 자리에 다른 사람들을 고용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고용환경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래야 인사책임의 무게를 덜 수 있어 기업이 직접 고용으로 책임을 지거나 적극적으로 고용에 나설 거라 생각합니다.

 

어떤 사상가가 그러더군요. 사상가는 길을 먼저 가서 다른 사람들에게 길을 안내하는 사람이라고. 다른 길을 걷고 있기 때문에 쉽게 받아드려 지지 않지만 원래 먼저 가서 길을 안내하는 일을 하기 때문에 이해해야 한다고 하더군요. 알 것 같은 말이더군요.

 

그것은 공정하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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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템퍼필로우님 글을 몇번 슬쩍 보고선 그냥 지나치고 말았었는데 오늘 답글 하나 남기자면..

신문 사설이 보통 단어수가 300자 남짓 될겁니다. 단순한 사실 전달이 아니라 주제를 갖고 설명과 설득을 하는 글은 필자의 메시지가 독자에게 명료하게 전해져야 하므로 무조건 길고 자세한게 좋은게 아니에요. 그런데 제가 지금 이 글의 단어수가 몇개인지 워드 돌려보니 2,700 자가 넘더군요. 혼자서 생각을 정리할 작정이라거나 혼잣말을 늘어놓으신거라면 모르겠는데 답글을 달수 있고 공개된 목록에 올려놓으신걸 보면 다른 사람들의 이해를 어느정도 바라시고 쓴 글 같습니다. 그렇다면 좀 더 다른 사람들이 읽어봄직하게 글을 다듬어서 써보세요.
[잡담] 초식화의 죄악, 조선의 도덕 (4) 2020/06/15 AM 12:48

초식화의 죄악, 조선의 도덕

 

 

 

불평등한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던 도덕이 평등한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는데 적합한가? 그 의문에 대한 답은 쉬울 것이다. 적합하지 않다. 그렇다면 달리 물어보겠다. 불평등한 신분사회였던 조선의 도덕이 평등한 민주사회인 한국에 적합한가? 이에 대한 답도 쉬울 것인가? 아마 꺼림칙할 것이다. 조선에 대한 비판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조선의 결점을 지적하면 식민지배를 옹호하는 반민족주의자로 몰려 공격 당할 우려가 있기 때문에 애초에 언급 자체를 꺼려한다. 하지만 처음 의문처럼 객관적으로 보면 분명 적합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보다 나은 방향으로 가기 위해서는 객관적으로 사물을 봐야 한다. 조선의 도덕은 한국의 사회에 적합하지 않다.

 

조선은 불평등한 신분제국가였다. 그런 조선의 도덕은 왕과 양반에 반항하지 않는 순종적인 백성을 길러내는데 적합했다. 무지한 백성들을 다루기 쉽게 도덕의 족쇄를 채워 반항할 수 없게 만들었다. 분명 그 당시 사회에는 적합했을 것이다. 당시 도덕의 상징인 삼강오륜 중 삼강을 살펴보자. 군위신강「신하는 임금을 섬기는 것이 근본」, 부위자강「아들은 아버지를 섬기는 것이 근본」, 부위부강「아내는 남편을 섬기는 것이 근본.」 삼강의 경우 정치적 목적으로 새로 추가된 것이라고 한다. 뭐 그건 별로 중요한 사실은 아니다. 유교에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니라 조선의 도덕에 초점을 맞춘 것이니까. 어쨌든 이것이 평등한 사회에 적합하다고 주장하지는 않을 것이다. 삼강은 불평등하다. 좋은 뜻이 담긴 오륜 중에서도 한심한 것은 장유유서다. 「어른과 어린이 사이의 도리는 엄격한 차례가 있고 복종해야 할 질서가 있음을 이른다.」 아이는 어른에게 복종하라. 이것이 정상적인 민주사회에 있을 수 있는 규범인가? 그런데 한국은 그런 식으로 교육했고 그랬기 때문에 불평등한 사회가 되었다. 한국아이는 처음부터 어른에게 복종하라는 불평등한 교육을 받고 성장했다. 그렇게 질서를 유지하는 도덕 자체가 불평등하니 갑질, 꼰대 따위가 존재하는 것이었다.

 

왜 갑질과 꼰대가 끊이질 않는 걸까? 그건 평등이 부자연스럽기 때문이다. 그 동안 그렇게 교육받아왔기 때문에 평등해지면 자신이 존중 받지 못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예전에 어떤 아이의 고민상담 글을 본 적이 있다. 본인 스스로는 부모에게 마음을 열고 평등하게 대했는데 부모는 그걸 받아드리지 못한다고 하소연했다. 아마 그 아이는 부모를 친구 대하듯 애정을 담아 평등하게 대했겠지. 하지만 그건 불평등한 교육을 받아온 사람에겐 모욕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감히 아이가 어른과 맞먹으려고 하는가? 아이시절부터 서열주의로 교육을 받은 인간은 서열로 차별하는 걸 당연하게 생각한다. 갑질, 꼰대, 왕따 따위는 아주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한국에서 서열 때문에 나타나는 폐단은 도덕이 근간이다. 물론 그 도덕의 근간은 인간의 본성이므로 한국의 문제는 인간 본성의 문제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러니까 민주사회에 적합한 도덕이 되지 못한다. 그건 불평등한 사회의 질서를 유지할 때나 도움이 되는 것이다. 야생이나 신분제사회 같이 말이다. 이런 당연한 것을 왜 모르고 있었을까? 올바른 도리라고 생각했던 것이 사회문제를 일으켰던 원인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올바르다고 생각해왔는데 어찌 의심할 수 있겠나? 관습이 된 정의는 시간이 흘러 변화의 시기에 적응하지 못하고 악습이 되어버린다. 오래된 악습은 오래된 폐단이 되어 적폐라고 불린다. 현재 한국에 뿌리 깊게 내린 조선의 도덕은 한국사회에 있어 적폐다. 진정 평등한 사회를 바라는 이가 상대할 대상은 특정한 인간이 아니라 올바른 도리라 생각했던 조선의 도덕이다. 그 도덕이 그런 불평등한 인간을 길러내는 것이니까.

 

과거 모든 인류가 불평등했음에도 어떤 기준을 나눠 차이를 구분한다면, 육식국가는 힘으로 인간을 지배했고 초식국가는 도덕으로 인간을 지배했다. 동학농민혁명이나 갑신정변의 실패는 도덕이 원인이었다. 많은 백성들이 호응하지 못했을 것이다. 서열에 복종하라 교육받은 인간이 투쟁하기가 쉽겠는가? 힘으로 억눌렀으면 터져 나왔을 것이다. 그러면 자연스러운 혁명으로 이어져 민주화가 되었을 수도 있다. 그런데 조선은 도덕으로 억눌렀다. 백성은 왕과 양반을 섬기는 것이 당연하고 아이는 어른을 섬기는 것이 당연하다. 높은 서열과 싸우는 것이 죄가 되는데 어찌 싸울 수 있겠는가? 죄인이 되는 각오가 된 자들만이 싸울 수 있었다. 이런 불평등한 서열주의가 도덕이 된 순간, 조선의 백성은 도덕의 노예가 되었다. 저항할 수 없고 투쟁할 수 없다. 그런 현상이 두드러지자 조선은 싸울 줄 모르는 국가가 되었다. 이른바 초식화다. 조선은 초식국가였다. 입으로만 도덕적인 양반들은 선비라 불리며 귀함을 받고 야만적인 도축업자들은 백정이라 불리며 천대를 받았다. 이 얼마나 슬픈 일인가. 각자 사회를 구성하는데 필요한 역할임이 분명함에도 서열을 나눴다. 복종을 올바른 도리로 만들다니, 그건 정말 잔인한 일이다. 그리고 그런 잔인한 일은 현대 다른 국가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현대의 대표적인 초식국가가 바로 일본이다. 제국주의, 군국주의로 파멸을 맞이했던 일본의 정치가들은 민중을 지배하는 방법을 힘에서 도덕으로 바꿨다. 착한 일본, 세계에 사랑 받은 일본, 겉으로만 드러나는 도덕적인 행위에 집착하며 싸움과 투쟁을 죄로 만들었다. 분쟁요소가 있는 시위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초식화 교육의 산물이다. 무능하고 부패한 정치가들과 싸울 줄 모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투쟁이 죄가 된 사회에서 불의와 맞서 싸우려면 죄인이란 낙인을 받을 수가 있다. 그러므로 일본이 바뀌려면 죄인이 되는 각오가 된 자들이 많아야 할 것이다. 그렇게 초식화된 그들은 아주 자연스럽게 조선의 뒤를 따르고 있다. 조선을 지배했던 일본이 조선의 말로를 그대로 따라간다는 사실은 보고 있으면 참 헛웃음이 나온다. 일본사회에서 전쟁범죄를 받아드리지 못한 까닭도 어쩌면 이것이 원인일지도 모른다. 초식화되어 착하다고 생각하는 자신들의 선조가 그런 악독한 죄를 지었으리라 생각을 하지 못하는 거겠지. 일본에서 교육받다가 서양으로 건너간 일본의 어린 아이가 서양의 관점에서 일본역사를 교육받고 충격 받아 엉엉 울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난다. 인터넷 글이므로 근거가 확실한 것은 아니나, 초식화된 일본에서 있을 법한 일이라 보고 있다.

 

지금까지 한국사회의 질서를 유지하던 도덕이 없으면 어찌 사회가 유지될까 불안해할 수가 있다. 어쩌면 서양의 것을 그대로 따르자는 사대주의적인 주장을 하는 것이냐고 물어볼 수도 있다. 아니다. 한국사회에 맞는 새로운 도덕을 만들어보자는 것이다. 어째서 불평등했던 조선의 도덕을 그대로 교육하고 받아야 하는가? 단순히 관습으로 여기기엔 그 도덕이 만드는 사회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지 않나. 한국국민은 불평등했던 조선의 도덕이 없어도 평등한 사회질서를 유지할 수 있는 지적 수준과 정보교환수단이 발달했다. 진정 평등한 민주사회는 그 질서를 유지하는 도덕이 평등해야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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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여기서 역할주의를 주장합니다. 역할의 수행여부로 가치를 판단하는 사상입니다. 연령, 성별, 인종, 지위, 인맥, 학력 등과 관계 없이 역할을 다하면 존중을 주는 사상. 그게 진짜 평등한 사상이라 생각합니다.

 

일단 초식화의 죄악은 좀 더 정리해봐야겠습니다. 초식화의 죄악 중에서 과거 조선의 도덕만 짧게 요약했는데도 이정도 길이. 참 쉽지 않네요. 다시 한번 초식화되고 있는 한국사회가 건전한 투쟁이 살아있는 자유국가가 되어 자유와 평등을 누리는 이성적인 민주시민이 많아졌으면 좋겠네요. 지금은 여나 야나 다 감성적입니다. 객관적으로 보세요.

 

우박이 많이 내리네요. . 흥미롭죠.

, 보람이 있는 일을 하고 싶네요. 부디.

한국사회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에 대해 간단히 다루는 글을 써보려고 합니다. 지금까지는 선입견이 들어가는 것이 정보전달에 있어 방해가 된다고 판단하여 인명이나 단체명을 언급하는 걸 자제했는데, 직접적인 언급이 정보전달에 좀 더 도움이 되는 것 같아 그냥 써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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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rckx    친구신청

??? 유교가 순종하는 노예를 길러내는 가치관이라뇨?? 정명 모르시나...

Firepaw    친구신청

조선 유교가 노예를 만드려는 사상이라니...제가 아는 조선하고 너무 달라서 이질감이 듭니다.
조선 유교는 효를 가장 중시했고 일본은 우리가 아는 유교와는 꽤 벗어났지만 충을 더 강조했기 때문에
말씀하신 초식화가 어쩌고 서열이 어쩌고 도무지 공감이 안되네요 'ㅅ';
서열과 그 불공평이 조선에서 시작된 것도 아니고 유교에서 발생하여 받아들인것도 아닌
전세계 모든 국가와 인류의 역사에서 나타난 현상인데 이걸 도덕적 잣대로 삼으시다니요.
하물며 짐승들도 서열싸움을 합니다.

또한 조선 초기만해도 여성의 지위가 그리 낮다고 보기도 힘듭니다. 서양의 중세국가는 물론 일본과도 비교할 급이 안됩니당...
임진왜란 이후 남자가 너무 죽어나간탓에 남아선호사상이 꽃피기 시작했다고 보는데 그 이전만 해도 여아도 당당히 큰아이부터
족보에 올랐고 재산의 분배도 동일했다고 합니다. 노비도 노비를 거느릴 수 있었고 돈으로 노비신분에서 벗어날수도 있었지요.

오성과 한음만 해도 5살 차이나는데 친구먹고 어깨동무 했다는건 너무 유명한 이야기인데...너무 조선의 폐단과 단점만 보시는게 아니신지요.
조선 후기에 대해선 너무나도 암울해서 언급할 게 없으나 조선이란 나라, 특히 초기 중기만 해도 중세시대에 그 어떤 나라들보다
굉장히 합리적인 국가였다고 봅니다.

유생들은 물론 신하들도 단체로 상소를 올리고 왕의 뜻을 거역하는것도 가능했는데 이게 노예사회입니까.

임진왜란에서 국왕이 도망가도 제 가족, 제 나라 지키겠다고 농기구를 손에 쥐고, 탄압받았다던 불교의 중들이
무기들 들고나와 목숨을 바쳐 싸워나갔던 그 사람들의 사상은 어디에서 왔습니까?
또한 지휘관 없이도 침략자에 맞서 싸웠던 나라는 몇개나 알고 계십니까?
진짜 조선과 조선이 강요하던 사상이 순종적 노예를 만들기 위함이었다면
국가 존망이 달린 상황에서 외부에서 온 침략자를 반기지 않고 되려 무기를 겨눈 이유는 무엇 때문이었을까요?

조선은 평민도 과거시험을 통해 양반이 되는것이 가능했지만 일본은 말씀하신 것 처럼 과거제도 없었고
평민출신중에 메이지유신 이전에 입신양명한 일본인을 한명이라도 아시는 분은 있으신지요?
왕자리 말고 일본 최고의 자리를 꿰찼던 인물중에 평민출신이 몇명인지는 알고 계신가요?

일본은 지금도 그렇지만 철저하게 귀족사회 였습니다. 평민은 기회는 커녕 살아남는게 최우선이었어요.
일본인이 초식화요? 지금 일본인이 현대사회에서 시민의식이 뛰어나다 같은 말은 철저하게 과거의 삶에서 온 반작용입니다.
마찰을 최대한 피해야하고 눈에 띄면 안됩니다. 공동체에 같이 섞여있어야하고. 분위기를 읽을 줄 아는게
최고의 덕목이나 마찬가지인 사회에요. 'ㅅ';
옛날 일본이야기중에 다이묘들이 백성들을 위해 뭘 했니 쇼군이 백성들을 위해 뭘 했니 일왕이 백성들을 위해 뭘 했니
하는 이야기 단 하나라도 들어보신적 있나요?
전부 싸움이야기만 아시겠지요. 지역영주들의 싸움 그게 일본역사의 전부입니다. 백성과 서민이 설 수 있는 자리는
아예 없었어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거론되는 것도 업적도 그렇지만 이 인물이 평민출신이거든요.
일본이 지금의 모습을 한 것은 언젠가부터 바뀐 모습이 아니라 지금까지 변하지 않은 모습일 뿐이에요...

도대체 당시 중세부터 근대까지 조선에서 말하던 덕목 과 도덕 이외에
어느나라의 도덕과 사상이 만민에게 평등했는지, 혹은 평등한 신분제 사회였는지 꼭 좀 알고 싶을 지경입니다 'ㅅ'

그리고 다른 글에서도 계속 역할주의를 주장하시는데 아마 사이코패스란 애니메이션에서 보여주는 사회를 꽤
맘에 들어 하시지 않을까 문득 생각이 듭니다.

神算    친구신청

비판하기 위해서는 지지자 못잖게 그 대상을 잘 알아야 하겠죠.
유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면서, 정작 그 죽일 유교가 뭐냐 물으면 막연히 계급, 가부장, 꼰대 정도만 우물거리고 마는 분들이 안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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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에 대한 선입견이나 몰이해가 좀 심각하신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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