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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집] [시] 파편 (0) 2025/12/04 PM 05:40

파편



퍽 사치스러운 시대

꼭 서로가 아니어도.

일말의 껍데기가 남아

말끝을 흐려보지만

속살을 드러낸 무리가

서슴없이 묻는다.

넌 얼마냐고.


보다 은밀해진 매매

흘깃흘깃 관음 하며

제 가치를 셈해보는 꼬마에게

휘황찬란한 가격표를 과시하는 이들.

관중은 없고, 관종만 남은 무대에는

차디찬 평면만이 손 흔들고 있었다.

널 사랑한다고.


사랑은 어쩌다

그런 싸구려가 되었을까.

더는 서로가 아니어도

괜찮다는 가소로움 앞에

우리는 더, 고독해졌다.

셈 따위로 풀어낼 수 없을 만큼

지독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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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집] [시] 쇼츠 (0) 2025/11/27 PM 05:11

쇼츠



솜사탕처럼 스쳐간다.

끈적이는 손가락을 핥아본다.

달다, 엄마의 자장가처럼.

나는 금세 웃고, 금방 접히는 그런 생물.

초라함을 곱게 접으면 내가 되겠지.

푸르딩딩한 화면을 넘긴다.

푸르딩딩한 하루를 넘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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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집] [시] 꿈의 여정 (0) 2025/11/11 PM 07:25

꿈의 여정



그는

하늘을 나는 상상을 한다.

더는 미지도, 동경도 아닌

시시한 상상.


최초도, 최고도 아닐

서투른 날갯짓이

놀림거리가 되어도

그는 멈추지 않았다.


꿈은

정상에 꽂힐 깃발도

시상대에 오를 메달도

아니었기에.


그는

또다른 성공담이 들려와

연민이 쏟아질 적에도

하얀 눈 만난 아이처럼

기뻐할 뿐이었다.


꿈의 여정에는

그 어떤 결말도

적혀있지 않았기에

그는 오늘도

하늘을 나는 상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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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집] [시] 퇴근 후에 샤워를 하십니까? (0) 2025/10/29 PM 08:46

퇴근 후에 샤워를 하십니까?



나는

천천히, 죽음을 씻어냈다.

끈적하게 들러붙은 묵은 것을

꼼꼼히 벗겨내고 나니

팽팽했던 시위가 풀어지듯

피로감이 몰려들어

새하얀 침대에 누웠다.

가능한 흐트러지지 않게, 조심스럽게.

양손을 곱게 포갠 채

무채색 천장을 보고 있으려니

꼭 관에 누운 듯싶었다.

계절을 허비한 탓에

죽음과 지나치게 가까워지긴 했지만

적어도 오늘은 아니다.

적어도 오늘은 아니다.

되뇌며 잠에 들었다.


문자가 도착했다.

시간과 장소.

두 가지면 충분했다.

일이든, 여행이든.

기억이란 틈에 담기엔

사람은 너무 흔했기에.

오후 7시, 4층.

정각이 되기 전

몇몇을 마주쳤지만

당신은 아니다.

오늘은 아니다.

띠띠- 띠띠-

정각에 맞춰

말끔하게 일을 마치고

묘한 고양감을 억누르며

퇴근하는 인파 속으로 스며들었다.

각양각색의 복장에도

모두 비슷한 표정을 짓는

이 시간이 참 좋다.

애써 숨으려 들지 않아도

날 기억하지 못할 것이기에.


내 성취는

짤막한 단신으로 지나갔다.

비교적 이른 시간이었지만

관심이 몰려들기에는

요란한 폭죽이 더 많았기에

흔적이 되지는 못하리라.

도시를 메운 연기와

뒤엉켜진 진실은

사냥개조차 맡지 못한 채

으레 그렇듯 소문으로 포장되어

풍선껌처럼 씹히다 뱉어지겠지.

축배를 들자, 메스미디어.

나의 오랜 동지이자

나의 영원한 후원자을 위하여.

가로등불이 아득하게 반짝거리는

마천루의 한 투숙실에서

자글거리는 기포가

사그라들기도 전에

나는 또다시 초대장을 받는다.

시간과 장소.

두 가지면 충분했다.

나와 당신에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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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집] [시] 사냥과 비행 (0) 2025/10/20 PM 07:12

사냥과 비행



잃을 것이 많아진 농부가

밤낮없이 공포탄을 쏘아 올리자

하늘은 매캐한 잿빛이 되었다.

투쟁과 사냥 사이

추락만큼 갈채가 쏟아졌지만

흥건한 증오는

붉은 밭에 고스란히 스며들었다.


둥지를 잃은 새들은

때이른 비행에 나서

여물기도 전에 몰려드니

남은 유산마저 마르면

그때는 또 얼마나 많은

총알을 쏘아야 할까.


나는 눈 감지 못하는 허수아비.

나는 뒤돌지 못하는 허수아비.

총성과 절규 사이 꽂힌, 한낱 허수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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