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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_습작모음] [시] 기화 (0)
2024/07/17 PM 04:42 |
기화
우리는 어쩌다 슬픔마저 팔아야 하는 걸까. 우리는 어쩌다 슬픔마저 숨겨야 하는 걸까. 잔뜩 찌그러진 우리는 눈물을 담을 곳도 잃어버린 걸까.
SNS에 올린 우울한 글귀는 순간의 관심으로 증발하고 가볍지 않을 타인의 비극은 쏟아져내리는 장면이 되어 겉면만 타고 흐르다 사건을 안고 기화되었네.
모두가 수증기처럼 흩어지고 슥슥 밀어내고 나니 남은 건 텅 빈 알림창 뿐. 담을 곳 없는 우리는 늘 굶주린 채로 머무네.
기화된 감정들이 추적추적 비가 되어 내린다. 우리는 이미 그렁그렁 한데 얼마큼 퍼부어야 눈물이 가려질까. 얼마큼 차올라야 모두의 슬픔이 될까.
가라앉고 나면, 마음껏 울어도 괜찮겠지. 그래서 너도, 나도 헤엄치지 않는 걸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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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_습작모음] [시] 희극은 만원, 비극은 십만원 (2)
2024/07/15 PM 05:02 |
희극은 만원, 비극은 십만원
위태로운 외줄타기 끝엔 찬란한 갈채가 있을까. 후들거리는 다리를 달래 공중제비 돌고 보니 천장이 핏빛으로 물드네.
나는 떨어져버린 슬픈 광대. 저들의 시선이 너무도 무섭소. 저들의 동정이 너무도 무섭소. 저들의 조소가 너무도 무섭소. 몰려든 조명이 너무도 무섭소. 어서 막을 내려주오. 어서, 어서, 제발...
뒤집힌 하늘에 검붉은 노을이 져도 밤이 찾아오지 않는 잔인한 백야에 묻힌 초라한 광대.
헌화는 삼만원. 사진은 오만원. 입장은 십만원. 섬뜩한 안내 문구 내걸린 무대에선 녹음된 광대의 목소리만 흘러나왔다. "앞으로도 많이 사랑해 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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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_습작모음] [시] 실패의 기록 (0)
2024/07/11 PM 05:52 |
실패의 기록
그는 오늘도 실패를 적었다. 불길이 사그라들듯 얼음이 녹아내리듯 그를 향한 기대가 시간에 변질되어 조롱으로 변했어도 그는 여전히 실패를 적었다.
허공에 다리를 놓듯 헛발질만 수백 번 잡히지 않는 지평선을 바라보며 그는 어렴풋이 깨달았을지도 모른다. 자신은 끝내 실패하고 말리란걸. 그럼에도 그는 공책 빼곡히 자신의 어리석음을 적었다. 자신의 부끄러움을 적었다.
훗날 이 작은 공책이 시금석이 될지 낙서장이 불과할지 누구도 알 수 없겠지만, 그는 오늘도 실패를 적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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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_습작모음] [시] 꿈의 변호 (0)
2024/07/08 PM 05:17 |
꿈의 변호
열 밤을 자고 나야 어른이 된다던데 꿈만 꾼 탓에 늙기만 한 걸까. 제자리만 맴도는 뒷모습 초라하기만 하다.
흘러넘칠 곳을 잃은 눈물은 귓가에 맺혀 이명(耳鳴)을 울리고 도망칠 곳을 찾은 변명은 종이에 스며 이명(異名)을 새기네.
시대는 저물어만 가는데 필명은 새겨지질 않는다. 나는 깊이 사랑하지 않았던 걸까. 얕은 필적은 아무도 모른다 하여도 상처받지 않을 만큼만 사랑했던 걸까. 순백을 더럽히던 다짐이 무색하게도 나는 여전히 꿈속을 헤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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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_습작모음] [시] 아스팔트로 떨어진 씨앗 (0)
2024/07/03 PM 09:25 |
아스팔트로 떨어진 씨앗
봄날의 화단처럼 행복만 만개하면 좋으련만 불현듯 떨어진 꽃잎처럼 억울한 아픔이 가득 쌓여 엄마도 다 품지 못하네.
아스팔트로 떨어진 씨앗에는 어떤 꽃이 담겼을까. 어떤 색을 그렸을까. 어떤 향을 풍겼을까. 쏜살같이 지나치는 바퀴는 궁금할 겨를도 없겠지.
짓궂은 바람에 날린 씨앗아. 혹자는 너를 먼지라 부르며 가차 없이 쓸어내겠지만 뭉개지고, 썩어가는 중에도 품은 꽃을 져버린 적 없기에 나는 너를 거름이라 부르리. 다시 봄 피워낼 희망이라 부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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